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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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없도록 하자

도서정보 : 염승숙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2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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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환상과 실재, 소설과 현실을 잇고 엮는 독보적인 감각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통해 지극히 평범하고도 소외된 인간을 정교하게 축조된 환상의 세계로 데려와 이야기를 펼쳐 보인 작가 염승숙. 지난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없는 미래와 굴착기의 속도-박솔뫼 『도시의 시간』론」)으로도 등단하면서 텍스트와 세계를 읽어내는 촘촘한 겹눈을 가졌음을 인정받은 바 있다. “늘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쓰면서 어제보다 나아진 인간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소설을 쓰는 일과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진지한 작가이자 성실한 연구자의 시선을 가진 염승숙의 읽고 쓰는 삶의 순환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말 그대로 ‘햄ham’이 되어버리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하여 무력감이 도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장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충실함과 풍성함,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사적 재미와 특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그 고유한 겹눈으로 읽어내고 써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몰라야만’ 하는 세대
노동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인간,
억지로 숨을 참으면서 참혹을 견디는 자의 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_정이현(소설가)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모두 햄이 되어버리는 세계의 이야기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해버리듯, 불그스름한 가공식품 햄이 되어버리는 것. 반대로 다시 일하기 시작하면 햄은 사람으로 변한다. 뉴스에서는 매일 ‘오늘의 안개’ ‘오늘의 사고’ ‘오늘의 햄’이 보도되고, 신원 미상의 햄들에 관한 정보가 느릿느릿 자막으로 지나가는 이 안개로 가득하고 장벽으로 가로막힌 공간 속, 주인공 ‘추’는 제빙 공장, 이삿짐센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전전하며 일하던 어느 날 ‘홀맨’을 구한다며 나타난 선배 ‘약’과 조우한다. 숙식 제공에 채용 증명서를 써준다는 약의 말에 추는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하는 마음이 되어 홀맨의 업무가 무엇인지 따져 묻지도 않은 채 그가 이끄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햄이 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다행스러운 현재다.
이 세계에 대항하는 단 하나의 방어태세로서 나는 노동한다. (131쪽)

추는 베어지고, 뭉개지고, 닳아버린 햄이 나뒹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허허벌판의 게임장 앞에 당도해 그저 대기하라는 명령만을 받는다. 새벽 두시, 마감 시간이 되어 “시간 다 돼갑니다” 라고 손나팔을 하고 외치던 다음 순간, 누군가가 거칠게 달려들어 추의 뺨을 갈기며 욕하기 시작한다. “이 개새끼, 이 햄 같은 새끼, 이 햄보다 못한 찢어 죽일 개새끼가 재수없게!” 화난 손님을 말리지 않는 것이 이곳의 룰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는 자신의 일이 ‘인간 샌드백’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하염없이 버티어 선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리면 맞고, 맞으면 신음했다. 통증과 지루함은 동시에 왔다. 아픈데 지루하고, 지루한데 아팠다. 몸이 괴로운 것도 끝내는 따분해졌고, 그 따분함에도 싫증을 느끼는 때가 잦았다. (218쪽)

하지만 추는 하루하루의 삶을, 상처를 서둘러 봉합해버리며 그 일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니까 추의 지속, 성실은 학습된 무기력일까? 아니면 가감이 없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수동적 능동의 다른 모습일까? “누구나 ‘무엇’이 되어야” 하기에 “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의 세계 속에, 비정하고 비참한 하루하루 속에 추는 그렇게, 그토록 ‘있는다.’


폐허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면
절망에도 리듬감이 있다면
비참에도 사랑이 있다면

“청춘인데 청춘이 아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가난한 무력이 이 도저한 세계에서 꿈꿀 수 없음에까지 이르”게 된 디스토피아.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낯선 공간이,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에 놓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행동과 마음이, 지금 바로 이곳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자는 소설을 읽는 한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짙어졌다 옅어지기를 반복하는 안개 속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 조금씩 뒤틀리고 허물어지는 단어, 돌연 피어오르는 사랑의 기억. 끝끝내 이어지고야 마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비참 속에 놓인 그들을 조금은 뜨거워진 눈으로, 조금은 시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우리 역시 끝끝내 목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승달’만큼만 보여요.
햄이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모두 초승달 정도로만 보인다니까요. 가늘고, 얄브스름하게……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비뚤게 틀어져버려요. 그런다고 더 잘 보이지도 않지만. (207쪽)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 울려퍼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던 그 유명한 바틀비의 전언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지금 2018년, 더욱 나빠지기만 할 뿐인 지금의 시대에는 더 나아간 새로운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 거리의 함성에 대한 화답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바로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말. 단호한 절망의 말로도 간곡한 청유의 말로도 보이는 이 문장이, 소설가 염승숙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환상과 실재의 직조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다정과 비정이 겹쳐 보이는 한 문장이 아닐까, 곰곰 곱씹어본다. 그 질문을 품은 채 이제 우리가 안개 속으로 걸어가 흠뻑 젖어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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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도서정보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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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보다 유명한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낯선 이름이겠지만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문학평론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 앞에 습관처럼 따라붙는 ‘문학의 교황’이라는 별명으로도 그가 현재 독일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독일인의 98퍼센트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설문 결과가 있을 정도라고 하니, 문학평론가로서는 ‘스타’라고 불릴 만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1920년생으로 올해 나이 93세인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독일의 지적 전통 속에서 성장한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제3제국의 유대인 탄압 정책에 의해 1938년 10월, 1만 2000명이 넘는 폴란드계 유대인들과 함께 추방당해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1943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이송되기 직전 아내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한 농가에서 열 달 넘게 숨어 지냈다. 목숨을 걸고 아내와 자신을 숨겨준 주인 부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매일 밤 그들에게 셰익스피어와 괴테 등의 작품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었다고 한다(훗날 독일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그의 체험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쓰기도 했다. 321~322쪽 참조).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폴란드군에 입대하여 정보부, 외무부 등에서 근무했고, 런던 주재 폴란드 총영사관에서 영사로 일하기도 했다. 1949년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평론가의 길에 들어서서 여러 매체에 평론을 기고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공산주의 폴란드의 부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1958년 서독으로 돌아가 정착했다. 이후 독일 현대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체로 일컬어지는 ‘47그룹’에 참여하며 독일의 작가들과 교분을 맺었고, 1960년부터 1973년까지는 주간지 『차이트』의 상임 문학평론가, 1973년부터 1988년까지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부장으로 일하며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전 독일에 알린 것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4년간 방송된 〈문학 4중주〉라는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이었다. 〈문학 4중주〉의 대표 진행자로서 그는 폭넓은 시청자층을 문학시장에 끌어들이며 문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독일 문단에서 그의 권위 또한 더욱 공고해졌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베스트셀러 순위가 바뀔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거침없는 비평과 대중 친화적인 태도 탓에 페터 한트게, 마르틴 발저, 귄터 그라스 등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특히 마르틴 발저는 소설 『어느 비평가의 죽음』을 통해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2012년 1월 27일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독일 연방의회에서 유대인을 대표하여 연설하는 등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가들의 초상화와 함께 읽는 매력 만점의 문학 에세이

