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사 13

도서정보 : 이중톈 | 2021-07-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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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얼룩진 대지에서 피어난
찬란한 수당隋唐의 문명을 논하다
400년에 가까운 혼란과 분열을 겪은 뒤, 중국 대륙은 수당隋唐, 두 왕조에 와서 통일을 이뤘다. 이때부터 중국 제국은 전성기와 성숙기에 접어들어 막힘없이 당, 송, 원, 명, 청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수당은 어떤 제국이자 왕조였을까? 그들은 후대를 위해 어떤 기초를 다졌을까? 그들이 창조한 문명은 어떤 이유로 세계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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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백관지

도서정보 : 위징 | 2021-06-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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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백관지>는 ≪수서≫에 수록된 십지(十志) 중의 한 편이다. <백관지>는 ≪수서≫ 권26∼권28에 수록되어있고, 상·중·하 세 편으로 이뤄져 있다. <백관지>는 남조 양(梁)나라와 진(陳)나라 및 북조 북제(北齊)와 북주(北周)에서 수나라까지의 관제를 수록하고 있어 남북조 시기 각 왕조의 관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료이다. 특히 수나라의 관제는 한위(漢魏) 이래 관제의 변화를 집대성하여 당송(唐宋) 관제의 발전에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내 초역이다.

혼란을 바로잡은 통일 왕조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는 제기(帝紀) 5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50권, 총 85권으로 되어 있다.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사기(史記)≫·≪한서(漢書)≫ 등과 함께 중국의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통일 왕조다. 수나라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제(煬帝), 남과 북의 교류를 촉진한 대운하,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수나라의 멸망은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와 유사하다. 2대에서 멸망했다는 점, 멸망한 후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강한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를 통일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나라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서≫를 읽는 것은 이처럼 흥망과 치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백관지>의 구성과 내용
<백관지>는 시기에 따라 상·중·하 세 편으로 나눠진다. 상편은 총론 부분과 양나라와 진나라의 관제를 소개하는 부분으로 나눠진다. 총론은 관제가 갖는 역사적 의미와 의의 및 남조 양나라 이전까지 역대 관제의 변천 과정 등을 간략하게 기술했다. 중편은 북제와 북주의 관제를 소개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북제의 관제를 집중적으로 설명한다. 북제의 관제는 북위(北魏)의 관제를 계승했다. 하편은 수나라의 관제를 소개하고 있다. 본편은 또 수 고조 때의 관제와 양제 때의 관제로 나눌 수 있다.
남조 양나라의 관제는 ≪수서≫ <백관지> 상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양나라의 관제는 기본적으로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의 관제를 이어받았다. 진나라는 양나라의 관제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상국(相國)을 더 두었다. 진나라는 양나라의 관제를 따라 18반으로 나누고 여기에 청탁으로 관직을 구분했다.
북주의 관제는 북위의 관제를 계승했다. 관품은 정1품에서 종9품으로 나누고 있다. 예를 들어, 삼사, 왕, 이대, 삼공이 제1품이고, 상서령, 표기장군(驃騎將軍) 등이 제2품 등이다.
수나라의 관제는 북제의 관제를 바꾸었지만 관명은 그대로 사용했다.
이 책에는 남조 양나라의 관직도, 북위와 북제의 관직도, 북주의 관직도, 수나라의 관직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그려 수록했다.

