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음악

도서정보 : 정상도 | 2121-12-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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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불화했던 당대 힙스터‘음악인’공자와의 대화
『논어』와 세상 일을 연결하며 노래와 연주 음악 소개
공자는 왜 함께 모여 노래하자고 했을까?

노래를 부르는 공자. 어쩌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논어』에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노래하는 공자의 모습이 남아 있다. 공자는 상을 당한 사람 곁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배불리 먹는 법이 없었고, 그런 날엔 노래를 삼갔다.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음악을 일상화하는 공자를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때 ‘소’ 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었다고 한다. 그때,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이렇게 즐거운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 - 『논어』 「술이」 7.13. 비록 짧은 에피소드지만 음악에 대한 공자의 이해도나 몰입의 정도는 대략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다.

“시에서 인간성의 순수한 아름다움이라 할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예에서 서며, 악에서 인생의 완성을 이룬다.(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 『논어』「태백」 8.8. 시와 예와 음악을 각각 그 일어나고(興) 서고(立) 이루는(成) 기능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사실 공자가 아닌 그 어떤 제자백가의 학설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문예론은 공자만의 독특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논어』 관련 에세이와 조금 다른 형식을 더했다. 가요, 팝송, 재즈와 국악, 클래식 등 시대와 국경을 불문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논어』의 구절과 병치시키고 있다. 이는 ‘공자 왈’ 하면 ‘고리타분’ 하다는 선입견을 넘어 『논어』의 메시지를 한번 들쳐볼 만한 계기를 만들고 싶은, 저자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구매가격 : 9,800 원

상호대차

도서정보 : 강민선 | 2023-02-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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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로 독립출판과 상업출판에서 모두 호평을 받은 신예 작가 강민선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상호대차는 도서관과 도서관의 장서공유 서비스로 여기에 없는 책을 다른 곳에서 빌려주는 걸 말한다. 이 책에는 상호대차로 빌린 책과 더불어 여기의 나와 저기의 내가 책으로 교차하는 지점들이 나온다. 책은 한곳에 머무는 게 아니라 찾는 사람에 따라 자리와 주인을 바꿔가며 이동한다. 여기서 착안한 이 책은 독서 일기이자, 책들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호대차에는 작가의 인생을 관통한 책 10권이 등장하는데 10권의 책은 단순히 재미있게 읽은 목록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거울처럼 비춘 책으로 책을 읽은 경험으로 ‘나’를 보여주고 있다.

구매가격 : 7,700 원

우리 지금, 썸머

도서정보 : 김다은, 장경혜, 류시은, 박산호, 이현석, 박다해, 하고운, 이병윤, 양양 | 2023-02-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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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내 여름을 그토록 빛나게 해 줘서.”
영화감독·교사·기자·일러스트레이터·소설가·번역가로 살아가는
여덟 명의 작가가 고유한 자기만의 채도로 담아낸 여름의 빛깔!

에세이, 그림 만화, 그래픽노블 등의 장르를 통해 생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아 가는 ‘위 아 영We are young’ 시리즈 두 번째 책 『우리 지금, 썸머』가 출간되었다. 2021년 12월에 펴낸 시리즈 첫 책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가 학창 시절 ‘겨울 방학에 있었던 일’을 포근한 온도로 담았다면, 이번 책은 서로 다른 여덟 명의 작가가 제각기 지나온 ‘그해 여름, 우리들의 여름 방학’을 청량한 색채로 그려낸다.

여름은 우리에게 어떤 계절일까. 어떤 날은 더없이 쾌청한 하늘과 밤바람처럼, 어떤 날은 습기 머금은 장마처럼, 또 다른 날은 온종일 에어컨 냉기에 휩싸였는데 바깥은 여전히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가 지속되는 것처럼…… 다채로운 풍경만큼, 계절이 건네는 의미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여덟 명의 작가가 써 내려간 이야기도 그런 여름의 결을 꼭 닮았다. 다시는 없을 그 여름의 추억, 우정과 사랑과 상실의 순간, 계절을 지나온 애틋한 마음, 상처받고 상처를 주기도 했던 날들, 환대와 존중의 태도를 배운 고마운 경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방학의 풍경…….

