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정치철학, 프로이트 칼 융 괴벨스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10-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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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欲望無意識’과 ‘정치적 集團無意識’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는, 어떻게든 나름대로 意識的(理性的)인 존재인 양 살아내고자 하지만, 결국 철저히 無意識에 의해 작동하는 무의식적 존재임에 대해서 記述코자 한다. 그러한 모티브는, 필자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起因한다. 필자는 몇해 전, ‘鬪人 동물농장’이라는 곳에서, 雜役夫 노릇으로써, 수 개월 동안 糊口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최하층에게 가해지는, 실로 잔혹한 ‘갑질’을 여실히 체험했다.
그런데 그것은 非但 어느 개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 農場의 構成員 전체가, 핏발선 흡혈귀처럼, 어떤 대상이 자기보다 한치라도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집단적으로 온갖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類의 것이었다. 그래서 ‘터’가 중요하다는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당시에는 그 ‘동물농장의 터’가, 그런 ‘짐승 같은 자’들만 꼬여드는 시공간으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회상해 보아도, 그 ‘동물농장’에 모여사는 ‘동물’들은, 죄다 하나 같이 참으로 빈곤하고 저급한 족속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로서는, 최저임금도 되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나름대로 公心을 갖고서,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결과는 가혹한 ‘갑질’이었다. 그러니 ‘거지가 거지 꼴 못본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1-804’의 狂氣어린 ‘갑질’이었다. 폐기물 비용을 납부하라는 메모를, 현관문에 붙여 둔 일을 빌미로, 마치 ‘미친 개’처럼,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거품을 물고 짖어대며, 위세를 떨던 그 눈빛이, 당시 필자로서는 당최 ‘짐승’의 것으로도 뵈지 않았다. 더욱이 그러한 사태를 관망하며, 야비한 표정을 짓던 ‘동물농장’ 구성원들 전체의 눈빛 또한 그러했다.
이후, 그 사건은 지속적인 trauma가 되어서, 여전히 필자를 괴롭히고 있다. 당시 필자는, 단지 자기들의 ‘동물농장’에 고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든지 ‘갑질’을 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동물’들의 집단적인 사유방식이, 참으로 기괴했으며 궁금하기도 했다. 결국 ‘동물존재’는 그런 천박하고 유치한 차원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일까.
그저 간혹 뉴스에서나 접하던 일을, 필자가 직접 당하고 보니, 그 弊害는 당최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그 사건은, 저급한 ‘동물농장’에서 천박한 ‘짐승’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다. 과거에 필자는, 대한민국 최상층의 學閥을 지녔다는 교수, 강사, 박사, 석사 따위가 모여 있다는 곳에서도, 유사한 ‘갑질’을 체험했었다.
하긴 大統領까지도 集團無意識의 搖動으로써 이내 ‘갑질(탄핵)’당하는 세상이니, 그런 류의 ‘갑질’은 크게 문제될 것 없는지 모른다. 다만 필자로서는 인상적인 지점이, 그러한 일련의 作態들에 공통하는 것은, 그 정치적(사회적) 決定의 正當性이나 正統性이, 지극히 恣意的이고 集團的인 무의식에 根幹을 둔다는 점이다.
때문에 필자는, 그러한 ‘갑질’의 토대가 무의식에 기반하고 있으며, 특히 集團無意識으로써 작동한다는, 오랜 窮究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에, 그 이론적 바탕을 論述하고, 논리적으로 검증하여, 좀 더 확장된 主張을 제시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현실세계에서 政治의 실제적인 목적은 권력의 簒奪이다. 原論的으로 정치는 인간세계를 보다 나은 상태로서 작동시키는 근본적인 원리이지만, 실제적으로 인간존재에게 체감되는 정치는, 곧 政權의 向背이다. 인간존재가 이러한 정권은 목적하는 까닭은, 富와 權力과 名譽를 누리기 위함이다. 이런 것들을 좋은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권은 무엇에 의해 작동하는가. 그것은 현대적 표현으로는 經濟力이다. 저 먼 古代로부터 現代에 이르도록, 東西를 막론하고서, 백성(국민)을 먹여 살라지 못하는 정권은 존속될 수 없다. 그렇게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경제력이다. 따라서 경제력을 약화시킨다면, 그러한 정권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그런데 경제력은 지극히 無意識的인 영역에 토대를 둔다. 대체로 경제활동은 다분히 意識的인 행위로서 인식한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결코 의식적인 활동만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무의식적인 행위이기 십상이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가장 기초적으로 衣食住에 있다.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집을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경제활동의 始發點인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의식주에 욕망이 덧씌워지기 어려웠다. 財貨를 생산하는 역량이나 기술이, 그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명활동이 적극화되면서, 이제 잉여생산물이 축적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더욱이 기술발전도 가속화되어, 더욱 많은 ‘所有的 欲望’을 부추기게 된다.

본래 욕망이란, 지극히 무의식적인 정신작용이다. 그래서 욕망을 제어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만약 자기의 욕망을 自由自在할 수 있다면, 그는 聖人君子나 賢者로 불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대부분의 인간존재는, 철저히 욕망에 服務한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목적하며, 욕망에 지배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인간존재의 욕망이, 가장 절실하게 顯現되는 현장이, 바로 경제활동이 실현되는 市場이다. 그래서 시장이 발달할수록 인간존재의 ‘무의식적 욕망’을 자극하는 기술도 발전한다. 그러한 경제력이 정치권력에 가장 주요한 변수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정권은 죽는다’는 법칙이 규정될 수 있다.
다만,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서도, 정권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북한이다. 그러할 때,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고통은 오롯이 백성의 몫이다. 그리고 정권은,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反動을 상쇄하기 위해, 아주 가혹한 정치를 실현케 된다. 이는, 역사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정치와 경제의 악순환’이다. 다만 그 고통의 몫일 따름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 현대에는 정권이 선거를 통해 移讓된다. 그런데 그 과정은 결코 의식적이지 않다. 그러다보니 당최 理性的으로 납득되지 않는 현상도 目睹하게 된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는, 경제활동이나 정치활동을 지극히 의식적인 활동으로서 전제하는 오류 탓이다.
경제활동이나 정치활동이 의식적인 것으로 분별됨은, 그것이 인류문명의 高度한 지식으로써 포장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꾸만, 門外漢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전문적인 이론과 논리로써 무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경제활동이나 정치활동이, 지극히 理性的이며 意識的인 것으로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활동은 철저히 ‘무의식적 욕망’에 의해 작동하고, 그러한 경제활동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정치권력 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한 작동방식을 알지 못하면, 현실세계의 경제활동과 정치활동은, 올바르게 인식될 수 없다. 이에, 그 근원적인 법칙과 원리를 모색하였으며, 그 大綱을 제시한다.

대체로 ‘欲望(desire)’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분별할 때, 本能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나 ‘윌리엄 맥도갈’은, 食慾, 性慾, 群居, 模倣, 호기심, 鬪爭, 逃避 등을 본능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칼 마르크스’는 식욕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욕을, ‘프리드리히 니체’나 ‘알프레트 아들러’는 권력욕을 근본으로 하여, 자신들의 학설을 만들었다.
현대의 심리학은 個體의 動因을, 단순히 선천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생각하여, 기본적 욕구라고 본다.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진정한 욕구와 準욕구로 구분하였고, ‘제임스 프레스콧’이나 ‘게이츠’는, ‘생리적·생물적 욕구’와 ‘사회적·인격적 욕구’의 2가지로 크게 구별하였다.
‘생리적·생물적 욕구’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 활동욕, 성욕 등이며, ‘사회적·인격적 욕구’는 사회적 認定의 욕구, 집단소속의 욕구, 애정의 욕구, 성취의 욕구 등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생리적 욕구를 기초로 하여, 안전의 욕구, 애정의 욕구, 自尊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 5가지 욕구가 계층적 구조를 형성한다고 설명하였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욕망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하였는데, 라캉의 ‘욕망(désir)’은, 프로이트의 용어 ‘所望(Wunsch)’의 프랑스 번역어에 해당한다. 이는, 프로이트의 표준판 번역본에서 ‘wish’로 번역되어 있다.
‘라캉’은,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를 따라서,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때 욕망은 ‘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항상 ‘무의식적 욕망’에 해당한다. 또한 이 ‘무의식적 욕망’은 완벽하게 性的인 것이다.
그런데 이는, 지나치게 ‘프로이트의 神話’에 傾倒되어버린 결과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욕망은 ‘무의식적 욕망’이며, 그것은 철저히 경제활동에서 發現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자연스레 정치철학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前述했듯이,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정치권력은 죽기 때문이다.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도서정보 : 월터 앨버레즈 | 2018-10-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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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세계를 물려받은 몇 안 되는 행운의 존재들이다!
빅 히스토리가 선사하는 세상과 인간을 보는 새로운 관점