? 이 책은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교점본 중 ≪수서(隋書)≫와 한어대사전출판사본(漢語大詞典出版社本) ≪이십사사전역(二十四史全譯)≫ 중의 ≪수서(隋書)≫를 텍스트로 삼아 번역했다.
? 이 책은 ≪수서(隋書)≫ 권26∼권28에 해당하는 <백관지>를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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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도서정보 : R. 태가트 머피 | 2021-04-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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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복잡한 나라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통찰력
“지난 20년간 외국인 저자가 일본에 대해 쓴 가장 중요한 책!”
오늘날 일본만큼 우리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겨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2019년의 “노 재팬” 이후 어느 정도 격앙된 감정은 가라앉았다 해도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비호감도가 올라가 있는 지금이다. 당분간 이 분위기는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다. 최악이었던 아베 내각이 물러났다지만 그 연장선에서 스가 내각이 들어서 있고,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익 분위기, 과거사 부정, 국제무대에서의 한국에 대한 공격, 은근한 무시 등이 적대적 감정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 또한 일본에 대해서는 전혀 전향적이지 않다.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흥미 위주의 문화적 접근 외에 자신 있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양국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진지하게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피상적·적대적으로 상대방을 손가락질하는 상태에 멈춰 있다. 그런 상황에서 출판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그 적대감정을 부추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곪아 있는 상태를 외면한 채 문화적·실용적 교류에만 충실할 것인가. 이번에 출간된 『일본의 굴레』에는 이도저도 못 하는 답답한 상황을 풀어보고자 하는 복잡한 심리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여기 태가트 머피라는 미국인이 쓴 『일본의 굴레』라는 두툼한 인문서가 있다. 부제가 독특하다.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이란 말은 이 책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이 책의 저자는 국제정치경제 전문가인 미국인으로 열다섯 살에 처음 일본 땅에 발을 내디딘 이후로 40년 이상 일본에서 생활해온 일본통이다. 그는 서양인으로서 일본의 낯설고 이질적이며 표면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모습에 흠뻑 빠졌다가 이내 거리두기를 하면서 내부자이자 동시에 외부자로서 이 사회의 모순적인 측면들을 하나둘씩 파악해간다. 그가 보기에 일본 사람들은 이상했다. 굴욕적일 만큼 친절한 서비스에, 뭔가 불평할 만한 일이 생겨도 침묵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고, 권력에 도전하는 일은 좀체 하지 않는 체념적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였다. 다른 한편 그들의 섹스 산업은 서양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꽃을 피웠다. 또 일본인들은 작은 일에서 쾌락을 찾는다. 일본인들의 가장 독특한 면모는 모순을 모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이 일본을 좋아하면 할수록 그들의 삶에는 어떤 비극적 요소가 덧입혀져 있음을 깨닫는다. 일본 근대사의 대부분은 비극인데, 이 비극은 내외부적 요인이 결합해 일어났다기보단 일본인들 내부의 ‘무언가’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통찰해낸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없이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는 태가트 씨가 평생 일본에서 살며 일본에 대해 보고 배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나라와 교토의 설립부터 시작해서, 전국시대의 혼란, 에도 시대 사회의 얼개, 쇄국 정책과 메이지 유신, 제2차 세계대전의 광기, 전후의 경제 기적과 샐러리맨 문화, 1980년대 버블의 형성과 붕괴, 최근의 아베 정권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경제와 정치와 문화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일본 사회에 대한 저자의 전방위적인 통찰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며 오래 생활하고 있는 역자들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책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책을 번역했다. 역사의 긴 흐름 위에서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를 하나로 꿰어서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종합적인 교양과 통찰력을 제시한 책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생각을 역사 및 문화와 결합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의 제안을 받았을 때 태가트 머피 교수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생각을 역사 및 문화와 결합시켜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보리라” 결심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지금의 세계 금융시장의 틀을 형성하는 데 일본의 여신與信 창조가 수행해온 중심적인 역할 같은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슈들을 하나하나 떼어놓고서는 일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일본 경험의 총합을 다루지 않고서는 일본 현실의 그 어느 측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달리 말해, 일본 은행의 통화 정책, 일본 기업의 인사 관행, 도쿄의 기묘한 스트리트 패션, 일본 정치의 끊임없는 의자 뺏기 놀이, 수 세기에 걸친 일본의 쇄국, 이런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저자는 “내가 열다섯 살 때 낡고 북적이는 하네다 공항에 내려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회색의 약동하는 도시의 풍경을 봤을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주제들을 정리하고, 내 평생의 사유에 질서를 부여할 기회를 줄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라고 밝힌다.
『일본의 굴레』는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 책 서문에서 말했듯이 일본의 정치와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머피 교수의 생각을 역사 및 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과 결합시킨 것이다. 외부자적인 시각과 내부자적인 이해를 겸비한 저자가 제공하는 다면적인 일본 사회 분석은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통찰을 제공한다.

