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전쟁으로 읽는 지정학적 세계사

도서정보 : 다카하시 요이치 | 2022-12-0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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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지리학적 이슈는 무엇일까?

이 책은 지리적 조건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 유럽, 미국으로 세계를 크게 4분할해 세계의 전쟁사를 살펴본다. ‘중국의 야심은 어디까지 확장할 것이며, 왜 러시아는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에 집착하는 것일까? 미국은 어쩌다 스스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게 되었고, 이제는 왜 또 그것을 그만두려고 하는 걸까? 유럽은 어쩌다 EU라는 공동체로 뭉치게 되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전쟁과 분쟁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얻도록 해준다. 특히 다양한 지도와 도표, 연표를 통한 알기 쉽고 상세한 설명으로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이 한눈에 들어오게 해준다.

구매가격 : 10,500 원

아시아의 띠 이야기

도서정보 : 최진희,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 | 2022-11-3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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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신, 열두 띠 이야기가 국가마다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나라별 띠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요? 물론 국가마다 비슷한 띠도 있지만 전혀 다른 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소띠가 베트남에서는 물소띠라는데요. 물소가 베트남에서 농사에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나라는 토끼띠지만 초원보다 수목이 많은 베트남과 네팔에서는 고양이띠, 말레이시아에서는 사슴띠로 불리웁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볼까요?

구매가격 : 5,000 원

클래식 클라우드 030 - 반 고흐

도서정보 : 유경희 | 2022-1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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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서양미술사의 하늘을 수놓은 성좌 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 공간

반 고흐의 상실과 결핍의 근원인 쥔데르트에서부터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파리를 거쳐
유토피아적 꿈의 시작점과 마침표를 찍은 아를과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그의 자취를 따라가다

_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문학, 사상, 예술의 위대한 거장을 찾아가는 국내 대표적 인문 기행 프로젝트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서른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거장의 자취를 직접 밟아 가면서 그의 생애와 작품·사상·예술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평전은 평전이되 공간의 현장성을 질 높은 도판과 산뜻한 디자인으로 담아 낸 입체적 평전의 모범을 보여 줌으로써 인문 교양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아 왔다. 서른 번째로 만나는 거장은 서양미술사를 수놓은 성좌 중 전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빈센트 반 고흐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거장 화가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바르 뭉크, 클로드 모네, 얀 페르메이르, 에드가르 드가에 이어 여섯 번째다.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고 평생 세상과 불화하며 부랑자처럼 떠돌았지만 죽은 뒤 서양미술사상 가장 높고 찬란한 명성을 누린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는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라고 한 자크 라캉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극한의 광기로 치닫다가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 예술가로만 여기지만, 그는 누구보다 명료한 정신으로 자기 안의 깊은 고독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날마다 치열하게 분투한 건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37년이라는 짧은 생의 여정 동안 어디에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유배자처럼 떠돌았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너무나 투명한 영혼을 가진 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기성의 보수적 체제에 늘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며 저항했는데, 그것은 창조적 모험이라 할 만한 탈주로 이어졌다. 그가 이 지상에서 보여 준 탈주의 파노라마는 결국 영원과 닿아 있는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켰다.

저자인 미술평론가 유경희는, 내면의 깊은 상실과 결핍을 오히려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아 눈부신 예술 세계를 일군 반 고흐의 행보를 따라간다. 저자의 여정은 특히 화가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킨 프랑스의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 오베르쉬르우아즈 등에 집중되어 있다. 저자는, 평생 고단하게 떠돌았던 반 고흐라는 한 인간에 접속하여 그를 이해해 보고자 한 이 시도는 “빈센트 반 고흐-되기의 시간”이자, “빈센트로 시작해 나에게 도달한 영적인 여행”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행을 통해 “빈센트처럼 사물과 사람을 보는 습성도 생겼다. 그는 사람들이 충분히 감탄하지 않는다며 불평했는데, 나는 무엇보다 그처럼 감탄하는 법을 배웠”으며, 또한 반 고흐의 “방황과 방랑은 자기만의 삶을 구축하기 위한 너무도 건강한 삶의 드라이브이자 메커니즘이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_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

