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V 영어성경 장별 영단어 레위기

도서정보 : 파치먼트 문화선교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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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성경을 읽으면 한글성경으로 읽을 때 보다 뜻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말이라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말씀들을 더 깊이 새겨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하며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구매가격 : 2,500 원

하나님과 시인의 만남(상편)

도서정보 : 이석환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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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시문학을 찾아 그토록 오랜 세월을 교회로 나아간 까닭은 무언가 다른 의문을 파고들기 위한 방침이었다. 그렇다면 왜! 바꾼 것일까? 절망 속에 빠진 세상 문학의 끝에서 새롭게 들고 일어서는 뜻 깊은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신앙의 평온을 누리는 하늘로의 고뇌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바 되었고 맑은 영혼의 빛이 매일처럼 내 비추는 가운데 시의 밝힘이 투명하게 타오르는 찬란한 불꽃이 되었다.

쉬지 않고 부는 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가?
한 줄의 질문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실로 보아 일치적인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연속타를 날리는 모든 깨우침의 필요성!

높고도 드넓은 하늘로 날아올라 활짝 펴는 날개가 추락하지 않는 막강한 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솟구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있고 어디 가서 무엇을 하던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줄 선이 끊기지 않는다. 하여 머리가 확 깨어있을 때 바로 잡고 이어나가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 ‘신앙문학전집 인사글’ 중에서

구매가격 : 7,200 원

성경 한 장으로 전도하기

도서정보 : 우슬초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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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성경 한 장으로 전도하기’의 의미는 성경 한 장 모두를 가지고 전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이곳저곳 찾아서 읽으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가 성경 한 장 안에서 모두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한 장 안에서 불과 몇 절로 해결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그 구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1장 요한복음 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2. 만물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3)

3.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4. 영접하는 자는 구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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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시대읽기