책임감으로 가득한 나라, 무책임의 극치를 달리는 나라

일본인 대부분은 본인들의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잘해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일본에서는 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도(그리고 모두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잘해내야 한다. 일본에서 마주치는 예의 바름과 서비스의 수준은 아주 하찮거나 사실은 지저분한 일에서조차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높아서, 가끔 이 세상이 나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져들게 할 정도다. 조금만 무언가를 하면 ‘오쓰카레사마데시타!お疲れ樣でした!’(과장된 감사의 톤으로 당신의 커다란 희생에 대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라는 외침이 되돌아온다. 누군가에게 차 한 잔과 디저트를 대접하면 진수성찬을 대접했다는 감사를 받는다(고치소사마데시타御馳走さまでした). 반대로, 성대한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갔는데 너무 차린 게 없어서 부끄럽다는 인사를 받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형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형식이고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형식에 자발적인 감정이 가득한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모두가 그런 기대에 부응해 행동하고 있고 그게 또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에, 가장 공허하고 형식적인 행위들이 오히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런 형식성은 대인관계에도 적용된다. 상대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당신의 노력에 걸맞은 금전적인 보상을 할 의사가 눈곱만큼도 없는 까다롭고 형편없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지루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절친한 벗이나 열정적인 동료를 대하듯 한다. 하지만 타인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최고의 동료를 가진 것처럼, 누가 됐든 지금 상대하는 고객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양 행동하다보면, 애정이나 존경 그리고 주어진 일을 최대한으로 잘해내려는 의지 같은 감정을 실제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주변은 내가 깊이 아끼는 사람들로 둘러싸이고, 또 그들이 나를 아껴주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한번 약속한 일은 꼭 할 것이라고, 그것도 잘해낼 것이라고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에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한편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으면서 모순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러한 태도에는 치명적인 정치적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점은 흔히 간과된다. 그런 태도가 일본을 매력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드는 원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일본 근대사의 비극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대중을 착취하기 좋은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매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여기고, 어쩌면 가치 없는 목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추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마음가짐을 대중이 내면화하는 것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런 유동적 가치관의 영향이 사회 지도층 레벨로 가면, 권력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과 그 동기에 대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이중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

일본인들의 피해자 의식과 체념의 사고 습관

일본은 더 이상 자국과 이웃 나라들을 불바다로 만들 만큼 위협이 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딱히 원인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로 이런저런 일이 발생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의식, 그 안에서 개인은 자기 본분을 다하며 최선을 다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식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일본인들이 이런 의식을 부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피해자 의식(히가이샤 이시키被害者意識)이다.
피해자 의식이 현실 세계에서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은 여러 가지로,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가령 일본은 무시무시한 재정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한때 전 국민의 경제적 안정을 거의 달성토록 했던 사회적 규약을 내다 버렸다. 또 세금과 물가를 올려서 가계의 구매력을 망가뜨리고, 국민연금이 지켜야 할 약속을 파기하기도 했다. 과거 기업들이 직원들 삶의 질을 보장하던 세계는 안정과 미래라고는 없는 저소득 계약직의 세계로 대체되었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자산을 망가뜨리고 직원들을 해고하는 월가의 은행가들처럼 자신들이 한 일을 생각하며 기분 좋아 낄낄거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들도 선택의 여지 없이 희생의 대열에 참여한다고 생각한다. 그 희생을 통해 본인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챙기는 경우에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백만의 일본 국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고는 “시카타가 나이仕方がない(할 수 없군)”라고 한마디 하고는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있다는 사실(강한 노조, 노동자를 대변하는 건강한 정당, 확실한 사회 안전망, 일본 산업의 부활을 위해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려서 내수를 진작시키는 각종 정책)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고려한다고 해도 성숙하지 못한 포퓰리즘으로 비난받는다. 어찌어찌해서 그런 대안에 시동을 건다 해도, ‘일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받고는,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묵살하도록 발전되어온 시스템에 의해 폄하될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를 거쳐 근현대로 올라오며 이런 시스템의 일부를 살펴보고 있다. 특히 마지막 두 장은 최근 수십 년간 일본을 딜레마로부터 구해낼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세력이, 미국의 직접적인 공모와 개입으로 인해 붕괴되었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국민에게 사람답고 안전한 삶을 제공하는 데 존재 목적이 있는 기업, 은행,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조직이, 그 조직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 가상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전 국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시도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오염되고 장악되어왔는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사람들은 조직을 그런 식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해나가면서도, 실제의 동기는 스스로에게 감추는 묘한 심리 상태를 필요로 하는데 조지 오웰은 이런 관념적 곡예에 ‘이중 사고doublethink’라는 유명한 이름을 붙였다. 일본의 권력자들은 모순에 대한 관용이 비단 허락되었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었던 정치적·문화적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일본 정치 구조의 기원: 메이지 이후 100년이라는 굴레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에도 시대가 막부의 강력한 권위를 기반으로 수백 년간 평화를 유지해서 상상 이상의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뤘다는 부분은 되새겨볼 만하다. 부의 축적은 맨 아래 계층인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신분제도가 집요하리만큼 철저하게 유지되면서 생겨난 거대한 모순의 에너지는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회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려던 불과 한 세대의 압축적인 노력이 어떻게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바꿔놓았고 어떻게 여전히 일본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굴레로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분석은 뛰어나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천황제도와 의회제도라는 두 가지 ‘허구’를 앞에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서 유신의 주역들이 과두정치를 펼쳤다는 지적, 그들이 나이가 들어 죽으면서 남긴 커다란 권력의 공백으로 인해 최종 책임이 없는 관료에게 휘둘리는 현재 일본 정치의 구조가 탄생했으며, 일본의 조직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최종 책임의 소재가 없는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통찰력 있다.
저자는 또한 국제정치경제학 연구자답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에도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저자는 분명 기존 미일 관계의 수호를 위해 행동하는 미국의 ‘신일본통’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일본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칼을 들이대는 것은 물론, 현재 일본의 문제들에 원죄를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한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그토록 어려운 것에는, 미군정이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스스로 과오를 돌아볼 기회를 원천봉쇄해버린 데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은 미국인이라면 아프게 들어야 할 내용이다. 1990년대부터 미일 관계의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오키나와의 후텐마 해군 기지 문제도 미국 내 관료 조직 간의 경쟁과 이기주의로 인해 불필요하게 장기화되고 복잡해졌다는 지적 또한 그렇다.
환율 정책이나 버블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히 깊이 들어가 일본 경제가 그려온 극적인 궤적이 머릿속에 정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본이 패전 이후 미국에 국방과 외교를 맡긴 대신 미국을 지렛대 삼아 경제를 일으키고, 나중에는 거꾸로 미국이 일본의 경제력에 의존하여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를 유지한다는 얘기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게 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면모가 전후 일본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모델이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니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해도, 주어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문장이 가득하다. 그렇게 일본을 따라가던 한국은 20세기 말을 분기로 점점 궤적을 달리하고 있지만, 일본이 고민하고 있는 만성적 저성장이나 언론의 독립성, 사법 개혁, 저출산 고령화 사회 등이 우리에게도 숙제인 까닭은 그래서이지 않을까 한다.


