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전자책

네이버에서 스타셀러되기 : 작은 회사를 위한 네이버쇼핑 활용 비법

도서정보 : 정일 | 2018-06-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터넷마케팅
『네이버에서 스타셀러 되기』는 작은 가구회사의 고군분투 성장기다. 하지만 단순한 성공담은 아니다. 대기업 하청 공방으로 시작해서 폐업 직전까지 갔다가 세상에 어떻게 제품을 알리고, 고객과 소통하고, 어떻게 고객의 신뢰를 얻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담았다.

구매가격 : 13,000 원

인생반전 : 착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도서정보 : 이내화, 김종수 | 2018-07-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생반전은 착한 사람이 이루어낸다.
착함을 인생반전의 기회로 만들자.

착하게 사는 게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스마트한 세상에서는 스마트한 인간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착각인지도 모른다. 스마트한 세상, 속도의 시대에서 언제까지 투덜대며 살아갈 것인가?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 내면에 잠재된 우직함을 키운다면 남들과 차별되는 전략으로 성공적인 삶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성공을 움켜쥐기 위해 누구든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고 잘되는 사람은 누구든 밟고 올라서는 것만이 방법이 아님을 살펴본다. 2퍼센트 부족한 우리 시대의 착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자세히 살펴보고, 스스로 자신의 참바보짓 기질을 찾아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조명했다.
이 시대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최고 무기는 착함이다. 착한 습관을 기르고 착한 태도를 훈련해야 한다. 착함을 화두로 살아가는 ‘위대한 바보’만이 성공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룬 에피소드와 인물들의 삶에서 위대한 바보, 인생반전을 이끌어내는 지혜를 만나보시기 바란다.

구매가격 : 12,600 원

우리는 왜 본질을 잊는가 : 브랜딩의 기술

도서정보 : 세키노 요시키 | 2018-07-1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진정한 브랜딩의 기술은 바로 ‘본질’에 있다
시장의 브랜드 경쟁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새로운 제품은 시장에 내놓자마자 경쟁사들에 따라잡히고, 고객들은 이제 자신이 구입한 상품에서 상품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제품을 차별화시키는 ‘브랜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브랜딩은 고객이 상품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만족감을 느끼도록 그 제품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브랜드 컨설팅 회사 이마지나의 대표이자 글로벌 브랜딩 전문가인 세키노 요시키가 지금까지 2,500개 사의 브랜딩에 참여하면서 발견하고 터득한 기술을 담고 있다.
여기서 그가 제시하는 브랜딩의 본질은 기업이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의의는 고객이 소비를 하고 투자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기업 스스로 제대로 알고 있어야 진정한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의의가 불명확하면 기업은 생각 없이 상품을 만들게 되고 매출만을 따지며 값비싼 제품을 내놓게 되고 결국 고객에게 외면당하게 된다. 존재 의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자사가 고객에게 전하려는 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이 상품에 적용이 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점검해야 한다. 이 책은 브랜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놓치고 있는 방향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브랜딩, 할 거면 어정쩡하게 말고 ‘제대로’
세키노 요시키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너 브랜딩(inner branding)’과 ‘아우터 브랜딩(outer branding)’을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너 브랜딩은 채용, 교육, 인사 평가, 사업 계획 등 기업 내부에서의 활동들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는 무엇보다 직원 모두가 기업의 철학을 공유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우터 브랜딩은 상품의 광고 제작 및 홍보, 영업 활동을 말한다. 이렇게 기업 안과 밖에서의 모든 활동이 그 기업의 브랜드가 된다. ‘다른 회사들이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하자!’라는 식의 어정쩡한 태도로는 절대 브랜드가 탄생할 수 없는 이유다.
이너 브랜딩과 아우터 브랜딩은 연결성을 가지고 확립되는 것이 중요한데,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으면 기업은 헤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회사와 직원의 가치관이 다를 경우 직원은 부주의한 행동을 할 수 있고, 그러한 모습이 고객의 눈에 비치면 결국 그대로 브랜드 이미지가 된다.
구글이 까다로운 채용 절차를 고집하고, 스타벅스가 수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로고를 바꾸고 브랜드라는 자산에 투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업 안과 밖의 모든 활동이 브랜드가 된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기업에는 어정쩡한 마인드로 입사한 직원과 어정쩡한 고객밖에 모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 밖에도 글로벌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한 다양한 브랜드전략을 소개하고, ‘스페셜 인터뷰’ 편에서는 실제 브랜드의 성공 사례들을 보여준다.
먼저 오코노미야키 전용 소스를 개발해 다양한 브랜드전략을 펼쳐 일본 최고의 소스 회사가 된 ‘오타후쿠소스’의 이야기, 그리고 지역 브랜딩에 성공해 전국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아키타 현의 사례를 전한다.
평범한 상품과 서비스가 ‘브랜드’가 되기까지 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전략을 펼쳐왔을까. 지금 ‘진짜’ 브랜딩의 기술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의미 있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구매가격 : 9,100 원

월간 샘터 2018년 8월호

도서정보 : 샘터편집부 | 2018-07-13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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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3,500 원

말과 마음 사이

도서정보 : 이서원 | 2018-07-0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닿으려 했지만 닿지 못했던
우리를 위한 관계수업
하고 싶은 말과
전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우리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확신이 그릇되었음을 알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말은 마음을 다 담지 못하고, 마음은 말을 미처 따라가지 못합니다.
말과 마음이 같지 않다 보니 우리는 그 사이에서 관계를 고민합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은 말과 마음 사이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살아갑니다.
말, 마음, 사이. 이 세 길이 우리 삶의 모든 길은 아니겠지만,
이 길을 걷지 않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부족하나마 세 가지 길을 하나씩 살피며 제가 알게 된 것과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책이 좀 더 평안한 길로 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에서



상담전문가가 전하는 소통의 기술과
관계의 관리를 위한 조언

누구에게나 관계란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쉽지 않다. 힘든 대상은 멀리 있지 않고 옆에 있다. 배우자라서 더 서운하고, 부모라서 더 힘겹고, 자녀라서 더 실망하고, 친구라서 더 배신감 느끼고, 동료라서 더 화가 난다. 그런 관계의 어려움은 말의 어긋남에서 시작되고, 진솔한 마음 전하기는 늘 서툴다.
그럼에도 결국 말이 아니고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 사람은 사람에게 속앓이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말과 마음, 그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풀며 고민하며 살아간다.
《말과 마음 사이》의 저자 이서원은 상담전문가로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특히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관련 상담을 해오는 과정에서 친밀한 관계에 잠재한 분노에 주목했다. 기대는 실망이나 낙담을 낳고, 크든 작든 관계에서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회복보다는 확인을 받으려고 투쟁하다 서로에 대한 분노를 낳는다. 하지만 이를 되돌리거나 개선할 방법 또한 말과 마음이다.
《말과 마음 사이》는 말, 마음, 사이라는 세 가지 길을 살피며, 닿으려 했지만 닿지 못했던 우리를 위한 관계수업을 들려준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어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처럼, 이 책은 사람들 사이에 말과 마음이 있어 이어주고 풀어주고자 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의 기술보다
말의 태도가 중요하다

말의 기술을 말하는 책들은 넘쳐나지만, 말의 태도를 알려주는 책들은 접하기 힘들다. 무례한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까다로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기술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기술 이전에 태도에 신경 쓰지 못한다면 관계는 더 심란해질 수 있다. 말의 기술은 말의 목적을 결정짓지만, 말의 태도는 관계 자체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다가서는 말투와 몸짓, 눈빛 하나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말과 마음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소개된다. 고등학생 아들이 오토바이를 훔쳐 경찰에 잡혔고, 아버지가 어렵게 피해자와 합의하여 아들을 데리고 나온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호기심에 훔쳤냐고 묻고 아들은 그랬다고 한다. 아버지는 긴말하지 않고 당부한다. “앞으로는 훔치고 싶을 때 훔쳐, 알았어?” 그 후 아들은 절대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훈계보다 아들을 믿는다는 표현 한마디로 많은 것을 전했고 모두 받아들여졌다.
이 책의 저자 이서원은 20년 넘게 가정폭력상담소에서 가해자 상담을 해왔고, 부부 대상으로도 오랫동안 상담해왔다. 그런 만큼 친밀한 관계에서 빚어지는 아픈 말과 상처, 그로 인한 분노에 주목해왔다.
책의 1부는 ‘말’이다. 저자는 상담 경험을 통해 보아온 ‘닿지 못했던 말에 관하여’ 전한다. 아픈 말은 힘이 세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로 위로하지 말 것, ‘너만 힘들어?’라는 말보다는 ‘너도 힘들지?’라고 말할 것, 과묵과 침묵을 구별할 것, 상대 입장에 공감부터 해주고 나의 심정을 말한 다음 해결법을 제시하는 ‘Y 대화법’ 등을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말은 찌르지만
마음은 찢긴다

2부는 ‘마음’이다. 저자는 ‘담지 못했던 마음에 관하여’ 다양한 사례를 전한다. 마음은 말에 찔리기도 하지만, 관계가 어긋나면서 찢기기도 한다. 마음은 얼룩말의 무늬 같아서,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일 수도, 검은 바탕에 흰 무늬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행복에 고통이 섞인 것일 수도, 고통에 행복이 섞인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마음은 날씨와 비슷하기도 하다. 늘 맑아도 흐린 날은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는 친밀한 사이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말이다. 언제든 나한테 그럴 수 있다고 보느냐,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다고 보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아주 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사람은 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이 언제든 나한테 섭섭하게 할 수 있다고 보므로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부조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며 상심하고 분노한다.
저자는 관심과 간섭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 함께할 귀한 시간을 놓치지 말 것, 집요함과 고집을 구분하여 마음의 짐을 덜어낼 것, 상대가 화를 낸다면 표면 감정보다는 그 아래 자리 잡은 슬픔을 보고 위로할 것, 얼어 있는 마음은 제거보다 녹여야 할 대상이라는 것, 목적 없는 활동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것을 전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도 무관심도 아닌
누름이다

3부는 ‘사이’이다. ‘다가가지 못했던 사이에 대하여’ 그간의 상담 사례와 함께 관계 그리고 세상 속 나라는 존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도 무관심도 아닌, 누름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사랑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누름으로 받아들여지면 자녀는 위축되고 결국 솟음이 일어난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누름과 그 반작용인 솟음을 살펴본다. 또한 관계에는 당함과 입음도 존재한다. 우리는 힘들었던 과거에 묶일 수도 벗어날 수도 있다. 지나간 당함은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의 입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다양한 악이 생겨난다. 저자는 악은 선으로 갚는 게 아니라, 정(正)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잡은 다음 용서해야 반복되지 않는다.
세상 속 나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으로 다룬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지 스스로 묻고, 나에게도 좋은 사람이 나인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인생사 6:4이므로 근소한 차이라도 마음이 가는 쪽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23년간 상담해오면서 우리가 길을 잃는 세 가지 길, 말 길, 마음 길, 사이 길에 대한 따뜻한 조언을 생생한 이야기로 책에 담고자 했다.

구매가격 : 9,100 원

굿 라이프

도서정보 : 최인철 | 2018-06-2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40만 독자가 선택한 『프레임』
최인철 교수의 12년 만의 신작
행복을 넘어 굿 라이프로 인생을 설계하라


◎ 도서 소개

★40만 독자가 선택한 『프레임』 최인철 교수의 12년 만의 신작
★행복을 넘어 ‘굿 라이프’로 인생의 프레임을 바꾸다
★나답게 사는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 타인의 삶을 아끼는 삶이 굿 라이프!

2007년 출간 이래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심리학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한 『프레임』의 저자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행복과 인간 심리에 관한 지난 10여 년간의 연구를 종합해 펴낸 인생론. 전작 『프레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프레임’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다면, 신작 『굿 라이프』에서는 좋은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찾아오는 행복과 삶의 가치를 다룬다. 굿 라이프(The Good Life)란 말 그대로 ‘좋은 삶’이다. 좋은 삶이란 재미와 의미, 성공과 행복, 현재와 미래, 자기 행복과 타인의 행복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삶을 뜻한다. 저자는 그동안 저자의 연구팀에서 수행해온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허공에 떠 있는 듯한 행복 개념을 재정의하고, 행복뿐 아니라 의미와 품격을 더한 ‘굿 라이프’의 구체적인 방법론과 굿 라이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을 현실감 가득하고 생생한 언어로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심리학 교양서를 독보적인 스테디셀러로 만든 저자만의 강력한 글의 힘과 인문, 사회, 자기계발의 영역을 넘나드는 실천적 학문으로서 심리학이 가진 매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행복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행복한 순간을 넘어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행복 심리학



“행복은 좋은 것이다. 다만 행복을 바라보는 우리의 프레임이
행복의 좋은 점들을 담아내기에 너무 협소했을 뿐이다.”
―〈Chapter01|행복의 의미〉중에서



『굿 라이프』는 행복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행복을 넘어선 새로운 인생의 프레임을 고민하고자 하는 책이다. 행복에 관해 떠올려보자.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달콤하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의 즐거움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먹는 낭만적인 저녁식사일 수도 있으며, 몇 달 동안 몰두해온 프로젝트를 끝내고 맛보는 짜릿함일 수도 있다. 대체로 순간에 느끼는 ‘좋은 기분’들이다. 저자 최인철 교수는 이처럼 행복에 관한 개인들의 생각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편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행복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삶’의 차원에서 고민되고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에 관한 편향된 생각들은 이뿐이 아니다. 고요함, 몰입감, 유능감 등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특수한 감정을 느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 내가 불행한 것은 유전적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행복은 한없이 가벼운 것이라 여겨 행복을 천시하는 경향,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올 행복감을 위해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경향 등 행복에 관한 오해와 염려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행복에 관한 오해들을 바로잡고, 행복해지는 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행복 프레임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 프레임을 스스로 점검하게 될 것이다.