반 고흐의 인생은 주로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보낸 전기와, 프랑스의 파리,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보낸 후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는 큰아버지 센트가 운영하던 구필화랑 덴하흐 지점의 화상으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때 유명 화가들과 작품들을 풍부하게 접할 수 있었는데, 특히 장 프랑수아 밀레를 필두로 한 바르비종파의 자연 친화적 화풍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림 파는 일을 그만둔 뒤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종교적 포부를 안고 평신도 전도사로서 열악하기로 악명 높은 보리나주 광산촌으로 들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교단으로부터 전도사로서 부적합하다는 판결을 받은 그는 종교 대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가로서 반 고흐의 인생은 세계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 입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파리에서는 무엇보다도 인상주의 사조를 접하면서 그의 그림도 초기의 어둡고 무거운 색조에서 강렬하고 생기 있는 색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색채 속에서 삶을 찾고자 했으며, 진정한 그림이란 색채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파리보다는 보다 밝은 빛과 따뜻한 색채가 있는 곳에서 예술가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다. 밀레와 앙리 루소가 주축이 되어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에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반 고흐의 아를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가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장 폭발적으로 분출한 생의 마지막 3년의 시작점이다.

밝고 화사한 색으로 뒤덮인 남프랑스 아를의 봄은 마치 그가 꿈꾼 유토피아에서 온 편지 같았다. 그리고 반 고흐가 테오의 돈으로 심혈을 기울여 꾸민 ‘노란 집’은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꿈의 아지트 같았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 건설의 동지라고 여긴 폴 고갱과의 갈등이 끝내 비극적 결말로 치달으면서 반 고흐의 꿈도 모두 부서지고 말았다. 이후 정신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은 그는 생레미드프로방스에 있는 생폴드모졸요양원에서 약 1년간 머물렀다. 당시 반복되는 발작과 불안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 〈꽃핀 아몬드나무〉를 비롯하여 〈올리브나무〉, 〈사이프러스나무〉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이후 요양원을 떠나 파리와 가까운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작은 마을로 거처를 옮긴 반 고흐는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드넓게 펼쳐진 밀밭, 포도밭, 나무, 정원 등을 그렸다. 특히 죽기 얼마 전에 그린 〈구름 낀 하늘 아래의 밑밭〉,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생의 끄트머리에 선 그가 느꼈을 절망감과 고독감이 사무치게 묻어난다. 1890년 7월, 그는 저물녘 들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쏘았고, 이틀 뒤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살아생전에 그는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그의 예견대로 이제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화가가 되었다.

◎ 본문 속에서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아포리즘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내 삶을 관통하는 메타포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단박에 빈센트를 떠올렸다. 그는 창조적 모험이라고 할 만한 방황에 함께할 동반자를 평생 찾아 헤맸다. 사실 그는 일생 동안 기성세대의 보수적 이념과 구태의연한 체제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으로 경계하며 저항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빈센트와 만나 수년간 동거했다. 그 동거는 정주가 아닌 탈주의 동거였다.(18쪽)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늘 딴 생각을 했고, 생각은 시시각각 변했다. 하루에도 감정이 수십 번씩 변했고, 늘 다른 직업이나 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림으로 성과가 나지 않을 때는 농장 일, 군대 입대, 위생병, 다시 화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꿈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빈센트를 안정되고 살 만한 삶으로 이끌었던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림은 불안을 차단하는 장막이 되어 주었다.(26쪽)

그렇다면 빈센트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냉혹할 정도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스물여섯 살 때 그는 “나는 정열의 인간이고, 다소 무분별하고 지나친 행동에 빠지기 쉽고, 그래서 종종 후회하기도 해. 더욱 참고 기다리는 편이 좋았을 때도 바로 말을 뱉거나 행동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경솔한 행동을 하지”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예민하고 우울하고 변덕스럽다고 느꼈다. 자기가 보낸 호의나 작품에 대해 어떤 응답이나 보수가 곧바로 오지 않을 때는 낙담과 분노 혹은 모욕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순진할 정도로 사람을 잘 믿는 그가 역설적으로 사람에 대해 곧잘 의심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는 점도 아주 특이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광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 자신을 타자화해서 보는 능력도 갖추었다.(29~30쪽)

