신간 전자책
주식투자로 수익내는 156가지 방법 왕초보3
도서정보 : 양순모 | 2017-01-13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진정한 주식투자 초보자를 위한 입문 교육서
주식투자 전 꼭 알아야 할 증권 용어부터, 기본적/기술적 분석까지!
주식시장은 산수의 사칙연산처럼 답이 딱 나오는 것이 아닌 ‘관점’의 차이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렵고 험난하지만, 그만큼 방법을 알고 나만의 투자 스타일을 정립해 나간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도 바로 주식시장입니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처럼 제대로 알고 투자하신다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이 책은 주식을 처음 투자하시거나 오랫동안 자신만의 잘못된 방식으로 투자하신 모든 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투자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구매가격 : 9,000 원
주식투자로 수익내는 155가지 방법 왕초보1
도서정보 : 양순모 | 2017-01-13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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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9,000 원
발리보다 인도네시아
도서정보 : 김무환 | 2018-05-14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1만 7천 가지 매력이 숨어 있다. 우리가 모르는 더 많은 인도네시아가 있다.”
3년에 걸쳐 세 차례, 인도네시아 여행 148일
파미르 고원을 방랑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열대 섬나라를 유영했다. 자바, 수마트라, 술라웨시에서 소순다 열도와 깔리만딴에 이르기까지 ‘물과 불의 나라’를 구석구석 탐사했다. 도대체 인도네시아에는 무엇이 있길래 저자는 세 차례나 그곳을 찾았을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섬과 화산으로 이루어진 나라, 가장 많은 무슬림을 거느리고 있으나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나라, 다양성 속에 하나 됨을 지향하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 인도네시아. 섬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발리만 인도양의 보석은 아니듯이 자바가 인도네시아의 전부는 아니다. 그야말로 17,500개 모든 섬이 보물섬이다. 동남아시아에 속하지만 동남아시아가 아닌 인도네시아, 그곳에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흙의 질감, 물의 색, 공기의 결, 생명의 리듬이 있다.
장기는 로컬버스 타기, 취미가 현지어로 말 걸기, 특기는 샛길로 빠지기인 저자. 그런 그가 ‘무궁무진 인도네시아’를 종횡무진하며 한편으론 고군분투하며 자유로이 누비고 다녔다. 길 위의 풍경과 삶이 그려내는 무늬를 사진으로 담았다. 이 책은 그 여정에서 겪고 배운 바를 오롯이 엮어낸 여행기이자 문화 탐구서이다.
구매가격 : 10,000 원
삶이 묻는다
도서정보 : 심경섭 | 2018-05-14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류의 성자들과 수많은 현자들이 하나같이 주장했듯이, 삶에 대한 해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눈과 귀가 내 안이 아닌 밖으로 향해 있어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뿐. 어떻게 해야 삶의 물음에 가장 괜찮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함께 구해 보고자 〈더 미라클〉 회원들과 함께 고민했고, 함께 답을 찾으려 애썼으며, 그 고민의 결과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이 진리에 목말라 있는 이들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거나,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이들의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 주거나, 삶의 물음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롭고 가장 훌륭한 조언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밖으로 향해 있는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돌리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해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역할을 할 수는 있으리라고 믿는다.
구매가격 : 10,000 원
50 COINS
도서정보 : 코인마켓캡 | 2018-05-31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50 COINS」은 각 코인의 의미와 기능, 개발자들의 면면과 앞으로의 전망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출판을 기획하게 되었으며 코인의 기능과 특징 및 개발자 소개와 앞으로의 전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암호화폐가 실체가 없는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또 주변의 성공신화만 듣고 정확한 정보 없이 감으로 투자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블록체인이라는 플랫폼들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시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하실 수 있는 지렛대가 될 것입니다.
구매가격 : 17,500 원
김 父子의 세상수업
도서정보 : 김희우, 김치우 | 2018-08-23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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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형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글로 엮은 작품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특히 다양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사업을 할 때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와 교훈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경험을 우리만 간직하기에는 아쉬움으로 남아 이를 되새기면서 공유하고자 이 책을 엮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교훈 중 일부로서 특정인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경험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노하우와 전문 지식, 실천 가능한 처세술이 들어 있습니다.
구매가격 : 9,000 원
폭력과 존엄 사이
도서정보 : 은유 | 2017-08-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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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나?
《폭력과 존엄 사이》에 등장하는 이들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오랜 세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 국가를 장악한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불리한 국면에 있을 때마다 간첩을 만들어냈고, 공포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며 통치를 해왔다. 검찰, 경찰, 안기부, 사법부 등의 국가기관도 공범이었다. 이런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들은 ‘임의로’ 끌려가 한순간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 국가 입장에서 간첩사건은 공안의 명목으로 실행한 단순한 조치들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들에게 간첩 조작 사건은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끔찍한 분기점이 되었다.
국가가 사건을 날조하는 방식은 대단히 교묘하면서도 간단했다.
“모든 폭력이 발생하는 원리가 그렇듯이 가해자는 ‘그래도 되니까’ 조작한 것이고, 피해자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조작 대상이 됐다. (…) 영장도 없이 국가기관에 끌려가 발가벗겨진 채 발길에 차이고 매질에 피를 쏟고 전기의자에 앉는 고문을 당한다. 초인적 힘으로 버티던 그들은 ‘가족을 데려다 똑같이 고문하겠다’는 협박에 무너지거나 고립의 공포와 밤낮없는 가혹행위에 심신이 허물어져 거짓 자술서에 손도장을 찍는다.“ (서문, p.8~9)
여기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총출동했다. “사람을 사람 아닌 상태로 비틀어버리고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만들어내는 고문 기술자” “그 고문으로 혼절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죽지 못하게 살려두고 다시 고문받을 수 있도록 내버려둔 의사” 등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모두 간첩 만들기라는 무시무시한 연극에 참여했다. 심지어는 법조계 인물들도 주연배우로 동원됐다. 무엇보다도 사법기관만큼은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정의에 위배되는 폭력에 이의를 제기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저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하달받은 명령에 복종했다. 헌법기관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법정에서는 진실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그들은 이내 그 믿음이 모두 헛되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주십시오. 검사가 이래요. 아니 모든 게 애매한데 어떻게 사형이냐고.” (김평강, p.9)
“뭘 시인해요. 다 조작인데. 배운 사람들이 그러는 걸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김흥수, p.10)
말할 권리는 곧 들릴 권리이다.
간첩 조작 사건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인 동시에 삶의 심층에 맞닿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말은 정치적 차원과 분리된 개인의 삶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 아니라, 사건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 지점이 남겨진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법적인 절차를 통해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밝힌다고 해도, 간첩으로 몰려 살아온 지난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근본적으로 보상이 불가능한 시간이다. 《폭력과 존엄 사이》는 그 간극을 마주하고자 한다. 간첩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그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2016년 초 인터뷰집 발간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난 정중히 거절했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란 존재가 너무 낯설었다. 그간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접점이 없었기에 아무런 상이 잡히지 않았다. 내게 간첩 조작 사건이란 군부독재 시대를 휩쓴 광풍으로, 현대사 역사책에 누워 있는 단어일 뿐이었다. 그런데 인터뷰 작업이 국가폭력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사는 이야기, 즉 삶의 질곡을 견디며 살아온 일상 그리고 끝내 무죄를 밝혀내고 존엄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 그리하여 몹시도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다는 기획 의도를 듣고 조심스레 용기를 냈다.” (서문, p.15~16)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은 무엇을 말하기보다 ‘듣기를’ 자처한다. 기본적으로는 르포르타주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좀 더 정직히 말해 이 책은 ‘듣는 작업’에 해당한다. 말하고자 했던, 즉 자신의 말이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 말이다. 국가가 지급하는 형사보상금과 위자료로도 보상될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 어떤 면에서 그들이 가장 희망했던 것은 시스템 내에서 이루어지는 보상이라기보다 자신들이 ‘말할 권리’, 그리고 그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들릴 권리’였는지 모른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말을 하니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그걸로 책을 쓰려는 사람도 있고 우리를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암울하게만 살았는데 힘이 나더라고요” (김순자, p.41)
실제로 그들이 겪은 고통 중 그들을 가장 괴롭게 한 것은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믿어준 사람들의 부재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등돌림은 그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강제로 끌려가 감금된 그들은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돼 가족들에게조차 억울함을 말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감옥에서 보낸 세월은 그 어떤 끈끈한 관계와 신뢰도 희미해질 만큼의 오랜 기간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여전히 삶은 그들의 것이다.
이 책은 간첩 조작 사건에 관한 책이 아닌 ‘그 사람들의 책’이다. 간첩사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는 있지만, 사건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간첩사건이 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파국 그 자체였을 것이라는 얄팍한 예상과 달리, 이 책에서 그 당시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뜻으로 오롯이 살아낸 삶의 ‘한때’로서 등장할 뿐이다. 국가는 폭군처럼 등장해 그때껏 그들이 일구어 온 모든 것들을 앗아갔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그들의 것이었다. 감옥에서도 삶은 결코 중단되지 않았고, 때론 새로운 생명력으로 꽃을 피웠다. 삶이 중단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누군가의 불공정하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삶이 짓밟힌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내 별명이 책 할머니야. 유명했어. 책 담당하는 일. 책 목록이 있어. 그걸 각 방에 넣어줘. 내가 가면 나한테 뭔 책 읽는다고 말하면 책을 줘. 나중에 회수하고 몇 번이 뭔 책 가져갔다 적어놓고. 독방에 있는 사람하고도 나는 말을 할 수 있어. 책을 주고받으니까.”(박순애, p.97~98)
“건축기사 2급 취득하고 2년간 경력 쌓으면서 건축기사 1급을 봤는데 필기 실기 다 한 번에 붙었어요. 수능시험 공부하면서는 옆에 사람들 빨래를 한 달 동안 해주고 책 한 권 구하고 그랬어요. 광주교도소에서는 자리가 잡히니까 모범수 한 명 선정하는데 내가 뽑히고. 그때 되니까 내가 필요한 책을 구하기가 수월했죠.” (김용태, p.216)
“그 안에 안 죽고 산 것이 참말로, 아이고 나는 이 판결 나기 전에 죽을 줄 알았어. 무엇을 가지고 저세상으로 떠날 수 없으니까 있는 걸 베풀고 살아야 해. 형사 보상금 나와서 자식들 나눠주고 감옥에서 30년 살다 나온 사람들에게도 100만 원씩 보냈어.” (이성희, p.77)
우리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을 고통의 시간을 이들은 공부의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자신보다 더 안쓰러운 사람을 돕는 계기로 오롯이 채워냈고, 결과적으로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게 됐다. 자신의 인생 역정을 한바탕 풀어놓으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사건을 겪기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겪지 않았으면 좋을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새로운 나를 발견한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뼈아픈 이별을 경험한 만큼 그들은 자신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 새로운 인연들도 얻었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온전히 듣고 믿어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풍랑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는 감옥도 살 만하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장소의 여건보다 관계의 질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아무리 궁궐 같은 집이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인간은 불행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의 결백함을 알아주는 동료가 있고, 말이 통하는 벗과 책이 있고,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눌 수 있을 때 그들은 감옥이지만 살 만하다고 느꼈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낼 수 있었다.”(서문, p.16~17)
그들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간첩의 누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도에는 시효가 있어도 진실을 향한 투쟁에는 시효가 없음을 깨닫고, 나아가서는 이름이 다른 수많은 참사들의 본질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투쟁, 보이지 않는 투쟁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서사는 대문자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개인들의 역사이다. 이들은 화자이면서 자기 삶의 소설가이자 역사가가 된다. 국가가 함부로 난입해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삶의 서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폭력과 존엄 사이》라는 책으로 결실을 맺은 이 인터뷰 작업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면, 형편없이 날조된 엉터리 소설을 고쳐 쓸 수 있는 하나의 장이자 방편이 되었다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구매가격 : 9,100 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7-08-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형님으로 모시겠소”
일본 극우들에게 고개 숙인 박정희
미숙성, 굴욕·저자세, 졸속 처리로 한일협정 체결
과거사에 대한 일본 측 사과 받아내기는커녕
망언 덮어준 박정희 정권
박정희와 일본 우익, 그리고 한일 회담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권의 주제는 ‘한일 회담 한일협정’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박정희 정권이 미숙성, 굴욕·저자세, 졸속 처리로 한일협정을 체결했다는 사실과 일본 극우들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소”라며 머리를 숙이고, 검은돈을 받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한일협정을 맺었는지 자세히 살피고,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이 왜 문제가 되는지, 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통틀어 가장 장기간 동안 반대 시위가 일어난 까닭도 살피고 있다.
