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전 3분 내 마음 보살피기

도서정보 : 바바라 골든 | 2018-03-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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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난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답답하다 건망증이 늘었다. 잠을 못 잔다 등 우리의 고민뒤에는 병들어가는 병이 있다. 모르는 사이 병들어 가고 있는 당신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이 책은 잠들기 전에 한 구절을 읽음으로써 마음이 편안하고 시원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처투성이 마음을 위로하고 평온을 불어넣어줄 책“내일이 바뀌는 마음 긍정 엔돌핀을 만나다.”화가 난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답답하다 건망증이 늘었다. 잠을 못 잔다 조그만 일에 잘 흥분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피해망상이 심하다 스트레스가 심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웃음이 살아졌다 삶의 의욕이 없다. ......왜 그럴까요? 모르는 사이 병들어 가고 있는 당신 마음에 있습니다.지금 지쳐가는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세요.잠들기 전에 한 구절만 읽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시원해집니다.“세상은 모든 사람을 부러뜨린다. 그러고 나면 그 부러진 곳이 더욱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을 깨닫기 위해 숱한 고민과 상실 고난을 겪는다. 그 역경 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쓰러지지 않으려면 인생의 여러 장애와 시련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이 책은 당신이 거친 인생의 풍랑 속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지혜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 건전한 자기애와 자부심 자존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만약 지금 당신이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책 속에 제시된 지혜와 유머를 자주 읽어보라. 특별히 힘든 시기에 많이 읽는다고 할지라도 부작용은 전혀 없을 것이다. 당신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언제든 이 한 권의 책이 살아 있는 지혜의 메시지가 되어 주리라. 단 읽은 사항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도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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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개발과 상담, 제11판

도서정보 : Duane Brown | 2018-03-0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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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생활은 한 인간의 많은 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중요한 생애 역할 중 한 가지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이자 꿈으로 대변될 수 있는 커리어의 목표에 대한 결정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청소년과 대학생은 물론 성인들의 주된 고민사항이었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환경은 빠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직업들이 탄생하고 소멸하고 있으며, 4차 혁명으로 대변되는 급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는 단기적인 전망과 현재에 입각한 최선의 직업이나 커리어를 결정하려는 관점보다는 변화에 적응하며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역량과 준비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자신의 커리어 발달에 대한 통찰과 이해는 물론 직업 정보를 효과적으로 탐색하고 보유하며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법을 습득하고, 자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5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커리어 상담 및 직업심리학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을 다룬다. 두 번째는 커리어 상담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직업 정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다양한 집단의 내담자들이 고민하는 이슈와 커리어 발달을 위한 올바른 정보의 활용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세 번째는 미국 내에서 적용되는 커리어 발달과 글로벌 시대의 직무 탐색을 위한 다양한 접근과 관련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네 번째는 교육 장면에서 활용 가능한 커리어 개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유치원 및 초등학교부터 정부 및 기업 내에서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커리어 발달 단계와 집단의 특성을 고려해서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접하게 될 직업 구조와 노동시장의 예측에 대해 간단히 다루고 있다.

구매가격 : 16,100 원

난민 교육의 어머니 사키나 야쿠비

도서정보 : 선학평화상재단 | 2018-03-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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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난민 교육에 평생을 헌신하며 난민 재정착의 근본 해법을 제시하다 ‘난민 교육의 어머니’ 사키나 야쿠비 박사의 선학평화상 수상 기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공부한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자국의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을 위해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되찾고 국가의 재건을 돕는 일에 목숨을 바쳐 헌신해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세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난민이 처한 문제를 ‘교육’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애쓴 공로자이다. 선학평화상위원회는 매년 인류 공동의 운명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이끈 인물들을 선정하여 시상을 하며 2017년 2월 제2회 선학평화상 시상식에서는 난민 위기 해결을 위한 공로로 아프간 여성교육가인 사키나 야쿠비 박사와 이탈리아 외과의사인 지노 스트라다 박사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특히 사키나 야쿠비 박사는 난민의 미래를 위해서는 오로지 교육만이 해법이라는 신념으로 1995년에 아프간학습연구소(AIL)를 설립하여 21년간 1 400만 명의 난민에게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공한 업적이 높이 평가되었다.

