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의 방

도서정보 : 민은경 | 2020-09-0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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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여왕이 흉물스런 알로에 꽃을 살롱에 들인 이유는?
초상화 속 흑인 시동은 왜 은목걸이를 하고 있을까?
침대 옆 우아한 서랍장은 냄새나는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화장방 목각인형에 뿔이 돋아 있는 까닭은?

인류는 드디어 비밀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일생이 피고 지는 곳, 가장 은밀한 공간에 담긴 인류의 역사

정원에서 응접실, 서재, 부엌, 침실까지
태피스트리 수집에서 인형집 전시, 열대식물 열풍까지
감각이 깨어나고 잠드는 ‘방’에 구현한 세계


사람의 일생은 방에서 피고 진다. 방은 우리 존재의 기본 배경이자 무대. 우리는 방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결국 방에서 죽는다. 혼자만의 오롯한 안식처이자 피난처가 되어주는 방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방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침실, 서재, 응접실, 부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삶의 공간은 사실 역사적으로 구성된 근대의 산물이다. 유럽의 경우 17~18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집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집주인의 취향대로 집을 꾸며주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됐다. 편안한 소파가 유행하고 비밀 서랍이 갖춰진 책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획기적 변화는 이 시대의 여러 다른 변화와 맞물려 있다. 영국의 경우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소비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중국이나 인도에서 들여온 수입품(면제품, 도자기, 차 등)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8세기의 방』은 한국18세기학회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 스물일곱 명이 ‘방’을 키워드로 18세기 방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18세기 동서양에 나타난 주택구조, 인테리어 등의 변화를 추적하고 특히 사생활을 구성하는 방의 의미를 풀어냈다. 책에 실린 글은 2018년 1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18세기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지식백과에 연재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18세기 도시―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와 궤를 나란히 하는 한국18세기학회의 세번째 책이다.

구매가격 : 18,800 원

민족

도서정보 : 아자 가트 | 2020-09-0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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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무엇이 종족성과 민족주의를 이토록 강하고
폭발적인 힘으로 만드는가?

민족과 민족주의는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인가?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민족주의에 관한 새로운 논의, 국제정치나 언어분화까지도 심층적으로 분석!

▶국가와 헌법에 대한 정치적 충성을 그 유일하고 주된 기반으로 삼아 존재하는 민족은 거의 없다
▶근대화는 민족주의를 출범시킨 것이 아니라 해방시킨 동시에 변형, 강화했으며 그 정당성을 크게 높였다
▶궁극적으로 민족주의란 마음의 상태다
▶종족은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종족을 만들었다
▶민족국가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민족국가는 한 종족과 한 국가가 대체로 일치한 경우에만 출현했다
▶대부분의 민족주의는 정치적 종족성의 특정한 형태다
▶언어의 공유가 민족 단결의 가장 보편적인 접착제였다

※『문명과 전쟁』 『전쟁과 평화』로 주목받는 아자 가트의 문제작!


민족주의는 어떻게 기원했으며, 어째서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민족과 민족주의가 근대에 상상된 혹은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종족은 언제나 고도로 정치적이었고 민족과 민족국가는 수천 년 전 국가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왔음을 보여준다. 문화가 일찍이 우리의 원시적 조건으로부터 인류 진화에 적응해왔고 친족과 더불어 종족성과 종족에 대한 충성을 규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내린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근원을 추적한다. 국가와 제국의 발생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종족성과 민족주의의 폭발적 성격과, 그것이 정체성과 연대를 형성하는 더욱 해방적이고 이타적인 역할까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주의 계율은 현재의 민족 및 민족주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실제로 이루어진 큰 진전들을 극단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연구 방향을 크게 오도했다”면서, 근대주의·도구주의 이론가들은 종족민족 현상의 깊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민족과 민족주의를 순수한 사회역사적 구성물로 취급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특히 “중세 유럽을 포함한 전근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민족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중요하지 않았거나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는 생각은 근대 사회 이론이 범한 가장 큰 착오 중 하나다”라고 강조한다.

