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자책

클래식 클라우드 014-모네

도서정보 : 허나영 | 2020-02-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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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우주가 내게 보여주는 것을
붓으로 증명하려 했을 뿐이다”


미술사의 흐름을 뒤바꾼 인상주의 혁명
그 시작과 끝에 ‘빛과 색을 쫓는 사냥꾼’ 모네가 있다

빛의 인상을 쫓는 여정을 시작한 르아브르 해안에서 구세대 미술에 도전장을 내민 파리를 거쳐
대표작 <수련>을 피워낸 지베르니 정원까지 빛으로 가득한 모네의 화실을 찾아 나서다





◎ 도서 소개

인상주의자 모네의 ‘예쁜 그림’에 담긴 아방가르드 정신
회화가 나아갈 길에 새로운 빛을 제시한 그의 삶과 예술로의 여행

프랑스의 근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에펠탑이라면, 미술에는 인상주의 회화가 있다. 둘 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탄생했고, 처음 발표된 당시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예술사에서 확고부동한 가치와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만국박람회를 통해 에펠탑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1889년에 모네는 로댕과 함께 각각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와 조각가로서 2인전을 열었다. 르누아르, 드가 등 동료 화가들과 의기투합해 첫 인상주의 전시를 열고 〈인상, 해돋이〉를 발표한 지 꼭 15년만이었다. 그 후로 현재까지 모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모네와 인상주의를 주제로 한 전시는 거의 예외 없이 성황을 이루고, 201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모네의 1890년작 〈건초더미〉가 낙찰가 신기록을 세웠다.
모네가 이토록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대중에게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그의 작품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저 ‘예쁜 그림’으로만 봐도 좋은 것일까? 1874년에 〈인상, 해돋이〉를 보고 루이 르루아가 내린 ‘인상밖에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는 명백한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 회화를 모범으로 삼는 아카데미와 살롱의 기준에서 이 그림은 아름답기는커녕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그림이었다. 모네는 기존 회화가 추구하던 이상화된 형태와 색, 실제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원근법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인상’을 그렸다. 안개 낀 날과 맑은 날 센강의 물빛이 다르고, 공기와 햇빛의 질에 따라 그림자조차 수백 혹은 수천 가지 다른 색을 띤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이런 시각적 차이를 그림으로 구현한 최초의 화가들이 모네와 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옛것에 얽매인 당대의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결국 역사는 모네와 인상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존 주류 미술에 대항해 시대를 앞선 새로운 미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는 혁명이고 아방가르드다. 이 혁명을 모네는 ‘빛’과 ‘색’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자신의 눈에 실제로 보이는 자연의 빛을 그린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그가 말년에 시력을 잃어가면서 그린 작품들에 나타난 왜곡된 형상과 색채조차 그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모네는 천재라기보다는 예민한 시각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며, 빛과 색에 관한 그의 집요한 탐구는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조각하는 장인과 같았다. 모네의 발자취를 쫓는 이 책은 불가해하리만치 집요한 그 열정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르아브르에서부터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한 파리를 거쳐 아르장퇴유, 베퇴유, 루앙, 지베르니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저자 허나영은 종종 멈춰 서서 화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모네의 삶과 예술을 추동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헤아린다. 르아브르 바닷가에서는 화가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한창 인상주의 전시 준비로 바쁜 와중에 이곳을 찾은 그의 심경을 상상해보고, 파리 생라자르역의 철골 지붕을 바라보며 삶의 무게와 이루고 싶은 꿈 사이에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분주하고 고단했던 그의 30대를 돌아본다. 첫사랑이었던 아내 카미유를 떠나보낸 뒤 새로운 사랑 앞에서 주저하던 마음과 그럼에도 끝내 그 사랑을 지켜낸 용기까지, 이 책에는 모네의 그림만큼이나 다채로운 빛깔을 띤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시대의 인상을 넘어 회화의 현대성을 포착하다

저자는 모네의 삶과 예술을 이끈 두 가지 배경을 19세기 파리 사회와 미술사의 흐름에서 찾는다. 프랑스혁명으로 주춤했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경제 발달이 본격화된 19세기 중후반의 파리는 ‘모던’이라는 구호 아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격렬하고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따라 무질서한 중세도시가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인 기차가 프랑스 전역을 핏줄처럼 연결했다.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들은 시누아즈리나 자포니즘 같은 이국적인 문물에 환호했다. 달라진 생활 방식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했고, 이를 재빠르게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의 그림은 한마디로 유행을 담은 그림이었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인 ‘벨 에포크’가 모네의 작품 속 화려한 색채로 나타났다. 모네 자신의 삶 역시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가 지베르니에 정착해 정원을 가꾸며 〈수련〉 연작을 그리던 무렵, 인상주의는 프랑스를 넘어 전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며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회화가 신화, 종교, 역사 같은 고전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일상과 현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화가들이 이젤을 들고 화실 밖으로 나가게 된 것도 19세기의 일이다. 사실주의 운동을 이끈 쿠르베, 농민의 삶과 자연을 다룬 바르비종파 화가들,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며 그리라는 가르침을 준 부댕과 용킨트 등이 모두 모네의 스승이자 선배다. 이 같은 경향은 좀 더 앞선 시기에 영국에서 터너와 컨스터블의 풍경화로 나타났고, 모네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피해서 간 런던에서 터너의 그림을 접하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미술을 향한 시대적 흐름은 이미 형성되고 있었고, 모네는 그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에 부응하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와 후원자 들을 모아 인상주의라는 본격적인 길을 냈다. 그 길을 타고 회화는 대상에 대한 정형화된 재현에서 예술가의 주관적인 표현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한다. 미국의 모더니즘 비평가 그린버그는 인상주의가 이미 지나간 세대의 미술이 되어버린 1950년대에 모네의 현대성을 재발견했다. 특히 색으로 가득한 평면에 가까워진 모네의 후기 작품들이 회화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고 보았고, 인상주의를 현대미술의 출발로 평가했다.


빛과 색으로 가득한 거대한 평면, 대장식화 〈수련〉의 탄생

흔히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모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덮개’와 ‘연작’이다.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그는 성당이라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과 자신 사이에 있는 덮개를 그린다고 했다. 공기, 바람, 안개, 온도, 습기, 시간 그리고 빛과 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 쉽게 지각되지 않던 것들이 모네의 그림을 통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덮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날씨와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담기 위해 그의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연작 형식으로 발전했다. 에트르타 해안에서 모네와 어울렸던 모파상에 따르면, 그는 하늘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개의 캔버스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 이는 건초더미나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빛과 색을 쫓는 사냥꾼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상을 포착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빛과 함께 모네 미학의 핵심을 이루는 또 하나의 주제는 ‘물’이다. 말년에 그는 화가보다 정원사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는 데 정성을 쏟았다. 특히 연못을 중심으로 한 물의 정원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작품이자, 대장식화 〈수련〉 연작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이 연작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 수련이 아니라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의 수면이다. 모네는 여타의 대상을 모두 밀어내고 오로지 거대한 수면만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수련〉이 전시된 오랑주리미술관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물과 빛으로 이루어진 덮개에 감싸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림뿐 아니라 전시 공간까지도 그의 의도대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꽃의 수족관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는 둥근 벽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전시실을 주문하고 그에 맞는 그림을 제작했다. 평론가 앙드레 마송은 모네를 미켈란젤로에 빗대어 오랑주리미술관을 ‘인상주의의 시스티나성당’이라고 불렀다. 기념비적인 크기와 함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놓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비유다.

86세로 삶을 마감한 모네는 한 미술 사조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한 드문 인물 중 하나다. 인상주의라는 혁명을 시작하고 그 ‘마지막 생존자’가 된 모네는 말년에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평생에 걸친 예술적 탐구의 집약체이자 그것을 뛰어넘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장식화 〈수련〉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고자 했지만, 그 집요한 탐구의 끝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표면적인 아름다움 그 이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과 함께하는 여정이 또 다른 영감과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네의 그림은) 우주를 지각하는 우리의 능력을 더욱 깊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조르주 클레망소





◎ 책 속에서

◆ 모네에게 야외 화실은 그 어떤 화가에게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 결코 실내에서는 담을 수 없는 소재를 화폭에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모네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빛과 그에 따라 변하는 만물의 색을 그리기 위해 화구를 들고 센강 변으로 갔다.
-〈프롤로그〉 중에서

◆ 모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모든 것의 시작점은 르아브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노르망디 바다를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준 스승 외젠 부댕을 만났을 뿐 아니라, 모네에게 인상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붙여준 〈인상, 해돋이〉를 그린 곳이기 때문이다.
- 〈1장 여명 - 노르망디 바닷가에 이젤을 세우다〉 중에서

◆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급변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 젊은 예술가들이 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모네를 비롯하여 이후 인상주의자라고 불리게 되는 화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19세기 파리의 삶을 각자의 개성을 살려 표현한 ‘도시의 화가들’이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모네가 주로 그린 것은 자연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모네의 발걸음이 닿았던, 소위 ‘모네의 화실들’은 파리지앵들이 기차를 타고 나가 여가를 즐기던 확장된 파리라고 볼 수 있다.
- 〈2장 일출 - 미래를 향해 달리는 도시와 화가들〉 중에서

◆ 당시 모네를 포함해 인상주의자라고 불린 이들의 상당수는 30대 혹은 40대였다. 이미 가정을 이루었거나 적어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해야 하는 나이였다. 살롱으로 대표되는 미술 제도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기성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버리는 것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로 뭉쳤던 것이다. 비록 당시의 보수적 시각에서는 쓸데없는 아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역사는 인상주의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모네를 인상주의자로 기억하는 것이 그 증거다.
- 〈3장 아침 햇살 - 인상주의자의 탄생〉 중에서

◆ 모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붓을 잡은 것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한편,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카미유와 함께 바다에 갔을 때, 아르장퇴유의 들판을 산책했을 때, 그녀가 마당에서 아들과 노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든 순간을 그림에 담고자 했던 모네이기에 이렇게라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 〈4장 정오 - 두 번의 죽음을 넘어서〉 중에서

◆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가꾸고 있을 때, 비록 인상주의는 해체되었지만 뒤랑뤼엘은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인상주의자들도 당시에 모르던 것이 있다. 그들에게 세계 미술과 문화의 중심은 파리였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계속 그럴 것 같았다. (...) 20세기에 들어서서 발발한 두 번의 전쟁으로 세계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예술의 중심 역시 미국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파리지앵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부를 얻어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파리에 집을 사두고 살롱을 열어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교제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뒤랑뤼엘은 미국 본토에서도 미술 시장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 예측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 〈5장 오후의 태양 - 지베르니에서 맞이한 벨 에포크〉 중에서

◆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1891년 뒤랑뤼엘갤러리에 전시된 〈건초더미〉 연작을 ‘진정한 사실을 그린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흔히 사실적인 묘사라고 여겨지는 사물의 껍데기가 아니라, 빛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 모네의 그림에 담겨 있다고 보았다.
- 〈5장 오후의 태양 - 지베르니에서 맞이한 벨 에포크〉 중에서

◆ 그토록 시각에 의존하던 화가가 정상적이지 않은 시력으로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것이 범부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네의 그런 열정 덕분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색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그가 반복해서 다뤄온 동일한 일본식 다리와 장미 아치를 그렸음에도 형상은 불분명해지고 색감은 더욱 강렬해졌다. 붓질은 거칠면서도 강한 마티에르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려다가도 강렬한 색과 붓질에 압도당하고 만다. (...) 실제 대상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떠나 오로지 색과 질감만으로 훌륭한 회화가 된다는 점에서 이 시기 모네의 작품은 훗날 미국 추상표현주의와도 연결된다.
- 〈6장 노을 - 〈수련〉, 꿈의 완성〉 중에서

◆ 분명 멀리서 보았을 때 보이던 꽃과 나무, 물비늘이 그림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형태가 흩어지고 대신 다양한 색의 붓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모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중 하나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꽃이든 사람이든, 설사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성당이라 하더라도 모네의 손에서는 그저 붓자국으로 표현될 뿐이다. 그는 여인의 아름다운 속눈썹이나 성당의 성스러운 조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햇빛이 자연과 사람을 비출 때 보이는 색에 집중했고 그것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빛 그 자체였다.
- 〈6장 노을 - 〈수련〉, 꿈의 완성〉 중에서

◆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모네의 ‘예쁜 그림’ 뒤에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이 있다.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물길의 당연한 흐름에 모네가 커다란 돌을 던졌다. 물론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다. 선배인 쿠르베와 마네가 있었고 후배 격인 고흐와 쇠라가 있었다. 또한 이 예술가들의 전위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해준 뒤랑뤼엘과 같은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네가 던진 돌 옆에 또 다른 돌을 던져주고 흙을 옮겨주자 물길이 바뀌었다. 이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낸 인상주의는 그렇게 서양미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에필로그〉 중에서

구매가격 : 15,040 원

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1권

도서정보 : 박시연, 이시원 | 2020-02-07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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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안 되면~ ♪
시원 쌤과 함께
초등영어 쉽게 시작해요!





◎ 출판사 서평

이시원표 초등영어 학습만화 탄생!
“영어가 안 되면~” 중독성 강한 멜로디의 CM송과 쉬운 영어 학습 강의로 알려진 시원스쿨. 시원스쿨의 메인 강사이자 대표인 이시원 선생님을 드디어 학습만화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시원스쿨 기초영어 콘텐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담은 이시원표 초등영어 학습만화입니다.
영어는 지구상의 수많은 언어 중에서도 공용어로 꼽힐 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언어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수준에 맞지 않는 영어책과 과도한 학습량을 만나 영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립니다.
이시원 선생님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화 속 캐릭터로 변신했습니다. 파리만 날리는 예스어학원의 시원 쌤 캐릭터는 사실 예스잉글리시단의 비밀 요원이었고, 위기에 처한 영어 유니버스를 구하러 떠나지요. 영어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시원 쌤과 함께 모험을 하다 보면, 시원스쿨 특유의 쉬운 영어 학습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영어의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 개성 넘치는 만화 속 캐릭터로 변신한 시원스쿨 대표강사 이시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만화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유쾌한 성격 만큼이나 탄탄한 영어 실력을 갖춘 시원 쌤, 그리고 어린이들이 공감할 만한 영어 고민을 가진 예스어학원 신입생들의 모험을 따라가 보세요. 만화 속 핵심 영어 문장이 머리에 남는 것은 물론, 영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생깁니다.

* 시원스쿨 기초영어 콘텐츠의 노하우를 접목한 학습법
책 속의 또 다른 책 ‘예스어학원 수업 시간’에서 시원스쿨의 노하우가 살아있는 초등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 단어 30개와 핵심 문법 3가지는 빠르게 영어 말문을 열어 주는 단어 연결법을 적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원스쿨의 차별화된 학습법을 통해 다양한 영어 문장을 익힐 수 있습니다.

* 만화로 생긴 흥미를 영어 실력으로 만들어 주는 학습 과정
만화 속 이야기가 학습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나도록 구성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만화 속 대사를 영어로 표현해 보는 말하기 시간, 영어에 대한 배경지식을 심어 주는 이야기 시간 등 만화를 통해 얻은 영어에 대한 흥미를 탄탄한 영어 실력으로 만들 수 있는 학습 과정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진짜 이시원 선생님의 강의와 원어민 발음 듣기 제공
책 곳곳에 들어 있는 QR코드를 통해 시원스쿨 이시원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와 원어민 영어 발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눈으로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진짜 이시원 선생님이 진행하는 영어 수업을 보고, 필수 영어 단어를 원어민 발음으로 들으면 한층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게 영어 단어와 친해질 수 있는 딱지 수록
영어 단어는 많이 보고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이들이 영어를 한층 더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귀여운 캐릭터와 영어 단어가 들어 있는 딱지를 특별 부록으로 담았습니다. 딱지를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다가 심심할 때마다 꺼내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와 친해질 수 있습니다.

* 초판 한정 〈비법 영어단어〉 노트도 놓치지 마세요!







◎ 1권 줄거리

영어 실력 특급, 개성도 특급인 비밀 요원,
시원 쌤과 위기에 처한 405 유니버스를 구하라!
꿈에서는 몰려드는 어린이들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만, 현실에서는 휑하기만 한 예스어학원의 시원 쌤.
꾸준한 홍보로 어느 날 갑자기 세 명이나 되는 신입생이 나타난다. 이 아이들에게 ‘영어, 억지로 외우지 말자!’는 자신의 모토에 따라 재미있게 영어를 가르칠 생각에 설렌다.
그런데 설렘도 잠깐, 갑자기 칠판에 써 놓은 영어 단어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깜짝 놀라지만, 시원 쌤은 침착하게 자신의 시계에 대고 “슬라고, 출동!”을 외치는데….
과연 시원 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시원 쌤의 외침에 따라 나타난 녹색 괴물의 정체는?

구매가격 : 9,600 원

카메라를 보세요

도서정보 : 커트 보니것 | 2020-02-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제는 멸종해버린, 보니것식 SF 클래식
선악과를 탐한 현대인의 ‘웃픈’ 파멸

이 모양 이 꼴인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방식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법!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시니컬한 유머 작가”

커트 보니것 미발표 단편집

“진정한 예술작품.
이 책에 실린 열네 편의 단편 모두
‘클래식 보니것’이라 할 만하다.” 허핑턴 포스트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휴머니스트이자 유머리스트, 하루키가 존경하고 박찬욱이 사랑한 작가 커트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소설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카메라를 보세요』는 보니것의 미발표 초기 단편소설 중에서도 보니것의 시그니처인 SF 작품들 위주로 선별해 묶었다. 비현실적 배경과 설정 속에서 보니것식 현실비판은 더욱 빛을 발하고,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직접적인 문체와 재기발랄하면서도 오 헨리를 연상시키는 반전 결말이 돋보인다.

헤밍웨이는 <에스콰이어>에 글을 실었고,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윌리엄 포크너는 <콜리어스>에, 존 스타인벡은 <우먼스 홈 컴패니언>에 글을 실었으며, 커트 보니것도 마찬가지였다. 매해 불어나는 가족 때문에 그는 잡지사에 단편을 기고해 돈을 벌어야 했다. 『카메라를 보세요』에는 “이미 자신의 날개를 본” 젊은 보니것의 독보적인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보니것은 자신의 소설 창작 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되 그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것.” 『카메라를 보세요』를 펼쳐 든 독자들은 모두, 커트 보니것의 여느 작품들이 그렇듯, 여기에 실린 열네 편의 단편들이 이 원칙에 완전히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멸종해버린, 보니것식 SF의 시작

이 작품들은 커트가 언어로 빚은 환등기이고, 인간 행동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와 신비를 가차없이 뱉어내는 비밀돌이이지만, 유머와 용서가 감돌고 있다. _14쪽, 「서문」 중에서

커트 보니것을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반전反戰 소설가, SF 작가, 블랙유머의 대가, 휴머니스트, 반反 문화의 대변인…… 이중에서도 커트 보니것을 가장 커트 보니것답게 만들어주었던 것, 보니것을 그 시대의 독보적인 ‘1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은 그의 독창적인 SF 상상력이었다. 그의 장편 대표작 『제5도살장』 『고양이 요람』 등에서도 SF 요소는 빠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보세요』에는 커트 보니것만의 기발하고 인간미 넘치는 SF 단편들이 수록되었다.

「비밀돌이」는 외로운 사람에게 대화와 조언을 제공하는 마법 같은 기계에 대한 이야기다. 「작고 착한 사람들」은 페이퍼나이프 모양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방문한 소인국 외계인 한 무리가 겪은 일들을 다룬다. 「에드 루비 키 클럽」에는 사람의 몸속에 주입하면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게 되는 “진실 혈청”이 등장한다. 「거울의 방」에서는 그 당시 가장 트렌디한 정신과학의 한 분야였던 ‘최면 치료’를 마법적인 분위기로 풀어냈다.

보니것은 이런 말을 했다. “과학은 실제로 작동하는 마법이다.” 보니것의 SF에는 과학적 상상력과 더불어 마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등장인물들은 기존에 없던 첨단 과학기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 그동안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끼고, 말하지 못하던 것을 말하게 된다. 그 과정에는 분명 과학이 작동하지만 등장인물 내면의 흐름과 결말은 마법적이고 극적이며 휴머니즘과 유머가 풍긴다.

“이 사람은 당신과 나,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몇 안 되는 생명체 중 하나야.
우리를 증오, 조롱, 질투, 음란한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 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친구, 편집증 환자란 말입니다. 이 모양 이 꼴인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박식한 방식으로 미친 사람을 말해요. 편집증 환자는 거대한 비밀 음모가 자신을 곧 파괴할 거라고 믿죠." _337쪽, 「카메라를 보세요」 중에서

「비밀돌이」의 인물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솔직한’ 조언이라는 명목하에 듣는 이의 가장 잔인하고 나쁜 속내를 들춰내는 기계 ‘비밀돌이’ 때문에 그동안 알뜰하고 소소하게 이뤄온 인생을 부정하게 된다. 「지붕에서 소리쳐요」에서는 작가 자신과 주변 이웃의 위선과 거짓을 가감없이 폭로한 책 때문에 파경 위기를 맞은 부부가 등장한다. 「셀마를 위한 노래」는 그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던 학생들의 IQ가 누설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우주의 왕과 여왕」에는 시대의 불황과 실업과 가난에서 유리된 채 안일한 일상을 이어가던 상류층 커플이 난생처음으로 세상의 비극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카메라를 보세요』의 단편 속 등장인물들은 뜻밖의 사건으로, 혹은 과학의 발전을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진실을 맞닥뜨리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불편한 속내를 꺼내 열게 된다. 어떤 진실은 드러나고 말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진실은 비극과 파멸을 초래하기도 한다. 『카메라를 보세요』에 수록된 단편들에서는 진실의 선악과를 탐한 현대인의 ‘웃픈’ 희비극이 절묘하게 그려지며, 이 모양 이 꼴인 세상에서 가장 지적이고 박식한 방식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보니것만의 비법을 알려준다. ‘문학 역사상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은 비극과 희극을 가장 잘 결합해낸 작가’다운 커트 보니것의 면모가 돋보이는 책이다.


책 속에서

글쓰기에 대한 커트의 야심의 고백에 가장 가까웠던 것은 자신의 소설 창작 규칙 중 하나를 내게 읊어주었을 때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시간을 사용하되 그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 것.” _12쪽, 「서문」 중에서

글 쓸 거리가 많다는 것은 신도 알지. 요즘은 분명히 예전 그 어느 때보다 많아. 자네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나도 의무를 다하지 않고, 모두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 _18쪽, 「1951년 밀러 해리스에게 보 내는 커트 보니것의 편지」 중에서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심지어 음식보다 더? 이야기할 사람!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사람! 바로 그거지.” _25쪽, 「비밀돌이」 중에서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마법이지.” _28쪽, 「비밀돌이」 중에서

“어쿠스티-젬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빈말로 칭찬하는 사람, 교묘히 남을 속이는 사람뿐이에요. 당신의 업적으로 매일 다른 누군가의 월급이 엄청나게 올라요. 정신 차려요! 당신은 이 연구소에서 일하는 그 누구보다 일을 열 배나 잘했어요.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_29쪽, 「비밀돌이」 중에서

퍼즈는 그곳에서 팔 년을 일했다.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괴짜였고, 같이 있었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무기력하고, 냉소적이고, 심각하게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_46쪽, 「푸바」 중에서

퍼즈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의 보라색 어둠 속에서 그는 자신이 인생의 가장 잔인한 진실이라고 믿는 것?희생이란 정말로 희생이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어머니를 돌보면서 그는 잃은 것이 아주 많았다. _56쪽, 「푸바」 중에서

“불행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니 불행한 게 그렇게 좋은가보죠.” _60쪽, 「푸바」 중에서

“우리가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인가요? 우리 문제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 결혼생활에 놓인 압박을 잠시라도 생각해보세요!” _76쪽, 「지붕에서 소리쳐요」 중에서

“잘나가는 친구 있어?” “아뇨.” “그럼 이 동네는 나쁜 동네야.” _108쪽, 「에드 루비 키 클럽」 중에서

“나도 그렇게 말했지."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정신병원에 데려갔어. 나한테도 거창한 이야기가 있었어. 사람들이 내게 저지른 일, 사람들이 짜고 나에게 저지르려고 했던 일. 나는 그 이야기를 믿었어. 엘리엇 씨, 나도 믿었다고. 엘리엇 씨, 그들이 날 정신병원에서 언제 풀어주었는지 알아? 아내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내보내준 게 언제였는지 알아?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내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였어.” _137쪽, 「에드 루비 키 클럽」 중에서

“아픈 것은 그들의 미래였어요.” _204쪽, 「거울의 방」 중에서

그는 지적이고 건강했지만, 지나치게 착해서 가장으로 군림하거나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 마들렌이 언젠가 묘사한 바에 의하면, 그는 주류 인생의 경계에 서서 웃으면서 “괜찮습니다” “먼저 가시죠” “사양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_218쪽, 「작고 착한 사람들」 중에서

동료란, 내가 그를 특별히 좋아하는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다. _259쪽, 「작은 물방울」 중에서

“복수는 사소한 거죠.” _276쪽, 「작은 물방울」 중에서

“어떤 진실은 말하면 안 돼, 계속 살고 싶다면.” _296쪽, 「개미 화석」 중에서

“당신은 증오의 붉은 아지랑이를 통해 상황을 바라보고 있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살인 카운슬러의 침착하고 현명한 서비스입니다.” _331쪽, 「카메라를 보세요」 중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사람은 취객, 떠돌이, 시인밖에 없죠.” _347쪽, 「우주의 왕과 여왕」 중에서

“우리 아버지는 내 미래를 위해 일하다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도 같은 이유로 죽어가고 있고요. 그리고 지금 나는 대학 학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접시닦이로도 취직을 못하고 있어요!” _356쪽, 「우주의 왕과 여왕」 중에서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카메라를 보세요』에 실린 열네 편의 단편은 전부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잘 다듬어진 이 작품들은 무자비할 정도로 재미있으며, 하나도 빠짐없이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결말에 도달한다. _데이브 에거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전후 사회를 날카롭게 찔러대던?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파괴적으로? 젊은 작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적이고 웃기고 담백한, 이제는 거의 멸종해버린 보니것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_보스턴 글로브

어느 완벽한 세상에서라면, 사람들이 한밤중에 줄을 서서 기다릴 법한 책. _뉴욕

보니것이 비상하기 몇 년 전부터, 이 젊은 작가는 자신의 날개를 분명히 보았다. 이 초기작들이 그 증거이다. _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21세기의 가장 혁신적이고 인상적인 작품을 쓸 작가로서의 재능이 엿보인다. _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진정한 예술작품. 이 책에 실린 열네 편의 단편 모두 ‘클래식 보니것’이라 할 만하다. _허핑턴 포스트

구매가격 : 11,000 원

광장의 법칙

도서정보 : 한병진 | 2020-02-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사회과학 서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많은 정치학 관련 서적은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고, 주로 구조적 원인을 언급하면서 몇 가지 교훈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분석은 구체적 전략과 전술에 대한 지침을 도출하지 못한 채 그저 ‘잘하자’ 하는 당위적 주장에 머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와 사건을 미시적으로 접근한다. 그를 바탕으로 승리의 전략과 전술을 눈앞에 펼치듯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다양한 사회과학 이론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비유로 설명해낸다는 것이다. 카카오톡의 독점에서 손실회피와 현상유지편향을 살피고, IS에 가담한 김군의 사례로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신념의 집단극화를 설명한다. 친구 사이가 ‘썸’을 거쳐 ‘연인’으로 발전하는 ‘양인심사양인지’의 과정을 통해 ‘공동지식’의 탄생을 설명하고, 미인대회의 우승자 맞히기로 조정게임의 원리를 이해시킨다. 충분한 학술적 기반 위에 서 있으면서도 친숙하고 익숙한 언어로 펼쳐지는 이 책에서 독자들은 사회과학서의 새로운 글쓰기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광장은 독재의 극장인가, 민주주의의 용광로인가?

