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철학,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다양한 각주다

도서정보 : 탁양현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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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洋哲學의 開祖, 플라톤의 哲學思想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구라’다.
그러니 Romeo들이여. 누군가의 첫 인상은, 되도록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Juliet들이여. 누군가의 첫 마디는, 되도록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 혹은 중간으로만 뒤섞이는 이념의 문턱에서, 그리고 어떤 충만(이득) 속에서, 오로지 시장 한편의 으슥한 곳으로만, 꼬여 드는 자들이 있다. 이념적인 로미오들처럼. 경제적인 줄리엣들처럼.
미국을 role model로 삼든, 부탄을 롤 모델로 삼든, 그저 그러려니 한다. 그림자권력적인 법칙에, 보다 잘 복종한다는 사실 말고는, 달리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인 탓이다.
무수한 잡종의 genre 안에서, 수도원마다의 독특한 전통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림자권력이 엄밀히 규정해 둔 진리에 저항하는, 眞理不定者로서 살아낸다는 것은, 살아내는 동안 여러 가지 온갖 疾病的 徵候로써 고통스러워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탄식으로 살고 싶은 자에게, 미국식 삶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미국식으로 살고 싶은 자에게, 부탄식 삶은 고통스럽다. 독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죄 그러하다.
동일한 상황의 持難한 반복이다. 동일한 언어의 지난한 반복이다. 그리고 오로지 고유한 법칙성만을 탐색하는 건조한 사유형식들이 있다.
그래서 일까.
되풀이할수록 어쩐지 마귀와 같은 명제들은, 절로 단단해지기만 한다.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는다고들 한다. 그러니 나는 황혼의 기타 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평화는, ‘전쟁적 지배’보다는, ‘계약적 복종’을 선호하는 상태다. ‘최후의 전쟁’에 의한, 노예적 정치(통치)의 종말이라고 해도 그러하다. 억압이나 압제를, 그림자권력의 대표적 속성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유치한 가설에 불과하니까. 자못 거침없는 marbling의 현혹처럼.
어떤 존재자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분석)할 수 있다고, 착각(망상)하는 자들이 있다. 인간존재를 넘어서는, 도약의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존재자로서, 스스로·저절로 춤추며 노래하는 자들이 있다.
그림자권력에 의해, 봉인되어enveloppé버린다. 거듭 함축되어impliqué버린다. 그렇게 각인되어impressé버린다. 그런 ‘것’들에게 현실세계는, 스스로 춤추며, 저절로 노래하는 황제처럼, 각별한 의미나 가치를 결코 지닐 순 없다.
Matador의 마지막 칼질에, 거대한 황소가 맥없이 나자빠진다. 흥분한 군중들은 거세게 환호한다. 군중들 틈에서, 나는 어쨌거나 스스로 非正常人(범죄자, 불순분자, 정신질환자 따위)임을 시인해야만 했다.
무슨 까닭인지, 鬪牛士보다는 황소의 편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밤, 투우장의 황소가 되어서, 칼에 찔리는 꿈을 꾸었고, 다음날 실제로 황소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해야만 했다.
막장을 향해 갈 데까지 간다. 그래서 길이 끝나는 곳, 그리고 다시 길이 시작되는 곳. 그곳으로 간다. 그러니 죽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질서ordre와 명령ordre 그 사이에나 머문다. 그렇다. 진리는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體得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시나브로 그곳이 싫어졌을까.
이미 서툰 결핍으로나 간주되는 갖은 욕망 속에서도, 나는 나일 따름인 탓이다.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단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탓이다.
물론 아울러 어느 순간부터, 갖은 말장난이 지겨워지기도 했다. 말장난은 아주 재미나고, 누구보다 잘 할 자신도 있지만, 참으로 허망할 따름이니까. 말장난에 길들여져서 자못 익숙해질수록, 삶은 더없이 공허해질 따름이니까.
시답잖은 인연일랑은 죄 악연이 되어버렸다. 그땐 알지 못 했다고 한들, 추레한 변명마저도 될 수 없겠지. 그래서 고립된 기호는, 삼류 호러영화의 스토리와 유사하다.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무의미와 명백히 드러나는 무의미.
직접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아도, 이미 죽음을 아는 건, 단지 훈육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대는, 속이 풀릴 때까지 한껏 짓뭉개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나 쓴웃음 짓겠지.
지금껏 망상 속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이 꺼리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양, 무작정 쏘다니는 바람과 구름을 굳이 분별치 않는다. 참으로 어이없게 살아내는 가련한 인간존재들에게 부여된, 가혹한 계절의 흔적처럼 고유의 감각에나 덧붙여지는 고유명사들.
고작 그림자권력의 소모품(예견된 쓰레기)에 불과함을, 어떻든지 시인하지 않으려는, 가련한 군중들의 노력이라는 허망함처럼, 모든 것을 울음으로써 해결하려는, 미신적 치료(굿판)만큼이나, 모든 것 웃음으로써 무마하려는, 심리학적 시도(웃음치료) 역시, 당최 허망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여전히 착각 속에서 산다. 삶을 활짝 꽃피웠다면 幸運이다. 삶이 그저 그랬다면 多幸이다. 아무래도 여행자의 삶은, 다행스러운 행운이다.
누구나 그 길을 안다. 가장 아름다운 그 길을 안다. 가장 행복한 그 길을 안다. 가장 기쁜 그 길을 안다. 그런데 그 길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쁜 만큼의 고통을 반드시 요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추하고 불행하며 슬프더라도, 고통이 덜한 우회로를 택한다.
여행자의 가슴 속에는 항상 등불 하나가 있다. 그 등불을 좇으며, 한없는 여행길을 떠돈다. 아주 느린 여정이다. 그런데 아주 느린 길은, 정작 빠른 길인지 모른다.
떠나지 않고서는 결코 지금 이 순간을 발견할 수 없다. 떠나 보면 정작 소중한 것은 늘 우리의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하늘, 땅, 바람, 물, 별, 불…. 행복의 파랑새처럼, 항상 우리의 가장 곁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소중한 것들이 늘 곁에 있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 한다. 아니 다른 것들이 소중한 줄 안다. 명품, 보석, 주식, 아파트, 자동차, 예금통장….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들은 유용한 것이지, 소중한 것은 아니다.
network 속에서, 대체로 일정한 네트워크로부터 일탈한 자들은, 늘 말과 문자를 혼동한다. 아니 일부러 뒤섞는다. 그래서 불현듯 해체될 네트워크를 목적한다.
다만 언어적 사실과 언어적 본질을 자못 엄격히 분리하는 한, 언어는 결국 보편일 순 없다. 자연의 본성 안에서, 지금 이 순간 굳이 좋을 것도 굳이 나쁠 것도 없다.
자꾸 흐려져 가는 흐릿한 꿈속.
저주의 본능 안에서, 늘 흡혈의 욕망에 시달리는 vampire처럼, 시인과 철학자들 역시 환상 속에서 늘 어떤 결핍엔가 시달린다. 그렇게 잘 놀고들 있다. 잘 노는 자들은, 즐겨 노는 자들은 일삼아 욕을 먹는다.
자기보다 가진 것이 적은데도, 무심히 놀 수 있는, 그들의 놀이가 부러워서 배가 아픈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결코 노래하는 법을 잊어선 안 된다. 춤추는 법을 잊어선 안 된다.
消盡과 喪失의 보유Verspätung, 혹은 연기Nachträglichkeit. 누군가를 잔혹하도록 욕하고 싶다면, 정작 거울을 봐야 한다. 그럴 때 거울은 가장 거울다우니까. 그럴 때 비로소 철학함은 시작되니까.
수확을 앞둔 농부의 논이, 고라니 탓에 황폐해졌다. 인간존재의 삶은, 자기가 아는 만큼의 상황 속 체험이다.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호흡(헛소리, 소문)들만 난무한다.
정작 자기 자신을, 자기의 세계에서 텅 비우지 않으며, 그저 삭제(제거)해버린다면, 이제 남겨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수확을 앞둔 농부와 고라니의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관계처럼.
-하략-