구매가격 : 24,000 원

백범일지

도서정보 : 김구 | 2020-09-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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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선생의 치열한 삶의 기록

가장 쉽게 풀어쓰고 읽기 편하게 편집된 NEW EDIT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운동사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이 소원이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그분의 자서전이자 유서이다. 또한 그 암울했던 시대에도 독립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독립운동을 펼치시며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에 매진하신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 누구라도 자신만큼 애국심을 갖는다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선생의 신념과 평생 이를 실천하며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구매가격 : 1,980 원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도서정보 : 안세홍 | 2020-08-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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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를 들려드릴게요”―끝나지 않은 증언



피해 여성들은 고통을 안으로 삼키기보다 침묵을 깨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인터뷰에 응한 것도 모두 자신들의 기록이 남겨져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서이고,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할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바리는 몸뿐 아니라 남자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등 정신적 외상도 심해 대부분 집 안에서만 지낸다. 그녀가 침실을 벗어나 가본 곳이라고는 거실과 테라스가 전부다. 하지만 그녀는 “일본 정부가 약과 돈으로 나를 도와주길 기대합니다”라고 또렷이 요구했다. 기억도 거의 흐릿한 상태에서 꺼낸 말이다. 미나 역시 “나는 일본군에 의해 강간당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런란어는 일본 정부와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자국 정부도 비판했다. 위로금으로 30만 위안을 주어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며, 정부가 나서서 그녀를 보호해야 하지만 정작 중앙정부와 성 정부를 비롯해 하위 조직까지 그녀를 외면하고 있다. “난 이 일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가 더 문제예요.”

웨이사오란은 2010년 12월 일본 의회가 주최한 ‘위안부’ 피해자 공청회에 참석했다. 그녀는 일본인들 앞에서 차분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이때 함께 참석한 일본군에게서 낳은 그녀의 아들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그동안 담아두었던 감정을 폭발시켰다. 당시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일본 측의 답은 듣지 못했다.

마리아는 2001년 2월 라디오를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과 사과 및 법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다른 피해자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품어오던 이야기를 우선 딸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후 롤라스 컴패니아의 다른 피해자와 만난 자리에서 피해의 고통을 공유하며 문제 해결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녀는 명예 회복을 위한 강력한 연대감을 가지며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일본 정부가 조만간 희생자들에 대해 법적 보상을 직접 할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들은 적어도 성노예 제도로 희생당한 여러 형태의 고통을 해소해야 합니다. 일본 정부가 짓밟은 여성들의 주장에 대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명예를 지킬 수 있습니다.”

페덴시아는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1992년 필리핀 ‘위안부’조사위원회에서 처음 증언을 했는데, 당시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는 일본 국가와 국민이 필리핀에서 일본군이 한 행위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는 최근에도 마닐라만에 있는 일본대사관에 직접 찾아가 문제 해결과 자신들의 정의 회복을 위한 시위를 이어나갔고, 일본, 중국, 한국, 캐나다 등지를 직접 돌며 증언 집회를 열면서 항변을 계속했다.

구매가격 : 14,000 원

수서 경적지

도서정보 : 위징;영호덕분 | 2020-08-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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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그중 <경적지(經籍志)>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지(史志) 도서목록이다. 수나라의 장서뿐만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기 도서들의 전래 과정을 잘 기술하고 있어 역대로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혼란을 바로잡은 통일 왕조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는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사기(史記)≫·≪한서(漢書)≫ 등과 함께 중국의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통일 왕조다. 수나라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제(煬帝), 남과 북의 교류를 촉진한 대운하,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수나라의 멸망은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와 유사하다. 2대에서 멸망했다는 점, 멸망한 후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강한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를 통일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나라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서≫를 읽는 것은 이처럼 흥망과 치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경적지>의 도서 선정과 분류
<경적지>에서 밝힌 도서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전 목록에 기록은 있으나 내용이 천박하고 교화에 도움이 안 되는 도서들은 모두 삭제했다. 이전 목록에는 기록이 없으나 내용이 괜찮아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는 모두 덧붙여 기록했다. … 비록 오묘한 도리를 탐구하고 그윽한 모습을 궁구할 수는 없지만 대도를 널리 선양하고 교의를 세우는 도서들은 빠짐없이 기록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수서≫ <경적지>는 도서의 선정과 분류에 상당한 공을 기울였다. ≪수대업정어서목(隋大業正御書目)≫을 기준으로 삼아 수나라의 14,466부(部)의 총 89,666권의 유서들과 대조하고, 여기에 순욱(荀?)의 ≪중경신부(中經新簿)≫·왕검(王儉)의 ≪칠지(七志)≫·완효서(阮孝緖)의 ≪칠록(七錄)≫에 의거해 경(經)·사(史)·자(子)·집(集) 사부(四部)로 도서를 분류했다.

