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어 수업

도서정보 : 한성우, 설송아 | 2019-08-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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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우 교수는 북한 평안도 방언연구자로, 오랜 시간 동안 북한의 말을 조사하고 연구해오며 언젠가는 북한 땅의 말을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공동저자 설송아를 비롯한 북한 출신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각종 연구자료와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참조하는 ‘가상의 방언조사, 가상의 평양 체류기’를 표방하는 『문화어 수업』은 그렇게 탄생했다. ‘표준어’가 남한의 말을 대표하듯 ‘문화어’는 북한의 말을 대변하며, 저자가 북한 말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전해준다. 이 책은 삶의 기본인 의식주 용어부터 호칭, 옛말, 욕설, 은어까지 북한 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문화어 수업』은 남한의 화자를 대표하는 한겸재 가족과 북한의 화자를 대표하는 리청지 가족을 등장시킨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두 가족이 큰 장벽 없이 서로의 말을 이해한다. 두 가족의 대화를 통해 남북의 말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둘 사이에 ‘약간의 차이와 간격’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간격을 조금 더 좁힐 수 있도록, 남한의 말과 다른 북한 말의 용법과 변화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총 20번의 강의는 북한 말과 북한의 삶을 이해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어떻게 ‘다른 말’을 대해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준다.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나면 어느새 우리는 북한 말, 나아가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을 편견과 선입견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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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도서정보 : 김진영 | 2019-08-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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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의 피아노』 『이별의 푸가』 이후
또 한 번의 놀라움과 감동을 맛본 책”
―변광배(한국외대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

“고독이 두려워서, 죽음이 두려워서, 덧없음이 두려워서,
심지어 미움이 커서 힘을 잃을 때 몇 번이고 펼쳐서 읽고 싶은 책”
―정혜윤(CBS 라디오 프로듀서)

‘감동을 주는 강의’ ‘인문학 강의의 정수’라는 찬사를 받았던
철학자 김진영의 세계문학 강의록

故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의 1주기를 맞아, 깊이 있는 독해와 풍부한 감성으로 문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그의 세계문학 강의록이 출간되었다. 수강생들로부터 ‘감동을 주는 강의’ ‘인문학 강의의 정수’라는 찬사를 얻었던 선생의 소설 강의는 2007년부터 2017년 투병 전까지 이어지며 100여 종이 넘는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대표작을 다루었다. 이 책은 선생이 가장 정력적으로 문학을 강의하던 2010년, 총 10회에 걸쳐 진행된 「전복적 소설 읽기: 소설을 읽는 8개의 키워드」 강의를 녹취, 정리한 것이다.

선생은 생의 전반기, 소설 읽기를 통해 사유 능력과 상상력의 자양분을 얻었다고 말한다. 10여 년에 걸친 그의 소설 강의는 감성과 사유를 빚진 문학에 대한 사의의 표현이었을까. 잔잔한 강물 아래 소용돌이치는 물살처럼, 이 책은 그가 평생 간직했던 소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이다.

"오랫동안 소설을 읽었다. 그 사이에 소설들은 자꾸만 얼굴을 바꾸었다. 사춘기 시절 소설은 뗏목이었다. 대책 없이 어디론가 떠내려가게 만드는. 젊은 시절 소설은 미지의 여인이었다. 프루스트가 그랬듯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사랑해 버린 어떤 여인. 나이 들고 환상 대신 환멸을 배우게 되었어도 소설 읽기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소설도 얼굴 바꾸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때 소설은 카산드라의 운명이었다. 진실을 외치는 그러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고독하고 참담한 예언. 또 어느 때 소설은 고르곤의 눈이었다. 결코 마주 볼 수 없는 그러나 언제나 정면으로 응시하는 어떤 시선. 또 어느 때 소설은 화이트 노이즈였다. 사실은 들리지 않는 그러나 달팽이관 속의 무슨 벌레처럼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소리. 또 어느 때 소설은 심지어 신처럼 여겨졌다. 없음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마저 없으면 안 되므로 있어야 하는 어떤 것."
―「소설들 혹은 봉인된 혀들」 강좌 소개에서

