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자책

거룩한 코미디

도서정보 : 곽영신 | 2015-08-1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한국 교회는 타락했다!
교회 세습, 금권선거, 성추행, 횡령, 표절…
“목사님, 도대체 당신이 믿는 것은 무엇인가요?”

‘돈’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한국 교회

한국 교회가 문제다. 목사들의 막말, 교회 세습, 논문 표절, 횡령, 금권선거, 성추행 등 연일 문제가 끊이지 않고 터지고 있다. 개신교의 문제는 어느덧 한국 사회가 처한 하나의 부조리한 현실이 되었을 정도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만 하다.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할 한국 교회가 도대체 왜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한국 교회 자체가 심각할 수준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는 ‘예수’가 아니라 ‘돈’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한국의 목사들은 너무 권력 지향적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선거 및 분열 사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97회 총회 파행 사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의 감독회장 선거 파행 사태를 지켜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한국 사회에서 제법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형교회 목사들이 신성한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다. 금권선거, 상대방 비방, 폭력행위가 난무하고, 각종 고소 행렬이 이어진다. 법과 양심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목사들의 욕망과 치열한 권력 암투 속에서 한기총과 각 교단은 맥없이 휘둘리기만 한다. 현실 정치판보다 더한 난장판이 연출되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권력 지향적이고, 탐욕적인 행태를 내보여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한때 한국 교회 최대 연합기관이었던 한기총은 길자연, 홍재철 목사가 대표회장을 맡은 이후 금권선거, 정관 개악, 이단 옹호 등으로 폭발적인 물의를 일으키면서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기총은 진정한 교회 연합기관이라기보다는 일부 정치 목사들의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기총에는 대형교회를 바탕으로 힘깨나 쓰고 싶은 목사들, 교회정치를 통해 출세하고자 하는 목사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돈과 힘을 거머쥔 한국 교회가 이를 바탕으로 한기총에서 한바탕 꽃 잔치를 벌이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 ‘장자교단’이라 불리는 예장합동과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교단인 감리회도 마찬가지다. 이 교단들의 회장을 뽑는 선거를 통해 들여다본 목사들의 권력 다툼은 마치 거대한 욕망 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이런 모습들이 반복되지만 목사들이 반성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 정치 지향적인 교회, 권력 지향적인 목사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는 점점 더 타락해가고 있다.

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되었다

“처음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하여 철학이 되었고, 유럽으로 넘어가서는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고, 한국으로 왔을 때는 대기업이 되었다”(196쪽)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물신’화되었다. 대표적으로 2009년 사랑의교회는 3,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초대형 새 예배당을 건축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4층짜리 남쪽 드림센터와 8층짜리 북쪽 미션센터는 대기업 본사 못지않게 크고 웅장하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갈수록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성공’을 부추기는 하나의 대기업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약한 자를 보듬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고 설교도 안 하고 그러면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사실상 와해된다고 봐야 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사실 조 목사님의 카리스마 하나로 유지해왔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해외 출장 한번 가니까 일주일에 15억 원 들어오던 헌금이 7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그 정도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조용기 목사의 장남 조희준 씨의 말, 241쪽)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대기업화한 교회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교회를 일군 조용기 목사와 그 일가족은 재벌 총수 일가처럼 행동하며 교회 재정을 사유화했고, 심각한 비리를 저질렀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도 물러나지 않고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교회가 조용기 목사의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몸집을 불렸기 때문이다. 어느덧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오너 없는 기업을 상상할 수 없듯 오너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왜 교회를 물려줘서는 안 되지?” 목사들의 도덕적인 무감각

게다가 한국 교회는 도덕적으로도 무감각하다. ‘대기업’화된 대형교회를 자녀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물려주기까지 한다. 등록 교인이 1만 명이 넘는 임마누엘교회를 아들 김정국 목사에게 물려준 김국도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왜 안 되지? 왜 이병철이 이건희에게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준 건 되고, 교회는 왜 안 되지?”(388쪽) 길자연 목사, 홍재철 목사, 김선도 목사, 김홍도 목사 등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미 자신의 자녀들에게 교회 세습을 마무리 짓기도 했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지적을 당하자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대필이나 표절 등 그 어떤 부정직한 증거라도 나온다면 사랑의교회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호언했다.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논문 표절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자 또 다른 거짓말을 일삼았고, 결국에는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지도 않았으며,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며 초호화 교회 건축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여성 성도를 성추행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는 전병욱 목사는 피해자들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줬다는 셀프 회개를 하며 목사직을 유지했고, 새 교회를 개척하기까지 했다. 결국 성추행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일군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 등 일가의 재정 비리로 인해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입은 피해액만 해도 5,000억 원에 달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도 충분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목사님들의 권위주의와 신도들의 맹신

한국 교회의 뿌리 깊은 ‘반지성주의’와 ‘사제 권위주의’도 늘 지적당하는 문제다. 교인들은 교회에서 맹목적으로 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하라고 배운다. 심지어 어느 유명 목사는 교회 집사·장로들에게 스스로 성경 공부할 생각 말고 목사의 설교만 주구장창 들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목사의 권위주의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자유로운 토론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게 목사의 주장대로 이루어진다. 한 청년이 교회 건축에 반대하고 나서자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직 잘 모르니까”, “내가 별 걸 다 본다”와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면서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오정현 목사는 갖은 비판에 대해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려 하기보다는 더 높아지고 더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곤 했다.
“수십 명의 목사와 장로들이 조용기 목사 사무실에 찾아가 여러 차례 무릎을 꿇고 울면서 은퇴 결정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조 목사의 계속 사역을 바라는 40일 작정기도도 진행됐고, 교인 56만 명이 조 목사 은퇴 반대에 서명했다.”(208쪽) 신도들의 맹목적인 복종도 심각하다. 갖은 비리를 저지른 조용기 목사에게 찾아가 은퇴를 번복해달라고 매달리고, 논문 표절, 재정 비리를 저지른 오정현 목사를 감싸고돈다. 추악한 성범죄가 밝혀졌지만 전병욱 목사는 쉽게 교회라는 조직 뒤에 숨을 수 있었다. 일부 신도들이 그를 맹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아무리 목사가 비리를 저질러도 그를 두둔하는 세력이 있는 한 한국 교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진리는 오직 나의 것”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나만 옳다’는 이데올로기도 심각하다. 이른바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글자가 모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고,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무오류성’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 교회 근본주의는 미국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 한국전쟁과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돼 오늘날 한국 교회의 주류를 장악하게 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한국 교회는 이 근본주의를 이 사회와 정치에도 적용하면서 보수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자신들과 맞지 않으면 ‘이단’ ‘적그리스도’로 내몰면서 오직 자신들만이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맹신한다. 그들의 반공사상, 동성애에 대한 혐오, 보수정권 옹호 등이 사회로 표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9년 한국 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유치를 성공시켰다. 기독교계에서 보면 이 총회는 세계 교회의 유엔총회라 불리는 행사로 최근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빅 이벤트’였다. 그러나 한기총, 예장합동 등 한국의 보수교단들은 이 행사를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주의 신학 등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행사라는 게 이유였고,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전쟁’을 치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신학 노선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WCC를 향해서 ‘기독교 패륜아’, ‘더러운 사탄’, ‘바알’, ‘적그리스도’, ‘제2의 신사참배’와 같은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이 같은 한국 교회 근본주의는 교회가 단기간 눈부시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신자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무기가 되었지만, 그 시대착오적인 성향으로 현대신학의 성과에서 멀어지고 세상에서 외면받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 “WCC 총회를 한쪽에서는 축제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적그리스도라 부르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WEA·국제로잔과 같은 대표적인 복음주의 단체가 인정하는 ‘세계 교회의 한 축’을 왜 한국의 보수교단과 연합기관은 한사코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 중 오직 한국 교회의 보수교단 그리고 그들과 교류하는 몇몇 교회들만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걸까?”(181쪽)

한 기독 청년이 좌절감을 바탕으로 쓴 책

이 책은 한 독실한 기독교인 청년이 좌절감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우리 신문은 한국 교회에 대해 비판할 수 없습니다.” 지은이 곽영신은 몇 해 전 한 초대형교회가 운영하는 중앙일간지에 입사했다. 한국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목사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곧 그는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기자생활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냈다. 그런 뒤 작은 기독교 방송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그런데 이곳마저도 대형교회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지 말라는 압박을 가했다. 교계 곳곳을 다니며 목격한 한국 교회의 민낯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데도 제대로 비판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해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길 바란다면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를 파편적으로가 아니라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목적에서 쓰였습니다.”
저자는 기자 출신답게 사건을 면밀히 추적해 기록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취재 현장에서 확보한 문서 자료 두 상자, 교계 언론 기사 1만 건, 단행본 80여 권을 참고하며 꼼꼼하게 기록했다. “《거룩한 코미디》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책이다. 상투적 소재들이지만 디테일이 짜임새 있다. 기자스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 방식으로 한국 교회의 현상을 치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기자 리포트 중에는 매우 훌륭한 리포트로 평할 만하다. 각각의 리포트 속에는 디테일만 있는 게 아니라 외연의 확장도 있다. 하나의 사건에서 좀 더 큰 틀의 조망이 있다는 것이다. ‘기자스러운 텍스트’ 중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은 조망이 돋보인다. 그것은 저자가 현상 리포트에만 치중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책을 썼다는 증거다. 이런 점은 높은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에서 《거룩한 코미디》는, 감히 내가 평할 수 있다면, ‘꽤 괜찮다’.”(김진호 ‘추천사’에서)
이 책 1부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교회 전체를 뒤흔들었던 주요 교단과 연합기관의 대형 사건들을 추적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금권선거 및 분열 사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예장합동)의 97회 총회 파행 사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의 감독회장 선거 파행 사태가 그것이다. 또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두고 한국 교회가 보수·진보로 나뉘어 갈등하는 모습도 다뤘다.
2부에서는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대형교회 목사들의 윤리적 타락과 몰락을 그렸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교회 사유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초대형 예배당 건축과 논문 표절,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등을 둘러싼 논란을 면밀히 추적했다. 끝으로 3부에서는 교회 개혁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의미에서 저자가 직접 WCC 부산총회를 참관하며 느꼈던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배워야 할 점, 혼란 속에서도 교회 갱신을 외치며 끝까지 싸우고 있는 개혁가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구매가격 : 11,200 원

숫자가 된 사람들

도서정보 :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 | 2015-07-0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우리는 그곳에서
등록번호, 또는 몸값으로만 존재했다”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생생한 고통 속에서 길어올린, 인간 존엄에 대한 목소리

이 책의 출간 소식에, 기쁨보단 겸허한 마음이 크다. 끔찍했던 야만의 역사보다 더 끔찍한 건, 진실을 숨기고 밝히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부당하고 결핍된 정의를 보면서 더 열심히 듣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오늘부터라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의 출발은 생존자들 스스로의 목소리다. 말하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에 머물지 않고 치유의 시작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들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들어주는 일, 생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일, 진실과 정의를 향해 더불어 한 걸음 걷는 일일 것이다.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의 진실

19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났던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원장 박인근을 비롯한 개인의 악마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법령과 공무원 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가능했던 ‘국가폭력’의 산실이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피해생존자들 11명의 이야기를 인권기록활동 저자들이 재구성해낸 결과물이다.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서, 피해생존자들 삶에 깊이 각인된 그날들의 흔적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사회에 전달하고자 결성됐다. 약 반년에 걸쳐 인터뷰이 탐색과 설문조사, 두세 번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간의 언론 보도가 미처 다루지 못한 생존자들 각각의 세세한 삶의 결, 감정의 파동까지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오롯이 재조명하고 특별법 제정을 포함해 책임을 촉구하고자 기획되었으며, 독자들은 폭력이 삶을 규정지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백 속에서 인간 존엄과 자기치유의 목소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숫자에 갇힌 사람들, 그러나 너무 인간적인 고통

형제복지원 대책위 집행위원장인 조영선 변호사는 형제복지원을 일컬어, “형제도 복지도 없는 지옥 그 자체” “국가가 위탁이라는 형식으로 만든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말한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12년 동안 부산시 사상구 주례동에서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됐던 형제복지원은 당시 약 3,146명을 수용하고 있었고, 납치·감금·강제 노역·학대·성폭력 등으로 유지됐으며, 밝혀진 사망자 수만 513명에 달했다. 피수용자들에게는 몇 년도에 몇 번째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78-374, 80-3038, 82-2222, 82-4714, 86-1360…… 식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운영 당시 매년 20억 이상의 국고 지원을 받았는데, 그 액수의 기준이 되는 것은 피수용자들의 ‘머릿수’였다. 이들의 존재가 박인근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재산이었던 것이며, (그들을 검속해 형제복지원에 넘긴) 경찰에게는 두당 얼마씩의 짭짤한 근무 평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기보다 등록번호, 몸값, 누군가의 점수 등 ‘숫자’로 취급됐다. 반면 이들이 형제복지원 안에서 겪은 고통은 철저하게 ‘인간의 고통’이었다. 11명의 생존자들 이야기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수용자들이 일상적으로 견뎌야 했던 폭력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구술자 박경보 씨는 더없이 차분한 어조로 “형제원 안에서 맞고 기합받는 건 일상이었어요. 손가락을 잡고 부러뜨리는 건 흔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연약한 아이들, 여성들, 노인들도 열외가 없는 군대식 점호와 기합, 구타는 그의 말대로 일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지는 증언들에 정작 듣는 이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 ‘일상’은 때로 사망까지 이르기도 했지만, 목격자들은 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희곤 씨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성인 소대장에게 가슴 100대를 가격당했던 일을 회상하며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와 나란히 맞았던 다른 아이는 다음날 식사하러 걸어가던 길에 쓰러져 그대로 사망했다. 남자 아동소대의 경우에는 밤에 소대장이 와서 소년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사무실에서 원장이 피수용자의 배를 형광등으로 가르더니 거기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인간의 상식으로 믿기지 않는 폭력에 대한 증언은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은 낚시 용품, 봉제, 건축, 나전칠기 등 다양한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나 이로 인한 수익은 전혀 배분되지 않았다. 일당 300~500원, 요양원은 3일에 토큰 1개(100원) 상당의 임금 기준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임금을 받았다는 증언은 없다. 너무나 집요한 폭력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꿈꾸기조차 힘든 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환경 속에서도 존엄과 자유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여러 증언들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다. 박경보 씨는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도망을 쳤어요. 왜 그랬을까요”라고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 숟가락, 면도칼 따위를 스스로 삼키거나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경우들도 많았다고 말한다. 하안녕 씨는 오직 탈출을 위해서 일부러 소대의 서무직을 자청하고 동료들과 계획을 짜 탈출에 성공한 과정을 생생히 들려준다. 다시 잡혀온다면(실제로 그러한 경우가 많았다) 더 큰 보복과 폭력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탈출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황송환 씨는 “사회에선 죄를 짓더라도 형량이 있고 만기가 있는데 형제원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영영 나갈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들의 갈망을 자극했고 탈출은 계속됐다. 한 시설을 탈출해도 곧 다른 시설에 잡혀들어가고, 또다시 탈출하는 일을 반복한 경우도 많았다.

국가의 위탁으로 운영된 지옥

그 모든 인권유린이 ‘사회복지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업을 가능케 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였다. 단순히 ‘복지시설’에 돈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정부는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발령해 소위 ‘부랑인’ 단속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이 훈령에 따르면 “일정한 정주가 없이 관광업소, 접객업소, 역, 버스터미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통행하는 곳과 주택가를 배회하거나 좌정하여 구걸 또는 물품을 강매함으로써 통행인을 괴롭히는 걸인, 껌팔이, 앵벌이 등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해하는 모든 부랑인”(제1장 제2절)이 단속 대상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역 앞이나 거리에 있는 아무 사람들을 애매하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잡아다 감금하고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수호하라는 명령이다.

박인근 자서전에 자랑스럽게 실린 한 사진(전두환 대통령과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형제복지원 운영은 국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총리에게 지휘서신을 보내 전국적으로 부랑인 검속을 강화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하안녕 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일명 ‘시찰’이 나올 때마다 벌어졌던 해프닝들을 자세히 그려낸다. 원장이 허울 좋게 보이기 위해 형제복지원 내에 각종 ‘부서’들을 신설하면 부산시에서 견학을 왔다. 그런 날만 옷이나 신발 등이 더 깨끗한 것으로 지급되고(시찰이 끝나면 다시 뺏어간다), 돌계단을 닦아내고 줄을 서서 박수를 치는 등 ‘갖은 쇼’를 해야 했다. 매년 운동회 때 보여줄 공연을 연습하는 시기에는 한 달 동안 잠을 못 자고 혹사당했다. 교양 있고 우아하게 차려입은 박인근의 아내는 자주 친구들을 데려와 “우리는 이렇게 밖에서 동냥하는 애들을 데리고 와 교육을 시켜서 사람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렇듯 형제복지원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된 섬 같은 것이 아니라, 국가와 부산시 공무원 사회가 충분히 인지하고 드나들 수도 있었던 곳이다. 마찬가지로 박인근은 인간 사회와 분리된 악마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활동을 하는 사업가였다.

1987년 울주 작업장에서 발생한 폭행 치사 사건 당시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 중 168명을 울주 작업장으로 보내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숙소 외부에서 문을 잠갔으며, 도주하는 경우 구타한 행위에 대해 특수감금죄로 기소됐다.

으로 인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본 시설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았고, 울주 건에 대해서마저도 3년 동안 대법원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다 최종 무죄 판결이 났다. 결과적으로 박인근은 횡령죄로 2년 6개월 형만을 받았고 출소한 뒤에 대를 이어 ‘복지사업’을 계속했다. 지상에 현존했던 지옥에 대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셈이다. 국가는 아직까지 정당한 법과 순리에 따라 박인근 개인을 처벌하지 않고 있으며, 제대로 된 진실 규명과 공식적인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들어진 ‘부랑인’의 존재

형제복지원 자체는 사라진 지금 시대에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절대 피해 갈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시설에 강제 수용되는 전제였던 ‘부랑인’이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역 앞에서 잡혀가는 ‘부랑인’ ‘노숙자’라고 했을 때, 우리가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집이나 가족이 없어 보이고, 추레하고, 술에 취해 있고, 냄새가 나고, 행인들에게 빈손을 벌리는 어떤 사람들. 하지만 단지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잡아가둘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 또한 지금의 우리는 알고 있다. 당시 정부와 경찰 및 공무원 사회가 손잡고 벌였던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화’는 사실상 ‘인간 청소’에 가깝다. 독일 나치하의 아우슈비츠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킨 것처럼,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시설들도 임의적인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또한 어떤 면에서 ‘인종’으로 취급됐는지도 모른다)을 정상의 세계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그런데 11명의 이야기들을 읽어가다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들이 하나하나 어떻게 잡혀왔는가 들여다보면 그 방식이 훨씬 더 악의적이고 마구잡이다. 여섯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7곳의 고아원을 전전한 박경보 씨, 열 살에 친구들과 서면로터리에 놀러 나왔다가 잡혀간 김희곤 씨, 부모님이 장사하러 나가고 부산진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파출소 아저씨’가 데려다준다는 말에 따라간 하안녕 씨,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20대 중반까지 시설에 갇혀 산 황송환 씨, 엄마 찾으러 제주에서 부산까지 배 타고 혼자 왔던 이상명 씨, 몇 월 몇 일생 추정에 어느 고아원에서 ‘인수’했다는 서류로써만 자신의 ‘발생’을 추측하는 김영덕 씨,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가 잡혀간 김철웅 씨, 자신을 상습적으로 구타하는 아버지에 의해 직접 파출소에 인계된 이향직 씨, 중학생 때 멀쩡히 하교하는 길에 파출소 순경이 가방을 뒤지더니 급식으로 받은 빵과 우유를 훔쳤다며 끌고 간 최승우 씨, 생의 기억이 시작된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놀러 나왔다가 다섯 살 때 형제육아원(형제복지원의 전신)에 납치된 홍두표 씨,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집에서 살던 중 구박받는 것이 싫어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가 같이 끌려간 이혜율 씨……

이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부랑인’이 존재해서 그들을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랑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만한 이들을 잡아다가 부랑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만만한 이들이란 물론 “가난하고 힘없고 누추한 사람들”(김희곤 씨 이야기의 제목), 그리고 가장 힘이 약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집 나온 아이들’이었다. 여러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박인근은 형제복지원 피수용자들에게 ‘너희는 부랑인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식의 정신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이 또한 부랑인이 실제로 존하는 것이 아니라 납치, 감금, 세뇌 등의 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반증이다.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시설’ 입장에서는 피수용자 머릿수당 돈이 되니까 사업의 필요로 운영했다고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가 좀 더 집중해 밝혀야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는 왜 시설을 ‘필요로’ 했냐는 점이다. 구술프로젝트 서중원 작가는 김영덕 씨의 구술 기록에서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내비친다.

“알다시피 당시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정화라는 미명하에 이 부랑아 사업으로 폭압과 독재 형태의 권력을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위 이 사업이 전국적 규모로 먹혔다는 데 있다. 다소 위험한 가설이긴 하지만, 당시 아직 성숙기를 맞지 못한 시민사회는 독재라는 큰 폭력에는 맞서지 못한 채 부랑아라는 가상의 존재를 상정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대체 낙인으로, 자신의 분노를 약자 청소의 제노사이드에다 무의식적으로 분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작가의 말대로 조금 무리한 가설일지 몰라도, 분명한 것은 사회가 ‘우리’와 다른 부랑인의 존재와 그들을 격리시킬 시설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적어도 묵인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폭력 사건이긴 하지만, 시민사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황송환 씨(반평생을 시설에서 살았습니다. 듣고 계십니껴?), 김영덕 씨(서류철 하나에 집약된 인생), 홍두표 씨(혼자 살 수 없는 이 삶 자체가 어디서 왔나) 등의 이야기는 인생 전체가 그러한 시설과 시민사회의 무관심에 희생당한 비극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그중 자신의 발생과 존재를 오직 서류로 추적해가는 김영덕 씨의 이야기는 인간 존엄을 희생양으로 삼는 시설의 근본 문제를 상징적으로 꼬집는다. 그는 사람이 단지 ‘연고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구 다뤄지는 인권유린에 분노하며, 스스로 자신과 같은 무연고자들을 찾아다니며 연고를 찾아주고 수급을 받게 해주는 등의 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한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 문을 닫았고 전두환의 독재 정권도 막을 내렸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더욱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혐오와 격리와 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2010년 11월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노점상 강제철거 시도, 외국인 범죄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집중단속, 2011년 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조치, 공공장소에서 구걸하는 행위를 처벌하고자 2013년 통과시킨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이묘랑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권력이나 자본은 다수의 이익과 안전이라는 그럴싸한 외피를 두르고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골라낸다. ‘쓸모’가 없음이 확인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격리해왔다. 시설 수용은 교화와 복지, 그리고 일반(?) 시민을 안전하게 지킨다는 명분 아래 폭력을 품은 채 유유히 맥을 이어간다. 지금은 노숙인, 고아나 장애인으로 표적이 달라졌을 뿐이다. 얼굴을 바꾼 내무부 훈령 410호와 형제복지원은 여전히 호시탐탐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주세요”

기존에 형제복지원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는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와 전규찬 교수,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함께 쓴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으로는 《숫자가 된 사람들》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피해생존자들이 몇 명이나 살아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피해생존자모임을 스스로 찾아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거나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11명의 목소리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형제복지원 안에서 지속적으로 당한 성폭행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던 김철웅(가명) 씨, 박인근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에게 사과받고 싶어하는 이향직 씨 등 대부분 피해생존자들에게 이것은 말 그대로 인생을 건 고백, 최고의 용기를 낸 증언이었다. 구술자들은 하나같이 인터뷰 작가들을 앞에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데 자신은 이렇게 살아 있고, 그렇다면 말해야만 했으리라.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가 가능해진 데는 구술프로젝트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형제복지원구술프로젝트는 2014년 6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태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중 6명이 모여 결성됐다. 구술 기록이 단순히 인터뷰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라는 세간의 몰이해 또는 왜곡과 달리, 이들이 재구성한 11편의 구술 기록들은 하나하나 온전한 개성을 띠며 저마다 다른 감동을 준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끌어내는 일은 그 자체로 그 어떤 인권활동이나 연구 작업 못지않게 중요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글로 재구성하여 사회에 전하는 기록활동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이번 작업을 감내한 이유는 한 가지다. 온 마음을 다해 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이야기를 듣다보면 종종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야기, 예외적인 일로 믿고 싶은 사실들을 만나지만 외면하지 말고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인 일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했는지, 우리가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봐줬으면 좋겠다. 이 불편함을 딛고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듣기, 그이들의 말할 권리가 가능하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고대한다.”(들어가는 말에서)

구매가격 : 10,500 원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도서정보 : 루이스 캐롤 저/존 테니얼 그림 | 2015-12-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새로운 번역과 상세한 주석
성경, 셰익스피어 작품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기 위한 안내서

번역가가 오랫동안 정성스레 붙인 주석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의 놀라운 세상 모험(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은 1865년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이후로 절판된 적이 없다. 더 친숙하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로 불리는 이 책은, 무려 174개의 언어로 번역됐고, 갖은 매체가 끝도 없이 개작해왔다. 성경,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과 더불어 가장 많이 인용되기도 하는 이 책은 전 연령의 독자에게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2015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탄생한 지 150주년 되는 해이다. 영국 체신성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었고, 발레 작품이 무대에 올랐으며, ‘앨리스’ 페스티벌이 열렸고, 전시회와 집담회가 전 세계에서 풍성하게 개최되었다. 팀 버튼의 2010년 작 영화를 뒤이어, 2016년에는 새 작품이 개봉할 예정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150주년을 맞아 여러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오월의봄에서 출간한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번역가 정병선이 오랫동안 정성스레 작업한 책이다. 우선 요즘 세대의 언어로 세련되게 번역을 했으며, 번역가가 직접 상세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난센스, 수수께끼, 무의미 시, 수학, 독특한 캐릭터 등이 어우러져 있어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작품이다. 정병선은 이런 난제들을 직접 수많은 자료를 찾아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쓰인 빅토리아 시대를 풍성하게 되돌아보는 해석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지은이 루이스 캐럴과 영국 당대의 예술사조였던 라파엘전파와의 관계를 재조명하기도 하고, 루이스 캐럴의 본업이었던 수학자의 모습을 통해 작품을 분석하기도 했다. 당시의 우편제도, 음식문화, 정원문화 등을 작품과 연결해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곧 이 책은 어린이는 물론 성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궁금증을 품으면 어른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다양한 주석이 이 책의 장점이다. 번역문과 함께 대조해가며 읽어보면 좋을 듯해서 영어 원문도 수록했다.

“저 너머에 다른 세상,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을까? 번역가 정병선은 그 이유를 ‘시간의 축합’ 때문이라고 말한다. 앨리스를 지하의 ‘놀라운 세상(Wonderland)’으로 인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흰 토끼의 회중시계이다. 시계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건이고 캐럴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쓸 때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는 시간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한다. “시간과 시간이 처한 곤경! 수학자 찰스 도지슨은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었고, 그 경계를 횡단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속성(temporality)이야말로 논리와 더불어 가능한 세계들을 구상하는 데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문학적 장치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죠. 동사의 시제 표현, 구어적 요소, 꿈이라는 설정, 게임, 말장난(pun)과 수수께끼, 난센스를 통해 다양한 계산과 과정이 전개되고 가세합니다. 시간은 확대되고, 연장되고, 비틀리고, 굴절하고, 팽창합니다. 그리고 축합되죠. (…) 그는 환상문학 작가였고, 이렇게 공상합니다. 토끼 굴 아래로 내려가면, 저 너머에 다른 세상이, 다른 공간이, 다른 시간이 존재할 거라고 말입니다.”

오월의봄 판 앨리스의 일곱 가지 특징

정병선이 번역한 《주석과 함께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번역보다 더 나은 번역을 하려고 노력했다. 캐릭터를 새롭게 지정한 것과 권말로 옮긴 서시의 번역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그간 대종을 이루었던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완전히 배제하고, 루이스 캐럴의 본업인 수학자의 정체성에 입각해 작품을 해석했다.
셋째, 한국 독자의 편의를 위해 빅토리아 시대 당대의 문화를 주의 깊고 폭넓게 해설했다. 부모님이 아이들의 책 읽기를 안내하고 도울 수 있도록 요긴한 정보를 담았다.
넷째, 수학자 도지슨 말고도, 영국 당대의 예술 사조였던 라파엘전파와 캐럴의 관계를 객관적 사료에 입각해 분명하게 드러냈다.
다섯째, 진화심리학과 빅데이터(big data)를 초보적인 수준이나마 활용해 작품 비평을 시도했다. 요컨대, 비평의 방법을 혁신하고자 노력했다.
여섯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석서를 펴낸 바 있는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 저술과의 중복을 피해 독자적인 내용을 담았다.
일곱째, 충격과 더불어 논란이 될 만한 루이스 캐럴의 ‘소아 성애’ 문제를 비교적 공정하게 다루고자 했다.

구매가격 : 9,800 원

숨은 노동 찾기

도서정보 : 송기역 (기획) , 최규화, 정윤영, 신정임 | 2015-12-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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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최약자들의 불안정노동 보고서

우리가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개인사를 간직한 채 지금 그곳에서 땀 흘리고 있을까? 성실하고 착하게 노동을 해왔는데 왜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왜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어야 할까? 왜 비정규직이라고 차별을 받아야 할까? 일터를 지키기 위해 왜 갖은 모욕감과 수치심을 참아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우리가 오히려 다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삶, 우리가 놓치고 사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이자 우리 사회 최약자들의 불안정노동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한 노동자의 개인사를 통해 노동의 풍경을 묘사하고 재구성했다. 되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절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왜곡 없이 전하려 노력했다. 르포작가의 목소리는 ‘후기’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다. 기록자로서 그들의 고민과 사유, 인터뷰의 행간을 접할 수 있는 후기는 또 하나의 흥미롭고 소중한 읽을거리이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본문의 영화 [카트]의 대사를 인용한 구절에서 만날 수 있다. 해고를 당한 마트 노동자 염정아가 시민들에게 외친 목소리다. “우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이 책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하고 우리 곁의 노동,노동자와 연대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작가들은 거리를 누비며 사람을 찾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연대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외롭게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은 외롭게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 불안정노동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비상사태에 빠졌다며 자칭 ‘노동개혁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 법이 통과되면 정말 이 책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걸까? 파견제가 합법화되고,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고, 해고가 쉬워지는데 사회의 약자들인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는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아 스스로 싸우고 있다. 심지어 봉혜영 씨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쫓겨나 700일이 넘게 홀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게 알고 보니까 앞이 안 보여요. 평범한 우리 아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비정규직 테두리 안에서 평생을 살아야 돼요. 집 한 칸도 살 수 없는 최악의 삶을…… 내가 사는 이 비정규직의 삶을 그대로 물려줘야 되는 거예요. 내가 살아본 비정규직 세월이, 이 대우가 만만치 않은데 나중에 애들한테 무슨 희망을 줘야 되나. 지금 싸워야 되지 않을까. 내가 유산이라고 물려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해고가 더 쉬워지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아닐까.

구매가격 : 9,100 원

어서와, 이런 철학은 처음이지? : 철학 읽어주는 남자들의 명쾌한 썰전

도서정보 : 파트릭 브라이텐바흐, 닐스 쾨벨 | 2018-09-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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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 답사하는 유쾌한 여행
독일 아마존 인문 분야 1위! 그림 온라인 상 수상!
뉴미디어문화학과 교수 파트릭 브라이텐바흐와 사회학과 교수 닐스 쾨벨의 철학 대담. 절친인 두 사람은 2011년부터 흥미로운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나답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서부터 사회 이슈 및 관련 쟁점이 망라된 전방위적 토론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뉴미디어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그림 온라인 상’을 수상했다. 방송 중 가장 인기 있던 내용을 추려 출간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저자들은 거침없는 대화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공동생활에 대한 핵심 의문을 다룬다. 정체성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가족과 사랑, 우정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어 시야를 확장해 사회 안에서 권력과 도덕에 대한 의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이데올로기와 근본주의, 폭력에 맞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무장할 것인지를 생각한다. 묵직한 질문에 도발적이고 신선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철학이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도전하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양식임을 깨닫게 된다.

■ 철학과가 사라져가는 이 시대, 철학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을 인지하고 자기효능을 확신하는 사람,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고 자신의 삶과 생각의 한계를 넘어 상상력을 발휘하고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은 불안이나 불안의 대상 앞에 무장이 되어 있다.’ ―마사 누스바움

그 어느 때보다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고 정보화되어 있으며 자율적인 삶이 가능해진 지금, 우리의 관심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실에 묶이고 가속화되는 속도에 에너지는 고갈되어간다. 이 틈을 타 선동적인 사람들은 단순명료한 해석으로 다면성을 극단화시켜 동요와 불안, 흥분과 히스테리를 조장한다. 가짜 뉴스가 만연하고 표피적 현상과 결과에만 관심이 쏠린 이러한 때,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불안에 맞서 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곧 철학이다. 철학은 자기성찰과 논쟁의 기술을 익히고 비판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미 19세기에 철학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은 곧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어떻게 함께 살지에 대한 물음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인류의 중요한 의문은 결국 세 가지 기본적인 물음, 즉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로 귀결된다고 말한 칸트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철학과 과학, 종교는 결국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떻게 우리가 되고, 우리 공동체에는 어떤 합의가 깃들어 있는가.’
가장 중요하지만 잊혀가고 있는 기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저자들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철학적 개념을 설명하고 중요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풀어준다. 그리고 지극히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런 사상구조가 지금의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주제로 되돌아온다. 철학은 죽은 학문이 아니라 지금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기둥이다.

