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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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도서정보 : 김연수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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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 내가 쓰는 소설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건 그날 저녁, 여행에 지친 우리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었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그 반짝임 같은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머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들이라고.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서, 혹은 야즈드의 불빛이 아니라고 해도._‘작가의 말’에서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이 삶이 아득하기만 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순간, 삶은 더욱 선연하게 눈앞에 떠오르곤 한다. 내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앉아 있던 어떤 이의 정수리께에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보아버린 어느 순간, 문득 멎어버린 시계처럼 갑자기, 그리고 뒤늦게. 멈춰 선 시곗바늘은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그 시간을 불러들이고, 어쩌면, 그 자리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인지도.

저는 계속 선생님만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으셨어요. 먹는 내내 선생님 정수리께를 보는데, 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슬픈 마음이 들더라구요. (…) 영화든 소설이든 뭔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선생님 그 정수리를 보면서. _「사월의 미, 칠월의 솔」

올해로 등단 20주년이 된 소설가 김연수가 다섯번째 소설집을 엮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저절로 생긴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다. _「파주로」

소설 속 화자의 말을 작가 김연수의 그것으로 이해해도 될까. 소설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면, 소설에서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그 인물 자체일 것이다. 각 개인의 역사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어떤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을 데려와 소개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작가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인물들을 대하는 작가 김연수의 태도는 더없이 신중하다.

삶을 이해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눈 귀 코 입만으로는 부족해요. 온몸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_「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최근 업로드된 문학동네 팟캐스트 ‘문학 이야기’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문제는 다르다. 속일 수가 없다. 쓸 수가 없다.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타인의 삶을 쓸 수 없다, 는 걸 인정하고 포기하는 데서부터 나는 오히려 시작한다.” 너의 삶을 이해한다, 안다, 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어쩌면 김연수의 소설이 가지는 힘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과 이 세계를 제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고, 결국은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일까. 특히 이번 작품집에 실린 열한 편의 소설은, 작가(혹은 작중 화자)의 개입 없이 소설 속 인물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누나가, 이모가, 들려주는 제 삶의 이야기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우리 머리 위에는 거대한 귀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래서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말이라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그 귀는 다 들어줄 거야. (…) 그런 귀가 있어 깊은 밤 우리가 저마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들은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은 거야. _「깊은 밤, 기린의 말」

김연수의 소설이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면,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너를 이해한다, 서툴게 위로하지 않고, 그저 삶이 거기에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삶이 아득해지는 어떤 순간 뜻없이 중얼거리는 말들을 커다란 귀가 되어 그저 그 자리에서 들어줌으로써. 그리고 그 순간 결국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함으로써.

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엄마는 그 옷에 얽힌 이야기를 큰누나에게 들려줬고, 큰누나 역시 자신이 기억하는 그 시절의 엄마에 대해서 얘기했단다. (…) 엄마의 기억과 큰누나의 기억은 조금씩 달랐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와 큰누나의 기억은 나의 기억과도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큰누나는 두 사람의 삶이 서로 겹친다는 것을 알게 됐단다. 그래서 엄마가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우리도 또 한번의 삶을 사는 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하면, 우리가 또 한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엄마 역시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_「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이야기하는 인물들의 존재감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그들이 사랑하는 타인들에게 늘 빚지고 있다. (…) 우리가 타인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기쁨과 더불어 우울을 선사할 때가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우리의 이야기 자체가 되는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르고 낯선 존재들이어서 우리가 늘 빚진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_허윤진(해설 「Wedding」에서)

나와 타자, 고통과 행복, 소통과 이해…… 흔하디흔한 이 말들이 결국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이에 대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도록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학이라면,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잘못 이해되기 쉬운 인생의 문제들을”(신형철), 김연수는 소설이라는 예술장르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과 함께 밀고 나간다

“그보다 더 싫은 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때죠. 그건 일단 네 몸이 나은 뒤에 그때 얘기하자. 그럼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내 몸은 이제 영영 낫지 않아. 지금 얘기해.” _「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결국, 다시 한번, 우리는 서로를, 타인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고 함께 걸을 수는 있을 것이다.

혼자서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저처럼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란 하늘에서, 혹은 스핀이 걸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골목에서, 분당보다도 더 멀리, 아마도 우주 저편에서부터.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_「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

좋은 서사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김연수는 답한다. “글을 왜 쓰느냐 하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최대한 노력했을 때 그 사람이 겪었던 일을 쓸 수 있으므로 우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늘 실패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글을 쓸 수 있다. 독자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좋은 이야기란, 이야기 속에서 자기의 삶과 고민과 나를 둘러싼 세계의 공통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독서란 자신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길이다.”(문학동네 팟캐스트_문학 이야기)

사랑하는 이의 어깨에 몸을 기대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기대는 일이다. 그래야 기대는 쪽도 의지가 되는 쪽도 불편하지 않다. 이제, 그의 커다란 귀를 열어둔 소설에 마음을 기댈 시간이다.

구매가격 : 8,400 원

공백을 채워라

도서정보 : 히라노 게이치로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1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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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일식』으로 데뷔한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해온 히라노 게이치로의 여덟번째 장편소설.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SF적 상상력과 설정을 발판으로 현대사회의 병폐라 할 수 있는 자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생과 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물론, 그동안 꾸준히 천착해온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보다 깊이 파고들어간 작품이다.

