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자책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2 박목월

도서정보 : 박목월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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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선생께서 타계하신지 어느덧 38주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아름다운 언어르 형상화?으로써 시어로서의 한국어의 가능 지평을 활짝 펼쳐보여주신 분이 박목월 선생이시다. 그런의미에서 박목월 선생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민족시인이시다. 선생께서 가신지 30년 동안 우리는 격변의 사회 속에서 시가 이념의 도구나 수단으로 폄하되는 현상들을 도처에서 보아왔다. 이제, "민족주의 시"를 "민족시"라고 강변하던 이들이 스스로 오류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듯이 보이니 다행스런 일이다. 선생의 시에 대한 연구와 객관적 평가도 보다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저자소개
1940년을 전후한 시대로부터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 대표적 민족시인 박목월.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그의 본명은 박영종으로 1916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었으며,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1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에 의해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심상》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예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두진, 조지훈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과 개인 시집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연작시 〈어머니〉, 〈구름에 달 가듯이〉, 〈무순〉,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자》, 《그대와 차 한 잔을 나누며》, 《달빛에 목선 가듯》,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등이 있다. 1978년에 작고하였다.

구매가격 : 1,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3 박용철

도서정보 : 박용철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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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에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한 박용철. ‘고처’에 자리한 ‘서정시의 고고한 길’을 걸어가겠다던 그는 “압 대일 어덕” 하나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나 두 야 가련다”라는 시구만 남긴 채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영영 떠났다. 대표작 <떠나가는 배>를 비롯한 11수의 시를 엄선하여 수록했다.

저자소개
박용철은 1904년 8월 2일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면 소촌리 363번지(현 광주광역시 광산군 소촌동 363번지)에서 마을의 대지주였던 부친 박하준(朴夏駿)과 모친 고광(高光)의 삼남으로 태어났으나, 장남과 차남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법률상 장남으로 자랐다.
1920년 배재고등보통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한 뒤, 1921년 봄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 4학년에 편입했다. 이곳에서 18세의 박용철은 한 살 연상인 김영랑과 처음 만난 이래 평생 교분을 나눴다. 1923년 도쿄외국어학교 독일문학과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이어서 연희전문학교 문과 1학년 2학기로 편입했으나 몇 달 만에 자퇴했다. 당시 연희전문학교에서 한문학과 조선 문학을 강의하던 위당 정인보에게 시조를 배우고, 일성(一星) 이관용에게 독일어를 배우면서 동시에 일어, 영어, 독일어로 된 해외 시집을 탐독했고 또 영국 낭만주의 시,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소네트를 탐독하면서 희곡에 심취하기도 했다. 1925년 봄 누이동생 박봉자가 배화여자고동보통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함께 상경한 이후 영어와 독일어 및 문학과 철학, 역사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1926년 지속된 유폐 생활로 인한 위병(胃病)으로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건강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1926년 창작 희곡 <말 안 하는 시악시>가 연희전문학교 학생극 대본으로 선정되어 처음 공연되었다. 1928년 9월 박봉자의 요청에 따라 쓴 배화 학생극용 창작 희곡 <석양>이 공연 무대에 올랐다. 1929년 4월 박봉자가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박용철은 소촌리에 남아 영시와 독일시 번역에 몰두했다. 박용철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시들, 즉 <떠나가는 배>, <이대로 가랴마는>,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싸늘한 이마> 등은 대부분 이 시기에 창작되었다.
1929년 10월 22일 김영랑과 함께 시 잡지를 발간하기 위해 경성으로 가서 정지용을 처음 만났고, 12월 10일경 변영로와 정인보 등을 만나 순수 서정시파인 ‘시문학’ 동인을 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시문학≫에 수록된 외국 시 번역에서 영미 시는 정지용이, 프랑스 시는 이하윤이, 독일 시는 박용철이, 한시는 정인보가 전담하게 되었다. 이후 1930년 가을 무렵 박용철이 옥천동에서 견지동으로 이사하면서 견지동 집은 ‘문예월간사’ 사무실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문예월간≫이 종간된 이후 박용철은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평론을 비롯해 해외 번역시와 수필, 창작시를 꾸준히 발표했다. 같은 해 7월 ‘해외문학파’가 주축이 된 ‘극예술연구회’가 결성되면서 이하윤의 중재로 박용철이 ‘극예술연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1934년 1월 ≪문학≫ 창간호를 발간, 편집과 발행 및 재정을 박용철이 맡았다. 이어서 같은 해 4월 ‘극예술연구회’의 기관지 ≪극예술≫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했다.
1935년 봄 박용철은 정지용, 김영랑과 함께 폐병으로 병석에 누운 임화의 병문안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시집 발간에 대해 합의하고 나서 산실된 원고들을 모아 10월 27일 ≪정지용 시집≫을 발간하고 이어 같은 해 11월 5일 ≪영랑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발간했다. 이후 <‘기교주의’설의 허망>, <기술의 문제> 등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에 전념했다.
1936년 무렵 박용철의 공식적인 문단 활동은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다시 문학잡지 간행을 계획했다. 이헌구, 구본웅 등과의 논의를 거쳐 잡지명을 ≪청색지(靑色紙)≫로 하고, 이듬해 1월 문단인들에게 발간 취지서를 발송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잡지 간행은 무산되고 말았다. 1937년 초겨울부터 박용철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다. 병석에서 <시단: 정축년 회고>, <시적 변용에 대해서>를 발표하고 곧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필답으로만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에서 시와 편지를 썼다고는 하나, 시 <만폭동>이 그의 마지막 공식 발표작이 되었다.
1938년 5월 12일 오후 5시 후두결핵으로 사직동 자택에서 3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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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4 방정환

도서정보 : 방정환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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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의 아버지’, ‘어린이의 영원한 친구’로 불리는 어린이문화운동의 선구자이다. ‘어린이’라는 존칭어를 만들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진정한 어린이의 친구이지요. 방정환 선생님의 단편과 장편, 소설과 번역서를 함께 실었습니다.

저자소개
어린이문화 운동의 선구자이며, 동요·동화 작가, 동화 구연가입니다. 1921년 서울에서 천도교소년회,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문화 운동을 하였으며, 1923년 순수 어린이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습니다. 독립신문을 만들고, 독립운동을 하여 감옥에 가기도 하였으며, 조국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민족계몽운동을 하였습니다. 호는 소파(小波)이고, 일본의 언론검열을 피하기 위해 잔물, 몽견초, 몽견인, 삼산인, 북극성, 쌍S, 서삼득, 목성, 은파리, CWP, 길동무, 운정, 김파영, 파영, ㅈㅎ생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어린이를 위해 창작동화, 번안동화를 발표하였으며, 1920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펴냈습니다. 대표 명작으로 꼽히는 ‘만년 셔츠’ ‘칠칠단의 비밀’, 동요 ‘형제별’ 외 여러 작품이 오래도록 읽히고 있습니다.

구매가격 : 7,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5 백신애

도서정보 : 백신애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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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의 현실을 여성적 시각에서 형상화한 뛰어난 현실주의 작가다. 여성의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당대 현실에 대한 폭넓은 비판적 의식을 보여준 그녀의 소설들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기에 있었던 1930년대 조선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의 구속과 억압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여성적 욕망을 새롭게 발견하는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한국 여성소설의 한 본령을 목도하게 된다.

