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역설

도서정보 : 민이언, 박상규 | 2019-06-3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숱한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 버린 그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와 관련한 숱한 질문과 대답이 있지만, 막상 닥쳐 온 현실 앞에서는 어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몰라 주저하다가 결국 세상의 권고대로 따랐던 것 같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부터는 그 질문들을?조금씩 지우며 살아왔다. 더 많은?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이런 정도의 대답은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CEO와 철학도, 출판인이 함께한 어느 토요일
현대사회와 현대인에 관한 인터뷰!

철학을 통해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어느 기업인과 철학도, 그리고 그들의 일화로 이미 한 권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 대표. 세 사람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현대인이 안고 사는 이런저런 고민들의 주제로 각색해 본 원고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대기업 CEO 입장에서 고찰해 본 시장의 문제. 교직을 떠나 작가의 길로 들어선 철학도가 바라보는 시대의 문제. 그리고 대형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1인 출판사로 독립해 불황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출판인이 느끼는 시기의 문제 등등.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갈등과 선택 혹은 불안의 순간들에 대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풍경
내일을 사랑하는 그들 각자의 철학

기획을 진행하면서, 또 원고를 정리하는 내내 떠오른 키워드는 ‘도시’였다. 물론 공간의 규모라기보단 현대의 시간을 상징하는 의미로서의 ‘도시’이다. 지식인들마다 지적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지만, 또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해법도 그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 토대를 외면할 수는 없는 터, 현대 사회가 발생시키는 문제 또한 현대 사회의 문법 안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역설이기도 할 게다. 독에 의거해 해독제를 만들어 내듯, 우리의 바라고 기대하는 내일도 우리를 닦달하는 오늘 속에 도래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불안과 함께 살아지다》를 통해 인연이 된 김동욱 작가님이 작품들이 스쳤다. 김동욱 작가님의 그림들을 처음 본 순간에, 제프 딕슨의 <우리시대의 역설>이란 시가 문득 스쳤었는데, 당시에 건네주신 작업 노트에 적힌 글 역시 도시의 역설에 관한 내용이었다.?보다 넓은 관계의 범주를 살아가면서도 도리어 관계에 서툰 도시의 초상이지만, 김동욱 작가님은 그 군중들 속의 고독감에서 벗어난,?이 도시 어딘가에도 남아 있을 자유와 낭만을 그려 보고 싶었다고…. 불안도가 점점 높아지는 현대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차라리 그런 시대성을 딛고 있는 잠재적 가치들을 돌아보는 기획이기도 하기에, 김동욱 작가님께 제안을 드렸고 작가님도 선뜻 허락을 해주셨다. 그리고 어떤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보고자 제프 딕슨의 싯구절을 이 기획 전반에 차용했다.
부조리한 구조일망정 우리가 딛고 있는 존재기반이기에 그것을 노상 탈속의 철학으로만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던가. 제주도 앞바다의 목가적인 전경을 소유하고자 해도 도시에서 번 돈이 있어야 할 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도시에서의 일상을 고민해 보는 것이 보단 본질적인 질문이 아닐까? 복숭아꽃 살구꽃은 아니어도,?도시에도 계절은 오고가고 바람은 불어오고 구름은 흘러간다. 김동욱 작가님의 작가 노트에 적혀 있던 구절들을 다시 곱씹어 본다.?이?도시 어딘가에도 분명 존재하는 낭만이라는 것에 관하여, 또한 이 불안한 시대상의 어디쯤엔가 분명 존재할 열망과 희망에 관하여….?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우리 모두에게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멀어져간 그들 각자에게

게오르그 짐멜에 따르면,?도시인들은 도시가 쏟아붓는 감각의 과부하에 대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 방어기제들이 감정을 둔화시키면서,?덜 예민하고 냉담한 시민들이 양산된다.?그런데 이러한 진단은 모던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유럽을 대상으로 한 경우이다.?한 세기의 발전을 더 겪은 오늘날의 도시인들은 얼마나 더 둔감해진 것일까??그렇다고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이기나 한가??역설적으로 그 둔감은 예민함의 동력으로 깎아지른 무심함이기도 하다.
- 본문 중에서 -

도시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에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우리는 도시의 풍경들을 선택적으로 지각한다. 우리는 도시 전체의 영향 속에서 그 일부만을 보며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거리에서,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가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홀로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이어폰으로 무언가를 듣고 있는 현대인들. 공유의 공간 속에서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다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그저 도시의 한 풍경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This is the city life!