• 소행성 충돌 공룡멸종설을 밝혀낸 저명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의 저서
• 이강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번역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추천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룡을 멸종시킨 다섯 번째 대멸종의 비밀을 밝힌 지질학자 알바레즈는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등장한 사건은 연속적인 우연의 결과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 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우주에 대한 겸손함을 샘솟게 하는 책이다.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도서 소개

소행성 충돌로 인한 공룡 멸종을 밝혀낸
지질학자 월터 앨버레즈가 풀어낸 장구한 역사

월터 앨버레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아버지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와 함께 소행성 충돌과 공룡 대멸종설을 밝혀내 주목을 받은 유명 지질학자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에서 138억 년의 우주 역사, 45억 년의 지구 역사,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 국가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기까지 이어진 몇 세대의 가계도 등 생각할수록 불가능하게 보이는,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역사를 기막힌 우연들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그려 낸다.
빅 히스토리는 우연의 연속이라는 파노라마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가와 과학자 들이 함께 전통적 역사에 우주와 우주의 과거를 연구하는 과학적 통찰력을 결합시켜 새롭게 개척한 분야이다. 월터 앨버레즈 역시 빅 히스토리가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결합이라고 여기며, 이 네 가지 카테고리는 그가 UC 버클리 대학에서 개설한 빅 히스토리 강의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중 우주 역사, 지구 역사, 생명 역사는 명백히 과학의 영역인데,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육학자 신시아 브라운과 같이 지금까지 빅 히스토리를 집필한 이는 대부분 인문학자인 것이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역사가가 아닌 과학자가 쓴 첫 번째 빅 히스토리로, 역사들의 얽힘과 그 결과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서술했다. 앨버레즈는 전염성 강한 그의 호기심과 독특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우주상에 존재하게 된 불가능한 여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여러 믿기 어려운 사건들인 빅뱅, 초대륙 형성, 청동기 시대의 시작 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빅뱅 순간에서 지금 우리 삶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어떻게 변해 왔고, 그 변화는 현실을 어떻게 바꾸었나?

절대적으로 거대한 우주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간의 현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우주 나이는 1920년대 허블과 휴메이슨이 빅뱅 우주론을 제기한 이래 수정을 거쳐 현재 138억 년으로 밝혀졌다. 그 후 지질학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현재 지구 나이는 약 45억 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 역사와 지구 역사 모두 현재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너무 길어서 역사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지질학자 앨버레즈가 제시하는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면 새로운 척도가 필요한데, 기록된 인류사는 5000년 정도 되지만 지구 역사는 약 45억~50억 년이기 때문에 100만 년을 인간 역사의 1년으로 간주하고 거대 역사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공룡이 멸종한 6600만 년 전은 인류사에서 불과 66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관점을 빅 히스토리에 맞춰 놓고 상상력을 동원해 우주와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자. 그가 말하는 기막힌 우연들 중 첫 번째 우연은 바로 빅뱅이다. 우주는 “모든 공간을 포함하는 빅뱅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뜨겁고 무한히 작은 점에서 신비롭게 시작했다.” 수소, 헬륨, 미량의 리튬밖에 없었던 우주가 암흑시대를 거쳐 별 내부의 원소를 융합하고 별의 일부를 폭발시켜 물질을 진화시켰다. 이때 주변 성운이 폭파하면서 생성된 무거운 원소들이 우리은하의 태양 주변에 모여들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은하 내에 암석의 생성이 가능한 조건이 갖춰졌고 태양계 내에서 지구라는 안정화된 행성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지구 역사에서 ‘규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규소는 지구가 탄생할 때에 산소, 마그네슘, 철과 더불어 우리 행성을 구성한 주요 요소였고 석기 제작, 유리와 같은 인공 물질의 발명, 컴퓨터에도 쓰이는 중요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이 규소를 응축하고 사용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인류가 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판구조론이 등장한다. 판과 판, 즉 다른 대륙끼리 마그마에 의해 갈라지고 부딪히면서 일어난 대륙충돌에 의해 이산화규소를 다량으로 포함하고 있는 화강암이 만들어지는 덕택에 석영 결정이 생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퇴적된 석영 결정은 풍화작용 덕분에 모래 언덕이나 강의 수로, 해변에 쌓여서 거의 영원히 남는다. 이렇게 판의 이동과 거친 풍화작용을 거쳐 처음에는 행성에 존재하지 않았던 석영이 지구에 만들어졌다.
규소는 사실 지구가 자원을 생산하는 과정의 한 예이다. 빅 히스토리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칼 세이건의 말처럼 지구가 집적한 ‘별 먼지’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만들어진 대양과 산맥, 강과 같은 지형들이 인류사를 만드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떨까?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이 생성된 것도 무수한 우연의 중첩으로 가능했던 일이지만, 생명이 탄생하는 것 역시 우연들의 연속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첫 조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직 이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긴 명왕누대와 시생대 잠복기 중 어느 시기엔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가 등장했고, 진정세균, 고세균의 세포내공생으로 진핵생물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DNA를 가지는 핵을 포함한 우리 세포의 주요 부분이 되었다. 이후 다세포동물이 진화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몸이 등장했고 고생대를 거치며 동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뼈와 껍데기 같은 단단한 부분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중생대를 거치며 육지 위에서 파충류, 조류, 양서류, 포유류 등이 나타났다. 이후 6600만 년 전 유카탄반도에서 있었던 거대한 충돌이 심각한 환경 변화를 일으켰고 공룡이 멸종하면서 영장류, 즉 인간의 조상이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류에 이르렀다. 인간은 지구에서 거주 가능한 지역을 거의 전부 차지하고 있는 놀라운 종이다. 신대륙을 향한 호기심, 화성과 달 탐사로까지 이어지는 모험심! 이렇게 놀라운 특징을 지닌 인간을 만든 특징은 무엇일까? 월터 앨버레즈는 불과 도구의 사용을 인간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단순한 가열의 수단으로서 불을 사용한 초기 인류를 지나 인간과 불의 만남은 산업혁명과 로켓 발사를 가능하게 했다. 또 도구는 어떤가?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등 광물을 가공하고 이를 사용하면서 인류를 문명을 이룩했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앞서 살펴본 지구 역사에서 광물의 생성 과정과 긴밀하게 얽혀 있고, 지질은 인간 문명이 의존하는 자연 자원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다. 대양, 산맥 강과 같이 지구가 만들어 낸 우연의 결과물들이 없었다면 인류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규칙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선 사건이 후대의 조건이 되는 이러한 맞물림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빅 히스토리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와 인간의 삶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 낸 우연과 경이의 빅 히스토리

월터 앨버레즈는 2006년부터 버클리 대학에 ‘빅 히스토리: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제목의 강의를 개설하여 운영해 오고 있고, 이 책은 그 강의에 기반한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강환 관장은 빅 히스토리가 그동안 별개의 학문으로 발전해 온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화학, 인류학, 고고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모두 포괄하여 다룸으로써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최적의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철학적 사고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은 지식을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더 크고 넓은 영역에 미치는 운동과 생성의 원리를 생각해 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말하듯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으로, 우주의 탄생부터 연속성과 우연성으로 이어진 긴 흐름의 일부인 우리를 생각하게 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선사한다.




◎ 추천사

바야흐로 빅 히스토리의 시대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역사의 큰 분야를 엮어 만든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를 하나로 꿰려는 역사학자들의 시도는 신선했다. 과학자들이 뛰어들었다. 하지만 폭넓은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도하고픈 작업이고 어찌 보면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빅 히스토리를 다룬 책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그런데 소수의 역사학자들이 쓴 초기 저작과는 달리 이후의 책들은 그 길을 잃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분야를 단순히 결합했다고 해서 빅 히스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라는 네 가지 큰 구슬과 함께 인간의 삶에 얽힌 소소한 구슬을 인류 원리를 중심으로 꿰어야 빅 히스토리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은 서 말의 구슬을 제대로 꿰어 보배로 만든 최초의 빅 히스토리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공룡을 멸종시킨 다섯 번째 대멸종의 비밀을 밝힌 지질학자 앨버레즈는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우리가 등장한 사건은 연속적인 우연의 결과임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 준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우주에 대한 겸손함을 샘솟게 하는 책이다.

-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책 속으로

모든 것에 관한 광범위한 역사가 인류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인간 현실이란 광활하게 펼쳐진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발생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일어난 거의 모든 일은 더 먼 과거 사건들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모든 과거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전반적 관점을 ‘빅 히스토리’라고 부른다. 나는 빅 히스토리를 우주, 지구, 생명, 그리고 인류라는 네 영역의 결합이라 여긴다. 이들 영역 각각은 매혹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서, 어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가 아니라, 이 특별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돕는다.