구매가격 : 2,000 원

다산 정약용의 주체적 철학비판, 동양철학은 무엇인가

도서정보 : 정약용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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幽靈과 旅行者



幽靈이 떠돌고 있다.
온 세상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어느 理想主義者의 强辯처럼, 세상을 온통 집어삼키는 괴물로서, 너무도 거대한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것은 마지막 유령이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너무도 많은 유령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一見, 온갖 유령의 갖은 떠돎이, 우리가 흔히 아는 인류의 역사다.
쉼 없이 얼음이 녹아 흐른다. 백파이프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마치 향피리 소리처럼, 끊어질 듯 이어진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는다.
實相, 유령은 고독한 피에로다. 아니 고독과 비탄으로 가득한, 피에로의 흔적이다.
대부분의 피에로에게, 슬픔 이외의 감정은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슬퍼하지 않는 피에로가 실재한다면, 가장 먼저 그의 피에로로서의 자격은 剝奪될 것이다.
그래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피에로의 흔적은, 이미 유령을 닮는다.
그대. 여전히 고뇌하는 자여!
이제 그대는 피에로다.
그렇다. 흔적뿐인 피에로의 유령이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거대 도시.
지친 고래의 영혼은, 그 거리의 표면을 유령처럼 떠돈다. 어두워지면 알 만한 얼굴들마저도, 금세 어둠 속으로 숨어버린다.
수십 년 전부터 여행자는, 거대 도시에서 그런 유령들을 만났다.
최초의 낯섦이나 놀람과 달리, 수십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유령과의 만남은, 이제 지극히 권태로운 일상이 되었다.
여행자는, 아주 흔해빠진 유령의 일원으로서, 숱한 유령들을 만난 것이다. 흔히 유령은, 거친 짐승처럼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상태의 사람을 닮았다.
다만, 그런 유령에게는 미래가 없다. 더구나 과거는 이미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유령으로서의 狀態的 持續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 위의 God들은, 인간의 형상을 지닌 유령들의, 지독히도 어두운 코미디를 아주 재미나게 즐기고 있다.
만약 ‘人間 幽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들은 천국에서의 무료한 일상을, 결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지전능하다는 신들이 보기에, ‘인간 유령’들의 삶은, 참으로 유치하고 천박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래서 아주 재미가 있다.
아득한 전설처럼, ‘인간 유령’의 소문이 떠돈다.
결국은 떠돌아야만 하는 ‘바람 같은 소문[風聞]’처럼, 현실세계 여기저기에서 ‘인간 유령’이,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왜 자꾸 거대 도시를 찾아오는 것일까.
거대 도시에서 여행자는 철저히 고립된다. 저토록 무수한 얼굴 가운데서, 아는 얼굴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극심한 고립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여행자는, 그야말로 철저한 유령이다. 더욱 치열하게 유령으로서 선다. 누구도 지각할 수 없는 흐릿함으로서, 세상에 선다.
과연 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여행자는 모든 상황이 막막하기만 하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장마와 함께, 현재를 마무리할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대인기피증은 말할 것 없으며, 소음공포증 역시 악화되고만 있기 때문이다.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유령을 관념화시키는 것은, 아주 위험스런 일이다. 관념적 추상은, 곧잘 불가능을 넘어서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능을 넘어서는 현상 자체는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넘어섬은, 지극히 형이상학적이라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근대 이후, 지속적으로 형이상학을 해체하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결국 여행자들의 여행은, 지극히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여행자들의 본성이며,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렇게 뇌까렸던 것이다.
“인간이여, 피하라! 가혹한 검은 개가, 너의 곁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저 무지한 자들은, 여전히 온갖 욕망의 흔적만을 쫓고 있다.”
욕망의 흔적은 좇는 자들은 유령 자체이며, 그런 유령의 곁을 어슬렁거리는 ‘검은 개’는, 유령의 흔적이다. 사는 동안 ‘니체’는, 시나브로 그러한 실상을 보았던 것이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아주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외려 ‘지금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행복은 좀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지금 여기’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작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니.”
여행을 외면하는 많은 ‘인간 유령’은, 실로 불행한 존재다. 그런데 그 불행은, 그가 유령인 탓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외려 지금 그가 지나치게 행복하려고만 애쓰는 탓에, 불행해져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이미 심장이 늙어버린 청춘들은, 자기의 그림자에게 화풀이를 한다. 어쨌거나 그들의 심장은, 너무 일찍 취해버렸다.
어느 곳에서든, 유령은 다만 관찰한다. 굳이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령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기가 이미 유령이 되어버린 줄도 알지 못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유령은 또 다른 유령을 만나서, 새로운 유령을 생산하고서는 아주 기뻐한다. 이제 자기만큼 고통스러워할 새로운 대상적 존재가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령들은, 새로운 유령의 생성을 가장 위대한 작업으로 인식한다. 실상, 사는 동안 각 유령들의 유일한 단 한 번의 공동작업이, 섹스를 통한 새로운 유령의 생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유령이 탄생하는 순간, 유령들의 공동의 관계는 동시적으로 마감된다.
고통의 끈질긴 대물림.
이것이야말로 유령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적절하며 가장 근접한 규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령으로서 살아내는 자여.
그리고 그대, 또 하나의 유령이여.
애써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자 하지 말라. 그대가 누군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 역시 결코 그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만약 누군가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착각일 따름이다.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잊혀진 제국의 역사, 대한제국실록 1권,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도서정보 : 조선왕조실록(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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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帝國의 歷史, 大韓帝國



大韓帝國은 이미 잊혀진 帝國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제국을 일군 것은, 檀君과 高句麗 외에는 없는 듯하다. 비록 대한제국은 虛名에 불과하며,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苦肉之計였다. 그런 탓에 현대인들은 자의반타의반으로 그 역사를 忘却코자 한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짐짓 모르는 체 뭉개버린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음은, 고종 34년 10월 13일(1897)의 기록이다.

“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檀君과 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高麗 때에 이르러서, 馬韓, 辰韓, 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王業을 세웠으니, 禮樂과 법도는 唐堯와 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白嶽山의 남쪽에서, 天地에 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光武 元年으로 삼으며, 宗廟와 社稷의 神位版을, 太社와 太稷으로 고쳐 썼다.
王后 閔氏를 皇后로 책봉하고, 王太子를 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제 조선왕조는, 모름지기 대한제국이 되었다. 비록 대한제국이 되었을망정, 국가의 상황은 당최 겨를이 없었다. 더욱이 乙未事變(1895. 10. 8.)에 閔妃가 日本浪人 패거리에 의해 살해당한다. 민비의 행태나 조선왕조의 상황에 의한 결과이겠지만, 이는 실로 지울 수 없는 민족의 羞恥스런 汚辱이다.
현대에 이르러 민비를, 조선의 國母로서 더없이 德性있는 明成皇后로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제 역사를 되도록 보기 좋도록 潤色하려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으나, 그 대상을 선택함에 있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민비에 대해서는 여전히 各論이 紛紛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고종 34년 11월 22일의 기록이다.

