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노동 찾기

도서정보 : 신정임, 정윤영, 최규화 | 2019-02-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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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야간 노동자들의 삶
경제 논리로 인해 사라져버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
24시간 풀가동 사회… 야간 노동자들의 삶은?

우리가 매일 만나지만 한 번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야간 노동자들의 일상을 기록한 인터뷰집 『달빛 노동 찾기』가 출간되었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밤을 꼬박 지새우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4시간 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이 사회는 자신의 밤과 잠을 희생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땀을 갈구한다. 사람들이 더 많은 ‘편의’를 누될수록, 그 ‘편의’가 한밤중에도 지속되는 ‘서비스’로 자리 잡을수록, 누군가의 밤과 휴식은 점점 더 짧아진다. 이렇게 장시간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의 삶은 현재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장시간 야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사고가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을까? 그 노동의 가치는 인정받고 있을까?

2018년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용균 씨 또한 밤새 야간 노동을 하다 기계에 끼어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다. 김용균 씨는 그날 밤 홀로 일하고 있었다. 『달빛 노동 찾기』의 필자들은 이렇게 장시간 야간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노동자들의 일터로 향했다. 야간 노동의 일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고, 때로는 우리의 바로 옆에 있기도 했다. 우편집중국, 방송국, 대학교, 병원, 공항, 지하철. 감옥, 급식소, 고속도로 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편의와 안전을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일터에서 ‘24시간 풀가동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곧 우리가 곁에서 매일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구매가격 : 9,800 원

조선 여성의 의복 변천사

도서정보 : 유자후 | 2019-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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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의 의복은 대수삼곡령(大袖衫曲領)의 포포(布袍) 등이 피복과 가죽옷으로 병행한 듯하다.
후한서에 보면 영주(瓔珠)를 중요 시 하여 의복에 철식(綴飾)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부녀자의 의복으로 삼한 시대 여인들은 영주철식의(瓔珠綴飾衣)를 입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4,000 원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도서정보 : 양승훈 | 2019-01-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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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황금기를 뒤로한 채 저물어가는 거제 중공업,
누가 떠나고 누가 남았나?

[땐뽀걸즈]에 미처 담기지 못한‘중공업 가족’의 진짜 이야기!

‘땐뽀걸즈’의 가족은 왜 뿔뿔이 흩어졌을까?
조선소의 젊은 사무직과 엔지니어는 왜 거제를 떠나 서울로 향할까?
산업도시 거제의 ‘그다음’은 가능할까?

2016년 화제의 영화 [땐뽀걸즈]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거제도 ‘중공업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 최초의 책.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선산업 전반의 문제에 대해 활발히 글을 써온 저자가 조선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산업, 그리고 그 근거지인 거제도와 조선소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20년 가까이 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 2015년 대우조선의 경영난을 기점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조선업이 지금의 위기를 계기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관점하에,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과 문화를 상세히 조명했다.

위기의 원인을 1960년대부터 시작된 조선산업의 역사 속에서 상세히 분석하면서도, 조선소 근무 경험을 살려 실제 현장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지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했다. 조선소의 상징과도 같은 ‘귀족 노조’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중공업 가족’ 이외에도 하청업체 노동자, 사무보조직 여성, 조선소 취업을 앞둔 여고생, 조선소의 오랜 관습에 반기를 든 젊은 엔지니어, 여성 엔지니어 등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두루 살핌으로써 위기의 본질을 고민한다. 위기 이후 거제도와 조선산업이 추구할 만한 방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땐뽀걸즈]의 곳곳에 드리운 ‘가족의 위기’가 궁금한 독자들, 나아가 ‘땐뽀걸즈’들의 그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1,830 원

서울대, 혼자 공부해서 가는 법

도서정보 : 박성원 | 2019-01-2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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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없이, 스스로 하는 ‘나를 위한’ 공부법. 교실 뒷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평범한 중위권 학생은 어떻게 서울대를 뚫고 ‘공신’이 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서울대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하나하나 준비 했다. 유명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한 것도 아니었다. 똑 소리 나는 애들만 다니던 특목고 출신도 아니고, 부산의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성적도 최상위층이 아닌 중간 정도인데다 그것도 벌써 2학년이나 되었다. 현실적으로 이 학생이 느닷없이 서울대에 가야겠다고 결심한다고 갈 수 있을까? 그것도 사교육 하나 없이 말이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3학년 마지막 시험을 볼 때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분히 정리하고, 서두르지 않고 그 계획을 따라서 실행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수능을 치르고 서울대에 입학했으며, 장학금까지 받고 졸업한 후 공인회계사라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었다. 이 책은 결코 혹시나 있을 법한 일을 소설 같이 꾸며낸 것이 아니라 실재의 인물이 겪었던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다.

진정 원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만큼의 대학에 갈 수 있다! 실질적이고 가슴을 찌르는 충고, 그리고 바로 응용해서 쓸 수 있는 체계적인 실전 학습법!

서울대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라면 생각해보자. 나는 진정 서울대를 원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는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원하다’에는 3가지 뜻이 있다. 단순한 희망 사항에 그치는 ‘Wish’, 조금 더 현실적인 희망 ‘Hope’,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여 계획하고 실천하는 ‘Want’다. 내가 어떤 의미로 좋은 대학 입학을 원하는지 돌이켜 생각해봐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남들은 늦었다고 포기하는 시기지만 스스로 원한 길을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한 저자의 ‘용기와 위로의 실전 공부법’은 서울대가 아니더라도 진정 원하는 대학과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첫 단추, 첫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
다음은 공부법이다. 목표를 확고히 했다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과 재미를 쌓아야 한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3년(저자는 2학년에 시작했지만)의 계획을 철저히 세우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학년별 계획 수립과 과목별 공략법을 참고해 보라. 어쨌든 고등학교는 3년 과정이다. 대학을 가기로 결심을 했으면 현재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3년의 계획을 맞춰가라는 것이다. 1학년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지금 60점인 것은 2학년 때 70점이 될 것이며, 3학년 때 80점, 수능에서는 90점 이상이 될 것이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대학, 서울대에 갈 수 있다.
실력 앞에서는 학종도 수시도 수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열심히 해보고 크게 웃자.

