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도서정보 : 원제 스님 | 2019-11-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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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힐링과 위로, 지혜의 말 속에서
우리는 왜 여전히 혼란스럽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까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따듯한 힐링의 말과 소소한 지혜를 ‘치트키(cheat key)’에 비교한다면, 저자의 말과 글은 무사의 정공법을 닮았다. 이를테면 덮어두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라, 삶의 공포 속으로 들어가라, 지금 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눈앞의 그것, 지금까지 믿고 의지해 온 모든 것을 몽땅 의심하라고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속는 것보다 우리 자신에게 더 잘 속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불행과 문제에 대한 원인을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탓으로 돌리기를 반복하는 이에게 저자는 ‘자기 상처를 현실을 피하는 도구로 삼지 말라’고 직언한다. 자신을 주연으로 한 드라마틱한 삶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지나친 추구가 오히려 자유로운 삶을 구속한다며, ‘당장 내가 쓰는 이야기에서 벗어나라’고도 한다. 아픈 충고다.
그래서 저자의 말과 글은 종종 ‘힐링(healing) 법문이 아니라, 킬링(killing) 법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킬링은 죽인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것, 알고 있다는 믿는 그것, 내가 지금 애지중지하며 붙잡고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히 멈춰지고 사라질 때 비로소 진짜 나, 진짜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마치 어두운 밤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을 껐을 때 달빛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사람은 ‘지 생겨먹은 대로만 살아도 문제없다’라고 말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제가 힐링보다 킬링을 주로 하게 되는 이유에는 ‘선(禪)’이라는 공부 방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선은 ‘의심’의 수행입니다. 눈앞의 감각 대상과 경험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며, 거리를 두는 것이고 속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일상에서 진리는 어떻게 펼쳐지는가

저자는 진리를 찾기 위해 불교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여느 사람들이 과학자나, 소설가, 건축가를 선택하는 것처럼 저자에겐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다. 경전과 어록 공부, 참선, 묵언 수행 그리고 2년 동안의 세계 일주 만행…, 많은 좌절과 갈등 속에서 바깥이 아닌 자신을 향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거치며 온몸으로 불교적 진리를 체득했다. 그 진리의 끝은 ‘나’에 머물지 않고 ‘전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에고(ego)와 아상, 무상과 무아, 공, 불성, 참나…, 머리로만 알고 있는 이런 교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저자는 선원 생활, 출가 전의 일, 만난 사람들, 책, 영화, 게임 등 자신의 모든 경험을 이용하여 들려준다. 저자가 평소 자주 하는 말처럼 ‘전체’의 삶을 위해 자신을 ‘써먹는’ 것이다.
〈왜 문제를 극복하려고만 하는가〉에서 지도하던 행자가 절집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절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저자는 딱 보름만 참아보라고 한다. 보름 동안,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고 문제도 변하고 그 문제를 대하는 행자의 마음도 변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보름 뒤, 절을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심각했던 관계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가 되었고, 행자는 다시 수행에 전념했다.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저자는 삶으로, 경험으로 상기시켜 준 것이다.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을 예로 든 〈벽을 넘는 용기〉에서는 벽과 숲으로 대비되는 안전한 삶과 불확실한 삶을 통해 우리가 만든 견고한 아상(我相)을 설명한다. 동료 스님을 죽이고 싶었을 만큼 들끓었던 분노를 ‘인내’로써 이겨내며 인생은 오직 견뎌야 하는 것임을, 그렇게 잘 무사히 지나가면 진정한 자유를 느낄 때가 온다며 응원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엄격한 문체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이 이야기들의 끝은 무엇일까. 바로 작고 좁은 이기적인 ‘나’에게서 벗어나 온 우주, 전체로서의 ‘큰 나’, ‘참나’로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본질적인 삶을 마주하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는 ‘판때기’
놀이로서의 삶을 권유하다

저자가 세계 일주할 때 만난 국가대표 서퍼는 이렇게 말한다.
“스님, 저는 이 판때기 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삶은 지금까지 보드판 위에서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서퍼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사실 자기만의 판때기 위에서 살아간다. 흔히 인생을 고해(苦海)에 비유한다. 그리고 파도는 인생의 크고 작은 다양한 고통이라고 한다. 저자는 파도를 바라보며 분석하고 이런저런 의미를 넣어 규정하지 않겠다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겠다고 한다. ‘원제’라는 판때기가 있고 말과 글, 생각이라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판때기는 어떠한가.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매 순간일 뿐, 나에게 닥치는 상황마다 그때그때 ‘잘’ 보고, ‘잘’ 판단하고, ‘잘’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그 ‘잘’에 대한 리듬의 감(感)을 늘이는 데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당부이다.

