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함락 1945

앤터니 비버 | 글항아리 | 2023년 08월 2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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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1945년 4월 16일부터 5월 2일까지 2주간 벌어진 베를린 전투
기록보관소 자료, 일기, 회고록을 바탕으로 수백만 명의 경험을 재구성해낸
오만, 어리석음, 복수, 인내, 자기희생, 생존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


1945년 1월, 마침내 제3제국의 국경에 다다른 붉은 군대는 복수할 게 많았다. 독일군과 나치 친위대의 잔인함을 잊을 수 없었던 그들은 광분 속에서 탱크로 피란민 대열을 짓이기고, 대규모 강간과 약탈, 상상할 수 없는 파괴를 벌이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수십만 명의 여성과 아이가 얼어 죽거나 학살당했고, 200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으며, 7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붉은 군대의 분노를 피해 서쪽으로 피란을 떠났다. 이는 역사상 가장 끔찍한 화염과 칼의 참상이었다.
앤터니 비버는 제3제국의 최후의 붕괴라는 악몽에 사로잡힌 수백만 명의 경험을 재구성했다. 베를린 함락은 교만, 어리석음, 광신, 복수, 야만을 드러낸 끔찍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놀라운 인내와 자기희생, 모든 역경에 맞선 생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독보적인 자료 접근성과 돋보이는 내러티브

『베를린 함락 1945』는 저자의 근면성과 충실한 각주, 문체와 이야기 솜씨, 사실에 대한 꼼꼼한 접근으로 “걸작 논픽션” “비버의 저서들 가운데 최고”라고 평가받다. 전직 육군 장교에서 역사가로 변신한 저자는 복잡한 군사적 움직임과 이를 지휘한 지휘관들의 추론에 대해 매우 명료하게 설명한다.
1944년 12월 아르덴에서 대규모 반격으로 서방 연합군을 분열시키겠다는 히틀러의 무모한 도박은 실패로 돌아갔고, 붉은 군대가 동부에서 새로운 공세를 개시할 태세를 갖춘 터라 독일의 운명은 거의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 책은 1944년 크리스마스에서부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1945년 1월부터 5월까지 소련군과 주요 연합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동안 주요 인물들의 말을 엿듣고 직접 서술하는 방식을 택해 독자가 히틀러와 스탈린의 독백을 엿듣는 도청자가 되게 만든다.
비버는 러시아, 독일, 스웨덴 기록보관소에 대한 독보적인 접근성과 영국 및 미국 자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상당한 양의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이 책을 썼다. 그중 일부는 기괴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령 저자는 히틀러의 턱뼈와 두개골이 첩보 조직 스메르시와 소련 비밀경찰NKVD 사이에 어떻게 나눠졌고, 결국 소련 기록보관소에 보관됐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 1970년까지 마그데부르크의 소련군 연병장 아래 묻혀 있던 히틀러의 유해가 마침내 한밤중에 발굴돼 유골이 도시 하수도에 버려졌음을 알려준다.
저자의 증거 수집력은 이 책에 활용된 문서, 일기, 인터뷰, 도서 등으로 뒷받침된다. 비버는 동쪽에서 진격해오는 소련군에 서술을 집중하면서도, 서쪽의 연합군 진영과 나치군 사이를 쉽게 넘나들면서 전쟁의 디테일과 그것들이 함의하는 바를 눈부신 통찰력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스튜드베이커 트럭과 닷지 트럭들, 뒷좌석에 박격포를 싣고 방수포로 덮은 셰보레 무개차들과 중곡사포를 끌고 가는 트랙터들, 그 뒤로 말이 끄는 수레에 탄 두 번째 무리”와 같은 문장은 뛰어난 묘사력을 드러낸다. 1945년 베를린 진격은 250만 명의 소련군이 100만 명의 독일군을 공격한 역사상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전투였기에 요약하는 문장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괴링의 허영심은 그의 무책임함만큼이나 비웃음을 샀”고, “반짝거리는 눈과 특별히 디자인된 제복의 털 장식이 ‘쾌활한 시장통 아주머니’를 연상시켰다”처럼 짧은 문장을 통해 판단력을 드러내는 내러티브는 저자만의 강점이다.

