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2

도서정보 : 박지원 지음(탁양현 옮김)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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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河日記 : 연암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 2





21세기 현재의 ‘지금 여기’에서, ‘연암’과 같은 시각으로서 중국 땅을 살필 수 있는 방편은 아무래도 없을 듯하다.
우선, ‘연암’의 시각은 철저히 몸의 체험에 의하고 있다. 예컨대, ‘연암’은 직접 말을 타고서 여정을 꾸렸다. 나아가 하인이나 마부들은 제 발로 걸어서 그 여정을 소화해 냈다.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 도보로서 ‘열하일기’의 여정을 답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또한 굳이 그러한 방식으로 여행하려는 자도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비행기를 타고 ‘심양’이나 ‘대련’쯤으로 가서, 줄곧 자동차쯤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북경’이나 ‘천진’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여정을 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연암’과 현대인의 시각차를 엿보이는 사실만은 아니다. 모름지기 문명의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내는 인간존재들의 마음까지도 결정지어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동차나 비행기가 상용화된 시대를 살아내는 자는, 결코 말이나 수레가 상용화되던 시대를 살아내던 자의 감성에 접근할 수는 없다. 물론 굳이 그러해야 할 까닭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걷거나 말이나 수레를 타고서 그 땅의 풍취를 온 몸으로 체감하는 여행과,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식 이동수단 속에 몸을 감추고서 바깥의 대지와 차단된 채로 행해지는 여행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열하일기’와 ‘표해록’의 번역을 계획하면서, ‘타이베이’, ‘하노이’, ‘교토’ 등을 다녀왔다. 이는 모두 위의 원전들과 다소 연관이 있는 지역들이며, 번역작업에 보다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그 여정들은 참으로 고독했고 지극히 여유로웠으며, 그럼으로써 ‘박지원’이나 ‘최부’의 감성에 좀 더 접근해보고자 했다.
이제 ‘열하일기’의 번역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의 루트를 직접 여행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아마도 ‘열하일기’의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의 동북지역을 수차례에 걸쳐 여행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다시 여행을 나설 생각을 하면, 이내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은 한없이 고독하며 지극히 여유로운 설렘이다. 고독하면서 여유롭다니. 이는 아주 현묘(玄妙)한 감정상태임이 자명하다. 여행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당최 체험할 수 없는 현묘함인 것이다.
그러한 현묘함으로서, ‘열하일기’를 번역하는 동안 필자는 늘 그 여행길에 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으며,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는 ‘연암’과 동행하며, 항상 그 여행길에 있다.

인간존재의 삶이란 다만 ‘지금 여기’의 상황일 따름이다. 물론 분명히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거나 미래는, 죄다 ‘지금 여기’의 현재에 포괄될 따름이다. 실상 어떠한 경우에도, 과거나 미래는 단지 인간존재의 인식 안에서만 작동하는 하나의 개념이거나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존재는 모름지기 항상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만 한다. 과거라는 것의 누적된 결과로서 현재가 작동하는 것이며, 그러한 현재가 누적되어 미래가 작동할 것이다. 그런데 미래는 하나의 예측일 따름이며, 결코 실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예컨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인간존재의 현재가 제아무리 미래에 근접하더라도, 그 미래는 이미 현재보다는 나중일 것이므로, 결국 그 미래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는 결코 궤변이 아니다.
더욱이 여기서 ‘웜-홀’이라거나 ‘다중 우주론’ 따위를 논변코자 함이 아니므로, 우리는 어쨌거나 인간존재로서 ‘지금 여기’의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현재의 ‘지금 여기’의 상황에 가장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집중하는 방편 중 대표적인 것이라면, 아무래도 여행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흔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여행을 미룬다. 그러한 핑계들은 나름대로 타당한 사유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자식을 양육해야 한다거나, 건강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데 그러한 핑계를 앞세우다 보면 결국 여행길은 나설 수 없는 법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쫓기며 살아내다 보면, 시나브로 늙음과 죽음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여행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다. 여행의 자리에 꿈이나 이상이나 목표 따위를 대체해도 무방하며, 그 외에 또 다른 실천적 가치 개념을 대입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그 고백을 차일피일 미룬다면, 결국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고백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 사랑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혹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나 ‘심심상인(心心相印)’쯤을 말하고자 한다면, 다만 그런 말들은 당최 이러한 상황에 걸맞은 표현이 아니라고만 말해 두고 싶다.
인간존재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어떠한 실현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충분한 심사숙고가 선행되어야 함은 실로 자명한 노릇이다.
어쨌거나 어떤 방식의 여행이 모범답안일 수는 없다. 게다가 21세기에 굳이 ‘연암’의 방식을 좇아 걷거나 말을 탄다고 해서, 그 당시를 체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역사나 문화를 살필 때에는, 반드시 부득이하거나 불가피한 시공간적 차이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연암’의 시대가 나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21세기가 그 시대에 비해서 나은 것도 없다. 인간존재라면 누구라도 부득이하게 자기의 시대적 상황 안에서 살아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상황을 억지로 벗어날 수 있는 방편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하일기’의 ‘속재필담’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이른바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새나오는 학문이니, 지금 향교나 서당에서, 그저 글을 읽기에만 힘쓸 뿐, 그 의미를 강론하지는 않으므로, 귀로는 똑똑히 들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아득하기만 한 것입니다.[是所謂口耳之學, 現今黌塾之間, 慣是念書, 不曾講義, 故耳聞了了, 目視茫茫.]
그러니 입으로는 제자백가의 이론이 모두 술술 풀려 나오더라도, 손으로 글을 지어내려면 한 글자도 어려운 것입니다.[口宣則百家洋洋, 手寫則一字戛戛.]”

무릇 대부분의 학문 활동은 귀로 듣는 것이 주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열하일기’에 따르면, 그러한 과정은 눈의 활동과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학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나 입에만 치우치지 않는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귀와 입과 눈이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체험을 통해서라야만 한다. 그러한 체험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하라면, 필자는 응당 여행을 말할 것이다.
여행이야말로 귀와 입과 눈이 동시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나아가 몸과 마음이 유기적이며 종합적으로 작동해야만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곳에는 이러한 기술도 있다.

“귀에는 ‘대유산(大酉山)’과 ‘소유산(小酉山)’이라는 ‘이유’의 동굴 속에 천권의 책을 간직하였는지 모르겠으나, 눈으로는 ‘고무래 정’자도 보지 못 한답니다.[耳藏二酉, 眼無一丁.]
하늘에 글 모르는 신선은 없으며, 속세에는 말 잘하는 앵무새가 있는 법이지요.[天上無不識字神仙, 世間還有能言之鸚鵡.]”

제아무리 많은 책을 간직하고서 그것을 독서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학문이 될 수 없다. 그저 독서하거나 암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는 한갓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부를 했으며, 공부를 하고 있다면, 쉴 새 없이 지어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듯한 작품을 지어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어내는 연습을 결코 멈추지 않을 때, 그 학문은 제대로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늦은 나이에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어내는 연습을 결코 쉬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앵무새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리 소질을 지녔더라도, 처음부터 걸작이나 명작을 지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플라톤’의 발언처럼, 반드시 ‘미메시스(mimesis: 模倣)’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인간존재가 지닌 본래성이다.
그런 탓에 필자의 작품들이 간혹, 다소 기존의 작품을 흉내 낼 경우, 아주 별스런 비난을 해대는 자들을 본다. 그런데 그런 자들의 저작을 찾아보려고 하면, 지어낸 것이 거의 없다. 자기는 전혀 지어내지 못 하면서, 다른 이의 저작에는 온갖 험담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한 비난이 혹여 어떤 개인적인 반감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공부를 하려는 자라면, 그러한 비난을 일삼기보다는 스스로 지어내는 일에 매진하려는 마음이 요구된다.

예컨대, 필자는 대학원에 재학하는 동안, 그러한 캐릭터의 족속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곳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려는 마음보다는, 잠시 허울 좋은 대학원이라는 시공간에서 삶의 고통을 피해보려는 자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치고 그럴 듯한 소논문 한 편 스스로 지어내는 자를 보지 못 했다. 그러면서 관점이 바뀌었다느니, 아직은 시기상조라느니, 갖은 핑계로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아마도 그런 자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제 명의로 된 텍스트는 결국 지어내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들 대부분은, 자기의 작품을 고뇌하며 지어내야 할 시간에, 무리지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소문을 곱씹는 것으로 소일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어느 세월에 자기의 관점이 생성될 수 있겠는가. 아니 한낱 앵무새 역할이라도 해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필자는, 대학원 시절에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지만, 늘 어쩌다가 내가 그런 곳에 머물게 되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이제 그곳을 떠나 이렇게 내 삶의 여행길에 있으니, 더없이 홀가분하다.

‘열하일기’의 시절은 말할 나위 없으며, 이는 지극히 고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직접 저작이 없다.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가 모두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경지가 손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저 그렇다는 얘기다.
그만큼 자기의 작품을 스스로 지어내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공부하려는 자라면, 어떻게든 자기의 작품을 스스로 지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릴없는 무작자(無作者)들의 경우라면, 어떻게든 자기의 작품을 지어내는 자들의 노력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시간에, 자잘한 습작이라도 지어내 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공부다운 공부일 것이다.
나아가 무언가를 흉내 내는 앵무새의 수준에라도 이르려고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수년을 대학원에 재학하고서도 소논문 한 편 지어내지 못 한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러한 행위를 학문이라고 판단하겠는가.

그리고 7월 15일의 여정에서는, ‘중국’의 산하를 본 ‘조선인’들의 반응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벼슬이 높은 자들은 섭섭한 표정으로 얼굴빛을 바꾸면서, 쉬이 이렇게 말한다.[上士則愀然變色, 易容而言曰.]
“도무지 볼 것이 없더군.[都無可觀.]”
그래서 왜 아무런 볼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何謂都無可觀, 曰.]
“황제가 머리를 깎았고, 장수와 재상과 대신들 모두가 머리를 깎았으며, 선비와 서민들까지도 모두 머리를 깎았다.[皇帝也薙髮, 將相大臣百執事也薙髮, 士庶人也薙髮.]
비록 그 공덕이 ‘은나라’나 ‘주나라’와 같고, 그 부강함이 ‘진나라’나 ‘한나라’를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아직껏 머리를 깎은 천자는 없었다.[雖功德侔殷周, 富强邁秦漢, 自生民以來, 未有薙髮之天子也.]
또한 비록 ‘육롱기’나 ‘이광지’의 학문이 있고, ‘위희’나 ‘왕완’이나 ‘왕사진’의 문장이 있고, ‘고염무’나 ‘주이준’의 박식함이 있다고 한들, 한번 머리를 깎으면 곧 ‘되놈’이고, ‘되놈’이면 곧 개나 양 같은 짐승이니, 우리가 그런 짐승들에게서 무슨 볼 것이 있겠는가.[雖有陸隴其李光地之學問, 魏禧汪琬王士徵之文章, 顧炎武朱彛尊之博識, 一薙髮則胡虜也, 胡虜則犬羊也, 吾於犬羊也何觀焉.]”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곧 으뜸가는 의리라고 주장하므로, 이야기하는 자도 잠잠하고, 듣는 자도 옷깃을 여민다.[此乃第一等義理也, 談者默然, 四座肅穆.]

