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재

도서정보 : 고봉진 | 2018-09-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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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재란 무엇인가? 책을 읽고(독서) 중심문장을 찾아 옮겨 쓰고(초서) 내용을 체화하여 글쓰기를 실천하며(저서) 비로소 끝없는 배움을 위한 실천적 학문 탐구(무자서)를 하게 된다. 수불석권(手不釋卷)과 필일오(必日五)는 ‘인생살이’에도 적용됩니다. 인생이라는 책은 장편소설과도 같습니다. 그 책에는 인생의 굴곡이 있고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죠. ‘인생이라는 큰 책’ 읽기와 쓰기를 게을리 하지 마세요. ‘인생이라는 큰 책’은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고 제일 중요한 책입니다. -머리말 발췌 법학과 교수 고봉진의 《사서재―읽고 옮겨쓰고 글쓰고 공부하는 삶》는 독서를 발판으로 저자이자 실천적 인문학도가 되는 법을 소개한다. 1000여 권의 초서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바를 진솔한 에피소드로 이야기한다. 실천적 인문학도로서의 삶이 궁금하다면 한번 살펴보자.

구매가격 : 9,000 원

탁월한 사유의 시선(개정판)

도서정보 : 최진석 | 2018-09-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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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수업, 우리가 기다려온 통찰!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출간!


◎ 도서 소개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철학 없는 시대를 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 혁명!

★★★★★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 통찰로 가득한 매 문장들이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 멈추기 힘들 만큼 흡입력 있는 철학서!

철학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뒤흔들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이 출간됐다.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철학의 탄생과 의미를 파고들며,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던 이 책은, 우리에게 ‘인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새롭게 출간된 개정판은 신선한 디자인과 양장 제본으로 소장 가치를 더했으며, 최진석 교수의 명료한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도록 문장과 내용을 면밀히 손보았다. 또한 초판이 출간된 이후에 전개된 국내 사회 정치의 현실과 전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한 소론까지 서두에 추가하여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동하며, 행동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철학은 개인에게는 꿈을, 국가에는 미래를 담보한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높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좀 더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




◎ 도서 소개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실제 삶의 영역과는 다른 학문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왔다. 우리는 철학을 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철학이란 모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왔고 직접 철학을 생산해본 경험도, 생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최진석 교수는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직접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치 또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철학의 4단계

진정한 철학은 ‘부정(否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냐”는 최진석 교수의 말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해결책을 가진 선언이 되는 이유다.


◎ 본문 중에서

앎이 늘어갈수록 내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삶의 의미가 우주의 넓이로 확장되는 것이 바로 완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상하는 능력으로 힘을 발휘하며 사는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일을 동양의 선현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 등의 어법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보다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한다. (6~7쪽)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 좌판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눈뜨고 이렇게 펄떡거릴 뿐이다. (7쪽)

철학 수입자들은 창백한 이론을 진실이라고 하지, 울퉁불퉁한 역사와 육체를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사유를 사유하려 들지 세계를 사유하려 들지 않는다. 이와 달리 철학 생산자들은 직접 세계를 사유한다. 사유를 사유하지 않는다. (9~10쪽)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수입한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야기한다. (32쪽)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이다. 이 높이에서는 기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도전할 수 있다. (35쪽)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한다. 전면적인 부정이 새로운 생성을 기약한다. 새로운 생성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여는 일이다. (74~75쪽)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이다.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인 높이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108~109쪽)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장르를 만들지 못하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그 힘으로 앞서나간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된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이다. (114~115쪽)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118쪽)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항상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서 고도의 추상적인 이론으로 구조화한 체계다. (144~145쪽)

반역은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것, 이미 있는 것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더 궁금해하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도전, 이것이 반역의 삶이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다. (153쪽)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으로만 ‘다음’이나 ‘너머’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197~198쪽)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온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214쪽)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한다.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무아(無我)’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 다. (…) 자기살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나’, 이런 참된 자아를 독립적 주체라 한다. (216~217쪽)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한다. (250쪽)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 정해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수 없다. 자기만의 진리를 구성해보려는 능동적 활동성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다. (281쪽)

구매가격 : 16,800 원

스펙보다 스피치다

도서정보 : 신유아 | 2018-09-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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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학교 학원 회사 아르바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두 면접을 외친다. 이런 수많은 면접 속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스펙이 높은 사람일까? 물론 고스펙자가 더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펙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도 한방 역전의 기회가 있다. 면접은 곧 자기PR이고 자기PR을 잘하기 위해선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따른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세운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순간 한방 역전의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이 기회를 활용하게 되면 인생이 바뀐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다. 시작이 남들보다 늦었던 사람 소심해서 실전에 약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이들이 신유아 원장과의 만남을 통해서 어떻게 인생이 바뀌어 가는지를 볼 수 있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기술이 있다 유명한 MC들은 각자 자신만의 스피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스피치를 하는 것일까.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화술 주변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술 언뜻 실례될 수도 있는 말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화술 등 그들의 기술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신유아 저자는 이러한 MC들의 스피치 기술에 주목했다. 그들의 기술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스피치 스킬을 찾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냈다. 스피치는 오감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좋은 스피치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면서 하는 손짓 발짓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맞장구를 쳐주는 것도 모두 스피치에 포함된다. 이처럼 스피치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기본이 되는 신체적 기술을 오감으로 정리하여 풀이하였다. 말에는 맛과 향이 있다. 자신의 스피치가 어떤 맛을 내는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알아보고 그 맛과 향을 더욱 살려나가야 한다.

구매가격 : 10,500 원

전환시대의 리더와 리더십

도서정보 : 정현욱 | 2018-09-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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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지도자상 제시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와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이 책은 리더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리더의 자질과 역할은 가변적인 것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 해답을 21세기의 특성인 3S 즉 은막(screen) 속도(speed) 전문화(specialization)와 관련시켜 제시한다. 현대인은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인기 스포츠가 경기 규칙을 바꿔 속도감을 더하는 경기로 만들고 스크린은 넘치는 볼거리로 재구조화하여 수용자에게 스릴 넘치는 흥미를 제공한다. 이 책은 이런 사회현실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읽는 재미를 가중시킨다. 저자는 “급속한 사회 변화에 필요한 리더십은 시민과 공유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이는 ‘현대인의 기본 소양(basic materials)’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은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갖춰야 개인적인 자질로 이해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리더의 출현이나 그가 행사하는 리더십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며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21세기의 리더는 과연 어떤 사람의 몫일까. 그 리더가 발휘하는 리더십은 어떠한 것일까. 독자에게 이런 점을 사색하게 하고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덕목이다.

구매가격 : 10,000 원

클래식 클라우드-페소아

도서정보 : 김한민 | 2018-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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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쓰고자 했던 시인”

120여 명의 이명 작가가 되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로
시, 소설, 희곡, 평론에 걸쳐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펼친 페르난두 페소아의 신비로운 미로 속으로!

기이한 천재 작가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에서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며 ‘페소아들’을 만나다!