1967년에 저자는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로부터 집필 의뢰와 함께 그림 한 점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이후 (주로 독일) 작가들의 초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받은 그림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구스타프 자이츠가 그린 브레히트의 초상화였다(256쪽 참조). 이 책에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평생 수집한 작가들의 초상화가 60점 넘게 실려 있다. 지인들에게서 선물로 받은 그림부터 경매장이나 골동품상 같은 곳에서 직접 구입한 그림까지 소장 경로도 다양하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유명 작품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책장을 넘기며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렴풋하게나마 독일문학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주제가 분명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컬렉션인 것만은 분명하다.

철판화, 석판화부터 에칭, 드라이포인트, 연필 스케치까지 그림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특히 브라질의 그래픽 아티스트 카시오 로레다노의 잉크 드로잉 작품을 여럿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다. 그가 그린 하이네(72쪽), 슈니츨러(128쪽), 토마스 만(200쪽), 카프카(216쪽), 브레히트(252쪽), 귄터 그라스(329쪽) 등의 개성 넘치는 초상화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그린 뛰어난 그림들도 놓칠 수 없다(본문 316, 320, 324쪽). 수준급 화가로서의 귄터 그라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이런 작가들의 초상화를 한 점 한 점 소개하며 그들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글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지만 특유의 솔직하고 명료한 표현만큼은 일관된다. 특히 유대계 작가들에게 보이는 그의 편애는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하이네에 대한 이런 평가가 그렇다.

하이네의 서정시는 섬세하면서도 신랄하고, 격정적인 동시에 풍자적이고, 종종 슬프지만 그러면서도 익살스럽다. 해학이 있었기에, 독일인이자 유대인인 하이네가 온 유럽에서 받아들여졌고, 엄청난 사랑까지 받을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유럽은 이 영원한 실향민, 이 망명자를 당대 문학의 중심인물, 세계 시인으로 보았고, 바이런의 계승자로 인정하지 않았나. (75쪽)

하지만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지나치게 솔직하고 독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교황’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작가와 문학을 대하는 자기만의 뚜렷한 비평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른 많은 문학평론가들과 다르게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어렵게 말하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도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문학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장의 숨결, 잊히지 않는 고전의 매혹

문학은 넘쳐나도 교양의 차원에서 읽을 만한 문학 입문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고전으로의 여정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책은 여전히 드물다. 먼 나라의, 나이는 90이 넘은데다 이름부터 생소한 문학평론가가 쓴 이 책의 여러 미덕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고전이 가진 시대를 초월하는 힘과 아름다움을 역설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에서 왜 문학이 유의미한지, 그리고 왜 거장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조금의 억지나 강요도 없이 자연스레 일깨워주는 것이다. 옮긴이도 말하듯이 “누구든 이 책에서 토마스 만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그의 말투를 흉내내어 장담하건대―「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찾아(혹은 다시)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또 누군가는 횔덜린이나 하이네의 시집을 손에 들고 책장을 펼치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전의 매혹이요, 이 책이 가진 가장 소중한 가치다. 평생을 독일문학에 헌신해온 한 늙은 비평가의 책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매가격 : 12,600 원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107)

도서정보 : 이수정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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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시인선 107 이수정 시집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장장 17년이라는 장고 끝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낯설거나 거친 언어가 아니라 오래도록 다듬은 자갈처럼 매끄러운 빛을 내는 맑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살들을 덜어내고, 말들을 덜어내고 나니 가장 자연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남았다고 시인을 대변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언어들을 서정을 노래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과 태어남을 반복하며 삶, 혹은 삶 바깥의 것을 시라는 만화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수면처럼 끊임없이 물결쳐 자신을 숨기지만 시인은 기어이 그 안을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수차례에 걸친 재탄생처럼 그의 시 속에는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바다엔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는데
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 하는데
-「심해에 내리는 눈」 부분

시인은 심해를 통해 천천히 가라앉는 이미지와 수평선 너머에 대한 갈망을 통해 정적(靜的)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재가 되어버린 생의 부스러기들을 찬란하게 묘사하면서 폐허 위에 새 세계가 얹어지는 모습, 삶과 삶 바깥 사이에 있는 존재의 경계를 포착해낸다.
시인은 부서지는 것들에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사물들의 잔류 혹은 잔재에서도 수천 조각의 빛을 발견하는 시인의 마음은,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시인의 눈을 통해 부서지고 재조립되는 사물들은 고유한 생에의 감각으로 번역된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지는 수면에서 달 지느러미들이 “일제히 물을 차고 올라 잘게 부서질” 때 밤새 “심해어들을 몰고”(「달이 뜨고 진다고」) 오는 바다는 그래서 자기 자신만의 삶―그리고 세계―를 갖게 된다.
뜨고 지는 수천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마음이어서일까, 그 부서짐을 포착할 눈을 가져서일까, 이수정의 시 세계는 결코 어둡지 않다. 그의 번역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생(生)은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품고 있다. 그래서 마치 무한히 펼쳐진 마음속 세계를 돌아다니고 돌아와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들려주는 듯한 이 시집은 존재의 민낯을 확인하게 하면서도 읽는 이의 내면을 따뜻하게 한다. 이 역설적인 온도는 아마도 이수정이 제시하고 싶은 세계의 온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 안에서 시인이 내놓는 시어들과 함께 여행할 우리는 (어쩌면) 여러 차례 죽음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태어남이야말로 가장 열렬히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었던가. 재는 가장 뜨거운 열렬함 이후에 가장 부드러운 빛을 품게 되지 않던가.

구매가격 : 7,000 원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문학동네시인선 108)

도서정보 : 심재휘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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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서정이라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

문학동네 시인선 108번 심재휘 시집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이 출간되었다.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시인이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에 이어 네번째로 펴내는 시집이다. 이 시집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이 보여주는 감정들도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은, 우리와 닿아 있는 감정들이다. 특별한 기교 없이 진솔하게 써내려간 시어들은 그래서 읽는 이에게 스미듯 전달된다. 심재휘가 건네는 다정하고 따뜻한 서정의 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아픔을 달래주는 위로의 말이다.

서정시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것들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도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생각과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우리가 느끼는 순수한 감정들, 사랑과 비애과 그리움의 마음들은 우리가 가진 가장 내밀하고 소중한 것들이다.

