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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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도서정보 : 이슬아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1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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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가녀장家女長, 생계를 책임지며 세계를 뒤집어엎는 딸들의 이름
<일간 이슬아> 이슬아 첫 장편소설

매일 한 편씩 이메일로 독자들에게 글을 보내는 <일간 이슬아>로 그 어떤 등단 절차나 시스템의 승인 없이도 독자와 직거래를 트며 우리 시대의 대표 에세이스트로 자리잡은 작가 이슬아, 그가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가녀장의 시대’. <일간 이슬아>에서 이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이슬아 작가가 만든 ‘가녀장’이란 말은 SNS와 신문칼럼에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은 가부장도 가모장도 아닌 가녀장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할아버지가 통치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가정을 통치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어렵고 자수성가도 어려운 이 시대에 용케 글쓰기로 가세를 일으킨 딸이 집안의 경제권과 주권을 잡는다. 가부장의 집안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법한 아름답고 통쾌한 혁명이 이어지는가 하면, 가부장이 저질렀던 실수를 가녀장 또한 답습하기도 한다. 가녀장이 집안의 세력을 잡으면서 가족구성원1이 된 원래의 가부장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아름답고 재미있는 중년 남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 가부장은 한 팔에는 대걸레를, 다른 한 팔에는 청소기를 문신으로 새기고, 집안 곳곳을 열심히 청소하면서 가녀장 딸과 아내를 보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가부장제를 혁파하자는 식의 선동이나 가부장제 풍자로만 가득한 이야기는 아니다. 가녀장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자신을 키우고 생존하게 한 역대 가부장들과 그 치하에서 살았던 어머니, 그리고 글이 아니라 몸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에 대해 생각한다.
슬아는 그 어느 가부장보다도 합리적이고 훌륭한 가녀장이 되고 싶어하지만, 슬아의 어머니 복희에게도 가녀장의 시대가 가부장의 시대보다 더 나을까? 슬아의 가녀장 혁명은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세를 일으키려 주먹을 불끈 쥔 딸이 자신과 가족과 세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이슬아의 소설은 젊은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며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혁신과 서사를 만들어내는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소설 속에서 이슬아는 당당하게 선언한다.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구매가격 : 10,500 원

악마의 시 1 (세계문학전집 217)

도서정보 : 살만 루슈디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1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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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에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긴 환상적인 이야기꾼이자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문제적 작가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

우리 시대의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악마의 시』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 이민자의 삶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1988년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신성모독 논란으로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되었고, 작가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출간된 지 삼십 년 넘도록 작가의 삶을 위협해온 『악마의 시』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이 선보인다. 살만 루슈디의 『분노』 번역으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한밤의 아이들』 『2년 8개월 28일 밤』 『조지프 앤턴』까지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김진준 번역가가 작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오래전 자신의 번역을 손봤다.

『악마의 시』 필화 사건 그리고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살만 루슈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책의 세계를 위협해온 30여 년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인도 태생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자신의 두번째 장편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20세기 이후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평가에 더해 부커상을 수상한 후 5년 동안 공들여 쓴, 25만 단어로 이루어진 장편소설 『악마의 시』. 그해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다시금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나, 작품에 대한 독자와 평단의 평가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신성모독 논란이 거세게 일어 살만 루슈디의 네번째 장편소설은 이후로 문제적 작가의 논쟁적인 작품이 된다.
루슈디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무함마드, 이슬람의 기원, 초기 칼리프 체제>라는 특별히 개설된 단독 강의를 통해 “세계적인 종교 하나를 탄생시킨 세상”에 대해 배운다. 모계사회 유목민 집단이 이제 막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정착해 살게 되자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안위가 우선시되어 여러 규칙들이 생겨나며 부계사회로, 핵가족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살피며 루슈디는 새로운 것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면 장차 그것이 낡았을 때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해볼 수 있음에 주목했고, 이를 소설의 유용한 소재로 봤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 소재는 소설로 구현된다.
『악마의 시』는 전체 9부 구성으로 홀수 장에서는 등장인물인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가 마주한 현실이,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의 꿈이 교차되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과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특히나 루슈디 스스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이라 여길 만큼, 태어난 땅을 떠나온 이방인으로서 학창 시절부터(1964년 영국 시민권 획득) 줄곧 겪어온 차별과 폭력을 그려내고,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이슬람교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 말의 절대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한 ‘악마의 시’ 관련 에피소드와 가상의 도시 자힐리아 내 유곽 ‘히잡’에서 일하는 열두 창부가 각기 예언자 아내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 등의 일부 에피소드로 이슬람교의 거센 반발을 맞게 된다.
『악마의 시』는 루슈디의 고국 인도에서 가장 먼저 금서로 지정되어 수입 및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지는데, 1988년 9월 26일 영국에서 책이 출간되고 열흘 남짓한 시간 내 결정된 일이었다. 이어 1989년,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법령(파트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루슈디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1995년까지 영국 정부의 보호하에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전 세계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고 판매하는 출판인, 번역가, 서점이 테러를 당해 생명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에도 루슈디는 부단히 작품을 발표하고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하며 “책의 세계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곳”임을 역설하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다. 1998년 9월, 이란 대통령이 루슈디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철회하지만 오히려 이슬람 과격파 단체의 반발을 불러 거액의 살해 현상금이 내걸린다. 루슈디는 2000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2016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장편소설 『키호테』(2019년 부커상 최종 후보), 에세이 『진실의 언어』(2021년)를 출간하는 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하지만 2022년 8월 12일, 뉴욕주 셔터쿼연구소에서 강연을 시작하려고 무대로 오르던 살만 루슈디에게 시아파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습격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루슈디가 아직까지도 삶을 위협받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임을 환기하는 사건이었다.
과거 1992년 루슈디는 쿠르트 투홀스키 상(박해에 저항한 작가들에게 수상한다) 수상자로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아카데미와 환담을 나눈 일이 있다. 파트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아카데미에 항의하기 위해 회원 두 사람이 사퇴한 후였고, 스웨덴아카데미의 공식적인 지지는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에야 이루어지지만, 그날 루슈디는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그 방에 앉아 아카데미 회원들의 질문에 유일할 수밖에 없는 답을 말한다. “『악마의 시』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그리고 온갖 비난과 욕설의 이면에는 매우 중대한 질문 하나가 있다. 이야기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져야 옳은가?―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20세기 문제작을 넘어 21세기 고전으로