그때의 우리라 가능했고 그 시절의 나이기에 유일했던 기억의 조각들은 하나의 계절을 이루어 내며 눈부신 여름을 새롭게 통과한다. 각각의 이야기에 담은 그림 작가 양양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수채화 닮은 여름의 여덟 가지 모습을 탁월하게 펼쳐 보인다.

구매가격 : 9,100 원

감옥으로부터의 소영

도서정보 : 정소영 | 2023-02-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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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정권하의 대학 캠퍼스에서, 감옥에서, 교도소에서 그리고 다시 감옥에서……
43년에 걸쳐 도착한 스물세 통의 편지
폭압의 시대를 관통한 소영의 생애로 보는 사회사, 정신사

‘소영’은 삼남매 중 둘째, 외딸로 자랐다. 오빠만을 떠받들며 집안을 호령하는 어머니를 두려워도 하고 원망도 하며 크는 동안 모두가 ‘에미야’ 하고 부르는, 매일을 혹사하듯 집안일에 매달리는 다른 여인이 진짜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항시 양모의 눈치를 살피며 자정이 지나도록 부엌 시멘트 바닥을 거울처럼 닦고 있는 생모의 존재는 그의 첫 번째 큰 슬픔이었다. “너는 여자라서 안 돼.” 양모의 말로 서울 대학에 가려는 꿈은 좌절되었지만 부친의 뜻에 따라 가까운 국립대에 진학했다. 독재 정권의 통제하에 놓인 강의실 대신 공부 모임과 조직을 통해 진짜 역사의 진실을 배워나갔고, 그로 인해 옥살이와 고문을 겪었다. 군사정권의 폭력과 시대의 아픔으로, 운동권 내부의 분열과 성범죄로, 사랑의 죽음과 배반으로 그의 슬픔은 강인하게 벼려진다. “소영이 네 인생은 참 파란만장해. 너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지나온 고난을 재단하는 그런 말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원 없이 살아낸 젊은 날을 뒤로하고 현재에 이르러, 연못에 연뿌리를 마당에 초목을 심으며 세상을 내다본다. “생각하기에 따라 여전히 이 세상은 커다란 감옥일 수도 있습니다. 남아 있는 이 감옥에서도 탈출하는 날 당신을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멀리 가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구매가격 : 12,800 원

꽃의 일생

도서정보 : 양성우 | 2023-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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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대한 저항시집 〈겨울공화국〉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에 불을 지핀 양성우 시인이 18번째 신작 시집 〈꽃의 일생〉을 펴냈다. 팔순을 맞아 펴낸 이 시집에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쓴 생태 시편들과 함께 삼라만상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도에 이르는 원숙한 시편들이 실려 있다.

구매가격 : 8,260 원

파울 첼란 전집 3

도서정보 : 파울 첼란 | 2023-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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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 완간!

어떤 경악은 있었던 언어로는 말해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파울 첼란으로부터
배웠다. 그의 언어는 그가 바위를 지고서 이미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뚝뚝 흘린
핏방울들처럼 짙고 비리고 생생하다. 한 방울 독처럼 미량으로도 강력하다.
김소연(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유럽 시인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 그의 시와 산문, 연설문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3』,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시절의 초기작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4』, 파리 유고에서 나온 시를 묶은 『파울 첼란 전집 5』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대표 시집을 네 권씩 묶은 1, 2권으로 첫선을 보였던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이 완간에 이르렀다. 대표작은 물론 초기 시와 유고시, 산문과 연설문까지 모두 아우른 것으로 이제 독자들은 선집이나 단권으로 접해왔던 첼란과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은 2000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총 일곱 권으로 출간된 『파울 첼란 전집Gesammelte Werke in sieben B?nden』을 저본으로 삼아 (첼란이 랭보, 발레리, 오시프 만델스탐, 셰익스피어, 페소아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묶은 두 권을 제외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집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이기도 하다. 이십대 후반 독일로 떠나 2018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실향’ 상태로 지내며 모국어로 쉼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던 시인이,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잃은 채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의 세계를 우리말로 옮겼다. 몇몇 갈피 첼란의 시와 함께한 시간이 배어 있는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서 허수경 시인은 ‘시의 수많은 이미지가 첼란의 유대인의 존재에서 나오지만 첼란의 언어는 다만 첼란이라는 시인의 절대적인 언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나온” 첼란의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놓는다.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
홀로코스트를 심장에 새긴 첼란의 시

