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도서정보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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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적 소수자

2017년 8월, 한 베트남 여성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2012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결혼생활 6개월 만에 시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 (성폭력) 여성은 깊은 고민 끝에 시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지난한 재판 과정이 이어졌고 시아버지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 여성은 항소심 과정에서 또 다른 재판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모국에서 13살에 아동 약탈혼(빳버)을 당한 경험이 있는데 남편이 이를 알고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순식간에 성폭력 피해자에서 사기결혼의 가해자가 된 그는 끔찍한 과거를 다시 떠올려야 하는 것은 물론, 대중에게 사생활을 공개당해야 했다. 결국 그는 패소 판정을 받아 강제로 한국을 떠났다. 이 여성의 재판 과정은 한국 사회의 일천한 인권 지표를 보여주었다.

이 베트남 여성의 사례를 비롯해 총 일곱 명 여성들의 이야기에는 각각 통제, 경제적 착취, 물리적 폭력, 양육권, 자립, 체류권, 성폭력을 키워드로 이주여성이 한국에 와서 겪는 피해의 경험이 담겨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여성은 남편과 시어머니에 의해 자유를 박탈당하고 바깥 세계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는 한국어를 배울 수 없었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차단당했으며, “외국인은 통장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남편의 말을 그대로 믿어 돈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통제) 또 다른 이주여성은 돈을 벌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부양하고도 일하고 받은 돈을 시누이에게 뺏기는 등 경제적으로 착취당했다. (경제적 착취) 물리적 폭력을 당해도 친정 가족이 옆에 없는 이주여성들은 갈 곳이 없다. 시어머니는 남편 편만 들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도 화해를 권한다. (물리적 폭력) 자녀가 있는 이주여성이 이혼을 하게 될 경우에는 양육권 문제도 풀어나가기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적절한 법적 조력도 받기 어려운 이주여성은 많은 경우 양육권을 빼앗긴다. (양육권)

‘생존자’가 되기 위한 노력, 서로가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서 스스로를 챙기고 새 삶을 시작하려는 이주여성의 노력은 감동적이다. 한 이주여성은 결혼하고 입국하자마자 가족으로부터 여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늘 남편에게 체류 연장을 빌미로 협박당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체류 연장이나 귀화 신청은 남편이 신원을 보증해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성은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아 ‘귀화 불허 처분 취소 소송’을 청구한 것은 물론 이혼 후 ‘면접교섭권 소송’도 진행했다. 그는 “더 이상 무기력하게 내쫓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면서 아이와 같이 살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체류권) 중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온 조선족 이주여성은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딸이 존경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한국어 교육은 물론 여러 가지 교육과정을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그는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면서 “중국에서 왔다고 기대치가 정해진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며 자립 의지를 다진다. (자립)

물론 이들의 자립이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부설 쉼터는 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민단체임과 동시에 친정 같은 곳이다. 쉼터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활동가와 전문가로부터 정서적·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직업 교육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보듬어주는 곳이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자녀도 같이 돌보며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친정 가족이 되어준다. 이주여성쉼터는 명절이 되면 더욱더 붐빈다. 명절에 찾아갈 친정이 없는 쉼터 입소 이주여성들은 물론, 자립을 한 이주여성들까지 자녀와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낼 때 한국 사회는 변한다

그리고 이들 뒤에는 활동가들이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선주민 활동가는 물론 당사자 활동가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당사자 활동가의 역할을 중요시하며 양성·활용하고 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나라에서 온 활동가와 쉼터 입소 이주여성 사이에는 공감대가 빨리 형성된다. 피해 여성들이 겪는 이주 생활의 어려움을 당사자 활동가들 역시 겪었기 때문에 선주민 입장에서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도 도와줄 수 있다. 사실 당사자 활동가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일한다.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활동하려면 한국어에 능숙해야 한다. ‘이혼을 부추기는 곳’에서 일한다는 비난과 이주여성임을 알아차리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의 반말과 욕지거리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주여성이 활동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주민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이주여성 인권활동에 더 많은 이주여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이주여성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동질감이 활동의 이점이 될 뿐만 아니라 이주여성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그 효과가 강력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사자 활동가들은 이제 이주여성만 돕는 것을 넘어서 활동하고 있다. 인종차별 철폐의 날,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촛불문화제 등에서 이주여성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의 활동은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데 힘을 보태고 소수자의 인권 향상을 위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민자’와 함께 살아갈 우리들의 자세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시행되고 ‘다문화’라는 말이 수입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진정한 다문화사회를 위한 갈 길은 멀다. 노력해야 할 이들은 이주여성의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이다. 이주여성들을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이들을 사회로 통합하려하기보다 ‘국경 관리’와 ‘통제’의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시각은 이주여성이 소수자이자 약자로 살 수밖에 없는 근본적 원인이다. 이런 ‘배제’와 ‘차별’을 바탕으로 한 각종 법·제도들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한국 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 한국에 정주할 권리를 바로 주지 않는다. 이주여성은 ‘결혼이민’ 비자를 받아 2~3년 주기로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비자를 연장할 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심사하는 것은 한국인 배우자와의 결혼 관계가 어떠한지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 배우자가 이주여성을 상대로 체류 자격 심판관처럼 굴며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귀화 또한 쉽지 않다. 한국인 배우자와 법률상 혼인신고를 하고 2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3,000만 원 이상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 이 요건이 충족되면 또다시 면접 심사를 실시하고 품행 단정 여부도 판단한다.