“박정희는 만주 인맥에 의존해 한일 회담을 타결하려 했고 한일 관계를 심화시키려 했으며 경제 건설을 하고자 했다. 이것은 1964년, 1965년에 엄청난 규모로 시위가 일어나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아울러 박정희 집권기에 널리 사용된 ‘친한파’, ‘반한파’도 박정희 정권 때 한일 관계가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만주 인맥과 그 뒤를 이은 군국주의자들은 유신 체제 지지·지원에 멈추지 않고 전두환·신군부 체제의 출현과 존속을 적극 지원하고 지지했다.”
군사 정권의 미숙함, 무경험, 경솔함, 독단, 독선
한일 관계는 참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다.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해방 후 한일 관계의 분수령 중 하나가 일반적으로 한일협정으로 불리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가로놓인 문제들의 상당수가 한일협정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차분히 되짚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에 대항하여 한?미?일 3각 안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강력히 요구했고, 정통성의 취약점을 경제 개발로 만회하려는 박정희 정권은 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런데 한일 회담은 이승만 정권 때도, 장면 정권 때도 있었는데 왜 박정희 정권 때 대규모 시위 또는 반대 활동이 전개됐을까? 1964~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은 특히 시위가 많이 일어났던 박정희 정권 18년을 통틀어 가장 장기간에 걸쳐 전개됐고, 1979년 부마항쟁을 제외하면 그 규모도 대단히 컸던 시위·반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큰 시위, 반대 운동이 2년에 걸쳐 벌어졌다.
이처럼 큰 저항에 직면한 이유는 군사 정권의 미숙함, 무경험, 경솔함, 독단, 독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취한 태도와도 관련돼 있었다. 일본에 보인 굴욕적 저자세, 졸속 처리하려는 태도 같은 것이 학생과 국민들에게 큰 반감을 샀던 것이다.
과거사 사과 받아내기는커녕 망언 덮어준 박정희 정권
전 국민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1965년 2월 20일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되었고, 6월 22일 일본에서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다. 가장 중요한 일본의 사죄는 어물쩍 넘어갔다. 시이나 에쓰사부로 일본 외상은 “한일 양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로서 깊이 반성하는 바이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박정의 정권이 가장 매달렸던 청구권 자금도 문제가 참 많다.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는 두고두고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와 관련해 하나 더 생각할 문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폭 피해자,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그곳이 옛 소련 땅이 되면서 돌아올 길이 막막해진 이들의 문제는 한일 회담 과정에서 논의되지도 않았다.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한일 국교 정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한테서 받은 이 돈은 일본이 1950년대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지불한 것보다도 더 적은 것이었다. 청구권 자금을 받은 방식과 그 사용처도 논란이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금액을 일본으로부터 일괄 수령하는 방안을 관철했고, 그렇게 받은 금액을 피해자들에게 온전히 전하는 대신 기간 시설 건설 등에 상당 부분 사용했다. 경제 건설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몫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앞섰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소”
무엇보다 문제는 박정희가 만주 인맥에 의존해 한일 회담을 타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기시 노부스케, 시이나 에쓰사부로, 고다마 요시오, 야쓰기 가즈오, 이시이 미쓰지로 등 만주국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거나 대륙 침략 과정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만주 인맥은 박정희 군사 정권의 출현을 적극 환영했다. 5·16쿠데타 이후에 기시 노부스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다행히 한국은 군사 정권이기 때문에 박정희 등 소수 지도자들의 나름대로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액수로 박 의장을 만족시키기만 하면 저쪽에는 국회도 없는 것이고, 만일 신문이 이것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박 의장이 그들을 봉쇄해버릴 수 있으니까 되는 것이다.” 민정 이양기에 박정희가 군정을 연장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만주 인맥을 중심으로 한 일본 극우 세력은 적극적으로 환영하기도 했다.
1961년 박정희는 일본을 방문해 30시간을 머문다. 거기서 그는 만주군관학교 교장 같은 사람을 일본 정부에 요청해 만나고, ‘깍듯이’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 교장은 군국주의 파시즘이 골수까지 박힌 사람이었다. 박정희한테는 일본 패전 이전의 군인 시절에 대한 상당한 향수 같은 것들이 있었고, 첫 일본 방문에서 만주군관학교 시절 교장 등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일본 도착 다음 날인 1961년 11월 12일, 박정희는 기시 노부스케, 이시이 미쓰지로, 이케다 하야토, 사토 에이사쿠 같은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는 유창한 일본어로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명치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생각으로 해볼 생각이다”라고 이야기해서 그 자리에 있던 그 사람들이 놀라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일본 육사 출신이라는 걸 내세우면서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에는 일본식 교육이 가장 좋다”며 자꾸 일본 정신을 강조했다고 한다.
1965년 한일 회담 조인을 한 당사자인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이 쓴 《대통령을 그리며》에 이런 말이 나온다. 1961년 11월 기시 노부스케 등을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쓰여 있다. “선배님들,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일본은 분명 우리보다 앞섰으니 형님으로 모시겠소. 그러니 형 같은 기분으로 우리를 키워주시오.”
이렇게 졸속으로 맺은 한일협정은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일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에 들어서고 한국이 자주적으로, 대등하게, 자신감을 갖고 일본을 대하게 된 것은 한국이 민주화로 나아간 1987년 6월항쟁 이후였고, 정부 차원에서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이후였다. 그 긴 세월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던 건 박정희 정권 때 맺은 한일협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불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만주 인맥의 대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이끄는 정권이 저런 극단적인 짓을 계속하고 있고 박정희 유신 체제와 ‘친연성親緣性’이 강한 박근혜 정권이 그것에 야합하면서 그 불행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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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8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7-08-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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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불구로 만든
박정희식 성장 만능주의는 어떻게 탄생했나?
박정희는 청렴하고 경제에 헌신했다?
오히려 경제를 죽여서라도 권력 잡기에 혈안이었다
박정희 시대에 풍미한 천민 자본주의, 성장 만능주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8권의 주제는 ‘경제 성장’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경제 성장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한국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성장과 발전이 박정희의 업적은 아니라고 서중석 교수는 말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은 오해이고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죽도록 고생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나라를 일으킨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을 주목하고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조건은 어떠했는지, 성장의 진정한 주역은 누구였는지,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눴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 박정희식 성장 만능주의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1960~1970년대에는 물신숭배 분위기, 즉 성장 만능주의, 성장 제일주의가 이른바 조국 근대화 논리와 얽혀 한국 사회를 풍미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배제되었다. 적나라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었고, 한마디로 정의, 성실, 근면, 정직 같은 것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가 못 된 것이다. 서중석 교수는 해방 직후에 친일파 청산을 못한 것이 한국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런 천민 자본주의, 성장 제일주의, 성장 만능주의도 한국 사회를 불구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정희 집권 시기 경제적 결함을 여러 가지로 지적했는데, 그 결함이 크다 보니까 그것이 마치 체질처럼 돼서 수정할 방법을 찾기가 힘들게 됐다. 예컨대 과도한 해외 의존이라든가 내수 시장 빈약, 경제력이 소수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재벌 중심 경제, 부동산 투기 등에서 볼 수 있는 투기성 경제, 타율적 금융, 노동 통제 같은 것들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게 된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경제에서 수십 년 동안 살다보니까 잘못된 것을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많아졌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경제 발전은 없었을까?
한국 경제가 성장한 여러 요인은 무엇인가
박정희 집권 18년간 한국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했다.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변신했고, 배고픔도 해결됐다. 또 경공업 국가에서 중화학 공업 국가로 바뀌었다. 1971년에 37.5퍼센트였던 중화학 공업 비중이 1981년엔 51.1퍼센트가 되면서 고도 산업 국가가 됐다. 이 시기에 포항종합제철과 거대한 중화학 공장들이 들어서고 고속도로도 뚫렸다.
또 대단한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인 1962~1966년에는 연평균 7.9퍼센트를 기록했는데, 그다음 시기에 비하면 그리 높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인 1967~1971년에는 연평균 9.7퍼센트라는 아주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더구나 이 시기에는 제조업 성장률이 연평균 21.5퍼센트나 됐다.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기간인 1972~1976년에도 9.2퍼센트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고도성장을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렇게 놀라운 변화가 이뤄진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변화를 두고 ‘박정희가 대단한 경제 발전을 하게 만들었다’, ‘박정희에 의해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 심지어 ‘박 대통령이 없었다면 경제 발전이 없었을 것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견해는 문제가 많고, 박정희 정부 시기의 경제 발전에서 박정희가 맡은 역할은 부분적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이 시기에 경제가 발전하게 돼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집권 18년 시기는 인류 역사상 세계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리는 시기와 많은 부분 겹쳐서 한국도 경제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취욕도 경제가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베트남전쟁 특수, 중동 건설 특수도 큰 작용을 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여러 요인이 작용해 한국 경제가 성장한 것이지 박정희 개인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전태일 분신케 한 참혹한 노동 조건,
권력은 노동 통제에만 관심 있었다
이 시기 한국 경제의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정부가 노동자를 통제하고 노동조합도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이 그런 정부에 의존해서 노동자를 압박하고 노조를 어용화해 이윤을 높이려는 쪽으로만 신경을 썼다.
당시 노동자 상황을 보더라도 한국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산업 사회로 가고 있었다. 따라서 거기에 걸맞은 노동 정책이 있어야 했고 적절한 노동 운동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기업도 살고 노동자도 사는 건강한 사회로 한국이 가야 했다. 그런데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그 길을 아주 어렵게 만들었다. 많은 노동자들은 열악한 일터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이런 노동 문제를 고발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 있었던 엄청난 물가 상승은 노동자, 서민들의 생활을 크게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인 경제 활동에 의해 부를 축적하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 등 각종 투기가 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성장 잠재력을 억압하게 되고 사회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그러다가 1979년 YH 여성 노동자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부마항쟁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박정희 유신 정권의 운명을 재촉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 18년간의 경제를 평가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이 이 시기에 상당히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게 18년 동안 관행처럼 돼 있다 보니까 그 뒤의 정권이 그걸 이어받지 않으면 경제가 운용이 안되는 식으로까지 한국 사회가 돼버렸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처럼 된 것이 있다. 너무 심각해서 그 병이 고질병이라는 사실은 물론 무슨 병인지도 나중에 가면 잊어버리게 되는 망각증 상황까지 갔다.”
구매가격 : 11,200 원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
도서정보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2018-08-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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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비정규직 사회헌장]
우선 비정규직 사회헌장을 만들기 위해 현장의 노동자들이 한데 모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어떤 권리가 필요한지를 하나씩 모아 담았다. 18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했고, 활동가 6명이 각각의 조항에 담긴 의미를 풀어썼다. 그 결과 비정규직 사회헌장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반영되었고, 법과 제도로 요구하는 권리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까지 포함했다.
이 책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선언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차별과 고용 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해고되어서 이전의 관계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어버린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빼앗겨버린 이주노동자, 그리고 영세한 자본 구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한 선언문이다. 안정된 노동의 권리,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나갈 권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자 모두의 권리이며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자신이 처한 비참함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정부나 기업에게 묻지 않고 자기 자신 탓으로 여기며 체제에 순응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껏 지켜봐왔던 것처럼 정부는 절대 노동자의 편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순응하는 시민들과 언론도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이 책 《모든 노동에 바칩니다》는 노동자가 스스로 ‘투쟁’해야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권리 찾기를 선언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가 존중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라져버린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나서야 진정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
1부에서는 “비정규직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다. “함부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삶을 파괴해서도 안 된다. 일터에는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존중하는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 이런 권리가 일터에서 당연하게 존중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비정규직은 단지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일상의 차별과 권리의 침해로 노동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자들이 이런 현실을 수용하지 않아야 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사소한 인권 침해에도 계속 문제 제기하고 싸워나갈 때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도 변화할 것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2조: 차별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8조: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9조: 장시간 노동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0조: 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1조: 존중받는 호칭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권리는 있어야 한다’는 짧은 문구는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다. 마땅한 현실이 되어야 하지만, 마땅한 현실이 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는 여전히 ‘인간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져야지’ 대신에, ‘당신은 비정규직이니까 안 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이 더 쉽게 돌아다닌다. 2부의 현장 노동자들의 글들을 읽다보면 노동 현장에 필요한 기본과 상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은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것, 업무 내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비정규직이 갖지 못한 이런 권리를 회복하는 길은 법원으로 가는 소송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나는 투쟁과 연대라는 것을 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조: 고용 안정의 권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3조: 비정규직이라고 보조 업무만 하면 안 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3조: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7조: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3부에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려면 법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법은, 특히 노동과 관련된 법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갈수록 불리하고도 엄격하게 작용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이들을 권리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법과 제도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에는 더 많은 이윤과 노동자 통제를 위해 법 위에 군림하는 기업이 있다.
