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107)

이수정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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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107 이수정 시집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장장 17년이라는 장고 끝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낯설거나 거친 언어가 아니라 오래도록 다듬은 자갈처럼 매끄러운 빛을 내는 맑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살들을 덜어내고, 말들을 덜어내고 나니 가장 자연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남았다고 시인을 대변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언어들을 서정을 노래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과 태어남을 반복하며 삶, 혹은 삶 바깥의 것을 시라는 만화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수면처럼 끊임없이 물결쳐 자신을 숨기지만 시인은 기어이 그 안을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저자소개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1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목차소개

시인의 말

심해에 내리는 눈
달이 뜨고 진다고
별의 심장이었던,
시계 악기 벌레 심장
벼루
음지식물
히말라야를 넘어야 하는 마지막 밤
일그러진 하루
북풍 속에서의 잠
적막한 음계
어떤 저녁
가을 벚나무
세수
저물녘의 고유 진동수
꽃 지다
키 작은 사람들의 가을

집이 나를 밀어낸다
억새
바다는 보이지 않고
겨울 아침에
마른 날의 꿈
비곗덩어리
아스피린 먹는 사람
열쇠공을 위하여
시계가 소리도 없이
희고 긴 이빨을 가진,
재밌는 것은 무거우니까
서랍을 봉함
먼지다듬이만이 기억했다
기억의 DNA는 나와 일치하지 않는다
스파이웨어
날개 가득 커다란 눈을 그리고
이차원의 수행
희망은 사납다 2
절망은 옹기종기
산맥은 빛난다
머루
구름 먹는 밤
바람의 목줄을 풀어주다
희망은 사납다
로드킬
억새가 흔들려서
시간의 띠를 뒤집어 추억에 붙여놓은 건 누구인가
연필

자동 이체 된 봄이 오는지, 가는지
낭가파르바트
물음표가 방울방울
가방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콘택트
너를 기다리던 별 하나
옹이
기다림
기다림 2
미루나무
백담사
성에
청어
손을 뻗는 참나무
기왓장 어깃장
응달로만 걸었다
갈림길
사라진
양파
슬픔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수면 깨우기
겨울 강
황태
난곡(難谷)
풍자를 금하라

해설 | 나를 찾는 긴 여정 위, "흰 재의 시학" | 나민애(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문학동네 시인선 107 이수정 시집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장장 17년이라는 장고 끝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낯설거나 거친 언어가 아니라 오래도록 다듬은 자갈처럼 매끄러운 빛을 내는 맑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살들을 덜어내고, 말들을 덜어내고 나니 가장 자연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남았다고 시인을 대변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언어들을 서정을 노래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네 번 태어난 기억이 있다”는 시인의 말처럼, 죽음과 태어남을 반복하며 삶, 혹은 삶 바깥의 것을 시라는 만화경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흔들리는 수면처럼 끊임없이 물결쳐 자신을 숨기지만 시인은 기어이 그 안을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지 않는다. 수차례에 걸친 재탄생처럼 그의 시 속에는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바다엔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는데
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 하는데
-「심해에 내리는 눈」 부분

시인은 심해를 통해 천천히 가라앉는 이미지와 수평선 너머에 대한 갈망을 통해 정적(靜的)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재가 되어버린 생의 부스러기들을 찬란하게 묘사하면서 폐허 위에 새 세계가 얹어지는 모습, 삶과 삶 바깥 사이에 있는 존재의 경계를 포착해낸다.
시인은 부서지는 것들에서도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사물들의 잔류 혹은 잔재에서도 수천 조각의 빛을 발견하는 시인의 마음은,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시인의 눈을 통해 부서지고 재조립되는 사물들은 고유한 생에의 감각으로 번역된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지는 수면에서 달 지느러미들이 “일제히 물을 차고 올라 잘게 부서질” 때 밤새 “심해어들을 몰고”(「달이 뜨고 진다고」) 오는 바다는 그래서 자기 자신만의 삶―그리고 세계―를 갖게 된다.
뜨고 지는 수천 개의 달을 볼 수 있는 마음이어서일까, 그 부서짐을 포착할 눈을 가져서일까, 이수정의 시 세계는 결코 어둡지 않다. 그의 번역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생(生)은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품고 있다. 그래서 마치 무한히 펼쳐진 마음속 세계를 돌아다니고 돌아와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들려주는 듯한 이 시집은 존재의 민낯을 확인하게 하면서도 읽는 이의 내면을 따뜻하게 한다. 이 역설적인 온도는 아마도 이수정이 제시하고 싶은 세계의 온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 안에서 시인이 내놓는 시어들과 함께 여행할 우리는 (어쩌면) 여러 차례 죽음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태어남이야말로 가장 열렬히 존재하는 방식이 아니었던가. 재는 가장 뜨거운 열렬함 이후에 가장 부드러운 빛을 품게 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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