책 속에서

대신 진정한 사랑이 그렇듯, 그 매혹에는 비극에 대한 깨달음이 덧입혀졌다. 불완전한 생명체와 그들이 만든 것을 사랑하는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깨달음이다. 이제 나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 근대사의 대부분이 비극이고, 그 비극이 흔히 그렇듯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결점이 결합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나라와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끔 만든 바로 ‘그 무언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모두를 끌어들인 것은 섹스였다. 섹스는 에도 시대에 화려하게 꽃핀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공공연한 뿌리이자 원동력이었다. 나중에 일본인들이 서양인들의 도덕관념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부키나 우키요에 같은 정통 일본 예술의 뿌리는 의도적으로 숨겨졌다. 특히 그때까지 일본의 지도층에게 쓰레기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던 에도 대중문화인 목판화나 예술품들에 서양인들이 열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랬다.

젊은이가 군주가 당한 모욕을 복수하고는 기꺼이 스스로의 배를 가른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농민에게 기괴하고 불효스럽게 느껴졌다. 젊은이는 모름지기 쓰러질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 아버지에게 효도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무라이 정신 자체도 에도 시대에 이미 풍자의 대상이 될 정도로 화석화되었다. 사무라이들은 그런 정신이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진 사회에 대해 시위라도 하듯 좀더 과장된 자기희생과 지독한 금욕주의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일본이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군사 위협과 국내의 격화된 자유민권운동에 직면하자, 사무라이의 가치는 에도 시대 박물관으로부터 꺼내져서 단지 근대화된 군대에 필요한 것이 아닌 군국주의 사회 전체에 필요한 가치로 재포장되었다.

메이지 시절 종교가 겪었던 운명은 이후 일본이 걸었던 길을 여러 면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적이지 않다’고 낙인찍어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사실상의 신흥 종교를 ‘순수하고’ 자생적인 전통으로 포장하여 만들어내며, 한편으로는 서양 문물에 열광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그 제도적 유산을 오래도록 일본에 남기게 된다. 또 ‘일본적인 것’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데 집착했던 메이지 일본은, 일본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대륙의 영향을 애써 지우고자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서양 문화를 허겁지겁 받아들여 미숙하게 소화시켰다. 그 결과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서양에 대한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에 빠졌고, 이러한 모순은 이후 비참한 정치적 결말을 가져온다.