근로기준법을 끌어안고 몸을 태웠던 전태일 열사의 시대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절규는 다르지 않다. 그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수많은 노동 관련 법이 만들어졌고, 적지 않은 법에 ‘보호’라는 포장이 덧붙여졌음에도 현실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법으로 혹은 이름뿐인 존재감으로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하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규정된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라는 요구조차도 함께 싸워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4조: 진짜 사용자가 책임져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5조: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4조: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5조: 손실 비용은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비정규직도 알 권리가 있다”
4부에서는 노동자의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아직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법을 고정불변의 규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법에는 세월이 담겨 있고, 많은 이의 피와 땀이 묻어 있다. 8시간 노동제, 아동노동 금지, 노동3권…… 지금 우리를 보호하는 많은 권리들은 노동자들이 19세기부터 치열하게 싸워온 결과이다.
생활임금, 노동시간, 알 권리, 문화생활, 정치 활동…… 삶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법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권리들의 이름이다. 특히 ‘노동조합’이란 최소한의 보호 장치도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런 권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법을 넘어서는 권리들을 외쳐야 하는 이유, 그것은 ‘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만들 약속의 새로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법을 넘어서는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노동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6조: 누구나 생활할 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7조: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2조: 비정규직도 알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6조: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사회헌장 제18조: 정치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구매가격 : 9,800 원
철학 VS 철학
도서정보 : 강신주 | 2018-08-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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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철학사도 아니고 동양의 철학사도 아닌 ‘우리의 철학사’
그동안 독자들은 《철학 VS 철학》을 왜 좋아했을까? 아마도 이 책이 주체적으로 쓰인 철학사라는 점이 가장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저자 강신주가 철학사를 쓰는 관점은 “‘동양철학의 우리’가 아닌 ‘우리의 동양철학’을, ‘서양철학의 우리’가 아닌 ‘우리의 서양철학’”을 모색하는 것이다. 곧 서양의 철학사도 아니고 동양의 철학사도 아닌 ‘우리의 철학사’, 즉 주체적인 철학사를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관점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독창적인 안목을 제시한 철학자들과 그들의 텍스트를 직접 읽을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한다. “결국 철학사에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관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과거의 철학자와 현재의 철학사가 사이에 치열하고 정직하게 펼쳐지는 진실한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니까. 과거 철학자들에 대한 맹종도 아니고, 또 철학사가로서 나 자신의 독백도 아니어야 한다. 중요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어서 나의 소감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철학사다.”
《철학 VS 철학》은 기존의 철학사 책의 아쉬운 점을 메우는 책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동양과 서양의 사유가 교차되는 역동적인 시공간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철학사 책으로 널리 알려져왔다. 서양에도 치우지지 않고, 동양에도 치우치지 않는 제3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철학사. 서양철학의 중심지도 아니고, 동양철학의 중심지도 아닌 한국에서 필요한 철학사. 동서양의 철학을 아우르는 철학사. 이것이 바로 《철학 VS 철학》의 최대 장점이고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이다. 그리고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그리 이질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우리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만을 강조한 경향이 있었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비교철학적 작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명실상부한 철학사, 혹은 주체적인 철학사를 구성하고 싶었던 나의 속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서양철학에도 치우치지 않고 동양철학에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균형감이 없다면, 특정 사유 전통에 대한 종교적 맹목이 싹트게 될 것이다. 이런 균형감을 유지하려고 나는 때로는 동양과 서양, 혹은 과거와 현재를 부단히 충돌시켰고, 때로는 그 사이의 대화를 집요하게 시도했던 것이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 132명이 질문을 던지다
그리고 《철학 VS 철학》은 어렵지 않다. 철학책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쉽고 재미있게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 철학자마다의 까다로운 개념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6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수치상으로 132명 이상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저마다 인류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사람들이고, 매 장마다 이 철학자들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66장은 모두 다음과 같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각 쟁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각각의 철학적 쟁점과 관련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기본 문맥, 동서양 사유 전통에서 이 쟁점을 이해하는 방식, 혹은 본론에서 다루지 못한 중요 철학자들의 사유 등에 대해 언급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 쟁점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표명한 철학자들의 견해를 밝힌 곳으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각 철학자들의 입장을 생생하게 음미하려면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그래서 해당 철학자의 사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원문을 최소 두 가지는 직접 인용하려고 했다. 마지막 넷째는 ‘고찰(Remarks)’이란 표제가 붙어 있는 곳이다. 대립 관계로 철학사를 집필하느라 놓칠 수도 있는 중요한 철학사적 쟁점과 정보들, 그리고 해당 쟁점과 관련된 비교철학적 전망들을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곳을 통해 독자들은 한층 더 완전한 철학사적 조망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논의된 철학적 쟁점이 오늘날 우리 삶을 조망하는 데 왜 중요한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각 장에는 최소 두 명의 철학자가 등장해서 철학 쟁점을 가지고 격렬하게 토론을 한다. 그 논쟁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 철학자의 사상과 우리 삶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철학적 사유의 훈련장이라고 할 수 있다. “66장의 철학적 쟁점들을 제대로 통과하면, 누구라도 나보다 백배나 탁월한 인문주의자로 성숙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철학사는 권력과 체제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인문주의자를 키우는 일종의 훈련장인 셈이다. 이 철학사의 본문을 구성하는 66장은 고수가 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무협영화에 등장하는 관문들인 셈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넘다보면 체제와 권력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자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인간의 자유와 사랑을 찬양하는 능동적 주체가 자라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남을 지배하지도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인의 정신
궁극적으로 저자가 이 《철학 VS 철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사랑이 지고한 가치이며, 인간에게는 삶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자유와 사랑을 긍정하는 입장에 있는 철학자들을 옹호하고, 체제와 권력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철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남을 지배하지도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인의 정신’ ‘새로운 마주침을 통한 기쁨의 연대’ ‘타자와의 관계와 사랑의 어려움’ 등 철학자 강신주가 그동안 주장해온 내용들이 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암울한 철학자들의 내적 논리의 허약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들의 비관적인 전망을 폭로해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대다수의 우리 이웃들이 암울한 철학자들의 논리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의도했던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나는 유쾌한 기억과 소망스러운 미래를 약속했던 철학자들을 제 위치에 복원시키고, 반면 암울한 기억과 잿빛 미래를 구가했던 철학자들의 내적 논리를 폭로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 철학사로 인문주의적 철학자들을 지킬 수 있고, 동시에 인문주의를 능욕하려는 제도권 철학자들의 침입도 격퇴할 수 있는 든든한 성곽을 쌓고 싶었던 것이다.”
구매가격 : 37,800 원
헌법의 현장에서
도서정보 : 김선수 | 2018-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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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의 현장에서』에는 그간 김선수 변호사가 맡은 12개의 헌법재판(7건의 공개변론 사건과 5건의 서면심리 사건) 변론기가 정리되어 있다. 이 사건들 중에는 청구인을 대리해 법률이나 공권력 행사의 위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고, 피청구인을 대리해 합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다.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한 것과 ‘공소 제기 후 수사기록 복사 거부 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결정을 한 것이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헌소원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합헌을 주장했는데, 청구인인 현대자동차가 취하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받지는 못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중앙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선거중립 위반 경고조치 취소 사건’, ‘언론관계법 날치기 부작위 권한쟁의 사건’ 등 나머지 사건에서는 모두 김선수 변호사가 원하는 결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소수 의견이 나왔고, 후에 법 개정으로 해결된 것도 있다. ‘전교조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받았지만 후에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해결되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지만 후에 법률 개정과정에서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헌법재판소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파악할 수 있고, 김선수 변호사가 그곳에서 다수 의견에 맞서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국가공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에 묻혀 뜻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았다. 그 사건들을 통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등을 논의하고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비판하는 부분은 날카롭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년 동안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1987년 헌법에 의해 탄생된 헌법재판소가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 강하게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심판 사건 결정의 다수 의견을 그대로 원용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제라도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모양이다.”(전교조 사립학교법 위헌심판 사건)
“두 번에 걸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한계만 확인했다. 박재승 변호사님은 헌법재판관들의 천박한 인식 태도와 소극적 자세에 대해 한탄했다.”(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권한쟁의심판 사건)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려나? 김이수·이정미 두 재판관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는 날이 그날이 될 텐데 그때는 언제나 오려나?”(전교조 시국선언 관련 사건)
“헌법재판소가 현대자동차의 재정 상황까지 염려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판결 선고를 지연함으로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지엠 회장이 한국의 고용경직성 내지 통상임금에 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노동법제와 사법제도를 무시하는 천박한 자본가의 입장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대통령과 장관 등 한 나라가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조차 이런 말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도 서글펐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
“노동사건에서 역사의 진보는 없는가?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은 1996년 결정의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을 거의 답습했다. …… 법이 개정되는 그날까지 위헌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및 필수유지업무제도 조항의 위헌소원 사건)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 최고의 규범적 판단을 하는 사법적 기관이라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그 구성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노동절 제외한 공휴일 규정 위헌확인 소원 사건)
위와 같은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로 1987년 출범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이 되어야 하며,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고 있고, 더군다나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김선수 변호사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세기적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이를테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이 정당해산제도를 채택하고,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의 하나로 정당해산심판이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활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형식적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소수 정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되기 어려운데도 굳이 강제적으로 소수 정당을 해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구술변론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해 자행되었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졌습니다. …… 이 사건 심판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함으로써 성숙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수 반대파를 배제함으로써 암흑과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 결정권은 이제 아홉 분의 헌법재판관님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국가권력이 소수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그런 야만적인 수준의 국가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소위 국격國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 둘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어떠한 비이성적인 광풍이 몰아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自尊을 위해서입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이 사건 심판청구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제기된 것입니다. …… 넷째, 청구인 즉,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형사적·행정적 대응수단을 통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를 방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다섯째,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피청구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연대하고 같이 투쟁해온 정당입니다. …… 여섯째,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를 위해서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소수 반대파 정당을 해산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존립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결정을 “세기적 참사”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이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 정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변론하며 비판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금지어禁止語가 된 좋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만약 해산결정이 내려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는 ‘자주, 민주, 통일’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폐기될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곧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되고, 이를 위한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어 정당조차도 해산시킬 정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떳떳하게 그러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최종변론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둘러 해산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에 당선된 그날(12월 19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심판청구 시점부터 계산하면 13개월 정도만”에 모든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결정문에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잘못 적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서둘러 해산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에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는 구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다시 한 번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는가
김선수 변호사는 에필로그에서 ‘헌법재판소 30년 평가’와 ‘개헌 시 헌법제판제도 개성 방안’을 밝히고 있다. 우선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30년 동안 표현의 자유 신장, 여성의 지위 향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신장 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관습헌법 법리를 동원하여 행정수도 이전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선수 변호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 의견’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여러 요인 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주요 의견이 되지 못한 소수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충실한 소수 의견은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지켜준 희망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1기 헌법재판관이었던 변정수 재판관과 2012년부터 2018년 8월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 의견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정수, 김이수 두 재판관께 크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16건 중 39건(33.6%)18)이 13:0으로 같은 견해를 취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김선수 변호사는 개헌 이루어지면 헌법재판제도가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사항 확대, 현행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헌법재판관의 자격 요건 중 ‘법관 자격’ 삭제, 헌법재판관 모두를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 헌법재판소장 임명 제도 개선, 헌법재판관의 임기와 연임 개선 등이 그 일부이다.
구매가격 : 13,160 원
아이반호
도서정보 : 월터 스콧 | 2018-08-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역사 소설의 창시자 ‘월터 스콧’
월터 스콧 이전에 역사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다. 월터 스콧의 최초의 역사 소설 『웨이벌리』가 나온 이후에 역사 소설은 가장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소설 형식 중 하나가 되었다. 영국의 문학사가 조지 세인츠버리는 말한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전 유럽이 역사 소설을 탐독했며, 유럽의 문필가들 상당수가 역사 소설을 쓰기에 바빴다.”
스콧이 없었더라도 결국에는 역사 소설이 등장했겠지만, 역사 소설이 그 시기에 출현하게 된 점은 스콧의 탁월한 작품 덕분이다. 『아이반호』를 포함한 그의 역사 소설은 이후에 디킨스, 새커리, 조지 엘리엇 같은 영국 소설가뿐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와 같은 유럽 작가들의 역사 소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 덕분에 월터 스콧은 생전에 큰 명성과 평판을 얻었다. 선박들이 스콧의 최신 소설 작품을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인쇄소로 급송하기 위해 대기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번역가들이 앞 다투어 그의 작품을 다른 언어로 번역했다. 영국에서는 스콧 생전에 출판된 부수가 수백만 부에 이르렀다. 그의 역사 소설의 성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펭귄 클래식, 옥스퍼드 클래식 선정 도서
충성스러운 흑기사의 양다리 로맨스와 멋진 무용담
스콧은 『웨이벌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스코틀랜드 역사 소설을 쓴 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자들의 새롭고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시대의 역사에서 주제를 택했다. 그 결과 12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아이반호』를 발표하였다. 이 소설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아이반호』는 후세의 작가들로 하여금 중세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작품의 제목 앞에 흔히 붙게 되는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의 선구가 되었다.