구매가격 : 10,000 원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지명 도감

도서정보 : 21세기연구회 | 2019-01-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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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의도

세계의 지명은 세계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사람에게 인명이 있다면 땅에는 지명이 있다. 사람의 이름이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와 역사를 담보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땅의 이름도 그 지역의 특수성과 역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 문명의 시발점이 땅이기 때문에 지명 자체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기호이다.
지명은 한 번 정해지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물론 환경이 변화하거나 다른 문화가 유입되면 과거 지명은 변화 혹은 소멸되고, 새로운 형태의 지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지명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고 말한다.
이 책은 어려운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입체 그래픽지도와 풍부한 컬러도판을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지명은 편의상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일 뿐만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담아온 타임캡슐이다. 그러므로 각 지역의 지명에는 한 민족의 언어, 풍속, 종교, 역사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이 책은 지명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 땅에서 일어난 여러 민족의 흥망성쇠, 즉 영광과 비극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지명은 한 나라의 운명을 예언하는 지정학적인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동유럽의 중앙부에 자리한 폴란드의 국명은 옛 슬라브어로 ‘평평한 대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이것이 농경에 적합한 평탄한 대지를 가리키지만, 격변의 시기에는 주변의 여러 나라로부터 쉽게 침략을 당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를 의미한다. 폴란드는 이러한 지정학적인 환경 때문에 두 차례나 주변 강대국의 식민지로 전락한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책에는 부록으로 세계 각국의 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었다. 11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일독하는 것만으로 세계 각 나라의 역사와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명 공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즐거운 시간여행이다
이 책은 지명에 대한 언어적인 단순한 접근보다 지리적 환경과 민족, 문화 등 다양한 각도에서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풀어내 해설한다. 특히 풍부한 지도 자료를 활용하여 지명이 탄생한 유래와 변화를 추적하는 과정은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이처럼 지도를 통해 지명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즐거운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한다.
1703년 러시아의 표트르 황제는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핀란드만의 네바 강 하구에 한 도시를 건설했다. 그는 자기 이름의 어원이 ‘성 베드로’라는 점을 착안해 이 도시의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명명했다. ‘성스러운’을 뜻하는 상트와 ‘베드로’를 뜻하는 페테르, ‘도시’라는 뜻의 부르크가 합쳐져서 이 도시는 ‘성 베드로의 도시’가 되었다.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독일어인데, 이는 표토르 황제가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 다음 독일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아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을 표현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 레닌 사후에는 레닌의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를 거쳐 1991년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지명의 탄생과 유래, 그리고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류 5,000년 역사를 통사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땅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지명의 역사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다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의 역사가 바로 인류 역사의 뿌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책의 내용과 특징

1장 고대 지중해와 지명의 탄생
페니키아와 그리스 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지중해 도시들의 지명에 얽힌 탄생 비화와 유래를 설명한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올림포스의 12신’ 가운데 지혜와 예술의 여신인 아테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항해술이 발달했던 페니키아인이 그리스 에게해의 서쪽 지방을 에레브, 동쪽을 아수라고 구분해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지리적으로 에게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에레브는 유럽으로, 아수는 아시아로 바뀌었다.

2장 지명을 바꾼 게르만족의 대이동
기원 후 3세기에 로마제국이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현대 유럽의 기본적인 민족의 판도가 정해졌다. 게르만족에 밀려난 켈트족이 유럽의 서쪽으로 이동을 거듭하면서 프랑스를 거쳐 영국까지 진출했다. 알프스산맥은 켈트어의 바위산을 뜻하는 ‘알프’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프랑스의 파리도 센강에 거점을 둔 켈트계 파리시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파리시는 ‘난동꾼, 촌놈’이라는 뜻이다. 러시아는 바이킹족인 ‘루시’의 나라라는 뜻이다.

3장 동유럽 일대는 슬라브족의 고향
슬라브족은 유럽 동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도 유럽 여러 민족 중 가장 많다. 슬라브계의 나라 이름들을 보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등은 모두 ‘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옛 유고슬라비아도 ‘남슬라브족의 나라’라는 뜻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가 광대한 영토의 동쪽 끝에 건설한 항만도시이며, 시베리아 철도의 동쪽 기점이다. ‘동방을 정복하라’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도시는 현재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4장 대항해 시대가 큰 세상을 열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의 선두에 서서 아프리카 서해안 항로를 개척하고, 희망봉을 거쳐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의 뭄바이라는 지명은 뭄바 여신에서 비롯했는데 원래 포르투갈이 봄바인이라 불렀고, 영국이 지배했을 때는 영어로 봄베이가 되었다. 콜럼부스가 처음 발견한 신대륙은 그보다 나중에 탐험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아메리고를 라틴어로 표기하면 아메리쿠스가 된다는 이유로 ‘아메리쿠스의 나라’, 즉 아메리카로 부른 것이다.

5장 몽골제국과 유라시아
13세기 유라시아를 통일한 징기즈칸은 몽골제국을 세웠다. 기마민족인 몽골족이 유럽을 침략할 당시 잔혹한 통치를 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두려움에 떨었다. 몽골족을 ‘타타르’라고 부른 것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잔혹한 지옥의 사자인 타르타로스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유럽에서 인도라는 명칭은 동양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폭넓게 ‘인디아스’라고 불렸다. 그러다 각 나라를 구분하면서 중국을 지나라고 부르고, 인도와 중국 사이의 지역을 인도차이나라고 명명했다. 인도네시아는 ‘인도의 섬들’이라는 뜻이다.

6장 유대인의 이산과 아랍인의 진격
고대 이스라엘은 가나안이라고 불렸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저편’에서 왔다는 뜻으로 ‘헤브라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종교와 민족 분쟁의 상징인 예루살렘은 헤브라이어로 ‘도시’를 뜻하는 예루와 ‘평화’를 뜻하는 살렘이 합쳐진 말로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이슬람의 성지 메디나는 ‘예언자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무함마드와 신자가 박해를 받자 불심신자와 대결하기 위해 야스리브(후에 메디나)라는 오아시스로 이주했는데, 이 이주를 ‘히즈라(성전, 영어로 헤지라’라고 불렀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서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명에 붙은 ‘-스탄’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페르시아계 및 터키계 특유의 지명 접미사이다.

