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신문화

도서정보 : 임화 | 2019-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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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교육, 언론, 과학 등의 보급을 통하여 신교는 반세기간 신문화 육성에 유력한 협조자이었다. 그러나 신교 자신도 조선의 신문화 건설의 원조가 직접적 목적은 물론 아니었다. 외교기관과 같이 들어오고 상인과 같이 들어와서 정치와 상업의 날카로운 기세를 어느 정도까지 유연하게 만드는 데 그 주요 목적이었을 지도 모른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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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문제

도서정보 : 현진건 | 2019-01-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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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두 자가 붙은 이상 철두철미 창작임을 요구합니다.
약간의 과장과 윤색을 베풀어 사실(史實)과 전(傳)에 조금 털 난 몸을 가지고 ‘이게 역사소설이니라’ 하니 ‘역사소설도 소설인가’하는 의문을 발하게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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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와 작가

도서정보 : 김남천 | 2019-01-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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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안온할 때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혼란할 때에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을 타서 비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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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와 서양시

도서정보 : 안자산 | 2019-01-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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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시의 어떤 시구(詩句)든지 강음(强音)과 약음(弱音)의 연속으로 일어나는 음악적 결과의 선율이 있다. 그리하여 그 시구의 강음과 약음은 정한 규칙적 ‘리듬’의 법칙에 따라 배열하는 것이다.
그와 한 가지로 시조시(時調詩)의 정형도 6구(句)3장(章)으로 구성됨을 일정불변의 규칙으로 삼은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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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 수감

도서정보 : 김내성 | 2019-01-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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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독서층의 수요를 보아서 하는 이야기지만, 방면을 돌려 조선의 문화라는 각도로 볼 때도 탐정 작가가 어서어서 자꾸 나와야 할 것이다.
탐정소설도 없고 유머 소설도, 본격적 대중소설도 없는 조선 문학을 다른 사람 앞에 자아, 이것이 조선 문단이요 하고 내놓기는 좀 힘든 일이다.
전문 유머작가, 전문 탐정작가, 전문 대중작가가 자꾸 나와서 조선 문화의 세부분인 일각(一角)을 지니고 서는 것도 그리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게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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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언어

도서정보 : 정지용 | 2019-01-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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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신비(神?)는 언어의 신비(神?)다.
시는 언어(言語)와 Incarnation적 일치(一致)다. 그러므로 시의 정신적 심도(深度)는 필연으로 언어의 정령(精靈)을 잡지 않고서는 표현 제작에 오를 수 없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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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 정치철학, 수운 최제우, 안토니오 그람시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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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守主義와 進步主義 그리고 大韓民國憲法