시인은 그 내밀하고 작은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인다. 고독한 존재들이 지닌 감정들을 고요히 응시한다. 시인은 지상에 존재하는 홀로인 것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것에 공감한다. 심재휘의 시에는 특히 자연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자연과 일상이 물 흐르듯이 하나로 통합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내다볼 멀리도 없이 제 몸을 핥는 꽃에게서/ 차례 없이 시든 잎들에게서/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백일홍」), ‘오래 묵힌 음표들도 건들면 음악이고 썩어가는 낙과의 마음은 언제나 꽃이다’(「다정도 병인 양」) 같은 시구들이 그러하다. 시든 잎들에게서 용서를 배우고, 썩어가는 낙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마음을 다해 그들을 보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사물의 내면을 마주할 때, 시는 우리 스스로의 마음을 새로 발견하게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은 홀로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리고 홀로됨은 무언가 떠나감으로써 시작된다. 그러니 이 시집의 또하나의 주된 정서가 그리움인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왜 어떤 이별은 상실감을 주고 어떤 이별은 그리움을 남기는 걸까? ‘헤어짐이란 서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봉분이 있던 자리」) 말하는 시인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시인은 떠나고 사라지는 일의 슬픔보다 이별이 남긴 의미를 살핀다. 이별이 의미를 남길 수 있는 건 떠나보낸 이가 떠난 이를 여전히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의 몸이 흥건한 땅바닥에서
그가 둥둥 떠 있던 허공의 어떤 행복으로
괜히 뒷걸음질쳐보고 싶은 저물녘에
나는 와 있는 것이다
―「가랑비 오는 저녁에 닿다」 부분

‘떨어지고 나서도 마저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며 ‘둥둥 떠 있던 어떤 허공의 행복’을 떠올리는 저물녘. 떨어져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가랑비를 맞으며 익어가는 감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아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붉게 물든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저녁의 풍경은, 더없이 처연하지만 깊고 아름다운 아련함을 자아내고 있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저녁에 닿아 있는 이의 마음에도,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도 온기가 배어든다. 이와 같은 온기를 통해 시인은 떠나가고 홀로되는 삶의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삶의 과정 안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삶을 상상한다.

시인은 「따뜻한 한 그릇의 말」에서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늦도록 외롭지 않게 살아라’라는 말을 떠올린다. 시인은 그 말에서 동행의 의미를 발견한 듯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홀로됨을 숙명으로 타고난 게 사람이라지만 끝내 고독하지 않을 길을 담담히 가리킴으로써 자그만 희망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오래 걸어가야 하는 것뿐이란다 아들아
먼 길을 가려면 아들아 너도
국수를 잘 먹어야지
―「먼 길」 부분

구매가격 : 7,000 원

르네상스 (교유서가 첫단추시리즈 27)

도서정보 : 제리 브로턴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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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아우른 르네상스라는 현상!
그 위대한 성취를 뒷받침한 것은 노예무역이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인간성에 대한 이상화된 예찬이 아니라
노골적인 실용주의였다!
상업, 종교, 과학 등과 얽힌 종합적 현상으로서 르네상스를 파악

“이것은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르네상스다.” _선데이 타임스


이 책은 르네상스가 세계적인 규모로 벌어진 현상이었음을 밝힌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만이 아니라 북유럽과 이베리아 반도, 이슬람 세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일어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르네상스에 덧씌워진 상상 속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그것에 대해 역사적 설명을 시도한다. 근대를 향한 변화는 서양이 독자적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동양과의 교류 및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이로써 고전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성격의 근대를 이룩했다고 저자는 본다. 르네상스는 위대한 예술과 문학, 과학을 탄생시켰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면서 인쇄술과 지도제작술의 발전, 철학, 종교, 항해, 국제교역의 진전 등 당시의 상황을 살펴본다.

세계 규모로 전개된 르네상스
르네상스에 대한 고전적 정의들이 가진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다른 문명을 배제한 채 유럽 문명의 성취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르네상스라는 용어의 발명을 목격했던 시대가 유럽이 전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를 가장 공격적으로 주장했던 시기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최근 들어 역사학, 경제학, 인류학 분야에서 르네상스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는 저자는 이 책에서 르네상스를 보다 광범위한 국제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무역, 금융, 상품, 후원, 국가 간 충돌, 다양한 문화들 사이의 교류 모두가 르네상스의 핵심 요소들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회화, 저서, 조각, 건축에 국한되지 않는 르네상스의 창의성에 관해서도 살펴본다. 도자기, 직물, 금속세공품, 가구 같은 공예품도 사람들의 믿음과 태도를 형성했다.

인쇄기의 발명과 인문주의
15세기 초에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과 책은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로마, 베네치아 같은 주요 도시들에 집중된 소수 국제적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 16세기 말에 이르러 인문주의와 인쇄기는 엘리트와 민중 두 계층 모두의 읽기와 쓰기 능력 그리고 지식의 지위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혁명은 북유럽에 더 집중되었다. 저자 브로턴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추종자들에게 두 가지를 보장한다고 단언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먼저 인문주의는 고전을 익히는 일이 그들을 더 나은, 즉 더 ‘인문주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고, 둘째로 고전 문헌 교육이 당시 출현하기 시작한 관료행정체계 속에서 출세하기 위한 필수적 기술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인문주의적 훈련은 사회적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시장성 높은 교육으로 보였는데, 이는 고전 문화가 낳은 위대한 책들을 찾아다니고 문명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대 저자들의 지혜에 몰두하는 로맨틱하고 이상화된 인문주의자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신세계에 대한 약탈과 유럽의 근대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대륙 수탈은 유럽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히스파니올라 섬과 중앙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금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1543년에는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면서 유럽으로 대량의 은이 유입되었다. 이로써 유럽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다. 아메리카의 광산과 대토지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궁극적 해결책은 노예였고, ‘간단한 작업밖에 하지 못하는 너무나 허약한 원주민들과는 달리 그곳에서의 작업에 아주 이상적인 흑인들을 수입’하게 되었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수치스러운 특징 가운데 하나가 거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1525년에서 1550년 사이에는 약 4만 명의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려왔다.