광장은 민주주의자에게 유용할 뿐 아니라 독재자에게도 유용하다. 양날의 칼이다. 1960년 4월 나라 전역, 1980년 5월 광주, 1986년 6월 종로, 2002년 시청, 그리고 2016년 촛불까지. 광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장이었다. 승리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견지한 핵심 대중의 선도적 노력은 연쇄반응을 일으켜 수많은 시민을 광장으로 불러 모았고, 마침내 승리를 경험했다. 이들의 수많은 인내와 희생 끝에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걸어올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에게 광장은 서로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개인은 두렵고 힘이 없지만, 집단은 강하고 용감하다. 자신과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위험한 일을 당할 가능성은 광장에 모인 사람의 수가 커질수록 줄어든다. n분의 1 법칙이다. 위험 부담이 줄면 참여자가 늘고, 참여자가 늘면 승산이 커진다. 높아진 승산은 다른 이의 참여를 유인한다. 이렇게 광장의 시민은 상호 의존적으로 연대한다.

동시에 광장은 지배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 경우 광장은 특유의 공개성 탓에 본심을 드러낼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 된다. 이집트의 카이로 타히르 광장,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 앞 광장, 크레믈린 궁전 앞의 붉은광장 등은 모두 독재자의 위용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그 광장에서는 독재자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리고 수많은 참가자가 독재자를 한목소리로 찬양했다. 독재자가 지배하게 되면 광장은 극장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노출되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다. 광장의 시민들은 관객인 동시에 배우가 된다. 독재자에게 환호하는 이웃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에 그보다 더 크게 환호한다. 이렇게 광장은 독재자에 대한 열광으로 끓어오른다.

이기는 시민을 위한 광장 사용 설명서

체면이고 염치고 없다. 우겨라! _ 정치는 사실을 두고 다투는 과학이 아니다. 정치인은 성과를 내는 것보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잘되면 내 덕이고, 안 되면 남 탓이다. 조롱을 당할지라도 계속 우기는 것이 유리하다. 선제적으로 과장된 언사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전선을 선점해야 한다.

핵심 대중을 마련하라 _ 정치에서 싸움은 세가 결정한다. 세는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이끌 핵심 대중이 필요하다. 핵심 대중은 전위조직이다. 이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해 참여자의 수가 티핑포인트를 지나면 승리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다. 핵심 대중은 혁명의 마차를 끄는 말이자, 화약통의 심지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미친 자들이다.

가치를 공유하라 _ 핵심 대중은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 핵심 대중은 능력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지도자에게 감동한다. 가치는 열정의 원천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체성을 이기지 못한다. 가치를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에만 호소해서는 시민들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한다. 지지자가 상당히 모인 후에 참여하는 추종자들은 교환 관계에 가깝다. 반면 지도자와 핵심 대중은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 관계에 가깝다.

급진주의자를 피하라 _ 광장에 나가보면 종종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현실성이 없는 급진적인 구호를 외친다. 이들의 강한 정체성은 분열과 대립을 낳는다. 심지어 급진주의자는 자신을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보다 온건파를 더 저주한다. 이들이 혁명의 문턱값을 완전히 높여버리면 광장에는 위험이 넘쳐난다. 편협한 정체성에 집착하고 타협을 거부하는 급진주의로 빠지는 것을 피해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상대를 끌어들여라 _ 골리앗은 다윗에서 덤비라고 소리쳤지만 다윗은 거부했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골리앗과 근접전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 다윗은 원거리 전투(돌팔매질)로 승리를 거두었다. 강자가 규정한 싸움터로 나아가서는 이길 수 없다. 기득권을 가진 세력은 지위, 명성, 돈을 기준으로 싸움을 하라고 한다. 판에 들어와서 바꾸라고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능력을 보여주어도 돌아오는 것은 실패와 환멸뿐이다.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퍼지는 장소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더 큰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소통의 방법을 찾아라 _ 벨라루스의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칠레 운전자들은 출근길에 천천히 차를 몰았고, 보행자들은 천천히 걸었다. 홍콩 시위대는 비도 오지 않은 날에 노란 우산을 들고 나왔다. 정치에서 공개성은 승산에 대한 기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손목이나 가슴에 단 다양한 상징물은 자신의 의도, 신념, 태도, 믿음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다. 이런 도구와 행동을 통한 관찰 가능성은 소통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선택을 다수의 선택에 맞추어 조정하려면 다수의 태도와 믿음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야 한다. 소통 행위로 공동지식이 만들어지고 세가 모인다. 광장정치를 시작하려는 이들은 기발한 소통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광장정치의 키워드 공동지식의 역설

정치를 이루어내는 것은 결국 다수가 지닌 공동지식이다. 개인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음을 상대도 알고 있고, 상대도 알고 있음을 나 역시 알고 있어야 한다. 누가 이길 것이라는 다수의 공통된 믿음을 다수가 서로 알고 있을 때 권력투쟁의 추는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렇게 다수의 선택이 일치할 수 있도록 유인하는 믿음이 바로 공동지식이다. 공동지식은 공유, 전파되어 상승의 연쇄를 불러온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주어진 영토 내에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한 조직이다. 이 사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시민의 의무는 폭력을 독점한 국가를 순치하는 것이다. 감시와 견제와 법에 따른 제어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공동지식이 있다. 공동지식에 기초한 시민의 감시와 저항이 없다면 국가는 나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때 국가를 직접 관리하는 엘리트의 선의가 아니라 민주적 의지를 지닌 시민의 집단적 힘만이 믿을 만한 해결책이다.

다시, 공부가 희망이다

공자는 평생 중원을 떠돌며 활동했으나 고작 수십의 제자만을 남겼다. 하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 그 제자들이 이룩한 세상의 변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 공자의 제자들은 핵심 대중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사람이 도를 넓히지, 도가 사람을 넓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데올로기에 빠져 세상을 단순화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라는 말이다. 실제로 공자는 ‘인仁이란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즉 경직된 행동 원칙이 아니라 ‘선함에 대한 분별력 있는 감수성’으로 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대신 필요한 것은 공부이다. 『논어』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로 시작한다. 2000년을 이어온 동양의 위대한 고전 첫 마디가 공부하고 익히라는 말인 것이다. 공자의 이 말이 무거운 이유는, 수십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박살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치나 주의 주장으로 세상을 모두 재단해버리는 이야기는 우리를 흥분시키고 빠져들게 한다. 공자는 세상에 쉬운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는 자세만이 인을 실천하는 방법임을 이야기한 것이다. 학學은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민주적 방법만이 사회를 커다란 과오로부터 벗어나게 하듯 “학이시습지”만이 우리를 커다란 과오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신이 진리와 정의를 독점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어버리고, 모든 선의는 타락한다. 공자의 가르침은 이데올로기를 피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쉼 없이 공부하라는 뜻이다.

구매가격 : 11,900 원

아무튼, 순정만화

도서정보 : 이마루 | 2020-02-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그때의 나를 만든
칸으로 지어진 세계, 순정만화

아무튼 시리즈 스물일곱 번째는 순정만화 이야기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아무튼 시리즈에 걸맞게,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정적 순간에조차 순정만화 속 대사가 자동 재생되는 저자는 지금까지 이십 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오고 있는 순정만화에 대한 애정을 이 책에 쏟아냈다.

지방 소도시, 여중-여고라는 공간에서 성장한 저자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계, 더 넓고 전혀 다른 세계를 순정만화 속에서 접하고 점점 더 그 세계로 빠져들었다. 마침 「나나」, 「윙크」, 「밍크」 같은 순정만화잡지들이 속속 창간되고 동네 곳곳에 책 대여점이 생긴 시절이었다.

저자는 유시진 작가의 『쿨핫』은 만화 속 대사 한두 마디를 외울 정도가 아니라 이 만화가 자신의 대인관계와 세계관을 결정 지었다고 말한다. 또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 신일숙의 『에시리쟈르』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배웠다고도 말한다.
작품만이 아니라 칸칸이 세계를 지어 이야기를 전한 작가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세계였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순정만화 작가들은 독립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프로페셔널한 여성으로서, 확고한 취향을 가진 흥미로운 인간으로서 내 안에 존재했다.”

권교정, 김혜린, 박은아, 신일숙, 천계영, 한승원…, 『불의 검』, 『아르미안의 네 딸들』, 『오디션』, 『다정다감』, 『내 남자친구 이야기』…, 긍하와 강이, 하치와 나나, 부옥과 명자, 루다와 동경, 소서노와 카라…. ‘순정만화의 시대’를 통과한 이들이라면 저자가 소환한 작가들, 작품들, 주인공들 이름만으로도 그때 그 마음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반짝이던 세계가 아직 나에게 남아 존재한다는 것

순정만화 속 세계를 한껏 돌아다니던 저자는 이제 책장 한쪽을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우리지만 결혼, 할 수 있을까?』, 『결혼, 안 해도 좋아』 같은 만화로 채운 30대가 되었다. 그사이 그 많았던 대여점도, 만화잡지도 그리고 몇몇 작가들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이 책은 반짝이던 한 시절을 추억하며 연발하는 감탄사나 그 세계를 빚은 작가들에게 보내는 헌사가 아니다. 저자의 순정만화 사랑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의 폭도 깊이도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지금까지도, 또 그만큼 변한 세상에서도 순정만화를 가득 채운 그 어떤 마음들이 자신에게 조각조각 남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성이 만들고 여성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황홀하게 넘쳤던 ‘순정만화의 시대’, 저자는 그런 시간을 관통해왔음이, 그 이야기의 조각들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음이 지금까지도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구매가격 : 7,700 원

듣는 법, 말하는 법

도서정보 : 모티머 J. 애들러 | 2020-02-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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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먼저 일방통행으로서의 말하기와 듣기, 양방통행으로서의 말하기와 듣기를 구분하면서 독자에게 각각의 특징과 방법을 안내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다른 생각을 가지도록 설득하고 가르치는 말하기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설득하는 기술의 대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살펴보게 되지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는 현대의 우리도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탁월한 기술로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전한다 해도 듣는 사람이 그 사람의 정신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제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자의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법부터 듣고 필기하는 법까지 배우게 됩니다. 일방통행으로서의 말하고 듣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 양방통행, 즉 좋은 대화의 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겁니다. 저자는 느슨한 수다부터 비교적 무거운 학술 논쟁이나 정치 토론까지, 모든 종류의 대화 나누는 법을 소개합니다. 이러한 대화에도 앞서 배운 듣는 법과 말하는 법이 적용됩니다. 여기에 대화 나누는 데 필요한 고생을 감내하려는 용기, 감정을 조절하는 자제력, 다른 사람에게 마땅한 발언권을 주는 공정이 더해지면 비로소 좋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듣는 법, 말하는 법』을 읽고 나면 우리는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함을,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대화로 타인과 정신적 교류를 한다는 건 새로운 배움의 장으로 나아가는 일이란 것을요. 끊이지 않는 대화는 곧 끊이지 않는 배움이란 것을요. 배움을 위해, 성장을 위해, 앎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무엇보다 유익과 유쾌함을 위해 말하고 듣는, 듣고 말하는 대화의 장으로 진입하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구매가격 : 12,600 원

나의 소울넘버

도서정보 : 한민경 | 2020-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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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넘버를 통해 나와 상대방의 시점을 이해하면 앞으로 어떻게 상대와 마주할지를 가늠할 수 있다. 힘든 인간관계에서 자꾸 회피하지 않고 타인과 마주할 기회를 계속 만들다보면,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라 무전무쟁,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아도 된다.”

소울넘버가 뭐죠?

분기별로 한 번씩은 꼭 점집에 가는 사람도,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꾸준히 종교 활동을 해온 사람도, 띠별 오늘의 운세를 매일 보는 사람도,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도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혈액형별 성격.
·내 별자리.
·나의 MBTI(성격유형검사) 유형.
·내 사주팔자.

이런 것들은 모두 불확실한 삶 속에서 어림짐작이나마 미래를 예측하고 희망을 품고 마음을 기대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체계들이다. 소울넘버 역시 그중 하나로, 그 기원을 따지자면 까마득한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유래한 상징수학은 후대에 전해 내려오면서 다양한 신비주의와 결합했고, 그중 한 갈래에 타로수비학이 있다. 소울넘버는 타로수비학에서 ‘나’를 알아보는 숫자다. 모든 사람은 타로 메이저카드 1번부터 9번 중 하나를 자신의 소울넘버로 갖는다.

흔히 소울넘버는 번호별 성격이나 캐릭터로 이해되어지는데,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각 번호가 갖는 고유한 특성이 개인에게 나타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울넘버는 개인에게 주어진 운명이나 타고난 기질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상황이나 인물이 없다면 소울넘버는 어떠한 효능도 갖지 않는 신비주의 상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울넘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면, 삶의 여러 순간에 유용하게 쓰일 자기만의 선택 기준을 세울 수 있다.

타로마스터 한민경의 상담 도구, 소울넘버

심리상담, 연애상담, 운세상담, 부부상담, 진로상담 등, 각종 상담이 유행하고 있다. 대개 상담은 무언가 자신에게 중요하거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결정을 앞둔 사람이 좀더 확신을 갖고자 시도해보는 궁여지책의 수단이다. 그 상담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상담 방식이 더 맞는지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담이건 상담 자체가 곧바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상담의 역할은 우리들 각자가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나의 소울넘버』의 저자 한민경은 30년 동안 타로카드로 인생 상담을 해온 타로마스터다. 그녀는 타로가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훨씬 전부터 타로카드에 매혹되어, 타로와 수비학을 공부하고 상담에 적용해왔다. 16세기에 놀이도구로 만들어진 타로카드가 점술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부터다. 타로카드에는 다양한 인물, 배경, 상황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고, 보통의 타로카드 점은 그림들에 담긴 상징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런 상징적 이미지들이 타로카드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타로카드에는 특정 숫자가 적혀 있으며, 타로카드의 이미지들 속에도 다양한 숫자 상징이 내포되어 있다. 한민경의 타로수비학은 타로카드의 이미지 해석과 숫자상징 해석을 통합하여, 누구든 곧바로 자신의 삶에 적용해볼 수 있도록 쉽게 체계화한 것이다. 하지만 한민경 타로수비학의 특별한 점은 따로 있다. 타로는 서양에서 만들어진 만큼 그 해석 또한 서구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러다보니 유교의 영향과 민족성이 강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데 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타로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집단성에 뿌리를 둔 동양의 역학은 개성과 개인성을 중요시하게 된 현대인의 질문에 답을 해주기에 한계가 있다.” 이에 저자는 타로카드를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독자적 상담 기법을 개발했다.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고 고민들도 다 다르다면,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해결 방식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한민경의 『나의 소울넘버』는 개인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면서, 우리가 더 능동적으로 자기 삶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소울넘버와 타로의 4원소 카드를 이해함으로써 각자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일과 역할, 인간관계, 자기관리, 자원과 역량의 활용에 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좀더 나다운 나로 살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된다.

“우리는 각자 따로 떨어져 빛나는 별들처럼 혼자이지만, 우리들 사이에 작용하는 신비로운 질서와 힘이 없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밤하늘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이 광대한 타로은하계를 여행하며 자신만의 별을 찾으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나의 소울넘버』는 그 길 위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안내서다.”

구매가격 : 10,500 원

판타스틱 과학클럽

도서정보 : 최지범 | 2019-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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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일상의 간극을 좁히는 튼튼한 지식 사다리
저자는 현대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과학 분야는 물론, 과학지식 자체의 속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주제들을 참신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각 과학 주제를 배경지식으로 하는 짧은 이야기들을 제시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상상력을 북돋우는 것이다. 과학소설 「기차가 하루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기로 모두 약속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과학에서 약속(관습)이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과학은 늘 새롭고 혁명적인 지식을 추구하지만, 새로운 지식 또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관습적 용어로 표현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과거의 오류를 곧바로 바로잡기 어렵다. 가령, 과거에는 양전하가 움직인다고 생각해서 전기가 흐르는 방향을 정했는데, 알고 보니 음전하가 움직였다. 그런데 이를 바로잡으려면 바꿔야 할 지식체계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과학은 오류 부분을 규칙으로 추가하는 쉬운 해결책을 택했다. 즉, ‘전자의 흐름과 전류의 방향은 반대’라는 규칙을 만든 것이다.

추상적인 수학 추론을 물리적 현실세계에 그대로 적용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기막힌 이야기인 「완벽한 논리」, 자연계에서 예외 없이 지켜지는 에너지보존법칙이 인간의 감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의 인간사회를 묘사한 「알짜 = 0」, 양자역학적으로 존재하는 다람쥐 구용이의 신출귀몰한 비밀을 다룬 「다람쥐 미스터리」,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방식을 상상해본 「당위는 가능을 의미한다」 같은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로운 과학소설이다.

하지만 더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런 상상을 통해 드러나는 과학지식의 특수성이다. 과학의 결실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여러 기술이 되지만, 과학지식 자체는 결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현대인은 과학의 혜택을 누리지만 점점 더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가는 과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저자는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한다. 질문을 제시하고, 의문점을 스토리텔링으로 구체화한 다음, 이야기 속에 담긴 과학을 차근차근 해설해준다. 저자의 설명을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려운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친절한데 운동은 빡세게 시키는 트레이너 같다. 과학을 알고 싶다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익혀야 하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려면 과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판타스틱 과학클럽』이 바로 그러한 훈련을 도와주는 책이다.

“판타스틱 과학클럽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수인 과학근육을 키워주는 지식 트레이닝 클럽입니다. 저는 과학지식의 통역관으로서, 함께 상상하고 배우며 즐기는 여러분의 지식 트레이너가 되겠습니다.”

구매가격 : 9,800 원

(북클럽 『자본』 시리즈-08) 자본의 꿈 기계의 꿈

도서정보 : 고병권 | 2020-01-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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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인간의 노고를 줄여주는가
― 인간재료가 된 노동자, 기계 도입 이후 벌어진 일들

19세기 공장에서 기계제가 매뉴팩처를 대체했다는 것은 ‘기계’가 이전의 ‘작업하는 인간’을 대체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기계의 출현은 그 기계가 인간의 도구, 즉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한 메커니즘의 도구 혹은 기계적 도구로서 나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인간의 도구’였을 때는 인간의 뜻대로 인간의 신체 리듬에 맞추어 움직였다. 그러나 ‘기계의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들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움직이는 방식과 속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기계의 일부가 되는 순간 과거에 인간이 쓰던 도구들은 인간적 한계를 금세 벗어난다. 그리하여 ‘작업기계’가 ‘작업인간’을 대체하고, 마누스(manus) 즉 ‘인간의 손으로’ 하는 작업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공장에 기계제 생산이 본격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여러 기계를 한자리에 모아두고 작업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분공정을 수행하는 부분기계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기계‘시스템’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계제는 생산공정에서 노동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물리학과 화학 등의 법칙을 이용하지만 이 기술적 법칙은 인간과는 무관하다. 생산력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동력을 계산하고 마찰을 계산하고 속도를 계산하지만, 이때 고려되는 것은 기계적 한계이지 인간적 한계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기계적 한계를 고려할 뿐 인간적 한계는 실상 고려하지 않는 기계제 대공업을 지배적 생산형태로 삼으면서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기계 도입은 사회 전반에 어떤 변화를 초래했는가. 마르크스는 세 가지 현상을 지적한다.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노동인구의 확대’이다. 언뜻 생각하면 기계제의 발달은 노동인구를 감소시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수를 오히려 늘렸다는 것이다. “기계가 근육의 힘을 불필요하게” 만든 탓에 여성과 아동이 새로운 노동인구로 유입되었고, 급기야 가족구성원 전체가 노동력으로 자본주의에 제공되었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더 많이 얻게 된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계 도입은 ‘노동일 연장’을 초래했다. 마르크스는 기계 도입과 함께 노동일도 늘어났다고 말한다. 기계가 도입되면 노동생산력이 크게 증대해 노동일이 줄어들어도 될 것 같지만 자본주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기계는 “모든 자연적 한계를 초월해 노동일을 연장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된다. 오히려 자본가에게 노동일을 연장할 만한 동기와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기계는 노동일을 연장해도 거기에 대해 따지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인간처럼 생물학적 한계도 갖고 있지 않아 영구기관같이 멈추지 않고 작동한다. 일단 작업이 시작되면 기계시스템의 작동은 ‘노동자’로부터 독립해 있는 것이다. 이제는 기계가 장인이고 인간은 조수가 되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지위가 부차화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그 전처럼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저항의 효과도 크지 않게 된다. 노동일은 결국 기계에 의해 더욱더 연장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1833년 영국의 표준노동일 제정으로 노동일 연장은 불가능해졌다. 기계 도입에 맞춰 노동일 연장의 필요성은 이전보다도 커졌는데 노동일이 법적 규제를 받게 되니, 자본으로서는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노동일 단축을 만회하려는 욕구와 필요가 생길 것이다. 이에 따라 기계제 생산에서는 기계의 속도를 높이는 방식과 노동자들을 기계에 맞추어 훈련하는 방식으로 노동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처럼 기계의 도입과 함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인구의 확장’, ‘노동일의 연장’, ‘노동강도의 강화’가 나타났다. 한마디로, ‘노동’은 이전의 매뉴팩처보다 훨씬 늘어났다(당연히 자본가의 ‘이윤’도 늘었다). 이것이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이다. 기계는 인간의 노고를 줄여주는가. 물론 기계가 인간의 노고를 줄여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본가는 이윤을 늘리기 위해 기계를 공장으로 들여온 것이며, 이런 목적에서 사용하면 기계는 인간노동을 더 많이 뽑아내는 수단으로 작동할 뿐이다.

이때 노동자는 가치생산의 주체라기보다 가치착취의 대상, 가치착취의 재료처럼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자본』 제13장에서 마르크스는 기계 도입으로 인한 노동인구의 확장을 아예 ‘인간이라는 착취재료의 확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고 재료라는 거죠. - 「2장 기계가 도입되고 나서 벌어진 일들」

기계노동자와 절망 공장
― 기계제 시대 ‘노동자 착취’의 실태를 보고하다

저자 고병권은 본문에서 자본주의가 기계를 도입하는 목적을 자주 환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목적은 ‘이윤’이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기계’를 도입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이윤’에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상품을 생산하는 목적이 사람들의 편리를 위함이 아니듯 자본주의가 기계를 도입하는 목적 역시 노동자들의 환경 개선을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함이고, 그러므로 이윤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노동을 크게 절약해주는 획기적인 기계라 해도 자본주의는 그 기계를 생산에 투입하지 않는다. 차라리 인간노동을 계속해서 ‘탕진’하는 편을 택한다. 결국 기계의 도입은 노동의 과정을 변형시키고 노동자의 신체를 뒤틀리게 한다. 결국 기계제하의 공장은 이전의 매뉴팩처 작업장보다 노동자를 더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자본』 제13장에서 마르크스는, 이전에 『자본』 제8장에서 ‘노동일’의 문제에 관해 고발했을 때처럼 기계제하의 노동자들이 놓인 ‘처참한 상황’을 보고한다.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노동자의 존재양태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 단어를 계속 바꾸어 쓰고 있는데, 이번 장에서 새로 쓴 단어는 ‘기계노동자’라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기계시스템의 편제에서 한 부분으로 전락한 노동자, 즉 ‘의식을 가진 부분기계’가 된 노동자를 가리키기 위해 쓴 이 단어에 주목한 것이다. 이 말은 단순히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계를 다룰 때조차 ‘기계의 부분으로(즉 부분기계로) 존재하는 노동자’라는 의미다.

기계제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인간 노동자의 숙련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어떤 의미에서 기계제 공장의 노동자들은 모두가 기계의 조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말한다. “전에는 하나의 부분도구를 다루는 일이 평생 동안의 전문 분야였지만, 오늘날에는 하나의 부분기계에 봉사하는 것이 평생의 전문 분야가 된다.”고병권은 마르크스가 세심하게 단어를 골라 썼다는 걸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면서, 매뉴팩처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다룬다”(fuhren)라고 쓴 반면,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에 “봉사한다”(dienen)라고 썼다고 말한다. 즉 매뉴팩처에서는 노동자가 도구의 ‘지배자’였으나 공장에서는 기계시스템의 ‘하인’임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장을 병영과 감옥에 비유한다. 공장은 자본가의 전제정치가 펼쳐지는 공간으로서 노동자들이 노동과정과 관련해 조금만 의사결정에 관여하려 하면 ‘경영권 침해’라고 펄펄 뛴다. 또한 공장은 흡사 감옥처럼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생명의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박탈했다. 또한 기계제 도입 이후에는 대공장만이 아니라 기존의 가내공업 작업장의 노동자가 당하는 착취 역시 훨씬 강하고 파렴치해진다. 여기에 이른바 “약탈적 기생충들”, 즉 대공장과 영세한 가내공업을 매개하며 중간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가로채는 이들까지 개입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노동자들의 건강에 꼭 필요한 시설도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로 구비해놓지 않고, 그래서 채광과 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상자처럼 좁은 공간에서 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자본가는 노동환경 개선에 투입되는 모든 것을 비용으로 계산한다. 시간, 공간, 햇빛, 공기 등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공장시스템이야말로 생산수단 절약의 “온상 같다”라고 표현했으며, 생산수단의 절약이 “자본가의 손”에 넘어가면 “노동자의 생명조건인 공간과 공기, 햇빛, 생명에 대한 체계적 약탈, 그리고 생명이나 건강을 위협하는 생산환경에서 노동자를 지킬 수 있는 보호수단에 대한 체계적 약탈로 나타난다”라고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공장법을 통한 사회적 규제가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된다.