천년 제국의 종말, 베를린 최후의 전투

1941년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은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에게 끔찍한 참상을 안겼다. 1943년 2월 한 소련군 장교가 스탈린그라드 폐허에서 독일군 포로들을 조롱하며 이런 말을 했다. “베를린이 곧 저렇게 될 거야!” 그리고 몇 년 후 베를린은 정확히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
1941년 당시 러시아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독일인들은 붉은 군대가 베를린에 근접해오자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1945년 1월, 소련군은 나치 독일에 대한 최후의 공세를 위해 비스와강을 따라 40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시켰다. 동프로이센에 거주하던 최소 850만 명의 주민이 임박한 소련의 공세를 피하려 했다. 일부는 숲에 숨었고, 일부는 러시아군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연합군 전선에 가닿기를 바라며 서쪽으로 도망쳤지만 대다수는 피란에 실패했다. 예를 들어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관총에 맞아 죽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소련 탱크에 치여 죽었다. 해상에서는 러시아 잠수함이 여객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를 어뢰로 공격해 6600명의 민간인 승객 중 5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4월, 붉은 군대는 베를린에서 65킬로미터 떨어진 오데르강에 진을 치고 제3제국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우선 주코프, 로코솝스키, 코네프라, 이 세 명이 사령관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후 스탈린은 제1벨라루스전선군 총사령관 로코솝스키를 배제했고, 결국 주코프에게 최고 지휘권을 넘겼다. 곧이어 250만 명의 소련군은 하인리히 힘러가 이끄는 100만의 비스와집단군과 대결을 펼쳤다.
힘러는 방어의 영웅이었다. 4월 16일, 2만여 대의 러시아 대포와 로켓포가 수적으로 열세인 적을 향해 전례 없는 포격을 퍼부었다. 소련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4월 22일(레닌의 생일)까지 베를린을 점령하는 것과 미군과 영국군이 베를린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도시를 포위하는 것. 하지만 힘러는 병력을 제2방어선으로 이동시켜 공격군을 저지했다.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했고, 4월 25일까지 베를린을 포위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철책선 안에는 3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있었다. 1월부터 동프로이센에서 들려오는 잔혹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괴벨스나 다른 어떤 나치 책임자도 굶주림에 절망한 시민들을 대피시키려 시도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자신의 지휘관들을 교묘하게 조종해 베를린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위해 막대한 병력을 배치했다. 250만 명의 병력, 7500대의 항공기, 6250대의 탱크, 4만1600문의 대포가 동원된 이 공격은 베를린 성벽에서 천둥이 울리고 그림이 떨어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독일군은 판처파우스트로 반격했지만, 공군과 기계화 부대의 공세에 비하면 한심할 정도로 역부족이었다.
러시아 군대가 소년, 외국 파시스트, 노약자 등 가장 단호한 수비수들까지 밀어내고 수도로 내려오자 히틀러의 제국은 무너져 내렸다. 괴링, 힘러 등이 협상을 밀어붙이면서 잠재된 충돌은 표면화되었다.
싸우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키가 커서 그럴듯해 보였던 독일 소년들은 “나치 친위대”라는 치명적인 비난을 이겨내야만 했다. 전선이 더 축소되면서 베를린 방어는 프랑스, 라트비아,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볼셰비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자원한 외국인 나치 친위대 자원자들이 맡게 되었다.