절집에서 큰스님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건 경전에 나오는 말이고…, 그거 말고 니 얘기를 해봐, 니 얘기.”
저는 매일 매일이 정면승부입니다.
오늘도 눈 똑바로 뜨고 여지없이 정면승부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선방 수좌 원제 스님의 킬링 법문 9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두려움이 사는 법”

1 꼭 근사한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할까 : ‘나’는 삶이라는 드라마를 무언가 그럴듯한 의미로 채우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채워진 것은 다른 형태로 변하거나 또 다른 좋은 것들로 채우려고 합니다. 이런 욕망의 악순환을 멈출 때 삶은 온전하게 펼쳐집니다.

2 무엇이든 의심하기 : 지금 나의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마십시오. ‘나’라는 존재, 생각 자체를 의심해 보아야만 합니다. 제대로 의심하게 된다면, 열린 만큼 경험하게 되어있고, 깨어난 만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3 자신이 의지하는 등불을 꺼라 : 등잔불을 끄면 본래 있던 달빛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등잔불처럼 내가 믿고 따르며 소중히 여기는 어떤 가치와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전체로서의 삶이 드러납니다.

4 판단 중지 : ‘내가 모른다고, 혹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하지 마십시오. 단지 내가 모를 뿐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지, 상대방이 틀렸다고,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하면 공부할 기회를 놓칩니다.

5 자신의 상처를 이용하지 마라 : ‘과거의 상처 때문에 지금 내 모습이 이래….’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이용해 현재를 피하지 마십시오. 고통과 상처를 보내는 연습을 하십시오. 힘들지만 천천히 잘 보내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본래 있던 자유가 곧장 눈앞으로 찾아들 것입니다.

6 문제는 없다. 상황이 있을 뿐 : 우리 삶에 고정된 문제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만이 있을 뿐. 상황은 그때그때 ‘잘’ 보고, ‘잘’ 판단하고, ‘잘’ 대응하면 됩니다. 이 ‘잘’을 미리 정해놓지는 마십시오.

7 ‘나’는 이겨서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다 : ‘나’란 것도 알고 보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상황입니다. 변화하는 상황에 어떻게든 대응해나가는 것, 솔직하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참을 인(忍)’입니다.

8 행복만을 선택하지 마라 :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만 고르려는 선택을 멈추십시오. 나에게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허용해 주십시오. 그러면 기쁨도 우울도, 어두운 생각도, 분노도, 그 모든 게 이미 다 진리로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9 진정한 용기란 나를 놓아버리는 용기이다 : 나를 지키는 용기가 아니라 나를 놓아버리는 용기입니다. 아는 것도, 의지할 것도, 붙잡을 것도 없을 때 도리어 진정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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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성호사설, 제1권 천지문

도서정보 : 탁양현 엮음 | 2019-11-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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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李瀷, 1681~1763)은,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이다. 1681년(숙종 7)에 태어나서, 1763년(영조 39)에 죽었다.
성호는 당대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그런데 그의 지적 수준이라는 것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알량하다.
예컨대, 성호사설에서 드러나는 성호의 학문적 성향은, 과학적 관심이 지대하다. 그런데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던 탓에, 전혀 엉뚱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성호사설을 분석해보면, 현대사회처럼 지식과 정보가 차고 넘치는 시절이 아닌 탓으로, 오히려 고독하고 심오하게 고뇌하며 궁구한 흔적을 여실히 살필 수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유가 깊어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을 알지만 얕고, 과거인들은 적은 것을 알지만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 중 하나이다.