이는 특히 벼슬이 다소 높은 자들의 반응인데, 그저 ‘청나라인’들의 변발 풍습을 무작정 억지스럽게 비하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논리는 참으로 천박하다. 머리를 깎으면 무조건 ‘되놈[胡虜]’이고, ‘되놈’이면 무작정 짐승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여러 해 전, 최상위의 교육기관에 부속된 어느 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이와 동일한 용어로써 교묘히 필자의 주장을 비난하는 논문을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논문을 기술한 저자는 필자와 일면식은커녕 이름조차도 알지 못 하는 자였으며, 지금 역시도 그 이름 따위는 기억되지 않는다. 때문에 당시 필자로서는 당최 그 저의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당시 여러 이유로 은둔 중이던 필자의 행동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유발했던, 무조건적인 집단적 반감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쯤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저 자기의 비위를 건드렸으며, 그러니 ‘되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필자 역시, 그러한 짓을 하는 논문의 저자를 그저 한갓 ‘되놈’보다도 못 한 놈이라고만 치부해버렸으며,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 저자의 논문이 학술지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니, 그 저자의 죽음 이후에도 그 기록은 남겨질 것이다.
다만 그 비난의 대상이 왜 ‘되놈’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대학원의 연구소나 학계를 떠나버렸으며, 오래지 않아 필자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므로, 사실대로 밝혀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이에,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이 지니는 부득이한 편면성을 늘 유념해야 한다는 생각도 아울러 되새기게 된다.

‘열하일기’의 한 대목을 번역하면서, 왜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연암’의 시대나 21세기나, 나름대로 학식이나 지위를 지녔다는 자들의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쉬이 부화뇌동하는 작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후문에 의하면, 그 자가 ‘중국’의 어느 명문대학에서 수학하였다고 하니, 필자로서는 그 기억이 더욱 허망하게만 여겨진다. 고작 시류를 좇아 이득이 될 만 한 일이라면, 그것이 한갓 소문에 불과할지라도 핏발을 세우며 무작정 비난하고 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사리 공부한 결과인 것일까?
현재에 이르도록 필자의 주장들이 다소 파격적이고 극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와 유사한 부류들은 여전히 익명의 무리를 지어 온갖 수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21세기의 ‘한국인’들이 ‘조선인’들의 후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같은 곳에서 ‘연암’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나와 같은 하류의 선비들은, ‘장자(莊子)’처럼 ‘중국’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다고 말하며, 또한 똥 부스러기에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余下士也, 曰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어쩌면 이것이, 정작 ‘연암’이 시대 안에서 외치고 싶었던 참소리일 것이다. 물론 ‘연암’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의한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은, ‘청나라’에서일망정 배울 것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기와 조각이나 똥 부스러기에 불과하더라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쉬이 주장하기 어려운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며 실리주의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연암’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 ‘장자’의 ‘지북유(知北遊)’편을 인용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지극히 비판적인 사유방식을 지녔던 것으로 판단된다.
모름지기 ‘한나라’ 독존유술(獨存儒術)의 전통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를 가장 잘 신봉한 국가공동체가 바로 ‘조선’이다. 그럼에도 ‘연암’은 보란 듯이 ‘장자’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악독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또한 사람의 마음처럼 선량한 것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총욕약경(寵辱若驚)’을 말했던 것이다. ‘총욕약경’은 사랑받거나 모욕당하거나 죄다 놀란 듯이 반응하라는 뜻이다.
인간존재는 쉬이 자기를 사랑해주는 상대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으며, 자기를 모욕하는 상대에게는 악의를 갖는다. 이는 비단 인간존재만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온갖 만물이 지닌 일종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차원의 보편성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좋아하고, 자기에게 해악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일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라도, 그것이 무조건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아가 적어도 인간존재로서 동물의 차원을 극복하였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응당 이득이 되거나 해악이 되는 상황 자체에 대해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로서는, 그렇게 ‘총욕약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배려하는 고독과 여유가 참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필자는 늘, 풍족한 관광이 아닌 긴박한 여행을 다니는 탓에, 그 과정은 실로 쪼들리며 고달프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나선 여행은, 아주 고독하며 또한 아주 묘하게도 한없이 여유롭다.

여하튼, 학문이 귀와 입과 눈과, 나아가 몸과 마음의 동시적인 작용으로서 작동했을 때, 그것은 참된 학문일 수 있다.
예컨대, 동시대를 살아내는 인간존재일지라도, 그의 공부가 참되지 못 하다면, 그 결과는 국가나 민족은 물론이며, 인류의 거대한 고통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로서, ‘최제우(崔濟愚: 1824~1864)’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경우를 거론할 수 있다. 거의 동시대를 살아낸 두 사람은, 모두 시대의 거대한 사상가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참된 공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최제우’는 민족 고유의 경천(敬天)사상을 바탕으로 유불선(儒彿仙)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을 종합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는데, 기본적으로 동학은 서학(西學)에 저항하기 위해 태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후대 ‘최시형’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시천(人是天)’이나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그리고 ‘손병희’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존왕파(尊王派)로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사상가이다. 그는 ‘유수록(幽囚錄)’을 저술하여서 정한론(征韓論)이나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하였는데, 그것은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주장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홋카이도’의 개척, ‘오키나와’의 일본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 ‘타이완’, ‘필리핀’ 등의 점령을 주장하였고, 현재에 이르도록 일본 우익의 교조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동시대에 노도처럼 밀려드는 서양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생존하기 위하여 고뇌했던 두 사상가는, 많은 차이를 지닌 사상적 결과물을 생산한 것이다.
‘최제우’의 사상은 그 토대를 하늘이라는 천지자연에 둠으로써, 민족이나 국가는 물론이며, 나아가 항상 인류 그 자체와 우주까지도 사려(思慮)한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의 철저히 일본이라는 국가에만 몰두하며, 그 국가공동체를 위해 주변의 국가공동체들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아 점령하고자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과거에 전쟁에 미쳐 날뛰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에 의한 인류의 고통은 말할 나위 없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면서, 그들의 자리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되었다. 현실세계의 서민대중으로서는, 단지 그 대체세력들이 과거의 전쟁광(戰爭狂)들처럼 미쳐 날뛰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나마 다소 안도할 따름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우선 ‘미국’과 ‘중국’이라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한 민족이면서도 분단되어 있는 ‘북한’의 문제도 있다. 게다가 여전히 과거 전쟁광의 시대를 은밀히 회고하는 ‘일본’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라도, 부득이하게 생존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삶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삶이다. 그러한 삶의 지향을 모색할 때, 지난날 시대로부터 앞서 간 사유방식을 지니고서 살아낸 한 여행자의 삶은, 현대의 우리에게 적잖은 지침이 되어준다.
어쨌거나 기껏해야 몇 십 년을 살아내는 인간존재로서, 아주 다양한 삶의 체험을 갖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한 번 몸과 마음에 익숙해져버린 것들을 변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더욱이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굳이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렇게 삶이 머뭇거릴 때, 여행은 새로운 열정을 유발시켜 준다는 사실만큼은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리고 ‘열하일기’를 독서해 보면 익히 알 수 있겠지만, ‘연암’ 역시도 필자와 유사한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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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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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학문체계는 과학이다. 그러다보니 어떠한 학문일지라도, 결코 과학적인 사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문학 역시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 고유의 특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해서도 안 된다. 다만, 무작정 인문학의 고유성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인 사유방식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어떠한 가치부여에도 초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가치중립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과학적인 판단을 하게 되면, 그것은 대체로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판단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과학의 특성을 닮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과학과 동일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더라도 가치중립성은 어떠한 학문이든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지향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삶의 과정 안에서, 인간존재라면 누구라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으로 언행하게 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 육체가 지닌 본래성이지만, 그것은 어떤 정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팔이 안으로만 굽은 상태에서 정지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일종의 장애이며, 온전한 팔의 작용을 할 수 있는 상태일 수는 없다. 어쨌거나 안으로 굽는 팔은, 이미 바깥으로 펴질 것을 동시적으로 예상하고서 작동하는 것이, 몸의 본래성이다. 나아가 그런 것이 곧 ‘천지자연의 자연스러움[無爲自然]’이기도 하다.

그러한 자연스러움 안에서, 한 가지쯤의 일을 평생 동안 줄곧 해 내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내 새로운 일을 찾아 다양한 삶을 꾸려내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삶의 방식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삶의 모양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라면,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어릴 적부터 필자는 늘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 타입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연배에 비한다면, 아주 다양한 삶의 체험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시나브로 여행자의 삶을 살게 되어버린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여행하는 삶이 익숙해진 이후에는, 이제 굳이 목적지마저도 정하지 않는다. 실로 떠도는 나그네로서의 여행방식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누군가 이끌어주는 여행이었다. 그러다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철저히 홀로 떠도는 홀가분한 여행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것이 여행자의 본색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여행길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느 시대든, 상대적으로 소유하지 못 한 자들의 삶은 버겁기 마련이다. 그것은 첨단의 21세기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필자의 생활 역시, 사회적으로 최하층인 계층에 소속되어서 근근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가난의 상황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마치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어제도 그러하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러할 듯하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에 내던져진 서민대중으로서, 그나마 필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여행이다.
그러한 삶의 여정 중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숱한 체험을 한다. 오늘도 아주 많은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는 늘 적잖은 선택의 순간에 세워진다. 그런데 그 선택은 늘 생존을 지향한다. 그것이 인간존재로서 죽음의 순간까지 지닐 수밖에 없는 본성의 명령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순간의 선택이라는 근심을 해소해 가는 일, 아마도 그런 것이 인생이리라.

흔히 여행자의 삶을 유목민의 삶에 빗대며, 그 반대의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실로 유목민의 삶은, 그 자체가 여행이며 이동이므로 마땅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유목민은 철저히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것이며, 여행자처럼 노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유목민의 이동’과 ‘여행자의 노닒’이라는 차이를 인식할 필요는 있다. 곧, ‘생존을 위한 이동’과 ‘노닒을 위한 이동’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차이는 ‘열하일기’ 안에서도 쉬이 드러난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유목민의 경우처럼 생존이나 생계를 위해 이동하는 부류다.
마부나 하인들의 경우는 물론이며, 사신 일행에 벼슬아치로서 참여한 자들 역시 그러하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에게 부여된 업무이며, 그러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암’의 경우는 다르다. ‘연암’은 굳이 그 여정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물론 그것이 양반사대부로서의 특권을 지닌 자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양반사대부라고 해서 죄다 ‘연암’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연암’이 지닌 여행자로서의 기질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런 탓에, 필자는 노니는 자로서의 ‘연암’의 미학적인 삶에 대한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미학적인 삶을 살아내는 자들은 다분히 예술가적인 기질을 생래적으로 지닌 자들이다. ‘연암’ 역시 그러하다고 판단된다.

