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응팔은 한 손에 고삐를 잡은 채 말을 세우고 부러쥐었던 한 켠 손을 또 펴며 두 눈을 거기에 내려쏜다.

번쩍 하고 나타나는 오십 전짜리의 은전이 한 닢, 그것은 의연히 땀에 젖어, 손바닥 위에 놓여져 있는데, 얼마나 힘껏 부러쥐었던지 위로 닿았던 두 손가락의 한복판에 동고랗게 난 돈 자리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는다.

이것을 본 응팔은 그 손질이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이제야 겨우 발이 잡히기 시작하는 거치른 수염 속에 검푸른 입술을 무겁게 놀리며,

‘제 제레 이 이렇게 까 깎 부러?는 데야 어디루 빠 빠져나가?’

하고 돈을 잃지 않은 자기의 지능을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해하는 미소를 빙그레 짓는다.

응팔은 오늘도 장가드는 신랑을 태워다 주고 돈을 얻어선 여기까지 십 리 길을 걸어오는 동안, 아마 다섯 번은 더 이런 짓을 반복했으리라. 그러니 아직도 집까지 닿기에는 또한 십 리 길이나 남아 있다. 몇 번이나 또 이런 짓을 되풀어야 될는지 모른다.

무엇이나 귀한 것이면 응팔은 두 개의 주머니가 조끼의 좌우짝에 멀쩡하게 달려 있건만 넣지 못한다. 손에서 떠나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살에 닿는 그 감촉이 있어야 완전히 그 물건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다고 안심이 된다.

그러나 응팔의 이런 의심증은 결코 그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그때도 역시 사람을 태워다 주고 오십 전 한 닢을 얻어, 손에다 쥐고 오다가 문득 말을 세우고 줌을 펴 보았다. 손에는 돈이 없었다. 조금 전에 오줌을 누며 허리춤을 뽑을 때 그만 쥐고 있던 돈을 깜박 잊었던 것이 뒤미처 생각키었다. 그리하여 돈은 그때에 떨어졌으니 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그래도 그는 그 후부터도 돈을 주머니에 넣지 못하고 줌에 부러쥐기를 의연히 잊지 않으며 그저 펴 보는 그 번수만을 자주 할 뿐이었다.

구매가격 : 500 원

캉가루의 조상이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실제를 이상화하기는 쉬워도 이상을 실제화하기는 그렇게도 어려운 듯하다.

문보가 약혼을 하였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할 적에도 이상과는 너무 멀었던 사실이다.

‘내가 약혼을 하다니!’

앞길의 판재에 현재를 더듬어 미래를 내다볼 땐 천생에 죄를 지은 듯이 마음이 두렵다.

멘델의 유전학적 법칙은 완전히 무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문보가(家)의 유전적 내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죔손이, 절름발이, 곱사등이, 앉은뱅이, 애꾸눈이 - 대대로 이런 불구자를 계승하여 내려오는 가계(家系)에서 자기 따라 이, 목, 구, 비가 분명하고 사지 백체가 제대로 가진 인간으로 대를 가시어 놓기 바랄 수 있을 것일까?

오십여 생을 손이 묶인 듯이 쓸 수 없던(쥠손이) 아버지의 불행에 비하면 한 눈이 멀다는 자기는 행복된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차라리 한 눈이 마저 멀어 세상의 모든 것을 애초에 볼 수가 없었더면 얼마나 행복된 일이었을까? 불구의 고민을 잊을 때가 없거니, 이제 자기의 불구한 고민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불행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 놓아 자기와 같은 고민 속에서 일생을 보내게 한다는 것은 몇 번이고 생각해도 그것은 인생에 대한 죄악이었다.

자기 한 몸을 희생하여 불구의 불행한 씨를 근절시켜 놓는 것이 차라리 그들의 행복이리라, 결단코 결혼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인생의 반생을 한뜻같이 독신으로 살아온, 아니 영원히 살려던 문보였다.