구매가격 : 8,800 원

치료받을 권리 지켜낸 영웅 지노 스트라다

도서정보 : 선학평화상재단 | 2018-03-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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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비극의 최전선에서 존엄한 인권 수호에 앞장서다 ‘전쟁터의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 박사의 선학평화상 수상 기념서 지노 스트라다 박사는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로 28년간 중동 및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난민들에게 긴급 의료구호를 펼친 인도주의자이다. 그는 1994년 국제 긴급의료단체인 ‘이머전시(EMERGENCY)’를 설립하여 전 세계에서 의료 여건이 가장 취약한 17개국에서 60여 개가 넘은 긴급 의료시설을 설립 운영하며 800만여 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선학평화상위원회는 매년 인류 공동의 운명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이끈 인물들을 선정하여 시상을 하며 2017년 2월 제2회 선학평화상 시상식에서는 난민 위기 해결을 위한 공로로 이탈리아 외과의사인 지노 스트라다 박사와 아프간 여성교육가인 사키나 야쿠비 박사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특히 지노 스트라다 박사는 인간의 ‘치료받을 권리와 양도할 수 없는 인류 보편의 인권’이라는 숭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세계 최극빈자들에게 질 높은 치료를 제공하여 인권을 드높였으며 전쟁 폐지와 반전 캠페인 등에 앞장선 업적이 높이 평가되어 제2회 선학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구매가격 : 8,800 원

신이 된 시장

도서정보 : 하비 콕스 | 2018-03-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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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10대 신학자 하비 콕스,
신의 지위를 차지한 현대 시장경제의 부끄러운 민낯을
종교사와 경제사, 신학과 경제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최근 한국 대형 교회의 세습이 종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되면서, 종교의 세속화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커져가고 있다. 종교는 점차 세속화되는 반면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새로운 종교는 갈수록 그 힘을 확장하고 있다. 바로 ‘시장신(The Market as God)’을 새로운 신으로 숭배하는 ‘시장경제’라는 종교다. ‘시장신’의 새로운 사제들은 ‘시장’을 ‘전지’하고 ‘전능’하며 ‘편재’하는 신이라 주장한다. ‘시장신’은 독자적인 교의와 예언자, 복음의 열정을 완비한 채 전 세계를 자신의 생활방식으로 개종시킨다.

종교적 가치를 설파하는 교회가 세속화되고, 세속의 상징이었던 시장이 신격화되고 있는 지금, 하버드대 명예교수이자, 뉴욕타임스 선정 20세기 10대 신학자인 하비 콕스의 새 책 《신이 된 시장: 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The Market as God)》은 ‘신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시장을 종교사와 경제사, 신학과 경제학을 통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점 거대화되고 기업화되어가는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선으로 돌아보고 있다.

신학과 경제학의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불평등을 들여다보다
하비 콕스는 신학과 경제학이라는 두 가지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신학자로서 하비 콕스는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은 물론 다양한 기독교 서적과 연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최근 문서 등을 검토하면서 교회가 어떻게 부를 획득해왔는지, 예수의 가르침과 성서에서 어떻게 부의 과도한 축적을 비판하고 부의 정기적인 재분배를 시도했는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의 불평등에 대해 어떤 비판을 해왔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분석한다.

또한 가난과 소외, 인종차별의 현장을 몸소 체험하고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의 역할을 강조해온 민중 신학자로서 하비 콕스는 점차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경제학과 경제사를 검토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비 콕스는 현대 사회에서 ‘시장’이 얼마나 신적인 존재에 도달했는지, ‘시장’의 전지전능함을 숭배하는 시선이 우리 곁에 얼마나 펴져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하느님이 우리의 모든 소원을 아시는 것”처럼 시장은 우리 마음속 가장 깊숙한 비밀과 은밀한 욕망을 안다. 이제 인간에게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전통적인 종교의 신이 아니라 무정한 얼굴을 한 ‘시장’이다. 근대의 인간은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시장신’을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비 콕스는 ‘신이 되어버린 시장’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분석하고, 시장이 종교에서 차용한 다양한 아우라를 걷어냄으로써 ‘시장’이 사회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라는 적절한 역할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거대 은행과 초대형 교회, 성장의 질병을 앓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개신교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발전은 ‘초대형 교회’라는 새로운 회중 생활이 등장한 점이다. 하비 콕스는 이 책에서 한국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한 경험을 곱씹어보면서 “고무되거나 감동을 받았다기보다 일시적이나마 나 자신이 어떤 거대한 존재, 그 거대함 때문에 의미심장한 존재의 일부라는 사실에 경외감이 들었다”라고 말한다(142쪽).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초대형 교회가 ‘새로운 종교 조직 형태’를 띤다고 말한다. 기업 모델을 바탕으로 담임 목사는 최고경영자 역할을 하고, 초대형 교회끼리 서로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초대형 교회들은 “혹독하게 성장을 강조한다”(144쪽)는 점에서 기업과 가장 흡사하다.