지금 가만히 회상해 보면 필자의 지난 삶은, 그 과정이 자의반타의반이었을망정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학문적 활동을 할 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서야 어렵사리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공부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대학원에서의 체험이 필자의 여행자로서의 삶을 이끈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석사와 박사과정 동안 늘 연구의 주제가 되었던 ‘장자미학(莊子美學)’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자철학’이 논변하는 ‘소요유(逍遙遊)’야말로 두 말할 나위 없는 여행자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매순간 배회하며 고뇌하는 존재다. 그래서 여행자에게는 유별난 과거도 없고, 별다른 미래도 없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 여행자로서 노닐 따름이다. 그렇게 ‘지금 여기’를 노닐며 살아 낸다는 것은, 곧 ‘장자’가 논변하는 ‘소요유’와 다름 아니다.

또한 여행자의 노닒으로서의 여행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다. 이는 곧, 지극히 상식적인 여론을 좇는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예컨대, 예로부터 민의(民意)를 외면하면서 지속될 수 있었던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흔히 권력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정치학적 개념쯤을 상상하지만, 굳이 권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에서 각 인간존재들이 생존할 수 있는 자격이나 역량 그 자체가 곧 권력이다. 그러니 필자의 삶 역시, 늘 권력 그 자체의 유지이며 지속이었을 따름이다. 그러한 권력 안에서 살아냄에 있어, 주변의 여론을 좇는다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자연스런 권력의 지속을 가장 선명하게 천명한 철학자가 바로 ‘노자(老子)’다. ‘노자’의 철학사상을 대변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야말로, 민의를 거슬러 억지로 하지 않으며, 다만 천지자연의 자연스런 흐름을 좇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물며 ‘노자’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필자로서, 억지스런 삶을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름지기 민의나 여론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지각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될 뿐이다.
때문에 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삶의 상황 안에서 아주 민감하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죄다 깨어 있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렇더라도 필자로서는 나름의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늘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무언가를 고심한다. 그리고 그것은 늘 주변인들의 여론에 적극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고심이다. 그렇게 고심이 거듭되다가, 필자는 늘 동일한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된다. 바로 여행길이다.

필자의 판단으로서는, 주변의 여론을 거스르지 않으며, 타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며, 자기 나름의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십 수 년 동안이나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게 여행길을 계획하거나, 여행길에 나설 때면, 여행은 늘 필자로 하여금, 주변인들의 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사려토록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늘 죄스런 마음이 앞선다.
물론, 필자가 어떤 특별한 범죄행위를 자행해서가 아니다. 그저 천지자연과 인류의 자연스런 배려를 인식하지 못 하고서, 잠시잠깐 이기적이거나 극단적인 외곬의 마음을 지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세계의 인간은, 어쨌거나 홀로이면서도 결코 홀로일 수 없는 탓에, 항상 ‘이중적 동시성’을 사려해야만 하는 존재인 탓이다.
역사 안에서 민의의 여론을 거스르는 경우, 그 결말은 늘 비극적이기 마련이었다. 이를 잘 아는 필자로서, 여하튼 여론을 거스르는 언행을 자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껏 노장(老莊)철학을 전공 삼아 공부한 필자로서는, 비록 필자가 한없이 가난하고 더없이 고독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죽음의 순간까지 어겨서는 안 될 신념이라고 판단한다. 그러한 인식마저도 지니지 못 한다면, 지난 시절의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으로서는,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자보다도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렸던 ‘연암’의 삶을 회고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고단함을 잠시 잊어볼 따름이다.

필자는 ‘열하일기’를 번역하면서, 아주 재미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연암’의 학문 수준이,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중국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별반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분명히 ‘연암’은 조선인이다. 그리고 한자는 분명히 ‘중국’의 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의 한자 실력은 물론이며, ‘중국’의 학문에 대한 이해 역시 여느 중국인을 능가하고 있다.
비록 한자가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문자로서 사용되고 있다지만, 어쨌거나 중국인들에게는 모국어이고, 우리 민족에게는 외국어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이해가 가능할 텐데, 필자로서는 외국의 문자를 현지인들보다 더 능란하게 사용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어쩌면 참으로 지독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선인’들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 문자인 한글이 그나마 대접을 받았던 시대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지금의 21세기는, 말할 나위 없이 또 다시 영어라는 외국어가 득세하는 시절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한글이 세계 언어로서의 위상을 얻지 못 하는 한 지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도 여전히 한자로 된 선조의 텍스트를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작업이 다소 씁쓸함을 갖도록 한다.
다만 필자의 작업은, 한자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한글을 위한 작업임을 밝혀두고 싶다. 필자로 하여금, 동양학을 공부하는 동안 늘 불만 섞인 한숨이 새어나오도록 했던 일은, 기존의 번역서들 대부분이 한글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한자를 위한 번역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정작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한자 투인 탓에 당최 알 수 없는 문장들이 허다했다. 때문에 그런 것을 번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따라서 앞으로도, 필자의 번역작업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 아주 결정적인 기회인데도 결국 그 기회를 점수로 만들어 내지 못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병살타를 쳐버리는 선수들이 있다. 그럴 때면, 관중들 대부분은 그 선수를 비난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선수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어쨌거나 정작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득점타를 치고 싶은, 가장 강렬한 열망을 지닌 사람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바로 그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은 비단 프로야구 경기에만 한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삶을 살아내는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늘 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서 자기의 삶을 꾸리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때론 당최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는 탓에, 결국 일정한 성취에 이르지 못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의 노력 자체가 문제될 일은 아니다.
예컨대, ‘지금 여기’에서 생계를 꾸려내고 있는 거의 모든 서민대중들은,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실로 치열할 만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저 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천지자연 안에서, 공짜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필자의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든 해코지를 하려는 자들이 적잖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며, 일면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필자의 텍스트들을 검색하고서는 무작정 해코지를 해대니, 당최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아마도 필자가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기로 결정하고서,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면서부터는, 늘 그러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이나 세상일들이, 결코 제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며,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쩌다가 필자의 언행이 몇몇의 비위를 건드린 모양이지만, 그렇더라도 필자로서는 마땅히 대처할 방편이 없으며, 굳이 반응할 까닭도 없다. 필자의 삶이 그런 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자들 대부분은, 인터넷 바다의 허망하고 천박한 일군의 누리꾼들처럼, 어떠한 빌미로든 꺼리를 만들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이지 않은가.
그런 자들의 면면이 다소 추측되기는 하지만, 그저 그럴 시간에 제 나름의 삶의 공부에 진력하라는 당부쯤을 해볼 수 있을 뿐, 필자로서는 그들의 삶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으며, 실상 관심을 가질만한 자격 또한 없다.
다만, 당장이라도 그 악연의 끈을 홀가분하게 싹둑 잘라버리고 싶지만, 살아내는 동안이라면 그런 자들과 부득이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존재의 삶에 내재된 본래적인 업(karma)일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업은 인간존재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테지만, 실천적 현실주의자인 필자로서는 그러한 이론을 그다지 수긍하진 않는다.

어느 뇌 과학자는, 아주 고도의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그 순간이 곧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아주 고도로 발달되어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어떤 지능적 존재가 탄생된다면, 이내 이 지구별 안에서 인간존재가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최초에 지구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점유하기 시작한 계기라면, 흔히 언어나 도구의 사용을 거론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의식적인 노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노동의 결과로서, 21세기에 이르도록 대단한 인류의 문명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그러한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아주 속편한 누군가는, 그렇게 인공지능존재에게 노동의 영역을 전가시키고서, 인류는 더욱 고상하고 아름다운 작업을 수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정도의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들에 의해 인류의 노동에 대한 대체는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공상과학영화의 흔한 스토리처럼, 그런 인공지능 기계들은 결국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고서는, 어쩌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실상 이 천지자연은 인류에게 별다른 애정을 갖지 않는다. ‘노자’의 주장처럼, ‘천지자연은 결코 인자하지 않은 존재[天地不仁]’일 따름인 것이다.
인류가 제아무리 어떤 신적인 존재적 이미지를 창조하여서, 억지로 인류에 대한 신의 사랑이나 자비를 강변하더라도, 그런 것은 결국 지극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주장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실상 지극히 수더분한 상식에 의하더라도, 도대체 하늘이나 땅이 무슨 까닭으로, 아주 특별히 인간만을 사랑한단 말인가. 이야말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아적(幼兒的/唯我的) 착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 역시 인간인 까닭에, 이 천지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가장 특별한 역량을 지닌 인간존재만을 각별히 사랑해 주기를 바라며, 이러한 바람은,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그저 인간존재만의 바람일 따름이다. 제아무리 인류가 억지를 부려도, 천지자연은 늘 그러하게 만물을 대할 따름이다. 그래서 천지자연은 굳이 인자한 척 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사랑하고 저것을 미워하는 법이 없다.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버리는 법도 없다. 그런 것이 천지자연의 실상 그 자체인 것이다.

필자로서는, 굳이 천지자연에게 사랑을 애걸하지 않을 만큼 홀가분해 질 수 있을 때, 인공지능의 고도화에 대한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존재의 지능적인 마음이, 천지자연에 대해 초연해 질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제작하는 인공지능 역시 그러한 마음을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인류가, 인류의 멸망 이전에 그러한 마음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실현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인류의 마음이 본연의 본래성으로 회귀된 상태를,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천명했다.
‘무위자연’은 말 그대로, 어떠한 억지스러움도 없는 자연스러움을 의미한다. 그러할 때, 현대의 인류가 불안해하는 미래적 재앙은 다소나마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위자연’의 상태에 다가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론으로서, 필자는 여행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여행은, 홀로인 서로들이 동시적 이중성의 시공간 안에서 복합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하는 여행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으로서는 쉬이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지구별의 모든 것들이 죄다 파괴되는 미래를 이미 예견하면서도, 망연히 손 놓고 있다거나, 지난 역사 동안 지나치게 일그러져버린 온갖 가치체계들이 무조건 옳다며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필자로서는, 인류의 미래가 그다지 희망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군의 페미니스트나 니힐리스트들의 주장처럼, 그저 암담하기만 한 것으로 판단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늘 어떤 사이[間]에나 머무는 존재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열하일기’ ‘일신수필’의 ‘장대기’에서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대개 ‘장대’에 오를 때에는, 그저 앞만 보고서 층계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가므로, 그 위험함을 알지 못 하다가, 내려오려고 눈을 한번 들어 밑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현기증이 일어나게 되니, 그 허물은 죄다 눈에 있는 것이다.[蓋上臺時, 拾級而登, 故不知其危, 欲還下則一擧目而臨不測, 所以生眩, 其崇在目也.]
벼슬살이라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바야흐로 위로 자꾸만 올라갈 때에는, 한 계단의 절반이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두려운 나머지, 간혹 남을 밀어젖히면서까지 앞서려고 다툰다.[仕宦者, 亦若是也, 方其推遷也, 一階半級, 恐後於人, 或擠排爭先.]
그러다가 마침내 몸이 높은 곳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及致身崇高, 懾心孤危.]
하지만 이미 외롭고 위태로워서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길이 없고, 뒤로는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어서, 다시 올라갈 의욕이 사라질 뿐 아니라, 내려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進無一步, 退有千仞, 望絶攀援, 欲下不能.]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서 모두 그러하다.[千古皆然.]”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서, 높이 오른 자들은 불안한 법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떠한 짓을 자행했으며, 자기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 역시,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짓이라도 자행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을 강점하고서 수십 년간 높은 지위에 군림하던 ‘일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항세력은 물론이며, 일반 백성들이나 심지어 ‘일제’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던 친일파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응당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판단을 해볼 수 있다. 남의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니 항상 불안했을 것이므로, 설령 그가 친일파일지라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발 뻗고 자기 위해, 맞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굳이 때릴 일도 아닐 것이다.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극단적인 폭력성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남을 때리는 일이 어찌 맘 편한 일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늘 되풀이되곤 했다. 다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역사적으로 ‘중국’은 늘 선진국이며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고, ‘한국’이나 ‘일본’은 후진국이며 약소국의 지위에 있었다. 더욱이 ‘일본’은 항상 ‘한국’보다도 뒤처지는 입장이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게 있어, ‘중국’은 천자의 나라라고 하여 받들어 섬기는 사대(事大)의 대상이 되었고, ‘일본’은 왜구(倭寇)쯤으로 불리며 오랑캐 중에서도 오랑캐인 족속으로 비하되었다.
그러던 상황이 근대에 이르며 서구 제국주의와 얽히면서 반전되었고, 그래서 ‘한국’은 물론이며 ‘중국’도 침략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양차대전이 끝난 후, 패망했던 ‘일본’은 이내 경제대국이 되었고, ‘남한’ 역시 경제부국이 되었다. 이제는 ‘중국’도 예전의 영화를 되찾으려고 하는 시절이다.