“여러 신하들이 옛날 시호법을 상고하여, 온 나라에 빛이 미쳤다 해서, ‘明’이라 하고, 예악이 밝게 갖추어졌다고 하여, ‘成’이라고 하였다.
올리는 시호는 ‘明成’이라 하였고, 陵號는 ‘洪陵’이라고 하였으며, 殿號는 ‘景孝’라고 하였다.
…황후는 여러 차례 책봉하는 글을 받았다. 계유년에는 朝臣들이 尊號를 올려 ‘孝慈’라고 하였고, 무자(1888), 경인(1890), 임진년(1892)에는 황태자가 尊號를 더 올려, ‘元聖正化合天’이라고 하였다.
정유년에는 대소 신하와 백성들이, 나라가 독립의 기초를 세우고, 자주권을 행사한 것 때문에, 明나라 이후에 천하의 禮樂이, 다 우리나라에 있으니, 마땅히 황제의 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민비가 살해당한 후,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이 되면서, 민비 또한 명성황후로 추존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표면적으로 明成이라는 諡號의 의미는, 실상 그 기사의 전체를 감안한다면, 과거 明나라에 대한 事大主義가 완성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애당초 제국으로서, 황제의 국가라는 의지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의 대한민국 역시 그러하다. 남북통일로써 만주라는 故土를 收復하여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패권국으로서 浮上코자 한다면, 그저 자기편의 政權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執權을 위하여, 附和雷同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실록을 살피면, 무능하고 파렴치할수록 아주 그럴듯한 美辭麗句로써 온갖 논리를 늘어놓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로써는, 결코 국가공동체를 살려낼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로써 검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그러한 역사는 되풀이되는 듯하다. 그러니 비록 별다른 권력을 지니지 못했을망정, 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각 個人이 명료히 깨어서,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참으로 부단한 苦惱를 마다하지 않아야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공짜는 결코 없는 법이니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大韓帝國은 가장 비극적인 국가공동체 중 하나였던 탓에, 텅 빈 허공에 대한제국의 성립을 외침은, 한갓 喜劇的 퍼포먼스에 불과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그러한 비극이야말로 진실을 드러냄을 留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오히려 수치스럽고 고통스런 역사일수록, 微視史의 관점으로써 더욱 세밀히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누구라도 자랑스레 떠들어댈 만한 역사라면, 굳이 어느 누가 針小棒大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역사적 歪曲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물론 상대편의 입장은, 예컨대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처럼, 그 반대일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남사스런 역사라면, 어떻게든 없는 양 하는 것이 人之常情이다. 대한제국의 역사가 실로 그러하다.
기묘한 노릇이지만, 필자 개인의 삶을 회고할 때도 그러하다. 필자도 적잖은 세월을 사는 동안, 이런저런 체험 속에서 삶의 여정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삶이란 것이 마냥 좋고 행복한 일만 지속될 리 만무하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자살해버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치욕스럽고 고통스런 체험도 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런 일마저도 당최 목숨을 스스로 끊을만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아픈 체험의 기억이 망각될 리 없다. 그래서 필자의 마음은, 저절로 자기합리화로써 생존에 유익한 기억만을 보다 부각시키며, 害가 되는 기억은 저절로/스스로 무의식 저편으로 潛在시킨다. 이는 참으로 自然스런 현상이다.
예컨대 필자로서는, 지난날 철학과 대학원에서 집단에 밀려 겪었던 일들이나,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온갖 갑질을 당해야만 하던 일들이 想起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몸서리를 칠만큼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러한 侮辱 또한 필자의 삶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그러한 체험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러할 까닭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체험 속의 人間群像들과 再會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다만, 필자가 지속적으로 출판을 하는 탓에, 그에 대해 인터넷 따위를 통해, 지극히 천박한 대응을 해오는 짓거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내해야만 한다. 여하튼, 여전히 필자는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니 그런 일들에 대해 참으로 잘 제어하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선지 대한제국의 역사를 살피며, 무슨 까닭인지 자꾸만 필자의 삶이 오버랩된다. 대한제국의 시절을 극복하고서,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속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르러, 세계 패권국의 무역전쟁과 북한 문제 등으로 인해, 금세 역사의 나락으로 떨어질는지 모른다. 필자의 삶 역시, 그런 치욕스런 체험 이후에도, 여전히 생존을 위해, 이런저런 직업군을 전전하며, 최하층의 삶이나마 감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역사처럼, 어떤 사실 자체를 공부하여 그 진실을 알게 될 때, 다소나마 삶의 의미를 찾는다. 가뜩이나 빈곤한 삶인데, 의식마저 비루하다면, 그 삶은 참으로 비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원하는 만큼의 삶을 일구지는 못했지만, 이만큼이라도 공부하며 살아낼 수 있음은, 天地, 父母, 同胞, 法律 등 四恩의 은혜임이 자명하다.
특히 하늘땅과 부모의 은혜는, 더 이상 말할 나위 없다. 그러한 은혜가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 필자가 지금껏 생존했으며, 이 글들을 지어낼 수 있었겠는가. 우리 민족에게 아픈 역사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그러한 의미를 갖는다. 온갖 표면의 화려함이 ‘나’를 살게 하는 양 착각하지만, 정작 내면의 소박함이 ‘나’를 살게 하는 탓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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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예술철학, 완당집