일본 비즈니스의 정신이 앞으로 어떤 상황을 맞아 어떻게 발현되건, 일본 기업들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활력을 이런저런 개혁을 통해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일본의 유한책임회사들이 진정 기적에 가까운 일들을 성취해냈던 그 특별한 수십 년은 반복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본 기업들의 문제는, 문화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표류하고 있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마주하고 있는 더 광범위한 과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비즈니스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지정학적·경제적 요소뿐 아니라, 일본 비즈니스가 몸담고 있는 문화와 정치의 미래도 가늠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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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제기

도서정보 : 위징 | 2021-04-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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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제기>는 수나라 제왕들의 기록이다. ≪수서≫에서 가장 앞에 있으며, 총 5권으로 이뤄져 있다.
편년체(編年體) 방식으로 기술되었다. 사건의 기술 방식이 간단명료한 것 등은 사서(史書)로서의 간결성과 엄정성을 보여 준다. 장문의 조서와 책서가 많이 인용되어 있다. 조서의 내용은 제위를 양위하는 것, 등극을 알리는 것, 신하들의 공을 표창하는 것, 출정을 선포하는 것 등 다양하다. 이러한 조서들은 원시 자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고구려와 백제 관련 기록들도 많이 보인다. 정확한 날짜까지 기술되어 있어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양제>편은 가히 고구려?수 전쟁 관련 자료의 보고라 할 만하다.
국내 초역이다.

혼란을 바로잡은 통일 왕조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는 제기(帝紀) 5권, 지(志) 30권, 열전(列傳) 50권, 총 85권으로 되어 있다.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사기(史記)≫·≪한서(漢書)≫ 등과 함께 중국의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통일 왕조다. 수나라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제(煬帝), 남과 북의 교류를 촉진한 대운하,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수나라의 멸망은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와 유사하다. 2대에서 멸망했다는 점, 멸망한 후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강한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를 통일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나라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서≫를 읽는 것은 이처럼 흥망과 치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제기>의 내용
<고조>편 상편에는 양씨 가문의 내력, 고조 양견의 출생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 출세하는 과정, 북주(北周)의 왕자와 관리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양위를 받는 과정, 개국 군주로 등극하는 과정, 등극 후에 논공행상하는 과정, 각종 제도의 선포 및 천문학적 현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수 문제 양견이 등극 과정에서 이전 왕조 세력들과 벌인 치열한 전투와 술수들이 잘 나타나 있어 <제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또한 하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남조 진(陳)나라를 멸망시키는 과정과 고구려를 치게 한 일이다. 598년에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 30만 대군을 보냈으나 도중에 전염병으로 철군했다는 기록이 있다.
<양제>편 상편에는 수나라에 대해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많이 나온다. 양광이 황태자가 되고 즉위하기까지의 과정, 동경(東京)의 건설, 대운하로 알려진 통제거(通濟渠)와 영제거(永濟渠)의 개통, 고구려 정벌을 논의하고 준비하는 과정 등이 상세하게 펼쳐진다. 하편에는 세 차례에 걸친 고구려 원정과 양소(楊素)의 아들 양현감(楊玄感)의 반란 및 들불처럼 일어나는 각지의 반란으로 수나라가 멸망해 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612년 1월에 고구려를 칠 때의 조서는 당시 정국과 수나라 측의 고구려에 대한 입장, 출정 규모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고구려와 수의 전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

<제기>의 특징
첫째, 편년체(編年體) 방식으로 기술했다. ≪수서≫의 <지>나 <열전>에서는 볼 수 없는 기술 방식이다. 둘째, 사건의 기술 방식이 간단명료하다. 날짜별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하면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다”라고 간단명료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사서(史書)로서의 간결성과 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식으로 보인다. 셋째, 장문의 조서와 책서가 많이 인용되어 있다. 이 점은 <열전>에서도 두드러지나 <제기>의 경우는 전체 분량이 짧아서 더욱 두드러진다. 조서의 내용은 제위를 양위하는 것, 등극을 알리는 것, 신하들의 공을 표창하는 것, 출정을 선포하는 것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조서들은 사료 측면에서 원시 자료로서 상당한 가치가 있다.