무엇보다 이주여성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편견과 선입관이 이주여성을 힘들게 한다. ‘피부색이 까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열등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도처에 존재한다. 동정 어린 시선과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라는 암묵적 느낌도 이주여성에게 상처가 된다. 동네 이웃들이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이주여성의 경우 이웃들이 소개해주는 밭일을 겨우 일당 3만 원을 받고 했다. 딱하다고 일거리를 주면서 싼값에 이주여성을 부리려 했던 그들도 사실은 방관자이자 착취자였던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민자’, 이주여성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주여성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적 소수자로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을 통해 가시화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며 함께 사회를 바꿔나갔으면 한다.

구매가격 : 9,100 원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

도서정보 : 코샤 쥬베르트, 레일라 드레거 편저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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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 핸드메이드, 반농반X, 제로 웨이스트
위태로운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증명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재활용 쓰레기 수거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플라스틱과 비닐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우리 일상이 사실은 위태로운 기초 위에 있음이 드러난 사례다. 살충제 계란과 라돈 침대, 가습기 살균제와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 이제 생태/환경 문제는 대상과 시기를 가리지 않고 느닷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 이 세계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대로 괜찮을까? 여기 몇 십 년 전부터 한발 앞서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이 있다.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생태마을(Ecovillage)은 사회적 환경과 자연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계획/전통공동체를 가리킨다. 대체로 생태마을 사람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노력하며 텃밭 농사를 짓고 자연과 연결되는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기성품에 의지하기보다 손발의 힘을 믿으며 쓰레기를 만들기보다 자원을 순환하려 노력한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이는 생태마을에서의 삶은 일률적이거나 어떤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활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기준은 다양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다채로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살면서 부딪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때론 길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만족감이 따라온다.

우리 시대의 사랑, 평화, 교육
생태마을을 살아가는 생생한 목소리

생태마을에는 도시형 생태마을을 지향하는 일본의 애즈원 네트워크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침체된 농촌을 살리려는 중국 샨성구의 활동도 있다. 또한 정부의 지원 속에 프로젝트 사업을 활발히 벌이는 미국 이타카 생태마을의 사례가 있는가 하면, 정부와 게릴라 간의 폭력 사이에서 평화를 선언한 콜롬비아의 산 호세 공동체가 존재한다. 생태마을에서의 삶은 대륙과 국가의 사정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결국 마을/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목소리를 내느냐는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사례들은 생태마을에서의 사랑과 평화와 교육의 경험을 짧지만 본질적으로 드러낸다.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죠. 그 두려움으로 상대에게 집착하다 보면 두 사람의 사랑도 손가락 사이로 사라지는 모래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다수의 커플은 이별합니다. 그들은 원하던 바와 정반대로 말이죠!
타메라에서 말하는 ‘프리 러브Free love’란 사랑에 책임을 지는 거예요. 상처를 받아 고통스러운 때조차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마음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방법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_포루투갈 타메라 생태마을의 베라 클라인하메스(250쪽)

2000년 두 번째 인티파다가 일어났을 때, 저는 간호사로서 부상당한 이스라엘 군인들과 자살폭탄공격을 감행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두 치료했어요.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비판받아야 할 것은 시스템 그 자체였습니다.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남편은 저를 버리고 떠났고, 저는 전쟁 중인 예루살렘 한가운데 임신한 몸으로 혼자 남겨졌어요. 그러면서 저는 제 활동이 정치적인 평화만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간의 평화에 대한 것이어야 함을 이해했어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배 속의 아이에게 저는 "또 다른 삶은 분명히 가능할 거야, 내가 그 삶을 찾아볼게"라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제가 가진 비전은 풍족한 지구 행성에 관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일하면서도, 저의 비전과 내면의 영혼은 그 너머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_팔레스타인 하코트리나 농장의 아이다 쉬블리(178쪽)

유아기에 사랑과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의 애정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이기 쉽습니다. 이 부분에서 위탁 부모들의 공동체인 키테쉬가 가진 강점이 드러납니다. 아이가 우리 가족(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포기’란 없습니다. 부담을 함께 나누고 기쁨도 마찬가지죠.
저는 교사가 되려고 교육을 받다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주지 마라. 아이들은 당신의 마음을 가져가 망가뜨린다.” 하지만 여기 키테쉬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힘을 모아 아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쏟아붓습니다.
_러시아 키테쉬 생태마을의 앤드류 에크먼(207쪽)

오래된 미래 속 라다크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라는 삶을 향해 도전하는 세계의 움직임

이 책은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Global Ecovillage Network, 이하 젠GEN)의 20주년에 맞춰 전 세계 생태마을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생태마을 관련 도서들이 대체로 이론적으로 접근하거나 관찰자 혹은 연구자의 시선을 가졌다면, 이 책은 생태마을을 직접 설립했거나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다양한 실례를 통해 독자들은 생태마을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과 단단한 삶의 방식, 반짝이는 아이디어까지 두루 접할 수 있다.
『오래된 미래』 속 '작은 티벳' 라다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실제로 이 책에는 라다크에서 생태마을 운동을 진행 중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글이 실려 있다. 헬레나는 생태적 건축과 기술을 도입한 ‘라다크 생태 개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서구식 근대화, 이른바 세계화를 넘어서려는 라다크 사람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라다크가 ‘오래된 미래’라는 박제된 한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생태마을을 향한 전 세계 사람들의 노력은 어떨 때는 말 그대로 꿈을 따라가는 신나는 모험이며, 재밌는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다. 또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는 실존적인 결정이며,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각 대륙, 국가, 지역에서 저마다의 조건에 따라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생태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혹은 다른 마을이나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지속가능한 삶, 바라는 삶을 찾아 한걸음 내딛는다.
분명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마을이라는 작은 단위의 노력은 부족하게 보일 것이다. 당면한 환경/생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자각과 참여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생태마을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실험장이자 교육장이 되어 지금과는 다른 방향의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생태마을들에게는 지역적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전 세계의 친구들이 있어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돕는다.