7장 신세계 아메리카의 지명은 어떻게 만들었나?
아메리카를 발견한 진정한 공로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주도인 컬럼비아, 오하이오 주의 주도인 콜럼버스 등 각 주의 도시 이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은 영어로 Washington D.C.라고 쓴다. 이 지명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름과 ‘컬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의 약자를 합친 것이다. 선주민인 인디언의 언어가 기원인 지명으로는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오클라호마 주, 그리고 일이노이 주의 시카고도 인디언어로 ‘야생 양파가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8장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전설
일찍이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암흑대륙’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의 남쪽에 있는 수단은 아랍어로 ‘흑인’이라는 뜻이다. 당시 수단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대략 아프리카의 삼 분의 일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다. 때문에 사하라 사막의 남쪽은 모두 ‘흑인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에티오피아는 그리스어로 ‘볕에 그을린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에는 유독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의 나라가 많다. 유럽의 열강들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같은 민족이 서로 분단되기도 하고, 한편 적대적인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국경선이 현재 민족과 부족의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9장 ‘자연’이 낳은 지명의 역사
고대 그리스인은 일찍부터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유역을 ‘강의 사이’라는 뜻인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다. 유프라테스 강은 강의 폭이 넓어서 ‘평온하게 흐르는’ 반면에 티그리스 강은 ‘화살과 같이 빠르게 흐르며’ 간혹 범람하기도 한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강을 뜻하는 ‘일’에 관사 ‘나’를 붙인 것이다. 마젤란이 발견한 ‘태평양’은 ‘평화로운 바다’라는 뜻인 라틴어 마레 파시피쿰에서 유래해 영어로 ‘Pacific Ocean'으로 불렀다. 아라비아는 ’아랍인의 땅‘이란 뜻으로, 아랍은 아랍어에서 ’유목민‘을 뜻한다.

부록-국명과 수도명에 얽힌 5,000년 인류의 역사
세계 각국의 국명과 수도명이 생겨난 유래와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해두었다. 각 대륙별로 먼저 지도를 싣고, 그리고 국가별로 일목요연하게 분류해 설명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1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을 일독하는 것만으로 세계 각 나라의 역사와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구매가격 : 16,000 원

화폐라는 짐승 - 북클럽 『자본』 시리즈 03

도서정보 : 고병권 | 2019-01-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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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는 어디서 온 것인가? 화폐는 ‘국경’에서 태어난 것
화폐가 해체한 공동체,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화폐공동체’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더 촘촘하게 읽어보려는 기획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3권 『화폐라는 짐승』이 출간되었다. 시리즈의 2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에서 저자 고병권은 『자본』 제1장 ‘상품’에 대한 남다른 해석력을 보여주었다. 시리즈의 3권 『화폐라는 짐승』에서는 『자본』 제2~3장, ‘교환’과 ‘상품유통’ 그리고 ‘화폐’라는 주제를 다룬다. ‘상품’에서 시작된 논의를, 상품을 ‘소유한다는 것’과 ‘교환하고 유통한다는 것’, 나아가 ‘화폐의 발생’까지 추적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에 담긴 ‘상품의 교환과정’과 ‘화폐에 관한 논의’를 통해서도 저자 고병권은 다시금 마르크스의 섬세한 독해에 감탄한다. 마르크스가 ‘두 상품소유자의 만남’이라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이전의 ‘공동체’와는 다른 ‘근대사회’ 인간관계의 특징을 읽어내고, 화폐가 가진 기능들이 전제하거나 수반하는 관계의 실체를 간파했으며 그 기능에 내재한, 자본주의사회에만 고유한 위기의 양상들까지 감지해낸다.

저자 고병권은 ‘상품’이 태초부터 존재해온 ‘노동생산물’과 다르듯, ‘자유롭게 교환하는 개인’ 역시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교환하고 거래하고 교역하고 값을 치르는 풍경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본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언젠가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사회’와 함께 출현한 것이며, 그때 ‘사회’와 함께 ‘개인’도 또 ‘화폐’도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화폐’란 공동체가 붕괴된 곳에서 탄생한 어떤 것이다.

저자 고병권에 따르면, 상품교환이 일반화되고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로 기능하는 곳에서 공동체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폐 자신이 코뮨(Kommune)이 아닌 곳에서 화폐는 코뮨을 해체해야” 한다. 화폐는 공동체적 인간관계, 즉 코뮨을 해체하고 그 자신이 하나의 유대, 하나의 관계, 말하자면 하나의 ‘공동체’로서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고병권은, 어쩌면 근대사회란 공동체를 해체하면서 생겨난 ‘화폐공동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결국 화폐는 공동체적 관계의 발전을 통해서는 생겨날 수 없는 것, 공동체적 관계의 발전이 아니라 ‘해체’를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화폐가 ‘전제하는’ 인간관계 역시 공동체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란 바로 그런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는 ‘상품’과 상관없이 틈나는 대로 ‘돈’을 모으고자 한다.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이 되었고, 돈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돈 자체를 향한 끝없는 욕망이 탄생했다. 화폐라는 짐승이 공동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만 것이다. 이 책 『화폐라는 짐승』은 바로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구매가격 : 9,730 원

전체주의 윤리적 기초

도서정보 : 박치우 | 2019-01-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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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풍조의 전체주의는 전체를 국가보다도 민족에 두고 있지마는, 이탈리아 풍조의 그것은 민족보다도 국가를 더욱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다. 이것은 가령 유대인의 배척 문제 같은 것도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독일에서는 이민족, 특히 유대인에 대한 배척이 맹렬하지마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다지 심하지 않다. 유대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참된 국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조국’으로 알고 여기에 충성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고 보는 것 같은데, 어떻든 이탈리아에서는 민족보다도 국가를 보다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5,000 원