★소명과 성취를 통해 의미를, 배려와 존중을 통해 품격을 더하다
★행복한 삶을 넘어 굿 라이프로 향하는 인생 심리학



“굿 라이프는 의미가 가득한 삶이다. 의미는 우리 삶에
질서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준다.”
―〈Chapter04|의미의 의미〉중에서



이 책은 행복과 인생에 관한 통찰을 세 가지 틀로 풀어냈다. 1부 ‘행복한 삶(The Happy Life)’에서는 애매모호한 행복 개념을 재정의하고 행복에 대한 다양한 오해와 염려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행복과 불행은 ‘유전’된다는 진화심리학의 견해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돕고자 했다.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 이렇게 살라거나 저렇게 살라는 처방을 제시하기보다 행복한 사람들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차이를 보여주는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 스스로 자신에게 적합한 행복의 기술을 찾아보도록 했다.
2부 ‘의미 있는 삶(The Meaningful Life)’에서는 굿 라이프의 또 다른 요소인 ‘의미’에 대해 다룬다. 지나친 소명 의식이나 목표 지상주의는 행복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되어왔다. 그러나 일과 학업 과정에서 느끼는 유능감과 몰입감, 목표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 모두를 삶에서 덜어내야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저자는 그동안 행복이 가볍게 다뤄진 데 반해 ‘의미’는 무겁게 다뤄진 까닭에 의미가 삶에서 제거해야 할 요소로 저평가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 기념일을 챙기는 것, 식물을 키우는 것처럼 우리 주변과 일상을 채우고 있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의미들 또한 행복의 한 축이며, 나이 들수록 쾌락(즐거움)보다는 의미가 행복에 더 중요해진다는 연구 결과들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삶의 선물임을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소확행(小確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확의(小確意)’도 있으며,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자’는 YOLO(You Only Live Once)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죽는 인생 의미 있게 살자’는 YODO(You Only Die Once)도 있다는 놀라운 통찰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3부 ‘품격 있는 삶(The Classy Life)’에서는 자기 행복만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도 존중할 수 있는 품격 있는 인간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소개한다. 타인의 행복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곧 품격 있는 삶이다. 이를 위해 3부에서는 저자가 수행한 연구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연구팀에서 축적해온 심리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사람의 10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삶, 가정(假定)이 아름다운 삶,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삶을 추구하자는 제안은 경쟁이 고도화된 사회에서 더 높은 곳만을 향해 달려온 우리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일생에 한 번은 인생의 프레임을 점검하라
★내 삶을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저자는 이 책을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부른다. 전작 『프레임』이 심리학을 대중화한 일종의 개론서였다면, 이 책은 행복과 삶에 관해 저자가 수행해온 자기 연구를 소개한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의 연구들은 저자와 함께 국내 행복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굿 라이프』는 저자의 단독 저서일 뿐 아니라, 연구팀 공동의 결과물이며, 나아가 국내 심리학계의 커다란 과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행복과 인생에 관한 통찰로 가득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생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점검해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며, 자기만의 행복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으로 이끌 수 있는 삶의 기술을 고민해볼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답게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자신에게 ‘굿 라이프’란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보게 될 것이다.



“재미와 의미, 순간과 삶, 유전과 환경, 성공과 행복, 현재와 미래, 자기 행복과 타인의 행복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과 확장이 가져다주는 의식의 자유로움을 통해 우리 모두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기원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 책 속으로

행복에 관한 책이면서도 제목을 ‘굿 라이프’라고 정한 이유는, 행복을 ‘순간의 기분’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성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행복은 순간의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행복이기도 하다. 좋은 음식이 좋은 맛 이상의 것인 것처럼, 삶의 행복은 순간의 행복 이상의 것이다. 행복이 좋은 기분과 좋은 삶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기분으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좋은 삶’으로서의 행복까지 균형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책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굿 라이프’로 정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Part 01 | 행복한 삶●The Happy Life

행복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행복을 가볍다고 경계하는 이유는 행복을 영감이나 관심 같은 상태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을 때의 즐거움 정도라고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피로감이 늘어난 이유는 행복이 일상을 벗어나야만 경험되는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으면서 동시에 지극히 일상적이다.
―〈1장 행복의 의미〉(43쪽)

행복의 측면에서든 고통의 측면에서든 결국 원래의 감정 상태로 돌아갈 것이기에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인간 실존의 한계를 감안하면, 우리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무시하는 것은 삶에 대한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삶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2장 행복과 유전에 관한 올바른 생각〉(84, 86쪽)

유전이 인간의 행복에 관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거의 모든 특성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행동유전학의 제1법칙에서 보면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점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유전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유전이 결코 행복을 운명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결정론, 특히 강한 유전자 결정론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약화시키고 행복해지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을 과도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2장 행복과 유전에 관한 올바른 생각〉(88쪽)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배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같은 일상을 다른 마음으로 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애초부터 서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사람들의 마음보다 행복한 사람들의 일상을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부터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를 만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고, 지루한 일도 기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비결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3장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94~95쪽)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어른스러운’ 조언이 들려올 때, 늘 잘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는 주문을 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한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3장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99쪽)

행복한 사람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사는 사람이다. 소유를 사더라도 그 소유가 제공하는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경험보다는 소유를 사는 사람이다. 심지어 경험을 하면서도 그 경험을 소유화, 혹은 물화(thingify) 해버리는 사람이다. 사는(buy)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 행복한 사람들이 다르게 사는(live) 이유는 사는(buy)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3장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117쪽)

Part 02 | 의미 있는 삶●The Meaningful Life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그 삶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존재다.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소위 ‘connecting the dots’라는 의미 창출 작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이 작업은 삶의 순간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관한 것이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과거의 즐거움이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은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과거의 고통이 지금 생각하니 축복이었다고 감사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따라서 순간 혹은 기분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2부 의미 있는 삶〉(142~143쪽)

의미에는 무겁고 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의미도 존재한다. 작은 의미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를 뜻한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는 것, 연로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것, 맡겨진 과제를 제시간에 해내는 것, 아이에게 구구단을 가르치는 것, 식사 기도를 하는 것,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것, 화초에 물주는 것,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 등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경험되는 의미다. 자기를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의미가 아니다.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 있듯이 작고 확실한 의미 ‘소확의(小確意)’도 있는 것이다.
―〈4장 의미의 의미〉(150쪽)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고 느낄 때, 인간은 의미를 경험한다. 일이 잘되면 기분이 좋지만, 그 일이 자기다운 일이면 의미가 경험된다. 우리가 성공, 성취, 효용, 효율 등 무엇을 이루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순간적인 기분의 행복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삶을 경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의미 있는 삶이란 자기다움의 삶이다.
―〈4장 의미의 의미〉(159쪽)

목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다. 남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발견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표의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특별하고 거대한 것들만이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목표 지상주의에 대한 경계라는 이름으로 작고 소중한 목표들을 등한시한다면, 자신만의 행복 수원지(水源池)를 스스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목표는 활주로와 같다. 그것이 없다면 삶은 충돌의 연속일 뿐이다.
―〈5장 소명과 성취〉(206쪽)

Part 03 | 품격 있는 삶●The Classy Life

행복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최상의 가치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덕스러운 삶의 필요성을 더 실감하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극단적인 행복 지상주의자가 아닌 이상 YES라고 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타인의 행복을 돕는 행복이어야 한다.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타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면, 덕스러운 삶을 굿 라이프의 핵심 요소로 끌어안아야 하는 점이 더 분명해진다.
―〈3부 품격 있는 삶〉(225쪽)

품격 있는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일에 대해서 솔직하게 놀라는 사람이다. 모두가 빠른 진단과 대책을 앞다투어 내세울 때, 몇 년이고 그 문제를 집요하게 그리고 골똘히 생각해서, 그 문제로부터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든 아니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늘 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경계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격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3부 품격 있는 삶〉(254쪽)

인격이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정의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은 도덕적 완성의 정도가 아니라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가정들의 정확성과 품격의 문제다. 그러므로 인격 수양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정들을 점검하여 나쁜 가정을 좋은 가정으로, 근거가 없는 가정을 정확한 가정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뜻한다.
―〈3부 품격 있는 삶〉(255쪽)

구매가격 : 16,000 원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도서정보 : 김형오 | 2018-06-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어떻게 김구의 삶과 사상을 쉽고 깊게 읽을 것인가?”
‘보통사람(白凡)’이 묻고, 김구가 답하고, 뜻을 더하여 들려주는 문답식 《백범일지》

“여전히 어려운 시대,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지금,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의 올곧은 정신과 신념,
우리의 삶에 적용할 용기와 지혜를 새롭게 만난다”





◎ 도서 소개

“어떻게 김구의 삶과 사상을 쉽고 깊게 읽을 것인가?”
‘보통사람’이 묻고, 김구가 답하고, 뜻을 더하여 들려주는 문답식 《백범일지》

쉽고 간결한 문체, 깊고 풍부한 이야기로 새롭게 만나는
혁명가 김구, 인간 김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백범일지》

- 2018년 서거 69주년, 다시 만나는 백범 김구의 삶과 시대
- 쉽고 간결한 문체, 깊고 풍부한 이야기로 풀어낸 ‘국민 애독서’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마음을 울리는 도전과 헌신의 태도
- 김구의 삶과 사람, 투쟁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80여 장의 도판


우리나라 역사상 백범 김구만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며 치열하고 극적으로 살다 간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며 힘겨운 망명 생활을 견디고, 해방 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통일 한국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을 계속하다 흉탄에 맞아 생을 맞이한 민족의 지도자이자 영원한 투사. 《백범일지》는 이토록 힘겹게 살아낸 투쟁의 삶을 회고하는 김구 개인의 자서전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기록이요, 역경과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증언이다. 한편으로는 나라에 헌신하느라 떨어져 지냈던 가족에 남기는 유서를 대신해 쓴 글이자 민족에 바치는 당부의 말이기도 하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김구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판본과 해설서를 통해 널리 읽히는 ‘국민 애독서’ 《백범일지》를 쉽고 간결한 문체와 깊고 풍부한 이야기, 문답식 구성을 통해 새롭게 풀어낸 책이다. 엮은이는 지난 3년간 효창원 백범 묘소와 백범 좌상을 거의 매일 같이 마주하며 김구의 삶과 사상,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오래 고심하고 공을 들였다고 고백한다. 그 결과 전문 연구자가 아닌,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 김구의 생애와 생각을 진솔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고 쉽고 간결한 문체로 담아냈다.
김구의 호 ‘백범(白凡)’은 ‘평범한 백성’ 즉 ‘보통 사람’을 가리킨다. 이 책은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의 질문에 김구가 직접 답하는 Q&A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시대 상황과 추가 설명 등 엮은이가 풀어쓴 글을 보탰다. 《백범일지》의 내용을 완전히 해부하다시피 한 다음 유형별로 묶은 뒤 총 60개의 질문(Q)과 답(A), 덧붙인 해설(+)을 9개의 장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이를 통해 《백범일지》에 담긴 비범한 혁명가이자 진솔한 인간이었던 김구의 삶을 보다 쉽게, 동시에 깊이 이해하고 그가 남긴 정신과 신념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백범은 더욱더 그리운 이름, 절실해지는 얼굴이다. 늘 푸르게 깨어 있고, 서늘하게 살아 숨 쉬는 얼과 혼이다. 이 책은 그런 선생과 《백범일지》에 바치는 나의 헌사다. 백범을 존경하지만 교과서로만 접한 사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 사람, 《백범일지》를 예전에 읽었지만 기억이 희미해져 다시 한 번 읽어보려는 사람, 최근에 읽고 평전이나 어록에도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의 손에 이 책이 들리기를 원한다. - 〈저자의 글〉 중에서



"백범 김구는 누구인가"
누구보다 비범하게,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살아낸 삶
김구는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 그의 삶은 그 외에도 수많은 변곡점을 거쳤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황해도 시골 ‘상놈 집안’에서 태어난 개구쟁이 소년의 일화부터 동학의 ‘아기 접주’로 명성을 날렸으나 결국 실패한 청년기의 좌절과 경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를 복수하기 위해 일본 장교를 살해한 뒤 이어진 옥살이와 탈옥 후의 유랑 시기, 임시정부 경무국장으로 온갖 궂은일을 맡아 처리해야 했던 긴 중국 망명 시절에 이르기까지 70여 년 김구 생애의 중요한 순간들을 짚어준다. 이를 통해 혁명가, 독립운동가로서의 판단력과 문제해결력, 리더십을 키워간 과정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구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도 함께 조명한다. 배고픔과 외로움 같은 본능적인 어려움은 물론 자신이 저질렀던 부끄러운 실수와 생각까지도 숨김없이 고백하는 진솔하고 더없이 인간적인 김구의 매력을 책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엮은이는 《백범일지》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널리 읽히는 이유 역시 여기에 담긴 김구의 모습이 너무나 진솔하고 인간적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서 엮은이는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의 간곡한 당부를 함께 밝힌다. 즉 김구를 무작정 존경하고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워야 할 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을 찾아 귀감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김구가 겨레의 젊은이들에게 기대했듯 이 책의 독자들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갈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떻게 백범일지를 읽을 것인가"
백범이 묻고 김구가 답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민 애독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백범일지》의 내용을 풀어내 쉬운 문장으로 재구성하여 마치 일반 대중, 즉 ‘보통 사람’이 던지는 의문과 지적에 대해 김구 선생이 당시 왜 그렇게 했는지 직접 답하는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엮은이가 당시의 사건 정황과 시대 상황, 인물 정보 등을 덧붙여 읽는 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백범일지》가 단순한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구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어린 두 아들에게 말해주려고 상해에서 유서 대신 쓴 것이 상권이고, 일흔을 앞두고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회를 알리기 위해 중경에서 집필한 것이 하권이다. 상권에는 주로 김구의 개인적인 삶과 활동 내용이 담겨 있고, 하권에는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항일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가족들과 떨어져 외롭게 지내던 시절이자 임시정부 활동 침체기로 고난과 역경을 겪던 시절 집필한 상권의 내용을 중심으로 김구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중년과 말년에 걸친 생애와 그 과정에서 연마하고 정립한 사상을 각 장의 주제에 맞게 풀어낸다.
김구는 피난 중에도 《백범일지》를 늘 품에 지니고 다니며 틈만 나면 수정하고 보완했다. 그만큼 김구의 삶과 뜻을 이해하는 데 근간이 되는 책임이 분명하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김구의 말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동시에 원본에는 없는 설명과 해설을 덧붙여 한결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왜 지금 다시 김구여야 하는가"
어려운 시대, 길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용기와 지혜
김구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안창호에게 청사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 별호를 ‘보통 사람’이라는 뜻의 ‘백범’으로 고친 의미대로 낮은 자리에서 궂은일을 하고자 한 것이다. 김구는 감투에 욕심이 없었고 그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삶을 원했으나 격동의 시대, 폭풍 같은 환경이 그를 비범한 인간, 역경에 맞서 싸우는 전사로 키워냈다. 너무나 인간적인 김구가 많은 과정을 겪으며 민족의 지도자로 성장한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엮은이는 책에서 스스로 어렵고 힘겨운 일에 부닥치면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하며 답을 찾으려 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으며 어떤 어려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돌파구를 찾아냈던 김구의 올곧은 정신과 신념, 용기와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울림과 가르침을 준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통해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통하는 김구의 올곧은 정신과 신념, 용기와 지혜를 전하고자 한 까닭이기도 하다. 특히 김구가 필생 염원했던 조국의 완전한 독립, 즉 통일 한국의 새날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다. 하나로 뭉쳐도 부족한 상황에 갈등과 분열을 반복하고 환상과 착각에 빠져 무책임한 주의 주장으로 자초했던 지난 아픔을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의 중요한 특징이자 강점은 기존의 평전이나 해설서들과 달리 엮은이의 통찰력을 더해 김구의 말과 글을 풀어냈다는 점이다. 늘 깨어 있는, 살아 숨 쉬는 얼과 혼인 김구의 말과 행동, 삶과 사상을 오늘의 독자들에게 전하길 고대한다. 백범을 존경하지만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사람, 영화나 드라마 등 매체를 통해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긴 사람, 《백범일지》를 읽었지만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안내자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 김구 곁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숱하게 겪었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산더미를 이룬 시신도 보았다. 사람을 죽였고, 자기 자신을 죽이려 한 적도 있었다. 환경은 처절했고, 심경은 절박했다. 김구는 칠십 평생을 회고하며 “살려고 산 것이 아니다. 살아져서 살았으며,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라고 말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살았던 한평생은 역설적으로 죽어도 죽지 않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아 영원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다.
- 〈1장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서