빈센트가 정말 미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규칙적으로 온전히 그림을 그려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부단하게 노력했다는 증거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것도 추상도 아니고 구상은 매우 아폴론적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물감을 섞어 제대로 된 색을 만들고, 형태를 만들고 구성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성적인 집중과 온전한 정신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말이다.(44~45쪽)

폴 세잔은 빈센트가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미치광이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그렇게 자극받은 빈센트의 그림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즉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색채 속에서 삶을 찾고자 했으며, 진정한 그림이란 색채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74쪽)

파리는 자유로웠지만 사람들은 냉담했고 빈센트는 고독했다. 그는 파리를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치열한 생존경쟁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그에게는 나름의 예술을 추구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하여 떠올린 곳은 남프랑스였다. 이를테면 로트레크가 유년을 보낸 프로방스, 몽티셀리가 떠난 프로방스, 세잔의 고향 엑상프로방스 같은 곳 말이다. 그리고 빈센트는 남프랑스가 따뜻한 태양과 다채로운 색채, 값싼 생활비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다른 화가들을 초청하여 공동체를 만들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라고 기대했다.(81쪽)

빈센트는 인생의 종착점에서 사진을 보고 어머니의 초상을 그렸고, 시 한 편을 함께 썼다. 훗날 그는 모든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가슴을 녹인다고 고백했다. 모성애를 환기하는 모든 이미지는 빈센트를 사로잡았다. 꽃꽂이, 바느질, 요람 흔들기, 불가에 앉아 있기 등. 그는 스무 살이 넘어서도 어린아이가 원할 법한 모성애와 그 상징에 집착했다. 어머니는 그를 버렸지만, 그의 내면은 지극한 모성을 찾는 일을 단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109쪽)

빈센트가 독서의 세계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질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통당하고 소외감을 느낄 때마다 그는 무작정 걷거나 독서의 세계로 깊이 침잠했다. 열한 살 때 강제로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가족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런던에서 하숙집 여인 유지니에게서 실연당한 뒤에도 그는 많은 시간을 고독한 취미 생활인 산책과 독서와 편지 쓰기로 보냈다.(121쪽)

빈센트가 이토록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할 줄 아는 존재였음을 말해 준다. 자연에 대해 그러했듯이 예술에 대해서도 연신 감탄한 빈센트는 자주 흔들렸고, 자극받았고, 위로받았다. 그는 예술가야말로 어떤 순간에도 진정으로 감동할 줄 아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마치 희랍인 조르바가 모든 만물을 처음 보듯 감탄했던 것처럼. 그래서 “되도록 많이 감탄하려무나. 많은 사람들은 충분히 감탄하지를 않아”라고 테오에게 보낸 조언은 비단 테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129~130쪽)

아를에 가게 된다면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이 반 고흐가 머물렀던 노란 집이었다. 아를을 생각하면 언제나 나는 반 고흐가 드나들던 카페보다 노란 집을 가 보고 싶었다. 작가의 작업실이 훨씬 호기심을 자극했던 탓이다. 게다가 노란 집에서 탄생한 빈센트의 걸작은 또 얼마나 뭉클한 것인가. 제일 보고 싶은 것은 제일 나중에 보려고 남겨 둔 채 해거름이 질 때까지 강둑을 걷고 또 걷다가 도착했다. 이미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노란 집에 대한 노스텔지어는 포기할 수 없었다.(153쪽)

빈센트가 사로잡힌 것은 초상화였다.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다.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내 안에 있는 최고의 것, 가장 진지한 것의 표출이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모델을 찾는 데 열중했던 그에게 초상화란 유일하게 사람을 소유하는 경험을 해 주는 장르였다. 그는 모델을 선정해 자세를 취하게 하는 등 그 자신이 주도적인 위치가 된다는 것에 매료되었다. 그는 개성 있는 모델을 구해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게 되었다.(164쪽)