여하튼, 전통적으로 ‘중국’은 늘 ‘때리는 놈’의 지위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게 크게 한 방 맞고 말았다. 크게 한 방을 휘두른 후, ‘일본’은 이제 어떻게든 ‘때리는 놈’의 지위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맞는 놈’의 지위에만 있으며, 어쨌거나 맞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따름이다.
이러한 국가 간의 역학관계는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때리는 놈’과 ‘맞는 놈’이라는 두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노니는 놈’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말할 나위 없이 대표적인 ‘노니는 놈’이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은, 출생 이후 줄곧 ‘때리는 놈’과 ‘맞는 놈’밖에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식으로 훈육 받는다. 그런데 오롯한 필자의 체험에 따른다면, ‘노니는 놈’으로서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으며, 그 삶이 다른 놈들에 비해서 더욱 충만하며 행복할 수 있다고도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세 부류 이외에도, 어떤 놈이든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놈으로서 주변인들에게 해코지 않으며 살아내고 있다면,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연암’의 여정을 좇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며칠 동안 소나기가 마음을 심란케 하더니,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개었다. 말 그대로 가을 초입의 하늘이다. 파란 하늘을 보니, 당장이라도 여행길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꼼짝없이 매인 몸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여비도 마련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필자의 여행길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한들, 대부분 타국 땅에서의 여행인 탓에, 그 최소한의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는 모양이다. 지금으로서는 ‘열하일기’의 번역을 마치고서, 조속한 시일 내에 직접 그 루트를 답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21세기 방식으로 새로이 기록될 것이다. 그야말로 ‘21세기 열하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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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1

도서정보 : 신채호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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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제1편. 총론

제1장. 역사의 ‘올바른 도리[正義]’와 ‘조선사’의 범위 13
1. 역사란 무엇인가
2. ‘아(我)’와 ‘비아(非我)’
3. 시간적 상속성과 공간적 보편성
4. ‘김석문’과 ‘부르노’ 혹은 ‘정여립’과 ‘루소’
5. 정신의 확립과 환경에의 순응
6. ‘조선상고사’를 기술하며 중점을 둔 사항들

제2장. 역사의 3대 원소와 ‘조선’ ‘옛 역사[舊史]’의 결점 19
1. ‘조선’에는 마땅한 역사서가 없다
2. ‘조선’의 역사는, 오히려 ‘조선’의 역사가에 의해 훼손된다
3. ‘신라’는 ‘신라’일 따름이다
4. 이데올로기를 좇아 역사를 악용하는 역사가들
5. ‘유가’ 이데올로기 탓에 ‘조선사’는 왜곡되었다
6. 아쉬운 대로 전하는 자료를 참고하여 ‘조선상고사’를 기술한다

제3장. ‘옛 역사[舊史]’의 종류와 그 득실에 대한 ‘간략한 평가[略 評]’ 25
1. ‘신지(神誌)’와 ‘단군(檀君)’
2. 유학(儒學) 이외의 것을 이단시하여 불태워버린 ‘태종’
3. ‘북부여(北扶餘)’와 ‘삼한(三韓)’의 역사서는 유실되었다
4. ‘신라’와 ‘백제’와 ‘고려’
5. ‘유교도(儒敎徒)’ ‘김부식’의 사대주의에 의해 기술된 ‘삼국사 기’는 역사적 가치가 거의 없다
6. ‘고려’와 ‘조선’의 역사서에 대한 비판
7. ‘한백겸’의 ‘동국지리설’이 최초로 ‘조선사학계’의 실마리를 열 었다
8. ‘안정복’의 ‘동사강목’과 ‘유득공’의 ‘발해고’와 ‘이종휘’의 ‘수산 집’에 관하여
9.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관하여
10. ‘이씨조선’의 역사관에 대한 4가지 비판
11. 우리 역사학에 관한 비판적 사례
12. 역사서를 사사로이 짓지 못 하도록 하였다
13. 이전 왕조의 역사를 파괴해버렸다
14. 한문으로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어려움
15. 이전 시대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승되지 못 하였다
16. ‘조선사학계’의 올바른 표준을 세워야 한다

제4장. 사료(史料)의 수집과 선택 39
1. ‘독사신론’과 ‘대동사천년사’를 중단하다
2.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를 답사한 일에 관하여
3. 인재와 경제력의 중요성
4. 한 번의 답사가 만 번의 독서보다 낫다
5. ‘고려’의 ‘승군(僧軍)’에 관하여
6. 사실(史實)을 규명하는 어려움
7. ‘중국인’의 역사 왜곡 습성에 대한 비판
8. ‘당태종’이 실명한 사건을 규명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9.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내재된 의미를 알아야 한다
10. ‘이두문(吏讀文)’을 사용했던 탓에 초래되는 혼란
11. 자잘한 고증으로써 ‘압록강’의 위치를 규명하다
12. 자잘한 고증이 역사상 큰 발견의 단초이기도 하다
13. 위서(僞書)가 인용되어서는 안 된다
14. ‘단군’과 ‘요임금’의 연대를 비교하는 것은 오류다
15. ‘공안국’이 기술한 ‘상서전’은 위서다
16. 사람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7. 상황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8. 논리에 의한 가짜 역사와 진짜 역사
19. 후세 사람에 의한 역사 왜곡
20. ‘김부식’의 모화주의에 대한 비판
21. 역사적 억측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22.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국의 역사학 연구에 대한 한탄

제5장. 역사의 개조(改造)에 대한 우견(愚見) 59
1. 현재의 역사학은 한국식을 서양식으로 겉표지만 바꾼 것에 불 과하다
2. 역사적 계통을 정립해야 한다
3. ‘단군’은 ‘신라’ ‘국선’의 근원이다
4. 역사적 회통을 추구해야 한다
5. ‘고려사’ ‘묘청전’을 예로 들다
6.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
7. 역사가는 시대의 본색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8. ‘유교’의 춘추필법은 시대의 본색을 담아내지 못 한다
9. 역사를 왜곡한 ‘이성계’
10. 역사를 왜곡한 ‘왕건’
11. 역사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12. 사회에 의해 개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13. 역사는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다
14. 민족과 개인은 모두 ‘지속성’과 ‘변화성’이 조화되어야 한다
15. 안정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어렵다
16. 불안한 시국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쉽다
17. 안정된 시국의 인물과 불안한 시국의 인물

제2편. ‘수두’ 시대

제1장. 고대 총론 79
1. ‘조선’ 민족의 구별
2. ‘조선족’이 동방으로 오다
3. ‘조선족’이 터를 잡은 ‘아리라’
4. 고대 ‘조선족’의 발원지는 ‘하얼빈’ 부근이다

제2장. ‘단군왕검’의 건국 83
1. ‘수두’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이다
2. ‘수두’에서 점치는 방식은 ‘주역(周易)’의 기원이 되었다
3. ‘단군’은 ‘수두’의 숭배 대상이다
4. ‘단군왕검’의 출생에 관하여
5. ‘단군’의 역사는 후대의 유교나 불교에 의해 왜곡되었다
6. ‘삼신’이나 ‘오제’는 ‘왕검’이 만들어 낸 전설이다
7. ‘대(大)단군왕검’은 ‘3경(京)’과 ‘5부(部)’와 ‘5군(軍)’으로써 국가를 통치했다
8. ‘5군’의 존재는 현재의 ‘윷놀이’에서도 볼 수 있다

제3장. ‘수두’의 ‘너른 포교[弘布]’와 문화의 발달 89
1.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우임금’의 치수사업을 도왔다
2. 역사적 사실을 신성시하여 신화화하였다

제4장.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오다 91
1. ‘조선’의 ‘신서’는 ‘상서’ ‘홍범’의 연원이다
2. ‘신서’의 본문과 ‘기자’의 부연 설명
3. ‘홍범’의 연원에 관한 논거(論據)

제5장. ‘흉노’의 ‘휴도(休屠)’ 95
1. ‘동이족’의 ‘수두교’가 ‘중국’과 ‘흉노’에 전파되었다
2. 고대에는 종교의 전파가 곧 영토의 확장이었다

제6장. ‘한자(漢字)’의 수입과 ‘이두문’의 창작 97
1. ‘동이족’이 최초에 사용한 문자는 ‘한자’다
2. ‘이두문’은 지금부터 최소 3,00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3. ‘이두문’은 후세의 ‘거란문’이나 ‘여진문’에 영향을 주었다
4. ‘이두문’의 미비함에 대한 비판
5. 한 나라 안에서도 정치적 이유로 ‘이두문’은 서로 소통되지 않 았다

제7장. ‘신지(神誌)’의 역사 101
1. ‘신지’는 벼슬 이름이다
2. ‘고려’의 ‘삼경’과 ‘조선’의 ‘삼경’은 다르다
3. 겨우 전해지던 ‘신지비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제8장. ‘조선’의 전성시대 103
1. ‘고죽국’은 ‘동이족’의 나라다
2. ‘중국’의 ‘강회’ 지역에는 고대 ‘조선인’이 세운 소왕국들이 많 았다
3. ‘불리지국’에 관하여

제9장. ‘조선’의 쇠약 105
1. ‘조선’ 연합군이 ‘제’나라에게 패하다
2. 전쟁의 패배로 인해 ‘조선’이 쇠약해지다

제10장. ‘단군’ 연대의 고증 107
1. ‘기자조선’은 삭제되어야 한다
2. ‘단군’ 시대의 서울은 세 곳이었다
3. ‘단군’의 나이가 1,000세를 넘는다는 것은 허황된 말이다
4. ‘단군’ 원년은 ‘고구려’ 건국보다 2천 년 이전이다