『악마의 시』는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해 두 명의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추락하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산에 맞먹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낙하산도 없이 떨어지며 각기 후광을 두른 천사와 뿔이 돋고 털이 수북한 악마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이 두 사람이 런던에서 겪는 사건들이 소설의 홀수 장들에 펼쳐진다. 봄베이 영화계에서 온갖 신을 연기하며 스타로 군림하던 지브릴 파리슈타는 대천사로 변모해 런던 지도 한 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버릴 수도 없는 과거라는 짐에 짓눌려 찌그러진 채 황량하고 곤궁한 미래만 멍하니 바라보는’ 이 도시를 구해보겠다고 덤빈다. 반면, 성공한 부자 아버지의 통제와 훼방 그리고 봄베이 특유의 무질서와 소음과 천박함을 혐오하던 소년 살라후딘 참차왈라에서, 평온과 절제의 도시 런던으로 유학 와 자신이 갈망하던 모습으로 이름까지(샐러드로 들리는 ‘살라딘’에 알랑쇠를 뜻하는 ‘참차’로) 바꾸고 목소리 배우로 성공해 영국인과 결혼까지 했으니 어엿한 영국 시민이라 자부해온 살라딘 참차는 비행기 사고 이후 염소의 모습으로 변모해 불법이민자로 몰려 가혹행위를 당하게 된다. 천사와 악마로 겉모습이 달라진 두 인물의 성격 변화에 맞물려 짝수 장들에서는 대천사 지브릴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초월해 목격하거나 관여하게 되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브릴은 신흥종교의 탄생과 성장에서부터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혁명의 현장까지를 두루 목도한다. 이처럼 홀수 장과 짝수 장이 교차하며 엮어낸 이야기들은 사고실험을 진행하듯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양단의 상황을 두루 검토해보게끔 독자를 이끈다. 천사와 악마, 선과 악, 꿈과 현실, 제국과 식민지, 영국과 인도, 강자와 약자, 사랑과 죽음, 정착과 뿌리 뽑힘 등 양단의 상황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살만 루슈디는 1991년 출간한 수필집 『가상의 조국』에서 세기의 문제작이 된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시』는 혼종성, 불순성, 뒤섞임 그리고 인류와 문화, 사상, 정치, 영화, 음악 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이루어낸 변모를 찬양하는 작품이다. 잡종성을 만끽하며 ‘순수성’ 절대주의를 우려한다.” 또한 이슬람이 아닌 ‘이주, 변모, 분열된 자아, 사랑과 죽음 그리고 런던과 봄베이’에 대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악마의 시』는 20세기의 문제작을 넘어 21세기의 고전으로 탈바꿈했다.

구매가격 : 11,600 원

악마의 시 2 (세계문학전집 218)

도서정보 : 살만 루슈디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13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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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사에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긴 환상적인 이야기꾼이자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문제적 작가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

우리 시대의 가장 환상적인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악마의 시』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 이민자의 삶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1988년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신성모독 논란으로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되었고, 작가를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출간된 지 삼십 년 넘도록 작가의 삶을 위협해온 『악마의 시』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이 선보인다. 살만 루슈디의 『분노』 번역으로 제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고, 『한밤의 아이들』 『2년 8개월 28일 밤』 『조지프 앤턴』까지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김진준 번역가가 작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오래전 자신의 번역을 손봤다.