파울 첼란은 1920년 부코비나 체르노비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부코비나는 18세기 후반까지 오스만제국, 그후로는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2차세계대전중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었다. 첼란이 태어날 당시에는 루마니아 영토였으나 유대정신을 계승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인 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웠고, 독일문학에 심취했으며 표준독일어 교육을 중시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안에서는 독일어를 썼다.

십대 시절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대학자격시험을 치른 후 의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 투르로 떠났고 일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40년 소련이, 일 년 후 루마니아가 재점령하면서 파시스트 정부와 나치 독일에 의해 게토가 된 체르노비츠에서 첼란은 시를 쓰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했다. 그리고 곧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수용소 추방이 시작되었다. 수용소로 끌려간 첼란의 아버지는 병사하고 어머니는 총살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첼란은 탈출했다가 다시 루마니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간 뒤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함께 부모의 죽음은 이후의 삶과 시 세계에 영구히 각인되었다.

1944년 2월에야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첼란은 체르노비츠를 떠나 부쿠레슈티에서 러시아 문학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루마니아 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실었다. 1948년 빈에서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왔지만 회수하고, 1952년 공식적인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을 시작으로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격자』(1959)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 『숨전환』(1967) 『실낱태양들』(1968)을 펴냈으며, 사후 『빛의 압박』(1970) 『눈의 부분』(1971) 『시간의 농가』(1976) 등이 출간되었다. 1958년과 1960년에는 독일 문학계의 주요 문학상인 브레멘 문학상과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후 반유대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이 만연했던 서독 문학계에서 첼란은 “관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이목을 끌지만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고 그 자신도 그것을 원치 않는” “외래종Exot”의 존재였다. 급기야 비평가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시’ ‘이해할 수 없는’ ‘은유로만 가득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렸고, 이 ‘난해성’이라는 그릇된 평가에 대해 첼란은 단호히 저항했다.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아니, 그들은 그런 말을 원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치 수용소에 대해 출판된 최초의 시들 중 하나이자 20세기 유럽 시의 표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죽음의 푸가」조차 처음에는 혹평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독일어로 시를 쓰는 유대인 시인으로 첼란이 독일 문단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골 사건Die Goll Aff?re’으로 칭해지는 표절 시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시인 이반 골의 시를 번역한 첼란이 그의 시를 표절했다는 이 의혹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지만,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도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린 그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첼란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럼에도 언어였다. 비인간적인 역사를 살아내며 ‘리얼리스트’로 “현실에 상처 입고도 현실을 찾으면서”(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그것을 말 하나하나에 새겼다. ‘미화하지 않고 시적이 되려 하지 않는’ 언어로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경악을 말했고, 시가 침묵으로 향해 가는 전후의 경향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미-더이상은-아님’에서 ‘그래도-아직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에게 드리웠던 난해성, 비의秘義의 그늘을 걷어낸 자리에, 언제나 ‘너’에게로 향하는 시, 대화와 만남에서 시의 본질을 찾았던 시인이 있다.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은 부코비나를 떠나 부쿠레슈티와 빈에 머물다가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시를 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그곳에 묻혔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시로 기억하고 당대의 몰이해에 시로 저항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했던 파울 첼란, 오십 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한 번도 독일에 ‘살았던’ 적 없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은 이제 아우슈비츠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어권 시인으로 횔덜린, 릴케와 나란히 기억되며, 그의 시는 사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있다.