그런 빈센트는 들판의 농민이나 우체부와 카페의 주인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그렸다. 그는 인물들을 면밀하게 관찰해 개성을 포착했고, 그 자신의 명확한 확신에 의해 재현했다. 그렇게 탄생한 초상화는 아무런 허식이 없이 간결하고도 자연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빈센트는 보통 사람을 보통 사람으로 그리기 위해 과거의 초상화에서 신비롭거나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드리웠던 짙은 음영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채색과 피부의 분장을 말끔히 제거하고 거친 질감으로 피부를 자유롭게 표현했다.(165쪽)

생레미가 빈센트의 마을이라고 느껴진 것은 바로 그가 요양한 생폴드모졸수도원까지의 오래된 길 때문이다. 빈센트는 당시 생래미역에서 이 수도원까지 마차를 타고 갔지만, 나는 시내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수도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 길은 빈센트 반 고흐의 여정에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주었다.(204쪽)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빈센트의 예술을 낳은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애정 결핍으로 인한 인정 욕망이었다는 것을 밝혔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한 존재에게는 수만 년 동안 살아남은 유전자가 새겨져 있다. 그에게는 집단 무의식, 개인 무의식을 비롯해 시대정신, 에피스테메, 가족, 자연, 환경, 친구, 교육, 심지어 전생까지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빈센트라는 한 존재를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으로 바라보되, 한편으로는 감정이입과 공감이라는 시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적으로 객관화하고 타자화하는 시선으로 임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내게 미스터리한 존재다. 아니 한 존재를 미스터리로 놓아두는 것이 그를 새롭게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줄 것이다.(278~279쪽)

구매가격 : 16,800 원

다시 시작하는 용기

도서정보 : 조희전 | 2022-1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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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꿈을 꾸고 도전하면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목숨을 끊고 싶은 절망의 순간들도 있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성공을 붙잡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실망, 좌절, 절망에 무릎 꿇지 않았기에 그와 같은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본서를 통해 자라나는 꿈나무들은 희망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청년들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13,000 원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도서정보 : 도널드 리치 | 2022-11-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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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간 오직 일본을 사유한
도널드 리치의 일본론 20편

역사의 긴 복도를 되돌아보다

일본에는 일본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그들 나라에 대해 글을 써온 외국인의 계보가 있다. 도널드 리치도 그중 한 명으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이상 일본에 살면서 외국인(특히 서양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가령 오즈 야스지로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가 서양에 알려진 데에는 그의 영향력이 있었다. 영화평론가이자 큐레이터로서 그는 이 책에서 일본 영화뿐 아니라 도시와 사회, 사람, 정원, 음식, 다도에 관해서 심미적인 정취들을 꿰뚫으면서 일본의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간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 “옆에서 보아야만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E. M. 포스터) 저자 역시 경계인으로서 옆에서 일본을 오래 들여다봤다.
『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은 도널드 리치가 1960년대부터 50여 년에 걸쳐 쓴 일본에 대한 산문 중에서 20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각각 일본의 형태, 일본 영화, 일본 문자, 파친코, 패션, 키스, 무너져가는 내면화, 텅 빈 공간과 시간의 추구, 일본인이 드러내는 친밀함의 이중성,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등을 다룬다. 50년에 걸쳐 쓴 산문을 한 번에 보여주면 어떤 흐름이 읽힐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일본적 특성이 드러난다. 즉 기본적인 전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의 아름다움은 대부분 화석화되었거나 혹은 통속화되었다. 그의 글 몇몇의 후반부가 회한의 감정을 담고 있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역사의 긴 복도를 되돌아보는 일은 가치가 있다”.
글은 자신이 음미하고 분석하는 대상을 얼마쯤 닮기 마련이다. 일본의 아름다움을 궁구하던 리치의 글은 깊이 있고 정갈하며 미적 경험 속으로 온전히 뛰어드는 글이다. 이 책은 관찰하고,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일본을 이해한다. 일본의 겉모습에서 시작해 나선형으로 걸어가며 그 심부를 산책한다.