도서정보 : 김정희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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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는, 18세기 말에 태어나서, 19세기 外戚勢道 政治期에 활동한, 모름지기 朝鮮王朝 최고의 書藝家로서 藝術家이다. 다음은 추사 김정희의 예술세계에 관하여, 김영한, 정인보, 신석희, 남병길, 민규호, 민노행 등이 기술한 몇 편의 기록이다.
아래의 기록 중에도 기술되었지만, 김정희가 流配의 삶을 살게 되는 情況을 살피면, 조선왕조의 政權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强固한 것인지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추사는 기존의 性理學的 지배 이데올로기에 비판적이었다. 性理學이란 기본적으로 명나라의 통치 이데올로기다. 반면에 추사는, 北學派 朴齊家에게서 학문을 전수받음으로 인해, 중원벌판에서 새로운 覇權으로 자리매김한 청나라의 고증학적 이념체계를 모색하였다. 그런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추사 역시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를 기반으로 하므로, 철저히 중국의 ‘것’을 苦心할 따름이다.
여하튼 이러한 流配的 체험이 추사의 예술세계를 더욱 심오하게 完熟시켰을 것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예컨대, 제주도 유배로써 秋史體가 완성되었음이 바로 그러하다. 이에 추사체는 추사 김정희의 삶 자체의 예술적 品格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顯現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비단 추사체에 의해 제작된 예술작품만이 아니라, 추사체 그 자체가 곧 예술작품이라고 해야 한다.
추사는 學術辨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학술이 天下에 있어, 수백 년을 지나면 반드시 변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차 변하려 할 적에는, 반드시 한두 사람이 그 단서를 엶에 따라, 천백 사람이 시끄럽게 그것을 공격하게 되고, 그것이 이미 변한 뒤에는, 또 한두 사람이 그 이룬 것을 한데 모음으로써, 천백 사람이 모두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시끄럽게 그것을 공격할 적에는, 온 천하 사람이 학술의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되므로, 그 폐단이 드러나지 않지만, 모두가 그것을 따를 적에는, 천하 사람이 학술의 서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므로, 그 폐단이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를 당해서는, 반드시 한두 사람이 그 폐단을 바로잡아, 의연히 이를 견지하게 되고, 그 변한 것이 이미 오래됨에 미쳐서는, 국가를 소유한 자가 法制로 얽어매고, 利祿으로 유인하여, 아이들은 그 학설을 익히고, 늙은이들은 그것이 그른 줄을 모름으로써, 천하 사람이 서로 그것을 편히 여기게 된다.
그러다가 천하 사람이 그것을 편히 여긴 지 이미 오래되면, 또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그것을 변개시킬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천고 이래 학술 변천의 대략이다.
…아, 학술이 변할 때에 당해서는, 천백 사람이 시끄럽게 공격하는데, 그들은 모두 용렬한 위인들이고, 학술이 이미 변한 뒤에는, 또 천백 사람이 모두 그것을 따르는데, 그들 또한 용렬한 위인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폐단을 바로잡아 꿋꿋하게 견지할 자가, 그 누구란 말인가.”

여기서 학술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조선왕조야말로 학술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은 대표적인 政體이다. 그런 학술 자체가 그릇될 것은 없지만, 그것이 어떤 權力體로서 작동하게 될 때, 부득이하게 이데올로기적 폐해가 발생케 됨을, 추사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폐단이 될만큼 권력적이지 못하다면, 애당초 그 학술은 정립될 수 없다. 이야말로 不得已다.
추사는, 그런 학술의 기묘한 이데올로기적 權力機制를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21세기라고 해서 별다를 게 없다. 예컨대, 현대의 대한민국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를 多數決의 集團쯤으로 誤解하는 事態가 그러하다. 輿論이란 것은 실상, 추사의 분석처럼, 자기의 이득을 좇아 용렬하게 작동하는 기괴한 集團的 時流일 따름이다.
變化와 衝突의 시대라면, 응당 그러한 弊端이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흔히 集團의 決定이란 것은, 이데올로기적이기 십상이다. 그런 탓에, 추사 역시 유배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추사는 결국 자기의 길을 간다. 실상 권력으로부터 流離되어버린 상태에서, 추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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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국인 서긍의 고려 여행기, 선화봉사 고려도경 1~15권

도서정보 : 서긍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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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兢과 ‘위안 스카이’와 ‘이토 히로부미’



무슨 까닭에선지, 필자는 熱河日記를 대하는 느낌으로 高麗圖經에 접근했다. 12세기 중국인 徐兢의, 다소 낭만적인 旅程을 상상한 것이다. 그런데 고려도경을 살피면서, 중국인 서긍의 관점이, 조선인 朴趾源의 것과는 전혀 연관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나아가 서긍의 시선에서, 마치 조선왕조 말기 청나라의 ‘위안 스카이’나, 일제강점기의 ‘이토 히로부미’의 시선이 교차됨은 실로 기괴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 여행기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황제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고려를 여행할 따름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을 살핀다면, 서긍에게 고려는, 그저 별반 가보고 싶지 않은 여행지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유년시절에 교육받은 대로 상상하는, 국제 지향적 고려의 화려한 先進文化를 견문하는 내용일 것이라는, 상상된 고려도경의 내용과는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우리는 현대의 대한민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세계적인 문명국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럽인들은, 한국인들이 未開人처럼 ‘개고기를 먹는다’며 딴지를 건다. 어쨌거나 개고기를 먹으면, 왜 미개인으로 분별되는 것인지, 실로 의문이다.
나아가 유럽이나 미국의 대다수는, 아예 대한민국을 알지 못하거나, 북한과 뭉뚱그리기도 한다. 어느 시대라도, 서긍의 경우처럼, 부득이 어떤 빌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强大國의 입장에서 弱小國에 대해 굳이 관심을 가질 까닭이 없다. 이는 人之常情이다. 無法律의 國際政治의 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弱肉强食의 원리가 작동할 따름이다.

“현실세계에서, 인간존재는 아무래도, 늘 온갖 사이에만 머문다.
하늘과 땅 사이, 시작과 끝 사이, 시간과 공간 사이, 신과 악마 사이, 사람과 짐승 사이, 나와 너 사이, 개인과 집단 사이, 아이와 어른 사이,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부자와 가난뱅이 사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 존재와 존재자 사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 이성과 감성 사이, 정상과 비정상 사이, 진실과 거짓 사이, 죄와 벌 사이, 선과 악 사이,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 사랑과 증오 사이, 만남과 이별 사이 등, 온갖 변화와 순환의 사이에만 머문다.
그래서 결국, ‘사이의 사람[人間]’이다.
이러한 온갖 사이에서, 나 바깥의 어떤 대상에게 좀 더 많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수록, 나 자신의 본래적인 의미와 가치는 더욱 감소하며, 상실되어 갈 수밖에 없다는 체험적인 사실은, 아무래도 부득이하게, 현실세계의 온갖 사이에만 세워지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절박한 현실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사실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수록, 집단대중은 적어도 시작이 있었다면 반드시 끝이 있어야 한다는 낡은 전제처럼, 온갖 사이에서 부유하는 불안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는 안정 속에 머물고 싶어 한다.
집단대중의 이러한 안정 지향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림자권력은, 어느 집단공동체에도 당최 소속되지 않으려고 하거나, 도무지 소속될 수 없는 채로 온갖 사이만을 떠돌며, 다만 예술가적인 자기만족과 자기완성의 일탈과 탈주를 모색하는 자라면, 대체로 反집단적인 이방인이나 방랑자인 것으로 판정하고서, 미래의 생존을 빌미로 지속적인 소외와 제거를 명령한다.
부득이했지만, 출생 이후 지속적인 훈육으로써, 이러한 명령에 이미 충분히 길들여진 탓에, 집단대중은 더욱 사이의 시공간은 아무래도 잠시 떠도는 곳이지, 결코 오래 머물만한 곳은 되지 못 한다는 판단을, 스스로 맹신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온갖 사이에서, 떠돎의 삶으로부터 되돎의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일 따름이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그러한 떠돎과 되돎의 뒤엉킴 속에서, 인간존재의 유한한 일회성의 삶과 죽음보다도 오래도록, 온갖 사이에만 머무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눈과 빛’ 사이에서 생성되는 그림이다.”(탁양현: 단편소설 ‘여행담’)

