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 고대, 삼황오제 하상주 춘추전국 춘추오패 전국칠웅 진시황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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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대


1. 중국 역사는 한족 역사가 아니다

고대 중국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奴?는, ‘말 한필에 비단실 한 타래’를 합한 값에 거래되었다.
그러한 가격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 李氏朝鮮에서 노비의 거래가격이 ‘1년 노비 품삯’이었으니, 현대적 화폐 척도로써 분별하여도, 서로 큰 차이가 없다.
현대사회의 화폐를 기준 한다면, 대략 3,500만 원가량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 정도 연봉을 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람 한 명의 거래 가격이 그 정도였으니, 돈벌이 좀 못한다고 해서 自壞感을 가질 것은 없다. 적어도 노예나 노비가 되어, 돈 몇푼에 팔려 다니는 신세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연봉을 3,500만 원 넘게 받으려면, 노동자로서 고용되어,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노예나 노비 못지않은 受侮와 侮辱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수천 년 전의 고대사회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도록,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서민대중들은, 늘 혁명적 변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그런 것은 실현된 바가 없다. 늘 대다수의 서민대중보다, 여러 모로 월등한 역량을 지닌 소수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무참히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도 그러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民度는, 고대 중국이나 이씨조선에 비한다면, 그 어떤 혁명적 변화라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실현하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대의 기득권층은, 고대의 기득권층에 비해, 또 다시 월등한 역량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소 암울하지만, 향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당최 변화될 것 같지 않다. 保守右派가 집권하든, 進步左派가 집권하든, 혁명적 변화는 당최 遙遠할 따름이다.
더욱이 저 먼 고대사회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나, 현대사회의 서민대중 역시, 기득권층의 선동질과 조작질에 惑世誣民 당하는 ‘개돼지 군중’ 신세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민대중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것인가. 그나마 현실성 있는 시도는, 앎의 공부다. 스스로 공부하여, 시대와 상황을 잘 알게 된다면, 적어도 ‘개돼지 군중’ 신세는 면할 수 있다.
갖은 프로파간다 선동질과 조작질에 놀아나지 않는, 오롯한 自由人이며 個人으로서, 한 세상 살아낼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기득권층이 소유하는 만큼의 慾望充足이 가능할 리 없다. 그저 심리적 차원의 自己滿足이며, 自己享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마저도 하지 않은 채, ‘개돼지’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면, 고대 중국의 노예나, 이씨조선의 노비 신세보다, 아무 것도 나을 것이 없다.
실상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사회 서민대중의 수준이,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별반 나을 것이 없다. 그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소유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물질적 변화는, 그저 시대와 상황의 변화일 따름이다. 그런 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절대적으로 향상된 수준에 배치된 것이겠는가.
다만, 人權의 차원에서는, 근대사회 이후 급격한 발전이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반 나아진 것 없는 신세지만, 적어도 憲法的으로 동등한 인간존재로서의 天賦人權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현대판 노예나 노비의 수준에 불과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自由人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적 발전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죽음의 순간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몇 푼의 돈벌이를 목적하며, 현대판 노예나 노비로서 살아낼 것인지, 다소 궁핍하더라도 정신적 자유인으로서 공부하며 살아낼 것인지는, 철저히 現代的 個人의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大韓國民에게 부여된 가장 큰 축복이며 행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국은 말할 나위 없으며, 북한의 형편을 살핀다면,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이데올로기적 妄想에 세뇌되고 현혹되어, 중국이나 북한을 羨望한다는 자들이야말로, 스스로 현대판 노예나 노비로서 살아내는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一言以蔽之하여, 中國歷史는 漢族歷史가 아니다. 東夷族을 비롯한 다양한 異民族 세력에 의해 주도된 역사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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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중세, 가마쿠라 무로마치 난보쿠초 센고쿠 쇼쿠호 세키가하라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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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중세