- 서구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는 페소아를 만나는 특별한 문학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예술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문학 비평의 세계적 권위자 해럴드 블룸은 저서 『서양 문학의 정전The Western Canon』(1994)에서 유구한 문학사에서 단 26명의 작가를 엄선한 명단에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 등과 나란히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 페소아는 세계 문학계에 더 이상 낯선 인물이 아니다. 또한 『불안의 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페소아는, 수집해둘 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넘치는 이 독특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카몽이스와 더불어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손꼽히는 페소아의 작품들은, 이미 유럽과 서구 문화권을 넘어 베트남어, 스와힐리어, 우르드어 등 4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네 번째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의 저자 김한민은,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 기이하고도 천재적인 작가에게 일찍이 매력을 느끼고 국내에 페소아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급기야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 수년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리스본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하나이자 여럿인 이 신비로운 인물을 깊숙이 탐구했다. 여행기라기보다 체류기에 가까운 이 책은 저자 김한민이 100여 년 전의 인물 페소아와 동시대인으로 만난, 밀도 높은 시간의 기록이다.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복수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
하나이자 동시에 수십 명, 그 이상이었던 작가

페소아는 자신의 본명 말고도 여러 사람의 다른 이름으로 창작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집계된 이름만 120여 개 이상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명 삼인방으로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를 들 수 있다. 가명을 사용해 창작 활동을 한 작가는 문학사에서 여럿 있었지만, 페소아처럼 각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설계하고 각각의 작품 세계가 독립적인 성향을 띠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까지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명’이라는 요소를 빼놓고 페소아라는 작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페소아에게 매료되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이명”이라고 저자 역시 가장 먼저 손꼽는다.
페소아는 이미 여섯 살 무렵부터 다른 이름의 인물을 삶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것이 더더욱 본격화되어 이명의 이름으로 작품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고, 1914년 그의 대표 이명 삼인방이 등장한 이래 그의 창작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저자는 이명들의 작품을 통해 페소아가 지녔던,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에는 너무도 다양했던 창작욕을 가늠해본다. 페소아에게 이명은 “단 한 명의 나에 갇힐 뻔한 ‘다양한 나들’을 해방시킨 창작 기계”였다.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했던 것도 페소아이지만, 이 모두에게 무대를 내주고 자신을 비우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 것 역시 그였다. 한마디로 그는 잘 놀았던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인이었다.”
또한 페소아에게 이명은 문학적 인물 그 이상이었다. 페소아의 이명들은 페소아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페소아의 현실 인물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세계를 총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페소아라는 ‘사람’
그리고 페소아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리스본 사람들

‘페소아Pessoa’라는 그의 성은 포르투갈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다. 그 어원인 페르소나가 ‘가면’을 의미한다는 점, 문학적 정체성이 여럿인 사람이 하필이면 그리 흔하지도 않은 이 성을 타고났다는 것도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페소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 ‘페르손느personne’가 되고 이는 ‘아무도 없음nobody’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 등은 문학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흥미진진한 인물,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시인에 대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방에서 발견된 트렁크 속에 들어 있던 약 3만 장의 원고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 트렁크는 그러나, 종이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읽던 사람, 그가 알던 사람, 그가 섬기던, 그가 무시하던, 그가 질투하던, 그가 모방하던, 그가 사랑하던 사람…….
저자는 리스본에 머물면서 페소아가 남긴 원고와 자료들, 여타 페소아에 대한 연구들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페소아라는 사람, 페소아가 창조해낸 사람, 페소아가 만났던 사람을 종합하며 ‘페소아’라는 인물 그 자체에 다가갔다. 또한 저자는 페소아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리처드 제니스Richard Zenith 등 리스본의 페소아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다채로운 시각을 공유했다.

페소아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
그 신비로운 미로 속을 걷다

저자는, 페소아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그 작품 세계의 풍부함 덕분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할 이야기가 하도 많아 고르고 편집하는 데 품이 들 뿐”이라고. 페소아의 삶도 그렇다.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극적인 요소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작품 세계 못지않게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문예지 활동가’로서 페소아의 활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페소아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뜻이 맞는 동료 작가들과 모여 문예지를 만들었다. 그에게 1915년은 단연 잡지 『오르페우』의 해였다. 『오르페우』는 단 두 호만 발행되었음에도 포르투갈 모더니즘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르페우』를 이끌고 『오르페우』를 통해 발굴된 ‘오르페우 세대’는 향후 포르투갈 문화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9년 페소아는 평생의 유일한 연인 오펠리아를 만난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그가 만났던 사람은 오펠리아뿐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고, 오펠리아는 페소아가 사망한 지 3년 뒤에야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한편 페소아는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비전주의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던 중 영국의 마법사 알레이스터 크롤리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그와 교류하기에 이른다. 알레이스터 크롤리와 ‘지옥의 입구’에서 벌인 가짜 자살극 사건은, 페소아의 그러한 성향이 불러온 기이한 일화라 할 수 있다.
페소아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과 절친했던 시인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의 자살일 것이다. ‘포르투갈의 랭보’, 20세기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사-카르네이루는 『오르페우』의 핵심 멤버로 페소아와 문학적 이상을 공유했으며, 페소아와 깊은 우정을 나눈 거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사 -카르네이루가 파리로 간 이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사 -카르네이루는 스물여섯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페소아라는 인물을 이루는 그의 생각, 그의 사랑, 그의 친구, 그의 사상, 그의 관심사 등 페소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종횡무진 아우르며 탐구했다. 그렇게 저자는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인물을 ‘동시대인’으로 받아들이며 이 책을 완성했다.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을
‘여행 없이’ 여행하다

어머니를 따라 남아공 더반으로 떠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소아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리스본으로 돌아온 뒤, 마흔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스본을 떠나지 않았다. 리스본은 페소아에게 삶과 문학의 무대였다. 저자는 이곳에 체류하면서 페소아가 걸었던 길, 페소아가 살았던 곳, 페소아가 다녔던 리스본 대학, 페소아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곳들을 일상 속에서 느끼며 ‘페소아 되기’를 실천하고자 했다.
페소아는 평소에 여행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작가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의 여행에 대한 비판들을 못 들은 척하고 일반적인 기행문을 쓸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책이 반쯤은 페소아에 관한 에세이 혹은 연구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그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기행문보다는 다소 묵직하고 깊이 있게 페소아의 삶과 문학을 담게 되었다.
페소아의 작품을 읽어본, 이 천재 작가에게 이미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페소아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페소아를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에게 이 책은, 조금 낯설지만 대단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페소아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삶이 책을 읽고 페소아가 읽고 싶어져서 페소아의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몸으로 하는 여행이든 머리로 하는 여행이든 말이다.
_「프롤로그」 중에서


◎ 책 속에서

나는 내가 영향받을 사람과 환경을 최대한 능동적으로 택하고 싶었고, 고민과 타협 끝에 포르투갈과 페소아를 선택했다. 다행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영향의 초기 인자들일 뿐, 그 결정의 의미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페소아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모른다. 나도 한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을 이만큼 내 삶에 깊숙이 받아들이게 될 줄 몰랐다.
- 〈프롤로그〉 중에서