_프롤로그 pp. 9-10



역사적 관점이란 우리가 삶에서 부딪는 모든 것을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빅 히스토리의 전 범위를 관통하는 역사 속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의미한다. 우리는 역사적 관점이 인간 현실에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1장 빅 히스토리, 지구, 인간 현실 p.26



역사는 우발적이어서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주, 지구, 생명, 인류의 시대를 통틀어 수없이 많은 순간에, 얼마든지 역사는 우리 세계가 실제로 지나온 경로와 다른 경로를 밟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현실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어쩌면 인간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_1장 빅 히스토리, 지구, 인간 현실 p.27



전 지구에 걸쳐 문명을 이룩한 인간의 모든 역사는 이 행성 위에서만 중요하지, 우주의 맥락에서는 완전히 무시할 만하다. 우리는 이런 거역할 수 없는 깨달음에서 겸손하게 빅 히스토리 탐험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미미한 작은 지구에서 인간에까지 이른 역사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 탐험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39



만약 현재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 물질 종류, 또는 기본상수 들이 달랐더라면 인간이 처한 현실 중 어떤 양상도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 중 하나라도 현재의 값과 조금만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 조건들이 핵융합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우리 태양은 생명이 진화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천천히 탔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53



달은 인간 현실에서 중요한 일부를 차지해 왔다. 지구의 회전을 안정화시켰고, 바다동물들이 육지의 삶에 적응하도록 조수를 유발했고, 칠흑 같은 어둠으로부터 밤을 지켰고, 젊은 연인에게 낭만적인 저녁을 선사했고, 인간이 달력을 만드는 것을 도왔으며, 우주탐사 초기에 가까운 대상으로서 인간이 지구 밖에서 발을 디딜 곳을 내주었다. 그런데 거대한 달을 단 하나만 가진 행성이 흔하지 않다. 태양계에서 지구만이 유일하게 하나의 달을 가지고 있다. 달이 없거나, 두 개가 있거나, 또는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도는 달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인간 현실은 매우 달라졌거나 아예 인간이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_2장 빅뱅에서 지구까지 p.67



지질학을 바탕으로 빅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세이건이 정리한 내용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이야기는 초신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간공간에 흩어진 화학원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주선 한 대가 멀리 떨어진 다른 태양계를 향해 항해하는 도중, 컴퓨터 칩을 제작해야 해서 규소가 필요한 긴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우주선이 과거의 초신성 폭발들로 이루어진 희박한 기체를 통과하고 있고 그 기체가 규소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주인이 규소를 모아서 사용할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 원자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_3장 지구가 준 선물 p.74



네 가지 주요 원소 중 규소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규소는 우리 행성을 구성하는 광물 대부분과 암석의 근간이다. 탄소가 생명의 기본이듯이, 규소는 암석의 기본이다. 더구나 많은 암석은 그것들이 있던 환경에 대한 기록을 품고 있고, 지질학자들은 그 정보를 어떻게 캐내는지 알아냈다. 나는 암석이 자신의 역사를 ‘기억한다’고 말하고 싶다.
규소에 초점을 맞추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대단한 기술 역량을 갖춘 인류로 발돋움하는 데 규소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도구들은 현재 아무것도 남아 있지는 않지만, 아마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믿을 만한 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도구들은 규소가 기본 성분인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물질이 인공 물질로 이행하게 된 중요한 하나가 유리인데, 이것은 규소가 풍부한 석영을 녹여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의 첨단기술을 보유한 문명은 규소를 이용해 매우 정교하게 만든 컴퓨터 칩에 의존하게 되었다.

_3장 지구가 준 선물 p.76-77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고대 권위에 대한 중세의 의존성을 타파한 사람은 포르투갈 선원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목의 적도 벨트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기후 지대가 다섯 가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나가서 눈으로 확인하여 일곱 가지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서는 인도양이 유럽에서 배로는 닿을 수 없는 사방이 막힌 바다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인들은 배를 타고 나가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를 수정했다. 권위를 거부하고 관측과 실험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히 현대 과학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_4장 대륙과 해양이 있는 행성 p.130



인간을 연구하는 역사학자가 보았을 때 산맥은 소통과 이동에 결정적 장애물이었다. 히말라야산맥과 알프스산맥은 인도와 이탈리아 문명을 보호해 주었다. 물론 침략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중 어떤 것은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비행기와 거대한 터널을 이용하여 산맥들을 쉽게 가로지르므로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산맥이 역사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잊게 된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36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산맥들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1657년의 것으로, 산맥을 “자연의 수치이자 상흔”, 혹은 깨끗한 자연의 얼굴에 난 “사마귀, 물집, 종양, 종기”라고 비난했다. 18세기나 19세기까지도 여행자들은 두려움을 품은 채 산맥으로 갔는데,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신이 제대로 된 지도와 안내자도 없이 중세에 알프스산맥을 넘어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가려고 하는 여행자라고 상상해 보라. 이정표 없는 교차로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 눈 덮인 암석과 바윗덩어리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라. 저 등성이만 넘으면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사라져 가는 길을 따라 길고 급한 오르막을 올랐는데, 마을은 보이지 않고 또 다른 계곡과 등성이, 그리고 그 너머에 또 다른 등성이만 보이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때 오후의 빛이 약해지면서 태양은 다른 등성이 너머로 내려가고 추운 밤이 다가오는 한기가 느껴진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쉴 만한 안식처도 없어 다음 날 아침까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p.142-143



18세기와 19세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발견들로 지질학자들은 지구 역사가 짧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구 역사는 수천 년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길고, 지금은 약 45억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발견들과 함께 산맥 역시 거대한 재앙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느린 과정의 결과물로,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산맥의 풍경은 점진적으로 만들어지고 침식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산맥이 상흔이 아니라 조각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48



우리는 멀리 떨어진 대륙들의 모양을 살펴보았고, 인간 현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그 모양이 기나긴 초대륙 순환에서는 짧은 순간에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제 인간 현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인 산맥들 역시 지표면의 일시적인 모양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대륙이 충돌하는 곳에서는 밀려 올라가고 초대륙 순환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 침식되어 없어질 것이다. 인류가 1억 년 더 일찍, 혹은 늦게 진화했다면 인간 현실이 되는 대륙과 산맥의 모습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_5장 두 산맥 이야기 p.159



스티븐은 마지막 빙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북아메리카의 대륙빙하가 캐나다 국경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스코틀랜드와 스칸디나비아의 대륙빙하가 합쳐지지 않은” 시나리오를 연구했다. 그는 미주리강과 오하이오강은 현재의 경로까지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며, 물의 흐름은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강의 형태로 흘렀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서쪽에 벽이 형성되어 13개 주는 대서양 연안에 영원히 갇혔을 것이다. 거대 호수도 이리 운하도 없었을 것이다. 동서 방향으로 쉽게 물을 운반하는 오하이오강과 미주리강이 없었으므로 미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스코틀랜드와 스칸디나비아의 대륙빙하가 더 작았다면 영국해협이 없고 영국 섬들이 유럽의 반도가 되었을 텐데, 이는 유럽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나는 이것이 빅 히스토리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자료라고 생각하여 스티븐의 허락을 얻어 주석에 그의 초록 전체를 소개한다. 나는 이 책의 주요 주제 두 가지, 즉 지질학 역사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가 얼마나 쉬웠는지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다.

_6장 고대 강에 대한 기억 pp.177-178



우리 여정의 양 끝에 있는 대도시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강에게 큰 빚을 졌다. 뉴욕은 빙하로 침식된 멋진 허드슨강 끝에 있는 덕분에 성장했다. 북아메리카 내륙으로 들어가는 애팔래치아산맥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자연 경로인 이리 운하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 후 개척자들이 서쪽으로 대륙을 가로지른 속도는 놀라웠다. 샌프란시스코는 새크라멘토강으로 이어진 물에 잠긴 강 계곡이 멋진 항구가 된 덕분에 번성했다. 이리 운하가 완성된 지 불과 25년 만에 금이 풍부한 새크라멘토강의 지류들이 광부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_6장 고대 강에 대한 기억 p.192



약 5억 4000만 년 전부터 생명체의 화석 기록이 풍부해졌다. 생명체의 단단한 부분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달팽이나 조개의 껍데기, 우리의 뼈와 이 등이 그런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이런 화석의 등장을 캄브리아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다세포동물에게 단단한 부분이 소화계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초의 다세포동물에게는 단단한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 순간에 단단한 부분이 여러 동물에게서 나타났다. 아마도 자연의 무기 경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단단한 부분을 만들어 낸 동물들은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다. 삼엽충이 눈을 진화시켜 훨씬 더 강력한 포식자가 되면서 이에 대항하여 단단한 부분으로 방어할 수 있는 피식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게 일반적 관점이다.