『아이반호』는 잉글랜드를 점령하여 지배계급이 된 노르만 인들에 대한 앵글로색슨 인들의 저항과 기백을 묘사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을 나선 틈을 타 그의 동생 존 왕자가 노르만 인 귀족들과 손을 잡고 왕위를 차지한다. 이에 충성스러운 색슨 족 기사 아이반호가 리처드 왕을 도와서 존 왕과 그의 도당들을 무찌른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로웨나 공주와 아이반호, 아이반호와 레베카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아이작을 통해 잉글랜드 사회에서 멸시당하는 이야기 등이 한데 뒤섞여 신나는 모험과 아름다운 로맨스, 그리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12세기 잉글랜드의 문화와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아이반호』가 선사하는 두 가지 재미
『아이반호』는 두 가지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먼저 해박한 고전 지식의 접목이다. 이 책에는 시, 역사, 극 작품, 옛날 이야기, 로맨스 등 작가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다. 그것들이 작품 여기저기에 수없이 인용되어 작품 상황에 맞게 짜여져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특히, 각 장마다 그 장의 전체 내용을 미리 가늠할 수 있게 삽입된 인용문들은 희곡, 시, 옛 기록 등의 다양한 출전에 힘입어 상황을 일치시키는 짜임새가 놀랍다.
또 다른 재미로, 이 책은 주로 상황이나 사건의 전개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인물 묘사는 내면 묘사보다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그 인물의 성격을 가늠하게 한다. 『아이반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그 성격이 상당히 뚜렷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주요 인물들인 윌프레드, 로웨나, 레베카, 세드릭의 정형화된 성격보다는 왐바, 애설스탠, 아이작 등 주변 인물의 성격이 더욱 재미있고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들은 친근하고 생동감이 있다. 이처럼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익살은 이 책을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 채우고, 독자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게 해준다.
구매가격 : 15,400 원
유한계급론
도서정보 : 소스타인 베블런 | 2018-10-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베블런의 저서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이다. 그는 당대에 두각을 드러내며 아주 탁월하게 미국 사회를 풍자한 사회 비평가이다.” - 『타임』
『유한계급론』은 어떤 책인가
베블런은 미국 경제학자 겸 사회 비평가로서,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사회사상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적 저서 『유한계급론』은 1899년 초판이 출간되고 1912년에 개정본이 나온 이래,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경제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출간한 그레이트 북스 시리즈는 1990년에 “20세기의 사회과학 고전”(제57권과 58권)이라는 타이틀로 현대 고전 4권을 펴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여기에 수록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회철학자 루이스 멈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몇 명의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베블런은 마르크스 이후 우리의 경제 질서에 내재한 사회적 모순을 가장 선구적으로 분석한 학자였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유한계급론』은 부자들의 행태가 낳은 결과들을 탁월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는 그 당시 미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지만, 현대 사회에는 한층 더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의 시대나 그 이후에도 금전 자체가 아닌 금전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그처럼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한 사람은 없었다.”
이 책은 경제학 책일 뿐만 아니라, 사회 비판의 성격이 강한 인문서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 속에는 경제학 도표나 수식이 하나도 없는데다, 여러 분야의 학문에서 관련된 사례들까지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독자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이 책을 경제학 책, 아니면 사회와 인간성에 대한 비평서 혹은 심리학책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베블런의 박학다식함을 『유한계급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곳곳에서 발견되는 예리하고 심오한 통찰로 인해 감탄을 마지않게 된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미국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이지만, 출간이 120년 더 된 지금에도 마치 어제 집필된 것 같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유한계급론』 집필 당시 사회 배경
베블런이 활동하던 시기는 자본주의가 성장통을 겪던 시기였다. 19세기 후반 미국 경제는 미국 특유의 독점 자본주의로 발전했고, 신생 대기업들의 독점은 과잉 건설된 철도 부문에서 제일 먼저 나타났다. 이러한 독점적 행태로 인해 미국 사회 내에 유수한 재벌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적인 의무) 의식이 별로 없었고,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 양상은 1960년대와 70년대의 개발 독재 시대에 재벌로 올라선 한국 회사들과 비슷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베블런은 독점 자본가인 유한계급의 과시적 경쟁과 소비가 사회 진보를 담당하는 노동자와 기술자의 경쟁과 진화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블런은 영국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적 다윈주의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인간 사회가 경쟁에 의해서 더 잘 굴러가고, 그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한 사람이 생존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사상이다.
이 책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책의 전반부는 유한계급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그 이론과 관련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베블런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생존선 이상의 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는 자금을 유익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좀 더 현명하고, 똑똑하고, 사려 깊게 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도 남들 못지않게 많은 소득을 가지고 있음을 널리 홍보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남에게 자신이 부자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는 충동과 동기를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라고 말하고 있다. 이 소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돈,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비한다. 이것은 현대의 산업사회와는 맞지 않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런 사치성 소비가 문화의 다른 분야에까지도 번져가는 것은 큰일이라고 베블런은 경고한다. 그는 인류의 미래가 유한계급과 산업계급의 갈등으로 전개되어 결국 산업계급이 승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유한계급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
미국 소설가 딘 하웰스는 이 책을 학술적인 저서라기보다는 미국 사회의 신흥 자본가 계급을 풍자하는 일종의 문학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학술적이든 문학적이든 이 책에 나타난 베블런의 박학다식함과 독창적인 통찰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유한계급론』은 자본주의와 자본가 계급의 행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베버와 마찬가지로 베블런도 『유한계급론』을 쓰면서 미국 사회를 냉소적으로 풍자하는 한편, 그 사회를 바꾸고 싶어 하는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그는 50년 뒤의 요제프 슘페터가 그렇게 했듯이 환자(자본주의)를 고치려면 환자의 증상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야 한다면서, 1890년대의 미국 유한계급과 기업들의 여러 결점들을 지적하고, 또 그것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이 책은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에서 고전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마르크스는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베블런은 그에 비해 훨씬 냉소적이었다. 그는 유한계급 자본가들의 초상을 신랄하게 묘사하는데 정열을 바쳤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경제학적 분석이라기보다 풍자로 받아들였으며, 베블런은 사회비평가로도 명성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유한계급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 책이 인간 사회와 본성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종합 인문서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목적 중에 하나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인데, 이 책은 그 목적에 십분 부합한 책이라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도 많이 권장되는 책이다. 비록 베블런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금전적(유한계급) 가치와 기계적(산업계급) 가치의 대조라는 핵심적 아이디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다.
구매가격 : 8,800 원
논어
도서정보 : 공자 | 2018-10-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인문고전
『논어論語』, 동양 사유 체계의 기본을 만들다
동양 문화의 근간이 되는 사고는 관계론적 사고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그 사상의 정점에 둔다. 이는 유가의 핵심사상으로 여겨지는 “인仁”에서 나오는데, 인이라는 한자어는 “사람들로부터(人)”, “둘로부터(二)”라는 뜻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최고로 여긴다는 말이다. 이처럼 유가의 성전聖典인 『논어』는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가히 동양 사유 체계의 토대를 조형해낸 기본서이자 모태母胎였다. 그러므로 동양 사회의 형성과 그 사유 체계는 결코 『논어』와 분리시켜 논하기 어려우며 그 영향력도 연원淵源이 심오하고 뿌리가 깊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이 담긴 어록으로 내용은 공자의 말과 행동,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의 대화, 제자들 간의 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마땅히 갖춰야 할 수양은 어떤 것이며, 학문하는 자세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사회와 국가의 일에 어떠한 태도와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를 총망라하고 있다.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굳이 그 길을 간다”
유가 학파의 창시자이자 동양 최고의 멘토, 공자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기원전 551년, 노나라 추읍陬邑 창평향昌平鄕(오늘날 산동성 곡부曲阜)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하여 태어나 이름을 구丘라 지었다. 그는 자신에 대하여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곧 만사를 안 것이 아니고, 옛것을 좋아하여 성실하게 노력하여 그것을 구한 자이다[술이 7.19].”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았던 성인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가 성실한 학습을 통해 지식을 얻었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공자에게 정치란 무너진 ‘주례周禮’를 회복함으로써 선왕의 ‘인정仁政’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이룰 수 없다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함(知其不可而爲之)’으로써 그는 제세구민濟世救民의 삶과 정신을 구현해 가고자 했다. 그것이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숭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현실 정치에서 거의 기용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유랑하며 먹을 것을 구하는 상갓집 개 신세였다. 말기에 이르러 그는 일종의 대학을 설립하여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이 대학이 훗날에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유가 사상과 학파가 되었다. 유가 사상은 수천 년에 걸쳐 중국의 고대 법률을 지배하였고,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유방식에 융화되어 중국 특유의 법률 의식과 법률 심리를 형성시켰다.
일생에 한번은 꼭 읽어야 하는 고전 1순위
인생이라는 책장에 『논어』를 두다
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할까? 고전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인간의 본질을 가장 적확하게 분석하고 인간이 지향하여 나아갈 바를 가장 본원적으로 가르쳐준다. 올바름과 지향점이 철저하게 실종되고 가치관이 대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오늘은, 난세 중의 난세였던 춘추전국시대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더구나 서양 문화의 지배적인 사상과 우리 안에 깊이 심겨져 내려온 관계중심적인 사상은 많은 경우 우리에게 가치관의 충돌까지 안겨준다. 이럴수록 우리는 우리의 사상의 토대가 되어준 『논어』를 다시 펼쳐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논어』는 모든 종류의 권장 도서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이다. 『논어』는 지난 2,500년 동안 동양 문화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게 사람됨의 도리와 세상살이의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처럼 오래 그리고 널리 읽혀온 책에겐 분명 그럴듯한 이유와 깊이가 있으리라. 인생이라는 책장에 『논어』를 두어,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깊이를 배울 때, 그것은 우리의 지혜의 보고이자 인생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젊은이들을 경외해야 할 것이니 어찌 그들의 내일이 지금 사람들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자한 9.23]” 『논어』가 전하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를 통해, 우리의 오늘이 어제의 그들이 경외할만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왜 소준섭 박사의 『논어』인가?
『논어』는 일생에 한번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지만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소준섭 박사는 독자들이 『논어』를 읽으면서 겪었을 법한 어려움을 염두에 두고, 고전의 풍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논어』를 들고 왔다.
소준섭 박사의 『논어』가 가진 강점:
1. 원문과 독음을 함께 수록해 독자들로 하여금 한문과 사자성어를 쉽게 공부하도록 하였다.
2. 쉽게 볼 수 없었던 공자의 제자들의 초상화와 인물 설명을 추가하여 읽는 재미와 지식을 더했다.
3. 정교한 해석이 있다.
4. 원문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각주를 풍부하게 달았다.
5. 부록으로 『논어』에 대한 자세한 해제와 공자 연보를 담아 『논어』의 가치와 공자의 삶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중국 전문가 소준섭 박사의 혁신적이고 정교한 해석으로 펴낸 『논어』는 2,000년을 넘게 전해 내려온 공자의 지혜를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주어 격변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길이 남을 마음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
구매가격 : 7,700 원
그래, 엄마야
도서정보 :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소리' | 2016-12-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요?”
고단함, 눈물, 한숨… 그래도 어떻게든 길을 열어온 사람들
포기도 섣부른 희망도 아닌, 그 사이를 진동하는 삶의 기록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
이 책은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책들은 아버지들이 주인공인 게 대부분이었고, 대중매체를 통해 간간이 드러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가슴 아픈 사연만 부각하거나 아이를 성공시킨 희생적인 영웅담에 국한될 뿐이었다. 이 책은 이런 일반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 자신의 삶’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존재의 삶의 이야기를 묻고 기록한 책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겪은 삶의 굴곡, 그 과정에서 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스스로 삶을 일구는지를 기록하려고 했다. 발달장애인 자녀의 변화와 성장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겪은 변화와 갈등’을 드러내면서 이 여성들을 고유하고 존엄한 한 존재로서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이 책에는 처음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1장 장애를 알다/마주하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가족 내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문제 해결 과정(2장 가족의 방, 엄마의 자리),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3장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드는 사람들), 엄마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시간, 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4장 숨 쉬는 시간, 살아 있는 날들), 장애를 보는 사회적 시선과의 싸움(5장 닫힌 창, 그 너머의 풍경), 성년기 발달장애인과 어머니들의 고군분투 길 찾기 과정(6장 분기점, 유턴과 직진 사이), 자신이 살고 싶은 삶에 관한 이야기(7장 진동하는 삶)가 펼쳐져 있다.