장마를 앞둔 평온한 여름날,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관회사에서 일하던 평범한 삼십대 가장 쓰치야 데쓰오는 어느 날 회사 회의실에서 눈을 뜬 뒤, 자신이 삼 년 전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맞닥뜨린다. 아내와 어린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신제품 개발에 여념 없던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는가? 만약 타살이었다면 범인은 누구이고 동기는 무엇인가? 죽은 자들이 되살아나는 전 세계적인 기현상 속에서 데쓰오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나서고, 스스로도 몰랐던 내면의 목소리를 마주하는데……

『공백을 채워라』는 히라노 게이치로가 자신의 ‘제3기’ 작업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고 밝힌 작품이다. 제1기에 해당하는 초기 로맨틱 3부작과 실험적인 단편 창작에 몰두한 제2기를 거쳐, 2008년 『결괴』부터 범죄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조명해온 그가 이 작품에 이르러 그간의 결과물을 종합하고 일종의 결실을 맺었다고 보는 셈이다. 근대의 ‘개인’ 개념에 대비되는 ‘분인(分人, dividual)주의’를 비롯해 지금까지 소설과 외적 활동을 통해 보여온 철학적 사유와 주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의 주인공 쓰치야 데쓰오는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온 가장이자 회사원으로, 일명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다 자살을 결심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스스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기 얼마 전에 남긴 수첩 속 메모, 마지막으로 만났던 회사 사람들의 증언, 옥상 문 앞 CCTV의 흐릿한 영상 등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가던 데쓰오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마치 딴사람을 보는 듯한 괴리감을 느낀다. 명쾌하지 않은 죽음의 동기는 타살에 대한 의심을 낳고, 급기야 사소한 계기로 갈등을 빚었던 회사 동료를 살인범으로 추정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젊은 세대의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금, 소설가로서 동세대의 화두를 진지하게 고민해온 히라노 게이치로는 ‘사람은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라는 묵직한 명제에 미스터리 소설의 수수께끼를 풀듯이 흡인력 있게 접근해간다.

과감한 상상력과 치밀한 작가의식으로
생과 사, 행복의 의미를 묻는 문제작

서스펜스 성격을 띤 전반에 비해 중반 이후로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현상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법, 환생자들의 연대와 죽기 전의 가족관계와 사회생활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노력 등이 묘사되며 보다 넓은 감정의 진폭을 보여준다. 죽음으로 헤어진 소중한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 기쁨도 잠시, ‘그는 자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자살했을 리 없다’는 확신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지 깨달은 주인공과 주위 인물들이 진실을 맞닥뜨리고 부정하고 또 수용해가는 과정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특히 한 사람은 항상 일정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대인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분인을 드러내며 살아간다는 작가 고유의 사상이 직접적으로 펼쳐지는 후반부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기부정과 강박의 원인을 깨닫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게 되는 데쓰오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에게도 공명할 만한 부분이다. 그것은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데뷔작 『일식』 이후로 현대라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긴 여정을 이어온 히라노 게이치로가 내놓은 나름의 해답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을 쓴 해,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은 서른여섯 살이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이 나이가 되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랜 과거에 죽은 한 사람의 육친과 눈앞의 수많은 희생자들 사이에서 소설가로서의 생각을 다잡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_히라노 게이치로

구매가격 : 11,100 원

계간 문학동네 2018년 가을 통권 96호

도서정보 : 문학동네 / 문학동네 / 2018년 09월 2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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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문학의 존엄과 자긍을 다지며,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가는 젊은 문예지입니다. 우리 문학의 드높은 성취를 갈무리하며, 문학의 미답지를 개척, 수호해갈 『문학동네』는 문학의 진정성을 채굴하는 든든한 굴착기로서, 매호 돋보이는 기획과 성실한 편집으로 두고두고 귀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는 고급 문예지입니다.

구매가격 : 7,500 원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도서정보 : 박상영 / 문학동네 / 2018년 09월 2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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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박상영 첫 소설집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그야말로 (진부한 표현이지만) 혜성처럼 등장해 뛰어난 소설적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는 ‘젊은 작가’ 박상영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그는 등단작부터 “1990년대에 초기 김영하가 한국문학에 했던 역할을 21세기에 이 예비 작가에게 기대해도 좋겠다”(문학평론가 김형중),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공감과 매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소설가 정용준), “어쩐지 세번째 작품도, 네번째 작품도 이미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소설가 윤고은)라는 평을 들으며 엄청난 작가적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게 했다. 이후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사회적인 문제와 소재들을 두려움 없이 작품들에 녹여내며, 표제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로 2018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그 짐작이 사실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한국문학의 경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해갈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목록 가장 앞쪽에 박상영의 이름과 그의 첫 소설집을 놓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법.“

박상영 소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그러다 그것에 ‘실패’하고, 결국 ‘망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떤 준칙을 들이댈 근거도 없거니와 이들의 사랑은 특히나 더 스펙터클하다. 무일푼인 제 처지에 아랑곳없이 근사한 호텔에서 매일 새로운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게이 남창 ‘제제’, 그리고 그런 제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에게 곁을 내주는 ‘나’(「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끊임없이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고 확인받고 싶어하면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이중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연인(「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이툰 부대’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포인트가 묘하게 게이스럽”다고 느끼지만 “우리 쪽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남자와 그러는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나’와 ‘왕샤’(「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감정도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이토록 사랑에 집착하는 이유는 모두 ‘주류 세계’에서 밀려나 있거나 그곳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좀더 ‘열심히’ 사랑하는 일이 ‘최선의 삶’이다. 경제활동과 거리가 멀거나 남들에게 환영받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박상영 소설의 가장 빛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박상영은 주류 세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삶과 사랑과 꿈과 욕망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한국사회의 ‘주류 지향’ ‘타인 지향’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금의 현실이 압도적이라도 거기에 발 묶이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물질적으로 구성된 ‘한국적인 것’의 한 측면을 어떤 사회과학적 통찰보다 정확하게 형상화”(윤재민, 작품 해설)해낸다.