풍부한 고구려·백제·신라 관련 내용
<제기>에는 고구려와 백제 관련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 더욱이 정확한 날짜까지 기술되어 있어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고조> 상·하편에는 고구려 관련해서 두 유형의 기록들이 있다. 첫째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수나라에 사자를 보낸 기록이다. 문제 양견의 재임 기간에 고구려와 백제는 총 9번에 걸쳐 수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고구려가 7번, 백제가 2번이다. 사자를 보낸 목적은 주로 문제 양견의 등극을 축하하거나 알현해서 공물을 올리는 것이었다. 둘째는 1차 고구려 수 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한왕 양량이 행군원수(行軍元帥)가 되어 수륙 양면에서 3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는 것과 전염병으로 귀국했는데 전사한 사람들이 80∼90%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같은 해 6월에는 고구려 수 전쟁과 관련해서 고구려 영양왕의 관작을 박탈했다고 기록했다.
<양제>편은 가히 고구려 수 전쟁 관련 자료의 보고라 할 만하다. 세 가지 유형의 기록이 있다. 첫째, 백제와 신라가 사신을 보낸 기록이다. 백제가 2번, 신라가 1번이다. 둘째는 양제가 돌궐의 유림(楡林)에 행차했을 때 그곳에 와 있던 고구려 사신을 만난 것이다. 이곳에서 양제는 고구려 사신에게 고구려로 돌아가서 영양왕에게 알현하러 올 것을 전하라고 말한다. 이 기록은 당시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와 2차 고구려 수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록이다. 셋째는 2차, 3차, 4차 고구려 수 전쟁과 관련된 부분이다. 대업 8년(612년) 1월에 양제는 출정을 명하는 장문의 조서를 선포한 것을 시작으로 고구려 수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요동에서 고구려와의 전쟁 양상과 병력 손실, 대업 9년(613년)에 다시 병사들을 소집해 출정한 일, 대업 10년(614년)에 또다시 군사들을 소집해 출정한 일과 고구려가 투항의 의미로 망명해 온 곡사정(斛斯政)을 돌려보내 준 일 등이 나와 있다.


? 이 책은 중화서국(中華書局)의 ≪이십사사(二十四史)≫ 교점본 중 ≪수서(隋書)≫와 한어대사전출판사본(漢語大詞典出版社本) ≪이십사사전역(二十四史全譯)≫ 중의 ≪수서(隋書)≫를 텍스트로 삼아 번역했다.
? 이 책은 ≪수서(隋書)≫ 권1∼권5에 해당하는 <제기>를 번역한 것이다.

구매가격 : 31,040 원

한 무제

도서정보 : 요시카와 고지로 | 2021-04-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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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한나라 무제 시대!

적극적 성격의 영명한 전제군주였던 무제는 모든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서, 당시 중국과 중화 세계 전체에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지은이 요시카와 고지로의 아름다우면서도 독자를 배려한 쉬운 필치는 무제라는 인물의 성격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실상을 생동감 있는 표현과 핍진한 묘사로 되살려내고 있다.

구매가격 : 12,800 원

식탁 위의 중국사

도서정보 : 장징 | 2021-02-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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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 역사 중국에는 전통 요리가 없다
수많은 민족의 문화가 뒤섞인 중국을 이해하는 필수 교양서

식생활을 보면 그 나라의 진짜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복식과 의례는 꾸며낼 수 있지만, 음식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가령,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을 것 같지만 매운맛을 내는 고추는 18세기 초가 되어서야 중국에 퍼졌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마라탕’ 역시 비교적 최근 음식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만두나 면에 대해 몰랐으며, 쌀이 아닌 콩이 서민의 주식이었다. 현대 중국인은 생선회를 먹지 않지만 춘추시대에는 생식이 매우 일반적이어서 공자도 육회를 즐겨 먹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중화요리는 ‘전통 요리’가 아닌, 이민족의 침략과 서역과의 교류 과정에서 만들어진 근대적 산물이다. 이 책은 50권이 넘는 풍부한 사료에서 찾은 중화요리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다루면서 음식이라는 키워드로 5천 년 중국의 역사 전체를 살피고 있다.

· 공자는 손으로 밥을 먹었다?
· 사천에서는 언제부터 매운 음식을 먹었을까?
· 왜 현대 중국인은 회를 잘 먹지 않을까?
· 중국음식은 왜 이렇게 기름기가 많고 느끼할까?
· 중국인들은 개고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구매가격 : 9,000 원

중화미각

도서정보 : 김민호 | 2020-10-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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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맛있는 건美食 아름다워美!
맛으로 떠나는 식탁 위 중국 여행

아는 동파육, 오향장육, 짜장면, 마파두부, 훠궈의 몰랐던 이야기
몰랐던 솬양러우, 쑹수구이위, 량반황과의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와 역사로 중화요리를 맛보다!