시, ‘유리병 속의 편지’
당신에게 가닿고자 한 시인의 소망

『파울 첼란 전집 3』은 1948년 빈에서 출간된 시집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와 1976년 사후 출간된 『시간의 농가』, 그 밖에 흩어져 있는 시들을 묶은 것과 산문, 연설문을 아우르고 있다.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출간되었을 때는 첼란이 빈을 떠나 파리에 자리잡은 후였고 나중에 오자를 발견하고 회수했다. 그리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이십오 편을 약간의 변화를 더해 『양귀비와 기억』에 다시 실었다. 그럼에도 첼란은 처음 나온 이 시집의 존재를 중요하게 여겼고, 그에 따라 그가 수기로 오류를 바로잡은 판본이 전집에 포함되었다. 『시간의 농가』는 유고에서 나온 오십 편의 시로 사후 출간되었으며, 흩어져 있는 시들은 첼란이 개별적으로 출판한 것이다.

산문으로는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에드가르 즈네의 작품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실은 「에드가르 즈네와 꿈들의 꿈」, 아도르노와의 어긋난 만남을 계기로 쓰게 된 「산속에서의 대화」, 그리고 「역광」과 함께, 출판인이자 서적상 플링커의 설문에 대한 두 차례의 답변, 『슈피겔』지 설문에 대한 답변, 한스 벤더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다. 특히 「산속에서의 대화」는 유대계 헝가리인 문헌학자이며 친구인 페테르 손디의 주선으로 아도르노와 만날 예정이었으나 무산된 후 첼란이 아도르노에게 보낸 글로, 엥가딘의 실스마리아에서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못했던 “우리, 유대인들, 너 큰 사람과 나 작은 사람”의 대화를 담고 있다. 아도르노가 에세이를 통해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주장한 후였고, 이에 대해 “아우슈비츠 이후 어떤 시도 불가능하다,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면”이라고 반박한 손디였다. 아도르노는 첼란이 죽기 일 년 전 “첼란의 시는 침묵으로 극도의 경악을 말하고자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 더이상 시는 쓰일 수 없다는 것은 잘못이었을 수도 있다”라고 다시 말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썼던 첼란이 시와 시인의 존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는지는 플링커와 한스 벤더에게 보내는 글에서뿐만 아니라 브레멘 문학상 수상 연설문, 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연설문인 「자오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현실과 역사에서 동떨어진 시가 아닌 ‘날짜를 기억하고자 하는’ 문학을 지향하는 첼란이 두드러진다. 뷔히너의 작품 『렌츠』를 시작하는 문장에 나오는 “1월 20일”은 특히 첼란에게 중요했다. 바로 반제회담에서 나치가 유대인 절멸 정책을 결정한 것이 1942년 1월 20일이었고 이로써 그에게 “1월 20일”은 유대인의 고통이 새겨진 상징적 날짜가 된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산속에서의 대화」를 설명하면서도 그는 “1월 20일”을 말한다.

구매가격 : 11,900 원

파울 첼란 전집 4

도서정보 : 파울 첼란 | 2023-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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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 완간!

침묵으로 시간을 통과한 말은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파울 첼란과 허수경과 우리는 언어가 모두 같습니다.
박준(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유럽 시인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 그의 시와 산문, 연설문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3』,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시절의 초기작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4』, 파리 유고에서 나온 시를 묶은 『파울 첼란 전집 5』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대표 시집을 네 권씩 묶은 1, 2권으로 첫선을 보였던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이 완간에 이르렀다. 대표작은 물론 초기 시와 유고시, 산문과 연설문까지 모두 아우른 것으로 이제 독자들은 선집이나 단권으로 접해왔던 첼란과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은 2000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총 일곱 권으로 출간된 『파울 첼란 전집Gesammelte Werke in sieben B?nden』을 저본으로 삼아 (첼란이 랭보, 발레리, 오시프 만델스탐, 셰익스피어, 페소아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묶은 두 권을 제외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집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이기도 하다. 이십대 후반 독일로 떠나 2018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실향’ 상태로 지내며 모국어로 쉼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던 시인이,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잃은 채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의 세계를 우리말로 옮겼다. 몇몇 갈피 첼란의 시와 함께한 시간이 배어 있는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서 허수경 시인은 ‘시의 수많은 이미지가 첼란의 유대인의 존재에서 나오지만 첼란의 언어는 다만 첼란이라는 시인의 절대적인 언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나온” 첼란의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놓는다.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
홀로코스트를 심장에 새긴 첼란의 시