구매가격 : 3,000 원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2

도서정보 : 신채호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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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제3편. ‘3조선’ 분립시대

제1장. ‘3조선’ 총론 15
1. ‘3조선’은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이다
2. ‘한자’와 ‘이두문’에 의한 혼동으로써 ‘3조선’은 잘못 알려졌다

제2장. ‘3조선’의 위치와 범위 17
1. ‘한(韓)’은 왕이란 뜻이다
2. 전쟁의 세상에 고정된 국경은 없는 법이다

제3장. 기록상 ‘3조선’을 구별할 조건 19
1. ‘3조선’은 역사적으로 재조명되어야 한다
2. ‘중국’의 ‘역사서’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3. 각종 사료를 종합하여 ‘3조선’의 역사를 구성하다

제4장. ‘3조선’ 분립의 시초 23
1. 기원전 4세기경에 ‘3조선’이 분립했다
2. ‘3조선’의 후손들
3. ‘3조선’이 분립한 뒤에는 ‘신한’이 셋이 되었다

제5장. ‘3조선’ 분립 후의 ‘신조선’ 27
1. ‘신조선’의 왕 ‘모갑’이 ‘불리지’의 옛 땅을 회복하다
2. ‘연’나라의 장군 ‘진개’가 ‘조선’을 침략하다
3. ‘진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
4. ‘연’나라의 장성과 ‘진’나라의 장성
5. ‘장량’이 ‘조선’에 구원을 청하다
6. ‘조선’과 ‘진시황’과 ‘만리장성’
7. ‘조선’과 ‘흉노’
8. ‘흉노’가 ‘조선’을 침략하다

제6장. ‘3조선’ 분립 후의 ‘불조선’ 33
1. ‘불조선’과 ‘신조선’이 잃어버린 영토
2. ‘진’과 ‘조선’의 경계는 ‘패수(헌우란)’다
3. ‘대단군’의 ‘왕검성’은 세 곳이었다

제7장. ‘3조선’ 분립 뒤의 ‘말조선’ 37
1. ‘말조선’의 국호를 ‘말한’으로 고치다
2. ‘마한’은 ‘백제’가 아니다
3. ‘신라’의 ‘마립간’은 ‘말한’을 왕의 호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4. ‘북삼한’과 ‘남삼한’을 분별되어야 한다
5. ‘낙랑 25국’은 ‘낙랑군 25현’이 아니다
6. ‘삼한’의 여러 나라들

제8장. ‘3조선’ 붕괴의 원인과 결과 45
1. ‘3조선’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까닭
2. ‘3조선’의 파탄 이후 ‘쟁웅(爭雄)’ 시대가 되다


제4편. 열국(列國)의 쟁웅(爭雄) 시대

제1장. 열국의 연대 49
1. ‘고구려’의 연대
2. ‘신라’가 ‘고구려’의 연대를 축소했다
3. 연대뿐만 아니라 국경도 축소했다
4. 연대만이 아니라 국경도 축소했다
5. ‘부여’의 국경
6. ‘한’나라 ‘4군’의 국경
7. ‘낙랑국’의 국경

제2장. 열국의 분립 55
1. ‘해부루’가 ‘동부여’를 세우다
2. ‘해모수’가 ‘북부여’를 세우다
3. ‘옥저’는 ‘동부여’의 다른 이름이다
4. ‘북부여’의 역사
5. ‘해모수’의 아들 ‘추모(주몽)’가 ‘고구려’를 건국하다
6. ‘추모’가 태어난 사연
7. ‘주몽’이 아니라 ‘추모’라고 읽어야 한다
8. ‘추모’가 ‘졸본부여’로 가서 ‘소서노’와 결혼하고 ‘고구려’를 세 우다
9. ‘동부여’를 두려워 한 ‘추모왕’의 아들 ‘유류왕’
10. ‘동부여’의 침략을 물리친 왕자 ‘주류’
11. ‘동부여’를 무력으로 평정한 ‘대주류왕(주류)’
12. ‘대주류왕’이 ‘낙랑국’을 멸망시키다
13. ‘소서노’가 ‘백제’를 건국하다
14. ‘소서노’가 죽은 후 ‘백제’가 ‘동’과 ‘서’로 나뉘다
15. ‘비류’가 죽자 두 ‘백제’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
16. ‘백제’의 ‘온조’가 ‘마한’을 점령하다

제3장. ‘한무제(漢武帝)’의 침략 75
1. 야심만만한 ‘한무제’
2. ‘한무제’가 침략한 ‘조선’은 둘이다
3. ‘한무제’가 침략한 ‘조선’은 ‘동부여’다
4. ‘동부여’는 ‘강릉’이 아니다
5. 9년의 혈전 이후 ‘한무제’가 패배하다
6. ‘한무제’의 패배를 ‘사기’에 기록하지 않은 ‘사마천’
7. ‘한무제’가 뇌물로써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한4군’을 설치하 다
8. ‘한무제’가 재물로써 매수하여 ‘위만조선’을 멸망시켰다
9. ‘한4군’의 위치는 지금의 ‘요동반도’에서 찾아야 한다
10. 지명의 같고 다름을 구별하지 못 하는 탓에, ‘한4군’의 위치 에 대해 온갖 주장이 분분하다
11. 역사적 기록의 진위를 분별하지 못 하는 탓에, ‘한4군’의 위 치에 대해 온갖 주장이 분분하다

제4장. ‘계립령(鷄立嶺)’ 이남의 두 새 나라 91
1. ‘계립령’ 이남은 지금의 ‘경상남북도’의 총칭이다
2. ‘김수로’의 6형제가 여섯 ‘가라’를 건국하다
3. ‘신라’가 건국되다
4. ‘박혁거세’와 ‘석탈해’와 ‘김알지’
5. 마땅한 ‘고대사’의 원본이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6. ‘고구려사’나 ‘백제사’처럼 ‘신라사’도 완벽하지 못 하다
7. ‘사량부’의 ‘박혁거세’가 여섯 곳의 자치부를 통일하여 ‘신라’를 건국했다


제5편. ‘고구려’ 전성시대

제1장. 1세기 초 ‘고구려’의 국력발전과 그 원인 103
1. 1세기 이후 ‘고구려’와 ‘북부여’ 이외의 열국들은 쇠미해졌다
2. ‘중국’의 ‘정전제’는 ‘고구려’의 ‘균전제’를 모방한 것이다
3. ‘균전제’와 ‘정전제’의 차이
4. ‘왕망’이 ‘신’나라를 세우다
5. ‘왕망’에게 ‘흉노’가 대항하다
6. ‘고구려현’과 ‘왕망’의 패망
7. 사대주의자 ‘김부식’에 대하여
8. ‘왕망’이 패망한 까닭
9. ‘고구려’와 ‘한’나라 사이에 위치한 ‘선비족’
10. ‘선비족’의 상황

제2장. ‘태조왕(太祖王)’과 ‘차대왕(次大王)’의 ‘문화적 정치[文治]’ 115
1. ‘태조왕’의 계보
2. ‘차대왕’의 계보
3. ‘고구려’의 ‘선인’ 제도
4. ‘고구려’의 관료제도
5. ‘중국’의 ‘고대서’에는 ‘고구려’의 관직에 대하여 잘못 번역한 것들이 있다

제3장. ‘태조왕’과 ‘차대왕’이 ‘한족’을 몰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다 123
1. ‘한’나라가 부강하여 주변국들을 침략하다
2.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한’나라가 패하다
3. ‘고구려’가 ‘요동’ 땅을 회복하고서 ‘환도성’을 쌓다

제4장. ‘차대왕’이 왕위를 차지하다 127
1. 서자 ‘수성(차대왕)’이 왕위를 물려받지 못 해 불만을 갖다
2. ‘태조왕’이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주다
3. ‘삼국사기’의 역사 기술에 대한 비판

제5장. ‘차대왕’이 피살되고 ‘명림답부’가 전권을 휘두르다 133
1. ‘차대왕’이 ‘선인’ ‘명림답부’에게 살해당하다
2. ‘차대왕’이 피살된 까닭
3. ‘명림답부’와 ‘차대왕’에 관한 사실(史實)을 각 역사서들이 다 르게 기술하고 있다

제6장. ‘고국천왕’과 ‘을파소’ 141
1. ‘고국천왕’이 ‘을파소’를 등용하다
2. ‘을파소’가 어진 정치를 하다
3. ‘고국천왕’에 관한 ‘삼국사기’의 두 가지 오류


제6편. ‘고구려’의 쇠퇴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가 ‘중국’에게 패배하다 147
1. ‘고국천왕’이 죽고 둘째 아우 ‘연우’가 즉위하다
2. ‘한’나라의 ‘공손도’에게 ‘요동’을 빼앗기다
3. ‘고구려’와 ‘중국’의 ‘위촉오’ ‘3국’ 시대
4. ‘삼국사기’가 ‘중국’의 역사서를 베끼면서 내용을 변조하는 까 닭
5. ‘유주자사’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략하다
6. ‘중국’의 ‘상내약외(詳內略外)’의 역사 서술 방식
7. ‘고구려’ ‘동천왕’의 ‘평양 천도’

제2장. ‘고구려’와 ‘선비족’의 전쟁 157
1. ‘가비능’이 암살된 후 ‘선비’가 쇠약해지다
2. ‘선비’의 ‘모용외’가 ‘창려’에서 웅거하다
3. ‘북부여’의 전성시대를 이끈 ‘위구태왕’
4. ‘선비’의 ‘모용외’가 침략하자 ‘북부여’의 ‘의려왕’이 자결했다
5. ‘예’의 반란을 진압한 ‘안국군’이 사형당하다
6. ‘모용외’의 침략을 ‘고노자’가 막아내다
7. 교만한 ‘봉상왕’을 ‘신가’ ‘창조리’ 등이 탄핵하다
8. ‘봉상왕’이 탄핵되고 ‘미천왕’ ‘을불’이 왕위에 오르다
9. ‘미천왕’에 관한 역사
10. ‘미천왕’이 죽고 ‘고국원왕’이 왕위를 잇다
11. ‘선비’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략하다
12. ‘고구려’가 가장 쇠퇴해진 시기를 맞다


제7편.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의 충돌

제1장. ‘고구려’와 ‘백제’의 유래 173
1. ‘고구려’의 ‘고추모’와 ‘백제’의 ‘소서노’
2. ‘고구려’가 쇠퇴하자 각 나라들이 독립을 시도했다
3. ‘백제’가 강성해지기 시작하다
4. ‘고구려’의 남진(南進) 정책에 따라 ‘백제’와 충돌하게 되다

제2장. ‘백제’의 융성과 ‘고구려’의 쇠퇴 177
1.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침략하자 ‘백제’의 ‘근구수왕’이 나아가 싸웠다
2. ‘백제’의 ‘근구수왕’이 승리하여 ‘대동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다
3. ‘백제’에게 패배하여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환도(還都)하다
4.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을 빼앗다
5. ‘백제’가 ‘중국’ 대륙 동부에서 넓은 땅을 차지하다
6. ‘중국’ 역사가들이 ‘백제’ ‘근구수왕’의 ‘중국’ 점령 사실을 대부 분 삭제해버렸다
7. ‘일본사’는 거의 ‘근구수왕’의 ‘백제사’를 흉내 낸 것이다