사부 분류법
한나라 때 경전으로 분류되었던 사서(史書)는 위진(魏晋) 시기 들어 수량이 늘면서 그 범주가 점차 세분화되었다. 이후로 ‘사(史)’를 ‘경(經)’에서 독립시켜 따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경신부≫의 병부에서 사기·구사· 황람부·잡사 네 가지의 소류(小類)로 분류되던 것이 ≪수서≫ <경적지>에서는 정사·고사·잡사·패사·기거주·구사·직관·의주·형법·잡전·지리·보계·부록의 열세 가지 소류로 구분되었을 정도로 사서의 기록이 다양해졌다. 이렇게 되면서 춘추류(春秋類)에 모든 사서를 포함하기 어려워 따로 사부(史部)가 만들어졌다. 사부의 성립으로 춘추류에 실렸던 사서들이 사부에 수록되기 시작했다. 사부가 성립되자, 사부의 배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경신부≫에서 사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부(四部)에서 세 번째 위치에 있었으나 이충의 ≪진원제사부서목≫에서 을부와 병부의 내용이 바뀌면서 사부가 경부 다음의 두 번째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사부를 경부 다음에 둔 것은 문인들이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자부에 수록된 도서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경·사·자·집의 사부 분류법이 확립되었다. ≪수서≫ <경적지>의 사부 분류법은 이후 도서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어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까지 줄곧 적용되었다. 중국 정사에서 사부 분류법으로 도서를 분류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수서≫ <경적지>에서 비롯되었다.

도교와 불교 경전을 아우른 목록
정사에 최초로 도경과 불경 도서를 수록했다. 도교와 불교는 남북조 시기를 거쳐 점차 중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당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 이러한 사상적, 학술적 영향으로 남북조 시기부터 목록서에 도교와 불교 관련 서목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도교와 불교는 방외의 종교로 간주되어 남북조 시기에 편찬된 목록서인 ≪칠지≫와 ≪칠록≫, 그리고 ≪수서≫ <경적지>에는 하나의 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부록으로만 실렸다. 그럼에도 도경부와 불경부가 정사에 처음으로 실렸다는 점에서는 목록학사상 한 단계 진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매가격 : 55,040 원