1. ‘성호 이익의 잡다한 논설(星湖僿說)’ 서문

자서(自序)
성호사설(星湖僿說)은 성호옹(星湖翁)의 희필(戱筆)이다. 옹이 이를 지은 것은 무슨 뜻에서였을까? 별다른 뜻은 없다.
뜻이 없었다면, 왜 이것이 생겼을까? 옹은 한가로운 사람이다. 독서의 여가를 틈타, 전기(傳記)ㆍ자집(子集)ㆍ시가(詩家)ㆍ회해(?諧)나, 혹은 웃고 즐길 만하여, 두고 열람할 수 있는 것을, 붓 가는 대로 적었더니, 많이 쌓이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비망(備忘)을 위해서, 권책에 기록하게 되었는데, 뒤에 제목별 그대로 배열하고 보니, 또한 두루 열람할 수 없어, 다시 문별로 분류하여, 드디어 권질(卷帙)을 만들었다.
이에 이름이 없을 수 없어, 그 이름을 사설이라 붙인 것인데, 이는 마지못해서 이지, 여기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옹은 20년 동안 경서를 연구하면서, 성현들의 남긴 뜻을 보고, 이해한 대로 거기에 대해, 각각 설(說)을 만들었다.
또 저술을 즐겨, 때에 따라 읊고 수답한 것, 그리고 서(序)ㆍ기(記)ㆍ논(論)ㆍ설(說)을 별도로 채집하였으되, 사설 따위는, 차마 이 몇 가지 조항에 실리지 못할 것인즉, 쓸데없는 용잡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속담에 “내가 먹기는 싫어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그 말이, 이 「사설」이 생긴 이유이다.
무릇 삼대(三代)가, 그 숭상함을 달리하여, 문(文)에 이르러 그쳤는데, 문의 말조(末造)란, 소인의 세쇄한 것들이다.
주(周) 나라 이후로, 그 문이 순수한 데로 되돌아가지 못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다.
하민(下民)의 덕이란, 그 폐단이 더욱 심해지게 마련이라, 우리 같은 소인배가, 세속과 함께 흘러 움쩍하면, 말이 많아지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천한 분양초개(糞壤草芥)라도, 분양은 밭에 거름하면, 아름다운 곡식을 기를 수 있고, 초개는 아궁이에 때면, 아름다운 반찬을 만들 수 있다. 이 글을 잘 보고 채택한다면, 어찌 백에 하나라도 쓸 만한 것이 없겠는가?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중국 역사 중세, 수 당 오대십국 송 요 금 북송 남송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1-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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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중세