르네상스 다시 쓰기: 셰익스피어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르네상스를 설명하는 데 적절한 주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의 문학은 남유럽과 지중해의 영향으로부터 활력을 얻는 고전적 인문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르네상스의 끝을 의미하는, 보다 지역적이고 민족적인 주제에 대한 몰두로 옮겨가는 결정적인 이행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의 힘에 대한 명상록으로 여겨져온 『템페스트』에 주목하는 저자는 이 작품과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연결해서 논의한다. 나폴리의 왕은 그의 딸을 결혼시킨 뒤 튀니지에서 귀향하는 항해에 나섰다가 지중해 어딘가에서 난파당한다. 이는 트로이에서 카르타고를 거쳐 로마로 간 아이네이아스의 여정을 차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신세계의 식민화를 강하게 연상시킨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템페스트』는 동서 양쪽 모두에, 즉 과거 르네상스 사상가와 예술가에게 풍성한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던 동부 지중해와 고전 세계, 그리고 장차 17세기 후반과 18세기 계몽사상을 탄생시킬 대서양 세계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책 속으로

한스 홀바인의 작품은 유럽 르네상스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이미지다. 도대체 어떤 점이 홀바인의 작품을 ‘르네상스’ 이미지로 각인시켰을까? (8쪽)

인쇄술이나 종교적 격동의 영향과 더불어 이러한 세계적 팽창은 이중적 의미의 유산을 남겼다. (…) 이 시대에는 문화적·과학적·기술적 성취와 더불어 종교적 불관용, 정치적 무지, 노예제 그리고 부와 지위에서의 심각한 불평등이 진행되었다. 이른바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15쪽)

이러한 교류와 경쟁이 암시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동방과 서방 사이에 분명한 지리적 혹은 정치적 경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훨씬 후대에 나온 19세기식 믿음이었을 뿐이다. (57쪽)

포르투갈 원정대의 항해는 르네상스 세계의 정치 지도를 바꿔놓는 결과를 낳았다. 인도의 향신료 상인들이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논의하기 위해 리스본에 도착하자, 베네치아는 즉시 이들과의 회담을 저지하기 위한 방해 공작을 시도했다. (151쪽)

수학, 천문학, 기하학에서의 과학적 혁신 덕분에 동쪽과 서쪽 두 방향 모두에서 점점 더 야심찬 장거리 여행과 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사람, 식물, 동물, 광물과의 만남으로 유럽인들은 심리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연구를 확대하고 재정립했다. (174∼175쪽)

영국에서는 에드먼드 스펜서와 필립 시드니가 이러한 서사시 전통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독특한 프로테스탄트적 감수성을 보탰다. 두 사람 다 튜더 왕조 시대에 만연했던 풍조에 걸맞은 서사시를 써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지키려 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야심찬 궁정인들이었다. (206쪽)

구매가격 : 10,300 원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

도서정보 : 김풍기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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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형식에서 미래를 꿈꾸게 하는 책, 『당음』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한시 창작 교과서

평설로 되새기는 당시 선집, 한국 문화의 유구한 토대
오늘날 우리는 왜 한시(漢詩)를 읽어야 하는가?


『오언당음(五言唐音)』이라는 책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한시 창작 교과서였던 『오언당음』(넓게는 『당음』)이 김풍기 교수의 새로운 평설로 최근 소개되었다(교유서가 刊, 값 22,000원). 『당음』은 원나라 때 편집된 당시(唐詩) 선집이며 시음, 정음, 유향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오언당음』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당음』의 본론 격인 "정음" 부분을 중심으로 오언절구만을 뽑아서 편집한 책이다. 조선에서 『당음』을 출판한 기록은 왕조실록에 보인다. 당나라 초기부터 후기까지 시대순으로 편집된 이 책은 당시를 기반으로 하는 한시 창작의 교과서처럼 널리 읽혔다. 김풍기 교수는 평소 한시를 번역하면서 느끼는 "미묘한 어긋남"을 이번에 평설(評說)의 방식을 통해 넘어서려 했는데, 이전의 번역에 상당 부분 동의하면서도 한시의 맥락과 내용을 자기 나름으로 풀어 쓰고자 많은 공을 들였다. 김 교수는 시 읽기에서 완벽하게 올바른 해석이 어디 있겠느냐고 전제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표현과 감성을 느끼면서 당시를 읽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해석의 여지를 즐기며 음미하다보면 그 시가 더욱 마음에 와닿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시 짓기는 출세의 중요한 수단
조선 선비들은 왜 학동들에게 한시를 가르쳤을까? 한시를 모르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지식인들이 관직으로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는데, 과거시험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한시 짓는 능력이었다. 한시는 복잡한 규칙을 가진 문학 갈래다. 한자의 특성 중의 하나인 사성(四聲)을 둘로 나누어 평성(平聲)과 측성(仄聲)으로 구분하고, 평측을 맞추어 글자를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짝수 행의 마지막 글자에는 같은 계열의 소리로 운(韻)을 맞추어야 한다. 또한 구절끼리 대구(對句)를 맞추어서 표현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규칙들이 더 많이 적용된다. 이렇게 어려운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순식간에 한시를 짓는 능력은 곧 그가 천재에 가까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지금, 한시를 읽는다는 것
한시는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문학 양식이다. 한자의 특성상 한시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한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료 해독"이라는 난제를 수반한다. "더구나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생기는 미끄러짐, 즉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어긋남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자신의 시대가 구성한 일반적인 문학적 구성을 가지면서도 그러한 패턴을 탈피함으로써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익숙하지만 어디선가 그 익숙함을 깨는 듯한 작품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한 한시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 한시(漢詩)
문학 작품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범상하게 바라보던 사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은 표현 하나에서도 깊은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자 김풍기 교수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와 상상력을 만나게 된다"면서, 한시 특히 당시를 읽으면서 익숙함과 낯섦과 신선함을 동시에 느낀다고 말한다.

◆최국보(崔國輔), 연밥 따는 노래〔採蓮曲〕

玉嶼花爭發 어여쁜 섬에는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金塘水亂流 멋진 연못에는 물이 어지러이 흐른다.
相逢畏相失 서로 만났다가 서로 잃어버릴까 두려워
竝着采蓮舟 연밥 따는 배를 나란히 묶어두었다.

맑은 날, 연밥을 따러 배를 타고 나온 여인들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꽃이 다투어 피어나는 못, 물은 어지러이 흐른다. 자칫 물결에 배가 흘러서 멀리 떨어질까 걱정하는 마음에 서로 배를 이어놓았다.
"옥(玉)", "금(金)"의 화려한 색채 이미지와 "쟁(爭)", "란(亂)"의 시각적 혹은 동적 이미지가 엇갈리면서 이 작품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게다가 다투어 피어나는 수직적 이미지와 어지러이 흘러가는 수평적 이미지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표현들을 곰곰이 따져보노라면 참 잘 짜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_227∼228쪽에서

*

◆왕애(王涯), 봄을 보내는 노래〔送春詞〕

日日人空老 날마다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가지만
年年春更歸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누나.
相歡在樽酒 서로 기뻐함은 술동이에 있나니
不用惜花飛 꽃잎 날리는 걸 안타까워할 것은 없지.