구매가격 : 9,000 원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도서정보 : 이수영 | 2013-07-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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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극치 시대”, 우리는 왜 『에티카』를 읽어야 하는가!
환상과 망상을 전복하는 스피노자의 개념적 항연!
인간을 위한 실천적 윤리학, 『에티카』 다시 읽기

무한한 긍정으로 가득한 『에티카』 읽기

한국 사회 내에서 스피노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범신론자, 정치철학자, 혁명가 스피노자부터 ‘내일 지구가 종말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사실 이 말은 성서번역으로 이름 난 루터의 말이다)고 말했다던 렌즈 세공가이자 금욕주의자인 스피노자까지. 그러나 이런 수식들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20세기 이후 현대 철학자들이 스피노자를 다시 읽어냈고, 그들의 이론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오해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지만, 스피노자는 여전히 많은 벽 속에 갇힌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선 스피노자의 철학 자체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스피노자의 대표 저서로 알려진 『에티카』는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증명 방식의 구성, 철학적인 개념들의 자기 해석,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난해한 서술 때문에 ‘읽을 수 없는 텍스트’라는 누명을 벗기 어렵다. 게다가 국내에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나 강의도 드물다. 스피노자 연구자도 다른 철학자들에 비해 적고, 스피노자의 저서도 풍부하게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책 『에티카, 자유의 긍정의 철학』을 쓴 이수영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피노자를 처음 만났다. 대학 시절 그에게 『에티카』는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던 텍스트였다. 그러다 우연히 들뢰즈를 통해 스피노자를 접하면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획득했고’, 다시 『에티카』를 읽으며 ‘읽기의 혁명성’을 경험했다. 그러자 자신의 삶에서 스피노자를 알지 못하던 시기와 알고 난 후의 시기가 나눠지기 시작했고, 스피노자가 말한 공동체적인 세계를 꿈꾸며 실천하는 삶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공부한 스피노자를 사람들과 공유해야 했다. 함께 읽고, 강의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다. 특히 소외된 여성들이 모여 있는 공간인 여성자활공동체 W-ing 구성원들과 여러 차례 함께 읽어나갔다. 어렵고 복잡한 읽기의 과정을 거치자 스피노자의 ‘긍정’과 마주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이를 보며 스피노자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책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스피노자의 주요 개념들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철학 입문서!

스피노자의 대표작 한 권을 꼽으라면 단연 『에티카』일 것이다. 신, 세계, 인간에 대해 서술하는 이 책은 1661년경부터 1675년 사이에 쓰였고, 1675년에 출판이 시도되었지만 정세의 불리함으로 인해 실패하고 사후에 출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이 틀림없다면 무려 15년에 걸친 고된 사색의 결실이다. 45세(1677년)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에티카』는 스피노자 삶에 있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생명력이 가장 고조된 청장년기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서라 할 수 있다. 긍정과 자유로 가득한 세계를 보여주는 혁명적인 텍스트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 의미는 『에티카』를 읽었을 때 획득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읽느냐이다. 독자들은 수학적인 정의, 증명, 주석, 명제 등의 요소들을 스스로 엮어나가며 체계를 세우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저자 이수영은 스피노자의 이러한 구성이 전략적인 실천의 일부라고 밝히며, 스피노자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국내에 나와 있는 『에티카』 번역서 두 권에서 놓친 부분을 바로잡고 다시 번역해 본문에 실었다. 기본적으로는 『에티카』의 기본 줄기를 따라가지만, 들뢰즈가 이 책처럼 많은 비판을 받은 경우는 없다고 말했던 『신학정치론』을 비롯해 『지성교정론』, 『정치론』 등의 저서들도 함께 읽어나간다. 가령 스피노자의 신을 중요하게 다루는 1부에서는 『신학정치론』의 주요한 부분을 함께 인용해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스피노자가 당시 동료나 독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과 스피노자를 연구해온 들뢰즈와 카트롱의 철학서들, 국내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논의를 넘나들며 스피노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그 어느 박사논문보다도 체계적이고 충실하게 짜여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신, 속성, 감정, 평행론, 신체, 공통 개념, 심신평행론’ 등과 같은 스피노자 식 개념들을 충실하게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저자 이수영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철학적 개념의 발명가’다. 그가 새롭게 창안해낸 개념들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개념 하나하나가 실천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에티카』는 ‘신’에 대한 내용에서 시작하고 그것이 인간에 대한 윤리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신’을 규정하는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인간과 세계를 보는 스피노자의 시선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 〈신의 긍정성에 대하여〉가 ‘속성’, ‘실체’, ‘양태’ 등 스피노자의 주요 개념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해 ‘양태적 구별’, ‘속성상의 구별’로 확장해가며 서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을 따라가면 신학적인 신과는 다른, 만물의 생성과 더불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필연적인 스피노자적 신과 만나게 된다. 2부 〈세계의 필연성에 대하여〉에서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이루어진 스피노자의 세계를 다룬다. 이 부분을 통과하고 나면 스피노자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신과 세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그간 스피노자와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인문 독자들에게 유용한 읽기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적 망상과 환상을 깨트리는 망치의 철학!
긍정과 자유, 필연의 세계를 향한 스피노자 읽기!

스피노자가 살았던 당시의 네덜란드에서는 군주제와 전쟁을 옹호했던 대중들이 공화주의자들을 공격했고, 거리에서 살인이 연일 벌어졌다. 망상, 원한과 분노로 가득했던 세계를 향해 스피노자는 말 걸기를 시도했다. 왜 인간은 원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증오하게 하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야만의 극치’인 사회는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스피노자는 이와 같은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책에 담았다. 물론 돌아온 건 엄청난 비난과 저주와 고발뿐이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나 『신학정치론』 등이 이러한 배경에서 쓰였다는 점은, 이 책이 당시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피노자의 문제의식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령 신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으며, 신이 세계를 구원하며 바꿀 수 있다는 것, 국가만이 최종 목적이라는 것과 같은 망상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만연되어 있는 현상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망상과 환상을 깨트리는 스피노자의 작업이 결코 관념적이거나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가령 3부 〈정신과 신체의 본성에 대하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심신평행론’은 통념을 놓고 싸우는 일종의 전투와도 가깝다. 심신평행론은 스피노자가 강조하는 개념 중의 하나로 데카르트가 정신이 신체보다 우월하다고 한 점을 비판하며 정신과 신체는 평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정신이 신체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정신만이 우월하다고 여겨온 생각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4부 〈인간의 예속과 자유에 대하여〉에 나오는 자유와 긍정의 문제도 스피노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정념’에서 벗어나 ‘자유’를 획득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면서 홀로 사는 자유인이 아닌, 함께 구성하면서만 개척되는 공통 개념의 ‘자유인’을 제시한 스피노자의 이론을 설명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이 세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존재론), ‘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인식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윤리론)와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스피노자 식의 이 과정을 통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나 원한의 근원과 마주하며 무한한 긍정으로 세계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을 믿고 난해하고 복잡한 스피노자의 철학을 이 책과 함께 넘어서보면 어떨까? 우리도 스피노자를 알기 전과 안 후로 삶이 나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구매가격 : 11,200 원

동네북 경제를 넘어

도서정보 : 제정임 | 2013-02-2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MB는 몰랐던, 박근혜 시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경제 이야기

한국 경제는 왜 글로벌 동네북이 되었을까?
최저임금을 높이면 중소기업이 힘들까?
재벌들이 창출한 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삼성이 없으면 대한민국은 망할까?
원자력 발전, 정말 경제성이 높을까?

5년 전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만은 살려줄 것이란 기대와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기대와 확신은 허탈과 분노로 바뀌었다.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 벌써부터 경제민주화는 물 건너갔다느니 박근혜의 공약은 ‘먹튀 공약’이라느니 하는 말들이 들려온다.
제정임의 《동네북 경제를 넘어》는 지난 5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왜 국민들에게 허탈과 분노, 배신감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그 핵심은 어디에 있는지를 진단한다.
《동네북 경제를 넘어》는 왜 한국 경제는 갈수록 악화되는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위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진짜 해법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책이다. 세계 경제위기, 금융시장, 부동산, 가계부채, 노동문제, 복지사회, 남북문제 등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주제를 중심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안철수의 생각>을 쓴 제정임이 제시하는
한국 경제의 해법!

《안철수의 생각》의 공저자로, 안철수를 인터뷰하고 책을 썼다는 것 때문에 지난해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제정임은 이미 언론계와 경제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에서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로 14년간 일하다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언론인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경제와 금융뿐 아니라 노동과 산업 등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한 고른 안목과 식견을 갖춘 전문가로 손꼽힌다. 또한 제정임은 맹목적인 신자유주의 추종자들, 성장제일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 사회에서 지난 5년간 묵묵히 진보적인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학자로, 각종 방송과 신문 매체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19일, 많은 이들을 ‘멘붕’에 빠뜨렸던 대선 결과는 그를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있게 만들었다.

“이 책은 지난 대선의 결과가 달랐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결과였다면 저는 지금쯤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개혁 정책의 ‘각론’에 대해 논평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경제를 보는 시각,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판단이 다른 정부를 맞게 되면서 저의 숙제도 달라졌습니다. (…) 여기에 제시된 생각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폭 넓게 토론하는 데 재료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향후 5년의 정책을 담당할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읽고 성찰해주길 희망합니다.” - ‘들어가는 말’에서

누가 한국 경제를 글로벌 동네북으로 만들었나?
박근혜 정부는 MB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1부 ‘글로벌 위기의 동네북 한국’은 대외 의존성이 너무 높아 세계 곳곳의 위기가 생길 때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한국 경제의 취약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 해법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색한다.
저자는 한국 경제가 바깥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두들겨 맞는 ‘글로벌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은 ‘개방만이 살 길’이라며 선진국 입맛에 맞는 세계화를 강행한 역대 정부의 정책에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감세와 규제완화’의 역주행을 고집한 이명박 정부의 과오는 뼈아프다. 하기에 새 정부에게 ‘무분별한 개방’이 아닌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 등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생각하고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분별 있는 정책’을 펼칠 것을 주문한다.

휠체어 재벌과 철탑 위의 노동자들
공격받는 사회 정의와 성장 동력

2007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배임과 횡령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명령으로 풀려났다.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역시 2006년 회사 돈을 횡령했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경영에 복귀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탈세하고 배임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대통령 특별사면까지 받았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런 점을 지적하며 “한국 재벌 총수들은 일만 터지면 휠체어로 탈출한다”고 비꼬았다.
‘휠체어 재벌’이란 말은 유전무죄(有錢無罪)와 함께 법치가 유린당하는 한국 현실을 상징한다. 국가적 자원과 기회를 독식하며 성장한 재벌이 법질서 이에 군림하는 그 반대편에는 억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철탑에서 엄동설한을 버텨내는 노동자들이 있다.
2부 ‘휠체어 재벌과 철탑 위의 노동자들’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사회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구매력 하락과 내수 부진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을 잃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재벌의 기를 살리고 노동자의 입을 막는 것’ 대신 ‘재벌이 법을 지키게 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임을 강조한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이
중산층을 복원할 수 있을까?

2010년 말썽꾼으로 유명한 영국의 축구 선수 루니가 소속팀과 5,000만 파운드(약 900억 원)짜리 계약을 했다는 기사가 뜨자 영국 네티즌이 발끈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런 짧은 댓글도 달렸다. “그래도 그 중 50%는 세금으로 나간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중산층의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는 ‘중산층 재건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의 10대 공약 중 하나다. 중산층을 늘리고 경제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한 방법이다.
달항아리는 보름달처럼 둥글게 생긴 전통 도자기를 가리킨다. 3부 ‘달항아리 같은 복지사회를 향하여’에서는 달항아리처럼 중산층이 두텁고 국민 전체의 삶이 안정된 사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편적 복지가 확충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부유층에게 응분의 세금을 걷어 점진적 증세를 해야 하고 한 푼의 세금도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하는 재정개혁도 필요하다. 과연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중산층 복원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
지속가능한 경제가 필요하다

4부 ‘원전, 성장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와 5부 ‘식탁의 평화마저 위협받는 세상’은 환경과 생태가 경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정부는 후쿠시마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원전은 안전하며, 경제성이 높고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서유럽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을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안전과 환경,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에너지 구조를 ‘원전 마피아’와 같은 소수 집단의 독단에 맡기지 말고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자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대량 생산, 시장 개방 등으로 위협받는 국민 건강의 문제도 심각하다. 기후 변화로 식량자급의 문제도 매우 중요한 경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수출대기업의 이익에 치우친 통상 정책이 식량안보와 식품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정책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국민 건강도 지켜야 한다.

경색된 남북관계, 후퇴하는 민주주의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 간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4대강 공사, 재개발 토건 사업, 금산분리완화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 등 경제적 역주행만이 아니라 대북 적대 정책으로 경제 발전의 중대한 기회를 놓쳐버렸다.
6부 ‘남북, 크라잉게임은 이제 그만’에서 저자는 북한을 한반도의 ‘화약고’가 아니라 대륙으로 통하는 우리의 ‘경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북한 리스크’의 관리,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인적, 물적 자원, 금강산관광과 남북 경협 등 남북의 화해와 평화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본 권력에 포섭된 언론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일까?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놓은 채 오히려 한국 사회 내의 합리적 소통을 틀어막고 언론을 길들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지금, 엉클어진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7부 ‘언론이 살아나야 희망이 있다’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재벌과 정부의 눈치를 보는 언론, 거기에 침묵하는 지식인들의 책임을 묻고 있다. 기득권층의 독주와 독선이 경제 정책을 포함한 한국 사회 중대한 결정들을 그르쳐왔으며 이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론이라는 ‘공론장’이 하루빨리 제 역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언론 종사자들만이 아니라 각계 전문가와 지식인이 각성하고, 시민들의 연대와 감시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구매가격 : 9,660 원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

도서정보 : 김순천 | 2013-01-0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바른말을 했다고 쫓아내는 회사,
돈이 있어도 월급을 주지 않는 회사,
수없이 노동자가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회사,
용역을 투입해 노조를 파괴하고 일상적으로 직원을 괴롭히는 회사…….
세계 최장 시간 노동을 하는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은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나 돌아오는 회사에서 당신은 과연 행복과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이 책의 첫 장은 비어 있다!

“원고를 다 완성해놓았는데 인터뷰했던 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피해를 입을까봐 못 싣겠다고 한다. 고민 끝에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이 공간을 남겨놓기로 했다.”

책 첫 장에 실리기로 했던 삼성전자 노동자의 원고는 결국 싣지 못했고 고심 끝에 그 페이지는 비어 둔 채 출판하기로 했다. 익명으로 했음에도 회사가 자신을 추적해 피해를 줄까봐 인터뷰 삭제 요청을 한 것이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의 시계바늘은 중세를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 월급쟁이들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모든 월급쟁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과 당신의 회사는 안녕한가요?

대통령 선거 직후 다섯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 법원의 판결도 사회적 여론도 미치지 않는 성역, 기업을 어찌할 것인가?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삼성반도체, 한국타이어…… 이러한 일들이 단지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결코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고,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보고서다. 이 책은 바로 당신의 안부를 묻는 책이자 우리 시대의 안녕을 묻는 책이다.

대기업과 공기업, 하청업체, IT업계 프리랜서와 취업준비생,
중앙대를 인수한 두산과 사회적 기업……
한국 기업의 문제를 여러 각도로 접근, 심층 취재한 ‘다면적 보고서’

르포작가 김순천은 이 책에서 20명에 가까운 대기업과 공기업 사무직 노동자, 하청업체 여성노동자, 해고노동자, 프리랜서, 취업 준비생, 공인노무사와 학생회 간부 등을 인터뷰했다. 저자가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업에 다니는 많은 이들의 고통과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기업이 어떠한 구조이기에 수많은 유무형의 고통이 배태되고 삶을 이토록 퇴행시키는지 알고 싶었다. 우리가 음식이나 몸을 하나의 문화 연구의 대상으로 보듯 기업도 하나의 문화로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계기는 바로 23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쌍용자동차 사태였다.

“어느 한 회사가 그렇게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데 다른 회사라고 안전할까? 사회학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어떤 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 그 회사 자체의 모습만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쌍용자동차가 아닌 일반 기업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놀랍게도 우울증, 왕따, 스트레스, 물리적ㆍ정신적 폭력, 사내 정치, 은밀하게 진행되는 폭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고통을 받는 동안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한 경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저자 서문에서

“이런 개 같은 자본주의가 어디 있어요?”
노동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우리 시대 기업의 맨얼굴!

이 책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차별과 설움에도 회사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반월공단 여성노동자의 간절한 바람, 성과급과 내부 경쟁을 통해 파괴되는 인간관계와 모멸감, 시시각각으로 조여 오는 정리해고의 불안, 경영권 참여는 고사하고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빼앗긴 노동자의 참담함, 기업에게 장악되는 대학을 지키고자 애쓰다 징계와 퇴학을 당하는 대학생들의 기막힌 사연과 마주하게 된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온갖 양보와 희생, 노력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량 정리해고와 연이은 23명의 죽음이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이런 개 같은 자본주의가 다 있어요?”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하루 종일 하얀 파티션만 바라보게 하는 회사, 화장실에 갈 때도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회사, 휴게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약을 달라고 했더니 아예 냉장고를 통째로 떠메고 가져오는 회사, 아침 6시 반 빵을 먹으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전담 감시자가 있는 회사. 사원 대표로 사원들의 권익을 대변하다 해고된 박종태 씨가 이야기하는 삼성의 모습은 참으로 기묘하고 엽기적이다.

1년이 아니라 한 달에 5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간 한국타이어도 다르지 않다. 유족에게 산업재해보상금을 주면서 입막음을 시키고 동료들에게는 근조 리본도 달지 못하게 한다. 그 한국타이어는 직원 8~9명에 한 명꼴로 고충상담원이 있고 주임도 고충상담원 완장을 차고 다닌다. 대한민국 기업 중 가장 많은 고충상담원이 있는 기업이라는 한국타이어에서 직원들은 오늘도 고충상담원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들이 기울인 기업 회생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상여금 200% 반납, 체불임금 반납, 근무시간 5시간으로 조정, 비정규직 임금에 대한 노조 부담……. 더 이상 노동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그들은 옥쇄 파업에 들어갔고 처참하게 끌려나와 죽음의 행렬로 내몰렸다.

한편 놀랍게도 컨택터스라는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 회사의 폭력으로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SJM은 불과 얼마 전가지만 해도 바람직한 노사관계로 유명했던 회사라고 한다. 어쩌다 그런 회사까지 악덕 기업의 행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김신태 SJM 노동자의 이야기 속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어버린 세상의 끝을 엿볼 수 있다.

선망의 직장으로 꼽히는 공기업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둘이 마주보고 뺨을 때리게 하는 형벌처럼 직원들끼리 ‘사랑의 작대기’로 해고를 한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업 운영과 모든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성과급제, 점점 줄어드는 인력과 늘어나는 업무량. 금융계 공기업에 다니는 김성오 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모든 관계가 망가졌고 성격마저 바뀌었다고 한탄한다.

그래도 대기업 하청업체들이 밀집한 반월공단의 여성노동자 준서 씨는 회사에서 존중받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인정받을 곳이 회사밖에 없잖아요.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살맛이 나니까요. 야단이나 맞고 있고 박스로 머리나 맞고 있으면 우울하잖아요.” 그이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기업, 회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업장, 주로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는 곳의 열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밥과 김치만으로 중노동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 단백질을 보충하고 있다.

한편 두산 그룹이 인수한 중앙대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은 기업이 하나의 사회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자료다. 기업식 경영기법의 도입으로 취업률에만 근거해 평가되고 사라지는 학과들, 월급쟁이가 되어버린 교수들, 대학총장이 자기 입으로 학생을 사찰시켰다고 말하는 학교, 거듭되는 징계와 퇴학……. “대학의 기업화는 곧 기업이 사회를 장악했다는 것”이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진단한다.

괴물이 되어버린 기업을 어찌할 것인가?
어떻게 기업에서의 삶이 인간의 삶이 되게 할 것인가?

이 책은 기업 행태의 고발에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철학자이자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의 저자 김상봉 교수,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기업문화 오디세이》의 저자인 신상원 기업문화 전문가, 박혜영 공인노무사, 김준호 심원테크 사회적 기업 대표이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의 기업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 또한 모색한다.

김상봉 교수는 "기업에서의 삶이야말로 우리 세대 인간의 삶을 가장 전형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스펙을 쌓아야 하는 취업준비생들, 취업준비생이 되기 위해 입시와 사교육으로 시달리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들을 보살피기 위해 매일 지옥 같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부모들, 우리 모두가 얽힌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기에 기업에서의 삶을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삶이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주식회사가 자본주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가장 지배적인 기업 형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지 않고서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지요. 개인 기업은 개인의 사유재산이고 개인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주식회사는 공동체입니다. 주식회사가 우리 삶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하지만 주식회사를 노동자들이 생산 주체가 되는 생산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삶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국가를 넘어서는 좋은 의미의 세계화, 지구화를 견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공동체가 될 수도 있죠.”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책임 투자를 강조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업에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그런 ‘책임’이 아니다.

“과거 재벌에게 줬던 자본들과 제도적 지원을 시민사회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사회는 그 자금과 제도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윤리적 소비자나 책임 있는 투자자를 키우는데 기여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와 기업의 힘을 맞춰야 하며 서로 합리적인 소통을 통해 경제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 합니다. (…) 시민사회나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그 대한 세력의 힘도 함께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기업 자체도 성숙할 수 있고 기업인들도 사회를 더 깊이 되돌아볼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는 것이죠.” -이원재 전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하기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심원테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심원테크 김준호 대표이사는 장애인 고용으로 시작된 실험을 많은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으로까지 밀어가고 있다. 그는 대부업도 사회적 기업을 신청한다며 무늬만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가가 중요하며 공적 이익이 있어야만 100년, 200년 가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에게도 마음이 있다!
기업을 인문학의 대상으로 보는 새로운 시선

신상원 기업문화 전문가 또한 공익을 강조한다. 그는 기업들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기업의 목적은 오직 이윤추구라는 "만들어진 허구의 신화"를 깰 것을 주문한다. 역사적으로 기업의 탄생은 이윤추구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방향, 어떤 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은 결과 등장했다는 것이다.

“기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업을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기업에는 수많은 꿈과 자아실현과 가족과 인생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신상원_ 기업문화 전문가, 《기업문화 오디세이》 저자

기업문화는 기업의 마음이기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유전자처럼 강한 힘을 갖고 있고 그러므로 기업문화는 직원은 물론 고객까지 변화시킨다. 그는 주주만을 위한 경영이 아닌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소비자, 주주, 경영자들이 함께 가는 이해관계자들 모두를 위한 경영을 이야기한다. 또한 정리해고를 일상적으로 하는 기업과 고용안정성이 높은 기업 중에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평가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민주적 조직문화의 모범사례를 만들고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는》는 지금까지의 기업으로 인한 불행을 직시하고 더 나은 기업, 더 나은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20여 명의 삶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당연히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추천사

저는 지금 우리 시대 노동자들은 거의 노예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으로서는 주권자인데 노동자로서는 예속적인 노예 상태이고, 둘 사이에는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전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예속된 상태에서, 인간관계가 적대적인 상태에서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지옥이죠. -김상봉_ 전남대 철학과 교수,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저자

기업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업을 인문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기업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고 그러므로 특정한 문화를 형성하고 그 안에 수많은 꿈과 자아실현과 가족과 인생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오직 돈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말로가 불행해지듯, 그런 사회에 범죄가 만연해지듯, 기업들도 이윤추구만이 존재 이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각자 그 존재의 의미, 업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신상원_ 기업문화 전문가, 《기업문화 오디세이》 저자

기업들도 성과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나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서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겁니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기업보다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회사가 더 좋은 기업일 수 있으니 고용안정성에 대한 평가도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경영을 잘하는 것인지, 운영을 잘하는 것인지 체계가 만들어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은 기업 자체에서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하나의 좋은 리더의 성향으로 인정해주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최승원_ 대전대학교 산업광고심리학과 교수

구매가격 : 11,200 원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도서정보 :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몽, 김준우, 허오영숙, 김일란, 깡통, 진경, 토리, 석진, 나영 | 2013-04-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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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눈물이 고이다가도 미소가 번지는
이 시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보낸다!

비혼모,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게이, 이주자, 청소년과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인권운동사랑방이 소수자들을 만나고 듣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재구성하다.
차별이 일어나는 삶의 틈새에서 전송된
다르면서도 닮은 당신과 나, 우리의 이야기

“(이 책은) 차별을 겪은 사람들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글쓴이들은 반차별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다. 이들은 오래오래 고민한다. 선언적 명제가 아닌 감수성의 차원에서 반차별 운동을 펼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차별을 겪는 사람의 느낌을, 몸에 새겨진 그 경험을 그/녀의 삶의 맥락에서 도려내지 않은 채 통합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삶을 들려주는 이들의 목소리와 글쓴이들의 손이 함께하는 글. 오랜 고민과 여러 번의 실험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
- ‘추천사’에서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
2007년 참여정부가 내놓은 차별금지법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는 차별금지 사유에 적시된 ‘성적 지향’이었고, 이를 삭제하라며 열린 집회에서 등장한 저 문구는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을 당혹하게 했다.
어떤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성별정체성 때문에 차별받거나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는 ‘동성애 차별금지=동성애 조장=남자 며느리’라는 등식을 통해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반인륜적, 반사회적 주장으로 내몰렸다. 결국 참여정부는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을 비롯해 출신 국가, 가족 형태, 범죄 경력, 학력과 병력 등 7개 항을 슬그머니 지워버렸고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2013년, 차별금지법과 성적 지향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 어느 말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어느 말로도 설명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한 다른 이야기
2007년 그 사건 이후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많은 언론들은 차별금지법에서 제외된 항목들에 해당하는 차별 피해 사례를 알려달라고 했다. 마치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누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전과자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주문 앞에서 반차별운동 활동가들은 차별 당사자, 소수자를 직접 만날 필요를 절감했고 2011년 인권운동사랑방의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문 인터뷰어나 생애구술 작업을 업으로 삼는 학자가 아닌 활동가들이었기에 작업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보고서를 계획했다. 차별의 다양하고 생생한 양상을 드러내고 차별이 이러저러한 문제를 낳으니 “우리 함께 차별에 맞서 싸우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보고서. 하지만 인터뷰 녹취를 풀고 함께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의 형식으로 전하고 싶어졌다.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 대중매체에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사례나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느꼈던 설렘과 먹먹함으로 생생하게 재현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호명되기를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
이야기와 만난 반차별운동
1장 승민의 이야기는 한 비혼모가 자기와 같이 수업을 듣는 동료 학생들에게 특강 형식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 승민은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이는 이른바 정상가족에게는 어떠한 결핍도 없냐고 되묻는다.
2장 희수의 이야기는 트랜스젠더로 사법부에 성별변경을 호소하는 탄원서다. 희수는 자신의 신분증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성별주체성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에 대해 자신은 한 번도 주체성을 잃은 적이 없다며 자신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성별을 정정해줄 것을 호소한다.
3장 수민의 이야기는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베트남에서 결혼이주를 한 수민은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고 베트남에서 모셔온 베트남 국적의 엄마와 한국 국적인 딸, 이렇게 다국적 가족을 구성하여 행복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 반면 5장 타파의 이야기는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들어와 가정도 꾸렸지만 결국 공장에서 일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타파를 기억하는 활동가의 회상으로 겉으로만 화려한 다문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고 있다.
4장 정현의 이야기와 8장 서윤의 이야기는 자신의 성정체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생애주기에 따른 ‘키스’라는 성애적 경험과 ‘신공’(신촌공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성소수자 청소년의 성장사를 들려주고 있다면 6장 이숙의 이야기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 어떻게 세상과 사회에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타협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7장 민우의 이야기는 흔히 에이즈라고 불려지는 ‘HIV 감염인’이 목소리를 통해 감염인들의 인권을 위해 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들려주며 9장 영석의 이야기는 청소노동자인 명희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영석, 그리고 청년실업 상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영은, 세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 형식으로 삶의 현장, 일터와 삶터에서 만나게 되는 차별의 문제를 짚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과연 차별을 없앨 수 있을까?
이렇게 재현된 각각의 이야기마다 반차별운동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해온 활동가들의 글을 한 편씩 덧붙였다. 장애, 퀴어, 이주, 성별정체성, 반성매매, 노동 등 각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들의 글은 차별이 한국사회의 어떠한 맥락 속에서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며, 한 개인이 가진 여러 정체성 중에서 하나의 정체성에 갇힌 차별이 아니라 중첩되고 교차하는 정체성 가운데 차별이 놓인 자리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마지막에 실린 남은 이야기 ‘일터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날까’와 ‘반차별운동은 정체성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는 한국사회 반차별운동이 어떤 고민을 중심으로 차별 문제를 대해 왔는가와 함께 앞으로 반차별운동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다시금 불거진 차별금지법. 반차별운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별에 대한 법적인 구제 장치를 만드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진정으로 한국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색 중이다. 그 첫 출발인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를 수신하고 전송하는 것이다.
이ㆍ어ㆍ말ㆍ하ㆍ기. 그/녀의 삶은 이렇게 우리에게 전송되었다. (…) 모든 글에서 우리는 내 귀를 가볍게 두드리는 전언을 만나게 된다. 내ㆍ게ㆍ수ㆍ신ㆍ된. 이제 ‘나’는 그 전언이 꼭 짚어서 바로 ‘나’를 향한 것임을 인정해야 하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야 한다. 언젠가 내가 보낸 전언을 향해 귀를 열 나의 이웃, 당신을 위해서라도.
- ‘추천사’에서

■ 추천사

한겨울 등 뒤로 누군가 눈 조각을 집어넣는 느낌이다. 파격적인 말 걸기를 시도한 책이다. 그렇게 말 걸어온 이들은 피해자나 불행한 자로서가 아니라 살아갈 이유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중심에 꽂히는 삶의 이야기들, 이건 다르면서 닮은 우리 모두의 삶의 이야기다.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차별’이라는 말은 일반화되지 않는다. 차별이 일어나는 그 모든 삶의 틈새들 속에서 저마다 고유하고 강렬하게 오직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차별당하는 변두리 삶 속에 곡진하게 엎드려 있는 이 책속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차별의 상황을 성찰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난다. 이것은 인간의 총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가장 적극적인 자세 중 하나다. 나와 너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살아 있는 몸에 피가 흐르듯 실개울 같은 이야기들이 흐른다. 귀 기울여 더불어 함께 듣다보면 이 이야기들 낱낱이 세상을 향해 따뜻한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김선우 시인. 소설가

차별을 철폐하려면 소수자들의 집단적 연대가 필요하지만, 결국 ‘집단’이 아닌 ‘개별적 주체’로서 다시 등장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개별적 주체들이 세상을 향해 특별한 말을 건네며, 어쩌면 가장 급진적일 수 있는 실천을 감행한다.
-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구매가격 : 9,100 원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도서정보 : 이주여성인권포럼 | 2013-03-0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우리 안의 타자, 그 낯선 얼굴과 마주하기,
말 걸기, 함께 살기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공존을 위한 다문화를 모색하는 아래로부터의 실천이다.

#1.
1993년 11월, 동네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던 찬드라는 식사를 마친 후에야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분식집 주인은 한국어가 서툴렀던 그녀를 무전취식으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행려자로 오인하여 청량리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그녀가 아무리 서투른 한국말로 “나는 네팔에서 돈 벌러 온 사람”이라고, “공장에 가면 네팔 여권과 비자가 있다”고 호소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6년 4개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뒤 풀려나 네팔로 돌아갈 수 있었다.

#2.
2012년 10월 1일, 이주노동자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와서 10년째 한국 학교를 다닌 발공은 몽골과 한국 청소년들의 싸움을 말리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경찰은 그에게 싸움에 가담한 몽골 친구들에게 연락하도록 시켰고 경찰서로 친구들이 오자 통역도 시켰다. 밤새 경찰서에서 잠 한 숨 못자고 수사를 도왔던 발공은 다음날 아침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수갑을 찬 채 보호자 면담도 못하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고, 10월 5일 보호자도 없이 인천국제공황을 통해 몽골로 추방되었다.

이주민 120만 시대
과연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한국 사람들’이란 말은 흔한 표현이다. 여기에 무엇이 한국/한국인이며 어디까지가 한국/국민인지에 대한 질문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점점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주해오면서 이러한 동질성에 대한 믿음은 도전받고 있다. 아직도 단일민족이란 허구적 신화가 견고하지만 ‘열린 다문화사회’, ‘글로벌 코리아’란 구호도 생경하지만은 않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감수성, 인터넷 검색창이 ‘다문화’를 적어 놓으면 끝도 없이 길게 제목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십 수 년 동안 다문화라는 말이 귀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제 서로 다른 문화들이 공존 가능한 다문화사회가 된 것일까?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다문화사회/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교육은 이주민의 한국어와 한국문화 익히기로 수렴되거나 ‘다문화 가정’ 2세들의 보완적 교육프로그램으로 축소되어 이해된다. 정부는 한편에서는 다문화와 글로벌 인재의 이중국적 허용을, 다른 한편에서는 출입국 관리감독과 단속추방의 강화를 이야기한다. 거기에 이주민을 사회불안 요인, 양극화의 주범, 잠재적 범죄자로 겨냥하는 반다문화 이데올로기 또한 예사롭지 않다.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진정한 다문화사회란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 차이 덕분에 모든 영역에서 평등하게 서로 조력하며 민주주의 공동체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러한 환경을 위해 ‘누가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우리’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문화사회가 지향하는 공존의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는 ‘다문화 교육’이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그에 따라 교육 내용과 형식이 소개되는 현실을 보면서 포럼 구성원들의 각자의 경험과 그동안 포럼에서 이루어진 토론을 바탕으로 다문화/공존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 다문화사회의 비전의 주체가 누구인지, 정책이나 구호에 빼앗기지 말아야 할 사유나 느낌은 무엇인지, 그 출발 지점은 어디인지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 이 책이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 ‘들어가는 말’에서

이주인권 현장 활동가, 학자, 변호사들이
이론과 현장, 법과 제도를 횡단하며 엮은 공존을 위한 다문화 지침서

이 책의 저자인 ‘이주여성인권포럼’은 길게는 10년 넘게, 짧게는 5년 정도 이주/인권 현장에서 활동해온 활동가, 학자,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겪는 다양한 인권 침해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하고자 2005년 만들어졌다. 이후 이주여성인권포럼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주와 이주민에 대한 중요한 담론을 생산해냈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에서 관리와 통치의 수단으로서 다문화 정책이나 추상적인 다문화 지지와 옹호를 넘어 혼종적 접촉 지대로서 다문화 현실을 지향하고 아래로부터의 다문화 실천이다.