파울 첼란은 1920년 부코비나 체르노비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부코비나는 18세기 후반까지 오스만제국, 그후로는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2차세계대전중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었다. 첼란이 태어날 당시에는 루마니아 영토였으나 유대정신을 계승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인 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웠고, 독일문학에 심취했으며 표준독일어 교육을 중시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안에서는 독일어를 썼다.

십대 시절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대학자격시험을 치른 후 의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 투르로 떠났고 일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40년 소련이, 일 년 후 루마니아가 재점령하면서 파시스트 정부와 나치 독일에 의해 게토가 된 체르노비츠에서 첼란은 시를 쓰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했다. 그리고 곧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수용소 추방이 시작되었다. 수용소로 끌려간 첼란의 아버지는 병사하고 어머니는 총살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첼란은 탈출했다가 다시 루마니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간 뒤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함께 부모의 죽음은 이후의 삶과 시 세계에 영구히 각인되었다.

1944년 2월에야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첼란은 체르노비츠를 떠나 부쿠레슈티에서 러시아 문학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루마니아 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실었다. 1948년 빈에서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왔지만 회수하고, 1952년 공식적인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을 시작으로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격자』(1959)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 『숨전환』(1967) 『실낱태양들』(1968)을 펴냈으며, 사후 『빛의 압박』(1970) 『눈의 부분』(1971) 『시간의 농가』(1976) 등이 출간되었다. 1958년과 1960년에는 독일 문학계의 주요 문학상인 브레멘 문학상과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후 반유대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이 만연했던 서독 문학계에서 첼란은 “관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이목을 끌지만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고 그 자신도 그것을 원치 않는” “외래종Exot”의 존재였다. 급기야 비평가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시’ ‘이해할 수 없는’ ‘은유로만 가득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렸고, 이 ‘난해성’이라는 그릇된 평가에 대해 첼란은 단호히 저항했다.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아니, 그들은 그런 말을 원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치 수용소에 대해 출판된 최초의 시들 중 하나이자 20세기 유럽 시의 표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죽음의 푸가」조차 처음에는 혹평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독일어로 시를 쓰는 유대인 시인으로 첼란이 독일 문단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골 사건Die Goll Aff?re’으로 칭해지는 표절 시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시인 이반 골의 시를 번역한 첼란이 그의 시를 표절했다는 이 의혹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지만,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도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린 그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첼란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럼에도 언어였다. 비인간적인 역사를 살아내며 ‘리얼리스트’로 “현실에 상처 입고도 현실을 찾으면서”(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그것을 말 하나하나에 새겼다. ‘미화하지 않고 시적이 되려 하지 않는’ 언어로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경악을 말했고, 시가 침묵으로 향해 가는 전후의 경향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미-더이상은-아님’에서 ‘그래도-아직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에게 드리웠던 난해성, 비의秘義의 그늘을 걷어낸 자리에, 언제나 ‘너’에게로 향하는 시, 대화와 만남에서 시의 본질을 찾았던 시인이 있다.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은 부코비나를 떠나 부쿠레슈티와 빈에 머물다가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시를 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그곳에 묻혔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시로 기억하고 당대의 몰이해에 시로 저항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했던 파울 첼란, 오십 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한 번도 독일에 ‘살았던’ 적 없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은 이제 아우슈비츠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어권 시인으로 횔덜린, 릴케와 나란히 기억되며, 그의 시는 사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파리 이전의 초기작

『파울 첼란 전집 4』는 여러 시집에 흩어져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초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파리 이전 첼란의 삶에서 중요했던 세 곳인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으로 나누어 1938년부터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온 1948년 중반까지 십여 년 동안 쓴 시와 시산문을 아우르고 있다. 루마니아어로 쓴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초기작을 장소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묶었으므로 전집 1, 3권과 중복해 실린 시들도 존재한다.