페소아에게 다가가고자 들어선 거대한 텍스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붙잡았다. 정확한 길을 안내해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한 명 한 명에게서 얻은 작은 이야기 조각들을 잘 맞추면 어렴풋하게나마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흘러 다녔을 뿐이다. 그 사람들 중에는 실존한 인물도 있고 가공의 인물도 있었으나, 페소아라는 회로를 통과할 때마다 그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이미 잘 알려진 페소아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들을 지워내고, 페소아가 만들어낸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표현처럼 ‘안 배워’내면서 페소아와 가능한 한 직접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좀 더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그렇게 나는 페소아의 주변을 가득 둘러싼 사람들의 벽을 뚫고 헤쳐나가며 페소아를 만나려고 했다. 때로는 자꾸만 다른 가면을 쓰고 등장해 혼란을 일으키는 페소아 본인에게조차 “잠깐 비켜봐”라고 말해야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딴사람의 이름으로 쓰기, 아니 아예 딴사람이 되어 쓰기—이것은 페소아가 거의 평생에 걸쳐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지속한 일이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또 자아로부터도 ‘유체 이탈’하여, 과거 이력까지 정교하게 만들어낸 어느 타인의 관점을 취한 상태에서 시심을 발휘하는 행동. 그렇게 지어진 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디도 아닌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그 시의 시선은 온전히 캄푸스의 것도, 페소아의 것도, 시인이 아닌 실존 인물 시민 페소아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복수의 시선들이 탄생하고, 그 시선들이 서로 어지러이 교차한다.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페소아의 도시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운문이라는 씨줄과 산문이라는 날줄로 짜인 문학의 매트릭스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내판들이 ‘거짓말’들로 점철되어 있고, 통로들이 끝이 없거나 막다른 골목이며, 길을 물어볼 행인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문제다. 그의 리스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내가 발을 디딜, 재방문하는 리스본. 이 두 도시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길을 찾고,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이명은 그만의 ‘창작 기계’였다. 그것은 창작의 연료이자 동력, 스파크였다. “복수 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이라는 그의 모토처럼, 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던 그의 놀라울 정도로 큰 문학적 꿈은,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 어려운 너무나 다양한 창작 욕망들로 꿈틀거렸다. 게다가 워낙에 까다롭고 높은 기준 때문에 극단적인 과작寡作 작가가 되기 딱 좋은 인물이 바로 페소아였다.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배치해 그들만의 방 안에서 가능한 한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한 그만의 ‘분리 장치’가 없었다면, 이만큼의 작품들이 탄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명들이 대거 탄생한 시기(1914~1915년)를 전후해 그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 〈2장 하나이자 여럿인 사람〉 중에서

페소아에게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단순 가공해서, 혹은 촉매제로 이용해서 시인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종류의 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같은 현실의 재료라도 그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재배치했고, 늘 약간의 ‘속임수’를 양념처럼 추가하여 색다른 맛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이 과정을 ‘비인격화’라는 방법론으로 이름 붙이며 이론화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현실과 문학 사이의 긴장 속에는 그 둘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쉽게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사람들을 찜찜하게 또는 당혹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쯤 되면 페소아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리스본에서 살면 살수록,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 작가라는 내 말이 독자에게도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리진 않을 것이다.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열여섯 살의 소년이 있다. 유럽 포르투갈 출신의 이 어린 시인은, 아프리카 남아공에 살면서, 미국 보스턴에 사는 시인을 발명하여,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보내고, 그가 여정 중 오세아니아의 호주에 들러 광부들과 어울리며 쓰는 시를 상상을 하며 창작을 한다. 그리고 영국 이름을 가진 또 다른 필자를 만들어내 그를 신문 독자들에게 그럴싸하게 소개한다. 다섯 대륙을 넘나드는 이 현기증 나는 여로라니! 얼마나 일찍부터 이 사람이 상상과 시, 그리고 지도만으로 여기저기 정신없이 여행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유별난 아이였으니, 아주 작은 실제 경험의 ‘불씨’만으로도 큰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발전시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력과 분석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면서.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페소아와 친구들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관광지로 잘 알려진 카페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Café Martinho da Arcada 와 카페 브라질레이라Café A Brasileira 이다. 이 두 카페는 당시 로시우 광장에 각각 분점이 있었는데, 페소아 일행이 주로 드나들던 곳은 현재 남아 있는 본점보다 사라지고 없는 분점들이었다. 시내 한복판의 목 좋은 시아두 지역에 자리 잡은 탓에 늘 북적거리는 브라질레이라 본점은, 한때는 페소아도 왕래를 했으나 곧 발길을 끊은 곳이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오르페우』의 아방가르드적 실험에 공헌한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페소아와 사–카르네이루라는 쌍두마차가 이뤄낸 문학적 성취와 독창성은 나머지 멤버들을 압도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이 둘의 천부적 재능과 돈독한 우정이야말로 잡지의 핵심 동력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페소아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서 실로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불안의 책』에서 진짜로 불안한 것은 그 책의 존재 방식이다.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유품인 트렁크 속에서 원고 뭉치로 발견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페소아의 작품을 논할 때도 편집의 문제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관련 글이나 논문도 많아 『페소아 편집하기』라는 본격 연구 책자가 있을 정도이다. 에밀리 디킨슨 역시 대부분의 원고를 미발표, 미완성 상태로 남겨놓고 가서 비슷한 문제로 후대 연구자들이 골치를 썩는다고 한다.
- 〈5장 파편과 폐허의 미학〉 중에서

비록 ‘정신적’으로는 그녀가 선수를 쳤지만 ‘육체적’으로 첫 발자국을 뗀 것은 남자 쪽이었다. 회사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한 어느 날이었다. 마침 모두 다른 볼일을 보러 나가고 사무실에는 단둘만 남아 있었다. 페소아는 기름 등불을 밝혀 오펠리아의 책상에 놓아주며, 퇴근 시간 즈음해서 “먼저 가지 말고 있어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미 페소아의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던 그녀는 은근히 기대를 품은 채 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퇴근 시간이 되어 업무 정리를 하고 외투를 입고 있을 때 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별안간 페소아는 마치 햄릿이 오펠리아에게 하듯, 지극히 중세적인 혹은 연극적인 방식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 〈7장 모든 연애편지는 바보 같다〉 중에서

세상이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을 손에 쥐여줄 수 있음에 무지한 어린아이도, 세상은 어차피 내가 주문한 대로 나오는 법이 없다고 단정한 어른도 아니었던 페소아. 그 중간쯤의 회색 영역 어딘가에서, 세상과 더불어 영원한 의문과 호기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치러야 할 대가는 치른 채, 그저 볼멘 내면의 목소리 혹은 시를 중얼중얼거리며,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보도블록 ‘칼사다 포르투게사Calçada portuguesa’가 깔린 골목을 지나 어느 언덕 너머로 사라졌던 사람……. 리스본 시민 페소아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 〈10장 리스본 사람들〉 중에서

페소아의 마지막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항상 의문이었다. 마흔일곱의 나이인데 벌써 일흔은 되어 보인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조로하게 만들었는가? 술과 담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아니면 그의 말처럼 “너무나 많은 철학과 시학을 살아내느라?”
- 〈12장 페소아와 정치〉 중에서

눈썰미 좋은 여행자라면 창문턱에 몸을 걸치고 따로 하는 일 없이 물끄러미 바깥 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유난히 많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포르투갈어에는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도 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라기보다 문학적 표현에 가깝지만 말이다. 한때 한국의 정서를 특징지었던 ‘한恨 ’처럼,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사우다드saudade’의 정서를 일상에서 보여주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창문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 〈에필로그〉 중에서

페소아의 광대하고 독창적인 세계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은 그의 안목이었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세자리우 베르드를, 카밀루 페사냐를, 안젤루 드 리마를 알아보는 눈 말이다. 우리는 어떤가? 언젠가 평론가 에두아르두 로렌수가 따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페소아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전에 몰라보고 이제 와서 칭송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

구매가격 : 15,040 원

클래식 클라우드-푸치니

도서정보 : 유윤종 | 2018-09-0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푸치니의 음악은 죄의식을 부르는
달콤한 유혹이다”