수서 지리지

도서정보 : 위징;영호덕분 | 2020-08-2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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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나라 역사서, ≪수서≫
대운하를 판 나라,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대첩으로 무너진 나라, 그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나라다. 상고시대부터 한나라까지의 역사가 ≪사기(史記)≫에 담겨 있다면, 혼란했던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역사는 ≪수서(隋書)≫에 담겨 있다. 그중 <경적지(經籍志)>는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다음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지(史志) 도서목록이다. 수나라의 장서뿐만 아니라 위진남북조 시기 도서들의 전래 과정을 잘 기술하고 있어 역대로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혼란을 바로잡은 통일 왕조 수나라의 역사서
≪수서≫는 수(隋)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紀傳體) 사서(史書)로, ≪사기(史記)≫·≪한서(漢書)≫ 등과 함께 중국의 정사인 24사(史) 중 하나로 꼽힌다. 수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에 종지부를 찍은 통일 왕조다. 수나라는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양제(煬帝), 남과 북의 교류를 촉진한 대운하, 네 차례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위진남북조의 혼란한 시기를 통일한 대제국 수나라는 581년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건국부터 618년 양제 양광(楊廣)이 멸망하기까지 불과 37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수나라의 멸망은 진시황(秦始皇)의 진(秦)나라와 유사하다. 2대에서 멸망했다는 점, 멸망한 후 한나라와 당나라라는 강한 왕조가 탄생했다는 점, 오랜 기간 이어진 난세를 통일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대제국을 형성했던 왕조의 흥망성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흥미로운 내용과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에 수나라는 고구려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서≫를 읽는 것은 이처럼 흥망과 치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리지>와 그 구성
≪수서≫ <지리지>는 ≪수서≫에 수록된 십지(十志) 중 한 편이다. ≪수서≫ 권29∼권31에 해당하고, 상·중·하 3편으로 이뤄져 있다. <지리지>는 원래 당 태종(太宗) 정관(貞觀) 15년(641년)에 편찬되기 시작해 당 고종(高宗) 현경(顯慶) 원년(656년)에 완성된 ≪오대사지(五代史志)≫의 일부로 편찬되었다가 후에 ≪수서≫에 편입되었다. 진(晋)과 남조 송(宋)나라에서 수나라에 이르는 300여 년간의 주·군·현의 연혁과 각 지역의 민속과 물자 등의 설명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지리지>는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총서(總序) 부분이다. 총서는 ≪수서≫ <지리지>의 가장 앞쪽에 있다. 본지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에 해당한다. 이곳에서는 지리 개념과 효용, 역대 왕조들의 지리 제도와 그 변혁 과정, 남조 양나라에서 수나라에 이르는 각 왕조의 군과 현의 수와 세대수 및 개간한 토지 면적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둘째는 <지리지>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군(郡)에 대한 소개다. 본지에 수록된 군은 경조군(京兆郡)에서 희평군(熙平郡)까지 총 207개다. 군에 대한 소개는 또 두 가지 내용, 즉 해당 군 소개와 군이 거느린 현 소개로 이뤄진다. 군 소개에서는 해당 군의 명칭, 위치, 연혁, 관서 및 관할하는 현과 세대의 수를 소개한다. 현 소개에서는 해당 현의 명칭 변화, 연혁,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산·하천·염전·식량창고·관서·광산·장성(長城) 등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마을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셋째는 중국의 전통적인 지역 구분 개념인 구주(九州)에 의거해 군들을 묶고, 해당 군의 유래와 풍속, 사람들의 기질, 물자 등을 설명했다. 이 부분에서는 지역의 독특한 풍속·혼인·장례·놀이 등을 소개하고 있어 지역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고구려 기록
<지리지>에서 고구려 관련 지명을 크게 두 군데서 볼 수 있다. 첫째는 권30, <지리지> 중편의 ‘안락군(安樂郡)’에 나오는 안시(安市)라는 지명이다. “옛 안락군이 안시(安市)·토은(土垠) 두 현을 관할한다”라고 기록했다. 안시는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安市城)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기에 주목된다. 둘째는 같은 편의 ‘요서군(遼西郡)’에 보이는 영주(營州)와 요동(遼東)의 명칭이다. ‘요서군’에는 영주총관부(營州總管府)를 두었다가 대업 초년에 폐지한 일이 나오고, 그 아래 ‘유성(柳城)’에는 “북위 때 화룡성에 영주를 두고, 건덕·기양·창려·요동·낙랑·영구 등의 군을 거느렸다”고 했다. 영주는 영양왕(?陽王)이 말갈(靺鞨) 기병 3만 명을 이끌고 공격했던 곳으로 유명한데, 훗날 고구려와 수의 전쟁이 일어나는 단초가 되는 곳이다. 요동은 요수(遼水)의 동쪽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요서와 상대되는 명칭이다. 이곳은 고구려가 차지한 땅으로, 고구려가 수 양제의 100만 대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수서≫ <지리지>에는 요동군(遼東郡)은 보이지 않고, 위의 기록처럼 ‘요동을 거느렸다’라고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동 지역이 수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았던 땅이었음을 말해 준다. 더 나아가 수나라가 이곳과 가까운 영주에서 요동 지역을 통제하려고 했음도 엿볼 수 있다.