야바위 게임

도서정보 : 마이클 슈월비 | 2019-01-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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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 따랐을 뿐인데 왜 점점 불평등해질까?
불평등을 만들고 유지하는 ‘게임의 규칙’을 밝힌다!
― 미국 대학에서 불평등 관련 과목의 교재로 사용되는 최고의 입문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에 살고 있다.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이 극대화되고 중간계층이 사라지는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이미 ‘10 대 90’ 혹은 ‘1 대 99’ 사회는 친숙한 말이 되었고 심지어 ‘0.1 대 99.9’, ‘0.01 대 99.99’라는 수치까지 세간에 오르내린다. 이른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건 공공연하거니와,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착취에 기댄 산업 구조의 공고화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위험하지 않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오늘날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이런 분석 자체가 이미 너무나 진부해져버렸다는 게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마이클 슈월비는 《야바위 게임: 불평등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해 묻는 것이다. 즉 ‘어떻게 이토록 불평등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불평등이 유지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토대가 되는 ‘사회학적 분석’과, 그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분석에는 담기지 못한 진실까지 드러내는 ‘허구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다양한 시점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슈월비는 법, 정책, 관행, 일상을 규정짓는 ‘게임의 법칙’이 차별이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과정을 밝혀낸다. 그렇게 결국 그것이 ‘있는 자’들을 위해 조작된 ‘야바위 게임’임이 드러난다. 또한 성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통해 게임을 유지하고, 우리 스스로 이러한 불평등을 승인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밝혀낸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현 체제의 ‘대안은 없다’는 무기력한 세계관을 넘어, 연대를 통해 새로운 대안과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해방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출발점: 이 불평등을 보라!
슈월비는 독특한 강의를 통해 불평등의 현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강단 앞에 10명의 학생을 앉힌다. 각각이 미국 인구의 10퍼센트를 상징한다. 다시 종이 접시 10개를 꺼낸다. 각각은 미국의 부의 10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장 부유한 10퍼센트부터 가장 가난한 10퍼센트까지, 미국 인구가 소유한 부의 양과 동일하게 접시를 나눠준다. 가장 부유한 10퍼센트에게는 무려 접시 7개, 즉 부의 70퍼센트가 돌아가지만, 가장 가난한 60퍼센트에게는 각각 6분의 1조각만이 돌아간다. 학생들의 탄식이 나온다. 슈월비는 마지막 몇 조각은 정말 작아져야 하지만, 종이 접시를 그렇게 자르기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부의 분배에 있어서 극단적인 불평등은 사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리고 슈월비는 딱딱한 도표와 수치 대신, 종이 접시를 통해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실태가 생각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에 대해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나아가 불평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부의 기원: 절도·약탈·착취
자원의 불평등은 자연현상 같이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슈월비는 평등한 사회를 먼저 상정하고, 어떻게 그 사회가 불평등해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답은 세 가지이다. 같은 집단 내의 자원을 ‘절도’하거나, 집단 밖의 외부자를 ‘약탈’하거나, 보호비를 뜯어내거나 노동의 결과물을 부당하게 가져가는 식의 ‘착취’를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유실험이지만, 실제 역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인류는 약 15만 년 전에 출현한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평등하게 살아왔다. 이것이 뒤바뀐 건 1만 2,000년 전 정착된 농경 생활의 출현 이후이다. 잉여생산물이 생겨나자, 소수가 불평등하게 자원을 분배하고 더 차지하게 되었으며, 결국 계층화된 사회가 탄생한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불평등의 기원으로서의 절도·약탈·착취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절도·약탈·착취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왔음이 드러난다. 슈월비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약탈과 착취와 학살, 아프리카인을 노예화한 일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제 아래에서의 피식민지 역사와 이후 가혹한 노동조건에 의한 경제발전은 절도·약탈·착취가 근현대까지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불평등을 유지하는 방법
① 게임을 조작하라!
부의 기원만으로는 왜 불평등이 계속 유지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지배계층은 약탈적이거나 착취적인 관계를 장기간에 걸쳐 안정화시켜야만 한다. 슈월비는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게임의 규칙’을 조작함으로써 불평등의 재생산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물론 속임수나 매수 같은 방식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규칙 자체를 불공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이런 조작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고 따르는 것만으로도 불평등이 자동적으로 발생하고 재생산된다.

예컨대 자본주의라는 게임이 참여한 관리자는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임금은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가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없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게임판 바깥으로 쫓겨날 테니 말이다. 나아가 슈월비는 ‘소유권이 인권에 우선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한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굶어죽든 말든, 자신의 농장과 공장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법을 통해 뒷받침된다. 사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임의 규칙이지만, 슈월비는 이러한 통념이야말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지배계층은 국가를 차지하고자 애쓴다. 물론 경제적 착취자가 곧 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속한 경제적 계급이 국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차지한다는 것은 곧 경제활동에 적용되고 부의 분배를 결정짓는 규칙들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회복지의 수준을 정하고, 이민 정책을 만들고,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무역협정을 맺고,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 모두를 결정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과 군대를 통제하여, 불평등한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드는 이들을 통제하는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다.

슈월비는 ‘게임의 규칙’의 조작을 통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체적인 사례 역시 제시한다. ‘노동법’을 그대로 따르면 노동자들의 단결이 어려워진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판결이 자연스레 돈 있는 자가 선거 과정에 개입할 길을 열어준다. ‘법인’의 이름 뒤에 숨어 자본가들을 책임을 회피한다. ‘세법’에 착실하게 따르는 것만으로 양극화가 심화된다. 계층에 따라 시작점이 다른 모든 수험생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함으로써 계층의 세습이 강화된다. 우리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규칙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② 상상력을 억압하라!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이러한 규칙이 정당할뿐더러, 자연스럽고 불가피하게 보인다. 슈월비는 이러한 인식이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념 체제’로서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눈으로 현실을 보면, 불평등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상상력마저 제약하고 만다.

예컨대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는 현실의 정의를 받아들이면, 경쟁과 불평등은 당연하며 협동과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월한 혹은 평범한 ‘인간’과 착취하거나 폭격해도 마땅한 ‘타자’를 구분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여성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선명한 예다). 계층에 따라 출발점이 다른데도 모든 학생이나 구직자가 동등한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패배자들이 체제가 아닌 자기 자신을 탓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기존의 체제와 규칙이 완전하진 않더라도,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의 통제가 중요하다. ‘대안적인 선거제도나 의료체제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힘들게 해서 현재 존재하는 시스템만이 유일하다는 인식을 심고, 노동운동사 같은 투쟁의 역사를 지워버림으로써 변화의 길을 여는 조직과 집단행동의 힘을 볼 수 없도록 하라. 기업 내 민주주의는 혼란을 불러올 뿐이며, 하향식 통제가 비록 권위적이지만 효율성을 담보한다고 믿게 하라. 임금이 공정하지 않더라도 시장논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하라.’