‘수운 최제우(1824~1864)’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서로 30여년의 時空間的 差異를 갖는다.
최제우가 퇴장하고서, 한 세대쯤 지난 후 그람시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天地自然의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를 감안하다면, 거의 同時代를 체험했다고 해도 크게 그릇될 것은 없다.
進步는 退步와 대척되는 개념으로서, 발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天地自然 안에서 ‘온 존재와 온갖 것’들은 죄다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제우와 그람시를 통해 제시되는 進步主義라는 개념 역시, 지극히 相對的임을 유념해야 한다. 保守主義의 관점에서 對蹠的으로 분별할 때 진보주의인 것이지, 그러한 向心 자체는 지극히 본래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역사에서 ‘高句麗의 南下’라는 사건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 의미규정은 달라진다.
新羅나 百濟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들의 세력권을 침략하는 행위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륙에서 세력을 다진 후, 해양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는 행위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南韓人들은, 대체로 前者의 관점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朝鮮王朝를 거치면서 형성된, 韓半島만이 우리의 영토라는 半島史觀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의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신라나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분명한 우리 韓民族 先祖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적 변화야말로, 진보주의적 사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가 살아내는 동안, 얼마만큼의 富貴榮華를 누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 탓에, 누구라도 막연한 羨望을 지닌다. 그러다보면 지극히 유치하고 사소한 일에도, 死生決斷 하듯이 임하게도 된다. 그런 것이 인생이니까.
지난 시절에 필자 역시, 그러한 상황들을 여실히 체험했다. 특별한 利害가 연관되지 않는데도, 그저 자기보다 많은 것을 누린다고 판단되면, 어떻게든 빌미를 잡아 집단적으로 비난을 쏟아내던, 잔뜩 腐敗되어버린 눈빛들, 그런 눈빛들이 당최 잊히질 않는다.
‘니체’의 선언처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일 따름임을 절감한다. 이러한 체험으로써, 필자에게 進步主義的 태도란, 天地自然 안에서 스스로/저절로 그러하게 淡然히 자기의 삶을 살아내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필자는 作家가 되었다.
필자로서는 當時가 回想되면, 무슨 까닭인지, 朝鮮王朝의 朋黨이라는 舊態的 ‘떼거리’ 정치와, 그에 얽힌 異端으로서 斯文亂賊이라 규정되어 排斥당한 尹?, 朴世堂, 丁若鏞 등이 연상된다.
또한 民主主義의 盲點인 多數決 獨裁에 의한 人民裁判 식의 作態도 그러하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떠한 관점에서 활용되는가에 따라, 그것은 전혀 非民主的인 상황을 연출케 된다. 그러니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런 자들의 殘像으로서 기억되는 것은, ‘大衆 集團無意識’의 淺薄함과 殘酷함일 따름이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集團共同體의 生來的인 정치적 태도는 保守主義인 것으로 가름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태도를 지니는 것은, 어쩌면 人之常情이다.
제아무리 進步主義를 표방하더라도, 그러한 진보주의가 執權한 후에는, 이내 보수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했을 때, 그것을 簒奪하는 순간까지의 진보주의는 가능하지만, 집권한 이후의 진보주의는 不可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李成桂와 鄭道傳의 革命勢力은, 보수세력인 高麗王朝에 대하여 시대를 선도하는 진보세력이었다. 그래서 易姓革命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하는 순간, 지극히 보수주의적인 정치적 태도를 드러낸다. 국제지향적이며 黃帝國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던 高麗王朝에 비한다면, 더없이 보수주의적인 態勢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금세 새로운 세력집단에 의해 政權을 찬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當代의 문제이며, 역사적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評價가 내려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保守主義는 미국과 일본을 爲始한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를 이념으로 삼는다. 進步主義는 중국과 북한을 爲始한 ‘무언가’를 이념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로서는 不法하다는 비난에 처할 수 있으므로, 다소 침묵한다.
실상 남한의 진보주의가 추종하는 것은, 人民民主主義와 主體思想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보수주의의 입장에서는 결코 납득될 수 없는 대목이다.
비록 동일한 이념을 추종한다지만, 일본에 대한 역사적 悔恨을 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남한의 상황에서 북한의 체제를 추종한다는 것은 당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히 정리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단지 정치적 요인만으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여기에는, 저 먼 古代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요인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역사적 요인은, 당최 明晳判明히 드러난 부문이 不在하다.