저자소개
1926년 교사 시절, 북풍파인 "경성여자청년동맹","조선여성동우회"에 가입하여 비밀리에 여성운동을 한 것이 탄로나 권고사직을 당하고 서울로 올라가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백신애는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나의 어머니>가 당선된 신춘문예 최초 여성작가였다. 2008년 고향 영천에 문학비가 세워지고 "백신애문학상"이 제정되었다.

구매가격 : 3,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6 변영로

도서정보 : 변영로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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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 시인은 우리나라 신시에서 기교파의 선구적인 시인으로 기교에 중점을 두고 시어의 선택과 수사, 연마에 빼어난 시인적 재능을 보였으며, 민족의 정서를 섬세하고도 세련된 기법으로 시화시켰다.
변영로 시인은 작품에서 조선의 마음을 ‘님’이라는 실체로 호칭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머잖아 상봉할 님을 위하여 고통과 수난을 참고 견디는 순교자적 소명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소개
변영로(卞榮魯. 1898∼1961)

* 시인. 영문학자. 수필가. 호 수주(樹州). 서울 가회동 출생.
* 1909년 중앙 학교 입학.
* 1918년 중앙 고보 영어 교사.
* 1920년 문학동인지 《폐허》 동인 활동. 문단에 데뷔.
* 1927년 이화여전(梨花女專) 교수.
* 193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대학에서 수학.
* 1935년 동아일보사에 입사, 《신가정(新家庭)》 편집장.
* 1946년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 1953년 서울신문사 이사,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초대 위원장.
* 1961년 사망.
* 시집 《조선의 마음》(1924) 영시집(英詩集) 《진달래》(1947)
* 시문집 《수주 시문선(詩文選)》(1959)
* 수필집 《명정(酩酊) 40년》(1953) 《수주수상록(樹州隨想錄)》(1954)

구매가격 : 4,5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7 신채호

도서정보 : 신채호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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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천 년간 역사가들이 감추고 축소한
우리 고대사의 진실을 규명하다!
《조선상고사》는 독립운동으로 10년 실형을 받고 뤼순감옥에서 투옥 중인 신채호가 1931년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일보》에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으로, 신채호가 순국한 지 12년이 지난 1948년에 출간되었다. 단군시대부터 백제부흥운동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제1편 〈총론〉에서 제12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까지 모두 1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소개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이다. 지금의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신광식(申光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단재(丹齋),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등이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는데, 13세에 사서삼경을 모두 읽어 신동으로 불렸고,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해서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된다. 같은 해 장지연(張志淵)이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쓰고 투옥되자, 그의 뒤를 이어서 논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고, 『이태리 건국 삼걸전』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한다. 1907년 신채호는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선다.

1908년 신채호는 여성 계몽 잡지 『가정잡지』의 발행인이 됐고, 같은 해 『대한매일신보』에 5월부터 8월까지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을 연재한다. 5월에는 『을지문덕』을 광학서포에서 발행했고 다음해 『동국거걸 최도통전』을 출간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신채호는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사상의 전파를 위해 『해조신문』를 발간한다. 1914년에 『조선사』의 저술을 시작한 신채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광개토왕 왕릉 등 고구려 고적을 답사한다. 다음해 북경 도서관에서 『조선상고사』의 집필을 위한 연구 자료를 수집한다. 또 박은식(朴殷植), 문일평(文一平) 등과 박달학원을 설립한다. 1919년 신채호는 임시정부 전원위원회 위원장으로,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으로 추대된다. 같은 해 『신대한』의 주필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글을 썼고 대한 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의 부단주가 된다. 다음해, 보합단(普合團)의 내임장으로 추대된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집한다.

1921년 북경에서 김정묵(金正默), 박봉래(朴鳳來)등과 통일책진회(統一策進會)를 만들어 『통일책진회 발기 취지서』를 발표한다. 다음해 북경에서 조선 역사를 연구해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를 저술한다. 그리고 1923년 의열단(義烈團)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만들었고, 국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임시정부의 창조파로 활약한다. 다음해 관음사(觀音寺)에서 역사 연구에 몰두한다. 1925년에는 1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에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면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미발표 작품인 『전후 삼한고』를 쓴다. 1928년 대만의 무정부주의 비밀결사 사건에 연루된 신채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0년 형을 받아 뤼순 감옥에서 복역한다. 다음해 『조선사연구초』가 동지들에 의해 서울에서 출판된다. 1931년에 그는 『조선일보』에 6월부터 10월까지 『조선사』를 연재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한다. 1936년 2월, 신채호의 나이 57세, 뤼순 감옥에서 뇌일혈로 의식을 잃은 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타국 땅에서 옥사한다.

1945년에는 신채호학사가 설립되었고, 다음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조선사』의 서문을 『조선사론』으로 표제하여 광한서림에서 출판한다. 1948년 『조선상고사』를 종로서원에서 발행했고, 1955년 단재유고출판회에서 『을지문덕』을 순 한글로 번역 출판한다. 1962년 신채호에게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2007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단재 신채호 전집』이 발행되었다.

구매가격 : 22,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8 심훈1

도서정보 : 심훈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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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이루어진 심훈 작품집이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저자소개
본명 : 심대섭(沈大燮), 호 : 海風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구매가격 : 24,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39 심훈2

도서정보 : 심훈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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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이루어진 심훈 작품집이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저자소개
본명 : 심대섭(沈大燮), 호 : 海風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구매가격 : 23,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0 심훈3

도서정보 : 심훈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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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권으로 이루어진 심훈 작품집이다.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류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저자소개
본명 : 심대섭(沈大燮), 호 : 海風
1901년 9월 12일, 노량진 현 수도국 자리에서 조상 숭배 관념이 철저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파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조선조 말 중류 가정 출신으로 온후한 성품과 뛰어난 재질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이고 소년 시절에는 금강생, 중국 유학 때는 백랑, 1920년 이후에는 훈이라고 썼다.

1915년 심훈은 경성 제일고보에 입학하였으며, 1917년 3월 왕족인 전주 이씨와 혼인하였다. 제일고보 4학년 재학중(19세)에 3·1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3월 5일 피검되어 7월에 집행유예로 풀려 나왔다. 이어 중국 망명길에 올라 남경과 상해를 거쳐 향주에 이르러 지강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안석주와 교유하여 후일 "극문회"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1942년 이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아내 이해영과 이별하였다. 1930년,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결혼하여, 『독백』『그날이 오면』등의 시를 발표했다. 그 후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3년 심훈은 장편 『영원의 미소』를 탈고하여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이해영에 대한 회고적 작품 『직녀성』을 발표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자택을 짓고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심훈은 『상록수』를 쓰고 또 그것이 <동아일보>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창간 15주년 현상 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00원을 탄 작품으로, 농촌 계몽 운동을 일으킨 큰조카 심재영과 최용신을 모델로 쓰여졌다.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대개 애향심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몽주의 문학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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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1 안국선

도서정보 : 안국선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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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석 반포지효: 까마귀가 인간의 불효함을 비판한다. 반포지효라는 말은 까마귀가 늙은 부모를 돌본다는 뜻이다.
제 이석 호가호위: 여우가 인간의 간사함을 비판한다.
제 삼석 정와어해: 개구리가 인간의 견문이 좁음을 비판한다.
제 사석 구밀복검: 벌이 인간이 말은 달콤하게 하나 속은 칼, 즉 해칠 생각만 가짐을 비판한다.
제 오석 무장공자: 게가 인간의 장난스러움을 비판한다. 무장공자란 속이 없는 자라는 뜻으로 인간의 가벼움을 뜻한다.
제 육석 영영지극: 파리가 인간의 권력욕을 비판한다.
제 칠석 가정맹어호: 호랑이가 인간의 가혹함과 탐욕을 비판한다. 가정맹어호는 민중을 탄압하는 가혹한 정치가 있는 곳이 호랑이가 횡포를 부리는 곳보다 무섭다는 뜻으로 공자의 가르침중 하나이다.
제 팔석 쌍거쌍래: 원앙이 인간의 음탕함을 비판한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라고 한다.