하비 콕스는 초대형 교회와 오늘날 시장경제의 ‘거대 은행’을 비교한다. 오늘날 거대 은행은 ‘몸집을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월 스트리트의 신성한 주문을 받아들였으며, ‘시장’이 정의하는 기풍과 성장을 훌륭한 목표로 삼으며, 자기 존재를 추동하는 생의 약동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하비 콕스는 ‘성장염’을 앓고 있는 두 거대 조직이 우리의 유한한 지구에 커다란 위협이라는 사실을 제기한다(8장).

‘돈을 따라’의 렌즈로 읽는 교회사
하비 콕스는 하느님을 모시는 교회가 세속의 재부에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교회사와 신학 논쟁을 통해 따라간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이 부의 집중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확인한다. 4세기에 벌어진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신학 논쟁은 교회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재부를 어떻게 인정하고 사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한 펠라기우스가 패배해 이단으로 몰락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가 최종 승리하는 과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파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재부를 이용했다(165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부는 일종의 ‘은사(charisma)’, 즉 하느님이 준 신비로운 선물”이며 그 재부가 어디에서 왔느냐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파와 펠라기우스파의 논쟁에서 재부와 세속 권력이 수행한 커다란 역할은, 이후 벌어진 표면상 신학적인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논쟁에서도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중세 후기 수도원운동과 이른바 ‘이단’ 그룹이 부상한 이면에는 교회의 재부가 커지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다. 종교개혁을 초래한 면벌부 판매도 마찬가지다. 하비 콕스는 기독교 사상과 ‘시장’의 가치가 서구 종교사의 궤적 전체에 존재했다고 말한다.

시장은 어떻게 종교를 ‘벤치마킹’ 했나
지난 몇 세기 동안 ‘시장’과 그 메시지가 확대된 역사를 잠깐 보기만 해도 기독교 운동의 확산과 유사성이 드러난다. 복음의 전도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처럼, 시장도 끊임없이 확대해나갔다. 시장은 초기 단계부터 영적인 영역에서 단어와 상징을 빌려왔다. 모든 종교는 처음 등장한 어스레한 과거부터 언제나 앞선 종교의 여러 양상을 빌리고 훔치고 개조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업도 앞선 종교들과 같은 일을 해왔다.

