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도서정보 : 이효석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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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립(三十而立)’─의 옛사람의 말을 생각할수록에 지금의 신세가 억울한데 더한층 안타까운 것은 ‘사십이(四十而)─’ 무엇이던가를 잊어버렸습니다. 삼십에 서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사십에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의 옛사람의 가르침을 어느결엔지 까먹어 버린 것이 삼십을 넘어 사십을 바라보는 요사의 세운의 마음을 한층 죄었다.
행차 칼이나 목에 맨 듯 괴로운 마음으로 사십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포도를 걸어갈 때 정해 놓고 가게 유리창에 어리우는 자기의 꼴이 눈에 뜨인다.
그 자기의 꼴에 한눈을 파게 된 것이 또 한 가지 요사이의 기괴한 버릇이다. 사람의 모양을 호들갑스럽게 망칙하게 비춰내는 것이 거리의 유리창의 심술이기는 하나 그 비뚤어진 속으로도 후락한 육체의 꼴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리의 목욕탕에 들어가 저울 위에 오를 때 아무리 발을 굴러 보아도 바늘이 십칠 관을 더 가리키지는 않았다. 이십 관을 자랑하던 위장부의 늠름하던 체중이 반년 동안의 비참한 몰락인 것이다. 얼굴에 온통 허구렁이 진 것은 오히려 나이의 턱이라고 하더라도 비대하던 몸집이 거의 반쪽으로 축난 것은 유리 속으로도 보기 딱했다. 그 헌거롭던 자태가 이제는 하릴없는 등신의 행진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술이 과했고 몸가짐이 허탕했던 까닭으로밖에는 돌릴 수 없는 것이 그 이상의 이유를 세운은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했대야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같이 또박또박 이치를 따지지 못하나 무거운 울화만은 거리의 누구에게도 밑지지 않게 가슴속에 간직한 그였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 동무들과 휩쓸려 술과 해 동무를 하다가는 밤이 패야 돌아간다. 소리패와 좌석을 같이하고 진종일을 지낸다고 해도 별반 신통한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농을 걸고 북새를 놓고 하는 동안에는 도리어 사람이 허름해만 지고 처신이 떨어져 갈 뿐이었으나 그러나 집안에 있을 때의 지옥의 괴롬을 생각하면 그래도 실속은 없으나마 그 긴치 않은 동무들과 자리를 같이하게 된다.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길을 잡아보겠다고 몇 번이나 두문불출 집안에 들어박혀 보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애를 썼을 뿐이지 그 갑갑한 공기 속에서는 단 반날을 진정하고 앉아서 신문 한 장 편히 읽을 수는 없었다. 생활의 기쁨이라고는 없는 어둡고 무거운 유풍 속에서 아내는 허구한 날 황고집을 피우면서 흥이야 항이야 쓸데없는 일에까지 입살이 세다. 생각하면 묵은 대의 희생을 당한 결혼부터가 불행한 것이었다. 남편된 도리를 다하지도 못했거니와 아내로서의 부드러운 정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남편의 밖에서의 처신이 허랑하다고 활이야 살이야 문책이 심하면 끝에 자진해 버리겠다고 약사발 소동을 일으켰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뺏어서 던진 약사발이 공교롭게도 뜰 앞 향나무를 맞히면서 뿌리 위에 쏟아져서 독한 잿물 기운에 잎이 타고 가지가 시들기 시작했다. 선친이 돌아가기 전에 손수 심어 놓은 기념수였다. 경망스럽게도 치명의 상처를 입은 향나무를 바라만 보아도 심화가 터 올라와서 그 후부터는 더욱 집이 싫어졌다. 집이 아니라 굴이요, 잠깐 잠자리를 빌러 들어갈 뿐인 게 껍질인 셈이었다. 잠만 깨면 작정 없이 거리로 나와 계획도 지향도 없어 발 가는 대로 뜻을 맡겼다.