이 여성들은 고단함, 눈물, 한숨, 종종거림이 교차하는 매일의 삶 속에서 걷히지 않을 것 같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이정표를 만들며 어떻게든 길을 열어온 사람들이다. 사회적 편견과 냉소, 때로는 가족의 냉대에 맞서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포기도 섣부른 희망도 아닌, 그 사이를 진동하는 삶의 기록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몰이해로 가득한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들이 맞닥뜨린 삶의 풍경들이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되돌아보니 이런 상황도 겪고 저런 상황도 겪었더라고요. 그렇게 굉장히 많은 시간을 지나오니,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갖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후회되는 일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힘든 건 지나서 괜찮고, 네 탓이야 하는 건 오기가 생겨서 그런지 힘이 났어요, 지금부터 잘하면 되지. 정말 지지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힘이 나고. 그 굽이굽이를 지나 지금 생각하면 이 말도 이런 식의 힘이었고, 저 말도 저런 식의 힘이었고…… 근데 누군가 어깨를 두들겨주면 아직도 울컥 눈물이 나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어머니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아들, 엄마는 살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어. 슬픈 일도 한가득, 아픈 일도 한가득. 기쁜 일도, 감사한 일도 있었지. 저 멀리 여행도 다녔어.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도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데 그저 마음뿐이고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엄마는 너무 힘드네…… 엄마 스스로 매일매일 강해야 한다고 다짐하는데도 아직도 아들이 경기를 할 때면 심장이 조여와…… 엄만 고작 아파하는 널 부둥켜안고 기도하고 우는 것밖엔 없어 너무 미안해.”
현재 한국 사회에 등록된 발달장애인 숫자는 약 20만 명. 어머니라는 존재는 한국 사회에서 신화화되어 있다. 어머니의 삶은 양육뿐만 아니라 집 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는 끝이 없는 고된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국 사회는 어머니들의 이런 희생을 아름답게 포장하며 찬양할 뿐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빈번한 사회에서 발달장애인 자녀의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겹고 고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머니들은 발달장애인 자녀의 이야기를 넘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굴레는 상상 이상으로 힘든 삶이었다. 비장애인 자녀 양육도 대부분 어머니의 몫인 한국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들이 짊어져야 할 무게는 힘겹기만 했다. 더군다나 장애의 원인을 어머니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사람들이 많아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도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록자들은 인터뷰 과정에서 어머니 개인의 삶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어머니들의 대답은 결국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로 수렴될 뿐이었다. 이것이 이 어머니들의 현실이지만, 이 책은 그 너머에 있는 삶들에 대해서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여성의 시각으로 이들의 삶의 굴레와 꿈,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재작년인가, 공부를 시작했어요. 제가 뭔가를 하면 되게 적극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결혼하고 현수 키우고 살다보니. 아이가 장애아면 엄마까지 장애 엄마로 보거든요. 그래서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살짝 하는 것은 내 자신이 용납이 안 되는 거라. 내가 나이가 많아 안 되네 하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거라. 그래서 죽자 사자 했어요.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니까 컴퓨터도, 공부도.”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그래도 많이 왔어요. 처음에는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살아보니 제가 많이 운다고 아이가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럴 시간에 치료실이라도 한 번 더 다녀오고 해야 좋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주저앉아 우는 건 짧게, 그때 상황이 한스러우니까. 씩씩한 게 아니라.”
여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게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경우 사람들은 대개 그 책임을 어머니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죄책감은 늘 어머니의 몫이다. 혹시 장애가 자기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들을 하며 어머니들은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산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안 순간에도 그랬고, 아이를 교육시킬 때도 그랬으며, 아이가 사회적 냉대를 받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되었어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럴수록 장애의 이유가 ‘당신 탓’이 아니라고 편이 되어주는 사회적 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엄마 탓이 아니라고.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당신이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누구한테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보는 시각이 차갑다. 내가 사는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반대부터 하고 나서는 게 현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이런 사회적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들은 꿈을 꾼다. 그 꿈은 소박하기만 하다. “오늘도 무사히 잘 넘겼네. 한 번씩 하거든요. 잘 때. 오늘도 아무 일 없이 잘했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거나, 자녀들과 관련되어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꿈들은 진동하며 감동을 준다. 이 어머니들은 장애인 부모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이 책을 읽는 당신도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매가격 : 9,800 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6-12-2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려 했던 조봉암,
그는 왜 사형되어야만 했나?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의 최후,
이승만과 겨룬 ‘죄’, 대가는 죽음이었다
진보 정치인 조봉암을 재조명하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3권. 서중석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주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3권의 주제는 ‘조봉암과 이승만’이다. 조봉암의 생애를 되짚는 작업을 통해 이 시기 한국인들이 걸어온 역정(驛程)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조봉암이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활약한 시기는 이승만 집권기이다.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한 조봉암과 이승만은 자연히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었고, 이 책은 이런 조봉암과 이승만을 중심에 두고 일제 강점기, 해방 전후, 1950년대의 한국 정치와 사회상을 그리고 있다. 진보 정치인 조봉암은 어떤 정치를 펼쳤는가? 진보당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이승만은 극우 반공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왜 조봉암은 사형되어야 했는가?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려면 목숨을 걸 수밖에 없던 시기에 조봉암은 활약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말았다. 이 책은 진보 정치인 조봉암을 재조명하는 책이며, 동시에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조봉암, 진보 정책을 꾸준히 제시하고, 실천했던 정치인
조봉암은 뛰어난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의 진보 세력 가운데 대단히 특별한 존재였다. 3·1운동을 겪으면서 한 명의 한국 사람으로 재탄생한 조봉암은 일제 강점기 때 제1차 조선공산당의 중심인물로 활약하는 등 사회주의자로서 맹활약했다. 상해에서 1932년에 체포되어 7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고, 1945년 1월경 헌병사령부 예비 검속에 검거되어 다시 수감되었다가 해방과 더불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 뒤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고, 1948년 5·30선거 때 인천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다. 농림부 장관 시절 토지 개혁을 추진했고, 이 외에도 농민들의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했다. 협동조합을 육성·장려하고, 농민이 직접 교육받고 실천할 수 있는 농사 훈련 기구 같은 것을 창설하려 했다. 이런 조봉암의 급진성을 이승만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결국 반년 만에 이승만 대통령의 권고에 의해 조봉암은 사표를 제출하게 된다. 그리고 1952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선 2위를 기록하며 이승만의 라이벌로 급부상하게 된다. 1956년 대선에서는 이승만을 위협하는 대상이 되었다. 956년 대선은 “투표에 이기고 개표에 지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정 선거가 만연했고, 이 부정 선거가 아니었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
조봉암은 당시 현실에 맞는 진보 정책을 꾸준히 제시하고, 실천한 정치인이었다. 늘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하려 했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려고 했다. “진보당은 ‘피압박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진보 세력의 전위’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진보당이 발당식을 했을 때도 피해 대중의 당이라는 걸 명시했다. 이건 공산주의하고 굉장히 다를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사례를 봐도 이런 식으로 나와 있는 건 없다. 진보 세력의 정강 등에는 대개 ‘노동자, 농민, 진보적 소시민 또는 당하고 있는 여러 소수 세력을 옹호한다’, 이런 식으로 많이 나오지 않나. 그런데 조봉암은 피해 대중이라는 걸 명시했다.” 그러면서 개성을 맘껏 발휘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했다. 또 대단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기도 했다. ‘북진 통일’만을 강변하던 시대에 ‘평화 통일’을 주창한 사실만 해도 그렇다. 그 당시에는 용기가 없다면 ‘평화 통일’을 얘기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중요한 점은 평화 통일이라는 말이 1950년대에 얼마나 꺼내기 힘든 말이었는지,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1950년대 상황을 모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조봉암은 1958년 1월 간첩죄 혐의로 진보당원들과 함께 검거되었다. 그리고 1959년 7월 31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처형 당시 60세였던 조봉암은 형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억울하게 사형에 처해진 조봉암은 52년이 흐른 2011년에야 명예를 회복한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전원 합의 판결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냉전 체제에 도전했기 때문에 조봉암이 죽은 것 아니겠나. 사실 냉전 체제에 도전한 정치인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나. 조봉암을 역풍(逆風)의 정치인이라고 불렀다. 역풍에서 풍이라는 게 뭐겠나. 냉전 체제 아니겠나. 냉전 체제를 거슬러 그것에 도전한 사람이다.”
이승만 대통령, 권력욕이 남다른 독재자
뉴라이트가 ‘국부’라고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은 어떤 대통령이었는가? 우선 권력욕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이승만은 다른 사람이 권력을 쥐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려고 하지 않았다. 1952년 악명 높은 부산 정치 파동이 일어나고 발췌 개헌을 통해 정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다. 전선에서 장병들이 피 흘리고 도처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온몸으로 감수하던 때, 후방 부산에서 최고 권력자가 집권 연장을 위해 개헌을 한 것이다. 1953년 휴전 협정을 맺을 무렵 권력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거세게 일어난 북진 통일 운동 때부터 이승만의 의회 장악력은 점점 커졌고 1954년에는 5·20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자유당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 뒤부터 선거 때마다 갖은 부정을 저지르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이승만에게 조봉암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민중에게 큰 인기가 있었고,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해 자신에게 도전했으며, 게다가 1956년 대선은 자칫 뒤집힐 뻔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승만은 정적 조봉암을 제거했고, 자신의 집권 기간 내내 그랬듯이 그 뒤에도 영구 집권을 꿈꾸었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1960년 4월혁명이 일어났고, 민중에 의해 12년간의 독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구매가격 : 10,500 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4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6-12-2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민중이 이룬 거대한 승리, 4월혁명은 제2의 해방!
4월 그날, 천지를 진동한 함성은 독재의 총구보다 강했다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한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연 혁명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4권. 서중석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주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4권의 주제는 ‘4월혁명’이다. 서중석 교수는 4월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며, ‘제2의 해방’으로 부르고 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의 비리, 부정부패, 선거 부정, 악정, 폭정 등으로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였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절망,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가를 이런 말로 나타낼 수 있다. 그야말로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시대였다.” 그리고 1960년 드디어 민중이 일어섰다. 2월 28일 대구 학생 시위에서 4월 26일까지 이어진 4월혁명은 막힌 숨통을 틔운 사건이었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총체적 결론을 내린 역사적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한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연 혁명이었다. 이 책은 이런 4월혁명의 의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4월혁명 전후의 한국 사회를 반추하고 있다. 무엇보다 요즘 뉴라이트가 국부로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기도 하다.
항쟁인가, 혁명인가, 4월혁명에 서린 민주주의 고투
4월혁명을 가리키는 용어는 참으로 다양하다. 헌법에도 그냥 4·19라고만 돼 있는 것처럼 4·19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고, 또 4·19의거, 4·19학생혁명, 4·19학생운동, 4·19혁명, 4월혁명, 4월학생혁명, 3, 4월 항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중석 교수는 이렇게 용어가 정리되지 않은 까닭을 4월혁명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4월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2월 28일 경북 지방의 고등학생 시위부터 3·15 제1차 마산의거와 4월 11~13일에 있었던 제2차 마산의거를 거쳐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를 총괄한다는 의미에서 4월혁명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4월혁명이 던져준 역사적 과제가 반드시 4월 19일과 4월 26일, ‘피의 화요일’과 ‘승리의 화요일’에서 다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이승만을 하야하게 하고 자유당 정권을 붕괴시킨 건 아주 중요하지만, 우리가 4월혁명 정신이라고 부르는 또는 4월혁명의 의미를 살린 여러 가지 활동은 오히려 4월 26일 이후에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5·16쿠데타로 일단락된다고는 해도, 4월혁명 정신은 그 이후까지도 숨을 쉬면서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4월혁명’으로 불러야 적절하다는 것이다. 곧 4월 26일을 경계로 해서 그날까지는 이승만을 물러나게 하는 과정, 그 이후는 4월혁명 정신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서 4월혁명 운동기 또는 4월혁명기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게 좋으며, 그래서 4·19혁명보다 4월혁명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4월혁명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4·19 기념식이 열리는 곳에 학생들이나 민주화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러면서 5·18이 다가오면 5·18을 전후한 시기를 ‘5월 항쟁기’로 선포하고 ‘4월혁명이 제대로 이루지 못한 민주주의 혁명을 이제는 제대로 이루자’고 소리 높이 외쳤다. 곧 4월혁명은 1987년 6월항쟁까지 가는 데 5·18과 함께 큰 역할을 한 것이다.
“4·19는 난동”, 반성과 사죄는 이승만 사전에 없었다
“어제 일어난 난동으로 본인과 정부 각료들은 심대한 충격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0일 오후 5시가 돼서야 처음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문도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겨우 발표한 것이었다. 자유당도 이날 처음 성명을 내고 “본당은 선량하고 순진한 학도를 선동하여 폭력 사건을 자행하게 한 장본인 및 그 도당의 악랄한 비국민적 만행에” 통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발포는 부득이했다고 강변했다. 이렇듯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반성은커녕 시위한 사람들을 두고 ‘비국민’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4일에 수습 방안을 발표했다. 이때도 이승만은 자신은 대통령직을 절대로 사임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유당과 국무위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위기에 빠진 최고 권력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대신 주변 사람들 탓으로 돌린 것이다.