200만 명의 여성이 당한 강간

소련군이 독일로 들어가 가장 먼저 해방시킨 곳 중 하나는 아우슈비츠와 그 인근의 포로수용소였다. 한 영국군 포로가 이렇게 외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 러시아가 이 나라에 무슨 짓을 해도 반드시 용서할 것이다. 절대적으로 무엇이든.” 이전에 독일군이 소련에서 저지른 잔혹 행위로 인해 보복은 불가피했지만, 전쟁 마지막 몇 달 동안 독일 국민에 대한 러시아의 복수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 분노는 끔찍했다. 저자는 전쟁으로 인해 강간당한 여성의 피해를 거의 정확히 집계하며 그 참상을 세세히 전하고 있다. 즉 1945년 제국의 진정한 피해자는 독일 국민, 특히 여성이었다.
복수에 미치고 술에 취한 붉은 군대는 집단 강간을 벌였다. 1945년 1월 동프로이센에서 시작된 강간은 2주간의 베를린 전투에서 절정에 달했고, 적대 행위가 끝난 후에도 강간은 전염병처럼 계속되었다.
“붉은 군대의 병사들은 독일 여성들과의 ‘개별적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프로이센에서 해군육전대 장교로 복무한 극작가 자하르 아그라넨코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한 번에 9명, 10명, 12명의 병사가 집단으로 여성들을 강간했다.” 이 병사들은 독일 여성들을 “따먹는다”라는 표현을 썼고, 독일 여성이 “너무 오만해” 그들 위에 “올라타야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사들은 독일 여성이 “짐마차용 말”처럼 생겼다며 불평했다.
뿐만 아니라 14세부터 80세까지 독일,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해방’된 강제노동자 여성들 역시 붉은 군대의 병사들로부터 교대로 돌아가며 성폭력을 당했다. 나치로부터 살아남은 유대인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나치 체제의 피해자임을 알렸지만, 일단 몸에 술이 들어가면 먹잇감의 국적은 별 의미가 없었다. 비버는 “소련에서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광범위한 강간은 소련에서 독일의 만행에 대한 복수를 이유로 적군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완전히 훼손한다”고 강조한다.
붉은 군대의 강간은 네 단계의 양상을 보여주었다고 비버는 분석한다. 1월과 2월에 복수심에 불타 간호사, 어린 소녀, 임신부, 막 아이를 출산한 산모 모두를 무참하게 강간한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이 양상은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리 잔혹하지 않게 바뀌었다. 병사들은 전선에서 복무하는 와중에 휴식의 일환으로 주로 성적 욕구만 충족시켰고, 여자들의 저항이 없으면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강간의 정의는 흐려졌다. 굶주림에 직면한 여자들은 총이나 육체적 폭력 없이도 자신의 몸을 병사에게 바치고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얻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단계의 강간이었다. 네 번째 단계는 많은 소련군 장교가 소련 ‘운동원 아내’를 대체한 독일 ‘점령군 아내’와 함께 정착한 기이한 형태의 동거였다. 독일인 내연녀들과 함께 사는 데 여념 없던 많은 붉은 군대 장교는 조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을 때 탈영을 선택했다.
붉은 군대 장교들은 이를 막을 의지가 없었다. NKVD 소총연대에서는 강간을 저지른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처벌은 오직 피해자들로부터 성병이 옮았을 때에만 이뤄졌다. 그 피해자들은 대개 이전의 강간범에게서 성병이 옮은 것이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강간을 “비도덕적 사건”으로 완곡하게 부르며 제지하지 않았다.
전투 기간에 13만 명의 여성이 강간을 당했고, 그중 10퍼센트는 자살했다. 비버는 1945년 독일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최소 200만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으며, 그중 상당수가 집단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을 명백한 학설을 통해 밝혀냈다. 어떤 여성은 “23명의 병사들에게 잇따라” 강간을 당했다. 한 작가가 ‘병영 에로티시즘’이라고 묘사한 이 모든 일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현대의 선전 선동의 영향과 전쟁터에서 남성들의 공포와 고통이라는 인간 본능의 충동과 합쳐졌다.
이런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성에 대해 비관하도록 만든다. 비버는 스탈린이 소련을 억압된 사회로 만들었고, 이것이 1945년 동독을 압도한 억눌린 쓰나미였다고 주장한다. 비버가 수많은 외국 기록물에서 수집한 연구 자료로 볼 때, 그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도덕주의자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