『악마의 시』 필화 사건 그리고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된 살만 루슈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책의 세계를 위협해온 30여 년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인도 태생의 작가 살만 루슈디가 자신의 두번째 장편소설 『한밤의 아이들』로 “20세기 이후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평가에 더해 부커상을 수상한 후 5년 동안 공들여 쓴, 25만 단어로 이루어진 장편소설 『악마의 시』. 그해 휫브레드 최우수 소설상을 받고 다시금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나, 작품에 대한 독자와 평단의 평가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신성모독 논란이 거세게 일어 살만 루슈디의 네번째 장편소설은 이후로 문제적 작가의 논쟁적인 작품이 된다.
루슈디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무함마드, 이슬람의 기원, 초기 칼리프 체제>라는 특별히 개설된 단독 강의를 통해 “세계적인 종교 하나를 탄생시킨 세상”에 대해 배운다. 모계사회 유목민 집단이 이제 막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정착해 살게 되자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안위가 우선시되어 여러 규칙들이 생겨나며 부계사회로, 핵가족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살피며 루슈디는 새로운 것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면 장차 그것이 낡았을 때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해볼 수 있음에 주목했고, 이를 소설의 유용한 소재로 봤다. 그로부터 20년 후 이 소재는 소설로 구현된다.
『악마의 시』는 전체 9부 구성으로 홀수 장에서는 등장인물인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가 마주한 현실이,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지브릴의 꿈이 교차되며,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슬람교의 기원과 인도 봄베이와 런던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낸 걸작이다. 특히나 루슈디 스스로 가장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이라 여길 만큼, 태어난 땅을 떠나온 이방인으로서 학창 시절부터(1964년 영국 시민권 획득) 줄곧 겪어온 차별과 폭력을 그려내고,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이슬람교를 연상케 하는 가상의 종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경전에 기록된 예언자 말의 절대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듯한 ‘악마의 시’ 관련 에피소드와 가상의 도시 자힐리아 내 유곽 ‘히잡’에서 일하는 열두 창부가 각기 예언자 아내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는 등의 일부 에피소드로 이슬람교의 거센 반발을 맞게 된다.
『악마의 시』는 루슈디의 고국 인도에서 가장 먼저 금서로 지정되어 수입 및 판매 금지 처분이 내려지는데, 1988년 9월 26일 영국에서 책이 출간되고 열흘 남짓한 시간 내 결정된 일이었다. 이어 1989년,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내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법령(파트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루슈디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1995년까지 영국 정부의 보호하에 도피생활을 하게 되고, 전 세계에서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하고 판매하는 출판인, 번역가, 서점이 테러를 당해 생명을 잃는 사건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에도 루슈디는 부단히 작품을 발표하고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하며 “책의 세계는 자유인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곳”임을 역설하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과 종교적 관용을 주장한다. 1998년 9월, 이란 대통령이 루슈디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철회하지만 오히려 이슬람 과격파 단체의 반발을 불러 거액의 살해 현상금이 내걸린다. 루슈디는 2000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2016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장편소설 『키호테』(2019년 부커상 최종 후보), 에세이 『진실의 언어』(2021년)를 출간하는 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간다. 하지만 2022년 8월 12일, 뉴욕주 셔터쿼연구소에서 강연을 시작하려고 무대로 오르던 살만 루슈디에게 시아파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습격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루슈디가 아직까지도 삶을 위협받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임을 환기하는 사건이었다.
과거 1992년 루슈디는 쿠르트 투홀스키 상(박해에 저항한 작가들에게 수상한다) 수상자로 스톡홀름에서 스웨덴아카데미와 환담을 나눈 일이 있다. 파트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아카데미에 항의하기 위해 회원 두 사람이 사퇴한 후였고, 스웨덴아카데미의 공식적인 지지는 그로부터도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에야 이루어지지만, 그날 루슈디는 노벨상 수상자가 결정되는 그 방에 앉아 아카데미 회원들의 질문에 유일할 수밖에 없는 답을 말한다. “『악마의 시』를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그리고 온갖 비난과 욕설의 이면에는 매우 중대한 질문 하나가 있다. 이야기에 대한 통제권을 누가 가져야 옳은가?―그 권리는 만인의 것이며 마땅히 만인의 것이어야 한다.”

20세기 문제작을 넘어 21세기 고전으로

『악마의 시』는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해 두 명의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가 추락하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산에 맞먹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낙하산도 없이 떨어지며 각기 후광을 두른 천사와 뿔이 돋고 털이 수북한 악마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이 두 사람이 런던에서 겪는 사건들이 소설의 홀수 장들에 펼쳐진다. 봄베이 영화계에서 온갖 신을 연기하며 스타로 군림하던 지브릴 파리슈타는 대천사로 변모해 런던 지도 한 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버릴 수도 없는 과거라는 짐에 짓눌려 찌그러진 채 황량하고 곤궁한 미래만 멍하니 바라보는’ 이 도시를 구해보겠다고 덤빈다. 반면, 성공한 부자 아버지의 통제와 훼방 그리고 봄베이 특유의 무질서와 소음과 천박함을 혐오하던 소년 살라후딘 참차왈라에서, 평온과 절제의 도시 런던으로 유학 와 자신이 갈망하던 모습으로 이름까지(샐러드로 들리는 ‘살라딘’에 알랑쇠를 뜻하는 ‘참차’로) 바꾸고 목소리 배우로 성공해 영국인과 결혼까지 했으니 어엿한 영국 시민이라 자부해온 살라딘 참차는 비행기 사고 이후 염소의 모습으로 변모해 불법이민자로 몰려 가혹행위를 당하게 된다. 천사와 악마로 겉모습이 달라진 두 인물의 성격 변화에 맞물려 짝수 장들에서는 대천사 지브릴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고 시공간을 초월해 목격하거나 관여하게 되는 환상적인 사건들이 펼쳐진다. 지브릴은 신흥종교의 탄생과 성장에서부터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혁명의 현장까지를 두루 목도한다. 이처럼 홀수 장과 짝수 장이 교차하며 엮어낸 이야기들은 사고실험을 진행하듯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양단의 상황을 두루 검토해보게끔 독자를 이끈다. 천사와 악마, 선과 악, 꿈과 현실, 제국과 식민지, 영국과 인도, 강자와 약자, 사랑과 죽음, 정착과 뿌리 뽑힘 등 양단의 상황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살만 루슈디는 1991년 출간한 수필집 『가상의 조국』에서 세기의 문제작이 된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마의 시』는 혼종성, 불순성, 뒤섞임 그리고 인류와 문화, 사상, 정치, 영화, 음악 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이루어낸 변모를 찬양하는 작품이다. 잡종성을 만끽하며 ‘순수성’ 절대주의를 우려한다.” 또한 이슬람이 아닌 ‘이주, 변모, 분열된 자아, 사랑과 죽음 그리고 런던과 봄베이’에 대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악마의 시』는 20세기의 문제작을 넘어 21세기의 고전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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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사 (문학동네청소년 61)