저자소개
경기도 고삼(古三, 현 경기도 안성)에서 안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들은 월북 작가 안회남(安懷南)이고, 친일정객이었던 안경수가 백부였다. 훗날 안국선은 안경수의 양자로 들어가서, 생부보다 그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안국선이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서 일본 게이오의숙(慶應義塾) 보통과에 입학한 것도 안경수의 절대적인 도움 덕분이었다고 한다.

안국선은 게이오의숙을 1년 만에 졸업한 뒤, 1896년 도쿄전문학교(지금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 7월에 졸업했다. 그는 사상적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개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에게는 문명화가 최우선의 과제였고 일본은 그 모델로 비쳤다. 아울러 ‘조선 우민(愚民)’에 대한 ‘교화(敎化)’와 대한제국 타도를 개혁과 진보의 지름길이라고 파악했다. 대신에 의병 운동을 ‘어리석은 백성이 멋모르고 날뛰는 것’으로 인식했다.

안국선은 1899년 11월 귀국했지만, 안경수와 박영효 관련 정변 사건에 얽혀 1907년까지 유배를 당한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는 돈명의숙(敦明義塾)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했고, 여러 저서를 쓰는 등 활발한 사회 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07년 11월 30일부터는 제실재산정리국 사무관-탁지부 이재국 감독과장, 국고과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11년 3월엔 청도군수에 임명되어 2년 3개월 동안 재임했다.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마당에 황실 재산을 일본에 넘긴 일을 한 셈이었고, 그 공으로 청도군수를 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관직을 떠난 이후에는 박영효와 밀접한 관계를 말년까지 지속하면서 각종 사업에 손을 댔다(대부분 실패했다). 말년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내다 1926년 서울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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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2 오일도

도서정보 : 오일도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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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도 시인의 작품은 낭만주의적 바탕 위에 애상과 영탄이 서로 얽혀 있는 경향이 주류를 이룬다. 이성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자유로운 표출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거기에 깃든 애상과 영탄은 그로 하여금 어둡고, 그늘지고, 암울한 정서를 주로 노래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소개
오일도(吳一島. 1901∼1946)

* 시인. 본명 희병(熙秉). 일도(一島)는 아명. 경북 영양(英陽) 출생.
* 1918년 영양보통학교를 졸업.
* 1922년 서울 제1고등보통학교를 졸업.
* 1923년 일본 릿쿄(立敎)대학 철학과 졸업.
* 1925년 《조선문단》에 시 〈한(漢)가람 백사장(白沙場)에서〉를 발표하여 등단.
* 1929년 근화학교(槿花學校)에서 교편생활.
* 1934년 문예지 《시원(詩苑)》을 창간.
* 1942년 낙향, 〈과정기(瓜亭記)〉 등의 수필을 쓰면서 칩거.
* 1946년 간경화증으로 여의전병원(女醫專病院)에서 사망.
* 유고시집 《지하실의 달》
* 대표 시(詩)작품 〈내 창이 바다에 향했기에〉 〈가을하늘〉 〈코스모스꽃〉 〈지하실의 달〉 〈봄아침〉 〈송원(松園)의 밤〉 〈도요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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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3 오장환

도서정보 : 오장환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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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를 통해 현대 서정시의 새 영역을 개척했다.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시단의 세 천재’로 주목받았고 모더니즘 시인과 프롤레타리아 문학가 모두가 극찬했다. 그러나 그는 북을 택했고, 한국 문학사에서 방치되었다. ‘자신의 노래가 끝나는 날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라는 그의 시구처럼, 이제 그의 노래가 암담한 무덤을 딛고 아름답게 꽃필 때다.

저자소개
오장환(吳章煥. 1918∼1951)

* 시인. 충북 보은군(報恩郡) 회북면 중앙리 출생.
* 1930년 안성공립보통학교 졸업.
* 1935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중퇴.
* 1936년 《시인부락(詩人部落)》 《낭만》 동인.
* 1937년 《자오선(子午線)》 동인.
* 1938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문예과 중퇴.
* 1938년 《남만서방(南蠻書房)》 경영.
*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참여.
* 1946년 이태준, 임화 등과 함께 월북.
* 시집 《성벽(城壁)》(1937) 《헌사(獻詞)》(1939) 《병든 서울》(1946) 《나 사는 곳》(1947)
* 평론 《자아(自我)의 형벌》 《문단의 파괴와 참다운 신문학》(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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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4 윤곤강

도서정보 : 윤곤강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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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곤강(1911~1950)은 『나비』,『해바라기』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이다. 그리고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우리 문학사에서 두 번째로 시론집 『시와 진실』을 펴낸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는 카프시절부터 해방 이후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민족적 현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시와 비평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윤곤강에 대한 논의는 그의 문학적 유산의 풍부성에 비해,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간 김기림, 박용철 등에 비해 매우 소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연구가 좀더 활발하고 심도있게 조명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겨 그의 작품집과 누락된 그의 시를 모았다.

저자소개
윤곤강(1911∼1950)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인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문인으로 김남천, 노천명, 정비석, 안수길, 박영준, 윤석중, 이원수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윤곤강은 이들과 더불어 척박한 한국의 근현대문학을 일군 시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올해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개최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그의 시 <별과 새에게>가 낭송된 것도 그의 위상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시 <나비>와 <해바라기> 등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점과 그의 시론집 ≪시와 진실≫(1948)이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우리 문학사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점도 한국의 근현대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적잖은 비중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듯 윤곤강은 우리의 근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윤곤강은 1911년 9월 24일에 충남 서산군 서산읍 동문리 777번지에서 부친 윤병규(尹炳奎)와 모친 김안수(金安洙)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한다. 아호 ‘곤강(崑崗)’은 천자문의 “금생려수(金生麗水) 옥출곤강(玉出崑崗)”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1930년에 일본 센슈(專修)대학에 입학해 ≪시인춘추(詩人春秋)≫로 활동하던 그는 1931년 11월에 종합지인 ≪비판(批判)≫(7호)에 <? 성터에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이후 이 ≪비판≫을 비롯해서 ≪조선일보≫, ≪우리들≫, ≪중앙≫, ≪조선중앙일보≫ 등에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한다. 1933년 일본에서 귀국한 그는 ≪신계단(新階段)≫(8호)에 평론 <반종교문학의 기본적 문제>를 발표해 시뿐만 아니라 비평 활동도 같이 한다. 1934년 2월 10일 현실 비판적인 작품 활동을 해 오던 윤곤강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인 ‘카프(KAPF)’에 가입한다. 그러나 몇 개월 뒤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7월에 전북 경찰부로 송환되었다가 장수(長水)에서 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12월에 석방된다. 당시 수감 생활의 모습은 그의 시 <향수 1>, <향수 2>, <향수 3>, <창공>, <일기초>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해에 처음으로 소설 <이순신>을 ≪형상≫(1호)에 발표한다. 이후 그는 충남 당진읍 유곡리로 낙향했다가 1936년에 상경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1937년에 서울의 사립학교인 화산(華山)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며 그의 첫 시집 ≪대지(大地)≫(풍림사)를 발간하게 된다. 이듬해에 제2시집 ≪만가(輓歌)≫(동광당서점)를 펴낸다. 그리고 1939년에는 제3시집 ≪동물 시집≫(한성도서주식회사)을 발간하게 되고, 다음해에 제4시집 ≪빙화(氷華)≫를 출간하는 등 4년에 걸쳐 시집 네 권을 펴내는 왕성한 모습을 보여 준다. 1943년에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학교 전신) 도서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 시부회(詩部會) 간사로 임명되기도 한다. 1944년 동거하던 김원자와 사별하게 된 그는 충남 당진읍 읍내리 368번지로 낙향한다. 이 시기 일제의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해 면 서기로 근무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상경한 그는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카프에 가담해 식민지 현실을 비판적으로 표출하던 작품 세계가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1946년 모교인 보성고보 교사로 근무하게 되고, 이후 그는 조선문학가동맹을 탈퇴한다. 이 시기 문우들과 함께 해방 기념 시집인 ≪횃불≫을 발간한다. 1947년 그는 성균관대 시간강사로 출강하면서 편주서인 ≪근고조선가요찬주(近古朝鮮歌謠撰註)≫(생활사)를 펴낸다. 1948년에 중앙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그는 고독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여 준다. 제5시집 ≪피리≫(정음사)와 제6시집 ≪살어리≫(정음사)를 펴냈으며,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두 번째로 시론집 ≪시와 진실≫(정음사)과 찬주서 ≪고산가집(孤山歌集)≫(정음사)을 발간한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1950년 1월 7일 서울 종로구 화동 138?113번지에서 작고하게 되고, 충남 당진군 순성면 갈산리에 안장된다. 제주 조각공원과 보성고교, 그리고 충남 서산시 서산문화회관과 그의 묘소 입구 등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구매가격 : 1,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5 윤기정