제3장. ‘광개토대왕’의 북진정책과 ‘선비’ 정복 185
1. ‘근구수왕’ 이후 ‘백제’가 점차 쇠약해졌다
2.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옛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하다
3. ‘삼국사기’의 연대가 불명확하므로 잘 분별하여야 한다
4. ‘광개토대왕’이 ‘중국’의 ‘감숙성’ 서부까지 원정하다
5. ‘백제’의 속국이던 ‘왜’가 ‘백제’를 침범하다
6. ‘고구려’와 ‘신라’가 한편이 되고, ‘백제’와 ‘왜’가 한편이 되다
7. ‘광개토왕’은 늘 북쪽의 영토 확장을 목적하였다
8. ‘진서’ 이외에 ‘광개토대왕’에 관한 기록이 없는 까닭
9. ‘광개토대왕’ 비문에 ‘선비’ 정벌에 대한 문구가 없는 까닭

제4장. ‘장수태왕’의 남진정책과 ‘백제’의 천도 193
1. ‘장수태왕’의 ‘북수남진주의’
2. ‘장수왕’이 여러 나라를 이용하여 ‘위’나라를 견제하다
3. ‘장수왕’은 전략가가 아니라 음모가였다
4.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점령하다


제8편. 남방 여러 나라와 ‘고구려’의 공수동맹

제1장. 네 나라의 연합군과 ‘고구려’의 퇴각 201
1. ‘백제’와 ‘신라’의 관계
2.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다
3. ‘신라’, ‘백제’, ‘임나’, ‘아라’가 동맹하여 ‘고구려’에 항거하다
4. 남방 네 나라의 동맹이 40년 동안 지속되다

제2장. ‘백제’의 ‘위’나라 격퇴와 해외 식민지 획득 207
1. ‘백제’의 ‘동성대왕’이 즉위하다
2. ‘위’나라가 ‘백제’를 침략하다
3. ‘백제’ ‘동성왕’이 해외 식민지의 터를 닦다
4. ‘동성왕’ 때의 해외 식민지를 ‘성왕’ 때에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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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3

도서정보 : 신채호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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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 삼국 혈전의 시작

제1장. ‘신라’의 발흥
1. ‘화랑’은 ‘신라’ 발흥의 원동력이다
2. ‘화랑’에 관한 ‘삼국사기’ 본문
3.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화랑’에 관한 대부분을 삭제해버렸 다
4. ‘화랑’에 관한 ‘삼국유사’ 본문
5. ‘신라’의 ‘화랑’은 ‘고구려’의 ‘선배’를 모방한 것이다
6. ‘화랑’은 ‘신선’을 숭상하는 ‘선도’가 아니다
7. ‘화랑도’는 곧 ‘풍류도’로서 음악과 시에 전념했다
8. ‘신가라’의 멸망
9. ‘안라가라’의 멸망
10. ‘밈라가라’의 멸망
11. ‘구지’, ‘별뫼’, ‘고링’, 세 ‘가라’의 멸망

제2장. 두 령(嶺) 이북 10 고을의 쟁투
1. ‘무령왕’의 ‘백제’ 황금시대
2. ‘고구려’ ‘안장왕’과 ‘개백현’의 미녀 ‘한주’
3. ‘신라’의 정략가 ‘김이사부’
4. ‘신라’의 정략가 ‘김거칠부’
5. ‘고구려’ ‘양원왕’이 ‘장안성’으로 서울을 옮기다
6. ‘장안성’은 지금 ‘요녕성’의 ‘봉황성’이다
7. ‘신라’는 가까운 ‘백제’를 먼 ‘고구려’보다 더 미워했다
8. ‘철령’과 ‘죽령’ 이북의 10 고을
9. ‘진흥왕’ 때 ‘신라’ 영토가 가장 넓어지다
10. ‘진흥왕’과 ‘우륵’
11. ‘고구려’ ‘평원왕’과 바보 ‘온달’
12. ‘주’나라 ‘무제’가 ‘고구려’를 침략하다
13. ‘온달전’의 의미

제3장. 동서(同壻) 간의 전쟁
1. ‘백제’의 ‘서동’과 ‘신라’의 ‘선화’
2. ‘서동’과 ‘선화’가 결혼할 수 없는 까닭
3. ‘백제’ ‘위덕왕’과 ‘신라’ ‘진평왕’이 결혼을 허락하다
4. 두 사람의 결혼 뒤에, 두 나라는 매우 친밀했다
5. ‘백제’의 ‘무왕’ ‘서동’이 ‘신라’를 침략한 까닭
6.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문명’의 남편 ‘김용춘’
7. ‘동서전쟁’ 당시 인민들의 상황
8. 두 개인의 이기주의에 의해 발생한 ‘동서전쟁’


제10편.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제1장. ‘임유관(臨渝關)’ 싸움
1. ‘동아시아’의 양 대 세력 ‘조선’과 ‘지나(중국)’
2.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한 원인
3. ‘수’나라에 응원을 청한 ‘백제’와 ‘신라’의 한심스러움
4. ‘수’나라 ‘문제’가 보낸 선전포고문
5. 전쟁이 시작되다
6. ‘수’나라가 ‘고구려’에게 패하다

제2장. ‘살수’ 싸움
1. ‘수’나라 ‘양제’가 다시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하다
2. ‘양제’가 대규모 군대를 편성하다
3.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로 침략해 들어가다
4. ‘고구려’의 ‘을지문덕’
5. ‘건무’의 전공이 ‘을지문덕’보다 크다
6. ‘우문술’의 군대가 ‘살수’에서 크게 패하다
7. ‘살수대첩’은 세 번의 전쟁을 통칭한다

제3장. ‘오열홀(烏列忽)’, ‘회원진(懷遠縝)’ 싸움과 ‘수’의 멸망
1. ‘양제’가 다시 ‘고구려’를 침략하다
2. ‘을지문덕’이 ‘중국’을 점령하자고 주장하다


제11편.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제1장. ‘연개소문’의 서쪽 유람과 혁명
1. ‘연개소문’이 ‘중국’ 정벌을 계획하다
2. ‘갓쉰동’의 이야기
3. ‘연개소문’과 ‘당태종’
4.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
5. ‘연개소문’의 ‘북진남수’와 ‘건무’의 ‘북수남진’
6. ‘연개소문’이 ‘당’나라 정벌을 주장하다
7. ‘연개소문’이 ‘살이’의 직위에 오르다
8. ‘삼불제국’의 밀정이 ‘고구려’를 염탐하다
9. ‘연개소문’을 체포하기로 하다
10.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다
11. ‘연개소문’이 ‘보장왕’을 옹립하고서 전권을 장악하다
12. ‘연개소문’이 ‘당’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나 연합할 만한 주변국 이 없었다

제2장. ‘요수(遼水)’ 싸움
1. ‘중국’의 역사서는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삭제하는 ‘춘추필법’ 에 의하여 기술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제3장. ‘안시성’ 싸움
1. ‘수서’와 ‘당서’의 진위에 관하여
2. 거짓으로 판단되는 기록들
3. ‘중국’의 춘추필법적 기록과 ‘조선’의 노예근성적 편집
4. ‘당태종’의 전략
5. ‘연개소문’의 전략
6. ‘당태종’이 출정하다
7. ‘당태종’이 ‘안시성’을 공격하다
8. ‘안시성주’ ‘양만춘’과 ‘오골성주’ ‘추정국’
9. ‘당태종’이 도망가다
10. ‘당’나라 역사서의 사리에 맞지 않는 기록들
11. 기록이 모순되는 까닭
12. ‘사대주의’와 ‘춘추필법’
13. ‘당태종’에 관한 ‘중국’ 역사책의 기록은 허위뿐이다
14. ‘연개소문’이 외국 정벌에 성공한 근거
15. ‘연개소문’에 관한 ‘삼국유사’ 본문
16. ‘연개소문’이 ‘도교’를 수입하고, ‘천리장성’을 축조했다 는 것은 거짓이다
17. ‘연개소문’에 관한 ‘고려고기’의 기록도 거짓이다
18. ‘연개소문’에 관한 ‘노상운’의 증언
19. ‘연개소문’이 죽은 해
20. ‘연개소문’의 맏아들 ‘천남생’의 족보를 기록한 ‘묘지(墓誌)’
21. ‘연개소문’에 관한 거짓 기록이 작성된 까닭
22. ‘연개소문’은 혁명가였다
23. 후대의 용렬한 사대주의 역사가들


제12편. ‘백제’의 강성과 ‘신라’의 음모

제1장. ‘백제’의 ‘부여성충’과 ‘척야’
1. ‘백제’의 왕족 ‘부여성충’
2. ‘의자왕’이 ‘성충’을 ‘상좌평’에 임명하다
3. ‘신라’의 ‘김유신’이 ‘가잠성’을 공격하자, ‘백제’의 ‘의자왕’이 ‘대야주’를 공격했다
4. ‘의자왕’이 ‘성충’을 동맹을 위한 사신으로 ‘고구려’에 보내다
5. ‘신라’의 ‘김춘추’가 끼어들었지만, ‘성충’이 ‘연개소문’과 동맹 을 맺다
6. ‘성충’이 ‘임자’의 참소로 ‘의자왕’으로부터 박대당하다

제2장. ‘김춘추’의 외교와 ‘김유신’의 음모
1. ‘백제’에 대한 복수를 도모하는 ‘김춘추’
2. ‘선도해’가 ‘김춘추’에게 알려준 ‘거북과 토끼 이야기’
3. ‘김춘추’가 ‘당’나라와 동맹한 까닭
4. ‘김유신’의 출생에 관하여
5.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
6. 과장된 ‘삼국사기 김유신전’의 기록
7. ‘김유신’에 대한 평가
8. ‘조미곤’과 ‘임자’의 정치공작

제3장. ‘부여성충’의 자살
1. ‘금화’와 ‘임자’의 참소
2. ‘성충’에 대한 ‘임자’의 평가
3. ‘윤충’의 자살
4. ‘성충’의 자살
5. ‘탄현’과 ‘백강’에 관하여

제4장. ‘신라’와 ‘당’ 두 나라 군사의 침입과 ‘백제 의자왕’
1.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입
2. ‘김인문’과 ‘소정방’과 ‘김유신’
3. ‘부여흥수’에게 계책을 묻는 ‘의자왕’
4. ‘흥수’의 계책을 부정하는 ‘임자’
5. ‘부여계백’이 ‘신라’ 군사에 대적하다
6. ‘반굴’과 ‘관창’의 전사
7. ‘의직’의 전사
8. ‘조룡대’와 ‘백마강’
9. ‘김유신’과 ‘소정방’의 주도권 경쟁
10. 왕자 ‘융’의 항복과 ‘낙화암’
11. 포로가 된 ‘의자왕’과 왕자 ‘융’
12. ‘백제’ 정벌 후 ‘신라’까지 정벌하려고 하는 ‘소정방’
13. 유교의 명분주의에 대한 비판

제5장. ‘백제’ 의병의 봉기
1. ‘의자왕’이 붙잡힌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2. 의병이 흥기한 지역
3. 각 지역 의병의 활동 상황
4. ‘백제’ 의병 ‘자진’과 ‘복신’
5. ‘부여복신’의 연전연승

제6장. ‘고구려’의 ‘당군’ 격퇴와 ‘백제’ 의병의 흥기
1.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의 국내정치
2.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와 ‘당’의 관계
3. ‘백제’의 멸망에 따른 ‘고구려’의 멸망
4. ‘평양’의 ‘당나라군’과 ‘웅진’의 ‘신라군’의 패전
5. ‘백제’ ‘태산성’과 ‘우술성’의 함락
6. ‘백제’의 다물운동

제7장. ‘부여복신’의 죽음과 ‘고구려’의 내란
1. 회군하려는 ‘당’나라 군대
2. 배신자 ‘자진’을 처형함
3. ‘복신’을 숙청하기로 모의함
4. ‘복신’ 숙청사건에 관한 역사적 기술
5. ‘복신’의 죽음 이후 ‘풍왕’도 멸망함
6. ‘흑치상지’와 ‘사타상여’의 배신
7. ‘풍왕’의 ‘서백제’와 왕자 ‘융’의 ‘남백제’로 나뉘다
8. ‘서백제’마저 멸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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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2집

도서정보 : 지경주 | 2018-06-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는 이드치(이야기&드라마치료) 연구소를 운영하는 지경주가 만든 방송입니다.