도서정보 : 김주옥 | 2020-02-2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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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권력과 돈으로 움직인다. 세상의 권력과 돈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미국이나 독일에 살아도 미국인이나 독일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살고 있다. 대중매체를 소유하고 제작하는 그들의 시각에서 우리는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해왔다. 우리는 유대인이 만들어준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했고 그들이 제공해준 신문과 방송과 영화로 문화를 만들고 생각을 키워왔다.
한국의 지식인 대부분도 유대인에게 영향받았다. 마르크스, 촘스키, 마르쿠제, 루카치, 홉스봄, 포퍼, 마이제스, 그람시, 프롬, 노이만, 벤야민, 라캉, 레비스트로스, 데리다, 푸코, 프로이드, 베르그송, 프리드먼, 월러스틴, 호로위츠, 스트라우스, 아인랜드, 아렌트, 손택, 글로리아 스타이넘, 제레미 리프킨,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등이 만들어내는 모든 ‘주의(ism)’들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복을 받은 민족이라며 유대인을 지지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또 세상에서 가장 성공하고 부유한 유대인들에게서 지혜를 배우겠다며 탈무드를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300페이지 책으로 편찬할 경우 14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의 탈무드에는 온갖 반인륜적, 비윤리적, 반기독교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탈무드에 나타난 유대주의는 한 마디로로 이방인에 대한 선민사상과 기독교에 대한 혐오사상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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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는 흔히 구약시대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의 종교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의 율법은 3,500년 전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후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되고 세워진 것이다. 저들 문서에 의하면, BC 500년 경 바벨론 포로시절부터 만들어 지켜오던 구전율법이 6C 경 바리새인에 의해 탈무드로 성문화되었다.
<유대교자료 백과사전>은 오늘날 유대교로 알려진 종교의 뿌리는 바리새인이다고 기록한다. 유대인을 가장 잘 대표한다는 루이스 핑클슈타인도 바리새주의는 탈무드주의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랍비 핑클슈타인에 의하면, 바벨론 유수는 중요한 기간이다… 유수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자신을 발견했다.
이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비난은 혹독했다. 눈먼 인도자, 어리석은 위선자,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들, 심지어는 사탄의 자식들이라고까지 하셨다. 당시 큰 죄인이었던 세리나 창기들에게는 친구가 되어주셨으면서도 율법지키는데 헌신했던 바리새인에 대해서 그처럼 혹독하셨던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율법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과 바리새인은 가장 대적하는 관계에 있었고, 이후에도 기독교와 유대교는 완전히 상반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자 인간이 되어 오셔서 죄인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믿고 숭배하는 한편, 유대교는 예수가 인간이면서 자칭 하나님이라며 참람한 신성모독을 한 악마라고 증오한다.
엘리자베스 딜링은 공산주의가 만들어낸 참상을 보고 경악하며 공산주의의 배경을 연구하다가 유대주의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 종교가 현대에 미친 영향> <기독교를 향한 음모> 등을 저술하며 유대주의를 한마디로 ‘사탄주의’라고 결론내렸다.
나는 세상에 팽만한 반기독교적 사상과 교회들이 용납하는 반기독교적 교리를 보며 경악하다가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대인이 기독교를 허물기 위해 만든 비밀 엘리트집단의 실재를 알게 되면서 <시대읽기>를 출간하고, 이후 이것을 정리하고 추가한 내용으로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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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의 반기독교적 비밀 엘리트집단이 오랜 세월 동안 음모하고 실행해왔다는 가공할만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세상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저 집단들이 유대인과 크립토 유대인(가짜로 개종한 유대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저들 비밀집단의 시작과 중심과 정상에 유대인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여러 전문가들의 기록 중에서 일부를 제시한다.
유대인 랍비 아이작 와이즈는 저서 <이스라엘인>에서 메이슨 조직은 유대인의 제도다. 그것의 역사, 계급, 문장( 紋章), 암호,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의 것이다, 구즈노 데 무쏘와 코뺑 알방셀리는 유대인은 기독교 문명국가들을 붕괴시키고 장막 뒤에서 일반 혁명을 증식시켜 이스라엘의 지배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적으로 프리메이슨 조직을 만들었다. 프리메이슨 조직은 단지 유대인 수중에 들어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고 기록한다.
보스턴대학교 예수회 연구소의 로버트 마릭스는 저서 <예수회는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회의 지배세력은 유대인이었다… 유대인과 예수회는 같은 뿌리다고 말한다. 스페인의 필립2세는 예수회는 ‘히브리인의 회당’이다고 했고, 헨리 마코우는 유대인이 예수회의 심장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수회의 가르침 다수가 유대교의 탈무드와 아주 흡사하다. 스크랜톤대학교의 예체스겔 모스코위츠도 두 시스템의 내부작업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유사성이 매우 괄목할만하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의 케빈 맥도날드는 유대인이 인종을 유지하고 전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겉으로는 가톨릭(예수회)로 개종했지만 실제로는 크립토 유대교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예수회가 온 세상의 미움과 배척을 받게 되자 ‘범퍼’가 되는 다른 단체들을 만들고 뒤에서 조종하기 시작했다. 지오반니 니콜리니는 <예수회의 역사>에서 교황 클레멘트 14세에 의해 예수회가 1773년부터 1814년까지 해산된 동안, 예수회의 리치 장군은 1776년 그의 병사 아담 바이샤프트와 함께 일루미나티를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또는 존 토렐의 주장처럼, 일루미나티는 아담 바이샤프트에 의해서 설립된 것이 아니라 새로와졌다고 봐야 한다. 첫번째 일루미나티는 1492년 크립토 유대인으로 불리는 스페인 유대인에 의해 설립된 알룸브라도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물론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예수회의 모든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또 모든 유대인이 저들 집단에 가입했다는 말도 아니다. 알란 더쇼위츠가 말했듯이, 다수의 유대인 개개인은 반유대주의적이거나 또는 유대주의에 전혀 무관심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고발하는 유대인은 시오니스트와 카발리스트 유대인들이며, 다수의 유대인이나 세상사람들은 저들 소수 유대인의 사탄적 유대주의에 미혹된 피해자가 될 것이다.
저들이 세운 집단이 비밀집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유대인의 목표와 계획이 비밀리에 만들어지고 비밀리에 실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일까?
세상에 대해 월등한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유대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신세계질서의 세계정부 건설(Jew World Order)을 목표로 하면서 실행해왔다. 그것의 실행계획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시온의정서>다. 오래 전부터 유대 지도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실행 계획이 수정되고 현대화되다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1차 시오니스트 회의에서 417페이지 분량으로 문서화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 문서가 드러나고 세상에서 반유대주의가 극렬해지자 결국 조작된 위서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모든 기록이 이와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네스타 웹스터(영국의 역사가)는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세계는 결국 유대인이 지배하게 될 것이란 관념은 랍비적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근간을 이룬다, 에르베 리센은 <글로벌리즘의 종교적 기원>에서 유대교에 기원한 글로벌리즘과 유대인이 실현하려는 강렬한 ‘이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NWO의 세계 단일정부를 말한다고 기록한다. 헨리 와턴(미국의 유대인 공산주의 이론가)은 유대인은 지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뛰어난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유대인에게는 전 인류를 복속시키고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 유대인은 전 세계의 군주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을 그들의 통치하에 둘 것이다고 주장했다.
저들은 유대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독교 파멸을 계획했다. 벤자민 디즈렐리(유대인 영국수상)은 기독교의 절멸과 만인의 평등, 그리고 사유재산의 폐지를 부르짖는 비밀결사들은 과도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들 모든 조직의 최상부에는 유대인이 자리잡고 있다. 신의 선민은 무신론자들과 힘을 모으고…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는다. 신에게 선택받은 이 기묘한 민족은 또한 유럽의 가장 저급한 부류와 기층민 계급을 쓰다듬는다. 왜인가? 그들의 종교를 빚졌으면서도 그 종교를 창시한 민족을 멸시 천대하는 저 배은망덕한 기독교 문명을 말살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유대인은 정체가 드러나는 자료가 나오고 반유대주의 여론이 쏟아질 때마다 저들이 독점하다시피한 방송사와 출판사들을 통해서 이를 거짓 정보로 몰고 반박하는내용을 퍼트리곤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의 계획을 성공하고 그것을 덮을 수 있었다. 예수회의 전 사제 알베르토 리베라를 사기꾼으로 만든 것도 한 예가 된다. 그가 구체적인 증거자료들을 갖고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의 음모와 거짓말에 대해 밝혀나가자 한편에서는 그가 예수회의 사제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리베라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많은 자료들이 동일한 것을 증거하고 있다.