자연 삼십의 교훈이 마음속에 절실히 떠오르게 되었고 유리창에 어리우는 메마른 꼴이 눈에 띠이게도 된 것이다. 그러나 발 맥이 노곤한 판에 단골찻집에 들어가 이것도 그맘때만 되면 번김없이 와 앉아 있는 진을 만나 마주앉게 되면 세운은 무시근하게도 교훈도 자기 꼴도 흐리마리 잊어버리고 만다. 긴치 않다고는 해도 그 바람에 아직도 동무만은 버리지 않고 좋든 궂든 사귀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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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코왼의 후예
도서정보 : 이효석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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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답답한 것은 오히려 참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몰려드는 파리떼야말로 역물이다.
편집 시간을 앞두고 수선스럽고 어지럽고 초조한 편집실의 오후를 파리떼는 제 세상인 듯 들끓고 있다. 얼굴과 손을 간지르다가는 목탄지 위에다 불결한 배설을 하고 날아가곤 한다.
“추잡한 방안이 천재의 있을 환경이 못 되누나.”
삽화가 마란은 시간이 촉박하였음에도 그날 소설에 들어갈 삽화를 아직도 그리지 못한 채 파리와의 싸움에 정신이 없다. 천재로 자처하는 그에게 휘답답한 편집실은 버릇없기 짝없는 곳이다.
“천재를 괴롭히는 이놈의 추물─이놈의 미물─이놈의 속물……”
파리채 밑에서 한 마리 두 마리 꺼꾸러져 책상 위에 볼 동안에 적은 시체의 무더기가 늘어간다. 마란이 중얼거리는 어투에는 비단 파리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편집실 안에 웅성거리는 천재 아닌 뭇 미물들을 조롱하는 마음도 있다. 국장을 비롯해 과장 부장 주임 기자 사무원 급사 등 흡사 파리떼만큼이나 흔한 속물들도 마란의 비위에는 파리떼와 고를 배 없는 평범하고 용렬하고 하잘것없는 존재로밖에는 비취이지 않는다. ─조물주는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도 흔한 미물들을 파리떼와 인간들을 만들었누. 이 흔한 미물들이 죄다 조물주의 똑같은 총애를 바랄 권리가 있단 말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어깨를 으쓱 솟구고 입술을 쫑긋 휘인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무엇인가, 똑같은 한 사람의 미물이 아닌가, 미물인 까닭에 아직도 그날의 삽화도 못 그리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전혀 망상임을 뉘우치면서 자기와 주위와는 여전히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음을 그의 천재적인 직관과 자부심이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삽화를 못 그린 것은 천재적인 고민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무더운 기압 속에서 볶이우면서 파리떼와 싸우며 초조와 번민 속에 사로잡혀 있음은 천재로 비약하려는 직전의 일순간이 아니던가. 무엇을 어떻게 그렸으면 좋을는지를 몰라 졸지에 막힌 것이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목탄지 위에 붓끝이 머무른 채 손가락이 탄식하고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에서 두 눈이 형형이 빛났다. 파리 사냥에 정신을 옮기고 또 반시간을 지내는 동안에 편집시간은 자꾸 임박해 오건만 한 획도 운필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 와서 여러 번째의 버릇이었다. 꽉 막힌 답답한 창안에서 답보하기 시작한 예술이 쉽사리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안타까운 괴롬을 표현할 도리를 몰라 메마른 영감과 동기 속에서 뼈를 갈면서 꼽박 꼽박 밤낮을 여위어 온다.
화풀이나 하듯 파리채를 휘두르는 동안에 애꿎은 시체만 책상 위에 늘어가고 목탄지는 어느 때까지나 백지의 순결을 지키고 있을 즈음 힘차게 쳐든 파리채에 요번에는 커다란 미물이 걸렸다. 등뒤로 돌아오던 급사가 파리채로 보기 좋게 면상을 얻어맞고 그 별안간의 봉변에 재수없다는 듯이 눈자위가 돌면서 퉁명스럽게 앞에 나타났다.