오페라의 절정을 찬란하게 물들인 감상주의 마법사의
멜랑콜리와 노스탤지어의 근원을 찾아서

푸치니의 선율이 흐르는 이탈리아의 새벽을 걷다

- 명작의 탄생지로 떠나는 음악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오페라의 제왕. 푸치니에게 이보다 더 적확한 수식어는 없다. 오페라가 오늘날의 영화만큼이나 대중적인 여흥이었던 시절, 푸치니는 살아생전 명성을 떨치며 백만장자의 삶을 영위한 대작곡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푸치니의 작품은 지난 세기 오페라의 마지막 절정기를 장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금도 끊임없이 향유되며 재생산되고 있다. 오페라 극장들이 내놓은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목록’에 푸치니의 3대 흥행작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은 언제나 6위 안에 들며, 북미 오페라 공연 일수의 4분의 1이 이 세 작품으로 채워진다는 통계도 있다. 휴대전화 판매원 출신의 테너 폴 포츠는 오디션장에서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불렀고, 콜드플레이는 내한 공연 당시 첫 곡으로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연주했다. 각각 〈투란도트〉와 〈잔니 스키키〉 속 아리아다. 오페라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 어느 오페라 작곡가도, 어느 아리아도 이런 환대를 받은 적 없다.
『푸치니: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은 푸치니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오페라의 고향 이탈리아를 거닐며 그의 삶과 작품의 발자취를 좇는 특별한 여행기다. 여러 매체에 클래식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강의를 해온 유윤종 음악 전문 기자는 이 책에서 푸치니의 마력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유윤종 기자는 푸치니가 영감을 받고 성장했던 장소로 직접 찾아가서 푸치니 작품에 응축되어 있는 푸치니의 경험을 추적한다. 루카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데뷔한 후 잇따른 대작으로 성공하기까지, 그는 두 도시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거장으로 발돋움한다. 반평생의 거주 공간이자 〈라 보엠〉과 〈나비 부인〉의 탄생지 토레델라고를 거치면, 〈잔니 스키키〉와 〈토스카〉의 영광이 고스란히 남은 피렌체와 로마에 도착한다. 푸치니가 그곳에서 느끼고 사랑했던 것은 그의 오페라에 ‘멜랑콜리’와 ‘새벽’이라는 구체적인 감정과 시간으로 남아 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음악으로 응답할 것이다”
격정의 드라마로 전 세계를 매혹한 작곡가의 열정을 만나다

푸치니는 어떻게 자신만의 거대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나? 저자는 19~20세기 전환기 시대정신과 오페라 장르의 교차점을 대표하는 총아로 푸치니를 지목한다. 당시는 개인의 열정과 욕망, 환희와 슬픔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데 가치를 둔 시기였으며, 오페라는 개인의 음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장르다.
유년 시절의 푸치니는 주의가 산만했으며(“푸치니는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바지를 닳아 없애기 위해서만 학교에 오는 것 같습니다”) 일탈로 점철된 폭풍의 사춘기를 보내고(담배를 사기 위해 교회의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를 고물상에 팔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친구의 아내와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는가 하면(“마님이 집을 나갔어요, 푸치니 선생과 함께 도망갔다고요”) 결혼을 하고도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애꿎은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하고 (“가엾은 소녀, 그렇게 착하고 따뜻했던 아이가 이렇게 죽다니. 견딜 수 없다”) 원하는 스토리가 나올 때까지 대본작가를 들볶아서 그들의 사퇴 파동을 자초하기도 했다(“전 세계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을 내놓으시오. 투란도트의 운명을 생각하면 잠이 온단 말이요?”).
그럼에도 푸치니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열정과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이 뻔뻔한 인물을 사랑해줄 마음이 좀처럼 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희와 슬픔을 마음껏 표현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뿐이다. 비평계와 대중 양극단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경쟁자와 후배의 장기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한편 자신의 장기를 단단하게 다져나갔다. 동시대 예술계의 기류를 연구하고 파악하는 데 누구보다 빨랐고 오페라의 정묘한 디자인과 완결성에 대한 집념은 투철했다. 푸치니는 그렇게 자신의 국경을 넓혀나갔으며, 재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유럽 전역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과 우루과이에서 열린 ‘푸치니 전작 페스티벌’을 푸치니는 목격했다.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린 인생이었다.

음악으로 가득 찬 마사추콜리 호수에서 새벽을 듣다
〈라 보엠〉과 〈나비 부인〉의 탄생지와 〈잔니 스키키〉와 〈토스카〉의 배경지를 걸으며

예술가에겐 결핍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궁핍하거나, 죽을 때까지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해를 받아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평생 지병에 시달려야 한다. 실연의 상처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푸치니는 아니었다. 푸치니는 명랑하고 친절하다가도 순간 먼 곳을 쳐다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푸치니 자신도 “나는 멜랑콜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 말했다. 결핍이라곤 없이 성장해서 오페라계의 새로운 황제로 부상하여 남부러울 것 없는 백만장자의 삶을 살았던 푸치니의, 그만의 서글프며 감미로운 선율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선천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들의 성공이 눈에 보이는 순간 눈을 감았던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푸치니가 사랑했던 장소가 그의 멜랑콜리를 심화시켰음을, 그곳의 새벽을 직접 보면 비로소 알아챌 수 있다.
견고한 음악 전통을 이어가는 고향 루카, 자유분방하고 혁신적인 운동이 일어나는 유학지 밀라노, 풍요롭고 세련된 문화가 꿈틀거리는 오페라 탄생지 피렌체 모두 푸치니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였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장소는 토레델라고 마을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도하고 ‘귀신처럼’ 방황하던 때 발견한 평화로운 이곳을 푸치니는 터전으로 삼았다. 이곳은 그저 생활의 장소만은 아니었다. 푸치니는 급속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지상의 낙원. 상아탑’ 토레델라고와 사랑에 빠졌다. 오감이 가장 생생하게 깨어 있는 새벽에는 물새 사냥에 나섰다. 그리하여 토레델라고 마을의 호숫가 정경은 그의 대표 흥행작인 〈라 보엠〉 〈나비 부인〉 속에 깊숙이 침윤된다. 푸치니에게 멜랑콜리는 짐이 아니라 동력이었다. 내면 깊이 자리 잡은 노스탤지어는 그의 손에서 선율과 화음으로 소환되어 작품 주인공들의 슬픔으로 세련되게 표현되었고 세계를 매혹했다.
푸치니가 반평생을 머물렀던 토레델라고, 그곳의 마사추콜리 호수를 여행한 후에라면, 푸치니를 듣는 독자의 마음속 무대가 조금은 넓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곧 그를 만나러 갈 독자에게 이 책의 저자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푸치니가 사랑한 토레델라고 새벽 정경을 느끼기 위해서는 밤이 늦도록 절대 ‘잠들지 말라.’




◎ 클래식 클라우드를 펴내며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로 초대합니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아무도 제기하지 않았던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수백 년간 우리 곁에 존재하며 ‘클래식’으로 남은 세계적 명작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가 지금 여기, 우리의 눈으로 공감하며 체험할 수는 없을까.