이 모든 현실 정의는 현재의 불평등한 체제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게 만들고, 대안을 추구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③ 행동을 제약하라!
단지 행동하지 않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람들이 조작된 게임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작된 게임이라도 참여자들에게 물질적 재화와 정서적 보상을 제공한다. 슈월비는 이를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 그리고 ‘책임의 그물’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우리는 대학교에 진학함으로써 좋은 직장을 얻기를 바라며, 직장에 취업함으로써 임금을 받고자 한다. 하지만 학교나 직장에 다님으로써 얻는 것은 이런 주된 보상만이 아니라 일종의 ‘개평’도 포함된다. 즉 학생은 학창생활을 즐길 수 있고 성인으로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에 놓인다. 직장인은 일자리를 통해 가족과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때로는 직장의 임금이나 대우나 전망이 형편없더라도, 이러한 ‘개평’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비참과 불평등을 감내하며 직장생활을 계속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해주는 ‘정체성의 근본’이 확보된다. 우리는 자식으로서 가족의 일원이고, 학생으로서 학교의 일원이고, 노동자로서 일터의 일원이며, 시민으로서 국가의 일원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일관성을 부여해준다. 따라서 이런 자리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곧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들리는 위기상황이다. 결국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이라는 보상은 게임이 조작되었다는 걸 알더라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 모든 것들은 ‘책임의 그물’이라는 망을 구성한다.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에 임한다는 것은, 역으로 개인에게 집단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무시당하거나 처벌을 받거나 해고당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 노동자, 지도자, 경영자, 경리부장, 경비, 경찰, 판사, 정치인, 담보대출 채권자,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은 다양한 역할에 맞는 책임을 짊어지도록 만드는 복잡한 관계의 집합을 구성한다. 여기서 일탈하면 단지 당사자들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관계의 집합 전체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자본주의적 책임의 그물에 포박되는 것이다.

④ 젠더와 인종에 대한 차별을 이용하라!
경제적 불평등과 젠더·인종을 둘러싼 지위의 불평등이 어떤 관계인가는 매우 중요하지만 풀기 힘든 난제이다. 슈월비는 어떤 불평등이 더 근본적인지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식의 ‘억압의 위계’를 부정한다. 그는 계급·젠더·인종 같은 주어진 개념에서 출발하는 대신,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와 과정과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른 시각을 열어준다.

이를 통해 슈월비는 젠더·인종에 대한 차별이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고 연대를 방해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젠더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타고난 본성’이라고 받아들이고 남성성을 더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가부장제적인 지배를 정당화하고 여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범주인 ‘인종’을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는 잣대로서 사용하는 것은, 이른바 유색인종에 대한 노예화와 착취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나아가 이는 착취당하는 이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만드는 갈라치기를 가능하게 한다. 예컨대 가난한 백인 남성은 ‘여성’이나 ‘유색인종’에 비해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는 그들이 약간이나마 누리는 특권에 목을 매게 만든다. 그들 역시 착취당하고 있으면서도 더 큰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유색인종’과 연대하는 대신에, 자신을 지배 집단의 일부로 여길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정체성의 징표에도 매달리게 된다. 결국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현실 정의에 붙들리고 마는 것이다.

불평등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렇게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자연현상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게임의 규칙과 불평등의 재생산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은 주어진 현실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생각을 벗어나고, 민주주의적 이상과 자본주의적 현실 사이의 모순에 향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해주는 상상력의 해방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 영역까지 포함한 보다 넓은 영역에서의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극심한 불평등을 넘어설 수 있는 제도적 상상력까지 넓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느 날 개인의 노력으로 상상력이 해방되고, 놀라운 제도를 고안해내어 사회를 뒤바꾼다는 공상은 공허할 뿐이다. 슈월비는 결국은 연대와 조직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는 특히 ‘대항문화’와 ‘연대의 문화’의 비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타자화되고 멸시당하는 소수자들은 ‘대항문화’를 형성한다. 대항문화는 가치와 규범을 거부함으로써 지배 집단을 전복하는 듯한 만족감을 주며, 자기 집단 안에서 지위와 존중이라는 상징적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대부분 상징적인 차원에 머물기 때문에 조작된 게임을 전복할 수 없으며, 때로는 그들을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릴 핑계를 제공하여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소재가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연대의 문화’는 다르다. 슈월비는 연대의 문화를 구성원들이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 투쟁에서 서로를 지지하면서 창조해낸 새로운 생각, 가치, 관습으로 정의한다. 예컨대 연대의 문화 안에서, 노동자들은 투쟁 과정에서 물질적·정서적 보상이 위협받을 때 상호부조를 통해 서로를 보조해준다. 이는 물질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개평’과 ‘정체성의 근본’의 차원에서도 작용한다. 또한 투쟁 과정에서 사회의 게임이 어떻게 조작되어 있는지, 그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지,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분석하게 된다. 이는 집단적인 상상력의 해방이며, 새로운 저항과 규칙을 발명하고 협동조합 같이 착취적이지 않은 기업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슈월비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주요 사례로 다루지만, 연대의 문화는 인종차별에 맞서든 여성차별에 도전하든 조직적 투쟁의 과정이라면 어디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의 문화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의 분노를 일깨우는 것을 넘어서, 현 상태를 깨뜨리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본질을 밝혀내는 ‘이야기’의 힘
앞서 ‘종이 접시 나눠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이클 슈월비의 최대 강점은 번쩍 눈이 뜨이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직관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특히 사회학적 분석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세 편의 소설은 백미이다. 3장 “아홉 식구가 사는 골짜기”는 평등하던 사회가 절도와 착취를 통해 불평등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피해 보상을 둘러싼 도덕적 논쟁을 제시하며, 기원의 범죄가 어떻게 신화를 통해 망각되는지를 보여준다. 5장 “연막”은 하드보일드 범죄소설 형식을 통해 일상적 행위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것과 국제적인 폭력의 유사성 및 연관 관계를 사유하게 해준다. 7장 “라니아 O와의 인터뷰”는 2084년 시점에서 한 활동가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국제적 투쟁을 상기시키며, 변혁의 조건과 가능성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던져준다.

이 이야기들은 다른 장들에서 논하고 있는 사회학적 분석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울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기지 못한 이면의 진실들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불평등한 규칙 및 사회와 마주한 개인이 느끼는 분노와 도전, 공포와 외면, 망설임과 무관심 같은 감정에 대해, 불평등한 집단의 특성과 그것을 넘어서 평등한 집단을 구성하는 일이 마주하게 하는 도전과 응전에 대해 사유할 틈새를 열어주는 것이다.

《야바위 게임》은 정치한 사회학적 분석과 흥미로운 허구적 이야기를 오가는 독특한 구성과 쉬운 문체 덕분에, 미국의 10개 이상의 대학에서 불평등 관련 수업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독자가 불평등한 사회의 탄생과 재생산에 대한 다층적인 모델을 그려보고, 나아가 그것을 넘어선 대안의 구성하는 상상력을 열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 독자에게도 불평등 논의에 대한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며, 나아가 불평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눈을 열어줄 것이다.