공장법에는 보건 조항들이 있습니다. 청결과 환기, 안전에 필요한 소소한 규정들이지요. 그러나 자본가들은 비용이 조금이라도 들어간다면 “노동자들의 팔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극히 사소한 조치들에도 “아주 미친 듯이” 반대합니다. 작은 안전장구들만 갖추어도 인명 손실을 막을 수 있는데 법적 규제가 없으면 이런 걸 갖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것까지 법에 규정해야 하나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일할 때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 필요하고 환기가 되어야 하고 위험한 장치에 다가갈 때는 보호장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진 않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당연한 조치들이거든요. 그런데 자본가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 본문 174~175쪽, 「5장 ‘보이지 않는 실’-기계제 시대의 착취」

기계가 꾸는 꿈, 프롤레타리아와 기계의 연대
― 노동자와 기계의 ‘전쟁’을 넘어, 기계와 노동자가 함께 만드는 ‘미래’를 꿈꾸다

기계제 시대가 펼쳐지면서 기계에 밀려난 다수의 노동자들에 의해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이른바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무려 1만 명 넘는 병력이 투입되었다고 하니, 봉기의 규모와 강도가 얼마나 상당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결국 매우 폭력적인 진압이 이루어졌고 주모자들은 처형되었다. 이토록 격렬한 투쟁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인가.

기계제 생산에서는 생산성의 증대가 ‘고용 노동자 수의 감소’로 나타난다. 증기직기가 도입되자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앉았다(실제로 증기직기는 러다이트 운동의 가장 격렬한 공격 대상이었다). 마치 일자리를 놓고 기계와 노동자가 경쟁하는 꼴이 되었다. 한갓 노동수단이었던 어떤 것이 ‘기계’의 형태를 취하자마자 곧바로 노동자의 경쟁 상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기계가 한 대 들어오면 노동자는 수백 명이 쫓겨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추방을 면한 노동자들의 지위까지 위태로워지며 고용이 불안정해진다. 이들은 추방의 공포 때문에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공장 바깥에선 추방된 노동자들이 이른바 ‘노동력의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어 노동력의 가격도 하락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제값을 받지 못하더라도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기계제 대공업 이후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이러하다. 자본가는 기계를 들임으로써 유토피아를 맞이했을지 모르나 대다수 노동자에게 기계제는 확실히, “노동수단이 노동자를 때려죽”이는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의 시선이 이 디스토피아에서 멈추지 않았음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마르크스가 공장법의 보건 조항에서 잔혹한 ‘자본의 정신’을 읽었다면, 공장법의 교육 조항 등에서는 뭔가 다른 것을 읽어냈다는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처참한 실태와는 별개로 마르크스는 공장법의 교육 조항에서 “미래 교육의 싹” 같은 것을 보았다. 공장법의 교육 조항이란 어린 노동자의 교육, 즉 노동과 교육의 결합을 의무화한 조항을 가리킨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일과 학업을 병행하게 해야 한다는 이 조항은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다. 그러면서 마르크스는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 상황 속에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단서를 구한다.

마르크스가 찾아낸 미래의 싹은 무엇인가. 노동자는 기계제 대공업이 가져다준 비참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기계제라는 ‘새로운’ 시대이기에 가능한 어떤 희망을 찾아냈다. 공장법 규제 속의 의무교육 조항에서, 그리고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 시작된 가부장제 해체에서, 그리고 공장법의 일반화를 통한 자본축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열리게 될 것인가. 마르크스가 열어젖힌 그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고병권은 자본이 꾸는 꿈이 곧 ‘기계가 꾸는 꿈’은 아니라고, 기계를 내세워 자본가가 하려던 그 혁명을, 프롤레타리아가 얼마든지 아주 다른 혁명으로 뒤집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똑같은 존재에 대해 누군가는 유토피아를, 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떠올립니다. 『자본』(특히 I권)에서는 자본의 운동을 중심에 두고 서술하므로 자본가들이 기계 속에서 그리는 유토피아가 부각되지만, 마르크스는 거기 잠재된 자본의 디스토피아, 자본의 몰락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이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강력한 생산수단과 교류수단을 마법을 써서 불러냈던 현대 부르주아사회는, 주문을 외워 불러낸 저승의 힘을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된 마법사와 같다.” 그러고는 “생산력들의 반역의 역사” 즉 부르주아사회에 대한 기계들의 반역이 이미 시작된 것처럼 썼습니다. 내가 이번 책의 제목을 ‘자본의 꿈 기계의 꿈’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계괴물의 등장과 함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길몽과 악몽의 가능성이 함께 열리고 있으니까요.
- 「1장 기계괴물의 출현」

구매가격 : 9,730 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6

도서정보 : 김덕련, 서중석 | 2020-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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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주도한 전두환 일당, 쿠데타를 일으키다

광주항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려면 우선 전두환?신군부 세력의 10?26 이후 행적을 살펴야 한다.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박정희가 죽자 일찍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해야겠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그리고 곧 역사를 뒷걸음질 치게 한 12?12쿠데타를 일으킨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던 최규하 대통령, 정승화를 비롯한 군 상층부의 무능력, 미국의 방관, 일본의 지원 등으로 쿠데타는 결국 성공하고 만다. 전두환 일당은 쿠데타 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군권을 장악하게 됐다.

12?12쿠데타가 성공하자 보안사는 1980년 2월부터 전두환 권력을 만들기 위해 K-공작(K는 ‘King’의 약자)을 실시했다. K-공작은 언론을 조종, 통제, 회유한 작전이다. 보안사가 언론사 간부들을 접촉해 ‘현재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안 된다’, ‘3김은 안 된다. 사회 안정을 위해 군부가 집권해야 한다’ 등의 취지의 보도를 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했다. 곧 전두환?신군부가 한국을 이끌 세력, 안전 구축 세력으로 퍼뜨리게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전두환은 보안사에 이어 또 하나의 정보 기관을 손에 움켜쥐게 된다. 1980년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된 것이다.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이로써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에 오르게 된다.

드디어 찾아온 서울의 봄, 그러나…

서울의 봄은 1980년 2월 29일 대규모 사면 복권 이후, 더 넓게는 1980년 초 정치인들의 신년사가 나오고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될 무렵부터 5·17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었으니 한국 사회가 이제는 민주화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가 이 단어 속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신군부 세력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권이 단결하고 최규하 쪽과도 연결하면서 국회를 활용해 계엄을 해제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때에도 서로 각자 대권 행보를 하며 분열돼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결국 5?17쿠데타가 성공하자 김대중은 ‘소요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됐고, 김영삼 또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학생 운동 세력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각 대학에서는 학생회를 부활시켰고, 병영 집체 훈련 거부 등 민주화 활동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전두환?신군부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활동을 전개했다. 노동 쟁의도 크게 늘어나는 등 사회 각계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목소리가 분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북항쟁이다. 이 항쟁은 단순히 노조 집행부와 그 반대파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그간 박정희 유신 체제 아래에서 누적된 불만, 분노가 노조 문제를 계기로 분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80년 5월이 되자 대규모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게 된다.

신군부가 서울역 시위를 그대로 놔둔 이유는?

1980년 5월 13일 밤 학생회장단이 모여 토론한 끝에 교문을 박차고 거리에서 싸우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대로 각 대학 학생들은 가두시위를 벌인다. 14일에도 서울 시내 21개 대학에서 약 7만 명이, 지방 11개 대학에서 약 3만 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15일에는 최고 7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서울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신군부는 충분히 이 시위를 막을 수 있었는데도 왜 막지 않았을까? 광주에서처럼 시민들이 이 시위에 대거 호응하면 신군부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왜 막지 않았을까? 그 이전부터 진압군 투입 준비도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신군부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미리 용의주도하게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었다. ‘거리에 나오는 걸 방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하게끔 한다. 그런 것 등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을 전국에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국보위 같은 걸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다’, 이런 계획을 짜놓은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학생과 시민들이 큰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것에 대비해 군을 미리 움직여 서울과 전국 주요 지역에 배치해놓았다.

이러한 조치는 서울에서 학생 시위가 크게 확대되는 것에 대비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 학생 시위가 커지면서 상황이 혼란으로 들어갔다는 걸 빙자해 5월 17일 쿠데타 이후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측면이 있었다. ‘민주화를 완전히 짓밟는 쿠데타를 일으키면 굉장히 많은 학생, 시민이 봉기할 수 있다. 그런 봉기가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 그것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5?17쿠데타 이후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무런 시위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두환 일당은 그 병력의 상당 부분을 광주로 이동시켰다. 광주를 아주 단단히 진압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일본은 왜 5?17쿠데타를 도왔나?

10·26 이후 전두환 일당은 미국에는 절대적으로 보안을 취하면서도 일본에는 12·12쿠데타 계획을 알려주는 등 일본과 교감을 하고 있었다. 1979년 12월 이후 일본 측은 소련의 북한 남침 사주설을 포함해 북한의 남침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6번이나 전두환 일당에게 ‘자료’를 내주었다. 더군다나 일본 내각조사실은 북한이 5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남침하기로 결정했다며 날짜까지 콕 집어서 신군부에게 첩보를 건넸다. 그러나 이 첩보는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전두환?신군부는 이 남침설과 학생 시위를 구실 삼아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권력을 넘겨받게 되는 국보위가 설치된다. 이것이 곧 5?17쿠데타이다.

일본이 이토록 전두환?신군부를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후 70여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 우익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본은 박정희 정권을 대신할 새로운 정권으로 이 세력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전두환·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하는 데 일본의 지원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두환 일당은 왜 제2쿠데타 날짜를 5월 17일로 정했나?

1980년 5월 정치권은 국회 소집에 합의했고,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전두환·신군부를 규탄했다. 이에 전두환 일당은 10·26 직후 선포돼 반년 넘게 계속된 비상 계엄을 지속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두환 일당은 또 하나의 쿠데타를 계획하며 시국 수습 방안을 발표한다. 이 시국 수습 방안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비상 계엄 전국 확대였고, 둘째는 국회 해산, 셋째는 국가 보위 비상 기구 설치였다. 비상 계엄 전국 확대는 군인들이 전권을 가지고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것은 유신 헌법조차 짓밟으면서 강권, 무력으로 헌정을 중단시키겠다는 음모였다. 그와 함께 시국 수습 방안에는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 규제 방안 등도 들어 있었다.

전두환 일당은 김재규의 대법원 선고가 있는 날인 5월 20일 이후 이 시국 수습 방안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해외 순방 중인 최규하 대통령이 귀국하는 17일로 쿠데타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렇게 한 데에는 5월 20일 임시 국회가 소집되고, 5월 22일까지 계엄을 해제하지 않을 경우 대학생들이 다시 대규모 데모를 벌일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5월 17일 쿠데타를 감행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로써 전두환 일당은 1979년에 12·12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1980년에 다시 5·17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탈취했다.

광주항쟁, 왜 일어났나?

5월 18일 일요일 아침, 전남대 교문 앞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5월 14~16일 민주 성회 때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그다음 날 아침에 자동적으로 교문에 모여 시위를 하자.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오에 도청 광장에 모이자’고 약속한 대로 교문으로 온 학생들이 많았다. ‘계엄 해제’를 외치는 학생들을 향해 공수 부대원들은 진압봉 등으로 마구 구타했다. 정문 앞에서 해산당한 학생들은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시내로 나간 학생들은 수백 명 단위로 비상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학생 시위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고, 경찰력으로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공수 부대가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것이다. 게다가 서울 동국대에 있던 11공수여단까지 광주로 이동시켰고, 여기에 더해 3공수여단도 광주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후 공수 부대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다. 그걸 본 광주 시민들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격렬하게 항의를 한다. 이제 시위는 학생에서 시민들로 확대되었다. 공수 부대의 만행을 목격한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고, 공수 부대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단순한 학생 시위가 공수 부대의 만행으로 항쟁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공수 부대는 왜 광주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나?

전두환?신군부 세력은 5?17쿠데타로 비상 계엄을 전국에 확대한 뒤 이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는 서울, 광주 지역 등에 이미 진압 부대를 투입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군 투입이 요구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는 강경한 응징 조치를 하겠다고 정해놓고 있었다. 초동 단계부터 강경 진압 등 ‘위력 과시’를 해 시위 군중을 위축시킴으로써 ‘시위 확산’과 ‘격렬화’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5?17쿠데타를 일으켰는데도 서울에서는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그쪽을 철저히, 과감히 타격하자. 상대방이 다시는 시위를 일으킬 수 없도록 끝까지 추격해 궤멸적 타격을 입히자’, ‘우리에게 저항하는 자(세력)들은 이렇게 당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결의를 다진 것이다. 그래서 경찰로도 시위를 막을 수 있는데도 7공수여단을 시내 한복판으로 보낸 것이고, 그에 더해 서울에 있던 11공수여단 병력까지 광주로 급히 보내고 곧이어 3공수여단 병력을 또 보낸 것이다.

더군다나 광주는 자신들의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김대중의 정치적 근거지였다. 그 때문에도 광주를 더 무자비하게, 위력적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

공수 부대가 만든 생지옥, 심지어 성폭행까지…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다

19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공수 부대원들은 시민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곤봉을 마구 휘두르며 착검한 소총으로 시위 군중의 어깨, 다리 등을 마구 찔러 금남로 일대는 삽시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군중과 이를 지켜보고 비명을 지르는 시민 등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건물 안으로 도망가는 시위 군중을 추적해 끄집어내어 길가에서 무릎을 꿇리고 턱을 걷어차거나 엎어진 사람의 머리와 등을 마구 짓이겼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마구 때렸다. 겁에 질린 여자들까지 아랫배를 걷어차고 가슴팍을 치거나 대검으로 상의를 마구 찢기도 했다. 심지어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도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을 본 광주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오후 들어 수만 명의 민중이 금남로 일대를 가득 채웠다. 19일부터 본격적으로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왜 시민들은 성난 민중으로 변해 그 무섭고 무자비한 공수 부대와 적극적으로 맞붙는 격렬한 투쟁을 벌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공수 부대의 만행,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만행에 분노해 그야말로 피가 끓는 시민들이 궐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끄러움’의 정서다. 18일 공수 부대의 만행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이 시민들을 자꾸 싸우게 했고, 그것이 항쟁으로 바뀌는 추동력이 되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대학살, 21일 애국가와 함께 울린 총성

21일 오후 1시 정각,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수백 발의 총성이 일제히 울렸다. 21일 금남로 일대에서 이뤄진 발포로 최소한 54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됐다. 21일 3공수여단과 7공수여단이 보급을 받은 실탄은 M16 소총탄 123만 발, 살상력이 큰 40mm 고폭 유탄 316발, 한꺼번에 여러 명을 해칠 수 있는 세열 수류탄 4,880발이었다. 이 중 48만 4,484발이 실제로 사용됐는데, 공수 부대원 1인당 142발을 쏜 셈이다. 광주를 그야말로 피로 물들인 대학살이었다. 심지어 이날 오후에는 헬기 기관총 소사까지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서 광주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경악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자 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은 ‘이제 우리도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외치면서 여러 지역으로 갔다. 일부 시위대는 10여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화순 탄광에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을 입수했고 나주경찰서 무기고와 여러 파출소에서 M1 소총, 카빈 소총, 실탄을 가져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장성, 담양, 영광, 보성, 무안, 영암, 함평, 강진, 해남, 완도, 곡성, 구례 등 전남 각 지역으로 가서 무기와 탄약을 가져왔다.

이처럼 1980년 5월 21일에는 공수 부대의 정조준 사격, 헬기 기총 소사 등 시민을 향한 발포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그러자 광주 시민들은 전남 전 지역으로 나아가 무기를 확보했고, 그러면서 이제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전체가 들끓는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무기를 확보하면서 시민군이 등장하게 된다.

왜 전두환 일당은 일부러 사태를 더 악화시켰나?

21일 계엄군은 광주 시내에서 철수한다. 이날 오후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시위가 확산된 이유는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해 유언비어 유포와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 행위를 선도’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 담화문을 접한 광주 시민들은 분노했다. 왜 광주항쟁이 일어났는지, 시민들이 왜 싸웠는지 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고, 공수 부대의 만행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22일 계엄사는 김대중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김대중이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날 이희성이 발표한 것과 똑같이 조작, 허위 사실, 중상모략으로 가득 찬 발표였다. 광주 시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분노한다.

그런데 왜 이런 발표를 연달아 한 것일까? 21일, 22일 연속해 일어난 일들은 전두환·신군부가 일부러 상황을 악화시키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왜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 같은 짓을 계속 저질렀을까? 전두환 일당은 본때를 보여 자신들에 대한 저항의 씨를 말려버리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벌였다. 그래서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전두환·신군부 유신 잔당은 이희성 담화문이 의도한 것과 똑같은 의도로 광주와 일반 국민을 격리 차단해 오로지 유혈 사태를 불사하는 폭압, 폭력의 군홧발로 광주를 짓밟고 일반 국민들에게 허위 사실을 사실로 믿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광주처럼 당한다는 협박용으로 일부러 5월 21일 이희성 발표에 이어 22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발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1공수여단의 어느 하루, 어린이 사살→오인 총격전→분풀이 학살

24일, 공수 부대가 어린이까지 사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트럭에 나눠 탄 제11공수여단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이동하던 중 진월동 원제마을 저수지 옆을 지나가게 된다. 그때 저수지에서는 15명가량의 소년들이 물놀이를 하며 멱을 감고 있었다. 공수 부대는 이 아이들에게 총을 쐈다. 결국 열세 살의 한 소년이 그 총탄을 맞고 숨을 거뒀다. 이어서 공수 부대는 근처에 있는 진제마을 쪽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마을 뒷동산에서 놀던 아이들한테 발포했다. 여기서도 열 살짜리 어린이 한 명이 숨졌다. 이 부대는 진제마을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에 숨어 있던 박연옥을 향해 발포했다. 박연옥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후 이 부대는 효덕초등학교 앞을 지나 광주-목포 간 국도를 이동하다가 갑자기 집중 사격을 당했다. 공수 부대를 공격한 건 마을 양쪽에 매복해 있던 육군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었다. 공수 부대를 시민군으로 착각해 공격한 것이었다. 공수 부대도 바로 응사했다. 이 오인 총격 사건으로 장교 1명을 포함한 9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런데 보병학교 교도대가 빠져나간 후 11공수여단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또 일으켰다. 근처 마을에 들이닥쳐 3명의 젊은이를 끌고 가 ‘즉결 처분’을 해버렸다. 엉뚱하게 화풀이로 마구잡이 보복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평생 해서는 안 될 일을 11공수여단은 하루에 수차례나 저질렀다.

전두환·신군부는 27일 왜 그토록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나?

27일 마지막으로 도청에 남아 있는 시민군은 200여 명이었다. 이에 반해 진압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7·11공수여단, 20사단, 31사단, 전교사 예하 병력 등 총 2만 317명이었다. 이토록 대규모의 병력이 광주 시내로 진입했다. 이 가운데 상무 충정 작전에 전투 요원으로 실제 투입된 계엄군 병력은 6,168명이었다. 그중 작전을 주도하는 특공조로 편성된 공수 부대원은 장교 37명을 포함해 317명이었다. 시민군의 숫자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전두환 일당은 왜 이토록 많은 병력을 투입한 것일까? 이 또한 5월 18일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18일 오후 4시경 공수 부대가 시내 한복판에 출현하기 전에는 학생 시위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경찰력으로도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5월 27일에도 마찬가지로 군이 아니라 경찰만 투입하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엄청난 병력을 투입해 적군을 상대로 작전을 펴는 것처럼 한 것이다.

“5월 18일, 19일에 광주 시민들을 상대로 이른바 위력 과시, 선제 타격이라는 걸 하지 않았나. 전두환·신군부 권력 탈취에 저항하는 세력을 궤멸시키다시피 제압해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래서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5월 19일 시민들이 공수 부대와 맞서면서 광주항쟁이 본격화되고, 그렇게 되면서 오히려 계엄군이 철수하게 되는 상황까지 맞게 됐다. 그야말로 전두환·신군부 쪽이나 계엄군으로서는 굉장한 치욕이라고 볼 수 있는 상태를 자초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27일에 그런 식으로 보복해 만회하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시민군에 대한 ‘보복’과 더불어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저항 세력을 초토화하고 시민들에게 특별히 위력을 과시해 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시민군은 15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체포됐다.

왜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최고 책임자인가?

그동안 전두환은 ‘나는 보안사령관으로서 정보 수집, 수사만 했다. 광주사태 진압과는 명령, 지휘 계통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광주 학살에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비선 라인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주에서 공수 부대가 한 행위는 전두환·신군부의 권력 탈취 방안이던 ‘시국 수습 방안’의 일환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일당은 5·17쿠데타가 일어나면 많은 학생, 시민들이 반발하고 투쟁과 시위를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예상 아래 서울과 광주 등 중요 지역에 공수 부대를 비롯한 병력을 이미 배치한 상태였다. 그리고 5·17쿠데타 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위력을 과시해 자신들의 권력 탈취에 대한 저항의 씨를 말리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전두환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5월 21일, 자위권이 발동된다. 자위권 발동을 국방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형식의 회의가 21일 오전에 열리는데, 전두환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실질적 권력자인 전두환이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1시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자위권을 천명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서도 전두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걸로 밝혀졌다. 이튿날 22일, 전두환은 공수 부대원들에게 격려금을 하사하도록 지시한다. 또한 전두환은 25일 최규하로 하여금 광주로 내려가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5월 27일 새벽에 벌어진 상무 충전 작전에서도 전두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전두환은 광주에서 진행된 여러 작전이나 자위권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고, 가장 중요한 27일 작전을 결정하는 자리에도 참석했다. 미국 또한 전두환이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군 실력자라고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두환은 27일 상무 충정 작전을 몇 시간 앞두고 사병들에게 거액의 하사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보면 분명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정신은 살아 숨 쉬며 6월항쟁으로 승화했다

광주항쟁은 27일 마지막 시민군들이 진압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정신은 계속 이어졌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곧 광주의 진실 알리기 운동이기도 했다. 광주항쟁은 특히 젊은이들한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갔다. 광주의 진실, 이것을 접한 젊은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1980년대 내내 되물었다. 잔인한 유혈 사태, 시민을 향한 발포, 그러한 공수 부대에 과감히 맞서 싸운 시민들, 이 모습들은 1980년대 내내 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했다.

학생들은 1984년경부터 학생 운동의 폭을 넓혀갔는데, 주된 활동의 하나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대학가는 4월에 4·19 기념을 겸해 4월 투쟁을, 5월에는 여러 날에 걸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각종 교내 활동과 시위 투쟁을 벌였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은 그 자체가 반전두환 투쟁이었고 민주화 운동이었다. 5월 투쟁은 학생 운동을 확장하는 지렛대였다.

광주항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광주항쟁은 어떠한 역사적 역할을 했는가. 광주항쟁은 갑오농민전쟁(1894년), 3·1운동(1919년), 4월혁명, 부마항쟁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변란을 일으킨 집단이나 독재자의 영구 집권욕에 의해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또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항쟁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광주항쟁을 꼽을 수 있다.”

광주항쟁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군부의 유신 잔당들이 ‘서울의 봄’을 깨부수고 제2의 유신 체제를 만들고 있는데 그러한 변란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았다면, 그런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정의롭게, 올바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광주는 한국인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역할을 했다. 4월혁명과 똑같이 역사에 정의를 세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광주항쟁은 1980년대 민주화, 자주화 운동의 추동력이었다. 광주항쟁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불을 지폈다. 그뿐 아니라 6월항쟁으로 전두환·신군부가 무릎을 꿇고 결국 노태우의 6·29선언이 나오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광주항쟁은 한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잊혀서는 안 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보위,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다

1980년 5월 27일 무력으로 광주항쟁을 짓밟은 전두환은 곧이어 국보위를 설치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다. 국보위를 통해 전두환 일당은 부정 축재자들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공직자 등 1만여 명을 숙정했다. 또한 언론계에도 칼날을 들이대 언론 검열에 비협조적인 기자들을 추방했다. 특히 광주항쟁 때 있었던 보도 검열 거부, 제작 거부를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복을 했다. 당시 기자의 30퍼센트가 쫓겨났는데, 과히 언론 대학살이라고 할 만했다. 전두환 일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야 정치인들을 연행해갔고, 정치인들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했다. 이때 몰수한 재산 규모는 1,133억 원에 달했다.

인권 유린과 잔혹함의 상징, 삼청교육대

삼청교육대는 국보위에서 시행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전두환 일당의 인권 유린과 잔혹함을 상징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전두환 일당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없이 1980년 8월 1일부터 12월 29일까지 6만 755명을 체포했다. 이 중 3,252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1만 7,761명이 훈방 등의 조치를 받았다. 이 사람들을 제외한 3만 9,742명이 1980년 8월 4일부터 1981년 1월 21일까지 11차에 걸쳐 전국 각지의 군부대에서 소위 순화 교육이라는 걸 받았다.

이 중에는 13세 소년에서 70대 노인까지 있었고 군 장성, 언론인, 노조원,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까지 포함돼 있었다. 특히 민조 노조 운동가들이 표적이 되어 끌려갔다. 원풍모방을 비롯해 1970년대 민주 노조 운동에 앞장섰던 한일도루코, 청계피복, 원풍타이어 등의 노조 간부 22명 또는 그 이상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4주간 순화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강창성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강창성은 박정희의 지시로 하나회를 대대적으로 수사하던 사람으로, 전두환 일당이 그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을 한 것이었다.