“마선생님 망령이신가요. 저까지 잡으실려구.”
“넌 파리보다 낫단 말이지.”
빈정대는 한마디가 어린 마음을 노엽히고야 말았다. 급사는 정색하면서 자기 맡은 의무로 어른을 윽박으러 들었다.
“딴소리 말구 얼른 그림이나 주세요. 몇 시나 됐나 시계를 좀 쳐다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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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산문시
도서정보 : 이효석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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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보는 서울에는-표면에 드러난 인상에 관한 한도 안에서는-그다지 신기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처음으로 여행하는 사람같이 새로 선 건축물에 놀랄 필요도 없고 백화점에 들어가 정신을 빼앗는 것도 없고 상품의 무지쯤은 지릅떠볼 것 없이 냉정하게 무시할 수도 있다. 도희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무례하고 거만한 여행자라고 책하여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눈이 가는 것은 솔직하게 말하면 여인풍경이니 이렇게 실토를 하면 그만한 여행자도 결국 투구를 벗고 흰 기를 든 셈이 되나. 사실 잠깐만에 보는 장 안에 무엇보다도 변하고 있는 것은 여인의 자태인 것이다.
변하여 가는 용모. 철에 맞는 치장이 늘 새로운 풍경을 지어 불과 한철만이면서도 자연 괄목상대하게 된다. 결국 도회 문화의 앞잡이를 서는 것은 여인풍경이요. 색정문화의 발달이 곧 건전한 도회를 걸어간다-고 말함은 일종의 역설일까.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여인의 표정을 살피고 나부끼는 머플러에 주의를 보내는 마음은 건전치 못한 것일까. 여행을 하는 마음은 그 무엇을 찾는 마음이니 그 무엇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절대의 탐구」를 쓴 발자크 자신이 찾은 절대는 우주의 마지막 원수도 아니오 그렇다고 ‘인간 희극’의 진리도 아니오 실로 몇 사람의 여인이 아이었던가. 그는 예술의 지팡이를 짚고 여인을 찾은 한 사람의 평범한 나그네였다. 세상에 많은 사람도 결국 그런 여행자가 아닐까.
도서관에 들어가 손때 묻은 인간 희극의 진리를 찾기보다 하숙의 방에 들어박혀 추운 변을 보는 것보다도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니는 것이 한결 여정을 복돋는다. 세상에서 제일 떨어지는 음악이라도 쓰린 고독보다는 낫고 거리에서 제일 아랫길 가는 술이라도 추위를 덜어줄 수는 있는 까닭이다.
하숙의 이층은 춥고 을씨년스럽다. 방바닥에는 숯불이 있고 이 방 속에는 식은 물통이 있을 뿐이오 호텔이 바라보이는 외겹 유리창으로는 먼지와 바람이 새어들어 가방과 책상만이 있는 방안을 한층 더 스산하게 휘덮어 놓는다. 얇은 벽 하나를 걱한 이웃장에서는 하급 회사원인 홀아비가 어미 없는 사남매를 데리고 쓰린 아침저녁을 보내는 눈치다. 숙성한 맏딸에게서 유행가를 배우머 한 구절 한 구절 서투르게 받는 중년 사나이의 재치 없는 목소리가 밤이면 처량하디 측은하게 흘러온다. 아래층에서는 몇 호실에선지 회사에 다니는 여사무원이 해산한지 삼칠일도 못되었다. 유성기 회사에 다니는 아이 아비의 꼴은 볼 수 없이 밤중이면 어 린 것만이 목에 불이 달이게 우는 것이다. 그 안타까운 아우성이 이웃방 홀아비의 유행가와 우연히 이부합창이 될 때가 있다. 주인 노파는 식당에서 이러쿵더러쿵 갓난애 어미의 흉을 조다가도 그가 돌들어오면 슬쩍 다른 사람의 흉을 들어내군 한다. 이 모든 옆방의 사람들은 맞은편 큰 호텔의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각자의 초라한 생활을 좁은 방 속에 꾸깃꾸깃 움츠려버리는 것이다.