上古史는 五里霧中이며, 高麗史는 外勢가 왜곡하기 전에 조선왕조가 스스로 이미 철저히 왜곡해버렸고, 朝鮮史는 日帝에 의해 왜곡되어버렸다. 그리고 東北工程과 植民史觀에 의한 왜곡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역사적 요인은 이내 문화적 요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 민족끼리’라는 슬로건에 대해 異見이 紛紛한 것이다. 과연 民族이란 무엇이며, 누가 민족이며, 어떻게 민족인지의 여부가, 현재에 이르도록 마땅히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제적 요인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 卓上空論 식의 말싸움쯤으로 마감될 수 있다면 크게 우려할 바 없겠으나, 이러한 대립은 경제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경제라는 것은, 인간존재의 ‘生存의 利得’을 결정하는 분야이다. 이를 상실케 되면, 생명의 미래적 보장은 없다. 그래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옷이나 집을 양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것은 나눠가질 수도 있다. 경제발전이 되면서 여벌의 잉여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의 문제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밥이란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존의 이득’이다. ‘三時 세끼’의 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生命(欲望)의 보장은 없다. 그러니 결코 양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양 측의 대립이 이러한 ‘밥의 영역(욕망의 영역)’을 건드리게 되면, 이내 ‘혁명적 충돌(戰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불과 몇 해 전에 체험한 바 있다. 그래서 아무리 순한 개라도, 제 밥그릇을 건드리면 문다고 하지 않던가.
政治란, 공동체 구성원의 밥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人民의 밥(욕망)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政權은, 결국 권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에 있어, 그 準據가 되어줄 것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大韓民國憲法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떠한 이론이나 논리이든, 대한민국헌법에 判斷尺度를 두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法律이라는 것은 言語로써 정립된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문제가 된다.
언어라는 것이 분명히 공통하는 의미를 지정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목적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떠한 논쟁일지라도 현재 시행되는 대한민국헌법에 그 준거를 둠이 타당하다.
그리고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이익(國益)’을 목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공동체는 인간존재의 생존에 있어 가장 바탕이 되는 토대이다. 현재 시행되는 대한민국헌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韓民國憲法 前文
悠久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운동으로 건립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입각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最高度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世界平和와 人類共營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上記한 헌법 전문에는 유념할 대목이 여럿 있다. 우선 大韓國民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말 그대로 大韓民國의 國民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각 개인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국민으로서, 生成的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민이란,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가 가장 우선되는 존재임은 말할 나위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토대로서, 3·1운동, 大韓民國臨時政府, 4·19민주혁명 등을 摘示한다. 그 이전의 역사는, 悠久한 역사와 전통이라는 표현으로써 가름하고 있다.
유구하다는 것은 멀고 오래되었다는 의미다. 그 멀고 오래됨은, 東夷文明(遼河文明)으로부터 始原하여, 古朝鮮, 夫餘, 高句麗, 統一新羅, 渤海, 高麗, 朝鮮王朝로 이어지는 역사를 뜻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使命은,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이다. 南韓의 경우 민주개혁으로써 세계적인 民主化를 이루었으나, 北韓의 상황은 세계에서 최하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非民主的 상황에 있다.
이는, 평화적 통일이라는 사명과도 연관된다. 북한의 비민주적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평화적 통일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使命을 작동시킴에 있어, 이념적 토대가 되는 것은 自由民主的 基本秩序이다. 이는 곧 自由民主主義를 추종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대한민국헌법이 모범으로 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온갖 형태의 民主主義가 있는 탓이다.
예컨대, 북한의 人民民主主義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기회균등, 능력발휘, 세계평화, 인류공영, 안전, 자유, 행복 등의 개념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이상주의적 개념들을 열거하는 까닭은, 각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상 이러한 개념들은 지극한 理想들이다. 人類史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동시적으로 충족되는 이상사회는 실현된 바 없으며, 향후에도 그러한 이상사회의 도래를 예견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헌법에 적시된 理想主義를 현실세계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現實主義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헌법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를 실제적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目的的 志向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본래 理想鄕이란 실현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상되기 위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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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인문학, 조선왕조 진보주의 작가 허균 성소부부고