전두환은 이 사업이 국보위 사업 중에서 핵심 사업이라고 강조하며 범국민적, 범국가적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강한 육체적 훈련을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전두환의 주문이 있었기에 삼청 교육은 잔혹하게 시행됐고, 수많은 사망자 등 피해자를 양산했다. 공식 사망자만 54명으로 밝혀졌고,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한 사람은 397명, 행방불명자 4명, 삼청 교육으로 인한 상이자는 2,768명이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일본은 전두환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대중은 5?17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연행됐다. 계엄사는 1980년 7월 4일 ‘김대중 일당의 내란 음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김대중과 추종분자 일당들이 국민연합을 주축, 전위 세력으로 하여 방대한 사조직을 형성, 주로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대중 선동에 의해 학원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이를 폭력화하여 전국에서 일제히 민중 봉기를 일으킴으로써 유혈 혁명 사태를 유발, 현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권을 수립, 집권하려는 내란 음모 행위의 전모가 드러났다.”

계엄사 합수부는 7월 12일 김대중 등 37명을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송치했다. 이어서 전두환 일당은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사건을 조작했다. 계엄사는 내란 음모 이외에도 “김대중이 반국가 단체인 재일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발기, 조직, 구성하여 그 수괴로 있으면서 북괴의 노선을 지지, 동조하는 등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하고 외화를 불법 소지, 사용한 혐의 등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전두환 일당이 문제 삼은 일본에서의 활동을 일본 정부가 반드시 문제 제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전두환?신군부와 일본 정부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본은 전두환 일당이 5?17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도록 남침 정보를 조작해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결국 일본 정부는 김대중의 기대와 달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은 사형이 구형되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도 전두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은 한국이 강력한 반공 기조를 유지한다면, 독재 정권이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1981년 미국 대통령이 된 레이건이 취임 직후 첫 번째 손님으로 전두환을 미국에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은 전두환을 강력히 지지했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되다

전두환은 2단계를 통해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먼저 최규하를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통대’에 의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자기들이 만든 헌법에 따라 또 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다. 1980년 8월 10일, 최규하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작성했다. 그리고 전두환·신군부의 강박에 의해 8월 13일 김영삼이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8월 14일에는 김대중 등 24명에 대한 군사 재판이 시작됐다. 8월 16일에는 마지막 수순으로 최규하가 대통령을 사임했다. 8월 21일 전국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전두환을 국가 원수로 추대했다. 8월 27일 전두환은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다. 9월 29일 이번에는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10월 22일 국민 투표로 헌법 개정안이 확정되었고, 1981년 2월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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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7

도서정보 : 김덕련, 서중석 | 2020-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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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주도한 전두환 일당, 쿠데타를 일으키다

광주항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알려면 우선 전두환?신군부 세력의 10?26 이후 행적을 살펴야 한다.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박정희가 죽자 일찍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해야겠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었다. 그리고 곧 역사를 뒷걸음질 치게 한 12?12쿠데타를 일으킨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던 최규하 대통령, 정승화를 비롯한 군 상층부의 무능력, 미국의 방관, 일본의 지원 등으로 쿠데타는 결국 성공하고 만다. 전두환 일당은 쿠데타 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제거하고 군권을 장악하게 됐다.

12?12쿠데타가 성공하자 보안사는 1980년 2월부터 전두환 권력을 만들기 위해 K-공작(K는 ‘King’의 약자)을 실시했다. K-공작은 언론을 조종, 통제, 회유한 작전이다. 보안사가 언론사 간부들을 접촉해 ‘현재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안 된다’, ‘3김은 안 된다. 사회 안정을 위해 군부가 집권해야 한다’ 등의 취지의 보도를 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했다. 곧 전두환?신군부가 한국을 이끌 세력, 안전 구축 세력으로 퍼뜨리게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전두환은 보안사에 이어 또 하나의 정보 기관을 손에 움켜쥐게 된다. 1980년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된 것이다. 보안사와 중앙정보부를 장악한 전두환은 이로써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에 오르게 된다.

드디어 찾아온 서울의 봄, 그러나…

서울의 봄은 1980년 2월 29일 대규모 사면 복권 이후, 더 넓게는 1980년 초 정치인들의 신년사가 나오고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될 무렵부터 5·17쿠데타가 일어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었으니 한국 사회가 이제는 민주화로 나아갈 거라는 기대가 이 단어 속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신군부 세력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권이 단결하고 최규하 쪽과도 연결하면서 국회를 활용해 계엄을 해제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때에도 서로 각자 대권 행보를 하며 분열돼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결국 5?17쿠데타가 성공하자 김대중은 ‘소요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됐고, 김영삼 또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학생 운동 세력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각 대학에서는 학생회를 부활시켰고, 병영 집체 훈련 거부 등 민주화 활동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전두환?신군부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활동을 전개했다. 노동 쟁의도 크게 늘어나는 등 사회 각계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목소리가 분출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사북항쟁이다. 이 항쟁은 단순히 노조 집행부와 그 반대파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그간 박정희 유신 체제 아래에서 누적된 불만, 분노가 노조 문제를 계기로 분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80년 5월이 되자 대규모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게 된다.

신군부가 서울역 시위를 그대로 놔둔 이유는?

1980년 5월 13일 밤 학생회장단이 모여 토론한 끝에 교문을 박차고 거리에서 싸우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대로 각 대학 학생들은 가두시위를 벌인다. 14일에도 서울 시내 21개 대학에서 약 7만 명이, 지방 11개 대학에서 약 3만 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15일에는 최고 7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서울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신군부는 충분히 이 시위를 막을 수 있었는데도 왜 막지 않았을까? 광주에서처럼 시민들이 이 시위에 대거 호응하면 신군부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는데 왜 막지 않았을까? 그 이전부터 진압군 투입 준비도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신군부는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미리 용의주도하게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었다. ‘거리에 나오는 걸 방치하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하게끔 한다. 그런 것 등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을 전국에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하며 국보위 같은 걸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다’, 이런 계획을 짜놓은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학생과 시민들이 큰 시위를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것에 대비해 군을 미리 움직여 서울과 전국 주요 지역에 배치해놓았다.

이러한 조치는 서울에서 학생 시위가 크게 확대되는 것에 대비한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 학생 시위가 커지면서 상황이 혼란으로 들어갔다는 걸 빙자해 5월 17일 쿠데타 이후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측면이 있었다. ‘민주화를 완전히 짓밟는 쿠데타를 일으키면 굉장히 많은 학생, 시민이 봉기할 수 있다. 그런 봉기가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 그것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5?17쿠데타 이후 광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무런 시위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두환 일당은 그 병력의 상당 부분을 광주로 이동시켰다. 광주를 아주 단단히 진압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일본은 왜 5?17쿠데타를 도왔나?

10·26 이후 전두환 일당은 미국에는 절대적으로 보안을 취하면서도 일본에는 12·12쿠데타 계획을 알려주는 등 일본과 교감을 하고 있었다. 1979년 12월 이후 일본 측은 소련의 북한 남침 사주설을 포함해 북한의 남침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6번이나 전두환 일당에게 ‘자료’를 내주었다. 더군다나 일본 내각조사실은 북한이 5월 15일에서 20일 사이에 남침하기로 결정했다며 날짜까지 콕 집어서 신군부에게 첩보를 건넸다. 그러나 이 첩보는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지만, 전두환?신군부는 이 남침설과 학생 시위를 구실 삼아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무력화한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권력을 넘겨받게 되는 국보위가 설치된다. 이것이 곧 5?17쿠데타이다.

일본이 이토록 전두환?신군부를 지원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후 70여 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일본 우익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일본은 박정희 정권을 대신할 새로운 정권으로 이 세력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전두환·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하는 데 일본의 지원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두환 일당은 왜 제2쿠데타 날짜를 5월 17일로 정했나?

1980년 5월 정치권은 국회 소집에 합의했고,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전두환·신군부를 규탄했다. 이에 전두환 일당은 10·26 직후 선포돼 반년 넘게 계속된 비상 계엄을 지속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두환 일당은 또 하나의 쿠데타를 계획하며 시국 수습 방안을 발표한다. 이 시국 수습 방안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비상 계엄 전국 확대였고, 둘째는 국회 해산, 셋째는 국가 보위 비상 기구 설치였다. 비상 계엄 전국 확대는 군인들이 전권을 가지고 국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것은 유신 헌법조차 짓밟으면서 강권, 무력으로 헌정을 중단시키겠다는 음모였다. 그와 함께 시국 수습 방안에는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 규제 방안 등도 들어 있었다.

전두환 일당은 김재규의 대법원 선고가 있는 날인 5월 20일 이후 이 시국 수습 방안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해외 순방 중인 최규하 대통령이 귀국하는 17일로 쿠데타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 이렇게 한 데에는 5월 20일 임시 국회가 소집되고, 5월 22일까지 계엄을 해제하지 않을 경우 대학생들이 다시 대규모 데모를 벌일 계획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5월 17일 쿠데타를 감행하고, 결국 성공한다. 이로써 전두환 일당은 1979년에 12·12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1980년에 다시 5·17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탈취했다.

광주항쟁, 왜 일어났나?

5월 18일 일요일 아침, 전남대 교문 앞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5월 14~16일 민주 성회 때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그다음 날 아침에 자동적으로 교문에 모여 시위를 하자.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오에 도청 광장에 모이자’고 약속한 대로 교문으로 온 학생들이 많았다. ‘계엄 해제’를 외치는 학생들을 향해 공수 부대원들은 진압봉 등으로 마구 구타했다. 정문 앞에서 해산당한 학생들은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시내로 나간 학생들은 수백 명 단위로 비상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학생 시위 규모가 그리 큰 것도 아니었고, 경찰력으로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공수 부대가 시내 한복판에 출현한 것이다. 게다가 서울 동국대에 있던 11공수여단까지 광주로 이동시켰고, 여기에 더해 3공수여단도 광주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후 공수 부대는 시민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다. 그걸 본 광주 시민들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격렬하게 항의를 한다. 이제 시위는 학생에서 시민들로 확대되었다. 공수 부대의 만행을 목격한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고, 공수 부대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단순한 학생 시위가 공수 부대의 만행으로 항쟁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공수 부대는 왜 광주 시민에게 폭력을 휘둘렀나?

전두환?신군부 세력은 5?17쿠데타로 비상 계엄을 전국에 확대한 뒤 이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는 서울, 광주 지역 등에 이미 진압 부대를 투입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군 투입이 요구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는 강경한 응징 조치를 하겠다고 정해놓고 있었다. 초동 단계부터 강경 진압 등 ‘위력 과시’를 해 시위 군중을 위축시킴으로써 ‘시위 확산’과 ‘격렬화’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5?17쿠데타를 일으켰는데도 서울에서는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그쪽을 철저히, 과감히 타격하자. 상대방이 다시는 시위를 일으킬 수 없도록 끝까지 추격해 궤멸적 타격을 입히자’, ‘우리에게 저항하는 자(세력)들은 이렇게 당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결의를 다진 것이다. 그래서 경찰로도 시위를 막을 수 있는데도 7공수여단을 시내 한복판으로 보낸 것이고, 그에 더해 서울에 있던 11공수여단 병력까지 광주로 급히 보내고 곧이어 3공수여단 병력을 또 보낸 것이다.

더군다나 광주는 자신들의 권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김대중의 정치적 근거지였다. 그 때문에도 광주를 더 무자비하게, 위력적으로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

공수 부대가 만든 생지옥, 심지어 성폭행까지…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다

19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공수 부대원들은 시민들에게 마구 폭력을 휘둘렀다. 곤봉을 마구 휘두르며 착검한 소총으로 시위 군중의 어깨, 다리 등을 마구 찔러 금남로 일대는 삽시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군중과 이를 지켜보고 비명을 지르는 시민 등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건물 안으로 도망가는 시위 군중을 추적해 끄집어내어 길가에서 무릎을 꿇리고 턱을 걷어차거나 엎어진 사람의 머리와 등을 마구 짓이겼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팬티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마구 때렸다. 겁에 질린 여자들까지 아랫배를 걷어차고 가슴팍을 치거나 대검으로 상의를 마구 찢기도 했다. 심지어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도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폭력을 본 광주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오후 들어 수만 명의 민중이 금남로 일대를 가득 채웠다. 19일부터 본격적으로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왜 시민들은 성난 민중으로 변해 그 무섭고 무자비한 공수 부대와 적극적으로 맞붙는 격렬한 투쟁을 벌이게 되었을까? 그것은 공수 부대의 만행,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만행에 분노해 그야말로 피가 끓는 시민들이 궐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끄러움’의 정서다. 18일 공수 부대의 만행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이 시민들을 자꾸 싸우게 했고, 그것이 항쟁으로 바뀌는 추동력이 되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대학살, 21일 애국가와 함께 울린 총성

21일 오후 1시 정각,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수백 발의 총성이 일제히 울렸다. 21일 금남로 일대에서 이뤄진 발포로 최소한 54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됐다. 21일 3공수여단과 7공수여단이 보급을 받은 실탄은 M16 소총탄 123만 발, 살상력이 큰 40mm 고폭 유탄 316발, 한꺼번에 여러 명을 해칠 수 있는 세열 수류탄 4,880발이었다. 이 중 48만 4,484발이 실제로 사용됐는데, 공수 부대원 1인당 142발을 쏜 셈이다. 광주를 그야말로 피로 물들인 대학살이었다. 심지어 이날 오후에는 헬기 기관총 소사까지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서 광주 한복판에서 시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경악할 만한 사태가 벌어지자 학생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은 ‘이제 우리도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외치면서 여러 지역으로 갔다. 일부 시위대는 10여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화순 탄광에 가서 다이너마이트를, 화순경찰서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을 입수했고 나주경찰서 무기고와 여러 파출소에서 M1 소총, 카빈 소총, 실탄을 가져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장성, 담양, 영광, 보성, 무안, 영암, 함평, 강진, 해남, 완도, 곡성, 구례 등 전남 각 지역으로 가서 무기와 탄약을 가져왔다.

이처럼 1980년 5월 21일에는 공수 부대의 정조준 사격, 헬기 기총 소사 등 시민을 향한 발포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그러자 광주 시민들은 전남 전 지역으로 나아가 무기를 확보했고, 그러면서 이제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전체가 들끓는 상황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무기를 확보하면서 시민군이 등장하게 된다.

왜 전두환 일당은 일부러 사태를 더 악화시켰나?

21일 계엄군은 광주 시내에서 철수한다. 이날 오후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시위가 확산된 이유는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해 유언비어 유포와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 행위를 선도’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한다. 이 담화문을 접한 광주 시민들은 분노했다. 왜 광주항쟁이 일어났는지, 시민들이 왜 싸웠는지 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되지 않았고, 공수 부대의 만행에 대해서도 전혀 말하지 않았다.

22일 계엄사는 김대중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김대중이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전날 이희성이 발표한 것과 똑같이 조작, 허위 사실, 중상모략으로 가득 찬 발표였다. 광주 시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분노한다.

그런데 왜 이런 발표를 연달아 한 것일까? 21일, 22일 연속해 일어난 일들은 전두환·신군부가 일부러 상황을 악화시키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왜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 같은 짓을 계속 저질렀을까? 전두환 일당은 본때를 보여 자신들에 대한 저항의 씨를 말려버리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벌였다. 그래서 더욱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전두환·신군부 유신 잔당은 이희성 담화문이 의도한 것과 똑같은 의도로 광주와 일반 국민을 격리 차단해 오로지 유혈 사태를 불사하는 폭압, 폭력의 군홧발로 광주를 짓밟고 일반 국민들에게 허위 사실을 사실로 믿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자신들에게 저항하면 광주처럼 당한다는 협박용으로 일부러 5월 21일 이희성 발표에 이어 22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발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1공수여단의 어느 하루, 어린이 사살→오인 총격전→분풀이 학살

24일, 공수 부대가 어린이까지 사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트럭에 나눠 탄 제11공수여단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이동하던 중 진월동 원제마을 저수지 옆을 지나가게 된다. 그때 저수지에서는 15명가량의 소년들이 물놀이를 하며 멱을 감고 있었다. 공수 부대는 이 아이들에게 총을 쐈다. 결국 열세 살의 한 소년이 그 총탄을 맞고 숨을 거뒀다. 이어서 공수 부대는 근처에 있는 진제마을 쪽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마을 뒷동산에서 놀던 아이들한테 발포했다. 여기서도 열 살짜리 어린이 한 명이 숨졌다. 이 부대는 진제마을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에 숨어 있던 박연옥을 향해 발포했다. 박연옥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후 이 부대는 효덕초등학교 앞을 지나 광주-목포 간 국도를 이동하다가 갑자기 집중 사격을 당했다. 공수 부대를 공격한 건 마을 양쪽에 매복해 있던 육군보병학교 교도대 병력이었다. 공수 부대를 시민군으로 착각해 공격한 것이었다. 공수 부대도 바로 응사했다. 이 오인 총격 사건으로 장교 1명을 포함한 9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런데 보병학교 교도대가 빠져나간 후 11공수여단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또 일으켰다. 근처 마을에 들이닥쳐 3명의 젊은이를 끌고 가 ‘즉결 처분’을 해버렸다. 엉뚱하게 화풀이로 마구잡이 보복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평생 해서는 안 될 일을 11공수여단은 하루에 수차례나 저질렀다.

전두환·신군부는 27일 왜 그토록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나?

27일 마지막으로 도청에 남아 있는 시민군은 200여 명이었다. 이에 반해 진압 작전에 투입된 병력은 3?7·11공수여단, 20사단, 31사단, 전교사 예하 병력 등 총 2만 317명이었다. 이토록 대규모의 병력이 광주 시내로 진입했다. 이 가운데 상무 충정 작전에 전투 요원으로 실제 투입된 계엄군 병력은 6,168명이었다. 그중 작전을 주도하는 특공조로 편성된 공수 부대원은 장교 37명을 포함해 317명이었다. 시민군의 숫자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전두환 일당은 왜 이토록 많은 병력을 투입한 것일까? 이 또한 5월 18일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18일 오후 4시경 공수 부대가 시내 한복판에 출현하기 전에는 학생 시위 규모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경찰력으로도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5월 27일에도 마찬가지로 군이 아니라 경찰만 투입하거나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엄청난 병력을 투입해 적군을 상대로 작전을 펴는 것처럼 한 것이다.

“5월 18일, 19일에 광주 시민들을 상대로 이른바 위력 과시, 선제 타격이라는 걸 하지 않았나. 전두환·신군부 권력 탈취에 저항하는 세력을 궤멸시키다시피 제압해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래서 다시는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5월 19일 시민들이 공수 부대와 맞서면서 광주항쟁이 본격화되고, 그렇게 되면서 오히려 계엄군이 철수하게 되는 상황까지 맞게 됐다. 그야말로 전두환·신군부 쪽이나 계엄군으로서는 굉장한 치욕이라고 볼 수 있는 상태를 자초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27일에 그런 식으로 보복해 만회하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시민군에 대한 ‘보복’과 더불어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저항 세력을 초토화하고 시민들에게 특별히 위력을 과시해 겁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시민군은 15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체포됐다.

왜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최고 책임자인가?

그동안 전두환은 ‘나는 보안사령관으로서 정보 수집, 수사만 했다. 광주사태 진압과는 명령, 지휘 계통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광주 학살에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비선 라인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광주에서 공수 부대가 한 행위는 전두환·신군부의 권력 탈취 방안이던 ‘시국 수습 방안’의 일환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일당은 5·17쿠데타가 일어나면 많은 학생, 시민들이 반발하고 투쟁과 시위를 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예상 아래 서울과 광주 등 중요 지역에 공수 부대를 비롯한 병력을 이미 배치한 상태였다. 그리고 5·17쿠데타 후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위력을 과시해 자신들의 권력 탈취에 대한 저항의 씨를 말리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전두환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5월 21일, 자위권이 발동된다. 자위권 발동을 국방부 장관에게 건의하는 형식의 회의가 21일 오전에 열리는데, 전두환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실질적 권력자인 전두환이 그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란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1시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자위권을 천명하는 담화문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서도 전두환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걸로 밝혀졌다. 이튿날 22일, 전두환은 공수 부대원들에게 격려금을 하사하도록 지시한다. 또한 전두환은 25일 최규하로 하여금 광주로 내려가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5월 27일 새벽에 벌어진 상무 충전 작전에서도 전두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전두환은 광주에서 진행된 여러 작전이나 자위권을 결정하는 자리에 참석했고, 가장 중요한 27일 작전을 결정하는 자리에도 참석했다. 미국 또한 전두환이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군 실력자라고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두환은 27일 상무 충정 작전을 몇 시간 앞두고 사병들에게 거액의 하사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보면 분명 전두환이 광주 학살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정신은 살아 숨 쉬며 6월항쟁으로 승화했다

광주항쟁은 27일 마지막 시민군들이 진압되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정신은 계속 이어졌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곧 광주의 진실 알리기 운동이기도 했다. 광주항쟁은 특히 젊은이들한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갔다. 광주의 진실, 이것을 접한 젊은이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1980년대 내내 되물었다. 잔인한 유혈 사태, 시민을 향한 발포, 그러한 공수 부대에 과감히 맞서 싸운 시민들, 이 모습들은 1980년대 내내 광주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했다.

학생들은 1984년경부터 학생 운동의 폭을 넓혀갔는데, 주된 활동의 하나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대학가는 4월에 4·19 기념을 겸해 4월 투쟁을, 5월에는 여러 날에 걸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각종 교내 활동과 시위 투쟁을 벌였다.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은 그 자체가 반전두환 투쟁이었고 민주화 운동이었다. 5월 투쟁은 학생 운동을 확장하는 지렛대였다.

광주항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광주항쟁은 어떠한 역사적 역할을 했는가. 광주항쟁은 갑오농민전쟁(1894년), 3·1운동(1919년), 4월혁명, 부마항쟁과 함께 한국 근현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변란을 일으킨 집단이나 독재자의 영구 집권욕에 의해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또는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 싸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항쟁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로 광주항쟁을 꼽을 수 있다.”

광주항쟁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군부의 유신 잔당들이 ‘서울의 봄’을 깨부수고 제2의 유신 체제를 만들고 있는데 그러한 변란에 아무도 항거하지 않았다면, 그런 나라에 미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정의롭게, 올바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광주는 한국인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역할을 했다. 4월혁명과 똑같이 역사에 정의를 세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광주항쟁은 1980년대 민주화, 자주화 운동의 추동력이었다. 광주항쟁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불을 지폈다. 그뿐 아니라 6월항쟁으로 전두환·신군부가 무릎을 꿇고 결국 노태우의 6·29선언이 나오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면에서 광주항쟁은 한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잊혀서는 안 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보위, 무소불위 권력 휘두르다

1980년 5월 27일 무력으로 광주항쟁을 짓밟은 전두환은 곧이어 국보위를 설치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다. 국보위를 통해 전두환 일당은 부정 축재자들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공직자 등 1만여 명을 숙정했다. 또한 언론계에도 칼날을 들이대 언론 검열에 비협조적인 기자들을 추방했다. 특히 광주항쟁 때 있었던 보도 검열 거부, 제작 거부를 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복을 했다. 당시 기자의 30퍼센트가 쫓겨났는데, 과히 언론 대학살이라고 할 만했다. 전두환 일당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여야 정치인들을 연행해갔고, 정치인들의 재산을 강제로 몰수했다. 이때 몰수한 재산 규모는 1,133억 원에 달했다.

인권 유린과 잔혹함의 상징, 삼청교육대

삼청교육대는 국보위에서 시행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 사업은 전두환 일당의 인권 유린과 잔혹함을 상징하는 사안이기도 하다. 전두환 일당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없이 1980년 8월 1일부터 12월 29일까지 6만 755명을 체포했다. 이 중 3,252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1만 7,761명이 훈방 등의 조치를 받았다. 이 사람들을 제외한 3만 9,742명이 1980년 8월 4일부터 1981년 1월 21일까지 11차에 걸쳐 전국 각지의 군부대에서 소위 순화 교육이라는 걸 받았다.

이 중에는 13세 소년에서 70대 노인까지 있었고 군 장성, 언론인, 노조원,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생까지 포함돼 있었다. 특히 민조 노조 운동가들이 표적이 되어 끌려갔다. 원풍모방을 비롯해 1970년대 민주 노조 운동에 앞장섰던 한일도루코, 청계피복, 원풍타이어 등의 노조 간부 22명 또는 그 이상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4주간 순화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강창성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강창성은 박정희의 지시로 하나회를 대대적으로 수사하던 사람으로, 전두환 일당이 그것에 앙심을 품고 보복을 한 것이었다.

전두환은 이 사업이 국보위 사업 중에서 핵심 사업이라고 강조하며 범국민적, 범국가적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강한 육체적 훈련을 실시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전두환의 주문이 있었기에 삼청 교육은 잔혹하게 시행됐고, 수많은 사망자 등 피해자를 양산했다. 공식 사망자만 54명으로 밝혀졌고, 후유증을 앓다가 사망한 사람은 397명, 행방불명자 4명, 삼청 교육으로 인한 상이자는 2,768명이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일본은 전두환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대중은 5?17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연행됐다. 계엄사는 1980년 7월 4일 ‘김대중 일당의 내란 음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김대중과 추종분자 일당들이 국민연합을 주축, 전위 세력으로 하여 방대한 사조직을 형성, 주로 복학생을 행동대원으로 내세워 대중 선동에 의해 학원 소요 사태를 일으키고 이를 폭력화하여 전국에서 일제히 민중 봉기를 일으킴으로써 유혈 혁명 사태를 유발, 현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 타도한 후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권을 수립, 집권하려는 내란 음모 행위의 전모가 드러났다.”