예를 들어 코티(Coty)가 소유한 뷰티 브랜드 필로소피(Philosophy)는 독창적인 제품의 이름을 지을 때 수분 크림은 ‘호프 인 어 자(Hope in a Jar: 병 속의 희망)’, 핸드크림은 ‘핸즈 오브 호프(Hands of Hope: 희망의 손)’ 등으로 신약성서의 핵심적인 용어(희망)를 사용했다. 또한 기업의 주요한 마케팅 전략이 된 기념일도 종교의 축일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장은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존 종교의 축일을 이용해 마케팅 도구로 삼았으며, 심지어는 자신들의 마케팅을 위해 새로운 축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고해성사를 제도화해 사람들이 자기 양심을 탐색하고 용서받는 데 따르는 위안을 경험하게 하는 목적 외에도, 더 많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사람들을 자신의 영적 권력 아래 더 확실하게 묶어두려고 하는 것처럼(274쪽), 시장도 마케팅을 통해 사람들은 은밀한 욕망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고 불어넣으려고 한다. 종교는 최선의 경우 영의 결실(사랑, 기쁨, 인내, 친절, 선량)을 배양한다. 반면 간혹 외국인과 소수자 혐오나 편협한 신앙을 조장하기도 한다. 시장은 최선의 경우 창의성과 위험 감수, 기업가 정신 등의 습관을 장려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낭비벽과 어리석음, 탐욕을 고취했다. 시장의 끝없는 성장과 팽창 추구 때문에 지구는 유례없는 기후 재앙을 목전에 두었다. 하비 콕스는 시장이 종교를 벤치마킹한 것들을 검토함으로써, 시장이 종교와 얼마나 유사한지, 시장의 신격화를 통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더 나아가 시장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하비 콕스,
금융이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하다
하비 콕스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언에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하비 콕스가 금융이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근원부터 돌아본 계기는 2008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금융 위기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부패한 교회의 면벌부 판매를 둘러싸고 일어났다면, ‘시장’의 개혁은 ‘시장신’의 부패와 무절제가 낳은 경제 위기를 계기로 시작된다. 하비 콕스는 종교의 언어를 빌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유비를 철두철미하게 밀어붙이고, 여러 역사적인 증거를 발굴하면서, 아우라에 둘러싸여 있던 시장의 민낯을 드러낸다. 시장은 ‘유사종교’이며, 그릇된 우상일 뿐이다. 하비 콕스는 ‘시장’을 탈신격화해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무엇보다 ‘인간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신학과 경제학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펼쳐지는 노신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은 종교와 시장의 현재성과 진정한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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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도서정보 : 이영훈 | 2018-03-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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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 나라」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환상의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아주 좋다, 멋지다, fantastic하다, 그런 뜻의 환상이 아니다. 허상이다, 착각이다, illusory하다, 그런 뜻의 환상이다.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데, 따져보니 근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거짓말로 판명된다, 그런 것이 내가 말하는 환상이다.
환상은 인간들을 큰 신뢰와 협동으로 이끌 수 없다. 환상이 빚은 역사와 현실의 간격은 정신과 육체의 분열을 야기한다. 환상은 그 자체로 반과학이다. 환상은 직시되어야 하며, 적절한 대안과 더불어 극복되어야 한다. 신생 대한민국의 지식인이 감당할 시대적 과제였다. 지난 70년의 건국사를 돌아볼 때 대학을 비롯한 지식사회가 그에 제대로 부응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식사회는 환상을 조장하는 역할에 골몰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이 나라는 갖가지 환상의 굴레에 심하게 옥죄인 가운데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안으로는 한 국민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이념의 대립이 심한 가운데 밖으로는 우방과 공연한 마찰을 일삼고 있다.
2016년 5월부터 3개월간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환상의 나라’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 것은 그 같은 위기감에서였다. 모두 12개 주제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컸던 순서로 몇 개를 나열하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나라는 누가 팔았는가’ ‘우리 민족, 그 불길함’ ‘위안소의 여인들’ ‘환상의 통일론’ 등이다. 지금의 이 책은 제1강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강의노트를 학술서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분량과 형식으로 확장한 것이다. 나머지 강의에 대해서도 하나씩 같은 식으로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 세종과 노비제
17세기 중엽 조선왕조의 인구는 대략 1,200만을 헤아렸다. 그중의 30~40%, 그러니까 360~480만의 인구가 노비 신분이었다. 노비가 그렇게나 많았던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김없는 사실이다. 1606년에 만들어진 경상도 산음현과 단성현의 호적이 전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랜 호적이다. 산음현 호적에서는 인구의 42%가 노비 신분이다. 단성현 호적에서는 64%이다. 1609년에 만들어진 울산부 호적이 있다. 거기서 노비의 인구 비중은 47%이다. 이상이 17세기 초라면, 17세기 말에는 1690년에 만들어진 대구부 호적이 있다. 거기서는 인구의 43%가 노비이다. 이처럼 17세기 경상도의 경우, 호적에 등록된 인구의 42~64%가 노비였다.
경상도 외의 호적으로서는 1663년에 만들어진 한성부 호적을 들 수 있다. 오늘날의 서울 아현동, 가좌동, 합정동 일대의 호적이다. 호적에 등록된 인구는 총 2,374명인데, 그 가운데 1,729명, 곧 73%가 노비이다.
당시 한성부의 인구는 대략 20만이었다. 그중의 절반은 4대문 안의 성내에서, 나머지 절반은 4대문 밖의 성저城底에서 살았다. 위 호적은 17세기 중엽 성저 인구의 근 4분의 3이 노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성부, 곧 서울은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적 양반가문이 모여 사는 곳이다.
17세기 서울은 한 마디로 노비들이 바글바글하는 도시였다. 15, 16세기로 올라가면 전하는 호적이 없기 때문에 노비의 인구 비중을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17세기보다 많았음은 거의 확실하다.『왕조실록』에 나오는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15세기 말 총인구 900만 가운데 적어도 40%는 노비였다.
15~16세기 서울에 거주한 양반관료는 아무리 미관말직이라도 100명의 노비는 소유하였다. 관직이 높아지면 그 수가 더욱 많아져 수백 명쯤은 보통이었다. 현재 전하는 분재기分財記 가운데 노비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은 정3품 관직의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한 이맹현李孟賢이란 사람인데, 총 758명에 달하였다. 그보다 품계가 높은 판서나 정승 급의 고관대작이면 1천 명을 넘기기 어렵지 않았다. 왕족으로 올라가면 아마도 수천 명이었을 것이다. 알려진 최대 규모는 세종의 제5왕자인 광평대군廣平大君과 제8왕자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이다. 『왕조실록』은 이 두 왕자의 노비가 각각 1만 명을 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려왕조의 멸망과 조선왕조의 성립은 공동체사회에서 신분제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하였다. 조선왕조를 연 정치세력은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처음에는 노비인구의 확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1401년 태종은 노비와 양인과의 결혼을 전면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 노비는 노奴와 비婢의 결혼만으로 단순 재생될 뿐이라는 노비제 봉쇄정책을 폈다.
1418년 8월 세종의 시대가 열렸다. 1420년 9월 예조판서 허조許稠는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경우 이를 수리하지 말고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허조는 중국 당의 태종이 노가 주인을 고소할 경우 설령 그 내용이 반역에 관한 것이라도 이를 수리하지 않고 노를 참해버린 고사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 같은 허조의 주장에 세종은 동의하였다.
조선의 양반관료들은 노비의 주인 고소가 인륜의 명분에서 정당할 수도 있음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왕조실록』을 보면 노비의 고소를 일체 교형으로 다스리자는 신하들의 주장에 세종은 역시 순순히 동의하였다.
조선 노비제의 확립에 있어서 1422년의 노비고소금지법奴婢告訴禁止法 제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노예의 진정한 요건은 법 능력의 상실에 있다. 이를 가리켜 올란도 패터슨은 ‘사회적 죽음Social Death’이라 하였다. 노예는 살아 있지만 실은 죽은 자와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불법 행위에 대해 맞설 권리가 없고 자신을 보호해줄 공동체를 상실한 상태가 노예의 본질이다.
조선왕조에 들어 노비 인구가 크게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세종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후 노비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변하였다. 노비를 함부로 죽여도 큰 죄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노비 가격이 고려시대에 비해 5배나 뛰었다. 태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비가 양인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을 양인 신분으로 삼았다. 세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으며, 노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렸다. 세종은 노비를 정상의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 세종은 자주 남편을 바꾼다는 편견에서 비의 정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종이 비의 소생을 모두 노비로 잡은 것에는 이 같은 노비관이 작용하였다. 이후 노비 인구가 부쩍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사에서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렸다.