도서정보 : 김민령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1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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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실은 15도 정도 각도를 튼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오늘의 내가 살짝 기울어져 있는지도.

별다를 것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학교생활, 그 속에도 낯선 풍경과 반짝이는 발견의 순간들이 있다. 결석한 친구의 빈자리와 혼자 먹는 급식의 맛, 체육 시간을 빼먹으면 맡을 수 있는 교실의 먼지 냄새, 빌려준 프린트 위 낙서로 오가는 대화의 재미 같은 것들. “하찮은 일들은 어째서 이렇게 마음에 남는 것일까?”(134쪽) 매일이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때로는 생경한 긴장감과 서스펜스마저 발견된다. 이를테면, 친한 친구의 중학교 시절 과거는 도대체 어떠했던 것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교문 앞을 서성거리는 여자애가 애타게 찾는 학생의 정체는 또 뭔지. 밍밍한 듯 보이는 현실 고등학생의 일상도 바라보는 앵글을 조금만 달리하면 다채로운 빛깔로 가득하다. 그 빛깔 하나하나를 발견하고 알아채는 이야기 일곱 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김민령 작가의 청소년소설 『오늘의 인사』다.

청량하고 애틋하게,
오늘의 다름을 발견하고 알아채는 일곱 편의 이야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16년차인 김민령 작가는 느리지만 신중한 걸음으로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제2회 창비어린이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수상한 평론가이기도 한 그는 나날이 변화하는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사려 깊은 목소리를 보태는 일 또한 부지런히 해 왔다. 마침내 출간된,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 기다렸을 김민령의 단편집 『오늘의 인사』에는 지금까지 발표한 청소년소설 중 다섯 편과 미발표작 두 편이 실려 있다. 청량하고 경쾌한 소설부터 애틋하고 아릿한 소설에 이르기까지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수록작 모두 자극적인 소재 없이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을 감정과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한다는 점에서는 결을 같이한다. 교실에서 대번에 눈에 띄지는 않는, 무던하고 평범한 청소년을 주요 인물로 삼았다는 점 또한 일곱 작품의 공통점이다. “스물일곱 명이 앉아 있는 교실 안에는 스물일곱 개의 우주가 있”으니(28쪽) 이 책에는 적어도 일곱 개의 우주가 담긴 셈이다.

허리를 삐끗하기 전엔
내 허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먼지는 늘 여기에 있지만
햇빛이 비치지 않으면 보이지 않지.
나나가 결석한 오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나나를 생각했어.

만약 내가 없으면, 그 빈자리는 어떻게 보일까?

『오늘의 인사』에서는 무존재감에서 존재감으로의 변화라는 모티프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나나와 선생님은 부재할 때 오히려 존재감이 강렬해지고, 「혜성이 지나가는 밤」의 정은이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치곤 했던 라면집은 승조가 거기 산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특별한 색을 띠는 장소가 된다. 교실에서의 존재감이 흐릿해 곧잘 잊히곤 하는 「뷰 박스」의 이진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정운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각인된다. 「오늘의 인사」의 성규가 하은에게 반해 버린 아침은, 타인이 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얼마나 순식간에 거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시간이다. “내가 없을 때 무슨 일이 있을까, 그게 너무 궁금한데 절대 알 수 없지. 내가 결석을 하면 어떻게 될까, 혹시 자퇴를 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사라지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의 목록」) 자기 자신의 존재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된다.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내 마음들, 내 시야 밖 풍경을 알아차리다 보면 어느새 열일곱 살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마무리는 언제나 같다. 어제와는 너무나 달랐던 오늘에 인사를 건네며 하교하는 것. 두 발 아래 느껴지는 바닥의 단단함을 느끼면서.

구매가격 : 8,800 원

총몽 화성전기 8

도서정보 : 기시로 유키토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07일 /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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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 사가 최종장
거듭되는 위기의 순간――
의문을 풀 열쇠를 거머쥘 수 있을까!

조노헤드론의 비밀을 쫓다 눈앞에서 적을 놓친 코인은 퀸스틀러 동료들을 만나 손에 넣은 기밀을 건넨다. 빅 마담은 적의 행방을 찾기 위해 본인의 예민한 청각을 이용, 목표물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하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한편, 군벌 파르다리그의 손아귀에서 해방된 데자 토리스. 그곳에서 수많은 거래가 진행되는 가운데 서로 닮은 ‘악’과 ‘악’도 손을 잡는다. 보이지 않는 배신, 새로운 빌런이 출몰하는 『총몽 화성전기』 8권!
권말에는 『총몽』 사가 단행본을 출간한 각국의 출판사와 편집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GUNNM OF THE WORLD」를 특별 수록했다.

