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역사 결정적 비밀 4 _나폴레옹의 혀가 일으킨 풍파외 92건의 숨겨진 진실

도서정보 : 장영진 | 2020-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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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역사 비밀이나 에피소드들은 특정 역사 연구자들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예를 들면 히틀러의 나치가 600만여 명의 유태인을 죽였을 뿐 아니라 많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십여 만 명의 독일 게르만 족을 학살했고 일본의 진주만 습격정보가 이미 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 의해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 한국전쟁 중 다수의 미국비행기가 소련공군에 의해 격파되었다는 것 등등이다. 그밖에도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역사의 재미있는 지식들을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월시인류화석 1470호인 일본국명과 국기의 유래 화산우표가 현재의 파나마 운하를 만들었다는 사실 흑인과 유태인의 수수께끼 등이다. 일반 독자들은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는 모두 이런 작은 일들이 포함된 큰일이다. 이 책은 저자가 30여 년 동안 역사를 연구해온 수완과 10여 년 동안의 노력으로 수많은 세계역사의 세부 사정이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비밀 일화들을 하나하나 모아 책으로 엮었다. 또한 통속적이고 유창한 언어와 진귀하고도 또렷한 내용들은 생생한 묘사를 더해준다.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며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구매가격 : 4,000 원

성서속의 아름다운 여인들 1_최초의 반항자 이브

도서정보 : 아론 로젠블라트 | 2020-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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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라헬 사라 리브가 델릴라 이사벨 등 성경에 등장하는 이 여인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들린다. 작자이자 성경학자인 아론 로젠블라트는 이 책에서 여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우리들에게 전달하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감정과 문제를 짚어낸다. 로젠블라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이 여인들과 그들의 남자들을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이해력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여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문제들 우리가 궁금해 하는 문제들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로젠블라트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면 매일 기적을 행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여인들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현대의 소설 혹은 드라마와 같이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남편에게 자식을 안겨주기 위해 남편의 침실에 다른 여자를 들여보낸 불임 여성도 있고 두 아들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여인도 있다. 성폭행을 일삼는 오빠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한 딸 영웅과 결혼하여 결국 남편의 명성과 질투심에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여인도 있다. 심리 역사 소설이 혼합된 이 책을 통해 여성들은 이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어머니가 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4,000 원

성서속의 아름다운 여인들 2_욕정에서 사랑으로

도서정보 : 아론 로젠블라트 | 2020-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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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라헬 사라 리브가 델릴라 이사벨 등 성경에 등장하는 이 여인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들린다. 작자이자 성경학자인 아론 로젠블라트는 이 책에서 여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우리들에게 전달하면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감정과 문제를 짚어낸다. 로젠블라트의 눈을 통해 우리는 이 여인들과 그들의 남자들을 새로운 시각 새로운 이해력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여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문제들 우리가 궁금해 하는 문제들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로젠블라트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면 매일 기적을 행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여인들은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이를 낳기 위해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현대의 소설 혹은 드라마와 같이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남편에게 자식을 안겨주기 위해 남편의 침실에 다른 여자를 들여보낸 불임 여성도 있고 두 아들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 여인도 있다. 성폭행을 일삼는 오빠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한 딸 영웅과 결혼하여 결국 남편의 명성과 질투심에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여인도 있다. 심리 역사 소설이 혼합된 이 책을 통해 여성들은 이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어머니가 되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4,000 원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도서정보 : 수전 올리언 | 2020-02-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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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9일 아침,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서 화재경보가 울렸다. 놀라서 소지품을 챙기고 허둥지둥 뛰쳐나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안에 있던 400여 명의 사서와 이용객들은 ‘또 시끄럽게 울리네’라며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어차피 다시 들어올 거니 소지품도 그대로 둔 채 나갔고, 도서관은 8분 만에 비워졌다. 다들 밖에서 다시 들어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성냥 하나에서 시작됐을지 모르는 이 대화재는 소방관들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틈을 타 전력질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40만 권의 책을 한 줌의 재로 남겼으며, 70만 권의 책을 훼손시켰다. 그곳에 남겨진 것은 비통함과 재 냄새뿐이었다.

역대 최대 공공도서관 화재 사건인 이 일은 그러나 신문과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았고, 책 애호가들조차 이런 일을 모른 채 지나갔다. 책 애호가 수전 올리언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30년 뒤 이 일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누군가 일부러 도서관에 불을 지른 걸까? 그는 과연 누구일까?

수전은 도서관과 사서들의 이야기를 지금껏 누구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다. 도서관의 연대기와 화재, 그 여파가 기록되는 가운데 독자들은 진화하는 유기체로서의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사서들과 현재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사서들, 수많은 이용객이 우리에게 책과 도서관에 얽힌 삶을 들려준다. 위트와 통찰력, 연민에 바탕을 둔 심도 있는 조사력으로 이 책은 도서관이 왜 우리 마음과 정신, 영혼의 본질적 부분으로 남았는지 입증할 것이다.


도서관이 한 줌의 재가 된 날

연기탐지기가 울리기 시작하자, 건물을 빠져나온 400명의 사람들은 도서관 밖 보도에 모여 상황이 수습되기를 기다렸다. 낡은 경보 시스템 탓에 자주 화재경보가 울렸기 때문에 누구도 별것 아닌 듯 여겼다. 하지만 옅은 보랏빛을 띠던 연기는 회색으로 짙어지더니 시커멓게 변했다. 책 표지들은 팝콘처럼 팡팡 터지고 페이지에는 불이 붙어 날아다녔다. 뜨거운 공기가 벽을 적시고, 열기로 콘크리트 조각이 녹아 사방으로 튀었다.