▶ 세종과 기생제
1419년 세종 1년에 평안감사가 기생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건의하였다. 하나는 기생으로 인해 관리들의 풍기가 문란하니 관리의 기생 간음을 금하자는 것이다. 그는 한 기생을 여러 관리가 돌아가며 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평안감사의 건의는 여러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에 의해 채택되었다.
다른 하나의 건의는 기생이 모자라니 확충하자는 것이다. 그에 대해 세종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후 역사는 그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우선 각종 비로부터 기생을 보충하거나 그렇게 하자고 했으니 기생은 사실상 비와 동일한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은 교방의 기생은 정원이 230명이며 각 군현의 관비를 3년간 뽑아올려 충당한다고 규정하였다.
흔히들 기생을 춤추고 노래하고 성 접대를 하는 직업인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의 기생은 그러한 역을 국가로부터 강요받은 관비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원 기생의 딸을 기생으로 삼자고 했으니 기생은 그 신분을 세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실제 세종 10년이면 고급 관료의 기첩이라도 그 자녀가 천역을 면치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1431년 1월이면 조선 기생제의 성립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조치가 내려졌다. 세종은 각 고을의 창기가 낳은 자식은 공사公私의 비가 남편을 자주 갈아치우는 예에 준하여 천인으로 삼자는 형조의 건의를 수락하였다. 여기서 기생의 딸을 기생으로, 기생의 아들을 관노로 삼는 신분세습의 율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뒤이어 1431년 11월 세종은 관비가 양인 남자와 낳은 자식도 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기생의 예에 준하여 모두 천인으로 돌리자는 건의에 찬성하였다.
1432년 3월 조선 노비제의 기틀을 놓은 종모법從母法의 성립은 1년 2개월 전 기생을 대상으로 한 종모법의 성립을 그 출발로 하였다. 따지고 보면 조선 기생제야말로 조선 노비제의 중핵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정부와 지방관아에는 춤추고 노래하고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생 신분의 여인들이 있었다. 기생의 신분은 딸에게 세습되었다. 특정 여인에게 성 접대의 역을 강요하고 세습시킨 다른 나라의 예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기생제는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닌 개성적 특질을 상징하고 있다. 그 기생제를 사실상 창출한 군왕이 다름아닌 세종이었다. 기생의 딸은 기생이라는 법은 세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기생은 관비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이전 고려시대만 해도 기생은 관비가 아니었다. 나아가 세종은 국경지대의 고을에 군사를 접대할 기생을 설치하였다. 이후 전국의 각 군현에 수십 명씩의 기생이 배치되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