첼란의 고향이자 스스로 “책들과 사람들이 살았던”(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곳이라 말하는 부코비나는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이 공존하는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지역으로, 이곳 인구의 거의 절반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고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를 바탕으로 유대교와 유대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첼란에게 부코비나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토양이었다. 번역가로 생계를 유지했던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명 ‘안첼’이 아닌 ‘첼란’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곳이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를 거쳐 옮겨가게 된 빈은 독일이 아니면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동경하던 그에게는 “충분히 멀지만, 다다를 수 있는 곳”(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이었다.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처음 만난 곳으로 첼란의 삶에서는 중요한 곳이며, 빈에서 쓴 많지 않은 시는 「코로나」를 비롯해 대부분 바흐만을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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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 전집 5

도서정보 : 파울 첼란 | 2023-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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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 완간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이라 그때 언니가 말했었지.
‘눈물자국의 가장자리에서 배우렴/사는 것을.’
그리하여 오늘부터 나는 첼란의 이 구절을 섬길 테다, 언니야!
김민정(시인)

아우슈비츠 이후 독일어권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인이며, 2차세계대전 이후를 대표하는 유럽 시인이자,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인 파울 첼란. 그의 시와 산문, 연설문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3』,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시절의 초기작을 묶은 『파울 첼란 전집 4』, 파리 유고에서 나온 시를 묶은 『파울 첼란 전집 5』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망 50주기를 맞이해 대표 시집을 네 권씩 묶은 1, 2권으로 첫선을 보였던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이 완간에 이르렀다. 대표작은 물론 초기 시와 유고시, 산문과 연설문까지 모두 아우른 것으로 이제 독자들은 선집이나 단권으로 접해왔던 첼란과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어판 파울 첼란 전집은 2000년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총 일곱 권으로 출간된 『파울 첼란 전집Gesammelte Werke in sieben B?nden』을 저본으로 삼아 (첼란이 랭보, 발레리, 오시프 만델스탐, 셰익스피어, 페소아 등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을 묶은 두 권을 제외한) 다섯 권으로 구성되었다.



이 전집은 허수경 시인의 유고이기도 하다. 이십대 후반 독일로 떠나 2018년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생의 절반 이상을 ‘실향’ 상태로 지내며 모국어로 쉼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던 시인이,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고향을 잃은 채 독일어로 시를 썼던 첼란의 세계를 우리말로 옮겼다. 몇몇 갈피 첼란의 시와 함께한 시간이 배어 있는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서 허수경 시인은 ‘시의 수많은 이미지가 첼란의 유대인의 존재에서 나오지만 첼란의 언어는 다만 첼란이라는 시인의 절대적인 언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말한다.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에서 나온” 첼란의 언어 그 자체에 집중해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옮겨놓는다.



“무시무시 섬뜩 아름다움”

홀로코스트를 심장에 새긴 첼란의 시



파울 첼란은 1920년 부코비나 체르노비츠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부코비나는 18세기 후반까지 오스만제국, 그후로는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세계대전 후 루마니아에, 2차세계대전중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되었다. 첼란이 태어날 당시에는 루마니아 영토였으나 유대정신을 계승하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인 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웠고, 독일문학에 심취했으며 표준독일어 교육을 중시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집안에서는 독일어를 썼다.

십대 시절 남몰래 시를 쓰기 시작하지만 대학자격시험을 치른 후 의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 투르로 떠났고 일 년 후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40년 소련이, 일 년 후 루마니아가 재점령하면서 파시스트 정부와 나치 독일에 의해 게토가 된 체르노비츠에서 첼란은 시를 쓰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번역했다. 그리고 곧 나치에 의해 유대인 학살수용소 추방이 시작되었다. 수용소로 끌려간 첼란의 아버지는 병사하고 어머니는 총살형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고, 첼란은 탈출했다가 다시 루마니아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간 뒤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과 함께 부모의 죽음은 이후의 삶과 시 세계에 영구히 각인되었다.