구매가격 : 6,300 원

국자전

도서정보 : 정은우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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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로잡을 신인의 등장,
『주간 문학동네』 첫 투고 선정작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정은우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한국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이들이 겪는 사랑과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국자전』은 강력한 이야기의 힘으로 장편소설 연재 전문 웹진 『주간 문학동네』의 첫 투고 선정작이 되었다. 특히 『국자전』은 ‘손맛’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꾼다는, 전에 없던 유니크한 캐릭터의 한국형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시크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지닌 주인공 ‘국자’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유머와 세계를 대면하는 진지한 태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 『국자전』은 가장 특별한 능력 이야기가 가장 보통의 존재에게로 귀결되는, 가장 인간과 닮은 이야기이다.
『국자전』에는 따뜻한 유머뿐만 아니라 서늘한 비판의식도 담겨 있다. 인간을 쓸모의 유무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기는 인간에게 너그럽지 못한 사회상을 아프도록 꼬집는다. 대중을 분열시킴으로써 유지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은, 영웅과 반동의 격전지가 재개발의 현장이 되는 등의 무차별적인 사리사욕의 추구와 맞물려 인간을 착취할 수 있는 도구로만 간주하는 시선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비인간적인 세태가 통쾌하게 풍자될 때 다음을 향하는 길이 비로소 보일 것이다.

“입에 들어가서 소화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가능해.”
‘손맛’으로 승부하는 한국형 여성 히어로의 탄생

초등학교 교사인 ‘미지’는 담임을 맡은 반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받고 휴직한 상태다. 복직을 앞둔 그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첫 독립부터 이뤄내고자 엄마 ‘국자’와 식탁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독립이라는 말만 꺼내면 국자의 휘황찬란한 밥상이 그녀의 의지를 녹여버린 바 있다. 그런데 이번 독립 선언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자신이 기능력직 공무원이며 음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비틀 수 있다는 국자의 고백에 미지의 머릿속은 새하얘지는데…… “혹시 나한테도 쓴 적 있어?” 묻는 미지에게 국자는 태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고, 아연실색하는 미지의 표정 너머로 국자의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구매가격 : 11,100 원

바게트 소년병

도서정보 : 오한기 / 문학동네 / 2022년 09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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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상의 질서를 향해
과감하고 태연하게 바게트 빵 겨누기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상상력과 과감하고 신선한 전개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나가는 소설가 오한기의 두번째 소설집 『바게트 소년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의인법』(현대문학, 2015)이 소설쓰기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지난 7년 동안 발표해온 단편소설 가운데 7편을 선별해 엮은 이번 소설집은 그때로부터 근작인 『인간만세』와 『산책하기 좋은 날』을 거치며 가다듬어온 보다 경쾌하고 독창적인 목소리로 이어지는 선분을 그려 보인다. “언어로 건축을 하지 않고, 직물을 짜지 않고, 그냥 연주를 하는 것처럼 보이”(소설가 이장욱)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은 표제작 「바게트 소년병」을 포함해 근작 특유의 독특하고 기상천외한 매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 「펜팔」 「세일즈맨」부터 초기작의 터프한 느낌이 살아 있는 「곰 사냥」, 그리고 상상력에서 비롯된 소재를 무게감 있는 서사로 이끌어나가는 「25」 「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까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은 그의 소설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강속구로, 그의 소설을 기다려왔던 독자들에게는 기대를 뛰어넘는 변화구로 날아들 것이다.


“이명박은 다시 편지를 보내왔다.
(…) 당신의 마지막 친구 B로부터.”