도서정보 : 윤기정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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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문학운동가이자 문학·영화 평론가 그리고 소설가였던 다재다능했던 윤기정. 비평사나 소설사의 범주를 넘어서 문학운동사적 관점에서 빛을 더하는 윤기정의 단편 소설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소개
190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필명은 효봉(曉峰), 효봉산인(曉峰山人)이다. 아호를 효봉(曉峰)으로 쓰기도 했던 평론가 겸 작가이다. 사립 보인학교를 다니면서 보성중학교에 다니던 임화와 만나 10대 때부터 소설을 습작했다. 월간지 [조선지광]에 성탄야의 추억(1921), 미치는 사람(1927) 등을 발표하였는데, 이들 작품에는 사회적 문제에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해결하려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1922년에 조직된 최초의 사회주의 예술단체 염군사에 참가하여 파스큘라와 통합,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카프)’이 결성되는 데 기여하였으며, 김복진,박영희,한설야 등과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5년 조선 프로예맹 서기국장,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27년 김화산(金華山)이 촉발시킨 아나키즘과 볼셰비즘 논쟁에서 한설야.조중곤(趙重滾) 등과 함께 아나키즘을 집중공격함으로써 카프의 제1차 방향 전환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소장파가 카프를 장악하였다. 1928년 [생의 성]에 평론 문예운동의 금후전개를 게재하였다가 전문 삭제되었고, 1929년 창간된 [조선문예]에 주요 필자로 참가하여 평론 문예시감(文藝時感)을 발표하였다.1930년 임화와 더불어 [신건설사]를 결성했고 1931년에는 제1차 카프 사건으로 검거되었지만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1930년 카프의 조직개편 때 김남천, 임화 등과 함께 기술부 산하의 영화분야에서 활동하다, 1932년 임화 등과 중심이 되어 문학잡지 [집단]을 창간하였으며, 1933년 카프의 제2차 검거사건 때 이기영, 한설야, 송영, 권환 등과 함께 검거되어 고초를 겼었으나 전향을 서약하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936년 12월 1일 이갑기, 이동규, 한설야 등과 함께 문학잡지 [풍림]을 창간하였다.해방 이후 들어서 윤기정은 작품 활동보다 문단 운동에 더 치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5년 서울에서 한효가 중심이 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예술동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적극 가담하였으나, 임화, 김남천의 ‘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 밀려 1946년 월북했다. 한동안 해주에 거주하다 리기영이 위원장으로 있던 ‘조선문화협회(朝蘇文化協會)’의 중앙상임위원을 지내는 한편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의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55년 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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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6 윤동주

도서정보 : 윤동주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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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및 한글창작 혐의로 체포, 조사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지 않고 옥중에서 요절한 민족시인 청년 윤동주. 직접 지은 시처럼 짧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다 그는 끝내 별이 되었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고 한국어 사용과 창작이 금지되었던 1941년, 우리말 시집 출간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고 일생의 문우 강처중과 정병욱에게 남긴 육필 원고가 기적적으로 보존, 그의 사후인 1948년에 친지들의 도움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은 마침내 출간되었다. 해방을 불과 반 년 앞둔 1945년 늦겨울, 차디찬 형무소 바닥에 누워 외마디 고함을 끝으로 숨을 거둔 지 꼭 3년 만의 일이다.

본 책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십자가] 등 주옥같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 몰락한 조국을 마음으로 지켜낸 한 청년, 아아... 그리운 동주! 그의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소개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자화상」「쉽게 쓰여진 시」을 발표하였고 문예지 『새명동』발간에 참여하였으며, 대학시절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중이던 1945년 2월,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출간되었다.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으며, 1985년부터 한국문인협회가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서도 동명의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이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을 빛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적 민족시인"이라는 평가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은 그 댓가로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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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7 윤백남

도서정보 : 윤백남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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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백남은 연극운동으로 식민지 조선에 ‘문화’를 건설하고자 한 다기多技한 재능을 가진 예술인으로 최초의 ‘조선영화’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중소설과 야담공연, 라디오 방송 등 그의 문화 활동의 궤적은 초창기 조선 대중문화의 축도縮圖와도 같다. 문예 전반에 걸친 다양한 활동 탓에 한국 현대문학 연구에서 윤백남은 1910년대 연극운동가, 1920년대 극작가 및 감독, 1930년대 역사소설, 대중소설 작가로 분절되어 다루어졌고 그의 다채로운 이력과 작품은 아직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 백남의 발견은 그 편편히 흩어져 있는 식민지 조선의 문예운동 전반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발견 뒤에 이 땅 대중문화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본명은 윤교중尹敎衆, 호는 백남白南
1888~1954. 한국의 소설가, 극작가, 연극 영화인으로 충남 공주 출신이다.
어릴 때는 한학을 공부했다. 1903년 한성부로 올라와 경성학당 중학부 졸업, 190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06년 일본 와세다대학 고등 예과 졸업, 1910년에 동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11년 보성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했다, 매일신보 기자가 되어 문필 생활을 시작했다. 신파극 극단인 문수성을 창단하여 번안 신파극을 공연하고 배우로도 활동했다. 잡지사 반도문예사를 설립하여 월간 잡지 ‘예원’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 ‘동아일보’가 창간되자 입사하였고, 매일신보에 단편소설 ‘몽금’을 발표하였다. 연극론과 희곡을 발표하고 민중극단을 조직하여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를 촬영했다. 윤백남은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으며, 민중극단 배우였던 이월화를 출연시키기도 했다.
영화 ‘운영전’, ‘심청전’ 등을 연이어 발표하였으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자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설 창작에 몰두했다. 1930년에 동아 일보에 연재한 ‘대도전’이 큰 인기를 끌면서 윤백남은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1930년대에는 야담 운동에 뛰어들어 많은 야담 작품을 발표했고, 1934년 10월 월간야담을 창간했으며, 1937년에 만주로 이주해 역사소설을 썼다.
1945년 8·15 광복 후 귀국하여 조선영화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50년 6·25사변 중 해군 중령으로 복무, 1953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 학장을 맡고,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 회원을 지냈다.
1954년 9윌 29일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연극, 영화,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근대 문화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장편 역사소설 『봉화』, 『흑두건』, 『해조곡』, 『백련유전기』, 『낙조의 노래』, 『회천기』, 『흥선대원군』 등과 희곡집 『운명』, 저서 『조선야담전집』, 『조선형정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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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8 이무영