죽음, 괴물, 기억, 광기, 동성애, 부조리, 고독, 정치
여덟 가지 키워드로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다

이 책에서 김진영 선생은 죽음, 괴물, 기억, 광기, 동성애, 부조리, 고독, 정치, 여덟 가지 키워드로 여덟 편의 소설을 읽는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빼앗긴 죽음과 죽음의 권리 찾기’를, 카프카의 『변신』에서 ‘괴물과 흡혈 행위’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감각과 이성, 그리고 기억 문제’를,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에서 ‘어두운 낭만주의와 광기’를,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건강한 시민성과 동성애적 관능, 그리고 진리 문제’를, 카뮈의 『이방인』에서 ‘부조리한 삶에 대한 반항과 삶의 본질인 이동성을 되찾기 위한 태양 살인’을,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에서 ‘고독의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측면’을, 볼랴뇨의 『칠레의 밤』에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제도가 자기를 유지하는 방법, 특히 정치 및 역사와 연결되었을 때 문학과 문학가가 어떤 기능을 맡는지에 대한 가열한 비판’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 소설의 미로를 헤치고,
교훈과 전형에 갇힌 해석에서 소설을 해방시키는 능동적 독자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고, 어떻게 기억할지가 중요하다. 작가의 ‘피’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계문학의 대표작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김진영 선생에게 소설 읽기는 “숨으려고 하는 글을 끝까지 세상의 제단 위에 올리려고 하는 동시에 그것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내는”(80쪽) 작업이다. 그는 독자에게 읽히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독자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작가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 소설의 미로를 헤치고, 교훈과 전형에 갇힌 작품 설명을 뛰어넘어 전복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소설을 해방시키는 능동적 독서를 한다.

선생의 주관적이고 전복적인 텍스트 읽기 몇 가지를 살펴보자. 『변신』을 비극으로 읽는다는 점은 통상적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이 소설을 갑충의 영역에서 다른 데로 빠져나가는 ‘성공적인 탈출’로 읽어 내고, 탈출의 전략을 ‘흡혈’로 해석한다. 죽어가던 갑충은 누이동생의 목에 키스(즉 목을 문다)를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름답고 생기로 가득 찬 누이동생의 신체는 누구의 것일까?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아주 높은 지적 작업을 완성한 사람이 열정이나 도취라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우연히 빠지면서 스스로 명예를 실추하는 치욕적 이야기로 읽힌다. 이 몰락의 이야기를 선생은 토마스 만의 건강한 예술미가 완성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즉 주인공 아셴바흐가 죽어 가는 과정은, 타치오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타치오에게 들어 있는 썩는 치아를 대신 먹는 과정인 것이다. 이 밖에도 『이방인』의 뫼르소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마지막 장면을 ‘존재를 발견하는 축제’의 장면으로 읽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일치하는 서사로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한편 선생은 자의적 해석을 경계하기 위해 최근 문학 연구에서 활발한 역사와 철학 담론을 작품 해석에 폭넓게 적용하기도 한다.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사 연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운하임리히(unheimlich: 낯선 친숙함, 으스스함)’ 개념, 베르그송의 무의적(無意的) 기억, 벤야민의 프루스트 분석과 멜랑콜리 개념, 들뢰즈와 과타리의 카프카 분석 외에도 라캉, 아도르노, 마르크스, 푸코, 바르트 등의 철학과 문화 이론을 동원해 심층적인 읽기를 시도한다. 이는 작품 해석의 풍요로움에 직결되며 선생의 문학 강의가 ‘인문학 강의의 정수’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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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중국철학, 홍수전 손문 모택동 시진핑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8-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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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現代 中國哲學思想은 무엇인가