잘났든 못났든 제 생활이다. 하숙의 층 위와 층 아래는 인생의 수술대와 같이 앙상한 뼈대를 감출 바 없다. 수술에 익숙한 이층 끝 방 치과전문이 다니는 친구는 수술대의 현실을 피하여 때만 먹으면 거리로 나가버린다. 젊은 마음은 일반인 모양이다. 방의 생활이 주접들 때 거리는 확실히 일종의 유혹인 것 같다.
수많은 찻집-그것은 벌써 한가한 젊은 사람들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거의 운명적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천차만별의 술집-어느 집에서든지 바코스는 사람을 푸대접하는 법이 없다. 스치는 여인의 눈동자에 은근한 위안을 발견함은 시인만의 특권은 아닐 법하다. 옆 박스에서 흘러오는 회화에 귀기울임도 흥미 있는 일이니 여자들의 말재주는 나날이 늘어가는 듯하다. 맵시와 함께 재주도 더하여 가는 모양이다. 잘된 회화의 단편을 바람결에 얼핏 듣기란 서투른 소설을 읽기보다도 지루한 각본을 듣기보다도 정신이 번쩍 뜨이는 유쾌한 일이다. 간결하고 윤채 있고 은근하고 넘겨짚어 가는 회화의 구절구절을 줍기한 식탁 위에 풍성한 과실을 찾을 때와도 같은 기쁨을 준다.
구매가격 : 500 원
지와 사랑
도서정보 : 헤르만 헤세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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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사랑에서 볼 수 없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우정"
1930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삶의 의미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존중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나르치스”가 인간의 금욕을 절제하며 인간의 완성으로 다가간다면 반대로 “골드문트”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 즉 자신의 욕구를 순수하게 인정하면서 완성으로 다가간다. 두 사람의 우정이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인간의 내면 예술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책이다.
구매가격 : 12,600 원
사랑하는 까닭에
도서정보 : 이효석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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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잘도 끊어지는 기타의 높은 E선을 새로 갈고 멜스의
「빠아카로올」을 익혀 갈 때 한 소절 한 소절에 열정이 담겨지고 E선은 간장을 녹일듯한 애끊는 멜로디를 지어 갑니다. 나는 그 멜로디 속에 아름다운 뱃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고요한 정경을 그리고 그대의 환영을 그려 보곤 하오. 그러나 이상스런 것은 가장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할 그대의 얼굴이 깜박 잊혀져 아무리 애써도 생각나지 않은 때가 있는 것이요. 애쓰면 애쓸수록, 마치 익히지 못한 곡조와도 같이 얼굴의 모습은 조각조각 부서져 마음속에 이지러져 버려 ─ 문득 눈망울이 똑똑히 솟아오르나 코 맵시는 물에 풀린 그림같이 흐려지고 턱의 윤곽이 분명히 생각날 때에는 입의 표정이 종시 떠오르지 않는구료. 코, 입, 눈, 이마, 턱, 귓불 ─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은 한 군데 모여 똑똑히 조화되는 법 없이 장장이 날아 떨어진 꽃판과도 같이 제 각각 흩어져 심술궂게도 나의 마음을 조롱합니다. 흩어진 조각을 모아 기어코 아름다운 꿈의 탑을 쌓아 보려고 안타깝게 애쓰나 이렇게 시작된 날은 이지러지기 시작하는 「빠아카로올」의 곡조와도 같이 끝끝내 헛일예요. 어여쁜 님이여!
심술궂은 얼굴이여! 나는 짜증을 내며 악기를 던지고 창 기슭을 기어드는 우거진 겨우살이를 바라보거나 뜰에 나가 화초 사이를 거닐거나 하면서 톡톡히 복수할 도리를 생각하지요. 요번에 만날 때에는 한시라도 그대를 내 곁에서 떠나게 하나 보지. 하루면 스물네 시간, 회화할 때나 책을 읽을 때나 풀밭에 앉아 생각에 잠길 때나 내 눈은 다만 그대의 얼굴을 위하여 생긴 것인 듯이 그대의 얼굴에서 잠시라도 시선을 옮기나 보지. 한 점 한 줄의 윤곽을 끌로 마음 벽에 새겨놓거든. 그것이 유일의 복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말요.