‘북경오리구이 외교’의 달인 저우언라이는 1954년에 채플린을 초청했다. 채플린은 기꺼이 응했고 저우언라이는 역시 북경오리구이를 대접했다. 그러나 채플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오리를 먹지 않습니다. 제가 연기한 우스꽝스럽게 걷는 캐릭터는 바로 오리의 걸음걸이에서 영감을 얻은 겁니다. 오리에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오리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저우언라이는 겸연쩍었다. 그때 채플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은 예외입니다. 이건 미국 오리가 아니니까요!” 채플린의 입담으로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연회는 흥겨웠다. 채플린이 말했다. “중국 오리구이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세상 최고의 맛입니다.”

맛은 혀끝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진미를 느끼는 데 아는 것은 힘이 된다. 맛있으면 궁금해지고, 알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중화미각』은 한국중국소설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열아홉 명이 중국 역사와 문학 속 스무 가지 음식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당장 근처 중화요릿집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구매가격 : 15,000 원

1911-1912년도 중국의 신해혁명 辛亥革命 . China's Revolution 1911-1912, by Edwin J. Dingle

도서정보 : Edwin J. Dingle | 2020-10-12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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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풍속/신화 > 동양사
1911-1912년도 중국의 신해혁명 辛亥革命 . China's Revolution 1911-1912, by Edwin J. Dingle
Title: China's Revolution 1911-1912
A Historical and Political Record of
the Civil War
Author: Edwin J. Dingle
CHINA'S REVOLUTION
1911-1912
A HISTORICAL AND POLITICAL
RECORD OF THE CIVIL WAR
BY
EDWIN J. DINGLE
WITH 2 MAPS AND 36 ILLUSTRATIONS
NEW YORK
McBRIDE, NAST & COMPANY
1912


우리나라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의 고종때보다 좀 후에, 신해혁명 辛亥革命 . 왕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1911에서 1912년도에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 그래서 1911년 辛亥年에 일어난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쑨원을 대총통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탄생하였다. 중국의 청나라 말기 유럽 강국의 압박 그리고 태평천국의 난 으로 청조의 지배체제가 무너질려고해서 부국강병을 위해서 근대화를 진행하게 됨. 우선적으로 서양식 무기의 도입 그리고 근대산업과 신식교육을 진행함. 그때에 중국에서 일어난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 1856년 애로호 사건 등 외세의 침입에 무기력한 청나라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무운동을 전개하여 신식무기의 도입을 진행. 이홍장은 북양군과 함대를 창건하여 군사력강화에 힘썼지만 청일전쟁에서 패배로 몰락함. 그후에도 변법자강운동이 일어나 봉건시대적 제도를 개혁하는 정책이 추진되었지만 위안스카이의 배신과 서태후 등 수구파에게 패배함. 그후에 의화단義和團 사건이 일어나면서 청조의 무기력함이 더욱 심화되자 청조의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민의는 더더욱 강성해짐. 청조 11대 황제인 광서제와 서태후가 사망하고 3살의 푸이가 황제로 등극하자 정치는 더욱 혼란을 거듭했고 국민의 생활은 고통이 가중되어 중국 전역에서 봉기가 일어난 발단. 그때의 중국의 헌법은 이책에도 영문으로 나옴.
제1조 - 중화민국은 중화인민이 이를 조직한다.
제2조 -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속한다.
중화민국 임시약법, 1912년 3월 11일 공포
삼민주의三民主義: 민권民權, 민생民生, 민족民族.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쑨원
신해혁명은 중국에서 1911년 신해년 부터 좁게 보면 1912년까지 또는 넓게 보면 1915년까지 일어난 일련의 혁명을 말한다. 중국의 현지 발음으론 X?nh?i G?m?ng신하이 꺼밍.
이 혁명으로 인하여 진시황 이래 2200년 이상 중국을 다스린 천자의 군주제가 종말을하고, 중국사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이 세워져서 그결과는 북방 이민족의 중원 지배도 완전히 종결됨.

구매가격 : 22,000 원

악한 사람들

도서정보 : 제임스 도즈 | 2020-09-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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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사람들』은 잔혹함에 대해 다룬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잔악무도한 가해자가 되는지를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쉽고 간편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뻔한 교훈을 얻고자 하지도 않는다. 전범들을 ‘악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그들이 한 행동은 ‘모두 나쁘다’고 결론 내리며 그들을 역사의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식으로 글을 전개해나가지 않는다. 그는 통찰의 방향을 전환해 악의 잔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리고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행위가 ‘악의 포르노그래피’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악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라고만 치부하면 악을 꾸준히 발생시키는 구조적 특징을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을 악마로만 규정해버리면 단순히 증오하는 것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악에 대해 성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악을 타자화하면 결국 타인을 악으로 만들게 된다.”