연구하지 않는 이름뿐인 연구소가 되지 않기 원하고, 연구소의 산물을 공식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2016년 6월 25일 첫 방송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2018년 5월 1일 제50회 방송을 올렸습니다.

평균 30분 분량의 녹음 방송을 위해, 원고를 작성하고 녹음하고 편집하면서,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는 저의 경험과 생각과 지식을 점검하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팟캐스트 내용을 문서화하면 좋겠다는 일부 요청을 받았고, 공식적으로 문서화 된 연구소 산물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팟캐스트 대본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번 제2집은 제11회부터 제20회까지 방송대본과 2016년 상반기에 한시적으로 진행했던 ‘이드치연구소 글모음’ 원고 일부를 추가했습니다. 지경주가 작성한 글 중에는 이번 출판을 위해 삭제, 보완, 수정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사이코드라마 창시자 모레노 부부와 드라마치료를 계속 알아가고 배우는 중입니다. 드라마치료와 정신건강에 관심 있는 분들께 대본집이 도움 되기를 희망하고, 대본집이 드라마치료와 예술치료의 활성화에 도움 되기를 희망합니다.

팟캐스트 이드치연구소 제2집 출판을 위해, 원고를 기부해주신 이드치연구소 활동가 원제연, 권명숙, 김태현 선생님 고맙습니다.

연구소 홈페이지(idchi.or.kr)나 이메일(idchi@idchi.or.kr)로 여러분의 귀한 소감, 생각, 의견을 보내주시면 감사히 잘 읽고 반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2018년 6월 1일 지경주 -

구매가격 : 10,000 원

보수와 진보의 정치학 제1권 무법률의 국제정치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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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國際政治는 무엇인가 11
John Rawls, 만민법, Carl Schmitt, 정치적인 것의 개념, 구성주의,
Paul W. Schroeder, Hegel, Linklater, Wendt, harm principle, 군사분쟁,
경제제재, 시스템 이론, major power, Hans Kelsen, 國際法

2. 自由主義 國際政治學 31
recognition, 臺灣의 實存性 認定, 北韓의 尊嚴性 인정, 日本의 威信 인정,
John Ruggie, anarchy, international regimes, governance,
Peace of Westfalen, John Maynard Keynes

3. 現實主義 국제정치학 41
E. H. Carr, Reinhold Nieber, Hans Morgenthau, Christian Realism,
Thukydides, prudence, Kenneth N.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John Mearsheimer, hard power, soft power, 兩極體系, 多極體系,
neo-realism, neo-liberalism, high politics, low politics,
The Twenty Years" Crisis

4. Energy와 金融 그리고 국제정치 55
에너지 전쟁, 석유, 천연가스, 에너지 안보, Oil Pipeline Diplomacy,
一帶一路, shale gas, Sovereign Wealth Fund, New Economy,
Karl Polanyi, double movement, Monetary Power, G20,
세계금융은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





5. 戰爭과 覇權 그리고 국제정치 79
Hugo Grotius, Peace of Westfalen, Richard Tuck, A. J. Muste,
청일전쟁, 한국전쟁, 抗美援朝, Humanitarian intervention,
리비아, 북한, 교토의정서, 覇權國 미국,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MD : Missile Defence, 우크라이나 사태, global terrorism, 9·11,
security dilemma, failed states

6. Propaganda와 外交 그리고 국제정치 107
Goebbels, Lichtspielgesetz, Propagandakrieg, Waffenkrieg, 內鮮一體,
Meldungen aus dem Reich, 이광수, 대한뉴스, 조선중앙통신, 熱狂의 政治,
善惡의 二分法, 리비아 사태, 카다피 惡魔化, 言語鬪爭, relative identity

7. 韓國의 국제정치학 133
고려와 거란, 澶淵之盟, 朝貢, 冊封, 李滉, 聖學十圖, 性理學, 士禍, 帝王學,
熱河日記, 北學, 朴珪壽, 華夷觀, 斥邪論, 萬國公法, 俞吉濬, 金允植, 閉門,
解禁, 屬邦, 主權, 崔南善, 安在鴻, 다사리, 弘益人間, 金九, 朴憲永, 呂運亨,
李承晩, 朴正熙, smart voting

8. 한국의 국제정치 정책 155
丁卯胡亂, 仁祖, 名分, 大義, 當爲의 정치, 實際의 정치, 大韓國國制, 高宗,
tyranny, 恐俄論, 한국전쟁, 臨政, 贊託, 反託, 民族主義, 韓日協商, 平和線,
한일대륙붕협정, 한일위안부합의, FTA : Free Trade Agreement, 世界化,
regionalism, multilateralism, bilateralism, 韓美同盟, 盧武鉉, 李明博,
wartime operational control, 북한 레짐 체인지





9.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173
禮, 儒敎, 中華, 夷狄, 事大字小, 冊封, 天命, 天子, 厚往薄來, 冷戰 終熄,
日本 帝國主義, 獨島, 高句麗, 實效的 支配, regime, 남중국해, ASEM,
金正恩, 並進路線, Greater Tumen Initiative, 長吉圖, 朝中同盟,
勢力轉移理論, 勢力均衡理論, 福澤諭吉, 近衛文麿, 梅棹忠夫, 田中明彦

10. 美國과 국제정치 197
中國의 浮上, 反共, Richard Nixon, 脫冷戰, Latin America, 從屬, 脫美,
John Fitzgerald Kennedy, Alliance for Progress, Bricker Amendment,
陰謀論, 祭政一致, 政敎分離, 基督敎 根本主義, 淸敎徒主義,
US Rebalancing Strategy, power as influence, 21세기의 美國 帝國

11. 中國과 국제정치 213
魏源, 中體西用, 중국의 정치이데올로기, 하나의 중국, 企業集團, 兩岸關係,
權力經濟, 一帶一路, 國際政治經濟新秩序, 에너지 외교정책, 習近平, 中國夢,
新型大國關係

12. 北韓과 統一 그리고 국제정치 231
점진적인 개혁개방 및 체제전환, food politics, 先軍政治, CAS Program,
反共主義, 反帝國主義, 6·15 남북공동선언, status-quo, 핵확산,
유라시아 실크로드, New Great Game, 이데올로기 외교, 實利 외교

구매가격 : 3,000 원

한민족의 철학적 기원 무속철학사상 샤머니즘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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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 샤머니즘 9
무속, 보굴, 오스탸크, 사모예드, 퉁구스족, 우랄 알타이系, 유카기르, 축치,
무속철학, 코리약족, 마법사, 치유자, 제사장, 시인, 기적을 행하는 사람,
무속철학사상, 신비주의자, 바남, 엘리아데, 영육일치, 단군신화, 구구가,
상재, 음악, 유교, 불교, 도교, 천인합일, 화랑, 칼 융, 뉴허량, 최치원, 풍류도,
변재, 형신통일, 삼태극, 동이족, 마나존, 삼신산, 굿거리, 애니미즘, 한, 빙의,
유재, 게세르 문화, 신기, 3수 분화 세계관, 법기, 오방색, 방선도, 예기, 옥기,
속세를 떠난 호젓함, 토템이즘, 삼재, 구구소한도, 음양오행, 구구소한시도,
율동적인 춤, 몽고비사, 파격,황로도가, 이능화, 산신신앙, 접신, 판굿, 천부인,
노자도덕경, 배상제회, 천리교, 동학, 신비체험, 익살, 십장생, 빙감, 놀이,
홍산문화, 빙입, 김정설, 일탈, 강신무, 폐풍, 세습무, 굿, 예술, 농악, 반봉건,
무위이화, 음사, 엑스터시, 카타르시스, 망아, 입무, 다뉴경, 청신, 오신, 송신,
불연기연, 홍익인간, 액막이, 살풀이, 씻김, 미소기하라이, 상징, 저승, 은유,
해학, 아마테라스오미가미, 트랜스, 여백, 파토스, 기독교, 저승사자, 춤, 한류,
해원, 에토스, 환희, 야타노카가미, 이승, 타나토스, 우울, 심리치료, 민중종교.

2. 문학적 샤머니즘 91
도솔가, 건국신화, 지모신, 고조선본풀이, 곡모신, 타계 여행, 귀향, 유목문화,
혜성가, 데메테르, 하백, 주몽, 레아, 키벨레, 천손강림신화, 산해경, 혼불,
원가, 니니기노미코토, 아바이, 벨리그테, 길흉화복의 전달자, 귀소, 영혼론,
구지가, 영웅서사시, 부리야트, 시조탄생의 예고자, 토지, 곡식의 전달자,
바리공주, 영혼의 인도자, 혼백론, 이마칸, 질마재 신화, 백석, 죽음, 바리데기,
당금애기, 일선동조론, 김동리, 무격, 광녀, 황순원, 김약국의 딸들, 최명희,
영웅의 조력자, 무녀도, 바위, 황토기, 박경리, 달, 광기, 역마, 무당, 오태석,
징조의 예고자, 장마, 자본주의, 황석영, 거울, 강은교, 환상성, 고향, 판타지,
태양의 인도자, 윤흥길, 서정주, 사회주의, 미신타파, 모노, 문제적 인간 연산,
이제하, 모노노아와레, 정지용, 사제권, 위안부, 뿌리, 영력, 츠쯔젠, 비극성.