◆ 돌아보면 가족이 같이 산 날보다 헤어져 산 날이 훨씬 길었다. 또 피지도 못한 어린 것들, 고생만 한 아내, 효도 한 번 해드릴 겨를이 없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먼저 보내야 했다. 가족을 보살피기는커녕 관심조차 제대로 기울이지 못했다. 지지리도 부족한 자식이며 못난 남편, 냉정한 애비였다. 그래도 내겐 가야 할 길이 있었다. 겉으로 소리 내 울지도 못한 채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외롭고 쓰라린 세월이었다.
- 〈1장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서

◆ 아버지의 어릴 적 별명은 ‘효자’였다. 할머니가 운명하실 때 왼손 약지를 잘라 할머니 입에 피를 흘려 넣어드려 사흘이나 더 사시게 했다고 한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내가 태어났다. 할머니 기일이 내 생일이 된 것이다. 말년에 중병이 들어 열나흘 동안 내 무릎을 베고 계시던 아버지는 경자년 12월 9일, 애써 잡으셨던 내 손을 놓으면서 먼 길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가 우리 할머니 임종하실 때 그러셨듯이 자식 된 도리로 나도 손가락을 자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어머니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실까 싶어 당신 모르게 허벅지 살을 베어냈다. 왼쪽 허벅지에서 살 한 점을 떼어내 고기는 불에 구워 약이라 속여 잡숫게 하고, 피는 입안으로 흘려 넣어드렸다. 그것만으로는 양이 모자란 듯해 다시 칼을 들어 이번엔 좀 더 크게 떼어내려고 백배 천배 용기를 내 살을 베었지만 살 조각은 떨어지지 않고 고통만 극심했다. 결국 다리 살을 베어만 놓았을 뿐 손톱만큼도 떼어내진 못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를 베는 일은 진정한 효자나 하는 거로구나, 나 같은 불효자는 시늉만 내다가 마는구나!”
- 〈2장 백범은 ‘백범’인가?〉 중에서

◆ 해가 바뀌자마자 전봉준을 필두로 하여 고부에서 민란이 일어나 4월 전주성을 함락시킨다. 이를 빌미로 6월에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동학군은 해주성 공격에 실패한 데 이어 공주 우금치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한다. 우국충정과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19세 소년은 깨닫게 된다. 역사의 주도권은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고, 동학도의 세는 급격히 기울어진다. 동학의 ‘아기 접주’로 명성을 날리던 김창수는 선봉장으로 나섰던 해주성 전투의 실패를 자책하며 교훈을 얻는다. 훈련 받지 못한 오합지졸로는 백전백패임을 절감하고 우선은 군사훈련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런 창수에게 찾아온 정덕현과 우종서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두 사람을 대하는 백범의 태도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함과 친화력, 열린 의식 등 지도자의 자질을 읽을 수 있다.
- 〈3장 틀 속에 갇혀 틀을 깨려 하건만〉 중에서

◆ 김구의 아내 최준례가 10대 소녀 시절부터 자유 결혼을 꿈꾸었을 뿐 아니라 실천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신선하다. 여성의 성향이나 의사는 고려 대상이 아니고 혼사에 전혀 반영이 안 되던 시대에, 그것도 어머니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청년을 예비 사위로 못 박아 놓은 상황에서 말이다. 김구 또한 당시 조혼으로 인한 갖가지 폐해를 절감하고 있던 터라 이 신여성을 동정하고 그녀의 입장에 깊이 공감했다. 둘은 한마음이 되어 관습의 벽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러 차례 가슴 아픈 경험을 뒤로하고 마침내 천생연분, 필생의 동지를 만나게 된 것이다.
- 〈5장 고뇌와 갈등의 청년기〉 중에서

◆ 백범은 신문을 받을 때마다 지옥을 경험했다. 매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에야 유치장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래도 죽을힘을 다해 목청껏 외치곤 했다. “내 목숨은 빼앗을 수 있어도 내 정신만은 빼앗지 못하리라!” 간수들이 제지하고 윽박질렀지만, 김구의 부르짖음은 감옥을 우렁차게 울리며 좌절한 동지들의 신념을 다시 일으키는 지렛대가 돼주었다. 그런 김구도 고깃국 냄새엔 코가 먼저 반응했다. 온유한 낯빛과 공손한 말투에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꾸짖고 마음을 다잡았다.
- 〈6장 세상 밖의 감옥, 감옥 안의 세상〉 중에서

◆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나는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나를 청사 문지기로 써달라고 청원했다. 이유는 연전 본국에서 교육 사업을 할 때 내 실력과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알아보려고 순사 채용 과목을 혼자 시험쳐본 결과 내 점수론 합격이 어려움을 절감했고, 또 문지기보다 높은 자리는 허영을 탐해 실무에 소홀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별호를 백범으로 고친 연유까지 설명하며 설득하자 안 동지는 흔쾌히 국무회의에 올리겠노라고 말했다. 그랬는데 하룻밤 사이에 내용이 바뀌었다. 도산이 홀연 내게 경무국장 임명장을 내민 것이다. 그때는 각 부서 차장이 총장 직권을 대리했는데, 청년 차장들이 연장자인 내가 여닫는 문을 드나들기가 아무래도 겸연쩍고 거북스럽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하기야 도산보다도 내가 두 살 많긴 했지만, 나로선 생각지도 않은 문제였다.
“뜻은 고맙지만 나는 일개 순사 자격에도 못 미치는 사람입니다. 경무국장 자리는 감당하기 벅찹니다.”
“겸손의 말씀, 자격은 충분합니다. 지금 같은 혁명기엔 정신을 보고 인재를 쓰는 법입니다. 오랜 감옥 생활로 왜놈들 실정을 잘 아는 백범만한 적임자가 또 누가 있겠습니까?”
- 〈7장 자유를 위한 헌신 : 혁명가의 길(1)〉 중에서

◆ 백범은 결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으며, 나이, 지역,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았다. 사람을 끄는 힘도 출중했다. 이봉창과는 상해의 뒷골목을 함께 누비고 좁은 여관방에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우국담론을 토로한다. 김구의 열린 마음과 애국 열정 그리고 삿됨이 없는 정의감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고 한 길로 가게 한다. 엄혹한 임시정부 시절, 배신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상해에서 한순간의 흔들림도 없이, 목숨까지 던져가며 김구와 더불어 모진 풍파를 무릅쓴 수많은 애국자와 투사는 그렇게 태어나고 길러졌다. 그들은 기꺼이 싸우고 또 죽었다.
- 〈8장 자유를 위한 헌신 : 혁명가의 길(2)〉 중에서

◆ 임시정부는 월세도 못 낼 만큼 가난에 쪼들렸지만, 김구 몸엔 60만 원이란 천문학적 현상금이 붙었다. 임정 청사의 월세나 일반 노동자 월급이 30원 안팎이던 시대였다. 60만 원이면 청사 임대료 1,600년치를 내고도 남을 거액이었다. 잡기만 하면 일확천금할 기회였다. 그러다 보니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한인 밀정뿐만 아니라 중국인, 심지어는 서양인들까지 김구를 잡으려고 여기저기 사냥개처럼 냄새를 맡으며 쑤시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범은 ‘움직이는 복권’이 되어 동가식서가숙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도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도와주는 이들, 눈감아주는 이들이 많았다. 날마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한인 노동자와 주부들로선 평생 팔자를 고칠 현상금이었지만, 김구의 실체를 아는 동포 중 어느 누구도 밀고한 이가 없었다. 오히려 숨겨주고 따뜻한 밥을 제공했다. 그들에게 백범은 현상금 60만 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 〈8장 자유를 위한 헌신 : 혁명가의 길(2)〉 중에서

◆ 백범 역시 누구보다 애타게 고대했을 ‘그날’이 왔다. 조국 광복의 날이 밝았다. 그런데 왜 기쁘지 않았을까? 일제의 무조건 항복은 김구에게 복음이 아닌 비보였다. 일지에서도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구 말고 이런 위험한(?)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백범일지》가 얼마나 솔직한 고백록인가를 또 한 번 웅변한다. 김구는 우선 수십 년간 준비하고 열망한 보람도 없이, 독립된 조국에 광복군이 ‘해방군’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되어 너무나 아쉬웠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 향후 전개될 통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외세의 영향력은 커지고 우리 정부의 발언권은 약화될 것을 걱정했다.
- 〈9장 마지막 그날까지〉 중에서

◆ 나는 상해에서 18일을 머문 다음 1945년 11월 23일, 1진으로 선발된 열네 명과 함께 서울행 프로펠러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선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의 “보인다!”란 외침이 무겁게 가라앉았던 침통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손바닥만 한 비행기 창 아래로 푸른 바다에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곧 합창으로 번졌다가 울음소리로 흐려졌다. 비행기는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나는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줌 움켜쥐고 고국의 냄새를 맡았다. 떠난 지 26년 7개월여 만의 귀환이었다.
- 〈9장 마지막 그날까지〉 중에서

구매가격 : 15,840 원

오목눈이집증후군

도서정보 : 박윤배 | 2018-07-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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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시인선 19, 박윤배의 시집 『오목눈이집증후군』. 이 책은 박윤배의 시를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를 통해 독자를 작가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구매가격 : 7,000 원

연분홍꽃방

도서정보 : 편재영 | 2018-07-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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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재영의 시집 『연분홍 꽃방』. 이 책은 편재영의 시를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를 통해 독자를 작가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구매가격 : 6,000 원

마음을 훔치는 배우

도서정보 : 정명희 | 2018-07-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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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의 수필집 『마음을 훔치는 배우』. 이 책은 정명희의 수필을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수필을 통해 독자를 작가의 수필 세계로 안내한다.

구매가격 : 10,000 원

달맞이 꽃동네

도서정보 : 김상락 | 2018-07-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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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락의 시집 『달맞이 꽃동네』. 이 책은 김상락의 시를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를 통해 독자를 작가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구매가격 : 7,000 원

조선 사람 우뚝

도서정보 : 최남선 | 2018-07-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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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우뚝』(원제: 우선 사람 웃둑)은 어린이 동화로 저자는 《소년(1908)》을 비롯하여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새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여러 어린이 잡지를 발간하였다.

구매가격 : 1,000 원

계간 문학동네 2018년 여름 통권 95호

도서정보 : 문학동네 | 2018-07-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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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문학의 존엄과 자긍을 다지며,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가는 젊은 문예지입니다. 우리 문학의 드높은 성취를 갈무리하며, 문학의 미답지를 개척, 수호해갈 『문학동네』는 문학의 진정성을 채굴하는 든든한 굴착기로서, 매호 돋보이는 기획과 성실한 편집으로 두고두고 귀한 자료로서 가치를 지니는 고급 문예지입니다.

구매가격 : 7,500 원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도서정보 : 달다 | 2018-07-1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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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다면 그만인 인생,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


◎ 도서 소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철 같은 자신감이지 않은가.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하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달리다가 막다른 벽을 만나 준비 없이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나는 언제 행복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거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같은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남들이 하는 대답, 누군가 알려준 대답이 아닌, 스스로 찾고 결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때로는 B급 코미디로, 때로는 눈물 찔끔 나는 감성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보며 내 인생을 빈틈없이 채워줄 작은 답을 찾아간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보자.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질 ‘나’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질 나를 위해”

행복은 목표가 아니다. 경쟁 끝에 성취해야 하는 보상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모양과 색으로 주어지는 물건도 아니다. 조금씩 찾아내 자신에게 딱 맞는 모양으로 다듬어가야 진짜 행복, 내가 원하는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 자주 미세한 나의 감정을 진찰하고 다정한 대화를 건네 보자.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보자. “너는 어디로 가야 행복하니?”라고.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할 때마다 행복이 내 앞으로 걸어올 것이다.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은 그 답을 찾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았다. 때론 좌절하고, 실망하지만 저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분명히 행복해질 나를 믿으며 또 한 발을 뗀다.