_7장 생명 역사의 개인적인 기록 pp.211-212



인간 몸의 역사와 기원을 살펴보면 인간의 현재 상황이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좌우대칭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턱이 움직이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면? 공룡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다른 생물학 경로로 진화가 일어났다면? 빅 히스토리의 다른 많은 경우와 함께 보면 우리 몸의 특징을 만든 것은 아주 특별하고 일어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_7장 생명 역사의 개인적인 기록 p.223



인간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졌는지 알 수 있을까? 초기 인류를 분류하는 일은 복잡하고 논란이 많으며 적은 화석 자료에 기반하지만, 호모 속에 속하는 세 종이 아프리카에서 차례로 등장했다는 주장은 꽤 지지를 받고 있다. 첫 번째는 25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하빌리스로서 거친 올두바이 석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은 약 18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에르가스테르로서 정교한 아슐리안 손도끼를 만들었다. 이것은 큰 먹이를 다듬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3장에서 보았듯이 현재로는 캐시 시크와 닉 토스가 말한 대로 극히 일부의 호미닌들만이 만들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로, 이들은 복잡한 문화를 이루고, 돌 말고도 여러 재료로 다양한 종류의 도구들을 생산했다.

_8장 위대한 여정 p.243



불의 사용은 인간의 결정적 특징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무엇이 인간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불을 다루는 것은 우리 종의 가장 결정적 특징일 수 있다. 고래도 언어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고 침팬지도 막대기를 간단한 도구로 사용하여 먹이를 얻는다. 그런데 현존하는 모든 인간 집단에서는 불을 사용하는데, 적어도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불을 사용하는 다른 종은 어디에도 없다.

_9장 인간 되기 p.264



어떻게 문명이 그냥 사라질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청동기시대의 도시들이 사라진 원인에 대하여 가뭄, 이주, 철기시대의 도래 등을 포함한 몇 가지 가설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가설에 특히 흥미가 있다.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의 지구물리학자 아모스 누르Amos Nur가 제안한 것으로 넓은 지역에서 지진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또 하나는 밴더빌트 대학의 역사학자 로버트 드류스Robert Drews가 제안한 것으로 후기 청동기시대 도시들이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던 마차 활쏘기 부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이방인 부족들이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하여 파괴했다는 가설이다.15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끔찍했다. 키프로스에서만 기원전 1200년경에 팔레오카스트로Paleokastro가 불타고 아이오스 디미트리오스Ayios Dhimitrios는 폐허가 되었으며, 신다Sinda, 키티온Kition, 엔코미Enkomi가 모두 불탔다. 중동에서 문명이 회복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렸다.

_9장 인간 되기 p.280



문제는 시간의 범위이다. 지표면 온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 범위에 따라 경향이나 주기를 보게 될 것이다.4 지난 1만 년 동안 기온은 눈에 띄게 일정했다. 하지만 지난 100만 년을 훑으면 빙하기와 간빙기가 10만 년 이상의 주기로 순환한다. 하지만 더 짧거나 긴 범위로 보면 기온이 내려가는 경향과 기온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나는 빅 히스토리의 모든 시기 동안 역사가 펼쳐지는 방법을 보면 다른 종류의 이분법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다양한 시간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된 경향성과 순환성으로 이루어진 연속성continuities이고, 또 하나는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변화를 만드는 드문 사건인 우연성contingencies이다.

_에필로그 pp.296-297



더 재미있게는, 지금은 우리 태양계와 같이 두 물체 이상으로 이루어진 계의 궤도들은 긴 시간에서는 본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금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을 결정론적 혼돈이라고 하는데, 태양계 역사 초기에 태양계에 있는 모든 천체의 위치와 운동을 아주 잘 알고 무한한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위치와 움직임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용어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포함되어 있다. 궤도를 도는 물체의 운동은 물리법칙으로 완전히 결정되지만, 우리는 결코 초기 조건을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긴 시간에서는 초기의 위치와 운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현재의 태양계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것을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의존한다’라고 표현한다.

_에필로그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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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자의 비밀

도서정보 : 김홍기 | 2018-10-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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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진정한 부와 행복은 무엇일까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와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에 따라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기준도 없고 이렇다 할 합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부이며 행복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부에 대한 염원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부와 행복을 얻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 이유로 치열한 삶의 여정도 마다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갑니다. 집을 떠나는 아픔을 뒤로 하고 때로는 자기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부와 행복을 좇아 달리는 것입니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서 실제로 부와 행복을 이룬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어느덧 지쳐가고 아무런 희망도 가슴에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부를 이룬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고 자조까지 합니다. 실망과 회한의 눈물이 가슴에 가득 고입니다. 자신이 지금껏 희생한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울 수조차 없습니다. 그의 가슴은 울지 못한 아픔으로 멍들어 갑니다. 이때 별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서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 그는 아름다운 별빛을 바라보면서 대답합니다. “나는 부와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별이 말합니다. “당신은 이미 부와 행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별빛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습니다. 그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군’ 하면서 평소에 앉아 쉬던 벤치에 기대어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찾고 있나요?’ 그의 의식이 술렁입니다. 잔잔하고 편안하지만 그러나 힘 있는 기운이 그의 마음을 가로지릅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조용히 미소가 번집니다. 그는 별빛 이 남긴 말의 의미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행복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바로 행복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풍요로움이며 우리의 미소가 바로 행복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모든 현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위대한 창조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로 자유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란 바로 내가 느끼고 내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나의 존재는 별과 같은 것입니다. 행복과 부의 본질에서 멀어져 가는 위대한 정신에게 자신의 위대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정신으로 하여금 그 위대성을 망각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위대한 정신 그 자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이 우리에게 가난과 부족함을 부여하고 그것을 강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허용한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습니다. 이제 자기 최면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위대함을 일깨워야 할 때입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자신 안에 내재한 풍요로움과 충만함이 외부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행복과 부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부를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스스로의 내면에 숨 쉬고 있는 위대한 자유를 볼 수 있는 혜안으로 내 안의 위대한 가능성을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책을 가까이 두고 반복하여 읽어서 그 동안의 부정적인 습관이 바뀌고 의식이 바뀌어 삶을 바라보는 인생관과 함께 여러분의 삶 자체가 바뀐다면 저 또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과 부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 이 사소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우리들은 늘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각자의 삶 속에 이 진리를 실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과 부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2010년 봄 장생원에서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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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도서정보 : 움베르토 에코, 리카르도 페드리가 | 2018-10-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歷史‧藝術‧科學
문화사로 엮은 철학적 사유의 계보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 편저한 서양 지성사 프로젝트!


초인의 지성과 작가의 감각을 겸비한 움베르토 에코의 철학 이야기!

철학에서 싹을 틔운 당대의 관념‧이론‧논쟁‧문화‧과학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철학의 길’을 가장 독창적으로 잇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생각하는 존재,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들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 도서 소개

가장 먼 곳을 내다본 난쟁이
철학자로 남고 싶었던 ‘지식의 박물관’
움베르토 에코가 안내하는 경이로운 사유의 역사

철학이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그 반응으로 철학을 시작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는 어원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
움베르토 에코에게 철학이란 다른 종류의 학문들이 답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다. 예를 들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사람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받은 고통을 보상해 줄 사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로부터 출발해 그리스와 라틴 철학, 그리스도교 철학과 중세 철학을 거쳐 새로운 문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4세기 초반을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단순히 철학이라는 분과 학문의 역사를 꿰뚫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어떠한 사유 방식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더 나아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공부하고 이해하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안내를 받아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유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 매력적인 여행은 물질문명의 관점에서 사유의 역사를, 사회와 삶의 양식이라는 차원에서 사고방식의 변화를, 역사와 예술과 과학의 차원에서 철학을 바라보는 이례적인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고대 우주론에서 현대 정치사상까지
철학과 문화의 얽힘을 드러내는 야심찬 기획!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는 움베르토 에코와 볼로냐 대학의 철학교수 리카르도 페드리가가 ‘la filosofia e le sue storie’라는 제목으로 기획한 철학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더욱 사람들에게 친근해지기를 바라며 사상과 그 사상의 문화적인 환경을 연결하는 철학 이야기를 늘 꿈꿨다. 이에 움베르토 에코와 리카르도 페드리가는 우리를 다시 '생각하는 삶'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철학의 역사를 한데 모으고, 철학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학자와 전문가 83명을 참여시켰다. 이들은 철학에 대한 단순한 역사를 기술하기보다는 철학자들이 살았던 그 시대와 문화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춰 철학 이야기를 썼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각 시대와 문화 안에서 각 철학자들이 지녔던 위상과 그의 사상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고, 각각의 챕터를 관심사 별로 엮어서 읽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이 경건하고 심오한 학문이라는 부담을 가지지 않고 철학을 ‘이야기’처럼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와 같은 지성사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다. ‘la filosofia e le sue storie’는 고대·중세, 근대, 현대로 나뉘어 총 세 권으로 발행되었으며 움베르토 에코와 리카르도 페드리가는 기획자이자 저자로서 각 시대에 대한 자신의 관점들 (예를 들어 중세에 대한 해석, 플라톤이 그리스도교에 미친 영향 등)을 적절하게 녹여 독창적인 철학 이야기를 구성했다. 각 장에 삽입된 ‘책과 호리병’기호로 시작하는 글, ‘망원경’ 기호로 시작하는 글들은 철학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사상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들 (고대인들의 일상과 그들의 성에 대한 인식, ‘의학’과 같은 과학의 발전과 건축과 수학에 녹아들어 있는 사상 등)을 다뤘다.