1. 일본 중세, 사무라이 시대가 시작되다

일본 역사에서 中世는, 韓國人의 관점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으로 代辯되는 시대이다. ‘도요토미’가 擡頭되는 까닭은, 말할 나위 없이, 壬辰倭亂과 丁酉再亂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李氏朝鮮보다 劣等한 倭寇 세력에게 蹂躪당한 사건이다 보니, 지금까지도 反日主義의 대표적 원인의 하나로 膾炙된다.
당시 ‘도요토미’는, 나름대로 국제정치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분명 그것은 예수회 선교회를 통해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帝國으로서의 日本夢을 시도했던 것이었다.
그런 시절에, 李氏朝鮮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실정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전쟁의 慘禍를 겪은 후에도, 이씨조선의 기득권층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씨조선 말기에, 國家를 송두리째 일본의 ‘덴노 全體主義’ 세력에게 빼앗기고서야, 국제정치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뒤늦은 死後藥方文일 따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한국인의 정신성은 급격히 피폐하였고, 현재에 이르도록 ‘시대의 쭈구리’로서, 별다른 韓國夢을 지니지 못하는 실정이다.
李成桂와 鄭道傳 이후, 明나라의 屬國으로서, 철저한 事大主義的 小中華主義로써 국가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실상 그것은, 이씨조선 기득권층인, 양반사대부의 利權을 유지하는 방편일 따름이었다.
그런 상태로 수백 년을 지속하다 보니, 21세기에 이르러서도, 한국인들은 당최 氣魄을 갖지 못한 채, 烏合之卒의 離合集散의 形勢로써, 그저 제 밥그릇이나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현재 중국은 中國夢을 선전해대며, 실제로 그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이미 수세기 전에 日本夢을 시도하였고, 어찌되었든 결국 大東亞共營圈을 내세우며, 日本帝國의 꿈을 실현하였다.
그러한 국제정치적 사례를 체험하면서도, 南北統一이나 故土收復은 고사하고, 한국인들에게는 현재까지도 마땅한 韓國夢이 不在하다.
‘짱께’들 눈치 보며 살아낸 세월이나, ‘쪽발이’들에게 주눅 늘어 살아낸 세월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민족의 無意識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21세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事大主義的 태도로서 親中主義를 주장하거나, 일본에 대해 植民主義的 태도로서 反日主義를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이러한 時代錯誤的 ‘개돼지 관점’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극히 암울하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짱께’들의 屬國이 되지 않고, ‘쪽발이’들의 植民地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그들의 정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隣接國의 悲劇’이라는 국제정치적 법칙을 인식하고서, 보다 철저히 인접국 자체를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
수년 전 保守右派가 집권하던 시절이나, 현재 進步左派가 집권하는 시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資本主義와 市場經濟를 추종하는 보수우파야 그저 그런다지만, 平等, 公正, 人權, 民主化 따위를 프로파간다 삼아, 서민대중들을 선동질하고 조작질 해대는, 진보좌파의 現在的 作態는, 실로 참담한 심정을 갖게 한다.
현직 법무부장관이라는 자가, 온갖 不法行爲와 不正腐敗로 인해,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상황이다.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며, 갖은 道德主義的 선동질을 해대던 자의 실체가, 결국 썩어문드러졌던 보수우파 기득권층의 ‘짓거리’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자의 경우도 별다르지 않다.
서민대중들은 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했다. 적어도 이씨조선이나 보수우파 기득권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껍질을 벗겨보니, 그 실상은 더욱 추악하다. 그것은 그들이 추종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니는 도덕주의적 성향 탓에, 더욱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의 경우도 그러했다. 순진무구한 인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지녔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소련은 몰락했고, 중국은 몰락해가고 있다. 고작 이런 것이 左派進步主義의 실체라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을 실로 암울하게 한다.
11세기 이후, 일본은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로 변모하였으나, 지방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정도로 막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지역 주민 스스로가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만 했다.
헤이안 시대 후반, 지방에서는 호족과 부농들이, 자신들이 개간한 농지를 사유화하고, 이를 지키려고 스스로 무장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부시(武士, ぶし)’ 계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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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근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 막부 조닌 겐로쿠 가세이 부시도 가부키 우키요에 대정봉환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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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근세

1. ‘에도(도쿠가와) 바쿠후’(1603~1867)