여기서 더 나아가 박상영의 소설은 실패하고 망하는 것 역시 그럴싸한 삶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언젠가 한국 ‘퀴어 소설’의 계보에 반드시 언급될 작품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나’와 왕샤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나’는 칸영화제의 총아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게이들의 현실을 그린 영화, 그러니까 이성애자 감독이 그리는 퀴어 영화처럼 “감정 과잉의 신파이거나 정치적 프로파간다에 빠지지 않은” “세상에 없는 퀴어 영화”를 만들고자 하지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영화는 이성애자 영화평론가로부터 현실성이 없다며 혹평을 듣는다. ‘나’에게 게이들의 현실이란 이성애자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젊은 사람이 술 먹고 섹스하는” “그냥 연애하는” 일과 다르지 않지만 결국 ‘나’는 ‘짝퉁 홍상수’ 취급을 당하며 영화판에서 밀려날 뿐이다. 왕샤 역시 “동양의 찰스 와이드먼”을 꿈꾸며 현대무용에 매진하지만 결국 자신이 연기한 작품의 제목처럼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실패가 전혀 낙담스럽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누군가의 실패를 감히 선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인데, 이 소설은 실패를 선언할 자격이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의 실패 선언이기 때문에 유례없이 당당”(젊은작가상 심사평)하고 오히려 패기가 넘친다. 자신이 망했다고 큰 목소리로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망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이라 말하며 ‘나’와 왕샤가 유채영의 테크노 넘버(“그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법”)에 맞춰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동상이몽의 형태로 인스타그램에 빠져 사는 삼십대 커플, 의외로 순진하고 “커야 할 것들이 적당히 큰” 이십대 군인, 퀴어, “SNS 활동으로 얄팍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가짜 게이’ 영화감독, 끝내 데뷔하지 못하는 아이돌 연습생, 엄마의 폭력에 억눌려 지내는 십대 소년 등 박상영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희비극적 모험담”은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청춘소설의 면모”(소설가 이장욱, 젊은작가상 심사평)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른 나이에 걸 그룹 데뷔조에 발탁되어 “시간을 쪼개가며 데뷔를 준비”했으나 끝내 실패하는 ‘나’(「햄릿 어떠세요?」)와 학자금과 생활비 마련에 쫓겨 출장 매춘에 나서다 급기야는 연인에 의해 촬영된 자신의 은밀한 동영상을 스스로 파일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하며 환금의 수단으로 삼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수’(「조의 방」)의 모습은, 각자의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편견과 사회적 계급에 의해 좌절당하고 마는 우리 시대 청춘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렇지만 박상영은 이러한 현실을 쓸쓸하고 아프게만 그리지 않는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 유머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소설가 이기호가 박상영을 두고 “‘생래적 유머리스트’의 출현”(추천사)이라며 후배의 등장을 반긴 것처럼 박상영의 소설은 유머러스하고 리듬감 있게 읽는 재미가 있다.
박상영은 농담을 에둘러 흘리기보단 부끄러워하지 않고 직접 던지는 편에 가깝다. 제제가 ‘나’에게 보내온 “오늘의 웃긴 얘기”를 듣고 우리는 피식피식 웃지 않을 수 없고, ‘나’와 왕샤가 ‘샤넬 노래방’과 ‘비욘세 순대국밥’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며 나누는 대화는 급기야 우리를 파안대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소동과 웃음을 넘어 끝내 우리를 눈물짓게 만들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속수무책으로 공감”(정이현, 추천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박상영의 소설이다.



이 글들을 묶어낼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를테면 필름이 끊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만취해 택시를 타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사람, 스스로를 씹다 버린 껌이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여기는 사람,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 함부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 그렇게 잘난 척을 하며 살다보니 나 아닌 누군가에게 한 번도 제대로 가닿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아버린 사람. 이 책은 좀체 웃을 일이 없는 그들에게 건네는 나의 수줍은 농담이다. _‘작가의 말’에서


★ 추천의 말 ★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박상영의 등단작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를 처음 읽은 그 순간부터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가 말하는 방식도 좋았고, 그가 그려놓은 무대도 마음에 들었으며, 심지어 그가 만들어낸 인물(박소라)은 꿈에 나타나기까지 했다. 나는 팬심으로 무장해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그의 동문 선후배들에게 남몰래 취재했으며, 문예지가 오면 제일 먼저 그의 소설부터 찾아 읽곤 했다. 그리고 지금 ‘성덕’의 심정으로 그의 첫 소설집 추천사를 쓰고 있다. 내가 박상영의 소설을 사랑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가 ‘유머’와 ‘자멸’이 사실은 같은 반 절친한 짝꿍임을 알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유머리스트와 마조히스트가 어깨동무를 한 채 어두운 밤거리를,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걸어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결핍이나 금지 따위는 없다. 통제니 절제니 설득이니 하는 것들도 없다. 오로지 직진할 뿐. 망하면 망했지 가식이나 위선은 떨지 않겠다는 태도. 이런 태도는 계산하고 설정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연약한 동물의 본능처럼 저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른바 ‘생래적 유머리스트’의 출현, 그것이 바로 내가 사랑한 박상영의 다른 이름이다. _이기호(소설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무척 여러 번 표정을 바꾸었다. 피식거리다가 파안대소하다가 갑자기 진지해졌다가 콧날을 찡그렸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하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중인물이 토해내는 무력감에 속수무책으로 공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상영의 소설은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이 작가가 한국소설의 경계를 한층 넓히고 한계를 지워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_정이현(소설가)

구매가격 : 9,500 원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도서정보 : 조승원 / 싱긋 / 2018년 09월 1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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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다룬 책들은 차고 넘치지만,
아직 술과 연관된 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아무도 안 쓸 것 같다면 더 늙기 전에 나라도 쓰자.
내가 직접 써서 내가 맨 먼저 읽어보자."