고대와 중세의 철학과 철학자
그리고 그들을 낳은 당대의 다양한 문화들

• 철학의 시작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낙사고라스, 히포크라테스 등 철학자들은 철학의 시작을 연 사상가들이다. 평생 순수한 ‘앎’을 목표로 하는 지적 활동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철학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특정 계층의 관심을 모으고 의도적으로 혁신을 꾀하면서 독창적인 학설들을 내놓았다. 이후에 아테네의 무대를 중심으로 등장한 앎의 전문가들인 소피스트는 사고와 언변에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이들이며 오늘날의 문화비평가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아테네의 청중들은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증명되는 과정을 목격하거나 담론을 통해 한 논제의 증명과 반대되는 논제의 변론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뛰어난 논쟁술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장에서는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안티폰, 프로디코스, 히피아스, 트라시마코스 등의 소피스트들이 어디에서 활동했고 어떤 사상에 주목해 사상에 관한 기술을 펼쳤는지 소개한다.

•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절대적인 창시자로서 무대 위에 오른 소크라테스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은 고대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그 대신 ‘살아 있는 책과 다름없는 제자들’을 남겼다.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오해들, 신화들, 일화들을 오가며 그의 사상의 핵심과 그가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했던 원칙들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 준다. 소크라테스는 스승을 자처한 적이 없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철학 학교들이 창설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만들어진 학파로는 메가라학파, 엘리아학파, 키레네학파, 키니코스학파 등이 있으며, 이들이 설파한 핵심 사상도 소개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사후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다. 그 여정과 아카데미 설립 이후의 사상적 영향력을 보여 준다. “유럽 철학 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장 확실한 특징은 그것이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졌다는 화이트헤드의 말이 잘 보여 주듯이, 플라톤은 좋든 싫든 우리가 여전히 고민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일련의 질문들을 제시했던 철학자이다. 철학이란 서로의 생각을 비교하고 대화를 통해 실천하는 학문이라는 뜻에 따라 수많은 대화록들을 남겼고, 정치인들의 교육이 본질적으로 철학, 즉 변증법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플라톤과 아카데미의 제자들은 정치적 차원의 현실적인 문제도 외면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가장 아끼던 제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바로 후세대 철학자인 스토아학파에는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했으나 그의 저서가 전해지면서 1세기 이후에 아랍세계에 영향을 떨쳤고 이후 그리스도교로 전해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시학과 수사학이 유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대한 연구를 통해 존재론,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정치학, 윤리학 이론에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또한 그는 플라톤주의를 비판하면서 후세대들에게 실체에 대한 사유, 형상과 질료, 잠재력과 행위에 대한 사유뿐만 아니라 연역법과 귀납법이라는 사고의 종류와 종과 속의 분류법을 유산으로 남기는 등,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철학 용어들을 남겼다.

• 헬레니즘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의 철학
철학사에서 헬레니즘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한 기원전 322년에 시작해 클레오파트라가 사망한 기원전 30년까지 지속된다. 헬레니즘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는 에피쿠로스이다. 이후 키케로와 루크레티우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만 헬레니즘 철학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첫 번째 시기는 고전 시대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놓여 있어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이전 철학자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그 유산에 대한 의견을 다양하게 열어 둠으로써 토론의 수준을 성장시키는 환경을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 철학자들은 왕성한 필력을 자랑한 덕분에 여러 학파들에 대한 문헌의 수집과 목록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포에니전쟁의 종결을 기점으로 서로마제국의 몰락에 이르는 시기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철학을 그 시대 분류의 요구와 주제 분류 요구의 충돌로 라틴 혹은 로마철학이라고 분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지적 엄격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루크레티우스와 같은 철학자도 존재했다. 그리스 철학과 전적으로 다른 로마만의 독립된 철학이 형성된 적은 없다 하더라도 로마철학의 특징을 꼽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처럼 추상적인 사고를 사랑하는 대신 자신들의 전통적인 사고에 깊이 천착하는 경향을 보였고 로마의 위대함과 권력에 상응하는 모든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등이 있다.

• 고대 말기의 철학
1~4세기는 한마디로 문화적인 갈등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모든 민족들이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정치적으로 안정된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웅변가들이 도시를 순화하고, 의학, 수학, 음악, 천문학이 발전했으며, 기계와 첨단 무기가 발명되고, 문화의 성장과 함께 전인교육이 싹을 틔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독창적인 창조 활동이 부재했다. 과거의 문화 전통을 빠짐없이 습득하고 해석하며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을 뿐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에서 기존의 이성을 중시하는 전통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에 반대하는 종교사상이 등장했다. 후에 혼합주의로 불리게 되는 이 종교 사상은 다양한 형태의 신비주의와 계시종교 사상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민족에게 그들이 섬기던 신들이 변방의 영토와 도시국가들이 로마 제국에 병합되면서 모든 신들이 정체성을 잃고 신화라는 용광로 속에 뒤섞이고 말았다. 이러한 혼합주의와 회의주의가 낳은 독특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로마제국이 인정하는 종교로 선포되었고, 이후 지배 계층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 사이에 독특한 종교적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다신주의 성향이 아닌 ‘하나의 보편적인 영혼’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이는 신플라톤주의로 나타난다.

• 철학과 신학
12세기에 시작된 아리스토텔레스 저서의 번역 작업과 함께 13세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지배했다. 그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신학자들과 그리스도교 철학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 있는 저자들 중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는데, 인문학과 신학 사이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인정하는 문제를 두고 끊임없는 논쟁과 토론이 대학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신학과 인문학이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논의의 형식과 방법론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문제의 진행 방식이 정착되었다. 이러한 도전을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인 신학자가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인정하는 문제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과연 그리스도교 사상과 조합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상이한 입장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1277년 파리의 주교 탕피에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지고 그리스도교 교리에 위배되는 219개 논제의 단죄를 천명했다. 이런 식으로 교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제한한 것이다. 반대로 인문학과 교수들은 철학이 신학의 통일성을 위해 희생되거나 가려질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상이한 해석과 의견을 제시하면서 학문의 방법론은 다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명 작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진지한 철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1932~2016)는 철학자, 미학자, 기호학자, 언어학자, 소설가 등 여러 직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걸출한 학자이자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했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를 읽을 줄 알던 언어 천재이기도 했다. 그는 이 시대의 ‘르네상스 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를 나타내는 많은 이름들 중에 단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철학자’를 선택하겠다고 답할 만큼 마지막까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바로 ‘철학’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3000년 철학적 사고 흐름을 보여 주는 이 방대한 지적 작업의 포문을 열면서 철학은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에 비해 철학이 비실용적인 관념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역사가 흐르는 동안 철학적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쳐 왔고, 철학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주장하며, 그렇게 ‘옳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며 철학의 쓸모를 역설한다.
이 시리즈는 서양철학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서양철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앎이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양철학에 여전히 주목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서구 세계가 사고하는 방식을 구축한 것이 그리스 사상이었고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해야만 대략 30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태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현대물리학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서양철학사상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고 해도 이를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모든 철학가들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고, 따라서 이들이 철학하는 방식도 철학과는 무관한 종류의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기획은 이 무관해 보이는 예술, 과학, 관념들을 충분히 살펴보면서 그 시대에 왜 이런 철학이 나올 수 있었는지, 혹은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욱 폭넓은 관점에서 상상하고 사고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서양에서 비롯된 인문학의 지형을 그리는 데 있어 그 정점에 놓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 책 속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철학가들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고, 따라서 이들이 철학하는 방식도 철학과는 무관한 종류의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세계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던 고대 철학자들이 신들을 섬기는 동시에 전쟁을 일삼던 시대, 자유인뿐만 아니라 노예들이 존재하던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학이 다양한 종류의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 시대 철학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현대 철학자들 역시 사회적 분쟁과 독재의 등극에 영향을 받았고 기술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 역시 우리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및 후기 르네상스 철학자들 대부분이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케플러의 천문학 발견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과학자들 역시 르네상스 이전 혹은 동시대의 철학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서문. 왜 철학인가? p. 17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은 나름대로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특정 계층의 관심을 모으고 의도적으로 혁신을 꾀하면서 전대미문의 학설들을 내놓았던 상당히 다양하고 이질적인 성격의 인물들에 의해 탄생했다. 그리스 철학은, 예를 들어 서사시적 표현의 장엄함을 향한 파르메니데스와 엠페도클레스의 갈망으로부터, 혹은 데모크리토스가 각고의 노력 끝에 도달한 ‘학문’에 가까운 산문을 토대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니체가 말했듯이, 결국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들은 모두 “한 덩어리의 돌로 깎아 만든 완전체”에 가까운 철인들이었다.

