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본의 로마제국흥망사 제1권. 1.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by Edward Gi

도서정보 : Edward Gibbon | 2019-10-02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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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교양
깁본의 로마제국흥망사 제1권. 1.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by Edward Gibbon
영국의 깁본이 쓴책으로 6권중에서 제1권임. 안토니우스로부터 크리스찬의 진행까지 기술.
책의 내용을 쉽게할려고 노트 주석을 이책에는 삭제함.

구매가격 : 25,000 원

깁본의 로마제국흥망사 제2권. 2.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by Edward Gi

도서정보 : Edward Gibbon | 2019-10-02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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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교양

깁본의 로마제국흥망사 제2권. 2.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by Edward Gibbon
깁본이 쓴 로마제국의흥망사의 제2권으로 네로로부터콘스탄티 까지의 크리스찬에서, 훈족의 침입까지를 기술함. 영어 내용을 쉽개하려고 주석 노트를 삭제함.

구매가격 : 25,000 원

깁본.GIBBON, by James Cotter Morison

도서정보 : James Cotter Morison | 2019-10-0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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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본.GIBBON, by James Cotter Morison
영국의 역사학책인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쓴 깁본에 대해서 쓴책.

구매가격 : 10,000 원

인생과 종교에서 사고론.Thoughts on Life and Religion, by Friedrich Max Muller

도서정보 : Friedrich Max Muller | 2019-09-3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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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교양
인생과 종교에서 사고론.Thoughts on Life and Religion, by Friedrich Max Muller
막스뮐러교수가 쓴 책으로, 인생 즉 인간의 생활에서 미 지식 성서 등등의 목차의 제목에서 인간의 생활과 각각의 종교들 즉 기독교 불교 그리고 인도의 고대종교중에서 브라만교에서 지혜를 정리한 글들입니다.

구매가격 : 15,000 원

시카고 플랜 : 위대한 고전

도서정보 : 디오니소스 | 2019-09-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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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지어 올린 시카고 대학의 신화,
현재진행형의 텍스트인 위대한 고전을 한 권으로 보다!


교육철학에서 ‘항존주의’ 개념이 등장할 때 아울러 다루어지는 사건이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이다. 냉전의 시대에 우주 산업을 소련이 먼저 선점한 충격으로 인해, 미국의 교육 풍토에는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진보주의라 불리던, 여전히 미국의 인문을 대변하기도 하는 실용주의 풍토에 순수 학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대표적인 사례가 시카고 대학에서 실시한 ‘The Great Books Program’이다. 법학도 출신인 로버트 허친스는 시카고 대학의 총장으로 부임한 이후, 교육이론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교양교육을 받은 전문가 양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시카고 대학 학생들 모두에게 고전을 읽히기 시작한다. 허친스는 교양교육이 선택의 영역이 아닌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 교육계의 풍토 상, 대학 내에서도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끝까지 그 신념을 관철시킨 결과, 당시만 해도 삼류의 브랜드였던 시카고 대학을?일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미담을 지니게 된 인문학 프로젝트.


“이 교육은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흥미나 적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교양교육을 통하여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간이 된 이후에 생계의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그들의 특수한 흥미와 적성을 계발할 수 있다.”
-시카고 대학교 총장, 로버트 허친스


물론 허친스의 취지가 일류로 도약하기 위한 효율성으로서의 고전은 아니었다. 그 결과가 일류로 올라선 시카고 대학이었을 뿐이다. 구글이나 애플이나 페이스북,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이념과도 닿는 맥락 아닌가? 그들도 최초의 취지가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다고 회고하지 않던가. 그 일을 좋아하다 보니 많은 돈을 벌게 된 결과일 뿐이지. 철학자 바슐라르의 어록을 빌리자면, 유용성 너머에 내밀한 꿈이 있다. 그 꿈이 목적지향의 효율론 바깥에 잠재하는 숱한 유용성이기도 하고….