25일, 4월혁명에 한 획을 그은 큰 규모의 시위가 전개됐다. 교수 300여 명이 모여 시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시위에 나선 것.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등장한 이 시위는 이승만 정권에 결정타를 먹였다. 이 시위를 필두로 “이승만은 물러가라”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그날 밤 10만 명이 넘은 군중이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4월 26일 ‘승리의 화요일’. 끝까지 버티던 이승만은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4월 26일 오전 10시 20분경 계엄사의 선무용 스피커가 이승만의 사임을 알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리의 화요일’이 온 것이다. 군중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환호성을 올렸다. 떠나갈 듯 함성이 울리는 세종로 일대에서 일부 군중이 중앙청 정문으로 밀려들어갔다. 10대 소년들은 이승만 동상을 새끼줄에 묶어 끌고 다녔다. 흰옷을 입은 한 노인네는 덩실덩실 춤췄다. 해방의 날이 따로 없었다.”
꿈에도 그리던 자유, 1950년대를 끝장낸 혁명
4월혁명은 어떤 의의가 있는가. 우선 195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절망,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 시대는 그야말로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던 시대였다. 서울대 문리대 4·19 선언문에 담긴 것처럼 캄캄한 밤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무단 통치를 받은 1910년대를 여러모로 떠올릴 수 있는 억압의 사회였다. 무엇보다도 1950년대는 보도연맹 집단 학살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초래한 공포 사회였다. 말을 못 하는, 입을 닫고 묵종해야 하는 사회 위에 건설된 반공 독재로 자유가 크게 억압받았고 인간의 사고, 사상이 심하게 위축됐다.
4월혁명은 이런 1950년대를 끝장낸 혁명이었다. 4월혁명으로 정말 꿈에도 그리던, 그렇게 갈구하던 자유가 찾아왔다. 그러자 문화인, 지식인, 학생들이 앞질러 만끽했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 정권조차 4월혁명이 마련한 민주주의의 큰 틀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5·16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석 달이 지난 1961년 8월, 정권을 민간 정부에 넘기겠다는 민정 이양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다. 그 발표에는 미국의 압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 4월혁명의 큰 힘 때문에 그것을 배신할 수 없는 면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또 4월혁명은 민족 자주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갖게 했다. 그러면서 통일 운동이 강력히 전개되었다. 교원 노조 운동과 같은 노동 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공무원 공채를 실시하고 공무원 임용령 등을 공포해 공무원 사회에 신선한 바람이 일기도 했다. 또 법치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4월혁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을 신호로 해서, 제주 4·3 학살을 포함해 한국전쟁 전후 자행된 수많은 민간인 집단 학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이었다. 이처럼 4월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은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고, 우리 사회를 변모시키고 사회에 신선한 바람, 역동적인 힘을 부여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새 출발을 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4월혁명은 헌법 전문에 마땅히 들어갈 만큼 중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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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6-12-2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5·16쿠데타가 만든 테러·감시·가위질의 시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했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도 제약을 받았다
혁명? 5·16은 반혁명 쿠데타일 뿐!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 박정희 성찰하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권의 주제는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이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에서 4월혁명 이후의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가 일어난 상황까지를 다루고 있다. 대체 왜 쿠데타가 일어난 것일까? 왜 장면 정권의 제2공화국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것일까?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감았던 것일까? 당시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다. 그가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박정희’라는 이름은 아직도 한국 현대사의 논란거리이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는 낯 뜨거운 말로 찬양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박정희 세력이 끼친 폐해를 직시해야 한다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과연 올바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을까? 박정희가 어떤 삶을 살았고,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 그 당시 한국 상황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의 집권기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먼저 성찰하면서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박정희를 과도하게 떠받드는 세력들에 의해 그의 우상화가 하나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2017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벌써부터 혈세를 쏟아부어 1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구미시는 당장 28억 원가량을 들여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판과 성찰은 없이 일방적인 미화와 우상화가 여기저기서 진행되고 있다.
제2공화국의 등장, 4월혁명이 끝나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4월혁명이 끝나자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1959년 진보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조봉암이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혁신 세력이 진보정당을 꾸려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승만 집권기 때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집단 학살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올랐고, 여기저기서 진상 규명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김구 암살 사건도 재조명됐다. 김구는 부활해 독립 운동과 민족주의, 통일의 상징이 됐다. 교원 노조가 결성되는 등 노동 운동도 활발해졌다. 데모 규제법과 반공임시특별법에 반대하는 2대 악법 반대 투쟁도 일어났다. 또한 통일 운동과 더불어 반미 운동도 일어났다. 이 당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그 유명한 구호가 나왔다. 그러나 장면 정부는 이런 4월혁명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4월혁명의 과실을 대부분 차지한 민주당은 자유당과 마찬가지로 보수 세력이었고, 분단·반공 세력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민주당 정권은 부정 선거 원흉이나 발포 책임자, 부정 축재자, 반민주 행위자를 처단하기 위한 특별법인 혁명 입법을 만드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서중석 교수는 장면 정부가 비록 4월혁명의 분위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9개월의 짧은 집권 기간 동안 경제 정책을 세우고 공무원을 공채로 뽑은 점, 경찰을 대폭 숙정해 물갈이한 점, 국군 숫자를 대폭 줄여 국방비를 경제 발전에 돌려쓰려고 했던 점은 뛰어난 성과라고 말한다. 1961년에 들어서면서 장면 정부는 점차 안정되지만 곧 쿠데타가 일어나 제2공화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박정희는 누구인가? “정말 대운을 타고난 사람”
그렇다면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누구인가? “많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 18년이나 집권했기 때문에 적어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알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렇지가 않다. 우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박정희는 국민에게 너무나도 생소한 사람이었다. 언론계나 지식인층도 잘 몰랐다. 국회의원들도 ‘박정희가 누구야?’ 하고 서로 얘기했다고 그런다.” 서중석 교수의 말처럼 당시 박정희는 그 누구도 정체를 모를 만큼 무명의 군인이었다. 사실 군인 시절에도 박정희는 눈에 띄게 활동한 게 없었다. 한국전쟁 때도 별다른 활약상이 없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도 박정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박정희의 창씨개명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 다카키 마사오도 1970년대 후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알려졌다.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두 번째 응모하면서 했던 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도 2009년에서야 밝혀졌을 만큼 박정희의 과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 박정희가 쿠데타를 성공했다. 1961년 5·16쿠데타 과정을 되짚어보면 보안이 철저하지도 않았고, 쿠데타 당일 병력 동원도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쿠데타군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한 나라를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서중석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전엔 안 그랬는데 요 근래 박정희 정권에 관해 강의할 때 빠지지 않고 얘기하는 게 있다. ‘박정희는 정말 대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운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다’, 그런 얘기를 한다. 쿠데타에 성공할 때도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정말 운이 좋았고, 경제 발전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내외 조건이 그야말로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기에 경제 발전을 이룩해낼 수 있었다. 중화학 공업화를 할 때에도 선진국에서 사양 산업이 된 일부 중화학 공업을 넘겨주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렸다. 또 정부에서는 중화학 공업에 매진했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꺼렸던 1970년대 후반에 중동 건설 경기가 갑자기 일어난 것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것이다.”
쿠데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서중석 교수는 쿠데타를 가능케 한 배경으로 다음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당시 한국군이 굉장히 비대했다는 것. 이승만 대통령은 군인 숫자를 늘리는 게 국방력을 갖추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53년에 벌써 60만이 넘었고, 나중에는 72만 명까지 늘어났다. 또 하나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도 군인들이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는 것. 당시 어지간한 장교는 모두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박정희, 김종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 유학이란 큰 부자, 특권층이 아니면 갈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미국을 다녀온 군인들은 강한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되었고 정권을 넘볼 힘도 갖추게 되었다. 실제로 1959년 미국 콜론 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층 경제 계급 출신의 유망한 청년 장교가 한국에서 다수 생겼고, 이들은 특권적 관리나 정치가에게 분노를 품게 된다. 이것이 폭발할 우려도 있다.”
우선 쿠데타 모의는 김종필, 김형욱 등 육사 8기들에서 시작된다. 왜 육사 8기가 쿠데타를 도모했나? 이들은 군 상층의 부패에 불만이 많았고 이를 거세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군 상층부를 바로잡자고 정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5·16쿠데타가 날 때까지 극소수만 대령 진급을 했고, 좀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 정도가 중령에 머무르고 있었다. 후에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를 장면 정부의 부패, 군의 부패 등을 들었지만, 서중석 교수는 권력욕과 진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등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역시 이전부터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던 박정희를 끌어들였고, 결국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5·16쿠데타, 막을 수는 없었을까
쿠데타 세력이 꿈꾼 나라는?
쿠데타는 분명 막을 수 있었다고 서중석 교수는 말한다. 하지만 장면 정부의 인사 실책과 윤보선의 묵인 때문에 결국 막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우선 장면은 이종찬을 국방부 장관에서 내리고 현석호를 새로 임명했다. 이종찬은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신임 육군 참모총장에 장도영을 앉혔다. 장면은 이전부터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란 소문을 몇 차례 들었지만, 그때마다 장도영은 ‘염려할 것 없다’면서 박정희를 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장도영만큼이나 쿠데타에 기여한 사람은 윤보선 대통령이었다. 장면과 감정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윤보선은 쿠데타군을 진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군 일부에서 쿠데타군을 진압하려 하자 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곧 쿠데타를 묵인하고 만 것이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일행.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나라를 꿈꾸었을까? 서중석 교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이념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쿠데타를 성공시켰지만 이들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상은 없었다. '반공 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는 게 혁명 공약 1번이었을 뿐 어떤 정치적 이념도 보이지 않았다. 반공을 제외하면 무(無)이데올로기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박정희에겐 사상이 있었는가. 서중석 교수는 박정희의 생각은 일제 식민 사관에 기반을 둔 저열한 민족성론, 식민지 노예근성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 극단적인 반공 노선 같은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혼란과 무질서를 물리력으로 뿌리 뽑겠다는 파시즘적 질서관, 그리고 일제 시기의 청년 장교들이 가졌던 군국주의, 국수주의나 군인 정신 같은 것도 조금은 엿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낡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을 아주 강렬하고 과격하게, 단정적으로 표현하면, 일제 유산이 청산되지 못하고 비민주적·파쇼적 사고나 행태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혁신적이거나 개혁적인 느낌을 갖거나 그것을 신선하고 민족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었다. 파시즘 이념이나 행동이 유럽에서 일부 층에 영향을 끼친 것처럼, 또 일제 군국주의 청년 장교들의 정치 이념이 상당수의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처럼 그럴 수 있었다. 어쨌건 구부러진, 기이한 ‘민족의식’이 당시 존재할 수 있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곧 쿠데타 세력의 사상이란 식민 사관과 극단적인 반공 노선, 군인 정신이 결합된 것일 뿐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감았나
5·16쿠데타 때 CIA 국장이던 앨런 덜레스는 나중에 “재임 중 CIA의 해외 활동으로서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이 혁명이었다”라고 증언한다.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쿠데타를 지지했다’고까지 얘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것에 개입해야 한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왜 이런 태도를 취했을까? 주한 미국 대사관에 오래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미국 정부가 쿠데타 지지로 나선 건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 큰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장면 정부를 상당히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것은 민간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었다. 민주와 자유를 어느 정도 지키는 민주주의 정부가 과연 한국에 적합한가 하는 것이었다. 4월혁명 후 진보 세력이 등장해 통일 운동과 전후 학살을 비롯한 과거사 진상 규명 운동을 강하게 하자, 미국은 이를 상당히 두려워했다. 그러면서 장면 정부 대신 자기들이 정말 믿는, 탄탄한 반공 권력이 들어서는 것을 생각했을 수 있다. 다만 쿠데타를 직접 지원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쿠데타가 진행되는 것을 막을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은 확실하다.
곧 미국은 처음부터 박정희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건 아니지만 사실상 박정희의 쿠데타를 묵인했다. 주한 미군과 미국은 박정희를 인정했다. 박정희를 잘 알지 않으면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없다고 서중석 교수는 말한다. “5·16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국은 박정희가 이승만 못지않게 반공 정책을 철저히 수행할 것임을 확신했다고 본다. 남로당 프락치로서 한 박정희의 배신적 행위, 기회주의자로서 면모,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 더 짚을 것은,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거기 다시 안 붙는다는 걸 하우스만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측에서 그간 보니 공산당을 배신한 자들이 공산당에 다시 가는 건 못 봤다’, 이런 점을 강조하더라.”