I. 철학적 이성의 탄생 p.23



소피스트란 누구를 말하는가? 이는 플라톤의 대화록『소피스트』에서 바로 소크라테스가 던졌던 질문이다. 고르기아스나 트라시마코스, 프로디코스 같은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소피스트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이들은 말 그대로 앎의 전문가들, 다시 말해 사고와 언변에 탁월한 능력과 기술을 가졌던 이들이며 오늘날의 문화 비평가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소피스트들에게는 분명히 이상적이었을 아테네의 청중은 그들에게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의 철학 강의나 플라톤이 그의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던 철학을 기대하지 않았다. 아테네의 청중은 히피아스의 백과사전적인 지식이 증명되는 과정을 목격하거나 담론을 통해 한 논제의 증명과 반대되는 논제의 변론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줄 알았던 프로타고라스의 뛰어난 논쟁술을 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몰려들었다.

Ⅱ. 철학자라는 지적 직업의 탄생과 성공 p.107



어떤 식으로든 민주주의(역사학자 루치아노 칸포라가 주목한 것처럼, ‘민중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는 민중 정부의 폭력적이고 자유 파괴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용어다)가 도래한 정확한 시기를 밝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가장 적절한 해를 고른다면 기원전 461년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에 에피알테스와 페리클레스는 혁명을 통해 아레이오스 파고스를 실각시키고 이 기구가 행사하던 대부분의 권력을 폐지시키면서 공공사업에 대한 귀족들의 통제권을 제도적으로 축소시켰다. 물론 민주주의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공직자들의 보수 체제는 몇 세대가 지난 다음에야 완전히 정립되었다.…여하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테네의 민주주의 역시 초기에는 ‘선택과 배제’의 이원론적인 원칙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형태의 정권하에서든, 시민이 된다는 것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어딜 가든 특권 보유자들은 외부인이 특권 계층에 가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제한하려고 노력했다.

Ⅱ. 철학자라는 지적 직업의 탄생과 성공 p.145



플라톤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플라톤의 저서를 토대로 그의 철학을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그의 철학이 안고 있는 수많은 내부적인 모순과 변화무쌍한 전개를 집필 시기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제시했고 이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답변을 시도해 왔던 일련의 질문들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플라톤이 남긴 사유의 숨소리를 고대 말기의 신플라톤주의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에서,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중세의 논쟁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플라톤주의에서,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에서, 현대의 수많은 논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사유 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Ⅲ. 플라톤의 사상 p.183



철학적 앎은 골격을 갖추면서 시나 신탁의 형태를 통한 지혜의 메시지와 소피스트들의 낭독이나 기술 매뉴얼을 통한 산문 사이를 오가며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Ⅲ. 플라톤의 사상 p.223



플라톤주의를 비판하면서 보편적인 형식들을 초월적 천상의 세계로부터 물리적 세계로 끌어내린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세대들에게 실체에 대한 사유, 형상과 질료, 잠재력과 행위에 대한 사유뿐만 아니라, 연역법과 귀납법이라는 사고의 도구와 종과 속의 분류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러한 분류법은 다양한 각도에서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 사상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IV.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p.235



철학적 대응과 비교를 통해 정신세계의 발전을 꾀하는 경향이 헬레니즘 시대 내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면 한편으로는 우리가 철학의 강도 높은 ‘문서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들은 대부분이 왕성한 필력을 지닌 작가들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분량이 늘어난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 문헌들은 해석자들과 해설가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은 철학의 역사뿐만 아니라 여러 학파들의 개별적인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문헌들의 수집과 목록 작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증폭시켰다. 철학자들의 전기나 마찬가지였던 ‘계승자들’이라는 장르는 철학자들이 끼친 영향과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었고 헬레니즘 시대 초기에 이미 체계를 갖춘 장르로 발전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철학자들이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학파 창설자의 전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창설자의 전기가 곧 그들의 철학적 정체성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Ⅴ.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과 학문 p.293



트라야누스에서 콘스탄티누스에 이르는 시대(1~4세기)는 한마디로 문화적인 갈등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모든 민족들이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며 정치적으로 안정된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웅변가들이 도시들을 순회하며 연설을 하고, 의학이 놀라운 발전을 이루고, 수학과 음악과 천문학이 발달하고, 압력을 이용한 기계와 첨단 무기들이 발명되고, 광학이 꽃을 피웠다. 문화의 성장과 함께 체제를 갖춘 교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바로 이 시기에 전인교육, 즉 모든 분야를 골고루 섭렵한 조화롭고 완전한 인간상을 추구하는 교육 개념이 생겨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독창적인 창조 활동이 부재했고 과거의 문화 전통을 빠짐없이 습득하고 해석하며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을 뿐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통 문화의 보급이 새로운 것의 창조에 우선했기 때문이다.
이성을 중시하는 전통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에 반대하는 일종의 종교사상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후에 혼합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이 종교사상은 다양한 형태의 신비주의와 계시종교사상들을 무분별하게(이들의 기원이나 문헌학적 차이점들을 기본적으로 무시한 채) 수용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Ⅷ. 고대 말기의 전통 철학과 신학 p.471



영지주의자는, 병든 세상의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부활의 일꾼으로 살아간다. 신은 오로지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만 근원적인 분열을 복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구원은 그의 행위가 아니라 초월적인 앎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세 종류로 구분된다. 물질에 얽매이며(hyle) 구원의 희망을 잃은 인간이 존재하는 반면 심적(psiche) 단계에 머무는 인간(어떤 교리에 따르면 바로 그리스도교도들을 말한다)과 앎을 통해 신성한 세계에 복귀를 희망할 수 있는 영적(pneuma) 인간이 존재한다. 영지주의는 귀족주의적이다. 완벽한 이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의 희생양인 인간은 회복을 위해 스스로가 지닌 본성의 물질적인 면을 증오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영지주의자는 가장 기본으로 육체와 생식 활동 자체를 경멸한다. 이러한 특징은 후세의 영지주의 종파들에서도 계속 유지되었으며 카타리파의 경우 육체에 대한 경멸은 자살 예식으로까지 이어졌다.

VIII. 고대 말기의 전통 철학과 신학 p.524



중세 철학의 다양성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아마도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망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등장까지 장장 8세기가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실 천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이 불변했으리라고는 상상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중세 사상에 접근할 때에는, 일관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다양성 속에서만, 즉 중세 사상을 구축하는 다양한 전통 사상들의 공존 속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Ⅸ 고대인들을 바라보며 p.556



서방 세계가 서기 천 년 이후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꽃을 피우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11세기와 13세기 사이에 정치, 사회, 예술, 경제, 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활력의 회복과 사상의 개화 현상에 대해서는 동시대인들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철학자들 역시 이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지적인 차원의 부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 시대의 지식세계가 주로 전통적 지혜에 대한 해설의 형태를 띠었던 반면 이 시기에는 혁신 자체를 문화로 간주하는 관점이 구체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 유명한 경구의 표현대로 당대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장이로 고려했다는 사실, 즉 고대인들에 비해 부족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들에 비해 훨씬 더 넓은 시야를 가진 것으로 (이 경구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간에) 간주했다는 사실은 탐구 활동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혁신을 가져온다는 생각이 당시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보여 준다.
이러한 혁신의 숨은 공신은 의심할 여지없이 도시였다.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도시는 사회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산과 숲의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던 중세 초기의 수도원 학교에서 도시에 세워진 학교로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도시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은 상인이나 장인 같은 직업과 다름없는 전문직으로 받아들여졌다.