에도 시대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불교의 不殺生 계율을 지나치게 誤濫用하여, 동물의 생명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殺生禁止令을 발표해, 많은 빈축을 샀다.
특히 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누쿠보(犬公方, 개 쇼군)’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쇼루이아레미노레이(生類憐れみの令)’란, 일본 에도 시대, 겐로쿠 연간에,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에 의해 발효된, 여러 法令(오후레, お?れ)을 일컫는 말이다. 다만 특정 成文法律이 아니라, 여러 가지 비슷한 법령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는 흔히, ‘개 쇼군’에 의해, 개에 대한 살생을 금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어패류 및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체의 생명에 적용되었다.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丙戌年 태생으로, 특히 개를 보호하였다. 개인적으로도 개를 좋아하여, 100마리의 개를 길렀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愛犬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기존에도 개라는 동물은, 아주 친숙한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어디까지나 家畜으로서, 三伏에는 도축되어 음식으로 활용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기괴한 서양 愛玩犬 文化의 영향 탓으로, 어느새 ‘개 팔자’야말로 ‘사람 팔자’를 능가하는 시절을 맞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일부 주인 잘 만난 ‘금수저 개 팔자’의 경우이다. 학대 받다가 遺棄犬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불교의 不殺生 계율을 좇아, 개의 생명은 물론이며, 온갖 동물의 생명을 인간의 생명과 동일하게 인식하고서, 살생금지령이 발효된 시절이, 바로 일본 에도 시대이다. 물론 이 외의 사례도 있다.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법흥왕 16년(412)과, 권8 신라본기 성덕왕 10년(711)에, 신라의 동물살상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27 백제본기 법왕 1년(599)에는, 백제의 살상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는데, 사냥 및 매의 사육을 금지하였으며, 어망 등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려사 세가 편에는, 고려의 도축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 북송의 휘종이, 1102년에, 개 살육금지령을 내렸으며, 5세기경에는, 불교 법강경 제3장 식육계에 따라, 생명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육식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작태들은, 현실세계 보통 백성들의 처지를 무시한, 空理妄想的인 가혹한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세계의 절대적 권력을 지닌 자가, 어떤 철학사상을 지니고서, 어떤 이념과 의식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피지배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현직 대통령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좇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이며, 미래 역시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이 親中, 反中, 親日, 反日, 親美, 反美 따위의, 다양한 選擇肢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른 樣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선택은, 善惡, 眞僞, 美醜 따위의 영역과는 별반 연관을 갖지 않는다. 물론 선택하는 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선하며, 진실이며,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에도 시대 ‘개 쇼군’의 사례는, 많은 것을 苦惱케 한다. ‘개 쇼군’ 역시, 제 깐에는, 참으로 선하며, 진실이며, 아름다운 선택을 한 것이다.
‘개 쇼군’은, 살생은 어쨌거나 나쁜 것이며, 따라서 사랑하는 백성들이, 그러한 살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참으로 정당하며, 공정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서민대중들은, 에도 시대 최고 전성기였던 ‘개 쇼군’ 시절에, 살상금지령으로 인해, 난데없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강제적으로 肉食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여러 모로 난데없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존재는 동물적 존재로서, 菜食은 물론 동시적으로 육식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장 기초적인 건강 상태나마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선량한 ‘개 쇼군’의 판단에 의해, 전혀 예상치도 못한, 不殺生의 고통 속으로 내몰리고 만 것이다.
아울러 所爲 朝貢貿易은, 明나라 황제가 周邊國의 왕을 冊封해주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써, 해당국은 조공을 바친다.
예컨대, 李氏朝鮮에서 貢女, 絹織物, 高麗人蔘 등을 바치면, 明에서는 그 대가로, 조선 지배계급이 선망하는 高級絹織物, 瓷器, 書籍, 藥材 등을 下賜해 주는 방식이다.
혹자는, 조공무역은 조선에게 더 이익이 많았는데, 이는 조공 횟수를 둘러싼, 양국 간 주장을 보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명이 조선에게 3년 1공, 즉 3년에 1번의 조공 무역을 주장하는데, 조선은 거꾸로 명에 1년 3공, 즉 1년에 3번의 조공 무역을 주장했다. 조선에서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조공무역은, 諸侯國에서 帝國에 일방으로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제후국에서 朝貢品을 바치면, 제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回賜品을 하사하는 게 원칙이었다.
회사품은 조공품보다 귀하고 많아야 하는 게, 관례였고 원칙이었다. 더불어 사절단의 체제비와 물품 운반비를, 명나라 측에서 모두 부담하였다. 이는, 上國으로서 체면을 유지하려는 방도였다.
물론 이러한 역사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며, 一理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보다는, 그러한 상황에서 치욕스럽게 굴종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李成桂, 鄭道傳 이후, 이씨조선 양반사대부 기득권층의 패배주의적 의식구조에 대해, 먼저 再考해야 한다.
그런 歷史的 慣性이, 21세기 현재에도 대한민국에 澎湃하여, 여전히 ‘짱께’들이나 ‘쪽발이’들에게 주눅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현장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니다. 다만,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숙명적으로 인접국으로서 배치된 관계이다.
그러니 ‘인접국의 비극’으로부터 당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항상 그만큼의 간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何時라도 중국이나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
명나라의 屬國으로서 정체되었던 이씨조선 시기를,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절이라고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화라는 것은, 自主獨立의 토대 위에서 실현되는 것이지, 속국이나 식민지의 상황에서의 停滯的 安定을 평화라고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도 막부(江戶幕府)’ 또는 ‘도쿠가와 막부(?川幕府)’는, 日本史에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일본사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최후의 막부이다.
1603년 3월 24일(게이초 8년 음력 2월 12일)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軍)에 취임하고, 막부를 창설하였을 때부터 시작되어, 1867년 11월 9일(게이오 3년 음력 10월 14일)에,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大政奉還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천황에게 넘기면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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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중세, 전한 신 후한 위촉오 서진 오호십육국 남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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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중세