책은 필자들의 관심과 활동 분야에 따라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누가 한국인인가’는 한국인의 자연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이해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한국인은 어떻게 한국인이 되었는지, 거기서 혼혈인은 어떻게 배제, 추방되었는지를 살피며 독자는 우리 안의 타자, 낯선 우리의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2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는 문화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철학적 사유를 통해 다문화를 편협하지 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자민족 단일문화 중심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위한 기본적인 인식틀을 제공한다. 또한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는 반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환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진 3부 ‘변화하는 현장을 찾아서’에서는 다문화사회로의 역동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트랜스젠더이자 이주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의 이야기, 본국으로 돌아간 어느 이주노동자의 한국과 본국에서의 삶,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공동체와 성매매 이주여성의 쉼터라는 장소의 중요성, 그리고 일본 다문화공생의 문화적 실천에 대한 일례로 일본 FMYY의 사례 등 다문화사회의 비전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만날 수 있다.

마지막 4부 ‘법과 제도’는 통치 수단으로서의 법과 ‘지금 이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모색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게 되는 이주여성의 문제, 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던 이주민 운동의 역사와 앞으로의 실천적 과제, 국민국가의 미등록 이주민 정책에 대한 분석 등 다문화 공존과 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은 이론과 현장, 법과 제도를 횡단하며 건져 올린 생생한 고민을 통해 공존을 위한 다문화를 그려보게 하는 교육서이자 [미녀들의 수다]의 재미나 [완득이]의 감동을 넘어 다문화란 말을 한번쯤 고민해본 적 있는 독자라면 한국 사회 다문화에 대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풍부한 이해와 사유를 가져다줄 입문서다.

구매가격 : 10,500 원

엄마의 탄생

도서정보 : 김보성, 김향수, 안미선 | 2015-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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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터 육아까지,
‘평범하지만 처절한’ 대한민국 엄마 분투기


사회가 만든 ‘엄마 노릇’에 억눌려온 진짜 엄마들의 목소리를 만나다
“지금은 그냥 버티는 거예요. 애들은 어리고, 내가 안 버티면 무너지니까.”

2010년대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운다는 것, 건강하게 양육한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그 의미를 저자들은 여성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분석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갈등과 고민이 생겼을 때 “엄마니까” “그땐 다 그래. 조금만 견뎌봐라”라는 말 말고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경하고 때로는 괴상한 ‘엄마 노릇’에 의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엄마 역시 부모 중 한 사람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는 아이를 위해 뭐든지 참고 견뎌야 하는 걸까? 대체 어디까지가 ‘엄마 노릇’이란 말인가?
-프롤로그 ‘지금,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나’에서



엄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엄마의 탄생》은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여성의 관점으로 파고들어간 책이다. 당연시되고 때로 강요되는 ‘엄마 노릇’이 사실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분석, 그 속에서 당사자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생생한 목소리, 그리고 대안을 제시한다.
신성불가침 영역인 ‘모성’을 철저히 현실에 비추어 구조적으로 해부했을 뿐 아니라, 이론과 당위에 가려져 간과되기 쉬운 실제 평범한 엄마들의 삶과 생각, 주체적인 분투까지도 담아냈다.


‘현신적인 어머니’와 ‘무개념 초보맘’ 사이에서 지워진 여성들
이 책은 오래된 사회적 통념과 편견 아래 굳건히 자리매김한 ‘엄마 노릇’에 의문을 던지고자 기획되었다. 완벽한 모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엄마 역할 또한 여성과 아이의 외부에서 ‘만들어져’ 주입된 것임을 추적해 밝히려 했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 아래서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들은 ‘헌신적인 어머니’로 찬양받거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엄마’로 비난받거나, 그도 아니면 ‘개념 없는 초보맘’으로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 극단적인 평가들 모두 실제 여성의 현실이 아니라 ‘위대한 모성’‘어머니는 강하다’ 식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다. 그 어느 쪽에도 살아 있는 ‘진짜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진짜 엄마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올 통로는, 가깝게는 남편을 비롯한 가족부터 친구와 이웃, 고정관념, 상업화, 경쟁 논리, 생활공간, 언론 등에 의해 몇 겹으로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겹겹이 쌓인 막을 뚫고 직접 엄마들을 만났다. 때때로 울음과 함께 터져나오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길어올려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다.

‘모성담론 비판’에 더해진 실제 엄마들의 삶
사실 ‘완벽한 어머니란 없다’는 비판적 모성담론 자체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 이미 익숙한 것이 되었다. 문제는 이 담론의 영역과 실제 엄마들의 생활 영역이 만나지 못하고 ‘따로 논다’는 데 있다. 무리한 엄마 노릇이 강요되어왔고 여기에 단호히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아무리 ‘학습’받더라도,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의 아이가 바로 눈앞에 있고 당장 전쟁 같은 육아와 날마다 씨름해야 하고 끊임없이 외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당사자 여성들로서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변화나 실천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보여준다. 페미니스트이자 각각 노동사회학 연구자, 여성학자,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인 3인의 저자들은,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엄마 노릇에 무작정 던져진 공통의 경험으로 인해 뭉쳤다. 때문에 연구만으로는 담아내기 역부족인 ‘엄마들의 한恨과 고독’까지도 놓치지 않고 담아낼 수 있었다. 또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방식을 따라가면서도, 주체인 엄마들을 바깥에서 관조하거나 무조건 ‘계몽’하려 들지 않는다. 엄마들은 사실 자신들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사회적 압박과 현실적 어려움에도 이미 떳떳한 주체로서 ‘완벽한 엄마라는 환상에 대한 의미투쟁’을 시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곳곳에 설치된 자본의 덫
저자들은 “세상은 바뀌며, 엄마 역할도 시대에 따라 변해간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엄마 노릇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사실 지난 세대의 유물이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만나 진화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모든 과정마다 촘촘히 자본의 친절한 손길이 뻗쳐 있고, 엄마들은 노력 여하와 관계없이 그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렇게 철저히 상업화된 우리 시대의 엄마 노릇이 재구성된다.
친정엄마 보살핌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최근 10여 년 사이 산후조리원은 널리 자리를 잡았다. 만신창이가 된 산후의 몸으로 조리원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모유수유법, 신생아 마사지, 모빌이나 아기 손발도장 만들기 등 회복과 교육을 빌미로 한 상업적 프로그램들의 고객이 된다. 이뿐 아니다. ‘육아도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좀 더 전문적인 육아법으로 ‘완벽한 아이’를 만들라는 환상이 부추겨진다. “자외선 소독을 해야 대장균, 황색포도상구균, 녹농균, 살모넬라균, 인플루엔자바이러스를 없앤다”는데 ‘젖병 소독기’를 안 살 재간이 없으며, 아이의 월령 발달에 따라 세분화된 제품이라고 홍보하니 그 또한 ‘과학의 권위’를 믿고 일단 써보는 수밖에 없다. 자투리땅도 없는 아파트촌에 갇혀 아이를 키우다 마음먹고 나들이라도 나갈라치면 백화점이나 키즈카페가 개중 갈 만한 곳이다. 한 번뿐인 돌잔치는 업체에 맡겨 제대로 해야 하고(아니면 엄마가 DIY로 몇 배의 공을 들여 직접 기획하는 수도 있다), 요새 웬만하면 다들 하는 아기 성장앨범도 안 맞추면 섭섭하다. 아이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그때부터는 학원, 학습지, 교구와 전집 등 ‘사교육’ 전쟁이 시작된다. 초등학교보다 과목이 많다는 악명 높은 영어유치원은 ‘7살 3년 차’가 되면 아예 미국 교과서를 가르치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쓴’ 돈인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소비 릴레이에는 끝이 없고, 그 한가운데 고립된 엄마와 아이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 끝없는 ‘엄마의 상업화’ 속에서 고통받는 엄마들의 모습과, 스스로 악순환을 끊고 자신과 아이를 위해 새로운 삶을 향해가는 엄마들의 현재진행 경험담을 만날 수 있다.

‘금기’를 깨고 엄마 노릇의 ‘고통’을 언어화하다
엄마 노릇이 고통스럽다는 것은 당연하게 치부되지만, 사실 제대로 언어화되지 않는다. ‘엄마 역할이 너무 고통스럽다,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문화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의 고통은 가끔 언론에서 ‘산후우울증’을 다룰 때나 피상적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자기 우울을 못 이겨 아이를 해친 엄마’‘자살’‘가족을 파괴하는 무서운 병’이라는 공포만을 조장하는 왜곡된 언어만 노출될 뿐이다. 가족과 사회의 지지가 없고 돌봄노동 시스템도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들은 고립되고 우울감이 깊어질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우울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것이 모두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되어 아이를 해친다는 것은 근거 없이 부풀려진 얘기다.
엄마의 고통이 언어화되지 못하는 것은, 엄마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되는 모유수유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대 변화와 상업 논리에 따라 분유를 권장했다가 모유를 강권했다가 할 뿐, 정작 그 역할의 주체인 ‘여성의 몸’은 안중에 없다. 또한 아이가 커가면서 여성 혼자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가족 건강의 책임’에서도 그렇다. 흔히 ‘아토피 엄마들’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대표적인 예다. ‘그 작은 아이가 말도 못하고 얼마나 고통스럽겠어’라고 걱정들을 하지만, 밤새 아이와 함께 뒤척이면서도 그게 전부 자기 탓이라고 여기게 되는 엄마의 고통은 말해지지 않는다. 풀타임 노동자이면서 풀타임 엄마이기를 동시에 요구받고, 두 이상적 기준 사이에서 지쳐가는 워킹맘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그럼 ‘전업주부’는 살 만한가? 그들에게는 ‘일도 안 하면서 왜 아이한테 더 올인하지 못하냐’는 부당하고 잔인한 질책이 쏟아진다.
고통이 엄연히, 폭넓게 존재함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들, 꺼내는 순간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며 화살이 돌아와 더 큰 상처를 입히던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만난 엄마들은 평범하지만 처절했다”
2010년대 대한민국, 동시대 여성들의 생생한 구술 인터뷰
이 책은 현상의 진단과 분석 사이사이에 그 주제와 관련한 실제 엄마들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엄마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연구자의 목소리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4편의 심층 인터뷰, “내가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어요”(산후우울) “엄마가 잘못해서 아이가 아픈 게 아니야”(가족건강) “내가 불안해서 사교육을 시킨 거예요”(조기교육) “육아도 삶도 균형이 중요해요”(워킹맘)가 실려 있어서 개별 엄마들의 보다 자세한 사례 또한 들여다볼 수 있다.
인터뷰들에서는 엄마들의 실제 사연과 솔직한 심정을 담아냄은 물론, 구술을 거의 그대로 살려서 써서 읽다보면 실제로 한 여성과 마주앉아 눈을 맞추며 듣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된다. “버티고 버티다가 버틸 수 없게 되면 모든 관계를 끊고 떠나고 싶다” “너무 속상해서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어서, 그냥 울면서 하염없이 걸어 다녔어요, 길거리를. 미친 여자처럼” 같은 문장에는 지금 우리 곁에 실존하는 한 여성의 우는 얼굴과 그 삶이 고스란히 맺혀 있다.

엄마를 ‘위한’ 책?
시중에 나와 있는 육아책은 수없이 많다. 사회와 출판시장은 끊임없이 엄마들에게 더 공부할 것을, 더 배워서 더 잘하는 엄마가 될 것을 부추긴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교육학자 그리고 ‘프로 엄마’ 등의 ‘전문가’들이 총출동해서 엄마 노릇에 대해 앞다퉈 조언한다. 기본적인 양육법은 물론이고, 놀이법, 창의력 향상법, 독서 지도, 건강법 등을 익혀서 엄마 역시 ‘준전문가’가 되어야만 아이가 잘 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그렇게 지친 엄마를 심리적으로 ‘힐링’해주려는, 병 주고 약 주는 책들 역시 있다.
그러나 이 ‘엄마를 위한다는 책’들이 놓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점이 있다. 엄마 노릇에 정해진 하나의 정답 같은 것은 없으며, 오히려 그 정답에 대한 요구 때문에 엄마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급기야 ‘워킹맘’으로 고통받던 한 엄마는 이렇게 호소한다. “‘준비 안 된 엄마, 고통받는 아이’ 같은 책 제목들이 있는데, 준비 다 된 엄마가 어디 있어요?”
‘준비된’ 엄마가 마치 원래 존재하는 양 그 모든 ‘준비’들을 주입시키는 책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 여성의 말은 정확히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엄마의 탄생》은 엄마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려지거나 왜곡돼온 ‘엄마의 진실’들을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줄 것이다.


■ 세부 구성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엄마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엄마’로 탄생하는지, 특히 영유아기 자녀를 둔 여성들의 엄마 노릇에 초점을 두고 분석했다.
1장에서는 산후조리원에서 어떻게 엄마로서 규격화된 훈련을 받게 되는가, 2장에서는 공론화되지 않는 산후우울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육아과학의 확산에 따라 ‘과학적 모성’이 요구하는 좋은 엄마 노릇을 들여다보았고, 4장에서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수행되는 모성의 특수한 문제를, 5장에서는 현대 환경문제 속에서 엄마에게 가해지는 책임과 가정의 수호자로서 호명되는 상황이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분석했다. 6장에서는 관혼상제의 상업화 맥락에서 바라본 돌잔치와 성장앨범 문제가 영유아를 둔 엄마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다루었고, 7장에서는 조기교육 문제를 통해 자녀의 교육을 기획, 관리, 지원하는 엄마 노릇에 대해, 8장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와 전업주부로 일하는 엄마가 저마다 처한 어려움들을 살펴보았다.

구매가격 : 9,100 원

저항하는 평화

도서정보 : 전쟁없는세상 편 / 엄기호, 김종대, 강인철, 정희진, 서경식, 조영선, 하승우, 최현정 | 2015-01-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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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끝없는 긴장 상태
흔히 ‘평화’라고 하면 말 그대로 ‘평화로운’ 상태를 떠올린다. 서로 간에 아무 갈등이나 차이가 없어서 무엇과 맞설 필요가 없고 긴장할 필요도 없는 것. 하지만 이것은 평화의 사전적, 평면적인 정의에 불과하다. 대담에 참여한 18명의 평화주의자들에게 평화란 훨씬 더 역동적이며 전복적인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위에서 내리누르는 힘에 끝없이 치어드는 힘이며, 부조리한 것을 거부하는 정신이자, 어느 하나의 힘이 지나치게 강성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소수의 긴장에 가깝다.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총 8편의 대담 어디에도 ‘평화로운’ 화해의 기운이 배어 있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평화주의자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의 폭력성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대담을 기획하고 책을 엮었다. 10년 이상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전쟁없는세상이 특히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병역거부운동’이다. 이들은 모든 전쟁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범죄일 뿐이며, 군대가 그 전쟁을 가능케 하는 폭력의 중추라고 여긴다. 그래서 군입대를 실제 자신의 삶에서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평화의 씨앗이 되고자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살아 움직이는’ 평화의 눈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평화의 눈에 비친 이 사회 곳곳의 폭력성은 지옥도라고 할 만큼 처참하고, 우리가 이 책에서 반드시 대면해야만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지성’과 ‘활동’이 만나 평화의 지도를 그리다
문화인류학자 엄기호,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 풀뿌리 민주주의·아나키즘 연구자 하승우 등은 폭압적인 한국 사회에 대해 회의하고 날선 비판을 던지는 대표적 지성이다. 각자 분야가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어느 때든지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앞장선 체제의 폭력과 부패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눈속임이나 우연성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그저 까다롭고 비관적인 이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들의 그런 예민함과 성찰 덕분에 우리 또한 폭력과 부조리의 실체를 비로소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이들과 또 다른 선에 서 있는 대담자들, 전쟁없는세상이 대표하는 활동가 그룹이 갖는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여옥, 임재성, 박정경수, 샤샤, 이길준, 이용석, 김훈태, 오리, 윤정화, 이덕현은 평화적인 신념 또는 고유한 정체성 등으로 인해 병역을 거부하고 수감생활을 했거나 그러한 이들을 지지하며 병역거부운동에 몸담아왔다.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대체복무제도조차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척박한 국가에서 군대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사회 부적응자, 나아가 ‘비국민’으로 낙인찍힌다는 것, 겁쟁이 또는 몰염치로 매도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그것들을 감수하면서까지, 거창한 평화주의가 아닌 진짜 평화를 자기 삶으로 체현하고자 노력한다.
이 묵직한 두 그룹이 만나 여덟 가지 키워드를 놓고 벌인 대담은,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 폭력과 저항의 큰 지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지도가 결국 가리키는 길은 자명하게도 ‘진짜 평화’라는 길이다.

왜 ‘군대’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가?
2014년 6월 21일 육군 22사단 GOP에서 한 병사가 총기난사 후에 무장탈영해 동료 병사 5명이 사망했다. 8월에는 연천28사단에서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엽기적인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4월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8사단에서 ‘관심병사’로 취급되던 병사 2명이 휴가를 나왔다가 아파트 베란다에 목을 매 동반자살했다. 자살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지만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육군 17사단장은 부하 여군에게 성폭력을 저질러서 장성급 중 무려 ‘최초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1993년부터 2013년까지 한 해 평균 195명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물론 추정치에 불과하다. 전쟁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단지 남들 다 하는 입대를 했을 뿐인데 이토록 빈번한 사망·사고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 빙산의 일각만이 드러나 잠깐 충격을 주고, ‘군대문화 개선해야 한다’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긴 채 잊혀져갈 뿐이다.
이러한 사고들로 인해서 군대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이 그나마 깊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군대에서 최악의 학대와 사망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도, 심지어 그것이 발각되어 공포와 원성을 자아내는 중에도, 군부대 체험 예능 프로그램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다. 그 두 가지 현상이 한 사회 안에서 동시에 벌어진다는 것, 뉴스를 보며 윤 일병을 동정하고 임 병장에 치를 떨고 난 직후에 [진짜 사나이]가 상황극으로 빚어내는 전우애와 걸그룹 멤버의 여군 판타지에 열광할 수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에 내재된 병적인 군사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국가는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 이런 국가는 나도 지키지 않겠다”며 최근 병역거부를 선언한 박유호 씨의 기사에 달린 수많은 악플들 또한,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로 국가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도 여전히 건재한 ‘국방 의무’의 신성화를 보여준다.
문화인류학자 엄기호는 1장 ‘[청년] 서바이벌이 된 일상, 군대가 차라리 편하다?’ 대담에서 이러한 현상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사회 전반이 이미 충분히 군사화되어 있으며 일상 자체가 전쟁이기 때문에, 더 이상 군대가 1970~1980년대처럼 폭력과 억압의 상징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적어도 밥은 먹여주는’ 너그러운 공간, 비슷한 처지의 남자들끼리 평등하게 몸으로 부대끼고 ‘동지애를 나누는’ 따스한 공간으로 느끼면서 군사주의를 내면화하는 일까지 벌어지며, 그것을 대중매체가 부채질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이 논의에서 알 수 있듯, 지금 한국의 ‘군대’를 출발점으로 삼아 논의한다는 것은 단지 군대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든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속속 배어 있는 군사주의와 폭력성을 사유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긴박한 전제 위에서 폭력과 저항의 문제를 하나하나 파고들어간다.

철옹성 같은 한국의 군사주의에 던지는 8개의 큰 질문
1장 ‘서바이벌이 된 일상, 군대가 차라리 편하다?’에서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여옥과 문화인류학자 엄기호가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이 전쟁과 다를 바 없고, 사회 자체가 군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군대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2장 ‘덜 가혹한 군대는 가능할까?’에서는 군사 전문가 김종대와 병역거부자이자 평화 연구자인 임재성이 이야기를 나눈다. 해방 이후 철옹성과도 같았던 한국 징병제도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낸다.
3장 ‘정의로운 전쟁 vs 정의로운 평화’는 종교학자 강인철과 기독교 신자이자 병역거부자인 박정경수의 대담이다. 한국 교회가 전쟁과 평화, 군대와 병역거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그 심각한 문제점을 파고들어간다.
4장 ‘거부와 기피를 넘어 탈주하라’는 여성학자 정희진과 병역거부자 샤샤, 이길준의 대담이다.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에 의해 ‘병역거부’ 아니면 ‘병역기피’의 틀로 이분화되어버린 다양한 탈주의 가능성들을 모색해본다.
5장 ‘군대를 안 가면 국민이 아닐까?’는 재일조선인 서경식과 병역거부자 이용석의 대담이다. 국민국가에서 비국민으로 낙인찍힌다는 것, 그리고 낙인을 넘어서 자발적인 비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6장 ‘폭력을 다스리는 더 큰 폭력의 울타리’는 교사이자 인권 교육 활동가인 조영선과 교사 신분으로 병역을 거부한 김훈태의 대담이다. 폭력을 내면화한 기구로서 제도권 학교가 갖는 한계와, 평화 교육의 가능성을 함께 찾아본다.
7장 ‘삶을 재구성하고 세상을 바꾸는 직접행동’은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연구자 하승우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오리의 대담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운동으로서 비폭력 직접행동이 갖는 의미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8장 ‘평생 몸에 남아 있는 군대라는 상처’는 임상심리전문가 최현정과, 군복무 경험이 있는 윤정화, 이덕현의 대담이다. 직접 경험한 군대에서 피해자로서, 또는 가해자로서 겪은 폭력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이야기한다.

구매가격 : 11,200 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5-03-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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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0주년, 왜 다시 현대사를 알아야 하는가?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책머리에’에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가

2015년은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런 뜻깊은 해를 맞아 웅숭깊은 역사책이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가 함께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가 그것. 서중석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주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우선 1차분으로 두 권이 선보였다. 1권에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2권에는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시리즈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뉴라이트를 앞세운 보수 세력의 이념 공세,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 사회가 갈수록 보수화되면서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하고, 보수 세력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바로잡고 있다. 또한 진보 세력에게도 역사와 구체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려야만 이 어두운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이야기 마당’ 구성이다. 보통 역사책은 연대기 구성을 따르고 있는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이 책에서도 연대기적 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서술 방식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이야기 마당’ 형식을 취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한 당시 상황을 충실히 다루면서 오늘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까지 폭넓게 짚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역사에 대한 평가’를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학자들은 사실 관계 규명에만 주력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평가 내리기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서중석 교수는 역사 왜곡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면서 단호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극우 반공 세력의 진실,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

“극우 반공 세력은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지도, 교육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누누이 얘기한 것처럼 자료에 접근하기도 굉장히 어려웠다. …… 극우 반공 세력은 초지일관, 현대사에 관심을 못 갖게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 근현대사가 굉장히 축소되고 왜곡되고 아주 부정적인 게 돼버렸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하는 데에도 얼마나 역동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나. 아 그걸 ‘박정희 혼자 다 했다’는 식으로 하니 너무 단순하고 단조롭지 않나. 그런 역사를 무엇 때문에 자세히 알고 싶겠나.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어떤 상황 속에서 그런 것을 만들어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라는 건 다면적이어야 한다.”(1권)
서중석 교수는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을 ‘역사의 죄인’으로 부르고 있다. 소위 뉴라이트들은 8·15를 ‘건국절’로,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신성화하며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 전쟁’을 부추기고,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성과들을 지우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들이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오히려 친일파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부터 극우 반공 세력이 기득권을 잡았다. 그들은 반대파를 너나없이 ‘빨갱이’로 몰아대며 공포에 질식된 사회를 만들어왔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반공주의가 내면화된 사회가 만들어졌다. 극우 반공 세력들은 이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반공 투쟁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교수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오히려 정권을 잡은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심하게 훼손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극우 반공 세력들이 말하는 역사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 진실은 곧 역사 속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중석 교수는 역사, 특히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발분하여 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며 거듭 당부하고 있다.
“극우 반공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식의 주장을 접하면 소름이 끼친다. 극우 반공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생했나. 오랫동안 정말 힘들게 싸우고 4월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2권)
“한국의 뉴라이트나 수구 세력의 뿌리는 친일파, 그것도 매국 활동, 황국 신민화 운동, 군국주의 침략 전쟁 찬양 행위를 한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간다.”(1권)

어느 날 갑자기 온 해방?
우리는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았다

1권 ‘해방과 분단, 친일파’ 편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공간에서부터 한반도가 분단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해방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맞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끊임없이 항일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주체적으로 맞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곧 ‘정의로운 바보’들이다.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 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일제에 맞서 싸우는 것과 관련해 ‘우리한테는 무엇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문제만 있는 것이지, 성공 여부를 가지고 얘기해선 안 된다’, 이렇게 말했다. 난 모든 독립 운동자에 대해 단재의 이야기가 맞다고 본다. 당장에 성공하길 바랐다면, 강력한 일본에 대항해 싸우는 것처럼 바보가 없었다. 그런데도 재산을 전부 탕진해가면서, 자식들을 가르치기는커녕 굶주리게 하면서 독립 운동에 그야말로 몸을 던져 그 많은 고초를 겪고 죽음에 이르고 한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대의, 그것 때문 아닌가.”

서중석 교수는 ‘해방’을 한국 현대사의 최대 사건으로 꼽는다. “해방은 수천 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획기적인 대변화를 가져왔다.” 해방이 되면서 모두가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혁명이 이루어졌고, 농지 개혁 등이 시행되면서 경제적 혁명도 이루어졌다. 더불어 문화적 혁명, 사회적 혁명도 이루어졌다. 유사 이래 이렇게 큰 변화를 한꺼번에 맞이한 순간은 없었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면서 싸워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게 됐는가와 연관시켜서 해방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해방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도 뉴라이트는 해방을 몹시 폄하한다.”

역사를 바꾼 신탁 통치 논쟁
좌우익은 왜 그토록 싸웠는가

해방 공간의 결정적 국면 하나가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친탁’ 대 ‘반탁’ 논쟁이다. 서중석 교수는 “친탁 대 반탁은 적절한 규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익이 반탁 투쟁을 했다는 점에서 반탁은 맞다. 그러나 좌익은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 것이지, 신탁 통치 하나를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임시정부 수립이었다. 좌익은 임시정부 수립을 중심에 놓고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을 지지한다’, 이렇게 나왔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찬탁, 반탁’ 식으로 교육을 받아왔다.” 곧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탁 통치를 하고 임시정부를 세운다’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세우는 것이 우선이고 신탁 통치는 나중 문제’라는 것이다.(모스크바3상회의 제1항 임시정부 수립, 제2항 미소공동위원회 설치, 제3항 신탁 통치) 그러니까 신탁 통치 문제로 이렇게까지 좌우익이 싸울 문제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분단까지 가는 명분으로 작용해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해방이 되고 넉 달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 영국, 소련 세 나라가 모스크바3상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정한 내용이 잘못 알려지면서 문제가 커져갔다. 싸움에 기름을 부은 건 동아일보의 왜곡 기사. “소련은 신탁 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출처도 없이 보도한 것이다. 우익은 “반탁에 협력하지 않으면 민족 반역자”라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반탁 투쟁을 시작했다. 여기에 친일파까지 가담했다. 마치 자신들이 애국 세력인 양 신분 세탁을 하고 우익과 함께 반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에 반해 좌익은 ‘모스크바3상회의 지지’ 투쟁을 전개했는데 방법이 서툴렀다. 대중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은 연합국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결정한 것이니 좋은 거다’는 식으로 다가간 것이다. 그러면서 좌우익은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했다.

‘정의로운 바보’들이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한반도는 왜 분단이 되었는가

“좌우 합작, 남북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활동을 통일 독립 운동이라고 했다. 독립 운동의 연장이라고 이야기했다. 여운형과 김규식은 합작만이 민족의 살길임을 아주 강한 신념으로, 쉬지 않고 역설했다.”
서중석 교수는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의 활약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여운형은 대중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해방 후 실시된 첫 여론 조사에서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 지도자’, ‘생존 인물 중 최고의 혁명가’ 항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여운형을 뉴라이트와 반공 세력은 친일파로 몰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성사되도록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은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다. 하지만 극좌와 극우가 협조를 해주지 않았고 미국 측도 소극적이어서 미소공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급격히 분단으로 치달았다.
김구와 김규식이 주도한 남북 협상은 통일 정부를 세우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었다. 김구는 ‘분단이 된다는 건 우리 몸을 두 동강 내는 것과 똑같다’고 신체에 비유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구는 곧 암살되었고, 남한에는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대거 등용한 미군정의 힘을 얻어 노골적인 단독 정부 수립 운동을 펼쳤고, 결국 초대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 미국이 친일파를 등용하고 키운 것이 분단으로 가게 하는 큰 문제를 불렀다고 서중석 교수는 지적한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

뉴라이트가 ‘국부’라고 칭송하고 있는 이승만은 해방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리고 대통령이 되어서 진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했을까? 서중석 교수는 이승만이 권력을 잡기 위해 친일 세력과 손을 잡았으며, 한반도가 분단이 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또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지도 않았다. 1948년 4·3사건 때 수없이 많은 사람을 학살했고, 여순사건 때도 이른바 빨갱이 사냥을 했다. 그 결과 1949년에는 국가보안법 피의자라든가 사상범으로 감옥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 1949년 6월에는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일으키고 김구가 암살되는 사건도 일어난다. 또한 선거 때마다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 서중석 교수는 이승만이 ‘건국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으며 극단적인 반공 국가를 만든 초대 대통령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단적으로 독재자라고 하고 있고,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얼마나 심한 부정 선거가 자행됐나. 선거는 자유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기본이다. 이런 부정 선거의 노하우가 쌓이고 이승만의 권력 의지가 작동해 3·15 부정 선거가 일어나고 결국 이승만이 물러나지 않았나. 이 점에서도 건국의 아버지라고 볼 수 없다. 어떻게 이런 분을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나. 초대 대통령이었다고 말하면 된다.”