계엄사 합수부는 7월 12일 김대중 등 37명을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구속 송치했다. 이어서 전두환 일당은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또 하나의 사건을 조작했다. 계엄사는 내란 음모 이외에도 “김대중이 반국가 단체인 재일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발기, 조직, 구성하여 그 수괴로 있으면서 북괴의 노선을 지지, 동조하는 등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하고 외화를 불법 소지, 사용한 혐의 등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렇게 되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서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전두환 일당이 문제 삼은 일본에서의 활동을 일본 정부가 반드시 문제 제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전두환?신군부와 일본 정부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일본은 전두환 일당이 5?17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도록 남침 정보를 조작해 도움을 주지 않았던가. 결국 일본 정부는 김대중의 기대와 달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김대중은 사형이 구형되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도 전두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은 한국이 강력한 반공 기조를 유지한다면, 독재 정권이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1981년 미국 대통령이 된 레이건이 취임 직후 첫 번째 손님으로 전두환을 미국에 초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미국은 전두환을 강력히 지지했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되다

전두환은 2단계를 통해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먼저 최규하를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통대’에 의해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자기들이 만든 헌법에 따라 또 대통령이 되는 방식이었다. 1980년 8월 10일, 최규하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작성했다. 그리고 전두환·신군부의 강박에 의해 8월 13일 김영삼이 정계 은퇴를 발표했다. 8월 14일에는 김대중 등 24명에 대한 군사 재판이 시작됐다. 8월 16일에는 마지막 수순으로 최규하가 대통령을 사임했다. 8월 21일 전국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전두환을 국가 원수로 추대했다. 8월 27일 전두환은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다. 9월 29일 이번에는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10월 22일 국민 투표로 헌법 개정안이 확정되었고, 1981년 2월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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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

도서정보 : 김덕련, 서중석 | 2020-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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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

18~20권의 주제는 ‘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이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한국 현대사의 세 번째 ‘해방’이라고 평가한다. 1945년 8월 15일이 첫 번째 해방이라면 1960년 4월혁명은 두 번째 해방, 6월항쟁은 세 번째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방은 크고 깊었지만 분단 속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고, 두 번째 해방은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반동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세 번째 해방인 6월항쟁도 1987년 대선에 패배하는 등 갖은 풍파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세 번째 해방은 한국 사회에 기본적 자유, 자치적 시민 활동,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틀이 상당 부분 자리 잡게 만들었다. 6월항쟁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20권에서는 6월항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전개 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즉 이 세 권을 통해 6월항쟁 전후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6월항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눈으로만 바라다본 측면이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의 움직임, 전두환과 노태우의 갈등의 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6월항쟁이 가지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또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특히 장세동이 안기부장에서 물러난 게 6월항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3년 7개월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은 안기부장으로 전두환을 받들어왔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1987년 5·26 전면 개각으로 장세동은 안기부장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장세동이 안기부장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라고 서중석 교수는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과 이심전심으로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강경 일변도로 밀고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책에는 전두환이 비상 조치를 전제로 한 군 병력 배치 지시하고 6시간 만에 번복한 이유, 미국의 역할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그럼으로써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도 세세히 분석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은 김대중과 김영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는 6월항쟁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아주 생생하게 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 웅장한 대서사시나 교향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독재 정권의 속성상 박종철 고문 사망은 다른 때 같았으면 한낱 억울한 죽음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종철의 안타까운 죽음은 2·7 추도 대회, 3·3 평화 대행진, 5·18 고문 사망 은폐·조작 폭로를 거쳐 6·10 국민 대회로 불붙은 6월항쟁 내내 투쟁의 동력이 됐다. 그것과 더불어 이한열이 최루탄에 의해 중태에 빠진 것도 항쟁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중대한 고비에서 전두환이 4·13 호헌 조치라는 ‘치명적인 자살골’을 넣은 것도 항쟁이 전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각지에서 주말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1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시위를 벌였다. 서중석 교수는 “역사상 이런 일이 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6·10 국민 대회와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거쳐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지역 사람들이 지칠 만하니까 때맞춰, 마치 교대하듯이 광주, 전주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토록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성취한 승리였다.

7·8·9월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했나

‘도도한 민주화 물결’에서 7·8·9월에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투쟁으로 장기간 존속돼온 노동 통제 체제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고, 대대적인 탈법 파업 투쟁으로 노동 기본권을 유린한 노동 관계법을 무력화했다. 그 이전까지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 노동 조건을 노사 당사자의 단체 교섭으로 결정하게 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새 노조 결성, 어용 노조 민주화 등으로 노조 활동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노동자 대투쟁은 광범한 노동 대중을 단련시키고 사회, 정치 의식과 자신의 조직을 진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야말로 ‘10년을 하루에 뛰어넘은’ 거대한 비약을 이뤄냈다. 한계도 있었다. 대중적이고 대규모였지만 계획적, 조직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자연 발생적인 투쟁이었다. 조직적인 지도력도 약해서 투쟁 성과가 조직적 역량의 결집과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역별, 재벌 그룹별, 산업별 연대 투쟁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대개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서 연대를 꾀하지 못했고, 통일된 투쟁도 대개 추진하지 못했으며, 투쟁 목표에서도 단위 사업장에서 경제적 요구를 제기하는 데 그쳤고 전 계급적, 제도적 요구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투쟁 후반기에 전두환 정권, 사업주, 언론 등 지배 세력의 ‘불순 세력 개입’, ‘좌경 용공’ 등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것에 탄압까지 있자 노동자 대투쟁은 끝을 맺었다.

1987년 대선 패배, 누구의 책임인가

“1987년 대선에 양김 중 한 명만 나오고 5년 후인 1992년 대선에 다른 한 명이 나오기로 하면서 양김이 협력했다면 군부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명확하다. 그뿐 아니라 지역 갈등, 그중에서도 특히 영호남 갈등을 약화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6월항쟁을 계승해 민주주의를 크게 진전시키고 수구 냉전 세력, 극우 세력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이 가져온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양김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특히 재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그 부분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광주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 세력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전두환·노태우·신군부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신군부 정권에서 그래도 낫다는 얘기를 듣던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협력 행위를 합리화하려고만 했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노태우·신군부 집권으로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신군부 체제를 추종했던 자나 언론에 대한 제재는 불가능하게 됐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6월항쟁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현저히 실추시켰다.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은 상당 기간 더 이상 민주화 운동 세력의 단결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4월혁명을 이끌었던 학생들은 이승만이 쫓겨난 후에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대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수십 년간 반공 독재에 협력한 세력들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DJ 당파, YS 당파로 명명하고 하나의 파당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몰아세웠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도덕적, 정신적 지주가 약화되고,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상당 부분 방황과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

6월항쟁의 배경,
개헌 투쟁과 전두환의 반격

* 2·12총선 후 개헌 투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 5·3 인천 사태 이후 전두환은 어떤 방식으로 반격전을 폈나
* 남북 이산가족 첫 상봉은 어떻게 성사됐나

전두환·신군부 권력을 뒤흔든 1985년 2·12총선 이후 재야 운동 세력은 민통련으로 집결된다. 또 학생 운동권은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을 벌이고 구로 동맹 파업 등 노학 연대 투쟁에 나선다. 새로 등장한 선명 야당은 직선제 개헌 장외 투쟁을 전개해 개헌 열기는 최고조로 오른다. 그러나 5·3 인천 집회에서 운동권이 미국·전두환 정권뿐만 아니라 김영삼, 김대중이 이끄는 야당도 공격하자, 전두환의 총반격이 시작된다. 전두환은 비상 조치를 만지작거리며 유성환 국시 사건, 금강산댐 사건, 건국대 사태 등 대형 사건을 잇달아 일으킨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권은 이 과정을 천착하면서 KBS 시청료 거부 운동,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통해 6월항쟁의 주인공인 시민 세력이 부상하는 것을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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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

도서정보 : 김덕련, 서중석 | 2020-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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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

18~20권의 주제는 ‘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이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한국 현대사의 세 번째 ‘해방’이라고 평가한다. 1945년 8월 15일이 첫 번째 해방이라면 1960년 4월혁명은 두 번째 해방, 6월항쟁은 세 번째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방은 크고 깊었지만 분단 속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고, 두 번째 해방은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반동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세 번째 해방인 6월항쟁도 1987년 대선에 패배하는 등 갖은 풍파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세 번째 해방은 한국 사회에 기본적 자유, 자치적 시민 활동,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틀이 상당 부분 자리 잡게 만들었다. 6월항쟁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20권에서는 6월항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전개 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즉 이 세 권을 통해 6월항쟁 전후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6월항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눈으로만 바라다본 측면이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의 움직임, 전두환과 노태우의 갈등의 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6월항쟁이 가지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또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특히 장세동이 안기부장에서 물러난 게 6월항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3년 7개월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은 안기부장으로 전두환을 받들어왔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1987년 5·26 전면 개각으로 장세동은 안기부장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장세동이 안기부장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라고 서중석 교수는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과 이심전심으로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강경 일변도로 밀고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책에는 전두환이 비상 조치를 전제로 한 군 병력 배치 지시하고 6시간 만에 번복한 이유, 미국의 역할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그럼으로써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도 세세히 분석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은 김대중과 김영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는 6월항쟁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아주 생생하게 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 웅장한 대서사시나 교향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독재 정권의 속성상 박종철 고문 사망은 다른 때 같았으면 한낱 억울한 죽음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종철의 안타까운 죽음은 2·7 추도 대회, 3·3 평화 대행진, 5·18 고문 사망 은폐·조작 폭로를 거쳐 6·10 국민 대회로 불붙은 6월항쟁 내내 투쟁의 동력이 됐다. 그것과 더불어 이한열이 최루탄에 의해 중태에 빠진 것도 항쟁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중대한 고비에서 전두환이 4·13 호헌 조치라는 ‘치명적인 자살골’을 넣은 것도 항쟁이 전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각지에서 주말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1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시위를 벌였다. 서중석 교수는 “역사상 이런 일이 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6·10 국민 대회와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거쳐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지역 사람들이 지칠 만하니까 때맞춰, 마치 교대하듯이 광주, 전주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토록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성취한 승리였다.

7·8·9월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했나

‘도도한 민주화 물결’에서 7·8·9월에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투쟁으로 장기간 존속돼온 노동 통제 체제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고, 대대적인 탈법 파업 투쟁으로 노동 기본권을 유린한 노동 관계법을 무력화했다. 그 이전까지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 노동 조건을 노사 당사자의 단체 교섭으로 결정하게 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새 노조 결성, 어용 노조 민주화 등으로 노조 활동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노동자 대투쟁은 광범한 노동 대중을 단련시키고 사회, 정치 의식과 자신의 조직을 진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야말로 ‘10년을 하루에 뛰어넘은’ 거대한 비약을 이뤄냈다. 한계도 있었다. 대중적이고 대규모였지만 계획적, 조직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자연 발생적인 투쟁이었다. 조직적인 지도력도 약해서 투쟁 성과가 조직적 역량의 결집과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역별, 재벌 그룹별, 산업별 연대 투쟁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대개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서 연대를 꾀하지 못했고, 통일된 투쟁도 대개 추진하지 못했으며, 투쟁 목표에서도 단위 사업장에서 경제적 요구를 제기하는 데 그쳤고 전 계급적, 제도적 요구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투쟁 후반기에 전두환 정권, 사업주, 언론 등 지배 세력의 ‘불순 세력 개입’, ‘좌경 용공’ 등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것에 탄압까지 있자 노동자 대투쟁은 끝을 맺었다.

1987년 대선 패배, 누구의 책임인가

“1987년 대선에 양김 중 한 명만 나오고 5년 후인 1992년 대선에 다른 한 명이 나오기로 하면서 양김이 협력했다면 군부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명확하다. 그뿐 아니라 지역 갈등, 그중에서도 특히 영호남 갈등을 약화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6월항쟁을 계승해 민주주의를 크게 진전시키고 수구 냉전 세력, 극우 세력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이 가져온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양김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특히 재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그 부분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광주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 세력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전두환·노태우·신군부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신군부 정권에서 그래도 낫다는 얘기를 듣던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협력 행위를 합리화하려고만 했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노태우·신군부 집권으로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신군부 체제를 추종했던 자나 언론에 대한 제재는 불가능하게 됐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6월항쟁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현저히 실추시켰다.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은 상당 기간 더 이상 민주화 운동 세력의 단결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4월혁명을 이끌었던 학생들은 이승만이 쫓겨난 후에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대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수십 년간 반공 독재에 협력한 세력들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DJ 당파, YS 당파로 명명하고 하나의 파당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몰아세웠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도덕적, 정신적 지주가 약화되고,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상당 부분 방황과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

6월항쟁의 전개,
현대사를 바꾼 최대 동시다발 시위

* 은폐됐던 박종철 고문 사망 진실, 어떻게 드러났나
* 6월항쟁이 장엄한 항쟁으로 피어오른 이유는?
* 전두환은 왜 군 출동 지시를 번복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권에서는 민주대연합과 동시다발 투쟁이 박종철 추도 대회에서 결합되고,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또 국본과 자연발생적인 과감한 투쟁의 상호관계,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5·26 전면 개각과 안기부장 교체, 전두환과 노태우 측의 미묘한 갈등이 6월항쟁에 미친 영향에도 각별히 예의주시했다.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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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0

도서정보 : 김덕련, 서중석 | 2020-01-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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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

18~20권의 주제는 ‘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이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한국 현대사의 세 번째 ‘해방’이라고 평가한다. 1945년 8월 15일이 첫 번째 해방이라면 1960년 4월혁명은 두 번째 해방, 6월항쟁은 세 번째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방은 크고 깊었지만 분단 속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고, 두 번째 해방은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반동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세 번째 해방인 6월항쟁도 1987년 대선에 패배하는 등 갖은 풍파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세 번째 해방은 한국 사회에 기본적 자유, 자치적 시민 활동,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틀이 상당 부분 자리 잡게 만들었다. 6월항쟁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20권에서는 6월항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전개 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즉 이 세 권을 통해 6월항쟁 전후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6월항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눈으로만 바라다본 측면이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의 움직임, 전두환과 노태우의 갈등의 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6월항쟁이 가지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또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특히 장세동이 안기부장에서 물러난 게 6월항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3년 7개월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은 안기부장으로 전두환을 받들어왔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1987년 5·26 전면 개각으로 장세동은 안기부장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장세동이 안기부장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라고 서중석 교수는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과 이심전심으로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강경 일변도로 밀고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책에는 전두환이 비상 조치를 전제로 한 군 병력 배치 지시하고 6시간 만에 번복한 이유, 미국의 역할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그럼으로써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도 세세히 분석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은 김대중과 김영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는 6월항쟁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아주 생생하게 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 웅장한 대서사시나 교향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독재 정권의 속성상 박종철 고문 사망은 다른 때 같았으면 한낱 억울한 죽음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종철의 안타까운 죽음은 2·7 추도 대회, 3·3 평화 대행진, 5·18 고문 사망 은폐·조작 폭로를 거쳐 6·10 국민 대회로 불붙은 6월항쟁 내내 투쟁의 동력이 됐다. 그것과 더불어 이한열이 최루탄에 의해 중태에 빠진 것도 항쟁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중대한 고비에서 전두환이 4·13 호헌 조치라는 ‘치명적인 자살골’을 넣은 것도 항쟁이 전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각지에서 주말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1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시위를 벌였다. 서중석 교수는 “역사상 이런 일이 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6·10 국민 대회와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거쳐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지역 사람들이 지칠 만하니까 때맞춰, 마치 교대하듯이 광주, 전주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토록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성취한 승리였다.

7·8·9월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했나

‘도도한 민주화 물결’에서 7·8·9월에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투쟁으로 장기간 존속돼온 노동 통제 체제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고, 대대적인 탈법 파업 투쟁으로 노동 기본권을 유린한 노동 관계법을 무력화했다. 그 이전까지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 노동 조건을 노사 당사자의 단체 교섭으로 결정하게 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새 노조 결성, 어용 노조 민주화 등으로 노조 활동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노동자 대투쟁은 광범한 노동 대중을 단련시키고 사회, 정치 의식과 자신의 조직을 진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야말로 ‘10년을 하루에 뛰어넘은’ 거대한 비약을 이뤄냈다. 한계도 있었다. 대중적이고 대규모였지만 계획적, 조직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자연 발생적인 투쟁이었다. 조직적인 지도력도 약해서 투쟁 성과가 조직적 역량의 결집과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역별, 재벌 그룹별, 산업별 연대 투쟁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대개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서 연대를 꾀하지 못했고, 통일된 투쟁도 대개 추진하지 못했으며, 투쟁 목표에서도 단위 사업장에서 경제적 요구를 제기하는 데 그쳤고 전 계급적, 제도적 요구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투쟁 후반기에 전두환 정권, 사업주, 언론 등 지배 세력의 ‘불순 세력 개입’, ‘좌경 용공’ 등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것에 탄압까지 있자 노동자 대투쟁은 끝을 맺었다.

1987년 대선 패배, 누구의 책임인가

“1987년 대선에 양김 중 한 명만 나오고 5년 후인 1992년 대선에 다른 한 명이 나오기로 하면서 양김이 협력했다면 군부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명확하다. 그뿐 아니라 지역 갈등, 그중에서도 특히 영호남 갈등을 약화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6월항쟁을 계승해 민주주의를 크게 진전시키고 수구 냉전 세력, 극우 세력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이 가져온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양김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특히 재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그 부분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광주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 세력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전두환·노태우·신군부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신군부 정권에서 그래도 낫다는 얘기를 듣던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협력 행위를 합리화하려고만 했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노태우·신군부 집권으로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신군부 체제를 추종했던 자나 언론에 대한 제재는 불가능하게 됐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6월항쟁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현저히 실추시켰다.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은 상당 기간 더 이상 민주화 운동 세력의 단결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4월혁명을 이끌었던 학생들은 이승만이 쫓겨난 후에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대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수십 년간 반공 독재에 협력한 세력들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DJ 당파, YS 당파로 명명하고 하나의 파당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몰아세웠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도덕적, 정신적 지주가 약화되고,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상당 부분 방황과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0

도도한 민주화 물결,
전두환·노태우의 항복 선언, 그 후

* 노태우 6·29선언을 둘러싸고 왜 논쟁이 격화됐나
* 7·8·9월에 노동자는 어떻게 투쟁을 전개했나
* 1987년 대선 패배에서 양김과 운동권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6·29선언에 대해 노태우와 전두환은 자기 공로라고 서로 싸우면서, 자신들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한 반박을 구체적 자료로 낱낱이 추궁했다. 6·29선언이 나온 것은 군이 출동할 수 없어서였다. 당시 비상 조치가 발동되지 않은 데 대한 종래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전두환과 군, 노태우와 민정당, 미국의 입장을 각각 면밀히 검토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20권은 6월항쟁이 가져온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양김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특히 재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그 부분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아울러 총선에서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의 관계를 중시했고. 7·8·9월 노동자 대투쟁, 통일 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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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뒤에 남는 것들

도서정보 : 임수희 | 2020-0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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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불신의 사회에서
처벌만으로 다할 수 없는 정의를 질문하다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한 젊은 아빠와 그의 두 친구가 나란히 피고인석에 섰다. 평범해 보이는 이 청년들이 기소된 죄명은 무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 2명 이상이 공동하여 상해죄를 저지르면 원래 정해진 형의 1/2까지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만든 특별법상의 범죄였다. 무슨 일이었을까.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 하나가 있는 젊은 부부는 불화로 이혼소송을 하게 되었고, 별거를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젊은 아빠는 아이와도 헤어지게 된다. 아이의 아빠는 어느 날 아이를 보고 싶다고 아내에게 연락을 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아이 아빠가 아이를 건네받자 밖에서 아이 아빠가 미리 부탁해 와있던 두 친구가 나타나 아이 엄마를 양쪽에서 붙들었다. 그리고 아이 아빠는 아이를 안고 나가버렸다. 이 과정에서 아이 엄마의 손목이 삐었다.

당연히 아이 엄마는 경찰에 신고했고, 아이 아빠와 친구들은 입건이 된다. 곧 후회를 하고 아이를 며칠 안에 돌려주었지만, 이미 아이 아빠와 친구들은 형사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다. 경찰은 아이를 데려간 부분은 아이 아빠가 아이의 친권자이고 아이를 곧 돌려주었기에 문제 삼지 않았지만, 친구들을 시켜서 아이 엄마의 손목을 삐게 한 잘못은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상해죄를 저지른 것이므로 셋 다 기소가 된 것이다.

두 둘도 안 된 아이를 엄마와 강제로 떼어놓다니, 그 과정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겪은 충격과 공포, 고통을 생각하면 이는 중차대한 범죄행위다. 한편으로는 아빠도 친권자인데 아이를 왜 못 만났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혼 와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아이는 금방 엄마에게 돌아갔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 세 피고인은 어떤 판결을 받고, 어떤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기소가 되었으니 반드시 재판을 하고 판결이 선고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을 선고해야 마땅한 것일까? 피고인들은 아이를 돌려주었고,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으며, 제출된 수사기록을 증거로 하는 데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증거조사절차도 서류로 신속하게 끝났다. 판사가 그저 형을 정해서 선고하는 절차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형을 선고하고 나면, 모든 상황은 끝나는 것일까? 피고인들이 형을 선고받아 징역을 가거나 벌금을 내면 이 일의 당사자들, 특히 피해자인 아이의 엄마와 아이의 삶은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의 아빠가 벌금을 내고 징역을 가고 나면, 이혼 후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아이의 엄마와, 부모가 이혼을 하더라도 엄마와 아빠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단지 법은 처벌을 하고 나면 끝인 것일까? 가해행위 안의 다양한 역동을 보지 않은 채, 수사와 기소, 재판에서 ‘단지 남자들이 공동하여 피해 여성을 꽉 붙잡아 손목을 삐게 한 행위’에 대해서만 미시적으로 다루는 것은 맞는 것일까?

“어떤 가해행위가 있을 때, 그 행위가 침해하는 것은 단순히 국가가 금지한 어떤 법 위반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준 것과 함께 아이의 성장 과정과 발달 과정에 해악을 미치고, 아이 엄마에게는 신체적 손상과 정신적 충격, 심각한 고통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더라도 계속되어야 하는 부모자식 관계, 자녀의 양육을 위해 맺어가야 하는 부모 간의 협력 관계가 파괴된 것이고, 이 파괴된 관계가 초래하는 가족 공동체 내에서의 공포와 긴장, 그리고 깨어진 평화와 희망의 부재까지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여기 관여된 가족 내 모든 사람들의 ‘삶의 파괴’를 의미합니다.”(32쪽)

그렇다면 질문이 조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사건의 당사자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고, 특히 이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피해는 어떻게 해야 더 깊이 있게 회복될 수 있는지 함께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 대한 처벌을 통해 대가를 치르는 것도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정말 충분한 것일까? 우리의 사법 절차 안에서 좀 더 깊이 있는 피해의 회복을 도모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로부터 시작한다.

처벌을 넘어선 정의를 찾아가는 여정

이 책의 저자는 판사다. 추상적인 법 이론을 다루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실제의 사람들이 얽혀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며 법적 판결을 내리는 실무자다. 이 책의 저자인 임수희 판사는 판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법정에서 마주하며, 재판절차가 단지 시시비비의 판단만을 할 뿐 사람들의 삶에는 청사진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고민해왔다. 그러던 와중 회복적 사법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우리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의 삶과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사법이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다.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RJ)이란 범죄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형사사법체계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범죄로 인한 피해의 실질적 회복과 진정한 책임을 기초로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피고인과 피해자 등 이해관계자가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그로써 지역공동체의 평화 또한 추구하고자 하는 패러다임이다.) 그러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던 당시 우연히 형사사법에 회복적 사법을 적용하는 법원의 시범실시 사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공감적 대화를 통한 이해, 사과, 치유, 진정한 책임과 용서, 피해회복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도했다.

그는 재판실무의 경험과 직접 진행했던 형사재판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을 통해 “응보사법과 회복적 사법은 수레의 양축처럼 양자가 모두 있어야 하고, 각각 단단히 서야 다른 하나도 단단히 설 수 있으며 형사사법이라는 수레를 제 기능대로 굴러가게 할 수 있다고 보게 되었”(247~248쪽)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저자는 아직 우리의 사법절차에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회복적 사법의 이야기를 조단조단 풀어놓으며 우리를 회복적 사법의 여정으로 초대한다.

이 책은 형사사법의 한계로부터 출발해, 회복적 사법의 핵심인 ‘대화’와 그 대화가 펼쳐지는 회복적 사법의 장(場)들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형사사법절차를 따라 경찰, 검찰, 법원 각 단계의 회복적 사법에 관한 현안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응보사법으로 다시 돌아와, 그것이 여전히 어떻게 중요한지, 그리고 회복적 사법과 응보사법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보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피해자의 자리와 목소리

저자는 이 회복적 사법의 여정 속에서 피해자의 자리와 목소리를 중요하게 짚는다. 헌법상 피해자도 재판에서 진술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권리가 있지만, 범죄 가해자의 처벌에 집중하는 한국의 형사사법절차는 피해자가 수동적, 객체적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도록 세팅되어 있다. 현재 우리 형사절차 속에서 범죄사건의 ‘피해자’는 수사단계에서는 ‘참고인’, 재판단계에서는 ‘증인’이 된다. 범죄피해의 당사자이지만 피해자는 범죄 수사나 공판에서 주체적 지위로 나설 수 없고, 범죄자와 국가 사이의 대립구도 속에서 증인 혹은 참고인이라는 증거방법에 불과한 지위에 놓이는 것이다.