1. ‘전한(서한)’(기원전 206~기원후 8)

고대 중국의 역사를 살피면, 아주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상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애를 통해, 매우 드라마틱한 삶의 행태를 체험케 된다. 굳이 戰場에서, 권력을 목적하며, 목숨을 내놓고 도박을 하지 않아도, 그러한 속내를 나름대로 代理體驗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각종 역사적 사례로써 현재를 살피는 일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며 효과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 역사에서 前漢 시기는,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漢武帝라는 人物像으로서 대표되는 시대이다. 중국 측 역사에 따른다면, 한무제는 衛滿朝鮮을 정벌하고서, 식민지 한4군을 설치한 인물이다.
현대적 관점에 따른다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듯이, 한4군 설치로써 수탈당한 것에 대해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후 이어지는 역사에서도, 한반도는 중국대륙에 정립된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착취의 대상으로서 유지되었다. 그러하다면 응당 그에 대해서, 총체적인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현대인들이 멀지 않은 과거로서 기억하는 丙子胡亂, 壬辰倭亂 등은 말할 나위 없다. 나아가 淸日戰爭, 露日戰爭 등도 그러하다.
그런데 배상의 문제는 차치하고, 한4군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였는가에 대한 여부마저도, 여전히 曰可曰否하고 있는 실정이다.
事大主義나 植民主義를 추종하는 자들은, 대체로 한반도 내에 한4군이 배치된 것으로 比定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韓民族의 전통적 疆域은 대폭 축소되어버린다. 거대한 만주대륙을, 우리 역사에서 스스로 제거해버리는 결과가 된다.
古代史는 그 자료가 不備한 탓에, 어떤 하나의 事實이나 史實에 대하여, 어떠한 이해와 해석을 갖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곧 어떤 史觀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 역사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사관으로써 역사를 살펴야 하는가. 두말 할 나위 없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의 國益에 도움이 되는 역사적 관점이 요구된다.
당최 검증될 수 없는 한4군의 위치를, 굳이 한반도 내에 배치하여, 한민족의 역사적 활동 영역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당최 납득키 어렵다.
漢四郡의 위치에 대하여, 과거부터 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臨屯郡이나 眞蕃郡의 경우, 설치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고, 玄?郡 역시 랴오닝 성 撫順 방면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위치에 대한 논란은, 주로 樂浪郡을 두고 계속되었다.
三國史記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이씨조선시대의 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일대로 比定하였다.
박지원 등의 일부 실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를 요동 지역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시대 이후, 평양 일대에서 封泥, 漢式 무덤 등, 낙랑 관련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됨으로써, 낙랑의 위치는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낙랑토성 일대임이 확증되었다.
2009년에는, 평양에서 출토된 木簡(2005년 출토)을 분석하여, 낙랑군 소속 25개 현의 인구 규모와 정확한 위치 등을, 판독·연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신채호 등의 일부 민족사학자 및 재야사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낙랑이 요동 일대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지린을 비롯한 북한 학자들과 대한민국의 윤내현 등의 일부 학자들은, 낙랑을 지금의 요하 서쪽이라고 주장하며, 박영규 등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낙랑의 위치를 북경 서쪽의 화북 지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 대한민국 사학계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무시한 채, 문헌사료의 취합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대한민국 사학계가 어떤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학계라고 통칭할 만한,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애석하지만 대한민국 사학계라는 것은, 기껏해야 ‘이마니시 류’와 ‘이병도’의 학맥을 좇아, 밥그릇 싸움하는 집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집단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북한 사학계와 유사한 주장만을 떠들어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자들의 反國益的 주장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한4군 위치 비정에 있어, 대한민국의 역사적 국익의 관점에서 주장되는 이론은, 죄다 民族史學이나 在野史學이라고 貶毁해버린다.
그리고서는 자기들이 대한민국 사학계를 대표한다면서, 고작 ‘짱께’나 ‘쪽발이’ 세력에 동조하는 주장을 해대고 있다. ‘짱께’나 ‘쪽발이’들로부터 적잖은 ‘떡고물’이 떨어지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鮮卑族은, 漢族들이 세운 南朝를 정복하고, 북주와 북제로 나뉘어졌다. 그 후 隋나라 楊堅에 의하여, 중국이 통일되었다.
수나라의 양견은, 선비족 우문부가 세운, 北周의 외척으로서 선비족이다. 그 이유는, 북위 때부터 계속, 무천진 출신 선비족 8주국 관롱 집단이, 중국인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선비족의 다얀씨(大野氏)는, 北周의 귀족이며, 선비족 8주국 관롱 집단 출신, 당 李淵도 선비 출신이다.
이처럼, 중국 역사를 살필 때에는, 동시적으로 북방 유목제국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우리 역사를 살필 때에도 매한가지다.
허황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그저 三國史記, 李朝實錄 따위만을 守舊的으로 살펴서는 안 된다.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단일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底本이 되는 텍스트들이다.
따라서 그런 것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응당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傍證史料를 동시적으로 살펴야 함은 明若觀火다.
‘前漢(기원전 206~기원후 8)’은, 고조 劉邦이, 項羽와 대륙 쟁탈 뒤에 세운 왕조로서, 秦에 이어서,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왕조이다.
수도는 長安이었는데, 그 위치가, 후에 세워진 후한의 수도 洛陽보다 서에 있어서, 西漢이라고도 불린다.
고조 유방은, 원래 亭長으로, 의병을 일으켜 沛公의 자리에 올라, 楚의 義帝를 섬기다가, 그 세력이 커져, 또 다른 거대 세력인 항우와 경쟁하였다.