비록 한 눈은 멀었을망전 그것이 흉하여 자수의 짙은 안경을 매양 끼고 있으니 좀 건방져는 보일망정 문보가 불구한 인간이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 나머지 부분의 붙음붙음이 분명하고 고르게 정리된 뚜렷한 용모와 체격의 남자다운 늠름한 품격이 남달리 이성에의 흠모의 적(的)이 되어 동경의 학창 시대엔 결혼 신청을 받기도 실로 수삼차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건만, 이런 것들을 물리치기에는 조그마한 무란도 없이 그의 생각은 철저하였다.

눈에 들고자 갖은 아양을 피워 가며 계집으로서의 온갖 미를 아낌없이 자기의 앞에서 떨어 낼 때 인생의 본능에 자극을 아니 받을 수 없어, 그것을 이겨 내기란 참으로 괴롭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동경에서도 이름난 미인으로 유학생들이 입술에서 오르내리고 있던 금봉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받았을 때, 그리고 자기를 위하여 아까운 것 없이 바치기를 아끼지 않으려 할 때, 금봉의 미모와 정열에 청춘의 마음이 본능적으로 휘어 들어감을 억제치 못하여 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한 적도 있기는 있었다.

구매가격 : 500 원

최서방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지주의 횡포로 인해 농토를 빼앗긴 소작인의 비극을 그린, 계용묵의 단편소설

구매가격 : 500 원

원고료 이백원

도서정보 : 강경애 | 2020-09-2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친애하는 동생 K야. 간번 너의 편지는 반갑게 받아 읽었다. 그리고 약해졌던 너의 몸도 다소 튼튼해짐을 알았다. 기쁘다. 무어니무어니해도 건강밖에 더 있느냐.

K야 졸업기를 앞둔 너는 기쁨보다도 괴롬이 앞서고 희망보다는 낙망을 하게 된다고? 오냐 네 환경이 그러하니만큼 응당 그러하리라. 그러나 너는 그 괴롬과 낙망 가운데서 당연히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쁘고 희망에 불타는 새로운 길을 발견해야 한다.

K야 네가 물은 바 이 언니의 연애관과 내지 결혼관은 간단하게 문장으로 표현할 만한 지식이 아직도 나는 부족하구나. 그러니 나는 요새 내가 지내는 생활 전부와 그 생활로부터 일어나는 나의 감정 전부를 아무 꾸밀 줄 모르는 서투른 문장으로 적어 놀 터이니 현명한 너는 거기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하여 다고.

K야 내가 요새 D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여 원고료 이백여 원을 받은 것은 너도 잘 알지. 그것이 내 일생을 통하여 처음으로 많이 가져 보는 돈이구나. 그러니 내 머리는 갑자기 활기를 얻어 공상을 다하게 되더구나.

K야 너도 짐작하는지 모르겠다마는! 나는 어려서부터 순조롭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 또 커서까지라도 순경에 처하지 못한 나는 그나마 쥐꼬리만큼 배운 이 지식까지라고 우리 형부의 덕이었니라. 그러니 어려서부터 명일 빔 한 벌 색들여 못 입어 봤으며 먹는 것이란 언제나 조밥이었구나. 그러고 학교에 다니면서도 맘대로 학용품을 어디 써 보았겠니. 학기초마다 책을 못 사서 울고 울다가는 겨우 남의 낡은 책을 얻어 가졌으며 종이와 붓이 없어 나의 조고만 가슴은 그 몇 번이나 달막거리었는지 모른다.

K야 나는 아직도 잘 기억한다. 내가 학교 일년급 때 일이다. 내일처럼 학기시험을 치겠는데도 종이 붓이 없구나. 그래서 생각다 못해서 나는 옆의 동무의 것을 훔치었다가 선생님한테 얼마나 꾸지람을 받았겠니. 그러구 애들한테서는 애! 도적년 도적년 하는 놀림을 얼마나 받았겠니. 더구나 선생님은 그 큰 눈을 부라리면서 놀 시간에도 나가 놀지 못하게 하고 벌을 세우지 않겠니. 나는 두 손을 벌리고 유리창 곁에 우두커니 서 있었구나. 동무들은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맨들어 놓고 손뼉을 치며 좋아하지 않겠니. 나는 벌을 서면서도 눈사람의 그 입과 눈이 우스워서 킥하고 웃다가 또 울다가 하였다.