일본을 생각한다는 건 형식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라의 모든 틀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나라.’ 저자는 일본을 이렇게 규정한다. 바꿔 말해 “패턴화된 나라”라 할 수 있다. 일본을 경험해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형식에 온 마음을 기울인다. 이 틀로 많은 것이 해석될 수 있다. 일본에는 전화를 거는 마땅한 방법, 차를 마시는 마땅한 방법, 돈을 빌리는 마땅한 방법이 있다. 즉 절대적인 형식이 존재하고 추구된다. 다른 나라라고 이런 게 없는 것은 아니나, 일본에서는 이것이 ‘행위의 예술’이 된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기 마련인데, 일본어에서 관용구가 발달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용서를 구할 때, 슬픔을 표현할 때, 화내거나 사랑을 표현할 때조차 쓰는 관용구가 있으며, 이는 패턴화되어 있다.
형식을 극히 중요시하다보니 일본인의 태도는 주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한 나라의 패턴에 입문하려면 공중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라고 말한다. 잘 개간된 일본의 땅은 산과 산 사이로 논밭이 뱀처럼 구불구불 펼쳐지는데, 이는 독일의 말끔한 사각형이나 북미의 광활한 체스판과 크게 다르다. 저자는 여기서 자연을 본뜨는 일본인의 태도를 발견한다. 논밭이 이런 모양인 것은 산을 관찰하고 계곡을 따라 논밭을 일궜기 때문이며, 풍경이 펼쳐진 곡선을 따라 집을 만들고, 나무가 있으면 베지 않은 채 두고 오히려 지붕을 뚫었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인데, 일본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단지 자연스럽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엔 잠재성만 있어, 거기에 손을 대고 꾸며야 한다. 그러면 형태가 생겨나고 의미가 찾아진다.
일본인이 전통적으로 아름답다 여긴 홀로 선 바위나 한 줄기 대나무 가지를 보라. 도코노마에 놓인, 아무것에도 기대지 않고 균형 잡고 있는 한 줄기 나뭇가지를 보라. 여기서는 ‘정식으로 균형을 갖춘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이 같은 비대칭의 절묘한 균형감은 일본 정원에서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패턴과 형태, 형식과 디자인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일본을 규정한다고 본다. 사찰이든 기모노든 목수의 톱이든, 어디에나 패턴이 있다. 게다가 현대의 새로운 것들은 대개 옛것의 모양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인에게 사당을 제대로 짓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고, 기모노의 허리끈인 오비를 제대로 짜는 방법도 오직 하나밖에 없다(다만 개성의 표출은 장식에서 허용되며, 무수한 창조는 바로 여기서 이뤄진다).
외국인 입장에서 일본 미학의 정수를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은, 기능은 떼어놓은 채 사물을 관찰해 시각적 특성을 더 두드러지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속에서 자연법칙을 따르는 디자인뿐 아니라 사회 규율까지 간파해낸다. 그가 일본을 “각각의 모듈로 이루어진 것들의 원조” “최초의 조립식 건물의 땅”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적게 보여줌으로써 더 많이 느끼도록