-하략-

구매가격 : 3,000 원

근현대 일본, 이토 히로부미 후쿠자와 유키치 이마니시 류 아베 신조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8-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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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가격 : 3,500 원

일본! 작게 보고 크게 보고

도서정보 : 박경하 | 2019-08-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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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일본 작게 보고 크게 보고』는 20여 년이 넘는 기간을 일본에서 활동해 온 박경하 저자의 솔직담백한 일본 분석기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글로벌 세계의 가능성을 믿고 일본으로 건너간 저자는 한국의 과자회사 (주)오리온의 일본법인 지사장으로 활동하며 몸으로 접한 일본의 역사, 문화, 사회, 그리고 일본시장에서의 경영전략을 구어풍의 유머러스한 필치로 생생하게 풀어내어 이 책에 담았다.

구매가격 : 9,750 원

중국과만주.명과청.China and the Manchus, by Herbert Allen Giles

도서정보 : Herbert Allen Giles | 2019-07-0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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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풍속/신화 > 동양사

중국과만주.명과청.China and the Manchus, by Herbert Allen Giles
만주의 여진족 청나라와 중국의 명나라 사이의 역사와 전쟁에 대해서 쓴책임.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가 쓴 책.

구매가격 : 20,000 원

누구나 다 아는 일본 이야기

도서정보 : 이진천 | 2019-05-15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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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일본 이야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왜 책으로 냈을까?
우리는 일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민족성, 국민성 조크와 함께 살펴보는 일본인과 일본 사회

역설적인 책 제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일본인의 특성 중 하나가 이중성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내면으로 품고 있는 속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만으로 일본을 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일본과 관련된 민족성, 국민성 특징을 살린 유머와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본에서 생활했고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일본인과 교류가 많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인과 일본 사회를 조명하고, 우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가져야 할 자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구매가격 : 11,000 원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

도서정보 : 사마광 | 2019-04-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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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책 『자치통감』
그 방대한 1,362년의 역사를 58편의 이야기로 꿰뚫다