특별한 한국어판을 가능하게 만든
청년 활동가들의 순수한 열정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등록된 자선단체인 젠GEN은 전 세계에 지역 기구를 두고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참여한 라다크 생태 개발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인도의 오로빌과 미국의 이타카,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 영국의 핀드혼 등 세계의 많은 생태마을이 젠GEN에 가입되어 있다. 젠GEN은 여러 생태마을의 경험을 모으고 나누는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 단체이다. 여기에 젠GEN 네트워크를 뿌리로 한 교육 단체인 가이아 에듀케이션은 생태마을 디자인 교육(EDE) 개발을 시작으로 10년 이상 전 세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고, 넥스트젠은 젠GEN의 청년 모임으로서 역시 전 세계에 지역 모임이 있다. 한국 청년들은‘넥스트젠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모여 전 세계 생태마을을 탐방하고 공부하며, 네트워크/교육 활동을 통해 생태적인 삶을 꿈꾼다.
한국어판에는 유럽 사례를 먼저 소개한 원서와 다르게 아시아 사례를 먼저 소개하며, 특별히 원서에 없는 한국,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 생태마을 사례가 추가되어 있다. 넥스트젠 코리아 에듀케이션 청년들은 더 좋은 책을 만들고자 여러 공동체를 직접 취재했고, 국내외 생태마을 활동가들에게 원고와 번역, 감수를 부탁했다. 이 책을 만드는 시간 자체가 청년 활동가들에게는 전 세계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과 우정, 지혜를 나누는 연대의 시간이 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어판은 원서의 ‘증보판’에 가까워졌다. 이 같은 열정에 감동한 젠GEN 사무국은 이들의 제안을 수락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역의 현실을 세계적 활동과 연결시키려는 청년 활동가들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구매가격 : 15,400 원

유엔에서 바라본 개발협력

도서정보 : 김태형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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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20여 년간의 개발협력 분야에서의 경험을 기초로 개발협력에 관심 있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위해 경제개발의 진정한 의미를 재분석하고, 성과 중심의 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이 책 <유엔에서 바라본 개발협력>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경제개발의 진정한 의미를 재정리하고, 개발협력의 성공적 모델인 마샬 플랜을 포함해서 15세기 영국의 산업발전부터 유럽과 미국의 발전을 거쳐, 20세기 일본 및 한국에 이르기까지 이들 국가들이 어떠한 개발전략을 사용하여 개발에 성공했는지를 역사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러한 성공전략들이 현재의 개발도상국 개발전략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육, 인프라, 빈곤퇴치, 새천년개발목표(MDGs),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기후변화 및 복지 등의 핵심 국제개발 의제의 의미와 한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경제개발 및 개발협력 전반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또한 우리나라가 국제적 개발의제들을 더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우리 고유의 개발협력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개발협력 인력의 능력 향상이 성공적인 개발협력으로 가는 첩경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유엔에 대한 기본적 설명과 유엔과 같은 저자가 유엔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좋은 점과 실망스러운 점을 솔직하게 기술했고, 아울러 유엔 홈페이지에는 나와 있지 않은 유엔의 직원선발 절차, 이력서 작성 및 인터뷰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설명한다.