화단의 꽃이 한창 아름다울 제는 여름도 아마 거의 끝나나 보오. 올에는 그리운 바다에도 산에도 못 가고 무더운 거리에서 결국 한 여름을 다 지나게 되었구려. 화단에는 조개껍질이 없으니 바다소리를 들을 바 없고 뜰 가운데 사시나무 없으니 산속의 숨결은 느낄 수 없으나 다만 그대를 생각함으로써 나는 시절시절을 결코 무료하게는 지내지 않는 것은 그대를 그리워함으로써의 모든 안타까운 심정이지 시절의 괴롬쯤이 나에게 무엇이겠소.
그러나 가을. 가까워 오는 가을! 아름답게 빛나면서도 안타깝게 뼈를 찌르는 가을 새어드는 가을과 . 함께 그대를 그리워하는 회포가 얼마나 나의 간장을 찌를까를 나는 겁내는 것이요. 물드는 나뭇잎도 요란한 벌레소리도 그대의 자태가 내 곁에 없고야 무슨 값있는 것이겠소. 나는 그대를 생각지 않고 자연을 그리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소. 벌레소리 그친 찬 새벽 침대 위에서 눈을 뜬 채 나는 필연코 울 것이요. 자칫하다가는 어린애같이 엉엉 울 것이요. 이 큰 어린아이를 달래줄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 법하오. 사랑은 만족을 모르는 바다 속과도 같다 할까. 가령 나는 진달래꽃을 잘강잘강 씹듯이 그대를 먹어 버린다고 하여도 오히려 차지 못할 것이며 사랑은 안타깝고 아름답고 슬픈 것 ─ 아름다우니까 슬픈 것 ─ 슬프리만치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우는 것은 그 아름다운 정을 못 잊어서지요. 사랑 앞에 목숨이란 다 무엇 하자는 것일까. 희망과 야심과 계획의 감격이 일찍이 사랑의 감동을 넘은 때가 있었던가. 나는 사랑 때문이라면 이 몸이 타서 금시에 재가 되어 버린다 하여도 겁나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을 원하고자 하오. 사랑하는 님이여! 나를 태우소서. 깨트리소서. 와싹 부숴 버리소서. 그 순간 나는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것일까. 흩어지는 불꽃 같이도 사라지는 곡조 같이도 아름다울 것은 미의 특권 그대의 특권같이 세상에서 장한 것이 있겠소. 그 특권의 종 됨이 내게는 도리어 영광인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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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흑모
도서정보 : 백신애 | 2022-10-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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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일비곡공원 (東京日比谷公園) 남(南)쪽 뒷문을 나와서 큰길을 하나 넘으면 남좌구간정(南佐久間町)으로 뚫린 길이 있다. 이 길을 조금 가면 오른편 뒷길에 문화(文化) 아파 ─ 트먼트의 큼직하고 샛득한 삼층 건물이 보인다. 이 아파 ─ 트는 아래층이 통 털어 자동차 수선소와 택시 ─ 차고(車庫)로 되어 있는 까닭에 그 앞길을 지나는 사람이면
“오룩 우루룩 땅땅!”
하는 요란스런 자동차 수선하는 소리에 으레이 한번씩은 바라보고 지난다.
학기말시험(學期末試驗)도 무사히 끝난 삼월제삼일(三月第三日) 수(日[일])에 성수(性秀) 와 연주(蓮珠) 연순(蓮順)의 세 사람은 일비곡(日比谷)으로 놀러 왔다가 우연히 이 길을 지나가게 되었었다.
“우룩! 우루룩! 딱! 땅!”
요란스런 소리에 무심코 바라본 것이었다.