1. 中國을 알아야 韓國이 산다

近代에 이르도록, 中國哲學은 크게 3개의 기둥으로서 구성되어 있었다. 흔히 儒佛道라고 지칭되는데, 儒家, 佛家, 道家는, 중국은 물론 漢字文化圈 國家인 韓國이나 日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朝鮮王朝는 철저히 儒家哲學에 의해 主導되는 사회였다.
근대 이후 중국은 社會主義 國家가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마르크스主義와 마오쩌둥主義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현재에도 중국은 名實相符한 共産主義 國家이다.
淸나라 멸망 이후, 중국에는 마땅한 철학사상이 不在하다. 동아시아 漢字文化圈을 先導하던 中國哲學思想史를 思慮한다면, 다소 안타까운 노릇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자연스런 역사의 흐름이다.
근현대를 지나면서, 중국을 主導하는 철학사상은 말할 나위 없이 마르크스주의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는 세계사 안에서, 이미 실패한 哲學思想이다.
그러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중국은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실행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資本主義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마르크스주의보다는 資本主義가 人間本性에 좀 더 符合하였을 따름이다.
그러니 인류는 社會主義나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사상을 摸索해야 한다. 현재에도 자본주의는 散在하여 解決해야 할 문제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友邦에 대한 選別이 요구된다. 國際政治의 場에서 覇權國이 아니라면,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國際關係는 不可하다. 반드시 어느 한 陣營을 선택하여 편가름해야만 한다.
국제정치는 영원한 敵도 영원한 同志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자기 편은 늘 流動的이다. 국제정치에서 ‘隣接國의 悲劇’ 관점에서 볼 때, 중국과 일본은 아주 결정적인 事例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徹天之怨?인 국가들이다. 근현대사를 살필 때, 일본은 壬辰倭亂이나 日帝强占의 역사로써 철천지원수다. 중국은 저 먼 古代로부터 무수한 侵略戰爭을 恣行했고, 조선왕조를 屬國으로 삼았으며, 다시 6.25전쟁으로써 침략을 해왔으므로 철천지원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두 隣接國에 대해, 이제는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의 友邦國家인가를 판가름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自由民主主義 진영에 설 것인가, 중국과 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共産社會主義 진영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이다.
複合的인 情況을 思慮해야겠지만, 선택에 대해 적잖은 指針과 尺度를 제공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에서 떵떵거리며 勢道를 휘두르는 ‘曺國’은, 現職 서울대 敎授로서 休職한 상태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철밥통’인 교수자리가 위태해지자, 슬그머니 復職을 했다가 다시 휴직하면서, 교수자리를 保傳하고 있다.
과거에 그는, 敎授와 政治人을 병행해서는 안 된다면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런데 ‘내로남불’ 식으로, 제 밥그릇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실로 그런 것이 빨갱이 從北主義者들의 良心의 眞面目이다.
주둥이로는 革命, 解放, 民族, 平等, 平和, 人權, 分配, 正義, 正常, 理性 따위를 떠들어대며 ‘개돼지 群衆’을 선동하면서, 정작 제 욕심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것이 빨갱이들의 本性이며, 나아가 인간존재의 본성이다.
積弊淸算을 외치며 執權을 한 빨갱이 左派들은, 집권 이후 제 몫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인류의 역사는 늘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개혁세력의 집권은 不可하다는 것이다. 막상 권력을 얻게 되면, 금세 인간존재들의 野鄙한 本性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빨갱이 左派들 首腦部 대부분이, 富者이며 資本家라는 아이러니는, 쉬이 解明된다. 북한의 이너써클 1%만이 好衣好食하는 것처럼, 남한의 빨갱이들도 나름대로 이름깨나 날리면, 죄다 자본가 흉내를 내는 것이다. 그런 빨갱이 族屬 대부분이, 자기 子息들은 어떻게든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지 않는가.
그러니 欲望과 慾心에 솔직한 資本主義體制가 좀 더 그럴듯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속내를 알지 못하는 ‘개돼지 군중’들만이, 그저 그들이 떠들어대는 虛無孟浪한 프로파간다에 놀아날 따름이다.
그렇다면 保守右派라는 者들은 또 어떠한가. 오죽 제 욕심을 채우며 不正腐敗를 일삼았으면, 현직 대통령이 彈劾당하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겠는가. 그야말로 五十步百步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左右 進退兩難 속에서, 隣接强大國들의 四面楚歌에 휩싸여 바람잘 날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인접강대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면한다면 朝鮮王朝 末期처럼, 그레이트 게임의 혼돈 속에서 나라를 팔아먹고 빼앗기는 難局에 처하고 말 것이다.