구매가격 : 9,800 원

도서관책제본.NOTES ON BOOKBINDING FOR LIBRARIES, by John Cotton Dana

도서정보 : John Cotton Dana | 2019-06-26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문 > 문헌정보학

Naud? On Binding
“The fourth is, to retrench & cut off all the superfluous expences, which many
prodigally and to no purpose bestow upon the binding and ornaments of their
Books, and to employ it in purchasing such as they want, that so they may not
be obnoxious to that censure of Seneca, who handsomly reproaches those,
Quibus voluminum suorum frontes maxime placent titulique; & this the rather,
that the binding is nothing but an accident & form of appearing, without which
(at least so splendid and sumptuous) Books become altogether as useful,
commode & rare; it becoming the ignorant onely to esteem a Book for its cover;
seeing it is not with Books, as it is with men, who are onely known and
respected for their robes and their clothes, so that it is a great deal better, and
more necessary, for example, to have a good quantity of Books, well &
ordinarily bound, than to have a little Chamber or Cabinet full of washed, gilded,
ruled, and enriched with all manner of nicity, lux and superfluity.”
From John Evelyn’s translation of Gabriel Naud?’s “Instructions Concerning
Erecting of a Library.” London. 1661. Chapter 5.
[11]
Preface to Second and Revised Edition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book I said that it ought not to be taken as a final
authority, but as a set of suggestions which I hoped would arouse interest in
the subject of library binding and lead a few to pursue the subject further.
Some of the changes made for this edition indicate that I have followed the
topic a little further myself,―I hope with advantage to my readers.
Several chapters are new. There are many minor changes and omissions. The
lists have been enlarged and brought into one.
I had looked into the subject of library binding and discovered the ignorance
concerning it of American librarians, including myself, before I visited Mr.
Chivers’ beautiful bindery in Bath, England, several years ago. That visit had
much to do with the contents of this little book. Mr. Chivers was quite of my
opinion that the only way to induce librarians in America to improve our binding
was to persuade us to look into the subject. If the book has led some to do this
it has accomplished its purpose. As to the fundamental points in it, they largely
come, I am pleased to confess, from England, by way of that bindery in Bath.
At the risk of seeming to speak to commercial ends I quote in effect some of
the things said by[12] Mr. Chivers in one of his circulars, prefacing the

quotation with the remark that the point I wish chiefly to make in this book is the
advantage of having certain books, when new, bound once for all:
“The following statement is not an exaggeration: A library saves half the cost
of new popular books, and of replacements for which much use may be
anticipated, if it purchases them in Cedric Chivers’ patent bindings. New books
supplied in these bindings are sold as being bound once for all. It is thought
that they are so bound as to serve for quite fifty per cent. more issues than will
a book purchased in publisher’s cloth, used for a time, and then rebound in the
ordinary way. Generally speaking such results and even better results are
obtained. Occasionally, however, a book does not come up to these
expectations. In such cases it is especially desired that its failure be reported
and, if necessary, that the book be returned for examination. The paper used in
modern books is of such varying quality that it is sometimes difficult to tell
without actually trying what is the best manner of treating it.”
Buy books well bound direct from publishers’ sheets; mend ordinary books
very little; rebind them early; watch results; tabulate them, and make use of
experience. These are the main themes of this book.
J. C. D.
Free Public Library,
Newark, N. J., May, 1909