JWO를 꿈꾸는 유대인은 세계지배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으므로, 인류는 의도하지 않은 채 혁명과 전쟁에 휩쓸려서 서로 죽였고, 영문도 모른 채 침략당하며 학살당했고, 예상하지 않았던 경제공황으로 집과 직장을 잃으며 자살하기도 했다.
유대인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많은 전쟁과 혁명을 주도했다. 토마스 달튼(유대인 인문학 교수)은 세계의 모든 전쟁은 아닐지라도 모든 큰 전쟁의 배후에는 유대인이 있었다고 고발한다. 오스카 레비(유대인 작가)는 유대적 요소들은 현 세상의 정신적, 물질적 파탄을 이끌어 낼 목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쪽 모두에 걸쳐 강한 추동력을 제공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유대인의 강렬한 이상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스테판 사무엘 와이즈, 오스카 레비, 맨프레드 라이퍼, 펠릭스 멘델스존, 에밀 루드윅, 하틀리 쇼크로스, A. 호머 등의 저명한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정치가 외교인 재판관 역사가들의 저술에 의하면, 프랑스대혁명, 세계 1차, 2차대전을 일으킨 자들은 유대인이었다. 또 ‘재평가론자’ 또는 ‘수정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여러 증거 자료들을 갖고 홀로코스트를 반박한다. 유대인은 역사에서 희생자처럼 주장해왔지만 실제로는 가해자였다.
저들은 예수님을 저주하고 기독교 멸절을 계획하고 실행해오면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세상에서 악의 축이 되어버렸다. 유대인이 역사 내내 미움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세상의 핍박이 아니라, 그들 경전의 악한 내용과 악한 실행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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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대인에 대해서 기독교인의 의견은 상반된다. 유대인에 우호적인 미국의 신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대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 브래드티비>를 운영하는 김종철 감독이 그 한 예가 되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기독교인도 유대인을 축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하나님이 유대인에 대해서 특별한 구원계획을 갖고 계시므로 (예수님을 믿든 말든) 모두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세계 종교들의 수장이 된 교황도 기독교가 유대교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반면에 언약주의(대체신학)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을 언약하셨지만 이스라엘이 거절하면서 교회로 대체되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세대주의자들이 항변하듯이 언약주의자들이 유대인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언약주의자들은 유대인이나 불교인이나 무슬림 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혹하는 악한 영을 미워할 뿐이다. 저들이 지금은 예수님을 배척하지만 언젠가 예수님이 창조주이자 구원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모두 구원받을 날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저들이 예수님을 거절한다고 해서 폭력이나 위협을 가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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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서 장황하게 유대인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세상에 팽배해 있는 반기독교적 사상이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또 교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반기독교적 교리도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기독교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사탄에 의해 파멸을 위협당해 왔다. 초기에 사탄은 폭력으로 파멸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기독교는 더욱 굳건해졌다. 이제 마지막 시대에 사탄은 기독교를 파멸시키려는 계획으로 혼합교리를 선택한 것 같다. 자유주의 신학과 그것에 기초한 종교다원주의가 그것이다.
한때 예수회 신부였던 알베르토 박사가 맡았던 일은 교회에 몰래 침투해 들어와 파괴하는 일이었다. 그는 이단적 교회(개신교)를 파멸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교리를 혼합시키고 현재보다 더 많은 의식들을 첨가시키는 것이었다고 폭로한다. 존 다니엘은 저서 <거대한 계획의 폭로>에서 로마의 예수회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인 도구로서 개신교도들 사이에 프리메이슨 조직을 완성시켰다고 기록한다. 실제로 저명하고 존경받는 여러 목사들이 프리메이슨이었음이 드러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많은 증거 자료와 폭로 증언이 넘쳐나는 빌리 그래함 목사도 그 한 예가 된다.
기독교와 타종교는 동과 서처럼 서로 만날 수 없고 합일점을 가질 수 없는 신앙이지만,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의 근원이 동일하고 모든 종교행위를 통해서 동일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종교 간의 분쟁종식’과 ‘세계평화’라는 명분으로 종교다원주의를 환영하고 “오직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전통적 기독교를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한다.
1948년 결성된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유력한 목사님들과 대형교회들이 ‘사랑과 용납’이라는 미명으로 지지하면서 교회 안에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WCC라는 명칭은 기독교적이지만 사실은 프리메이슨이 세운 기관이다. WCC의 초대 총장을 지낸 존 모트, 브롬리 옥스남, 지오프리 피셔 등이 모두 프리메이슨으로서 데이빗 록펠러의 후원을 받았다.
프리메이슨의 공식 간행물인 <프리메이슨 투데이>는 피셔에 대해서 1945년에 피셔는 켄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열정적인 프리메이슨이며 그랜드랏지의 단원으로서 크래프트의 가르침을 형성하려고 노력했고 1946년부터 1954년까지 WCC의 총장으로서 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기록한다.
프리메이슨의 WCC가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과 다른 신들을 함께 용납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평화와 축복과 번영을 말하는 거짓선지자들만 기뻐하고 대접했다. 평화와 번영을 기대했던 이스라엘은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나라가 망하는 수치와 고통을 당해야 했다.
성경은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와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며, 믿는 자들까지도 미혹되어 배도가 있을 꺼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에, 인류에게는 무서운 환란과 심판이 있을 꺼라고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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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미국을 점령했다. 헤롤드 로젠탈은 머지 않은 시점에 미국 대통령은 어떠한 권력도 갖지 못한 허수아비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알랜 더쇼비츠는 이미 미국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었다, 유스터스 멀린즈는 오늘 미국의 주인은 유대인이다, 팻 부카난(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은 미국 국회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다, 폴 핀들리(미 하원의원)와 토마스 무어러(미 합동참모장)은 나는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벤자민 긴스버그(유대인 작가이자 정치학 교수)는 1960년대 이후로 유대인은 미국의 경제 문화 지식 정치적 삶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알프레드 릴리엔톨(미국의 유대인 학자)은 시온주의자들은 어떻게 미국인을 속여왔는가? 유대인의 커넥션은 모든 분야의 모든 계층에 미친다. … 유대 커넥션의 가장 효과적인 요소는 아마도 언론 지배일 것이다고 말했다.
유대인이 지배하는 미국에서 앞으로는 기독교 자체가 금지될 전망이다. 1991년 3월 26일 미국 국회가 통과시킨 교육법령(Public Law 102-14, House Resolution 104)에는 ‘7개의 노아법’이 있다. 일찌기 랍비 긴즈버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7개의 노아법’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인도 모르는 노아법에는 ‘우상숭배의 금지’ 조항이 있다. 무엇이 우상숭배일까?
각 법령은 유대 랍비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상술되는데, 탈무드에 의하면 예수를 신으로 숭배해서 일요일에 모여 예배드리는 것은 우상숭배다(Maimonides, Mishneh Torah, Avodah Zorah, 9;4). 따라서 미국에서 기독교를 믿는 것은 우상숭배가 되므로 미국 법에 저촉되어 처형받게 될 것이다. 물론 ‘오직 예수’를 주장하지 않고 다른 종교들과 협력하고 통합하는 ‘혼합 기독교’라면 허용될 뿐 아니라 환영받을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전망하듯이, 기독교를 탄압하는 신세계질서의 국가는 전체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강압적 세상이 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유일한 구원주와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에게는 무섭고 절망적인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되겠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세계정부주의자들의 회유와 협박이 있을지라도, 모든 종교들을 포용하는 혼합기독교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의 기독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죽어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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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실화다