“아이고 아파 ─ 트”.
연순(蓮順)이가 먼저 멈츳 하였다.
“글쎄. 마루노우찌가 가까우니까 싸라리 맨들을 위해서 지어 놓았구먼.”
성수(性秀)도 잠깐 머물러 섰다.
“여기 같으면 아주 조용하겠네. 들어가 봅시다. 안성맞춤격으로 빈방이 있을지 알 수 있어요?”
연순(蓮順)이는 두 사람의 동의(同意)도 얻지 않고 제 혼자 앞서서 아파─ 트로 들어갔다. 두 사람들도 마지못하여 연순(蓮順)의 뒤를 따랐다.
아파 ─ 트 감독인 듯한 노파는 세 사람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더니 무척 애교 있는 말씨로
“어디 근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아니 우리들은 학생입니다. 매우 조용해 보이기로 공부하기에 좋을 듯 해서요.”
“오 ─ 그렇습니까. 참 조용하지요.”
학생이란 말에 노파는 아주 반겨했다.
“이층은 대소 합하여 삼십 개요 삼층은 스물다섯이어요. 그리고 옥상(屋上)은 바람도 쏘이고 할 정원(庭園)이외다.”
설명을 하며 세 사람을 인도하여 고루고루 구경을 시킨 후
“이 방이 지금 비었는데요.”
하고 삼층 남편으로 있는 오(五)호실과 팔호실 두 방을 열어 보였다.
“아이그 전망(展望)도 좋구 공기 통내도 좋구 햇볕도 잘 들구 아주 죄다 좋구먼요. 당장 옮겨 옵시다.”
연순(蓮順)이는 무척 이 아파 ─ 트가 맘에 들어했다.
“글쎄.”
성수(性秀)와 연주(蓮珠)도 맘에는 들어 보이나 연순(蓮順)이처럼 좋아하지는 않았다.
“모두 싫다면 나 혼자 올테야.”
연순(蓮順)이는 벌써 옮겨 올 작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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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도서정보 : 김연수 | 2022-10-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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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종말 이후의 사랑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작가 김연수가 짧지 않은 침묵을 깨고 신작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한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2013)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여섯번째 소설집이다. 그전까지 2~4년 간격으로 꾸준히 소설집을 펴내며 ‘다작 작가’로 알려져온 그에게 지난 9년은 “바뀌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진”(특별 소책자 『어텐션 북』 수록 인터뷰에서) 시간이었다. 안팎으로 변화를 추동하는 일들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연수는 소설 외의 다른 글쓰기에 몰두하며 그 시간을 신중하게 지나왔다. 변화에 대한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요구는 작가를 어떤 자리로 옮겨오게 했을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작가가 최근 2~3년간 집중적으로 단편 작업에 매진한 끝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시간’을 인식하는 김연수의 변화된 시각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김연수는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흐르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시간을 다르게 정의함으로써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즉 삶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설득해낸다. 특별한 점은 그 가능성이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으로 떠들썩했던 1999년 여름, 동반자살을 결심한 스물한 살의 두 대학생은 뜻밖의 계기로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 『재와 먼지』를 접한 뒤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고(「이토록 평범한 미래」), 아이를 잃고 아득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한 인물은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바다 앞에서 이백 년 전에 그 바다를 지난 역사 속 인물인 ‘정난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난주의 바다 앞에서」). 그뿐 아니라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마치 이야기가 현재의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실험하는 신중한 관찰자처럼. 그렇게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넘나들며 아름답게 스며드는 과정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왜 어떤 삶은 이야기를 접한 뒤 새롭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면 왜 삶에 충실해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지닌 힘을 끝까지 의심에 부친 끝에 도출해낸,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은 이야기로 바뀔 것이고, 그때가 되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게 되리라고 믿는 이야기 중독자”(「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김연수의 각별한 결과물이다.