구매가격 : 15,000 원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도서정보 : 김대식 | 2019-06-2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출판사 서평

“제국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2000년 전 로마 제국이 창조한 세상에 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왜 아직도 고대 로마를 이야기할까? 오늘날 전 세계의 헤게모니는 누가, 언제 쟁취했는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을 비롯해 생활공간에서 기술과 정치 체제까지, 일상을 둘러싼 대부분은 서양에서 기인한 것으로, 로마 제국은 유럽 문화의 전신이자 오늘날까지 전 인류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거대한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는 KAIST 김대식 교수가 인문?과학?예술 학교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강의를 한 권에 담은 책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과학?예술?건축?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마의 흔적을 발견하는 등, 융합적 지식인으로서의 지평을 넓히는 문제작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관점으로 로마 제국의 탄생과 멸망 그리고 유산을 분석하고 오늘날에 필요한 혜안을 발견한다.
어떻게 2000년 전 로마 제국이 재편한 전 세계의 패권이 아직까지 유지될 수 있었을까? 30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리모델링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불평등의 심화, 포퓰리즘 정치, 지배 시스템의 위기… 로마를 멸망케 한 원인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늘날 세계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은 지점들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와 과학적 혁신에 심취한 21세기,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답은 모두 로마에 있다. 인류의 오늘과 내일을 설명하기 위한 ‘먼 거울(distant mirror)’, 로마 제국의 역사를 통해 독자들은 인류 문명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우리의 문명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오래된 미래’ 로마에서 답을 찾다!

총 4부로 구성된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는 로마가 인류 문명의 ‘기원’이 된 족적을 좇는 것을 시작으로, 위대했던 제국이 ‘멸망’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인사이트를 남겼는지 그리고 로마의 흔적은 오늘날까지 어떻게 ‘복원’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는지를 살펴본다.
1부 ‘기원-어떻게 로마는 세상을 정복했는가’에서는 3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탄생한 이후부터 로마 제국이 탄생하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지점들을 짚어내며, 로마가 처음부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고,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문명이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2부 ‘멸망-왜 위대한 로마 제국은 무너졌는가’에서는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이 어떻게 사그라들었는지를 분석한다. 전쟁에서의 계속된 패배, 황제의 급속한 교체, 국가 재정의 파탄…. 3세기 로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닥뜨린다. 탄생할 때 이미 멸망의 씨앗을 안고 태어난 로마 제국의 비밀을 통해 시대의 거대한 흐름과 이에 맞서는 인간의 한계를 되짚어본다.


팍스 로마나, 팍스 브리타니카, 팍스 아메리카나…
역사의 다음 페이지를 장식할 자는 누구인가?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이 멸망했듯,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멸망할 수 있다면?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저자는 우리 스스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3부 ‘복원-무엇이 로마의 역사를 이어지게 하는가’에서는 멸망 이후 결코 사라지지 않은 로마의 흔적을 추적한다. 문명은 ‘운명의 바퀴’에서 벗어나 다시 미래를 향해 내딛기 시작한다. 유럽은 신과 종교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 속의 인간에 주목한다. 15세기 유럽은 로마의 지식, 인쇄 기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행운을 부여받는다.
4부 ‘유산-누가 로마 다음의 역사를 쓸 것인가’를 통해 ‘세상은 발전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발견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놀랄 만한 혁신을 이룬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중세기의 전쟁을 치르고,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유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는 등 전 세계는 멸망한 제국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는 과거로부터 출발해 현재를 진단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한다. 저자는 영국과 미국이 이어간 로마의 영광이 사그라든 뒤 4차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의 패권이 요동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알아야 한다. 로마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역사는 언제나 반복된다. 우리가 제국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구매가격 : 17,600 원

도련님

도서정보 : 나쓰메 소세키 | 2019-06-2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시의성이 있는 책, 오래 사랑받은 고전 작품을 선정하여 출간하는 '문예 에디터스 컬렉션'에서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출간되었다. <도련님>은 고지식하지만 정직한 도련님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면 융통성도 없고 고집불통인 도련님이 답답해 보이겠지만, 소세키는 그런 도련님의 모습에서 근대 일본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차츰 사라져가는 '정직함'이나 '체면'의 가치를 발견한다.