‘클래식 클라우드’는 명작의 명성보다 ‘한 사람’에 주목합니다. 위대한 작품 너머 한 인간이 삶을 걸었던 문제를 먼저 생각하고자 합니다. 명작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은 한 창작자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각,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100%의 독서를 지향합니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거장의 삶과 명작이 탄생한 곳으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수업에 믿음직한 안내자가 함께한다면? 작품에 숨겨진 의도와 시대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한 독서! 기획에서 개발까지 5년, 우리 시대 대표작가 100인이 ‘클래식 클라우드’를 위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12개국 154개 도시로 여행을 떠납니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우리 시대 새로운 거장들을 기다립니다. 누구보다 뛰어났던 거장들의 놀라운 작품들을 만나고, 삶을 뒤바꾼 질문과 모험을 경험하며 시공간을 초월해 오늘 우리의 고민을 다시 바라보게 할 실마리들을 찾아봅니다. 천재들의 영감을 ‘나의 여행’으로 만나는 시간들이 우리 일상 가까이 작은 거장들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문학, 예술, 철학,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 ‘클래식 클라우드’가 ‘한 사람’을 깊이 여행하는 즐거움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책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시대와 장르의 음악을 마음껏 찾아 들을 수 있었던 내게, 푸치니의 음악은 가장 매혹적인 날줄과 씨줄의 교차점이었다. 푸치니가 활약한 19~20세기 전환기는 음악에 있어 개인의 열정, 욕망, 두려움, 환희, 슬픔을 정밀하게 표현하는 데 특별한 가치를 둔 시기였다. 그러한 ‘시대정신’이 내게 하나의 날줄이었다면, 어떤 악기보다도 연주자 각각의 음색과 표현양식을 뚜렷이 드러내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 ‘성악’ 또는 ‘오페라’라는 장르는 그 날줄과 만나는 씨줄이었다. 그 교차점을 대표하는 총아이면서 그 만남을 가장 빛나게 구현한 주인공이 바로 푸치니였고,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되었다.
- “프롤로그. 꿈꾸는 자의 세계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가” 중에서

푸치니의 특별함은 그러나, 말썽 많았던 인생 초반기 그의 내면에 이미 그 싹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풍향에 늘 충실했으며 그 바람에 거역하는 일에는 본능적으로 일절 타협하지 않았다. 게을렀던 학생 시절에도 동시대 예술계의 기류를 연구하고 파악하는 데 그는 누구보다 빨랐다. 인정받는 작곡가가 된 뒤엔 그와 절친했던 대본작가들이 두 손을 들고 ‘일 못 하겠다’며 거듭 ‘사퇴 파동’을 일으킬 정도로, 오페라의 정묘한 디자인과 완결성에 대한 푸치니의 집념은 투철했다.
- “프롤로그. 꿈꾸는 자의 세계는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가” 중에서

푸치니가 상기된 채로 도착했던 그곳으로, 나 역시 상기된 채로 달려간다. 창밖에는 토스카나의 8월 태양이 찬란하게 반짝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전원은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의 처연한 간주곡을 떠올리게 한다. 내 의식 아득한 곳에 자리 잡은 노스탤지어가 그 아련한 현의 선율에 동반된다.
- “1장. 음표로 삶의 설계도를 그리다: 루카의 푸치니” 중에서

일탈로 점철된 폭풍의 사춘기에 의미 있는 일도 있었다. 안젤로니 선생의 권유로 친구들과 함께 피사에 오페라를 보러 간 것이다. 이탈리아의 영웅 베르디가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작으로 의뢰받아 1년 반 전에 발표한 신작 오페라 〈아이다〉였다. 기록에 따르면 푸치니와 친구들은 피사까지 여덟 시간을 걸어갔다. 그는 훗날 종종 기념할 만한 ‘순례’로 이 사건을 언급했다. 오늘날 인터넷 지도 사이트에서 도보 옵션을 적용해보면 대략 네 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다. (…) 푸치니는 이 경험을 회상하며 “〈아이다〉를 피사에서 들었을 때 음악의 창문이 내 앞에 열리는 듯했다”고 말했다.
- “1장. 음표로 삶의 설계도를 그리다: 루카의 푸치니” 중에서

어머니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마감을 불과 몇 주 앞둔 동안 서둘러 완성됐다. 악보 일부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난필이었고 콩쿠르 측에 제출된 것 이외의 사본조차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마감 직전에 작품을 제출할 수 있었다. (…)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다. 세상은 이 젊은이의 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예 콩쿠르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경쟁에서 떨어진 작품’을 누가 애써 극장에 올리려고 할 것인가.
- “2장. 오페라의 별에 닿다: 데뷔작 〈빌리〉” 중에서

〈빌리〉 연주가 끝나고 푸치니는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조명 아래를 걸어 나왔다. 꽃다발이 쏟아졌다. 마르코 살라의 빌라에서 만난 후원자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젊은 작곡가의 목에 월계관을 걸어주었다. 작곡가는 무대 위에 열여덟 번이나 거듭 불려 나왔다. 다음 날 신문에는 스카필리아투라의 막강한 이론가 필리포 필리피가 쓴 리뷰가 실렸다. 제목은 ‘푸치니 별에 닿다’였다.
-“2장. 오페라의 별에 닿다: 데뷔작 〈빌리〉” 중에서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빌리〉는 오늘날 공연되는 횟수가 적다. (…)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면 푸치니가 이후 완숙기에 자신의 흥행작에서 선보일 ‘정형’들이 이 작품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줄거리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다. 이후 다시 만나지만 예전처럼 행복한 상태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눈물과 후회 속의 비극적인 만남이다. 그런데 이렇게 바뀐 상황 속에서도 작품 초반 행복하던 시절의 선율과 모티프가 다시 등장한다. 이 선율과 동기들은 행복했던 작품 초반의 상황들을 상기시키기에, 비극적인 작품 후반의 상황과 대비되어 비애를 더한다. ‘악의는 없지만 무책임한 남자 주인공과, 그 때문에 희생되는 여자 주인공’의 대비도 전성기 푸치니 오페라의 주인공과 공통된다.
-“2장. 오페라의 별에 닿다: 데뷔작 〈빌리〉” 중에서

루카에서 서쪽으로 바다를 향해 30킬로미터쯤 걸어가면 넓은 마사추콜리 호수가 나온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루카 시내를 네 개쯤 집어넣을 수 있는 꽤 큰 호수다. (…) 뱃사공 노포리는 어느 가을날 한 젊은이가 호숫가를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마치 “귀신같이 보였다”고 사공은 회상했다. “나는 작곡을 해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송장이 되었어요.” 흐린 눈동자의 이 청년은 하룻밤 자고 가고 싶다며 잘 곳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평화로운 정경을 유지하고 있다. 7년 뒤인 1891년, 갈 곳 잃은 마음을 달래던 이곳 토레델라고를 푸치니는 삶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터전으로 삼는다. 단지 생활의 장소였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호숫가의 정경은 그의 대표 흥행작인 〈라 보엠〉 〈나비 부인〉 속에 깊숙이 침윤될 터였다.
-“2장. 오페라의 별에 닿다: 데뷔작 〈빌리〉” 중에서

오늘날 거의 잊힌 〈에드가〉를 소개하는 데 긴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다. 그러나 3막 초반의 장송 장면(레퀴엠)과 이어지는 피델리아의 애도의 노래 ‘안녕, 내 친절한 사랑Addio, mio dolce amor’은 꼭 들어보길 권한다. 푸치니의 다른 작품에서 찾기 힘든, 감각적이라기에 앞서 영적인 클라이맥스를 맛볼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푸치니를사로잡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 밀라노 두오모에서 열리는 푸치니의 장례식에서 이 장면의 음악이 연주된다.
-“2장. 오페라의 별에 닿다: 데뷔작 〈빌리〉” 중에서