문장은 한 점의 모호함도 없이 명석하고,
내용은 백과사전만큼이나 정확하고 풍부하다. _장석주(시인)


하루키스트라면 절대로 놓치면 안 될 책
이 책은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미주가(美酒家)이자 하루키스트인 저자가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며 작품 속에 나오는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며 쓴 매혹적인 책이다.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에 등장하는 술을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로 분류하여, 해당 작품 스토리의 흐름과 주인공 사이의 대화에서 나오는 술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고, 나아가 해당 술을 주제로 한 문명사와 술 제조법까지 담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의 행적을 추적하며 술과 연관된 작품 속 장면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어 하루키의 해당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며, 술에 대한 특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술을 즐기지 않거나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술의 맛과 역사를 즐길 수 있다. 저자는 평생 음악에 빠져 음악을 업으로 삼고자 국내 모든 라디오PD 시험에 응모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한 자신의 특기를 살려 각 장의 끝에 하루키 작품에 나오는 음악에 관한 설명도 덧붙였다. 부록으로 실은, 저자가 발품을 팔아가며 하루키가 즐겨 찾던 술집을 취재한 내용과 국내의 가볼 만한 곳, 그리고 술과 관련된 하루키의 문장들은 또다른 재미를 준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거나 바에서 칵테일 한잔 하는 건
어쩌면 하루키 소설의 문장 하나를 읽는 거나 마찬가지다. _「들어가며」에서

하루키는 소설을 쓰기 전 바텐더였다
하루키는 소설가로 정식 데뷔하기 전,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의 이름을 딴 "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운영했던 바텐더였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하면 바텐더 경험은 10년 남짓, 이때의 경험이 여러 소설에 녹아 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는 "재능 없이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저자는 하루키도 칵테일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과 관련해서는 재능의 선천성과 후천성 사이에서 깊이 고민했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국가 공인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있을 만큼 술 전문가인 저자는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술을 좇는 것으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이 어떤 기분일 때 맥주를 마시고 위스키를 마시는지, 주인공이 선택한 술은 평소 하루키가 어떻게 생각하던 술이며 어떤 맛과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루키와 해당 술의 인연과 그 술에 대한 정보를 종횡무진 집요하게 추적한다. 맥주의 저장 온도는 몇 도가 나은지, 병맥주와 캔맥주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 라거는 어떤 맥주이며, 하루키는 왜 유럽 맥주를 좋아하는지, 왜 키안티 와인을 좋아하는지, 맥주와 와인과 위스키의 기원은 무엇인지, "쿠바 서민의 술"인 모히토가 어떻게 헤밍웨이가 사랑한 술로 둔갑했는지, 나아가 위스키나 보드카가 의약품으로 취급받은 사실이나 술의 문화사에 관한 글도 무척 재미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하루키의 작품이나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제외하면 총 47종의 책을 참고했는데, 그중 35종이 술에 관한 책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술의 역사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 추천사

하루키 소설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의 음악, 술, 음식들이 나온다. 그것은 작중인물이 제 감정과 문화 취향을 드러내는 기호로 작동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훑으면서 "술"에 관련된 것을 일일이 적시하고, 그 의미를 따져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술과 함께한 인류의 문명사를 짚어내고, 하루키 주인공들이 술에 기대어 제 마음을 어떻게 진정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은 한 점의 모호함도 없이 명석하고, 내용은 백과사전만큼이나 정확하고 풍부하다. 처음엔 "술"이라는 코드로 "하루키 문학"을 탐사하는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나중엔 기대를 넘어서는 책의 몰입도에 반했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붙인 "이 책을 읽고 가볼 만한 곳"도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하루키스트라면 절대로 놓치면 안 될 책이다! _장석주(시인)

40년 동안 숙성된 고급 위스키 같은 하루키의 글에는, 잉크 대신 검정색 알코올로 글을 쓴 듯 여러 빛깔의 술 향기가 묻혀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렸을 적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잘 몰랐던 음악과 술들을 알게 된다면,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을 수 있을 듯. 허무하지만 간절함이 느껴지는 맥주, 우아하지만 왠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와인, 영혼의 진통제 위스키, 클래식한 칵테일들까지 저자는 술에 얽힌 이야기들과 역사를 바텐더처럼 친절하게 안내한다. _"캡틴락" 한경록(크라잉넛)

햇살 좋은 날이면 학교 가던 길을 멈추고 하루키 소설 한 권을 손에 든 채 공원으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넘기던 페이지마다 적혀 있던 술에 대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가며, 나도 한 번쯤 25미터 수영장을 가득 채울 만큼의 맥주를 여름내 마셔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루키의 글들에 숨겨진 술에 관한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풀어낸다.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잔디밭에 나가 차가운 라거 병맥주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귓가를 간질일 것만 같다. _김양수(웹툰 작가)

맥주 반잔을 겨우 마시는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술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와 함께 여유로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술알못"도 즐길 수 있는 흥미로운 가이드이자 하루키 월드를 속속들이 파헤쳐주는 유니크한 팬북! _양수현(『기사단장 죽이기』 책임편집자)

구매가격 : 12,600 원

이빨 (교유서가 첫단추시리즈 26)

도서정보 : 피터 S. 엉거 / 교유서가 / 2018년 09월 1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생존 경쟁의 최전선, 이빨 5억 년의 진화사
이빨과 먹이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인간은 왜 이갈이를 한 번만 할까?

이빨의 맞물림과 씹기 능력은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새 이빨은 새로운 가능성을 낳는다
이빨의 구조와 기능, 인간 치아의 질환 등 이빨의 모든 것!