내 생애를 자연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아득한 슬픔에 젖어든다. 무한한 우주의 운행에 비하면 우리의 생애는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空"(공, 부질없이)과 "更"(갱, 다시)은 절묘하게 대구를 맞춘 글자다. 그렇기 때문에 "歡"(환, 기쁘다)으로 나아가는 명분이 생긴다. 이태백도 자신의 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浮生若夢, 爲歡幾何?"라고 했다. 뜬구름 같은 인생은 꿈과 같으니 우리 생에서 기뻐할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좋은 벗이 있고 좋은 술이 있는 좋은 봄날 밤이면 당연히 즐겁고 기쁘게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_349∼350쪽에서


♣ 책 속으로

여행은 유목적(遊牧的) 삶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떠도는 숙명을 지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숙명을 거부하고 한곳에 정착하기를 원한다. 정착하면 다시 떠나기를 원하지만 말이다. 정착을 포기하지 않고 떠나는 마음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항용 선택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은 늘 돌아옴을 전제로 하여 시작된다.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여행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지루하게 만든다. (63쪽)

세상이 어지러우면 지식인은 자신의 입장을 정하기가 참 어렵다. 세상에 뛰어들어 함께 이전투구를 하더라도 변혁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변혁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속세를 벗어나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며 은둔할 것인가. 두 입장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대의 입장들이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고민한다. 정답은 없다. 그저 고민할 뿐이다. (199쪽)

도시에서 살아가는 처지이면서도 어떤 때는 아무도 없는 강가를 달빛 받으며 걷고 있는 듯한 때가 있다.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332쪽)

그리움이 사무치면 작은 것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한다. 단풍나무 열매라고 해야 얼마나 크겠으며 그 소리가 들리기나 할까마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밤, 그 작은 소리에 한밤의 애상(哀傷)이 툭 하고 터져나온다. (422쪽)

봄이 와도 여전히 괴로운 심정은 오직 임이 없는 탓이다. 아픈 가슴 부여안고 꿈속에서 임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그렇게 봄날은 간다. (457쪽)

구매가격 : 16,500 원

천사의 사슬

도서정보 : 최제훈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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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일곱 개의 고양이 눈』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최제훈
5년 만의 신작 장편

통념을 뒤집는 빼어난 상상력과 절묘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단숨에 주목받은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에 이어 첫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를 이야기의 미궁 속에 빠뜨리는 탁월한 재능”(한국일보문학상 심사평)을 펼쳐온 작가 최제훈이 『나비잠』 이후 5년 만에 신작 장편 『천사의 사슬』로 돌아왔다.

의문의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앞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사건의 열쇠를 쥔 그가 털어놓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수사를 혼란에 빠뜨리는 가운데, 소설의 안과 밖이 서로 얽혀들며 사건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속도감 넘치는 미스터리, 현실과 환상이 엇갈리는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이 긴장감을 자아내며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최제훈의 신작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 될 놀라운 미스터리.

“하긴 그런 얘길 누가 믿겠어요.
거짓말이거나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어느 쪽이 더 나쁠까요?”

소설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에 관한 짧은 신문 기사에서 시작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 고통에 몸부림친 흔적이 전혀 없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사체. 아무런 단서도 없어 보이던 사건 수사는 그러나 또다른 화재 현장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된 혼혈 소년 ‘마롤리’의 등장으로 본격적인 전개를 맞이한다. 스리랑카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 소년의 이름은 타밀어로 ‘메아리’라는 뜻. 그와 함께 다른 두 명의 희생자의 존재가 드러나고,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마롤리는 취조실에 앉아 담당 형사 ‘이석’에게 순순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찾아 떠난 여행, 불과 연금술, 최초의 인간과 불멸의 존재에 대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실인지 망상인지 모를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마롤리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곳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소설의 다른 한편에서, 최제훈의 특기이자 인장이라 할 겹겹의 이야기 장치가 매혹적인 구성의 정교함을 더한다. 불을 소재로 한 범죄소설을 구상하는 소설가, 그가 설계하는 대로 진행되는 소설 속의 이야기. 소설가를 둘러싼 현실의 세부가 소설 속에서 같은 듯 또 다르게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사건의 단서를 제공하고, 소설가가 현실에서 수집한 소재와 인물들이 그에 의해 상상의 숨결이 더해져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혹은, 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불쑥 튀어나온 인물이 저 스스로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연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자신이 예정한 필연적인 결말을 향해 이끌어가던 소설가 역시, 어느 시점에서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맞닥뜨린다. 말하자면 소설에는 두 가지 반전이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소설 쪽에서, 다른 하나는 소설가 쪽에서.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사실 하나의 반전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 너머, 꿈틀거리는 또다른 이야기
그 끝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비밀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추리소설로서 『천사의 사슬』의 서사를 날렵하게 이끌어나가는 최제훈의 솜씨는 그간 그에게 쏟아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과 물 흐르듯 매끄러운 전개가 서사에 속도감을 더하고, 치밀한 조사와 독서에서 비롯되었을 풍부한 디테일과 설정이 구성에 견고함을 부여하며 한순간도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 소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그마한 단서들이 낱낱의 기계 부속처럼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가며 또다른 진실을 만들어내는 반전은 잘 짜인 이야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쾌감이다. 그 끝에서 사건의 내막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듯 보이는) 결말을 맞이하는 경험은 말끔하고 산뜻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쾌감을 배가하는 것이 불과 연금술을 비롯한 흥미로운 모티프와 숱한 신화적 상징들이다. 이는 소설 전반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치밀하게 안배된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이자 복선, 나아가 종국에는 소설 자체를 다시 쓰이게 하는 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마롤리의 이야기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 그것을 쓰는 소설 속 소설가의 이야기, 서로 다른 층위에서 진행되는 듯 보이던 그 이야기들이 어느새 조금씩 서로의 경계를 침범해 들어갈 때, 그리하여 그 이야기들이 뒤얽혀 마침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이야기로 태어날 때, 숨겨진 복선처럼 그 모든 상징들이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장치였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천사의 사슬』이 품은 또다른 놀라움이다. 마치 대상을 미세하게 어그러지게 비추는 소설 속 거울처럼, 하나의 이야기는 같은 듯 또 다르게 반복되는 다른 이야기로 분열되고, 깨진 유릿조각들을 한데 녹이는 소설 속 도가니처럼,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녹아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이 서로 몸을 바꾸어 현실도 환상도 아닌, 진실도 거짓도 아닌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그럴 때 이야기는 누구의 것이 되는 것일까. 아니, 이야기는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결국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라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끝난 곳에서, 작가는 모든 의문을 뒤로하고 짐짓 짓궂은 농담만을 던질 뿐이다. “괜찮습니다. 그런 얘길 누가 믿겠어요.”(341쪽)

구매가격 : 9,500 원

오늘 같이 있어 (문학동네시인선 109)

도서정보 : 박상수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2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로맨틱, 메르헨틱, 판타스틱!
하고 싶었는데… 나, 왜, 울어?