고전을 읽으면 사고 작용이 활발해지고 고무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 세기 이상을 살아남은 책을 쓴 위대한 정신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고전은 시간의 마모를 견디고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현재진행형의 텍스트이다. 때문에 정신분석 같은 영역에서도 지나간 시대의 스토리텔링들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기나 여기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 안에서의 문화인류학적 방법론으로의 고찰이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은 늘 있으며, 햄릿과 돈키호테 같은 성향들도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읽어봐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식자들은 그 통분적 요소들을 인문학적 보편성이라고 부른다. 고전의 재해석들이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면을 받지 않는 이유 역시, 인문학적 보편성으로 증명된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가 정의처럼,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이 터, 오늘날의 독자들 중에 시간을 들여 괴테의 문학을 읽고 칸트의 철학을 읽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요즘 대중들의 성향을 고려해 본다면, 고전의 문장들은 결코 무난한 가독성만은 아닌 당대의 화법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선뜻 집어 들게 되는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되레 그것을 읽는 이들의 지평이 차별화의 전략일 수 있지 않을까? 남다른 스토리텔링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의 시대이지만, 또한 진득하니 어느 문인과 철학자의 글을 탐독하는 작가지망생들도 드문 시절, 기꺼이 그런 수고를 감내할 수 있는 이들에게서나 가능한 경쟁력이 고전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중에서>

소포클레스의 작품들은 서양사에서 고대 그리스가 지니는 철학사적 의의와 함께 살필 주제이다. 당대 그리스인들은 합리의 담론에 취해 있었다. 삶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제아무리 합리적이라고 한들,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흘러가는 서사도 아니지 않던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이어 《안티고네》에서도 인간의 지나친 합리성을 비판한다.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성 집단의 오만, 그 합리의 신념으로 추락하는 인간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또한 신탁적 성격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먼 훗날 철학사에서 이성의 지위를 끌어내린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오이디푸스’이기도 하다. -p.35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등장인물들의 결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시인 새뮤얼 존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지닌 결함이 우리 삶을 이루는 주요 함수인지도 모르겠다. 그 결함이 잠재한 비극의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빈도수가 날로 증가하는 오늘날에,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은 보다 적나라하게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델로의 열등감과 맥베스의 야욕, 리어왕의 오만, 그리고 햄릿의 숙부와 어머니가 품었던 욕정. 그들은 곧 우리의 분열증인 경우는 아닐까? 때문에 그 비극들에 더욱 격하게 공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95

해학과 풍자는 민중들이 지닌 삶의 생명력을 일깨우면서도 기득권의 권위를 해체하는 문법이기도 하다. 어디 중세에만 한정되는 경우이겠느냐만, 힘겹고 고된 시절을 살아가던 중세의 민중들은 당대 기독교의 위선적 권력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라블레가 그려 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탐닉과 방종은 민중들이 바라보는 권력집단의 부조리인 동시에,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추구했던 자유로운 삶은 민중들의 열망이기도 했다. 그 열망이 가닿은 판타지에 밀려난 성서의 판매부수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던 현상은 아니었을까? -p.137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앞에서 진정성 있는 위로를 건넨 이는, 그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 게라심뿐이었다. 게라심은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 정도는 염두에 두고 사는 인물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경구, 이미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죽음은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이 지닌 뒷모습이다.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 시한부의 삶을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절실한 성찰이 다가온다. 죽음은 삶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하는 그 또한 삶의 일부인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 말로 대리할 수 있지 않을까? -p.165

성경을 인용하자면 신이 보기에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러나 인간에게까지 모두 보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에는 차등한 세상의 미학이었다. 더 정확히는 유럽인들이 보기에 좋은 것들이 善을 선점한다. 하얀 피부를 순결성으로 규정하는 입장에서는 유색의 피부가 저열의 속성이었다. 유럽의 귀족 부인들은 흑인 남자 노예가 지키고 서 있는 가운데 나체로 목욕을 했다. 그것이 노예의 불경일 수 없었던 이유, 흑인 노예는 아직 인류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비유럽은 아직 자연이었다. 자연을 극복하는 위대한 ‘인류’의 역사는 비유럽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다. 그에 대한 반발은 모두 악이다. 이슬람도 악이었고, 인디언도 악이었다. -p.314