온갖 사이[間]를 떠도는 자로서 여행자는, 늘 마지막 到着地를 豫備하며 당최 마감될 것 같지 않은 여행을 지속한다. 물론 죽음이라는 마지막 도착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실상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저 출생 이후,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나’가 체험될 수 있을 따름이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너무도 풍족한 시대이다. 혹자는 ‘Hell朝鮮’을 외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그렇게 地獄과 같은 상태에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는 ‘헬조선’의 상태를 체험하지 않은 세대이다. 그래서 兩班士大夫, 奴婢, 일본순사, 부산 피난민, 라이 따이한, 보릿고개 등의 개념들은, 그저 역사 속의 片鱗으로서 인식될 따름이다.
기껏 필자의 실제적 기억을 소급해봐야, 새마을운동 쯤이 아련한 기억으로 무의식 저편에 배치되어 있다. 어쨌거나 필자는 군부독재에 대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맺을 즈음의 기억이 선명한, 그야말로 現代人이다. 그런 필자가 어떤 계기에서 저 먼 古代로부터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명료히 分別되지 않는다.
이미 적잖은 삶의 여정을 걸어왔고, 이제 죽음이라는 終着地가 그다지 멀지 않은 상태이다. 한때 필자는 실제적인 여행자가 되어, 동아시아 이곳저곳을 10여 년 넘도록 표류하듯 헤매돌던 시절이 있다. 이제 그런 시절도 기억 저편으로 잠겨버렸다. 물론 별다른 의미는 있지 않으며, 다만 그저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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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홍범구주와 이데올로기 정치학, 불씨잡변

도서정보 : 정도전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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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峯 鄭道傳의
洪範九疇와 Ideologie 政治學
그리고 佛氏雜辨



三峯 鄭道傳의 政治哲學을 大別하는 槪念은 洪範九疇와 Ideologie다. 정도전의 시대에, 세계의 覇權國은 두말할 나위 없이 中國이었다. 때문에 정도전은 政權의 簒奪을 위해 중국과의 外交로써, 그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 정도전의 시대는, 高麗王朝에서 朝鮮王朝로 易姓革命이 實行되었다. 그 혁명의 중심에 정도전이 있었다.
당시의 혁명은 理念革命의 성격이 짙다. 그 이념혁명의 주된 대상은 佛敎思想이었다. 그 실제적인 검증자료는 말할 나위 없이 佛氏雜辨이다. 정도전은 불교사상을 정치철학적으로 論破함으로써, 새로운 政權의 정당성을 모색한 것이다. 물론 佛敎만이 王朝交替의 빌미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혁명의 動力으로 삼으려고 했던 정도전의 시도는, 지극히 현대적인 革命論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삼봉 정도전의 혁명론은, 그 전반적인 이념적 바탕을 書經의 洪範九疇에 두고 있다. 나아가 정도전이 활용하는 홍범구주는 箕子朝鮮에 사상적 기원을 둔다. 때문에 정도전은 자연스레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을 기자조선에 두게 된다. 이는 역성혁명 당시 朝鮮이라는 國號가 결정된 까닭이기도 하다.

‘書經 甘誓’에서는, ‘五行’이 ‘서경’의 시대로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임금’의 아들 ‘啓’는, ‘우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세습 받는다. 그런데 庶兄 ‘有扈氏’가 그 왕위계승에 不服하자 정벌을 감행한다. ‘계’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보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유호씨’가 ‘五行’의 원리를 저버리고, ‘三正’을 태만히 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벌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水火木金土의 오행’의 원리나, ‘天地人 三才’의 바른 도리로서의 ‘삼정’은 지극히 철학적인 원리들이다. 그러한 것에 대한 거부가 정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서 ‘오행’과 ‘삼정’을 해석하여 자기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불복에 대한 보복이라는 실제적인 정벌 이유와는 특별한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계’는 만약 ‘命’을 따르지 않는다면, 정벌의 대상인 ‘유호씨’는 물론이며, ‘하’나라 朝廷의 신하일지라도 아주 가혹한 刑罰을 부과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선언이 가능한 것은, ‘계’의 명령은 ‘天命’에 따라 ‘天罰’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의 시대에는 응당 이러한 논리를 信念하므로 정치보다는 종교에 가까운 측면이 있지만, 그 명령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은 철학적 원리를 거론하여 정치적인 결정을 하므로 지극히 정치철학적이다. 더욱이 가혹한 형벌의 부과가 가능한 것은 ‘오행’이나 ‘삼정’의 권위가 그만큼 강력했음을 示唆한다.

‘조선왕조’에서 ‘五行’에 대한 이해는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조선왕조’ 前期 ‘徐居正’은 ‘四佳集’에서 이와 관련하여 기술하고 있다. ‘서거정’의 ‘陰陽五行’에 대한 이해는,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에게서 일반적인 것이다. ‘서거정’은, ‘聖人’에 의해 제작된 ‘홍범구주’나 ‘주역’에 의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에 내재된 철학적 理致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실제로 점을 쳐서 ‘吉凶’이나 ‘善惡’을 결정하는 일은 排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행’이라는 것은 천지자연에서의 삶의 조화를 목적하여 도출된 철학적 사유방식이며, 그것으로써 운명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점을 치더라도, 그것은 ‘홍범’에서 이르는 ‘稽疑’나 ‘庶徵’의 경우처럼 일종의 幾微이며, 그러한 기미를 잘 살펴서 ‘天命’을 좇아 ‘人性’을 올바르게 하는 삶의 방향을 摸索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거정’은 태어난 歲月日時의 ‘四柱’로써 ‘세 가지 등급의 운명[三命]’ 따위를 거론하는 牽强附會를 例로 들어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도 ‘甘誓’의 시대처럼, 현실적으로 ‘오행’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임금’의 아들 ‘계’는 ‘禪讓’이 아니라 ‘世襲’으로써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러한 ‘夏’나라의 政治權力的 변화는,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물론이며 ‘조선왕조’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측면은, ‘오행’의 해석과 활용에 있어 ‘감서’의 시대와 ‘조선왕조’가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짐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왕조’에서는 ‘오행’을 거스르면 ‘천벌’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확장하여 ‘道敎’나 ‘佛敎’를 비난하고, 지속적으로 배척한다. ‘조선왕조’가 政權의 정통성을 보장 받기 위해 ‘事大主義的 儒學’을 國是로 삼았으며, 때문에 ‘도교’나 ‘불교’의 경우처럼 ‘유학’ 이외의 학문으로 분류되는 것들을 異端이나 邪道로 규정하고서 탄압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이는 ‘오행’ 개념을 지극히 정치적으로 활용한 사례라고 할 것이다.