이 책에 실린 20편의 글 중 4편은 영화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중 「일본 영화에 대한 어떤 정의」는 서양 영화들과 달리 일본 영화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틀을 제공해준다.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저자에 따르면, 서양 영화는 스토리, 플롯, 액션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 영화는 ‘정취 중심의 사실주의’가 특징이다.
특히 일본 감독들은 공간을 제한해 정취를 만들어내곤 한다. 이를테면 도요타 시로의 「묵동기담?東綺譚」은 집 한 채 안에서 거의 모든 내용을 펼쳐 보인다. 한정된 공간을 도구로 사용해 간접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일본인의 성향으로, 여기서 모호하고도 심플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그 집과 친숙해지고 그곳에 살고 있는 여인과도 친숙해지며, 거기에 사실적 디테일이 덧입혀지면서 그 영화만의 정취가 생겨난다.
이처럼 ‘적게’ 보여주는 방식은 고리키의 소설 「밤주막」을 영화화한 프랑스 작품과 일본 작품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프랑스 영화는 캐릭터에 관심을 쏟아 시작부터 클로즈업 장면을 보여줬던 반면, 일본 영화가 보여준 것은 하숙집과 밭마당, 하늘, 인물의 캐릭터가 전부다. 후자처럼 적게 보여주면 어떤 효과가 발휘될까. 관객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자 스스로 더 많이 생각하면서 영화에 다가간다. 가령 미조구치 겐지 감독은 영화의 정취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가 멀찍이 떨어져서 인물의 행동을 롱테이크로 잡도록 한다. 그러면 관객은 장면이 주는 아름다움을 천천히 흡수하는 가운데 멀리 보이는 연인들에게 그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마침내 그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정취를 느낀다. 감독이 더 적게 보여줄수록 관객은 더 많이 느낀다.
저자는, 영화 예술이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본질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거기에 패턴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플롯 중심의 서양 영화들은 행위와 사건을 필요로 하기에 영화의 본질을 흐려놓을 때가 있다.
아쉽게도 현대의 일본 영화에서도 정취는 사라지고 있다. 오즈의 여러 영화가 전통적인 시간 활용법을 보여주며 섬세한 감정의 얽힘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요즘 일본인들은 오늘을 항상 내일을 기준으로 바라보고 경제관념이 우선하기에 그런 미덕은 사라졌다. 저자의 에세이는 미래 시점이 현재로 당겨져 지배적 가치가 될 때 삶과 예술은 시간을 잃어버리고 느낌을 잃어버린다는 점을 간파해내는데, 이런 회고적 느낌이 저자의 산문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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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탄생

도서정보 : 조계영 | 2022-11-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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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의 서사를 풀어
당대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다

·책의 형태와 제작 과정을 통해 본 조선의 ‘책 문화사’
·현전하는 기록물을 통해 밝히는 시간과 공간의 역사
·왕실 의례와 기록 문화의 결합으로서의 왕실 서책
·조선 후기 출판 기술직의 역할과 장인들의 세계

17세기 종법宗法의 확산으로 인해 조선 왕실 또한 문중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종가大宗家로서의 위상과 왕권 확립을 위해 왕실 의례를 정비하게 되는데, 그 일환으로 제도를 갖추어 왕실 서책의 편찬이 이루어졌다. 1631년 『열성어제』의 편찬을 시작으로 『열성어필』 『선원계보기략』 『궁원의』 『국조보감』이 종친의 활약을 기반 삼아 편찬되었다. 조선 서책은 중국 서책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변하기도 했지만 점차 독자적인 체제를 갖추어 나중에는 거꾸로 중국 서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조선을 대표하는 기록물로 현전하는 왕실 서책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를 들여다보는 『책의 탄생』은 서책이 간행된 배경과 형태 및 제작 과정, 왕실 의례, 출판 기술직의 세계를 총망라하여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나라 서지학 지식과 함께 당대의 책 문화사를 조명한다.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기록과 보존의 역사

인간의 문화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책’이다. 책의 가치는 내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형태를 이루는 물질적인 요소에 의해 변하기도 한다. 특히 정보 전달의 목적이 아니라 영구히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된 책이라면 그 형태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의 서책 가운데 국왕을 비롯해 왕비와 왕세자, 왕세자빈 등을 포함한 왕실 구성원을 대상으로 간행된 책을 왕실 서책이라 칭한다. 왕실 서책은 정보를 널리 전달하려는 목적보다 국왕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위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간행되었다. 따라서 일반 서책과는 다른 형태로 제작되었고, 크고 작은 왕실 의례와 늘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며 편찬 과정에서 조선의 행정 체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엄격한 절차를 거쳐 완성된 서책은 어디에 어떻게 보관되었을까. 왕실 기록물의 보존을 위한 국가의 노력은 조선 후기까지 계속됐는데, 정조 연간에 이르러 규장각을 비롯한 봉모당과 외규장각이 건립되어 왕실 기록물 봉안처로서의 위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정조는 자신의 어제와 어필을 규장각에 봉안하고, 봉모당에는 선왕들의 기록물을 봉안했다. 마침내 왕실 기록물의 성격에 따라 별도로 봉안할 수 있는 건물이 세워져, 왕실 서책의 편찬을 촉진하고 영구히 보존할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정조는 종묘에 직접 가서 선왕들의 각 신실에 『국조보감』을 올리는 의례를 거행했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선왕들의 뜻과 사업을 계승해 성취했다는 ‘계지술사繼志述事’를 표방하며 국왕으로서의 정통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기록물의 위계에 따라 달라지는 책의 옷