이빨은 5억 년에 걸쳐 진화해왔다.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의 진화를 추동한 것은 이빨의 진화와 그로 인한 섭식 효율의 증가였다. 저자는 최초의 이빨 가진 어류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이빨의 역사를 풀어내며 이빨의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진화와 과거의 식생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왜 이빨에 끌리는가? 이빨에는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게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이 이빨로부터 달아나려고 기를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빨이 우리를 규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생을 이빨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의 주된 관심사는 자연이 어떻게 일하는지, 생명이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지, 인류가 어떻게 적응했는지 등인데, 이빨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더없이 적절한 도구다. 이빨의 크기와 모양, 구조, 마모, 화학 조성에 대한 이 책의 서술은 이빨이 어떻게 작용하고 오늘날 동물이 어떻게 이빨을 이용하며 과거에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선사한다. 이빨 진화의 역사를 총괄하는 이 책은 이빨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에서 포유류의 이빨, 인간 치아에 이르기까지 이빨의 모든 것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상어는 이갈이를 수백 번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이빨이 빠지고 새로 난다. 상어는 이갈이를 수백 번 할 수 있어, 평생 수만 개의 이빨이 입을 거쳐 간다. 새로 난 이는 크기, 모양, 구조가 전과 달라질 수 있다. 포유류의 경우, 치열에 큰 틈이 생기지 않도록 이갈이는 한 개 걸러, 또는 두 개 걸러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이갈이가 특이한 것은 성체가 되었을 때 턱의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인간은 치아가 여러 세대에 걸쳐 점차 커질 필요가 없다. 두 세대면 충분하다. 젖니는 대체로 작으며 법랑질이 얇고 희다. 큰어금니를 제외한 젖니 스무 개를 전부 가는데, 턱에 여유 공간이 생김에 따라 여남은 개가 더 난다. 마지막 큰어금니는 턱 성장이 끝나는 시기에 난다. 하지만 대다수 포유류는 이갈이 패턴이 인간과 다르다. 생쥐는 태어날 때부터 성치이며, 이빨고래는 성치가 나지 않는다. 송곳니의 경우, 고양이와 원숭이 같은 일부 종은 단검 모양으로 길며, 날카롭고 뾰족한 끝은 싸울 때나 먹잇감을 찌르고 물고 붙잡을 때 쓴다. 바다코끼리, 하마, 멧돼지 등은 송곳니가 엄니로 변형된다.


포유류의 내온성, 그리고 다양한 이빨
포유류는 풀을 먹거나 다른 식물 부위를 뜯고, 미세 플랑크톤이나 덩치가 큰 동물까지 먹는다. 입맛이 까다로워 몇 가지 먹이에만 집중하기도 하고,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먹기도 한다. 이 놀라운 다양성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몸속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인 내온성(內溫性)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온혈이 아니라, 음식물에서 열을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포유류는 추운 기후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따라서 내온성은 몸의 화학 반응을 더욱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내온성이 없으면 포유류는 포유류일 수 없다. 하지만 몸의 난로를 계속 지피려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데, 기온이나 수온이 낮을수록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하다. 휴식을 취하는 포유류는 주위 환경에서 열을 흡수하는 비슷한 크기의 변온동물에 비해 5∼10배의 연료를 소비한다. 그런 만큼 음식물에서 최대한의 열량을 짜내야 하는데, 거기에서 이빨의 진가가 드러난다. 자연은 포유류가 내온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이빨에 거센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탄수화물 섭취량 증가와 충치의 만연
인간에게 충치나 치주질환이 만연한 것은 19세기 이후부터다. 치태 세균은 탄수화물을 분해하면서 부산물로 산을 배출한다. 이빨 표면의 피에이치(pH)가 낮아지면 무기질이 유실되고 최종적으로 충치가 생기거나 법랑질과 상아질이 점차 삭는다. 그런데 초기 현생 인류에게는 충치가 별로 없었다. 선사 시대에 살았던 텍사스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수렵·채집인은 치과 질환을 지독하게 앓았는데, 이것은 탄수화물이 풍부한 야생 식이가 충치를 일으키는 치태 세균에 양분을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탄수화물은 신석기 농업 혁명과 함께 인류가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그 섭취량이 급증했고, 그에 따라 충치율도 다섯 배가량 증가했다. 19세기 이후에는 당분이 많은 식품과 정제 설탕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충치율이 더욱 치솟았다. 치태 세균은 당을 여느 탄수화물보다 훨씬 빨리 분해하기 때문에 산도가 높아지고 충치가 더 빨리 생긴다. 물론 유전적 성향이나 병리적 타액 등의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신석기 혁명과 산업 혁명으로 인한 식이 변화가 충치율 증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너무 많이 씹으면 되레 소화 효율이 낮아진다
입을 다물었을 때 입술 위로 튀어나오는 엄니는 앞니나 송곳니가 커진 것으로, 과시나 싸움에 주로 쓰이지만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코끼리는 엄니로 땅을 파거나 나무에 표시를 하며, 일각돌고래는 엄니를 감각기관으로 이용하여 물의 온도, 압력, 화학 조성을 감지한다. 그런데 음식물의 처리는 무엇보다 씹기를 뜻한다. 이빨은 식물의 세포벽과 곤충의 외골격 같은 보호용 덮개를 찢어 영양소를 흡수한다. 음식물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면 삼키는 덩어리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동시에 소화효소가 작용할 표면적이 커진다. 표면적이 커지면 효소의 작용이 늘어나 음식물을 더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씹기에는 에너지와 시간이 들기 때문에 비용과 편익을 견주어야 한다. 씹는 시간이 늘수록 섭취에 드는 시간과 섭식량이 줄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는 씹는 횟수를 15회에서 40회로 늘렸더니 섭취 열량이 12퍼센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각이 너무 작으면 장을 너무 빨리 통과하여 세균이 음식물 분해를 도울 시간이 없는 것이다.

구매가격 : 9,700 원

강릉 바다

도서정보 : 김도연 / 교유서가 / 2018년 09월 1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밤새워 간절하게 우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취해갔던 그 밤들에서 벌써 한 계절을 건너왔다

"강릉 바다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본 바다다.
강릉 바다는 그동안 가장 많이 기웃거린 바다이기도 하다.
그 바다 근처를 서성거렸던 이야기를 담았다."