더 넓어진 오한기의 소설세계를 경험하기에 좋은 작품인 「25」는 “소설만 놓고 본다면 아무도 오한기가 쓴지 모를 것 같”(대담 중에서, 288쪽)다는 문학평론가 황예인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오한기의 작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뚜렷한 설정과 굴곡 있는 캐릭터”가 등장해 “영상화에 적합”(같은 쪽)하다 할 만한 몰입도 높은 중편소설이다. ‘이오(25)’는 야구 선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드래프트’를 통해 ‘오영’이라는 캐릭터를 수차례 키워내지만, 캐릭터는 언제나 약물의 유혹에 빠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 이오의 과거 이름은 오영. 게임 속 수많은 오영들과 다른 듯 비슷한 삶을 살아온 그는 야구 선수였던 과거를 깨끗하게 삭제하고 신분 세탁 전문 기업 ‘파인클리닝’의 직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야구 선수의 꿈을 품고 자신에게 의지해오는 의뢰인 ‘au’에게 야구를 가르쳐줄 때마다, 그리고 자신을 배반했던 과거의 연인 ‘구진’을 찾아 헤매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혼란을 겪는다. 이오가 au와 캐치볼을 하며 건넨 말은 그렇게 공과 함께 이오에게로 되돌아온다. “공에만 집중해. 지금 뿌릴 공에만. 그 공만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으면, 넌 네가 누구인지 의심하지 않아도 돼.”(86쪽)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과 「펜팔」 「세일즈맨」은 재기 발랄하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산뜻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들이다.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에서 전세 만기를 앞둔 세입자 ‘나’는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하릴없이 서성이던 중 같은 처지에 놓인 302호 세입자 ‘진진’을 만난다. 그는 돈을 못 받을 바에야 복수라도 하자고 말하는데, 상상력이 좋은 ‘나’는 주로 아이디어를 내고 행동파인 진진이 실행하면서 두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임대인에게 복수를 해나간다. 그러다 하루는 진진이 ‘전두엽’이라는 모임에 가자고 말한다. “임대인을 납치해 머리를 드릴로 뚫고 전두엽을 파헤치는 집단인가”(110쪽) 생각하는 ‘나’에게 진진은 진짜 전두엽이 아니라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임대인에게 두려움을 선사하는 임차인 연합’의 약칭”(같은 쪽)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진진을 따라 전두엽 모임에 가게 된 ‘나’는 그곳에서 ‘삶을 팽(烹)’ 자가 적혀 있는 부적을 쓰는 기이한 존재 ‘팽 사부’와 마주하게 되고, 진진과 ‘나’의 복수 활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게 된다.
소설가 ‘오한기’가 화자로 등장하는 「펜팔」과 「세일즈맨」도 과감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며 유머러스한 매력을 발산한다. 「펜팔」은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을 능청스럽게 소설 속에 끌고 들어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과 펜팔을 주고받는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나’는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을 견디다못해 아무렇게나 내뱉었던 계획대로 수감중인 전 대통령 ‘이명박’에게 편지를 보내기에 이르고, 의외로 젠틀한 그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느새 펜팔 친구로 발전하게 된다. 이에 용기를 얻은 ‘나’는 모종의 사연으로 함께하게 된 ‘크리스토퍼 놀런’의 신작에 그를 캐스팅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세일즈맨」의 ‘나’는 실리콘밸리로 이직한 연인 ‘진진’을 만나러 갈 돈을 마련하고자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앤드루 카네기 메달’ 등의 미국 문학상을 노린다. 그러나 글쓰기에만 매진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고, 당근마켓에 세간을 내다팔거나 대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던 ‘나’는 우연히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서 “궁둥이를 빌립니다”(261쪽)라는 공고를 발견한다. 월 백만원, 일 년 계약직이라는 정보 외에 어떠한 설명도 없는 이 미심쩍은 구인글에 ‘나’는 홀린 듯 지원하고 만다. 무엇이든 ‘세일즈’의 대상이 된 지금의 현실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그려내는 이 시의적인 작품은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코로나 시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통과해야 하는 회사원의 처지를 통해 코로나 이후 재정립된 일의 의미와 성실성의 지표를 가늠해보게끔 한다.


“변화는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무질서는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바게트 소년병」은 오한기의 초기작과 근작이 가진 스타일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이번 소설집의 변곡점이자 구심점과도 같은 작품이다. 우연히 자신의 조상이 시인 ‘오상순’임을 알게 된 뒤 불현듯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수진’은 공사중인 동네 수영장에 갔다가 버려진 캐비닛 안에서 바게트를 총처럼 겨누고 있는 한 소년과 마주친다. 소년은 누군가에게 복수하러 떠난 누나를 기다리며 수영장을 지키는 중이라고 말한다. 이 기묘한 만남 이후 ‘무질서’라는 단어에 사로잡힌 수진은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 샴쌍둥이의 핏빛 암투에 관해 쓰기 시작하고, 그에 대해 친구인 소설가 ‘나’에게 설명하지만 ‘나’는 그런 수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남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작품은 이제 막 소설을 쓰기 시작한 수진과 소설쓰기를 멈춘 ‘나’, 그리고 둘을 차례로 찾아오는 바게트 소년병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겹쳐 보이며 소설쓰기의 의의와 의미를 찾는 물음에 무질서와 무의미로 호응한다.
「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와 「곰 사냥」은 다소간 기존 오한기 소설의 진수를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는 기묘한 애칭에 불과했던 ‘토끼 머리’가 어느새 자신을 옭아매는 정체성이 되어버린 화자를 앞세워 통념에서 벗어나거나 다수에 속할 수 없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내 보인다.
오한기의 작품을 따라 읽어온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일 ‘한상경’이 마지막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뜻깊은 「곰 사냥」의 ‘나’는 말기 암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너’를 찾아와 옛 친구들과 함께 곰 사냥을 가자고 제안한다. 젊은 시절 서로를 위대한 예술가들로 호명했던 ‘나’와 ‘너’, ‘카프카’와 ‘이상’, 그리고 언젠가부터 사라져버린 ‘한상경’까지, “정확히 뭘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 쓸 때만큼은 진지했”(189쪽)던 이들은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고, “예술에 대해서도, 꿈과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196쪽) 않는다. 그저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서만 이야기”(같은 쪽)할 뿐이다. 그런 이들이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리는 곰 사냥을 하러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현실적인 일이 계속 일어난다는 건 더이상 그게 비현실이 아니라는 증거”(198쪽)로서, “비현실은 더이상 비현실이 아니”(같은 쪽)고, “비현실은 현실이”(같은 쪽)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문학의 마지막 낭만이랄까, (…) 제가 생각하는 소설의 모든 것을 담아 쓴”(대담 중에서, 296쪽) 작품이라 일컬은 이 작품은 이제 오한기 소설세계의 한 막이 내려갔으며, 곧 새로운 막이 올라갈 것임을 알리는 듯하다.
비현실보다 비현실적인 현실을, 농담보다 농담 같은 진실을 펼쳐 보이는 오한기의 소설세계는 어떠한 질서화도 의미화도 거부하는 듯 보인다. 특히나 이토록 다채로운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는 소설집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바게트 소년병」에서 수진이 수영장에 살고 있다는 소년의 말을 듣고 “이게 무슨 상징적인 이야기인가”(21쪽) 생각하며 “무분별한 재건축 계획에 집을 빼앗긴 남매. 도시의 몰락과 재건이 반복되는 자본주의적 과정들”(같은 쪽)을 떠올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마치 수진의 생각을 읽은 듯 소년은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어려운 말 하지 마세요. 저는 단지 수영장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요.”(같은 쪽) 그러니 『바게트 소년병』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어떤 말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오한기의 소설세계가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구매가격 : 10,200 원