조선시대에는 책을 널리 전파하고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필사나 활자보다는 책판을 선택했다. 책판 제작은 비용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소요되고 완성된 책판을 잘 관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한번 나무에 새기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수량만큼 다시 찍어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책판을 후대에 전해 언제든 다시 찍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서책을 영구히 보존하는 방법이라 인식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책판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활자와 책판을 모두 사용하기도 했는데 『궁원의』가 좋은 예다. 『궁원의』의 구성 요소를 보면 어떤 부분을 활자로 인출하는 것이 좋고, 어떤 부분을 책판으로 인출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있다. 활자와 책판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는 고민은 정조가 『국조보감』을 인출할 때의 논의를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당대의 경제적 상황과 물자의 흐름을 고려해 가장 최적의 방도를 찾아내고자 고심했음을 알 수 있다.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듯 책의 몸체를 보호하기 위해 입히는 옷을 책의冊衣라고 한다. 오늘날엔 표지라고 부르는데 일제강점기에 바뀐 명칭을 지금까지 사용하게 된 것이다. 책의에는 장제목과 횡제목을 포함한 여러 정보가 담겨 있다. 왕실 의례 하나를 거행하면 다양한 위계의 기록물이 생산되는데 용도에 따라 책의에 기록하는 정보도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책의를 종이가 아닌 비단으로 할지, 서책 본문에 사용되는 책지를 어떤 품질의 종이로 할지는 모두 기록물의 위계에 의해 결정되었다. 보통 책의를 넘기면 오른쪽에 있는 면지가 백지로 비어 있기 때문에, 국왕이 서책을 하사한 반사頒賜 기록이나 소장자가 남긴 다양한 사연의 장서기藏書記가 있어서 책의 숨은 내력을 알 수 있다.

출판 장인들의 세계와 서책의 완성

조선시대에 책의 형태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교서관에 소속된 원역員役과 공장工匠이라는 직제에 있던 이들이다. 조선 사회에서 장인과 상인, 천인과 노예에 해당되는 공상천예工商賤隸는 관직에 임명될 수 없었지만, 특별한 기술과 부역을 담당할 인력을 동원하기 위해 이들을 국가체제의 일정한 편제 속에서 함께 운용했다. 조선시대 출판 기술직은 어떤 근무 여건에서 작업했으며 어떤 처우를 받았을까.
서책 간행을 담당한 청廳은 기술직의 작업 일수와 업무를 호조와 병조에 보고하고 한 달 단위로 지급하는 요포를 요청했다. 장인은 각색공장各色工匠 또는 각색장인各色匠人으로 통칭되며 어떠한 기술직이라도 동일한 임금지급표준이 적용되었다. 장인들의 작업 공간을 살펴보면, 『현종실록』의 경우 활자를 만드는 소로장과 줄장, 각자장, 당상들이 근무하는 공간이 서로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장인의 근무 공간은 기술직으로서의 작업 공간이기 때문에 관원과는 구별되는 가건물이었다. 한번 특별한 기술직으로 차출된 공장은 의궤에 수록되어 이후 동일한 사안으로 다시 차출해 작업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간행 과정에서 오자가 나오거나 지체되는 일이 생기면 그 벌을 엄히 다스렸고, 서책이 완성되면 수고한 이들에게 담당한 업무와 근무 일수에 따라 말이나 짐승 가죽, 활 등으로 시상했다.
실록을 완성한 후 거행하는 세초나 선온은 실록청의 총재관 이하 모든 관원이 참여하는 잔치로 의례의 집단성을 보여준다. 『선원계보기략』 『열성어제』 『국조보감』과 같은 왕실 서책이나 실록에는 어휘御諱나 묘호廟號가 있어 기록물의 위상이 일반 서책과 다르므로 기록물 자체의 존귀함으로 인해 책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버려진 종이를 함부로 쓸 수 없도록 세초洗草했다. 어떤 일이 마무리되어 손을 뗀다는 의미의 ‘세洗’자를 넣어 지칭한 것처럼, 실록의 세초는 선왕의 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총재관 이하의 실록청 관원이 참여하는 세초와 국왕이 노고를 치하하는 선온宣?을 내려주는 의례는 ‘사초의 상례喪禮’로, 한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공감하는 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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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기년의 변조구조와 실제시대