푸치니는 1924년 후두암으로 투병 중에 리브레토(오페라의 각본) 작가 포르차노에게 “나중에 야외에서 내 오페라가 공연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죽고 6년 뒤 포르차노의 주도로 푸치니가 생애 대부분을 살며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등 걸작 오페라를 쏟아냈던 호숫가에서 〈라 보엠〉 공연이 열렸고, 1949년부터는 야외 오페라 축제가 매년 개최되었다.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왼쪽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면 마을의 중심 도로인 ‘자코모 푸치니 길’로 접어든다. 이 길로 죽 걸어가면 호반의 푸치니 빌라에 닿을 것이다. 왼쪽으로 골목 표지판이 시선을 잡아끈다. ‘루이지 일리카 길.’ 루이지 일리카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탄생에 핵심적 역할을 한 대본작가다. ‘재미있군.’ 이어 오른쪽은 ‘3부작 길’이다. 푸치니 만년의 오페라 ‘3부작’을 뜻하는 말이다. 계속해서 왼쪽, 오른쪽으로 라 보엠 길, 토스카 길, 투란도트 길, 라 론디네 길, 잔니 스키키 길, 외투 길, 나비 길이 이어진다. 모두가 푸치니의 오페라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푸치니는 농담을 하고 장난을 주고받다가도 어느 순간엔가 조용히 말이 없어지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 심심해서”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먼 곳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갑자기 눈물로 그렁그렁해질 때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수수께끼의 멜랑콜리를 가지고 있었다. 편지에서 “나는 멜랑콜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태어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멜랑콜리는 우리가 오늘날 잘 알고 있듯이 그의 작품 속에 투사되어 매혹적인 색채로 작용한다.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푸치니는 1892년 10월에 〈마농 레스코〉를 완성했다. 작품은 토리노의 레지오 극장에서 초연하기로 결정되었다. (…) 30회나 커튼콜이 나왔고, 객석에서는 손수건을 든 여인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테너와 소프라노 주연마저 무대 위에서 눈물을 보였다. 거의 모든 신문이 “강력하고 빛나는 작품”, 심지어 “국가적 자부심을 보낼 만한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대본작가들은 푸치니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작업 중인 대본에 이 작곡가가 거듭해서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 말고 ‘뭔가’를 좀 내놓으세요. 내가 말하는 ‘뭔가’가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 푸치니가 대본작가에게 내놓는 주문은 한도 끝도 없었지만 정작 자신의 작업 속도는 느렸다. 일리카는 문인답게 “푸치니는 감아놓으면 금방 다 풀려버리는 시계 같다”고 멋진 비유를 날렸다.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여름 호숫가의 공기는 뭉근하고 후텁지근하다. 무르익은 봄, 온갖 꽃들이 피어 있을 때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 그리고 새벽에 이 호숫가를 걷고 싶다. 정적을 깨는 모터보트의 소음과 함께 엽총과 사냥한 새 꾸러미를 둘러멘 작곡가의 환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피를 묻힌 새들의 모습은 잔혹하겠지만, 푸치니 극의 결말 역시 흔히 잔혹하지 않던가.
-“3장.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다: 〈마농 레스코〉와 〈라 보엠〉” 중에서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 3막이다. 호른 솔로에 이어지는 피콜로와 현의 소슬한 합주부터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천년 고도의 새벽. 이 오페라의 배경이 된 1800년만 하더라도 성 베드로 성당의 영화로운 모습 주변에는 고대 로마의 폐허와 휑한 공터가 공존했다. 잡초가 자라난 구릉에는 양치기들이 양을 풀어놓았다. 어린 양치기가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소박한 노래를 부른다. 고음현에서 저음현으로, 하프와 방울소리가 출렁거리는 관현악은 순식간에 귀로 전해지는 공간감을 광대한 야외로 확대한다. 새벽바람이 귓전을 거쳐 옷깃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
-“4장. 무대에 담긴 영원의 도시들: 〈토스카〉와 〈잔니 스키키〉” 중에서

푸치니의 여성 아리아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고 널리 불리는 〈잔니 스키키〉 중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다. 피렌체가 무대인 영화 〈전망 좋은 방〉에도 삽입되어 널리 알려진 아리아지만 정작 이 노래의 가사를 알면 대뜸 놀라게 된다. (…) 그러나 이 글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노래에 등장하는 ‘베키오 다리’와 ‘아르노 강’이다. 토스카나의 주도 피렌체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과 그 남북을 연결하는 오래된 다리다. 푸치니는 60세 때인 1918년에 발표한 〈잔니 스키키〉에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를 무대 위에 등장시켰다.
-“4장. 무대에 담긴 영원의 도시들: 〈토스카〉와 〈잔니 스키키〉” 중에서

〈나비 부인〉이 우리를 매료하는 숨은 요인 중 하나는 ‘긴장’이다. 〈나비 부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의 무의미함에서 벗어난, 극도로 긴장된 시간들의 이야기다. 1막에서 주인공은 결혼이라는 긴장된 행복을 겪고, 2막에서는 남편의 귀환이 임박했음을 알아채고는 긴장 속에 환희하고 절망하다가 죽는다. 이 긴장된 시간을 푸치니는 꽃내음 같은 감미로운 관현악으로 엮어낸다. 이 작품 속에서 대기는 향기로 충만하고, 감미로운 선율과 기다림으로 채워져, 마침내는 긴장과 감미로움이 구분할 수 없이 섞여버린다.
-“5장. 폭풍의 시대에 날아오른 나비: 〈나비 부인〉” 중에서

1월, 도리아는 눈물로 가족에게 편지를 적었다. “나는 엘비라 부인이 말하는,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푸치니 주인님은 제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농약상에 가서 해골 표시가 있는 염화수은 약을 샀다. 세 알을 삼켰다. 삶의 고뇌가 바로 멈추지는 않았다. 도리아는 닷새 동안이나 배를 쥐어뜯으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이 이 흥미로운 사건에 달려들었다. 로마에 머무르고 있는 푸치니에게 베를린에서까지 사실 여부를 묻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푸치니는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철저히 파괴되었다”라고 시빌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썼다. “가엾은 소녀, 그렇게 착하고 따뜻했던 아이가 이렇게 죽다니. 견딜 수 없다.” 로마의 호텔, 그의 서랍에는 권총이 있었다. 푸치니는 한참이나 총을 만지작거렸다고, 훗날 회고했다. 가엾은 도리아는 이후 돌아온다.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속에.
-“5장. 폭풍의 시대에 날아오른 나비: 〈나비 부인〉” 중에서

당초 푸치니가 “투란도트가 스스로 사랑에 눈을 뜨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것처럼, 이 장면은 실로 중요했다. 하지만 그 이상에 비해 대본작가들이 공급하는 텍스트는 성에 영 차지 않았다. 애써 공들여 수정하면 상세한 설명 없이 퇴짜 놓는 예전의 패턴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 세계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을 내놓으시오. 투란도트의 운명을 생각하면 잠이 온단 말이요?” 실제 이 작곡가의 욕심이자 야망이었다. 혹시 이 편지에서 대본작가들이 영감을 얻어 테너 아리아 ‘잠들지 말라’를 창안한 것은 아닐까.
-“6장. 얼음이 빛나는 마지막 순간: 〈투란도트〉” 중에서