문학동네시인선 109번째 시집으로 박상수 시인의 『오늘 같이 있어』를 펴낸다. 2006년 첫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2013년 두번째 시집『숙녀의 기분』 이후 오 년 만에 선보이는 세번째 시집이다. 평론집 『귀족 예절론』『너의 수만 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줄게』를 출간하며 현장 비평의 최전선에서 한국 시를 조망하는 연구자-비평가로도 간단없이 활동중인 박상수. 그에게 비평과 시작(詩作)이 별개의 작업은 아닐 것이나, 그의 시 속에서 우리는 한결 더 자유롭고, 과감하고, 풍부한 감정과 목소리로 말하는 시인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물론 여일하게 날카롭고, 다정하고, 재미있다!

신작 시집 『오늘 같이 있어』는 “일상과 아름다움의 단짠단짠 레시피”라는 해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짠내 나는 일상의 희극” 그리고 “달콤하고 아름다운 일인극”,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짠내 나는 일상의 희극”으로 말할 수 있을 시편들은 그의 두번째 시집『숙녀의 기분』 속 화자들의 몇 년 후, 열람실과 학생 식당을 전전하던 그녀들이 이제는 사회 초년생이 되어 직장과 회식 자리 등에서 맞닥뜨리는 폭력과 부조리의 세계와 대면한 희비극이다.

“야, 노래 안 부르냐? 왜 이렇게 처졌어?”(「휴일 연장 근무」)라고 소리치는 부장 아저씨, “아, 요즘 애들/ 정말 힘들다”(「이기주의자」)라고 내뱉고는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나가버리는 선배, “니가, 나를, 남자로 만들어”라고 말하는 “정신이 제대로 헐어버”린(「오작동」) 직장 상사, “나 떠나면 가습기랑 지압판 너 다 가져”란 나의 말에 “정말요? 언니♥”(「호러 퀸」) 하고 답장하는 곰살궂고 눈치 없는 후배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향해 한바탕 쏟아내거나 받아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얼토당토아니하고 가당치도 아니한 상황 속에 놓인 화자들은, 현실에서 유리된 채, 나 자신과도 유리된 채 소극의 무대 위에서 홀로 낙엽처럼 나뒹굴거나 그저 망연하여 혼잣말을 내뱉는다.


둘이서 칠 인분은 먹었나봐, 된장국에 공깃밥까지 먹으려다 그건 못했지 너는 젓가락을 덜덜 떨며 말했다 못살아, 왜 이것밖에 못 먹는 거야……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니까, 먹은 것보다 못 먹은 게 무한이라서 무한 리필인 건가, 나도 같이 울었어
_「무한 리필」 에서

뭐야, 어지러워 내 인격, 좀전까지 뛰어내릴 듯 나 흔들렸지, 사람들 다 퇴근한 사무실, 혼자서 일하다가, 십오층 창문을 내다보다, 신물이 올라왔었지 그냥 사는 거야 평생 이렇게, 소금맛 생강맛 치즈맛 몽땅 섞인 이상한 쓴물이, 흔들린다! 떨어진다!
_「천원숍」 에서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아닐 거야, 뭔가 근사한 것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거야”(「모르는 일」) 라고 생각하는 화자들은 “맞춰줄수록 증발되는 영혼”(「송별회」)의 끝을 붙잡다 어느 순간 기면증에 걸리듯, 퓨즈가 나가듯,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장미 정원은 너무 멀어서
오늘 안에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러니까, “오늘 같이 있어”

“달콤하고 아름다운 일인극”이라 부를 수 있을 시편들은 행갈이 없이, 마침표는 딱 한 번만 쓰이는 한 문단의 산문시 형태를 하고 있다. 대개 현실과는 먼 공간―밤의 궁전, 은하,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전나무가 있는 숲속 혹은 공간을 추측할 수 없는 사물과 계절로만 구성된, 현실의 ‘이곳’과는 최대한 먼 곳에서 나아간 곳에서 펼쳐지는 모놀로그. 『후르츠 캔디 버스』에서 만나보았던 시인 특유의 서정과 멜랑콜리의 연장선상이자 아기자기한 이미지들이 한껏 동원되는 세계이기도 하다. “삶도 사랑도 죽음도 미움도 알지 못한 채, 눈 내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잃어버린 시간들의 밤」)는 공간이자 현실의 내압과 외압에서 탈주하려 꿈꾸던 “이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그곳에서, 시인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조금은 슬픈 기분이 되고 말 것이다.

꿈을 꾸듯 꿈을 읊듯 이어지는 독백은 꿈처럼, 곧 끝나버릴 동화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고, “내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어디 간 걸까.(「왠지 궁금한 기분 1월」)”의 중요한 것, 을 얼핏 발견할 수 있는 시공간이지만, 이는 내 머릿속에서마저 이내 휘발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안타까움을 수반한다. 위트와 웃음이 넘치는 박상수 시 기저에 깔린 멜랑콜리의 기원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제정신으로 아름답기 힘들다는 것, 가까스로 보이는 아름다움마저 얼핏이거나 너무 짧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짠내 나는 희극과 아름다운 일인극이 서로 다른 장으로 분리되지 않고, 대중없이 교차되며 한 권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삶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라고.

언뜻 미각은 타인과 객관적으로 공유할 수 없는 독백의 영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맛을 상상하고 재현할 때만 아름다움의 공통 감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칸트는 이야기했다. 미감(taste)에서만 이기주의가 극복된다는 그의 언급을 바꿔 말하면,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만 함께 아름다워질 수 있다. 따라서 박상수 시집에 담긴 ‘먹방’은 원초적 욕망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이라기보다는, 나와 너의 아름다움을 공유하려는 조심스러운 속삭임에 가깝다. 일상은 외로운 희극에 불과하고 내가 꿈꾸는 아름다운 단막극 역시 금세 흩어질 테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시집에 담긴 “연극 한 편”을 들춰보는 것은 어떨까.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요즘 어때? 같이 밥 먹을까? 그렇게 말해주는 연극”(「모노 드라마」) 말이다.
_조대한(평론가), 해설 「일상의 단짠단짠 레시피」 에서