“즉,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의 유죄 입증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위주로 신문되고, 그 외에는 설령 피해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 하더라도 부수적이거나 무용한 것으로 취급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피고인에게는 피해자를 반대신문할 기회를 주게 되지요. 반대신문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해서 그 신빙성을 흔들어놓음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팅하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충분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60쪽)

그런데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직접 말하는 것은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이 치유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피해자 자신이 자기 입을 열어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는 것’. 이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복합적 의미를 가지는데,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피해자 자신이 그 내부에서 피해로부터 해방되며 피해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즉, 피해자 자신이 내적으로 피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럼으로써 그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는 큰 의미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57쪽)

게다가 형사절차 속에서 범죄피해자 입장에서는 범죄로 인해 피해는 자신이 입었는데, 막상 가해자가 피해자가 아닌 판사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국가가 나서서 범죄 가해자를 단죄하는 것은 사적 복수를 금지해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이루는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적 기관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범죄 가해자의 행위를 확정하고 책임원칙에 입각해 처결을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인류사회의 진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범죄피해를 입은 당사자임에도 부수적이고 보조적인 지위에 머물게 된다. 또한 국가가 전면에 나서서 범죄 가해자를 상대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범죄자가 불필요한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적법절차를 지키고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해지는데, 이때 피해자의 회복과 구제는 또다시 2차적 문제가 된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고, 범죄피해자의 깊이 있는 피해의 회복이 중요한데도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재판이라는 절차가 결국 어떤 말을 어떻게 하더라도 피고인을 처벌할 것인가, 중하게 처벌할 것인가, 약하게 처벌할 것인가라는 결론 외에는 도달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지 묻는다. 그리고 이어 피해자가 주체적인 지위로 존중받을 수 있는 회복적 사법에 기반한 절차가 주어질 때 이 절차 속에서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피해가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혹시라도 우리가 재판의 목적과 기능을 달리 설정하여, 피해자가 ‘말하는’ 것을 단지 피고인에 대한 처벌 유무 및 형의 양정의 자료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가 말하는 자체로써 그의 상처를 치유할 기회가 되게 할 수는 없을까요. 피고인 역시 피해자의 말을 탄핵하거나 반대신문을 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알기 위해 듣고 이를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공감할 기회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피고인이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 그에 공감하여 피해를 회복시키고 자발적 책임으로 나아가게 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써 재판절차를 열어갈 수는 없을까요.”(66쪽)

“응보가 야만이 아니고 용서가 도덕이 아니다”

저자는 나아가 회복적 사법이라는 패러다임이 범죄의 가해자에게도 진정한 반성의 기회를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이것이 사회통합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회복적 사법에 기반한 적절한 절차와 유능한 절차조력인 내지는 조정자가 제공된다면, 또한 그러한 기회를 통해 피해자와 대화하고 소통하게 되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저지른 짓이 피해자에게 끼친 실질적 해악과 영향을 더 잘 알게 되어 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들에게 우리 형사사법절차는 ‘방어권’의 보장이라는 이름하에 그중 일부만을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하고 그조차도 피해자를 향해서가 아니라 국가나 판사를 향해서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피해자와 어떤 말을 하고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특히 피해를 ‘갚을 수 없는’ 것이라고 느끼거나 저지른 짓이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어떤 것이어서 적절히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종종 피고인들은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피고인들에게 적절한 절차와 유능한 절차조력인 내지 조정자가 제공된다면 어떨까요. 가해자에게 후회와 반성과 사과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떨까요. 그러한 표현을 직접 피해자를 향해서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또는 방법이 주어진다면요.” (219~220쪽)

이러한 회복적 사법 절차를 통해 피고인에게 양형상의 이익을 제공하고, 그들을 좀 더 수월하게 사회 내로 재통합시켜 재범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실제로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에서 회복적 사법 절차를 피고인들이 만족스러워하고, 이는 재범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피고인이 회복적 사법 프로세스를 통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에게 벌어진 자기 행위의 결과를 좀 더 실질적으로 이해해서 피해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 형사처벌을 넘어서는 진정한 책임을 지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재범을 덜 저지르고 사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222쪽)

저자는 현행의 응보사법과 회복적 사법이 대척점에 있지 않다고 본다. 수레의 양축으로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받쳐주는 관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특히 회복적 사법의 도입이 기존의 응보사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양자가 각각의 굳건한 영역을 가지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조건이 되거나 서로를 완성시킨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는다. 응보사법의 확립이야말로, 회복적 사법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응보적 형사절차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이라면 피고인의 입장에서 응보적 형사책임을 회피할 우회적 수단을 모색할 것이고 실제로 그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굳이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회복적 사법을 따라 더 나아간 책임을 직면하고 떠안을 아무런 이유가 없”(248쪽)기 때문이다. 또한 적법절차와 책임원칙이라는 응보사법의 핵심이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조건이라면 자칫 피고인의 인권침해 혹은 피해자가 국가도 지우지 못할 과도한 부담이나 처분을 피고인에게 강요하려 할 수도 있다.

“나아가 응보사법의 확립하에서 회복적 사법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하여 종래의 형사책임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었던 수준에서 질적으로 더 나아간 책임을 실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들, 즉 금전적 배상 등은 물론 정서적, 관계적 회복 등을 포함한 실질적 피해회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결국 이는 응보사법의 핵심인 ‘책임’을 더 높은 차원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249쪽)

저자는 “응보가 야만이 아니고 용서가 도덕이 아니라, 응보와 용서(회복) 양자 모두가 인간 사회 유지에 필요한 도구적 요소이자 더 많은 개인이 안전하게 살아남을 인간협력관계의 조건”(250쪽)이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응당한 처벌뿐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진지한 책임을 지고, 실질적 피해회복이 이루어지며, 치유가 일어날 때 당사자들이 사법절차에 더 만족할 수 있고 이것이 나아가 사법신뢰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될 때 법이 더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와 사회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구매가격 : 10,500 원

엄마는 생각쟁이 2020년 2월호

도서정보 : 엄마는 생각쟁이 편집부 | 2019-12-0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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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생각쟁이 2020년 02월호]
<엄마는 생각쟁이>는 교육, 육아, 도서, 문화, 나들이 등 엄마를 위한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월간지입니다.

구매가격 : 1,200 원

월간 샘터 2020년 3월호

도서정보 : 샘터편집부 | 2020-02-10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월간 <샘터>는 1970년 4월 창간한 국내 최장수 월간 교양지입니다.
창간 이후 49년 동안 <샘터>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기사를 선별, 게재하여 독자에게 용기와 희망, 행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동심은 모든 어른의 마음의 고향’이라는 창간의 다짐이 말해 주듯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순수한 감성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피천득, 법정, 최인호, 이해인, 정채봉, 장영희 선생 등 국내 최고의 지성의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를 통해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명사들의 품격 높은 산문에서부터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까지 감동 가득한 글과 문화 예술 정보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샘터> 정기구독료의 1%를 사회에 환원하는 한편, 독자가 모금하는 ‘샘물통장’을 만들어 매년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범함 사람들을 위한 행복’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독자 곁을 지켜가는 <샘터>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구매가격 : 2,660 원

우리 이만 헤어져요

도서정보 : 김현원 | 2019-08-13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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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돕기도, 막기도 하는
변호사의 이야기

“수십 년을 맞고 살았는데… 그 인간이 나보고 몸만 나가라네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이가 내 친자식이 아니래요.”
“시어머니가 부부 관계까지 간섭하세요.”
“제 와이프랑 제 친구 남편이 바람이 났어요.”

무슨 아침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 같겠지만, 불행히도 이는 모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 최변의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최변이 직접 다뤘던 사건, 법정에서 방청했던 사건, 다른 이에게 전해 들은 사건 들을 조금씩 각색해 최대한 실화에 가깝게 재구성한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이를 다루는 최변의 성숙한 시각과 진정성 있는 태도 덕분에, 이 작품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이들의 호평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최근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혼은 대놓고 말하기에 금기시되는 주제 중 하나다. 최변은 이 점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이런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이혼 변호사는 이혼하지 말라고는 안 할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여전히 서로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고 이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커플들의 이혼을 막았을 때 얼마나 큰 뿌듯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평생 집안에 헌신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라고는 내본 적 없는 순한 이들에게 당당히 제 권리를 찾아주며 이혼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었을 때의 자부심도 빼놓지 않는다.


“삶을 헤쳐 나가는 법을 알려준
의뢰인분들이 내 가장 큰 스승이다”

“제 마음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나 봐요. 이제 이혼할래요. 하고 싶어요.”
“저 재혼해요. 새로운 사람 만났는데 너무 잘해줘서요.”
“이번에 작은 가게 하나 차렸어요. 사업이 아주 적성이네요.”
“저 그냥 이혼 안 하려고요. 한 번 더 노력해볼게요.”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던 배우자와 헤어지기로 결정했을 때, 그 상처와 괴로움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이혼이 인생에서 만난 가장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잘 감내하고 극복해낸 이들을 이야기하며 최변은 “삶을 헤쳐 나가는 법을 알려준 내 의뢰인분들이, 내게는 가장 큰 스승”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최변의 성장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구성을 취한다. 1장에서는 이혼 변호사가 된 계기와 변호사 된 직후의 어리바리 시절을 다룬다. 2장에는 결혼 전후 변호사 초창기 시절, 때로는 장기를 살려 의뢰인을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하고 법정에서 투사처럼 맞서기도 했던 좌충우돌 이야기를, 3장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마주했던 정말 기가 막힌 각양각색 사연들과 이를 통해 느낀 점들을 넣었다. 마지막 4장은 이혼은 물론 결혼 생활과 인생에 대한 최변의 성숙해진 시각을 담았다.
이 작품의 메시지가 결코 가볍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김현원 작가 특유의 귀여운 그림체는 심각한 이야기조차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비단 결혼과 이혼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책이 커다란 선물로 느껴질 것이다.

구매가격 : 9,660 원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도서정보 : Kubota Yuki | 2019-11-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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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나라에 살 땐 불행했는데
불친절한 나라에 와서 행복해졌다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나라에서 살 땐 불행했다.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나라에 와서 행복해졌다.” 저자는 일본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였다. 밤낮으로 일해도 일은 끝나지 않았고 남에게 끝도 없이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할 일과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늘어갔다. 마음의 여유를 잃고 도망치다시피 독일에 도착했을 때, 이방인에겐 모든 것이 의문스러웠다. 모두가 빈둥거리는데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걸까. 자신들도 ‘서비스 불모지(不毛地)’라 우스개 소리할 만큼 불친절한데 왜 싸우지 않는 걸까.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수수께끼는 독일 생활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1년에 한 달 휴가를 가니까 남도 내가 쉬는 만큼 동등하게 쉬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억지로 서비스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남에게 서비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희생하지 않으니 눈치 볼 필요 없고 서로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 없는 명쾌한 이상 사회!

덴마크 휘게와 닮은 듯 다른
독일판 휘게 ‘게뮈트리히’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가 서점에 등장하고 몇 년, 그 뒤를 따라 스웨덴 라곰(Lagom), 프랑스의 오 ƒ?Au calme), 네덜란드의 헤젤러흐(Hezellig) 등 일상 속 소박하고 행복을 뜻하는 단어가 잇따라 등장했다. 독일어에도 휘게와 닮은 단어가 있다. ‘안락하고 편하다’, ‘ 느긋하게 쉰다’라는 뜻의 게뮈트리히(gemutlich)다. 일상 대화에서는 ‘게뮈트리히한 집’이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에서 한 발 나아가 내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작불 옆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휘게라면, 침대에 좋아하는 색의 소품을 놓는 것, 손님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하는 것보다 식탁에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 더 차리는 것처럼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보잘것없을 만큼 사소한 일이 바로 게뮈트리히다. 책은 이처럼 소소하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 없이 오늘부터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게뮈트리히’한 행복의 기술을 전하고 있다.

남을 위한 일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책은 저자가 독일에서 10년간 생활하며 배운 독일인의 일하기, 쉬기, 살기, 먹기, 꾸미기 방법을 5개의 챕터에 걸쳐 소개한다. 일하고 쉬고 살고 먹고 꾸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상을 하나의 챕터로 묶어서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과 독일인의 일상을 하나씩 비교해 보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저자는 책 속에서 “독일인처럼 사세요. 그럼 인생의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조금 다른 세계관의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의 일상을 조곤조곤 전해줄 뿐이다. 새 시대에 필요한 생존 전략도 거창한 성공 노하우도 없지만, 덕분에 이웃집에 독일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상을 지켜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살아가도 잘 돌아가는 사회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깨닫는다. 건강한 개인주의야말로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데 익숙한 우리가 진정한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해 첫 번째로 가져야 할 마음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구매가격 : 9,660 원

나는 세번 죽었습니다

도서정보 : 손혜진 | 2020-01-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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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스물여섯 해의 기록

사람은 몇 번 태어날까. 이 책의 저자 손혜진은 스스로 네 번 태어났다고 말한다. 살면서 생사를 오가는 수술대 위에 세 번 눕게 되었다. 매번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이 끝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식이 돌아오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저자의 투병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수개월 동안 계속된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후 ‘축구공만 한’ 혹이 있어 떼어내야 한다는 진단을 듣는다. 소아암, 병명은 신경아세포종이었다. 수년간의 항암치료 후 뒤늦게 학교에 적응할 무렵, 이번에는 희귀암인 GIST가 찾아온다. 한창 취업 준비에 여념 없던 스물두 살, 희귀암이 재발하면서 그녀의 삶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늘에 지지 않고, 나는 오늘 행복하기로 했다”
두렵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이에게 건네는 위안

저자는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를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풀어놓는다. 수술대에 오르면서 오히려 엄마를 걱정하는 여덟 살 아이,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마지막 사진이 될까 가슴 졸이는 아홉 살 아이의 순수한 눈빛이 책에 담겼다. 또 남들 앞에서 소변 주머니가 채워지는 게 부끄러운, 수술을 앞두고 남몰래 가족에 안녕을 고하는 열여덟 살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가 있다. 밤잠을 아껴가며 공부하다 갑작스러운 암 재발 소식에 좌절하는 이십 대 청춘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저자는 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홀로 간직한 아픔을 조금 덜고, 잠시만이라도 덜 외로우면 좋겠다고.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가 빛나는 것은 거듭된 시련에 지지 않고 삶, 사랑, 행복을 지켜나가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수술 후 스스로 움직이는 일, 치료비 부담을 덜어준 보험,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사람들…. 저자는 병이야말로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며 자신의 삶에 감사한다. 삶에 드리운 그늘에 결코 지지 않는 저자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작은 용기를 선사한다.

구매가격 : 9,800 원

작은 아씨들 무비 아트북(LITTLE WOMEN THE MOVIE ARTBOOK)

도서정보 : GINA MCLNTYRE | 2020-02-1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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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차세대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의 모든 것을 담아낸 공식 메이킹북!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영화 TOP10★
★제32회 미국 시카고 영화비평가협회(CFCA) 4관왕★
★제77회 골든 글로브,골든 글로브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음악상 노미네이트 ★
★제25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9개 부문 노미네이트★

‘여성’과 ‘예술’을 말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이름, ‘조 마치’

“난로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건 딱 질색이야.
난 모험이 좋아. 나가서 재미있는 일을 찾아볼 거야.” -조 마치 (p.41)

낡은 외투에 고무장화, 한 손에는 빗자루, 다른 한 손에는 삽을 든 채 쿵쾅거리며 현관을 나서는 소녀. 어디 가느냐는 언니의 물음에 “운동하러 가.” 하고 ‘쿨’하게 말하는 소녀의 이름은 ‘조 마치’다. ‘작은 아씨들’의 둘째인 그녀는 그 존재가 ‘넘사벽’이었던 당대부터 태어난 지 150년이 되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여성들에게 ‘워너비’이자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인생의 소울메이트를 심지어 이성 가운데서 발견하지만, 그 ‘행운’을 스스로 박차고, 오직 글쓰기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조. 그녀가 지금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울림을 줄까?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여성 영화 제작자들도 그 점이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 같다. 1994년, 이미 한 차례 『작은 아씨들』을 영화화했던 그들이 25년 뒤, 또 한 편의 <작은 아씨들>을 만들기 위해 뭉쳤으니 말이다. 그뿐 아니다. 영화 <레이디 버드>(2017)로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배우에 이어 감독으로서의 재능까지 인정받은 차세대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감독을, 그런 감독에게 “배우라기보다는 창의적인 파트너”라고 인정받은 시얼샤 로넌이 ‘조 마치’ 역을 맡았다. 우리의 ‘조’가 어느 때보다 ‘조’다울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다.

“모든 세대가 그들의 어린 시절을 형성해 온 고전 영화와 도서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우리 시대를 위한 것’을 찾아볼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994년의 우리에게는 특정한 종류의 『작은 아씨들』이 필요했는데, 2019년에도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어요. […] 우리는 이야기를 가져야만 해요.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고, 우리 시대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면서 극장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로빈 스위코드(<작은 아씨들> 공동 제작자) (p. 21)

영화 개봉과 함께 원작 소설인 『작은 아씨들』과, 영화 <작은 아씨들>의 해설서인 『작은 아씨들 무비 아트북』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의 팬으로 2019년판 영화 <작은 아씨들>을 통해 다시 한번 감동받기 원하는 고전적인 팬들은 물론, 아직 작품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도 2020년은 완벽한 조건이다. 『작은 아씨들 무비 아트북』에는 세계적인 고전을 써낸 루이자 메이 올컷에 대한 전기적인 사실부터, 어린 시절부터 『작은 아씨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제작진과 출연진들이 들려주는 영화 제작 배경, 원작과 등장인물에 관한 깊고도 참신한 이해, 시대적 배경을 가진 고전을 스크린에 옮기는 작업이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영화의 제작 과정까지 충실히 담겨 있다. 읽고 보는 것만으로 고전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감독과 배우 인터뷰, 스틸컷,
영화 속 음식, 의상, 소품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

『작은 아씨들 무비 아트북』에는 감독과 배우들의 깊이 있는 인터뷰뿐 아니라 영화 속 음식, 의상, 소품 등을 담당한 제작진들의 목소리도 충실히 담겨 있다. 영화 속에서 조가 집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며 들고 간 여행 가방은 실제 1800년대 여행 가방을 어렵게 대여한 것으로, 소품 감독 데이비드 굴릭은 조가 가방을 너무 적게 가져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뉴욕에 갈 때 들고 갈 물건들로 스크린 테스트까지 진행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의상 디자이너 재클린 듀런은 베스가 죽고 가족들이 입는 애도 의상을 디자인하며 각 인물들이 느낄 슬픔에 따라 색과 의상 스타일을 달리했다. 마미는 검은색으로, 메그는 그보다 한 낮은 단계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회색으로. 조는 베스가 죽고 곧 옷을 준비할 성격이 아님을 고려해 베스가 죽기 전부터 애도 의상을 입고 있도록 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크리스틴 토빈은 빅토리아 시대 정통 요리법을 마치 가족의 실생활에 맞게 단순한 조리법으로 재탄생시켰다. 안무가 모니카 빌 반스는 네 번의 춤 장면을 위해 배우들과 2주에 걸쳐 20시간짜리 리허설을 진행했고, 촬영 때에는 (이후에 사용될 영화 음악이 아닌) 데이비드 보위를 틀어놓는 전략으로 배우들의 풍부한 감성을 이끌어냈다.
2019년판 영화 <작은 아씨들>은 감독 자신이 밝히고 있듯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지만 시작 부분은 원작과 다르다. 아버지 없이 지내는 첫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마치 자매들의 대화가 아니라, 1868년 가을 뉴욕, 조가 초조함을 털어버리고 자신의 소설을 팔기 위해 대담하게 출판사 사무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바다 건너 파리에서는 막냇동생 에이미가 다른 화가 몇 명과 함께 간 소풍에서 자세를 잡은 신사 둘과 숙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콩코드의 집에 남은 베스는 텅 빈 방에서 홀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근처에 사는 메그는 소박한 자기 집에서 크랜베리 잼을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다 연이은 실패에 좌절감을 느껴 흐느끼는 중인데, 쌍둥이 자녀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그녀의 기분을 풀어준다. 성인이 된 마치 자매들에게 언니, 동생,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들에게서는 무엇이 사라졌고,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작은 아씨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구매가격 : 21,000 원

하루 5분 공부 각오

도서정보 : 한재우 | 2020-02-1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도서 소개

하루 한 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할 각오가 생긴다!
1년 365일 날마다 ‘공부하는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공부가 너무도 힘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부 자극 팟캐스트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와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부 멘토로 자리한 한재우 저자가 신작 『하루 5분 공부 각오』를 21세기북스에서 출간했다. 『하루 5분 공부 각오』는 제목 그대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단 5분의 시간을 내어 하루 한 편의 글을 읽음으로써 공부에 임하는 각오를 강하게 다질 수 있는 책이다. 자기 신뢰, 학습 원리, 공부 원칙, 생활 관리, 멘탈 관리의 ‘공부의 절대 5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 한 편씩 1년 365일 동안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마음 챙김’ 페이지를 2주마다 배치해 공부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험생, 취준생, 고시생 등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과 함께하는 그 순간부터 합격과 성공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 출판사 서평

하루 한 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할 각오가 생긴다!
1년 365일 날마다 ‘공부하는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인백기천(人百己千) 남들이 100번을 한다면 나는 1,000번을 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계획을 세울 때마다 언제나 목록에 올리는 항목이 있다. 바로 ‘공부’. 사람들에게 공부는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작년에도, 올해에도, 내년에도 작심삼일은 서글프게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큰일입니다” 등 공부에 대한 고민 역시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매번 반복된다. 공부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공부가 너무도 힘든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공부 자극 팟캐스트 〈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와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부 멘토로 자리한 한재우 저자가 신작 『하루 5분 공부 각오』를 21세기북스에서 출간했다. 『하루 5분 공부 각오』는 제목 그대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단 5분의 시간을 내어 하루 한 편의 글을 읽음으로써 공부에 임하는 각오를 강하게 다질 수 있는 책이다. 자기 신뢰, 학습 원리, 공부 원칙, 생활 관리, 멘탈 관리의 ‘공부의 절대 5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 한 편씩 1년 365일 동안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기에 ‘마음 챙김’ 페이지를 2주마다 배치해 공부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험생, 취준생, 고시생 등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과 함께하는 그 순간부터 합격과 성공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이다.

의미 있는 한 가지 행동을 매일 같이 빠짐없이 하다 보면 우리 안에 힘이 생긴다. 의지력, 실천력, 혹은 내공이라고도 불리는 힘이다. 공부는 사실 그 힘으로 한다. 근원적인 힘이 크고 깊은 사람에게 공부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여러분이 공부하는 동안 『하루 5분 공부 각오』를 매일 한 장씩만 읽기를. 원래 그런 의도로 쓰인 책이다. 365일 동안 매일 그렇게 하는 사람은 내면에 반드시 강한 힘이 영글기 마련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실 공부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매일매일 공부로써 스스로를 단련하라!
‘공부의 절대 5원칙’으로 365일 공부 내공 쌓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검도 역사를 통틀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우승 기록을 남긴 미야자키 마사히로는 “‘강해지고 싶다’는 강한 기분을 가지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잘하고 싶다’는 강한 기분을 각오로 다지는 사람은 반드시 공부를 잘하게 된다. 날마다 공부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공부의 절대 5원칙’을 제시했다.

① 자기 신뢰: 타고난 머리는 없으며 올바른 방법과 충분한 노력만 있으면 누구나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② 학습 원리: 뇌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 효과적인 학습법을 안다.
③ 공부 원칙: ‘운동, 목표, 반복, 몰입, 틈틈이’의 5가지 원칙을 일상에 적용해 자신만의 공부 노하우를 갖는다.
④ 생활 관리: ‘습관, 식사, 수면, 시간, 루틴’의 5가지 분야에서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익힌다.
⑤ 멘탈 관리: 좌절감, 슬럼프, 무기력 등 공부하는 동안 흔히 찾아오는 멘탈 문제를 극복하고 마음을 컨트롤할 줄 안다.

공부의 절대 5원칙은 서커스의 곡예사가 막대기 위에서 동시에 돌리는 여러 개의 접시처럼 공부하는 내내 모두 지켜야 할 것들이다. 숙련된 곡예사는 회전이 느려진 접시를 톡톡 쳐주는 방식으로 모든 접시를 빙글빙글 돌린다. 회전이 멈추지 않는 한 접시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실력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공부의 절대 5원칙 중 부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것 때문에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고치면 된다.

자신의 마음을 능숙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비결
『하루 5분 공부 각오』를 곁에 두고 최선의 공부 마인드를 유지하라!
“진짜 공부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하루 5분 공부 각오』는 공부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하루 한 장씩 읽고 공부하는 이유와 목표를 떠올린 후에 의욕이 충만한 상태로 공부에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였다. 여기에 공부하는 모두가 두려움이나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슬럼프를 현명하게 이겨내면서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온전히 공부에만 쏟아내길 바라는 마음 또한 책 속에 오롯이 담았다.
저자는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단언한다.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끼리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있는 것이라 믿어도 좋다. 『하루 5분 공부 각오』는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사람 모두가 공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강한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당신이 365일 동안 매일 1장씩 읽기를 바라며 이 책을 집필했다. 나의 바람대로 지금 당신이 365일째 아침마다 이 책을 읽고 있다면, 지난 1년은 당신에게 커다란 성공 경험일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기를. 당신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당신 역시 성공은 시간문제다.

- Day 365 당신 역시 성공은 시간문제일 뿐 중에서


◎ 상세 이미지






◎ 책 속으로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원인이 있겠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당신이 항상 제자리인 이유는 항상 하던 대로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당신이 항상 해오던 일을 하면, 당신은 항상 얻던 것만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태도로 공부한다면 늘 얻던 것만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시간관리든, 목표 설정이든, 집중의 정도든, 공부하는 자세든,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이든 말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어제와 오늘처럼 공부하는 한, 내일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한 가지를 더 기억해야 한다. 제자리걸음을 하더라도 신발은 닳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19p, 〈Day 002 - 당신의 공부가 항상 제자리걸음인 이유〉 중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강물을 막고 제방을 쌓는 것과 같다. 제방에 생긴 작은 구멍을 막지 않으면 처음에는 졸졸 물이 샐 뿐이지만, 점차 내용이 깊어질수록 압력이 늘어나 구멍은 점점 커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될 대로 되라'고 공부를 포기하는 순간, 제방은 와르르 무너지고 마을은 수몰되어버린다.
‘적당히’ 공부해서는 안 된다. 영국 소설가 휴 월폴Hugh Walpole은 “‘적당히’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다”라고 경고했다. 당신이 오늘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어제 만든 구멍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 구멍을 만들고 있다면 내일은 그것으로 인해 무너질지도 모른다.
- 61p, 〈Day 044 - 오늘 겪는 어려움은 어제 만든 구멍 때문이다〉 중에서

공부가 힘에 부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다’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있다. 한계는 그렇게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 한계를 둔다. ‘이건 내게 무리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예단한 한계는 진정한 경계선이 아니다. 거기서 멈추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개운하지 않다. 사실 당신은 그 너머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길.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위대한 존재니까.
- 109p, 〈Day 092 -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위대하다〉 중에서

타고난 재능이냐 후천적 노력이냐의 논쟁은 아직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과제다. 그러나 우리는 평발의 악조건을 딛고 영광의 정점에 섰던 축구 선수 박지성과 야구에는 왼손 투수가 더 유리하다는 말을 듣고서 일부러 왼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던 ‘오른손잡이’ 왼손 투수 류현진을 보았다.
연구 결과가 어떠하든 노력으로 재능을 이겨낸 사람들이 눈앞에 있다. 재능의 비중이 어떠하건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땀을 흘리는 것 말이다. 야구 선수 이승엽을 '라이언 킹'으로 만든 것은 다음과 같은 그의 좌우명이었다.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 151p, 〈Day 134 - 노력으로 재능을 이겨낸 사람들〉 중에서

당신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 당신은 공부하는 내내 좌절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결과는 당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며 당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모든 일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을 낸 사람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을 뜻한다. 당신은 합격생이 아니라 매일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김연수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라고 했다. 당신이 제대로 소원을 빌면 우주 역시 당신을 도울 것이다.
- 238p, 〈Day 221 - ‘어떤 사람’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 중에서

나중에 운전을 배우다가 알았다. 눈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나는 두려움이 대상인 골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골대를 바라보니 골대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물이 아무리 두렵더라도 운전자는 장애물이 아니라 가야 할 길을 보아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주목하는 것에 끌리게 되어 있다. 장애물을 보는 자는 장애물에 부딪히고, 목표를 보는 자는 목표에 닿는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방향을 결정한다.
- 316p, 〈Day 299 - 장애물을 보는 사람은 장애물로 향한다〉 중에서

구매가격 : 12,640 원

이사도라 문 8: 놀이공원에 가다

도서정보 : 해리엇 먼캐스터 | 2020-02-11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반은 요정, 반은 뱀파이어!
특별해서 평범한 ★★ 이사도라 문 ★★이
처음으로 인간 놀이공원에 가요!