동북쪽 서가에 있던 책들은 부스러기와 재, 가루가 되어버렸고 새까맣게 탄 페이지들은 1피트 높이로 쌓였다. 마지막 남은 불길이 펄럭이고 소용돌이치다 가라앉았고 마침내 사라졌다. 불이 꺼지기까지 산소통 1400개, 구조 커버 1만3440제곱피트, 플라스틱 시트 2에이커, 톱밥 90더미, 물 300만 갤런 이상, 로스앤젤레스시 소방인력과 장비의 대부분이 소요되었다. 1986년 4월 29일 오후 6시 30분, 도서관에 난 불이 마침내 “진압”되었다고 공표되었다. 7시간 38분 동안 맹위를 떨친 뒤였다.

잃은 것들의 목록은 이렇다. 프랑스의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실린 1860년도판 『돈키호테』. 성경, 기독교, 교회사에 관한 모든 책. 인물 H에서 K까지의 모든 전기. 미국과 영국의 모든 희곡. 모든 셰익스피어. 컴퓨터,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지진학. 공학, 금속공학과 관련된 책 9000권, 과학부의 제본되지 않은 모든 원고.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1500년대에 쓴 책. 도면과 설명서가 첨부된 1799년부터의 미국 특허 목록 550만 개, 비슷한 시기부터의 캐나다 특허 자료. 저자 A부터 L까지의 문학작품 5만5000권. 최초의 현대 영어 완역본인 1635년도 커버데일 성경. 수십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인 항공 연감. 경영서 9000권, 잡지 6000권. 사회과학서 1만8000권, 1896년에 나온 패니 파머의 『보스턴 요리학교 요리책』 초판, 팝콘 레시피책 6권을 포함한 요리책 1만2000권. 물에 닿으면 끈적끈적한 곤죽이 돼버리는 유광지에 인쇄된 예술 간행물과 예술서적 전부. 조류학 도서 전부. 도서관이 소장했던 마이크로필름의 4분의 3. 물에 젖자 떨어져버린 사진 2만 장의 정보 라벨. 불탄 구역에 어쩌다 잘못 꽂혀 있던 모든 책. 불타거나 훼손된 책의 수는 일반적인 도서관 분관 15개의 소장 도서를 전부 합친 것과 맞먹었다. 미국 역사상 공공도서관이 입은 최대의 손실이었다.


금발의 해리 피크, 그가 방화범일까

수전 올리언은 우선 도서관의 유력 방화범으로 지목되었던 해리 피크를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녀는 해리가 정말 도서관에 불을 질렀는지, 만약 그랬다면 이유가 뭔지, 죄가 없다면 어쩌다 기소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취재에 들어갔더니,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전은 그의 누나, 애인, 그와 가까웠던 성직자, 친구들, 동료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해리라는 인물의 몽타주를 그려간다.

이 책에는 해리 피크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연애 경험, 성격적 특성 등은 물론이고 도서관 화재 당일 그의 행적 또한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해리는 화재가 일어난 아침에 도서관에 있었고 심지어 친구에게 자기가 방화범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그가 평소대로 허풍을 떠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사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사서 여러 명도 해리가 사서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한 노파는 화재 때 해리와 자신이 부딪쳤다고 말해 그가 현장에 있었음을 증언했다. 결국 해리는 수사 선상에 올라 체포되었다. 하지만 해리를 범인으로 붙잡아둘 만한 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무엇이든 입증할 만한 것은 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고, 사건 당일 방화 지점조차 확정지을 수 없었다.

그래도 비밀을 풀고 싶었던 저자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사건에 매달리며,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서 잠깐 주목을 끌고 시야에서 사라졌던 ‘해리 피크 사건’을 전면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서가에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화재를 조사하면서 만난 인물들의 도서관에서의 삶은 이 책의 커다란 기둥이 된다. 저자는 화재 당시 근무 중이던 사서들과 경비, 진압 작전에 투입되었던 소방관과 이후 도서관 재건에 힘을 실어주었던 기업가 등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사건 이면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또한 개관 당시부터 도서관을 지킨 역대 사서와 경영진들의 삶은 독자에게 도서관의 진화하는 모습을 펼쳐놓는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은 1873년 1월에 문을 열었다. 회비가 비싸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고 규칙은 엄격했다. 여성들은 ‘숙녀용 열람실’에서 선별된 잡지만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출입도 금지되었다. 이런 시기에 폐쇄적인 도서관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서 메리 포이, 다양한 책을 도서관에 들여놓다 악마와 바람이 났다며 구설수에 오른 테사 켈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고 소송에 휘말린 도서관장 메리 존스, 과학 서적에 독극물 경고 도장을 찍어 분류한 찰스 러미스 등이 무덤 속에서 살아나 도서관의 연대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워런은 역대 도서관 운영자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독서가였다. 그녀는 사서들의 가장 큰 한 가지 책무가 열심히 책을 읽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사서들이 독서 행위 자체를 좋아하길 바랐다. 1935년에 도서관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사서들은 술꾼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고양이가 잠을 자는 것처럼, 혹은 개가 산책을 가자는 말에 반응하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 사서로서의 양심이나 훈련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어떤 일보다 책 읽는 것을 택할 것이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도서관의 보안 책임자인 데이비드 아귀레의 독자들 목격담도 흥미롭다. 아귀레는 매주 약 100건의 문제들에 직면하는데, 소지품 도난, 컴퓨터 이용 제한 시간을 너무 많이 오버하는 사람, 심지어 도서관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들까지 발견한다. 그중 아귀레가 가장 곤란해하는 문제는, 도서관에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냄새가 난다고 말해야 할 때다. 공공도서관은 노숙인을 품어야 하기에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지만, 다른 이용객들이 ‘냄새’를 불쾌하게 여기면 보안 담당자가 그들의 불평을 대신 전해야 해서 괴롭다. “냄새 난다는 말이 얼마나 모욕으로 들릴지 알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그 말을 해야 한다.”