지켜내야 하는 것 중 가장 우선은
나 자신이었다.

우리는 ‘나’의 선택이 ‘남’을 고려하기보다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주 쉽게 잊는다. ‘내’편을 들어주기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일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돌아서 지쳐버린 ‘나’를 탓한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왜 이렇게 약하냐고.『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의 작가도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어려웠고, 잘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간절한 연애는 쉽게도 깨졌고 아무리 마음을 줘도 내 마음 같은 친구가 없었다.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늘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없었다.
한발 한발이 외줄 타듯 아슬했다.
앉지도 서지도 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일아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멍청하게 울기도 했다.”
- 〈프롤로그〉 중

그러나 그 순간 작가는 포기하고 돌아서기보다 나를 지켜내는 길을 찾았다.

밖으로만 향했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주변에서 원하는 나 말고, 내가 만나고 싶은 나를 생각했다. 나 좋다면 그만인 내 인생인데, 뭐 그리 복잡하게 사느냐고 한 숨 내려놓았다. 스스로에게 언제 행복한지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수히 돌고 돌아 결국 자기 앞에 다시 섰다. 작가는 그때부터 조금 더 행복해졌다고 고백한다. 더불어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고.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에는 작가가 나를 알아가고, 주변을 돌아보며 나를 이해하는 시간동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랄맞지만 안아주고픈 나의 일부

거창하지 않다. 세상을 보는 눈에 사랑을 담았고, 나를 보는 눈에 여유를 담았다. 민감함은 사랑의 그림자였고, 내 눈에 예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지금까지의 나와 다르게 받아들였다. 등 떠밀리며 앞으로만 달리던 나를 멈추고, 아직 오지 못한 나의 영혼을 기다렸다. 그리고 힘껏 안아주었다. 그 시간들로 충분했다. 지랄맞지만 안아주고픈 나와 만났고, 어제보다 한 뼘만큼은 더 행복한 오늘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를 읽고 쓰디 쓴 어제를 살았던 많은 이들이 조금 달아진 오늘을 생각했으면 한다. 한 뼘만큼이라도 스스로의 진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길에 이 책이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 책속으로

벌겋게 열이 올라 뛰쳐나왔다.
몸속의 뜨거운 공기를 한숨으로 뿜어내며 다짐했다.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길을 건너다가
애써 횡단보도의 흰색 금만 밟는 내게 울컥한다.
---- 「나란 여자」

무지해서 삼켜버린 아픔은
여지없이 날카롭다.

깊은 곳에 박혀
여전히 욱신거리다 울컥한다.

그것들은 분명 내게 상처였다.

견디지 않았어야 하는 일.
마땅히 방어하고 밀쳐냈어야 하는 일.
나를 지키느라 날카로운 가시를 세웠어야 하는 일.
큰 소리로 아이처럼 울어도 되는 일들이었다.

나에게 용서를 구한다.
외면하고 상처 주어서
더 사랑해주지 못해서
긴 외로움 속에 혼자 두어 미안하다고.

그리고 약속한다.
다시는 내게 서운한 일이 없기를.

나는 이제서야
자신과 눈 맞추는 것만이
온전한 위로임을 느낀다.
---- 「나를 용서」 중에서


나는 칭찬에 매달리곤 했다.

부모님께는 그럴싸한 딸이고 싶었다.
애인에게는 끊임없이 내가 예쁜지를 물었고,
직장에서는 다재다능한 만능 사원을 꿈꿨다.

돌아오는 답변에 거뜬히 힘이 나고 쉽게도 무너졌다.

갈대처럼 흔들렸다.
누군가의 인정이 목표가 되고 내 마음은 묵살되기 일쑤였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자주 삐치고 서러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나 좋으면 그만인 인생, 뭐 그리 복잡하게 살아?”
---- 「내 눈에 예쁜 꽃이면 되었다」 중에서


그렇지만 변치 않는 하나.
사랑이라 불리는 누군가이다.

살다 보면
나조차도 내 편일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한 서로를
연민하고 사랑하며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 「나조차도 내 편일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중에서

구매가격 : 12,000 원

오월비상(五月飛霜)

도서정보 : 심훈 | 2018-07-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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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비상(五月飛霜)』은 1929년 신문지상에 기고한 단편소설(掌篇)이다.
주인공 ‘태식’은 오래전 러시아의 한 무도회에서 춤을 추던 17살 소녀 ‘유다’를 만나 동정과 연정의 갈림길에서 고뇌하지만, 결국엔 일본 경찰의 압제를 못 이기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불쑥 떠난다는 줄거리이다.
이러한 연정 속에서 갑작스레 불가피한 이별의 도피는 비상(非想)과도 같은 내면의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으며, 저자의 경험적 근거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원문 그대로 적었으며 일부는 맞춤법에 따랐다.

구매가격 : 3,000 원

조선의 꽃타령

도서정보 : 차상찬 | 2018-07-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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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꽃타령』은 단편 잡지 기고문으로, 우리나라 대표 꽃으로 일컫는 9가지를 선별하여 원산지에 담긴 정서와 소견, 시구를 통해 대표할만한 우리 꽃의 진정한 정의를 조망하였다.

구매가격 : 3,000 원

남부의 모내기 노래

도서정보 : 송석하 | 2018-07-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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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농요(農謠)라고 할 수 있는 속요의 일종인 ‘이앙가(移秧歌)’이다. 농부들이 농사일이나 모내기 등을 하며 부르는 민요조 속요(俗謠)이다.
농민들이 농사일을 하는 데 있어 힘을 북돋운다든가 더욱 힘쓸 것을 강조하며 흥을 더욱 자극하는 노래로 공동으로 상부상조하며 농사일을 더욱 흥취가 나도록 한다.
시간마다 각각 특수성을 가지며, 아침참을 먹을 때나 점심때, 점심참을 먹을 때나 저녁때, 이와 같이 각각 다른 소리가 있다. 생활의 깊이가 묻어있는 농부들의 정서와 감흥을 생활 속에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부지방에서 주로 일반적이며 농촌 생활을 그대로 묘사하듯 그려 보이는 서정적이고 소박함을 느끼게 한다.
전체적으로 본문은 원문 그대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였다.

구매가격 : 4,000 원

우리나라 성씨

도서정보 : 이중화 | 2018-07-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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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씨》이 책은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와 분포 및 발생기원에 관해 간략히 적은 글로, 한글학자이면서 『조선의 궁술』(1929) 저자인 이중화(李重華) 선생의 단편 기고이다.
이전 시대에 있어서 노예는 성(姓)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승려는 출가(出家)하면 성을 아주 떼어 버렸다. 오늘날에 와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승려도 일반 사회와 하여 모두 일반 사람들과 같이 성을 쓰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치고는 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그 성이라 하는 것은 ‘한 글자’나 ‘두 글자’ 한자로 표시하고 있다. 그것은 소리(音)대로 읽는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4,000 원

수상록(隨想錄)

도서정보 : 심훈 | 2018-07-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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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隨想錄)』은 1929년 신문지상에 기고한 단편 수필이다.
저자는 이미 당시의 세태적인 아픔과 통정하는 심정으로 자신이 진정한 인텔리겐치아인지를 되묻고 있다. 이를 통해 농촌운동의 기반적 입문을 갖추기 위한 부르짖음인 현실적 해답의 부흥과 희망, 용기라는 모토로 각성하고 개혁하려는 심경 의지를 표출하였다.
본문은 원문 그대로 적었으며 일부는 맞춤법에 따랐다.

구매가격 : 500 원

춘소산필(春宵散筆)

도서정보 : 심훈 | 2018-07-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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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소산필(春宵散筆)』은 1928년 신문지상에 기고한 단편 수필이다.
‘춘소(春宵)’는 춘야(春夜)를 가리키는 봄철의 밤을 뜻하는 것으로, 전반부에 중국 송나라 문필가인 왕안석 춘야(春夜) 시구를 앞세워 봄밤의 정취를 향수하는 회한의 심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실적인 시국의 고뇌는 모든 것의 단절과 함께 아픔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결국엔 고향에 회귀하려는 것에 희망적 해답을 찾으려는 의지의 노력이었다.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땅에도 봄은 오려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은 원문 그대로 적었으며 일부는 맞춤법에 따랐다.

구매가격 : 4,000 원

여우목도리

도서정보 : 심훈 | 2018-07-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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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목도리』는 1936년 신문지상에 기고한 단편소설이다.
주인공 ‘최 군’은 고용직 공무원인 박봉 월급으로 근근이 사는 평범한 가정의 남편이다. 변변치 않은 부인은 전근대적 지순한 여성이지만, 남편은 이제껏 그에게 단 한 번도 특별히 챙겨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부부는 결혼기념일에 맞추어 쇼핑하면서 벌어지는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의 넉넉지 못한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부부애, 물질만능주에 편승한 풍조 분위기를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본문은 원문 그대로 적었으며 일부는 맞춤법에 따랐다.

구매가격 : 3,000 원

청소년을 위한 포토에세이

도서정보 : 록셈 이준혁 | 2018-06-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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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전하는 포토에세이
자연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다

포토에세이스트 록셈 이준혁의 청소년을 위한 첫 번째 포토에세이 작품집.
이번 작품집은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청소년에게 진지하게 때론 웃음 가득하게 소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 그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는 재미를 선물한다.

좀 더 스마트한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에게 꼭 전해야하는 메시지를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청소년이 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에 어울리는 글을 쓰는 놀이를 한다면, 세상은 더 밝아질 것이다.”

구매가격 : 5,000 원

정도전

도서정보 : 정윤이 | 2018-06-2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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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쿰라이프게임즈(주)에서 하는 100일 게임의 사전미션으로 진행한 도전일기 프로그램이다. 자기가 해보고 싶었던 20가지의 도전을 하루에 한 가지씩 20일 동안 실행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일기로 작성한 책이다. 작은 것을 하나하나 성공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여러 가지를 도전해 보면서 어떤 힘든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구매가격 : 1,000 원

OFFSHORE DRILLING AND DYNAMIC POSITIONING HANDBOOK

도서정보 : 김창수.이준수 | 2018-05-16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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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deepwater drilling과 dynamic positioning의 운용에 주안점을 두고 집필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Chapter 1부터 5까지에 기술된 offshore 개론과 seismic operation, offshore support, offshore drilling, offshore production에 관한 내용을 읽음으로써, offshore oil & gas 개발과 생산과정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며, Chapter 6에서는 DP(dynamic positioning)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Chapter 7에서는 offshore drilling에서의 DP 운용에 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6,500 원

놓고 보니 꽃

도서정보 : 김용옥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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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시인의 첫 시집 『놓고 보니 꽃』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꺼내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그것은 설레는 봄,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시인이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부러 모른 척했다. 그러나 시는 자연스럽게 마음 밖으로 흘러나왔다.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어쩌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것을, 이제 세상에 내놓기로 한다.

구매가격 : 5,400 원

맹자와 사회사상

도서정보 : 손진태 | 2018-07-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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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는 이 종족적 군소국가로부터 점점 봉건적 귀족국가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발전된 것이 소위 춘추열국시대이며, 그 가장 활발하고 화려한 시대가 전국시대이었다.
맹자의 본질적 철학사상에 관해 간략히 기술한 것으로 정신적 이론가며 사상가인 그의 유가의 정치적 윤리를 제시하였다.

구매가격 : 4,000 원

시경 국풍 번역

도서정보 : 탁양현 옮김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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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편. 나라의 풍류[국풍國風]

1장. ‘주’나라의 남쪽[주남周南] 17
1. 물새[관저關雎, 요조숙녀]
2. 칡덩굴[갈담葛覃, 후궁 사씨]
3. 도꼬마리[권이卷耳, 출세 못 한 자]
4. 굽은 나무[규목樛木, 즐거워하는 군자]
5. 메뚜기[종사螽斯, 수많은 자손]
6. 어린 복숭아[도요桃夭, 시집갈 처녀]
7. 토끼 그물[토저免罝, 용감한 무사]
8. 질경이[부이芣苢, 노동자]
9. 너른 ‘한수(漢水)’[한광漢廣, 놀러 나온 여자]
10. ‘여수(汝水)’의 제방[여분汝墳, 남편 없는 여자]
11. 기린의 발자국[린지지麟之趾, 출세한 자]

2장. ‘소’땅의 남쪽[소남召南] 31
1. 까치집[작소鵲巢, 시집올 새아씨]
2. 머위를 뜯네[채번采蘩, 말단 벼슬아치]
3. 풀벌레[초충草蟲, 님을 그리워하는 여자]
4. ‘네가래’를 뜯네[채빈采蘋, 제주가 된 아가씨]
5. 팥배나무[감당甘棠, 문왕의 아들 소백]
6. 이슬에 젖은 길[행로行露, 감옥에 갇힌 자]
7. 어린 양[고양羔羊, 말단 공무원]
8. 잦은 그 우레[은기뢰殷其靁, 남편 없는 여자]
9. 매실이 떨어지네[표유매摽有梅, 몸 파는 여자]
10. 작은 별[소성小星, 말단 벼슬아치]
11. 강에도 갈림길이 있다네[강유사江有汜, 시집간 아가 씨]
12. 들에서 죽은 노루[야유사균野有死麕, 아가씨와 선비]
13.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울까[하피농의何彼襛矣, 아름다 운 여자]
14. 기마병[추우騶虞, 사냥꾼]