K야 어려서는 천진하니까 남의 것을 훔칠 생각은 했지만 소위 중학교까지 오게 된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그러한 맘은 먹지 못하였다. 형부한테서 학비로 오는 돈은 겨우 식비와 월사금밖에는 못 물겠더구나. 어떤 때는 월사금도 못 물어서 머리를 들고 선생님을 바루 보지 못한 적이 많았으며 모르는 학과가 있어도 맘놓고 물어 보지를 못했구나. 그러니 나는 자연히 기운이 죽고 바보같이 되더라. 따라서 친한 동무 한 사람 가져 보지 못하였다. 이렇게 외로운 까닭에 하느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니 나는 밤마다 기숙사 강당에 들어가서 목을 놓고 울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 괴롬은 없어지지 않고 날마다 털목도리 자켓을 짠다 시계를 가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우습게 생각되지마는 그때는 왜 그리도 부러운지 눈물이 날 만큼 부럽더구나. 그 푹신푹신한 털실로 목도리를 짜는 동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실을 만져 보다는 앞서는 것이 눈물이더구나. 여학교 시대가 아니구서는 맛보지 못하는 이 털실의 맛! 어떤 때 남편은 당신은 왜 자켓 하나 짤 줄을 모루? 하고 쳐다볼 때마다 나는 문득 여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동무가 가진 털실을 만지며 간이 짜르르하게 느끼던 그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곤 하였다.

구매가격 : 500 원

적멸

도서정보 : 윤기정 | 2020-09-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선생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병원엘 일찍 갔다와야겠는데 어쩌나 그동안 심심하셔서… 내 얼핏 다녀올게 혼자 공상이나 하시고 눠 계세요, 네.”

명숙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이 머리맡에 놓인 아침에 한금밖에 아니 남았던 물약을 마저 먹어 빈병이 된 걸 집어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철이는 명숙이가 하루 건너 여기서 오리나 되는 병원으로 약을 가지러 가는 때면 아닌 게 아니라 주위가 갑자기 쓸쓸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진종일 꼬박이 누워 있어야 찾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직 명숙이 하나만이 자기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 줄 뿐이니 병으로 앓는 것보다도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이 무한히 그리워 그것이 더 한층, 병들어 누워 약해진 자기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프고 저리게 한 적이 많았다.

오늘도 명숙이가 나간 다음 죽은 듯이 고요해진 텅 빈 방안에 홀로 누워 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그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기가 과시 안타깝고 지루하였다. 가만히 드러누운 채 곁눈질로 방안을 둘러보니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이 그나마 눈부시게 하며 발 얕은 네모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채색칠한 사기 화병에는 일전에 명숙이가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꺾어온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섞여서 꽂혀 있는데 약간 시들기도 하였고 더러는 낙화가 져 하얗게 빨아 덮은 책상보가 색실로 수놓은 것 같이 보인다.

모란봉을 바라보고 떼를 지어 올라가는 꽃놀이꾼들의 흥에 겨워 웅얼대고 지껄이는 남녀의 음성이며 또는 발자국 소리가 길에서 이따금씩 일어나 귀를 스치고 지나가면 뒤미처 좀 조용해진 듯 하자마자 겨우내 꽝꽝 얼어붙었던 대동강의 얼음이 봄을 맞아 녹고 풀려서 이제는 바위 언저리와 돌부리에 그루박 지르듯이 부딪치는 크고 작은 파도 소리가 제법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병은 ‰C나든 말든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산으로, 들로 치달아 내리달아 두 활개를 쩍 벌리고 마음껏 힘껏 달리고도 싶고 맨 밑바닥까지 거울 속처럼 환히 들여다 보이는 맑고 맑은 강물에 뛰어들어 팔과 다리에 맥이 풀리고 기운이 지쳐서 허덕거릴 때까지 헤엄치고도 싶다.

구매가격 : 500 원

리창섭 브리가다

도서정보 : 윤기정 | 2020-09-1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낮과 밤이 없는 지하 300척 캄캄한 갱내로 첫 대거리 몇 패가 저마다 이마에 붙인 안전등을 번쩍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채탄 브리가다의 책임자인 리창섭은 내리 굴 바른편 막장에서 작업을 날래 끝마치자마자 잡은 참 왼편 막장을 향하고 급한 걸음걸이로 바삐 걸었다.