책을 복원하자 도서관이 부활했다

화재 소식이 도시 여기저기로 퍼지면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불에 그을린 채 물에 젖은 70여 만 권의 책을 냉동고로 옮겨 복구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사흘간 밤낮으로 일했다.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밖까지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해 날랐다. 저자는 이 긴급한 순간을 “로스앤젤레스 시민들로 살아 있는 도서관을 이룬 것 같았다”고 묘사한다. 시민들이 스스로 공유된 지식을 보호하고 전달하는 체계를 만들었다는 의미였으며 이는 도서관이 매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화염 속에서 살아남은 책들은 상자 5만 개에 담겨 영하 56도의 식품창고로 보내졌다. 그리고 2년 뒤 해동, 건조, 소독을 하고 보수하여 다시 제본할 준비를 마쳤다. 시는 책을 살릴 자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이 화마에 사라지고 7년 뒤인 1993년 10월 3일, 신문에는 ‘도서관 재개관’이라는 헤드라인이 실린다. 개관식에는 200만 권이 넘는 책을 꽂는 ‘책 꽂기 파티’가 열렸고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 도서관의 부활을 축하했다.

저자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새겨진 책이 있다고 말한다. 각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 분류하여 내면에 저장한 기억들의 컬렉션이자,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개인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으며 우리가 죽으면 불타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과 공유한다면 생명을 얻게 된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은 비통함과 유쾌함으로 가득한 도서관 여행기로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어 각자의 기억 도서관에 오래도록 꽂히게 될 것이다.

구매가격 : 14,300 원

클래식 클라우드 014-모네

도서정보 : 허나영 | 2020-02-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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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우주가 내게 보여주는 것을
붓으로 증명하려 했을 뿐이다”


미술사의 흐름을 뒤바꾼 인상주의 혁명
그 시작과 끝에 ‘빛과 색을 쫓는 사냥꾼’ 모네가 있다

빛의 인상을 쫓는 여정을 시작한 르아브르 해안에서 구세대 미술에 도전장을 내민 파리를 거쳐
대표작 <수련>을 피워낸 지베르니 정원까지 빛으로 가득한 모네의 화실을 찾아 나서다





◎ 도서 소개

인상주의자 모네의 ‘예쁜 그림’에 담긴 아방가르드 정신
회화가 나아갈 길에 새로운 빛을 제시한 그의 삶과 예술로의 여행

프랑스의 근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에펠탑이라면, 미술에는 인상주의 회화가 있다. 둘 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 탄생했고, 처음 발표된 당시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예술사에서 확고부동한 가치와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만국박람회를 통해 에펠탑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1889년에 모네는 로댕과 함께 각각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와 조각가로서 2인전을 열었다. 르누아르, 드가 등 동료 화가들과 의기투합해 첫 인상주의 전시를 열고 〈인상, 해돋이〉를 발표한 지 꼭 15년만이었다. 그 후로 현재까지 모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화가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모네와 인상주의를 주제로 한 전시는 거의 예외 없이 성황을 이루고, 2019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모네의 1890년작 〈건초더미〉가 낙찰가 신기록을 세웠다.
모네가 이토록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그림이 대중에게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그의 작품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그저 ‘예쁜 그림’으로만 봐도 좋은 것일까? 1874년에 〈인상, 해돋이〉를 보고 루이 르루아가 내린 ‘인상밖에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는 명백한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로 대표되는 신고전주의 회화를 모범으로 삼는 아카데미와 살롱의 기준에서 이 그림은 아름답기는커녕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그림이었다. 모네는 기존 회화가 추구하던 이상화된 형태와 색, 실제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원근법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인상’을 그렸다. 안개 낀 날과 맑은 날 센강의 물빛이 다르고, 공기와 햇빛의 질에 따라 그림자조차 수백 혹은 수천 가지 다른 색을 띤다.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이런 시각적 차이를 그림으로 구현한 최초의 화가들이 모네와 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아직 옛것에 얽매인 당대의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외면당했지만, 결국 역사는 모네와 인상주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존 주류 미술에 대항해 시대를 앞선 새로운 미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상주의는 혁명이고 아방가르드다. 이 혁명을 모네는 ‘빛’과 ‘색’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자신의 눈에 실제로 보이는 자연의 빛을 그린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그가 말년에 시력을 잃어가면서 그린 작품들에 나타난 왜곡된 형상과 색채조차 그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과 같았다고 한다. 모네는 천재라기보다는 예민한 시각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며, 빛과 색에 관한 그의 집요한 탐구는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조각하는 장인과 같았다. 모네의 발자취를 쫓는 이 책은 불가해하리만치 집요한 그 열정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에서 이해해보려는 시도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르아브르에서부터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한 파리를 거쳐 아르장퇴유, 베퇴유, 루앙, 지베르니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저자 허나영은 종종 멈춰 서서 화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모네의 삶과 예술을 추동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헤아린다. 르아브르 바닷가에서는 화가의 길을 반대했던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한창 인상주의 전시 준비로 바쁜 와중에 이곳을 찾은 그의 심경을 상상해보고, 파리 생라자르역의 철골 지붕을 바라보며 삶의 무게와 이루고 싶은 꿈 사이에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이 분주하고 고단했던 그의 30대를 돌아본다. 첫사랑이었던 아내 카미유를 떠나보낸 뒤 새로운 사랑 앞에서 주저하던 마음과 그럼에도 끝내 그 사랑을 지켜낸 용기까지, 이 책에는 모네의 그림만큼이나 다채로운 빛깔을 띤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시대의 인상을 넘어 회화의 현대성을 포착하다