도서정보 : 이무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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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사에서 농민 소설의 한 축을 형성한 이무영(1908~1960)의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실은 작품집이다. 작가가 실제 귀농을 해서 작품 속에 성실한 농민과 귀농한 지식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농본주의적 세계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李無影, 용구(龍九)
본명은 용구. 1908-1960. 소설가. 충북음성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25년 일본으로 가서 세이조 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 작가 가토 다케오의 문하에서 4년간 문학 수업을 했다. 1929년 귀국해 잠시 소학교교원으로 일했고 1932년 극예술연구회 동인과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했으나 1946년 일장기말소사건으로 그만두고 조선문학을 주재했다. 서울대, 연세대, 숙명여대 등의 강사를 거쳐 숙명여대, 단국대 교수를 지냈고, 1946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1951년 해군정훈감, 1955년 한국자유문학가협회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6년 제 4회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런던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 한국의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농촌을 제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썼다. 뇌일혈로 별세하였다. 작품으로 "흙의 노예", "제1과 제1장", "농민", "농부전초", "먼동이 틀 때", "명일의 포도", 저서로 "소설작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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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49 이상

도서정보 : 이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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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맞닥뜨린 식민지 조선 당대의 기념비요 자화상 역할을 하는 이상의 소설과 시, 그리고 수필이 수록되어 있다. ‘천재’와 ‘광인’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 이상은 자유연상, 자동기술, 내적 독백 등의 실험적 구성과 문체로 식민지 근대와 그것에 촉발된 당대인의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저자소개
현대시사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며, 1930년대에 있었던 20년대의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반발한 모더니즘 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건축가로 일하다가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전위적이고 해체적인 글쓰기로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겉으로는 서울 중인 계층 출신으로 총독부 기사였던 평범한 사람이지만, 20세부터 죽을 때까지 폐병으로 인한 각혈과 지속적인 자살충동 등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애 했던 기이한 작가였다. 한국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시와 소설을 창작한 바탕에는 이런 공포가 늘 그의 삶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10년에 태어나 1912년 아들이 없던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집에 장손으로 입양되었고, 백부의 교육열에 힘입어 신명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마쳤다. 손가락이 잘리고 빈궁하게 살았던 친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입양한 백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영민하여 학업 성적은 우수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질이 있어 학창시절, 직장시절 내내 그림에 꿈을 품고 열중하였다. 또한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이 있었고, 예술적 이상향으로 동경(도쿄)을 꼽았다고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현재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학생 회람지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28년 졸업 앨범에서 평생 동안 필명이 되는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929년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어 근무하던 중 12월에 건축학회지 《조선과건축》의 표지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스스로를 선각자이며, 천재, 모더니즘의 기수이자 전위예술의 선구자라고 자처했는데, 식민지 시대임에도 민족적인 자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범세계적이고 현대적인 문명에 심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 고유의 색채를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 문학계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실제 생활은 나태하고 난잡, 무기력했다고 전해지며,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잡지《조선(朝鮮)》의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이기도 한 『12월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였고, 1931년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BOITEUX·BOITEUSE", "오감도" 등을 <조선과 건축>에 발표했고, 1932년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조선>에 발표하면서 비구(比久)라는 익명을 사용했으며,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였다. 이후 <구인회>에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고,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다. 미친수작, 정신병자의 잡문이라는 혹평을 받아 결국 30회로 예정되어 있었던 분량을 15회로 수정하여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열화와 같은 찬반양론을 일으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설 「지팡이 역사」, 수필 「혈서삼태」와 「산책의 가을」 등을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연재되는 동안 삽화를 맡아 그리기도 하는 등 창작 활동은 계속하였다.

친구인 구본웅(具本雄)과는 신명(新明)학교 동기동창일때부터 각별히 친했으며, 대학입학시 그가 선물한 스케치박스(사구상)에서 필명인 이상이 나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화가 구본웅이 인쇄소 창문사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여 근무하면서 1936년, 구인회의 동인지인 《시와소설》을 창간하고 편집해 발간하지만 1집만을 발간하고 그만둔다. 이후 <중앙>에 "지주회시", <조광>에 "날개", "동해"를 발표하였다.


백부에게서 유산을 물려받고 가족들과 함께 살았으나, 가족들의 무지와 가난에 곧 질려서 보름만에 나와버렸다. 1933년, 무질서한 생활로 폐병이 심해져 각혈까지 한 그는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구본웅과 함께 황해도 백천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 곳에서 그의 연인인 금홍을 만났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금홍을 못잊고 방황 하다가 "제비"다방을 마련해 그녀를 마담자리에 앉혔다. 그는 금홍과의 만남 이후에도 여러 여급들과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들을 무척 사랑하긴 했지만 그 행복이 오래간 적은 없었다. 다만 이들과의 관계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어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금홍과 권순희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가면 "봉별기", "날개", "지주회시", 그리고 "종생기"등과 전문시 음화시, 문명 비평류의 수필 등을 산더미처럼 쏟아내었다. 이 수많은 작품들이 술에 절어있던 한밤 중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천재 이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그러던 그는 이화여전 출신인 여류문인이자 친구 구본웅의 이복동생인 변동림(이상이 죽은 뒤 순화 김환기의 부인이 된 김향안 씨)과 결혼을 하였다. 그녀는 금홍과 달리 빈민굴에서 고생하는 그의 가족과 깊은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그녀는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건강악화와 어려운 경제적 여건 등, 국내에서의 비참한 현실과 마주친 이상은 도피하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탓인지, 가족과 아내를 남겨둔 채 1936년에 동경행을 선택했다. 동경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가난을 절절히 겪던 그는 "종생기", "환상기", "실락원", "실화", "동경"등의 수많은 작품을 엮어냈고, "봉별기"를 <여성>에 발표하였다. 그의 마지막 여자인 변동림은 "동해", "단발", 구필 "행복", "종생기"의 "선", "실화"의 "연" 등에서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듬해 2월, 극도로 악화된 건강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상은 1937년 불량선인(사상불온) 혐의로 운 나쁘게도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옥살이를 치렀다. 건강이 악화되어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된 그는 보석을 허가받아 평소 동경제대의 부속병원에 입원했다. 항상 여자와 문학에 빠져 살던 이상은 결국 날지 못한 채 변동림이 구해온 레몬의 향기를 맡으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경성으로 돌아왔으며, 같은 해에 숨진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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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0 이상화

도서정보 : 이상화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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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이상화. 그는 죽는 날까지 식민지의 절망적 현실 아래에서 가장 용기 있고 꿋꿋하게 민족혼의 불멸함을 주장하고 온몸으로 일제에 항거하였던 암흑기 최대 저항 시인의 한 사람이다.