유럽의 정신문화를 이루는 두 근간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다. 이스라엘과 가장 변별되는 그리스의 특징은 인본주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존재는, 인간의 지력으로 이해될 수 없는 현상에 투영된 인간의 지평이다. 즉 미지와 우연의 두려움을 가지(可知)의 필연으로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인간 스스로의 대답을 인격화한 경우이다. 때문에 인간의 희노애락애오욕에 관한 대답으로서의 신들까지 존재하며, 신들 역시 사랑하고 질투하며 분노하고 좌절하는 존재이다. 그리스의 신은 인간의 운명을 쥐고 있는 조력자이기도 한 동시에 훼방꾼이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영예가 신의 뜻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모든 과오 역시 신의 탓이다. 헤브라이즘이 원죄를 인간에게 짊어지게 했다면, 헬레니즘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죄이다. -p.326

《고리오 영감》이 그리고 있는 파리는 시종일관 속되고 치사하다. 속세를 딛고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속물근성은 어쩌면 본연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 추잡한 본연에 대한 고민으로 쌓아 온 인문의 역사는 실상 그 본연을 겉돌고 있는 공허한 치장은 아닐까? 발자크의 소설을 아우르고 있는 ‘인간 희극’이라는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바가 그러할 것이다. 참으로 웃긴 세상에 우스꽝스러운 인간들의 우스운 이야기, 차라리 그런 민낯이 보다 진정성 있는 인문인지도…. -p.345

구매가격 : 13,000 원

일본 역사 고대, 조몬 야요이 고훈 야마토 아스카 하쿠호 나라 헤이안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9-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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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고대


1. 구석기 일본 선사시대 시작되다(플라이스토세)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유독 일본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이러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대표적으로 日帝强占期에 불러일으켜진 反日主義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 역사에 대한 무지의 폐해는, 과거 李氏朝鮮이 중국의 屬國으로서 지배당하던 역사적 폐해 못지않은 不條理를 惹起한다.
事大主義的 小中華主義의 꼴사나운 歷史的 慣性이, 여전히 韓民族의 民族精神的 遺傳子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때문에 시나브로 중국 역사에 대한 妄想을 갖는다.
일본 역사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다만 그 상황이 정반대다. 중국 역사를 羨望하는 탓에, 중국 역사를 알게 된 것처럼, 일본 역사를 蔑視하는 탓에, 일본 역사를 알지 못한다.
중국 역사든, 일본 역사든, 그것은 그저 역사일 따름이다. 그러한 各 역사에 대한 理解는, 偏向되거나 歪曲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대한민국의 國益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중국 역사와 일본 역사 중에서, 어떤 역사가 더 중요시되어야 하는가의 여부는, 철저히 國益의 尺度에 따라 가름되면 족하다. 굳이 이런저런 잡다한 논변을 떠들어댈 것 없다.
忠誠이니 愛國이니 民族이니, 허울 좋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프로파간다 선동질이나 조작질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유독 그런 것을 떠들어대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음흉한 속내를 지니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례로써 익히 검증된다.
그런 선동질이나 조작질에 놀아나게 되면, 그야말로 ‘개돼지 群衆’의 低劣한 상태를 당최 탈피할 수 없다.
그러니 何時라도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感情이나 感性 따위에 의한 치우침이 없어야 하며, 각 個人의 가장 근본적 생존 토대인 國益의 척도를 좇아야 한다.
日本歷史는, 일본과 일본인이 현재까지 걸어온, 모든 역사적 과정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개념이다.
최초에 ‘플라이스토세’의 일본은, 대륙과 이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동아시아대륙의 동단의 반도를 이루고 있었고, 대륙과 같은 舊石器文化가 전개되고 있었다.

-하략-

구매가격 : 3,500 원

디지털 정신분석 연구

도서정보 : 박진우 | 2019-09-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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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에 시달리는 B양


"언니는...인성이 쓰레기에요..."


말더듬에 시달리는 S군


"초...초...등하...학교...때,,,마...말을..마...많이..아..안 해서요..."


자해 하던 K양


"어릴 때 엄마가 "니 잘못이 아니야"라고만 해줬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에요!"


공황장애로 진단받은 D군


"사람이 자라지면 성장하지 않고 이대로 멈출 수 있어요!!!"