도서정보 : 김주옥 | 2020-02-2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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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적 존재지만 지적이고 이성적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 자연만물이 증거하고, 생명이 증거하고, 성경이 증거하고, 예수님이 증거하고, 인류가 증거하고, 양심이 증거한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자신을 증거하시므로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반증하려는 시도 자체도 하나님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다.
증거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부인할 수 없는 구체적 증거들을 갖고도 여전히 배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복음으로 설득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예 듣기를 거부하면서 비과학적이고 비역사적이라고 주장한다. 전혀 증명된 것이 없는 진화론을 찬성하면서 무신론을 지지한다. 스스로 눈을 가리고 하늘은 없다고 외친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절하는 이유는 명확하고 지적인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존 스토트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청년에게 “당신에게 지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답변을 해준다면 당신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바꾸겠는가?”라고 질문하자 청년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스토트는 해석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할 수 없어서 행동이 제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판단하실지 걱정할 필요없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전지하심과 역사하심과 심판하심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두려움없이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노골적으로 죄짓지 않는 이유는 법과 비난이 무섭기 때문이며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어떤 죄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영국의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없으니 마음대로 즐겨라”는 문구를 버스에 붙이고 죄를 격려한다.
반기독교인들이 하는 흔한 주장들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성경은 교훈을 위해 만들어진 책일 뿐 역사를 기록한 책은 아니다. 수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을 현대에서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다. 종교에는 자유가 있으니 어느 종교를 믿던 맘편하고 착하게 살면 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한 성인일 뿐 하나님은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구태어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을 당하면서 인류를 구원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전능자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단정하고 구세주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강요한다. 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죄인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떤 인생이 잘못살았다고 영원한 지옥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선행을 했냐 악행을 했냐로 결정되야 한다.
우주만물의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니라 빅뱅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도 먼지나 가스같은 무생물이 오랜 세월 진화되어 생겨난 결과물이다. 하나님은 혹시 천지나 인간을 창조했을 수는 있어도 현재 우리의 삶에 간섭하지는 않는다. 역사에 만연한 전쟁이나 태풍이나 사고 등이 빚은 불행들을 보라. 착한 사람이 고난받고 악한 사람이 잘사는 불공평을 보라. 하나님이 있다면 악하거나 무능하다는 증거다….”
세상은 기독교에 대해 많이 아는 것 같이 말하지만 크게 틀린 정보를 갖고 크게 오해하고 있다. 기독교를 비난하거나 거절하더라도 바르게 알고나서 하는 것이 공정하겠으므로 여기 기독교 변증을 시도한다. 이전에 발간된 <예수신화? 예수실화!>를 요약정리 보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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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을 찾아서