〈투란도트〉가 초연된 지 100년 가까이 흘렀다. 푸치니 자신이 완성하지 못한 3막 후반부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중기 3대작에 필적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이들을 능가하는 명성을 획득했다. ‘드라마틱하고 선 굵은 영웅 오페라’에 도전해 성공하겠다는 푸치니의 의지는 성공을 거두었다.
-“6장. 얼음이 빛나는 마지막 순간: 〈투란도트〉” 중에서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토레델라고여 안녕. 가까운 거리임에도 기차를 갈아타야만 닿는 루카의 숙소로 나는 이 밤에 돌아갈 것이다. 사진 파일을 정리한 뒤 짐을 꾸릴 것이다. 그리고 내일 떠날 것이다. 푸치니의 자취가 짙게 배어든 도시들과 장소들과는 이별이지만, 내가 그의 선율과 노스탤지어에 처음 젖어들었던 지상 저편의 도시가 대신 나를 맞이할 것이다. 호숫가에 어둑하니 땅거미가 진다. 오늘은 사람의 자취조차 찾기 힘들다. 푸치니가 처음 이곳을 찾았던 1880년대에 온 것 같다. 소슬한 바람과 그윽한 물비린내, 그리고 어디선가 사랑을 구하는 물새가 내는 것일 첨벙 소리뿐.
-“6장. 얼음이 빛나는 마지막 순간: 〈투란도트〉” 중에서

이렇게 푸치니를 만난 이 중 제법 많은 사람이 오페라 극장을 찾아갈 것이다. 나 역시 그가 의도한 대로의 오페라 세계에 입문했던 것은 아니다. 파바로티와 도밍고, 테발디와 서덜랜드를 비롯한 수많은 가수의 유명 아리아 모음집 레코드판을 들으며, 푸치니의 설계와 다른 ‘조각난’ 장면들로, 무대를 상상으로만 머릿속에 그려보며 죽은 지 오래된 작곡가가 던져놓은 감각의 그물에 걸려 포로가 되었다. 그 그물이 이끄는 대로 세계의 공연장을 쫓아다녔고, 그가 남긴 창작의 현장과 사랑의 장소까지 찾아갔다. 그 매혹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에필로그. 꿈을 포획하는 자에게 국경은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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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사회

도서정보 : 에릭 클라이넨버그 | 2018-09-0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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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폭염
우리는 그러나 목숨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은 정치적·구조적 실패를 의미한다
·폭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극복할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다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적 실패의 문제

1995년 시카고에서는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 일주일간 지속돼 7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구급차는 모자랐고, 병원은 자리가 없어 환자를 거부했으며, 시민들은 갑자기 죽은 이웃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 무더위는 사회적 문제로 취급된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폭염이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 희생자는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 노인, 빈곤층, 1인 가구에 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현지 조사는 폭염 사망자들이 실려온 한 부검소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검시관들이 의학적 부검을 실시하는 동안, 그는 희생자들이 생전에 살았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기에 이들의 생을 앗아간 단서가 돼줄 사회학적 요인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희생자들의 거주지는 하나같이 사회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 싸구려 호텔들이었다. 저자는 이들 지역에 머물며 수시로 현지 조사를 나갔고 차츰 안면을 트게 된 이웃들은 클라이넨버그와의 인터뷰에 응한다. 한편 그는 경찰 보고서를 분석하고, 시체안치소의 기록들을 파헤치며, 통계 분석을 하는 방법으로 이 사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이 조사는 오랜 기간 차분히, 여러 스펙트럼을 따라 이뤄졌고, 기존 사회학이 간과해 우리 시선에 붙잡히지 않았던 이들을 분석의 망으로 끌어들인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폭염에 의한 사망이 "사회 불평등" 문제라고 진단 내린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결과만을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또한 공공재화를 잘못 다룬 정부의 문제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학기술적 대처의 실패일뿐더러, 시민사회가 서로를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 부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염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전적으로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고, 쓸쓸한, 혼자서 더위를 견뎌야 했던 이들이다. 이 점이 바로 사회학자가 기후 문제를 파고들게 된 계기다.
그러므로 폭염은 일종의 사회극이다. 그것은 미처 우리가 살고 죽는 조건을 드러낸다. 폭염으로 인해 공동체의 누군가가 사망했다면, 이런 사회적 조건을 조성하고 더위가 지나가기만 하면 이들의 죽음을 쉽게 잊히도록 만든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당연시하고 숨기려 했던 사회적 기반에 생긴 균열을 조사해야만 향후 이런 참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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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도서정보 : 이정서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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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는 새로운 번역서를 내놓으며 학계에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이정서의 번역 에세이. 이후 그는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를 차례로 번역 발표했는데, 네 작품 모두 평소 그가 주장하는 ‘직역’의 원칙, 즉 ‘원래 작가가 쓴 서술구조를 반드시 지켜줘야 오역이 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번역서를 낼 때마다 번역계는,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 “실제 번역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이라는 비난을 쏟아냈지만, 실상 번역된 그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실제로 저자가 쓴 쉼표 하나까지 살려내는 직역으로 작가의 ‘숨소리’마저 복원해 냈다”는 말에 수긍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번역서는 다른 어떤 번역서보다 유장하게 ‘잘’ 읽힌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할까? 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잘’ 전달할 목적으로, 수많은 시간을 고뇌하며 ‘잘 읽힐’, ‘좋은 문장’을 써낸 것인데, 그것을 오히려 번역자가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해체시킨다면, 그게 과연 원래보다 잘 읽히는 좋은 문장일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일까요.
어떤 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을 원작보다 ‘훌륭하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원래보다 좋은 문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다면 그건 다른 창작물이지 번역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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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신숙주의 일본 여행기, 해동제국기

도서정보 : 신숙주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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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申叔舟의 일본여행기



지금껏 필자는 10여 차례 일본의 각지를 여행했다. 횟수나 기간으로 따지자면, 중국 다음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여행한 국가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일본에 대한 필자의 관점이 적잖이 변화되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변화 중에 있다.
地政學的으로 韓中日 3국은, 예컨대 히말라야 산맥이 대륙 간의 충돌에 의해 솟아오르는 식의 거대한 격변이 도래하지 않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3국의 國籍人들이 모여 결성된 ‘트와이스(TWICE)’라는 걸그룹을 볼 때면, 결코 지정학적으로 離隔될 수 없는 한중일 3국의 상황을 연상하곤 한다.
물론 ‘트와이스’는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국적인으로서 인간존재들의 모임이므로, 여러 이유로 離合集散될 수 있다. 다만 ‘원스’의 한 사람으로서, ‘트와이스’가 당최 변할 수 없는 3국의 지정학적인 配置처럼, 아주 오래도록 ‘나정모사지미다채쯔’ 9명 모두가 함께 하면서 활동해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유년시절의 필자에게 일본은, 公的 역사교육을 좇아, 조선왕조를 몰락시키고서 식민지로 삼았던 강도나 도둑 같은 이미지의 제국주의적 국가공동체였다.
그런데 실상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 일본은, 식민주의적 팽창주의를 강행하는 강대국이라기보다는, 늘 후진적이며 빈곤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 동안에는 응당 일본이라는 통일된 형태의 국가공동체는 실재하지 않았다. 그저 변방의 오랑캐나 해적 집단으로서 倭寇쯤으로 인식될 따름이었다.
일본이라는 통일된 국가 형태의 공동체가, 오랜 戰國時代를 마감하고 동아시아 역사에 실제적으로 등장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서이다.
1590년 8월 ‘오다와라(小田原)’ 城이 끝내 항복함으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일본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는 申叔舟가 王命에 따라 1471년에 일본을 여행한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한때는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원숭이’라는 깔보는 듯한 별명으로 불렸던 농민 보병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었을 뿐 아니라, 1582년 주군이 암살당하며 미완으로 남긴 일본 통일이라는 과제를 이룩했다.
앞서 ‘히데요시’는 거의 모든 ‘다이묘’를 상대로 연이어 신속한 전투를 벌여 자신의 封臣으로 삼은 바 있다. ‘쇼군’이라는 칭호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는 천황의 축복을 받아 실질적인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본토 북쪽의 영주들은 여전히 위협의 대상이었다. ‘호조’ 일족이 계속해서 ‘히데요시’를 비천한 신하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1590년까지 ‘교토’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며 기회를 보다가, ‘호조’ 일족의 요새화된 城인 ‘오다와라’ 공격을 감행했다. 10만 명 이상의 엄청난 군대가 성을 포위했다. ‘히데요시’는 전면 공격을 개시하지 않고, 적군의 식량이 부족해질 때까지 기다려 복종을 받아내었으므로, 실제로 전투는 거의 없었다.
항복을 기다리는 동안, 군사들을 위해 매춘부며 가수를 부르고, 서커스 같은 공연을 열어 여흥을 벌여, 포위전은 마치 시장 같은 광경이었다고 한다.
이후 ‘히데요시’는 중국 공격의 관문으로서 조선 땅을 확보하기 위해 壬辰倭亂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궁지에 빠진다. 이 일로 ‘히데요시’는 신경쇠약까지 겪었다고 한다.
한때는 능란한 무장이었지만, 조선의 자연환경과 해군력, 아직 남아 있던 명나라 세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강력한 무신들 손에 나약한 아들 하나를 남기고 죽었으며, 그의 업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 번째로 일본 대통일을 이룩하게 되는 발판이 된다.