1. 수나라(581~618), 남북조(420~589) 멸망시키고 통일하다

21세기 현재에 이르도록, 대한민국에서 중국의 역사를 살피는 관점은, 대체로 事大主義的이다. 그러한 까닭은, 李氏朝鮮의 역사적 관성이,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중국 역사에서 유독 ‘漢나라, 宋나라, 明나라’ 시절에 집중한다. 이 3개 왕조가 漢族의 왕조이기 때문에, 중국 역사의 정통성을 갖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漢族中國人의 관점에서는 온당하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는, 우리의 관점에서, 중국 역사를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
중국 역사가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서 위상을 정립한 시기는, 대부분 북방 유목민족의 왕조가 중국대륙을 점령하던 시기였다. 隋나라, 唐나라, 元나라, 淸나라 등이 그러하다.
더욱이 이러한 북방유목민족 왕조들은, 古代에는 東夷族 계열의 세력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동이족 계열인 韓民族으로서는, 이민족으로서 중국대륙을 장악한 왕조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지리도 쪽팔리는’ 李氏朝鮮의 小中華主義的 관점을 좇아, 북방유목민족 왕조의 역사를, 오랑캐 세력에 의해 중원대륙을 점령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짱께’들의 관점에서 온당한 것이지, ‘짱께’들로부터 동일한 오랑캐로 취급당하던 한민족에게 온당한 인식일 수는 없다.
그러니 되도록, 이민족 왕조 중심의 중국 역사를 재구성하여 살펴야 한다. 기존의 중국 역사는, 그야말로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 중심이다. 그래서 이씨조선 500여 년 동안, 朱子學이 猖獗했던 것이다.
주자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한 상황이 연출되었던, 국제정치적 propaganda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李成桂와 鄭道傳은,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事大主義를 闡明했다. 易姓革命 당시에는, 우선 권력을 簒奪해야 하므로, 그런 절박함이 있었다지만, 찬탈 이후에는, 그러한 사대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요구되었다.
그런데 이씨조선은, 점점 더 깊은 小中華主義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결국에는 ‘일본 텐노 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나라를 통째로 빼앗겨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한 사대주의적 소중화주의가,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역사적 관성으로써 작동하고 있다. 중국 역사를 굳이 ‘한족 짱께’ 중심으로 살피려는 작태만 보아도, 여실히 검증된다고 할 것이다.
중국대륙의 中世期 역사를 살피다 보면, 姜以式, 乙支文德, 楊萬春 등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수나라와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전쟁을 격퇴시킨 인물들이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는, 이들과 관련된 부문이, 자기네에게 쪽팔리는 역사이므로 貶毁하고 縮小하였다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인물들에 관한 史料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 歷史書인, 三國史記를 지은, 고려 중기의 金富軾으로부터, 철저한 事大主義者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이후 이어지는 역사에서, 그들의 기억은 차츰 희미해져 갔다. 대놓고 事大主義를 闡明한 李氏朝鮮 시절이라면, 더 이상 말할 나위 없다. 외려 그들을 역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지경이다.
예컨대,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의 화살에 맞아, 당태종 이세민이 애꾸가 되었고, 그로부터 臥病되어 痢疾을 앓다가 죽어갔다는 史實은, 겨우 고려시대의 詩 한 쪽에 남아 있을 따름이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어느 역사책에서도, 그 사건에 관한 기록은, 죄다 삭제되어버렸다. ‘짱께’들은 자기들이 쪽팔리므로 그러했다지만, 우리 선조들은 왜 그런 짓을 자행한 것일까.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대가리에 먹물 든 기득권층들이, ‘짱께’들에게 잘 보여, 자기들의 利權을 지켜내며, 享有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니 아울러, 고작 그런 정도의 의식 수준에서 주장되는, 舊弊的 이데올로기가, 그 잘난 春秋大義에 의한 春秋筆法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양만춘과 당태종에 관련된 사실은, 전설과 같은 野史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얼빠진 자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역사를 살필 때에는, 기껏 正史라고 떠들어대는 것일지라도, 그것 역시, 정치적으로 교묘히 脚色되고 潤色된 史實에 불과할 따름이라는 事實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양만춘에 관하여, 안시성 전투를 제외한 삶은, 모든 것이 미상으로, 대부분의 역사서에는, 그 이름조차 現存하지 않는다.