친일파 세상,
어떻게 이런 나라가 있을 수 있나

“친일파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건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날 때까지 친일파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못한 데서 잘 드러난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38년 동안 그랬다. 극단적인 극우 반공 체제를 유지하던 시기엔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를 등용시킨 건 미군정이었다. 미군은 좌익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친일파를 중용했다. 하도 친일 경찰과 관리들이 미군정에서 다시 큰소리를 치니 해방의 감격이 점점 약화되고 혼란도 심해졌다. 1946년에는 이런 친일파들 때문에 10월항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이 항쟁은 친일 경찰의 횡포, 권력 남용 등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4·3사건과 여순사건이 일어난 것도 친일파 문제가 대단히 중요했다.
이승만 정부는 이런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고, 오히려 이들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런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부정부패가 심해졌고, 서민을 억압했다. 이러니 정의롭게 사는 것이 올바르다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3·1절이나 광복절에 친일파가 단상에 딱 버티고 앉아 있고, 서민들은 억압당하고,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은 고달프게 살고 핍박받으며 피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사는 것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겠나. 정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이런 사회에서 ‘고문관’ 취급밖에 못 받는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자, 기회주의자, 출세주의자, 정상배 같은 자들이야말로 그 사회의 성공한 자들로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친일파, 극우 반공 세력은 분단을 초래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지만 분단을 심화시키고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중석 교수는 ‘친일파가 대한민국을 위해 뭔가 한 게 있다’는 식의 논리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없으며. 그런 점에서도 친일파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산 대상이어야 할 친일파가 오히려 권력을 잡았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으니 한국 사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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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

도서정보 : 서중석, 김덕련 | 2015-03-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해방 70주년, 왜 다시 현대사를 알아야 하는가?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의 역사 왜곡 바로잡기

“우리에게는 ‘역사의 죄인’이 있다. 우선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이 거기 포함된다. 이들은 이승만을 살리고 나아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로 만들어놓을 수만 있으면 ‘역사의 죄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나아가 이승만이 국부가 되면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기득권을 계속 움켜쥘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책머리에’에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가

2015년은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런 뜻깊은 해를 맞아 웅숭깊은 역사책이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교수와 프레시안 김덕련 기자가 함께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가 그것. 서중석 교수는 이 시리즈를 통해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굵직한 주제를 소개할 예정이다. 우선 1차분으로 두 권이 선보였다. 1권에는 ‘해방과 분단, 친일파’, 2권에는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터뷰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시리즈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뉴라이트를 앞세운 보수 세력의 이념 공세,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 사회가 갈수록 보수화되면서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하고, 보수 세력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며 바로잡고 있다. 또한 진보 세력에게도 역사와 구체적인 현실에 깊이 뿌리내려야만 이 어두운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이야기 마당’ 구성이다. 보통 역사책은 연대기 구성을 따르고 있는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이 책에서도 연대기적 구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서술 방식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더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이야기 마당’ 형식을 취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한 당시 상황을 충실히 다루면서 오늘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는가의 문제까지 폭넓게 짚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역사에 대한 평가’를 많이 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학자들은 사실 관계 규명에만 주력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평가 내리기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서중석 교수는 역사 왜곡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면서 단호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극우 반공 세력의 진실,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

“극우 반공 세력은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연구하지도, 교육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누누이 얘기한 것처럼 자료에 접근하기도 굉장히 어려웠다. …… 극우 반공 세력은 초지일관, 현대사에 관심을 못 갖게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 근현대사가 굉장히 축소되고 왜곡되고 아주 부정적인 게 돼버렸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하는 데에도 얼마나 역동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나. 아 그걸 ‘박정희 혼자 다 했다’는 식으로 하니 너무 단순하고 단조롭지 않나. 그런 역사를 무엇 때문에 자세히 알고 싶겠나.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지, 어떤 상황 속에서 그런 것을 만들어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라는 건 다면적이어야 한다.”(1권 306~307쪽)
서중석 교수는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을 ‘역사의 죄인’으로 부르고 있다. 소위 뉴라이트들은 8·15를 ‘건국절’로, 이승만을 ‘국부’로, 박정희를 신성화하며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역사 전쟁’을 부추기고,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성과들을 지우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들이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오히려 친일파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해방 이후부터 극우 반공 세력이 기득권을 잡았다. 그들은 반대파를 너나없이 ‘빨갱이’로 몰아대며 공포에 질식된 사회를 만들어왔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부터는 반공주의가 내면화된 사회가 만들어졌다. 극우 반공 세력들은 이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반공 투쟁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교수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오히려 정권을 잡은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심하게 훼손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분열시키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극우 반공 세력들이 말하는 역사란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 진실은 곧 역사 속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중석 교수는 역사, 특히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발분하여 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며 거듭 당부하고 있다.
“극우 반공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식의 주장을 접하면 소름이 끼친다. 극우 반공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생했나. 오랫동안 정말 힘들게 싸우고 4월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2권 233쪽)
“한국의 뉴라이트나 수구 세력의 뿌리는 친일파, 그것도 매국 활동, 황국 신민화 운동, 군국주의 침략 전쟁 찬양 행위를 한 사람들로 거슬러 올라간다.”(1권 308쪽)

분단으로 치달은 한반도,
한국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2권 ‘한국전쟁과 민간인 집단 학살’ 편은 참으로 내용이 어둡다. 민간인 집단 학살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된 뒤 분단으로 치달은 한반도에는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 한국전쟁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한국전쟁은 내전의 성격보다는 국제전의 성격이 강했다. 민족 내적인 이유, 곧 분단 때문에 전쟁이 발발했지만, 곧 국제전 양상을 띠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도움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상태였고, 한국도 16개국의 전투 지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1950년 김일성과 박헌영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그리고 스탈린은 전쟁에 동의했다. 단 중국의 동의 없이는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김일성과 박헌영은 베이징으로 가 모택동을 만났다. 그리고 6월 25일 38선을 넘었다. 북한은 7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고 했다. 남한에 있는 혁명 세력들이 봉기를 해 전쟁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남한에는 이미 그런 세력이 파괴되어 있어서 북한의 기대대로 되지 않았다. 곧 미군이 참전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고, 이어서 중국도 뛰어들었다.
한국전쟁은 피스톤 전쟁, 대패 전쟁이라고도 불렸다. 북한이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고, 이번에는 유엔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러다가 또 중국군한테 한강 이남까지 밀렸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민간인들의 피해가 컸고 국토가 파괴되는 등 굉장히 큰 희생이 일어났다. 서중석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나 미국이 전쟁 초기에 제대로 대응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도망을 가기 바빴고, 미국은 전쟁 초기 북한의 이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전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공포의 극우 반공 체제가 확립되었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기고 끝이 났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지주 계급은 힘을 잃었고, 양반·노비·쌍놈을 따지는 일도 없어지게 되었다. 미국의 원조 물자를 받으면서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마련되었고, 여성의 지위도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나 사회는 극도로 단순화한 극우 반공 체제가 형성되었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이 체제가 내면화된 것이다. 사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반공주의가 그렇게 먹혀들지는 않았다. 1950년 5·30선거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선거에서 이승만 세력은 참패하고 이승만에게 비판적인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당선됐다. 그런데 극우 반공주의가 전쟁을 거치면서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제일 큰 이유는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간인 집단 학살 때문. 도처에서 학살이 일어나면서 정부 비판, 이승만 반대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돼버렸다. 그렇게 비판을 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연좌제도 아주 심해서 부역자 가족은 감시를 받았고 취직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선 이승만 정권이 요구하는 대로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 순응주의가 공포감과 결합하면서 강력한 극우 반공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민을 버리고 간 대통령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공산군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자유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했을 거라는 것.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잘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서중석 교수의 평가다. 1949년 2월경부터 북진 통일을 주장했으면서도 국방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전쟁 직전 장교들을 잇달아 인사 이동시켜 군사력을 약화시켰다. 더군다나 군 경력이 전혀 없는 신성모를 국방부 장관에 앉혔다.
그렇다면 전쟁이 터졌을 때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보호하고 적절한 지휘를 했을까? 이승만은 국민을 버리고 도망부터 갔다. 그는 전쟁이 터지고 이틀 뒤인 6월 27일 새벽에 장관들에게도, 군 수뇌부한테도, 국회에도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서울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대전에 도착해 그 유명한 거짓말 방송을 몇 차례 내보낸다.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있으라는 것. 이 거짓말 방송이 나간 직후 28일에 한강다리가 폭파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피란을 가지 못했다. 이때 도강파와 잔류파가 생겼는데, 피란을 가지 못했던 잔류파는 석 달 동안 굶주리면서 부역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7월 1일에 또다시 대전을 떠나 목포로, 목포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도망쳤다. 전쟁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고, 국민의 안전은 나 몰라라 하며 피신만 하고 다닌 것이다. 더군다나 6월 28일 부역자들을 증거 없이 처벌할 수 있는 비상조치령을 내렸고, 이 때문에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곧 국민보도연맹원과 요시찰인에 대한 전국적인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거창, 산청, 함양, 남원, 고창, 함평 등지에서 국군에 의한 큰 규모의 학살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승만은 부산에서 국회를 협박하고 공갈을 일삼으면서 영구 집권을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난 이승만 대통령이 잘한 것처럼, 한국전쟁에서 뭔가 한 것처럼 일각에서 이야기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승만 정권은 미국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게 문제가 심각했다. 초기의 패배에 대통령 책임이 너무나 컸다.”(45쪽)

쏘아 죽이고, 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민간인 집단 학살의 진실

“우리가 해방을 감격스럽게, 꿈같이 맞이하지 않았나. 그런데 학살이라는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 분단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참혹한 학살은 인간 사회에서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일부 극우는 신생 국가에서는 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141쪽)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민간인 집단 학살은 1948년 11월(제주 4·3사건 당시 학살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시기)부터 1951년 봄까지 일어난다. 전쟁 때에는 주로 1951년 1~2월(거창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때가 1951년 2월이다)까지 일어난다. 100만 명 정도가 학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10만에서 50만 명 사이가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학살당한 사람은 국민보도연맹원이다.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대, 인민위원회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 조선청년총동맹(전총), 조선부녀총동맹 등 좌파로 분류되는 단체나 각종 문화 예술 단체, 조선공산당, 남로당, 좌파로 분류되는 정당에 가입했던 사람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지역별로 보도연맹 가입 할당 인원 같은 게 작용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일종의 관제 빨갱이 비슷한 식으로 됐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보호해준다’, ‘여러 편익을 준다’ 이런 얘기 때문에 가입한 경우도 있다. 이 양민 학살은 1988년 월간 《말》에 보도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수십 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학살이 일어났는데, 사람에겐 양심이란 게 있는 건데, 학살처럼 무섭고 잘못된 게 없는 건데, 그런 큰 학살이 일어났는데도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두려운 일이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153쪽)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빨갱이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극우 반공 세력의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군인과 경찰이 양민을 학살
‘빨갱이는 씨를 말려 죽여야 한다’

대부분 규모가 큰 학살은 군과 경찰에 의해 일어났다. 4·3사건은 서북청년회 등 우익 단체가 주도하기도 했다. 미군도 학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노근리에서 학살을 자행했고, 전국 각지에 폭격을 가해 피란민을 학살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 작전권은 미국에게 있었으므로 학살에 대한 책임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큰 학살을 미국이 방조했다는 건 미국 스스로 내세우는 민주주의, 자유, 평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 때 미라이 마을 학살의 진실이 드러나자,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분노하지 않았나. 그런 미라이 마을 학살의 수백 배 규모의 학살이 한국에서 벌어졌고 미국이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그것에 분노하고 그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거다. 이건 한국전쟁 때 미국이 북한을 막은 것과는 구분해서 봐야 하는 문제다.”(186쪽)
특히 김종원이 이끄는 11사단은 악명이 높았다. 거창 지역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뒤 거의 같은 시기에 산청, 함양, 영덕, 거제 지방의 여러 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산청, 함양에서 500명 이상이 학살을 당했는데, 반수가 여자였고 노인네와 아이들이 많았다. 또 거창 양민 학살 때 잡혀온 이들 중 대다수가 노약자, 부녀자, 어린아이였다. 여순사건 때 김종원은 일본도로 민간인의 목을 치다가 지치면 총으로 처형하기도 했던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 학살은 이승만 대통령한테도 큰 책임이 있다. 학살에 이승만 정권이 직접 관여한 측면도 있으며, 대부분 군경에 의해 저질러졌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정적에게 대단히 가혹했다. 특히 비판 세력, 반대 세력을 ‘빨갱이’와 연관시켰다. 4·3사건이나 여순사건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강한 엄벌주의로 대응했다. 거창사건으로 인해 3년형을 선고받은 김종원을 곧 풀어주기도 하면서 학살을 자행한 사람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학살 위에 세워진
공포의 극우 반공 체제

민간인 집단 학살을 자행한 세력은 철저한 극우 반공 체제를 만들었다. 정부를 비판하면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쉽게 비판을 하지 못했고, 국가 권력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극우 반공 세력의 큰 부분은 친일파다. 이자들은 새 나라를 세우려 한 게 아니라 일제 유산을 답습한 거다. 일제 것을 이어받아 구舊나라를 세우려고 한 것이다. 정말 못된 자들이었다. 아주 나쁜 사람들이었다. 친일 경찰을 비롯한 친일파가 한 짓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3·15 부정 선거도 이자들이 저지르는 것 아닌가.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는 식의 주장을 접하면 소름이 끼친다. 극우 반공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생했나. 오랫동안 정말 힘들게 싸우고 4월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월항쟁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 아닌가.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233쪽) 그리고 이 체제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욱 심해졌다. 독재 정권들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함께 분단을 최대한 활용해 독재를 강화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활동을 해왔다. “뉴라이트나 극우들이 얘기하는 걸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극우 반공 세력이야말로 철저하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 아닌가. 뉴라이트는 바로 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자들을 합리화하는 측면이 상당히 있지 않나.”(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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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도서정보 : 투명가방끈 | 2015-06-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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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저항하다

한국에서 ‘대학 진학’은 의무보다 더 가혹한 의무가 된 지 오래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지난 2009년에 77.8퍼센트로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2014년까지 죽 70퍼센트 이상을 유지해왔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좋은 대학 나와봐야 취업도 안 된다’는 체념 섞인 푸념은, 의무적이고 무의미한 대학 진학에 대한 재고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대학 못 나오면 사람대접이나 받겠나’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등의 더 수세적이고 강화된 압박으로 이어진다. 대학 진학률 70퍼센트, 10명 중에 7명은 분명히 매우 큰 비율이다. 그러나 나머지 3명도 결코 무시할 만한 수가 아닌데 이들의 존재는 사회에서 쉽게 간과되곤 한다. 이건 비율의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대상자가 10명 중에 0.1명꼴에 불과하다고 해도 사회에서 ‘필요하다면’ 아주 큰 비중으로 다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분히 의도적으로 조명하지 않는 나머지 3명, 즉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와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주류 사회에 어디까지나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존재 자체와 삶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히 폭력적인 대학 진학 이데올로기, 나아가 총체적으로 썩어 있는 교육과 권위주의 문제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요사이 대학 사회와 학계에서 큰 화두가 되고 있는 ‘대학 기업화’에 대한 비판보다 더 근본적이고 통렬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이류 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는’ 대학 진학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저항하지 않는 이상, 대학이 기업화되고 학생이 상품화되는 미친 흐름을 막을 도리 역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거부’, 아무도 진짜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

이 책에 글을 쓴 대학·입시거부자들은 대학거부에 대해 처음 사유하고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서도 여전히 이런 질문 또는 질책들에 시달려왔다. “대학 안 가면 뭐 먹고 살래?” “왜 안 갔냐” “안 간 거냐 못 간 거냐” “가서 나쁠 건 없지 않냐”…… 그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질문 또한 일상적으로 받아야 했다. “학생이세요?” “어느 학교 다녀요?” “몇 학번이세요?” 대학 진학이 거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서, 명백한 사회적 배제이고 차별임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내뱉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 반대편에는 아예 ‘묻지 않는’ 사회의 모습 또한 자리하고 있다. 상대가 현재 (20대 초반인데도) 대학생이 아니거나 과거에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궁금한 것이 없어지든가 아주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함부로 질문하는 세계와 아무것도 묻지 않는 세계는 정반대편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대학에 가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그것이다. 관념에서 벗어나 ‘실제로 대학에 가지 않은’ 어떤 삶들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그저 뭉뚱그려진 별난 인생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거부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가다보면, 이것이 결코 유별난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인생의 어느 땐가 겪었던 상황과 생각들이며, 어쩌면 우리의 교육이 결국 나아가야 할 지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순수한 대학거부 vs 불순한 대학거부?

저자인 투명가방끈은 2011년 열아홉 살 또는 고3 청소년들이 모여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하면서 만들어진 단체다. 언뜻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름에는, 흔히 ‘가방끈’으로 표현되는 학력에 대한 차별을 반대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거부선언과 대학거부선언을 한 거부자들과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함께, 입시 경쟁 교육·학벌주의와 학력차별·왜곡된 대학 교육 등을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과제는 지금의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것인 동시에, 무엇보다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자 오롯한 자기 자신으로서 계속 ‘살아나가는’ 것이다. ‘대학생이 아닌 삶’ ‘대학생이어본 적이 없는 삶’ ‘대학생이었다가 그만두어버린 삶’을 살아가기에 이 사회는 엄청난 장애들을 안고 있다. 책에서 투명가방끈은 그것과 계속해서 싸워나가기로 결의한 이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라고 봐도 좋다.

기존 체제를 ‘거부’하는 사회운동이 대개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대학거부운동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적극적인 거부로 볼 것이냐’ 하는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 대학을 다니다 그만둔 이유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고 그것을 ‘운동의 차원’과 ‘개인적 차원’으로 가르는 잣대는 애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입시거부자이자 투명가방끈 활동가인 호야는 [나의 ‘불순한’ 대학거부]에서, 그 다양한 대학거부 동기들에서 “공통된 흐름, 즉 입시 위주의 교육, 학력에 따른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 투명가방끈의 활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항상 이러한 대학거부 동기의 ‘순수성’을 따져 묻곤 한다. 이를테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고려대생 김예슬의 대학거부와, 대학에 떨어지는 바람에, 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결심하게 된 대학거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셈이다. 호야는 글에서 이러한 ‘불순한 동기’에 대한 신랄한 사유를 보여주며, 자신의 “대학거부 안에 존재하는 낙오, 저항, 도피, 거부의 속성, 그리고 동기의 자발성과 강제성의 혼합 자체를 인정”한다고 밝힌다.

‘대학에 가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 가지 않는다.’ 대학거부는 여느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삶의 여러 가지 사정들로 인해 대학에 가지 않음을 선택하거나 혹은 선택하도록 떠밀린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상황이나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체제의 직간접적인 압력에 의한 반응이다. 때문에 남다른 이들의 대쪽 같은 신념만으로 대변할 수 없는 그 숱한 평범한 이유들의 집합이야말로 우리가 ‘대학거부운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인지도 모른다. 대학에 안/못 가는 이유가 많은 것은 본래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이유를 원천 봉쇄하거나 단 하나로 몰아가는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대학거부자들의 존재, 그리고 투명가방끈운동의 등장은 바로 그 점을 꼬집는 역할을 한다.

가려진 ‘고등학생운동’의 역사와 투명가방끈의 등장

3부 [대학·입시거부는 어떻게 운동이 되었나]에서 공현은 ‘대학거부’의 관점으로 1980년대부터 ‘고등학생운동’의 역사를 되짚는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학생운동’이란 대학생들의 운동만을 가리켜왔지만, 당시 많은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입시 경쟁 교육과 학력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노동 현장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이들이 스스로 대학을 거부한다고 의식하거나 선언하지 않았을지라도, 넓은 의미에서 이는 지금의 대학거부운동과 맥을 같이한다는 게 공현의 설명이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2002년 당시 고3 학생 박고형준의 수능거부선언, 2007년 허그루의 거부선언, 2008년 엠건(김남미)과 또또(박상훈)의 거부선언, 2009년 대안학교 고3 4명의 거부선언 등이 이어졌다. 선언이 3년째 반복되면서 언론과 사회의 주목도가 낮아질 때쯤 2010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고려대생 김예슬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선언이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주로 “고려대라는 학벌을 버릴 정도로 ‘용기 있는’ 김예슬 개인에 대해 주목”했고, 이에 대해 ‘대학거부도 명문대생이 하니까 먹히는 거’라는 의미 있는 비판 또한 있었다.

이렇게 주로 개인의 대학거부선언들이 점점이 이어지던 중, 2011년 마침내 투명가방끈이 대학거부선언과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집단적으로’ 발표하며 운동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공현은 이렇듯 다양한 결을 거쳐온 대학거부운동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오면서, 거부와 거부 아닌 것의 경계가 사실 그리 뚜렷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부자가 있기에 대학·입시거부운동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있기에 거부자가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운동이 없었다면 거부자가 될 수 없었을 사람들이 거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우리들 개개인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의 교육과 사회 체제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라고 외칠 때 우리의 선택은 정치적 사건이 되고 운동이 되고 거부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거부 이후, 삶은 계속된다

이 책은 ‘왜 대학·입시를 거부했는가’에 대한 당당한 호소를 담고 있는 동시에, 선언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주한 경험들과 그에 따른 생각의 변화 또한 섬세하게 담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거부’ 이후에도 ‘삶’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학입시와 학력·학벌 체제를 받아들인 이들에게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하게, 삶은 이들을 강타했다.

공기는 [‘끈’ 하나 없이 살아보겠다는 결의]에서 “‘노동 현장’만큼 ‘학벌’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도 없지만 열심히 부딪쳐보고는 있”는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곳에서는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관리자’로 일하며, 주로 30대 후반~40대 초중반 여성 노동자들(80년대 후반~90년대 초에 대학이 아닌 일자리를 택했던)이 ‘생산직’으로 일한다. 그 여성 노동자들조차도 자기 자식은 어떻게든 대학입시 공부를 시키고 있었으며, 공기에게 ‘이 젊은 시기가 아깝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다영은 [누구에게도 억압당하지 않고, 누구도 억압하지 않는]에서 ‘대학생에게만 허락되는 청춘’의 혜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스펙’이 필요했고, ‘나도 청춘’임을 아등바등 증명해야 했다고 말한다. 호야는 [나의 ‘불순한’ 대학거부]에서 대안이라는 환상이 붕괴된 뒤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대학거부자로서의 내 인생이 주변의 대학생 친구들에 비해 반짝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삶과 그들의 삶은 불안이라는 공통 요소로 유사해져만 갔다”는 고백은 뼈아프다.

3부 [‘대학거부 그 이후’ 좌담회]에서 엠건은 대학거부 전보다 오히려 대학거부 이후에 사회의 학력·학벌 차별에 대해 절감했다고 지적한다. 비슷한 지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일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학력 낮은 이를 비하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자신의 “안에서 뭔가 와장창 부서졌”다고 말한다. 자유는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마저도 동일 노동에 대해 급여를 대졸자들보다 적게 받아야 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서울대에 입학했다가 자퇴하며 대학을 거부한 공현은 “그래도 대학을 가야지 운동에 대해서 배우고 식견이 넓어지지 않냐”고 충고하는 ‘부드러운 차별’들을 겪었다고 말한다.

응원이 아닌 체제 변혁에 동참하기

이렇듯 ‘대학거부 그 이후’의 삶들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거부’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뒤 본격적으로 체제와의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제를 절대 개인의 몫으로 떠밀어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거부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도 소수의 대학거부자들을 영웅시하면서 자신과는 거리를 두는 이들이 있다. ‘넌 정말 대단해,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거야’라고 떠받들어주는 것, 멀찍이 서서 그들을 ‘응원’하는 것은 대학거부운동에 보탬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멍에를 씌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체제를 함께 바꿔나갈 한 걸음을 자신의 일상에서부터 내딛는 것, 다영의 조언에 따르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권력’을 만들어내서 학벌 사회를 더 공고하게 만들진 않았나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대학거부 그 이후의 삶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아질 방법을 찾는 것 등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 ‘완전히 다른 교육은 가능하다―투명가방끈이 그리는 새로운 삶과 사회’에서 투명가방끈은 바로 그 체제를 함께 바꿔나가기 위한 근본적인 제언 몇 가지를 내놓는다. 경쟁으로 구성된 시험과 제도화된 학교를 없애고(공현), 대학을 평준화하고 학벌을 해체하며(박유리), 권력에 길들여지지 말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자(김성일)고 말이다. 이 급진적인 제안들은 점진적이거나 부분적인 개혁보다는 사회 전체의 변혁을 전제한다. 주류 사회뿐만 아니라 운동 사회마저도 그것은 꿈이라고 말하고 너무 먼 얘기라고 선을 그을 때, 이들은 실제 자신의 삶을 그 꿈의 높이에 맞추어가며 우리에게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구매가격 : 9,800 원

황혼길 서러워라

도서정보 : 제정임 | 2013-12-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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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인들은 슬프다!

“울컥했다. 회한이 밀려왔다. 우리 사회의 노인은 암담했던 시대 자신을 희생하며 나라를 키운 무명의 역군들인데, 그들의 황혼길이 어찌 이리 서러워야 한단 말인가.” -박경철, 시골의사

농촌노인, 치매, 고령 노동, 황혼육아, 독거노인과 고독사, 노년의 성(性)과 여가……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황혼의 삶, 우리 시대 노인 이야기

9988234
어르신들의 송년회 자리에서 건배사로 쓰인다는 이 일곱 개의 숫자에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의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랜 연명치료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9988234’는 노년층만이 아니라 모든 연령대가 바라는 노년의 삶이다. 하지만 본인에게 상당한 재력이 있거나 자녀들의 부양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실현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2013년 12월 19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노인가구 10곳 중 3곳은 자녀와 동거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다. 노인가구의 상대 빈곤율은 OECD 33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반면 노년층의 삶의 만족도는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 땅의 노인들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기를, 잠든 채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황혼의 삶, 그 속내를 들여다보다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7% 이상인 경우 고령화 사회, 20% 이상인 경우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한국은 이미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13년 전국 60곳이 넘는 시군구가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많은 우려와 함께 수많은 노인 복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노인들의 구체적인 삶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노년층은 소비시장에서는 구매력이 없어 무의미한 집단으로, 정치권에서는 선거 시기에만 고려되고 동원되는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지하철이나 공원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은 무기력하거나 뭔가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차 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유모차에 손주를 태우고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노인들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다. 그리고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청년들이 바라본 노년의 삶, 노인 문제의 실태
이 책은 2012년 《벼랑에 선 사람들》로 한국사회 빈곤 실태를 다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의 〈단비뉴스〉가 ‘노인기획취재팀’을 꾸려 농촌 노인, 치매, 고령 노동, 황혼 육아, 독거노인과 고독사, 노년이 성과 여가 등 여섯 가지 주제로 노인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한국 최초의 노인보고서다.
무엇보다 차세대 언론인을 꿈꾸는 20대 젊은이들이 노인 문제에 주목했다는 점이 시사적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현장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노인들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대안을 찾으려는 열정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해진다.

“다른 이도 아니고 세대 갈등의 반대편 축에 서 있는 청년들이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따뜻한 가슴으로 문제에 다가갔고 예리한 시선으로 대안을 모색한 흔적이 느껴진다.” (‘추천사’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노인들
이 시대의 노인들은 가난하고 외롭고 아프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일생을 고달프게 일하며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만 미처 자신들의 노년을 준비하지 못한 이 세대는 절반 가까이 ‘빈곤층’으로 전락해 있다. 게다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을 갖고 있는 나라, 그 중에서도 도시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농촌은 현재 노인들의 삶이 어떠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장에 그러한 농촌에서의 노인의 삶을 다뤘다. 농촌은 가난하다. 정부의 농업 정책이 경쟁력 있는 전업농, 기업농 중심으로 가다보니 소농과 고령농은 더더욱 가난하다. 의료서비스도 턱없이 부족하고 열악해 많은 농촌이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나마 있는 소규모 의원들도 폐업을 하고 신설 병원들은 도시로 몰린다. 약국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농촌에서 자신의 몸이 불편해지면 제일 먼저 눈길에 와 닿는 것은 ‘농약병’이다. 농촌 노인의 자살은 결국 사회적 타살이다.

방치되는 치매 노인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많은 노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암보다 무서운 병’ 치매다. 치매를 겪는 배우자를 돌보다 살해했다거나 동반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노인의 치매의료 관리율은 47%로 치매 노인의 절반 이상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노인장기요양시설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2.9%에 불과하다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치매 관리는 거의 민간부문에 의지하고 있으며 이 또한 관리가 허술해 ‘엉터리 요양병원’만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실정이다. 2장 ‘치매, 끝나지 않는 고통’에서 3일 동안 노인요양원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가서 취재한 기자는 밤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온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취재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문장을 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목격한 노인들의 말년은 ‘형벌’이었다.”

늙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밥벌이의 고단함
3장 ‘일터, 고령 노동의 서글픈 현실’에서는 늙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힘들어도 좋다, 일자리만 다오”라는 언뜻 보면 상반된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노인들의 일자리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지하철 택배, 주유소 세차장, 아파트 경비……. 쉬지 않고 꼬박 일을 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그나마 약값 등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하면 한 달 생활이 빠듯하다. 한국의 노인들의 고용률은 폐지를 줍거나 노점을 하는 등 비공식 부문을 제외하고도 OECD 회원국 평균보다 2배나 높지만 노후소득보장제계가 미흡한 현실에서 열악한 근로 조건, 건강 악화, 부족한 보상, 정서적인 소외에도 불구하고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65세 이상 고령자의 절반 이상이 간절히 취업을 희망할 수밖에 없다.
생계를 위한 노동과는 다르지만 이른바 ‘황혼 육아’라고 불리는 손주 돌보기 또한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경우 각종 호르몬 변화와 급격하게 저하되는 신체기능 때문에 우울증에 쉽게 노출될 수 있으며 개인 시간도 없이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60대 노인들의 가장 희망하지 않는 노후 생활로 ‘손주의 양육’이 1순위로 꼽히지만 맞벌이가 늘어나고 일하는 엄마의 사회적 배려가 부족한 현실에서 달리 길을 찾기 어렵다. 4장 ‘황혼 육아, 빼앗긴 자유’에서는 황혼 육아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 보육환경의 전반적 개선이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살다 아무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고독은 외로움이라기보다는 두려움, 공포에 가깝다. 5장 ‘고독, 죽음보다 두려운’에서는 “이렇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괜한 걱정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2013년 1월 전남 순천에서는 3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들과도 떨어져 혼자 살던 박모(89, 여)씨가 보일러가 꺼져 차가운 바닥에서 숨진 지 사나흘 지난 뒤 발견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부산 도심 한 주택가 쪽방에서 김모(67, 여)씨가 숨진 지 5년 이상 지난 백골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전국적으로 810건의 무연고 사망자 유해가 발견됐는데 이중 상당수가 65세 이상 노인 고독사로 추정된다. 시신을 거둘 사람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가 발견되면 한 달 동안 공고를 통해 유족을 찾고 그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각 시도가 정하는 대행업체가 장례를 맡는데 서울의 경우 연평균 300건의 무연고 시신을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수습하고 있다. 빈곤과 죽음의 거리는 너무나 가깝고 그 사이를 노인들은 혼자서 위태롭게 걷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채재돈 씨는 오전은 효창공원으로, 오후는 종묘공원으로 나가는 것이 하루 일과다. 종묘공원에는 하루 평균 2,000명의 노인들이 모이는데 이들은 공원 주위를 거닐거나 삼삼오오 장기나 바둑을 두다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간다. 사회 전반의 문화와 여가시설이 구매력 있는 청장년 위주로 되어 있으니 노인들의 문화적 소외감은 갈수록 커져갈 수밖에 없다.
6장 ‘여가와 성, 눈치 보는 노인들’에서는 민감한 노년의 성 문제도 다룬.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의 실태는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노년의 성을 주책없고 민망하다고 여기는 사회 인식 전반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이성교제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노년의 성에 대한 담론 자체를 금기시하는 등 노년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편견에서 벗어날 때만이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매가격 : 8,750 원

워싱턴 룰

도서정보 : 앤드루 바세비치 | 2013-09-0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미국의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에 찬성해야 하고,
워싱턴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외는 없다.”

워싱턴 룰이 계속되는 한 미국은 영구전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 주류, 미국 국가 안보 정책에 관여하는 핵심부가 되기 위해서는 워싱턴 룰에 반드시 합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워싱턴 룰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를 유지하며 이득을 보는 세력은 누구인지를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먼저 워싱턴 룰의 관철에는 미 군사력의 세계적 주둔, 이 군사력에 의한 세계적 힘의 투사, 그리고 현존하거나 앞으로 예상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세계적 개입주의가 필요하다. 이를 저자는 ‘성 삼위일체’라 부른다. 그렇다면 워싱턴 룰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미국은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미국의 개입이 지속되어야 하며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군사적 우위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안보 정책의 기틀을 세운다. 그 중심에는 음지에서 활동하며 아무런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게 된 CIA(중앙정보국)와 핵과 미사일, 폭격기 등을 내세워 노골적으로 무력을 과시하는 SAC(전략공군사령부)가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기에 방위산업체와 거대 금융기관, 보수적 싱크탱크들이 결합했다. 국방부와 국무부, 국토안전부의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로비스트와 전직관료, 예비역 장교 등 권력의 핵심부 인사들도 워싱턴 룰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안보 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 곧 저자는 적어도 전쟁에 관한 한 민주당과 공화당은 공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군사 전략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전쟁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잠시 ‘워싱턴 룰’이 흔들리는 듯했으나 1980년대 레이건의 보수혁명으로 ‘워싱턴 룰’은 회복됐고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그리고 2001년 9·11사태로 부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은 사실상 영구전쟁의 길에 들어섰다. 실제로 미국은 2002년 아프간전쟁 이후 12년째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적은 공산주의였다가 냉전이 끝나자 이슬람 세력으로, 테러리즘과 악의 축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결국 해리 트루먼의 히로시마 원폭 결정이나 케네디의 피그만 침공 결정, 존슨의 미 지상군 베트남 파병 결정, 심지어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정 모두 대통령은 그저 워싱턴 룰에 따라 이미 결정된 것을 추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도 미국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워싱턴 룰을 깨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안보 정책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미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의 상황인식은 심각하다. 미국은 지금 외국의 빚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며 미국의 부채는 부시 취임 때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만 간다. 워싱턴 룰이 깨지지 않는 이상 미국의 파국은 예고된 것일 수밖에 없다.
23년간 군장교로 복무하고 예편한 뒤 미국의 외교사와 대외 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9·11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네오콘과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보며 그는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되었고 미국 안보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가톨릭 보수파’라고 부르는 저자답게 전 세계 37개국에 있는 35만 명의 해외 주둔 미군을 즉각 철수시키자는 급진적 주장보다는 단계적 철수와 불필요한 전쟁의 중단을 요구한다.

저자가 말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와 희생이다. 군대와 전쟁, 미국의 안보 정책 등 정치적인 문제에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하며 석유에 의존하는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워싱턴 룰이 존재 가능하도록 만든 미국의 정치사회적인 시스템과 함께 미국인의 삶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룰》은 미국의 안보 정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함께 한국적 상황에서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주장을 금기시 여기는 한국사회, 북한 핵위기 앞에 평화적 군축을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남북관계 가운데 끊임없이 신형 전투기 도입 등 군사력 강화가 추진되고 있다.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통제는 제도적으로 볼 때 미국보다도 훨씬 뒤떨어져 있다. 굳건한 한미공조와 군사력에 의한 안보만이 살 길이라는 냉전적 사고를 어떻게 탈피할 것인지,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이 책을 읽는 우리의 몫이다.

워싱턴 룰을 만든 사람들, 준전쟁의 전사들

냉전이 시작될 무렵 초대 국방부 장관이었던 제임스 포레스탈은 미국이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무기한 계속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준전쟁’이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 이 준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대대적인 군사비 지출이 필요하고, 잠재적 적대 세력이 언제 어디에서 나올지 모르기에 전 세계적인 경계와 관리가 필요하며, 적대세력이 미국에 도전하지 않게끔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주장이 미국 안보 정책의 초석으로 세워진다. 바로 그 중심에 앨런 덜레스와 커티스 르메이가 있다.
앨런 덜레스는 1953년부터 1961년까지 CIA(중앙정보국)국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CIA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모하메드 정부를 전복시키고 과테말라에 쿠데타를 통한 군부 정권이 들어서게 만드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구 거의 모든 곳에서 언제라도 우리의 핵심적 이익이 공격받을 수 있으므로” 미국이 “세계 모든 곳에 대해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 미국의 핵타격 전력이자 3차 세계대전의 핵심 부대인 SAC(전략공군사령부)의 지휘봉을 잡은 커티스 르메이는 “미국의 유일한 방어책은 우리의 어떤 잠재적 적국보다 강력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규모의 공격력을 키우는 것”이라며 “누구도 미국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소련에 대한 핵 우위와 군사무기의 현대화, 그리고 이를 위한 천문학적인 군비확충을 이끌었다. 결국 덜레스의 CIA는 음지에서, 르메이의 SAC는 노골적인 핵전력 과시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행동주의에 대한 맹신, 즉 워싱턴 합의를 국가의 제1원칙으로 만들었다.

워싱턴 룰을 강화시킨 케네디

1960년 당선된 미국의 젊은 대통령 케네디는 과연 소련을 상대할 경륜과 배짱이 있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덜레스와 르메이 등을 계속 기용함으로써 적절한 응답을 했다. 또한 케네디는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미국의 개입 능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그 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육군의 중요성이 떠올랐다. 그러나 케네디의 국방 개혁은 육군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았으며, 전쟁을 자신의 계획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군사 전략인 유연반응과 반란진압작전을 만든다. 전 세계 육군을 전진 배치하여 통제불능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면서 제한된 규모의 군사력으로 특정한 제한적 목표를 달성하는 이 계획은 케네디의 측근인 멕나마라 국방부 장관과 르메이의 밀고 당기는 알력 속에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을 베트남전쟁의 늪으로 이끌었다.
배트남전쟁의 참혹한 패배는 워싱턴 룰의 신뢰도에 상처를 주었지만 치명적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미국의 징병제는 붕괴되었으나 오히려 직업군인의 군대로 전환되어 국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소수 정책결정자에게 군사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재량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누구도 미국에 도전해서 성공하게 만든 전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워싱턴 룰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무도 이런 근본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 물론 맨스필드와 풀브라이트 같은 상원의원의 청문회와 의회 연설을 통한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대다수의 주류 미군의 안보 정책 담당자들은 베트남의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이를 일종의 예외, 특정한 판단 착오나 복합적인 실수의 결과로 간주했다.