시꺼먼 탄가루에 더께가 앉은 갱도 바닥은 군데군데 곤죽이 된 수령이 있어 이리저리 골라 디디는 동안까지도 그는 사뭇 더딘 것만 같아 매우 불안한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창섭이는 자기의 손이 채 못 미쳐 뜻하지도 않은 사고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써 마음이 몹시 조이게 하였다.

이처럼 두 곳에서 그의 손을 기다리므로 컴컴한 갱내에서도 바쁜 걸음을 아니 칠 수 없었다.

갱내는 후덥지근하면서도 음산하다. 통풍 관계인지 약간 코가 매캐하고 목구멍이 알싸하다.

새까만 속에 오직 안전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여기저기서 번뜩인다. 그것은 마치 구름 사이로 별들이 껌벅이는 것만 같다.

바른편 막장으로 들어오는 어구에 두 개의 전짓불이 오도 가도 않고 고정된 채 명멸할 뿐이다.

창섭이가 그리로 차차 가까이 가서 보니 갱내 운반공인 박복례와 이명숙 두 여성이다. 그들은 자기가 맡은 밀차 울검지에다 제각기 손을 걸치고 서서 무슨 이야기인지 재미나게 하느라고 사람이 가까이 가는 줄도 모른다.

창섭이는 둘의 옆을 모른 체 하고 그냥 지나치려다가

“동무들 수고허우. 혼자 미느라고 너무 힘들지 않소?”

부드러운 그의 음성은 둘의 귀를 찔렀다.

그제서야 일제히 고개를 움찔하고 명숙은 바른켠 막장으로, 복례는 창섭이의 앞을 지나, 탄차를 제게 밀며 각각 헤어졌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국부 선풍기와 잉잉거리는 소리가 긴 갱도 안을 요란스레 뒤흔들어 놓는다.

“복례 동무! 몇 차째요?”

창섭이는 그리 많지 않게 쌓인 탄무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 갔다 와야 겨우 여섯 번인걸요, 뭐.”

“오늘도 스무 차 넘긴 힘들겠군그래.”

“흥 큰일났군! 의로 치나 둘러치나 매한가지람. 두 패로 나누면 좀 날가 했더니….”

창섭이는 이렇게 웅얼거리며 막장께를 기웃이 들여다 본다.

곡괭이질 소리가 우드럭우드럭 난다. 암만해도 곡괭이 끝이 암팡지게 들이박히는 소리가 아니다.

박봉규의 일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일제 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던 모양 그대로다.

창섭이는 불현듯 자기의 지나온 과거가 머리에 떠올랐다.

구매가격 : 500 원

붕우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주문하여 놓은 차라고 반드시 먹어야 되랄 법은 없다.

청한 것이라 먹고 나왔으면 그만이련만 조군은 금방 문을 삐걱 열고 들어서는 것만 같아, 기다리기까지의 그동안이 못 견디게 맘에 조민스럽다.

어떻게도 만나고자 애타던 조군이었던가. 주일 나마를 두고 와 줄까 기다리다 못해 다방을 찾아왔던 것이 와 놓고 보니 되레 만날까 두렵다. 가져온 차를 계집이 식탁 위에 따라 놓기도 전에 백통화 두 푼을 던지다시피 쟁반 위에 떨어뜨리며 나는 다방을 뛰어나왔다.

조군이 나를 찾기까지 기다려 봐야지 내가 먼저 조군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야 자존심이 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방을 나와 놓고 보니 조군의 자존심 또한 나를 먼저 찾아 줄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경우에 나를 먼저 찾아 줄 조군이었더라면 벌써 나를 찾았을 그이었을 게고, 또, 우리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벙으도록 애초에 싸움도 없었을 게 아닌가.

생각은 또 이렇게 뒤재어지니 내가 그를 먼저 찾지 않는다면 서로의 자존심은 언제까지든지 벗걸려 조군과의 사이는 영원히 멀어지고 말 것 같다.

사람의 사이란 이렇게도 벙으는 것인가, 우스운 일에 말을 다투고 친한 사이를 베이게 되었다.