現傳하는 기록 중에서, 梁萬春이란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16세기 明나라의 소설 唐書志傳通俗演義, 약칭은 唐書演義 혹은 唐書志傳이다. 太宗東征記는, 이 책의 후반부를 이른다.
尹根壽, 宋浚吉, 朴趾源 등, 조선의 많은 문인들이, 당서연의를 채용하면서, 양만춘이란 민족 영웅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한편에서는, 성씨가 梁이 아니라, 楊이라 주장하였고, 楊萬春 역시 널리 통용되었다.
金富軾은 私論으로, “당 태종은 고명한 불세출의 임금으로, 난을 평정함은 탕왕과 무왕에 비할 만하고, 통치는 성왕과 강왕에 가까웠다.
용병술은 그 기묘함이 끝이 없고,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방 정복만은 安市城에서 패하였으니, 그 성주는 가히 비범한 호걸이라 하겠다.
다만 사서엔 그 성명조차 전하지를 않으니, 양웅이 제나라와 노나라 대신들의 이름은, 사서에 남지 않았다고 한 바와 다르지 않다. 심히 애석하도다.”라 하였다.
三國史記의 편찬자 金富軾(1075~1151)은, 고려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立之, 호는 雷川이다.
高麗 仁宗의 명을 받들어, 鄭襲明, 金孝忠 등 10인과 함께 三國史記를 편찬하였다. 시호는 文烈이다.
김부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인, 1145년(인종 23년)에, 삼국사기 50권의 편찬이 완료되었다. 의종이 즉위하자, 樂浪國開國候로 봉했고, 그 뒤 김부식은 仁宗實錄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송나라의 使臣 路允迪이 왔을 때, 館伴使로서 그를 맞아들였고, 같이 왔던 徐兢이, 그의 高麗圖經에 김부식의 집안을 실어, 송나라 황제에게 진상함으로써, 김부식의 이름은 송나라에도 유명하였다.
1151년(의종) 5년,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지 19년 후, 武臣政變이 일어나, 鄭仲夫에 의해 剖棺斬屍를 당한다.
1123년, 중국 송나라의 국신사로 고려를 다녀갔던 徐兢은, 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김부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博學?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학사의 신복을 받으니, 그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신채호는, 1929년, 朝鮮史硏究草, ‘朝鮮歷史上 一千年來 第一大事件’에서, 김부식이 왕명을 받아, 西京叛亂軍 토벌을 지휘한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1천 년간, ‘묘청의 난’보다 지나친 대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역사가들은 왕의 군사가 반역자를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다.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朝鮮史가 독립적이며 진취적으로 진전했을 것이다.”
반면, 한국 史學 1세대로 평가되는 역사학자 이기백은, “三國史記는 합리적인 유교적 史觀에 입각하여 씌어진 史書로, 이전의 神異的인 고대 사학에서 한 단계 발전한 사서이다”고 호평했다.
양만춘 등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김부식 등은 역사에서 부각되는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의 사학계가 대체로 이러한 분위기이나, 어쨌거나 事大主義的 史觀을 수용할 수도 없으며, 수용해서도 안 된다.
당 태종이, 安市城主 楊萬春이 쏜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14세기 고려의 시에 등장한다. 이 시는, 고려후기 牧隱 李穡(1328∼1396)의 貞觀吟이다.
이색은, “어찌 알았으랴. 현화(당태종의 눈)가 백우전(화살)에 떨어질 줄을(那知玄花落白羽)”이라고 읊었다.
이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 여러 수필집, 시가집, 야사에 등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들이야말로, 우리 韓民族의 관점에서 기술된, 참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교적 차원에서, 굳이 이러한 기록들을 중국 측에 내세워서, 외교적 분쟁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 스스로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과연 어떠한 역사가, 21세기 대한민국의 國益에 보탬이 되는 역사인지, 보다 섬세히 思慮해야 한다.
隋는, 북주의 외척인 양견에 의해 건국된 나라로, 남북조 시대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나, 무리한 원정과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 건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였다.
南北朝時代는, 晉나라와 隋나라 중간시대에 해당하며, 이 동안 중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왕조가 교체해서 흥망하였다.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명상록 : 고전은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영혼의 힘이다