도서정보 : 우슬초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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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른 신앙에 관한 설교를 담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내용과 참신하고 기발한 비유를 많이 수록하였으므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른 신앙은 이처럼 매일 성경을 읽고 성경을 상고하는 신앙입니다. 교회나 교회 각 기관 또는 목사님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성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등 영적인 세계를 탐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3)

그리고 무엇이든지 기도해서 얻어내려는 자세를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예수님께 대하여, 성령님께 대하여, 그리고 성경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신앙! 이런 신앙이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신앙일 것입니다.

달라고 해서 응답을 받는 신앙이 깊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싶어 하고,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탐구하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고... 이와 같은 신앙이 깊은 신앙일 것입니다.

교회중심의 신앙 또한 좋은 신앙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하나님의 뜻이 반영된 신앙은 성경이 말씀하는 신앙입니다. 특히 당회장 목사님을 너무나 떠받드는 대형교회들은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모두 다 교회 생활에 충실하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신앙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얽매일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성경 외에 인간이 뭔가를 자꾸 전통으로 만들어 넣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적인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성경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무한한 자유와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믿기 위해서는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항상 성경을 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이성이나 감각에 의존하여 운항을 하면 안 됩니다. 계기판만 믿어야 합니다.

조종사가 하늘에서 기체(機體)를 몇 바퀴 회전하고 나면 하늘도 파랗고 바다도 파랗다 보니까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고 바다로 돌진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합니다. 계기판은 그게 바다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하늘같거든... 그래서 계기판을 믿지 않고 감각을 믿다가 사고를 내고 목숨을 잃고 만다는 것입니다.