1603년 ‘고요제이(後陽成)’ 천황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쇼군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1868년까지 일본을 다스리는 ‘도쿠가와 막부’가 수립된다. 그런데 그가 실질적 통치자로서 ‘쇼군’이 되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일본 列島의 동쪽 ‘혼슈’ 지방에서 작은 씨족의 영주로 태어난 ‘이에야스’는, 1568년 일본을 통일하기 시작한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군으로서 세력을 얻는다. 1568년 ‘노부나가’가 죽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뒤를 이었고, ‘이에야스’는 처음에는 그에게 반대했으나, 1584년 입장을 바꿔 그의 편에 붙었다.
1590년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에 마지막으로 남은 독립 영주인 ‘호조 우지마사’를 정벌한다. ‘히데요시’는 중부 가까이 위치한 ‘이에야스’ 가문 소유의 영지를 받는 대신, 그에게 ‘호조’ 가문 영지를 내려 주었다.
이후 ‘도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성곽 도시 ‘에도’에 자리를 잡은 ‘이에야스’는 경제 개혁을 통해 지역 주민의 충성심을 얻었으며, ‘에도’가 ‘교토’에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1598년 사망하기 직전,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지목하여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대신하는 섭정 의회의 우두머리를 맡겼다. 그런데 1599년 ‘이에야스’는 ‘히데요리’가 거주하는 ‘오사카 城’을 점령하여 섭정 의회를 분열하고 내전을 일으킨다.
1600년 10월 21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정적들을 확실히 제거하여 누구도 대적할 바 없는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다. 40년간 비어 있던 ‘쇼군’ 자리에 ‘이에야스’가 임명된 것은, 그가 오래 전부터 쥐고 있던 권력에 대한 최종 승인이자 합법적인 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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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 박세당의 유교철학 비판, 사변록 1, 제1장 대학에 대한 비판

도서정보 : 박세당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8-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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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世堂의 儒家哲學 비판, 思辨錄



朴世堂(1629~1703)의 삶의 歷程을 살피다 보면, 어쩐지 前代 李卓吾(1527~1602)나 後代 丁若鏞(1762~1836)의 삶이 overlap된다. 그들은 모두 시대와 不和한 流配旅行者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當代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가철학에 대한 否定에서 기인한다.
獨尊儒術이라는 표현처럼, 유가철학은 사상적 부정이나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자는 그저 斯文亂賊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러한 측면은 人類史에서 작동하는 온갖 이데올로기적 철학사상에 공통한다.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주의, 사회주의,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독재주의, 친미, 친중, 친일, 반미, 반중, 반일, 종북, 보수, 진보 따위의 온갖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이 뒤어켜 泥田鬪狗하고 있다.
그러한 이전투구의 가장 근본적인 까닭은 ‘生存의 利得’이다. 인간존재로서 생존을 위해 전쟁마저도 不辭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러한 생존을 넘어서는 이득을 목적케 되면, 이제 그 가혹함과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케 된다. 그러한 사례는 인류의 역사가 ‘생존의 이득’을 위한 전쟁의 역사라는 史實로써 쉬이 검증된다.
박세당의 시대는 國內政治의 시대였다. 그러다보니 ‘생존의 이득’의 명분이라는 게 기껏해야, 예컨대 上服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의 문제 따위를 빌미 삼아 상대편을 處斷키도 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당최 납득되지 않을 수 있지만, 주자학적 禮治를 이데올로기 삼는 당시에는 마땅히 문제될 수 있다. 더욱이 그 裏面에는 조선왕조의 政權을 左之右之하는 黨派의 문제가 얽혀 있다. 1년을 택하느냐 3년을 택하느냐에 따라 목숨의 與奪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자학적 올바름’은 현대사회의 ‘정치적 올바람’에 비견될 수 있다. 흔히 PC라고 지칭되는데, 이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을 의미한다.
PC운동의 ‘Political Correctness’는 흔히 ‘정치적 匡正’, ‘정치적 공정성’, ‘정치적 올바름’ 등으로 번역된다.
문화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아, 인종, 성, 성적 지향, 종교, 직업 등에 대한 차별이 느껴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더불어 차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곧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주창하면서,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근거한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 잡으려는 운동이다.
미국 중산층의 언어 사용에 주목해, 차별이나 편견에 바탕을 둔 언어적 표현이나, ‘마이너리티’에게 불쾌감을 주는 표현을 시정케 하는 PC운동은, 1980년대에 미국 각지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개됨으로써,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표현을 시정하는 데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PC 운동은, 그간 대학에서 가르쳐 온 ‘위대한 책들’이니 ‘걸작’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서구 백인들의 문화유산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소수 인종 문학 텍스트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PC운동은 나이에 대한 차별(ageism),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차별(heterosexism), 외모에 대한 차별(lookism), 신체의 능력에 대한 차별(ableism)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장이 그릇될 리 없다. 응당 어느 누구라도 차별당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세월 안에서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은 또 하나의 새로운 권력으로서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런 것이 인류사회의 권력이 지닌 기묘함이다.
그러한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불화한 탓에, 이탁오, 박세당, 정약용 등은 죄다 자의든 타의든 유배적 은둔의 삶을 살아내야만 했다. 그런 박세당의 시대에 비한다면, 21세기는 國際政治의 시대다. 국제정치를 조작하는 ‘Great Game’의 양상은 실로 복잡하며 복합적이다. 그러다보니 21세기에는 당최 은둔할 수 있는 시공간마저도 不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정치의 경우에도, 21세기 한국사회의 상황을 볼 때, 박세당의 시대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다. 保守는 이미 낡아버렸고, 進步는 이미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보수세력이 유가철학 흉내를 내더니, 진보세력이 執權하고서 세월이 흐르다보니, 이제 진보세력 역시 유가철학 흉내를 내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며, 곪은 종기는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보수가 그러했듯 진보 역시 이내 고이고 곪아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인 탓에 역사의 本性的 日常이다. 다만, 그런 시대 이데올로기와 불화하여 비판하는 자는, 결국 이탁오, 박세당, 정약용 등과 유사한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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