<도련님>은 지금도 일본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등 출간된 지 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이는 세상과 타협하고 두루뭉술하게 살 것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직함'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가는 도련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구매가격 : 5,000 원

사회계약론

도서정보 : 장자크 루소 | 2019-06-21 | PDF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약속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정치철학서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를 가진다’는 천부인권사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불평등하게 된 인간은 ‘사회계약’에 의해 합법적으로 평등하게 되며, 각 개인은 주권자로서 시민이 되면서 동시에 법에 복종하는 신민이 된다고 주장한다.
루소가 제시한 ‘주권’이라는 의지는 절대왕권과 신분제도를 거부하는 혁명적 사상이 되어 프랑스 대혁명의 근간이 되었으며, 민주주의 이념의 출발이 되었다.

구매가격 : 8,400 원

노란별 아니어도 괜찮아,

도서정보 : 신인류 | 2019-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대중 속에 파묻혔던 개인이 빛이 나고 있다! 과거의 개인은 대중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고 대중을 벗어나면 지탄의 대상이 되든가 사회의 통념을 버린 사람으로 취급했다. 결국 사회는 진화하는 방향으로 흘러 4차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고 있다.
다가오는 세상은 지금과는 완연히 다르다는 것은 우리는 이미 인지하고 있다. 학자들은 앞다퉈 미래를 예측하고 있고 가까운 장래, 2025년도를 Tipping Point라고 한다. 각 분야의 학자마다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전환점일 것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Tipping Point란 끓는점을 말하는데 즉 액체가 기체가 되는 기화하는 점을 말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액체라면 다가오는 사회는 기체와 같이 노는 판이 다르다는 의미다. 기체와 같은 사회를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형태로 보면 액체는 밀도가 높아 밀집되어 있는 대중사회라면 기체는 밀도가 낮아 분산되어 있는 개인사회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즉 대중의 시대보다는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여 더 넓은 세상을 펼쳐 나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의 사회가 전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석기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은 돌멩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도구가 나타났기 때문이고 아직도 우리는 돌멩이는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미래는 개인마다 독특한 콘텐츠가 요구된다. 새로운 콘텐츠로 각 개인은 저마다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대중의 시대에도 그러한 콘텐츠를 가졌던 사람들이 작가였다. 그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해 왔다. 이제 특정 작가에 한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콘텐츠가 사회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은 위대한 개인입니다. 개인 여러분! 위대한 개인 시대를 선도할 각각의 콘텐츠를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구매가격 : 10,000 원

4차산업혁명과 신인류

도서정보 : 신인류 | 2019-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간은 원본으로 태어나서 복사본으로 살아 간다! 적어도 각 개인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그 어디에도 복사본이 없는 원본으로 태어났다. 자연 그대로 순수한 인간이었다. 현대 인류는 자연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각자가 주어진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인간의 품격이 정해진다. 우선 태어나자마자 가족이라는 혈연관계가 있고, 태어난 장소에 따라 지연 관계가 맺어지고 다니는 학교에 따라 학연 관계를 맺게 된다.
대부분 인간은 부모로부터 원본으로 태어났다고는 했지만 적어도 이 세 가지 환경은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경우이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이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속에 있는 내부 기준에 따르게 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원시적 동물보다는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려는 방편으로 부모와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배우고 모방하면서 적응하게 된다. 그 사이 개인별로 가지고 태어난 원본의 독특한 개성은 무뎌지고 사회 속에 파묻혀 지낸다.
중년이 되어 무뎌진 개성을 날 세우고 타고난 원본을 찾기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어렵다. 한편으로 갑자기 날 세운 개성의 원본을 꺼내 보이기란 대단한 용기도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인 사본의 인류보다는 원본을 유지하며 개발하고 발전시켜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구매가격 : 10,000 원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서인문학