세종대왕이 필독서로 삼고 시진핑이 지도층에게 일독을 강조한 중국 최고의 역사서, 『자치통감』. 대정치가이자 역사학자였던 사마광이 19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자치통감』은 300만 자, 294권, 1,362년의 역사를 아우른다. 북송의 신종은 이 걸작에 ‘지난 일을 비추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로 삼아야겠다’는 의미에서 거울 감鑑자를 쓰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자치통감』은 세상에 나온 이래 역대 황제와 리더들의 길잡이가 되어 왔다. 세종대왕, 마오쩌둥, 시진핑은 물론이고 불확실한 현실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자치통감』을 펼쳐들었다.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제왕의 교과서’ 『자치통감』을 가장 효율적으로 압축했다. 294권이라는 엄청난 분량 속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으며 교훈을 주는 58편의 이야기를 선별하고 삽화를 곁들여 이 거대한 고전의 세계를 부담 없이 탐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바른 길을 비추는 거울이 될 것이다.

『자치통감』, 대정치가의 눈으로 걸러낸 역사의 정수

사마광은 왜 19년에 걸쳐 힘들게 『자치통감』을 편찬했을까? 『자치통감』 이 나오기 전 중국 최고의 역사서는 단연 사마천의 『사기』였다. 하지만 『사기』는 개인 전기를 모아놓은 기전체였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도 많았고 그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역사서들이 모두 이를 따라하였기에 사마광 시대에 이르러서는 당시 존재하던 정사正史만 해도 1,500만 자에 이를 정도였다. 그래서 사마광은 상소를 올린다. “신은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 이후로 역사책들이 번거로울 정도로 많아짐을 걱정해왔습니다. 벼슬 없는 백성조차도 다 읽을 시간이 없는데, 하물며 하루에 만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황제께서 어느 겨를에 이를 두루 읽으오리까?” 사마광은 역사 속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의미 있는 부분을 추려내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을 펴내고자 했다. 결국 전국시대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총 294권, 약 300만 자의 최초의 편년체(연대순) 역사서로 기록된 『자치통감』이 완성되었다.

세종대왕, 마오쩌둥, 시진핑… 『자치통감』을 사랑한 사람들

『자치통감』은 동아시아 각국으로 널리 퍼졌으며, 중국 역대 황제들의 필독서였고 후대의 리더와 지식인들로부터 최고의 책으로 칭송받아왔다. 청나라 사학자 왕명성은 “지금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니 학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라고 평했고 청나라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증국번은 “나라 다스리는 이치를 논한 책 가운데 사마광의 『자치통감』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현대 중국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은 『자치통감』을 17번이나 읽었고, 중국 국가 주석으로 취임한 시진핑은 취임 이래 정부를 재정비하면서 지도 계층의 필독서로서 『자치통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치통감』은 빠지지 않는다. 세종대왕은 『자치통감』을 수시로 읽었으며, 신하들에게도 이 책을 널리 권했고 경연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단순히 여러 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수 해설을 덧붙인 『자치통감훈의』의 편찬을 지휘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정약용, 이덕무, 김옥균 등도 『자치통감』을 아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들은 책을 펼치고 역사를 거울삼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왜 『자치통감』인가?

『자치통감』 이후 이를 따라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이와 같은 명성을 얻은 책은 없다. 왜일까? 그 이유는 바로 사마광이라는 사람에게 있다. 사마광은 20세에 진사에 급제한 뒤 정치의 중심에 섰다. 낙양으로 떠난 이후에도 그의 명성은 여전했다. 그는 네 명의 황제를 섬겼으며 여러 벼슬을 거친 끝에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냉철한 정치가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본 결과물이 바로 『자치통감』이다. 『자치통감』에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막대한 평론까지 가미되어 있다. 사마광은 수많은 사료들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걸러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첨언도 서슴지 않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내용만을 남기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역사의 내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엄밀한 사실을 바꾸려고 했단 말은 아니다. 사마광은 오히려 수많은 사료를 비교해 가장 신뢰할 만한 사실만을 골라냈다. 그가 한 일은 방대한 역사를 거르는 체 역할에 가깝다. 그 누구도 역사의 사건 하나하나를 전부 알 수는 없으며, 결국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볼지 선택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치통감』은 황제와 지도자를 위해 가장 훌륭한 체로 걸러낸 역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사마광이 말했던 “만 가지 일을 처리하는 황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94권의 고전을 읽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자치통감』을 읽기 쉽게 축약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어 왔다. 『자치통감강목』과 『통감절요』를 비롯한 수많은 책들이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통감』을 현대인의 시선에 맞추어 새롭게 걸러낼 필요가 있었다.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이 방대한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단단한 입문서가 되고자 한다.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58편의 이야기로 자치통감의 핵심을 소개한다. 여러 곳에서 중복되어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최대한 제외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자치통감』에서 가려 뽑은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예를 들어, 후계자 하나를 잘못 세워 가문 전체가 고꾸라진 지선자智宣子의 이야기에서는 한창 사회면을 달구는 특혜 논란을 떠올릴 수 있고, 서진西晉의 멸망에 대해 기록한 대목인 ‘관리를 뽑는 제도는 유명무실했고 황제의 친척 자제들이 파격적으로 임명되었다. 신하들은 전부 갖은 수단을 다해 명예를 추구했고 나라를 위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에서 우리 사회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읽어낼 수 있다.