政治는 인간존재의 삶의 根幹이다. 인간존재의 삶 그 자체를 運用하는 天地自然의 원리가, 현실세계에서 顯現되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한 정치를 살핌에 있어, 흔히 國內政治와 國際政治를 가름한다.
그런데 대체로 국내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갖기 십상이다. 아무래도 자기의 삶의 時空間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탓이다.
하지만 어떠한 국내정치일지라도, 결국은 국제정치의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안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적 사례로써 쉬이 검증된다.
제아무리 국내정치적으로 執權하였더라도 국제정치의 外患이 발생하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韓國戰爭으로부터 日帝强占이나 丙子胡亂 등, 그 사례는 굳이 열거할 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도 左派와 右派의 대립이 尖銳하다. 그러한 현상을 국내정치적 관점에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과거는 물론이며 현대에서는 어떠한 국내정치적 현상도, 그 動力이 국제정치의 時流에 의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현실세계의 어떠한 정치적 현상도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利益과 戰爭’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그레이트 게임’은, 古代로부터 掠奪, 征服, 植民, 冷戰, 覇權 등의 형태로 변화되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어떠한 형식을 취하든, 그 裏面에서 작동하는 근원적 작동원리는 ‘利益과 戰爭’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국제정치적 관점의 根底에는, 歷史가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역사가 바탕이 될 때, 국제정치적 판단은 正統性과 正當性을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그러한 역사가 ‘自國에 이익이 되는 역사’여야 함은 明若觀火다.
그리고 마땅한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역사를 歪曲하게 된다. 그런데 왜곡할 만한 역사조차 없는 경우에는, 이제 온갖 道德主義的 名分을 내세운다.
예컨대, 21세기에는 人權이라는 명분만큼 그럴듯한 명분은 없다. 물론 인권은 참으로 소중한 보편적 가치 개념이지만, 이렇게 한갓 명분으로써 악용되는 도덕은, Nietzsche가 비판한 ‘奴隷道德’ 部類쯤으로나 분별될 따름이다.
저 먼 古代로부터 國家의 구성원으로서 살아내는 인간존재의 삶은, 아무리 微細한 상황일지라도 국제정치의 거대한 흐름에 의한다.
마치 ‘Butterfly effect’처럼,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이,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세상 理致다.
그러니 한 인간존재의 미세한 행위가, 거대한 국제정치적 사건으로 飛火될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필자는 그러한 국제정치의 作動原理를 여실히 보여주는 현대적 사건으로서, 에너지 戰場인 一帶一路를 제시한다.
흔히 一帶一路를, ‘시진핑’이라는 중국의 현대판 皇帝 個人이 도출해 낸 執權政策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一帶一路의 中國夢은, 결코 ‘시진핑’ 개인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 夢想은 중국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 전체를 搖動케 하고 있는 탓이다. 따라서 이를 살핌으로써, 현대의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 역시 赤裸裸하게 분석할 수 있다.
美中 貿易戰爭이 시작된 직접적인 원인도 一帶一路이며, 北韓의 핵무기와 무역제제에 관련된 문제들 역시, 一帶一路와 첨예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제정치적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이슈로서, 一帶一路는 가장 時宜適切하다고 할 것이다.
현대의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主唱하는 것은, 모름지기 中國夢이다. 과연 중국이 꿈꾸는 ‘중국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
그런데 中國夢이 실현되든 실현되지 안든,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죄다 불안스럽고 불편하다는 점을 인식케 된다.
특히 一帶一路 式의 中國夢이 실현되었을 때, 그것은 대한민국에게는 惡夢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역사적 사례로써 익히 검증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대륙이 강력한 帝國으로서 정립되었을 때, 인접해 있는 만주대륙과 한반도는 늘 정복의 一順位였다. 그래야만 名實相符한 天子의 제국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一帶一路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인 인프라 프로젝트는, 그 계획대로만 실현된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현재 100여 개 국가 및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으며, 30여 연선국가와 일대일로 공동 건설 관련 협약을 맺었다. 2017년 5월, ‘2017 일대일로 국제협력 고위급 포럼’에서는, 총 270여 개의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었다.