‘정종실록’ 3권, ‘정종’ 2년 1월 10일 乙亥日 2번째 기사(1400년, 明 建文 2년)에는, ‘定宗’이 ‘經筵’에서 강론하는 내용이 있다. 이 記事로써, ‘조선왕조’의 ‘유학자’들이 ‘부처’를 귀신과 유사한 존재로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인식은 지극히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定宗’은 자기의 실제적인 체험을 거론하며, 흔히 ‘샤머니즘’이나 ‘民間信仰’으로 분별되는 것에 대한 ‘河崙’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부처’가 주장하는 ‘慈悲’와 ‘不殺生’의 가르침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륜’은 ‘부처’의 ‘자비’나 ‘불살생’은 당시 ‘西域’의 상황에서 유효할 따름이며, ‘불교’의 핵심 敎理인 ‘輪迴’나 ‘報應’ 역시 ‘유교’의 철학적 인식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이제 談論은 神話의 차원으로 飛躍한다. ‘정종’이 어떤 의도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정종’은 ‘부처’의 ‘誕生說話’와 ‘死後地獄說’에 대해서 묻는다. ‘정종’은 동생 ‘李芳遠’에 의해 왕위에 오른 탓에, 아무런 實權이 없는 왕이었다. 때문에 재위 2년 만에 寶位를 ‘이방원’에게 넘겨주고 ‘上王’으로 물러난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기사 내용이 재위 2년에 발생한 일을 기술한 것이므로, 나름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없지 않다. 여하튼, ‘정종’의 질문에 대한 ‘하륜’의 답변은 표면적으로는 소박하며 신념에 차 있다. ‘부처’가 사람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거나, 사람이 죽으면 地獄으로 간다는 것은, 한갓 似而非의 惑世誣民에 불과하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한다.
‘하륜’의 論理를 살필 때, 그가 발언하는 ‘음양오행’이 似而非的이지 않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 역시 신화적인 神異의 차원에서 작동할 때에는, 그 폐해가 별다를 게 없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하륜’은, 당시 ‘정종’의 정치적 立地나 ‘조선왕조’ 초기의 政局을 思慮한, 정치적 의도가 내재된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한 답변에 대해 수긍하는 ‘정종’의 태도 역시 그러하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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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매천 황현의 죽음의 미학, 매천집

도서정보 : 황현 지음(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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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殺의 悲劇 죽음의 美學 그리고 梅泉 黃玹



매천 황현의 죽음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藝術的인 사건이다. 自殺이라는 죽음의 形式으로써, 자기의 삶 자체를 하나의 藝術作品으로서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藝術作品性은 그의 絶命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은 매천 황현의 절명시 4편이다.

난리 속에서 어느덧 백발의 나이가 되어버렸네
亂離滾到白頭年
몇 번이고 죽어야 했는데 차마 그러지 못했네
幾合捐生却未然
오늘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의 촛불만 밝게 하늘을 비추네
輝輝風燭照蒼天

요사스런 기운이 자욱해 황제의 별이 옮겨 가니
妖氛晻翳帝星移
침침한 궁궐에선 시간마저도 더디 흐르네
九闕沉沉晝漏遲
임금의 명령일랑은 이제 더 이상 없을 테니
詔勅從今無復有
종이 한 장 채우는 데도 천 줄기 눈물뿐이네
琳琅一紙淚千絲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리더니
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이미 물속에 잠겨버렸네
槿花世界已沉淪
가을날 등불 아래서 책을 덮고 먼 옛날 회고하니
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 지식인 노릇 참으로 어렵기만 하네
難作人間識字人

짧은 서까래만큼도 지탱한 공 없었으니
曾無支厦半椽功
단지 살신성인일 뿐 충성은 아니라네
只是成仁不是忠
결국 송나라 윤곡의 자살을 흉내 내고 있으니
止竟僅能追尹穀
그때 진동처럼 저항치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네
當時愧不躡陳東

고독한 자살 여행자 매천 황현의 죽음을, 대체로 殉國, 絶命, 自決로써 표현한다. 어쩐지 自殺이라는 표현은, 不敬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는 분명 飮毒自殺했다. 절명시에서 드러나듯, 황현 자신도, 보다 적극적인 獨立運動이나 義兵抗爭을 하지 못하고서, 그저 자살의 형식을 취하는 無力함을 한탄한다.
乙巳條約을 乙巳勒約으로, 韓日合邦을 庚戌國恥로, 閔妃를 明成皇后로 표현한다고 해서, 지난 歷史의 汚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歷史的 解釋은 달라지게 된다. 植民史觀을 지녔는가, 民族史觀을 지녔는가에 따라, 事大主義史觀을 지녔는가 등에 따라, 사용되는 표현은 응당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설령 歪曲되어버린 역사일지라도, 기존의 역사 자체를 消失시켜서는 안 된다. 왜곡된 역사 역시 망각되어서는 안 될 역사다. 다만 역사적 해석의 측면에 있어, 명료히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황현의 죽음을 순국이라 하든, 절명이라 하든, 자결이라 하든, 자살이라 하든, 다만 적어도 그 죽음 자체의 實在를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近來에도 어느 대통령의 죽음에 대하여, 逝去와 自殺이라는 표현으로써 論難이 紛紛했다. 어느 國會議員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런데 실상 둘 다 그릇된 표현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이 지닌 現象的 事實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죽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를 따름이다. 그러니 서거라고 주장하는 측과 자살이라고 주장하는 측의 역사는, 모두 그 자체로서 保傳되어야 한다.
다음은 매천집 중에서, ‘졸고를 초록한 책 뒤에 써서 중삼에게 주다’라는 글이다.

나는 어린 시절 더러 총명하다는 추임을 받아, 일찍부터 쓸데없는 과거 공부에 매달렸다가, 스물에야 비로소 近體詩를 익혔고, 서른에 비로소 散文을 배웠다.
선배나 長老 가운데, 大家로 칭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손을 꼽아 그 나이를 따져 보고는,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되겠지.’ 하고 외람되이 생각하곤 하였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마흔이 되어, 이렇게 빈손이 된 뒤에야, 문장은 정해진 운명이 있으며, 나이로 논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중삼을 보면, 번번이 내 어린 시절의 일이나, 당대 대가들의 나이가 얼마인지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의 생각이 내 지난날과 같은 점이 있다고 느꼈다.

매천은 당대의 秀才였다. 조선왕조에서 매천 황현과 같은 재능을 지녔다면, 응당 立身揚名을 도모키 마련이다. 그런데 生來的으로 시대와 不和했던 매천은, 철저히 世間을 외면하고 은둔하며, 빈곤 속에서 자기의 학문을 지속해 간다. 그러면서 자기의 학문이 完成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悔恨한다. 이러한 태도는, 조선왕조의 사대부에게서 쉬이 엿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필자로서는, 자꾸만 황현의 삶의 旅程에 필자의 형편이 오버랩된다. 다만 필자는 황현 같은 수재가 아니며, 어린 시절부터 실로 鈍才이다. 그저 황현처럼 학문을 좋아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것에 매이지 않으며, 필자 나름의 學問旅程을 걷다 보면, 차츰 나아져서 일정한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황현의 회한에 공감하는 나이가 되고보니, 왜 황현이 위와 같이 吐露했는지 알 듯하다.
인간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는 존재는 아니다. 애당초 나아질 만한 人材라면, 이미 어릴 적부터 그 幾微를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니 자기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최 이룰 수도 없는 허망한 일에, 온통 인생을 저당잡혀 虛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이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朝鮮王朝로부터의 弊害的 慣性을 논할 때, 兩班에 대해 곧잘 거론한다.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旣得權을 지닌 지배세력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조선왕조를 비판할 때는, 不得已 王室이나 兩班士大夫가 그 주된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할 때에는 양반을 욕하면서도, 정작 자기 家門을 소개할 때는, 어떻게든 由緖 깊은 兩班家이고자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 인구의 40% 가까이는 奴婢였고, 나머지는 대부분은 平民이거나 中人이었다. 본래 양반사대부는 전체 인구의 5% 남짓이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전쟁 이후, 혼란기를 틈타 신분 세탁을 하여, 조선왕조 후기에는 양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니 현대인의 절대다수가 양반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조선왕조가 이미 몰락해버린 시절인데도, 여전히 兩班家이고자 하는 심리상태는, 참으로 기괴할 따름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집안도 상놈집안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祖上이 농민이나 노동자로서 상놈이란 사실이 부끄럽고 싫은가. 그러면서도 平等이나 人權 따위를 논할 때에는, 농민이나 노동자 편에 서서 주저없이 양반을 욕한다.
梅泉의 시대로부터 다소 세월이 흐른 후, 양반사대부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상황이 되면, 필자로서는 어쩐지 매천을 回想케 된다. 매천이야말로, 조선왕조를 통털어 몇 안 되는, 양반다운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그의 ‘양반다움’이, 결국 그의 삶을 자살의 비극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탓에, 그의 비극은 지극히 美學的이며, 삶 자체로서 顯現해낸 가장 숭고한 예술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은 中國人인 江謙이 쓴 梅泉集 序文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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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국제정치, 임진왜란 1권, 신립과 선조와 이순신