도서정보 : 이승천 | 2019-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중첩된 세계 속 인생의 이정표

인간의 근원, 사상 및 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과 하나님의 계시가 기반이 된 성서가 만나는 곳에서 , 중첩된 세계 속에 놓여있는 인생의 이정표를 독해하는 시도. 심(心), 아(我), 도 (道), 시(時), 학(學)이라는 다섯 항목을 중심으로 논의해 간다. 이 항목들은 각각 선택, 생(生), 삶, 사(死), 성숙이라는 측면들과 직결된다. 즉 생(生)과 사(死) 사이에 존재하는 삶을 기본으로 둔 구도에서 이 세 측면과 연관된 시각들을 성서인문학적으로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그 시각의 실천을 통한 성숙이라는 측면을 제시하고 있다.

인문학과 성서의 만남이 어떻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는가?

인문학과 성서 두 가지 영역을 택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는 과학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함께 교류하는 현시대에 인문학과 성서의 통합적 시각이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장구한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 인문학과 성서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는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더구나 인문학과 성서의 세계는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인문학의 보고(寶庫) 중에 성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성서에는 BC 15세기부터 시작해서 서기 1세기 말까지 무려 1,500년 이상에 걸쳐 기록된 66권이나 되는 내용이 다양한 문학적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3개 국어(히브리어, 헬라어 및 아람어)로 기록된 성서는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역사가 살아 쉼 쉬는 역사서이다. 서지학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그 사본들의 수와 그 내용 측면에서 성서만큼 신빙성이 높은 문학적, 역사적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예컨대 기원전 400년대의 인물인 투키디데스의 역사학은 그가 저술한지 1300년을 경과한 서기 900년경의 8개 사본만이 존재하고(헤로도토스의 역사학도 상황은 거의 비슷함) 기원전 343년경에 저술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서기 1100년경의 것을 포함한 5개의 사본만 존재하지만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드의 경우는 그래도 643종이나 존재한다. 이에 비해 신약성서는 사본 상의 권위로 보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즉 서기 130년, 200년경의 파피루스 사본을 필두로 현존하는 필사본이 무려 2만 종이 넘기 때문이다.

성서의 신학과 사상은 유구한 서구 문화의 기반을 이루어왔다. 물론 성서가 다른 책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게 사실이다. 스스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어떠하심과 당신의 뜻을 계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계시의 수단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 한 가지가 있다. “만일 당신이 유일한 신이라면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에게 당신을 알리겠는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신이라도 자신을 계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진/선/미가 가득 찬 이런 세계와 신비로운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기 존재의 실상과 뜻을 그 피조물에게 알리고자 시도할 것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인간에게 자기를 알리는 수단은 분명 언어적 수단을 사용해야 할 것이고 그 계시의 온전한 전달을 위해 글 혹은 문학(literature)이라는 매체를 활용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 매체 속에 자기가 계시한 내용이라고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신의 계시라고 일컫는 경전은 그 계시의 수단이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I believe in Christianity as I believe that the sun has risen: not only because I see it, but because by it I see everything else.) 옥스퍼드 및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약 40년간 영문학을 강의하고 3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한 C. S. 루이스의 지혜로운 통찰이다. 기독교를 참된 것으로 믿는 이유가 성서 자체의 증언에 의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서의 찬란한 빛을 통해서 다른 모든 것, 특히 이 책에서 논의 중인 인문학적인 통찰, 즉 인간다움이 무엇이며 인간으로서 생을 누리는 동안 지향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인문학적인 시각도 온전히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성서도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서는 신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비롯된 계시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계시의 기록이다. 물론 이 말은 성서 저자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기계적으로 받아쓰기를 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인격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가 전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하더라도 성경을 기록한 과정 가운데 성서 저자들의 신앙적이고도 인문학적인 해석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런 성서를 읽는 입장에서도 신앙적이고 인문학적 해석을 활용하는 게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의 성자’로 불린 ‘시몬느 베유’의 조언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스도(예수님)는 우리가 당신보다 진리를 더 선호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이시기 전에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에게서 벗어나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 사람은 멀리 가지 않아 그의 품 안에 안기게 될 것이다.” 인간과 그 세계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인문학을 성서를 믿는 이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앞에서 언급한 C. S. 루이스의 지혜로운 통찰을 다시 한 번 기억한다면 인문학이 제시하는 진리의 세계 모두도 우리 마음속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이 제시하는 지혜를 포함한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감사와 감격으로 누리듯 인문학적 지혜와 진리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향미 그윽한 과실로 누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리하여 땅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 즉 인간의 근원 문제, 사상 및 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과 신의 계시가 기반이 된 성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삶의 이정표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구매가격 : 12,000 원