5·16쿠데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서중석 교수는 5·16쿠데타의 평가는 “쿠데타 세력이 어떤 국가, 어떤 사회를 만들려 했는가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5·16 반혁명 쿠데타”로 부르는 게 제일 정확한 용어라고 말한다. 서중석 교수는 혁명이냐 반혁명이냐의 문제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자유 또는 민주주의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 사회적 혁명, 경제적 혁명을 과연 하려고 했는가. 분단 고착화인가, 통일 지향인가. 이 질문을 놓고 보았을 때 쿠데타 권력은 확실히 반혁명 세력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쿠데타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는 억압되었다. 정기 간행물 1,200종을 폐간시키는 등 언론의 자유도 퇴행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제약받았다. 반공법이 통과되면서 내면의 자유까지 짓눌렸다. 예술가들도 가위질의 공포에 항상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면서 혁신계의 통일 운동을 반국가 행위로 철저히 처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진보 세력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 자치도 완전히 뿌리 뽑혔다. 노동조합이 해산되고 많은 노조 간부가 구속되었다. 이때부터 노조는 권력에 종속되고 노동 운동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서중석 교수는 5·16쿠데타는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분단을 더욱 고착화시킨 반혁명 쿠데타일 뿐이라고 말한다. “5·16쿠데타는 중남미 쿠데타처럼 기득권 세력을 보호하고, 현상 변화나 현상 타파 즉 혁명을 예방하겠다는 반동적이고 반혁명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5·16쿠데타의 의도는 전 세계적 규모의 냉전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통일 세력, 진보 세력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 역사의 정상적인 진행에 제약을 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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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6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6-12-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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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정말 무서운 사람”
권력 앞에선 동료도, 은인도 안중에 없었다
권총을 찬 군인들의 권력 쟁탈전,
혁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얼굴
‘반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6권의 주제는 ‘박정희와 배신의 정치’이다. ‘배신의 정치’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유포한 표현이다. 이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낸 정치인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추앙하는 것으로 보이는 부친 박정희의 집권 과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1961년 5·16쿠데타에서 1963년 12월 제3공화국의 출범에 이르기까지 박정희가 보인 모습은 개인적 신의와도, 민주주의 원리와 역사의 흐름을 준거로 한 대의와도 거리가 멀었다. 이 시기에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 중 상당수를 내쳤다. 그것도 반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은 채. 그런 식으로 밀려난 이들 중에는 박정희가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여러 차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은인 장도영도 포함돼 있었다. 권력 앞에서는 동료도, 은인도 안중에 없었던 셈이다. 일제 시대에 만주군 장교였다가 해방 후에는 남로당 프락치로 변신하고, 그 후에는 군 내부의 남로당 조직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만은 살아났던 박정희로서는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모습이다.
‘혁명재판’의 반혁명성, 쿠데타 권력의 발가벗은 모습
1961년 6월 22일, 최고회의는 특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걸 소급 입법했다. 이 특별법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조항이 바로 제6조다. 제6조는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가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행위를 하면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이었다. 그 법으로 혁신계 인사, 한국전쟁 전후 집단 학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한 피학살자 유족회 간부 등을 잡아들이고 중형을 선고했다.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행위로 몰아붙여서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를 처형하고 처단한 것이다.
서중석 교수는 쿠데타 정권의 반혁명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이 반혁명 사건이라고 말한다. 반혁명 사건은 5·16쿠데타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좌익 혐의를 받은 사람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2,014명을 검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숫자는 3,500명으로 늘어났다. 민족일보 사장인 조용수도 이때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통일 운동 세력을 철저하게 처단했다. 민간인 학살의 진상을 밝히려던 이들도 가혹하게 처벌을 받았다. 심지어 희생자들의 묘까지 훼손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3·15 부정 선거 원흉과 4월혁명 발포 사건 핵심 인물들은 대거 석방된다.
쿠데타에 반대한 세력, 쿠데타 관련 정보를 누설한 자들, 쿠데타군을 진압하려 한 사람들도 모두 반혁명 사건으로 처단되었다. 그중에서 제일 대표적인 반혁명 사건은 장도영 사건이다. 장도영은 5·16쿠데타가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쿠데타 이후 계엄사령관이 되고,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권총을 찬 군인들의 권력 쟁탈전에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군 복귀 공약,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다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박정희의 ‘배신의 정치’는 공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권력을 내놓지 않기 위해 거듭 반칙을 했다. 곧 민정 이양 문제를 두고 줄기차게 말을 바꾼 것이다. 이른바 군 복귀와 민정 이양을 이야기한 ‘혁명 공약’을 지킬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세력은 겉으로는 민정 이양을 표명하면서도 야당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의 손발을 계엄으로 다 묶어놓고 중앙정보부라는 초거대 조직을 이용해 신당 조직에 착수하여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승리를 가능하게 할 새 헌법과 선거 제도를 고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러 압력에 못 이겨 2·18 성명을 통해 민정 불참 선언을 했다가 얼마 안 가 이를 다시 뒤집는다. 1963년 3월 16일 그 유명한 3·16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정권 인수의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한다는 것은 너무나 국가 장래가 염려되고 일방 우리 스스로 혁명 당국의 무책임성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따라서 본인은 앞으로 약 4년간 군정 기간의 연장에 대하여 그 가부를 국민 투표에 부쳐 국민 의사를 묻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른바 또 하나의 ‘배신의 정치’를 한 셈이다. 얼마 뒤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며 대통령 선거에 나서게 된다.
사상 논쟁 불붙은 1963년 대선, 그리고 제3공화국의 탄생
박정희의 공약은 별다른 게 없었다. “정당 정치 구현, 지방 자치 제도 실시, 중농 정책도 이야기했는데 이것들은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공약이었다. 박 후보와 정당 정치 구현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지방 자치를 실시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이 당시에는 중농 정책과 정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있지 않았나.”
이 선거에서 사상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먼저 논쟁을 건 사람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이번 선거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이 아니라 민족적 이념을 망각한 가식의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강력한 민족적 이념을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조 500년 동안의 사대주의적 근성과 일제 식민지적 근성을 일소하고 민족 주체 의식의 확립 외에 외국의 주의, 사상, 정치 제도를 우리 체질과 체격에 알맞도록 적용, 실시하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윤보선은 “여순 반란 사건의 관계자가 정부에 있는 듯하다”는 중대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들은 민주공화당은 윤보선을 허위 사실 유포, 후보자 비방 금지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사실 윤보선의 공격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남로당 프락치이긴 했지만 여순 반란 가담자는 아니었다. 그만큼 윤보선에겐 박정희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일국을 장악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 대해서조차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가를 모르고 있었다는 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박정희 일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대선은 박정희의 승리로 끝이 났다. 15만 표 차이였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근소한 표 차이였다. “이 선거는 박정희한테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민주공화당 간부들도 얼마나 가슴이 탔겠나. 정말 아슬아슬한 맛을 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박정희는 서구적 정치, 선거를 중심으로 하는 의회 정치, 정당 정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한국 사회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그런 박정희가 이 선거를 보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게 있었다고 본다.” 이렇게 제3공화국이 탄생했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여전히 군인들이 지배하는 국가였다. 이 군사 문화는 계속 존재하면서 우리 정치, 문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매가격 : 10,500 원
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서정보 : 스베냐 플라스펠러 | 2018-09-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여성이 약한 성을 자처하던 시대는 끝났다
‘힘 있는 여성’은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다
독일의 주목받는 여성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펠러가
더욱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새로운 여성성을 제안한다
독일 아마존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구매가격 : 7,000 원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 : 진지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자기 탐구 놀이
도서정보 : 롤프 도벨리 | 2018-10-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질문이 없는 삶은 정체되지만
질문이 있는 삶은 발전을 이끌어낸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이자 강연자인
롤프 도벨리의 자기 탐구 놀이
질문이 없다면 소통할 수 없다
우리는 말이나 글, 음악, 그림 등 여러 가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할 때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더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질문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책은 왜 나에게 감동을 줄까?’ ‘왜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에 매료될까?’ ‘고흐의 그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는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질문은 우리의 일상에서 늘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다. 질문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전해져 내려온 고유의 습성인 것이다. 문명의 발전 또한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이러한 거듭된 질문을 통해 이루어졌음은 자명한 일이다.
질문이 없다면 소통할 수 없다. 질문이 없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없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 사람과 나의 욕구가 어떻게 다른지도 알 수 없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본질을 이해한 사람은 타인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질문에는 질문 자체에 이미 답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일차적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질문을 함과 동시에 우리의 의식을 환기시키고, 그동안 놓치고 있던 본질을 들여다보는 행위로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질문이 가면 뒤의 민낯을 보여주는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지식인이자 강연자, 그리고 최근 국내에 소개된 《불행 피하기 기술》의 저자이기도 한 롤프 도벨리는 스위스의 극작가인 막스 프리슈의 질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자신도 수첩을 들고 다니며 질문지를 만들었다. 물론 질문의 역사는 막스 프리슈 이전부터 있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그만의 질문지를 만들었고, 영국 사교계에서도 질문을 통한 자기 탐구 놀이를 일상적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철학적이고도 본능적인 자기 탐구의 놀이를 통해 자신을 비롯한 타인과의 소통의 첫걸음이 떼어지기를 바란다. 질문이 이끌어가는 우리의 삶과 막연히 어떤 질문도 없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다를지를 상상해 보라.
구매가격 : 9,100 원
1등 용이가 사라졌다
도서정보 : 윤숙희/에스더(그림) | 2018-10-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무한 경쟁에 지친 아이들에게 주는 위로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 작용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회사에서는 성과로, 운동 경기에서는 등수로 끊임없이 우열을 나누고 순서를 매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면 경쟁은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1등만 하면 무조건 ‘행복’해지고, ‘완전’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서의 경쟁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언제나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습니다.
과연 1등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일까요? 이 책은 무엇이든 잘하는 용이와 무엇을 해도 별 볼 일 없어 ‘찌질이’라고 불리는 용이가 평행 우주 여행으로 서로의 환경이 바뀌게 되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은 평행 우주 여행이라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1등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매가격 : 6,018 원
어린이 신문 동화집
도서정보 : 방정환 | 2018-10-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침마다 해님이 산 위에 처음 올라올 때는 누구에게든지 인사를 한답니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삽니다.
순남이도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기 때문에 해님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7,000 원
(월간 정여울) 어슬렁어슬렁
도서정보 : 정여울 | 2018-08-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붓으로 음악을 작곡하는
7월의 화가 파울 클레
월간 정여울 7월의 책 『어슬렁어슬렁』에 초대한 화가는 어릴 적부터 음악과 미술 모두에 천부적 재능을 나타내었던 파울 클레다. 화가의 길을 선택한 후에도 음악은 그의 미술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이 책에서는 파울 클레 하면 떠오르는 작품뿐 아니라 낯설어서 더욱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생경한 그림들도 함께한다.
파울 클레의 그림들은 마치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음악 소리처럼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낸다. 노년기의 그림들은 지병으로 인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웠던 탓에 더욱 안타까운 망설임을 담아낸다. 그는 일필휘지로 과감하게 붓질을 하는 전사형 아티스트가 아니라 신중하고 끈기 있게, 오랜 망설임 속에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사랑과 배려를 담아, 붓으로 음악을 작곡하듯 캔버스를 아름다운 색채의 멜로디로 수놓았다. ― 「들어가는 말 ― 어슬렁어슬렁, 허우적허우적, 머뭇머뭇」 중에서
월간 정여울은 당신의 잃어버린 감각과
감수성을 깨우는 12개월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드러내면서도 따뜻한 에세이로 무수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작가 정여울과 총 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출판사 천년의상상이 만나 새로운 실험이자 커다란 모험을 시작한다. 12개의 우리말 의성어·의태어 아래 1년간 매달 한 권의 읽을거리가 풍성한 잡지이자 소담한 책을 내는 기획이다. 매체의 성향이나 단행본의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 정여울 스스로가 하나의 주제가 되어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펼치고 싶다는 목마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 순간 작가가 고민하고 사유하는 지점을 현장감 있게 보여줄 것이며, 영화, 시, 음악, 그림, 소설 등을 소재 삼아 일상에서의 다채로운 에세이가 담길 예정이다.