◎ 도서 소개

“반짝반짝 놀이공원! 주말에 만나요!”

뱀파이어 요정 이사도라 문은
처음으로 인간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어요.
씽씽 날아다니는 롤러코스터,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고소한 핫도그랑 폭신한 솜사탕까지!

드디어 반짝반짝 놀이공원에 가는 날!
하지만 이사도라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반짝반짝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놀이공원에 살짝
마법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요?




■ “우리가 인간 놀이공원을 더 재미있게 바꾸면 돼!”

요정 엄마와 뱀파이어 아빠를 반씩 닮은 뱀파이어 요정, 이사도라 문은 아직 인간 놀이공원에 가본 적이 없어요. 깜깜한 밤에 촛불을 켜고 타는 뱀파이어 관 씽씽 열차가 있는 뱀파이어 놀이공원이랑 아름다운 숲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꽃송이를 탈 수 있는 요정 놀이동산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사도라는 무엇보다 멋진 회전목마랑 달콤한 솜사탕, 반짝이는 꼬마전구가 있는 반짝반짝 놀이공원을 훨씬 가보고 싶답니다. 게다가 딱 다음 주 주말에만 하거든요!
겨우겨우 엄마 아빠를 설득해서 이사도라는 장난꾸러기 사촌 마녀 요정 미라벨과 마법사 요정 윌버와 함께 반짝반짝 놀이공원으로 향해요. 마법을 절대 쓰지 않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아내고요. 인간이 많은 놀이공원에서 마법을 쓰면 다들 깜짝 놀랄 수도 있으니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반짝반짝 놀이공원에 도착한 이사도라. 하지만 놀이공원은 이사도라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어요. 줄무늬 텐트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놀이 기구도 낡아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지요. 놀이공원까지 앞장선 이사도라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다들 긍정적인 마음으로 놀이공원을 최대한 즐기기로 해요. 손님도 거의 없어서 풀이 죽은 매표소 아저씨를 위해 이사도라의 가족들은 놀이 기구를 두 번씩 타기로 약속까지 하죠. 그리고…… 마법을 ‘조금만’ 써서 놀이공원을 바꾸기로 해요!
요정의 지팡이를 휘두르고, 마녀의 마법 물약을 한 방울 뿌리자 녹슨 롤러코스터의 철로가 새것이 되고, 밤하늘은 마법 불꽃놀이로 아름답게 수놓아지고, 낡은 회전목마의 목마들이 살아나요. 손님이 모여들면서 반짝반짝 놀이공원도 활기를 되찾죠. 그런데 아차, 귀신의 집 열차가 너무 짜릿해진 나머지 괴물들이 기구를 뛰쳐나와 손님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고 있어요……. 어떡하죠?
뱀파이어 요정 이사도라는 반짝반짝 놀이공원을 다시 빛나게 만들 수 있을까요?
특별해서 평범한 ‘이사도라 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이야기!


■ 어린이들의 마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유머 가득한 이야기,
전 세계 30개국 어린이들과 함께 읽어요!

〈이사도라 문〉 시리즈는 남들과 다른 모습에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 용기를 북돋아 줄 재미있는 모험으로 가득 찬 새로운 이야기입니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는 인종과 국경, 성별을 초월해 모든 아이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헝가리, 이스라엘…… 지금까지 전 세계 30개국 어린이들이 함께 읽고, 이사도라의 특별하지만 평범한 모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사실은 모두가 다르고 특별하다고 말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 독자들에게 명쾌한 해답과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 다양한 해외 매체의 극찬을 받은 새로운 어린이 판타지
분홍색과 검은색으로 꾸려진 이사도라 문의 세상

이사도라 문의 세상은 아름답고 귀여운 분홍색과 검은색으로 가득합니다. 이 책의 작가 해리엇 먼캐스터는 이사도라의 정체성을 분홍색과 검은색 두 가지만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뱀파이어 요정'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이 방법은 해외 각종 리뷰 매체에서도 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검은색으로 대표되는 뱀파이어의 세계, 분홍색으로 대변되는 요정의 세계……. 두 세계를 아우른 주인공 이사도라 문의 이야기는, 작가 해리엇 먼캐스터의 손을 통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변신합니다.






◎ 해외 매체 서평

“분홍색이 아닌 검은색 발레복의 반짝이는 매력에 찬사를!”

가디언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다”는 고전적인 서사를 초자연적인 소재로 경쾌하게 풀어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매력적인 이야기”

커커스 리뷰



“귀엽고 재미있다”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이사도라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주인공이다”

칠드런스 북 센터



“일러스트가 아주 선명하고 눈에 쏙 들어와서 눈길을 끈다.”

북셀러




◎ 한국어판 저자 특별 서문

한국의 이사도라들, 안녕!

우리는 가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곤 해요. 다른 사람들이 잘하는 걸 나만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이사도라 문은 요정 아이들처럼 마법을 잘 쓰지 못하고, 뱀파이어 아이들처럼 빨리 날 수 없답니다. 자기와 똑같은 아이는 세상에 한 명도 없는 것 같아 보이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 이사도라 문이 특별한 거랍니다. 이사도라는 그 자체로 독특하고 신비로워요. 여러분도 다 그렇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하지만 나는 못하는 게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못해도 나는 잘하는 게 있지요.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절대로 나만큼 잘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답니다. 그건 바로 나다운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남들과 다른 이사도라가 왜 특별한지를 느껴 보세요.



반짝이는 마법과 사랑을 가득 담아,
해리엇 먼캐스터

구매가격 : 9,600 원

무기여 잘 있거라(세계문학전집 186)

도서정보 : 어니스트 헤밍웨이 | 2020-02-1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20세기 미국소설의 언어와 스타일을 혁신한 위대한 문장가이자 허무주의적 실존주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1929)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다. 헤밍웨이 스스로 “나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말했던 이 작품은 1차세계대전이 벌어진 이탈리아 전역을 주요 무대로 전쟁의 허무와 환멸 속에서 만난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이자, 같은해 출간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전쟁문학, 반전소설이다. 단선적 플롯과 원형적 캐릭터, 간결한 문체로 삶의 폭력성과 실존의 의미를 성찰했던 헤밍웨이는 이 두번째 장편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특히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절망에서 도망쳐 사랑에서 구원을 얻으려 했던 인간이 운명이라는 우주적 폭력 앞에 무너지는 이야기를 특유의 하드보일드 문체로 구현해, 소설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결말의 하나로 회자된다.

길 잃은 세대의 허무와 절망을 투명하게 그린
위대한 문장가 헤밍웨이의 기념비적 작품

미국의 새로운 문학은 1910년대에 시작돼 1930년대에 개화기를 맞았고, 이 시기 미국문학을 리드한 것은 1차세계대전이 야기한 사상적 각성의 시련을 거친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이었다. “잃어버린 세대”란 전쟁을 통해 종교와 도덕과 인간정신의 피폐를 목격하고 허무와 절망에 빠졌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은 이십대에 실제로 전쟁에 참가하거나 전후의 환멸 어린 분위기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문단을 이끌었다.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 포크너와 함께 이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전쟁’은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다. 세계대전과 스페인내전에 참전하고 그리스-터키전쟁과 중일전쟁에 종군기자로 참가하며 전쟁터에서 인생을 배웠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에서는 실제 자신의 체험을 녹여냈다. 전쟁은 헤밍웨이에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깨닫게 해준 기재였으며, “죽음이 없다면 삶도 의미가 없다”고 했던 하이데거처럼 죽음이라는 병립한 키워드로 황량한 우주에 던져진 인간의 삶과 실존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구했다.

나는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영광스럽다고 하는 것들에는 영광이 없었으며, 희생은 고깃덩어리를 땅속에 파묻는 것 말고는 할일이 없는 시카고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살육이나 다름없었다. 참고 듣기 힘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지명(地名)만이 위엄을 갖게 되었다. 숫자와 날짜 같은 것들만이 지명과 더불어 우리가 말할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되었다. 영광이니 명예니 용기니 신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은 마을 이름이나 도로 번호, 강 이름, 연대 번호, 날짜 같은 구체적인 말 옆에서 외설스럽게 느껴졌다. (231쪽)

『무기여 잘 있거라』는 자신의 행복과 무관한 세계에서 작고 무력한 인간은 우주와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으로, 1차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에 자원입대해 구급차 부대에 복무하는 미국인 중위 헨리 프레더릭과 적십자 구급간호봉사대의 일원으로 이탈리아에 온 영국인 여성 캐서린 바클리의 사랑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것을 가로막는 운명의 이항 대립을 다룬다. “명예니 용기니 신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로 폭력과 무의미함을 무마하고 정당화하는 전쟁에 강한 환멸을 느끼던 프레더릭은 음주와 여색에 빠져 삶의 목표나 참전의 명분도 없이 전선에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적의 박격포 파편에 맞아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후방의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유곽에 가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잠시 만났던 캐서린과 재회해, 이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프레더릭을 서서히 변화시켜 잃어버렸던 삶의 감각을 회복하게 했고, 그는 아내와 집이 있는 자신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치료 후 전선에 복귀하자마자 아군의 대대적인 퇴각에 휩쓸려 이동하던 중 부대를 이탈한 죄와 스파이 누명을 쓰고 야전헌병들에게 즉결처분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총살 직전 그는 강물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고, 무기(arms)를 버리고 홀로 단독강화를 선언하며 혐오하던 전쟁에 이별을 고한다. 전쟁을 버리고 사랑하는 여자의 품(arms)으로 돌아온 그는 스트레사에서 캐서린과 함께 보트를 타고 몰래 중립국 스위스로 건너가 잠시 안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이 이별을 고했던 전쟁의 폭력보다 더한 우주의 폭력 앞에 마주서게 된다.

전쟁의 폭력과 운명의 잔인한 힘
세상의 비극을 씻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1917년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하자 당시 <캔자스시티 스타> 수습기자로 일하고 있었던 헤밍웨이는 적십자사 구급차 운전병으로 자원해 1918년 6월 이탈리아 북부전선에 배치된다. 전쟁터를 동경했던 열여덟 살의 헤밍웨이는 물자수송을 하고 돌아오던 중 박격포 공격을 받아 이백 개가 넘는 파편이 하반신에 박히는 중상을 입고 밀라노 적십자병원에 육 개월 동안 입원하게 되는데, 여기서 일곱 살 연상의 미국인 간호사 아그네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그네스가 귀국한 헤밍웨이에게 이별 편지를 보내면서 그의 첫사랑은 실연으로 끝난다. 1차세계대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 프레더릭 헨리와 캐서린 바클리는 이렇게 헤밍웨이의 자전적 경험에서 탄생했다. 소설은 전쟁이 끝난 후 1929년에 출간됐는데, 그가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지 십 년째 되는 해였다. 절제되고 함축적인 그의 하드보일드 문체는 이 소설에서 더욱 심화되었고, 그는 이 두번째 장편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6세기 영국 르네상스시대 시인 조지 필의 동명 시에서 제목을 빌린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방해하는 전쟁과 그에 맞서는 수단으로서 사랑이라는 방벽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벽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헨리와 캐서린의 사랑이 고조될수록 비극은 심화되고 실존적 불안은 커진다. 서둘러 연극의 막을 내려버리는 듯 강렬한 선고가 내려지는 5부의 결말은 현실적이고 서늘하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생명에 집착한다. 운명에 저항하다 결국 무너진다. 무기를 버리고 전쟁터를 떠나기만 하면 불합리한 죽음에서 벗어나 일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운명의 폭력은 가혹하다. 또한 이 비극의 방정식은 최종적이고 불가피하다. 그것을 깨달은 인간의 무력감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빗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그린 마지막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은 패배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미 완결되었고 승리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모습에서 사랑을 잃은 남자의 숨죽인 체념과 통곡을 보고, 또 누군가는 비극을 받아들이고 또다른 삶의 출발점에 선 남자의 생존을 향한 투지를 본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잇닿아 있다.


추천사

발표 이래 오늘까지 가장 높이 솟아 미국문학을 장식하고 있다. _워싱턴 타임스

찬사가 공허한 횡설수설로 느껴질 만큼 위대한 책. _뉴욕 헤럴드 트리뷴

매력적이다. 오래된 공예 예술품과 같으며, 시대정신을 빼어나게 그렸다. _뉴욕 타임스

소박한 사유로 가슴을 울리는 훌륭한 소설. 이 위대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_존 앳킨스(소설가)

모든 문장 모든 구절에 최대의 의미와 감각적 인상, 감정이 있다. _존 더스패서스(소설가)


1954년 노벨문학상
2005년 타임 선정 20세기 영문소설 100선
미국대학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
서울대학교 선정 동서 고전 200선

구매가격 : 9,800 원

최단경로

도서정보 : 강희영 | 2020-02-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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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한국소설 #국내소설 #장편소설 #신인작가 #강희영소설

“처음 읽을 때부터 당선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작품이다.” _심사평에서

은희경의 『새의 선물』, 천명관의 『고래』, 김언수의 『캐비닛』…… 한국문학에 또렷한 이정표를 새긴 걸출한 작품들을 산출해낸 문학동네소설상의 제25회 수상작 『최단경로』가 출간되었다. 황여정의 『알제리의 유령들』 이후 이 년 만의 수상작이다. 개성 있고 신선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시대정신을 갖춘 수상작들을 선보이며 단 한 번도 독자를 실망시킨 적 없는 문학동네소설상의 역사는 이번 수상작에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소설가 박민정), “에너지와 기운이 강력한 소설”(소설가 정용준)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강희영의 『최단경로』는, 전임자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발견한 라디오 피디 ‘혜서’와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이 각각 소리의 정체와 사고의 근원을 추적하는 여정에서 불가해한 우연으로 마주치며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다. 각자 다른 시선과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로 정교하게 수렴되는 탁월한 구성력과 완결성, 읽는 이의 마음에 곧바로 가닿는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라진 길 위에서 보내온 간절하고 강렬한 삶의 신호

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자인 ‘진혁’으로부터 인수인계 자료가 담긴 업무용 노트북을 건네받는다. 그런데 우연히 열어본 노트북 맵의 계정은 여전히 로그인 상태이고, 맵에는 진혁이 떠난다던 시드니가 아닌 암스테르담의 지명들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진혁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희미한 소리까지 발견한 혜서는 늘 의뭉스러웠던 진혁의 태도에 의문이 더해져 맵의 검색 기록을 단서로 그의 뒤를 좇아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몇 차례의 엇갈림 끝에 애영과 마주친 혜서는, 고등학생 때 진혁과 연인관계였던 애영이 임신 사실을 외면하는 그를 뒤로한 채 암스테르담에서 미술가로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잘못된 지도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동시에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뒤 진혁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서로의 휴대폰이 바뀌어 애영이 그의 맵 계정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가 난 삼거리 신호등에 놓아두며 아이를 추모해왔던 애영은 끝내 안락사를 계획하고, 혜서와 애영, 그리고 애영을 이해하는 미술가 친구 ‘마이레’는 사라진 진혁에게 연락을 시도한다.

빅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축적된 데이터가 도출해내는 빠르고 경제적인 노선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낸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의 경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생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는 갖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고,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도 그것을 모두 짐작하고 피해 가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예측불가능한 돌발성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

애영의 아이와 엄마를 앗아간 교통사고 역시 데이터의 작은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지도에는 아이와 할머니가 건너던 횡단보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애영은 무력하게 아이를 잃었다는 슬픔에 더해 어쩌면 이 사고가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안락사를 선택한다. 작가는 “데이터를 경유함으로써 애도라는 무거운 감정을 독자가 상상해야 할 영역으로 비워두고”(문학평론가 강지희) 존재와 부재라는 삶의 양면성을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직하고 고르게 드러냄으로써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것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지 차분하게 묻는다.

진혁의 방송에 담긴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노트북 맵에 기록된 지역의 실제 모습을 자신의 휴대폰에서 스트리트 뷰로 확인해가며 그의 자취를 좇는 혜서의 여정 역시 데이터와 몇 가지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혜서를 추동한 것은 그러한 데이터, 혹은 진혁에 대한 의문만은 아니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혜서는 진혁과 같은 연차였지만 그와 달리 그녀에게는 성과를 낼 만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외곽 시간대라고 부르는 한산한 자리에 편성된” 프로그램이나 공개방송의 협찬을 담당하는 업무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소설은 혜서가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부조리에 더해 불공정한 노동과 인종차별의 문제까지 곳곳에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아이의 아빠인 진혁은 고작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혜서의 프로그램 작가인 ‘민주’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살지 않는 이상 직접 차를 몰거나 택시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 새벽 시간대 프로그램에서조차 최저임금의 급여를 받을 뿐이다. 애영과 처음 마주친 네덜란드인 ‘가브리엘’ 역시 “곤니치와”라고 인사하며 그녀의 인종과 국적을 속단해버린다. 이처럼 현실 전반에 걸친 차별의 단면들을 요령 있게 암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혜서의 여정과 애영의 선택에 설득력을 더한다.

『최단경로』는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긴밀한 설정과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단단하게 직조된 소설이다. 도입부에서 몇 가지 복선을 내비치는 인공지능 화자가 소설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인간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 또한 아름답다. 아이의 애착인형이었던 곰 인형을 사고현장에 놓아두는 애도의 방식도 마음을 울리지만,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마음이 무너지기 쉬운 장면에서조차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는 작가적 태도이다. 『최단경로』로써 작가의 길에 첫발을 내딛지만 “길이 좋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작가의 행보가 더욱 미더운 까닭이다.



소설은 데이터를 경유함으로써 애도라는 무거운 감정을 독자가 상상해야 할 영역으로 비워두고, 언제나 데이터보다 넘치거나 부족한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확인하도록 쓰였다. 작가는 소재와 주제가 주는 익숙함을 그 전달 방식에 변수를 둠으로써 새롭게 만드는 ‘최단경로’를 찾아낸 것이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모처럼 단어 하나하나, 등장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 그 인물들이 같이 모여 말을 섞고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 하나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밀도 높은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최단경로』는 문장, 구성, 내용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이다. 임신과 출산과 양육으로 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책임지는 일의 공포가 ‘최단경로’라는 아날로지를 경유하여 빚어내는 이야기는 아름답다. _박민정(소설가)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오류의 복제, 무책임과 불가해가 혼재된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설명하고 그 세계와 대부분 흡사하지만 일면 모순적이기도 한 현실의 실패와 미답을 짚어내는 대목이 이채롭고 인상적이다. _신샛별(문학평론가)

『최단경로』는 에너지와 기운이 강력한 소설이었다. 소설 자체는 감정도 표현도 잘 통제되고 있었지만 서사 바로 밑으로 느리고 뜨거운 물이 흐르듯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동하게 하는 지점이 많았다. 다 읽고 나서 한동안 소설의 한 장면과 인물의 마음이 되어 골똘하게 생각하게 될 정도로 감각과 마음이 상승하는 걸 느꼈다. _정용준(소설가)

지도 위의 길, 사라진 섬이라는 상실의 은유는 이 작품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별다른 실수나 부침 없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를 밀어붙이는 힘도 어지간하다. 기실 처음 읽을 때부터 당선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작품이다. _정한아(소설가)

전임자의 예상 밖 경로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를 만나러 암스테르담까지 가게 되는데, 이 설정이 무리하다기보다 오히려 얼음을 깨듯 소설 속으로 한 발을 쑥 들여놓게 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는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_하성란(소설가)


■ 책 속에서

이게 모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위한 경험이라면 일상은 언제쯤 자유를 얻을까.(21쪽)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부로 치부하는 것, 그리하여 그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차별이란 그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해야 당연한 걸로 알아먹게 할지 매번 피로했다.(33쪽)

목적지는 늘 같았지만 그래도 늘 새로웠다. 매번 같은 곳을 매번 다른 경로로 찾아가는 게 즐거웠다.(50쪽)

그녀가 경력직으로 회사에 들어왔을 때, 진혁은 그녀와 같은 연차였다. 처음부터 그와 같은 몫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력은 복리처럼 불어서 애초에 원금이 다르면 도달할 수 있는 지점도 달랐다. 혜서에게 실적을 낼 만한 기회는 좀체 주어지지 않았다.(64쪽)

꿈에서라도 참척을 상상해보지 않은 어미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계는 그 악몽으로 근근이 유지되는지도 모른다.(106쪽)

시신의 온도는 왜 상온보다 낮은 걸까. 체온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108∼109쪽)

“아이에게 말해줘야 하거든요.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건지. 완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설명해줘야 해요, 아이한테는.”(123쪽)

“루프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코드예요. 어떤 데이터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결정하니까요. 비중이 작은 변숫값들을 결과의 일관성을 위해 가차없이 분석에서 제외하는 코드를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딱 알 수 있는 거죠. 아, 이 사람은 완전 대처네, 매카시네, 마오쩌둥이네.”(155쪽)

구매가격 : 8,400 원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도서정보 : 수전 올리언 | 2020-02-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1986년 4월 29일 아침,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화재경보가 울렸다. 놀라서 소지품을 챙기고 허둥지둥 뛰쳐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안에 있던 400여 명의 사서와 이용객들은 ‘또 시끄럽게 울리네’라며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어차피 다시 들어올 거니 소지품도 그대로 둔 채 나갔고, 도서관은 8분 만에 비워졌다. 다들 밖에서 다시 들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냥 하나에서 시작됐을지 모르는 이 대화재는 소방관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틈을 타 전력질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40만 권의 책을 한 줌의 재로 남겼으며, 70만 권의 책을 훼손시켰다. 그곳에 남겨진 것은 비통함과 재 냄새뿐이었다.

역대 최대 공공도서관 화재 사건인 이 일은 그러나 신문과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고, 책 애호가들조차 이런 일을 모른 채 지나갔다. 책 애호가 수전 올리언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30년 뒤 이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누군가 일부러 도서관에 불을 지른 걸까? 그는 과연 누구일까?

수전은 도서관과 사서들의 이야기를 지금껏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도서관의 연대기와 화재, 그 여파가 기록되는 가운데 독자들은 진화하는 유기체로서의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서들과 현재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사서들, 수많은 이용객이 우리에게 책과 도서관에 얽힌 삶을 들려준다. 위트와 통찰력, 연민에 바탕을 둔 심도 있는 조사력으로 이 책은 도서관이 왜 우리 마음과 정신, 영혼의 본질적 부분으로 남았는지 입증할 것이다.


도서관이 한 줌의 재가 된 날

연기탐지기가 울리기 시작하자, 건물을 빠져나온 400명의 사람들은 도서관 밖 보도에 모여 상황이 수습되기를 기다렸다. 낡은 경보 시스템 탓에 자주 화재경보가 울렸기 때문에 누구도 별것 아닌 듯 여겼다. 하지만 옅은 보랏빛을 띠던 연기는 회색으로 짙어지더니 시커멓게 변했다. 책 표지들은 팝콘처럼 팡팡 터지고 페이지에는 불이 붙어 날아다녔다. 뜨거운 공기가 벽을 적시고, 열기로 콘크리트 조각이 녹아 사방으로 튀었다.

동북쪽 서가에 있던 책들은 부스러기와 재, 가루가 되어버렸고 새까맣게 탄 페이지들은 1피트 높이로 쌓였다. 마지막 남은 불길이 펄럭이고 소용돌이치다 가라앉았고 마침내 사라졌다. 불이 꺼지기까지 산소통 1400개, 구조 커버 1만3440제곱피트, 플라스틱 시트 2에이커, 톱밥 90더미, 물 300만 갤런 이상, 로스앤젤레스시 소방인력과 장비의 대부분이 소요되었다. 1986년 4월 29일 오후 6시 30분, 도서관에 난 불이 마침내 “진압”되었다고 공표되었다. 7시간 38분 동안 맹위를 떨친 뒤였다.

잃은 것들의 목록은 이렇다. 프랑스의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실린 1860년도판 『돈키호테』. 성경, 기독교, 교회사에 관한 모든 책. 인물 H에서 K까지의 모든 전기. 미국과 영국의 모든 희곡. 모든 셰익스피어. 컴퓨터,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지진학. 공학, 금속공학과 관련된 책 9000권, 과학부의 제본되지 않은 모든 원고.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1500년대에 쓴 책. 도면과 설명서가 첨부된 1799년부터의 미국 특허 목록 550만 개, 비슷한 시기부터의 캐나다 특허 자료. 저자 A부터 L까지의 문학작품 5만5000권. 최초의 현대 영어 완역본인 1635년도 커버데일 성경. 수십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인 항공 연감. 경영서 9000권, 잡지 6000권. 사회과학서 1만8000권, 1896년에 나온 패니 파머의 『보스턴 요리학교 요리책』 초판, 팝콘 레시피책 6권을 포함한 요리책 1만2000권. 물에 닿으면 끈적끈적한 곤죽이 돼버리는 유광지에 인쇄된 예술 간행물과 예술서적 전부. 조류학 도서 전부. 도서관이 소장했던 마이크로필름의 4분의 3. 물에 젖자 떨어져버린 사진 2만 장의 정보 라벨. 불탄 구역에 어쩌다 잘못 꽂혀 있던 모든 책. 불타거나 훼손된 책의 수는 일반적인 도서관 분관 15개의 소장 도서를 전부 합친 것과 맞먹었다. 미국 역사상 공공도서관이 입은 최대의 손실이었다.


금발의 해리 피크, 그가 방화범일까

수전 올리언은 우선 도서관의 유력 방화범으로 지목되었던 해리 피크를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해리가 정말 도서관에 불을 질렀는지, 만약 그랬다면 이유가 뭔지, 죄가 없다면 어쩌다 기소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취재에 들어갔더니,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전은 그의 누나, 애인, 그와 가까웠던 성직자, 친구들,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해리라는 인물의 몽타주를 그려간다.