베트남 아날로지와 뮌헨 아날로지,
올브라이트와 럼스펠드, 네오콘의 등장

베트남의 유산을 왜곡하고 망각하게 만드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이는 닉슨 행정부의 안보회의 참모였으며 대외관계협의회에서 활동했던 앤서니 레이크와 역시 닉슨 행정부 안보회의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였던 헨리 키신저다. 이들은 히틀러의 체코 침공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결과 2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며 미국이 베트남에 과도하게 대응했을지 몰라도 미국 안보 정책의 방향, 워싱턴 룰은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1980년대 베이루트, 그라나다, 리비아, 중남미와 걸프만 해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냉전 체제가 사라진 1990년대 최초의 여성 국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올브라이트는 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어쩌면 더 더욱 미국의 리더십이 필요해진 이유를 레이크와 키신저의 논리를 차용해 주장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군사력 사용을 옹호했다.
한편으로는 베트남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재발명됐다. 전쟁에서 우연과 불확정성이라는 요수를 제거하고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결정적 승리를 이끌어낼 방안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는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과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이다. 전자는 콜린 파월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 장교 그룹이 주도했고 후자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과 폴 월포위츠 등을 중심으로 한 민간인 그룹이 주도했다. 그리고 여기에 9.11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부시의 예방전쟁, 테러와의 전쟁, 끝나지 않는 영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워싱턴 룰로 이득을 보는가

20세기 자유주의를 위협하던 전체주의는 회복 불가능으로 패퇴했다. 21세기 오사마 빈라덴도, 사담 후세인도 사라졌다. 그러나 워싱턴 룰은 그대로이고 전쟁도 계속된다. 냉전 초기 형성된 워싱턴 룰은 봉쇄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워싱턴의 공식 목표는 도미노 효과, 연쇄적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 새롭게 정의된 워싱턴 룰은 미국식 도미노를 촉진하겠다는 것, 미국식 가치,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전 세계에 강요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워싱턴 룰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워싱턴이다. 여기서 워싱턴은 지리적 의미가 아니다. 미국의 행정, 입법, 사법부의 상층부를 비롯해 국가 안보의 주요 구성원인 국방부와 국무부, 국토안보부, 정보기관들과 여러 싱크탱크, 로비스트와 전직관료, 예비역 장교 등 권력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대 금융기관과 방위산업체, 거대 언론, 나아가 하버드 대학 케네디행정대학원 같은 준학술 조직들도 포괄한다.
결국 해리 트루먼의 히로시마 원폭 결정이나 케네디의 피그만 침공 결정, 존슨의 미 지상군 베트남 파병 결정, 심지어 부시의 이라크전쟁 결정 모두 대통령은 그저 워싱턴이 이미 결정해놓은 것을 추인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오바마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오바마의 전쟁이 되고 있다.

정치적인 시스템과 삶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워싱턴 룰을 깨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저자의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워싱턴 룰로 이득을 보는 세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미국 시민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다. ‘마음껏 소비하라, 미국의 힘은 무궁하다’라는 레이건의 주장에 동조했던 미국 시민,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로 중동의 장악이 미국 최대의 국익이게끔 만든 시민들, 결국 시민들이 바뀌지 않는 한 워싱턴 룰을 깰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은 외국의 빚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루며 미국의 부채는 부시 취임 때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력은 약해졌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미국의 국방비는 계속 늘어난다. 워싱턴 룰이 깨지지 않는 이상 미국의 파국은 예고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군대와 전쟁, 미국의 안보 정책 등 정치적인 문제에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워싱턴 룰이 존재 가능하도록 만든 미국의 정치적인 시스템과 함께 미국인의 삶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매가격 : 10,850 원

밀양을 살다

도서정보 : 밀양구술프로젝트 | 2014-04-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뺏고 짓밟는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요?”

밀양에 대한 아주 편파적인 기록,
그러나 이 아픈 이야기 속에 진실이 있다!

농사지으며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던 이들은
왜 거대 기업과 정부에 맞서게 되었나?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이 만난
밀양 주민 17명의 구술기록,
오늘 ‘밀양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그들이 증언하는 밀양의 진실

4월, 밀양의 잔인한 봄
따사로운 봄날, 만개한 봄꽃들 너머 밀양에서 들리는 소식이 심상치 않다. 마을에 들어서는 140미터 높이의 거대한 765kV 송전탑을 막기 위해 10년간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 부지에 움막을 짓고 계절을 바꿔가며 농성을 하고 있다. 날이 풀리자 한국전력은 이들 움막에 대해 퇴거 명령을 하고 강제 철거를 예고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에게 밀양으로 달려와 주민들과 함께 움막을 지켜달라고 호소한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밀양을 에워싼다.
농번기를 맞아 한창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가꿔야 할 이들, 평균 연령 70세인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왜 움막에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무수한 경찰과의 몸싸움, 이루 말할 수 없는 폭력과 모욕 가운데 지금까지 100여 명이 넘게 병원으로 실려 갔다. 2012년 1월과 2013년 12월, 두 분의 어르신이 송전탑을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이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을까? 그럼에도 거대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하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주 편파적인 기록, 그 안에 담긴 진실
이 책은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 17명의 구술기록이다. 2013년 말 기록노동자, 작가, 인권활동가, 여성학자 등이 ‘밀양구술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2014년 2월까지 직접 밀양을 찾아가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왜 송전탑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이 어떤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었으며, 삶의 터전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를 주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돈과 힘을 앞세운 한전과 정부에 대한 분노, 돈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이들을 향한 배신감,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지난 10년이 슬픔과 고통만으로 점철된 시간은 아니었다. 싸움 속에서 더욱 돈독해지는 이웃 간의 정, 새롭게 맺어지는 인연들, 더욱 풍요로워진 세계에서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픈 의지가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밀양에서 살고 있는, 그리고 밀양에서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아주 편파적인 기록이다.

삶으로 진실을 드러내다
그동안 정부, 한전 관계자, 그리고 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이 책은 편파적이면서도 가장 온전한 밀양의 기록이다. 그 질문은 바로 “당신은 누구인가?”, “어떤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왔으며, 당신의 삶에서 이 싸움의 의미는 무엇인가?”, “밀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17명의 구술자들은 자신이 온몸으로 살아낸 시간, 희로애락을 겪으며 지내온 세월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진솔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불순한 외부 세력에게 휘둘려 국책사업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비난과 매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이다. 각종 통계수치와 그래프가 동원된 한전과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폭로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의 목소리, 이들의 삶을 통해 밀양을 산다는 것,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존귀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덮는 순간 나의 밀양, 우리의 밀양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투쟁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한 열일곱 분의 이야기는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 어느 이야기든 우리들의 삶으로 밀양을 맞이하는 문이 되기를 바란다. 그 문으로 밀양이 걸어 들어오며 건네는 질문을 함께 품는 세계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전기는 밀양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
밀양구술프로젝트가 만난 밀양 주민들 중 80세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애에는 굴곡 많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일곱, 열여덟에 시집와서 대동아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었던 이야기, 극심한 가난과 고된 시집살이 속에서 아이들을 키웠던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배우지 못해 군대에서 욕을 많이 봤다는 할아버지는 한 평생 남 좋은 일만 하며 살았다. 그렇게 온갖 풍파를 뒤로 하고 평온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던 이들에게 날벼락처럼 들이닥친 송전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왜 주민의 뜻을 안 받아들이고, 또 여러 가지 대안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묵살하고 들어와서 공사를 시작하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완전히 한전의 편만 들고 경찰력을 동원해서 한전을 비호하니까 공사 시작부터 우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경찰이 콱 늘어서는 광경을 아침에 볼 때, 도대체 믿겨지지가 않아요. 이게 생신가 싶을 정도로예. (…) 당하고도 꿈인 거 겉기도 하고. 경찰이 이런 일도 다 하는가 싶고. -225쪽

주민들을 속이는 정부, 계속 말을 바꾸는 한전, 한전을 비호하며 주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경찰, 자신들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권과 언론……. 그러나 주민들은 망연자실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손을 맞잡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2차례의 희망버스가 밀양을 찾으면서 밀양은 이제 한국 탈핵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주민들은 싸움 속에서 스스로 깨우치며 ‘고통스런 학습의 터널’을 통과했다. “전기는 밀양 주민들의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며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는 필요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핵발전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 지적하며 정부의 에너지기본계획의 근간을 뒤흔든다.

“포기할 수 없지예, 우리가 끝은 아닐 테니까”
송전탑은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합의냐 반대냐.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찬반에 따라 동네가 갈리고 친인척이 등을 졌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살림살이에도 축이 나고 여기저기 빈자리가 드러난다. 3,000명이 넘는 경찰 병력이 투입되면서 송전탑이 하나 둘 들어섰다. 송전탑은 가까운 미래는 물론 바로 오늘 일상을 위협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송전탑 건설 부지로 자재를 실어 나르는 헬기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가축도 불안하다. 하루에도 열두 번 희망이 있는가, 없는가, 오락가락이다.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던 거구나.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리도 오래 싸웠는데 그래도 들어왔구나. 그러나 역시 싸웠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가 보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우리 정말 많이 싸웠다. 밤낮없이. -64쪽

그렇게 후회 없이 싸웠다. 그리고 또 싸운다.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끝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희망이 되어가는 이들.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가서 어떻게든”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는 이들. 이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들과 함께 살아갈 이들을 기다린다.

※ 이 책의 인세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후원에 사용됩니다.

책 속으로 추가

그 추운 날, 어른들 나와 있는 거 보면 마음이 찢어지지예. 아침 7시가 돼도 춥거든요. 어떻게 하면 나 많은 사람들이 추운 데 안 나오고 이 공사를 어떻게 멈출 수 있겠노. 어떤 방법이 좋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이 없고. 한 할머니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를 이렇게 시들시들 말려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달라. 내가 그 엄청난 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해요. -237쪽

이건 용서가 안 될 거 같아요. 누군가의 힘에 의해 억지로 된, 합법적인 공사가 아니잖아요. 우리들 다 죽는다고 했는데, 누군가가 나서서 대화를 했어야죠. 그걸 안 해줬잖아요. 만약에 세워진다면…… 용서가 안 되죠. 권력에 의해서 우리가 짓밟히고 세워진 건데 용서를 할 수 없죠. 사실은…… 며칠 전에, 내가 베개에다가 수건을 깔고 잤어요. 얼마 전부터는 그냥 베개를 베고 자요. 수건 깔고 잘 때는 그 상황들을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 가만 보면 눈물자국이 하나둘 있는 거예요. 내가 자면서도 내 말을 지키지 못하는 죄책감 때문에 울고 있었다는 생각에…… 잘 때조차 눈물을 흘릴 정도면 머릿속에 내가 그만큼 슬프다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힘이 없어서 송전이 된다고 했을 때 내가 안고 살아야 하는 슬픔인데…… -252쪽

한전이라 카는 집단은 공기업 아닙니까. 공기업이면 일반 민간기업, 일반 개인들이 운영하는 것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데 한전이라는 집단은 양아치 집단이라. 골안마을에서 합의가 안 됐다, 잘못됐다 카면은 골안마을에 와가지고 뭐가 잘못됐는지 살펴보고 그러면 피해가 많이 가는 골안마을 사람들한테 도장을 받고 해야 그게 합의가 되고 하는 거지. -263쪽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짓밟는,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과의 전쟁 아입니까. 전쟁이라는 말은 제가 만들어낸 말은 아입니더. 여기서 송전탑, 경찰이 와가지고 그래 캅디더. 원래 지금 전쟁 상황입니다 이랬다고예. 주민들보고. 저거가 전쟁이라 캤기 때문에 저도 전쟁이라고 캤는데 전쟁 아입니까. 그래 힘없는 사람 짓밟기가 쉽지 않습니까. 힘 있는 사람은 저거 땅으로는 못 가게 하고. - 266쪽

꿈에서도 막 싸웁니더. 일이 손에 안 잡힙니더. 갔다 오면 사람 몸만 피곤하고. 동네가 얼마나 좋습니까. 공기도 좋고. 예전에는 정부에서 하는 일은 다 잘해주겠지 생각했는데, 진짜로 송전탑 문제 경험 안 했으면 몰랐지예. 데모하시는 분들 이해가 갑니다. 일방통행입니더. 한전 사람들이 나는 참 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가서 일부러 받아갈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을 거거든예. 주민들이 아무 뜻 없이 있는데 저거가 와가지고 댕기면서 거짓말하지예. 그것 때문에 주민들이 나놔지고…… 주민들을 무시하니까. -278쪽

우리가 송전탑을 세운 걸 뽑아낸다거나, 아니면 지금 중단을 시킨다거나 뭐 이런 힘은 없는 거 같에요. 근데 이걸 함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송전탑이 얼마나 잘못됐고 뭐 이런 거를 알릴 수 있는 계기는 만들어준 거 같에요. 그래서 우리 밀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더 잘 싸우지 않을까, 잘 싸울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은 듭니다. 우리가 끝은 아닌 것 같으니까. -300쪽

“송전탑 저거는 못 세운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걸 무슨 신념같이 하늘이 우리를 도와준다고 느끼고 있었고 거기에 많이 의존을 했었던 거 같은데 뭐 경찰이 딱 개입되고 나서는 “아, 이게 들어설 수도 있겠다. 우리가 철탑을 보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점 더 날이 갈수록 많아지는 거 같애요.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으니까, 산으로 갈 수 있는 입구란 입구는 지금 경찰이 다 막고 있으니까요. 암만 가서 몸으로 부딪쳐도 저그 할 건 다 하더라구예. 그래서 이번에 고답에서 싸우다 연행이 되고 이럴 때 내가 제일 힘들었던 게 우리는 어째 (한전의 시설보호 요청으로 경찰이 들어온 후) 석 달 동안을 한 번을 못 이겨보노, 어떻게 한 번을 못 이겨보고 당하노, 이게 너무 서럽더라구요. -336쪽

우리가 철탑을 막아야 되겠다고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끝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평생 자존심만은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무너지면 살면서도 나는 죽은 거 같거든요. 끝까지 하자. 끝까지 해서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으면 그 틈을 비집고 가서 어떻게 해서든 안 세우게 해보자. 희망이 있다가 없다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뒤집히니까, 그래도 희망 가지고 있는 거 같애요. 지난번 희망버스 때도 보니까 할매들이 “뭐를 할랑고? 혹시 쟤네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잖아요. 크게 그거할 건 아니지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 때문에 희망버스 그지예? 말이, 생각 자체가 희망인 거예요. 그 사람들이 오면 중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 가고 나면 또 허전하지만 그래도 또 “다음에 오께요, 할머니” 하고 가시는 그 양반들 마음이 희망이죠. -345쪽

밀양 어르신들의 10년의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르신들의 남은 생애에 이 싸움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 밀양 송전탑은 널리 알려졌지만, 여전히 오해와 몰이해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다.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이 싸움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것은 어르신들의 생애와 이 싸움의 소회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법과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고, 저들에 의해 저질러진 무간지옥의 폭력을 증언하는 과업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오해와 몰이해의 문턱에서 서성이는 밀양 송전탑의 진실을 분명한 의미의 지평 위로 옮겨놓는 일이 될 것이다. -369쪽

구매가격 : 11,200 원

노동자, 쓰러지다

도서정보 : 희정 | 2014-07-2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노동자의 목숨값은 얼마인가요?”

하루에 7명씩 죽어가는 노동자들
안전의 민영화, 위험의 외주화,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부른 재난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놀라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샅샅이 밝히고 있다.”
- 송경동, 시인

“사람이 일을 하다가 왜 죽나요?”

산업재해 현장을 취재하던 중에 저자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스웨덴 사람에게 “스웨덴에서는 사람이 일하다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아니, 사람이 일하다가 왜 죽느냐?”고 의아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구상 어딘가에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사람이 일하다 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책을 쓰는 사이 300여 명이 탄 배가 바다로 가라앉았다. 송경동 시인은 추천사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세월호”였다고 했다.

정규직이라는 최소한의 삶의 평형이 허물어진 자리에 900만 명의 비정규직 승객들이 구명정 하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사회. 모든 안전 업무, 평화 업무, 평등 업무가 외주화된 사회의 밑바닥에서 세월호 이전부터 ‘가만히 있다’가 개별적으로 서서히 침몰해왔던 작은 세월호들의 사연이 아프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그간 하루 7명이 산재라는 이름으로 침몰해갔다. - 추천사 중에서

사람의 목숨이 돈으로 계산되는 사회, 안전에 대한 투자가 손익계산서 앞에서 무력해지는 사회, 더 가난하고 더 힘없는 사람들에게 위험이 전가되는 사회에서 저자는 왜 사람들이 일하다 다치고 병들고 죽고, 그럼에도 계속 죽도록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현장을 파고들었다. 조선소와 건설 현장, 코레일과 KT,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와 배달, 자동차 공장과 중소영세업체,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산업 전반의 현장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취재했다. 한 해 2,000명씩 일하다 죽는 사회의 구석구석을 들추고 있는 아픈 기록이자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한국 사회, 탐욕의 재난이 덮친 한국 사회의 이면을 샅샅이 들추는 분노의 기록은 그렇게 책으로 묶였다.
취재를 하던 중 저자는 한 노동안전보건 단체를 찾아가 사람이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감수성’이었다. 인간이 일하다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감수성, 타인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는 공감 능력.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사회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였다. 결국 그런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불렀고 대한민국은 깊은 슬픔에 빠져들었다.

산재는 은폐하고 위험은 외주화하는 기업들

한국은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 10만 명당 21명이 일하다 죽는 산재공화국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산재사망률이 아닌 산재율은 외국에 비해 매우 낮다. 2009년 미국의 노동자 중 2.5퍼센트가 일하다 다친 반면 한국은 고작 0.7퍼센트가 다쳤다. 그런데 왜 산재사망률은 미국이 10만 명당 4명인데 한국은 21명이나 될까? 덜 다치지만 많이 죽는 이 이상한 현상은 한국에서 많은 수의 산재가 은폐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신고된 산재가 전체 산재의 91.1퍼센트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이렇게 산재를 은폐하여 기업들이 얻은 이익은 어마어마하다. 국회 환경노동위 은수미 의원에 의하면 현대중공업이 산재를 개인질병으로 처리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근 5년간 산재보험료 955억 원을 할인받았다. 삼성물산 622억, 현대자동차 540억, 롯데건설 410억. 그 5년 동안 노동자는 평균 하루에 7명, 한 해 2,000명씩 죽어갔다.
대부분의 산재 사망 사고는 중소영세업체에서 일어난다. 2010년 1,0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기업에서 125명이 죽는 동안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534명이 죽었다. 그해 2,11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60퍼센트가 넘는 죽음이 중소영세사업장에 몰려있다. 결국 힘없는 노동자가 더 힘든 일, 위험한 일을 하며 더 많이 죽는다. 다단계 하도급으로 악명이 높은 건설 현장에서 산재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공사기간 단축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발주처나 원청은 아예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산재, 모든 참사는 탐욕에 눈먼 자본이 불러온 예고된 재난인 것이다.

몸도 마음도 병들어가는 노동자들

현장 노동자들은 육체만 다치는 것은 아니다. 여수 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96.2퍼센트가 고용 불안 등의 이유로 잠재적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했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되며 구조조정의 바람이 휘몰아친 KT에서는 2013년 1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6년간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가 23명에 달했다. 15년 연속 고객 만족도 연속 1위라는 우체국의 집배원도, 좋은 ‘의료서비스’를 위해 환자가 아닌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간호사도 엄청난 감정노동을 요구받는다. 대표적 감정노동으로 분류되는 콜센터 직원이나 백화점, 마트 판매원의 자살은 더 이상 큰 뉴스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감정노동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관계까지도 파괴하지만 기업들은 그들을 단순한 서비스업 종사자로만 치부하며 어떤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고객 서비스를 높여 상품을 팔 생각만 하고 있다.

안전에 투자해야 살아남는다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는 사이, 기업들은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사람이 죽는 것에 눈을 감는 사이 산재가 터지면 사회는 ‘안전 불감증’이라며 잠깐 분노하지만 곧 잊어버린다. 그러니 공감만으로는 부족하다. OECD의 많은 국가들은 산재를 구조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산재 문제에서 위법 행위자뿐만 아니라 업무 주체까지도 함께 처벌하는 ‘기업살인처벌법’을 만들었다. 이 법으로 첫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에서 기업에 부과된 벌금은 우리 돈으로 7억 원, 판사는 판결문에서 “벌금 때문에 회사가 파산한다 해도 이것은 불행하지만 필연적인 결과”라는 말을 덧붙였다.
기업살인처벌법을 만드는 것 외에도 안전에 투자할 것,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인력 감축이나 외주화를 하지 말 것, 노동시간을 단축할 것, 사고의 실질적인 책임을 엄중하게 물을 것 등등은 이미 수차례 노동계에서 요구해온 것들이다.

투자하면 위험이 감소한다는 것을 알면서 ‘안전 불감증’ 운운하는 것은 범죄에 동조하고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이다. 안전에 투자해야 안전해진다. 모든 것이 비용의 문제라면, ‘안전을 지키지 않을 시의 비용’을 높여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 이득을 얻은 기업이 실질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의 목숨을 책임질 수 있는 법안과 지원책을 내야 한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세워야 한다. 경쟁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의 노동을 지양해야 한다. 산업재해 수치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사고 은폐 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는다. -에필로그 중에서

원청-하청, 위험을 외주화하다

1부 ‘위험한 일터’는 위험이 외주화되는 현장인 조선소와 한 해 700명이 죽어나가는 건설 현장을 다룬다. 조선소 곳곳에는 ‘안전제일’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고 그 옆에는 ‘무리하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대충하지 말자’라는 3불(三不) 표어가 있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이 3불 표어를 가리켜 현장에서 불가능한 3가지라고 부른다. 원청회사의 납기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기한 내에 일을 해야 마쳐야 한다. 당연히 안전은 뒷전이다. 그러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구역의 작업이 중지되고 납기일에 차질이 생긴다. 안전은 뒷전이지만 현장은 무재해여야 하는 상황.
“원청에게 안전하게 일한다는 것은 비효율성이 증가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꺼려하고 그러다보니 산재를 막는 데 한계가 생기는 거지요.”
그 한계를 원청회사는 산재 은폐, 벌어진 산재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으로 넘어선다. 산업재해로 기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이 파열되고 머리가 깨진 사람을 앰뷸런스가 아닌 트럭에 싣고 공장 밖으로 보내는 것이다.
산재의 위험은 하청업체로 갈수록 더욱 높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일수록 하청 노동자에게 맡겨지기 때문이다. 각기 흩어져 있는 개별 업체 소속이니 사망 사고가 나도 누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원청회사 직원도 아니니 여전히 그곳은 무재해 사업장이자 자율안전관리 기업으로 남은 채로 말이다.
정부 당국과 관계 기관의 방조도 한몫을 한다. 2011년 근로복지공단은 1조 원가량의 흑자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로, 조선소 지역에서 산업재해를 밝혀내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고 한다. 산업재해를 당해놓고도 산재보험이 아닌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이들이 많아, 적자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런 환자들을 찾아내어 산재신청을 종용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은 바로 다단계 하도급 형태의 수주 방식과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이다. 공사 수주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공사 자금은 줄어든다. 수익이 나려면 공사 기간을 단축해서 인건비, 장비 대여비 등을 줄여야 한다. 안전 비용을 축소하고 전문 기술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옵션’이다. 공사장 밖에는 항상 광범위한 실업군이 존재하니 노동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일하다 다쳤지만 ‘감히’ 공상처리를 하지 않고 산재 신청을 했다면 그는 다시 현장에 발붙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안전에 돈을 쓰지 않으려는 기업들과 방조하는 정부

2011년 12월 9일 새벽 공항철도 열차가 선로 근로자를 덮쳐 5명이 사망한 사고가 났다. 사망한 이들은 코레일테크 산하의 협력업체 직원들이었다.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는 선로 공사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다. 철도공사 현장 직원은 관내에서 외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어도 어느 업체 직원인지,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사고는 필연적이었다. 2부 ‘구조조정이 부른 죽음’에서는 철도 민영화 현장인 코레일과 민영화된 기업 KT를 다룬다.
사람들은 사고를 접하고 흔히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한다. 이 안전 불감증을 고치는 특효약은 바로 돈이다.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된 후 공무원 신분을 탈피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시간외근무수당도 따라 오르자 사고를 발생시키는 무리한 잔업, 야간근무를 줄였다. 이렇게 안전 불감증은 돈이 들어야 고쳐지는데 하청업체는 사고가 나도 철도공사의 돈이 안 들어가니 결국 외주화가 늘고, 민영화에 눈길이 가고, 덩달아 사고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죽음의 기업이라고 불리는 KT는 민영화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죽음으로 내모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13년 11명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악명 높은 구조조정의 바람이 지나간 뒤 6년 동안 23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유는 하나같다. 퇴직을 하거나 퇴직 압박에 시달렸던 것. 그럼에도 10년간 1만 3,000여 명을 퇴출시킨 KT는 여전히 ‘비상경영’ 중이다.
우체국과 택배, 퀵서비스, 청소년 배달 알바노동을 다룬 3부 ‘시간에 쫓겨 달리다’는 누가 가장 위험한가를 뽑는 경연장을 보는 듯하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6시간인 집배원들은 집에서 9시 뉴스를 보는 것이 소원이다. 그렇지만 8,000여 명의 비정규직 위탁 택배원에 비하면 이들의 소망은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택배 물품 하나에 남는 돈이 970원인데 여기에 택배 차량 할부에 유류비, 정비 비용, 점심 값까지 다 뽑아야 하니 위험한 질주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위험한 질주는 역시 퀵서비스다. 몇 명이 종사하는지 집계조차 어려우니 퀵서비스 노동자의 산재율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2013년 5월에서야 특수고용직에 제한적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되었지만 실제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퀵서비스 노동자는 한줌도 되지 않는다. 산재보험에 들려면 업주와 반반씩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업주는 자신들의 부담금을 사납금을 올리는 것으로 메우려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잘못하다 죽는 일’로 꼽히는 배달대행업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보며 “저 나아에도 오토바이를 몰고 산다면, 차라리 차에 받혀서 죽어버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아프고 다치는 사회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는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이다. 오래 일하는 이유는 일이 재미있다거나 보람이 커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다. 4부 ‘우리는 왜 오래 일하는가’는 이렇게 먹고살기 위해서 밥 먹을 시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는 버스 노동자, 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했다. 낮밤이 바뀌고 생체 리듬이 무시되니 많은 이들이 병에 걸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병가는 꿈도 못 꾼다. 참고 일하다 더는 못 참겠으면 조용히 일터를 떠나야 한다.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서의 장시간 노동도 악명이 높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다 과로로 숨진 31세의 청년은 일주일에 80시간을 일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 법정 근로시간의 두 배를 일하고 그가 받은 돈은 80만 원 월급의 두 배였다. 간혹 ‘귀족’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들도 오래 일한다. “특근을 안 하면 임금의 30퍼센트가 줄고 그러면 애들 학원에 보낼 수 없기에”, “특근 물량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 때문에” 이들은 일을 멈출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근원에는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 오래 일해야만 겨우 먹고살 만해지기 때문인 것이다.
5부 ‘우리 안의 발암물질’에서는 유해물질에 노출된 노동자들을 다룬다. 2012년 구미에서 5명이 숨진 불산 누출 사고 4개월 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다시 불산이 누출되었다. 두 달 뒤인 2013년 3월 또다시 구미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됐다. 하루에 세 건의 비슷한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요사이 왜 이렇게 누출 사고가 잦은지 시민들은 불안해했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달리 말한다. 원래 누출사고는 잦았다. 다만 그동안 숨겨진 것이었다. 기업은 이윤 때문에, 관제기관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주민들은 땅값 걱정에 쉬쉬하던 것이 구미 불산 누출 사건 이후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사이에 노동자들은 다치고 병들고 죽어간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더 빨리 병든다.
6부 ‘더 낮은 곳의 직업병’에서는 감정노동자와 산재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웃으면서 죽어간다는 감정노동은 당사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관계까지도 파괴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단순한 서비스업 종사자로만 치부하며 어떤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고객 서비스를 높여 상품을 팔 생각만 하고 있다. 직원이 많고 그래서 노동조합도 있는 곳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런데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85퍼센트, 산업재해의 80퍼센트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된다. 전단지를 돌리는 청소년들,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는,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노동이 아니라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현장에 내몰리는 실습생들……. “교통사고는 사고 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라도 붙지, 일하는 사람의 죽음에는 그조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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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혁명가의 회고록

도서정보 : 빅토르 세르주 저 | 2014-07-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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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존경할 만한 윤리적·문학적 영웅.” _ 수전 손택

어떻게 살 것인가?
혁명이란 무엇인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불굴의 혁명가 빅토르 세르주 자서전!


빅토르 세르주는 누구인가-잊혀진 혁명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소설가, 시인, 역사가, 정치평론가, 저널리스트, 아나키스트, 볼셰비키, 좌익 반대파, 트로츠키주의자…… 빅토르 세르주(1890∼1947) 앞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는 참 많다. 그 많은 수식어 중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마도 ‘혁명가’일 것이다. 그는 죽는 날까지 투사였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였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존경할 만한 윤리적·문학적 영웅 빅토르 세르주가 오늘날 잊혀지다시피 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쉽게 잊힌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국가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적 망명자’였다. 세르주의 부모는 차르 독재에 반대하여 1880년대에 러시아를 떠난 망명자였고, 그런 와중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르주를 낳았다. 브뤼셀에서 유년기를 보낸 세르주는 그 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를 전전했고, 멕시코에서 궁핍한 말년을 보내다 사망했다. 그는 이들 나라를 거치는 동안 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일생의 많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결국 늘 쫓겨나고 추방당해 다른 나라로 옮겨가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국적 없는 혁명가’의 본질 때문인지 그가 죽고 난 뒤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 사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카뮈, 퀘슬러, 오웰 등과 같이 이따금 정치 활동이나 투쟁에 참여한 작가들과는 달리 그는 온전히 평생을 사회와 정치에 몸을 바친 운동가였다. 이런 차이 때문인지 그의 작가로서의 활동도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정치 활동을 하는 중에도 늘 글을 썼다. 출간한 글만 소설 7권, 시집 2권, 단편집, 일기, 회고록, 서른 권이 넘는 정치·역사서, 팸플릿, 평전 등 수많은 책을 발표했다. 그중 특히 소설은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세르주가 쓴 《툴라예프 사건》, 《세기의 한밤중》, 《감옥에 갇힌 사람들》, 《우리 권력의 탄생》, 《정복당한 도시》 등은 충분히 조명받을 만한 위대한 소설이고,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그의 책이 다시 발간되고 있다(이 소설들은 오월의봄에서 차근차근 출간될 예정이다). 이 소설들은 모두 ‘혁명’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세르주처럼 직접 혁명을 경험하고 수많은 혁명가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그들과 이상을 논한 작가는 드물다. 세르주는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 영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했다. 소설을 비롯한 각종 원고는 프랑스어로 작성했는데, 작가 스타일로 보면 러시아 문학과 유사하고 스스로도 러시아 문학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러시아 작가. 이런 이질감 때문인지 세르주의 작품은 많이 조명을 받지 못하고 그 명성이 더욱 묻혀버리고 말았다.
또한 그가 쉽게 잊혀버린 이유는 그의 정치적인 주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청년 시절 아나키스트였고, 러시아로 건너가 볼셰비키에 가담해 혁명 활동을 했다. 그러나 혁명은 곧 관료체제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비밀 경찰기구가 혁명가와 민중을 억압했다. 언론 탄압, 체로, 비공개 재판, 정치범에 대한 사형 선고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세르주는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이윽고 공산당에서 축출되었다. 혁명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좌익 반대파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죽을 고비를 넘겼고 로맹 롤랑 등의 도움으로 겨우 소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트로츠키를 비판하다 그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즉 그는 이상을 꿈꾸며 실천하는 혁명가이기는 했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러시아혁명의 진실을 말하는 그를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은 불편하게 여겼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한동안 잊혀진 운명에 처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세르주의 삶은 실패했다. 성공한 측면은 아무것도 없는 듯이 보인다. 그가 그토록 원하는 ‘인간의 생명과 개인의 자유를 예외 없이 존중하는’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죽을 때까지 궁핍하게 이곳저곳을 떠도는 투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쉼 없이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실천을 한 혁명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의 작가로서의 재능도 재조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희망을 품은 이들이 현실에 안주해 혁명을 배반한 것을 꾸준히 글과 행동으로 비판을 해왔던 그의 글들을 다시 읽고 오늘을 되새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을 통해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혁명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꾸준히 질문할 필요가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한 혁명가의 증언
《한 혁명가의 회고록》은 히틀러가 지배하는 유럽을 벗어나 멕시코로 건너온 뒤 쓴 자서전이다. 애덤 혹스칠드는 이 자서전을 ‘걸작’이라 칭하면서 “20세기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다른 위대한 정치 저술(아서 퀘슬러의 《한낮의 어둠》과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과 동급에 놓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르주는 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증언한다. 세르주는 굽히지 않고 단호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세상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러시아혁명은 러시아만의 혁명이 아니었다. 세상을 이상적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은 모두 러시아혁명을 동경했고, 그 혁명이 진정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러시아에 살지 않는 일부 지식인들은 스탈린 체제까지도 긍정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세르주는 체포, 추방, 원고 절취,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혁명 러시아에 17년을 머물면서 혁명을 탁월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는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애정을 가지고 사태를 통찰했다.
혁명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위험해서 투옥될 가능성도 있고, 추방될 각오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혁명은 궁핍한 삶을 부른다. 늘 굶주림에 처해 있어야 한다. 오늘날 혁명은 매우 ‘낭만’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체 게바라가 상품화되었듯이 혁명에서 역사는 지워져버렸다. 그리고 박노자가 이 책의 추천사에서 밝혔듯이 너무 자주, 빈번하게 혁명이라는 단어가 소비된다. 곧 혁명이 아닌데도 혁명이라고 불린다(2008년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고 부르거나, 2014년 우크라이나 시위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박노자는 비판한다). 이렇듯 ‘혁명’이란 단어는 오염되었다. 이 책은 이런 ‘혁명’을 오롯이 되살린다. 진짜 ‘혁명’은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혁명가의 삶 또한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르주가 겪은 모든 혁명은 실패했지만 세르주는 그 실패 과정 속에서 성찰했고, 열정적으로 글을 남겼으며, 새로운 혁명을 꿈꿨다. 박노자는 그래서 이 회고록이 “혁명이라는 생명체를 여실히 만날 수 있는 텍스트다”라고 말하고 있다.
빅토르 세르주가 러시아혁명이 실패했다고 말한 가장 큰 이유는 관료체제와 경찰기구에 있었다. 혁명에 성공한 혁명가들은 낙원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외세 간섭과 내전 속에서 혁명가들은 자기들만이 아니라 타자들도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자본의 공격에 맞서 스스로 국가 비밀경찰을 두어 서로를 감시하고 탄압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관료가 되어 혁명의 이상을 잊어버렸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스스로 출세주의자가 되었다. 러시아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과 도시 수공업자들 또한 공산주의에 무관심했으며 자신의 안정과 밥벌이에만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혁명이 일어났는가. 세르주가 직접 목격한 독일 등 유럽 좌파들은 혁명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자본가를 대신한 관료 위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공업화를 통해 경제를 상승시키는 정책을 펼쳤고, 그에 따라 개인의 자유는 없어졌다. 여기에 ‘비판적 볼셰비키’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세르주는 감옥에 갇히고, 겨우 목숨을 건져 소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혁명가의 삶이란 무엇인가-20세기를 움직인 혁명가들
이 책에는 수없이 많은 혁명가들이 등장한다. 이 책 곳곳에서 당대 인사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설명을 읽을 수 있고, 그 점이 이 회고록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가 잘 알았던 혁명 지도자들인 레닌, 트로츠키, 지노비에프는 말할 것도 없고, 코민테른에서 활약한 안젤리카 발라바노바, 안토니오 그람시, 죄르지 루카치를 위시해, 미국에서 온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 알렉산더 버크만, 《세계를 뒤흔든 열흘》의 작가 존 리드, 프랑스 작가들인 앙드레 지드, 로맹 롤랑, 기타 수많은 역사 인물들을 접할 수 있다.
“그람시는 머리가 묵직했고, 이마는 높고 넓었으며, 입술은 얇았다. 몸은 꼽추여서 작고 연약했다. 어깻죽지가 올라간 것, 허약한 가슴도 다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홀쭉하고 섬세한 손의 움직임은 우아했다. 그람시는 일상생활이 서툴렀다. 익숙한 곳인데도 밤이면 길을 잃었고, 전차를 잘못 탔으며, 숙소의 안락함이나 식사의 질에 무심했다. 하지만 그의 지적 능력은 완벽했고, 활기가 넘쳤다. 그람시는 변증법을 직관적으로 활용했고, 냉큼 허위를 파악해 역설로서 제시했다.”
“레닌은 뛰어난 웅변가도, 일급의 강연자도 아니었다. 그는 말을 전혀 꾸미지 않았고, 선동하겠다는 의도도 일절 없었다. 그는 신문 기사에 나오는 어휘를 사용했다. 그는 여러 가지 형태로 반복하는 기술을 썼다. 그의 연설은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그가 내는 흉내는 무척이나 생생했고, 내용 역시 이성적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레닌은 하는 말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몸짓으로 한 손을 들어 올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후에는 꼭 고개를 숙여 청중의 반응을 확인했다. 확고하게 입증해 보였다는 의미로 두 손바닥을 쫙 편 채 진심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혁명가들의 이름도 보인다. 세르주는 그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용기백배한 세 세대의 투사를 직접 경험했다. 그들이 잘못과 실수, 오류를 범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에게 깊이 끌렸다. …… 내 뒤로 수많은 이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 다수가 활력, 재능, 역사적 중요성 면에서 나보다 나은 인물들이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그들이 떠오르면 나는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이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울러서 어떤 용기도 샘솟는다.”
세르주는 이 혁명가들의 삶을 특유의 소설가의 눈으로 잘 끄집어내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내팽개치고서라도 혁명을 위해 나서는 혁명가들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미주에는 이 혁명가들의 삶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자체 하나만으로도 20세기 혁명사를 아우를 수 있는 지식 보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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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도서정보 : 강신주 | 2014-07-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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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철학의 출발점!
노자의 길을 갈 것인가, 장자의 길을 갈 것인가?