책의 편집 요소 또한 흥미롭다. 매달 글과 어울리는 화가의 그림으로 책의 안팎이 꾸며지고, 2017년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 부문상에 빛나는 심우진 디자이너의 의성어·의태어 레터링 작업을 통해 책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편, 독자들과 ‘아날로그적 소통’을 꿈꾸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 책의 끄트머리에는 ‘우편 요금 수취인부담’ 엽서를 수록하였다. 그동안 작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궁금한 점 등을 손글씨로 담아 보낼 수 있다. 정기구독 신청: http://imagine1000.shop.blogpay.co.kr
또한 네이버 오디오 클립 「월간 정여울: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작가의 목소리로 ‘월간 정여울’의 뒷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http://audioclip.naver.com/channels/621
구매가격 : 6,930 원
(월간정여울) 알록달록
도서정보 : 정여울 | 2018-09-1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살아 있는 유토피아
8월의 화가 클로드 모네
『알록달록』에 초대한 화가는 클로드 모네다. 「건초 더미」, 「루앙 대성당」, 「수련」 연작 등은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동일한 사물이 시간과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만년에 점점 시력을 잃어 두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안개가 내려앉은 워털루 다리, 싱싱하게 비 내린 센강의 아침, 강변에 길쭉이 늘어선 포플러 나무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끼치는 듯한 파도 등 자연의 풍경들이 담겨 있다. ‘알록달록’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그의 미묘하면서도 온화한 색감과 붓 터치를 통해 조금이나마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클로드 모네는 내게 ‘알록달록’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색채의 향연을 그림으로 보여주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갔을 때, 나는 비로소 모네가 꿈꾸던 세상의 살아 있는 유토피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을 빼고는 꽃들이 한순간도 완전히 시들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이쪽에서 꽃이 지면 저쪽에서 꽃이 피어나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모네의 정원. 그곳에서 모네는 자연의 천변만화한 아름다움을 집 안으로 몸소 초대하는 길, 그 아름다움을 혼자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친구들과 후배들, 방문객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마음의 길을 모색했다. ― 「들어가는 말 알록달록, 아롱다롱, 울긋불긋」 중에서
월간 정여울은 당신의 잃어버린 감각과
감수성을 깨우는 12개월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드러내면서도 따뜻한 에세이로 무수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작가 정여울과 총 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출판사 천년의상상이 만나 새로운 실험이자 커다란 모험을 시작한다. 12개의 우리말 의성어·의태어 아래 1년간 매달 한 권의 읽을거리가 풍성한 잡지이자 소담한 책을 내는 기획이다. 매체의 성향이나 단행본의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 정여울 스스로가 하나의 주제가 되어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펼치고 싶다는 목마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 순간 작가가 고민하고 사유하는 지점을 현장감 있게 보여줄 것이며, 영화, 시, 음악, 그림, 소설 등을 소재 삼아 일상에서의 다채로운 에세이가 담길 예정이다.
책의 편집 요소 또한 흥미롭다. 매달 글과 어울리는 화가의 그림으로 책의 안팎이 꾸며지고, 2017년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 부문상에 빛나는 심우진 디자이너의 의성어·의태어 레터링 작업을 통해 책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편, 독자들과 ‘아날로그적 소통’을 꿈꾸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 책의 끄트머리에는 ‘우편 요금 수취인부담’ 엽서를 수록하였다. 그동안 작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궁금한 점 등을 손글씨로 담아 보낼 수 있다.
구매가격 : 7,840 원
(월간정여울) 와락
도서정보 : 정여울 | 2018-09-1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찬란한 포옹
구스타프 클림트
월간 정여울 9월의 화가는 황금빛 색채와 풍부한 장식성, 관능적 여성상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간 구스타프 클림트다. 작가는 ‘와락’이라는 의태어와 클림트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은, 뜻밖의 섬광 같은 깨달음이었다고 전한다.
저 불멸의 「키스」 말고도 아름다운 포옹 장면을 묘사한 클림트의 그림들이 매우 많다. 이 화가의 숨은 주제, 혹은 자기 자신도 깨닫지 못한 최고의 테마는 어쩌면 존재와 존재 사이의 깊은 포옹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 클림트는 남녀의 포옹만이 아니라 악기와 인간의 포옹, 인간 자신의 스스로를 향한 포옹, 신(제우스)과 인간(다나에)의 포옹까지 그려낸 것이 아닐까. 그 모든 찬란한 포옹의 장면들이 모여 클림트의 은밀한 열정과 거대한 사랑의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만 같다. ― 「들어가는 말 ― 와락, 누군가를 꽉 안아주는 아름다운 몸짓」 중에서
월간 정여울은 당신의 잃어버린 감각과
감수성을 깨우는 12개월 프로젝트입니다
2018년, 자신의 상처를 담담히 드러내면서도 따뜻한 에세이로 무수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온 작가 정여울과 총 3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출판사 천년의상상이 만나 새로운 실험이자 커다란 모험을 시작한다. 12개의 우리말 의성어·의태어 아래 1년간 매달 한 권의 읽을거리가 풍성한 잡지이자 소담한 책을 내는 기획이다. 매체의 성향이나 단행본의 통일된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 정여울 스스로가 하나의 주제가 되어 자유롭고 창조적인 글쓰기를 펼치고 싶다는 목마름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이 순간 작가가 고민하고 사유하는 지점을 현장감 있게 보여줄 것이며, 영화, 시, 음악, 그림, 소설 등을 소재 삼아 일상에서의 다채로운 에세이가 담길 예정이다.
책의 편집 요소 또한 흥미롭다. 매달 글과 어울리는 화가의 그림으로 책의 안팎이 꾸며지고, 2017년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 부문상에 빛나는 심우진 디자이너의 의성어·의태어 레터링 작업을 통해 책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한편, 독자들과 ‘아날로그적 소통’을 꿈꾸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 책의 끄트머리에는 ‘우편 요금 수취인부담’ 엽서를 수록하였다. 그동안 작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나, 궁금한 점 등을 손 글씨로 담아 보낼 수 있다.
구매가격 : 7,840 원
마음
도서정보 : 나쓰메 소세키 | 2018-07-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책 소개
일본 근대 문학의 정수, 나쓰메 소세키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원하는 이들을 위한 소설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최초의 문호’로 지금도 일본 독자들에게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양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일본 사회에 대한 통찰을 전개한 ‘국민적 지식인’으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영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나쓰메 긴노스케가 ‘나쓰메 소세키’라는 필명으로 문예 잡지 『호토토기스』에 단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한 것은 1905년 1월이다. 첫 소설이 예상 밖의 호평을 얻자 그는 속편을 연재하고, 이 한 해 동안 다른 단편을 3편이나 발표했다. 이로부터 2년 후에는 도쿄제국대학 교수 자리를 던지고 『아사히신문』의 전속 작가가 됨으로써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1916년 12월에 세상을 뜨기까지 십여 년간 다양한 문학 형식과 문체에 도전하며 13편의 장편과 수십 편의 단편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 『마음』은 근대 소설의 규범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판매 부수 1,700만 부를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 ‘국민 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는 2004년까지 1천 엔권 지폐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죽음에 이르는 인간 심리와 근대화 속에 놓인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 『마음』이 더디퍼런스 출판사에서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불멸의 고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마트한 사이즈에 모든 연령의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작지 않은 본문 글자 크기로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와 행복을 찾아가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통해
나의 본연을 발견하고 마주하게 하는 소설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 1위를 차지하며 지금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작가는 발간사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이 작품을 권한다”라고 말하며 소설을 통해 격변하는 시대를 마주한 불안하고 나약한 인간을 구하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음』은 총 3부로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과 유서」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난다. 당시 서양인과 함께였던 선생님에게 끌린 나는 도쿄에 돌아와서 자주 선생님 댁을 찾게 된다. 선생님은 이렇다 할 직업도 없이, 사교도 멀리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숨은 듯이 살아가면서 좀처럼 자신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나는 일생을 고향에서 떠나지 않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부모님과는 다른, 고고한 정신세계를 갖춘 지식인인 선생님을 존경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아버지를 간병하던 어느 날, 선생님의 편지가 도착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훑어본 편지엔 불길한 예감이 묻어 있다. 다급해진 나는 위독한 아버지를 뒤로하고 무작정 기차에 올라타 도쿄로 향하면서 선생님의 유서를 읽는다.
화자인 ‘나’가 선생님에게 접근하고 종국에는 선생님이 스스로 껴안고 있는 어둠의 근원을 유서를 통해 밝히면서 이야기를 맺는 『마음』은 탐정 소설의 기법이 가미된 심리 소설로도 평가받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지난 메이지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인생의 미로 가운데 놓인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통해 마음속 본연을 발견하고 마주하게 하는 그의 작품 세계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구매가격 : 4,900 원
닥치고 데스런 스트레칭
도서정보 : 장임태, 조성준 | 2018-08-20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책 소개
화제의 베스트셀러 <닥치고 데스런> 이번엔 스트레칭이다!
팔로워 80만, 동영상 1억 뷰 돌파!
대한민국 대표 운동꾼 데스런 조성준&장임태의 스트레칭 정석!
스트레칭도 운동이 될까? 스트레칭도 운동이다! 운동하는 사람도, 운동을 1도 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 바로 스트레칭은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맨몸운동 프로그램으로 건강 분야 화제를 몰고 온 《닥치고 데스런》 저자 조성준과 데스런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코치인 장임태는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연구하여 스트레칭 책을 내놓았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몸이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모든 동작이 가능할 때까지 스트레칭을 다듬고 완성하였다.
이 책에서는 우리 몸을 크게 상체, 몸통, 하체 세 부위로 나누어 필요한 동작들을 찾아 스트레칭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위별 스트레칭을 토대로 한 번에 쭉 따라 할 수 있는 스트레칭 프로그램을 QR코드로 제공한다. 시중에 나온 책들이 가볍고 쉬운 동작들 위주로 다루었다면 《닥치고 데스런 스트레칭》은 완전 초보자뿐 아니라 그 이상의 스트레칭을 원하는 이들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개인차가 있기에 몇 개월 하면 유연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짧게는 하루 10분, 길게는 30분 이상 3개월 동안 꾸준히 하면 변화를 느낄 것이다. 꾸준히 스트레칭을 하면 평소보다 피로감이 줄어들고, 혈액 순환이 잘 되어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관절의 건강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두 운동쟁이의 경험과 몸을 증거삼아 독자들도 나름의 성취를 이루길 기대한다.
구매가격 : 10,000 원
1984
도서정보 : 조지 오웰 | 2018-08-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책 소개
‘정치적 글쓰기’로 시대를 증언한 작가, 조지 오웰의
미래의 전체주의 사회를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
조지 오웰의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동물농장』과 더불어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 대한 섬뜩한 상상을 보여주는 대표작인 『1984』는 러시아의 소설가인 예브게니 자미아틴의 『우리들(My)』,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다.
오웰은 5년간 경찰로 미얀마와 인도에서 근무하면서 영국 제국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통감했고, 스페인에서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건설이 실패로 돌아가고 파시즘이 다시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스탈린 등장 이후 노동자들의 초기 혁명 정신이 사라지고 전체주의적 정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줄곧 주시했다. 동물농장으로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오웰은 문학의 사회적 임무를 중심에 둔 정치적 글쓰기를 지향했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는데,『1984』를 통해 전체주의로 전 세계가 공포와 광기에 휩싸여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말살되는 잔인무도한 시대에 저항하고 그 폭력성을 낱낱이 고발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하는 전체주의와 그 속에서 인간이 맞이하는 비참한 말로를 묘사한 소설 1984가 더디퍼런스 출판사에서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더디 세계문학 시리즈〉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불멸의 고전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마트한 사이즈에 모든 연령의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작지 않은 본문 글자 크기로 디자인하여, 세계적인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와 행복을 찾아가려는 독자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인간 본성과 자유가 사라진 암울한 미래를 예견한
조지 오웰 최고의 역작
『1984』는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안에 놓인 한 개인이 그 억압적인 정치 체제에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1984년, 세계는 3개의 초거대국인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로 분할되어 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사는 오세아니아는 모든 것이 당과 지배자인 빅브라더에 의해 통제되는 나라이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빅브라더의 초상화 밑에는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당은 절대적인 존재로,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한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뿐만 아니라 역사도 당에 의해 철저히 조작되고 만들어진다.
진리부 기록국에서 과거의 문서와 신문 내용을 날조하는 일을 맡고 있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당이 강요하는 이념과 가치관이 현실과 정반대되는 데서 갈등한다. 그는 끊임없이 과거를 찾고, 당에서 금지하는 것들을 하며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한다. ‘2 더하기 2는 5’가 진리라고 말하는 체제에 맞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기를 쓰고, 자유를 동경하고, 줄리아와 인간적인 사랑을 나누고, 반체제 지하 조직인 형제단에 가입하며 반역을 시도하지만 결국 체포되어 고문과 설득 끝에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집필한 이 소설이 현대사회를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말한다. 누구나 CCTV와 블랙박스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를 당하고, 인터넷상에서 사상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게다가 요즈음의 화두, 빅데이터는 그 이름부터 빅브라더를 연상시키지 않던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데이터화해서 인간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빅데이터는 분명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 빅데이터 아래 인간의 존엄은 통제 가능한 자원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윈스턴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빅데이터에 맞설 자유, 그리고 인간성과 인간의 존엄을 지킬 자유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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