강원도산 곰취 같은 청정 에세이
이 책에 실린 산문은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글들이다. 그중에서도 깊은 밤에 마시는 소주 안주로, 달걀을 노른자에 분이 날 때까지 삶아 칼로 반 토막을 낸 뒤 고추장을 찍어 곰취에 싸먹는 것을 최고로 치는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산문이다. 이 책은 겨울철에 강릉 삽당령 너머 영동지역의 해양성 기후와 여름철 고랭지 기후가 만나는 송현리에서 자라는 곰취의 맛을 제일로 치는 김도연 작가의 세번째 산문집이다. 강원도의 거친 듯 속 깊은 바람처럼 맑고 정갈한 글들을 모아, 작가가 태어나 처음으로 본 바다이자 삶의 변두리에서 끊임없이 기웃거리고 서성거렸던 "강릉 바다"에 담았다.

"대관령 산골짜기에 어느 날 하늘에서 물고기들이 우박처럼 뚝뚝 떨어진 적이 있다고 들었다.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명절 생일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바다의 물고기를 배불리 먹었다고 했다. 아마도 용오름 때 하늘로 불려간 물고기들이 생선 구경하기 힘든 산골마을에 선물처럼 내려앉은 것일 게다. 이 이야기는 내가 처음 들은 바다 이야기 중 하나일 텐데 그때부터 나는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온갖 물고기들이 날아다닐 것만 같은 바다 같은 하늘을. (…) 그 바다 근처를 서성거렸던 이야기를 담았다. 하늘에서 고등어 꽁치 명태 오징어가 뚝뚝 떨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깊고 그윽한 돌배 술 같은 에세이
작가의 고향 진부령에서 자라는 돌배나무의 돌배는 아무리 잘 익은 것이라도 한입 깨물면 특유의 신맛에 몸서리를 칠 정도여서 다른 열매에 비해 인기가 없다. 하지만 술로 담그면 세상의 어떤 술보다도 맛이 깊고 그윽하여 인기가 높다. 이 책에 실린 글들에는 잘 담근 돌배 술 같은 18년 차 작가의 농익은 글맛이 잘 배어 있다. 그런 만큼 오래전 누에들에게 자기 방을 빼앗긴 한 산골 소년을 만날 수 있고, 강원도에서도 봄이 일찍 찾아오는 원주의 소쩍새 울음소리에 공감하는 한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마치 취한 말들이 비틀거리고, 달려가고, 몰려오고, 쓰러지는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더 나아가 취한 배에, 취한 기차에, 취한 그 무엇에 실려 눈보라 일렁이는 세상을 건너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평창올림픽 계기로 네이버 스포츠 최초로 산문 연재
눈의 고장 평창은 안타깝게도 얼마 전 천혜의 자연을 훼손하면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만 해도 일제강점기에 개통한 신작로가 그 고장의 유일한 길이었는데, 1970년대 들어 길이 포장되고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달라진 고향 사람들의 삶, 그리고 자연과 사람 사이의 정, 개발에 따른 급격한 변화에 대한 작가의 상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는데, 마지막 3부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제안으로 연재한 평창 동계올림픽 관전평을 실었다. 경기장을 품고 있는 장소가 자아내는 기억들, 경기 현장의 열기와 선수들의 땀에 대한 묘사 등 인상적인 읽을거리가 가득하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대관령을 넘고 또 넘었을 것이다. 그 많은 평창의 길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은 바로 이 길이다. 산골짜기에 움막을 짓고 산비탈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려는 화전민들이 피워 올린 성화같은 가난한 연기. 그들이 만든 길을 나는 좋아한다."

구매가격 : 9,700 원

귀신나방

도서정보 : 장용민 / 엘릭시르 / 2018년 09월 17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특한 설정,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텔링의 대가
장용민의 신작 드디어 출간!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라는 자가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한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 없는 사이로 경찰은 전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을 선고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게 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작가 장용민이 4년이라는 긴 기다림을 깨고 신작 『귀신나방』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3년 『궁극의 아이』로 한국 장르소설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그는 2014년 『불로의 인형』을 내놓은 이후 다음 작품을 위해 잠시 휴지기를 가졌다. 이번에는 1960년대 뉴욕이 배경이다. 2차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오토 바우만이라는 남자가 사상 최악의 ‘악마’를 쫓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그리고 있다. 거칠 것 없는 상상력과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곧바로 읽게 되는 몰입감 높은 스토리텔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그이기에 언제나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시선을 끌지 기대하게 만든다.

아디 또는 애덤이라 불리는 자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네.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 벌어진 살인이었어. 대체 놈의 정체가 뭐요? 어떤 놈이기에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고 다니냔 말이오!” (본문 293쪽)

전직 기자였던 크리스틴은 절필한 뒤 세상을 등지고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FBI에 이끌려 오토 바우만이라는 사형수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처음에 크리스틴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귀를 열게 된다. 오토 바우만이 이야기하는 자는 ‘아디’라 불리는 자였다. 2차세계대전 당시부터 ‘아디헌터’로 활동하며 수십 년간 그의 뒤를 쫓은 바우만은 종국에는 사형수로 생을 마감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바우만은 마지막으로 크리스틴에게 자신이 이제까지 겪은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놓는다.

『귀신나방』은 수십 년간 ‘아디’를 쫓은 ‘아디헌터’ 바우만의 이야기이자, ‘아디’로 불리는 자가 정체를 숨기고 뉴욕에서 자신만의 계획을 하나씩 실행해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애덤(아담)’이라 이름으로 미국에 발을 디딘 ‘아디’는 작은 마을을 통해 모종의 사회 실험을 벌이기도 하고, 미국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사는 세계로 편입하여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그가 누구인지 독자는 책을 읽게 되면 금세 알게 될 테지만, 작가의 손에서 새롭게 해석된 모습은 신선하기 그지없다.

“자네, 귀신나방이라고 들어봤나?”

그놈들은 천둥이 가까워오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나무에 내려앉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나무에 벼락이 치는데, 녀석들은 벼락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마지막 순간 죽음을 향해 비행한다. 우기가 끝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화한 유충들이 나타나 어미가 생을 마감했던 나뭇등걸로 모여든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또다시 반복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한다.