구매가격 : 9,660 원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

도서정보 : 마리 클레르 프레데리크 | 2018-10-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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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발효는 어쩌면 인류 문명과 그 기원을 함께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고고학적‧신화적‧역사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발효는 불을 이용한 가열 조리보다 그 출발이 빠르다. 인류는 소와 말 같은 가축을 길들이기 훨씬 이전부터 발효를 일으키는 미생물들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과학적 규명은 최근의 일이다). 좀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인류는 농사와 가축 길들이기를 통해 발효 음식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역으로 발효 음식을 먹기 위해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발효의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룬다. 발효 음식은 어떤 곳에서는 ‘별미’로 통하지만, 또 어떤 곳에서는 ‘혐오 식품’으로 치부될 정도로 토착성, 지역성, 호불호가 분명한 아주 오래된 문화적 현상이다. 동시에 발효 음식은 인류가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이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온 수많은 미생물들이 개입하는 적극적인 생명 활동이기도 하다. 전 세계 곳곳에 산재하는 수많은 맥주와 포도주, 치즈와 버터, 젓갈과 간장, 빵과 죽, 그리고 우리의 김치까지 모든 발효 식품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에 그치지 않는다. 발효는 음식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즉, 어떤 의미를 가진 채 우리의 인간관계, 인간사의 다양한 통과의례, 개인과 집단의 기억, 사회집단의 정체성, 나아가 종교적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발효 식품에 결부되는 상징적‧문화적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발효 식품은 살아가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때때로 목숨까지 구한다. 맛도 좋고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둘째, 발효 식품에는 식도락적 가치와 영양학적 가치를 초월하는 상징적 측면이 있다. 셋째, 발효 식품은 완전히 토착적인 것으로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본래의 특색을 잃을 위험이 있다. 넷째, 발효 식품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역사와 이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이 음식은 공동체를 대표하고 문화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은 발효 식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발효 음식의 긍정성은 최근 100년 동안 현대 식품 산업의 놀라운 발전(동시에 부정적 발전)에 의해 퇴색되거나 심지어 부정당했다.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현대의 ‘위생제일주의’가 발효를 부패와 동일시하면서 발효 음식을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생산된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광우병 파동처럼 최근의 극심한 식품 관련 사고를 겪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고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발효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발효의 부활은 생태학, 경제, 건강을 함께 생각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발효는 인체에 안전하면서 경제적인 식품 보존 방식을 제공한다. 진공 밀폐는 특수한 장비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부추긴다. 가령, 밀폐 용기를 살균하려면 가열 과정이 필요하고 가스나 전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통조림을 만들려면 캔을 세팅하는 장비가 필요하다. 냉동 보존은 북극권에 살지 않는 한 냉동고와 전기 공급이라는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다. 반면에 채소, 고기, 생선을 젖산발효시킬 때에는 음식물을 담을 용기, 약간의 소금, 누름돌 정도만 있으면 된다. 석유, 가스, 전기 같은 에너지는 전혀 필요치 않다. 발효는 먹거리에 대한 오늘날의 관심과 맞아떨어지는 대단히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인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토착 발효 식품들을 상세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함으로써 발효 음식에 대한 우리의 앎을 증진시킨다(2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참조). 향료와 함께 말린 오리 가슴살(프랑스), 쇠고기 육포 ‘시네 헹’(라오스), 양배추와 함께 먹는 고기 소금 절임 ‘콘드비프’(아일랜드), 땅속에 묻은 연어 ‘그라블락스’(스칸디나비아), 고대 그리스의 타리코스를 현대화한 ‘안초비 소금 절임’(지중해 일대), 가장 만들기 쉬운 꿀물술의 일종인 ‘테지’(에티오피아), 호밀빵으로 만드는 전통 러시아 맥주 ‘크바스’,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귀리죽인 ‘포리지’(스코틀랜드), 양배추를 발효시킨 고전적인 알자스 요리인 ‘슈크루트’(프랑스와 중유럽)가 바로 그런 발효 음식들이다. 물론 한국의 김치도 최고의 발효 식품이다!
우리의 오래된 미래인 발효 음식의 세계로 흥미진진한 여행을 떠나보자!

구매가격 : 14,000 원

공기의 연구

도서정보 : 야마모토 시치헤이 | 2018-10-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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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일본인론’의 교과서
- 1977년 출간되어 지금도 사랑받는 일본인 및 일본 사회문화론의 고전

국내 저자가 쓴 최고의 일본인론이라 불리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집약’과 ‘축소’라는 키워드로 설명한 책이다. 일본론을 연구한 세계적인 고전이라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양면성을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규정한 책이다. 전자는 역사의 질곡을 함께해 온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있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국무부의 의뢰로 적국인 일본인의 국민성을 일본 답사도 없이 논문과 문헌만으로 조사했기에 두 책 모두 명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론의 대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에 집필한 이 책 『공기의 연구』는 일본 지식인 스스로가 들여다본 일본인론이자 일본 사회문화론으로서,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론의 교과서로 읽히고 있는 명저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무형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지배당하는 일본 특유의 이유를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본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KY(구키 요메나이, 즉 공기를 못 읽는다)=눈치가 없다’라고 할 때의 ‘공기’를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일본 사회의 이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
- 물을 끼얹어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강한 ‘공기’의 힘이 일본을 구속한다

저자는 일본인이 종종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은 있지만, 당시 회의 공기로는……”, “당시 회의장의 공기로 말하자면……”, “그 무렵 사회 전반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판하면……”, “그 자리의 공기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지 마라”, “그 자리의 공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등등 온갖 경우에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공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공기의 구속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함 야마토의 출격의 결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이 모두 무모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공기’의 지배의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되고 있는데,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하고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일본론인 ‘공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하고도 신속한 반응과 적응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 때문이다. 즉 일본인의 의사 결정은 뭔지 모를 ‘공기’에 지배당하고 있는데,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공기’는 일본 사회에서의 대화와 논의에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느끼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부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다. 때때로 그런 ‘공기’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나오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른바 ‘물을 끼얹는다’고 표현한 그와 같은 발언은 알맞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그 자리의 ‘공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모두 그러한 규탄이 두려워 그 자리의 공기에 속박되어 버리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한 일본인은 ‘상황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하여 역으로 상황에 지배됨으로써 움직이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상황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논리적?체계적으로 논증하더라도 그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응할 줄 안다는 점에서는 천재적’이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이나 오일 쇼크로 인한 세제 소동 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인은 ‘공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 논리적 설득으로도 심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말을 통한 과학적 논증이 무력하게 됨도 지적했다.