구매가격 : 39,040 원

시크릿코드

도서정보 : 폴 룬드 | 2020-08-17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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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탄생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생산되었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다양한 코드들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원시시대와 고대시대의 유물을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코드를 시작으로, 비밀조직, 전쟁, 지하세계, 상업, 인간의 행동, 문명화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인간이 창조하고 활용한 코드의 의미와 사용 형태를 분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상형문자와 룬문자로부터 DNA, 다빈치 코드, 그래피티 등 다양한 집단과 문화권에서 만든 코드와 그 발전 과정을 풍부한 사진과 그림 등 1,000컷 이상의 흥미로운 시각자료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역사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메시지의 세계로 접근하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구매가격 : 23,100 원

공자가어 1

도서정보 : 왕숙 | 2020-08-1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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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화를 형성한 단 한 명의 인물, 공자
인류의 지성이 열린 이래,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의 근간을 이루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단 한 명의 인물을 꼽으라 하면, 단연 공자(孔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문화, 사상, 교육, 윤리, 정치 등 각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성인(聖人)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 간의 대화, 또는 공자와 당시 정치가들과의 대화를 훗날 공자의 문인들이 편찬한 전적이 ≪논어≫다. 이 ≪논어≫를 제외하면 공자의 언행과 사상은 고대의 여러 전적들에 흩어져 있는데, 이런 자료들은 너무 단편적이다. 이에 반해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공자에 관해 그 어떤 전적보다도 소상히 기록하고 많은 자료들을 모아 놓았으며,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하는 좋은 전적이다.

≪논어≫에서 볼 수 없는 공자의 언행, ≪공자가어≫
≪공자가어≫는 ≪공씨가어(孔氏家語)≫라고도 하고 ≪가어(家語)≫라고도 간략히 칭해진다. 공자가 제자나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변하거나, 공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변론하거나, 또는 누구의 질문도 없는데 공자가 자신의 생각을 기술해 놓은 전적이다. 그 안에는 공자와 공문 제자들의 언행과 사상이 기록돼 있고 또 당시의 사건과 제도들도 기록돼 있다. 유학자들에게는 ≪논어≫와 함께 공자를 이해하기에 좋은 전적이 될 뿐 아니라 ≪논어≫의 한계성을 보충해 주는, 종합적 성격의 전적이 바로 ≪공자가어≫다.
현재 전해지는 ≪공자가어≫는 10권 44편으로, 위(魏)나라의 왕숙(王肅)이 여러 전적에 나온 공자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정리해서 편찬해 주를 붙였다는 판본이다. 송대(宋代) 이래 왕숙이 위작(僞作)했다는 설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 이 ≪공자가어≫는 오랫동안 위서(僞書)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근래에는 이 책이 위서가 아니고 왕숙이 지었다고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어떠한 의미에서는 ≪공자가어≫의 가치가 ≪논어≫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한 비록 위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계속 전해져 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도 ≪공자가어≫의 가치를 인정했다. 비록 위작이라고는 하지만 널리 유포되어 전해진 지 이미 오래되어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으며, 다른 전적에서 볼 수 없는 공자의 언행에 관한 글과 일화들이 많이 담겨 있어, 공자에 관한 자료로서 풍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어≫의 가치
이 책은 첫째, 공자의 생애, 행적, 언담(言談), 행동거지 등 많은 자료들을 여러 전적에서 수집하고 망라했다. 가장 방대하고 종합적인 공자에 관한 자료 전적이다.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가장 권위적이고 완전한 자료는 ≪논어≫이지만, 그 외에 여러 문헌들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두 모아 편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편찬 과정에서 부분적인 개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는 내용을 멋대로 고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공자에 관한 다양한 일들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의 큰 의의가 있다.
둘째, 공자에 관한 일화나 재미있는 사건 등 서사성이 높은 것들을 수록해, 문학적 가치가 높다. 작품 안에 문학적 소품(小品)이나 소설적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10장에 나오는 노나라 남자와 과부 간의 대화는 필기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20장에서는 공자가 초 소왕(昭王)을 보러 가다가 양식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 이야기가 생동적인 단편소설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셋째, 고사들 중에는 처세에 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아, 작품을 읽는 중에 독자를 깨우쳐 계발(啓發)하게 하는 면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비어 있으면 기울어지며 적당히 차면 바르게 있고 가득 차면 뒤집어진다고 하는 유좌기(宥坐器)의 이야기(9장)가 그것이다.
넷째, 금본 ≪공자가어≫는 고대의 많은 전적들에서 공자와 관련된 것들을 모아 정리해 편찬한 것이기에, 고대의 전적들과 대조해 살필 수 있다. 따라서 판본과 교감 방면에서 상당한 문헌적 가치가 있으며, 수록된 내용을 통해 편찬자가 중시하는 사상이나 가치관 등도 살필 수 있다.