도서정보 : 조선왕조실록(탁양현 엮음) | 2018-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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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申砬의 自決, 宣祖의 播遷, 李舜臣의 거북선



온갖 美辭麗句를 동원하여 美化하고, 갖은 理論과 言說로써 정당화하더라도, ‘백성의 삶’을 보장하지 못 하는 정치는 실패한 정치다. 곧 ‘天命’을 저버린 정치다. 그러므로 응당 새로운 ‘천명’에 의한 征伐이나 革命으로써 변화되게 된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하는데, 현대사회에 이르도록 대부분의 정치철학적 관점들은, 强大國이 되어서 강력한 覇權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 일반론인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 방법론에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백성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가 현실정치에 적용되어야 함은 별다르지 않다.
저 먼 ‘堯舜夏殷周’의 시대로부터 현대의 21세기에 이르도록, 정치는 ‘名分’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實利’에 의해 작동한다. 현실정치에서 작동하는 ‘명분은 실리의 도구’일 따름이다. ‘명분’을 목적하는데 ‘실리’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실리’를 목적하는데 ‘명분’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 분명한 사실을 시인하지 않으면, 현실정치는 결코 나아지지 못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사’에서 가장 ‘명분’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조선왕조’의 정치를 분석함으로써 명확히 검증될 것이다. 실상 ‘조선왕조’의 정치야말로 다분히 ‘실리’를 추구한다.
예컨대, ‘이성계’와 ‘정도전’이 ‘威化島 回軍’을 감행하고,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를 선언함으로써 政權의 안정을 도모한 것은, 응당 ‘실리’를 추구한 것이며, ‘명분’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만약 ‘명분’을 추구했다면, ‘遼東 征伐’을 실행하여 우리 민족 본래의 영토를 되찾으려는 ‘거대한 명분’에 충실하였을 것이다. 단지 ‘조선왕조’의 정권이 아니라, ‘고구려’, ‘발해’, ‘고려’ 등으로 이어지는 웅대한 민족적 숙원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명분다운 명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는 물론이며 현대에서도, 그러한 정치적 선택을 ‘명분’을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러한 선택이 ‘명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명분과 실리’를 恣意的으로 誤用함으로써 大義名分를 왜곡하는 것일 따름이다.
아울러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명분’의 대표 개념으로서 흔히 강조하는 ‘春秋大義’도, 대체로 그 실제적 활용은 ‘중국’ 중심으로 국가 間의 세력판도를 구축하려는 ‘尊王攘夷’의 ‘실리적 정책’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slogan’이었을 따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 역대 왕들을 중심으로 기술한 歷史書이며, 역대 왕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最高權力者로서 代表政治家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된 내용들이 지극히 정치적일 것임은 明若觀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서이므로, 歷史學의 전유물이어야만 한다고 쉬이 豫斷해버릴 수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참된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 타당하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대표적 역사서인 ‘司馬遷의 史記’는, 3,000여년의 역사를 526,500글자로 압축하여 인물의 傳記를 위주로 하는 ‘紀傳體’로 기술되었다. 때문에 史實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하다. 따라서 자칫 誤讀할 수 있다.
반면에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로부터 ‘哲宗實錄’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매시간 사건 중심으로 기술하는 ‘編年體’로써 기록하여, 1,893권 888책이라는 방대한 텍스트를 구성하였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정치적 상황을 아주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日帝’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高宗實錄’과 ‘純宗實錄’에서도 유용한 자료들을 취할 수 있다. 특히 ‘政治史’의 측면에서라면 말할 나위 없다.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1월 25일 庚申日 1번째 기사(1395년, 明 洪武 28년)에는, ‘鄭道傳’과 ‘鄭摠’이 ‘高麗史’를 편찬하여 바치자, ‘太祖’가 내린 ‘敎書’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태조의 교서’를 살피면, ‘조선왕조’ 最高權力者의 ‘실록’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이 的確히 지켜질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태조’는 ‘고려왕조’의 史料가 부실하였음을 지적한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왕조는 결국 망각되어버리기 때문이다. ‘先史와 歷史’의 분별을 좇는다면, ‘역사의 시대’에 역사에 존재하지 않음은 곧 역사적 멸망인 것이다.
예컨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사적 문헌이 부재하거나 부실한 탓에 ‘檀君朝鮮’, ‘夫餘’, ‘沃沮’, ‘渤海’ 등은 그 國家 역시 역사적으로 부재하게 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모두 逸失되어버린 역사적 상황을 복원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 ‘上古史’의 재정립이 難題인 까닭이다.
‘태조’의 인식처럼, 역사는 후대의 龜鑑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확히 기술하여야 한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대표적인 역사 記述法으로서 제시되는 것이 ‘孔子의 春秋筆法’이다. 그러나 ‘공자’와 같은 ‘聖人’의 ‘春秋直筆’을 좇는 경우마저도, 지나치게 大義名分을 앞세우며, 오히려 자기편에게 유리하도록 역사를 왜곡하여 구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후대의 ‘申采浩’는 ‘朝鮮上古史’에서 ‘춘추필법’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朝鮮上古史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아무 맛없는 ‘어느 임금이 즉위하였다’, ‘어느 대신이 죽었다’ 하는 등의 年月이나 적고, 보기 좋은 ‘어느 나라가 사신을 보내왔다’ 하는 등의 사실이나 적은 것들이요, 위의 두 節과 같이 시대의 본색을 그린 글은 보기 어렵다. 이는 ‘儒敎徒’의 ‘春秋筆法’과 ‘외교주의’가 편견을 낳아서, 전해 내려오는 ’古記‘를 제멋대로 고쳐서, 그 시대의 사상을 흐리게 한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결코 容易한 것이 아니다. 우선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거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는 정치철학의 정립이 동시적으로 요구된다. ‘춘추필법’을 원칙으로 삼은 ‘조선왕조’에서도, 그 내용이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탓이다. 그러해서는 歷史書로서 가치를 부여받기 어렵다. 그러나 ‘三國史記’나 ‘高麗史’에 비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기술을 해냈다고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은 歷史書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흔히 역사서를 편찬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왕조가 멸망한 뒤에 다음 왕조에서 이전 왕조 전체에 대해서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前朝事’라고 한다. 또 하나는 각 王이 죽은 뒤에 다음 대에서 前任 왕에 대해 정리하는 방법으로서 ‘實錄’이라고 한다.
‘실록’이 ‘조선왕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도 있다. 예컨대, ‘일본’의 ‘文德皇帝實錄’과 ‘三代實錄’, ‘베트남’의 ‘大南寔錄’, ‘중국’의 ‘大明實錄’과 ‘淸實錄’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타의 ‘실록’이 ‘宮中史’ 위주인 데 비해, ‘조선왕조실록’은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민간의 정치적 상황까지도 赤裸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조선왕조실록’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토록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太祖實錄’부터 ‘哲宗實錄’까지, 25대 472년에 걸쳐 총 1,893권, 888책이 간행되었다. ‘日帝强占期’에 ‘高宗實錄’ 52권 52책, ‘純宗實錄’ 22권 8책이 간행되었지만, 대체로 이 두 ‘실록’은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욱이 ‘고종실록’ 後期부터는 ‘大韓帝國’의 역사서이므로, ‘조선왕조’의 역사서와는 차별적이라고 할 것이다. 廢位된 왕에 관한 기록은 ‘실록’이라고 부르지 않고 ‘日記’라고 불렀다. ‘魯山君日記(端宗實錄)’, ‘燕山君日記’, ‘光海君日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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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3,000 원