3장. ‘패’나라의 풍류[패풍邶風] 47
1. 잣나무 배[백주柏舟, 출세 못 한 자]
2. 천민의 연녹색 저고리[녹의綠衣, 옛 연인을 그리워 하 는 자]
3. 제비들[燕燕, 연연이 시집가버린 자]
4. 해와 달[일월日月, 공부하는 선비]
5. 하루 종일 부는 바람[종풍終風, 고독한 자]
6. 북을 울리네[격고擊鼓, 직업군인]
7. 마파람[개풍凱風, 불효자]
8. 장끼[웅치雄雉, 남편 없는 여자]
9. 표주박에는 쓰디쓴 잎이 난다네[표유고엽匏有苦葉, 연 인을 기다리는 남자]
10. 계곡의 바람[곡풍谷風, 소박맞은 여자]
11. 쇠약해져 가는데[식미式微, 군주가 된 자]
12. 언덕[모구旄丘, 궁지에 몰린 군주]
13. 오만하구나[간혜簡兮, 서쪽 지방의 미인]
14. ‘천수’ 땅이 그리워[천수泉水, 후궁으로 팔려간 여자]
15. 북문을 나서며[북문北門, 고달픈 가장]
16. 북녘 바람[북풍北風, 여행자]
17. 청순한 아가씨[정녀靜女, 사랑에 빠진 남자]
18. 새로운 누대[신대新臺, 꼽추에게 시집간 여자]
19.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네[이자승주二子乘舟, 님 그 리는 여자]

4장. ‘용’나라의 풍류[용풍鄘風] 71
1. 잣나무 배[백주柏舟, 미남자를 짝사랑하는 처녀]
2. 담장을 ‘남가새’ 풀이 덮었네[장유자牆有茨, 비밀스런 대화]
3. 남편과 백년해로[군자해로君子偕老, 아름다운 신부]
4. 뽕나무밭에서[상중桑中, 바람둥이와 세 여자]
5. 메추라기가 날아오르네[순지분분鶉之奔奔, 남편이 불 만스런 여자]
6. 북극성이 정중앙에 뜨면[정지방중定之方中, 성실하고 착한 부자]
7. 무지개[체동蝃蝀, 섹스를 밝히는 자]
8. 쥐를 보면[상서相鼠, 위엄과 절제와 예의가 없는 자]
9. 쇠꼬리 깃발[간모干旄, 미인에게 선물하는 자]
10. 말 달리며[재치載馳, 임신 못 하는 여자]

5장. ‘위’나라의 풍류[위풍衛風] 85
1. ‘기수’ 강물의 벼랑 끝[기오淇奧, 미남자에게 반한 여자]
2. 은거할 집[고반考槃, 은둔자]
3. 덕 있는 여자[석인碩人, 집안 좋은 여자]
4. 얼굴도 모르는[맹氓, 버림받은 여자]
5. 대나무 낚싯대[죽간竹竿, 시집간 여자]
6. 박주가리[환난芄蘭, 뿔송곳을 허리에 찬 소년]
7. ‘황하’가 넓다고 하는데[하광河廣, 여행자]
8. 남편에게[백혜伯兮,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자]
9. 여우가 걸어가네[유호有狐, 가난한 아내의 근심]
10. 모과[모과木瓜, 말단 벼슬아치]

6장. ‘왕’의 풍류[왕풍王風] 101
1. 찰기장이 늘어지고[서리黍離, 근심하는 자]
2. 부역을 나간 남편[군자우역君子于役,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
3. 남편은 의기양양하게[군자양양君子陽陽, 남편을 자랑 하는 여자]
4. 흐르는 물[양지수揚之水, 변방의 직업군인]
5. 골짜기의 ‘익모초’[중곡유퇴中谷有蓷, 남편과 이별한 여자]
6. 토끼의 여유로움[토원兎爰, 인생이라는 고통]
7. 칡덩굴[갈류葛藟, 입양된 아이]
8. 칡을 캐러 가네[채갈采葛, 나물 캐는 여자]
9. ‘대부’의 수레[대거大車, 첩으로 팔려간 여자]

7장. ‘정’나라의 풍류[정풍鄭風] 115
1. 검은 먹물 옷[치의緇衣, 살림하는 여자]
2. 둘째 아들에게[장중자將仲子, 연애하는 여자]
3. 아저씨가 밭에 나가니[숙우전叔于田, 아저씨를 짝사랑 하는 처녀]
4. ‘대숙’이 사냥을 나가니[대숙우전大叔于田, 사냥하는 남자]
5. ‘청읍’ 사람[청인淸人, 직업군인]
6. 염소가죽 옷[고구羔裘, 고급관리]
7. 큰 길에 나서네[준대로遵大路, 옛 인연을 그리워하는 여자]
8. 아내가 닭이 울었다고 말하네[여왈계명女曰雞鳴, 금슬 좋은 부부]
9. 아가씨와 함께 수레에 오르니[유녀동거有女同車, 아름 다운 ‘강씨’네 큰 딸]
10. 산에는 ‘부소’나무가 자라네[산유부소山有扶蘇, 재수 없는 여자]
11. 말라서 떨어지는[탁혜蘀兮, ‘백이’와 ‘숙제’]
12. 교활한 아이[교동狡童, 계모와 아이]
13. 치마를 걷고서[건상褰裳, 짝사랑하는 여자]
14. 풍채 좋은[봉丰, 잘생긴 사내]
15. 동문 밖 집터[동문지선東門之墠, 외로운 여자]
16. 비바람[풍우風雨, 님을 만나 여자]
17. 그대의 옷깃[자금子衿, 님을 그리워하는 여자]
18. 느릿하게 흐르는 물[양지수揚之水, 두 형제]
19. 동문을 나서니[출기동문出其東門, 눈이 높은 남자]
20. 들판의 덩굴풀[야유만초野有蔓草, 아름다운 미인]
21. ‘진수’와 ‘유수’[진유溱洧, 연애하는 남녀]

8장. ‘제’나라의 풍류[제풍齊風] 139
1. 닭이 우네[계명雞鳴, 벼슬아치]
2. 날렵함[환還, 사냥하는 사내들]
3. 기다림[저著, 연인들]
4. 동녘의 태양[동방지일東方之日, 연인의 밀회]
5. 동녘은 아직 밝지 않았네[동방미명東方未明, 말단 공 무원]
6. 남쪽 산[남산南山, 인간의 욕망]
7. 넓은 밭[보전甫田, 노처녀]
8. 사냥개 방울[노령盧令, 사냥개와 주인]
9. 낡은 그물[폐구敝笱, ‘제’나라 여자]
10. 수레를 운전하네[재구載驅, ‘제’나라 사람]
11. 성대함이여[의차猗嗟, ‘제’나라의 영웅]

9장. ‘위’나라의 풍류[위풍魏風] 153
1. 칡 신발[갈구葛屨, 연인을 걱정하는 여자]
2. ‘분수’의 제방[분저汾沮, 아름다운 여자]
3. 정원에 열린 복숭아[원유도園有桃, 자유로운 선비]
4. 민둥산에 올라[척호陟岵, 부역에 끌려간 자]
5. 작은 밭[십무지간十畝之間, 가난한 자의 여유로움]
6. 박달나무를 베어서[벌단伐檀, 먹고사는 일]
7. 큰 쥐[석서碩鼠, 고통스런 현실]

10장. ‘당’나라의 풍류[당풍唐風] 163
1. 귀뚜라미[실솔蟋蟀, 어진 선비]
2. 산에는 우나무가 있네[산유우山有樞, 삶을 즐기지 못 하는 자]
3. 느릿하게 강물이 흐르고[양지수揚之水, 버림받은 여 자]
4. 산초나무[초료椒聊, 덕 있는 자]
5. 꼼꼼히 준비하다[주무綢繆, 미인을 만난 남자]
6. 우뚝 선 팥배나무[체두杕杜, 고아]
7. 염소가죽 옷[고구羔裘, 연인을 그리워하는 자]
8. 능에[보우鴇羽, 부역에 끌려간 자]
9. 옷이 없겠는가[무의無衣, 벼슬아치]
10. 우뚝 선 팥배나무[유체지두有杕之杜]
11. 칡넝쿨[갈생葛生, 고향을 그리워하는 자]
12. 복령을 캐네[채령采苓, 소문은 믿을 수 없다]

11장. ‘진’나라의 풍류[진풍秦風] 179
1. 수레가 가네[거린車鄰, 지금 즐기지 않는다면]
2. 4필의 말[사철駟驖, 사냥하는 풍경]
3. 전쟁용 수레[소융小戎, 님을 그리워하는 여자]
4. 무성한 갈대[겸가蒹葭, 강을 건너며]
5. ‘종남산’에서[종남終南,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며]
6. 꾀꼬리[황조黃鳥, 임금과 함께 죽은 자들]
7. 쏙독새[신풍晨風, 님을 만나지 못 한 여자]
8. 옷이 없더라도[무의無衣, 직업군인]
9. ‘위수’의 남쪽[위양渭陽, 외삼촌을 배웅하며]
10. 처음에는[권여權輿, 처음과 달라진 대우]

12장. ‘진’나라의 풍류[진풍陳風] 193
1. ‘완구’ 언덕[완구宛丘]
2. 동문 밖 느릅나무[동문지분東門之枌, 춤추는 여자]
3. 초라한 집[형문衡門, 은둔자]
4. 동문 밖 연못[동문지지東門之池, 아름다운 ‘숙희’]
5. 동문 밖 버드나무[동문지양東門之楊, 만나자는 약속]
6. 무덤 문[묘문墓門, 불량한 남편]
7. 제방의 까치 둥지[방유작소防有鵲巢, 누가 내 님을 속이는 가]
8. 달이 뜨네[월출月出, 고뇌하는 자]
9. ‘주’ 지역의 숲[주림株林, ‘하남’을 쫓아가다]
10. 연못의 제방[택피澤陂, 미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자]

13장. ‘회’나라의 풍류[회풍檜風] 205
1. 염소가죽 옷[고구羔裘, 나태한 벼슬아치]
2. 흰 관[소관素冠, 장례식장에서]
3. 진펄의 가시나무[습유장초隰有萇楚, 홀로 사는 즐거움]
4. 바람 불어서가 아니네[비풍匪風,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자]

14장. ‘조’나라의 풍류[조풍曹風] 211
1. 하루살이[부유蜉蝣, 마음의 근심]
2. 심부름꾼[후인候人, 벼락출세를 한 자]
3. 뻐꾸기[시구鳲鳩, 어진 군자]
4. 샘물이 흘러내려[하천下泉, 백성을 위로한 왕]

15장. ‘빈’나라의 풍류[빈풍豳風] 217
1. 만수무강을 빌며[칠월七月, 농사의 노래]
2. 올빼미[치효鴟鴞,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
3. 동쪽 산[동산東山, 재혼한 남자]
4. 부서진 도끼[파부破斧, ‘주공’의 정벌]
5. 도끼자루를 베려면[벌가伐柯, 장가드는 방법]
6. 작은 그물[구역九罭, 돌아오지 않을 자]
7. 늙은 이리가 넘어지네[랑발狼跋, 흠 없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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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1

도서정보 : 박지원 지음(탁양현 옮김)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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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河日記 : 연암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 1






왜 살아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회한에 빠져드는 것일까? 왜들 그렇게 설움에 북받쳐 눈물을 쏟아낼 만큼 한스러워 하는 것일까?

필자 역시 어느 정도 살아내고 보니, 그런 마음이 대체로 공감이 된다. 인생이란 제아무리 노력을 하며 최선을 다하더라도 결국은 후회될 따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인생을 그나마 의미 있게 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로서는 그런 것이야말로, 응당 여행이라고 판단한다.
‘연암’도 적잖은 나이에 중국 땅을 처음 여행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적어도 여행을 하면, 회한의 분량은 적잖이 줄어들게 된다.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다 보면, 시나브로 그런 다양한 삶에 내재된 고통과 회한이 유사하다는 판단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은, 삶의 황혼에 가까울 무렵이면 너무도 많은 추억을 제공해 준다.
흔히들 나이 들수록 남는 것은 추억뿐이라는 말들을 한다. 맞는 말이다. 분명, 별달리 추억할 게 없는 인생인 탓에 아쉬운 회한에 젖게 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수십 년을 살아냈지만 마땅히 회상되는 추억이 별로 없다면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그러할 때 가장 인상 깊은 추억을 남겨주는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이다.
여행을 나서는 순간에 일상의 시공간으로부터 일탈적 탈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껏 전혀 접하지 않았던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그 기억은 당최 잊히기 어려운 것이다.

굳이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따위의 논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존재의 삶은 하나의 소모품으로서 소모되어 가는 과정임이 자명하다. 그래서 어떻게 소모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야말로, 삶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이나 동물을 막론하고서, 자식을 위해 끊임없이 소모되는 부모의 모습은 얼마나 숭고한가. 공동체나 역사를 위해 소모되는 모습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게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며 소모될 수 있을 때에, 인간존재는 자기의 삶에 대해 적잖은 만족을 갖게 되며, 설령 한갓 소모품에 불과한 삶일지라도, 극단적인 회한으로 내몰리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필자로서는 그러한 삶의 행태로서 가장 그럴 듯한 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하면서, 여행자로서 살아내는 삶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소모이며, 가장 의미 있는 소모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행 이외에도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소모는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박지원’이 살아낸 조선왕조 시대는 무려 5백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이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를 가질 수 있는데, 필자로서는 단 하나의 유일한 왕조가 장기간 지속될수록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되고 부패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런 사회에 소속된 서민대중들은 더욱 큰 고통 속으로 내몰리기 십상이라고 판단된다.
예컨대,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경우도 그러하다. 단 하나의 유일한 신을 신봉하는 거대종교의 폭압은 얼마나 잔혹한가. 그러한 종교적 방식의 교리는 대체로 철저하게 편향된 이데올로기이기 십상이다.