도서정보 : 탁양현 엮음 | 2019-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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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문에 관하여: 學論



학론(學論)

옛날의 학문하는 사람이란,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체로 이치를 궁구해서 천하의 변화에 대응하고, 도(道)를 밝혀서 뒤에 올 학문을 열어주어, 천하 후세로 하여금, 우리 학문은 높일 만하고, 도맥(道脈)이 자기를 힘입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환하게 알리려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을 유자(儒者)의 선무(先務)로 하였으니, 그들의 마음씨는 역시 공변되지 않은가?
그런데 근세(近世)의 학자라고 말해지는 사람이란, 우리 학문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며, 또한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도 않는다.
입으로 조잘대고, 귀로 들은 것만을 주워 모아, 겉으로 언동(言動)을 꾸미는 데에 지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道)를 밝히오. 나는 이치를 궁구하오.”
이러면서, 한 시대의 보고 들음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고찰해 보면, 높은 명망을 턱없이 거머쥐려던 것뿐이었고, 그들이 본성(本性)을 높이고, 도(道)를 전하는 실상에 있어서는, 덩둘하여 엿본 것도 없는 듯하니, 그들의 마음씨는 사심(私心)이었다.
그렇다면 공(公)과 사(私)의 분별이요, 참과 거짓의 판별이다.
어찌하여 수십 년 이래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某)는 학자이고, 모(某)는 진유(眞儒)다.” 하면서, 망령되게 서로 추켜주고 자랑하기에 바빠하는가? 그런 일 또한 미혹된 짓이다.
일찍이 보건대, 소위 진유(眞儒)란, 세상에 쓰이게 되면, 요(堯)ㆍ순(舜) 시대의 다스림과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의 공적이 사업에 나타난 것들이 이와 같았고, 쓰이지 못하더라도 공(孔)ㆍ맹(孟)의 가르침과 염(濂)ㆍ낙(洛)ㆍ관(關)ㆍ민(?)의 학설을 책에 기록한 것들이, 또 이와 같아서, 비록 천만년이 지나도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건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씨가 공변되어서다.
오늘날의 거짓 선비는, 실속 없고 근거 없는 말을 하여, 입을 열면 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사업을 자신이 담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가 쓰여지면 손과 발을 놀리지도 못하고 실패하여, 자신을 수습할 수도 없게 되어, 당세의 비웃음과 후세의 의논이 있기 마련이다.
약간 더 교활한 자들은, 이렇게 되리라고 미리 요량하고, 명망이 훼손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문득 나서지도 않고, 그의 졸렬함을 감춰버린다. 이런 것 역시 다름이 아니라, 그 마음씨가 사심(私心)이어서다.
슬프다!
거짓이 참을 어지럽게 하여, 온통 이러한 극단에 이르게 하고는, 마침내 임금으로 하여금, 도학(道學)을 싫어하여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이는 거짓과 사심을 지닌 자들의 죄이지, 어찌 진유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으랴.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도학(道學)한다는 선비들이 더러는 화란에 걸리고, 더러는 끝까지 그의 시정책을 펴지 못하기도 하였다.
모르기는 하지만, 당세 임금으로 있던 분들이, 과연 그들의 도(道)를 써서 시행했더라면, 공렬(功烈)을 옛사람에게 비길 수 있었고, 이 세상을 요ㆍ순의 시대와 같게 할 수 있었겠는가?
국론(國論)이 두 갈래로 나뉨으로부터, 사사로움에 치우친 의논들이 무척 치열해져, 더러는 저들만이어야 한다고 이들을 헐뜯고, 더러는 갑(甲)만을 높이고, 을(乙)은 배척하여 소란하게 결렬되어서, 그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모두 사심으로 듣고 보아서 그렇게 되지 않음이 없으니, 어느 누구를 탓하랴!
얼마 전에 이른바 오현(五賢)을 문묘(文廟)에 배향하였다.
당시 의논하던 사람들은, “다섯 분 이외에 배향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도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어진이들이 어떻게 정해진 인원이 있다고, 반드시 다섯 분으로만 한정하랴.
만약 그렇다면, 이후에는 공자나 안자(顔子) 같은 학자가 있더라도, 배향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공자ㆍ안자 같은 분들의 탄생은 예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야은(野隱) 길재(吉再) 같은 충성심으로 우탁(禹倬)ㆍ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직접 전해 받았고, 서화담(徐花潭)의 초월한 경지를 혼자 터득함과, 이율곡(李栗谷)의 밝은 식견과 큰 아량까지를, 어떻게 후중함이 적으니 취할 게 없다고 하여, 전혀 거론하지 않는 것인가?
더러는 헐뜯는 사람도 있으니, 이점 또한 사심과 거짓의 해악이다.
만약 한훤(寒暄 金宏弼)과 일두(一? 鄭汝昌)가, 불행히도 1백 년 후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그러한 헐뜯김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하랴.
또 율곡(栗谷)으로 하여금, 다행히도 1백 년의 앞에만 태어나게 했다면, 그분이 존숭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건 마음씨의 공변되지 못함에서 연유되는 것이요, 관찰하기는 싫어하고, 남의 말 듣기만을 숭상하는 일반적인 세태에서 나오는 짓이다.
임금이 진실로 공(公)과 사(私)의 분별을 밝게 한다면, 참과 거짓도 알아내기 어렵지 않으리라.
이미 공과 사, 참과 거짓을 분별하면,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고 도리를 밝히는 사람이 나와서, 그들이 배운 것을 행하리라.
그들의 겉이나 꾸미는 자들은, 감히 그들의 계책을 행하지 못하여, 모두 깨끗이 거짓을 버릴 것이며, 나라의 커다란 시비(是非)도, 역시 따라서 정해지리라.
그렇다면 그러한 기틀[機]이 어디에 있을까?
임금의 한 몸에 있으며, 역시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라고 할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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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철학, 조선왕조 통치이데올로기 주희 주자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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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朱子哲學 一般