끝으로 그가 꾸준히 여성과 소녀라는 페르소나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이유를 ‘되어-보기’의 차원에서 읽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기득권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언어 대신, 약자이자 소수자의 목소리로 “반성 없는 세상을 반성하려”(「깊은 반성」)는 실천으로서의 글쓰기. 또한 누군가와 같이 있는 최선으로서의 ‘되기’. 일상의 희극과 아름다운 일인극이 한데 뒤섞이는 『오늘 같이 있어』. 삶이라는 무대 위 시인 박상수가 퍼포머로서 또 연출가로서 부려놓은 눈물나게 근사한 시극을 또 한번 만나볼 시간이다. 이 레몬 머랭 쿠키색 시집을 열어 맛보면 무슨 맛이 날지, 오늘 같이 읽어보자♥

구매가격 : 7,000 원

불안의 주파수

도서정보 : 구병모 김진나 송미경 오문세 진형민 최상희 최영희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2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수록 작품 소개]

「헬멧」 _진형민
건당 삼천 원. 수수료 떼면 이천오백 원.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오토바이로 미친 듯이 쏘면 은주와 나눌 커플링쯤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민이 시작한 배달 대행업체 아르바이트는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오토바이엔 사이드미러가 없고, 헬멧 쓰라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고, 밥 먹었냐고 밥 먹으라고 더 먹으라고 지겹도록 말하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기름값, 밥값, 오토바이값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위태롭게 이어지는 종민의 질주.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단추인간 보고서」 _최영희
지유의 귀밑에 두 개의 똑딱단추가 일렬로 돋아났다. 단추 사이의 피부는 슬쩍 벌어져 있었다. 마치 두 단추를 뜯으면 투둑, 허물을 벗을 수 있을 것처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기에 지유는 만만한 방과 후 영어 선생님 메건을 찾아간다. “기억해. 단추는 누가 뭐래도 네 거야.” 메건의 시시껄렁한 조언과 “뭐든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되니 잠적하진 마.” 반 친구 김루의 구태의연한 조언을 뒤로하고, 마침내 지유는 결심한다. 단추를 푸는 최초의 ‘단추인간’이 되기로…….

「유리의 세계」 _구병모
언제부터 이 세계의 모든 땅이 유리 블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검은 흙과 용암이 내려다보이는 투명한 대지 위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안전감을 느끼며 살아 왔다. 도로의 유리 네 장이 느닷없이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딛고 선 땅이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이 퍼져 나가며 완전해 보였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유리 공방의 수석 장인 라로는 사건을 해결하려 애쓰던 중 공방의 어린 소년 문에게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는데…….

「거울 속에 있다」 _오문세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이지 않는 건 그냥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그러니 잘생긴 나를 ‘엘프’라 부르며 모두가 찬양하는 거겠지. ‘트롤’이라 불리는 엄마 친구 아들의 삶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거울 너머 내 얼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호의적이기만 했던 세상이 악몽으로 변해 간다. 되찾아야만 한다. 거울 속에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을,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는 그 모습을.

「어디에도 있는」 _최상희
인상적인 데라곤 없는 P시의 기숙학교에 입학하게 된 건 부모님의 돌연한 귀농 결정 때문이다. 느닷없이 딸기 농사를 짓겠다니. 아빠의 말은 뜬구름을 잡는 듯 모호하기만 하다.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의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같이 쓰는 방은 마치 아무도 없는 듯 깔끔하고, 내가 남기는 흔적은 자꾸만 지워진다. 기숙학교에서, 단톡방에서 숫자로만 존재하던 친구들마저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춘다.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아니, 깎여 나갈 때야 자세히 보이는 손톱처럼, 어디에나 있는 회색 추리닝처럼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건 내가 아닐까?

「나딸_상실한 구역」 _김진나
선름은 모랑 아줌마의 집에 산다. 모랑 아줌마는 무척 친절하지만, 집에 선름이 발 디딜 곳은 없다. 작은 인형에도 원산지가 적혀 있는데 선름에게는 원산지가 없다. 어느 날, 선름은 모랑 아줌마의 손에 이끌려 방문한 나딸의 교도소에서 기묘한 흥분과 갈망을 느낀다. 지도에도 없는, 세상의 끝과 같은 곳, 나딸. 그곳 출신이라는 죄수에게서 선름이 느낀 감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선름은 자신의 전율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모랑 아줌마의 조카 주주와 만나기 시작한다.

「마법이 필요한 순간」 _송미경
별다른 꿈도 의욕도 없이 수능을 준비하던 은희는 우연히 들어간 마술 모임에서 작은 위안을 찾는다. 일찌감치 학교를 마치고 바리스타로 일하는 조지는 마술처럼 쓸모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은희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거리가 유난히 시끄럽던 어느 날, 은희가 ‘모든 시끄러운 것을 사라지게 하는’ 주문을 외우자 세계가 멈춰 버렸다. 오직 은희와, 고양이로 변한 조지만이 움직이는 채로 6년의 시간이 흐르는데……. 어떤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때, 그리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때. 우리에게 마법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구매가격 : 8,100 원

밀레니엄 5권 -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도서정보 :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2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용의자다
분명히 드러난 사실조차도
리스베트&미카엘, 계속되는 밀레니엄 시리즈

이만큼 충실한 속편을 상상하기란 힘들다. 부패한 권력자에게 거침없이 진실을 얘기하는 데 따라올 자가 없으며, 친구 사귀기를 싫어하는데 추종자는 많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 앞에서 참지 못하는 리스베트는 가장 드라마틱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리스베트의 상징인 용 문신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 라게르크란츠는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뛰어드는 데 성공했다. 밀레니엄 시리즈가 성공하기 전 세상을 떠나버린 스티그 라르손이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USA 투데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라게르크란츠의 손에서 거대한 포부를 품었다.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는 이 시리즈를 <스타워즈>와 <해리 포터>의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대담하고 환상적이다. 워싱턴 포스트

라게르크란츠는 이번에도 라르손의 뼈대를 충실히 잇는 데 성공했다. 이질적인 캐릭터들과 복잡한 서사 안에서도 라게르크란츠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용의자다. 분명히 드러난 사실조차도. 북리스트