독창적인 일본인론으로 본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는 사회’
- 3편의 소논문으로 구성, 192개 역자 주석의 풍부한 해설이 이해를 돕는다

모두를 휘두르는 이 ‘아무도 보지 못하는 힘’인 ‘공기’는 시시한 일상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목에서, 혹은 국가의 진로에 관한 여론의 형성 과정을 지배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 논의와 적확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도 이러한 공기가 일본인의 이성을 망가뜨리고 합리적 정책 결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기가 지배하는 사고를 피하지 못하고 그것에 속박된 채 의사결정을 하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은 전쟁에 모두가 찬성하고 돌입했던 우를 다시 범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앞서 ‘공기’를 가시화하여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성질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밝히는 ‘찬물을 끼얹는’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공기’의 연구]에서는 임재감적 파악, 공기의 조성 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물=통상성’의 연구]에서는 공기의 지배에 저항하는 ‘물을 끼얹는다’라는 방법, 즉 통상성과, 공기와 물의 관계를 보완하는 일본적 상황 논리와 상황 윤리에 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에서는 ‘현인신과 진화론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일본적 근본주의로 설명한다.
더불어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옮긴이의 주석이 192개나 달려 있다. 저자가 자신만의 개념을 만들어 보통의 어휘에 그 독특한 의미를 덮어씌우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인색한 대목이 등장하고,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물·사건 등이 등장하는데, 옮긴이가 일일이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을 받아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충실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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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 일대일 어른친구

도서정보 : 러빙핸즈 멘토 17명 | 2018-09-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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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친구’가 되어주는 러빙핸즈멘토링!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성과가 잘 나지 않는’ ‘섣불리 참여하기도 힘든’ 멘토링의 어려움을 극복한 17명의 멘토들의 감동이 살아 있는 멘토링 사례집.

러빙핸즈는 2007년 2월 14일 설립된 NGO로서, 러빙핸즈 멘토라는 이름의 자체 멘토 양성교육을 받은 성인 멘토를 한부모 가정과 조손 가정의 아동 청소년 한 명과 1:1로 매칭하여, 아동 청소년이 성인이 되는 나이까지 4~10년 동안 장기적으로 정서 지원 멘토링을 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멘토링 프로그램의 수료자가 무려 741명이나 되고, 226쌍이나 매칭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창립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동안 멘토들이 어떤 경로를 밟아 멘토의 길을 밟아 가고 있는지, 그 어려움과 보람은 어떠한지 17멘토의 입을 통해 생생한 체험담을 실어 놓은 책이다.
이 책에는 10명의 현재 활동 멘토의 이야기와 7명의 졸업 멘토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각자가 본인의 상황과 매칭 되었던 멘티들의 독특한 형편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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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서정보 : 스베냐 플라스펠러 | 2018-09-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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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약한 성을 자처하던 시대는 끝났다
‘힘 있는 여성’은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을 벗어던지고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다

독일의 주목받는 여성 철학자 스베냐 플라스펠러가
더욱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새로운 여성성을 제안한다

독일 아마존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구매가격 : 7,000 원

헌법의 현장에서

도서정보 : 김선수 | 2018-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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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헌법의 현장에서』에는 그간 김선수 변호사가 맡은 12개의 헌법재판(7건의 공개변론 사건과 5건의 서면심리 사건) 변론기가 정리되어 있다. 이 사건들 중에는 청구인을 대리해 법률이나 공권력 행사의 위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고, 피청구인을 대리해 합헌을 주장한 사건도 있다.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한 것과 ‘공소 제기 후 수사기록 복사 거부 처분 취소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결정을 한 것이 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헌소원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합헌을 주장했는데, 청구인인 현대자동차가 취하해서 최종적인 결정을 받지는 못했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중앙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선거중립 위반 경고조치 취소 사건’, ‘언론관계법 날치기 부작위 권한쟁의 사건’ 등 나머지 사건에서는 모두 김선수 변호사가 원하는 결정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건에서 김선수 변호사의 주장에 동의하는 소수 의견이 나왔고, 후에 법 개정으로 해결된 것도 있다. ‘전교조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을 받았지만 후에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해결되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위헌소원 사건에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지만 후에 법률 개정과정에서 직권중재제도가 폐지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헌법재판소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파악할 수 있고, 김선수 변호사가 그곳에서 다수 의견에 맞서 어떻게 고군분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국가공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에 묻혀 뜻대로 성과를 이루지 못한 사건들이 더 많았다. 그 사건들을 통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등을 논의하고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 그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비판하는 부분은 날카롭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0년 동안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1987년 헌법에 의해 탄생된 헌법재판소가 과연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 강하게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한계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사립학교법 제55조 위헌심판 사건 결정의 다수 의견을 그대로 원용했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언제라도 퇴행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인 모양이다.”(전교조 사립학교법 위헌심판 사건)
“두 번에 걸친 권한쟁의심판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의 한계만 확인했다. 박재승 변호사님은 헌법재판관들의 천박한 인식 태도와 소극적 자세에 대해 한탄했다.”(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 권한쟁의심판 사건)
“이 나라에서는 언제나 공무원이나 교사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려나? 김이수·이정미 두 재판관의 의견이 다수 의견이 되는 날이 그날이 될 텐데 그때는 언제나 오려나?”(전교조 시국선언 관련 사건)
“헌법재판소가 현대자동차의 재정 상황까지 염려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판결 선고를 지연함으로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했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지엠 회장이 한국의 고용경직성 내지 통상임금에 관해 언급한 것은 한국의 노동법제와 사법제도를 무시하는 천박한 자본가의 입장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말 한마디에 대통령과 장관 등 한 나라가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규범적 판단을 해야 하는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조차 이런 말에 반응하는 것이 너무도 서글펐다.”(파견법 위헌소원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
“노동사건에서 역사의 진보는 없는가?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은 1996년 결정의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을 거의 답습했다. …… 법이 개정되는 그날까지 위헌 주장은 계속될 것이다.”(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제도 조항 및 필수유지업무제도 조항의 위헌소원 사건)
“헌법재판소가 우리 사회 최고의 규범적 판단을 하는 사법적 기관이라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그 구성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노동절 제외한 공휴일 규정 위헌확인 소원 사건)