이 책은 새롭게 집필된 게 아닙니다. 10년 전의 초기 저작 두 권, 그러니까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과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이라는 책을 한 권으로 묶은 거니까요. 이렇게 묶은 이유는 그만큼 이 두 권의 책이 제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강물이 하나의 작은 연못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지금까지 썼던 서른 권 정도의 책은 바로 이 두 권의 책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의아스런 생각도 드실 겁니다. 기원이라면 보통 하나인데, 지금 저는 제 사유의 기원으로 장자와 노자 두 사람을 들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에서 생택쥐페리(Saint Exupery)는 말합니다. “사랑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는 생택쥐베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사랑은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어려울 때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방향을 보게 될 때, 사랑은 이미 변질된 것 아닐까요. 동일한 신을 믿는 교우 관계, 아이만을 보는 것으로 지속되는 부부 관계, 혹은 대의를 지키려는 동지의 관계로 말이지요. 이 부분이 장자와 노자의 사유를 이해할 때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생택쥐페리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 장자이고, 그 입장을 긍정하는 것이 바로 노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장자가 사랑이 서로 마주보는 관계라고 역설한다면, 이와 달리 노자는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마주보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함께 같은 방향으로 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같은 이유로 장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노자 이해가, 반대로 노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자 이해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이제 납득이 되시나요. 제게 장자는 반복하고 싶은 선생님이었다면, 노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반면교사였던 겁니다. 마주보아야 할 타자를 강조했던 장자, 그리고 공통 원리로서 국가를 강조했던 노자! 이 두 사상가는 제 내면에서 전쟁을 벌였고 그만큼 저의 사유는 역동적으로 변했고 다채로워졌습니다. 당연히 저의 사유도 더 깊어질 수 있었고요. 10년이 지난 지금 노자와 장자를 다룬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제 사유의 기원을 명료히 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노자와 장자의 사유를 제대로 설명하는 작업이었던 셈입니다.
-머리말에서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는 책 제목 그대로 나는 장자의 속내는 타자와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와 이질적인 타자와 소통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건 정말로 똥줄이 빠지게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숨을 내건 결단’, 혹은 스님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척간두진일보’의 기개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 거의 죽을 정도로 우리는 자신의 주체 형식을 바꾸어야, 쉽게 말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꿔야만 한다. 이럴 때에만 우리는 타자와의 소통을 그나마 기대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장자가 우리에게 권고했던 치열한 자기 수양은 타자와 소통하려는 열망에 종속된다는 것, 내 첫 책이 밝히려고 했던 건 바로 이것이다. 운 좋게도 타자와 소통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 흔적도 남을 수밖에 없을 터. 그것이 바로 장자의 머릿속에 있던 ‘도(道)’였다. 바로 여기에서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그러니까 ‘길은 걸어가야 이루어진다’는 장자의 사자후가 포효하게 된다.
2003년 책이 등장했을 때, 학계의 반응은 당혹감 자체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2000여 년 동안 장자는 도(道)를 찾아 헤맸던 철학자로 이해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혹감은 너무 자연스런 반응인지도 모른다. 내 책은 장자에게 있어 도는 미리 존재해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꾸역꾸역 걸어가서 만들어지는 흔적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동료와 선배 학자들의 당혹감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사실 그때까지 장자는 노자(老子)라는 철학자의 사유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사상가, 그러니까 장자는 노자의 난해한 사유를 에피소드와 우화라는 기법으로 문학적으로 설명했던 충실한 후학 정도로만 이해되고 있었다. 분명 노자에게 도(道)는 우리와 무관하게 미리 존재하는 것, 심지어는 우리를 낳은 신과 같은 것으로 사유되고 있다. 그렇게 내 책은 학계에 나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장자에게서나 노자에게서 ‘도’라는 개념이 그렇게도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수용되었던 도가(道家)라는 범주는 해체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당시 몇몇 동료 학자들은 내게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강선생! 노자와 장자가 그렇게 다르다면, 노자와 관련된 글을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때요.” 근사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속내에는 다음과 같은 확신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노자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노자와 장자가 다르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을걸.” 속으로 화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나는 노자와 관련된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의 패기만만한 학자였던 나는 정말 폭풍우처럼 집필에 들어갔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내가 쓴 단행본 중에서 이보다 강도 높고 빠르게 집필된 책도 없을 것이다. 2004년 4월 《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이란 내 두 번째 책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통치자는 피통치자에게 노동력이든 재화든 수탈하고, 그걸 (재)분배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위대함, 아니 무서움은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하여 그걸 싸늘한 눈으로 통치자의 정치에 응용하려는 데 있다. 바로 이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을 노자는 ‘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계속 수탈하고 분배를 게을리 한다면,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마침내 국가는 와해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애써 수탈한 걸 다시 분배해야 한다는 것! 이건 역설처럼 보인다. 이렇게 재분배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수탈했다는 말인가. 그래서 재분배의 길, 즉 도를 따른다는 건 정말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통치자의 치열한 자기 수양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재분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순간,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두 번째 책으로 내 생각에 대한 학계의 오해는 풀렸을까. 아니다. 불행히 오해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어졌다. 그렇지만 다행스러운 건 학계가 내 생각에 이제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는 점이다. 쟁점을 만들면 손해를 보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라는 무의식적인 판단 때문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2003년 첫 책을 집필할 때부터 2004년 두 번째 책을 집필할 때까지, 이 짧다면 짧은 기간만큼 강렬하게 정신이 불타올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노자를 다룬 두 번째 책은 거의 3주 만에 초고가 완성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나는 내 몸과 정신을 활활 태운 셈이다. 정말 귀신에 씌지 않았다면 어떻게 가능하기라도 했겠는가. 그러니 학계의 두터운 통념에 굴하지 않고 나는 내 자신이 읽어버렸던 노자와 장자를 당당히 피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세상물정을 몰랐던 30대 후반의 치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0년 전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그 후 내 사유와 집필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객관적인 연구자로 세상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철학자로서 삶의 태도를 결정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 나는 장자가 피력했던 인문정신과 노자가 품고 있었던 반인문정신 사이에서 결단해야만 했다. 인간의 자유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당당히 걸어간다면, 나는 장자의 계승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보다는 체계나 구조의 힘에 몸을 맡긴다면, 나는 노자를 따르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 나는 장자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인간의 자유와 사랑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면, 인문학은 어떤 의미도 없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28권이나 출간된 내 책이 모두 인문학 찬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10년 전의 어떤 결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는 몰랐지만 10년 전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지금 아직도 왕성하게 움직이는 내 사유를 만들었던 자궁, 혹은 내 사유의 맹아였던 셈이다.
-프롤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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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목소리들

도서정보 : 안미선 | 2014-09-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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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소리를 들어보라!
일터와 가족, 내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내밀한 이야기

여성들이 말을 시작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일터와 가족 안에서,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부대끼는 여성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섹슈얼리티, 가족, 노동, 삶의 측면에서 대한민국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성의 삶을 두루 묘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 기록한 르포이며, 한 사람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구체적인 목소리를 기록했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서로 분리되어 움직이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을 읽다보면 섹슈얼리티와 가족과 일터의 영역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며 이것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작동하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 여성들의 목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목소리들이 중첩되어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제목이 《여성, 목소리들》이다. 침묵하거나 떨리던 목소리, 붉게 물들던 얼굴,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 때로 활기차고 꿋꿋하게 외치던 소리, 이런 표정과 느낌, 감정들이 어울려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규정되는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여성들은 외친다. 바뀌어야 하는 건 여성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여성 또한 조건 없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수 있고, 삶의 안전망을 체제 속에서 보장받을 수 있으며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섹슈얼리티, 교육, 노동, 삶에서 자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있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왔다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다. 여성들은 이 평등하다는 세상에서 오히려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고통들을 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작지만 크게 꾸준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제도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고 있다.
거리에서 만난 미혼모는 차별에 저항하며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법과 제도를 바꾸라고 외쳤다. 불법파견 속의 한 하청 여성 노동자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상전과 종의 처지’라고 토로했지만 자신이 당한 성희롱을 묵과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해 복직했다. 자신은 ‘비천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한 청소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지키고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을 요구하는 동료들과 나란히 한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여성으로서 노동할 권리, 차별받지 않고 생존할 권리를 위해 싸웠다.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과 다른 여성이, 자신과 다음 세대의 여성이 이어져 있다고 인식했다. 호기심과 활기를 가지고 삶을 개척해나간 결혼이주여성, 한국 사회의 대화 없음을 성찰하는 비혼 여성, 한 달에 연금 20만 원을 받으면서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묵묵히 노동하는 여성, 텔레마케터 일을 하고 아이들을 기르며 자아를 성취하고 싶어하는 한부모 여성, 경계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이 좋아 삶의 자리를 변방에 튼 젊은 활동가, 그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 동시대의 여성들의 내밀한 삶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원고를 읽다보면 평범한 이웃들이었던 여성들의 삶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여성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겨냥하는 체제의 문제

대한민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높으며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사회 서비스가 풍족하지 못한데,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삶은 더욱 불안정하다. 일과 생활의 영역에서 여성은 혹사당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20년째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고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여성 일자리의 질을 여전히 떨어뜨린다. 돌봄 노동이 제대로 사회 서비스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은 일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는 민간 시장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여성은 아직도 남성 임금의 68%에 지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임시, 일용직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고, 경제활동 참가율은 남성보다 낮다. 기혼 여성의 20%는 경력 단절을 겪었다. 사회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여성은 11%에 지나지 않으며, 2013년 22만 건의 긴급 상담 전화의 주된 내용은 가정 폭력이었다. 모성은 성스러운 것으로 신화화되지만 그것은 또한 일터에서 여성이 비효율적인 노동자라는 낙인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된다. 결혼제도와 노동시장은 여성의 시간을 착취하고 의존적 삶의 굴레를 종종 덧씌운다. 여성은 기꺼이 노동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갈 작정을 하지만, 자신의 몸과 관계와 노동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그녀들은 연대해 목소리를 내며 권리를 요구한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제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겨냥하는 체제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 사회가 그것을 바꾸어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여자는 결혼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하고, 어머니 노릇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한 여자는 성관계를 할 뿐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는 피임을 준비하고 요구해도 된다. 여자는 성욕을 가진 인간이고, 성을 통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존재이며, 노동하고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받아야 한다. 여자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 중단을 할 수 있다. 여자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성은 침묵되어야 하고 수동적이어야 하며 통제되고 계획되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1, 2, 3부는 여성의 삶을 구성하는 섹슈얼리티, 가족, 노동에 대해 구성했다. 이른바 공식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일터의 이야기뿐 아니라 가족 안에서, 자신의 몸과 부대끼며 여성들이 겪는 내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가족의 이야기까지 르포에서 다루려고 한 것은 이런 내밀한 감정이 결국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그것은 여성이 어떤 존재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사회적 힘에서 비롯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섹슈얼리티와 가족과 일터의 영역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여성의 삶에서 전체적으로 작동하는지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의 각 장은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어지고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가며 여성의 삶을 안팎으로 규정짓는 시선과 사회적 힘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4부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살아내는지 구체적인 목소리를 기록했다. 그녀들의 목소리 또한 연결되어 있으므로, 여러 여성들의 목소리들이 중첩되며 더 큰 울림으로 다가가는 것이 있으리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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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변호하다

도서정보 : 김선수 | 2014-10-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노동기본권이 거꾸로 가는 시대,
노동변호사 김선수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직언

“27년째에 접어들고 있건만 우리 사회 노동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평화적인 단순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 간부들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으로 옥죄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은 여전히 무노조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노동조합조직률은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 속에 거세게 추진된 노동유연화와 민영화 등의 정책기조는 비정규직 양산과 사회양극화로 이어졌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머리말에서

노동 vs 노동법, 27년간의 화해와 싸움의 역사를 기록하다

김선수 변호사가 직접 쓴 27년 노동변론기를 한자리에 엮어냈다. 1988년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꾼 이래, 한국사회의 부침을 고스란히 받아 안으며 ‘전태일’들을 변호해온 기록이다. 이 기록에는 법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변호도, 유려한 수사도, 거창한 의미부여도 없다. “의뢰인의 신념을 지켜주는 것이 변호사”라는 ‘신념’을 가진 한 변호사의 강직하고 담백한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 변호에 생의 절반 이상을 바쳐온 노변호사가 노동법이라는 양날의 검을 다루며 분투한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한국사회 노동과 노동법이 팽팽하게 마주 보며 화해와 싸움을 거듭해온 모두의 기록이다.
노동기본권이 바닥 모를 암흑으로 추락하고 있는 이 시대, 그가 몸으로 살아낸 노동권 법적 투쟁의 역사가 더욱 뜻 깊고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민黎民’(노동으로 검게 그을린 백성)을 위하는 노동변호사

저자 김선수 변호사는 1988년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변호 인생의 첫 발을 떼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창립회원,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고비마다 거목 같은 조영래 변호사의 존재를 죽비 소리 삼았다고 말하는 그는, 10대 시절 은사가 지어준 ‘여민’이라는 호를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맹자》가 말한 ‘여민동락(黎民同樂)’의 ‘여민’은 ‘검은 백성’, 즉 노동을 해서 살갗이 검게 그을린 평범한 백성을 가리킨다. 저자는 노동변호사란 바로 이 ‘여민’을 기억하고 늘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노동법이, 나아가 법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인권을 보호해야 하는데 도리어 인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도 하는―를 끌어안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여민’이라는 상징이 그의 좌표가 되어주는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를 변호하며 보냈다. ‘노동 변호’를 빼놓고 그의 삶을 설명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베테랑의 여유라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활기에 가깝다. 2008년 미국쇠고기 파동 이후 공장식 사육동물을 먹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라는 마음으로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 모임과 등산을 하고 있다는 그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인 법의 영역에서 늘 현재진행형의 투쟁을 하는 그에게 나태해질 여유란 없다.

노동투쟁의 역사이자, 만신창이 한국사회의 자화상

이 책에는 25가지 실제 노동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담겨 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는 투쟁부터 시작해, 노조설립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위한 투쟁, 노동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수당과 퇴직금을 위한 투쟁,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위한 투쟁, 비정규직을 벗어나 정규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 합당한 기준과 절차를 무시한 정리해고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 개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징계해고에 대한 투쟁 등을 그치지 않고 벌여왔으며, 저자는 그 곁에서 법정 투쟁을 함께했다. 사건들을 죽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노동’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직결된 우리의 자화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 노동이 있는 곳에, 그도 있었다

캐디노조 설립신고 행정소송, 병원노련 합법성 쟁취 사건, 서울대병원 법정수당 소송, ILO공대위 전국노동자대회 사건, 나우정밀 등 직장폐쇄 사건, 현대전자 채용내정 취소 사건, 공무원노조 창립대회 사건, 비판 교수 축출에 악용된 재임용제,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해고 투쟁, 대한항공 승무원의 11년 법정 투쟁, 콜트·콜텍 해고 사건, 시그네틱스 경영해고 사건, 일제고사 거부 교사 해직 사건, 경기대 기간제·파견근로 해고 사건, 사무직 노동조합 설립과 해고 투쟁…… 숱한 사건들을 맡아 때로는 졌고 때로는 이겼다. 노동법은 손바닥 뒤집듯이 진보와 퇴보를 거듭했고, 그 손바닥에 매달린 노동자들은 울고 웃었다. 그 한가운데서 김선수 변호사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것이 바로 ‘변호’다. 그는 법이라는 불완전한 검으로 도리어 노동자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지금 “27년째에 접어들고 있건만 우리 사회 노동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날 선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노동 야만’의 시대, 노동법은 답하라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조합원이 6만 명이 넘고 15년간 적법하게 활동해온 노조에 무 자르듯 “노조 아님”을 명한 것이다. 이 결정은 유례없이 폭압적인 만큼이나, “그럼 님은 대통령 아님”을 통보한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것이었다. 지난 8월에는 2009년 철도파업 업무방해 사건에 대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파업시기를 예고하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준수하고 대체근로까지 하도록 했는데, 단지 철도가 필수공익사업이고 거액의 영업손실이 났다는 이유로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는 사실상 공익사업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쌍용차, 철도, 한진중공업, 현대차비정규직 노조 등에는 사측으로부터 수십억, 수백억 손해배상과 가압류 폭탄이 떨어졌다. 너희가 투쟁해서 손해를 봤으니 너희가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2009년 이후 스물다섯 명의 동지와 가족의 목숨을 잃어가며 복직 투쟁을 벌여오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은 지난 10월 또다시 희망을 기각당했다. 2월에 고등법원이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가처분사건에서 1심인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충격적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여당간사의 발의하에 추진 중이기도 하다. 현행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허용한도를 주 12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리고, 휴일근로의 경우 가산수당(50%)만 지급하되 휴일수당(50%)은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농담 같은 이러한 제안이 실제로 추진 중이라는 데 대해, 안 그래도 추가근무와 무보수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들은 냉소조차도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한국사회의 노동은 벼랑의 벼랑에 내몰려 있다. 노동기본권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탄식이 나온다. 아니,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이고 저자가 말하듯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 ‘노동 야만’의 선두에 현 정부가 있고, 또한 현재의 ‘노동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에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정권에 따라 일진일퇴를 거듭해왔다. 그러한 부침을 되짚어볼 때 단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노동법은 헌법의 하위법이므로 절대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법은 모두가 알다시피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3권’을 자명하게 보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헌법 위에 업무방해죄”라고 표현하며 현 노동법이 헌법에 역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노동법’은 이름 그대로 ‘노동’을 위한 법률이어야 마땅한데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것은 법의 숙명이면서 우리 평범한 시민들, 노동자들에게는 거대한 부조리이기도 하다. 이 부조리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행복, 심지어 생존마저도 위협당하고 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 우리는 ‘노동법’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또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이 책은 그에 대해 저자가 노동변호사로서 내놓는 책임 있는 답변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법적투쟁 간접체험하기

척박한 노동 현실, 기업의 악랄한 노동 탄압을 성토하는 기록과 목소리들은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더욱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제 노동자들이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어떤 핍박과 부당함을 견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심각하다는 공감대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에 비하면 ‘노동법’에 대한 관심은 아직도 너무나 미미한 편이다.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쩔 수 없이 법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되어 있고, 노동과 노동법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동안 노동의 권리가 법적 무대에서는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 어떤 복잡한 과정들을 거쳐서 어떤 결과들을 얻어냈는지, 그 결과가 갖는 의미는 무엇이고 무엇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관해 이 책은 집요하게 파고든다.
7년째 정리해고 복직투쟁을 벌이며 다양한 문화활동을 해오고 있는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은 지난여름 《법 앞에서》(프란츠 카프카 원작)라는 연극의 주인공으로 정식 무대에 섰다. 대형 스크린에 판결문이 흘러가고, 그 앞에 선 노동자들이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같은 진술을 반복하는 장면이 몇 분씩이나 이어져 관객들을 당황시켰다. 근엄하고 엄격한 법률이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무의미와 삶의 시간과 고통과 인내라는 은유로 읽을 수 있다. 이 책 《노동을 변호하다》도 어쩌면 독자들에게 그러한 약간의 인내를 요구할지 모른다. 노동권을 짓밟힌 노동자들과 노동변호사 김선수가 함께 헤쳐온 27년간의 지난한 투쟁을 간단한 정리 글로나마 따라가보는 일이 결코 즐겁거나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따라가볼 이유가 명확한 독자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책이다. 법에 문외한인 일반 독자들도 관심만 있다면 찬찬히 이해하며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특히 노동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활동가, 노무사 또는 노동변호사의 길을 걷기를 원하는 예비법조인들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것이다.

+) 사건별 요약
1장 대학 시절 강제 징집 되었다가 복학한 뒤, 사회 진보와 투쟁에 대해 고민하다 노동변호사라는 자신의 역할을 찾게 된 개인적 일화를 담았다.
2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운동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던 중 제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 지시’ 발표 뒤 노동 현장 곳곳에서 일어났던 공권력의 탄압, 그로 인한 형사사건들을 다뤘다. 헌법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음에도 그 권리를 행사하는 데 있어서 폭력과 연행, 불법 딱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독재정권하에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3장 유성컨트리클럽 골프장 캐디노조의 투쟁을 다뤘다. 캐디는 골프장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실제 관행과는 상관없이 행정관청으로부터 노조설립을 반려당한 사건이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를 다시금 직시하게 된다.
4장 단결권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기업별 노조가 강제되고 사업장뿐 아니라 연합단체에도 복수노조가 금지되어 있는 가운데, 연합노련에 가입돼 있던 병원노조들이 독자적 활동을 위해 병원노련을 설립하고자 벌인 투쟁을 다뤘다.
5장 서울대병원노조 출범 후 중요 사업으로 그동안 병원이 지급하지 않은 연장, 야간, 휴일 근로수당, 연월차휴가수당, 생리휴가수당 등 제반 법정수당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을 다뤘다. 통상임금의 범위, 계산 방법 등에 대해 법원의 견해를 최초로 정리한 작업이었다. 통상임금 확대에 대한 법정 논쟁은 현재까지도 뜨거운 화두다.
6장 1989년 집시법이 개정되어 ‘옥외집회와 시위 금지통고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가 마련되었지만 형식에 그치고 사실상 거의 모든 집회, 시위들이 불법화되던 상황에서, ILO공대위 전국노동자대회를 ‘집시법 절차를 준수’하면서 성공시켜 보이고자 벌였던 법적 투쟁을 다뤘다.
7장 직장폐쇄가 원래 의미로부터 벗어나 악용되면서 파업 참가자들을 탄압하고 사업장에서 몰아내는 도구로 쓰였던 세 가지 사례(나우정밀, 남서울대학교, 한국노동연구원)를 다뤘다. 정당한 직장점거에 대해서도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근거로 퇴거를 요구하고 거기 불응하면 ‘퇴거불응죄’가 성립된다고 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변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8장 대학 졸업 예정자를 미리 채용해놓고 IMF 위기로 채용내정을 취소한 현대전자, 동양시멘트 등의 사례를 다뤘다. 채용내정도 일반 채용과 마찬가지로 봐야 하며, 적법한 해고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9장 퇴직금 규정이 불리하게 변경될 때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대로 지급해달라는 소송들을 다뤘다. 단수제와 누진제에 따른 지급률, 기초임금 등 퇴직금 산정 방법에 관한 내용들도 자세히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포항제철은 10년간 대법원을 세 차례 가는 기나긴 퇴직금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10장 2002년 헌법노조 형태로 출범한 공무원노조의 노조 사수와 합법화 투쟁을 다뤘다. 그 뒤 합법화와 통합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규약 개정, 또다시 반려되는 과정들을 거쳐왔고, 현재까지도 법내노조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공무원노조가 특별법이 아니라 일반법인 노조법 개정을 통해 인정되어야 하며, 쟁의권도 원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11장 교수 재임용제가 정부나 재단에 비판적인 교수들, 학원 민주화에 앞장선 교수들을 축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들을 다뤘다. 1997년 교수협의회 활동으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 소송, 1998년 교수협의회 활동으로 탈락한 안성산업대 교수 소송 등을 담았다.
12장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의 연구원이 계약직으로 일하다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고 나서 8년 동안 복직 투쟁을 한 사건을 다뤘다. 기간제 근로자라도 재임용 ‘기대권’이 인정된다면 재임용 제외가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으며, 사용자가 변경되더라도 사업이 계속되는 한 원칙적으로 고용 관계는 승계된 것으로 본다는 대법원 판결을 얻어냈다.
13장 한국외대 노조의 단체협약 사수 투쟁 중에 끊임없이 벌어진 노조 탄압과 쟁송들을 다뤘다. 억지 징계, 고소 끝에 결국 해고, 복직한 뒤에도 대기발령, 지방 좌천, 사실상 업무봉쇄, 트집 잡아 재해고 등을 5년 동안 겪어야 했던 노조 간부는 승소하긴 했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4장 노조에서 ‘야당’ 활동을 하고 통상임금 소송에 관여하는 운전기사들에게 가해진 해고를 다뤘다. 복직과 위자료 지급 판결에 있어, 회사의 항소심에서 원칙 없이 위자료 액수가 깎여 선고되는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위자료 액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회사가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 쉬워지므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15장 대한한공 승무원 객실노동조합설립추진위원회(노추위) 위원장이 해고당하고 4년 넘게 지노위 중노위 행정법원 고등법원에서 패배를 거듭하다 대법원 1승을 거둔 사례를 다뤘다. 결국은 7번의 심급을 거친 셈이고, 그 뒤로도 퇴직금, 위자료 등의 소송까지 합치면 총 11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에 저자는 노동사건을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하는 전문성 있는 ‘참심형 노동법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16장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을 다뤘다. 경영악화를 이유로 한 공장폐쇄와 해외공장 이전 등 눈속임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1차, 2차, 3차 해고에 대해 각종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을 끝없이 거쳐야 하는 상황이 마치 ‘형벌’처럼 보인다.
17장 무노조 회사, 직접고용 정규직 제로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 서울공장을 팔고 안산공장으로 이전하며 인사발령을 거부한 31명을 징계해고하고, 또 징계해고 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한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한 시그네틱스 사건을 다뤘다. 안산공장장이 별도 회사를 설립하도록 해서 일부 근로자들은 그 회사로 이전시키고, 이를 거부한 근로자들을 정리해고했다. 1년 6개월의 법정투쟁 끝에 1심에서 승소하고 복직했다.
18장 2008년 서울, 강원 전교조 교사들의 일제고사 거부를 이유로 한 해직 사건을 다뤘다. 일제고사 자체의 위법성, 교사들은 선택의 기회를 부여했을 뿐이라는 점, 유사 사례와의 형평성으로 볼 때 교사 신분 박탈은 지나친 것이었다.
19장 경기대학교 기간제, 파견근로 해고 사건을 다뤘다. 사용자가 비정규직법 정규직 전환 규정의 적용을 회피하려고 기간제근로와 파견근로를 왔다 갔다 이용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사용사업주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다고 인정함으로써 사용자들의 편법에 쐐기를 박았다.
20장 비영리 공익재단법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가 2006년 국세청 퇴직자들의 자리 마련을 위해 연구센터 사업비를 전용해 한국주류연구원 설립을 기도하며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이를 저지하고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 서울지부가 투쟁하다가 고소당하는 과정에서 검사가 추가 조사 없이 경찰 기록만을 토대로 기소하는 등, 불성실하고 무리한 검찰권 행사에 대해 비판한다.
21장 IMF 이후 국민은행이 명예퇴직에 불응하는 직원을 후선에 배치하고 3년 동안 약 네 차례 전보 발령을 하면서 1억이 넘는 임금 손실을 입힌 사건을 다뤘다. 전보 발령이 사용자의 인사 재량권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 근로자 측과의 협의 등을 거쳐야 한다.
22장 지방의료원에 근무하던 노동자가 지방의원에 당선되었다는 이유로 통상해고 당했던 사건을 다뤘다.
23장 생산직 노조는 있으나 사무직 노조는 없었던 지엠대우자동차 사무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뤘다.
24장 국민의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일반임용 되지 못하고 계약이 종료된 한국노동연구원 사례를 다뤘다.
25장 IMF 이후 부서별로 경영해고 방침이 내려진 (주)아트라스콥코제조한국에서, 해고를 피하기 위해 먼저 무급순환휴직을 도입하고자 제안한 부서장을 해고한 사건을 다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복직했으나 차별대우와 불이익 인사처분이 계속되었고, 결국 다시 징계해고 됐다. 1차 해고 이후 지금까지 15년 이상 불이익, 항의, 법적 구제 절차로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다 보냈다.

구매가격 : 10,150 원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도서정보 : 월터 앨버레즈 | 2018-10-1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우리는 이 세계를 물려받은 몇 안 되는 행운의 존재들이다!
빅 히스토리가 선사하는 세상과 인간을 보는 새로운 관점


• 소행성 충돌 공룡멸종설을 밝혀낸 저명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의 저서
•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번역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추천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룡을 멸종시킨 다섯 번째 대멸종의 비밀을 밝힌 지질학자 알바레즈는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등장한 사건은 연속적인 우연의 결과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 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우주에 대한 겸손함을 샘솟게 하는 책이다.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도서 소개

소행성 충돌로 인한 공룡 멸종을 밝혀낸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가 풀어낸 장구한 역사

월터 앨버레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아버지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와 함께 소행성 충돌과 공룡 대멸종설을 밝혀내 주목을 받은 유명 지질학자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에서 138억 년의 우주 역사, 45억 년의 지구 역사,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 국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기까지 이어진 몇 세대의 가계도 등 생각할수록 불가능하게 보이는,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역사를 기막힌 우연들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그려 낸다.
빅 히스토리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파노라마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가와 과학자 들이 함께 전통적 역사에 우주와 우주의 과거를 연구하는 과학적 통찰력을 결합시켜 새롭게 개척한 분야이다. 월터 앨버레즈 역시 빅 히스토리가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결합이라고 여기며, 이 네 가지 카테고리는 그가 UC 버클리 대학에서 개설한 빅 히스토리 강의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중 우주 역사, 지구 역사, 생명 역사는 명백히 과학의 영역인데,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육학자 신시아 브라운과 같이 지금까지 빅 히스토리를 집필한 이는 대부분 인문학자인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역사가가 아닌 과학자가 쓴 첫 번째 빅 히스토리로, 역사들의 얽힘과 그 결과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서술했다. 앨버레즈는 전염성 강한 그의 호기심과 독특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우주상에 존재하게 된 불가능한 여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여러 믿기 어려운 사건들인 빅뱅, 초대륙 형성, 청동기 시대의 시작 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빅뱅 순간에서 지금 우리 삶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어떻게 변해 왔고, 그 변화는 현실을 어떻게 바꾸었나?