편집증에 시달리던 G군


"모든 것은...나의 지시 하에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분석시간에 직접 했던 말로 각각의 말은 그에 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되면 힘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무런 도움도 없었고 의료적 조치가 상관없었던 사람들과 함께한 임상기록을 공개한다. 정신병원에 입원치료까지 받아도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채팅을 통해 회복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은 어떻게 정신과 약물을 쓰지 않아도 치료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하는 것도 약물도 증상을 개선하는 것이 듣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회복을 이끌어 낸 것은 과연 무엇일까? 아직도 정신의학에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 신경증을 설명하여 그 효과가 발생하는 과정. 어떻게 정신분석은 온라인에서도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들은 곧잘 접하게 되는 내용들이다. 불면증이나 말더듬, 자해, 물을 쉴새없이 마시는 물중독, 흔히 알려져있는 공황장애, 강박증, 조현병 진단을 받는 편집증까지 다양한 증상들을 소개하며 그것을 프로이트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설명하고 정신과 약물이 어떤 방식으로 증상을 진정시키는지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정신분석가의 일은 병을 설명하는 것이고, 치료는 자아가 스스로 그 병을 방어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고 추정해도 실제 임상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정신분석 임상의 실제 사례집.

이 책을 묘사하는 한 문장을 생각해본적이 있다. 생각도 못한 일이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구매가격 : 12,000 원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도서정보 : 유창선 | 2019-09-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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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장애와 맞서 싸울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죽음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삶의 기쁨

저자는 시사평론가로, 인문학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올해 초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된다.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 이후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후유증이 심해 6개월 넘게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동안 앉기만 해도 실신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와 후유증을 앓았다. 앉지도 못할 때는 누워서 휴대폰 앱에, 앉을 수 있게 된 후에는 침대 밥상에 노트북을 펴놓고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썼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렇게 써내려간 것이다. 힘겨운 투병 중에도 저자는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었다. 아니, 힘들수록 글쓰기가 더 간절했다.

“장소가 어디든,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나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강한 의지 혹은 앞으로의 삶을 위한 다짐이 필요했고,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시간이었다.”

“사람마다 힘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병상에서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인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글을 씀으로써 힘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행위가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고, 앞날에 대한 계획이 빼곡했던 저자에게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이라는 중대한 질병은 인생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생과 사를 넘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 저자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하는가? 그동안 무엇 때문에 나의 본성을 억압한 채 살아왔던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힘겹게 얻은 두 번째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작가 생텍쥐페리가 “인간은 장애와 맞서 싸울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라고 말했듯이 저자 역시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며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게 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함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나답게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들려준다. 살다보면 느닷없이 닥치는 시련을 피할 수는 없지만, 시련을 대하는 삶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소소한 행복에 대한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신체가 달라졌어도, 그래서 내가 처한 조건과 환경이 달라졌어도, 정작 나의 내면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 만들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병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나만의 행복이다.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 불 꺼진 병실에서도.”

이 책을 읽노라면, 뇌수술을 받고 간단치 않은 후유증으로 재활 중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 “폭탄을 맞은 듯 폐허가 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는 강한 의지, 병실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을 발견해내는 긍정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인문학적 사유와 고통 속에서 얻은 통찰력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저자가 꾹꾹 눌러 쓴 한 마디 한 마디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울림이 크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겹고 우울한 이들에게는 위로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안겨주는 소중한 책이다.

“나를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응원하는 책!

저자는 깊고 넓은 사유를 통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그는 두 번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새롭게 얻은 삶, 이전처럼 세상의 기준에 맞춰 혹은 대의명분에 짓눌려 본성을 억압한 채 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소소하고 가벼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생의 가치라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나는, 남은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삶, 페르소나를 벗고 내 얼굴 그대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는 큰 삶이 아니라 작은 삶, 무거운 삶이 아니라 가볍고 소소한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돌보고, 나를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두가 세상에 무관심한 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면 세상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저자는 각자가 나를 위해, 나를 돌보는 삶을 살 때 세상이 더 살 만해진다고 강조한다. 저마다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행복을 찾을 때 타인에게 더 관대해지고 타인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획일화된 우리의 삶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본시 지성은 집단의 열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독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두가 집단이 되어 하나로 획일화될 때 역사는 다시 뒤로 후퇴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삶은 정당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살리는 길이다.”“인간은 장애와 맞서 싸울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뇌종양,
죽음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삶의 기쁨

저자는 시사평론가로, 인문학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올해 초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된다.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 이후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후유증이 심해 6개월 넘게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한동안 앉기만 해도 실신할 정도로 심각한 장애와 후유증을 앓았다. 앉지도 못할 때는 누워서 휴대폰 앱에, 앉을 수 있게 된 후에는 침대 밥상에 노트북을 펴놓고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썼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렇게 써내려간 것이다. 힘겨운 투병 중에도 저자는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었다. 아니, 힘들수록 글쓰기가 더 간절했다.