동아시아 사회에서, 朱熹의 사회정치적 구상의 영향력은 심대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정확히 朱子의 사회정치적 구상이 무엇이었는지, 왜 그의 사회정치적 구상이 그토록 宋代 士大夫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동아시아사회에서 영향력이 지속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매우 빈약하다.
따라서 위의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주자의 사회정치적 구상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함으로서, 기존의 주자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학설과 의견들을 재검토함은 물론, 儒敎와 중국사회의 통합성의 관계에 대하여 기존과는 매우 다른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주자가 궁극적으로 창조하려고 하였던 것은, 인간의 本性에 바탕한 도덕적 자율성에 기초하여, 사회가 자기조직화 할 수 있고,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주자는 자신의 學을, 단 하나의 통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개인의 心의 수양과정과 사회적, 정치적 과정을 동일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學을 통하여, 인간사회는 개인의 心의 도덕적 수양과 사회정치적 질서의 구현을, 동일한 과정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자는 인간의 본성과 우주 만물은 동일한 理를 공유하며, 결국 理는 하나이기에, 學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올바른 패턴이 개인과 사회 양방에 모두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公을 지향한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에 기반하여, 외부에서의 강제와 개입 없이 자기조직화될 때, 사회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것이 유일하게 옳은 사회질서라고 한 주자의 주장은, 현실세계와 크게 배치되는 모습을 보인다.
주자가 어떻게 이러한 현실과 자신의 주장과의 괴리를 극복하여, 자신의 사회정치적 구상에 기초한 질서를 南宋사회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구체적 어젠더로 제시하려 노력하였는가에 두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희생시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心의 작용에 의해, 인간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도 방관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주자는 끝임 없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해답을 구체적인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주희의 정치사회적 구상으로서의 學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배경과 시각, 그리고 그 이론적 근거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고안한 기제와, 구체적으로 어떠한 질서를 구상하고 있었나를 설명하고자 한다.
주희는 분명히 富國强兵을 추구하는 사회정치적 질서에 반대를 표하였으나, 단순한 도덕적 이상주의와 구별되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러한 주자가 제시한 자기조직적인 사회정치적 메커니즘으로서의 學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구성되는 사대부사회를 이해한다면, 송대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지방 엘리트들의 자기 조직적인 다양한 활동에서 나타나는 분산적인 힘과, 그러한 가운데서도 일정한 통합적인 패턴을 보이는 중국사회의 통합성의 성격에서 보이는 二重性을 이해함으로써, 주자의 學이 동아시아 사회에 제공한 통합성의 성격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그 자체에 통합성에 대한 수사적 연속성을 가정한 儒敎라는 카테고리를 중심에 놓고 논의를 진행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기하고, 유교라는 카테고리로 자신을 정의하는 다양한 사상과 시스템들이, 동아시아의 사회에 제공하였던 것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정치적 어젠더로서의 朱熹 (1130-1200) 의 "學"과 士大夫 사회의 형성, 민병희, Harvard University.


儒家는, 그 어느 학파보다도 이상적인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며,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판단, 처신, 행동하여야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문제에 관건이 되는 것이 바로 仁 개념이다. 즉, 유가는 인간의 본성은 仁이며, 따라서 仁의 체득과 실천이 당위적인 인간의 존재근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孔子 이전에, 仁은 다양한 개별적인 덕목들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공자는, 仁을 보편적 덕이자, 모든 덕목들의 종합적인 완성으로 제시하였다.
나아가 그는, 仁의 실천방법으로 주로 소극적으로 진술하였지만, 忠恕, 즉 자기정립과 타자정립을 통한 仁을 실천을 강조하였으며, 仁은 우리 마음과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관 연관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孟子의 목적은, 공자학설의 정초였다. 그래서 그는 孺子入井의 비유를 통해, 인간에 순선한 감정인 惻隱之心이 무조건적이며 자발적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을 통해, 仁이 인간 본성임을 증명하였다.
나아가 맹자 이후 분분한 논의만 있어, 仁에 대한 명확한 名義가 정립되지 않았을 대, 주자는 易經과 程子의 논의를 기초로 하여, 仁이 天地之心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요컨대, 유가의 仁 개념은, 공자에 의해 보편적 덕으로 정립되었며, 맹자에 의해 四端에 기초를 두고 인간의 본성으로 확인되었으며, 나아가 이 仁은, 주자에 의해 형이상학적으로 정초되어, 유가 仁 개념은 완성되었다고 하는 점을 밝혔다.
공자는 仁의 실천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맹자는 四端이라고 하는 심리적 사실에 초점을 두고 인간본성으로서 仁의 존재를 증명하였으며, 주자는 형이상학적 궁극존재인 천지의 마음에서 유래한 마음의 덕으로서 仁의 존재에 초점을 두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을 피어나게 하는 근거로 정립하였다고 하는 점을 밝힌다. 儒家 仁개념의 변환구조 : 孔子, 孟子, 朱子를 중심으로, 임헌규, 범한철학.