탁월한 사유의 시선(개정판)

도서정보 : 최진석 | 2018-09-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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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수업, 우리가 기다려온 통찰!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 출간!


◎ 도서 소개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철학 없는 시대를 위한 최진석 교수의 생각 혁명!

★★★★★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 통찰로 가득한 매 문장들이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 멈추기 힘들 만큼 흡입력 있는 철학서!

철학서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철저히 뒤흔들며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탁월한 사유의 시선』 개정판이 출간됐다. 다른 철학서들과 달리 철학의 탄생과 의미를 파고들며, 더 나아가 삶의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던 이 책은, 우리에게 ‘인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새롭게 출간된 개정판은 신선한 디자인과 양장 제본으로 소장 가치를 더했으며, 최진석 교수의 명료한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도록 문장과 내용을 면밀히 손보았다. 또한 초판이 출간된 이후에 전개된 국내 사회 정치의 현실과 전 세계의 정세 변화에 대한 소론까지 서두에 추가하여 논의의 넓이와 깊이를 더했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고, 보는 만큼 행동하며, 행동하는 만큼 살 수 있다. 철학은 개인에게는 꿈을, 국가에는 미래를 담보한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높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탁월한 사유의 시선’으로 삶을 주도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좀 더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다.




◎ 도서 소개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철학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실제 삶의 영역과는 다른 학문의 영역에 있는 것으로 취급해왔다. 우리는 철학을 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철학이란 모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왔고 직접 철학을 생산해본 경험도, 생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최진석 교수는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직접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치 또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철학의 4단계

진정한 철학은 ‘부정(否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본래 서양의 학문인 철학은 서양이 세계를 바라보는 전략적 시선의 합으로, 이러한 철학이 동아시아에 진입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서양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 승리를 의미하는 첫 사건인 1840년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1860년 베이징조약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동양을 패배시킨 서양의 힘이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관찰한다. 구국구망(救國救亡), 즉 조국과 민족을 모두 구해내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학습(向西方学習)을 택한 것이다.
그 시작으로 대포와 군함이 핵심인 과학기술을, 다음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치제도를 받아들였으나 종래에는 그 배후의 힘이 문화, 윤리, 사상,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서양의 것으로 일순간 바꾸어버린다. 문화, 윤리, 사상, 철학이야말로 국가를 지배하는 가장 높은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철학이란 인간 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넘어 한 국가의 선진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중국이 철학을 통해 서양을 증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략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우리 또한 지금 이 시대를 분노의 대상이 아닌 전략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철학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살다 가도 괜찮겠냐”는 최진석 교수의 말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해결책을 가진 선언이 되는 이유다.


◎ 본문 중에서

앎이 늘어갈수록 내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개인적인 삶의 의미가 우주의 넓이로 확장되는 것이 바로 완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도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추상하는 능력으로 힘을 발휘하며 사는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일을 동양의 선현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 등의 어법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보다는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한다. (6~7쪽)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 좌판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눈뜨고 이렇게 펄떡거릴 뿐이다. (7쪽)

철학 수입자들은 창백한 이론을 진실이라고 하지, 울퉁불퉁한 역사와 육체를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들은 사유를 사유하려 들지 세계를 사유하려 들지 않는다. 이와 달리 철학 생산자들은 직접 세계를 사유한다. 사유를 사유하지 않는다. (9~10쪽)

철학을 수입한다는 말은 곧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생각을 수입한다는 말은 수입한 그 생각의 노선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종속은 가치관뿐 아니라 산업까지도 포함해 삶 전체의 종속을 야기한다. (32쪽)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이다. 이 높이에서는 기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도전할 수 있다. (35쪽)

철학적인 높이로 상승한 단계의 사람들은 어떠할까? 바로 전면적인 부정을 이야기한다. 전면적인 부정이 새로운 생성을 기약한다. 새로운 생성은 전략적인 높이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자신이 직접 그 길을 여는 일이다. (74~75쪽)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이다.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인 높이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108~109쪽)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장르를 만들지 못하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그 힘으로 앞서나간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된다. 장르를 개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꿈’이다. (114~115쪽)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118쪽)

철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항상 시대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해서 고도의 추상적인 이론으로 구조화한 체계다. (144~145쪽)

반역은 기존의 것에 저항하는 것, 이미 있는 것보다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더 궁금해하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곳으로 건너가려는 도전, 이것이 반역의 삶이다. 모든 창의적 결과들은 다 반역의 결과다. (153쪽)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으로만 ‘다음’이나 ‘너머’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197~198쪽)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이다. 창의성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튀어나오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토양에서 튀어나온다. 삶의 깊이와 인격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다. (214쪽)

자기살해를 거친 다음에야 참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등장한다. 참된 인간을 장자는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무아(無我)’도 글자 그대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참된 자기로 등장하는 절차 다. (…) 자기살해 이후 등장한 새로운 ‘나’, 이런 참된 자아를 독립적 주체라 한다. (216~217쪽)

우리는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지(知)에 매몰되어 한편을 지키는 일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명(明)의 활동성을 동력으로 삼아 차라리 황무지로 달려가야 한다. (250쪽)

생각의 결과를 배우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철학이다. 정해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를 대하는 태도일 수 없다. 자기만의 진리를 구성해보려는 능동적 활동성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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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의 시학

도서정보 : 이수명 | 2018-09-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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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보이는 것을 잘 보게 하는 것이다. ´표면의 시학´은 이러한 생각에 부합한다."
『횡단』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이수명의 두번째 시론!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이 책을 껴안는 데는 이 시론의 타고난 폐활량의 확신 덕분일 거다. 제 가능성의 끝 간 데를 모르고, 제 가능성의 쓰임을 계산해볼 궁리로부터 영 깜깜이고, 제 가능성의 일어남 그 자체에만 온 몸과 마음을 투여하는 시와 그를 붙드는 사유들, 시인 이수명만이 쓸 수 있는 시에 관한 이러한 이야기들로 우리는 시에 관해 보이는 것을 더 잘 보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도 되는 것이다. 이 시론의 가능성은 그러니까 어쨌거나 어디든 나아감을 믿는 바퀴와 같은 희망의 어떤 꿈틀거림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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