“장소가 어디든,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나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강한 의지 혹은 앞으로의 삶을 위한 다짐이 필요했고,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시간이었다.”

“사람마다 힘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병상에서는 다른 생각 하지 않고 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인 사람이 많겠지만, 나는 글을 씀으로써 힘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행위가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고, 앞날에 대한 계획이 빼곡했던 저자에게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이라는 중대한 질병은 인생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생과 사를 넘나들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 저자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하는가? 그동안 무엇 때문에 나의 본성을 억압한 채 살아왔던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힘겹게 얻은 두 번째 삶, 어떻게 살 것인가?

작가 생텍쥐페리가 “인간은 장애와 맞서 싸울 때 스스로를 발견한다”라고 말했듯이 저자 역시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며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게 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함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나답게 사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들려준다. 살다보면 느닷없이 닥치는 시련을 피할 수는 없지만, 시련을 대하는 삶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소소한 행복에 대한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신체가 달라졌어도, 그래서 내가 처한 조건과 환경이 달라졌어도, 정작 나의 내면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나만의 행복 만들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병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나만의 행복이다.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 불 꺼진 병실에서도.”

이 책을 읽노라면, 뇌수술을 받고 간단치 않은 후유증으로 재활 중인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 “폭탄을 맞은 듯 폐허가 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내딛는 강한 의지, 병실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을 발견해내는 긍정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인문학적 사유와 고통 속에서 얻은 통찰력에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이 책에는 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저자가 꾹꾹 눌러 쓴 한 마디 한 마디는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울림이 크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겹고 우울한 이들에게는 위로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삶의 지혜를 안겨주는 소중한 책이다.

“나를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을 응원하는 책!

저자는 깊고 넓은 사유를 통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려준다. 그는 두 번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새롭게 얻은 삶, 이전처럼 세상의 기준에 맞춰 혹은 대의명분에 짓눌려 본성을 억압한 채 살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소소하고 가벼운 일상을 잘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인생의 가치라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은 나는, 남은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삶, 페르소나를 벗고 내 얼굴 그대로의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는 큰 삶이 아니라 작은 삶, 무거운 삶이 아니라 가볍고 소소한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돌보고, 나를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두가 세상에 무관심한 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면 세상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저자는 각자가 나를 위해, 나를 돌보는 삶을 살 때 세상이 더 살 만해진다고 강조한다. 저마다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행복을 찾을 때 타인에게 더 관대해지고 타인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획일화된 우리의 삶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본시 지성은 집단의 열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독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두가 집단이 되어 하나로 획일화될 때 역사는 다시 뒤로 후퇴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삶은 정당하며 인간 본연의 가치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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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공동체와 현대과학적사고.The Churches and Modern Thought, by Philip Vivian

도서정보 : Philip Vivian | 2019-09-2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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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일반
교회공동체와 현대과학적사고.The Churches and Modern Thought, by Philip Vivian
교회공동체의 생각과 신화및 현대 과학적 사고에의한 증거들의 사고에 의한 진화등의 학문적인 증거들에 대해서 쓴책.
Title: The Churches and Modern Thought
An inquiry into the grounds of unbelief and an
appeal for candour

구매가격 : 27,000 원

이씨조선 당파싸움 조선왕조 붕당정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사색당파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9-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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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 당파싸움, 조선왕조 붕당정치