? 이 책의 번역에 사용한 원문과 표점 부호는 왕덕명(王德明) 주편(主編), ≪공자가어역주(孔子家語譯注)≫를 저본으로 했습니다. 이 판본은 상하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1990년에 명대(明代) 황노증(黃魯曾)이 간행한 복송간본(覆宋刊本)을 영인한 ≪사부총간(四部叢刊)≫본입니다.
? 이 책은 2권으로 나누어 출간합니다. 1권에는 원전의 1권부터 5권까지, 2권에는 원전의 6권부터 10권까지 수록했습니다.
? 부록인 ‘공자와 공문 제자’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 중 핵심 인물들에 관해 소개해 이 책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구매가격 : 21,440 원

공자가어 2

도서정보 : 왕숙 | 2020-08-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동아시아 문화를 형성한 단 한 명의 인물, 공자
인류의 지성이 열린 이래,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의 근간을 이루어 왔고 오늘날까지도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단 한 명의 인물을 꼽으라 하면, 단연 공자(孔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문화, 사상, 교육, 윤리, 정치 등 각 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성인(聖人)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 간의 대화, 또는 공자와 당시 정치가들과의 대화를 훗날 공자의 문인들이 편찬한 전적이 ≪논어≫다. 이 ≪논어≫를 제외하면 공자의 언행과 사상은 고대의 여러 전적들에 흩어져 있는데, 이런 자료들은 너무 단편적이다. 이에 반해 ≪공자가어(孔子家語)≫는 공자에 관해 그 어떤 전적보다도 소상히 기록하고 많은 자료들을 모아 놓았으며,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하는 좋은 전적이다.