1944년 2월에야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던 첼란은 체르노비츠를 떠나 부쿠레슈티에서 러시아 문학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루마니아 잡지에 처음으로 시를 실었다. 1948년 빈에서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왔지만 회수하고, 1952년 공식적인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을 시작으로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격자』(1959)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 『숨전환』(1967) 『실낱태양들』(1968)을 펴냈으며, 사후 『빛의 압박』(1970) 『눈의 부분』(1971) 『시간의 농가』(1976) 등이 출간되었다. 1958년과 1960년에는 독일 문학계의 주요 문학상인 브레멘 문학상과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후 반유대주의와 보수주의 경향이 만연했던 서독 문학계에서 첼란은 “관심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이목을 끌지만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고 그 자신도 그것을 원치 않는” “외래종Exot”의 존재였다. 급기야 비평가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시’ ‘이해할 수 없는’ ‘은유로만 가득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손쉽게 꼬리표를 붙여버렸고, 이 ‘난해성’이라는 그릇된 평가에 대해 첼란은 단호히 저항했다. “쓰인 단어 하나하나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아니, 그들은 그런 말을 원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나치 수용소에 대해 출판된 최초의 시들 중 하나이자 20세기 유럽 시의 표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늘날 그의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죽음의 푸가」조차 처음에는 혹평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독일어로 시를 쓰는 유대인 시인으로 첼란이 독일 문단에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골 사건Die Goll Aff?re’으로 칭해지는 표절 시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초현실주의 시인 이반 골의 시를 번역한 첼란이 그의 시를 표절했다는 이 의혹은 근거 없음으로 밝혀졌지만, 나치에게 부모를 잃고 자신도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린 그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힌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첼란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럼에도 언어였다. 비인간적인 역사를 살아내며 ‘리얼리스트’로 “현실에 상처 입고도 현실을 찾으면서”(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그것을 말 하나하나에 새겼다. ‘미화하지 않고 시적이 되려 하지 않는’ 언어로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경악을 말했고, 시가 침묵으로 향해 가는 전후의 경향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미-더이상은-아님’에서 ‘그래도-아직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에게 드리웠던 난해성, 비의秘義의 그늘을 걷어낸 자리에, 언제나 ‘너’에게로 향하는 시, 대화와 만남에서 시의 본질을 찾았던 시인이 있다.



유대인 시인 파울 첼란은 부코비나를 떠나 부쿠레슈티와 빈에 머물다가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시를 썼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 그곳에 묻혔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를 시로 기억하고 당대의 몰이해에 시로 저항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실존을 증명했던 파울 첼란, 오십 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한 번도 독일에 ‘살았던’ 적 없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시를 썼던 파울 첼란은 이제 아우슈비츠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어권 시인으로 횔덜린, 릴케와 나란히 기억되며, 그의 시는 사후에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

파리 이전의 초기작



『파울 첼란 전집 4』는 여러 시집에 흩어져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초기작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파리 이전 첼란의 삶에서 중요했던 세 곳인 부코비나, 부쿠레슈티, 빈으로 나누어 1938년부터 『유골단지에서 나온 모래』가 나온 1948년 중반까지 십여 년 동안 쓴 시와 시산문을 아우르고 있다. 루마니아어로 쓴 작품도 포함되어 있으며, 초기작을 장소에 따라 연대기순으로 묶었으므로 전집 1, 3권과 중복해 실린 시들도 존재한다.