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

도서정보 : 나오에 기요타카 엮음 | 2019-06-2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위로도, 힐링도, 처세술도 아닌
‘철학’이 필요한 시대!
지금보다 더 나은 당신의 내일을 위한 철학 입문서

‘어떻게 살 것인지’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순간만을 모면하는 처세술이 아닌, 내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가게 할 철학과 사색의 힘이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어렵고 막막한 인생에서, 오늘도 고민만 하다 끝난 사람들을 위한 쓸모 있는 인문서 《철학이 이토록 도움이 될 줄이야》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소설책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철학을 만나볼 수 있는 철학 입문서로, 철학과 사상학 분야의 전문가 35인이 공동으로 참여해 완성한 ‘집단지성의 결정판’이다.

일상 속 현실 고민에서 출발해 동서고금의 다양한 철학을 맛볼 수 있는 이 책에는, 성경에서부터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비트겐슈타인, 포퍼, 존 롤스 등 철학의 대표주자들은 물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 현대 철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에 이르기까지,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대표 고전이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어려운 철학 이론을 달달 외우기보다는, 그저 현실 속 내 고민의 실타래가 풀리는 과정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된다.

가혹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빅터 프랭클, ‘나는 무엇을 아는가’ 어느 것도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던 몽테뉴, 그리고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했던 데카르트까지. 하루하루를 단단하게 성찰과 사색으로 다져갔던 철학자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일상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가는 지적 쾌감을 만끽해보자.

구매가격 : 11,000 원

장수지옥

도서정보 : 마쓰바라 준코 | 2019-06-20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할까?
웰 다잉well-dying을 위한 웰 리빙well-living 실천서
《장수 지옥》은 결론적으로 웰 다잉을 위해 웰 리빙을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는 책이다. ‘크로와상 증후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여성 및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책을 발표해온 마쓰바라 준코가, 일본의 초고령사회를 ‘장수 지옥’에 비유하면서, 연명치료의 양면성 및 재택 의료, 유료노인홈, 특별양호노인홈, 일본존엄사협회, 네덜란드 안락사협회 등 복지 현실 및 장수의 실상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장수의 현실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하게 담아냈다.

회복이 불가능하고 음식 섭취가 불가능할 때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미리 결정하는 리빙 윌,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환자를 본인의 희망에 따라 고통이 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 과도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목숨을 끊는 존엄사까지 죽음을 선택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담겨 있다.

저자는 독거노인이 증가하는 일본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장수 인생은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한다. 초고령사회로 돌입한 지금이야말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겸허하게 죽음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자신의 좋은 죽음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가족을 따뜻하게 배웅하기 위해서라도 삶의 끝을 병원이나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현실적인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여기에 있는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굳어서인지 표정 하나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마치 “죽게 해줘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괴로울 것이다.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너무나 안쓰러워서 눈을 깜박이는 걸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만약 이런 시설이 없었다면 누가 그들을 돌본단 말인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건강할 때 위루관을 포함한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노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염없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 있으나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 곳 같았다. _p.43 <죽지 못해 사는 고통>