도서정보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2019-11-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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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은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기 자신에게 말해주는 생각'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인간과 신들의 존재 방식 등을 한 사람의 인격과 학심이 담긴 진리와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에서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생각들을 그리스어로 기록한 수상록이다. 여기에는 황제 개인의 고뇌와 성찰을 통해 올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한 모습이 나타난다.

구매가격 : 6,000 원

신곡

도서정보 : 단테 알리기에리 | 2019-10-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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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드립니다 에서 선정한 명작의 명작
더 새롭게 정리하고 편집된 ‘단테의 신곡’

신과 함께 떠나는 지옥과 연옥과 천국여행의 대서사시
35살 되던 해 단테는 성(聖)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며 번민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가로막으므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한다. 그는 먼저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는 꼭대기에서 단테와 작별하고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앞길을 맡긴다.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된 단테는 지고천에까지 이르고, 그 곳에서 한순간 신(神)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된다는 것이 전체의 줄거리이다.

현실은 지옥에 가깝고, 꿈은 천국에 가깝다.
만약 당신이 지옥을 통과중이라면,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
악이 승리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방관이나 중립, 그리고 기권이나 침묵은 가해자에게나 이로울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있는 것이다.

연옥을 빠져나가 지상낙원에서 천국으로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대지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다시 햇살을 받으며 연옥(煉獄)의 불을 저장한 산에 이른다. "연옥"도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속죄자들은 자신의 죄를 깊이 통찰함으로써 정화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이다.
연옥은 정죄(淨罪)와 희망의 왕국으로 영적 구원을 받을 만한 여망이 있는 망령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수양을 하는 곳이다. 천사들은 이곳에서 칼로 단테의 이마 위에 P자를 새겨주는데, 이는 연옥에서 자기가 참회해야 할 죄(Peccata), 곧 오만·질투·분노·태만·탐욕·폭식·애욕의 일곱 가지로 이러한 죄들은 벼랑을 차례로 지나면서 하나씩 씻어진다.
이 모든 죄를 씻고 나면 영혼들은 구원을 받게 되고 이어 지상낙원으로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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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데이트

도서정보 : 김순아 | 2019-10-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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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와 수필, 비평에세이 등 전방위적인 글쓰기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김순아 작가의 인문 철학 에세이집 『인문학 데이트』는 작가가 여러 텍스트를 통해 만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수한 인문학자와 사상가, 철학자들의 사상과 다양한 사유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깨달은 바를 담은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서부터 칸트, 헤겔, 니체 등의 근대 철학자, 베르그송,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푸코, 데리다, 들뢰즈와 같은 현대 혹은 (탈)현대의 철학 사상가에 이르기까지 그들에 대한 인문 철학적 논의가 우리 자신의 일상과 세상에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고민하고 성찰한 작가의 노고가 담긴 『인문학 데이트』는 39편의 글이 총 5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었다.
‘인문학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잘 모르는 인문 철학사의 개괄적인 흐름과 여러 학자들의 다양한 논의와 메시지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로 담아 써 내려간 이 책의 편 편은 모두 훌륭한 에세이라 할 만하다.
작가의 말대로 “삶과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인문적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인문학 데이트』 다독을 권한다.

구매가격 : 10,000 원

한중록 (한국고전문학전집 003)

도서정보 : 혜경궁 홍씨 | 2019-10-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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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만에 새로 번역한 완전한 『한중록』

가람 이병기 선생과 나손 김동욱 선생이 주석한 민중서관본 『한중록』의 기념비적 업적이 나온 지 50년 만에 나온, 그것을 넘어서는 『한중록』이 탄생했다. 정병설 교수가 역주한 『한중록』은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린 역작이다. 이는 기존 『한중록』에서 간과되곤 했던 『보장』과 「병인추록」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다. 『한중록』은 사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편집’된 책이다. 그렇기에 저본 선정과 이본 비교는 작업에서 매우 중요했다. 정병설 교수는 『한중록』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이본으로 인정받는 버클리 대학 소장 「보장」을 저본으로 삼아 종전 대부분의 역주본이 포괄하지 않은 자료인 「병인추록」까지 모두 포괄해 ‘완전한’ 『한중록』을 엮어냈다.


◆ 조선 시대 가장 유려한 산문 문학의 정수

혜경궁 홍씨는 뒤주에 갇혀 죽은 남편 사도세자를 가슴에 묻고 『한중록』을 썼다. 그 첩첩한 아픔이 배어 있음에도 『한중록』은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녔다. 『한중록』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조선 산문의 정수다. 그래서 이태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오직 한중록 같은 것이 조선의 산문고전일 따름이다”. 정병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한중록』을 열 번 스무 번 거듭 읽어나가면서 연방 감탄하였고 또 빠져들었다. 『한중록』은 조선시대 어떤 문학도 도달하지 못한 인간의 깊은 곳에 닿아 있었고, 세계문학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 내면의 도도한 물결을 그려냈다. 『한중록』은 역사와 문학을 뛰어넘는 인간 내면의 기록이다. 이런 소중한 유산을 남긴 혜경궁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공식 사료를 뛰어넘는 또 한 편의 내밀한 궁중 역사

또한 『한중록』은 빼어난 문학작품인 동시에 공식 사료인 실록이 전해줄 수 없었던 궁중의 내밀한 역사의 이면을 전달하는 또하나의 역사서다. 특히 정병설 교수는 52개 꼭지에 달하는 ‘한중록 깊이 읽기’ 코너에서 『한중록』을 『승정원일기』『조선왕조실록』과 비교해가며 하나의 사료로써 꼼꼼히 읽어냈다. 이는 기존의 『한중록』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이기도 하다. ‘한중록 깊이 읽기’를 통해 독자들은 혜경궁 홍씨가 얼마나 치밀한 기억력을 가지고 당시 역사를 재구성해냈는지는 물론 사도세자가 죽던 날의 진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뒤주가 등장하게된 배경은 물론 노년에 병마로 고생하던 영조가 먹었던 산삼값과 궁녀들이 궁중에서 행했던 역할, 사도세자가 몰두했던 옥추경의 벼락신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한 조선 시대 역사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