▶ 세종과 사대주의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천제天祭는 천자의 고유한 예로서 제후는 이를 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신하들로부터 제기되었다. 태조와 태종은 그에 구애되지 않고 천제를 거행하였다. 1419년 세종 1년에 가뭄이 심하였다. 변계량이 원구단에서 천제를 거행할 것을 청하였다. 세종은 “참람한 예는 행함이 불가하다.”고 답하였다. 천제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계량이 수천 년 동안 행해온 예를 폐함은 부당하며, 더구나 조선은 강토가 수천 리로써 중국 내의 백리 제후와 비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에 대해 세종은 “어찌 강토가 수천 리라 하여 천자의 예를 분수없이 행하리오.” 하면서 다시 거절하였다. 이에 변계량은 심한 가뭄을 맞아 제후가 하늘에 제사를 드림이 무슨 잘못인가라는 예의 임시변통론을 내세웠다. 이에 세종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천제를 거행하였다. 막 등극한 22세의 청년 세종은 나이 50세의 중신 변계량을 이길 수 없었다.
세종은 참을성 있게 그의 시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성격이 온유하고, 중신을 예우하고, 서둘지 않음이 세종의 훌륭한 인품이다. 그가 치세 당대에 신하들로부터 성군으로 칭송을 받은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천제는 제후가 행할 수 없는 참람한 예라는 세종의 소신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실행을 보았다. 다음 해 1439년에 큰 가뭄이 들었다. 친히 원구단에 나가 천제를 거행하라는 상소가 있었지만 세종은 거절하였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왕조국가에 있어서 천제는 종묘와 함께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최고 수준의 의례였다. 천제는 하늘과의 관계에서, 종묘는 조상신과의 관계에서 국왕의 절대적 권위를 대변하였다. 1443년 천제가 최종 폐지됨으로써 조선왕조의 국가체제는 제후국의 그것으로 충실히 정비되었다.
만국공법 이전의 전근대 세계에서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에 굴종하는 것은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는 고육지책이다. 사대는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에게 정략적 관계이다. 하는 자는 속마음을 숨기고 받는 자는 상대를 의심한다. 조선 태종조까지의 사대가 그러하였다. 양국 간에는 군사적 긴장이 잠재하였다. 오고가는 사신은 상대국의 정치를 염탐하였다. 세종조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바뀐다. 『세종실록』을 읽으면 그 점을 확실히 느낀다. 한마디로 세종은 지성으로 사대하였다.
고려왕조는 군사국가였다. 그 점에서 도덕국가인 조선왕조와 달랐다. 고려는 3만여 명의 중앙군을 보유하였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그로부터 세를 걷어 살았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니 직업 군인으로서 전투력이 강하였다. 군사국가로서 고려는 전쟁에 장수를 파견하는 출정의出征儀라는 군례를 행하였다. 출정이 결정되면 우선 사직단에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 이를 고한다. 이어서 대궐의 뜰에서 출정군의 원수에게 왕이 부월斧?을 내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 같은 출정의는 천자의 예에 속한다. 부월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였다. 부월을 받은 장수는 대궐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출정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할 권한을 갖는다. 군령을 어긴 휘하 장수와 사졸을 재량으로 처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제후국도 출정의를 행했는데, 부월을 내리는 의식은 없었다. 제후에게는 내릴 만한 부월이 없었다. 부월이 없으니 출정군의 대장이 휘하 장수와 사졸을 처결하는 권한에도 제약이 있었다.
1419년 세종 1년에 이종무李從茂가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려 갈 때 세종은 한성부 두모포 백사장에서 이종무와 여러 장수를 전송하였을 뿐이다. 공식적인 군례는 없었다. 1433년 여진이 평안도 국경을 침범하여 최윤덕崔潤德이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어 출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세종의 명에 따라 편찬된 오례五禮의 군례에서 출정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세종은 천자의 출정의는 고사하고, 제후의 출정의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군대가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군사에 대한 세종의 자애는 엉뚱하게 조선왕조의 군대를 허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 나가면서
조선왕조시대의 양반 신하 들이 세종을 성군으로 칭송한 사실은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치세 30년간 이룩한 업적은 조선왕조 500여년의 기틀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까지 그를 성군으로 받들어야 하는가?
노비제와 기생제, 그리고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사실은 깡그리 생략하고, 21세기의 리더쉽을 세종에게서 찾으려는 환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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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이 바람에 날릴 때