저자소개
호: 상화(尙火), 무량(無量), 상화(想華), 백아(白啞)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 혼으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하고, 그 해 7월 서문로 집을 나서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서울 냉동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와 만나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기 시작,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단조」,「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가회동 이른바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 「나의 침실로」를 《백조》3호에 발표, 1925년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26년, 〈개벽〉 70호에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지만 이 시의 게재로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후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다가,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1948년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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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1 이용구

도서정보 : 이용구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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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과 안동을 유람하며 유려한 한시를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그의 한시를 통해서 보여지는 간절함을 볼 수 있다.

저자소개
이용구 李容玖 (1892년 ~ 1944년)
한국의 한학자이다. 어렸을 때, 한학을 공부하여 한자로 된 글과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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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2 이용악

도서정보 : 이용악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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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제 식민치하의 비극적인 민중의 삶과 이로 인해 일어난 대규모 유이민 문제를 비극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북방의 시인’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의 시집 <오랑캐꽃>이다.

저자소개
1914에 태어난 이용악은 아버지의 객사 후에는 어머니가 꾸린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928년 함북 부령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19세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같은 해 일본 히로시마의 고분(興文)중학교 4학년으로 편입해 1933년에 졸업했고 이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1학년을 수료했다. 그 후 약 2년 동안 생활고를 겪으며 막노동에 종사했다. 1936년 4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일본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막노동을 병행해야 했으며, 방학이면 돌아와 고향의 문인들과 어울리곤 했다. 문학에 꿈을 품은 그는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학지인 도쿄에서 동향(함북 명천)의 시인 김종한(金鍾漢, 1916∼1944)과 함께 동인지 ≪이인(二人)≫을 5∼6회 발행했으며, 형 송산(松山)과 동생 용해(庸海)와 함께 삼형제가 시를 썼다. 도쿄의 산분샤(三文社)에서 두 권의 시집 ≪분수령≫(1937)과 ≪낡은 집≫(1938)을 잇따라 펴냄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40년대 초반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서정주렛응瀁??더불어 “문단의 삼재(三才)”로 꼽힐 정도로 문단 중심에 진입했다. 193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최재서(崔載瑞)가 주관한 당대의 문예지 ≪인문평론≫에 기자로 몸담았으나 생활은 여전히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41년 ≪인문평론≫이 폐간된 후 귀향해 한동안 함북 지역의 유일한 신문이자 일본어 신문인 ≪청진일보(淸津日報)≫의 기자 생활과 주을(朱乙) 면사무소 서기 생활을 했으며, 문필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급거 서울로 돌아와 ‘조선문화건설본부’에 참여하는 한편 11월경부터 약 1년간 당시의 대표적 좌익지인 ≪중앙신문≫의 기자로 근무했다. 이듬해 2월 8일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해서 활동했으며 이 단체가 개최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석하고 <전국문학자대회(全國文學者大會) 인상기(印象記)>를 썼다. 1947년에 세 번째 시집 ≪오랑캐꽃≫을 아문각(雅文閣)에서, 1949년에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李庸岳集)≫을 동지사(同志社)에서 각각 상재했다. 1947년 남로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월북 시인인 배호(裵澔)와 함께 ‘조선문화단체총연맹’ 서울시지부 예술과의 핵심 요원으로 선전렐굘?활동에 종사했다. 1949년 8월 ‘남로당 서울시 문련 예술과 사건’으로 검거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하다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풀려 나와 고향인 북을 선택했다. 1953년 임화 등 남로당계 인사들이 숙청당할 때 “공산주의를 말로만 신봉하고 월북한 문화인”으로 지목되어 한동안 집필을 금지당했다. 이후 <평남관개시초(平南灌漑詩抄)> 제작(1956)과 ≪역대악부시가≫를 번역하고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1971년 58세에 지병인 폐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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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3 이육사

도서정보 : 이육사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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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1923년 20세 때 일본에 건너가 1년 이상을 지내고 돌아왔다. 귀국 후 그는 1925년 형 원기와 함께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가담했고, 이듬해 북경으로 갔다. 다음해 귀국한 육사는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관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2년 7개월 간의 옥고를 치뤘다. 이때 죄수번호가 "264" 였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망국의 나그네 길에서 넓은 세상을 보았고, "들개에게는 길을 비켜주는 겸양을 보이지만,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어 물러서지 않는 것"이 자기의 길이라 여긴 이육사의 작품을 담았다.

저자소개
호가 "육사(陸史)"이고 본명은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 개명은 "활(活)"이다. 경북 안동(安東)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출옥 후 다시 베이징대학 사회학과에 입학, 수학 중 루쉰(魯迅) 등과 사귀면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0년에 육사란 이름으로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3년 귀국, 신문사·잡지사를 전전하면서 시작 외에 논문·시나리오까지 손을 댔고, 루쉰의 소설 『고향(故鄕)』을 번역하였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이 해 6월에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의지를 노래했다. 안동시에 육사시비(陸史詩碑)가 세워졌고, 1946년 유고시집 『육사시집(陸史詩集)』이 간행되었다.

구매가격 : 9,8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4 이익상

도서정보 : 이익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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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익상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동인지 「폐허」와 「동경 조선인유학생회 학우회」를 통해 활동하였던 그의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본명은 윤상. 전주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보성중학교를 거처 일본대학 사회학과로 유학했다. 체일기간 중 동인지 『폐허』레 추가 합류하는 한편 "동경 조선인유학생회 학우회"의 기관지 『학지광』의 편집부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이익상은 『조선일보』 기자, 『동아일보』 학예부장,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문학외의 예술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구매가격 : 8,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5 이인직

도서정보 : 이인직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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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설의 포문을 연 <혈의 누>외에도 <귀의 성>과 <은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너무적다. 그러기엔 신소설의 가치가 너무나도 크다. 이제 이 작품집으로 우리 문학의 신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었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이인직 작가는 친일파로, 1862년 경기도 음죽군 거문리에서 태어났다. 1900년 대한제국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 후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1903년 마야코 신문 견습생으로 근무하여 일본어 소설 『과부의 꿈』을 발표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 소속 한국어 통역으로 발탁되어 종군했다. 친일단체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의 발간을 주도하고,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만세보에 『혈의 누』『귀의 성』을 연재했다. 이듬해 재정난에 빠진 만세보를 인수하여 대한신문으로 개제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08년 원각사에서 『은세계』를 창극 형식으로 공연하였으며, 『귀의 성』을 중앙서관에서, 『치악산』을 유일서관에서 발간하였다. 이후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이완용의 밀사 자격으로 일본을 내왕하였다. 1911년 경학원의 사성으로 임명되고 『경학원잡지』의 편찬과 발행을 맡았다. 1913년 『혈의 누』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다 중단하였다. 1916년 55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천리교예식으로 화장되었다.