晦庵 朱熹는, 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孟子로 이어져 오는 道統을 체계화시켰다. 그의 도통체계는 주체의식의 발로였다.
그의 이러한 주체 발로에는, 民族的 또는 國家的 主體意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民族이나 國家의 理念이나 宗敎的인 主體意識과 같은, 모든 主體意識은 반드시 正當性과 道德性이 缺如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먼저 주자의 탄생을 고찰한 주자의 저술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바로 주자의 주체의식을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尊周攘夷와 주체의식이고, 둘째는 동방 朱子學과 주체의식이다.
첫째의 경우, 中國은 道와 禮樂이 있고, 夷狄은 道와 禮樂이 없으므로, 禽獸와 같이 보았기 때문에, 尊周攘夷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의 경우, 율곡과 우암이 春秋大義에 입각한 尊周攘夷 사상을 전개한 면을 간략히 고찰하였다.
즉, 회암 주희의 주체의식에는 夏와 夷를 구분하면서, 先王의 敎化에 依하여 道를 지켜, 종국에는 周公, 孔子, 孟子로 계승되는 도통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회암(晦庵) 주희(朱熹)의 주체의식, 조준하, 공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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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철학, 고독한 유령 칼 마르크스의 철학사상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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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맑스철학 一般



實狀, 필자는 共産主義者가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지금 여기’에서 철지난 ‘맑스철학’을 지어내는 까닭은, 共産主義나 社會主義를 알지 못하면 資本主義 역시 알 수 없는 탓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를 統治體制의 根幹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양한 不得已가 내재되어 있다.
自由民主主義나 資本主義가 완벽한 이데올로기인 탓에, 그것을 추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나은 이데올로기가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革命이나 改革을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國際政治的 상황에서, 민족과 국가의 安危을 분별치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이 첨예한 좌파와 우파, 혹은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각 진영은 서로의 이론과 논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고서 眩惑되거나 籠絡당한다면, 그 원통함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실상을 알고서, 오롯한 자기의 신념으로써 선택하였다면, 후회도 없을뿐더러, 혹여 어긋나도라도 그에 대한 책임의식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알지 못하고서 惑世誣民되어 附和雷同하였다면, 그저 억울하고 회피하고 싶을 따름일 것이다.
이는, 먼 역사를 거론할 것도 없이, 日帝强占이나 韓國戰爭의 상황 속에서, 각 個別者들의 不得已한 無知가 초래한 不條理를 回顧하면 쉬이 납득되는 상황인식이다.

필자는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십수년 동안 재학하며, 두 군데의 연구소에도 재직했다. 그러면서도 그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산주의자와 빨갱이들의 據點인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사실을 無意識的으로 외면했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다만, 前衛的 前導者인 것은 아니다.
여하튼, 세월이 흐른 후 回想해보니, 왜 필자가 그들과 소통할 수 없어 소외되었는지, 다소 이해가 된다. 가장 근본적으로, 필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빨갱이가 절대다수인 곳에서, ‘빨갱이 아닌 자’는 ‘아무도 아닌 자’이기 십상이다.
필자가 전공삼아 공부한 中國哲學의 경우도 그러하다. 당시 그곳에는 빨갱이-親中主義者로서 중국철학을 대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빨갱이라거나 친중주의자로서의 삶이 그릇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필자는 빨갱이도 친중주의자도 아니다. 그저 동아시아를 주도했던 중국문명 自體에 대해 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보니 學位와 硏究費를 무기삼아, 필자를 소외시키며 조작하려고 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연스레 疏遠해질 수밖에 없었다.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곳은 共産主義者와 親中主義者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 해, 학위논문에 대해 문의했더니, 지도교수라는 자는 당최 납득이 되지 않는 조건을 전제하며, 아주 卑劣한 거부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결국 공산주의자도 빨갱이도 친중주의자도 아닌 자의 학위논문은, 심사조차도 거부한다는 의미였다.
하긴 그런 곳에서 밥줄을 지켜내야 하니, 빨갱이보다 더욱 빨갛게, 어느새 그 분위기에 잘 적응한 듯하다. 그러니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으리라.
여기서 共産主義者는 자기의 신념을 좇는 부류로서, 오롯이 혁명가나 사상가로서 살아내는 자들이다.
반면에, 빨갱이는 공산주의자 흉내로써 비굴한 생존을 도모하는 무리를 지칭한다. 마치 日帝强占期의 잠재적 親日派쯤으로 比肩될 수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해 명료히 분별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아무래도 博士學位論文 심사는 여러 여건을 思慮하여, 다른 대학원에서 도모하여야 할 듯하다. 하지만 빈곤한 필자의 형편으로서는, 당최 그 비용을 마련키 어렵다.
하긴 作家에게 박사학위라는 것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왕에 시작한 공부를 박사수료에서 마감하려니, 객관적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는 듯하여, 다소 찜찜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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