***
그렇다면 과연 러시아는 승자였을까? 베를린 작전에 참가한 소련군의 사상자 수는 사망 7만8291명, 부상 27만4184명에 달했다. 러시아 역사학자들조차 이토록 많은 사상자가 불필요하게 발생한 이유가 어느 정도는 서방 연합군보다 먼저 베를린에 도착하기 위한 경쟁 때문에, 그리고 너무 많은 병력을 베를린 공격에 투입함으로써 아군끼리 포격을 가한 탓임을 인정한다. 게다가 팔다리를 잃은 러시아군은 ‘사모바르’라 불리며 따돌림을 당해 자국 정부에게 체포되어 추방당했다. 150만 명 이상의 구소련군 포로들이 강제수용소나 노동 대대로 보내졌다. 소련 유대인 대학살에 관한 ‘블랙북’은 공산주의의 ‘부정주의’로 인해 당국에 의해 유통이 금지되었다. 소련 사령관 주코프의 가까운 동료들은 존재하지 않는 반스탈린주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고, 주코프 자신은 이후 20년 동안 추방당했다.

저자소개

지은이 앤터니 비버Antony Beevor(1946~)
윈체스터대학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공부했고, 제11경기병대의 정규 장교로 독일과 영국에서 근무했다.
주요 저서로 『스페인 내전』 『크레타: 전쟁과 르네상스』(런시먼상),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새뮤얼 존슨상, 울프슨 역사상, 호손든상), 『디데이』(웨스트민스터공 메달), 『제2차 세계대전』 『아르덴 대공세 1944』가 있다. 이 책 『베를린 함락 1945』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24개 국어로 번역됐다. 또한 아내 아르테미스 쿠퍼와 함께 『해방 후의 파리 1944~1949』를 썼고, 여러 권의 소설도 발표했다.
작가협회 회장을 지낸 비버는 네 개의 명예박사학위와 킹스 칼리지 런던의 연구 장학금을 받았으며 켄트대학의 객원교수다. 프리츠커 문학상 군사 저술 부문 평생 공로상과 메들리콧 역사학 기여 메달을 수상했고, 벨기에 정부로부터 왕관 훈장을 받았다. 또 프랑스 정부의 문예공로훈장 기사장을 받았다. 2017년에는 군의 전문적 개발에 대한 지원 공로로 신년 서훈 명단에 올라 기사작위를 받았다.
www.antonybeevor.com

옮긴이 이두영
아주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블레즈 파스칼 대학·클레르몽페랑 제2대학교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어와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일본 제국 패망사』 『특이점의 신화』 『애프터 피케티』 『주4일 근무시대』 『산 아래 작은 마을』 등이 있다.

감수 권성욱
전쟁사 연구가. 블로그 ‘팬더 아빠의 전쟁사 이야기’에 전쟁사 관련 글을 쓰고 있으며, 중국 근현대 전쟁사와 제2차 세계대전이 전문 분야다. 지은 책으로 『별들의 흑역사』 『중일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중국 군벌 전쟁 1895~1930』이 있다. 또한 『중일전쟁: 역사가 망각한 그들 1937~1945』를 공동 번역했고, 『덩케르크: 세계사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 『일본 제국 패망사: 태평양전쟁 1936~1945』 『미드웨이: 어느 조종사가 겪은 태평양 함대항공전』 『아르덴 대공세 1944』 등을 감수했다.

목차소개

머리말
서문

1. 새해를 맞은 베를린
2. 비스와강의 ‘카드로 만든 집’
3. 불과 칼과 ‘고결한 분노’
4. 겨울 대공세
5. 오데르강으로의 돌격
6. 동과 서
7. 후방 소탕
8. 포메라니아와 오데르강 교두보
9. 목표 베를린
10. 총신寵臣과 참모
11.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며
12. 맹습을 기다리며
13. 엘베강의 미군
14. 전투 전야
15. 라이트바인 슈푸어의 주코프
16. 젤로와 슈프레강
17. 총통의 마지막 생일
18. 황금 꿩들의 도주
19. 포격을 당한 도시
20. 헛된 희망
21. 시가전
22. 숲속에서의 전투
23. 의지의 배신
24. 총통의 새벽
25. 총통 관저와 제국의회 의사당
26. 전투의 끝
27. 패자는 비참한 법!
28. 백마 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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