Ⅹ. 수도승과 스승 p.617



근대에까지 살아남았을 정도로 유명했고, 중세의 정신세계를 가장 심오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난쟁이와 거인 이야기다. 이 경구에 따르면, 우리를 앞서간 선조들은 거인이며 우리는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들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Ⅹ. 수도승과 스승 p.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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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더라도 사랑해야지

도서정보 : 정상화 | 2018-10-15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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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감성적이면서 수직적인 시인을 만나볼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시는 마음을 정화하며, 정신세계까지를 맑게 하는 매력이 충분하다. 한 줄의 글은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정상화 시인은 서정시의 정상(頂上)에 있으면서 세상의 가장 친근함으로 시를 짓는다. 그러기에 정상화 시인의 작품을 대하는 심상(心象)은 감동과 정서 그리고 리듬감으로 다가서게 하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구매가격 : 8,400 원

라틴어 문장 수업

도서정보 : 김동섭 | 2018-10-1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출판사 서평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다시 산다는 것이다!”
역사, 지혜, 영성, 문학, 철학, 예술, 사랑, 삶의 태도가
녹아 있는 라틴어 문장 수업

언어 속에서는 한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학습하는 것을 넘어 그 민족의 역사와 문화, 생활방식, 세계관을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어만큼 우리의 교양과 지적 세계를 풍부하게 해주는 언어가 있을까 싶다. 라틴어는 바로 로마 제국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로마가 어떤 나라인가.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로 천 년 제국을 이루며 전 유럽과 중동 그리고 이집트를 자신들의 언어와 제도로 개편한 국가이다. 서양의 정신세계와 학문, 종교, 법, 사회제도, 예술 등은 로마라는 저수지에서 라틴어를 통해 각 나라로 흘러들어 갔다. 따라서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은 서양 문명의 근간을 배우는 것과 다름없다 할 수 있다.

하루 한 문장씩 따라가다 보면
라틴어 원문이 읽어진다

라틴어가 이토록 근사하고 지적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막연히 ‘배우기에 어려운 언어’라는 편견 때문에 공부하는 데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수원대학교에서 10년 넘게 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동섭 교수가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라틴어를 배우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들여다볼 수 있는 ⟪라틴어 문장 수업⟫을 펴냈다.
저자는 라틴어로 기록된 경구, 속담, 격언 등의 문장을 소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라틴어 원문을 직접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 문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문장들은 ‘천천히 서둘러라 Festina lente’,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Si vis amari ama’ ‘생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네 Media vita in morte sumus’ 등 그 문장 자체로 울림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원문 자체를 정확히 해석할 수 없다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온전히 와닿지 않는 법이다. 저자는 다소 복잡한 라틴어 문법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며, 한 단어 한 단어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책에 소개된 라틴어 문장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라틴어 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삶을 위한 라틴어 강의

세계사, 문학인류학, 철학, 신화에 정통한 저자는 라틴어 원문의 정확한 해석과 더불어 각 문장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다채롭게 펼쳐나간다. 위대한 철인 세네카가 전하고자 했던 말에는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는지, 고대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는 어떤 맥락에서 자신의 주장을 설파한 것인지, 시인 오비디우스가 비유하여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인지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풀어준다. 또한 로마 신화, 성경, 문학 속에 남겨진 문장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줌으로써 교양적 지식과 재미에 더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이렇게 저자가 들려주는 라틴어 이야기와 함께하다 보면 역사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고대 로마인들의 문학, 신화, 종교에 대해 구석구석 알 수 있다. 또한 로마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등을 배움으로써 지혜가 깊어지고 자신의 가치관이 좀 더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라틴어 문장을 배울 때마다 독자들의 품격과 교양의 수준이 한 층 더 상승될 것이다.

하루에 한 문장씩 읽다보면 라틴어의 실체와 고대 로마인들의 역사, 지혜, 영성, 문학, 철학, 예술, 사랑, 삶의 태도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을 때 꼭 필요한 라틴어 좌우명을 하나 소개하며 들어가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필자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Festina lente! 천천히 서둘러라! _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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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사무라이 사상가들, 사이고 다카모리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10-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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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모시는 사무라이
그리고 메이지유신



일본의 ‘사무라이[侍]’는, 무언가를 ‘모시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대체로 그 ‘모심’의 대상이 主君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실상 사무라이가 모시는 대상은 칼이다. 칼이 곧 주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人類史에서, 古代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칼의 시대에, 칼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사회에서, 칼은 상징적인 권력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권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칼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칼로써 베어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무라이는, 그러한 칼 자체를 神처럼 모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근대 이후, 銃의 시대가 되면서, 칼은 권력을 상실했고, 사무라이도 精神性도 다른 모습으로 변모케 된다.
따라서 尙武精神의 상징이었던 칼은, 物質精神의 상징인 총으로 대체된다. 칼이 主君을 의미했다면, 이제 총은 資本을 의미한다. 물론 근대 이전 中世에, 이미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開港으로써 총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예컨대, 일본의 근대를 이끈 ‘메이지유신’ 시기의 ‘세이난 전쟁’은, 철저히 총과 대포를 이용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시기까지, 일본사회는 분명 칼을 모시는 사무라이들이 주도하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기존의 사무라이들은 ‘생존의 이득’을 목적하며 정치적 자본가로서의 변모를 꾀했고, 대부분 근대적 자본가로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일본사회에서, ‘칼과 사무라이’의 시대가 ‘총과 자본가’의 시대로 변화하는 樣相이다.

메이지유신을 주제로, 대표적인 사무라이 사상가들을 살피면서, 필자로서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植民史觀이라는 幽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非但, 식민사관만이 아니라 東北工程이나 半島史觀의 문제도 그러하다. 흔히, 이러한 문제들은 ‘역사적 史實’의 문제이므로, 역사학의 所管인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역사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떠한 ‘역사적 事實’이 歷史書에 史實로서 기술되어, 하나의 歷史가 정립되는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半島史觀’, ‘日帝의 植民史觀’, ‘중국의 東北工程’ 등에 의한 역사는, ‘역사를 위한 역사’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역사’임은 周知의 사실이다.
흔히, ‘조선왕조의 반도사관’을 ‘日帝 식민사관’의 일종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요동 정벌’ 명령에 抗命하며, ‘위화도 회군’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하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선언할 때 작동한 ‘史觀’이야말로, ‘반도사관’이다. 본래 우리 민족의 영토이던 ‘요동’을 포기하고서, 우리 영토를 ‘압록강’ 이남의 ‘韓半島’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러한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역사관’에, ‘반도사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반도사관’과 ‘식민사관 중의 반도사관’은 뭉뚱그려질 수 없는 별개의 개념이므로, 명확히 분별하여 살피는 것이 타당하다.
‘식민사관’은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는데, ‘神功皇后’의 新羅征服說과 任那日本府說, 滿鮮史論 등을 내세우다가, 20세기 초부터 朝鮮侵略이 본격화되자 日鮮同祖論, 他律性論, 停滯性論, 黨派性論 등을 제시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李丙燾 등이 대표자들이다.
‘일제’의 ‘朝鮮史編修會’에 재직하던 ‘申奭鎬’는, 解放 이후 ‘국사편찬회’의 회장이 된다. 이후 이러한 계통을 잇는 ‘植民史學派’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美軍政’, ‘左右對立’, ‘韓國戰爭’ 등의 이유로 인해, 친일파 處斷을 엄정하게 실현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인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중국’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다. 이러한 정책은, 우리 민족의 ‘古朝鮮史’, ‘高句麗史’, ‘渤海史’ 재정립 문제와 첨예하게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서 銳意注視해야 한다.(탁양현: 洪範九疇의 政治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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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은 무엇인가, 조선왕조의 사문난적 윤휴 박세당 정약용, 불교학 노장학 양명학 천주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10-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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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로서 ‘道具的 理性’과 斯文亂賊으로서 저항적 異端



현대사회에서 異端은 흔히 종교적 개념으로서 인식된다. 그러나 본래 이단은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현재의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이단이라면, 응당 主體思想이나 北韓을 의미하며,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 또한 포함된다. 다만, 역사 안에서 이단에 대한 분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의 흐름을 좇아, 이단이 이데올로기가 되고, 이데올로기가 이단이 되는 변화가, 자연스레 찾아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21세기 현재의 상황에서, 주체사상이나 북한이 어떤 이데올로기로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작동하는 원리가 그러하다는 의미다. 예컨대, 현대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문명이나 정치제도는, 조선왕조 말기 대표적인 이단이었다. 그래서 天主學을 이단으로서 처단한 것은 周知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기독교나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런 것이 바로 역사의 政治性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 말기에 천주학이라는 이단을 추종하던 사람들의 고통은, 결국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老莊哲學, 佛敎, 陽明學 등을 선택했던 상황 역시 그러했다.
그러니 현대사회에서 從北으로서 주체사상이나 북한을 추종한다거나, 親中이나 親美에 대한 선택 역시, 자기의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生存의 利得’을 목적하는 절대 다수의 서민대중으로서는,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할 까닭은 없다. 설령 그것을 선택하여 추종한들, 역사의 수레바퀴는 쉼없이 굴러갈 것이며, 그에 따라 이데올로기와 이단은 이내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갓 外交的 레토릭 쯤으로나 인식되는, 人權, 平和, 幸福, 正義, 共存, 主體, 革命 따위의 이데올로기를 좇아, 반드시 어느 편이든 선택하고 싶다면, 그것은 역사에 대한 고찰이 전제되어야 함을 유념해야 한다. 그러한 역사적 이해가 없는 섣부른 선택은, 너무도 큰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탓이다. 부득이한 탓에, 필자는 전통적으로 이단으로서 분별되던 학문을 주로 공부하였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에 따른 갖은 배척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제는 그저 그러려니 한다.