기괴한 생태를 가진 ‘귀신나방’은 실재하는 곤충이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진짜 그런 나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만다. 장용민 작가의 장기 가운데 하나다. 그는 실제 있었던 일들, 사람들, 사실들을 이야기 적재적소에 배치해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 데뷔작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는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 숨어 있는 비밀을 실제 역사와 건축물에 대입하여 허구화한다. 『불로의 인형』에서는 진시황이 찾아 헤매던 ‘불로초’의 전설을 뒤쫓아 남아 있는 흔적을 탐색했다. 『귀신나방』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마를 뒤쫓는 스토리로 독자를 또 한 번 평행우주로 이끈다.

‘아디’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작가는 실존했던 인물과 역사를 살짝 비틀어 재구성한 세계에 과감한 상상력을 더해 전혀 다른 역사를 마주하게 만든다. 『귀신나방』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할 만한 1960년대 미국이다. ‘아디’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본 당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겹쳐져 스토리에 몰입감을 높인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지점의 참신함은 여전하다.

특별히 『귀신나방』은 다른 작품보다 속도감이 뛰어나다. 장쾌한 스케일과 상상력은 그대로지만 서스펜스 스릴러의 특징을 십분 살려 묘사보다는 사건 전개에, 배경보다는 캐릭터에 집중해 집필하는 것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덕분에 몰입도는 높아지고 반전의 묘미 또한 훨씬 부각되었다. 『귀신나방』을 읽으면 아직까지 장용민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는 작가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구매가격 : 10,200 원

진실의 10미터 앞

도서정보 : 요네자와 호노부 / 엘릭시르 / 2018년 09월 17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베루프’ 시리즈의 귀환

저널리즘에 대한 신념과 ‘앎’과 ‘전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게 했던 전작 『왕과 서커스』에 이어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가 돌아왔다. 타국의 소녀 마야와 그녀가 남긴 수수께끼에 대한 소설인 『안녕 요정』에서 고등학생 다치아라이는 수수께끼를 푸는 탐정 역으로서 등장한다. “주인공이 10대였기 때문에 해외까지 보낼 수 없어”서 10년 뒤의 이야기인 『왕과 서커스』를 집필했다는 작가는 그간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다치아라이 마치에 대한 단편들을 『진실의 10미터 앞』이라는 단편집으로 묶어 발표했다. 다치아라이가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해 진상에 다다르기까지를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과 신념 등을 반복해서 되묻는 사회파 소설이기도 하다. 살인뿐 아니라, 실종, 경영난, 동반 자살, 고독사, 피난, 구출 등 다방면에 걸친 사회적 이슈들을 사건으로 풀어나가며 한 편 한 편 문제를 반복해서 제기함으로써,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종된 벤처기업의 홍보 담당이 동생에게 연락을 해왔다. 《도요 신문》 오가키 지국의 기자인 다치아라이는 전화 내용만을 단서 삼아 단독 인터뷰를 하기 위해 나고야 역에서 특급열차에 오른다. (「진실의 10미터 앞」) 도쿄 기치조지 역에서 승객이 선로에 떨어져 열차에 치인다. 열차가 운행을 중지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람들 중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여성이 있다. (「정의로운 사나이」) 미에 현 고이가사네에서 고등학생 커플이 동반 자살한다. 현장으로 향하는 주간지 기자를 위해 상사는 취재를 도와줄 취재 코디네이터를 섭외한다. (「고이가사네 정사」) 사망한 독거노인이 발견된다. 다치아라이는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중학생과 접촉한다. 다치아라이의 취재 목적은 단 하나, 이름을 새기는 죽음은 무엇인가. (「이름을 새기는 죽음」) 고등학생이 조카를 찔러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며칠 후 동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남성이 찾아온다. 어느 추억을 가슴에 안고…….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나가노 현 남부를 덮친 태풍 때문에 니시아카이시 시는 큰 피해를 입는다. 큰 산사태에서 살아남은 노부부를 다치아라이가 취재한다. 왜 지금, 왜 그 질문을……. (「줄타기 성공 사례」)

다치아라이가 맞닥뜨린 사건들을 모아놓은 『진실의 10미터 앞』의 단편들은 다치아라이가 일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모습이 보이도록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작품인 『안녕 요정』, 『왕과 서커스』의 ‘마리야 요바노비치의 추억에 부쳐’라는 감사의 말에 이어 시리즈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 눈에 띄는데, 「진실의 10미터 앞」과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가 그것이다. 표제작인 「진실의 10미터 앞」은 유일하게 『왕과 서커스』 이전,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의 다치아라이를 그린 단편으로, 기자 일을 시작했을 무렵의 사건이기 때문에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도 약간은 미숙한 주인공을 볼 수 있다. 이후의 단편들은 『왕과 서커스』처럼 신문사를 나와 프리랜서 기자로 전향한 뒤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는 『안녕 요정』에 등장했던 소녀 마야의 오빠 요바노비치가 일본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한 남학생이 조카를 칼로 찔러 죽인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사건을 통해 요바노비치가 저널리즘과 기자의 역할에 대해 다치아라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를 이해해나가는 구조로 흘러간다.