조종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계기판만을 보고 운항을 해야 하고, 또 이것이 하늘인가 바다인가 판단을 할 때도 감각에 의존하지 말고 계기판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천국을 향하여 신앙의 여정을 항행하고 있는 조종사와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와도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성과 감각은 세상의 학문과 관습과 상식을 동원하여 이렇게 살라, 이렇게 판단하라 속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과 감각을 의존하지 말고, 말씀이라는 기준을 계기판을 믿듯이 믿고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현대적인 음률의 아름다운 찬양을 타고 세속이 들어왔습니다. 성도들의 입맛과 수준에 맞추기 위해 설교는 깊이가 없어지고 세속화되었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은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세상 부귀를 흠모하는 내용이 차지했습니다.

제물로 올려 져서 죽어야 할 성도들은 살아서 팔팔 뜁니다. 교회의 중심 자리는 하나님 대신 목사님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목사님이 받고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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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1519

도서정보 : Jean Henri Merle d’Aubigne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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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e d'Aubigne의 Histoire de la Reformation은 2개의 전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전집인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은 총 5권으로, 1835년에 그 첫 권이 프랑스어로 출판되었고 1853년에 마지막 5권이 출판되었다. 이 전집은 종교개혁의 초기 시대에서 마틴 루터의 독일을 시작으로 해서 수많은 개혁자들이 활동한 유럽 모든 나라에서의 개혁운동을 조명하고 있다. 그는 이 책들로 인해서 프랑스 교회사 역사가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얻게 된다.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 책들은 유럽의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유럽과 미국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후속으로 1863년과 1878년 사이에 프랑스어로 출판된 "칼뱅 시대의 유럽 종교개혁의 역사(The 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Europe in the Time of Calvin)"은 8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3권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 전집은 전작에 이어서 전 유럽에서 진행된 종교개혁의 후기 시대를 서술하였는데, 특별히 프랑스 종교개혁가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
비록 이 책은 16세기까지의 복음주의와 로마 교황제도의 투쟁을 서술하지만, 그가 로마 교황제도와 로마 가톨릭 신앙을 분리해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시대를 앞선 지혜와 분별력을 엿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책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계신다(God is in History)"라는 그의 역사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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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정보 : 석유나 | 2020-02-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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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23년에 걸친 자가면역질환(루푸스) 투병기 입니다.

수십가지 병명의 질환을 앓으면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비마다 인도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모두와 나누고 싶습니다.

구매가격 : 4,000 원

수좌 적명

도서정보 : 적명 | 2020-02-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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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참 스승, 봉암사 적명 스님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_적명 스님 법문 중에서

지난 2019년 12월 24일, 연말을 맞아 다소 들떠 있던 세상에 봉암사 수좌首座 적명寂明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入寂 소식이 전해졌다. 출가 이후 반백 년 넘는 세월을 토굴과 선방禪房에서 지내며 오직 수행자의 본분에 매진해 온 스님의 입적 소식은 불교계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추모로 이어졌다.
“영원한 수좌”, 스님을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출가 60여 년 동안 선禪 수행에 몰두해 온 스님은 평생 선방 어른을 위한 어떤 대우도 마다하며 ‘수좌’로 남을 것을 고집, 오직 수좌로서의 행行과 후학 지도에 힘을 쏟았다. 언론 인터뷰를 수락한 일도 거의 없었고, 일반 대중을 위한 법석法席에도 잘 앉지 않았다. 물론 남겨 놓은 저서도 없다. ‘중이 중다워지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 스님에게 인터뷰나 법문, 저서를 남기는 일은 수행자의 길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님의 공부와 가르침의 흔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했으면 하는 게 세인世人의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이 남긴 일기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님의 일기는 오직 수행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어떤 사족도 달 수 없을 만큼 간결한 문장은 평소 스님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스님의 일기 몇 편과 짧은 법문을 엮은 이 책은 스님의 삶과 수행의 뜻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픈 염원이 모여 간행된, 스님의 ‘첫 책’이자 ‘유고집’이다.
1장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30여 년 간 스님이 남긴 일기 가운데 70편의 글을 엄선하여 엮었다. 끊임없이 번민하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모습과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치열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좋은 곳, 좋은 때, 좋은 인연들을 구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스님의 모습은 바로 세인들을 향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2장에서는 선방에서 수행자들에게 종종 하셨던 짧은 법문을 모았다. 일반 대중은 흔히 접할 수 없던 법문으로, 스님의 음성이 옆에서 들리는 듯 생생하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어떻게 다뤄야 하고, 수행은 왜 해야 하며, 욕망은 어떻게 다스려 하는지 등 오랜 수행을 통해 스님이 깨달은 불법佛法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3장에는 1989년 월간 〈해인〉지에 소개된 방송작가 이윤수 씨와 적명 스님 간의 인터뷰, 그리고 지난 2020년 1월 3일 휴심정에 게재된 법인 스님의 추모글을 수록하였다. 적명 스님과의 짧은 인연이지만, 당시의 일화에는 토굴에서 혼자 지내며 정진을 거듭해 가는 소박한 미소의 수행자, 그리고 배움의 길 위에서는 아랫사람에게도 서슴지 않고 물을 수 있는 어른스님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일상과 수행이 다르지 않다
인간 적명과 수행자 적명