위와 같은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항거로 1987년 출범했으므로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이 쟁취한 민주화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모든 권한의 원천은 국민이 되어야 하며,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소수파의 인권과 활동을 옹호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확장하는 것을 사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취지와 달리 헌법재판소는 한국 사회의 다수파를 대변하고 있고, 더군다나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김선수 변호사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세기적 참사”,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

이를테면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이 정당해산제도를 채택하고, 헌법재판소 관장사항의 하나로 정당해산심판이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이 제도가 실제로 활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당해산심판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형식적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소수 정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세력이 되기 어려운데도 굳이 강제적으로 소수 정당을 해산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구술변론했다.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파괴는 정권을 장악한 다수파의 전횡에 의해 자행되었지, 소수 반대파에 의해 행해진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소수 반대파에 대한 다수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달라졌습니다. …… 이 사건 심판의 결과는 우리나라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소수 반대파를 포용하고 관용함으로써 성숙된 선진 민주주의 사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수 반대파를 배제함으로써 암흑과 후진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 결정권은 이제 아홉 분의 헌법재판관님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입니다. 국가권력이 소수 정당을 강제로 해산하는 그런 야만적인 수준의 국가가 된다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소위 국격國格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 둘째,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입니다. 이 사건에서 정당해산 결정이 내려질 경우 어떠한 비이성적인 광풍이 몰아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 셋째, 우리 국민의 자존自尊을 위해서입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이 사건 심판청구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적 역량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제기된 것입니다. …… 넷째, 청구인 즉,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당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형사적·행정적 대응수단을 통해 국가의 안전과 사회를 방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다섯째,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입니다. 피청구인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없고, 가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연대하고 같이 투쟁해온 정당입니다. …… 여섯째,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를 위해서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소수 반대파 정당을 해산하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존립 원천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결정을 “세기적 참사”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이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 정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선수 변호사는 최종변론기일에 다음과 같이 변론하며 비판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북한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금지어禁止語가 된 좋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만약 해산결정이 내려진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는 ‘자주, 민주, 통일’ 그리고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폐기될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곧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 되고, 이를 위한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반되어 정당조차도 해산시킬 정당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구성원 어느 누구도 떳떳하게 그러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2014년 11월 최종변론이 있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둘러 해산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에 당선된 그날(12월 19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심판청구 시점부터 계산하면 13개월 정도만”에 모든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결정문에는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잘못 적혀 있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서둘러 해산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에 “비서실장,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는 구절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지시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지 않을까?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의 구체적인 경위, 해산심판 진행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청와대 비서실, 비서실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헌법재판소의 위상은 다시 한 번 점검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했는가

김선수 변호사는 에필로그에서 ‘헌법재판소 30년 평가’와 ‘개헌 시 헌법제판제도 개성 방안’을 밝히고 있다. 우선 김선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30년 동안 표현의 자유 신장, 여성의 지위 향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신장 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쟁점에서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보다는 국가안보를 더 강조했고, 노동권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또 사회권 보장에 소극적이었고, 조세법률주의와 관련해서 조세 정의보다는 재산권 보호에 더 치중했다고 지적한다. 관습헌법 법리를 동원하여 행정수도 이전 법률을 위헌으로 결정한 것은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선수 변호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 의견’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여러 요인 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주요 의견이 되지 못한 소수 의견들이 많았다. 특히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장에 충실한 소수 의견은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지켜준 희망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제1기 헌법재판관이었던 변정수 재판관과 2012년부터 2018년 8월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 의견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변정수, 김이수 두 재판관께 크게 빚졌다고 할 수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기(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16건 중 39건(33.6%)18)이 13:0으로 같은 견해를 취함으로써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으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것에 비추어 보면 헌법재판소의 소수 의견은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김선수 변호사는 개헌 이루어지면 헌법재판제도가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개선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심판사항 확대, 현행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헌법재판관의 자격 요건 중 ‘법관 자격’ 삭제, 헌법재판관 모두를 국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 헌법재판소장 임명 제도 개선, 헌법재판관의 임기와 연임 개선 등이 그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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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계급과 사회

도서정보 : 이광수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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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中樞)계급과 사회》1921년 발표한 단편 기고로 ‘노아(魯啞)’라는 저자의 필명으로 적었다.
대관절 중심인물이나 중추계급에 필요가 왜 있는가?
사회의 전체 인원을 대표하거나, 또는 통솔하고 지도해 나갈 사람은 한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경제적 생활, 종교적 생활, 예술적 생활, 교육과 과학 등 인류 생활의 각 부문에 모두 이를 대표하고 지도 통솔하는 중추계급이 필요하다. 또 이런 각 부문의 생활을 총괄한 한 민족의 생활 전체에도 그 중심이 될 계급이 있어야 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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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과 그의 시대

도서정보 : 김덕련 | 2018-08-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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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법 기술자, 민주주의 파괴자 김기춘

그렇다면 김기춘은 ‘한국의 아이히만’일까? “그도 …… 그저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것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던 2017년 1월 한 인터넷 신문에 김기춘을 이렇게 평가하는 글이 실렸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이 김기춘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김기춘도 과연 성찰 없이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데만 그쳤을까?