안녕 요정』, 『왕과 서커스』, 『진실의 10미터 앞』. 이 세 작품을 일컫는 시리즈명 ‘베루프’ 시리즈에서 ‘베루프’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등장하는 ‘천직’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프리랜서 기자로서 자신의 천직, 그리고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끊임없는 자문을 계속해나갈 다치아라이를 위해 ‘베루프’라고 이름 지었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 기자, ‘눈’이 하는 역할

“미스터리로서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 탐정이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필사적으로 숨긴 것을 폭로한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숨겨진 사실은 슬픈 일일 수도, 음습한 일일 수도 있고, 혹은 선의나 기쁨일지도 모른다.” (작가 인터뷰 중)

진실을 밝혀내는 탐정 역인 다치아라이 마치는 기자이다.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만큼 때로는 타인의 비밀을 폭로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은 미스터리 소설과 탐정 역에 잘 맞는 옷처럼 들어맞는다. 그녀가 주인공인 『진실의 10미터 앞』 역시 이전 작품들과 동일하게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섯 단편의 여섯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후더닛’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다는 점이다. 숨겨진 진실(수수께끼)을 밝혀나가면서(추리) 사실과 진실에 대해 강렬한 물음을 던진다. 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의 화려함이나 극적인 재미와는 결이 다른, 수수하면서도 깊은 가슴 울림이 있다.

『왕과 서커스』에서 ‘앎’과 ‘전하는 것’에 대해 깊은 성찰을 남겼던 작가는 『진실의 10미터 앞』에서 또다시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전하는 진실’에 대해 커다란 물음을 던진다. 기자란 진실, 즉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요바노비치에 대하여 다치아라이는 기자란 “사람들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진실이란 그렇지 않으면 곤란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며 “정보를 다룰 땐 당사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가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는 기관이며, 보기 싫은 것을 차단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다치아라이는 사소한 단서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찾아다니며 얻은 정보를 가지고 사실을 조정하고 주의깊게 가공한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야경』, 『왕과 서커스』에 이어 『진실의 10미터 앞』으로 3년 연속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을 기록했으며, 매번 주요 미스터리 순위의 최상위권에 오르는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과 독자에게 인정받는 탄탄한 중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벌써 등단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요네자와 호노부는 집필에 있어서는 지금도 첫 작품을 완성했을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장편을 완성하면 단편을 몇 작품 쓰고, 다시 장편을 집필한다. 몇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는 일은 없다. 정좌한 채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깊이는 깊어졌지만 작품에 대한 마음가짐만은 초심을 잃지 않는 그가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구매가격 : 10,400 원

해인

도서정보 : 차무진 / 엘릭시르 / 2018년 09월 17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성모와 아기장수, 그를 지키는 박마(駁馬)가 있는 세상

“박마가 해인을 찾으면 성모의 몸에 인식을 하지. 성모의 몸에 해인을 찍어 상처를 낸단 말이 야. 아기장수, 즉 진인을 낳을 수 있다는 표식을 하는 거지. 표식이 찍혔다면 준비가 된 거야. 그때부터 성모와 박마는 그 해인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아야 하네. 만약 인식한 이후에 해인이 도난당하거나 부서진다거나 또는 손상이라도 나면 말일세, 그 성모는 영원히 성모로만 사는 윤회를 반복한다네. 죽어도 다시 성모로 태어난다는 뜻이지.” (본문 299~300쪽)

『해인』의 세계는 이 땅의 과거와 현재를 무대로 한다. 멀게는 고려부터 조선과 동학혁명 시기를 지나 현재에 이른다. 여기에 작가는 영웅 신이담(神異譚) 아기장수 설화를 끌어온다. 옛날 어느 평민의 집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고 신력까지 발휘하자 부모는 이 아이가 역적이 되어 집안을 망칠까 겁이 나서 죽이고 만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에는 여러 버전이 있으나 구원자를 바라는 민중의 심리와 현실적인 힘에 의해 희망이 좌절되는 비극이라는 점에서는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해인』에서는 아기장수라는 영웅보다는 그 영웅을 낳는 성모(聖母)와 성모를 둘러싼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해인(海印)’이란 이 땅에 구원자를 불러오기 위한 증표이자 성모와 아기장수를 잇는 매개체. 아기장수의 탄생을 위해 몇백 년의 시간 동안 해인과 성모를 찾는 백한과 또 다른 이유로 성모를 찾는 정만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고려, 여진인 백한은 우연히 만난 성모, 숙지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를 지키는 박마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스승인 백지는 조상 가운데 박마를 말살한 자가 있다는 이유로 쉽사리 백한에게 박마직을 내리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백한은 박마가 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나지 않은 좌절과 고통뿐이었다.


죽지 않는 자, 불사(不死)의 서로 다른 고통을 다룬 이야기

“흔히 ‘서쪽을 보는 자’라고들 하지. 예전에는 불사를 그렇게 불렀네. 매일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자신들의 끝없는 한을 되새긴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군.” (본문 121쪽)

『해인』은 윤회하는 성모를 두고 반목하는 두 불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한과 만인은 각자 다른 이유로 성모를 찾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불사가 되었으며 왜 기나긴 세월을 성모를 쫓는지의 과정이 긴장감 넘치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성모를 둘러싼 사건을 쫓는 스릴러의 재미만 보인다면, 시대를 건너뛰며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 속에서 해인에 숨겨진 비밀과 성모가 안고 있는 고뇌가 이야기 안에서 중첩된다. 그렇기에, 판타지 설정이 가미된 팩션으로 읽히던 이 소설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거쳐 점차로 본격 미스터리가 갖고 있는 수수께끼 풀이의 재미가 붙는다. 시간의 앞과 뒤로 어지럽게 시야를 혼란시키는 퍼즐 조각들은 마지막 반전에서 하나로 모이며 정점을 찍는다.

작가의 게임 시나리오 작업의 경험 덕분인지, 개성 넘치는 설정과 잘 짜인 스토리 구조와 곳곳에 배치된 복선이 이 작품의 재미를 한껏 높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취해야 할 것과 작가가 장치해야 할 것의 취사선택이 훌륭하여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불사(不死)와 불사의 고통을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로 보이는 이유도 그것이다. 이미 소설을 내놓은 경험 있는 작가지만 마치 새롭게 등장한 신인이 쓴 것 같은 『해인』은 작가의 경험과 참신한 발상이 잘 어우러진, 눈여겨볼 만한 한국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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