대신 저자는 그런 악이 이미 일어났고, 더욱 중요하게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그들은 왜 그런 짓을 저지르는가?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조직적, 구조적, 심리적 과정은 무엇인가? 왜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잔악무도한 일이 발생하는가? 악한 사람들이 대개 남성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대량학살의 폭력에서 젠더는 어떤 역할을 할까?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철학, 심리학, 사회과학, 문학 등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며 ‘악의 개념’을 설명하는 이 책은 악한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런 질문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사유로 나아간다. 그 밖에 가해자의 증언, 인권, 트라우마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등도 담겨 있다.

구매가격 : 13,300 원

수서 경적지

도서정보 : 위징;영호덕분 | 2020-08-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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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그중 <경적지(經籍志)>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지(史志) 도서목록이다. 수나라의 장서뿐만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기 도서들의 전래 과정을 잘 기술하고 있어 역대로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혼란을 바로잡은 통일 왕조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는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사기(史記)≫·≪한서(漢書)≫ 등과 함께 중국의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통일 왕조다. 수나라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제(煬帝), 남과 북의 교류를 촉진한 대운하,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수나라의 멸망은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와 유사하다. 2대에서 멸망했다는 점, 멸망한 후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강한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를 통일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나라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서≫를 읽는 것은 이처럼 흥망과 치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적지>의 도서 선정과 분류
<경적지>에서 밝힌 도서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전 목록에 기록은 있으나 내용이 천박하고 교화에 도움이 안 되는 도서들은 모두 삭제했다. 이전 목록에는 기록이 없으나 내용이 괜찮아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는 모두 덧붙여 기록했다. … 비록 오묘한 도리를 탐구하고 그윽한 모습을 궁구할 수는 없지만 대도를 널리 선양하고 교의를 세우는 도서들은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수서≫ <경적지>는 도서의 선정과 분류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수대업정어서목(隋大業正御書目)≫을 기준으로 삼아 수나라의 14,466부(部)의 총 89,666권의 유서들과 대조하고, 여기에 순욱(荀?)의 ≪중경신부(中經新簿)≫·왕검(王儉)의 ≪칠지(七志)≫·완효서(阮孝緖)의 ≪칠록(七錄)≫에 의거해 경(經)·사(史)·자(子)·집(集) 사부(四部)로 도서를 분류했다.

사부 분류법
한나라 때 경전으로 분류되었던 사서(史書)는 위진(魏晋) 시기 들어 수량이 늘면서 그 범주가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후로 ‘사(史)’를 ‘경(經)’에서 독립시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경신부≫의 병부에서 사기·구사· 황람부·잡사 네 가지의 소류(小類)로 분류되던 것이 ≪수서≫ <경적지>에서는 정사·고사·잡사·패사·기거주·구사·직관·의주·형법·잡전·지리·보계·부록의 열세 가지 소류로 구분되었을 정도로 사서의 기록이 다양해졌다. 이렇게 되면서 춘추류(春秋類)에 모든 사서를 포함하기 어려워 따로 사부(史部)가 만들어졌다. 사부의 성립으로 춘추류에 실렸던 사서들이 사부에 수록되기 시작했다. 사부가 성립되자, 사부의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경신부≫에서 사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부(四部)에서 세 번째 위치에 있었으나 이충의 ≪진원제사부서목≫에서 을부와 병부의 내용이 바뀌면서 사부가 경부 다음의 두 번째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사부를 경부 다음에 둔 것은 문인들이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자부에 수록된 도서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경·사·자·집의 사부 분류법이 확립되었다. ≪수서≫ <경적지>의 사부 분류법은 이후 도서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어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까지 줄곧 적용되었다. 중국 정사에서 사부 분류법으로 도서를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수서≫ <경적지>에서 비롯되었다.

도교와 불교 경전을 아우른 목록
정사에 최초로 도경과 불경 도서를 수록했다. 도교와 불교는 남북조 시기를 거쳐 점차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당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 이러한 사상적, 학술적 영향으로 남북조 시기부터 목록서에 도교와 불교 관련 서목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도교와 불교는 방외의 종교로 간주되어 남북조 시기에 편찬된 목록서인 ≪칠지≫와 ≪칠록≫, 그리고 ≪수서≫ <경적지>에는 하나의 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록으로만 실렸다. 그럼에도 도경부와 불경부가 정사에 처음으로 실렸다는 점에서는 목록학사상 한 단계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매가격 : 55,04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