인사이트 밀

도서정보 : 요네자와 호노부 / 엘릭시르 / 2022년 09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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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의 본격 미스터리 성찬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분게이 슌주 미스터리 베스트 10

2007년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인사이트 밀』은 요네자와 호노부가 데뷔 6년 만에 발표한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한다. 그때까지 요네자와 호노부가 선보였던 ‘고전부’ 시리즈, ‘소시민’ 시리즈 등의 청춘 학원 미스터리와는 결이 다른 ‘진짜 본격 미스터리’를 들고 온 것이다.

“연령과 성별 불문. 일주일 동안의 단기 아르바이트. 어떤 인문과학적 실험의 피험자. 하루 구속 시간은 24시간. 인권을 배려하며 24시간 동안 피험자를 관찰한다. 기간은 7일. 실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 격리한다. 구속 시간 동안 시급은 전액 지급한다.” 시급 11만 2천엔. 보통 아르바이트 비용의 100배도 넘는 금액이다. 열두 명의 참가자는 각자의 이유로 이 수상하면서도 혹할 수밖에 없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한다.

어떤 사람은 장난삼아, 어떤 사람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시험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차를 갖고 싶어서. 의심과 궁금증을 품은 사람은 있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게 ‘암귀관’에 들어선 그들은 7일간의 데스 매치를 벌이게 된다.

구매가격 : 13,000 원

태양시집

도서정보 : 루미 / 문학동네 / 2022년 09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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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사랑의 노래, 루미의 『태양시집』 페르시아 원본 국내 초역

“루미, 내게는 루비처럼 붉은빛을 띠는 단단한 보석 같은 이름.” _김민정(시인)
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 루미는 영적인 탐구를 중시하는 수피 사상의 중요 인물 이다. 또한 그는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내려오던 페르시아 문화권의 명상법인 회전 명상춤 ‘세마’로 유명한 메블레비 종파의 선구자다. 서구권에서는 시성(詩聖)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랠프 월도 에머슨과 월트 휘트먼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파울로 코엘료, 류시화, 김민정 시인 등 많은 현대작가 역시 루미의 작품세계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김민정 시인은 루미를 보석 루비에 비유 하며 “어디선가 그가 빛나고 있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그 앞에 서기 일쑤”였다고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
연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종종 취하는 루미의 시는 신과의 사랑과 합일을 통한 깨달음의 길을 추구한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루미의 『태양시집』 역시 신성한 사랑의 노래로 가득하며, 페르시아 원전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그 가치가 더욱 높다. 원전에 수록된 3229편의 가잘(소 네트) 중 정수(精髓)에 해당하는 40편을 엄선하여 주제별로 엮었다.
번역자 박은경은 루미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현지로 건너가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회전 명상춤 을 전수받았다. 수년간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오가며 배운 남아시아의 전통무용 및 서아시 아의 수피 전통 가르침과 춤명상을 융합해 독자적인 공연, 교육 및 치유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촉망받는 젊은 예술가다. 2021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수피 명상을 응용하여 <흙 물 불 바람과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2021년 경기시나위 오케스트라 콘서트 ‘반향’에서 수피 댄스 독무를 공연했다.

루미가 지핀 사랑의 불씨
루미가 살았던 13세기는 살벌한 시대였다. 당시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서아시아와 동유럽까 지 정복하면서, 수많은 도시들이 풀 한 포기 남김없이 파괴되고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이슬람 세계 의 기둥이었던 아바스왕조는 멸족을 당했고, 바그다드와 에스파한에는 수십만 개의 해골로 만든 탑 이 세워졌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의 영향으로 루미는 안락한 삶을 노래하지 않았다. 슬픔과 피와 고통의 시를 끊임없이 읊었다. 님의 장미꽃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먼저 피로 짠 베일을 걷어야 한다고 그는 썼다. 그것은 장미의 가시를 인내하는 일이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루미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은 바로 떠돌이 수행 자 샴스를 만난 일이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이자 법관이기도 했던 루미는 37세가 되던 해에 평생 의 스승이자 소울메이트인 샴스를 만나 영혼의 교류를 나눴다. 어느 날 샴스가 자취를 감추어버리 자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실패했다. 샴스에게 헌정한 『태양시집』 및 『영지의 마스나 비』 등 모든 시는 루미가 샴스를 잃은 후에 나온 작품이다. 샴스와의 이별이 없었다면 루미는 결코 우리가 아는 시인 루미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양시집』은 ‘샴스’와 동음이의어인 ‘태양’을 호명하며, 샴스를 그리워하는 루미의 마음을 절절 하게 담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 그리움은 샴스라는 개인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대한 염원, 신과의 합일, 진리를 향한 희구를 통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삶의 극심한 고통이 자아의 껍데 기를 벗어나 천상의 연인과 하나되길 바라는 숭고함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기 때 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의 심장에 신성한 사랑의 불길을 일으킨 이 집은 무려 팔백 년이라는 시간 과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구매가격 : 9,100 원