나아가 조선왕조 시대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때문에 양반사대부의 혈통을 지니지 못 한 자는, 애당초 그 신분적 한계 탓에 아주 많은 것들을 천부적으로 제약당해야만 했다.
물론 21세기라고 해서, 시쳇말로 ‘금 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는’ 부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선왕조 시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왕정(王政)이라는 체제가 철저한 ‘1인 독재’나 ‘계층 독재’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왕권의 유지를 위해서 단 한 순간도 극악한 경계의 끈을 결코 늦추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가 그다지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라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선조들의 역사를 죄다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며,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대의 민주정(民主政)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필자로서는, 유년기와 청년기의 군부독재의 기억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서민대중에게 고통을 유발하는가를 여실히 체험했던 탓에, 하물며 왕정에 의한 독재의 시대를 살아내야만 한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그저 끔찍할 따름이다.
게다가 조선왕조가 통치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성군(聖君)에 의해 통치되는 군자(君子)들의 주자학적 이상사회를 실현하지는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체제를 억지스레 5백년이나 지속하였다면, 도대체 얼마나 극단적인 방편을 동원했던 것인지를 상상해 보면, 그저 아찔할 따름이다.

여하튼, 그러한 시대에 ‘박지원’은 여행을 나선 것이다. 때문에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독자로서는, 다소 낯선 묘사들이 곧잘 등장한다.
예컨대, 아주 원초적인 스포츠로서의 육상이나 수영 등을 보는 소박한 역동성을 느끼도록 한다.
인류의 문명이 복잡화되고 고도화되면서 스포츠 역시 자연스레 그러한 시류를 좇게 마련이다. 그래서 현대에 이를수록, 축구나 야구의 경우처럼 아주 복잡한 룰에 따르며 많은 장비를 요구하는 스포츠가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존재들의 사유방식이 고대에 비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많은 이들의 주장처럼, 무작정 발전이라는 개념으로서 규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현대적인 스포츠로서 기계식 엔진에 의존하는 스포츠나, 급기야는 컴퓨터에 의해 사이버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스포츠까지 등장하는 시대이다.
그러한 시대일수록 ‘연암’의 여행기처럼 소박한 감성을 내포한 글을 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연암’은 결코 시대정신으로부터 탈주를 시도한 지식인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자기에게 부여된 시대를 살아내는 자로서 부득이하며 마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나마 ‘연암’은,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진취적인 지식인이었다.
온갖 기술문명적인 방편으로써 치장한 현대적인 스포츠들의 경우처럼 이러저러한 측면들이, 21세기를 살아내는 필자로서, ‘연암’보다는 다소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기묘한 충족감을 갖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연암’의 시대에 비해서 현대사회 자체가 특별히 나아졌다는 생각은 별반 들지 않는다.
한 시대는, 다만 그 시대의 몫일뿐이다. 그러니 인간존재는 그 시대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할 따름이다. 애당초 인간존재로서 자기가 살아낼 시대를 선택할 수 있는 방편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신라의 승려 ‘혜초(慧超: 704~787)’가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여행에 대한 체험을 ‘루스티첼로(Rustichello)’가 듣고서 기록한 ‘세계에 대한 기록(Divisament dou Monde)’, 즉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은 널리 아주 알려진 여행기들이다.
‘열하일기’ 역시 그런 여행기들에 비해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러 이유로 그 실제적인 내용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한자로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 대중들로 하여금 큰 거리감을 주는 것으로 판단되며, 기존의 희소한 번역서들이 한문 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 점을 감안하여, 보다 현대적인 어투로서 번역하는 일이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필자가 직접 ‘열하일기’ 루트를 답사하여서 21세기 식의 새로운 여행기를 기술한다거나, 역사적 맥락을 좇아 좀 더 이른 시기로 치올라서, 조선 전기 ‘최부(崔溥: 1454~1504)’의 ‘표해록(漂海錄)’을 새로이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별다른 기약도 없다.
삶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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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2

도서정보 : 박지원 지음(탁양현 옮김)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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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河日記 : 연암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 2





21세기 현재의 ‘지금 여기’에서, ‘연암’과 같은 시각으로서 중국 땅을 살필 수 있는 방편은 아무래도 없을 듯하다.
우선, ‘연암’의 시각은 철저히 몸의 체험에 의하고 있다. 예컨대, ‘연암’은 직접 말을 타고서 여정을 꾸렸다. 나아가 하인이나 마부들은 제 발로 걸어서 그 여정을 소화해 냈다.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 도보로서 ‘열하일기’의 여정을 답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며, 또한 굳이 그러한 방식으로 여행하려는 자도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비행기를 타고 ‘심양’이나 ‘대련’쯤으로 가서, 줄곧 자동차쯤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북경’이나 ‘천진’에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여정을 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연암’과 현대인의 시각차를 엿보이는 사실만은 아니다. 모름지기 문명의 변화는, 그 시대를 살아내는 인간존재들의 마음까지도 결정지어버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동차나 비행기가 상용화된 시대를 살아내는 자는, 결코 말이나 수레가 상용화되던 시대를 살아내던 자의 감성에 접근할 수는 없다. 물론 굳이 그러해야 할 까닭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걷거나 말이나 수레를 타고서 그 땅의 풍취를 온 몸으로 체감하는 여행과, 깔끔하고 세련된 현대식 이동수단 속에 몸을 감추고서 바깥의 대지와 차단된 채로 행해지는 여행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열하일기’와 ‘표해록’의 번역을 계획하면서, ‘타이베이’, ‘하노이’, ‘교토’ 등을 다녀왔다. 이는 모두 위의 원전들과 다소 연관이 있는 지역들이며, 번역작업에 보다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그 여정들은 참으로 고독했고 지극히 여유로웠으며, 그럼으로써 ‘박지원’이나 ‘최부’의 감성에 좀 더 접근해보고자 했다.
이제 ‘열하일기’의 번역을 실제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열하일기’의 루트를 직접 여행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아마도 ‘열하일기’의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중국의 동북지역을 수차례에 걸쳐 여행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 다시 여행을 나설 생각을 하면, 이내 설렌다. 하지만 그 설렘은 한없이 고독하며 지극히 여유로운 설렘이다. 고독하면서 여유롭다니. 이는 아주 현묘(玄妙)한 감정상태임이 자명하다. 여행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당최 체험할 수 없는 현묘함인 것이다.
그러한 현묘함으로서, ‘열하일기’를 번역하는 동안 필자는 늘 그 여행길에 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으며,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는 ‘연암’과 동행하며, 항상 그 여행길에 있다.

인간존재의 삶이란 다만 ‘지금 여기’의 상황일 따름이다. 물론 분명히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거나 미래는, 죄다 ‘지금 여기’의 현재에 포괄될 따름이다. 실상 어떠한 경우에도, 과거나 미래는 단지 인간존재의 인식 안에서만 작동하는 하나의 개념이거나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존재는 모름지기 항상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만 한다. 과거라는 것의 누적된 결과로서 현재가 작동하는 것이며, 그러한 현재가 누적되어 미래가 작동할 것이다. 그런데 미래는 하나의 예측일 따름이며, 결코 실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예컨대,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인간존재의 현재가 제아무리 미래에 근접하더라도, 그 미래는 이미 현재보다는 나중일 것이므로, 결국 그 미래에 도달할 수는 없다. 이는 결코 궤변이 아니다.
더욱이 여기서 ‘웜-홀’이라거나 ‘다중 우주론’ 따위를 논변코자 함이 아니므로, 우리는 어쨌거나 인간존재로서 ‘지금 여기’의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현재의 ‘지금 여기’의 상황에 가장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집중하는 방편 중 대표적인 것이라면, 아무래도 여행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흔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여행을 미룬다. 그러한 핑계들은 나름대로 타당한 사유를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자식을 양육해야 한다거나, 건강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거나, 그런데 그러한 핑계를 앞세우다 보면 결국 여행길은 나설 수 없는 법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쫓기며 살아내다 보면, 시나브로 늙음과 죽음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여행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다. 여행의 자리에 꿈이나 이상이나 목표 따위를 대체해도 무방하며, 그 외에 또 다른 실천적 가치 개념을 대입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그 고백을 차일피일 미룬다면, 결국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고백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 사랑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혹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나 ‘심심상인(心心相印)’쯤을 말하고자 한다면, 다만 그런 말들은 당최 이러한 상황에 걸맞은 표현이 아니라고만 말해 두고 싶다.
인간존재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행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어떠한 실현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충분한 심사숙고가 선행되어야 함은 실로 자명한 노릇이다.
어쨌거나 어떤 방식의 여행이 모범답안일 수는 없다. 게다가 21세기에 굳이 ‘연암’의 방식을 좇아 걷거나 말을 탄다고 해서, 그 당시를 체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역사나 문화를 살필 때에는, 반드시 부득이하거나 불가피한 시공간적 차이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반드시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다만 ‘연암’의 시대가 나을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21세기가 그 시대에 비해서 나은 것도 없다. 인간존재라면 누구라도 부득이하게 자기의 시대적 상황 안에서 살아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상황을 억지로 벗어날 수 있는 방편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하일기’의 ‘속재필담’에는 이러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 이른바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새나오는 학문이니, 지금 향교나 서당에서, 그저 글을 읽기에만 힘쓸 뿐, 그 의미를 강론하지는 않으므로, 귀로는 똑똑히 들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아득하기만 한 것입니다.[是所謂口耳之學, 現今黌塾之間, 慣是念書, 不曾講義, 故耳聞了了, 目視茫茫.]
그러니 입으로는 제자백가의 이론이 모두 술술 풀려 나오더라도, 손으로 글을 지어내려면 한 글자도 어려운 것입니다.[口宣則百家洋洋, 手寫則一字戛戛.]”

무릇 대부분의 학문 활동은 귀로 듣는 것이 주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입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열하일기’에 따르면, 그러한 과정은 눈의 활동과 어우러져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학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나 입에만 치우치지 않는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귀와 입과 눈이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체험을 통해서라야만 한다. 그러한 체험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하라면, 필자는 응당 여행을 말할 것이다.
여행이야말로 귀와 입과 눈이 동시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나아가 몸과 마음이 유기적이며 종합적으로 작동해야만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곳에는 이러한 기술도 있다.

“귀에는 ‘대유산(大酉山)’과 ‘소유산(小酉山)’이라는 ‘이유’의 동굴 속에 천권의 책을 간직하였는지 모르겠으나, 눈으로는 ‘고무래 정’자도 보지 못 한답니다.[耳藏二酉, 眼無一丁.]
하늘에 글 모르는 신선은 없으며, 속세에는 말 잘하는 앵무새가 있는 법이지요.[天上無不識字神仙, 世間還有能言之鸚鵡.]”

제아무리 많은 책을 간직하고서 그것을 독서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학문이 될 수 없다. 그저 독서하거나 암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는 한갓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공부를 했으며, 공부를 하고 있다면, 쉴 새 없이 지어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듯한 작품을 지어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어내는 연습을 결코 멈추지 않을 때, 그 학문은 제대로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늦은 나이에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어내는 연습을 결코 쉬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흉내 내는 앵무새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리 소질을 지녔더라도, 처음부터 걸작이나 명작을 지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플라톤’의 발언처럼, 반드시 ‘미메시스(mimesis: 模倣)’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인간존재가 지닌 본래성이다.
그런 탓에 필자의 작품들이 간혹, 다소 기존의 작품을 흉내 낼 경우, 아주 별스런 비난을 해대는 자들을 본다. 그런데 그런 자들의 저작을 찾아보려고 하면, 지어낸 것이 거의 없다. 자기는 전혀 지어내지 못 하면서, 다른 이의 저작에는 온갖 험담을 해대는 것이다.
그러한 비난이 혹여 어떤 개인적인 반감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공부를 하려는 자라면, 그러한 비난을 일삼기보다는 스스로 지어내는 일에 매진하려는 마음이 요구된다.

예컨대, 필자는 대학원에 재학하는 동안, 그러한 캐릭터의 족속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곳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려는 마음보다는, 잠시 허울 좋은 대학원이라는 시공간에서 삶의 고통을 피해보려는 자들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치고 그럴 듯한 소논문 한 편 스스로 지어내는 자를 보지 못 했다. 그러면서 관점이 바뀌었다느니, 아직은 시기상조라느니, 갖은 핑계로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아마도 그런 자들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제 명의로 된 텍스트는 결국 지어내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들 대부분은, 자기의 작품을 고뇌하며 지어내야 할 시간에, 무리지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소문을 곱씹는 것으로 소일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어느 세월에 자기의 관점이 생성될 수 있겠는가. 아니 한낱 앵무새 역할이라도 해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필자는, 대학원 시절에 참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지만, 늘 어쩌다가 내가 그런 곳에 머물게 되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이제 그곳을 떠나 이렇게 내 삶의 여행길에 있으니, 더없이 홀가분하다.

‘열하일기’의 시절은 말할 나위 없으며, 이는 지극히 고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인류의 4대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직접 저작이 없다. ‘붓다’, ‘소크라테스’, ‘공자’, ‘예수’가 모두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경지가 손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저 그렇다는 얘기다.
그만큼 자기의 작품을 스스로 지어내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공부하려는 자라면, 어떻게든 자기의 작품을 스스로 지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릴없는 무작자(無作者)들의 경우라면, 어떻게든 자기의 작품을 지어내는 자들의 노력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시간에, 자잘한 습작이라도 지어내 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공부다운 공부일 것이다.
나아가 무언가를 흉내 내는 앵무새의 수준에라도 이르려고 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수년을 대학원에 재학하고서도 소논문 한 편 지어내지 못 한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러한 행위를 학문이라고 판단하겠는가.