3. 역사적 샤머니즘 141
암각화, 생식주술, 우즈베키스탄, 가야사, 실크로드, 거란, 휘파람, 용신신앙,
남성 중심, 다산 기원, 삼신산, 키르키즈스탄, 신라사, 흉노, 요사, 금간옥첩,
천산, 알타이, 카자흐스탄, 칠지도, 한무제, 몽골, 신라향가, 화랑, 김유신,
환인, 한혈마, 천마총, 입산수도, 주몽,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하느님, 하품,
환웅, 미륵보살, 대일경, 오환, 선비, 혁거세, 하나님, 공수, 안수, 타브가치,
여여, 돌궐, 위구르, 허튼굿, 탈혼, 내림굿, 선교, 풍기문란, 승천, 성령강림,
한울님, 석탈해, 솟을굿, 치병의례, 산신제, 공동체 결속, 두신, 생동적 타자,
혹세무민, 기우제, 개신교, 마마배송굿, 별신제, 손님굿, 북한 무당, 연대.

4. 동양문화의 샤머니즘 163
시베리아, 보조령,무복, 바이칼 알흔섬, 아픔, 우주수, 중간 세계, 억울함,
출루우트, 태양광선, 북방유목문화, 에벤키족, 세계수, 산악 숭배, 튀르크족,
신격화, 순록, 소, 반인반신, 사슴, 샤먼 북, 말, 매, 독수리, 12지신, 종달새,
의인화, 반인반수, 비파형 청동검, 사슴뿔, 해원, 사마사리, 북두칠성, 상생,
암각화, 자작나무형 금관, 빗살무늬 토기, 가가라, 점성술, 순록, 몽골 샤먼,
산양, 맘모스, 돌궐족, 위구르족, 텡그리 윌겐, 수일라, 말레이시아 사면,
키르기즈족, 네오 샤먼, 큽착족, 사하족, 미얀마 샤먼, 하늘 사람, 투바족,
북극성, 페레스트로이카, 카자흐족, 만차르 설화, 혼종성, 정령, 나나이족,
바쉬쿠르트족, 곰, 호랑이, 독수리, 집단무의식, 늑대, 슈겐도, 히말라야 샤먼,
사마나 무용, 라마교, 대만 샤먼, 수신기, 법술, 신들림, 습합, 현세구복.
5. 서양문화의 샤머니즘 195
헝가리, 탈혼망아, 삼위일체, 인생고비, 쿠훌린, 통과의례, 딸또시, 춤, 예이츠,
초자연성, 출생의례,결혼의례,우주목, 타로, 하늘의 원주, 주술, 장례의례,
몽환상태, 분리의례, 트로이차, 크리스트교, 욕망, 포모리안, 음악, 전이의례,
신병, 가톨릭,켈틱 샤머니즘, 점성술, 칼빈교,태양의 기호, 세계축, 루터교,
신설, 미르체아 엘리아데, 마녀 사냥, 예술치료, 자크 라캉, 청금석 부조,
방황하는 엥거스의 노래, 폭력성, 풀이, 렘브란트 조명, 연극치료, 팀버튼,
잔혹극, 할로윈, 웃음, 슬리피 할로우, 자화상, 몽환적 미장센, 예술가 샤먼.

구매가격 : 3,000 원

선종의 철학사상 선불교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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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선종 9
마조, 문화대혁명, 육조혜능, 승조, 열반경, 남종, 북종, 노장철학, 위진현학,
도생, 송명리학, 불립문자, 교외별전, 신수, 구산선문, 여랭장, 자성청정심,
능가경, 육조단경, 징관, 종밀, 파불정책, 임제, 조주, 불국토, 구양수, 모택동.

2. 한국의 선종 23
여래장사상, 보조국사, 아미타신앙, 궁예, 미륵신앙, 정토신앙, 화엄종, 선종,
당나라 유학, 실상산문, 가지산문, 홍척, 최치원, 부도탑, 철감국사, 조사선,
전륜성왕, 왕즉불, 지방호족, 태조 왕건, 마애불상, 신라즉불국토, 선교대립,
의천, 천태학, 화엄학, 법화삼매, 선교일치, 가지산문, 선문보장록, 무신정권,
간화선, 공적영지, 돈오돈수, 태고보우, 나옹혜근, 대승불교, 밀교, 억불론,
도첩제, 문정대비, 백용성, 대각교, 키요자와 만시, 최남선, 법안종, 조계종.

3. 불교경전과 선불교철학 83
깨침, 금강경, 금강삼매경론, 무문관, 육조단경, 불이, 삼장, 아미타경, 법화경
능엄경, 유마경, 능가경, 돈오, 점수, 언구, 방할, 고승전, 전등록, 종경록.

4. 선불교의 철학사상 101
원효, 금강삼매, 일미관행, 심사불이, 무념무수, 신해수증, 일심, 득통기화,
이통현, 청량징관, 삼성원융, 생사일여, 유가행, 화두, 묵조, 진언, 만다라,
선림승보전, 명도집설, 근사록, 주역선해, 사량좌, 성체심용, 작용시성.

5. 서양철학과 선불교철학 113
보들레르, 도취, 역전가능성, 깨달음, 예이츠, 영혼, 달마, 혜능, 신수, 승찬,
후설, 하이데거, 에크하르트, 비트겐슈타인, 데카르트, 칸트, 스즈키, 호적,
프롬, 분석심리학, 프로이트, 간화선, 불이론, 다자인, 홍인, 위빠사나.

6. 공안, 화두 123
공사상, 경덕전등록, 당송팔대가, 소식, 직지인심, 견성성불, 선문답, 무정설법,
효와, 법신불, 무소주, 회광반조, 석지장, 천태지의, 아함경, 청정도론, 벽암록,
몽산법어, 대해종고, 차화두, 달마도, 유위법, 견문각지, 화두의정, 무분별지.

7. 돈오, 점수, 견성 133
도생, 돈점논쟁, 규봉종밀, 반야학, 불이사상, 오종, 대오, 득도, 득불, 홀연,
활연, 오도, 득오, 대각, 성불, 선문정로, 구마라집, 유가사지론, 능엄경,
구경지, 일행삼매, 사구게, 반야지지, 하택신회, 무념, 무상, 무주, 정혜등학,
하택신회, 즉심즉불, 평상심, 대승기신론, 돈수판사, 견불삼매, 중생구제.

8. 조사, 선사 143
조사선, 마조도일, 유마경, 화엄경, 열반경, 즉심시불, 평상심시도, 돈오견성,
조주어록, 임제록, 살불살조, 무위진인, 대혜종고, 원오극근, 묵조선, 간화선,
이심전심, 보조지눌, 이입사행론, 코잔지, 화엄연기, 진감선사, 도의국사,
도선, 보림전, 혜심, 안심법문, 만공, 불립문자, 경허, 교외별전, 선교회통.

9. 회화, 예술 165
동기창, 남종화, 시정화의, 혜능, 시선일률, 시화일률, 감필화법, 기운생동,
왕유, 신회, 선취, 정묵관조, 일념, 무념, 일획, 일화, 화어록, 무위자연,
사혁, 선종화, 석도, 선정비구, 불교미술, 고승진영, 고유섭, 백남준.

10. 문학 185
왕유, 시불, 선시, 선의경, 강창문학, 소식, 인생여몽, 해탈, 김정희, 정약용,
오도시, 무심무념, 염화미소, 열반시, 선교겸수, 침굉, 박세당, 이규보.

11. 다도 215
다경, 육우, 음다문화, 다시, 선시, 차문화, 주자가례, 일심, 서산휴정, 선풍,
다선일미, 다산, 농선일치, 초의, 다촌제도, 헌다의식, 추사, 선다일여, 아암,
범해, 선원청규, 김시습, 원융무애, 끽다거, 동다송, 맑고 향기롭게, 법정.

12. 선수행 247
자력수행, 위빠사나, 대각, 정토수행, 아미타불, 해조음, 선정바라밀, 마하가섭,
자유자재, 신유학 수행론, 이근원통, 직지, 타력신앙, 무심선, 미발, 염불,
범음, 정혜쌍수, 관음, 성적등지문, 입도안심, 총카파, 카말라쉴라, 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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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악마의 정치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06-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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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양문화의 악마 이미지 7
도깨비, 여우 이미지, 달 이미지, 게세르 서사시, 프라뜨라이삐독, 인신공양,
희생양 원리, 天宮大田, 끄르슈나, 아수라, 八部衆, 빙감 체험, 최제우,
임노월, 미시마 유키오, 최인훈, 죽음충동

2. 서양문화의 악마 이미지 37
뱀, 우로보로스, 龍, 가면극, 그리스 신전, 아프리카 조각, 마녀사냥, 교묘함,
실낙원, 사탄, 운명론, 데레사, 세일럼의 마법사건, 뱀파이어, 파우스트, 괴테,
토마스 만, 햄릿왕의 유령, 셰익스피어, 그로테스크, 醜, 아이러니, 위버멘쉬,
영원회귀, 차라투스트라, 악마론, 레르몬또프, 죄와 벌, 종말론

3. 악마 이미지의 종교적 활용 83
붓다와 마라, 라마불교, 아담의 원죄, 유다, 루시퍼, 카타르파, 죽은 혼,
고골, 칼뱅, 유대인, 이슬람, 적그리스도, 밤베르크묵시록, 베오울프, 후스,
백조, 루터, 사막, 샤를르 드 푸코, 칼 바르트, 속죄론, 귀신들림, 神人

4. 악마 이미지의 문화적 활용 125
메피스토, 히에로니무스 보스, 넌센스, 루이스 캐럴, 폴 고갱, 아방가르드,
도스토예프스키, 비극, 몽상가, 호프만, 동일성, 시뮬라크르, 二重 自我,
헤세, 뫼비우스, 변신, 이데올로기, 하이네, 사드, 플로베르, 조셉 콘라드,
마키아벨리, 군주론, 문명과 야만, 아서 밀러, 월터 스코트, 피터 블레이크,
노스탤지어, 에로스, 모라비아, 蚩尤, 빨갱이, 카오스, 잔 다르크, 癩病,
사이코패스, 디아볼리즘, 에로티시즘, 反共, 최승호, 수렁, 부패, 포크너, 배회,
신명, 그리스 미술, 클로소프스키, 존 듀이, 들뢰즈, 미셸 푸코





5. 악마 이미지의 정치적 활용 209
헝가리민족, 유대민족, 디아스포라, 헌팅턴, 샤일록, 골렘, 종교개혁,
엥겔스, 루터, 무정부상태, 권력, 주홍글씨, 율법주의, 광대, 서커스,
마리오네트, 무질서, 추락, 정신착란, 스탈린, 소비에트, 북한, 불량국가,
홀로코스트, 트라우마, 식민지문화, 아나키스트, 마르크스주의자, 다다이즘,
유신체제, 박정희, 프로파간다, 카다피, 후세인, 이스라엘, 파키스탄,
내부식민주의, 제3세계, 미국의 마니교적 성벽, 인디언, 강자의 역사,
빈 라덴, 프랑켄슈타인,

6. 악마 이미지의 현대적 활용 259
쇼핑, 보드리야르, 이미지 소비, 아도르노, 야누스, 데몬, 미디어, 욕망,
팜므파탈, MMORPG, 롤랑 바르트, 영웅, Goth, 판타지, 좀비, 언캐니,
해골이미지, 세기말, 레이디 가가, 포스트모더니즘, 이블 아이, 희생자,
귀신 캐릭터, 문화콘텐츠, 반사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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