이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심 내용은 단연 ‘스님의 일기’이다. 일기 속에서 편편이 발견되는 수좌 적명의 진면모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있는 것 어느 하나 / 허상 아님이 있던가?
조그만 들꽃에 팔려 / 벼랑을 구를까 두렵노라.
- 본문 39쪽

일평생 수좌의 길만을 걸어 온 스님의 일기에서 우리는 ‘조그만 들꽃에 팔려’ ‘벼랑을 구를’ 것을 염려하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대중처소로 자리를 옮기며 자신을 바라보는 후학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두려워하는 자, 끊임없는 변멸 가운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걱정하는 자를 만나기에 이르면 우리는 색안경을 벗고 진짜 ‘적명 스님’과 마주앉게 된다. ‘세사世事를 초월한 경계’에 선 도인 대신 ‘뇌고惱苦로운’ 현재를 끊임없이 번민하는 ‘인간 적명’이 눈앞에 서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매일같이 자신의 행동 하나, 생각 하나에도 의지의 칼날을 세우고, 빈틈 하나 허락하지 않는 자기성찰의 문장에 이르게 되면 스님을 왜 ‘진정한 수행자’이자 ‘사표師表’로 여기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 가는 시간이여! / 나를 버리지 말라.
부질없는 티끌 속에 / 나를 던지지 말라. 던지지 말라!
- 본문 131쪽

‘수좌’. 적명 스님을 이토록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더 있을까? 오직 ‘깨달음’을 향한 일에 몰두해 온 스님에게 이것 외의 어떤 수식도,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스님 스스로 적어내려 간 지난 행적을 더듬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고승高僧 혜홍 각범慧洪覺範의 게송에 대해 스님이 일기에 적은 것처럼 ‘매우 용감하다’고…….

하루 열두 번 참회해도 부족하고 백 번을 새롭게 다짐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수좌의 마음속에 안이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자긍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장의 얼음이어야 한다.
- 본문 127쪽

영원한 행복은 무엇인가?
세상 만물과 하나 되는 길에 깨달음이 있다

이 책에 담긴 스님의 유고와 법문에는 세간을 꿰뚫는 푸른 눈의 납자衲子도, 천진하고 인자한 미소로 대중을 맞이하던 스승도 있다. 스님의 글은 진정한 깨달음, 진정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우리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그렇다면 스님께서 우리를 위해 남긴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보살의 길’이다. 스님이 법문 때마다 강조한 말이다.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이니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사람이 깨달은 자이다
_ 적명 스님 법문 중에서

평소 불이不二, 중도中道를 강조하던 스님의 법문에서도 관련된 대목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깨달음의 내용은 사실 자비입니다. (…)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나와 남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_ 본문 158쪽

수행의 최종 목적은 일체 중생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 줄면 그만큼 타인과 만萬 생명과도 하나가 되어 행복해집니다.
- 본문 177쪽

나와 남이 다르지 않으니, 남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스님이 말하는 ‘보살의 길’이자 ‘깨달음’이다. ‘보살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이러한 핵심을 꿰뚫는 가르침이다.
보살의 길은 스님이 지닌 깨달음에 대한 신념이다. 번민의 고통 속에서도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던 스님의 치열함은 사부대중을 향한 보살심의 발현,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스님은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며 수행과 공부와 일상의 일이 다르지 않음을 보이고, 어서 빨리 당신도 깨우침에 동참하라며 재촉한다.