저자는 모네의 삶과 예술을 이끈 두 가지 배경을 19세기 파리 사회와 미술사의 흐름에서 찾는다. 프랑스혁명으로 주춤했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경제 발달이 본격화된 19세기 중후반의 파리는 ‘모던’이라는 구호 아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에서 격렬하고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 개조 프로젝트에 따라 무질서한 중세도시가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고, 새로운 교통수단인 기차가 프랑스 전역을 핏줄처럼 연결했다.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들은 시누아즈리나 자포니즘 같은 이국적인 문물에 환호했다. 달라진 생활 방식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했고, 이를 재빠르게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자들이다. 이들의 그림은 한마디로 유행을 담은 그림이었다. 특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인 ‘벨 에포크’가 모네의 작품 속 화려한 색채로 나타났다. 모네 자신의 삶 역시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가 지베르니에 정착해 정원을 가꾸며 〈수련〉 연작을 그리던 무렵, 인상주의는 프랑스를 넘어 전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를 끌며 그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회화가 신화, 종교, 역사 같은 고전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일상과 현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화가들이 이젤을 들고 화실 밖으로 나가게 된 것도 19세기의 일이다. 사실주의 운동을 이끈 쿠르베, 농민의 삶과 자연을 다룬 바르비종파 화가들,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보고 느끼며 그리라는 가르침을 준 부댕과 용킨트 등이 모두 모네의 스승이자 선배다. 이 같은 경향은 좀 더 앞선 시기에 영국에서 터너와 컨스터블의 풍경화로 나타났고, 모네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피해서 간 런던에서 터너의 그림을 접하고 깊은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미술을 향한 시대적 흐름은 이미 형성되고 있었고, 모네는 그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에 부응하기 위해 뜻이 맞는 동료와 후원자 들을 모아 인상주의라는 본격적인 길을 냈다. 그 길을 타고 회화는 대상에 대한 정형화된 재현에서 예술가의 주관적인 표현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한다. 미국의 모더니즘 비평가 그린버그는 인상주의가 이미 지나간 세대의 미술이 되어버린 1950년대에 모네의 현대성을 재발견했다. 특히 색으로 가득한 평면에 가까워진 모네의 후기 작품들이 회화라는 매체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고 보았고, 인상주의를 현대미술의 출발로 평가했다.


빛과 색으로 가득한 거대한 평면, 대장식화 〈수련〉의 탄생

흔히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모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덮개’와 ‘연작’이다. 루앙대성당을 그릴 때 그는 성당이라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과 자신 사이에 있는 덮개를 그린다고 했다. 공기, 바람, 안개, 온도, 습기, 시간 그리고 빛과 같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 쉽게 지각되지 않던 것들이 모네의 그림을 통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덮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날씨와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담기 위해 그의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연작 형식으로 발전했다. 에트르타 해안에서 모네와 어울렸던 모파상에 따르면, 그는 하늘의 변화에 따라 여러 개의 캔버스를 바꿔가며 그림을 그렸다. 이는 건초더미나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빛과 색을 쫓는 사냥꾼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상을 포착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빛과 함께 모네 미학의 핵심을 이루는 또 하나의 주제는 ‘물’이다. 말년에 그는 화가보다 정원사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는 데 정성을 쏟았다. 특히 연못을 중심으로 한 물의 정원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작품이자, 대장식화 〈수련〉 연작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이 연작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 수련이 아니라 수련이 떠 있는 연못의 수면이다. 모네는 여타의 대상을 모두 밀어내고 오로지 거대한 수면만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수련〉이 전시된 오랑주리미술관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물과 빛으로 이루어진 덮개에 감싸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그림뿐 아니라 전시 공간까지도 그의 의도대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꽃의 수족관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는 둥근 벽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전시실을 주문하고 그에 맞는 그림을 제작했다. 평론가 앙드레 마송은 모네를 미켈란젤로에 빗대어 오랑주리미술관을 ‘인상주의의 시스티나성당’이라고 불렀다. 기념비적인 크기와 함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 놓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한 비유다.

86세로 삶을 마감한 모네는 한 미술 사조의 시작과 끝을 모두 함께한 드문 인물 중 하나다. 인상주의라는 혁명을 시작하고 그 ‘마지막 생존자’가 된 모네는 말년에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평생에 걸친 예술적 탐구의 집약체이자 그것을 뛰어넘어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장식화 〈수련〉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고자 했지만, 그 집요한 탐구의 끝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난 표면적인 아름다움 그 이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과 함께하는 여정이 또 다른 영감과 울림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모네의 그림은) 우주를 지각하는 우리의 능력을 더욱 깊고 정교하게 만들어준다”
-조르주 클레망소





◎ 책 속에서

◆ 모네에게 야외 화실은 그 어떤 화가에게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 결코 실내에서는 담을 수 없는 소재를 화폭에 담기 위해 야외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빛’이다. 모네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빛과 그에 따라 변하는 만물의 색을 그리기 위해 화구를 들고 센강 변으로 갔다.
-〈프롤로그〉 중에서

◆ 모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 모든 것의 시작점은 르아브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노르망디 바다를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준 스승 외젠 부댕을 만났을 뿐 아니라, 모네에게 인상주의자라는 이름표를 붙여준 〈인상, 해돋이〉를 그린 곳이기 때문이다.
- 〈1장 여명 - 노르망디 바닷가에 이젤을 세우다〉 중에서