구매가격 : 13,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6 이장희

도서정보 : 이장희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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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책 속에서)


저자소개
이장희(李章熙)는 1900년 11월9일, 경상북도 대구부 서성정 1정목 103번지에서 당대 손꼽히는 부호이자 전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이병학과 박금련의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박금련은 이병학 사이에서 3남 1녀를 낳았다).
이장희의 처음 이름은 양희였으나 그가 20세 되던 해인 1920년 4월에 개명한 호적에는 장희(樟熙)로 고친 바 있고 뒤에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23∼1924년 사이에는 장희(章熙)로 줄곧 썼는데 이것이 필명이 되었다. 아호는 고월(古月. 혹 근자에 ‘孤月’·‘苦月’ 등을 그의 아호의 하나로 보고자 하는 일이 있으나 그는 아호로서 ‘古月’만을 썼을 뿐이다)이다. 아버지 이병학은 장희의 생모 박금련이 1905년 사망한 이래 박강자, 조명희 등을 맞아들여 슬하에 12남 9녀를 두었는데 이들 중 유아 때 사망한 7남매(3남 4녀)를 제외하면 모두 9남 5녀의 14남매가 된다.
이장희는 아호 고월 이외에 어렸을 적에 ‘꿀돼지’, ‘꿀봉’, ‘박쥐’와 같은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릴 들었으며 1905년 다섯 살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박금련이 사망한 후 들어온 계모 박강자는 1923년 8월 사망하기까지 이병학과의 사이에 11남매를 두었다.
1906년 이장희는 6세로 대구보통학교에 입학해 1912년 졸업했으며, 1913년 13세로 일본에 건너가 경도중학교에 입학한다(하나 근자 조사해 확인한 결과 이장희가 경도중학에 입학 내지 졸업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1918년 18세로 귀국했는데 일설에는 일본 청산학원을 지망하려다가 실패했다는 설이 있으나 그 근거는 극히 희박하다.
1924년 24세 때 5월 문예 동인지 ≪금성≫ 3호에 이장희라는 필명으로 시 <실바람 지나간 뒤>, <새 한 머리>, <불노리>, <무대>, <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 가운데 <봄은 고양이로다>는 그가 첫 번째로 발표한 시 작품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잡지에 톨스토이의 소설 <장구한 귀양>을 번역해 실었다. 12월 여성 전문지 ≪신여성≫(2권 12호)에 시 <동경>을 발표했는데 혹 일설에는 이 작품의 모티프는 이장희가 일본 경도에 체류했을 때 알고 지냈던 소녀 에이코에게서 찾은 것이라고 한다.
1925년 25세가 된 그는 ≪신여성≫(3권 2호, 1월호)에 시 <석양구>를 ,종합 문예지 ≪생장≫(5호, 5월호)에 <고양이의 꿈>, <가을밤>을 발표하고 시사 종합지인 ≪여명≫(1호, 6월호)에 <청천의 유방>과 <비 오는 날>을, ≪신민≫(5호, 9월)에 <사상(沙上)>, <비인 집>을 발표한다. 계속해서 ≪신민≫(6호, 10월호)에 <달밤 모래 우에서>와 <연> 등을 발표한다.
1926년 26세로 ≪신민≫(9호, 1월호)에 시 <겨울의 모경>을, ≪여명≫(7호, 6월호)에 <봄 하눌에 눈물이 돌다>와 ≪신민≫(16호, 8월호)에 <하일 소경>을, ≪신민≫(19호,11월호)에 <들에서>와 <눈>을 발표한다.
1927년에는 ≪조선문단≫ 20호, 4월호)에 시 <가을ㅅ밤>을, ≪신민≫(26호, 6월)에 <눈은 나리네>, <봄철의 바다>를, ≪신민≫(28호, 8월)에 <저녁>을 발표했으며, 이듬해에는 ≪여시≫(45호, 6월호)에 시 <저녁>, <녀름ㅅ밤 공원에서>를 발표한다.
1929년에는 ≪신민≫(45호, 1월호)에 <버레 우는 소리>, <귓드람이>를, ≪문예공론≫ (1호, 5월호)에 <적은 노래>, <봉선화>, <눈 나리는 날>을, ≪중외일보≫(11월 14일)에 <어느 밤>을 발표한다. 그리고 발표연대 및 게재지 미상의 <여름밤>, <쓸쓸한 시절>을 남겼다.
11월 3일 오후 3시경, 이장희는 대구부 서성정 1정목 103번지 본가의 머슴이 거처하던 작은 방에서 극약을 복용하고 유서 한 장, 유언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두 계모와 배다른 형제와의 갈등, 일제 식민지 정책에 동조해 항상 일본인의 통역을 종용하던 아버지와의 사상적 대립과 갈등, 버린 자식 취급과 냉대로 인해 자존심 강하고 섬세하던 그는 죽기 2, 3년 전부터 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살하기 몇 달 전, 서울에서 고향인 대구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외출도 않고 거의 두문불출이었다. 다만 죽기 3, 4일 전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공초 오상순의 거처를 찾아갔다. 공초가 머물던 여관집 주인이 한 달 전에 동래에 가고 없다고 말하니, 안색이 돌연 창백해지며 어깨를 툭 떨어트리고 멍하니 한참 동안 말도 없이 서서 있다가 눈에 눈물이 글썽해 가지곤 힘없이 발길을 돌리더란 것이다. 주인은 하도 이상하기에 문 밖에 서서 황혼 가운데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양을 멀리 바라본즉 곧 쓰러질 듯해서 마음이 몹시 안됐더라고 했다는 것이다(공초의 술회). 그 후 그는 2, 3일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배를 깔고 엎드려 수없이 금붕어를 방바닥에 그려 놓고 1929년 11월 3일 오후에 극약을 마셨다고 전해진다.
장지는 선산인 대구부 신암정으로 정해져 유해가 안치되었으나 지금 현재 그의 묘소는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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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7 이해조

도서정보 : 이해조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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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세의 침탈과 봉건주의의 모순에 시달렸던 일제강점기 시절, 반봉건의 기치를 높이 들고 시대의 모순과 대결했던 선각자 이해조의 문제의식 짙은 신소설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소개
저자 이해조 李海朝 (1869~1927)는 신소설 작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10대손으로 1869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배워 19세에 과거 초시에 합격한 바 있으며 구한말 《제국신문》 기자, 대한협회 간부 등을 지내며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권리 신장에도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08년부터 1912년까지 빈상설, 구마검, 자유종 등의 신소설을 꾸준히 연재하여 발간했다. 1913년 매일신보사를 퇴사한 후 1927년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구매가격 : 8,9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8 이효석1

도서정보 : 이효석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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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를 노골적인 표현보다 은근한 생태를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만든 화분, 분녀, 저자의 고향 산촌을 배경으로 한 짙은 향수를 풍겨주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대표적인 작품을 2권으로 구성하였다. 저자의 모든 작품에서 강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지방색이 짙은 어휘라든가 그로부터 발산되는 향토적 정서를 흐뭇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냄새 같을까. 언니.”
“백합 냄새 같지.”
“무엇 말인데.”
격에 맞지 않는 대답을 우습게 여기면서 형의 얼굴을 쏘아붙인다.
“네 얼굴 말야.”
“괴덕만 부리네. 누가 얼굴 말인가, 라일락 말이지.”
가까이 온 형이 얼굴을 꽃송이를 휘어 가볍게 갈기며,
“장미 냄새 같잖우.”
“글세.”
“꿀 냄새두 같구.”
“냄새두 잘은 맡어.”
“사향 냄새두 나구.”
“수다스럽다.……”
형은 꽃봉오리 하나를 뜯어서 코 끝에 대면서.
“바로 말하면 라일락 냄새는 몸 냄새라나. 잘 익은 살 냄새라나. 가진비밀을 다 가진 몸 냄새.……알겠니.”
“언니가 수다스럽지 누가 수다스러우.”
찔레순을 꺾으면 푸른 진이 빠지지 돋아난다. 그 진을 손가락 끝에 묻혀서 풀장난을 하는 미란의 팔을 세란은 문득 휘어잡았다.
“아깝다. 이 고운 몸을 날도적한테 뺏길 생각을 하면.”
“망령이 났나봐.”
“무르녹은 봉오리가 하룻밤 비에 활짝 피어 버린다는 게 슬픈 일이란다.”
“아저씨가 며칠 안 오더니 실성해진 모양이지.”
“결국 단주가 날도적이 될 테지.……선머슴 호박이 떨어졌어.”
(소설 <화분> 중)