1. 양반, 이씨조선 기득권층

우리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旣得權層은, 말할 나위 없이 李氏朝鮮의 兩班士大夫이다. 그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지금 이 순간까지도, 李氏朝鮮의 역사적?정치적 관성이 지속되고 있는 탓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朋黨은 李氏朝鮮 中期 이후, 특정한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兩班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적 떼거리 집단이다.
양반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性理學(朱子學)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킨다. 그래서 그것에 반동적인 인간존재는 斯文亂賊으로 규정하고서, 철저히 소외시키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권력의 작동방식은, 현대사회라고 해서 별다를 것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추종하는 시대에도, 자기들의 떼거리 이념에 반동적이면 異端으로서 배척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씨조선의 당파싸움이라는 현상은, 그러한 기득권을 先占하고 持續하기 위한 정치적 싸움질이었다. 그야말로 利益에 복무하는 정치투쟁이었다. 그러한 양상은 현대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현대의 대한민국은 資本主義와 市場經濟를 체제이론으로 삼는다. 그러하니 이익에 복무함은 더욱 공고해지고 정당해졌다.
붕당정치의 과정에서, 기존에 국내정치적 事案으로서 政爭이 발생하면, 그나마 그 피해는 내부적 권력투쟁으로 마감된다. 그런데 국제정치적 사안으로 인한 당파싸움일 때는, 국가의 토대가 흔들리는 지경으로 치닫는다.
壬辰倭亂, 丙子胡亂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한 전란을 유발시킨 과정이 당파싸움이었다. 하지만 정작 전란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 대부분의 세력은 당파가 아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우도 그러하다. 좌파와 우파, 여당과 야당, 각 政派와 黨派들이, 離合集散하며 갖은 선동질과 조작질로써, 서민대중들을 ‘개돼지 群衆’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정작 그들이 목적하는 것은 자기들의 利益일뿐이다. 기득권층으로서의 利權을 지켜내려는 工作일 따름이다.
이씨조선에서 나름대로 지식인으로 행세하던 세력들마저도, 서양문물 수용 문제에 대해, 攻西派와 信西派로 분열되어 당파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결국, 기득권층의 이권을 목적하는 공서파 세력이, 신서파를 사문난적으로 규정하고서 내몰아버리는 것으로 一段落된다. 하지만 국제정치는 그런 식으로 마감될 수 없다.
李氏朝鮮의 奴婢制를 지속하여, 양반의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해, 주자학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며, 서양문물을 배척했고, 그러한 선동질로써 양반의 기득권을 유지했지만, 그 결과는, 국가 자체를 일본의 식민지로 빼앗기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喪服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의 문제는, 국내정치적 상황으로 한정될 수 있다. 따라서 그 피해가 국가공동체를 넘어서서 확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양문물을 수용하느냐, 배척하느냐의 문제는, 국제정치적인 것이라서, 국가의 命運을 가르는 상황으로 확대되어버린 것이다.
현대의 대한민국의 경우도 별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건’을 빌미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국내정치적 상황은, 정권이 이양되면서 마감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反日 民族主義를 조장하며, 위안부 문제, 징용 문제, 지소미아 파기, 불매운동 등을 벌이는 정치공작은, 그 부작용이 국가의 安保를 뒤흔들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親美, 親中, 反美, 反中 등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기득권층은, 국가적 大事를 결정함에 있어, 결국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속하기 위할 따름이다. 그것은 이씨조선의 당파싸움의 경우처럼, 역사적 사례로써 쉬이 검증된다.
그런데 국제정치는, 그러한 결정에 의해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만다. 日帝强占이나 韓國戰爭 등이, 그 現代史的 事例이다.
흔히 이씨조선의 당파싸움에 대해, 植民史觀을 좇아 해석하는 경향이 익숙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릇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정확한 분석이기도 하다. 그저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卑下하고, 자기들의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한 해석만은 아닌 것이다.
외려 숲 바깥에서 숲을 보도록 하며, ‘우물 안 개구리’의 한정된 시야를 벗어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팔을 안으로 굽는 법이라서, 한국인이라면 응당, 이씨조선의 당파싸움에 대해서도, 되도록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며 美化하려는 것이 人之常情이다. 어쨌거나 우리 先祖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역사 해석은, 비판적인 관점에 의한 것이다. 그래야만 과거의 試行錯誤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兩班은, 이씨조선 시대 최상급의 사회계급으로서, 士農工商 중에서 士族에 해당한다.
이는 또한, 이씨조선에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관료와, 관료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자격을 가진 家門, 그리고 士林이라 불렸던 학자 계층까지 포함하는, 조선 왕조 특유의 사회계급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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