◆ 옛것에 얽매이지 않고 급변하는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바로 19세기 젊은 예술가들이 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모네를 비롯하여 이후 인상주의자라고 불리게 되는 화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19세기 파리의 삶을 각자의 개성을 살려 표현한 ‘도시의 화가들’이다. 혹자는 반문할지도 모른다. 모네가 주로 그린 것은 자연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모네의 발걸음이 닿았던, 소위 ‘모네의 화실들’은 파리지앵들이 기차를 타고 나가 여가를 즐기던 확장된 파리라고 볼 수 있다.
- 〈2장 일출 - 미래를 향해 달리는 도시와 화가들〉 중에서

◆ 당시 모네를 포함해 인상주의자라고 불린 이들의 상당수는 30대 혹은 40대였다. 이미 가정을 이루었거나 적어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해야 하는 나이였다. 살롱으로 대표되는 미술 제도는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고, 기성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버리는 것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로 뭉쳤던 것이다. 비록 당시의 보수적 시각에서는 쓸데없는 아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역사는 인상주의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모네를 인상주의자로 기억하는 것이 그 증거다.
- 〈3장 아침 햇살 - 인상주의자의 탄생〉 중에서

◆ 모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붓을 잡은 것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한편,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카미유와 함께 바다에 갔을 때, 아르장퇴유의 들판을 산책했을 때, 그녀가 마당에서 아들과 노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든 순간을 그림에 담고자 했던 모네이기에 이렇게라도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 〈4장 정오 - 두 번의 죽음을 넘어서〉 중에서

◆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가꾸고 있을 때, 비록 인상주의는 해체되었지만 뒤랑뤼엘은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인상주의자들도 당시에 모르던 것이 있다. 그들에게 세계 미술과 문화의 중심은 파리였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계속 그럴 것 같았다. (...) 20세기에 들어서서 발발한 두 번의 전쟁으로 세계 경제와 정치뿐 아니라 예술의 중심 역시 미국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 파리지앵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부를 얻어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파리에 집을 사두고 살롱을 열어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교제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뒤랑뤼엘은 미국 본토에서도 미술 시장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 예측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 〈5장 오후의 태양 - 지베르니에서 맞이한 벨 에포크〉 중에서

◆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1891년 뒤랑뤼엘갤러리에 전시된 〈건초더미〉 연작을 ‘진정한 사실을 그린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흔히 사실적인 묘사라고 여겨지는 사물의 껍데기가 아니라, 빛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이 모네의 그림에 담겨 있다고 보았다.
- 〈5장 오후의 태양 - 지베르니에서 맞이한 벨 에포크〉 중에서

◆ 그토록 시각에 의존하던 화가가 정상적이지 않은 시력으로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것이 범부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네의 그런 열정 덕분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색다른 작품이 탄생했다. 그가 반복해서 다뤄온 동일한 일본식 다리와 장미 아치를 그렸음에도 형상은 불분명해지고 색감은 더욱 강렬해졌다. 붓질은 거칠면서도 강한 마티에르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파악하려다가도 강렬한 색과 붓질에 압도당하고 만다. (...) 실제 대상에 대한 충실한 재현을 떠나 오로지 색과 질감만으로 훌륭한 회화가 된다는 점에서 이 시기 모네의 작품은 훗날 미국 추상표현주의와도 연결된다.
- 〈6장 노을 - 〈수련〉, 꿈의 완성〉 중에서

◆ 분명 멀리서 보았을 때 보이던 꽃과 나무, 물비늘이 그림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형태가 흩어지고 대신 다양한 색의 붓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모네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중 하나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꽃이든 사람이든, 설사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성당이라 하더라도 모네의 손에서는 그저 붓자국으로 표현될 뿐이다. 그는 여인의 아름다운 속눈썹이나 성당의 성스러운 조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햇빛이 자연과 사람을 비출 때 보이는 색에 집중했고 그것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빛 그 자체였다.
- 〈6장 노을 - 〈수련〉, 꿈의 완성〉 중에서

◆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모네의 ‘예쁜 그림’ 뒤에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을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힘겨운 노력과 투쟁이 있다.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물길의 당연한 흐름에 모네가 커다란 돌을 던졌다. 물론 혼자서 한 것은 아니었다. 선배인 쿠르베와 마네가 있었고 후배 격인 고흐와 쇠라가 있었다. 또한 이 예술가들의 전위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지지해준 뒤랑뤼엘과 같은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네가 던진 돌 옆에 또 다른 돌을 던져주고 흙을 옮겨주자 물길이 바뀌었다. 이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낸 인상주의는 그렇게 서양미술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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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도서정보 : 헨드릭 하멜 | 2020-02-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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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조선의 실상들
최초로 조선을 서양에 알린 13년 28일의 기록

다시 새롭고 간결하게 정리한 오리지널 에디션!!

태풍으로 조선에 표착한 하멜과 그 일행의 억류생활을 기록한 책
『하멜표류기』는 ‘난선제주도난파기’라고도 한다. 조선에 관한 서양인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동양에 관한 호기심과 함께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1653년(효종4년)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르베르(Sperwer)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의 연변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년 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하멜이 그 일행과 함께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하멜은 조선의 여러 곳에 강제 이송되는 과정에서 정치제도와 민초들의 생활상을 서양인의 눈으로 예리하고 세밀하게 관찰했고 조선의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고 충실하게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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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오늘의 역사 (매일 하나씩 읽는)

도서정보 : 기억기록 연구소 | 2020-01-3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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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씩 읽는) 3월 오늘의 역사 우리가 궁금한 이야기 부제 오늘의 소사(小史) - 간략하게 기록한 역사. 3월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 문학-의학-과학-예술 등 각 분야의 관심을 때론 깊고 때론 얇고 지식을 총망라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이야기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다양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식! ① 본문과 주석을 읽는 재미 ② 풍부한 배경지식을 터득할 수 있는 정보 ③ 동서고금(동/서양)을 막론한 종횡무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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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문화 개관