저자소개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구매가격 : 27,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59 이효석2

도서정보 : 이효석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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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제를 노골적인 표현보다 은근한 생태를 드러내는데 주력하여 만든 화분, 분녀, 저자의 고향 산촌을 배경으로 한 짙은 향수를 풍겨주는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의 대표적인 작품을 3권으로 구성하였다. 저자의 모든 작품에서 강하게 눈에 띄는 것은 지방색이 짙은 어휘라든가 그로부터 발산되는 향토적 정서를 흐뭇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냄새 같을까. 언니.”
“백합 냄새 같지.”
“무엇 말인데.”
격에 맞지 않는 대답을 우습게 여기면서 형의 얼굴을 쏘?

구매가격 : 16,0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0 임화

도서정보 : 임화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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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계급주의 이데올로기만을 앞세우던 당시의 카프 시단에서, 서정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시를 창작해 카프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만큼이나 그의 작품 또한 다양하게 변모한다. 여기에 실린 시들을 통해 임화의 폭 넓은 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저자소개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다. 임화는 필명이다. 1908년 10월 13일, 서울 종로의 낙산 아래에 위치한 보통 가정에서 태어난다.
1926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는 한편, 카프(KAPF)에 가입해 이후 우리나라 프롤레타리아문학 활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1927년에는 ‘임화’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다이즘 성격의 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카프에 몸을 담기 시작한 이래 일관되게 계급주의문학을 추구해 나갔다. 이듬해인 1928년에는 박영희의 지도를 받으며 김기진, 송영, 김영팔, 최서해, 최승일, 박팔양, 이기영, 안석영 등 카프 맹원들과 친교를 맺고 프로문학 운동에 더욱 깊숙이 관여한다.
1929년에 박영희의 도움으로 동경으로 가서 김남천, 안막 등을 만나 훗날 카프를 장악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이른바 제3전선파로 불리는 일본 유학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카프시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바로 이 시기, 도일을 전후해 단편 서사시 양식을 개척한다. 또한 이즈음에 김기진과 박영희의 이른바 내용·형식 논쟁이 일어나는데, 임화는 박영희의 편에 서서 김기진을 기회주의적 개 량형 활동가라고 비판한다. 이 무렵 영화에도 관심을 보여 <유랑>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한편 <혼가>를 직접 제작하여 개봉하기도 한다.
1931년, 동경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안막, 김남천, 권환 등과 손잡고 카프의 구세대 인물들을 일선에서 후퇴시키고 카프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1931년에 벌어진 일제의 카프 맹원들에 대한 제1차 검거 사건에서 박영희와 함께 체포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이듬해에 김남천 등과 함께 카프의 제2차 방향 전환을 주도한 후 최고 지도자인 서기장 자리에 오른다. 1934년에는 박영희의 전향 선언이 나오고 세칭 신건설사 사건(전주 사건)으로 불리는 카프 제2차 검거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에 카프 맹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인물이었던 그는 폐병으로 투옥을 면한다. 그러나 조직 내외의 여건이 악화되자 임화는 1935년에 카프 해소파들과 함께 카프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1936년 이후 정세 악화로 문학을 통한 정치적 투쟁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자, 문학의 정치적·현실적인 문제보다는 그 본질 문제나 문학사 쪽으로 관심을 돌린다. 1938년에 이르러 첫 시집 ≪현해탄(玄海灘)≫을 발간하는데, 이 시집은 계급주의 이념과 서정성이 절실하게 조화를 이룬 수준 높은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이듬해에는 ≪개설 신문학사≫를 집필하고 1940년에는 일제 치하에서 가장 방대하고 수준 높은 평론집인 ≪문학의 논리≫를 발간하는 한편, 1944년에는 ≪조선 영화 연감≫과 ≪조선 영화 발달사≫ 등 영화 관련 저서를 집필하기도 한다.
광복이 되자 임화는 이원조, 김남천, 이태준 등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를 결성하고 그 중심인물이 된다. 1946년에는 위조지폐 사건인 이른바 ‘정판사 사건’이 터지면서 미군정의 남로당 탄압이 적극화되는데, 이 어려운 때에 임화는 남로당 외곽 단체인 ‘민전(民戰)’의 기획 차장을 맡아 남로당 문화 담당 최고 이론가로 활동한다. 그런 와중에도 1947년에는 제2시집 ≪찬가(讚歌)≫와 시선집 ≪회상시집(回想詩集)≫을 발간해 문학 활동을 꾸준히 전개한다. 미군정의 남로당원 탄압이 심해지자 끝내 월북해 황해도 해주로 이동한다.
1948년 이후 박헌영이 있는 평양으로 가서 그를 지지하는 문학 노선을 견지하면서 ‘조선문화예술총동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한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을 따라 서울로 돌아와 잠시 머문 뒤 종군작가단의 일원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간다. 이때의 전선 체험은 1951년에 발간한 네 번째 시집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 생생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이듬해에 관제 비평가 엄호석 등에 의해 이 시집의 시편들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정치적 비판을 받는다. 1953년 8월 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부에서 미제의 고정간첩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구매가격 : 9,800 원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전집 061 장지연

도서정보 : 장지연 | 2016-07-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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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 張志淵 )이 역술한 전기소설. 원작명은 미상이다. 1907년 광학서포(廣學書 孃 )에서 발간하였다. 표지에 ‘ 신소설 ’ 이라고 규정한 이 작품은 전10회로 되어 있으며, 잔다르크의 구국전사(救國戰史)를 중심으로 하여 그 생애를 전기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번안은 중국문헌을 매개로 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그런 보기를 인명표기에서 볼 수 있다. 곧, ‘ 카알 7세 ’ 를 ‘ 사이 뎨 칠 ’ 로 번역한 것 같은 예가 바로 그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프랑스의 애국소녀 잔다르크가 백년전쟁 때에 16세의 나이로 영국군의 포위를 뚫고 앞장서서 오를레앙성(城)을 탈환하고, 뒤에 영국군에 잡히어 화형(火刑)을 당한 사적을 전기소설로 엮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서구의 위인이며, 특히 구국의 영웅이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이는 역술가의 민족주의적 자보사상(自保思想)과 관련되는 것으로, 역사에 우의(寓意)하여 저항정신을 나타낸 것이라 생각된다. 장지연의 유일한 역술소설인 이 작품의 표지에 붙은 ‘ 신소설 ’ 이라는 용어는 독자를 혼란하게 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마도 전통적 보수주의와 구국의 영웅숭배사상이 개화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작품일 것으로 사려된다.

저자소개
장지연 (1864년 ~ 1921년)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의 애국 계몽 운동가, 언론인. 본명은 장지윤. 아호는 위암(韋庵). 을사늑약 때에 쓴 반일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유명해졌지만 1914년 이후의 행적에는 친일 경력이 포함되어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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