절대적으로 거대한 우주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의 현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우주 나이는 1920년대 허블과 휴메이슨이 빅뱅 우주론을 제기한 이래 수정을 거쳐 현재 138억 년으로 밝혀졌다. 그 후 지질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현재 지구 나이는 약 45억 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 역사와 지구 역사 모두 현재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 길어서 역사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지질학자 앨버레즈가 제시하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면 새로운 척도가 필요한데, 기록된 인류사는 5000년 정도 되지만 지구 역사는 약 45억~50억 년이기 때문에 100만 년을 인간 역사의 1년으로 간주하고 거대 역사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공룡이 멸종한 6600만 년 전은 인류사에서 불과 66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관점을 빅 히스토리에 맞춰 놓고 상상력을 동원해 우주와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자. 그가 말하는 기막힌 우연들 중 첫 번째 우연은 바로 빅뱅이다. 우주는 “모든 공간을 포함하는 빅뱅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뜨겁고 무한히 작은 점에서 신비롭게 시작했다.” 수소, 헬륨, 미량의 리튬밖에 없었던 우주가 암흑시대를 거쳐 별 내부의 원소를 융합하고 별의 일부를 폭발시켜 물질을 진화시켰다. 이때 주변 성운이 폭파하면서 생성된 무거운 원소들이 우리은하의 태양 주변에 모여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은하 내에 암석의 생성이 가능한 조건이 갖춰졌고 태양계 내에서 지구라는 안정화된 행성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지구 역사에서 ‘규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규소는 지구가 탄생할 때에 산소, 마그네슘, 철과 더불어 우리 행성을 구성한 주요 요소였고 석기 제작, 유리와 같은 인공 물질의 발명, 컴퓨터에도 쓰이는 중요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이 규소를 응축하고 사용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인류가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판구조론이 등장한다. 판과 판, 즉 다른 대륙끼리 마그마에 의해 갈라지고 부딪히면서 일어난 대륙충돌에 의해 이산화규소를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는 화강암이 만들어지는 덕택에 석영 결정이 생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퇴적된 석영 결정은 풍화작용 덕분에 모래 언덕이나 강의 수로, 해변에 쌓여서 거의 영원히 남는다. 이렇게 판의 이동과 거친 풍화작용을 거쳐 처음에는 행성에 존재하지 않았던 석영이 지구에 만들어졌다.
규소는 사실 지구가 자원을 생산하는 과정의 한 예이다.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칼 세이건의 말처럼 지구가 집적한 ‘별 먼지’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만들어진 대양과 산맥, 강과 같은 지형들이 인류사를 만드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된 것도 무수한 우연의 중첩으로 가능했던 일이지만, 생명이 탄생하는 것 역시 우연들의 연속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첫 조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직 이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긴 명왕누대와 시생대 잠복기 중 어느 시기엔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가 등장했고, 진정세균, 고세균의 세포내공생으로 진핵생물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DNA를 가지는 핵을 포함한 우리 세포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후 다세포동물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몸이 등장했고 고생대를 거치며 동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뼈와 껍데기 같은 단단한 부분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중생대를 거치며 육지 위에서 파충류, 조류, 양서류, 포유류 등이 나타났다. 이후 6600만 년 전 유카탄반도에서 있었던 거대한 충돌이 심각한 환경 변화를 일으켰고 공룡이 멸종하면서 영장류, 즉 인간의 조상이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류에 이르렀다. 인간은 지구에서 거주 가능한 지역을 거의 전부 차지하고 있는 놀라운 종이다. 신대륙을 향한 호기심, 화성과 달 탐사로까지 이어지는 모험심! 이렇게 놀라운 특징을 지닌 인간을 만든 특징은 무엇일까? 월터 앨버레즈는 불과 도구의 사용을 인간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단순한 가열의 수단으로서 불을 사용한 초기 인류를 지나 인간과 불의 만남은 산업혁명과 로켓 발사를 가능하게 했다. 또 도구는 어떤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등 광물을 가공하고 이를 사용하면서 인류를 문명을 이룩했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앞서 살펴본 지구 역사에서 광물의 생성 과정과 긴밀하게 얽혀 있고, 지질은 인간 문명이 의존하는 자연 자원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대양, 산맥 강과 같이 지구가 만들어 낸 우연의 결과물들이 없었다면 인류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규칙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선 사건이 후대의 조건이 되는 이러한 맞물림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빅 히스토리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와 인간의 삶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 낸 우연과 경이의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는 2006년부터 버클리 대학에 ‘빅 히스토리: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제목의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해 오고 있고, 이 책은 그 강의에 기반한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강환 관장은 빅 히스토리가 그동안 별개의 학문으로 발전해 온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고고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모두 포괄하여 다룸으로써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최적의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철학적 사고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은 지식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더 크고 넓은 영역에 미치는 운동과 생성의 원리를 생각해 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말하듯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으로, 우주의 탄생부터 연속성과 우연성으로 이어진 긴 흐름의 일부인 우리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선사한다.




◎ 추천사

바야흐로 빅 히스토리의 시대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역사의 큰 분야를 엮어 만든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를 하나로 꿰려는 역사학자들의 시도는 신선했다. 과학자들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폭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도하고픈 작업이고 어찌 보면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빅 히스토리를 다룬 책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그런데 소수의 역사학자들이 쓴 초기 저작과는 달리 이후의 책들은 그 길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룡을 멸종시킨 다섯 번째 대멸종의 비밀을 밝힌 지질학자 앨버레즈는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등장한 사건은 연속적인 우연의 결과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 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우주에 대한 겸손함을 샘솟게 하는 책이다.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책 속으로

모든 것에 관한 광범위한 역사가 인류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인간 현실이란 광활하게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발생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은 더 먼 과거 사건들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모든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전반적 관점을 ‘빅 히스토리’라고 부른다. 나는 빅 히스토리를 우주, 지구, 생명, 그리고 인류라는 네 영역의 결합이라 여긴다. 이들 영역 각각은 매혹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서, 어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가 아니라, 이 특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돕는다.

_프롤로그 pp. 9-10



역사적 관점이란 우리가 삶에서 부딪는 모든 것을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빅 히스토리의 전 범위를 관통하는 역사 속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적 관점이 인간 현실에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1장 빅 히스토리, 지구, 인간 현실 p.26



역사는 우발적이어서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시대를 통틀어 수없이 많은 순간에, 얼마든지 역사는 우리 세계가 실제로 지나온 경로와 다른 경로를 밟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현실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어쩌면 인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_1장 빅 히스토리, 지구, 인간 현실 p.27



전 지구에 걸쳐 문명을 이룩한 인간의 모든 역사는 이 행성 위에서만 중요하지, 우주의 맥락에서는 완전히 무시할 만하다. 우리는 이런 거역할 수 없는 깨달음에서 겸손하게 빅 히스토리 탐험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미미한 작은 지구에서 인간에까지 이른 역사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 탐험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39



만약 현재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 물질 종류, 또는 기본상수 들이 달랐더라면 인간이 처한 현실 중 어떤 양상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중 하나라도 현재의 값과 조금만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조건들이 핵융합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 태양은 생명이 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천천히 탔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53



달은 인간 현실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해 왔다. 지구의 회전을 안정화시켰고, 바다동물들이 육지의 삶에 적응하도록 조수를 유발했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부터 밤을 지켰고, 젊은 연인에게 낭만적인 저녁을 선사했고, 인간이 달력을 만드는 것을 도왔으며, 우주탐사 초기에 가까운 대상으로서 인간이 지구 밖에서 발을 디딜 곳을 내주었다. 그런데 거대한 달을 단 하나만 가진 행성이 흔하지 않다. 태양계에서 지구만이 유일하게 하나의 달을 가지고 있다. 달이 없거나, 두 개가 있거나, 또는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도는 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인간 현실은 매우 달라졌거나 아예 인간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67



지질학을 바탕으로 빅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세이건이 정리한 내용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이야기는 초신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간공간에 흩어진 화학원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선 한 대가 멀리 떨어진 다른 태양계를 향해 항해하는 도중, 컴퓨터 칩을 제작해야 해서 규소가 필요한 긴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우주선이 과거의 초신성 폭발들로 이루어진 희박한 기체를 통과하고 있고 그 기체가 규소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주인이 규소를 모아서 사용할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 원자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_3장 지구가 준 선물 p.74



네 가지 주요 원소 중 규소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규소는 우리 행성을 구성하는 광물 대부분과 암석의 근간이다. 탄소가 생명의 기본이듯이, 규소는 암석의 기본이다. 더구나 많은 암석은 그것들이 있던 환경에 대한 기록을 품고 있고, 지질학자들은 그 정보를 어떻게 캐내는지 알아냈다. 나는 암석이 자신의 역사를 ‘기억한다’고 말하고 싶다.
규소에 초점을 맞추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단한 기술 역량을 갖춘 인류로 발돋움하는 데 규소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도구들은 현재 아무것도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마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믿을 만한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도구들은 규소가 기본 성분인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물질이 인공 물질로 이행하게 된 중요한 하나가 유리인데, 이것은 규소가 풍부한 석영을 녹여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의 첨단기술을 보유한 문명은 규소를 이용해 매우 정교하게 만든 컴퓨터 칩에 의존하게 되었다.

_3장 지구가 준 선물 p.76-77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고대 권위에 대한 중세의 의존성을 타파한 사람은 포르투갈 선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목의 적도 벨트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기후 지대가 다섯 가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나가서 눈으로 확인하여 일곱 가지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서는 인도양이 유럽에서 배로는 닿을 수 없는 사방이 막힌 바다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수정했다. 권위를 거부하고 관측과 실험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히 현대 과학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_4장 대륙과 해양이 있는 행성 p.130



인간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보았을 때 산맥은 소통과 이동에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히말라야산맥과 알프스산맥은 인도와 이탈리아 문명을 보호해 주었다. 물론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중 어떤 것은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비행기와 거대한 터널을 이용하여 산맥들을 쉽게 가로지르므로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산맥이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잊게 된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36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산맥들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1657년의 것으로, 산맥을 “자연의 수치이자 상흔”, 혹은 깨끗한 자연의 얼굴에 난 “사마귀, 물집, 종양, 종기”라고 비난했다. 18세기나 19세기까지도 여행자들은 두려움을 품은 채 산맥으로 갔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신이 제대로 된 지도와 안내자도 없이 중세에 알프스산맥을 넘어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가려고 하는 여행자라고 상상해 보라. 이정표 없는 교차로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 눈 덮인 암석과 바윗덩어리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라. 저 등성이만 넘으면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사라져 가는 길을 따라 길고 급한 오르막을 올랐는데, 마을은 보이지 않고 또 다른 계곡과 등성이, 그리고 그 너머에 또 다른 등성이만 보이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때 오후의 빛이 약해지면서 태양은 다른 등성이 너머로 내려가고 추운 밤이 다가오는 한기가 느껴진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쉴 만한 안식처도 없어 다음 날 아침까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p.142-143



18세기와 19세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발견들로 지질학자들은 지구 역사가 짧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구 역사는 수천 년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길고, 지금은 약 45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발견들과 함께 산맥 역시 거대한 재앙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느린 과정의 결과물로,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산맥의 풍경은 점진적으로 만들어지고 침식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산맥이 상흔이 아니라 조각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48



우리는 멀리 떨어진 대륙들의 모양을 살펴보았고, 인간 현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그 모양이 기나긴 초대륙 순환에서는 짧은 순간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제 인간 현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인 산맥들 역시 지표면의 일시적인 모양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대륙이 충돌하는 곳에서는 밀려 올라가고 초대륙 순환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 침식되어 없어질 것이다. 인류가 1억 년 더 일찍, 혹은 늦게 진화했다면 인간 현실이 되는 대륙과 산맥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59



스티븐은 마지막 빙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북아메리카의 대륙빙하가 캐나다 국경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스코틀랜드와 스칸디나비아의 대륙빙하가 합쳐지지 않은” 시나리오를 연구했다. 그는 미주리강과 오하이오강은 현재의 경로까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며, 물의 흐름은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강의 형태로 흘렀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서쪽에 벽이 형성되어 13개 주는 대서양 연안에 영원히 갇혔을 것이다. 거대 호수도 이리 운하도 없었을 것이다. 동서 방향으로 쉽게 물을 운반하는 오하이오강과 미주리강이 없었으므로 미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스코틀랜드와 스칸디나비아의 대륙빙하가 더 작았다면 영국해협이 없고 영국 섬들이 유럽의 반도가 되었을 텐데, 이는 유럽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나는 이것이 빅 히스토리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자료라고 생각하여 스티븐의 허락을 얻어 주석에 그의 초록 전체를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의 주요 주제 두 가지, 즉 지질학 역사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가 얼마나 쉬웠는지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다.

_6장 고대 강에 대한 기억 pp.177-178



우리 여정의 양 끝에 있는 대도시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강에게 큰 빚을 졌다. 뉴욕은 빙하로 침식된 멋진 허드슨강 끝에 있는 덕분에 성장했다. 북아메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는 애팔래치아산맥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자연 경로인 이리 운하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 후 개척자들이 서쪽으로 대륙을 가로지른 속도는 놀라웠다. 샌프란시스코는 새크라멘토강으로 이어진 물에 잠긴 강 계곡이 멋진 항구가 된 덕분에 번성했다. 이리 운하가 완성된 지 불과 25년 만에 금이 풍부한 새크라멘토강의 지류들이 광부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_6장 고대 강에 대한 기억 p.192



약 5억 4000만 년 전부터 생명체의 화석 기록이 풍부해졌다. 생명체의 단단한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달팽이나 조개의 껍데기, 우리의 뼈와 이 등이 그런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화석의 등장을 캄브리아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다세포동물에게 단단한 부분이 소화계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초의 다세포동물에게는 단단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 순간에 단단한 부분이 여러 동물에게서 나타났다. 아마도 자연의 무기 경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한 부분을 만들어 낸 동물들은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다. 삼엽충이 눈을 진화시켜 훨씬 더 강력한 포식자가 되면서 이에 대항하여 단단한 부분으로 방어할 수 있는 피식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게 일반적 관점이다.

_7장 생명 역사의 개인적인 기록 pp.211-212



인간 몸의 역사와 기원을 살펴보면 인간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좌우대칭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턱이 움직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면?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다른 생물학 경로로 진화가 일어났다면? 빅 히스토리의 다른 많은 경우와 함께 보면 우리 몸의 특징을 만든 것은 아주 특별하고 일어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_7장 생명 역사의 개인적인 기록 p.223



인간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졌는지 알 수 있을까? 초기 인류를 분류하는 일은 복잡하고 논란이 많으며 적은 화석 자료에 기반하지만, 호모 속에 속하는 세 종이 아프리카에서 차례로 등장했다는 주장은 꽤 지지를 받고 있다. 첫 번째는 25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하빌리스로서 거친 올두바이 석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은 약 18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에르가스테르로서 정교한 아슐리안 손도끼를 만들었다. 이것은 큰 먹이를 다듬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3장에서 보았듯이 현재로는 캐시 시크와 닉 토스가 말한 대로 극히 일부의 호미닌들만이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로, 이들은 복잡한 문화를 이루고, 돌 말고도 여러 재료로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을 생산했다.

_8장 위대한 여정 p.243



불의 사용은 인간의 결정적 특징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엇이 인간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불을 다루는 것은 우리 종의 가장 결정적 특징일 수 있다. 고래도 언어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침팬지도 막대기를 간단한 도구로 사용하여 먹이를 얻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모든 인간 집단에서는 불을 사용하는데, 적어도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불을 사용하는 다른 종은 어디에도 없다.

_9장 인간 되기 p.264



어떻게 문명이 그냥 사라질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청동기시대의 도시들이 사라진 원인에 대하여 가뭄, 이주, 철기시대의 도래 등을 포함한 몇 가지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가설에 특히 흥미가 있다.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의 지구물리학자 아모스 누르Amos Nur가 제안한 것으로 넓은 지역에서 지진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또 하나는 밴더빌트 대학의 역사학자 로버트 드류스Robert Drews가 제안한 것으로 후기 청동기시대 도시들이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던 마차 활쏘기 부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이방인 부족들이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하여 파괴했다는 가설이다.15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끔찍했다. 키프로스에서만 기원전 1200년경에 팔레오카스트로Paleokastro가 불타고 아이오스 디미트리오스Ayios Dhimitrios는 폐허가 되었으며, 신다Sinda, 키티온Kition, 엔코미Enkomi가 모두 불탔다. 중동에서 문명이 회복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렸다.

_9장 인간 되기 p.280



문제는 시간의 범위이다. 지표면 온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 범위에 따라 경향이나 주기를 보게 될 것이다.4 지난 1만 년 동안 기온은 눈에 띄게 일정했다. 하지만 지난 100만 년을 훑으면 빙하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이상의 주기로 순환한다. 하지만 더 짧거나 긴 범위로 보면 기온이 내려가는 경향과 기온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나는 빅 히스토리의 모든 시기 동안 역사가 펼쳐지는 방법을 보면 다른 종류의 이분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다양한 시간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된 경향성과 순환성으로 이루어진 연속성continuities이고, 또 하나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만드는 드문 사건인 우연성contingencies이다.

_에필로그 pp.296-297



더 재미있게는, 지금은 우리 태양계와 같이 두 물체 이상으로 이루어진 계의 궤도들은 긴 시간에서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금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을 결정론적 혼돈이라고 하는데, 태양계 역사 초기에 태양계에 있는 모든 천체의 위치와 운동을 아주 잘 알고 무한한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위치와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용어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궤도를 도는 물체의 운동은 물리법칙으로 완전히 결정되지만, 우리는 결코 초기 조건을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긴 시간에서는 초기의 위치와 운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현재의 태양계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것을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한다’라고 표현한다.

_에필로그 p.306

구매가격 : 14,400 원

부동산은 끝났다

도서정보 : 김수현 | 2011-07-2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은 부동산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긴 지침서.
대한민국은 부동산에 인질로 잡혀 있다. 집값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늘 전전긍긍 한숨을 쉰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전세 대란, 재개발 등등으로 늘 쫓기듯 이사를 다녀야 한다. 그렇다고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하우스 푸어’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그마치 400만 가구라고 하니 한국 경제의 큰 뇌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이런 상황을 반복해왔다. 사람들은 늘 ‘집’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고, ‘집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저자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며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해온 부동산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부동산 인질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한다.
전세 대란 해결책, 부동산 사기꾼들 대공개, 부동산 시장 흐름을 보는 법, 집을 사기 전에 꼭 알아야 할 10가지, 뉴타운사업 실패 이유, 세계의 주택지도 등 우리가 일상에서 알아야 할 부동산에 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정말 지금이 집을 살 마지막 기회일까?
대출 없는 전세가 나을까, 빚 있는 내 집이 나을까?
철거, 뉴타운 말고는 재개발 방법이 없을까?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은 대한민국 부동산에 관한 모든 것!
부동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리!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최근 수도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세 대란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는 지방도 마찬가지다.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마다 한 번씩 더 저렴한 주택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쫓기듯 이사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시대의 우리 모습이다. 그렇다고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까? ‘하우스 푸어’라는 단어가 사회의 유행어가 되고 있듯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하우스 푸어’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그마치 400만 가구라고 하니 한국 경제의 큰 뇌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은 집을 구입한 비용을 갚느라 그야말로 허리가 휘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사람들은 늘 ‘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부동산에 인질로 잡혀 있는 형국이다. 집을 구하기 위해, 집을 사기 위해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있다.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 가계자산의 80%는 부동산이다. 아마도 부동산이 가히 전 재산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또 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하거나 세를 사는 사람들 숫자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주거비용이 버는 돈보다 월등하게 크다보니 사람들은 의식주의 기본은 물론 자녀를 출산해 교육시키는 게 늘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구나 부동산 관련 산업은 우리 경제에서도 큰 몫을 차지한다. 부동산과 연관된 주택건설업, 금융, 보험, 가구, 중개업, 인테리어, 이사 등등을 합하면 아무리 적어도 GDP의 20%는 넘어설 것이다.

집값이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인 사회
이런 상황에서 집값은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내리는 것도 문제다. 오를 때는 신문마다 연일 어디가 얼마 올랐다고 실황 중계에 나선다. 국민들도 덩달아 집을 사야 하는 게 아닌가 조급해한다. 집을 당장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곧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다며 갖은 안을 발표한다. 집값 폭등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세무조사, 금융규제 강화, 부동산 세금 압박, 공급 계획 등의 정책을 연달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책을 발표할수록 상황은 더 꼬인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언론은 정부 대책이 별 효과가 없으며 집을 살 기회라고 부추긴다. 신이 난 이른바 시장주의자들은 공급만이 살 길이라며 정부를 질타한다. 너도나도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는 가운데 정치권은 전전긍긍하는 상황에 빠진다. 그러다 어느덧 정점에 오른 집값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락하게 된다. 언론 보도 등을 보고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들은 가계 재정 상황이 악화된다.
지난 40년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이런 상황을 반복해왔다. 사람들은 늘 ‘집’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고, ‘집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 맡기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반값 아파트’ ‘뉴타운사업’ 등으로 국민들을 욕망의 정치 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진보 진영 쪽에서도 공공임대주택 늘리기, 세입자 보호 등 각양각색의 정책을 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쉽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주택보급률 100%가 넘는 나라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집 걱정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집이 없는 서민들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국내의 손꼽히는 부동산 전문가 중 한 명인 저자 김수현은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부동산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부동산에 인질로 잡혀 있는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집이 없는 서민들 입장에서 여러 부동산 정책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저자는 ‘부동산 불패론’은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부동산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던 정치인,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언론과 전문가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저자는 ‘집은 인권이요, 삶의 자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크게 세 가지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 내 집이 아니어도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시장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규범과 원칙, 싼 집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정책. 이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건설업으로 경기부양 하지 않기, 부동산세금 원칙 지키기, 가계와 금융의 건정성 살리기, 개발이익환수와 나누기가 그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 누구도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은 부동산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긴 지침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우리 부동산 시장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수치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외국의 부동산 시장과도 비교하면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상황을 더욱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제2부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부동산 정책들의 효과와 한계를 살펴본다. 세금, 금융, 분양가, 공공주택 등 한 번쯤 들어봤고, 또 누군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 그런 정책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고 있다. 제3부에서는 외국의 부동산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싱가포르, 미국, 북유럽 등 좋고 나쁜 사례들의 진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장단점 비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상황을 더 자세히 따져보고 있다. 마지막 제4부는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즉 희망을 찾는 과정이다. 바뀐 시장 환경 속에서 우리식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을 찾고, 그 정책 패키지를 정립하려는 것이다. ‘한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지만, 원칙을 정립하고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패키지를 갖춘다면 머지않아 달성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실천지침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

1.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집값 중 6억 원 이상 하는 집은 얼마나 될까? 아무리 많아도 전체 주택에서 3%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수치가 적은데도 정부나 언론의 전세 대책은 여기에 맞춰지고 있다. 그만큼 중상층 이상의 여론이 부동산 시장의 주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주택보급률은 얼마나 될까? 2010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101.9%이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사는 비율은? 41%이다. 주거빈곤층 숫자는 어떻게 될까? 서울에서 약 3%, 10만 가구가 24시간 목욕탕, 만화방, 다방, 여인숙 등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가소율은? 전국적으로 61%이다.
이런 여러 수치와 함께 부동산 시장을 결정하는 여러 사항들도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결정하는 흐름 등을 읽을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결국 부동산 시장은 급격한 하강국면은 아니지만 중단기적으로는 하강 압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그리고 적절한 대책이 없다면 일본처럼 거품 붕괴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은 집행유예 기간일 뿐이다.

2. 부동산 불패론은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무엇을 하더라도 꿈쩍도 않던 ‘부동산 불패론’에 균열이 생겼다. 무엇보다 인구와 산업구조가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기에 인권, 삶의 자리로서의 집의 모습을 다시 정립해야 하며, 지속가능한 정책을 통해 집 없는 사람들도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3. 세계의 주택지도가 그려져 있다.
부동산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전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저자는 영국, 독일, 일본, 미국, 싱가포르, 북유럽의 부동산 시장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다. 우리는 주택 이야기를 할 때면 ‘좋은 나라’들을 부러워한다. 싱가포르처럼 ‘반값’에 분양을 해주거나, 네덜란드처럼 공공임대주택이 많거나, 북유럽처럼 사회적 주택이 많은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독일은 자기 집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국가가 민간임대시장을 잘 규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각 나라의 장점들을 수용해 우리나라만의 진보적 주책 정책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4. 서민 중심의 부동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전국 각지에서 재개발, 뉴타운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럴 때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서민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이번 전세 대란만 해도 서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주목도 끌지 못했다. 서민 주거 지역은 전세가 아니라 이미 월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고가 아파트 전세 시장에만 맞춰 나오고 있는 반면, 서민들은 아무 대책도 없이 높은 월세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재개발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공이 개입해 싼 집을 보호하고, 집 없는 서민들이 살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판자촌의 역사, 영구임대아파트, 공공임대주택 등 이 책 전반에 서민을 위한 주거 정책 이야기가 진하게 녹아 있다.

5. 욕망의 정치를 경고하고 있다.
우리의 부동산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장본인들은 누구일까?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집값을 잡겠다며, 부자를 만들어주겠다며 욕망의 정치를 구현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대거 당선된 국회의원들,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 정부, 오세훈 시장 등이 그렇다. 이런 유혹에 빠져들지 않는 게 시민정신이기도 하다.

6. 토건 세력, 황색언론, 부동산 전문가를 조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토건으로 경제 위기에 빠졌다가 토건에 의해 위기를 극복하려다 결국 장기 위기에서 빠졌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역대 정부는 늘 토건으로 경기부양을 이끌려고 했다. 이명박 정부 또한 4대강 공사 등 토건으로 경기부양을 꾀하고 있다. 저자는 이 마약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기부양의 유혹, 토건세력의 정치적 지지를 좇아 다시 부동산 거품에 손을 대는 순간 부동산 시장과 한국 경제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미 황색저널에 불과한 선정적인 부동산 언론, 부동산 경기가 좋아야 수입도 늘어나는 부동산 시장전문가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부동산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7. 이제 집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부동산에 대해 갖가지 좋은 대안들을 이미 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주택 정책에 관심이 많은 국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 부동산 정책에 언제나 불만을 품고 있다. 불만을 넘어 자주 분노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 널뛰기식 부동산 정책으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부동산 언론이나 돈벌이를 부추기는 전문가들의 실체를 알고 있다. 집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정체도 알게 되었다. 이제 집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자리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길 때가 되었다. 집은 인권이기도 하다. 저자는 시민들이 정부에게 진짜 공공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임대주택을 많이 지으라고 할 뿐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시장 규칙을 수립하라고 요구해야 하며, 토건 정치인, 부동산 언론, 무책임한 전문가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8. 부동산 정책의 모든 것이 제시되어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부동산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 가격은 사회·경제·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임대료와 물가를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며,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양극화도 심화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수 진보 쪽에서 주장하는 정책들을 모두 비교한다. 서로의 장단점을 지적하며 부동산 정책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들을 도출하고 있다. 그리고 내 집이 아니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다.

9.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책에는 개인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많다. 황색언론, 부동산 전문가에 속지 않는 법, 집을 구할 때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점, 개인이 직접 부동산 정보를 활용하는 법 등 실용적인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10. 저자의 현장 경험을 통해 부동산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잘 아려져 있다시피 저자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직접 담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한 이유, 종합부동산세 도입 과정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4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원칙과 로드맵을 가지고 정책을 펼치면 희망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구매가격 : 10,500 원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도서정보 : 문재인, 김인회 | 2011-11-2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문재인, 검찰개혁 칼 뽑다
“민주정부 첫 과제는 검찰개혁이다!”

김인회 교수와 공저에서 방안 제시
- 고비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법무부 탈脫 검찰화 역설

민주정부의 첫 과제는 검찰개혁
검찰을 개혁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없다!

범야권의 강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정부의 첫 과제는 검찰개혁”이라고 강조하고, 차기 정부의 검찰개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을 발간했다. 문 이사장은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前 대통령자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 간사)와의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자에서 검찰개혁을 국가적 사회적 아젠다로 꼽았다. 차기 민주정부에서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없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서 검찰의 권한은 정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에 미치고 있다. 검찰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단 한 번도 개혁돼지 못한 채 아직도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서 검찰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의 정치적 편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명숙 전 총리 등 반대파 정치인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 사회운동가에 대한 탄압, 이나 미네르바 사건과 같은 언론에 대한 탄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SNS를 이용한 인터넷상의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까지 탄압을 하고 있다. 법률이라는 이름하에 검찰이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고 있는 것이다. 가히 검찰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시대이다. 검찰을 개혁하지 않고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들은 이런 이유로 검찰개혁을 민주정부의 첫 개혁과제로 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검찰개혁의 방법으로 검찰 권한을 제한하는 것과 동시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가권력의 자제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문재인과 김인회는 검찰개혁의 주요한 과제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 권한의 분산과 견제, 감시 시스템 마련을 제안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 법무부의 탈검찰화, 검찰의 과거사 정리, 검찰행정에 대한 시민의 직접 참여, 검찰의 인권 친화적 개혁 등이다. 이 모든 것은 검찰의 정치적 편향을 수정하고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개혁을 위한 범정부적, 범국가적 조직의 구성을 제안한다.

문재인은 이미 여러 차례 참여정부 때 검찰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한 데 대한 회한과, 검찰의 행태에 심각한 우려와 분노를 표한 바 있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주려 애썼던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수사를 당하고 끝내 서거에 이르고 말았다며 애통해 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검찰의 치부와 행태를 해부하면서 검찰개혁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청사진을 내비치고 있다.
또 한 명의 저자인 김인회는 참여정부 시기 사법개혁을 직접 담당하며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리고 지금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른바 ‘검찰개혁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언론 기고와 논문을 쓰고, 토론회와 강좌를 여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떻게 하면 국민 위에 군림해온 검찰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것인가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국민 편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검찰 권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히려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정부보다도 검찰개혁에 강한 의지를 가졌던 참여정부가 왜 부분적인 성공에 그치고 검찰 권력을 완벽하게 개혁하지 못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검찰이 어떻게 개혁에 반발했는지, 그 과정에서 그들의 본질과 욕망을 어떻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정치검찰의 복수
검찰은 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었는가?

2009년 검찰은 정치보복적 무리한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서거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사건, 김상곤 경기교육감 사건 등이 터졌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은 무리한 기소, 무리한 영장청구, 피의사실공표 등으로 ‘정치수사’를 일삼아왔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모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치검찰의 표적수사가 얼마나 부실하고 엉터리인지 증명된 것이다.
정치수사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와 검찰은 이 사실을 부인해왔다. 하지만 지난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정치검찰의 활약은 대단했다. 가장 엄정하게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세력에게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남발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권력에게는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 스폰서 검사나, 그랜저 검사 사건 등 검찰 관련 비리 사건에는 자신의 식구들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정치검찰의 행태였다.
정치검찰은 이미 이 땅에 검찰제도가 도입될 때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과거 청렴한 검찰과 현재의 정치검찰이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일제가 검찰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 정치검찰이 도입된 것이었다. 따라서 검찰제도 자체에 대한 반성과 검찰의 권한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없이는 검찰을 제대로 개혁할 수 없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검찰개혁
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실패로 끝났을까?

참여정부는 사법개혁과 함께 검찰개혁을 시작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을 억압하는 구조를 타파하고자 한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검찰의 저항은 상상 이상이었다.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특권집단으로서 검찰은 개혁에 대한 의지가 박약했다. 검찰을 둘러싸고 있는 보수세력의 힘도 막강했다. 결과적으로 개혁은 성과보다는 실패가 많았다. 그리고 개혁을 둘러싼 검찰의 저항은 참여정부가 끝나고 나서도 앙갚음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다.
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부분적인 성공에 그치고 실패로 끝났을까? 왜 검찰은 참여정부를 싫어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했을까? 저자들은 참여정부의 검찰개혁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 검찰의 본질을 똑똑히 목격했던 사람들이다. 그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참여정부에서 권력기관의 개혁을 직접 담당했던 인사들의 인터뷰 내용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현장에서 뛰었던 대통령 비서실상,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담당 비서관의 진술을 채록해 있는 그대로 싣고 있다. 이들의 설명은 일치하기도 하고 모순되기도 하지만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성과와 실패를 되돌아보면서 검찰의 본질을 성찰하고 있고, 더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개혁과제가 바로 검찰개혁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찰, 정치 탄압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다
검찰개혁 왜 필요하고 꼭 해야만 하는가?

검찰에 대한 신뢰는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이제는 검찰 스스로에겐 쇄신과 반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도대체 검찰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저자 문재인과 김인회는 검찰이 너무 정치 편향적이 되었고, 지나치게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견제할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검찰공화국’으로 부를 만큼 검찰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국가형벌권 등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검찰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그러나 검찰 권한을 견제할 수단은 마땅히 없다. 스폰서 검사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은 부패에 대한 자정 능력과 윤리의식도 매우 낮다.
검찰은 과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왔고, 한국 사회를 지배하면서 권력구조를 왜곡하고 국민의 인권을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정권의 안보는 보장되었고, 날이 갈수록 검찰의 특권은 커졌다. 그 결과 국민의 인권은 뒷전이 되었고 국민에게 군림하는 사법,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검찰만 남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면 권력기관은 변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은 새로운 권력기관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자제할 수 있는 권력기관, 정권의 안보가 아닌 국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을 보장하는 권력기관, 국민지배기관이 아닌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거듭 날 것을 요구한다. 이미 민주주의와 인권은 시대의 정신이 되었고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이를 정권이나 권력기관이 거스를 수는 없다. 정권의 권력기관, 통치자의 권력기관에서 국민의 기관으로 전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권력기관은 스스로 변화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며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대한민국 검찰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담겨 있다.