도서정보 : 최남선 | 2020-01-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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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는 국초부터 기록 100권이 있어 ‘유기(留記)’라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 서술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후에 영양왕(?陽王) 11년(서기 600)에 이르러 태학(太學)박사 이문진(李文眞)으로 하여금 이를 다듬어서 잘 정리(刪修)한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과 을지문덕의 수장(隋將)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낸 오언시(五言詩)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이다.<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4,000 원

삼국시대 문화 개관

도서정보 : 최남선 | 2020-01-2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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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는 국초부터 기록 100권이 있어 ‘유기(留記)’라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 서술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후에 영양왕(?陽王) 11년(서기 600)에 이르러 태학(太學)박사 이문진(李文眞)으로 하여금 이를 다듬어서 잘 정리(刪修)한 신집(新集) 5권을 만들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과 을지문덕의 수장(隋將) 우중문(于仲文)에게 보낸 오언시(五言詩)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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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세계의 창조

도서정보 : 로이 포터 | 2020-0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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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는 혁명에 맞설 예방주사였는가
그것은 인류를 수렁에 빠트렸는가 꽃길로 이끌었는가
계몽주의의 진정한 발상지는 영국이었다

로크, 뉴턴, 하틀리, 흄, 스미스, 프리스틀리, 페인, 벤담, 고드윈, 울스턴크래프트…
18세기 영국의 지적인 삶에 대한 탁월한 서술, 서양 근대 지성사의 우뚝한 성취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 울프슨 역사상 수상작!

귀중한 논제를 던지는 눈부시게 창의적인 저작! _뉴욕 타임스
포터의 책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_피터 게이,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우리 모두는 ‘계몽의 자식들’이다
근대 유럽의 18세기는 ‘계몽의 세기’ 또는 ‘이성의 시대’라고 불려왔다.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인간 정신의 해방과 진보를 추구한 계몽의 사상가들은 한낱 이성을 앞세운 몽상가들이었을까, 아니면 실제로 정치나 사회를 변혁했던 것일까? 계몽이란 그저 지식의 해방운동에 그쳤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성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던 것일까?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 로이 포터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것은 타도나 전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창출과 정당화에도 헌신하는 계몽주의, 혁명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계몽주의다.

영국 계몽주의의 출발점은?
저자 로이 포터는 스튜어트 왕가를 몰아내고 의회의 제한을 받는 군주정이라는 혼합 정체를 수립한 1688년 명예혁명에서 영국 계몽주의의 출발점을 찾는다. 또한 그후의 ‘혁명적 협정’은 인신과 소유의 안전을 보장하고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폭넓은 관용과 여러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헌정 체제를 사실상 자유화했다고 본다. 1697년 출판에 대한 사전 검열이 폐지됨에 따라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가 크게 확대되었는데, 로크는 종교적 관용을 설파했고, 합리성으로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정제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다시금 다음 세대의 이신론과 더 나아가 무신론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세상은 세속화되고 탈주술화되었다. 베이컨은 새로운 학문 연구 방법론을 역설했고, 뉴턴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은 자연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적용되는 새로운 해석틀로 기능하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양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홉스 등의 철학자들은 감각주의와 경험주의를 토대로 인간의 본성과 자연, 도덕과 사회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시각들을 제시하면서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의 초석을 놓았다.

장기 18세기 영국 사회의 근대성
또한 ‘장기 18세기’ 영국 사회는 절대왕정의 전복과 더불어 상업화, 산업화, 소비사회의 출현과 같은 근대성의 여러 측면을 경험했다. 계몽주의는 이러한 근대적 변화들을 가져오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때로는 문제화하는 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화는 새로운 딜레마를 야기했다. 토지 소유에 바탕을 둔 독립적 시민들의 덕성virtu과 그들의 정치 참여를 통한 공공선을 강조한 고전 공화주의나 시민적 인문주의 전통은 더이상 활력 넘치는 상업사회를 뒷받침해줄 수 없었다. 여기서 흄은 상무정신과 공무 참여 같은 시민적 덕성보다는 사치스러운 쾌락, 즉 사적 욕망의 추구가 근면을 낳고, 근면이야말로 학문과 예술, 상업, 다시 말해 문명을 낳는다고 역설함으로써 새로운 상업사회를 옹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제어되지 않는 개인들의 사적인 목표 추구가 도덕의 붕괴나 공적 질서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자기애’와 ‘상호 의존성’의 결합은 사적 이익의 추구가 자연스럽게 공공선을 도모함을 입증해보였다. 이로써 영국 계몽주의는 자기 해방과 쾌락 추구를 긍정하면서 개인의 자유로운 행복 추구를 보장하는 사회적 안정과 조화, 균형을 약속했던 것이다.

철저한 개인주의야말로 영국 계몽주의 한 특징
영국 계몽주의가 프랑스나 독일의 계몽주의와 구별되는 또다른 점은 철저한 개인주의다. 로크는 통치자에 맞서 개인적 권리들을 역설했고, 흄은 시민적 덕성보다 사적인 삶을 더 중시했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사적인 선을 공공선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개인 행위자를 옹호했다. 벤담은 모두가 평등하며 각자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판단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적인 쾌락 계산의 공리를 정식화했다. 그렇듯, 계몽인들은 인류 행복의 추구라는 꿈을 꾸었지만 그저 ‘꿈꾸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길을 모색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세계는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 바로 오늘날 우리 대다수가 동참하는 세속적 가치 체계, 인류의 하나됨과 개인의 기본적 자유들, 그리고 관용과 지식, 교육과 기회의 가치를 옹호하는 세계였다. 우리는 모두 ‘계몽의 자식들’이며, 그들 계몽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셈이다.