나 같은 사람이 공부를 지어 얻고 마음이 열려 해탈을 성취한다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이토록 오래 해도 안 되는 사람, 못 하는 사람, 번뇌와 집착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 이루는 일이라면 이 세상 누구라도 해서 안 될 사람 없음이 너무도 충분히 증명된 셈이기 때문이다.
- 본문 125쪽

무심한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흐르는지, 사바와의 인연을 마친 스님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지도 곧 49일(이 책의 출간일인 2020년 2월 10일은 스님의 사십구재가 있는 날이다)째가 된다.
불법을 향한 길 위에서 깨달음을 구하고자 번민 속에 꿋꿋이 전진하던 인간 적명, 깨달음은 곧 나와 우리가 다르지 않음을 철저히 아는 것이라 설법하던 스승 적명, 배움의 길 위에서는 아랫사람에게도 길을 얻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어른 적명. 그런 스님이기에 우리가 이 시대의 참 스승이라 일컬으며 그리워하는 것 아닐까. 비록 사바와의 연을 마쳤으나 스님이 남긴 발자국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이제는 두 번 다시 기웃거림 없이 오래오래 조용히 또 조용히 정진하고 싶어서인가. 깊이깊이 참구해 들고 싶어서인가. 화상은 그렇게 적멸에 들어 버리고 나는 화상이 버리고 간 일기와 한담들을 뒤적거리면서 남겨진 향기를 음미합니다.
- 무비 스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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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일상이 예배가 되다

도서정보 : 토니 라인키 | 2020-02-2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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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다

초연결 사회의 스마트폰, 욕망을 비추다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한순간도 어딘가에 접속되어 있지 않고는 못 배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톡 잡담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불안한 정체성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만약 누군가 나의 오늘 하루 스마트폰 사용 기록을 보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하루를 시작할 때, 경건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우리는 먼저 SNS부터 접속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여행과 기념일 등 특별한 순간까지도 늘 함께한다. 이제는 좋았던 순간을 SNS에 올리는 것을 뛰어 넘어, SNS에 올리기 알맞은 카페, 일명 ‘인스타그램 감성’을 가진 맛집이나 여행지를 찾아가는 것도 이미 일상이 되었다. 게시글을 업로드하고 ‘좋아요’ 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기다린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들의 즉각적 인정에 점점 목마르게 된다.
이렇듯 스마트폰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저자는 총 12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피와 살을 지닌 우리의 이웃을 소홀히 한다. 즉각적인 인정을 바랄 뿐 아니라 읽기 능력이 약화되고 눈에 보이는 것, 특히 이미지와 영상에 집착하게 된다. 점점 서로가 서로에게 가혹해지며, 잊힐까 두려워하고 결국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를 잊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여러 사람들의 말을 빌려 스마트폰이 우리의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이고 통찰력 있게 드러낸다.

스마트폰, 선물인가 죄의 결과인가?
이런 부정적인 면 때문에 혹자는 스마트폰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스마트폰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 손 안에 있는 이 작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살 수도 있고 그저 세상을 따라가며 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일차적으로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탁월한 기쁨의 신학자 존 파이퍼는 “이 물건들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이 디지털 도구가 “하나님의 영광이 담긴 보물 상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손안에 주어진 이 작은 도구를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것을 단순히 우리의 소비 욕구, 정욕, 나르시시즘을 드러내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에서 우리의 눈을 돌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웃을 선대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게 될 영원한 인정을 소망하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끈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그분의 형상으로 빚어져 가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우리는 ‘좋아요’한 것을 닮아 간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예배하며, 무엇을 닮아 가는가
오늘 인스타그램, 혹은 페이스북에서 어떤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는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짤방, 나와 상관없는 가십거리, 혹은 정치적 뉴스? 우리의 SNS는 내가 인생에서 어떠한 일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우리는 계속 바라보고, 듣고, 좋아하는 것을 닮아 가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좋아요’한 것을 닮아 간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예배하며 무엇을 닮아 가는가? 단순히 눈을 현혹시키는 것을 좇는 삶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 세계와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저자의 초대에 귀 기울여 보라. 이 일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부름 받았다. 우리에겐 하나님을 섬기는 데 너무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도구도 주어져 있다.
“노새는 일을 시키려고 키운다. 노새를 치장하고 다듬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노새에게 사랑이라는 수많은 일의 짐을 지우라. 노새가 예배라는 높은 산을 나와 함께 오르게 만들라.” 이러한 저자의 초대를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를 선용하며 일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으로 가득 차는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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