첼란의 고향이자 스스로 “책들과 사람들이 살았던”(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 곳이라 말하는 부코비나는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유대인, 독일인,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이 공존하는 다민족, 다언어, 다문화 지역으로, 이곳 인구의 거의 절반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었고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를 바탕으로 유대교와 유대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었다. 첼란에게 부코비나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 토양이었다. 번역가로 생계를 유지했던 부쿠레슈티는 루마니아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본명 ‘안첼’이 아닌 ‘첼란’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던 곳이었다. 부코비나, 부쿠레슈티를 거쳐 옮겨가게 된 빈은 독일이 아니면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으로 동경하던 그에게는 “충분히 멀지만, 다다를 수 있는 곳”(브레멘 문학상 수상연설문)이었다.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잉게보르크 바흐만을 처음 만난 곳으로 첼란의 삶에서는 중요한 곳이며, 빈에서 쓴 많지 않은 시는 「코로나」를 비롯해 대부분 바흐만을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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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천추

도서정보 : 차상찬 | 2023-0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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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수원(水原)이 팔십리, 거기서 또 다시 팔 구십리 떡점거리(?店[병점]) 오산(烏山)장터를 지나 진위(振威) 읍내서 다시 남으로 내려가면 평택(平澤)이라는 고을이 있으니 예전에는 충청도였지만 지금은 경기도 땅이며 삼남(三南)으로 통하는 큰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앞에는 오산(烏山) 벌넓은 들판을 끌어안고 아래로는 능수버들이 봄마다 늘어지는 천안(天安) 삼거리로 통해 있으니 조그만 고을일 망정 무던히 긴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때는 화평하고 백성들은 성덕을 노래하며 요순 건곤이 무사 태평하던 시절에 가을 추수를 막 끝마친 뒤이라 집집마다 노적더미, 창고마다 볏섬이다.
봄 여름 가을에 애써 일을 하던 시골 농군들은 일 년에 한번 한가한 때를 만났다고 따뜻한 사랑방에서 담배 연기를 퍽퍽 피우며 글을 아는 머슴을 추려 내어서 까므락 까므락 희미한 등잔 밑에서 밤마다 매일밤 특청 재청으로 심청전 춘향전을 소리 높여 읽을 때, 마굿간의 여물 먹는 송아지도 잠이 들고 먼촌의 개짖는 소리도 없이 고요한 밤.
한편 과거를 보아 장원 급제를 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보겠다고 동리 동리마다 양반의 서당에서는 머리 꼬리를 늘여논 도령님 꼬투상투에 관대가리를 뒤집어쓰고 흥겨워하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몸을 흔들며 공자왈 맹자왈하면서 장단 맞추며 목청도 드높게 외우고 있었다.
눈 깊은 겨울철 설날도 불과 며칠 남지 않았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 설은 몇밤이나 자면 온다지?』
하며 애타는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린다. 펄펄 날리는 눈이 한자 또 두자 넓은 대지를 은세계로 만들고 마을마다 봉오리마다 눈에 쌓여서 아무리 해도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것을 잘 나타내었지만서도 별안간 매서운 북쪽 바람이 쌀쌀하게도 휘몰아쳐 불어와서 천지를 분간도 못하게 눈보라 치던 그 순간에는 웬일인지 지금껏 평화스럽던 곳에 무슨 난리라도 일어날 듯이 고요히 잠들고 있는 평지에 무슨 풍파가 기어코 생길 것 같이 사람 사람의 머리에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다.
인조대왕 십 사년(仁祖大王 十四年) 병자 십이월 구일(丙子 十二月 九日[구일])에 북쪽으로부터 십삼만 대군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우리나라로 침입한 적병이 있으니 그는 만주에서 새로 몸을 일으킨 황태극(黃太極)이란 괴걸(怪傑)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 국호를 대청(大淸)이라 하고 용골대 마보대(馬保大) 두 사신을 보내어 우리나라에 국서(國書)를 가지고 왔으나 말이 너무 오만무례한 까닭에 조정에서 그를 받지 아니하고 거절하여 버렸더니 대청나라 임금은 거기에 크게 분노하여 그와 같이 대병을 친히 거느리고 불의에 침노하여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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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천대효

도서정보 : 차상찬 | 2023-0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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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주회고」, 「남한산성」, 「관동잡영」의 저자 차상찬이 저술한, 심청전의 원본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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