다산의 사람그릇 :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에게 사람을 묻고 인생을 배우다

도서정보 : 진규동 | 2019-10-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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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그의 학문과 사상에 대하여 저술하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대실학자이며 위대한 사상가인 다산 선생의 사람 그릇과 학문적 위업, 사상과 정신을 독자들에게 오롯이 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118차례 이상 다산초당을 오르내리며 다산과의 나눈 마음속의 대화를 바탕으로, 보고 듣고 학습한 것을 보통사람들이 부담 없이 다산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집필하였다. 독자들은 이제 어려운 다산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18년 동안 유배라는 형벌의 두려움과 공포, 우울한 마음과 생각을 극복하고 다산학이라는 위대한 학문적 결실을 거두었으며 애민과 애정, 위국과 충정으로 가득 찬 그의 사람 그릇을 되돌아보며 현실을 헤쳐갈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8,900 원

정유재란 전쟁포로 수은 강항, 간양록(건거록), 원문수록

도서정보 : 탁양현 엮음 | 2019-10-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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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적진에서 몰래 바치는 글(賊中封疏)

姜沆(1567~1618)은, 朝鮮王朝 중기의 학자·의병장이다. 정유재란 때,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 오사카, 교토 등에 있으면서, 敵情을 고국으로 밀송하였다.
본관은 진주, 자는 太初, 호 睡隱이다. 전남 靈光에서 태어났으며, 강희맹의 5대손이다. 1588년(선조 21) 진사가 되고, 159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교서관박사·전적을 거쳐, 1596년 공조·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分戶曹判書 李光庭의 종사관으로, 南原에서 군량보급에 힘쓰다가, 남원이 함락된 뒤, 고향 영광으로 돌아가, 金尙寯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다.
전세가 불리하자, 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려고, 南行 도중에, 왜적의 포로가 되었다.
일본 오사카로 끌려갔다가, 1598년 교토 후시미성에 이송되어, 학식 높은 승려들과 교유하며, 유학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만난 승려 중 슈쿠(?)는, 승려를 그만두고 유학자가 되었으며, 그가 일본 주자학 선구자가 된 후지와라 세이가(藤原惺窩, 1561~1619)이다. 이후 일본에서는, 많은 名儒를 배출시켰다.
특히, 후지와라는, 두뇌가 총명하고, 古文을 다룰 줄 알아, 李氏朝鮮의 과거 절차 및 春秋釋奠, 經筵朝著, 孔子廟 등을 묻기도 하고, 또 상례·제례·복제 등을 배워, 그대로 실행, 뒤에 일본 주자학의 개조가 되었다.
일본 억류 중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또한 그의 노력으로, 1600년에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귀국할 수 있었다.
강항은 일본의 지리와 군사시설을 비롯한 敵情을 적어, 조선으로 密送하기도 하였다가, 1600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1602년, 大丘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얼마 후 사임하였고, 1608년 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그림에도 뛰어나, 인물화와 松畵에 특기가 있었다.
일본 억류 중, 사서오경의 和訓本 간행에 참여해, 몸소 발문을 썼고, 曲禮全經, 小學, 近思錄, 近思續錄, 近思別錄, 通書, 正蒙 등, 16종을 수록한 姜沆彙抄를 남겼으며, 이들은 모두 일본의 內閣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文章達德錄과 동양문고 소장본 歷代名醫傳略의 서문을 썼다. 1882년(고종 19)에 吏曹判書兩館大提學이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영광의 龍溪祠 內山書院에 祭享되고, 일본의 효고현(兵庫縣)에 있는 류노(龍野) 城主 아카마쓰(赤松廣通)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저서로는 雲堤錄, 綱鑑會要, 左氏精華, 看羊錄, 文選纂註, 睡隱集 등이 있다.
看羊錄에서 看羊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양을 돌본다’는 뜻이다. 또한 중국 한나라 무제 때, 匈奴에 使臣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왕의 회유를 거부하고, 양을 치는 노역을 하다가, 19년 만에 돌아온, 蘇武의 충절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항 자신이 붙인 본래 제목은 巾車錄이었다. 巾車는 죄인을 태우는 수레이니, 적군에 사로잡혀 끌려가, 생명을 부지한 자신을, 죄인으로 자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강항이 세상을 떠난 뒤인 1654년에, 그의 제자들이 책을 펴내면서, 스승을 소무에 견주어, 제목을 간양록으로 바꿨다.
강항이 간양록에 수록한 시 중에도, 자신을 소무의 처지에 빗대는 대목이 몇 곳 나온다.