연명치료가 당사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가족으로서의 감정만 주장한다. 그리고 살리는 일이 애정이라고 착각한다. 위루관 수술이 만연한 배경에는 의사나 병원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족들의 바람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좀 심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가족이 무지하기 때문이다. 연명치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_p.51~52 <서구권에는 없는 위루관 수술>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건강할 때 자신의 의사를 가족에게 확실히 전하고 존엄사가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존엄사협회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본인만 알고 있어서는 정작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려면 평소에 가족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해둬야 한다. _p.60 <몰랐던 게 죄라면 죄>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법률로도 인정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제화되어 있다. 이처럼 서구권에서 연명치료는 본인의 선택에 따르는 게 보편적이다.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존엄사 논쟁이 활발해서? 대만은 2016년 ‘환자 자주 권리법’을 제정했다. 이웃나라인 한국도 2018년 연명치료 중지를 인정하는 법률이 실행되었다. 이런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일본만이 아직 요지부동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일본인이 얼마나 될까? _p.71 <존엄사 법제화가 더딘 일본>

연명치료의 장점은 문자 그대로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완치할 수 없으므로 이전처럼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연명치료는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사망할 수 있으므로 도중에 제거할 수 없다. 또 연명치료로 오래 살면 살수록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 삶을 어떻게 마감할지는 오롯이 본인 혼자서 결정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건강할 때 충분히 생각해두어야 한다. _p.79 <연명치료란 무엇인가?>

몇몇의 사례를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고독사는 비참하다? 고독사는 무섭다? 사람을 멀리하고 문을 걸어둔 채 사는 사람은 별개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면 혼자 살아도 부패할 때까지 발견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개인적으로는 고독사야말로 이상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일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고독사는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지 않고 생활하다가 홀연히 저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죽음인 것이다. 게다가 쓰러져도 구급차를 부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죽음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 _p.133~134 <혼자인 사람의 마지막>

분명 살아 있다는 건 멋진 일이지만 진심으로 기뻐할 수만은 없다. 장수가 더 이상 행복이 아닌 세상이다.
_p.149 <집에서 혼자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장수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오늘날? ‘과연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일까’라는 의문이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장수는 아름다운 말이지만 늙음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힘든 시간을 오래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억지로 오래 사는 게 의미 있을까? _p.154 <나는 안락사로 떠나고 싶다>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를 ‘에우타나시아Euthanasia’라고 한다. 그리스어로 ‘좋다’라는 의미인 ‘에우eu’와 ‘죽음’을 의미하는 ‘타나토스thanatos’가 합쳐져서 생긴 단어로 ‘행복한 죽음? 좋은 죽음’을 뜻한다. 이렇듯 안락사야말로 진정 행복한 죽음인 것이다. _p.164~165 <네덜란드의 안락사 실태>

진심으로 네덜란드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엄사가 법제화되지 않은 일본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되는 날이 올지는 의문이지만?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이 안락사의 합법화 논의보다는 ‘개인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_p.172 <네덜란드에서 안락사가 용인되는 배경>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더라도 의식을 잃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의사나 가족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기 전에? 즉 바로 지금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해둬야 한다. ‘좋은 죽음’을 맞으려면 ‘존엄사 선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은 죽음 따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여든 살이 넘으면 생각해 보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존엄사 선언은 빠를수록 좋다. 당신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한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현명하다.
_p.175~176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한 10가지 지침>

일반적으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여유가 없는 위급한 상황이라면 연명치료가 바로 시행된다. 그럼에도 연명치료를 피하려면 1차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혀두는 것이 우선이다(한국에서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등록기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 옮긴이).
_p.177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한 10가지 지침>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테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잘 죽고 싶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신의 영역인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
_p.195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한 10가지 지침 중>

장수가 행복인 시대는 저물고 장수가 힘든 시대가 되었다.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얼마나 더 늘까?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나지만 장수와 행복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_p.209 <자연사는 고통스럽지 않다>

구매가격 : 9,1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