그리고 7월 15일의 여정에서는, ‘중국’의 산하를 본 ‘조선인’들의 반응에 관하여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벼슬이 높은 자들은 섭섭한 표정으로 얼굴빛을 바꾸면서, 쉬이 이렇게 말한다.[上士則愀然變色, 易容而言曰.]
“도무지 볼 것이 없더군.[都無可觀.]”
그래서 왜 아무런 볼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何謂都無可觀, 曰.]
“황제가 머리를 깎았고, 장수와 재상과 대신들 모두가 머리를 깎았으며, 선비와 서민들까지도 모두 머리를 깎았다.[皇帝也薙髮, 將相大臣百執事也薙髮, 士庶人也薙髮.]
비록 그 공덕이 ‘은나라’나 ‘주나라’와 같고, 그 부강함이 ‘진나라’나 ‘한나라’를 넘어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아직껏 머리를 깎은 천자는 없었다.[雖功德侔殷周, 富强邁秦漢, 自生民以來, 未有薙髮之天子也.]
또한 비록 ‘육롱기’나 ‘이광지’의 학문이 있고, ‘위희’나 ‘왕완’이나 ‘왕사진’의 문장이 있고, ‘고염무’나 ‘주이준’의 박식함이 있다고 한들, 한번 머리를 깎으면 곧 ‘되놈’이고, ‘되놈’이면 곧 개나 양 같은 짐승이니, 우리가 그런 짐승들에게서 무슨 볼 것이 있겠는가.[雖有陸隴其李光地之學問, 魏禧汪琬王士徵之文章, 顧炎武朱彛尊之博識, 一薙髮則胡虜也, 胡虜則犬羊也, 吾於犬羊也何觀焉.]”
그러면서 이것이야말로 곧 으뜸가는 의리라고 주장하므로, 이야기하는 자도 잠잠하고, 듣는 자도 옷깃을 여민다.[此乃第一等義理也, 談者默然, 四座肅穆.]

이는 특히 벼슬이 다소 높은 자들의 반응인데, 그저 ‘청나라인’들의 변발 풍습을 무작정 억지스럽게 비하하는 발언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논리는 참으로 천박하다. 머리를 깎으면 무조건 ‘되놈[胡虜]’이고, ‘되놈’이면 무작정 짐승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여러 해 전, 최상위의 교육기관에 부속된 어느 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이와 동일한 용어로써 교묘히 필자의 주장을 비난하는 논문을 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논문을 기술한 저자는 필자와 일면식은커녕 이름조차도 알지 못 하는 자였으며, 지금 역시도 그 이름 따위는 기억되지 않는다. 때문에 당시 필자로서는 당최 그 저의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당시 여러 이유로 은둔 중이던 필자의 행동에 대한 온갖 소문들이 유발했던, 무조건적인 집단적 반감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쯤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의 주장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저 자기의 비위를 건드렸으며, 그러니 ‘되놈’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필자 역시, 그러한 짓을 하는 논문의 저자를 그저 한갓 ‘되놈’보다도 못 한 놈이라고만 치부해버렸으며,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 저자의 논문이 학술지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으니, 그 저자의 죽음 이후에도 그 기록은 남겨질 것이다.
다만 그 비난의 대상이 왜 ‘되놈’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대학원의 연구소나 학계를 떠나버렸으며, 오래지 않아 필자의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므로, 사실대로 밝혀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하다. 이에,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이 지니는 부득이한 편면성을 늘 유념해야 한다는 생각도 아울러 되새기게 된다.

‘열하일기’의 한 대목을 번역하면서, 왜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연암’의 시대나 21세기나, 나름대로 학식이나 지위를 지녔다는 자들의 자기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쉬이 부화뇌동하는 작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후문에 의하면, 그 자가 ‘중국’의 어느 명문대학에서 수학하였다고 하니, 필자로서는 그 기억이 더욱 허망하게만 여겨진다. 고작 시류를 좇아 이득이 될 만 한 일이라면, 그것이 한갓 소문에 불과할지라도 핏발을 세우며 무작정 비난하고 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사리 공부한 결과인 것일까?
현재에 이르도록 필자의 주장들이 다소 파격적이고 극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와 유사한 부류들은 여전히 익명의 무리를 지어 온갖 수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21세기의 ‘한국인’들이 ‘조선인’들의 후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같은 곳에서 ‘연암’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나와 같은 하류의 선비들은, ‘장자(莊子)’처럼 ‘중국’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다고 말하며, 또한 똥 부스러기에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余下士也, 曰壯觀在瓦礫, 曰壯觀在糞壤.]”

어쩌면 이것이, 정작 ‘연암’이 시대 안에서 외치고 싶었던 참소리일 것이다. 물론 ‘연암’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의한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은, ‘청나라’에서일망정 배울 것이 있다면, 설령 그것이 기와 조각이나 똥 부스러기에 불과하더라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쉬이 주장하기 어려운 지극히 실용주의적이며 실리주의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연암’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분명 ‘장자’의 ‘지북유(知北遊)’편을 인용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지극히 비판적인 사유방식을 지녔던 것으로 판단된다.
모름지기 ‘한나라’ 독존유술(獨存儒術)의 전통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를 가장 잘 신봉한 국가공동체가 바로 ‘조선’이다. 그럼에도 ‘연암’은 보란 듯이 ‘장자’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악독한 것이 있을까. 그런데 또한 사람의 마음처럼 선량한 것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총욕약경(寵辱若驚)’을 말했던 것이다. ‘총욕약경’은 사랑받거나 모욕당하거나 죄다 놀란 듯이 반응하라는 뜻이다.
인간존재는 쉬이 자기를 사랑해주는 상대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으며, 자기를 모욕하는 상대에게는 악의를 갖는다. 이는 비단 인간존재만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온갖 만물이 지닌 일종의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본능적인 차원의 보편성일 따름이다.
따라서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좋아하고, 자기에게 해악이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일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지라도, 그것이 무조건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아가 적어도 인간존재로서 동물의 차원을 극복하였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응당 이득이 되거나 해악이 되는 상황 자체에 대해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로서는, 그렇게 ‘총욕약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배려하는 고독과 여유가 참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필자는 늘, 풍족한 관광이 아닌 긴박한 여행을 다니는 탓에, 그 과정은 실로 쪼들리며 고달프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나선 여행은, 아주 고독하며 또한 아주 묘하게도 한없이 여유롭다.

여하튼, 학문이 귀와 입과 눈과, 나아가 몸과 마음의 동시적인 작용으로서 작동했을 때, 그것은 참된 학문일 수 있다.
예컨대, 동시대를 살아내는 인간존재일지라도, 그의 공부가 참되지 못 하다면, 그 결과는 국가나 민족은 물론이며, 인류의 거대한 고통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로서, ‘최제우(崔濟愚: 1824~1864)’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의 경우를 거론할 수 있다. 거의 동시대를 살아낸 두 사람은, 모두 시대의 거대한 사상가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참된 공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최제우’는 민족 고유의 경천(敬天)사상을 바탕으로 유불선(儒彿仙)과 도참사상, 후천개벽사상 등을 종합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하였는데, 기본적으로 동학은 서학(西學)에 저항하기 위해 태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를 주장하였는데, 이는 후대 ‘최시형’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시천(人是天)’이나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그리고 ‘손병희’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존왕파(尊王派)로서,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사상가이다. 그는 ‘유수록(幽囚錄)’을 저술하여서 정한론(征韓論)이나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하였는데, 그것은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주장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홋카이도’의 개척, ‘오키나와’의 일본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 ‘타이완’, ‘필리핀’ 등의 점령을 주장하였고, 현재에 이르도록 일본 우익의 교조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동시대에 노도처럼 밀려드는 서양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생존하기 위하여 고뇌했던 두 사상가는, 많은 차이를 지닌 사상적 결과물을 생산한 것이다.
‘최제우’의 사상은 그 토대를 하늘이라는 천지자연에 둠으로써, 민족이나 국가는 물론이며, 나아가 항상 인류 그 자체와 우주까지도 사려(思慮)한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의 철저히 일본이라는 국가에만 몰두하며, 그 국가공동체를 위해 주변의 국가공동체들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아 점령하고자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과거에 전쟁에 미쳐 날뛰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에 의한 인류의 고통은 말할 나위 없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면서, 그들의 자리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되었다. 현실세계의 서민대중으로서는, 단지 그 대체세력들이 과거의 전쟁광(戰爭狂)들처럼 미쳐 날뛰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나마 다소 안도할 따름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우선 ‘미국’과 ‘중국’이라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한 민족이면서도 분단되어 있는 ‘북한’의 문제도 있다. 게다가 여전히 과거 전쟁광의 시대를 은밀히 회고하는 ‘일본’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 속에서라도, 부득이하게 생존해야만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삶이며,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삶이다. 그러한 삶의 지향을 모색할 때, 지난날 시대로부터 앞서 간 사유방식을 지니고서 살아낸 한 여행자의 삶은, 현대의 우리에게 적잖은 지침이 되어준다.
어쨌거나 기껏해야 몇 십 년을 살아내는 인간존재로서, 아주 다양한 삶의 체험을 갖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한 번 몸과 마음에 익숙해져버린 것들을 변화시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더욱이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굳이 그러한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렇게 삶이 머뭇거릴 때, 여행은 새로운 열정을 유발시켜 준다는 사실만큼은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리고 ‘열하일기’를 독서해 보면 익히 알 수 있겠지만, ‘연암’ 역시도 필자와 유사한 인식을 가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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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3

도서정보 : 박지원 지음(탁양현 옮김) | 2018-06-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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熱河日記 : 연암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 3





모름지기, 현대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학문체계는 과학이다. 그러다보니 어떠한 학문일지라도, 결코 과학적인 사유방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인문학 역시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 고유의 특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러해서도 안 된다. 다만, 무작정 인문학의 고유성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적인 사유방식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어떠한 가치부여에도 초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가치중립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과학적인 판단을 하게 되면, 그것은 대체로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판단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과학의 특성을 닮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과학과 동일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더라도 가치중립성은 어떠한 학문이든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지향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삶의 과정 안에서, 인간존재라면 누구라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으로 언행하게 된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 육체가 지닌 본래성이지만, 그것은 어떤 정지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팔이 안으로만 굽은 상태에서 정지되어버린다면, 그것은 일종의 장애이며, 온전한 팔의 작용을 할 수 있는 상태일 수는 없다. 어쨌거나 안으로 굽는 팔은, 이미 바깥으로 펴질 것을 동시적으로 예상하고서 작동하는 것이, 몸의 본래성이다. 나아가 그런 것이 곧 ‘천지자연의 자연스러움[無爲自然]’이기도 하다.

그러한 자연스러움 안에서, 한 가지쯤의 일을 평생 동안 줄곧 해 내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내 새로운 일을 찾아 다양한 삶을 꾸려내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삶의 방식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삶의 모양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라면, 필자는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어릴 적부터 필자는 늘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 타입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비슷한 연배에 비한다면, 아주 다양한 삶의 체험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시나브로 여행자의 삶을 살게 되어버린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정도 여행하는 삶이 익숙해진 이후에는, 이제 굳이 목적지마저도 정하지 않는다. 실로 떠도는 나그네로서의 여행방식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처음 여행을 시작하던 시절에는 누군가 이끌어주는 여행이었다. 그러다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철저히 홀로 떠도는 홀가분한 여행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것이 여행자의 본색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가는 여행길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느 시대든, 상대적으로 소유하지 못 한 자들의 삶은 버겁기 마련이다. 그것은 첨단의 21세기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필자의 생활 역시, 사회적으로 최하층인 계층에 소속되어서 근근이 생계를 꾸리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가난의 상황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마치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어제도 그러하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그러할 듯하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에 내던져진 서민대중으로서, 그나마 필자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여행이다.
그러한 삶의 여정 중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숱한 체험을 한다. 오늘도 아주 많은 일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나는 늘 적잖은 선택의 순간에 세워진다. 그런데 그 선택은 늘 생존을 지향한다. 그것이 인간존재로서 죽음의 순간까지 지닐 수밖에 없는 본성의 명령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순간의 선택이라는 근심을 해소해 가는 일, 아마도 그런 것이 인생이리라.

흔히 여행자의 삶을 유목민의 삶에 빗대며, 그 반대의 경우를 말하기도 한다. 실로 유목민의 삶은, 그 자체가 여행이며 이동이므로 마땅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유목민은 철저히 생존을 위해 이동하는 것이며, 여행자처럼 노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유목민의 이동’과 ‘여행자의 노닒’이라는 차이를 인식할 필요는 있다. 곧, ‘생존을 위한 이동’과 ‘노닒을 위한 이동’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차이는 ‘열하일기’ 안에서도 쉬이 드러난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유목민의 경우처럼 생존이나 생계를 위해 이동하는 부류다.
마부나 하인들의 경우는 물론이며, 사신 일행에 벼슬아치로서 참여한 자들 역시 그러하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에게 부여된 업무이며, 그러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암’의 경우는 다르다. ‘연암’은 굳이 그 여정에 참여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물론 그것이 양반사대부로서의 특권을 지닌 자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양반사대부라고 해서 죄다 ‘연암’과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연암’이 지닌 여행자로서의 기질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런 탓에, 필자는 노니는 자로서의 ‘연암’의 미학적인 삶에 대한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미학적인 삶을 살아내는 자들은 다분히 예술가적인 기질을 생래적으로 지닌 자들이다. ‘연암’ 역시 그러하다고 판단된다.

지금 가만히 회상해 보면 필자의 지난 삶은, 그 과정이 자의반타의반이었을망정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학문적 활동을 할 만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30대 초반에서야 어렵사리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공부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대학원에서의 체험이 필자의 여행자로서의 삶을 이끈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석사와 박사과정 동안 늘 연구의 주제가 되었던 ‘장자미학(莊子美學)’은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자철학’이 논변하는 ‘소요유(逍遙遊)’야말로 두 말할 나위 없는 여행자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매순간 배회하며 고뇌하는 존재다. 그래서 여행자에게는 유별난 과거도 없고, 별다른 미래도 없다. 다만 ‘지금 여기’에서 여행자로서 노닐 따름이다. 그렇게 ‘지금 여기’를 노닐며 살아 낸다는 것은, 곧 ‘장자’가 논변하는 ‘소요유’와 다름 아니다.