구매가격 : 9,800 원
인간실격
도서정보 : 다자이 오사무 | 2022-10-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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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와 문학계에 거센 ‘다자이’ 열풍을 일으켰던 문제작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이자 유서와 같은 작품이다. 고전소설 번역의 직역을 주장하며 섬세한 번역으로 사랑받고 있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역자는 쉼표와 행갈이 등을 원문에 충실하게 옮겼을 뿐만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 관련 방송 프로그램, 책, 영화 등을 참고하면서 깊이 있는 번역을 선보이고 있다.
20세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삶은 한 편의 영화보다 더 흥미롭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대신 이모와 유모의 손에 길러진 어린 시절, 명문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 술과 마약과 연애로 보낸 청춘, 소설가로 성공해 ‘천재 작가’이자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사람……. 그의 죽음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20세 때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그는 일생 동안 네 번의 자살 미수를 거쳐 마지막 다섯 번째 자살 시도의 성공으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6월 13일, 불륜 관계였던 여자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며칠 뒤 서로의 몸이 묶인 두 사람이 발견되었다. 6월 19일, 이날은 다자이 오사무의 마흔 번째 생일이었다.
다자이는 생전 기성 문학 전반에 비판적이었던 ‘무뢰파(無?派)’의 선두주자로 활동하였다. 반권위ㆍ반도덕을 내세우며 세상의 일반적 생각이나 생활 방식에 반대하는 무뢰파의 모습은 전후 허무주의가 팽배하던 분위기 속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 중심에 있던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가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우리의 존재 근거를, 살아갈 이유를, 다자이의 문학에 걸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다자이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우리들이 알던 요조는, 몹시 순수하고, 눈치가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니, 마셔도,……신과 같은 아이였어요.”
『인간실격』은 세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화자인 ‘나’가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얼굴의 남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진 속 남자는 주인공 ‘요조’이다. 요조가 쓴 세 편의 수기에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겉으로는 웃고 또 다른 사람을 웃기지만, 속으로는 어둡고 참혹한 마음인 요조. 지옥은 믿어도 천국의 존재는 아무리 해도 믿어지지 않는 그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다. 그에겐 서로 속이면서 맑고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난해하기만 하다. 술, 담배, 여자, 마약, 자살 시도……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 왔습니다’라며 스스로가 인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요조의 삶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와 참으로 닮아 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이기도 한 개그맨 마타요시 나오키는 『인간실격』을 백 번은 읽었다며 이 작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고백한다.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고민 이야기를 하면 세상에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훨씬 많다며 고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그런데 나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다고 해서 나의 고민이나 아픔을 없었던 일로 해야만 하는가? 『인간실격』은 이것에 대해 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요조는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부족한 것 없고 고민할 것도 없어 보이는 그를 사람들은 행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조의 속내는 다르다. 그는 언제나 지옥 같았고, 오히려 자신을 행운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평안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있는 재앙 덩어리 열 개 중 하나라도 이웃 사람이 짊어진다면, 그 하나로도 충분히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맨얼굴을 드러내면서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실패하지 않는 청춘도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익살’이라는 가면 속에 스스로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살아가는 요조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얻는다. 과연 마타요시의 평대로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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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집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72)
도서정보 : 이무영 | 2022-10-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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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2월 《문장》에 발표된 이무영의 단표소설
S 형, 형의 글을 받고 역시 사람이란 물과 같은가보다 했소이다. 그릇에 담아서 형태가 변하는 점에서! 신문이나 잡지 편집자에게는 양심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느니라고 언젠가 형의 논문에 오자가 여남은 개나 났던 것을 예로 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분개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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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네 (꼭 읽어야 할 한국 대표 소설 171)
도서정보 : 김동인 | 2022-10-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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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4월 《춘추》에 발표된 김동인의 단표소설
통칭 곰네였다.어버이가 지어준 것으로는 길녀라 하는 이름이 있었다. 박가라 하는 성도 있었다. 정당히 부르자면 박길녀였다. 그러나 길녀라는 이름을 지어준 부모부터가 벌써 정당한 이름을 불러주지를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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