*

현대의 정치적 렌즈를 통해 사후적으로 계몽주의를 바라보는 태도는 치명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목적론을 낳는다. (…) 최근의 연구 동향은, 순수하고 단일한 운동이라는 과거의 본질주의적 전제들을 (…) 전성기 다원주의로 대체하는 해체적 분위기다. 몇몇 슈퍼스타들에 대한 오래된 강조 대신에 이제는 계몽된 더 넓은 집단이 E. P. 톰슨의 ‘영국인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시각에서 연구되고 있다. 오늘날 무신론과 공화주의, 유물론의 전사들만이 ‘계몽된’이라는 형용사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단언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다름 아닌 톰슨이 분명히 말했을 법한 대로, ‘후세의 어마어마한 우월적 태도’로부터 영국 계몽주의를 구해낼 때가 무르익었다. _1장에서

프랑스 혁명과 이후 19세기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들의 진통을 피해 간 영국에는 계몽주의 전통이라고 부를 만한 게 과연 존재할까? 본서 『근대 세계의 창조』는 여기에 힘주어 ‘예’라고 대답하는 책이다. 1783년, 베를린 수요 클럽이 토론 주제로 던진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무지라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는 답변했다. 그것은 ‘감히 알려고 하는’ 자세, 독립적으로 사고하려는 자세다. 우리가 칸트의 답변을 계몽주의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인다면, 이미 ‘누구의 말도 믿지 마라’는 모토를 채택하여 설립된 영국의 왕립학회는 칸트가 말한 계몽을 추구하고 또 구현하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_역자 후기에서


언론 리뷰

호화롭고 자극적인 책. 포터는 능수능란하다. _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영국 계몽주의’ 같은 용어는 모순어법일까? 이 책이 지닌 힘의 일부는 독자가 그와 같은 질문을 첫 장章에서부터 더이상 던지지 않게 된다는 데 있다. 포터는 논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훌륭하게 선별한 증거를 확실하게 주지시킨다. _가디언

그 시대의 지적인 삶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 엄청난 양의 학구적 정보를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한다. 그 시대를 이해하고, 선명하게 바라보며, 당당하고 눈부신 당시의 시대정신을 사랑하고 공감하는 보기 드문 미덕을 지닌 책. 뛰어나고 명료하며 경탄스럽다. _옵저버

훌륭하다. 포터는 논제를 활기차게 제시하며 적절한 인용으로 서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_선데이 텔레그래프

늘 그렇듯이 눈부시고 활기 넘친다. 뛰어난 스타일로 긴 분량을 이끌고 가며, 인상적인 학식이 돋보이는 대단히 풍성한 책. _파이낸셜 타임스

도발적이고 통찰력 있는 책. 지금과 같은 웹 시대에, 최초로 ‘근대적’인(비록 전적으로 계몽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시대로 알아볼 수 있는 세기의 서로 맞물린 활기찬 네트워크를 되돌아본다. _선데이 타임스

로이 포터는 그가 계몽주의의 프랑스화라고 보는 것으로부터 계몽주의를 구해내고, 계몽주의에 대한 영국의 기여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사명을 띠고 있다. 그는 그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한다. 현명한 구성과 명료하고 매력적인 스타일, 일반화와 사례 간의 적절한 균형, 그리고 미묘한 차이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갖춘 즐거운 책이다. _포트워스 모닝스타 텔레그램

최상의 지성사. _리치먼드 타임스 디스패치

놀랍도록 생산적이며 인상적인 커리어의 정점. _스코츠먼


책 속으로

테리 캐슬은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18세기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편집증과 억압, 광기의 조짐이 보이는 시대다”라고 냉담하게 평가한다. 1997년 에릭 홉스봄은 유사한 맥락에서 “요즘에는 계몽이 피상적이고 지적으로 순진한 것에서부터 서구 제국주의에 지적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가발을 쓴 죽은 백인 남성들이 기획한 음모로 치부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볼테르는 역사를 우리가 죽은 자들을 골탕 먹이는 각종 수법들로 가득한 상자에 비유했고, 누구도 객관성이란 허상일 뿐이라는 것을 반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푸코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독해는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믿으며, 어째서 그리고 왜 그러한지를 아래에서 보여주겠다. (18∼19쪽)

우리 시대는 복잡한 수정주의가 특징이다. 오랫동안 ‘이성의 시대’는 영미 학자들에 의해 무미건조하거나 젠체하는 막간, 볼테르 같은 똑똑이들과 루소 같은 괴짜들의 시대로 폄하되었다. 그러나 더 근래에 들어서 계몽주의는 근대성의 형성에 결정적인 운동으로서 인정을, 때로는 악명을 얻어가는 중이다. 미국 역사가 피터 게이는 필로조프들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근대적 삶의 문제들과 씨름한, 두려움을 모르는 비판가들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풍요로워졌다. 우리는 이제 계몽주의가 게이가 기린 ‘일단의 필로조프들’을 훨씬 넘어서는 것임을 안다. 오늘날 문화사가들은 신문과 소설, 인쇄물과 심지어 포르노그래피에 자극받은 독서 대중 전반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끓어올랐음을 지적한다. (30쪽)

대륙의 석학들은 정치와 윤리, 인식론, 미학, 심지어 문학 분야에서 영국의 혁신으로 크나큰 자극을 받았다. 디드로는 ‘영국인이 없었다면 프랑스에서 이성과 철학은 지금도 매우 한심한 유아적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36∼37쪽)

근대성을 형성하는 데 영국 사상가들이 수행한 역할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문인들과 그들의 독자들 사이의 접촉과 순환 회로에 대한 훌륭한 지도 작업이 필요하다. 런던과 에든버러, 더블린 사이, 메트로폴리스와 지방 사이,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 종교적 문화와 세속적 문화 사이, 남성 문화와 여성 문화 사이 순환 고리 모두를 추적해야 한다. (42쪽)