김기춘의 삶을 돌아보면 그는 아이히만과는 달리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반민주 행위를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기춘의 이데올로기를 한마디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극우 반공주의다. 극우 반공주의는 오늘의 김기춘을 만든 토양이고, 김기춘과 같은 사람들에게 권력과 부를 안겨준 토대이기도 하다. 김기춘과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세력을 짓밟으려고 한 것도 이 극우 반공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김기춘은 극우 반공주의에 바탕을 둔 공안 통치를 지향했고, 그 과정에서 공작 정치도 서슴지 않았다. 유신 헌법 제작에 관여하고 유신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시절 비판 세력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섰으며, 초원복집에서 민주주의 파괴 음모를 꾸몄다. 국회의원 시절과 박근혜 정권의 비서실장 시절에도 일관되게 극우 반공 체제를 위해 활동했다.
김기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사람이자 ‘법비法匪’(법으로 도적질하는 무리)로 규탄되는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하면서 오늘날 안 좋은 의미의 ‘검찰 공화국’을 구축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가 수장으로 있을 때 검찰은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권력, 자본을 위한 검찰이 되었고, 이는 지금 검찰이 ‘적폐 세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리틀 김기춘’ 우병우가 국정 농단에 관여한 것에 더해 ‘법꾸라지(법+미꾸라지)’ 행태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검찰 공화국’이라는 현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우병우의 ‘법꾸라지’ 대선배 격인 김기춘이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키고도 법적으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것 역시 ‘검찰 공화국’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김기춘에게 1차 전성기를 열어준 유신 독재

김기춘은 1939년 거제도 장목면에서 태어났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2명의 대통령(김영삼, 문재인)을 배출한 고장. 김기춘의 집은 그 동네에서 괜찮게 사는 축에 들었다. 공부도 곧잘 했던 그는 거제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교육자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법관이 되기 위해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부에 매진해 3학년 때 고시 사법과 시험을 쳤고, 이듬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기춘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나라 전체가 어렵고 가난했지만 낭만이 있던 시절로 묘사했다. 하지만 그 시기(1958~1962년)는 이승만 정권 말기, 4월혁명 시기, 5?16쿠데타 후 들어선 군사 정권 전반기에 해당한다.

고시 합격 후 해군·해병대 법무관으로 재직하면서 군 복무를 마친 그는 1964년 광주지검, 1967년 부산지검, 1969년 서울지검을 거쳐 1971년에 법무부 법무과에서 일했다. 그리고 이듬해 자신을 출세의 발판을 마련해준 유신 헌법 제작에 관여하게 된다. 유신 헌법을 만드는 데 앞장선 헌법학자 한태연은 이렇게 주장했다. 박정희가 유신 헌법의 핵심 내용을 구상하고 신직수와 김기춘이 그 뜻을 받들어 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원하는 형태로 유신 헌법안을 만든 주동 인물 중 한 명이 33세의 젊은 검사 김기춘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김기춘은 한태연의 주장을 부정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뒤져보면 김기춘은 평검사 신분으로 박정희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등 유신 헌법과 관련해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뒤 김기춘은 1973년 4월, 유신 쿠데타 후 첫 번째로 이뤄진 대규모 검찰 인사에서 법무부 과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했고, 1974년에는 중앙정보부로 발령을 받았다. 유신 독재는 그렇게 김기춘에게 1차 전성시대를 열어줬다. 그래서일까. 김기춘은 회고록에서 유신 쿠데타가 박정희의 “우국충정”의 소산이며 “국론을 통일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강변하며 유신 독재를 비호했다.

중앙정보부로 옮긴 후 김기춘의 활동 내용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시기는 1974년 8월이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린 국립극장에서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절명한 것이다. 김기춘은 그 문세광을 직접 신문해 자백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세광 신문은 김기춘에게 엄청난 출셋길을 열어줬다. 문세광의 신문이 있은 지 한 달 후인 1974년 9월,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영전했다. 35세의 나이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요직 중의 요직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중책을 맡긴 박정희 정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유신 독재 수호에 적극 나서게 된다.

대공수사국장 시절의 대표작,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

1975년 11월 22일 각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을 적발했다’는 중앙정보부 발표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해 한신대, 부산대, 고려대, 가톨릭의대 등 학원에 침투시킨 것을 적발해 일당 21명을 검거하고 관련 용의자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는 발표였다. 간첩단의 주축으로 주로 지목된 사람들은 일본에서 유학 온 교포 학생들이었고, 이들과 가깝게 지낸 재학생들도 사건에 휘말렸다.

같은 날 신문 사회면의 한쪽에 이 사건과 관련된 ‘일문일답’ 내용이 크게 실렸다. 이 ‘일문일답’을 통해 기자들에게 사건을 상세히 설명한 사람이 바로 김기춘이다. 이 ‘일문일답’에서 김기춘은 이번 사건이 “최근 수년간 대학가에서 벌어졌던 데모가 북괴 간첩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임을 증명한 케이스”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학원 소요의 배후에는 북괴 간첩이 있다”는 것이 이 사건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당시는 유신 독재 철폐 운동이 활발하던 때였다.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이 위기를 돌파해야 했는데,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안보 불안감’ 조성이다. 박정희 정권은 간첩 사건을 비롯한 각종 공안 사건을 터뜨리며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없는 간첩도 만들어내기도 했다.

후일 11·22사건도 당연히 조작된 간첩 사건으로 밝혀졌다. 11·22사건 피해자들이 체포, 고문, 사형 선고를 비롯한 중형, 옥살이, 재심을 거치는 동안 김기춘은 장관,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기춘에게 이 사건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김기춘은 영화 [자백]에서 조작 간첩 제조 문제에 대해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수사한 사건 중에 과거사 조사나 의문사 조사 대상에 오른 게 없다. 권력 남용해서 인권 유린하고 고문했으면 오늘날 김기춘은 없다. 그 점을 자부한다.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궁정동 총성으로 막 내린 1차 전성기

1979년 2월, 김기춘은 4년 5개월에 걸친 중앙정보부 생활을 마무리하고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에서 박정희를 보좌하게 된 것은 김기춘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였다. 유신 헌법 제작 과정에서 박정희에게 직접 보고하고, 8·15 저격 사건 후 문세광 신문을 통해 이미 깊은 인상을 심어준 김기춘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회고록에 김기춘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총애와 가르침, 격려를 받았다”고 썼다.