라게르크란츠는 훌륭한 작품을 써냈으며 길을 잃는 법이 없다. 커커스 리뷰

복잡다단하고 환상적인 미스터리. 퍼블리셔스위클리


리스베트, 여자 교도소에 수감되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용 문신의 비밀

밀레니엄 시리즈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가 출간되었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기획하고 3권까지 집필한 스티그 라르손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시리즈를 계승할 공식 작가로 지정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밀레니엄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2017년 9월 출간)에 이어 발표한 신작이다.
시리즈의 새 시작을 알린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가 전작 못지않은 사랑을 받으며 계승작의 자격을 입증한 후,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역시 전 세계 40개국에 판권을 수출하며 성공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현재 시리즈는 통산 1억 부 판매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총 6권까지 예정되어 있다.
밀레니엄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에서는 시리즈의 주인공 리스베트의 등에 새겨진 거대한 용 문신의 비밀이 밝혀지는 가운데, 리스베트조차 몰랐던 새로운 음모와 인물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한층 복합적이고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추적이 펼쳐진다. 저자 라게르크란츠는 리스베트의 상징인 용 문신과 주요 인물들의 스토리를 의미심장하게 풀어냄과 동시에, 이슬람 사회의 여성 억압,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실태, 스웨덴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 등도 심도 있게 다루면서 밀레니엄 유니버스의 뼈대와 정신을 충실히 잇는 데 성공했다.
한편 2018년 11월 28일, 밀레니엄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국내 개봉 예정이다. 영화 <맨 인 더 다크>로 서스펜스의 새로운 거장이라 평가받은 페데 알바레즈가 연출을, 데이비드 핀처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밀레니엄 1권을 영화화한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루니 마라에 이어 클레어 포이(2017 골든 글로브 TV드라마 여우주연상, 2018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여우주연상)가 리스베트 역을 맡았다.

“먼저 진실을 찾는다, 그리고 복수한다”
_리스베트 자신조차 몰랐던 또다른 음모와 마침내 밝혀지는 용 문신의 비밀

리스베트는 밀레니엄 4권에서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재산을 침해했다는 죄목으로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그녀에게 악감정을 품은 스톡홀름 검찰청 리샤르드 검사의 억지 기소 때문에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리스베트의 이야기로 5권은 시작된다.

리스베트가 교도소에 들어간 건 엄청난 사건이었다. 상황도 불리했지만 솔직히 그녀도 유죄판결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이 일을 과도기 정도로 여겼고, 전부터도 감옥에 있으나 다른 곳에 있으나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_본문 15p

스웨덴 사회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리스베트는 악명 높은 여성 범죄자들 속에서 위협과 지지를 동시에 받으며 긴장감 팽팽한 수감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어린 시절 그녀를 두고 ‘기록소’라는 조직에서 벌인 또다른 음모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두 가지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 리스베트를 찾아와 온갖 검사를 받게 한 ‘목에 반점이 있는 여자’와 여섯 살의 나이로 가출을 감행한 그날…… 여전히 남아 있던 과거에 대한 의구심을 이제는 청산할 때라고 직감한 리스베트가 사진기억력과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발휘해 교도소 안에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 용 문신…… 늘 물어보고 싶었어. 그게 너에게 왜 그토록 중요하지?” / “엄마와 관계 있는 거예요.” / “앙네타?” / “내가 어렸을 때죠. 아마 여섯 살 때쯤. 집에서 도망쳐 나왔잖아요.” / “아, 그 얘기를 들으니 생각나네. 그때 너희 집을 찾아오던 여자가 있었어, 그렇지? 목에 반점 같은 게 있는 여자.” / “맞아요. 목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요.” / “용이 내뿜는 뜨거운 불에 낙인이라도 찍힌 것처럼?” _프롤로그

더불어 음모를 숨기려는 조직과 진실을 밝히려는 인물들의 추격전 속에서 리스베트가 냉정한 복수를 계획하는 사이, 리스베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변호사 홀게르의 가슴 뭉클한 사연과 리스베트의 상징인 거대한 용 문신의 비밀까지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남겼던 전작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왜 남자들이 종교를 세우면 항상 여자들이 고통을 받는 걸까?”
_이슬람 명예범죄의 희생자를 구하기 위해 나선 리스베트

리스베트는 교도소 안에서 과거의 음모를 추적하는 한편, 이슬람교 집안의 억압을 견디다 못해 오빠를 죽이고 수감된 후에도 다른 형제들에게 끊임없이 협박당하는 여성 ‘파리아’를 구하고자 한다. 활발하고 진취적인 한 여성의 삶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학대당하며 망가져가는 모습은 이슬람의 명예범죄와 여성 억압 문제의 심각성을 통감하게 한다.

그들은 파리아를 강제로 차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 짐승처럼 취급했다. 처음 며칠은 손목을 결박당하고 입에 테이프가 붙여졌으며 가슴에 창녀라고 써붙인 채 지내야 했다. 아메드와 바시르는 파리아를 때리고 침을 뱉었고,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하게 했다. _본문 329p

리스베트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엄마를 구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무관심한 어른들과 공권력 앞에서 좌절만을 경험한 끝에 자신만의 윤리감각을 구축한 성인이 되어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에게는 반드시 잔혹한 복수의 맛을 보여준다. 뿌리깊은 여성혐오, 여성인신매매, 성매매, 직장 내 성희롱 등의 문제를 다룬 전작들에 이어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에서는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을 리스베트가 처단함으로써 여성을 향한 편협과 억압의 도구가 된 종교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래의 전쟁, 돈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
_미카엘의 탐사망에 포착된 새로운 인물 레오의 미스터리

탐사기자 미카엘은 교도소에 수감된 리스베트에게 ‘아무런 선입견 없이 레오라는 인물을 조사해달라’는 수수께끼 같은 부탁을 받고 추적에 나선다. 부탁 따윈 하지 않는 리스베트에게 놀란 마음도 잠시, 미카엘은 스웨덴의 유명 금융인이자 명문가 후계자인 레오를 조사하면서 그의 태생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리스베트를 노렸던 기록소라는 조직과도 연결된 인물임을 알게 되는 동시에, 인종주의와 유사과학 문제까지 얽힌 거대 스캔들의 실마리를 포착한다.
리스베트조차 몰랐던 과거의 음모, 그리고 레오라는 인물을 둘러싼 미스터리, 이 두 서사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전개되는 와중에 라게르크란츠는 깊이와 속도 모두를 성공적으로 견인하면서 또하나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희망과 두려움이 지배하는 이 시장에서 ‘사실상’이나 ‘실제로’ 같은 표현들은 중요한 말이라고 할 수 없죠. 이 사건에서 심각한 점은 우리가 디지털 세계 안 자본의 존재 자체를 한동안 의심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 즉 해킹 공격이 노린 건 돈 그 자체라기보다 우리의 믿음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 어쩌면 미래의 전쟁은 바로 이런 식으로 시작될지도 몰라요. 돈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_본문 123p

밀레니엄 시리즈는 탐사기자 미카엘을 통해 언론 및 경제를 비롯해 중요한 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해왔다.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에서는 스웨덴 은행들의 고객 계좌 잔고가 0이 되었다 회복되는 의문의 금융사고와 유명 금융인답지 않게 우울하고 회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레오라는 인물을 통해 돈의 실제성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금융사고를 둘러싸고 빠르게 확산되는 가짜 뉴스들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정 능력을 상실해가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구매가격 : 10,9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