전체적으로 클럽과 동호회, 지부의 급증은 언론 매체와 싸구려 글쟁이들의 증대와 맞물려, 각양각색의 공중 전반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융성하는 인쇄술 기반 정보통신 사업으로서 문화를 신장시켰다. 런던은 근대적 생각과 가치들을 선보이고, 정치적·예술적 신조를 과시하고, 새로운 것을 홍보하는 무수한 여타 공적인 플랫폼을 지원했다. 근대성을 홍보하는 이러한 연단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극장이었다. (80∼81쪽)

그러한 확신들을 형성하는 데 인쇄 매체는 비록 양날의 검이긴 해도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인쇄된 말은 예를 들자면 입에서 입으로, 대대로 전해지는 가르침에 내재한 부정확성과 불안정성, 과장과 대조적으로 명백하고 안정적인 사실을 보증하는 것으로 칭송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쇄된 말은 단단하고 견고한 사실로 이루어진 베이컨적 과학을 보완했다. 그러나 인쇄된 책은 쉽게 맹목적 숭배의 대상이 되고 저자들은 권위로 화석화되었다. (107쪽)

출판물의 폭발적 인기는 새로운 부류의 문인들을 낳았다. 노동 분업의 이론가 애덤 스미스는 “부유한 상업 사회에서는 사고하거나 추론하는 일도 다른 모든 고용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하나의 특정 사업이 된다”고 생각했다. 부상하는 새로운 직업 유형 가운데에는 비평가, 즉 저 문필 공화국의 판관이자 검열관, 개혁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비방의 대상이기도 했다. (152쪽)

계몽주의는 자연의 구조 자체에 대한 새롭고 급진적인 설명의 승리를 확보했다. 1660년 이후로 대학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원소와 체액, 실체와 성질, 목적인으로 이루어진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그리고 그 경쟁 학설인 영적 우주에 관한 르네상스의 신플라톤주의적 비전과 비의적 비전은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 물체의 운동이라는 자연 모델에 마침내 밀려났다. 이 기계론적 철학의 등극, ‘과학혁명’에서 핵심 패러다임의 전환은 다시, 계몽된 사고에서 매우 두드러지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권리 주장을 승인했다. (229쪽)

정념들의 문명화 능력에 대한 흄의 신뢰에서 계몽된 낙관주의가 공공연히 드러난다. 통치와 자유는 불화하지 않는다. 권위가 없다면 자유도 없다. 따라서 흄의 비전에서 문명의 진전은 성인이나 영웅을 요구하지 않는다. 비인격적 힘들이 누구도 개인적으로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인간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성취하게 이끈다. (315쪽)

우리가 여기서 막스 베버가 ‘세계의 탈주술화’라고 부른 것을 선취하게 된다 할지라도, 지구 행성은 아직 테니슨과 여타 빅토리아 시대 정직한 의혹자들을 얼어붙게 만든, 무의미한 마그마 응고 덩어리로 환원되지는 않았다. 포프를 안내인 삼아 조지 왕조 시대 사람들은 자연을 신적인 기교의 걸작품으로 독해했다.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자연의 신을 우러러보았다. (456쪽)

그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새로이 발견된 태평양 섬들의 원주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독교는 원시인들을 함이나 카인의 이교도 자손들로 간주해왔고, 그러한 멸시적 태도는 쉽게 세속화되고 합리화될 수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유목 생활은 그들을 스코틀랜드 철학의 4단계 문명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놓은 한편, 로크주의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농업을 발달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확연하게 허비한 토지를 유럽인들이 몰수해도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543쪽)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직원들의 행복을 백배로 증대하고픈 그 기업가의 소망을 반영하여 학교와 박물관, 음악당, 무도장이 건설되었다고 사우디는 언급했다. 그러므로 오언은 산업화라는 기획 안에서 포괄적이고 자애로운 통제를 상상하고 실현하며 교육과 규율로써 그의 ‘인간 기계’들에 대해 엘베시우스적 관심을 드러내는바, 그것은 계몽사상의 논리적 종착점이었다. (654쪽)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과 그 기원들에 관한 탐구를 재개했다. 언제, 왜, 어떻게 ‘근대적’ 자아와 ‘근대적’ 사회가 생겨났는가?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자기 형성’ 인간으로까지 뿌리를 거슬러가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탐구를 더 후대로 끌어와야 할까? 이 책은 근대적 정신 상태의 탄생에서 18세기가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며, 영국의 사상가들이 그러한 과정에서 두드러졌고 아닌 게 아니라 시기적으로 일렀다고 주장했다. 영국에서의 계몽주의를 운위하는 것은 말이 될 뿐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난센스일 것이다. (717쪽)

그러한 회의론자들에 맞서, 나는 (…) 로크와 뉴턴, 애디슨과 스틸, 흄과 스미스, 하틀리와 벤담, 프라이스와 프리스틀리, 그리고 여타 많은 이들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새로움을 두고 다투는 어떤 경쟁에서든 영국의 작가들은 확실히 대륙의 동료들과 견줄 만하다. 만약 계몽주의에 ‘아버지’가 있다면 로크의 친부 주장이 다른 누구의 주장보다 더 설득력이 있으며, 벤담은 전 세계적인 호소력을 발휘할 운명인 공리주의의 가장 혁신적인 주창자였다. 앤서니 콜린스보다 더 자유로운 자유사상가도 없었고, 조지프 프리스틀리보다 더 고집 센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자도 없었으며, 한편으로 아나키즘의 창시자인 윌리엄 고드윈은 제일 원칙들로부터 정치적·도덕적 삶을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재고하는 놀라운 임무를 자처했다. (7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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