극심한 혼돈으로 치닫던 유신 독재는 1979년 10·26사건으로 무너졌다. 김기춘이 청와대로 옮긴 지 8개월 만이었다. 새로운 독재자 전두환이 등장했고, 김기춘의 1차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김기춘은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에 청와대를 떠나 검찰에 복귀했다. 1986년 대구고검장, 1987년 법무연수원장으로 있다가 노태우 정권 첫해인 1988년 12월 검찰총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2차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갈고 닦은 실력, 공안 정국 조성으로 펼치다

김기춘이 검찰총장이 되었을 때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요구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기춘이 이끄는 검찰은 시대착오적인 극우 반공 체제를 수호하는 데에만 앞장서게 된다. 5공 비리 수사를 큰 틀에서 일단락 지으며 청와대의 고민을 덜어준 김기춘은 얼마 후 노태우 정권에 큰 ‘선물’을 안겨준다. 유신 독재 시절 4년여 동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하며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선 것이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한 문익환, 임수경 등을 구속한 것은 물론 민주화 운동 세력들도 좌경 용공으로 몰아 광범위하게 잡아들인 것이다.

그 결과 노태우 정권은 안정을 찾았고,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섰던 김기춘과 검찰의 정권 내 위상도 높아졌다. 민주화 운동 세력과 야당에 밀리며 취약했던 노태우 정권의 버팀목 구실을 톡톡히 한 김기춘은 1991년 법무부 장관이 된다.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으로 불러들일 무렵 노태우 정권은 또다시 궁지에 빠져 있었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백골단에게 맞아 죽은 후 거리는 연일 반정부 시위대로 뒤덮였다. 그런 속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 박창수가 의문의 죽음(5월 6일)을 맞고 학생, 노동자, 빈민 등 10여 명이 정권 퇴진 등을 요구하며 연이어 분신하면서 ‘5월 투쟁’으로 불리는 반정부 흐름은 고조됐다. 5월 25일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이 난무한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김기춘에게 부여된 임무는 정권 안보를 지키는 구원 투수 역할이었다. ‘5월 투쟁’에 대한 김기춘의 기본 대응 전략은 또다시 공안 정국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와는 다른 방법을 썼다. 이전에는 이념 공세를 퍼부으며 민주화의 대세를 뒤집으려 했다면 이번에는 민주화 운동 세력 전체를 패륜 집단으로 몰아가는 데 더 초점을 맞췄다. “어둠의 세력”을 창조해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 정권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김기춘은 공안 정국 조성에 앞장선 1989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노태우 정권을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주도하며 정권 수호, 체제 유지의 주력임을 과시했다. 김기춘 검찰총장 시기에 그 기반이 마련된 ‘검찰 공화국’은 이 사건을 거치며 굳히기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비리와 범죄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 그 중심에 김기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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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대선을 사흘 앞둔 1992년 12월 15일, 정주영의 국민당이 증거 사진과 함께 하나의 녹음테이프를 세상에 내놓았다. 테이프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 달 전까지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과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었다. 민자당 후보 김영삼의 대선 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등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바로 ‘초원복집 사건’이었다. 오늘날 초원복집 사건은 ‘김기춘’, ‘지역감정 조장’과 연관돼 간략히 거론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건은 극우 반공 세력의 속마음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 김기춘은 1992년 12월 29일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건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재판을 거쳐 감옥에 가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김기춘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처벌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출세의 길로 나아갔다. 1995년 KBO 총재에 취임했고, 1996년에는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2008년까지 12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한동안 정치권에서 멀어진 김기춘은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 다시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2013년 8월 74세의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고, ‘왕실장’ ‘기춘대원군’으로 불릴 만큼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거짓, 조작, 공안 통치로 점철된 박근혜 정권의 민낯은 더욱 뚜렷해졌다. 전교조는 법외 노조 통보를 받았고, 통합진보당은 해산됐으며, 블랙리스트가 광범위하게 작성·실행됐고, ‘세월호 죽이기’ 공작이 자행됐다.

박근혜 세력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도, 헌법도 거리낌 없이 짓밟았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들보다 최고 권력자의 심기 경호가 우선이었고, 극우 반공 체제를 강화하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이는 경제 민주화 과제를 내팽개치고, 재벌 위주 정책을 통해 특권층의 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해준 것과 이어져 있었다. 그러한 틀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김기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고, 촛불 항쟁이 일어났으며, 박근혜도 김기춘도 구속되었다. 2018년 현재 김기춘은 79세의 고령이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수감돼 있고, 유죄가 확정될 경우 몇 년간 옥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다. 그리고 다시는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 잡을 가능성은 없다. 김기춘이 다시 권력자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검찰 공화국’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저자 김덕련은 김기춘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토양이 바뀌지 않으면 김기춘 같은 사람은 언제든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전쟁 같은 노동을 매일매일 견뎌내며 허리띠를 졸라맨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 쏟은 노력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다. 이것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다수는 전쟁 같은 노동을 매일매일 견뎌내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 땅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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