이 책에는 해리 피크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연애 경험, 성격적 특성 등은 물론이고 도서관 화재 당일 그의 행적 또한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해리는 화재가 일어난 아침에 도서관에 있었고 심지어 친구에게 자기가 방화범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가 평소대로 허풍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사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사서 여러 명도 해리가 사서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한 노파는 화재 때 해리와 자신이 부딪쳤다고 말해 그가 현장에 있었음을 증언했다. 결국 해리는 수사 선상에 올라 체포되었다. 하지만 해리를 범인으로 붙잡아둘 만한 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무엇이든 입증할 만한 것은 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사건 당일 방화 지점조차 확정지을 수 없었다.

그래도 비밀을 풀고 싶었던 저자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사건에 매달리며,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서 잠깐 주목을 끌고 시야에서 사라졌던 ‘해리 피크 사건’을 전면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서가에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화재를 조사하면서 만난 인물들의 도서관에서의 삶은 이 책의 커다란 기둥이 된다. 저자는 화재 당시 근무 중이던 사서들과 경비,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던 소방관과 이후 도서관 재건에 힘을 실어주었던 기업가 등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건 이면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또한 개관 당시부터 도서관을 지킨 역대 사서와 경영진들의 삶은 독자에게 도서관의 진화하는 모습을 펼쳐놓는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은 1873년 1월에 문을 열었다. 회비가 비싸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고 규칙은 엄격했다. 여성들은 ‘숙녀용 열람실’에서 선별된 잡지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출입도 금지되었다. 이런 시기에 폐쇄적인 도서관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서 메리 포이, 다양한 책을 도서관에 들여놓다 악마와 바람이 났다며 구설수에 오른 테사 켈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고 소송에 휘말린 도서관장 메리 존스, 과학 서적에 독극물 경고 도장을 찍어 분류한 찰스 러미스 등이 무덤 속에서 살아나 도서관의 연대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워런은 역대 도서관 운영자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독서가였다. 그녀는 사서들의 가장 큰 한 가지 책무가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사서들이 독서 행위 자체를 좋아하길 바랐다. 1935년에 도서관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사서들은 술꾼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고양이가 잠을 자는 것처럼, 혹은 개가 산책을 가자는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 사서로서의 양심이나 훈련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어떤 일보다 책 읽는 것을 택할 것이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도서관의 보안 책임자인 데이비드 아귀레의 독자들 목격담도 흥미롭다. 아귀레는 매주 약 100건의 문제들에 직면하는데, 소지품 도난, 컴퓨터 이용 제한 시간을 너무 많이 오버하는 사람, 심지어 도서관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들까지 발견한다. 그중 아귀레가 가장 곤란해하는 문제는, 도서관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해야 할 때다. 공공도서관은 노숙인을 품어야 하기에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지만, 다른 이용객들이 ‘냄새’를 불쾌하게 여기면 보안 담당자가 그들의 불평을 대신 전해야 해서 괴롭다. “냄새 난다는 말이 얼마나 모욕으로 들릴지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그 말을 해야 한다.”


책을 복원하자 도서관이 부활했다

화재 소식이 도시 여기저기로 퍼지면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불에 그을린 채 물에 젖은 70여 만 권의 책을 냉동고로 옮겨 복구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사흘간 밤낮으로 일했다.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밖까지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해 날랐다. 저자는 이 긴급한 순간을 “로스앤젤레스 시민들로 살아 있는 도서관을 이룬 것 같았다”고 묘사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공유된 지식을 보호하고 전달하는 체계를 만들었다는 의미였으며 이는 도서관이 매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책들은 상자 5만 개에 담겨 영하 56도의 식품창고로 보내졌다. 그리고 2년 뒤 해동, 건조, 소독을 하고 보수하여 다시 제본할 준비를 마쳤다. 시는 책을 살릴 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이 화마에 사라지고 7년 뒤인 1993년 10월 3일, 신문에는 ‘도서관 재개관’이라는 헤드라인이 실린다. 개관식에는 200만 권이 넘는 책을 꽂는 ‘책 꽂기 파티’가 열렸고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도서관의 부활을 축하했다.

저자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새겨진 책이 있다고 말한다. 각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 분류하여 내면에 저장한 기억들의 컬렉션이자,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개인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으며 우리가 죽으면 불타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과 공유한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은 비통함과 유쾌함으로 가득한 도서관 여행기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어 각자의 기억 도서관에 오래도록 꽂히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4,300 원

깊은 바다, 프리다이버

도서정보 : 제임스 네스터 | 2020-02-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저널리스트 제임스 네스터는 우연한 기회에 단지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에 취재를 나가게 된다. 그때까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날의 취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하나의 ‘사건’이 될 줄은. 세계 프리다이빙 챔피언십이 프리다이빙의 ‘프’ 자도 모르던 그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숙소에 도착한 네스터는 프리다이빙 규칙과 스타 선수들을 구글링하며 하루를 보낸다. 잘 모르는 경기지만, 어려울 건 없어 보였다. 배드민턴이나 댄스 경연처럼 별난 취미쯤으로 여겨질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튿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고개를 동서로 돌려보고, 남북으로 끄덕여봐도 하늘과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중해 한가운데서, 스쿠버 장비도, 산소줄도, 구명조끼도, 하다못해 오리발조차 끼지 않고 수영복 하나 달랑 걸친 선수들이 건물 30층 높이의 수심까지 잠수했다가 올라왔다. 심판이 목청껏 알리는 수심 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면 선수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잠하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누구 하나 억지로 물속으로 들어가기는커녕 아주 천연덕스럽게, 마치 원래 그곳에 속했던 존재인 양. 우리 모두의 고향이 그곳이라고 웅변하는 듯.” 그로부터 나흘간 네스터는 이 경기를 취재 나온 전 세계 유일의 기자로서(프리다이빙은 지금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였다) 몇 명의 선수가 300피트 가까이 잠수를 시도하는 걸 더 지켜본다. 선수들은 코피가 흘러 피범벅이 되거나 의식을 잃거나, 심지어 심장이 마비된 채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기는 계속됐다.

선수들은 보통 사람들이(심지어 과학자들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깊이까지 잠수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전신 마비가 오거나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도전한다. 그래선지 해마다 수십에서 수백 명의 다이빙 선수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다. 죽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스포츠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도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온 네스터의 머릿속은 며칠이 지나도록 프리다이빙이라는 다섯 글자로 가득했다. 그길로 그는 프리다이빙에 대해 더 알아가고, 점점 더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머리와 펜끝으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깊은 바다, 프리다이빙』은 저자가 몸소 프리다이버가 되어 전 세계 수많은 프리다이버와 과학자를 만나 바다와 그 안에 간직된 인간의 가능성을 탐사한 기록이다. 그는 무려 1년 반 동안 푸에르토리코에서 일본, 스리랑카와 온두라스 등 지구 곳곳을 떠돌며 바다가 들려주는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수심 100피트까지 잠수해서 식인 상어 등지느러미에 위성 수신기를 부착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제 잠수정을 타고 수천 피트 물속으로 내려가 야광 해파리들과 교감을 나누고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온갖 바다 생물과 조우했다. 돌고래들에게 말을 걸고, 고래의 말도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포식자와 눈을 마주 보며 헤엄도 쳤다.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몰랐던 수중 벙커에서 해양과학자들과 함께 질소에 중독된 채 넋을 잃은 적도 있었다. 무중력 상태로 물 위를 떠다니기도 했고, 뱃멀미도 숱하게 했다. 그러고서 찾은 답은? 대다수의 사람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바다와 더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다, 그곳의 서식자들
그리고 프리다이버

70억 명이 거주하는 이 세상의 육지는 이미 센티미터 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되어 지도상에 그려졌고 상당 부분이 개발의 물결에 휘말려 지나치게 많이 파괴된 반면, 바다는 아직 조사나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미답의 불모지인 채로 남아 있다. 행성 지구에 최후로 남은 거대한 변방인 셈이다. 휴대전화도, 이메일도,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없는 곳. 그곳에서는 자동차 열쇠를 잃어버릴 일도, 테러리스트의 위협도, 생일을 까맣게 잊을 염려도, 신용카드 대금 연체이자 걱정도, 면접 보러 가다가 개똥을 밟을 일도 없다. 삶의 모든 스트레스와 소음 그리고 우리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잡무는 모두 수면 위의 일이다. 바다는, 지구에서 진정한 적막감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프리다이빙은 그 적막을 어떤 거추장스러운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가장 자연스럽고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만끽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문명 안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진화적 기억을 다시 만나는 일이다.

수면 아래에서 보내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인간의 몸은 형태와 기능 면에서 육상에 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다는 우리를 물리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변화시킨다. 프리다이빙 선수들이 이를 몸소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수심 40피트에서 찾아온다. 그쯤 내려가면 부력과 중력의 힘이 역전되면서, 몸을 위로 떠미는 물의 부력은 약해지고 한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중력은 세지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바로 ‘심해의 문’이며, 이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인간의 몸에는 수중과 육상에 동시 적응이 가능한 반사신경이 있다. 그것은 존재할 뿐 아니라 버젓이 이름도 갖고 있다. 이름하여, ‘포유동물 잠수 반사mammalian dive reflex’, 조금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Master Switch of Life’다.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1963년 이름 붙인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라는 용어는 1963년 생리학자 퍼 숄랜더가 지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얼굴이 물에 잠기자마자 촉발되는 다양한 생리학적 반사작용을 일컫는데, 여러 기관 중에서도 뇌와 폐, 심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더 깊이 잠수할수록 반사작용도 더 강력하게 일어나고, 엄청난 수압으로부터 몸속 기관들을 보호하기 위한 물리적 변화에도 박차가 가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몸을 심해 잠수에 능한 동물처럼 바꾸어놓는다. 프리다이버들은 이 스위치가 켜질 것을 예상할 수 있고 더 깊이 더 오래 잠수하기 위해 이 스위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뭇 고대 문명 역시 이 생명의 마스터 스위치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 스위치를 이용해 수 세기 동안 해면이나 진주, 산호를 비롯해 수백 피트 심해에 존재하는 해양 식량을 수확했다. 17세기에 이르러 카리브해, 중동, 인도양, 남태평양을 찾은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이 숨 한 모금 들이마시고서 100피트 이상 깊은 바다로 내려가 최장 15분까지 잠수하는 걸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그들에게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 가까이에도 아직껏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생활을 영위해가는 해녀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바다의 자식이다. 우리는 물에서 왔고 물로 돌아간다. 단지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양수에서 왔다는 게 아니라, 초심해층의 열수분출구에서 시작돼 유구한 생명 진화의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왔고, 죽어서 무언가에 먹히고 그것이 배설을 하고 또 먹히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기체의 분자가 되어 수천 년이 지나 다시 바다 가장 깊은 곳에 쌓인다. 바다는 수십억 년 전에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 행성 최초의 생명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뭇 생명이 어떤 과정으로 진화해갔는지, 또 모든 생명의 종착지가 어디인지까지를 설명해줄 미지의 세계다.

바다의 ‘코스모스’를 찾아서

바다는 육지와 상이한 규칙들이 지배하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곳을 이해하려면 생각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기기묘묘한 일들투성이다. 일례로, 산호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체 구조이고, 바다 밑 세상의 45만3200제곱킬로미터를 덮고 있으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정교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동일한 종種의 산호들은 매년 같은 날, 같은 시간, 보통은 분 단위까지 맞추어 일제히 산란한다. 심지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완벽하게 같은 시점에 갑자기 산란을 시작한다. 해마다 날짜와 시간은 다르지만, 그 이유도 오직 산호들만이 알고 있다. 더욱더 신기한 점은 한 종의 산호가 한 시간가량 산란하는 동안 다른 종은 산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면에서 수심 수백 피트까지 구간에서는 바다와 인간의 관계가 신체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짭짜름한 혈액, 임신 8주 차 태아의 턱 부위에 난 아가미를 닮은 틈들, 해양 포유동물과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수륙 양용 반사신경은 바다와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인간의 몸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 수심인 700피트를 지나면 인간과 바다의 관계는 감각적이 된다. 심해 잠수 동물들에게서 우리는 이 감각들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빛도 없고 싸늘한 고압의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어와 돌고래, 고래 같은 동물들은 헤엄치고 소통하고 보기 위해 제3의 감각들을 발달시켜왔다.

가령 상어의 전기수용 감각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포획된 커다란 백상아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상어는 100만 분의 125볼트 정도의 약한 전기장도 감지할 수 있다. 갓 태어난 보닛헤드상어는 10억 분의 1볼트보다 약한 전기장도 감지한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면, 맨해튼의 허드슨 강물에 떨어뜨린 1.5볼트짜리 배터리에서 5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메인주 포틀랜드까지 전선을 연결한다고 상상해보자. 별상어와 보닛헤드상어는 이 전선 주변에 형성된 희미한 전기장을 감지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견된 가장 정확하고 예민한 감각이다. 그런가 하면 돌고래는 머리 안에 내장된 입술 모양의 두 구조(콧구멍의 흔적기관)를 이용해 소리를 낸다. 포닉 립스phonic lips라고 불리는 이 콧구멍을 자유롭게 수축하고 구부려 75헤르츠에서 15만 헤르츠 사이의 광범위한 주파수 대역에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러 돌고래의 소리 중 많은 부분을 찾아내지 못한 원인은 인간의 귀로는 이 소리들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방법으로 분석해보니, 돌고래의 휘슬음과 클릭음의 음파는 원시적인 상형문자의 형태와 비슷했다고 한다.

바닷속에 머물렀던 우리 역시 이 초감각적인 능력을 공유한다. 이런 감각과 반사신경들은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지만 평소에는 거의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서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졌을 때는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프리다이버들과 저자 제임스 네스터는 그 능력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다. 그는 고래와 마주했던 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깊고 강력한 경험”으로 회상한다. 어마어마하게 막강하고 지적인 존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별안간 인식되면서 밀려오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순간적인 앎의 감각. 이 책은 이런 감각을 찾아서 한 장 한 장 더 깊어진다. 해수면에서 수심 2만8700피트까지 수심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저자와 그가 만난 심해 잠수 동물들은 물리적으로 될 수 있는 한 가장 깊은 바닷속까지 우리를 인도한다.

구매가격 : 13,500 원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

도서정보 : 김미희 | 2020-02-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울음을 삼키며 밤마다 써내려간 기록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해 아이를 낳은 지 1년. 남편이 신장암 3기 진단을 받는다. 항암치료를 거듭했지만 결국 남편은 네 살배기 아들을 남겨놓고 세상을 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이자 애인이며 가족이었던 사람을 잃고 저자는 이렇게 쓴다. “그에게 기댄 15년의 시간 동안 내 몸이 기울어졌다. 이제 그가 없으니 바로 서야 하는데, 자꾸 몸이 기울고 비틀거린다.” 이후 저자의 홀로서기 과정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남편과의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두 명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날 버렸던 친엄마, 열 살 이후 날 길러준 새엄마, 그리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이야기는 유년기의 그늘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곳을 돌아 나와 생에 빛이란 게 있다는 걸 일깨워준 남편에게로 이어진다. 그 어둠과 빛에 관한 글들이 모여 이 책이 되었다. 글쓰기는 남편의 죽음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주었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일기를 울지 않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유년의 기억을 딛고 일어서다

엄마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잘해낼 수 있을까? 남편이 떠나고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되자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친엄마는 곁을 떠났고, 새엄마가 그 자리를 채워 남매를 먹고 입혔지만 사랑은 잘 모르고 자랐다. 게다가 새엄마와의 연결점인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데다 술에만 점점 의존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 폭력이 엄마가 유일하게 정을 주던 강아지에게까지 이어지자, 새엄마는 아버지와 연을 끊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가족으로부터 안정감보다는 불안을 느낀 시간이 더 많았던 유년기. 그 불안이 나와 내 아이에게로 옮아가지 않도록 저자는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이어진 가족,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의 끝자락에 저자가 발견하는 것은 30년간 미싱을 돌려 자기를 먹여 살린 새엄마의 힘이다. 마음 놓고 응석부리거나 사랑받지는 못했지만, 대학에까지 진학하도록 도운 사람도,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는 삶을 지지하는 사람도 결국은 새엄마였다. “나는 두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나는 엄마의 미싱으로 컸다”고 말하는 그는, 새엄마의 ‘미싱’이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는 날것의 삶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직접 그림 작업을 더했다. 색을 쓰지 않고 오로지 잿빛 선으로 이뤄진 그의 그림은 소박하고 다정하다. 그림처럼 문장 또한 담백하다. 슬픔을 과장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는다. “나도 당신처럼 죽게 될 테니, 지금의 삶이 두렵지 않아.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아니 사실 두려워. 삶에 질질 끌려다니다 죽게 될까봐.” 이런 문장을 읽을 때면 살벌하게 따라붙는 삶의 공포가 내 어깨에도 턱하니 손을 올리는 것 같다. 그 두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려는 저자의 결연함은 글 전체에 깔려 있다. 직시하는 힘은 간병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스스로의 부끄러운 감정을 꿰뚫고, 미움과 원망을 꿰뚫고,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향한다. 그리고 “이젠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에 어떤 것은 그대로 놔둔다”라며 불가해한 것들은 흘려보낸다.

헤어짐 뒤에 다다른 풍경

어린 아들과 단둘이 남은 저자는 “감상적인 생각은 현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무너지는 마음을 여러 번 다잡는다. 하지만 그것이 곧 생계에만 집중하는 생활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미뤄두었던 꿈을 지금으로 가지고 온다. 그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도무지 버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날, 고인에게 편지를 쓰며 저자는 고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미희야,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사람이야.” 15년간 곁에서 함께했던 사람이 마음속 깊이 새겨넣은 믿음과 사랑이다. 그 목소리에 힘입어 저자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홀로서기에 다다른다. 이 책의 미덕은 저자가 홀로서기에 다다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했고, 그것을 짚고 일어섰다는 데 있다. 그는 “체력이 좋아야 아이와 뛸 수 있고 세상의 편견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다”며 아이와 김치를 만들어 먹고, 가족과 친구가 지어준 보약을 들이켜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즐거운 장례식을 위해서라도”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제는 “사람 사이에 섞여 흐름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구매가격 : 9,100 원

초보 엄마 심리학

도서정보 : 이지안 | 2020-02-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엄마들을 상담하는 심리학자엄마

처음부터 완벽하게 엄마 될 준비를 하고 엄마가 되는 사람은 없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겨 그렇게 엄마가 된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인데 이 사회는 엄마에게 바라는 점이 많은 듯하다. ‘모성애 넘치고 엄마로서 역할을 잘하는 완벽한 엄마’를 바라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엄마라면 당연히 아이를 챙기고 아이의 마음을 척척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로 돌린다. 부모의 양육이 아이를 결정짓는다는 발달심리학계의 양육가설은 많은 부모를 초조하게 한다. 그러나 미국의 발달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아이의 인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보다는 또래 준거집단이라는 ‘집단사회화 가설’을 내놓았다. “당신은 아이를 완벽하게 만들 수도 망칠 수도 없다.” 이 말이 저자를 안도하게 했다. 실제 겪어보니 부모의 영향력은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양육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을 초보 엄마들이 안다면 좀더 마음 편히 육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 이지안은 두 아이의 엄마다. 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지금은 대전에서 여성 심리상담 전문센터 ‘엄마치유연구소’를 운영하며 엄마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강연 일을 하고 있다. 뒤늦게 심리학을 공부해 심리학자의 꿈을 이룬 성공한 워킹맘처럼 보이는 저자에게도 초보 엄마 시절이 있었다. 다른 타이틀 없이 엄마의 역할만 남은 ‘그냥 나’를 데리고 사는 게 버거웠다. 일하는 나, 친구인 나, 심리학자인 나, 맛집 탐방을 즐기던 나, 남편과 함께 취미생활을 즐기던 나…… 힘듦의 근원에는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첫애를 키웠을 땐 언제까지 엄마로만 살아야 할까 답답한 마음이 컸다. 뒤늦게 찾은 상담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최종 합격하고 나서 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후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다시 내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변하는 게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정체성은 육아로 인해 잠시 변할 뿐,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초보 엄마, 육아를 시작하다

저자는 서른이 넘자 조바심이 났다. 주변에서 다들 결혼을 하니 결혼이 하고 싶었다. 결혼 후의 삶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바로 아이를 낳았다. 그제야 출산과 육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혼을 했을 뿐인데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고, 며느리가 되었고, 또 친정이 생겼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역할이 추가됐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건 ‘나’ 중심이었던 삶이 ‘아기’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내가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저자는 출산과 모유 수유, 조리원에서의 생활, 아이의 잠 문제 등 초보 엄마라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육아 문제를 똑같이 겪었고, 이러한 자신의 육아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특히 저자는 잠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움과 만날 때마다 여러 육아서를 뒤지고 원인을 찾기 위해 애썼다. 다른 사람의 육아 성공담을 읽으며 자존감도 떨어지고, 답답한 마음에 엉엉 울기도 했다. 그러나 육아서에는 조언과 충고, 너무나 많은 ‘왜’가 있을 뿐, 그 어떤 책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결국 남는 건 자책뿐이었다. 그 뒤로 저자는 육아에서 ‘왜’를 찾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결국 아이와 엄마 사이에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이제 처음 만나 서로 알아가는 단계에서 아이 기분이 어떤지, 몸 상태가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몇 번 같은 상황을 만나다보니 차츰 아이에게 익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었다. ‘왜’ 찾기에서 벗어나니 한결 가볍게 육아를 할 수 있었다.

내 아이와 나 사이에 필요한 심리학

저자는 육아 경험과 더불어 심리학자답게 육아에 참고가 될 만한 심리학적 지식을 조금씩 들려준다. 저자는 대상관계 이론의 분리개별화 및 재접근 단계에 초점을 맞추고, 만 3세까지의 아이가 상대방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는지 아이의 심리를 살펴본다. 또한 아이의 낯가림 문제, 애착 형성 문제와 애착 인형 등 초보 엄마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어려워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낯가림기가 되면 아이에게는 담요나 인형 등 소위 애착의 대상이 생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중간 대상’이라 부른다. 중간 대상은 자기 위로가 발달하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끼 인형 등 자신을 위로해주는 대상이 내면화된 아이는 스스로를 위로할 힘이 생겨 나중에 힘든 일이 있어도 건강한 방법으로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애착 인형을 엄마 마음대로 버리거나 없애면 안 된다.

저자는 또한 아이 훈육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떼쓰는 아이 달래는 법, 미안하다는 말을 잘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또 아이를 혼내는 것과 화내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한다. 또한 초보 엄마들이 많이 고민하는 어린이집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전한다. 또한 유튜브와 텔레비전을 보여줘도 되는지, 보여주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할지 등 요즘 세대에 새롭게 등장한 육아 문제들까지 다룬다. 이 모든 문제를 대하는 저자의 기본 관점은 결국 ‘내 아이와 내 상황에 맞게’ 하라는 것이다.

내 아이가 주인공인 육아. 내 스케줄이 아니라 아이의 요구에 나를 맞춰야 하는 육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육아가 행복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내가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듯, 아이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화장을 안 한 부스스한 모습에도 엄마가 가장 예쁘다고 하고,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요리도 맛있게 먹는다. 엄마가 심리학자든 물리학자든 그런 사실은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아이인 것이다.

남편, 시댁, 친정 그리고 ‘나’를 찾는 법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바로 남편, 시댁, 친정과의 관계다. 특히 남편은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내 아이의 아빠다. 아내와 남편이 육아, 살림, 돈벌이 등 모든 일을 칼같이 반반씩 나눠서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사회가 많이 변했어도 여전히 대부분의 가정에서 육아와 살림은 아내의 몫, 돈을 벌어오는 것은 남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육아 외에도 이렇듯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부부싸움, 결혼을 통한 대리 효도, 친정 엄마와의 관계 등 여러 관계 문제도 함께 다룬다.

책 곳곳에는 초보 엄마들을 위로하고, 초보 엄마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저자의 목소리가 묻어 있다. ‘완벽한 엄마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이가 왜 그런지 원인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모든 게 다 엄마의 탓은 아니에요.’ 예비 엄마, 초보 엄마들에게 육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육아로 힘들어하고 있을 엄마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누구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하지만, 과연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 우리는 혹시 완벽한 엄마를 꿈꾸는 건 아닐까? 저자는 여성들이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서 살면서도 끝까지 ‘나’를 지키기를 바란다. 가까운 데로 나들이를 가고, 틈틈이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고, 가끔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친구도 만나고, 듣고 싶은 강의도 듣자. 뭐든 좋으니 각자에게 맞는 일을 찾아보자. 이 책은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행복하게 육아하면서 자신을 잃지 않기를, 자신을 더욱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구매가격 : 9,800 원

내 몸과의 전쟁

도서정보 : 피지컬갤러리 | 2020-02-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총 누적 조회수 1억 4,000만, 구독자 140만 명, 유튜브 건강 채널 압도적 1위
피지컬갤러리의 ‘빡빡이 아저씨’가 알려주는 피로·통증 없는 백세 튼튼 운동법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매우 윤택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스마트폰의 잦은 사용은 현대인의 고질병인 거북목을 부르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손에 든 스마트폰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습관이 목뼈에 스트레스를 가해 거북목 체형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북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그 외에도 일자목 굽은 등, 골반 틀어짐(골반전방경사, 골반후방경사), 휜 다리 등으로 인해 수많은 현대인들이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가 봐도 정작 의사들은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거나 물료치료를 받으라는 말뿐이다.

또한 최근에는 검색 사이트는 물론 유튜브를 통해서도 다양한 통증 제거, 체형 교정법을 알려주는 영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영상대로 따라 해서 효과를 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분명 사람들이 추천한 운동을 했는데, 왜 내 몸은 스트레칭을 하기 전보다 더 아픈 걸까? 그건 바로 내 몸이 현재 어떤 상태(체형)인지, 왜 그러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몸에 좋다는 남의 말을 듣고 따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북목과 일자목은 엄연히 다른 형태의 체형이기에 운동 방법도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목과 일자목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거북목인 사람이 일자목 교정 운동을 했다가 더 악화되는 것이다.

《내 몸과의 전쟁》은 자신이 어떤 체형인지 간단하게 진단하는 방법과 전문적인 방법을 함께 알려주고, 몸이 틀어진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각 체형에 알맞은, 특별한 도구 없이 집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교정 운동을 통해 우리의 몸을 피로와 통증 없는 건강한 상태로 되돌려준다. 또한 사람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운동 3~6개를 하나의 루틴으로 묶어 보다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틀어진 몸을 바로잡는 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지컬갤러리가 쥐어준 무기(‘체형 교정 루틴’)를 가지고 틀어진 몸과의 투쟁을 시작하면 어느 샌가 건강한 몸을 되찾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0,8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