1. 정유재란(1597) 때, 왜군에게 포로가 된 경위

선무랑(宣務郞) 수형조좌랑(守刑曹佐郞) 신(臣) 강항(姜沆)은, 목욕재계하고 백 번 절하여, 서(西)로 향해 통곡하면서, 삼가 정륜입극 성덕 홍렬대왕 주상 전하(正倫立極盛德弘烈大王主上殿下)께, 상언(上言)하옵니다.

-하략-

구매가격 : 3,500 원

천상열차분야지도, 28수 별자리 사주팔자 점성술 밀교 그노시스 천문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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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1. 천상열차분야지도, 조선왕조 천명 이데올로기를 그려내다

근대 이전의 천문학 체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서, 현대적 관점에서 살핀다면, 참으로 유치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흔히 ‘3원 28수’라는 천문학 체계가 활용되었다.
이는, 하늘 위의 세계를, 땅 위의 세계에서 살아내는 인간존재들이,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상상의 세계를 지어낸 것이다. 그래서 마치 현실세계에서 작동하는 온갖 群像들이, 하늘 위 세계에도 유사하게 존재한다. 서
양문명의 경우, 하늘 위 세계는 神들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그런 신들의 세계 역시, 땅 위의 인간존재들의 욕망을 이상적으로 실현하는 정도일 따름이다.
예컨대, 신들의 首長인 ‘제우스’는, 그야말로 ‘지 꼴리는 대로’, 여신이든 인간 여성이든 가리지 않고, 예쁘고 제 마음에 들면, 온갖 權能과 威力을 활용하여, 맘껏 사랑하며 섹스하는 最强者이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라도 그런 권력을 목적한다. 그 대상이 相反的일 따름이다. 만약 목적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래도 正常性의 범위를 일탈하는 존재라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런 유치한 상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는 이만큼의 문명적 발전을 일구었다. 나아가 21세기 현재에도, 그러한 과거의 夢想에 휩싸여 있는 자들도 적지 않다.
아주 대단한 지식인 양, ‘3원 28수’ 따위를 거론한다거나, 陰陽五行이나 干支 따위로써, 惑世誣民하는 자들이 그러하다.
물론 그런 자들 대부분은, 그러한 행위가 유치한 妄想에 불과하며, 그 결과가 서민대중들을 혹세무민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 따위 것들에 穿鑿하며 搖動하는 것이다.
필자도 철학과 대학원에 재학할 때나 연구소에 재직할 때, 전공이 중국철학이었던 탓에, 그런 자들을 많이 보았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자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것들이, 현재적 관점에서 유치할망정, 그런 역사에 대해서는 明晳判明하게 알아야 한다. 설령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虛無孟浪하더라도, 그러한 과정을 체험하였으므로, 현재의 인류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를 잘 알아야만, 현재를 보다 엄밀하고 정확히 판단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것들을 잘 알아야만, 그런 것들로써 혹세무민하려는 작자들의 ‘선동질’이나 ‘조작질’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
알지 못한다면, 유치한 陰陽五行을 들먹이거나, 舊約이나 新約 쯤을 거론하면, 금세 속아 넘어가게 된다. 음양오행만큼이나 유치한 망상이, 신이 이 세상을 로고스로써 창조하였다는 상상 아니던가.
天象列次分野之圖는, 조선 초기부터, 석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으로 제작·보급된 韓民族의 全天天文圖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태조 석각본으로, 가로 122.8cm, 세로 200.9cm 크기의 돌에 새겨졌다. 태조 석각본은, 국보 228호로 지정되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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