구매가격 : 13,160 원

레트로토피아 : 실패한 낙원의 귀환

도서정보 : 지그문트 바우만 | 2018-12-1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노스탤지어는 유토피아를 대신할 수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분석한
현대사회의 종합 진단서!



현대성 이론의 대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 시대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바우만의 마지막 성찰과 통찰

난민 문제, 경제적 격차, 인종차별, 정치에 대한 불신,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 등은 우리 사회가 세계와 함께 앓고 있는 병이다. 『레트로토피아』는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버린 현장에서, 두 차례의 전체주의를 온몸으로 겪어낸 노학자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띄우는 희망의 편지다.







◎ 도서 소개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토대 위에 오늘날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얻은 것만 같다. 하지만 인류가 혁명을 통해 쟁취한 이 자유는 우리 각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줬다. 자유를 떼어서 양도한 대가로 국가권력이 보장했던 신체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 심지어는 행복까지도 모든 책임은 이제 우리 각자가 져야 한다.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우리를 더 편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인터넷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이었다. SNS를 통해 매일 중계되는 다른 사람들의 '더 행복한 모습'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가 원하던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이제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인 세계,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고만 싶다. 바우만이 진단한 현대의 모습이다.

폭력을 조장하고 공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인가, 그들인가?

과연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성공했을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홉스는 강력한 국가권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런 국가권력의 등장으로 우리는 인간에게 내재한 폭력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정말 그럴까? 최근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한 뉴스들을 보면, 폭력은 전혀 우리 사회에서 축출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군수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소형 총기 거래에 대한 국가의 방관을 보면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국가가 폭력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폭력이 더 자주, 더 크게 인지되는 데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있다. 폭력은 늘 잘 팔리는 뉴스기 때문이다. 발달한 인터넷 미디어 환경은 그야말로 폭력을 여기저기 전시하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미디어 자체가 진짜 원인은 아니었다. 진짜 원인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좌절된 사람들의 분노다. 세계화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폭력 말고는 자기 목소리를 낼 다른 수단이 없는 약자들이 매일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묵인한 무기들을 활용해 사회가 무가치하다고 내팽개친 자신의 삶을 ‘자살폭탄테러’와 ‘무차별 살인’ 같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사용한다.
오늘날 자행되는 폭력의 무서운 점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에 폭력에 대한 공포는 특수한 집단이 아니라 모두에게로 스며든다.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모두에게 엄습한다. 이 공포와 불안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분노하는 약자들을 더 혐오하게 만든다.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가난하고 무능한 이방인들에 눈을 흘기게 되는 것은, 거기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비극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소비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저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는 비참한 모습이 될 것이란 불안이 엄습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이 폭력적으로 보이는 이방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서로 똘똘 뭉쳐야 할 것 같다. 미래로 나아가는 진보의 길은 이제 희망에 찬 길이라기보다 지금 가진 수준의 안정과 지위도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한 길이다. 하지만 미래와는 달리 과거의 기억은 친숙하고 아늑하다. 가끔 불만스럽긴 하지만 뭐 지금까지처럼 참을 만하다. 이렇게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지친 사람들이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할 동안 정치 세력들은 과거를 조금씩 자기 편한 대로 바꾸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어차피 ‘사실 그대로’인 역사는 없고,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파 포퓰리즘이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과 권력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트럼프 지지자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전통적인 가치가 차별적이더라도, 그게 더 낫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질인 것처럼 포장되거나,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옹호된다. 아무리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국경을 봉쇄해도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이 소리 높여 말해도, 실상이 어떻든,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자들을 믿는 게 편하다. 그렇게 오늘날의 들불처럼 민족주의가 번지고 있는 상황을 바우만은 ‘회귀’의 흐름으로 분석한다.
민족주의를 근거로 외국인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적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민족국가의 다른 정치적 자주권의 요건들인 군사, 경제, 문화가 각각 금융과 무역, 정보화라는 물살에 씻겨 내려가 버리자 남아 있는 유일한 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이주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지금의 강대국에서부터 신대륙으로 이주했다면, 이제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삶을 개선할 유일한 기회들이 모두 아주 소수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이민자들이 신대륙의 개척자들처럼 대단한 야망과 야망을 실현할 무기들을 들고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이민자들의 희망이란 근근이 이어가는 삶, 그뿐이다. 반대로 무기로 가득한 곳은 과거 식민지 개척자들이 점령했던, 과거의 그 신대륙들이다. 여기서는 매일 종교, 정치적인 내전과 갈등이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매일 실향민이 된다. 대표적인 지역은 중동 지역이지만, 중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심리상담과 떡볶이로 마음을 달래는
역사상 가장 우울한 젊은이들의 시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뿐 아니라 기분부전장까지도 이제 더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발전과 개선에 허락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은 노년층보다도 더 많은 수의 청년 세대가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초등학생 사이에 전파됐던 ‘자살 송’에 대한 논란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바우만은 이런 현상들을 ‘자궁으로의 회귀’로 진단했다.
소비사회는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경쟁상대로 만들어버렸다. 계속되는 경쟁 때문에 한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이들도 좌절감에 압도됐고, 이제 내일이 앞으로 가는 길이든, 뒤로 가는 길이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대신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감당 못 할 무력감을 지워내려고 한다. 그저 자신의 작은 행복만이 지상과제인, 자본주의가 키우고 단련시킨 이 나르시시스트들을 사회는 골칫거리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들을 ‘성격 장애’로 진단해야 할지, ‘사회 장애’로 진단해야 할지 헷갈린다. 아니면 아예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 상태’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어쨌든 바우만은 이들의 예후가 ‘불안’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 내 삶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압박감, 원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요에서 오는 불안 말이다. 지금 청년들은 평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훈련됐다. 그렇게 계속 자신에게 함몰되도록 강권 받았다. 행복과 건강, 자기계발까지도 의무로 짊어진 청년들은 역사상 가장 우울한 세대가 되었다. 가장 많이 정신의학과를 찾고, 항우울제를 먹는다.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현상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든지, 혼자서 가고 싶었던 식당에 가 밥을 먹는 일은 용감함의 증거라든지 하는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더 많은 정신과 상담과 약을 통해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라고 권한다. 혹은 선을 넘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을 가이드를 제공하거나, 이미 선을 넘은 이기주의자들에게 대응할 가이드를 판매한다. “네 슬픔의 바다를 즐겨. 거긴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어.” 개인적인 슬픔을 적나라하게 트위터에 올렸던 멀리사 브로더는 여러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가 됐다. 브로더는 자궁을 열반nirvana이라는, 현대사회의 과잉에서 벗어날 낙원을 사람들에게 제안했다. 바우만은 브로더의 낙원뿐 아니라 모든 현대사회의 병증을 고치려는 민간요법들이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여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 경고한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외면하지 마라!