또,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역사에서 교훈과 더불어 재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적합한 책이다. 『초한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부터, 유일무이한 여성 황제였던 측천무후의 파란만장한 삶, 천하통일을 이룬 당태종 이세민까지, 16개 왕조가 생겨났다 스러지는 1,300여 년을 따라가다 보면 그 파란만장한 역사의 재미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낭중지추, 사면초가, 패왕별희 등 수많은 고사의 유래가 된 순간들을 소개함으로서 익숙한 사건들을 새로운 맥락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에서는 주요 장면마다 삽화를 그려 넣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각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보다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흔히 역사는 우리와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연결된 역사의 맥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자치통감』처럼 1,362년의 역사 변천과 흥망성쇠를 명쾌하게 정리한 책은 흔하지 않다. 우리는 『자치통감』을 통해 켜켜이 쌓인 역사의 사건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시대를 꿰뚫어보는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다. 천년의 이치를 한 권으로 묶은 『한 권으로 읽는 자치통감』은 갈수록 혼란스러워지는 이 시대에 올바른 길을 알려 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3,300 원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도서정보 : 시부사와 에이이치 | 2019-02-1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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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부의 창출은 도덕 경영에서 시작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영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의 근대화와 자본주의에 앞장선 인물로 유럽의 주식회사제도를 들여와 철도회사, 가스회사, 전등회사, 방직회사 등을 설립했다. ‘삿포로맥주’, ‘임페리얼호텔’, ‘도쿄전철’ 등 그가 세운 기업들은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커다란 기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찬사 받는 이유는 그가 이룬 경제적인 성과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일본에 자본주의라는 개념이 들어오기도 전, 즉 상업이 무시 받던 시기에 경제의 중요성을 통찰했다. 동시에 경제 부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도덕’을 꼽았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도덕과 경제는 서로 반(反)하는 게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며 굴러가야 진정한 근대 자본주의가 완성된다.”고 하며 ‘인의’와 ‘도덕’을 선행되어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재산 축적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영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들이 드러나는 오늘날, ‘도덕 경영’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정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화가 된 남자,
그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된다
청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의 개방을 요구하는 서양의 목소리에 거세게 반항했다. 그는 미국과 조약을 맺은 막부를 부정하며 일종의 봉기를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막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막부의 신하가 되었다.
이후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파리 만국 박람회에 참가해 유럽을 돌아보며 서양의 문화를 직접 목도하게 되었다. 그는 서양의 주식회사 제도 등을 보며 일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 체류 중에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몸담았던 막부가 붕괴해버렸고 시부사와는 졸지에 ‘망국의 신하’가 되었다. 일본으로 돌아온 시부사와 에이이치에게 이번엔 메이지 정부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정부의 관료로 변신하여 근대일본의 틀을 구축하는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서양 자본주의의 잔상은 너무나 짙게 남았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머지않아 관직을 그만두고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장사치들을 손가락질 하던 당시, 촉망받는 관리였던 시부사와는 일본에 주식회사제도를 도입하여 상업을 부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도전은 일본이 경제 강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시부사와 한 개인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 경제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기기도 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전문가 서울대학교 박훈 교수의
상세한 설명과 유려한 번역!
친척들은 비오는 날 밤이면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찾아와 그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됐는지 이야기를 청했고 그 이야기를 받아 적은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 책이 자신의 자손들에게 읽히길 바라며 자신의 ‘유품’이라고 했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 전문가인 박훈 교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남긴 이야기를 되새기며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독자들이 메이지유신 전후의 시대적인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한 주석을 더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소설 같은 이야기와 박훈 교수의 친절한 설명이 더해진 이 책은 독자들에게 평생의 ‘유품’으로 남을 것이다.

구매가격 : 14,4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