친일파가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대한민국 검찰, 초라하기 그지없는 역사

이 책 1부는 대한민국 검찰의 실체를 현재의 권한, 역사, 이론 등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한마디로 검찰의 이론과 역사는 허약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 검찰의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있다. 식민지 시절 조선의 법률가들은 일본의 사법 시스템에 체질화됐다. 그리고 그 전통이 해방 이후에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했지만, 한국의 법률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의 법률가들은 민중 속으로 가지 않고 권력과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한국의 민중은 늘 법에 의해 핍박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친일파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대법원장이 되었다. 해방 이후 대법원장은 김병로, 조용순, 조진만, 민복기의 순으로 이어지는데, 김병로를 제외하고 모두 일제 강점기 때 판사로 있었다. 일제시대 판사로 있었다면 당연히 친일파로 분류된다. 이들이 대법원장으로 활약한 시기는 1958년부터 1978년까지 무려 21년간이다. 민복기는 검찰총장까지 역임했다. 법무부 장관에는 일제하 검사들이 더 많이 임용되었는데, 이들이 법무부 장관으로 활동한 기간은 1951년부터 1970년까지이다.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민복기, 박승준, 이태희, 정창운 등도 모두 친일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친일 경력이 있는 이호는 법무부 장관, 한일회담대표, 내무부 장관, 다시 법무부 장관, 주일 대사를 거쳐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으로 재직했다. 이처럼 일제하 사법 시스템이 몸에 배인 인물들이 한국 사회의 법률을 좌지우지해왔던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민중을 위해 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가장 앞에서 민중을 탄압했다. 억압하고 심지어 살해하기까지 했다. 국민을 간첩으로 만들고, 정치적 반대파라는 이유로 권한을 남용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는 등 정치권력과 한 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검찰의 역사는 해방 이후 단 한 번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행동하지 않았고,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 온 역사다.
검찰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도 모순적이다. 검찰은 자신이 사법부와 비슷하기 때문에 준사법기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법원과 같은 수준의 독립성과 신분 보장을 요구한다. 이것은 경찰과 완전히 다른 수사기관이라는 외관을 만들어 경찰 통제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검찰은 엄연히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다. 검찰의 법률구속성은 사법부와 동일한 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특수성에서 나오므로 검찰을 굳이 준사법기관으로 부를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특별대우를 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검찰은 전면 독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독점적으로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런 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사법부처럼 독립을 한다면 견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 것이다. 지금도 견제되지 않는 권력인데 독립을 보장하면 그것은 곧 재앙을 의미한다.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중립을 지키는 것이고 정치권력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독립만을 주장할 뿐 민주적 통제나 외부의 비판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사동일체 원칙도 마찬가지로 내용이 없다. 검사들은 이것을 매우 중요한 조직 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법한 명령이라면 아무리 상사가 지시하더라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명하복이 가장 중요한 검찰문화로 인식하도록 만들었고, 이를 통해 기개는 없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참여정부 때 개별검사의 소신 있는 결정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지했지만, 아직도 검찰은 관료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시대적 과제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 정경유착 등 부정부패에 있음을 명확히하고 이에 맞는 권력기관상, 검찰상을 제안하고 있다. 시대적 요구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대와 보장에 있는 것이 명확한 이상 권력기관인 검찰도 정권의 도구가 아닌 국민을 위한 봉사기구로 거듭나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주인으로서 검찰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비판하여야 한다.

“검찰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기득권 유지자”
특권의식으로 뭉친 검찰은 개혁에 저항했다

이 책 2부와 3부는 시간 순서에 따라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강금실(법무부 장관), 천정배(법무부 장관), 문희상(비서실장), 이병완(비서실장), 전해철(민정수석), 이호철(민정수석), 김선수(사법개혁비서관) 등 당시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공과를 있는 그대로 평가한다. 특히 실패한 부분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 그리고 실패한 부분은 무엇인지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권의식으로 뭉친 검찰의 상상을 초월한 반발도 압축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획기적이고 매우 생각하기 어려운 인사”로 평가되었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 취임과 사법개혁, 검찰개혁 과정, 인사권을 둘러싼 검찰의 반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평검사들과의 대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했지만 오히려 개혁에 해가 되었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과정, 천정배 장관의 강정구 교수 불구속수사 지휘 사건, 검찰과 경찰의 검경수사권 조정 과정, 검찰의 과거사 정리 거부 등이 숨 막히게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늘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반발을 일삼았고, 그 과정에서 검찰개혁이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본질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하고 참여정부가 끝나고 말았다.

“송광수 검찰총장 이외에 검찰 쪽에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요. 아무도 없어요. 다 비슷해요. 법무부 장관은 정치권에서 구할 수 있으니 괜찮은데 검찰총장은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문제는 총장을 꿈꾸는 사람은 전부 보수적입니다.”(이호철 전 민정수석)
“장관은 인사를 통해 권력을 보여줄 때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언제 이 조직이 장악되는구나 하고 느꼈느냐면, 제가 2004년 5월에 인사를 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충성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사권을 행사하고 검찰총장보다 장관이 힘이 세다는 것을 보여주니 검찰이 완전히 충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제대로 개혁할 수 있었지요.”(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검찰이 왜 반발했을까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하는 것이 도저히 정의감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검찰의 인식은 뭐냐? 검찰권이라는 것은 우리 꺼야, 우리 검사들이 국가를 위해 가지고 있는 우리 권한이야, 근데 우리 조직이 갖고 있는 권한을 검사도 아닌 놈이 와서 관여를 해? 나는 이런 이유로 그 사람들이 반발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의 기득권 지키기예요. 검사들은 자신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느냐 하면 우리의 권익을 지켜줄 사람, 자기들이 직접 말하지는 않겠지만 검찰의 기득권을 지켜줄 사람이 총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조직을 위해 용퇴하겠다는 것은 검찰밖에 없다니까요. 김종빈 씨도 왔다 갔다 했어요, 밤 사이에. 저하고도 몇 번 통화하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쨌든 사표를 철회하는 것은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밀려가는 거지요. 총장이라는 게. 그런데 이것은 여담인데 정권 내에서 대통령에게 총애를 받는 검찰총장과, 검찰의 현 조직과 퇴임 조직에게 사랑받는 검찰총장을 택하라면 후자를 택합니다.”(이병완 전 비서실장)
“검찰의 문제점이 뭐냐 하면 그것은 유능한 사람일수록 기득권 유지자가 된다는 것이에요. 유능하면서 개혁적이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그 개혁적인 사람은 출세를 못합니다. 유능한 사람은 극히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이제 더는 검찰 권력을 참아줄 수 없다
검찰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책 4부는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을 평가하고 있다. 성과와 한계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고, 현재의 검찰을 진단하며 앞으로 검찰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을 위한 기반 조성은 충분히 해놓았다. 법원과 변호사에 의한 검찰 견제 및 감시 시스템이 마련되었고, 불구속 수사 및 재판 원칙을 확립해 구속자 수가 급격히 감소되었으며, 인사청문회의 작동, 인권 친화적 수사개혁을 이루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검찰개혁 성과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과제는 크게 정치적 중립,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법무부 문민화, 검찰의 친인권화, 과거사 정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가장 중요시했다. 실제로 참여정부는 검찰에게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민주적 통제부분은 철저하지 못했다. 검찰 권한의 민주적 통제, 즉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전면에 부각시키지 못했다. 이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채 독립이 보장되면, 초과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검찰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고 마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에 대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종합적인 계획은 부족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핵심이고, 개별 과제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나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느 개혁 과제를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인식은 부족했다.
그리고 개혁 주체들의 통일된 인식도 부족했다. 대통령이 보는 시각이 다르고 장관이 보는 시각이 달랐다. 또한 정당과 행정부가 서로 교류하지 않아 개혁 과제를 서로 공유하지 못했다. 법무부 장관의 임기, 검찰총장 임명 등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참여정부가 끝나자 검찰은 신속하게 이전의 검찰로 회귀했다. 정치검찰이 부활했다. 그리고 곧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가 시작되었다. 수사를 빌미로 인간적인 모멸을 주고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은 권력기관이라면 당연히 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최소한의 윤리도 지키지 않았다. 검찰 스스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행태였다. 본질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력과 검찰의 복수극이었다.
그리고 검찰의 위법 수사, 권한 남용의 백화점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으로 이어졌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문제점을 다룬 제작진 수사와 기소,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 시민 수사와 기소, 촛불집회 참가자들 수사와 기소, 정연주 KBS 사장 수사와 기소,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기 위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과 기소, 대표적인 환경운동가인 최열의 수사와 기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통한 공안사건의 부활,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부실·편파 수사 논란 등으로 이어졌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이 무죄로 판결되면서 검찰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검찰개혁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과제이기도 하다. 검찰개혁은 검찰 자체의 개혁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그리고 정치이다. 민주정부만이 검찰개혁을 추진할 수 있고 완결 지을 수 있다.

■ 추천사 (한명숙 전 총리, 김선수 민변 회장, 조국 서울대 교수)

책의 제목처럼 온 국민이 다 함께 읽으며, 다시 한 번 “검찰을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아니,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자유·인권을 위해 다시 한 번 “검찰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있으면, 언젠가는 여러분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와 같은 비극도 언젠가는 다시 재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명숙, 제37대 국무총리

우리 사회 민주화의 성숙과 선진화를 위해서는 지나치게 비대하고 기형적인 검찰 권력을 정상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검찰개혁의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 제시한 검찰개혁 방안이 국민의 일치된 여론으로 되어 정치권을 견인한다면 검찰개혁은 확실한 성과를 낼 것이다. -김선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비교법적으로 유례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한국 검찰의 권력 행사는 항상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사상 최초로 검찰개혁을 시도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공저자는 당시 검찰개혁을 추진하던 핵심 인사들로 다시 검찰개혁을 말한다. ‘검찰공화국’에 눌린 ‘민주공화국’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필독을 권한다. 생생한 경험과 증언이 있기에 학문적 의미도 크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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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사람들

도서정보 : 제정임 | 2012-04-0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말라!”
노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
발로 뛰고, 몸으로 느껴 완성한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집중 탐구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홍기빈
“온 국민이 읽어야 할 책.” -이정우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다
“눈물 없이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너무 많다.”(이정우 경북대 교수)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들이다. 정치권, 언론에서 양극화 대책이니 뭐니 하면서 매일 부르짖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과 절망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지만, 말만 난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작은 사람들은 서럽기만 하다. 돈 천 원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자야 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아가면서 험한 일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병은 곧 망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프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다. 빚에 쪼들리고, 아이를 키우기도 어렵다.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직 압력을 받거나 책상을 치워버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이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지, 왜 우리 사회에는 그늘이 이리 넓은지.”(‘추천사’에서)

이렇게 벼랑 끝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모두 그 존재를 알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빈곤한 노동 현장에서,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빚과 병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는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빈곤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단비뉴스》가 2010년 6월 21일 창간한 이후 약 1년 반에 걸쳐 연재한 특집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묶은 것이다. 《단비뉴스》가 이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소외계층의 고통과 절망이 한계 수위에 이르렀는데도 정치권과 언론이 ‘수박 겉핥기’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단비뉴스》는 2008년 국내 최초의 실무교육 중심 언론대학원으로 문을 연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이 학생들을 훈련하고 대안언론의 역할도 하기 위해 만든 온라인신문이다.
《단비뉴스》 주간교수인 제정임과 대학원생들은 2010년 초부터 창간 준비 작업을 하면서 ‘기성 언론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빈곤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밀착 취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발로 현장을 뛰며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내고, 직업 언론인이 됐을 때도 이 관심을 이어가자고 다짐했다. 여러 차례의 세미나를 거쳐 우리 사회의 빈곤층이 맞닥뜨리는 ‘원초적 불안’ 다섯 가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근로 빈곤층의 생계 불안, 내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사람들의 주거 불안, 아이 낳고 기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보육 불안, 중병 들면 가정 파탄을 각오해야 하는 의료 불안, 절박한 상황에서 무자비한 고리채에 손 댄 이들의 금융 불안이 그것이다.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우리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처절해져 왔지만 그것을 전하고 알려야 할 문학과 저널리즘에서는 언젠가부터 리얼리즘과 치열함과 땀 냄새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사회 비평이라는 허울 아래 인텔리의 게으른 펜 돌리는 소리만 들리는 글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저널리즘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 내가 스스로 찾아가서 살피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던 후미진 골목길 구석구석을 밝은 눈 맑은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신 몸을 던져서 건져온 글들이다.”(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이 책에는 치열한 현장성, 빈곤층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직접 사람들과 부대끼며 만든 원고라서 감동적이기도 하다. 이런 르포 기사는 현장성은 뛰어나지만 대부분 대안 제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는 대안 제시가 가득하다. 매 장마다 전문가 의견, 해외 사례 등을 풍부하게 밝혀놓아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해준다.

열악하기만 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
1부 ‘근로 빈곤의 현장’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몸으로 겪고 기록한 것이다. 서울 가락시장의 일용직 파배달꾼으로, 온갖 푸대접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전화판촉원(텔레마케터)으로, 전국을 돌며 ‘도시의 찌꺼기’를 쓸어내는 야간청소부로, 호텔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발이 부르트도록 뛰는 ‘하우스맨’으로 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기록했다. 각각 2주에서 한 달간, 때로는 감기와 근육통에 시달리며, 때로는 서러움에 눈물을 쏟아가며 일터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임시직,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노동환경 조건이 열악했다. 일은 험하고 어려운데 생계를 이어나갈 만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가락시장의 파배달꾼은 철야로 열두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을 받지만 방세, 식비를 해결하고 나면 남는 건 하루 소주 한두 병 값이 전부다. 텔레마케터는 어지간한 관록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100~120만 원을 벌기도 벅차며, 야간청소부와 하우스맨 또한 한 달 임금이 100만 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2009년 가구 당 월 평균 소득이 344만 3,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중위소득 50% 미만의 저소득층에 속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층이지만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빈곤층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현장을 직접 체험한 기자들의 삶도 변했다. 밥값 5,000원의 가치가 너무도 커 보여서 일부러 싼 곳을 찾아 김밥을 사먹었고, 텔레마케터의 고단한 일을 겪은 뒤에는 텔레마케터에게서 온 전화를 친절하게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에 소주를 들이켜는 사람을 인생 패배자라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야간작업을 끝내고 소주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근로 빈곤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변해줄 노조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가장 먼저 최저임금이 현실화돼야 한다. 또 이들의 노동을 보호해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필요하며, 형편이 어려운 취업자에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등 다양한 사회안정망 확충도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집은 곧 인권? 인권이 없는 빈곤층의 주거 현실
하루 6,000원짜리 쪽방에서도 잠을 잘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3,000원, 5,000원을 내고 만화방, 다방 등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마저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지하도, 역 근처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2부 ‘빈곤층의 주거 현실’은 인간답게 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이 땅의 빈곤층의 삶을 기록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 여기에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서울의 부촌에서는 이 정도 공간에 한 가족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혼자 살아도 숨 막힐 공간에 가족이 살아가고 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쓰고 있고, 목욕시설은 없는 곳이다. 이런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리로 내쫓기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또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이곳 쪽방에서마저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동자동 사람들은 ‘따뜻한 공동체’를 꾸려가며 스스로 터전을 가꿔나가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의 존재를 없애버릴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개발의 이윤을 계산하기에 앞서 이들의 ‘생존권’도 존중되는 사회는 될 수 없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성남시 시흥동의 움막. 판교 재개발이 논의될 때, 김수연 씨는 개발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병원도 들어오는 등 환경이 좋아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개발이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이 지역에서 비닐하우스 가구공장을 하고 있던 김씨는 개발이 시작되자 제일 먼저 ‘떠나주어야 할 존재’였다. 공장이 불법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공장 철거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세든 집도 비워주어야 했다. 갈 곳이 없는 그는 5년 동안 움막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초3동의 산청마을과 개포동의 구룡마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비닐하우스촌이다. 판자벽과 비닐, 떡솜 등으로 지어진 이 집들은 불이라도 나면 삽시간에 옆집으로 번진다. 실제로 화재가 자주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비닐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만 5,000여 가구에 이른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지하수를 파서 먹어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늘 재개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원은 ‘현실적인 임대아파트’를 얻는 것이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해 수십만 원씩 내야 하는 곳 말고, 가구의 소득수준에서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제공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원은 이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 아이 믿고 맡길 곳은 어디에, 서민들의 보육문제
정부는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제대로 키울 수가 없는 구조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3부 ‘애 키우기 전쟁’은 서민들, 저소득층의 보육에 관한 이야기다. 철거촌 빈집에 방치된 아이들은 김길태 사건처럼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친정과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아이를 보는 맞벌이 부부들도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려면 부부 중 한 명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육아휴직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육아휴직을 쓰면 책상을 치워버리거나 사퇴 압력을 받게 된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더욱 힘들다. 생계와 보육을 홀로 책임지고 있는 ‘싱글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보육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행복해야 할 아이 키우기가 왜 우리 사회에서는 이처럼 ‘전쟁’이 돼버렸을까? ‘낳아라’ 말만 말고 키울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취약한 보육 여건 때문에 서민들과 저소득층은 더욱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프면 망한다, 빈곤층의 의료문제
4부 ‘아프면 망한다’는 말 그대로 아픈데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고통 받는 서민들의 이야기다. 난치병에 걸려 엄청난 치료비가 들지만 정부와 사회로부터 변변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삶을 지탱하기 힘든 가정, 환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험회사 등을 취재하며 서민들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난치병에 걸린 남매를 키우고 있는 엄마. 아이가 병이 나자 아빠와 시댁은 발길을 끊어버렸다. 홀로 두 아이를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앞이 캄캄할 뿐이다. 정부지원금은 얼마 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 정부지원금은 많아봐야 22만 원 남짓. 우리 사회는 자폐나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치료비는 모두 부모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아이 치료비로 집 한 채를 날린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가족 중에 누군가 크게 아프면 중산층도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음악학원을 운영하다가 병이 나서 모든 재산을 잃고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사회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책에서는 의료복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대안 제시를 하고 있다. ‘아프면 망한다’는 곧 ‘돈 없으면 망한다’와 같은 말이다.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도와주고 챙겨주는 나라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저당 잡힌 인생, 서민들은 빚에 허덕이고 있다
5부 ‘저당 잡힌 인생’은 빚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자 손에 남는 건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을 받은 빚 2,400만 원뿐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갖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비싼 등록금은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학 시절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공부도 하지 못했다. 저소득층에게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 이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대학 시절에 이렇다 할 스펙 쌓기도 힘이 든다. 연애도 결혼도 꿈꿀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학자금을 낮추고 대출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늘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는 대부업체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돈을 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 광고들을 귀찮아하며 무시하지만 돈이 급한 사람들은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덫에 걸려든 서민들이 정말 많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들은 오히려 서민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서민들은 급히 불법 대부업체에 도움을 요청하고 빚의 수렁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규제완화로 저축은행을 부실하게 하고, 서민금융제도는 있으나 마나 하게 만드는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사채’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 추천사

일찍이 이런 책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예전 영화 광고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라는 문구가 많았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눈물 없이 넘길 수 없는 페이지가 너무 많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왜 이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지, 왜 우리 사회에는 그늘이 이리 넓은지.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층은 매우 넓다. 온 국민이 읽어야 하고, 특히 학자, 정책 입안자, 시민단체 등 전문가 집단은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읽고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구제받을 가능성이 열리지 않겠는가. 이 책을 쓰느라 밤잠 설치며 고생한 기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며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정우_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이런 책을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우리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처절해져 왔지만 그것을 전하고 알려야 할 문학과 저널리즘에서는 언젠가부터 리얼리즘과 치열함과 땀 냄새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사회 비평이라는 허울 아래 인텔리의 게으른 펜 돌리는 소리만 들리는 글발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시 저널리즘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 내가 스스로 찾아가서 살피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던 후미진 골목길 구석구석을 밝은 눈 맑은 마음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신 몸을 던져서 건져온 글들이다. 마음이 없어져버린 이 세상이 토해내고 있는 이 낮고 고통스런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자.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외면하지 말라.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제발 내려놓지 말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홍기빈_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단비뉴스》가 출범할 때 축하 메시지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같은 기존 대형 매체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형태의 대안 미디어가 나타날 때 ‘그래, 어디 얼마나 버틸지 한번 보자’ 하는 심보가 있는 게 사실이다. 폄하의 생각이 아니라 기대 반 우려 반이 맞겠다. 《단비뉴스》는 기대를 실현해주었고 또한 더 큰 기대를 키워내고 있다. 게다가 책까지 만들다니 놀라울 뿐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비뉴스》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방향성과 방법론이다. 소외된 그늘에 몸을 던져 썼다는 것. 놀라움에 더해 감사하기까지 하다. 손석희_ 성신여대 교수,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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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도서정보 : 이현우 | 2012-06-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꾼’ 로쟈와 함께 떠나는 세계문학 여행
《폭풍우》, 《파우스트》, 《신곡》,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불멸의 고전들, 이 시대의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태어나다!

세계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다
본명 ‘이현우’보다 ‘로쟈’(도스토예스키의 《죄와 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사람. ‘곁다리 인문학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서평꾼’, ‘하루에 1천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의 주인장’, ‘책을 탐독하는 유전자를 타고난 서평 블로거’, ‘경계 없는 인문지성’, ‘인문학 전도사’, ‘우리 시대의 대중지성’, ‘지젝을 읽기 위한 충실한 안내자’……. 이런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사람. “인문학을 읽기 전에 로쟈에게 물어보라”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는 우리 지성계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를 펴냈다. 사실 그는 인문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본령은 문학 연구자이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 서적을 탐독했다.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 카뮈를 그 시절에 읽었고, 스탕달과 브론테, 오 헨리와 모파상, 체호프의 작품도 그때 읽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를 더 공부하고 싶어서 자연히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러시아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했던 두 시인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서정시를 분석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요즘도 대학과 대중 강연에서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활발하게 강의하고 있다.

“‘세계문학’이라고 불리는 외국문학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보다 더 친근했으니 ‘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정한 대학 진로는 자연스레 외국문학 쪽이었다. 최종적으로 러시아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작가를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하긴 ‘로쟈’란 이름도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이 책은 문학 연구자인 로쟈가 처음으로 대중을 대상으로 내놓은 문학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세계문학을 ‘다시 읽기’ 위한 책이다. 로쟈는 서문에서 ‘다시 읽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 대한 읽기를 굳이 ‘다시 읽기’라고 적은 것은 실제로 대부분의 글이 다시 읽기의 결과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고전은 다시 읽기의 대상’이라는 관점을 반영한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읽기란 단순한 반복적 읽기가 아니라 ‘고쳐 읽기’이고 ‘거슬러 읽기’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세계문학 다시 읽기’란 제목을 단 1부에는 13개의 작품에 대한 글과 그것과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작품을 ‘겹쳐 읽기’란 이름으로 배치해놓았다. 2부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에는 세계문학을 읽고 생각해보는 데 참고가 될 만한 글들, 세계문학을 읽기 위해 알아야 할 여러 교양 지식들을 담아놓았다.
1부 ‘세계문학 다시 읽기’에 소개되어 있는 작품은 모두 세계문학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로, 셰익스피어와 괴테, 단테 같은 문호를 앞세우고,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고골, 안데르센 등의 작품을 거쳐, 현대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로쟈 자신이 세계문학에 매료됐던 나이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썼기에, 젊은 세대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작가와 작품을 선택했다.
2부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에는 ‘세계문학’의 전제조건인 다양한 교양 지식을 먼저 전달하고 있다. 즉 국가, 세계시민, 언어의 운명에 대해서 이론적인 고민을 한 뒤에, 과연 무엇이 세계문학인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읽다보면 로쟈가 던지는 다양한 질문거리와 만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왕권과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작품이 아닐까? 거대한 제방공사를 기획하는 파우스트의 유토피아는 오늘날의 개발주의와 어떻게 다를까? 그런 의미에서 파우스트가 구원받은 것은 과연 정당할까? 반전주의자 헤세는 왜 전쟁을 긍정하는 《데미안》을 썼을까? 안데르센 동화에는 왜 계급적, 우생학적 시각이 깔려 있을까? 《프랑켄슈타인》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어떻게 다시 해석했을까? 러시아의 낭만주의 작가인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는 사랑과 이별을 서로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과연 무엇이 진짜 세계문학일까? 이런 질문이 책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작품을 읽는 것이 ‘다시 읽기’ ‘고쳐 읽기’의 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제국주의, 고전을 보는 새로운 시각
-셰익스피어의 《폭풍우》 다시 읽기
이 책에서 로쟈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다. 읽고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쳐 읽고 다시 쓰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우》를 보자. 그는 이 장에서 셰익스피어를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셰익스피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는 튜더 왕조(1533~1603) 말기에서 스튜어트 왕조(1603~1688) 초기이다. 이 시대는 봉건주의에서 절대주의 국가로 넘어가는 이행기였고, 당연히 권력은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에 셰익스피어는 왕권 찬탈을 둘러싼 권력 다툼을 자주 다루었는데, 명확하게 왕권을 지지하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입장이었다. 또한 이 시기는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여 대서양의 패권을 차지하고 식민지 경영의 선두 국가가 되던 때였다. 로쟈는 이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 주인공인 프로스페로나 미란다, 알론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야만적이고 흉측한 노예’로 소개되는 칼리반의 입장에서 작품을 재해석한다.
처음 프로스페로가 섬을 정복하기 전에 그 섬의 주인은 칼리반이었다. 프로스페로가 섬에 도착했을 때 칼리반은 호의적으로 그를 대했다. 하지만 프로스페로는 그런 칼리반에게 딸 미란다를 강간하려 했다는 죄를 씌워 노예로 삼아버린다. 이에 저항해 칼리반은 반란을 기도한다. 그러나 그의 반란은 희화적으로 묘사될 뿐 결국 단숨에 제압되고 만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빼앗긴 자신의 섬을 되찾으려는 칼리반의 시도는 식민지 해방 투쟁에 값하지만, 그는 이것이 스테파노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김으로써 가능하리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다. 그는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을 탐욕과 환상이 빚어낸 어리석은 행동으로 줄곧 그려왔고, 《폭풍우》에서 칼리반의 반란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프로스페로의 용서를 받은 칼리반은 다시 ‘길들여진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야만인’ 칼리반은 교정이 필요한 위협적인 존재이고, 강간이나 모반 같은 반사회적인 행위는 반드시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그 당시 연극의 주된 관객이었던 영국 지배계급의 식민주의적 태도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쟈는 《폭풍우》 다시 읽기를 통해, 이 작품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비판하는 용도로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시 해석하는 것이 고전의 의의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구원은 과연 정당한가?
-괴테의 《파우스트》 다시 읽기
어떻게 문학 고전을 읽어야 할까? 혹시 줄거리를 파악하기에 급급해하지 않은가? 그러다가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지는 않는가? 특히 《파우스트》를 읽을 때, 그런 함정에 빠질 때가 많다. 괴테가 평생을 걸쳐 완성한 필생의 역작이자 독일문학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파우스트》는 줄거리를 파악하기에도 복잡한 작품이다. 로쟈는 이 난해한 걸작을 알기 쉽게 풀어주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파우스트는 도대체 어떤 유토피아를 꿈꿨기에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겼을까? “파우스트가 이겨내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반복을 통해서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어버리는 파도, 곧 자연의 지배력이다. 그는 이 자연과의 싸움을 위해서 거대한 제방 공사를 기획하여 백성의 노동력을 쥐어짠다. 파우스트가 꿈꾸는 것은 그렇게 해서 얻으려고 하는 ‘자유로운 땅’이고 ‘천국’이다.”
파우스트는 지상에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다면 자신의 삶을 가져가도 좋다고 메피스토와 내기를 했고, 마침내 그 순간에 도달해 죽음을 맞이한다. 메피스토는 계약에 따라 그의 영혼을 지옥으로 수습해가려 하지만, 이때 천사들이 내려와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상으로 데려간다. 곧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럼 파우스트의 구원은 정당한 것인가? 로쟈는 이 부분에 물음표를 던지며 파우스트의 행위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파우스트의 행위를 ‘개발 지상주의자’이자 ‘근대의 기획자’, ‘근대성의 화신’으로 해석한다. “이때의 근대는 무한한 소유욕과 지배욕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서의 ‘근대 자본주의’다. 파우스트는 ‘그의 정신으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것을 파악하고, 자신의 자아를 온 인류의 자아로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소망’이라 토로했다. 그렇듯 무한히 팽창하려는 파우스트적 욕망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구현한 것, 그것이 바로 ‘근대 제국주의’ 아니던가.”
이에 반해 메피스토는 모든 창조는 결국엔 무로 휩쓸려가게 마련이라고 여기는, 유위(有爲)보다는 무위(無爲)를 예찬하는 ‘허무주의자’로 바라본다. 그리고 오늘날 파우스트의 개발주의와 메피스토의 허무주의 중 어떤 태도에 더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어떤 태도가 더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런 점에서 파우스트가 구원받은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데미안》과 전쟁 예찬
-헤세의 《데미안》 다시 읽기

《데미안》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청소년의 필독서로 세대에 걸쳐 권장되어왔다. 이 소설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청소년기에 이 작품을 접하게 된다. 사실 《데미안》은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불명료한 묘사와 관념적인 내용, 신비적인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브락사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데미안과 악마, 데미안의 어머니, 방황……’ 이런 이미지들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읽었다고 자부한다. 과연 제대로 읽었을까? 그렇다면 로쟈는 어떻게 다시 읽고 있을까?
헤르만 헤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쟁을 반대한 작가로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을 때, 헤세는 스위스의 일간지에 지식인들의 편협한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를 비판하는 반전 호소문을 실었고, 이로 인해 조국 독일 언론에 ‘배신자’, ‘변절자’로 낙인이 찍힌 바 있다. 이에 상처를 받은 헤세는 아예 국적으로 스위스로 바꾸었을 정도였다.
이런 헤세가 1919년에 발표한 《데미안》에는 역설적으로 전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새의 형상’이 전쟁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전쟁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간성이 탄생하는 과정으로 그려져 있다. 작품 속에서 이러한 시각은 헤세의 반전 활동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또 로쟈는 데미안의 시각을 나치의 우생학과 연결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데미안은 인류가 가는 길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모든 사람은 그들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리 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의 종(種)을 구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것은 발전사적 과정이며 생물학적 진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 이러한 관점은 나치의 우생학과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 헤세의 ‘개인’을 나치는 ‘종족’으로 바꿔놓았을 뿐이다.”

안데르센은 왜 상류계급을 예찬했을까?
-안데르센의 동화 다시 읽기
로쟈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안데르센의 자서전과 함께 읽으면서 그 바탕에 깔려 여러 이데올로기들을 발견한다. 덴마크가 ‘동화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는 156편에 이르는 동화를 발표한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 덕분이다. 그런 그는 가난했고, 하층계급이었던 자신의 신분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상류계급의 후원을 받으며 작품을 썼고, 그 상류계급에게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았다.
안데르센의 대표작인 《미운 오리 새끼》의 교훈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잘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계급적, 우생학적 전제가 깔려 있다. “일단 고상한 ‘백조’와 평범한 ‘오리’라는 전혀 다른 종의 구분이 있으며, 이들 간의 우열 관계는 이 동화에서 전혀 의심되지 않는다. 이들의 각기 다른 운명은 ‘아름다운 정원’과 ‘농장’이란 공간적 대비에서도 확인된다. 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가 열등한 하층계급 동물들에게 구박받고 쫓겨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아기 백조의 타고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기 백조’는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는 게 낫다고까지 여긴다. 여기서 안데르센은 평민들의 운명에 대한 분명한 경멸을 표현한다. 하층계급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느니 상류계급에게 모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이다.”
또 다른 대표작인 《인어 공주》는 왕족과 사랑에 빠진 인어 공주가 상류계급과 섞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초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인어 공주는 물 밖으로 빠져나와 왕족들 사이로 걸어 다니기 위해 꼬리가 다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리로 걷거나 춤출 때마다 칼날 같은 아픔을 감수한다. 그녀는 자신이 왕자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데도, 자기 부류, 자신의 계급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부정과 함께 다만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할 따름이다.”
이렇듯 안데르센은 상류계급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평생에 걸쳐 그들을 모범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질서를 정당화하는 작품을 썼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이 고통과 굴욕, 모멸과 고문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로쟈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안데르센은 비록 비굴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이 우러러보았던 가치를 동시에 혐오할 수 있었던 점이 아마도 그의 진정한 천재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에는 단테의 《신곡》,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엘리엇의 《황무지》,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사랑시, 고골의 <외투> 등이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구매가격 : 9,800 원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

도서정보 : 보헤미안 | 2015-05-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정말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시사 상식
툭 터놓고 쉽고 재미있게 읽자!

이자 제도는 당연한 것일까? 그 많던 대부업체 광고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부동산 거품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중동 지역의 전쟁은 왜,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비즈니스용 대화를 위해, 교양을 쌓기 위해 뉴스나 책을 찾아보지만 온통 알 수 없는 용어들로 지적 우월감을 뽐내는 지식 자랑의 향연뿐이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쉽고 재미있게, 툭 터놓고 알려줄 수는 없는 걸까?
블로그 월평균 방문자 수 15만 명! 시사・인문・경제 부문 화제의 블로그 ‘뻔지르’ 운영자 보헤미안이 어렵게만 보이는 시사와 경제,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시사 상식들을 바로 잡아준다! 저자의 유쾌하고도 간단명료한 설명에 빠져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다 보면, 시사를 보는 눈이 열리고 새로운 관심과 흥미가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시사나 경제가 우월주의에 빠진 지식인들의 향유물이 아니며, 지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라고. 그리고 당신도 날카로운 글을 쓸 수 있다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구매가격 : 9,730 원

왕실태교

도서정보 : 권동연 엮음 | 2016-05-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국립고궁박물관 화제의 프로그램
‘왕실태교’를 이제 집에서!

모집 5초 만에 마감! 이미 5천여 명의 수강생이 인정한 국립고궁박물관의 ‘왕실태교’ 프로그램을 집에서 만나보세요!
조선왕실에서는 아기가 비록 뱃속에 있어도 이미 출생한 아이처럼 보고, 듣고, 느낀다고 믿었기에 훌륭한 임금을 배출하기 위해 태교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품격 있는 음악, 문학, 회화 등 왕실 문화 콘텐츠를 총동원해 이루어졌던 조선왕실의 태교를 현대 임산부들에 맞춰 재해석하여 한 권의 책으로 담았습니다. 조선 왕실 전통의 태교를 음악태교, 문학태교, 침선태교, 건강태교 등 일곱 주차로 나누어 구성했으며, 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진자료 및 큐알코드는 마치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뿐만 아니라 주차별로 나만의 태교일기책 만들기, 자수 주머니 만들기, 우리 아기 첫 목욕용품 만들기 등 활동을 수록하였으며, 키트까지 제작해 직접 집에서 왕실태교를 실천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고, 그만큼 태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의 선조들의 품격있고, 정성 가득한 태교를 소개합니다.

구매가격 : 9,73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