세계가 발전해온 과정은 점차 불평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이런 과정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정치 성향이나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입장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곧바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국가가 해왔던 일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거래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국가-자본가-노동자 간의 안정적 관계는 깨져버렸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바우만은 그 이유를 세계화라는 틈을 타 감시를 소홀히 한 국가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자본가로 짐작한다.
오늘날 국가와 규범은 힘과 권위를 잃고 있다. 하지만 규범이 힘을 잃으면서 사람들이 통제에서 자유로워졌다기보다는 본능과 욕구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바우만은 말한다. 모두 자신의 본능을 좇는 상황에서 불평등은 더욱 격화됐고, 이런 위험한 사태는 계속 경고됐던 일이지만, 경고는 계속 무시돼 왔다.
불평등 심화에 불을 붙인 것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늘 느껴왔던 불편과는 다른, 절대적 크기는 더 작더라도 정서적으로 훨씬 타격이 큰 불편의 감정이다. 더군다나 이 감정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부자들까지 괴롭힌다. 이렇게 보편화한 박탈의 감정은 결국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더라도 이 경쟁의 상황에서 박탈감을 없앤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부추긴 것은 역시나 권력과 정보의 세계화였다. 이전에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에게만 한정됐던 박탈감의 기준들이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세계로까지 넓어졌고, 이제 특별한 기준도 없이 모두에게 박탈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 불평등과 박탈의 감정이 혁명으로 이어지게 될까? 바우만의 단기적 전망은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전망을 긍정적인 미래로 바꾸기 위해 바우만은 ‘기본소득’ 개념의 유용성을 힘주어 말한다. 바우만은 거의 이 개념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실질적으로 비용대비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본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제도를 의도적으로 혹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방하고 의심한다. 여전히 복지 국가 논의에는 ‘보편구제설’과 ‘취약계층우선론’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지하다시피 ‘인권의 인정’ 유무이다. 보편구제설에 해당하는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검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가들은 이 제도를 두려워하고 있다. 바우만은 천천히, 이 두려움을 잠재울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우리는 진짜 혁명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예견한다.
바우만은 부족으로의 회귀, 홉스로의 회귀, 자궁으로의 회귀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생한 문제 상황들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원천의 소거 없이는 이 회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진단 내린다. 바우만은 시종 발달한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 주목한다. 바우만의 뛰어난 점은 이런 인터넷 미디어 특성을 인터넷 미디어가 확산되기 훨씬 전에 발표된 고전에 가까운 이론들부터, 가장 최신의 이론까지를 관통해 날카롭게 짚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학자의 유고가 아직까지 울림을 가지는 이유도 바우만의 이런 통찰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단기적 비관주의자, 장기적 낙관주의자”를 자칭했던 그의 유작, 레트로토피아는 가장 신랄한 우리 사회의 종합 진단서다.


◎ 책 속에서

‘진보’라는 이념을 삶의 개선 추구의 사유화 및 개별화에 팔아넘긴 것은 권력자들이었으며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해방이라고 받아들였다. 해방이란 사회복지사업과 국가보호라는 대가를 치르고 복종과 규율이라는 엄격한 요구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늘고 있는 숱한 사안들에서 이런 해방의 희비가 교차한다는 사실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문-향수鄕愁의 시대〉 중에서, p.29




현대 국가들이 모방하려고 분투하는 목표인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무겁고 거대해 움직이지 않는 본체가 땅에 굳게 고정된 형태로 그려졌다. 본질적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반反이동성’ 장치였던 것이다. ‘치고 빠지기’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도록 설치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구멍투성이에 쉽게 침투 가능한 영토의 경계를 지닌 리바이어던이란 조화되지 않는 용어 상의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국경의 다공성과 침투성은 단지 특정 지역과 파견단의 일탈이 아니라, 정치의 영구적인영토성과 결부된 권력의 세계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잉태된 새로운 세계 (무)질서의 규범이나 마찬가지다.



〈1-홉스로의 회귀?〉 중에서, pp.56~57




미래라는 타국을 방문해 탐험하기를 고대하는 관광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제는 우리 중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 따르면, 가장 걱정이 없고 태평한) 사람들로 국한되어버렸다. 연달아 살아남은 현재보다 훨씬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 찬 미래를 발견하기 바라며 서둘러 미래로 떠나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더 빨리 줄어들 것 같다. 그 결과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이 공포영화와 괴기 소설로 분류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2-부족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06~107




브레흐만은 우리에게 ‘복지국가’식 사고방식의 유산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이 사고방식이 ‘일하는 사회’의 시대에 전개되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안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할 복지국가는 의심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제도로 변질됐다.”(p. 69) 덧붙이건대, 타성에 젖어 여전히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방식은 부를 재분배하지 않고, 이제 ‘생활보호를 받는 처지’라는 조건을 사회적 오명으로 낙인찍는 일을 맡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적절한 조치가 필요했던 비통한 상황에서 행해진 사회불평등을 묵인하는 데 (그리고 가중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는 모든 죄책감을 공공의 양심에서 덜어냈다.



〈3-불평등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80~181




우리 중 일부는 다가올 시대가 새롭고 더 전망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부터 인내심을 얻는다. 하지만 좌절감에 중독된 희망으로 인해 환상이 깨지면서, 격분한 다른 사람들은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에 열망을 투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미래든 과거든) 어느 한쪽 방향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작지만?날마다?만족감을 주는 도구를 사용해 감당할 수 없는 예측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느라 바빠 보인다.



〈4-자궁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94~195




홉스로든, 부족으로든, 불평등으로든, 아니면 자궁으로든, ‘회귀하려는’ 흐름을 노련하게 힘도 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막아낼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지구의 인간 거주자들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을 것인지, 아니면 같이 공동묘지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맺음말-변화를 기대하며〉 중에서, pp.256~257

구매가격 : 16,000 원

이것은 나의 피

도서정보 : 엘리즈 티에보 | 2018-12-1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명쾌한 통찰과 끈기 있는 탐구로 펴낸
페미니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의 생리 탐사기!