바람 불고 고요한(문학동네시인선 179)

도서정보 : 김명리 / 문학동네 / 2022년 09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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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정련된 시적 세공으로 빚어낸 생의 아름다움
시력 40년, 김명리 시의 정수

문학동네시인선 179번으로 김명리 시인의 신작 시집을 펴낸다. 1983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정갈하게 다듬은 시어로 존재의 쓸쓸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노래해온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서정적이고 예민하고 아주 부드럽게 속삭이는”(문태준 시인) 시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오랜 기간 독자들과 호흡해온 김명리는 이번 시집을 통해 죽은 줄 알았던 모과나무에서 어른거리는 “연둣빛”(「바람 불고 고요한」)으로 표상되는 소생의 기운을 느끼고, 그러한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깊이를 “풀의 무게란/ 잠시 번성했던 초록의 무게”(「풀의 무게」)라고 성찰한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해설에서 이 시집을 “한국시사에서 가장 굵은 줄기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적인 한국적 서정시형을 넘어서 가려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시적 대상을 향한 기다림과 한(恨)의 정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처방전이 없는 삶”(「삶이라는 극약」)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시인의 “뜨겁게 생동”하는 시편들은 “기다림”이라는 태도를 “발견의 기쁨으로 만드는 현장”인 동시에 독자들에게 전하는 시인의 진실한 편지이며, 시력 40년에 다다른 한 예술가가 길어올린 예술세계 그 자체이다.

“김명리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장 직접적인 풍미는 고급스러움이다. 돌로 치면 세공된 ‘보석’이고, 옷으로 치면 ‘오트 쿠튀르’이며, 나무로 치면 ‘사군자’이다. 일제강점기의 미술평론가 김용준의 명명을 빌리자면 ‘고아미(高雅美)’라고 부름직한, 절도와 우아함으로 이루어진 품격이라 할 것이다.” _정과리, 해설에서

시집은 총 네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자연물을 통해 느끼는 생명의 작은 기미들과 인간 삶의 본질적인 쓸쓸함을, 2부는 어머니라는 소중한 대상을, 3부는 우리 주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연약한 몸을 지닌 동물들을 바라본다. 4부는 이 모든 시상을 아우르는 작품들로 존재를 향한 연민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죽은 줄 알고 베어내려던
마당의 모과나무에
어느 날인가부터 연둣빛 어른거린다
얼마나 먼 곳에서 걸어왔는지
잎새들 초록으로 건너가는 동안
꽃 한 송이 내보이지 않는다

모과나무 아래 서 있을 때면
아픈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적막이 또 한 채 늘었어요

이대로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 싶은

바람 불고 고요한 봄 마당
_「바람 불고 고요한」 전문

시집의 핵심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표제시 「바람 불고 고요한」은 스러져가는 삶에 집착하지 않고 그 무상성을 온전한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 마침내는 “죽음”이 “삶을 배웅 나와도 좋겠구나”라고 노래하는 시이다. 김명리의 이러한 시적 태도는 다른 시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저녁해의 불꽃 이내 흩어지고
서둘러 잎 내고 꽃 피우던 여름꽃 진다
체로금풍의 시절이 머지않았으니
여름의 핏자국들 이내 희미해지리
우리도 끝내 자욱이 돌아서리라
_「파위교」 부분


애도가 종잇장처럼
가벼워지는 봄날 오후

만곡처럼 휩쓸리는
새의 영원을

햇빛은 지나가기만 할 뿐
바람은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
_「꽃잎 너머」 부분


한편, 「김치박국 끓이는 봄 저녁」은 시집 가운데 오감을 가장 강렬하게 자극하는 시로, 발표 당시 눈 밝은 시인들과 독자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회자된 작품이다.

기억에도 분명
맛의 꽃봉오리, 미뢰가 있다
건멸치 서너 마리로 어림밑간 잡아
신김치 쑹덩쑹덩 썰어 넣고 김칫국물 넉넉히 붓고
식은밥 한 덩이로 뭉근히 끓여내는
어머니 생시 좋아하시던 김치박국
신산하지만 서럽지는 않지
이 골목 저 골목 퍼져나가던 가난의 맛,
기억의 피댓줄 비릿하게 단단히 휘감아들이는 맛
반공(半空)의 어머니도 한술 드셔보시라
뜰채로 건져올리는 삼월 봄하늘
봄 나뭇가지 연둣빛 우듬지마다
천둥처럼 퍼부어지는 저 붉은 꽃물 한 삽!
_「김치박국 끓이는 봄 저녁」 전문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김치박국을 끓이며, “봄 나뭇가지 연둣빛 우듬지”처럼 푸르고 “천둥처럼” 활달하며 “붉은 꽃물”처럼 찬란했던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 “신산하지만 서럽지는” 않았던 가난의 시절, 어떤 음식보다 감각을 자극하는 김치박국은 그 자체로 육박해오는 살아 있음의 생생한 증언과도 같다. 김치박국을 통해 존재의 근원으로 내려가 생의 “피댓줄”을 “휘감아들이는” 이 시는 독자들에게 울림 있는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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