또한 여행자의 노닒으로서의 여행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 임하는 것이다. 이는 곧, 지극히 상식적인 여론을 좇는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예컨대, 예로부터 민의(民意)를 외면하면서 지속될 수 있었던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흔히 권력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한 정치학적 개념쯤을 상상하지만, 굳이 권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의 현실세계에서 각 인간존재들이 생존할 수 있는 자격이나 역량 그 자체가 곧 권력이다. 그러니 필자의 삶 역시, 늘 권력 그 자체의 유지이며 지속이었을 따름이다. 그러한 권력 안에서 살아냄에 있어, 주변의 여론을 좇는다는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것이다.
예컨대, 이렇게 자연스런 권력의 지속을 가장 선명하게 천명한 철학자가 바로 ‘노자(老子)’다. ‘노자’의 철학사상을 대변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야말로, 민의를 거슬러 억지로 하지 않으며, 다만 천지자연의 자연스런 흐름을 좇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물며 ‘노자’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필자로서, 억지스런 삶을 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름지기 민의나 여론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지각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될 뿐이다.
때문에 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삶의 상황 안에서 아주 민감하게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죄다 깨어 있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잘 안다. 그렇더라도 필자로서는 나름의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
그런 까닭에 필자는, 늘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무언가를 고심한다. 그리고 그것은 늘 주변인들의 여론에 적극적으로 민감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고심이다. 그렇게 고심이 거듭되다가, 필자는 늘 동일한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된다. 바로 여행길이다.

필자의 판단으로서는, 주변의 여론을 거스르지 않으며, 타자들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으며, 자기 나름의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바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십 수 년 동안이나 여행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게 여행길을 계획하거나, 여행길에 나설 때면, 여행은 늘 필자로 하여금, 주변인들의 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사려토록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늘 죄스런 마음이 앞선다.
물론, 필자가 어떤 특별한 범죄행위를 자행해서가 아니다. 그저 천지자연과 인류의 자연스런 배려를 인식하지 못 하고서, 잠시잠깐 이기적이거나 극단적인 외곬의 마음을 지녔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세계의 인간은, 어쨌거나 홀로이면서도 결코 홀로일 수 없는 탓에, 항상 ‘이중적 동시성’을 사려해야만 하는 존재인 탓이다.
역사 안에서 민의의 여론을 거스르는 경우, 그 결말은 늘 비극적이기 마련이었다. 이를 잘 아는 필자로서, 여하튼 여론을 거스르는 언행을 자행할 순 없는 노릇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껏 노장(老莊)철학을 전공 삼아 공부한 필자로서는, 비록 필자가 한없이 가난하고 더없이 고독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죽음의 순간까지 어겨서는 안 될 신념이라고 판단한다. 그러한 인식마저도 지니지 못 한다면, 지난 시절의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으로서는, 단지 서얼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자보다도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렸던 ‘연암’의 삶을 회고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고단함을 잠시 잊어볼 따름이다.

필자는 ‘열하일기’를 번역하면서, 아주 재미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연암’의 학문 수준이,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중국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별반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분명히 ‘연암’은 조선인이다. 그리고 한자는 분명히 ‘중국’의 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의 한자 실력은 물론이며, ‘중국’의 학문에 대한 이해 역시 여느 중국인을 능가하고 있다.
비록 한자가 오랜 세월동안 우리 민족의 문자로서 사용되고 있다지만, 어쨌거나 중국인들에게는 모국어이고, 우리 민족에게는 외국어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이해가 가능할 텐데, 필자로서는 외국의 문자를 현지인들보다 더 능란하게 사용하는 수준에 이른다는 것이, 어쩌면 참으로 지독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조선인’들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 문자인 한글이 그나마 대접을 받았던 시대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지금의 21세기는, 말할 나위 없이 또 다시 영어라는 외국어가 득세하는 시절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한글이 세계 언어로서의 위상을 얻지 못 하는 한 지속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도 여전히 한자로 된 선조의 텍스트를 한글로 번역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러한 작업이 다소 씁쓸함을 갖도록 한다.
다만 필자의 작업은, 한자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한글을 위한 작업임을 밝혀두고 싶다. 필자로 하여금, 동양학을 공부하는 동안 늘 불만 섞인 한숨이 새어나오도록 했던 일은, 기존의 번역서들 대부분이 한글을 위한 번역이 아니라 한자를 위한 번역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정작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한자 투인 탓에 당최 알 수 없는 문장들이 허다했다. 때문에 그런 것을 번역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따라서 앞으로도, 필자의 번역작업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 아주 결정적인 기회인데도 결국 그 기회를 점수로 만들어 내지 못 하거나, 설상가상으로 병살타를 쳐버리는 선수들이 있다. 그럴 때면, 관중들 대부분은 그 선수를 비난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선수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어쨌거나 정작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득점타를 치고 싶은, 가장 강렬한 열망을 지닌 사람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바로 그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은 비단 프로야구 경기에만 한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삶을 살아내는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늘 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면서 자기의 삶을 꾸리기 마련이다.
다만 그러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때론 당최 시운(時運)이 따르지 않는 탓에, 결국 일정한 성취에 이르지 못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삶의 노력 자체가 문제될 일은 아니다.
예컨대, ‘지금 여기’에서 생계를 꾸려내고 있는 거의 모든 서민대중들은,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실로 치열할 만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실세계에서 생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저 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도록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이 천지자연 안에서, 공짜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필자의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든 해코지를 하려는 자들이 적잖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으며, 일면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필자의 텍스트들을 검색하고서는 무작정 해코지를 해대니, 당최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아마도 필자가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아내기로 결정하고서,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면서부터는, 늘 그러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이나 세상일들이, 결코 제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법이며,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쩌다가 필자의 언행이 몇몇의 비위를 건드린 모양이지만, 그렇더라도 필자로서는 마땅히 대처할 방편이 없으며, 굳이 반응할 까닭도 없다. 필자의 삶이 그런 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자들 대부분은, 인터넷 바다의 허망하고 천박한 일군의 누리꾼들처럼, 어떠한 빌미로든 꺼리를 만들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족속들이지 않은가.
그런 자들의 면면이 다소 추측되기는 하지만, 그저 그럴 시간에 제 나름의 삶의 공부에 진력하라는 당부쯤을 해볼 수 있을 뿐, 필자로서는 그들의 삶에 대해 별다른 관심도 없으며, 실상 관심을 가질만한 자격 또한 없다.
다만, 당장이라도 그 악연의 끈을 홀가분하게 싹둑 잘라버리고 싶지만, 살아내는 동안이라면 그런 자들과 부득이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존재의 삶에 내재된 본래적인 업(karma)일 것이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업은 인간존재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테지만, 실천적 현실주의자인 필자로서는 그러한 이론을 그다지 수긍하진 않는다.

어느 뇌 과학자는, 아주 고도의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그 순간이 곧 인류가 멸망하는 순간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아주 고도로 발달되어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어떤 지능적 존재가 탄생된다면, 이내 이 지구별 안에서 인간존재가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최초에 지구별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점유하기 시작한 계기라면, 흔히 언어나 도구의 사용을 거론한다. 맞는 말이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의식적인 노동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노동의 결과로서, 21세기에 이르도록 대단한 인류의 문명은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그러한 노동을 대체하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아주 속편한 누군가는, 그렇게 인공지능존재에게 노동의 영역을 전가시키고서, 인류는 더욱 고상하고 아름다운 작업을 수행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정도의 인공지능을 지닌 기계들에 의해 인류의 노동에 대한 대체는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공상과학영화의 흔한 스토리처럼, 그런 인공지능 기계들은 결국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고서는, 어쩌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게 될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실상 이 천지자연은 인류에게 별다른 애정을 갖지 않는다. ‘노자’의 주장처럼, ‘천지자연은 결코 인자하지 않은 존재[天地不仁]’일 따름인 것이다.
인류가 제아무리 어떤 신적인 존재적 이미지를 창조하여서, 억지로 인류에 대한 신의 사랑이나 자비를 강변하더라도, 그런 것은 결국 지극히 인간 중심주의적인 주장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실상 지극히 수더분한 상식에 의하더라도, 도대체 하늘이나 땅이 무슨 까닭으로, 아주 특별히 인간만을 사랑한단 말인가. 이야말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유아적(幼兒的/唯我的) 착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필자 역시 인간인 까닭에, 이 천지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가장 특별한 역량을 지닌 인간존재만을 각별히 사랑해 주기를 바라며, 이러한 바람은,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그저 인간존재만의 바람일 따름이다. 제아무리 인류가 억지를 부려도, 천지자연은 늘 그러하게 만물을 대할 따름이다. 그래서 천지자연은 굳이 인자한 척 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사랑하고 저것을 미워하는 법이 없다.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버리는 법도 없다. 그런 것이 천지자연의 실상 그 자체인 것이다.

필자로서는, 굳이 천지자연에게 사랑을 애걸하지 않을 만큼 홀가분해 질 수 있을 때, 인공지능의 고도화에 대한 문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인간존재의 지능적인 마음이, 천지자연에 대해 초연해 질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제작하는 인공지능 역시 그러한 마음을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인류가, 인류의 멸망 이전에 그러한 마음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 실현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인류의 마음이 본연의 본래성으로 회귀된 상태를,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고 천명했다.
‘무위자연’은 말 그대로, 어떠한 억지스러움도 없는 자연스러움을 의미한다. 그러할 때, 현대의 인류가 불안해하는 미래적 재앙은 다소나마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무위자연’의 상태에 다가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론으로서, 필자는 여행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여행은, 홀로인 서로들이 동시적 이중성의 시공간 안에서 복합적으로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하는 여행일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으로서는 쉬이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지구별의 모든 것들이 죄다 파괴되는 미래를 이미 예견하면서도, 망연히 손 놓고 있다거나, 지난 역사 동안 지나치게 일그러져버린 온갖 가치체계들이 무조건 옳다며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필자로서는, 인류의 미래가 그다지 희망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군의 페미니스트나 니힐리스트들의 주장처럼, 그저 암담하기만 한 것으로 판단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늘 어떤 사이[間]에나 머무는 존재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열하일기’ ‘일신수필’의 ‘장대기’에서 ‘연암’은 이렇게 말한다.

“대개 ‘장대’에 오를 때에는, 그저 앞만 보고서 층계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가므로, 그 위험함을 알지 못 하다가, 내려오려고 눈을 한번 들어 밑을 내려다보면, 저절로 현기증이 일어나게 되니, 그 허물은 죄다 눈에 있는 것이다.[蓋上臺時, 拾級而登, 故不知其危, 欲還下則一擧目而臨不測, 所以生眩, 其崇在目也.]
벼슬살이라는 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바야흐로 위로 자꾸만 올라갈 때에는, 한 계단의 절반이라도, 남에게 뒤질세라 두려운 나머지, 간혹 남을 밀어젖히면서까지 앞서려고 다툰다.[仕宦者, 亦若是也, 方其推遷也, 一階半級, 恐後於人, 或擠排爭先.]
그러다가 마침내 몸이 높은 곳에 이르면,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及致身崇高, 懾心孤危.]
하지만 이미 외롭고 위태로워서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길이 없고, 뒤로는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어서, 다시 올라갈 의욕이 사라질 뿐 아니라, 내려오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進無一步, 退有千仞, 望絶攀援, 欲下不能.]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서 모두 그러하다.[千古皆然.]”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서, 높이 오른 자들은 불안한 법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떠한 짓을 자행했으며, 자기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 역시,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짓이라도 자행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을 강점하고서 수십 년간 높은 지위에 군림하던 ‘일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선인’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항세력은 물론이며, 일반 백성들이나 심지어 ‘일제’에게 아주 우호적이었던 친일파에 대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응당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는 판단을 해볼 수 있다. 남의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니 항상 불안했을 것이므로, 설령 그가 친일파일지라도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발 뻗고 자기 위해, 맞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굳이 때릴 일도 아닐 것이다. 정신적인 장애로 인해 극단적인 폭력성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남을 때리는 일이 어찌 맘 편한 일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늘 되풀이되곤 했다. 다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역사적으로 ‘중국’은 늘 선진국이며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고, ‘한국’이나 ‘일본’은 후진국이며 약소국의 지위에 있었다. 더욱이 ‘일본’은 항상 ‘한국’보다도 뒤처지는 입장이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게 있어, ‘중국’은 천자의 나라라고 하여 받들어 섬기는 사대(事大)의 대상이 되었고, ‘일본’은 왜구(倭寇)쯤으로 불리며 오랑캐 중에서도 오랑캐인 족속으로 비하되었다.
그러던 상황이 근대에 이르며 서구 제국주의와 얽히면서 반전되었고, 그래서 ‘한국’은 물론이며 ‘중국’도 침략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양차대전이 끝난 후, 패망했던 ‘일본’은 이내 경제대국이 되었고, ‘남한’ 역시 경제부국이 되었다. 이제는 ‘중국’도 예전의 영화를 되찾으려고 하는 시절이다.

여하튼, 전통적으로 ‘중국’은 늘 ‘때리는 놈’의 지위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일본’에게 크게 한 방 맞고 말았다. 크게 한 방을 휘두른 후, ‘일본’은 이제 어떻게든 ‘때리는 놈’의 지위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맞는 놈’의 지위에만 있으며, 어쨌거나 맞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따름이다.
이러한 국가 간의 역학관계는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별반 다를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때리는 놈’과 ‘맞는 놈’이라는 두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노니는 놈’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말할 나위 없이 대표적인 ‘노니는 놈’이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은, 출생 이후 줄곧 ‘때리는 놈’과 ‘맞는 놈’밖에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식으로 훈육 받는다. 그런데 오롯한 필자의 체험에 따른다면, ‘노니는 놈’으로서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으며, 그 삶이 다른 놈들에 비해서 더욱 충만하며 행복할 수 있다고도 여겨진다.
물론 이러한 세 부류 이외에도, 어떤 놈이든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놈으로서 주변인들에게 해코지 않으며 살아내고 있다면,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연암’의 여정을 좇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다. 며칠 동안 소나기가 마음을 심란케 하더니,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개었다. 말 그대로 가을 초입의 하늘이다. 파란 하늘을 보니, 당장이라도 여행길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당분간은 꼼짝없이 매인 몸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여비도 마련되어야 한다. 제아무리 필자의 여행길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한들, 대부분 타국 땅에서의 여행인 탓에, 그 최소한의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는 모양이다. 지금으로서는 ‘열하일기’의 번역을 마치고서, 조속한 시일 내에 직접 그 루트를 답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21세기 방식으로 새로이 기록될 것이다. 그야말로 ‘21세기 열하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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