《이것은 나의 피》는 생리와 생리를 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생리를 만드는 남성들, 생리 불평등에 관한 탐사기이다. 역사, 신화, 종교, 의학, 과학, 문화, 사회,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한 방대한 탐구를 자신의 생생한 경험과 유머, 뛰어난 지성을 바탕으로 해석해 끝까지 흥미롭게 전달한다.
이 책의 저자 엘리즈 티에보는 40년 가까이 생리를 매달 생리를 한 여성이자 완경 직후 오히려 자유와 상대적 안도감을 느낀 여성으로서, 생리가 지극히 평범한 현상임에도 기이한 현상이라도 되는 듯 딸에게 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끼며 이 책의 집필을 결심한다.
그녀는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난모세포와 공격적 착상 등 생리가 발생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 생리를 시작한 여자아이의 뺨을 때린다거나, 해먹 안에서 끈에 묶인 채 짧게는 사흘, 길게는 두 달까지 매달려 지내야 하는 생리에 얽힌 여러 풍습을 이야기하며, 왜 사람들이 생리혈을 보이고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는지 의학적, 종교적, 문화적 기원들을 찾아 다채롭게 풀어낸다.
나아가 오랫동안 여성들이 출항하고, 사냥하고, 투표하고, 공개 연설을 하거나 정치와 종교적 요직을 맡는 것이 금지되어왔던 이유가 생리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현재까지도 많은 여성이 이 이유로 폄하되고 있다고 말한다. 생리를 공론화가 되지 않아서 생리 용품을 관련 기업은 약한 규제 속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제약 업계는 단순한 진통제를 이름과 포장만 바꿔 팔고,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일반 상품보다 높은 부가세를 부과한다고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 비해 자궁에 관한 크고 작은 질병의 발견이 늦어지고 있고, ‘독성쇼크증후군’으로 여성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하며, 자기 몸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여성 건강을 위협하는 기존 생리 용품의 다양한 대안을 찾는 것, 특히 ‘본능적 자유 흐름’과 같은 색다른 대안도 주목한다. 더불어 현재 연구되고 있는 과학적 의학적 시도들, 미국 제3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멘스트루에이터’ 같은 새로운 개념, 생리의 금기에 도전하는 여러 분야의 여성들의 목소리도 귀 기울인다.
생리에 얽힌 질긴 생명력이 놀라운 전설과 미신, 암묵적인 이야기와 고정관념을 하나씩 쓰러뜨리며, 여성이 자기 몸에 관한 권력을 되찾기를 요구한 이 책은 생리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사회 불평등 구조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1969년에서 1972년 사이에 일곱 번이나 달에 갔으며, 현재는 화성을 정말 점령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여전히 왜 여성들이 매달 생리를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경우 수정되지 않고 배출될 난모세포를 맞이하기 위해 두꺼운 자궁내막층을 제작하는 것은 당혹감만 안겨줄 뿐이다. 왜냐하면 낭비가 상당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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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의 계약 이야기 그리고 생리혈을 할례의 피로 바꿔버리는 속임수는 유일신 종교들의 모든 경전 속에서 생리에 대한 낙인이라는 꽤 논리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이야기가 견고하게 유지되려면, 사실 여성의 피를 ‘저주받도록’, 즉 엄밀히 말해서 ‘나쁘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상징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여성이 자신의 생물학적 본질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자궁에서 흐르는 피를 세상의 눈으로부터 감추려는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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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란 간디는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성과를 생리 첫째 날에 이루었고, 페이디피데스와는 반대로 죽지 않고 4시간 49분 11초 만에 끝까지 갔다. 그녀는 생리 중에 달렸을 뿐만 아니라 탐폰이나 패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경기를 끝내고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과 피로 물든 가랑이가 사진들을 통해 공개되자마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그녀에게, 그녀가 역겨웠고 ‘언레이디라이크unladylike’ 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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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여성들이 생리혈을 흡수시키기 위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해질 때, 그 당시 여성들은 지금보다 생리를 드물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선 선사시대에는 여성들이 생리를 늦게 시작하고 빨리 죽었으며, 한두 명의 자녀밖에 갖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리가 중단되는 수유와 임신 기간 사이에는, 지금의 450번 주기 대신 아마 100여 번의 주기 정도만 있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가 되어서야 농사, 즉 식량의 저장과 함께 여성들이 연속으로 아이를 낳고자 했는데, 어떤 시대에는 많은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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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나 수분크림, 립스틱과 관련해 일어나는 일과는 반대로 아무도 탐폰과 패드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더 끔찍한 일은, 누군가가 뜻하지 않게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대형 브랜드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어서 그 비밀을 누설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제조 업체들은 산업 기밀을 방패로 삼고 있고, 지금까지도 탐폰이나 생리 용품 사용 또는 비사용에 따른 일부 질병의 영향을 규명하기 위한 대규모 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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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대로라면 나는 생리 인생 40년 동안, 1만 2000개에서 1만 5000개의 탐폰과 패드, 팬티라이너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나는 2500유로를 썼고 1톤 반에 가까운 쓰레기를 생성하여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고래, 물고기, 지하수 그리고 아마 새들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이 모든 게 내 소중한 생리혈을 받아내기 위해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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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생리 용품을 생필품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리나 전쟁 지역,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생리 용품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수백만 여자 초등학생들이 생리 용품이 없어서 그냥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또 유네스코의 한 보고서에 언급된 대로, 생리혈을 흡수시키기 위해 낙엽, 진흙, 쇠똥, 동물 가죽, 낡은 헝겊이나 휴지를 사용하는데, 이 아이들이 처한 조건은 아이들을 불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특히 할례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쉽게 감염에 노출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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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머니즘 운동이 번식과 성의 속박에서 해방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전통 과학은 더욱 내밀하게 전통 과학 연구자들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연구개발 분야에서 일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70퍼센트가 남성이다. 놀라울 것 없이, 이들은 골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통해 전립선암으로 성불능이 된 남성들에게 성적 활력을 다시 부여해주었고, 머지않아 줄기세포를 이용해 탈모증도 치료할 계획이다. 하지만 생리혈에서 유래한 줄기세포와 관련한 발전은 아직 더디다. 그리고 여성들이 겪고 있는 질병들은 연구자들의 우선순위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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