도서정보 : 황대용 | 2022-11-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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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년 만에 답하는 『삼국사기』의
놀라운 ‘변조된 시간’

그동안 『삼국사기』에서의 ‘변조된 시간’은 승리자에 의한 ‘역사의 고의적인 왜곡’이라는 의심과 함께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제기되어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전모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으며, 또한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전자 회사의 일본과 중국의 주재원으로 26년간 근무하면서,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의 수많은 관련 역사서와 사료 연구를 통해, 의문과 의혹투성이인 ‘『삼국사기』의 시간’에 관한 사실을 명쾌하게 확인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삼국사기』의 변조된 시간에 관한 최초의 본격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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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하는 청춘

도서정보 : 김동환 | 2022-11-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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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승천(昇天하는 청춘)》(1925) 조선 신문학사 간행본
김동환의 ‘제2시집’ 장편 서사시(敍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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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도서정보 : 조선총독부 학무국 | 2022-11-2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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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조선인(朝鮮人)》(1920) 조선총독부 학무국 간행
조선인의 특성을 완전히 명확히 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1. 지리, 2. 지질, 3. 인종, 4. 언어, 5. 사회, 6. 역사, 7. 정치, 8. 문학 및 미술, 9. 철학, 10. 종교, 11. 풍속 습관, 속담(俚諺) 이야기의 11가지 분야이다. 이것은 조선 민족의 특성을 다른 민족과 비교하여 정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특히 우리 일본 국민에 대한 조선 민족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연구 포인트이다. 나의 제한된 지식을 바탕으로 먼저 위에 열거한 11개 영역의 독특한 표현들을 간략하게 나열해보고 그것들을 종합하여 각 민족 별 특성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를 종합해 보겠다.<‘총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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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정동필담乾淨?筆談

도서정보 : 홍대용 | 2022-11-18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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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1765년(영조 41) 35살 되던 해에 계부(季父) 홍억(洪檍, 1722~1809)의 자제군관이 되어 연행하게 되었다. 그 여행의 목적은 하나는 마음 맞는 중국 문사와의 만남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문사들과의 만남의 과정을 벗들과 후손에게 전하려 함이었다고 술회한다.
홍대용의 바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비장(裨將) 이기성(李基成)이 안경을 사기 위해 유리창(琉璃廠)에 들렀다가, 회시(會試)를 보기 위해 절강(浙江) 항주(杭州) 전당(錢塘)로부터 상경한 엄성(嚴誠, 1732~1767),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들과 만남 기간은 1766년 2월 3일 건정동(乾淨?)의 객점 천승점(天陞店)에서 시작되어 2월 29일로 끝을 맺는다. 한 달이 채 안되지만, 홍대용과 전당문인들과의 가슴 울리는 우정을 『건정동필담』 이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여 조선후기 문인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본고의 범위는 을유년(1765) 12월부터 병술년(1766) 2월 29일까지 필담 내용을 번역하였다.
본고에서는 기존 번역의 오류를 바로 잡았고, 전고, 인명, 지명, 말의 출처를 찾아 주석하였으며,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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