도서정보 : 유필이 | 2018-03-02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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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필이 시인의 작품세계에는 자연과 사랑, 그리고 사람 냄새가 작품마다 숨어 있어 감상하는 독자는 자유로운 심상(心象)으로 시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유필이 시인만의 인간다운 감성과 여성스러움의 부드러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시집 “풀잎의 노래”에서 보여 주지 못했던 시인만의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을 다시 감상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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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1

도서정보 : 티투스 리비우스 | 2018-03-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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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다른 누구보다도 리비우스에게 기인한다.”
- R. S. 콘웨이

『리비우스 로마사』를 읽지 않고
로마를 말할 수 없다!

시중에 로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로마제국쇠망사』, 몸젠(Theodor Mommsen)의 『로마사』, 그리고 한 권으로 된 『하이켈하임 로마사』(현대지성) 등 여러 책이 사람들에게 로마를 전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 목록에 가장 중요한 책이 빠져 있었다.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이다. 이 책은 로마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저작물이다. 당대 역사가가 썼다는 점과 로마에 대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와 관련된 책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당초 150권으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리비우스는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142권까지만 쓰고 생을 마감했다. 이 중에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 21~45권, 총 35권이다. 내용은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아스(Aeneas)가 이탈리아에 정착한 이야기(기원전 753년)에서 시작하여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로마 건국을 지나 리비우스 자신이 살았던 아우구스투스(Octavianus Gaius Julius Caesar) 시대까지, 약 744년간의 로마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로마의 리비우스”
로마 역사문학의 정점

『리비우스 로마사』는 출간됐을 때부터 큰 인기를 끌어 이미 당대에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 Cocceianus), 플루타르코스(Lucius Mestrius Plutarchus) 등 로마 제정기의 많은 작가가 이 책을 출처로 삼아 역사서를 남겼다. 로마 시대 작가 율리우스 옵세?스(Julius Obsequens)는 기원전 249년~기원전 12년 사이 로마 시대에 일어났던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담은 그의 책(Liber de prodigiis)의 출처로 『리비우스 로마사』를 언급한다.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를 썼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리비우스 로마사』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 가치와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문체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했다. 또한 그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에게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뛰어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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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굿둑에서

도서정보 : 문철호 | 2018-03-0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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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중>>
등단 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작품들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문단 등단 후 내 작품을 독자들이 읽고 평가하게 된다는 점이 부담스러워 책임감이 무거웠습니다. 작품을 쓰면서도 시집을 출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김락호 이사장님의 추천으로 도서출판 시음사를 통해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시의 흐름이 사회현상 등 현실을 다루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시의 핵심어는 ‘자연, 순수, 사랑’입니다. 앞으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은 시를 빚어내고 싶습니다. 석류의 다홍색 알맹이같이 눈부시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시인으로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창작하며, 독자의 곁으로 둘레길 걷듯이 넉넉한 마음으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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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노래

도서정보 : 황유성 | 2018-02-2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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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성 시인의 작품세계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추억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 그 미래 속에서 다시 과거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과 행복까지를 공유한다. 그러기에 황유성 시인의 시집에는 여백이 있다. 그리고 쉼터가 있다. 한 장 한 페이지마다 느껴지는 화자의 메시지는 열권의 책을 읽은 것보다 무겁고 알차다. 순간의 시간에 느낌을 또는 살아오면서 던져놓았던 이미저리 “imagery”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또 다른 자아를 스토리텔링 “Storytelling”으로 보여 주려는 시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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