- 문학은 로맨티시즘이어야 된다거니 리얼리즘이어야 된다거니 다투던 끝에 조군의 가장 아는 체하는 태도에 불쾌해서 “조군은 아직도 예술을 몰라.”하고, 좀 능멸하는 듯한 태도로 내받은 한마디가 조군의 비위를 어지간히 상한 모양이다.

이상한 안색이 말없이 변하는 것을,

“군은 아직 예술의 그 참맛을 모르지.”

농담에 돌리려고 맘에 없는 농을 붙이니,

“자식이 잔뜩 건방져 가지고…….”

조군 역시 농담 아닌 농담으로 받는다.

“건방진 게 아니라 군은 모른달 밖에.”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데 건방지다는 건 다 머야.”

“건방지다는 건 모르고도 아는 체하는 것.”

“군과 같은 존재?”

“뉘가 할 말인데.”

구매가격 : 500 원

준광인전

도서정보 : 계용묵 | 2020-09-15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선생님!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노이다. 제가 미쳤노이다. 제가 왜, 미치겠노이까. 그러나 선생님! 세상은 저더러 미쳤다 하노이다. 그러니, 저는 과연 미쳤는가. 미치지 않은 것 같은 이러한 제 마음은 정말 미친 것인가.

제 마음이건만 저도 분간을 못 하고 있을 밖에 없노이다.

선생님! 저는 이제, 저를 길러 주신 선생님에게 이렇게 미치게 되기까지의 그 경과를 아니 사뢸 수가 없노이다. 제가 미쳤다면 선생님은 제 자신보다도 더 아파하실 것을 모름이 아니오나, 한편 생각하올 때면 저의 신변에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선생님에게 대한 저로서의 도리에 도리어 예의가 아닌가 하여 차마 들기 부끄러운 붓을 벼르다 벼르다 이제 들었노이다.

선생님! 바로 그게 사 년 전 그 해의 여름이었노이다. 그날 오정 가까이 김군과 같이 읍내의 옥거리를 지나다가 하도 목이 클클하기에 맥주집에 찾아들어갔더니 게서 우연히도 한군과 손군을 만난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그리하여 우리 네 사람은 한 자리에 합석이 되어 오래간만에 서로들 술잔을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 제가 말한 이야기 가운데는 저도 하기 싫은 이야기였노이다만은 몹시도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노이다. 바로 영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가 그것이었노이다.

“머야! 영주가 죽어?”

“아 - 사람이 그렇게도 죽나!”

한군과 나는 서로들 이렇게 놀라며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금 느끼는 듯이 한숨을 쉬고 고인의 모습을 그리어 보는 듯이 눈들을 내려깔고 무엇인지의 생각에 잠깐의 침묵이 계속되었노이다. 그러는 동안 또 조, 박, 허, 세 사람이 하던 부채질을 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선생님! 마치 이 날은 그 술집이 우리들의 회합 장소나처럼 되었노이다.

구매가격 : 500 원

도서정보 : 김정빈 | 2020-09-1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대한민국 스토리DNA 11권. 김정빈 장편소설. 1984년 출간되어 이듬 해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으로 대중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다. 이 책이 몰고 온 파장은 문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까지 나타났다. 100만 독자를 열광시킨 이 소설은 단학수련.단전호흡.뇌호흡.국선도 열풍의 원류가 되었으며, 이후 모방 서적이 줄지어 출간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류 사학에 억눌려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재야 사학의 존재를 수면 위로 급부상시키기도 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이름이 오른 실존 인물 우학도인 권필진(권태훈) 옹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장풍, 축지, 비월, 둔갑, 그리고 조선 최고의 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도인.이인.초인들의 통쾌한 이야기를 생동감 있는 필치로 그려냈다.

우학도인의 해석을 거쳐 조명되는 한국의 위대한 인물들, 과학과 동양 사상의 결합, 세계의 탁월한 영적 수행자들…. 전설로만 존재하던 선도의 세계를 생생히 증언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억눌린 민족 자존심을 일깨우고, 한민족의 광활한 미래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매가격 : 9,000 원

내 이름을 불러줘

도서정보 : 황여정 | 2020-09-14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살고자 하는 마음을 배반하는 세계
투기와 폭력의 현장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가 황여정이 내어주는 온당한 대피소

구매가격 : 9,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