조선왕조에서는 이단에 대한 비판이나 배척이 極烈했으며, 그러한 흐름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왕조에서는, 性理學이나 朱子學 이외의 학문적 이데올로기를 異端으로서 배척하였다. 조선왕조에서 기득권층인 왕실과 양반사대부가 추종하는, 통치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학문 이외의 학문을, 斯文亂賊의 학문으로서 규정하고 탄압한 것이다.
이단에 대한 배척은, 非但 조선왕조만의 현상은 아니다. 저 먼 古代로부터 現代에 이르도록, 현실세계를 작동시키는 가장 유용한 動力 중 하나가 곧 異端論理이다. 이단의 개념이나 대상은, 시대와 상황을 좇아 변화되면 족하다. 그렇게 시의적절한 개념을 정립하고서, 그에 해당하는 대상을 배척하는 것이다. 반대로 먼저 그 대상을 결정하고서, 그에 상응하는 개념을 정립하는 경우도 있다.
이단에 대한 배척은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이단의 문제가 종교적인 행위로서 드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종교적 포용마저도 일단의 이단에 대한 배척이 전제됨을 반증한다.

흔히 異端(heresy)은, 어떤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正統敎理에서 크게 벗어나는 주장에 대하여, 正統主義者 側에서 부르는 배타적 호칭이다. 여기서 정통주의자는 時流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를 도구로 삼는다.
근대 서양문화에서 횡행하던 ‘도구적 이성’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道具的理性(instrumentelle Vernunft)은, Max Horkheimer가 사용한 용어로서, 근대에 이르러 인간의 해방과 자유를 가져오고,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던 理性이, 이론적인 계산을 토대로,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제시하여, 인간 및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도구화되어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본래 서구문명에서 인간존재의 이성은, 神의 역량에 버금하는 르네상스를 실현케 한 의대한 역량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한갓 권력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人類史에서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혁명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이데올로기는, 애당초 절대적 진실을 주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것이 당최 그릇될 리 없다.
그런데 최초의 이데올로기가 권력을 얻어 세월이 흐르다보면, 恣意的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본래의 순수한 진실은 오염되어버리고, 그저 시대의 권력을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역시 인류사에서 非一非再하다. 따라서 그러한 오염된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대체로 異端으로서 분별된다.
흔히 世俗의 종교조직에서도, 정통적 信條에 대해, 異說을 내세워 파당을 짓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라고 부르며, 자기 편으로서 한 동아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을, 異端視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 종교집단의 내부에서, 옳고 그름의 대립이 있을 때, 정통파에서 쓰는 말로, 다른 종교나 종파를 가리키는 異敎와는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宣敎者의 경우, 자기의 宗旨를 옳다고 하고, 다른 종교나 분파를 異端邪宗이라고 하는 수도 있으나, 이것은 예외적인 용법이다.

중국에서는 論語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말로, 정확하지 않은 학설이라는 뜻이다. 韓愈가 불교나 도교를 이단으로서 배격한 이후, 新儒敎(朱子學)에서는 ‘聖人의 道’에서 벗어난 학설이나 가르침을 이단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陽明學 左派에 철저했던 李卓吾(李贄)는, 대표적인 이단으로 몰려 옥중에서 자살하기도 했다.
李卓吾(1527~1602)는 明나라의 사상가이다. 이탁오야말로, 중국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유교적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자아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하였다. 금욕주의와 신분차별을 강요하는 禮敎를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反儒敎的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임을 당한다.
이탁오는, 1527년 10월, 명나라 泉州府 晉江縣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상업에 종사 하였는데, 元나라 때 선조들은 해상무역, 통역관 등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주원장은 쇄국정책으로 나라의 문호를 닫아버렸다. 명분은 해상에 출몰하는 왜구를 막고, 북으로는 오랑캐의 침입을 막는다는 것이었지만, 중국은 세계적인 조류에서 뒤쳐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역의 길이 막히자, 李贄(李卓吾)의 집안은 가난을 면치못하게 되었다. 이지의 초명은 林載贄였으나, 장성하여 종가의 姓을 따라 李贄라고 개명했다. 별호로는 宏甫, 卓吾子, 李和尙, 禿翁, 百泉居士 등이 있다. 집안의 어려운 살림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지역을 전전하다, 관직에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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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

도서정보 : 강수희, 패트릭 라이든 | 2018-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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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는 원래 즐겁게 사는 거죠!
전 세계 친구들이 응원하고 지지한 자연농 프로젝트

다큐 작업은 지난한 여정이었다. 영상 제작에 있어서 아마추어인 두 사람에게 돈과 기술의 벽은 높았다. 그렇지만 보장된 직장과 평범한 생활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선 두 청년의 활동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취재와 통역과 번역, 더 나아가 애니메이션과 음악 작업까지 자청해 도맡아 주었다. 특히 4년 만에 완성된 다큐는 기존의 영화 배급업체나 상업적인 홍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100여 회 이상 2,000여 명이 넘는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진솔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 상영회를 열었던 두 사람의 선택과 결심이 조그만 결실을 맺은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다큐 작업 중에도 자연농을 뿌리 삼아 ‘지구 위에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지혜를 꾸준히 나눴다. 일본 야마구치 시와 영국 에든버러 대학 등에서 자연농 전시와 토론회를 열어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만났고 자연물을 이용한 워크숍도 진행했다. 특히 2015년과 2016년 일본 오사카와 메기지마 섬에서 실시한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스토랑’(몇 달 동안 주민들과 직접 작물을 키우고 그 작물을 재료로 메뉴를 만드는 일일 레스토랑) 프로젝트는 지역민의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자연농 농부들의 삶을 따라 ‘자연과 사람이 가까이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온 저자들은 또다시 많은 친구들의 응원 속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오랜 집을 고치고 텃밭을 가꾸며 새로운 생태?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도시에서 살던 이들이 자연농을 선택한 이유
질문이 아닌 답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 책에 나오는 11명의 자연농 농부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이다. 하지만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이대로라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더 이상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자각한다. 13년 동안 축산사료업체에서 일한 무라카미 켄지는 창문을 열 수 없는 빌딩에서 수입 사료로 닭을 키우고, 무분별하게 닭의 배설물을 태우는 일을 관리하다 점차 회의를 느껴 회사를 그만둔다. 미술교사였던 가가미야마 에츠코는 큰 아이가 6개월이던 당시 일어난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보며,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다 자연농을 선택했다.
왜 이들은 자연농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일반 농사(관행농)와 달리 자연농이 땅을 갈지 않고,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사이기 때문이다. 저술과 ‘지구학교’ 운영으로 국내에 자연농을 알리고 있는 최성현은 농약으로 벌레나 잡초와 싸우는 현대농업의 문제를 지적한다. 과도한 비료와 농약으로 유지되는 괴로운 농사에 지친 농부들이 자연농을 통해 “나와 자연이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통해 자연농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농은 꼭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이야기일까? 아니다. 가와구치 요시카즈는 시골이든 도시든 우주와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잃는다면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며, 우리가 “도시가 아닌 우주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눈앞의 많은 문제와 불안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지혜를 전한다.
자연농은 무언가 계속 더하고 복잡해지기만 하는 현대 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삶의 방식이다. 또한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맞게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가는 활동이기도 하다. 두 저자를 비롯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과 삶을 찾아 자연농 논밭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매가격 : 11,900 원

세상을 읽다 시사이슈11 시즌 1

도서정보 : 오상도 등저 | 2018-10-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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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시사이슈 11가지2016년 연말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최순실 게이트’,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전대미문의 실험 ‘김영란법’, 갈수록 가혹하고 거침없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집단 ‘IS', 통합 유럽을 박차고 나와 독자 노선의 길을 선택한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 간 논쟁을 넘어서서 국제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는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논쟁‘ 등 2016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시사이슈 11가지를 총 정리해 알기 쉽게 풀어낸 『세상을 읽다 - 시사이슈11 시즌1』(김승훈 외 10명, 동아엠앤비)이 발행된다. 대한민국 주요 언론 현장 기자 11명이 의기투합해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살아 있는‘ 시사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세상을 읽다 - 시사이슈11』은 수차례의 회의 끝에 결정된 11가지 주제의 논란이 촉발된 계기와 논의 전개 과정,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등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풀어냈다. 저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엮어낸 글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를 알기 위한 ’제대로 된 시사 지식‘의 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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