≪논어≫에서 볼 수 없는 공자의 언행, ≪공자가어≫
≪공자가어≫는 ≪공씨가어(孔氏家語)≫라고도 하고 ≪가어(家語)≫라고도 간략히 칭해진다. 공자가 제자나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변하거나, 공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옳고 그름을 변론하거나, 또는 누구의 질문도 없는데 공자가 자신의 생각을 기술해 놓은 전적이다. 그 안에는 공자와 공문 제자들의 언행과 사상이 기록돼 있고 또 당시의 사건과 제도들도 기록돼 있다. 유학자들에게는 ≪논어≫와 함께 공자를 이해하기에 좋은 전적이 될 뿐 아니라 ≪논어≫의 한계성을 보충해 주는, 종합적 성격의 전적이 바로 ≪공자가어≫다.
현재 전해지는 ≪공자가어≫는 10권 44편으로, 위(魏)나라의 왕숙(王肅)이 여러 전적에 나온 공자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정리해서 편찬해 주를 붙였다는 판본이다. 송대(宋代) 이래 왕숙이 위작(僞作)했다는 설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 이 ≪공자가어≫는 오랫동안 위서(僞書)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근래에는 이 책이 위서가 아니고 왕숙이 지었다고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어떠한 의미에서는 ≪공자가어≫의 가치가 ≪논어≫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또한 비록 위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계속 전해져 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도 ≪공자가어≫의 가치를 인정했다. 비록 위작이라고는 하지만 널리 유포되어 전해진 지 이미 오래되어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으며, 다른 전적에서 볼 수 없는 공자의 언행에 관한 글과 일화들이 많이 담겨 있어, 공자에 관한 자료로서 풍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공자가어≫의 가치
이 책은 첫째, 공자의 생애, 행적, 언담(言談), 행동거지 등 많은 자료들을 여러 전적에서 수집하고 망라했다. 가장 방대하고 종합적인 공자에 관한 자료 전적이다.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가장 권위적이고 완전한 자료는 ≪논어≫이지만, 그 외에 여러 문헌들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두 모아 편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편찬 과정에서 부분적인 개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심지어는 내용을 멋대로 고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공자에 관한 다양한 일들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이 책의 큰 의의가 있다.
둘째, 공자에 관한 일화나 재미있는 사건 등 서사성이 높은 것들을 수록해, 문학적 가치가 높다. 작품 안에 문학적 소품(小品)이나 소설적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10장에 나오는 노나라 남자와 과부 간의 대화는 필기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20장에서는 공자가 초 소왕(昭王)을 보러 가다가 양식이 떨어져 곤란을 겪는 이야기가 생동적인 단편소설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셋째, 고사들 중에는 처세에 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아, 작품을 읽는 중에 독자를 깨우쳐 계발(啓發)하게 하는 면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비어 있으면 기울어지며 적당히 차면 바르게 있고 가득 차면 뒤집어진다고 하는 유좌기(宥坐器)의 이야기(9장)가 그것이다.
넷째, 금본 ≪공자가어≫는 고대의 많은 전적들에서 공자와 관련된 것들을 모아 정리해 편찬한 것이기에, 고대의 전적들과 대조해 살필 수 있다. 따라서 판본과 교감 방면에서 상당한 문헌적 가치가 있으며, 수록된 내용을 통해 편찬자가 중시하는 사상이나 가치관 등도 살필 수 있다.

? 이 책의 번역에 사용한 원문과 표점 부호는 왕덕명(王德明) 주편(主編), ≪공자가어역주(孔子家語譯注)≫를 저본으로 했습니다. 이 판본은 상하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에서 1990년에 명대(明代) 황노증(黃魯曾)이 간행한 복송간본(覆宋刊本)을 영인한 ≪사부총간(四部叢刊)≫본입니다.
? 이 책은 2권으로 나누어 출간합니다. 1권에는 원전의 1권부터 5권까지, 2권에는 원전의 6권부터 10권까지 수록했습니다.
? 부록인 ‘공자와 공문 제자’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 중 핵심 인물들에 관해 소개해 이 책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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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책 15권

도서정보 : 벤저민 애덤스 | 2020-08-11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 책에서 언급하려는 모든 책이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세상은 어쩌면 더욱 살기 좋았을지도 모른다. 50년 전만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는 역사 안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되었고 20년 전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구소련(the Soviet Union)을 덮고 있던 보호막이 벗겨지고 중국 대륙을 가리고 있던 보호막도 찢긴 후 그 안에 감춰졌던 수천만의 썩은 시체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공산당 선언》이 쓰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불행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늦은 후회를 해야 했다. 비록 때로는 대살육의 만행이 다른 형태로 행해지거나 절묘하게 은폐되기도 하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뒤이어 언급될 다른 책들에 관해서도 같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책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기라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알다시피 그럴 수는 없다. 단순히 환경 문제만 고려하더라도 그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전에 누군가가 말했듯이 마치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개체 수를 불려가는 것처럼 무한한 재판(再版)을 통해 널리 퍼져가는 이 해로운 책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최고이자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책들을 하나하나 읽는 것이다. 악의로 가득 찬 책들을 하나하나 읽고 그 전후를 속속들이 알아내어 그 속에 감춰진 사악한 진실을 밖으로 끄집어내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이다.

구매가격 : 5,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