그러나 세계의 覇權國 미국은, 이러한 계획을 坐視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자칫 覇權을 중국에게 넘겨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과거에 소련이나 일본을 坐礁시켰듯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며 중국의 몰락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정학적으로 부득이하여 배척될 수 없는 중국이, 다시 中國夢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일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여러 이유로 인해, 당최 불안한 미래에 대해 銳意注視해야만 하는 사안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중국이 모색하는 中國夢은, 과거 주변국들을 君臣關係로써 屈從시키던 짓을 꿈꾸는 것일까.
현대적인 自由民主主義 체제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서, 과거 獨尊儒術하던 儒敎文化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식의 재현을 꿈꾸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종교적인 온갖 것들을 죄다 獨裁하던 天子의 帝國을 부활시키려는 것일까.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 걸림돌이라 인식했던 檀君朝鮮, 高句麗, 高麗, 渤海, 統一新羅, 朝鮮 등의 경우처럼, 주변국들이 자기들의 中國夢體制에 순응하고 굴종할 때까지, 침략과 정복을 자행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하니 가장 근접해 있는 국가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으로서는, 도무지 불안과 공포를 숨길 수 없다.
그러다보니 중국 자본을 受惠하는 親中主義者들도 多數 발생하는 상황이며, 그러한 자들은 과거 大東亞共營圈을 主唱하던 日本帝國을 좇아, 韓日合邦(庚戌國恥)을 주도했던 親日派들과 유사하게, 中國夢의 실현에 어떻게든 기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를 存續시키는 체제이론이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라는 점이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그것을 견고히 유지할 때, 다소 나아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현상유지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是認해야만 한다.
이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生存의 利得’을 위한 不得已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解體하고서, 보다 나은 사회를 정립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면, 응당 그것을 추구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현재 暗?的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人民民主主義, 社會主義, 共産主義, 主體思想 따위가, 과연 그러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만 주의할 대목은, 人情的으로나 人道的으로 北韓의 同胞들에게 한 겨레로서의 민족적 共通感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國際社會라는 弱肉强食의 현장에서, 그러한 感性的 판단이 시의적절한 대안으로서 작동한 역사적 사례는 거의 不在함을 유념해야 한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로서 국제정치적 관점을 갖게 되면, 적잖은 인생의 의문이 해소된다.
혁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근원적인 사회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의 온갖 不合理와 갖은 不條理에 대해서도 理解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인간존재는 외부의 바람에 煽動당하지 않으며, 오롯한 자기의 삶에 충실할 수도 있게 된다. 世間의 인간존재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행복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찾아든 苦難의 원인을 명확히 알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서 나름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近代 이전에는 국제정치적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위대한 先知者로서 숭앙되는 인물들의 텍스트였다.
예컨대, 老子, 論語, 大藏經, Bible, Quran, 그리스哲學書 등이 그러하다. 그런 先覺者들의 텍스트를 공부하면, 현실세계라는 ‘우물 안 개구리’ 상태를 극복하고서, 天地自然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곧 天地自然의 ‘그레이트 게임’을 인식하게 되는 탓이다. 그래서 그들의 著作이 현재까지도 인류의 古典으로서 숭앙받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직접적으로 天地自然의 상황을 살피는 시대이다. 예컨대, NASA에서 운영하는 인공위성 화면은 실시간으로 地球라는 行星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지구촌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관점을 지니지 못한다면, 각 개인의 삶의 문제 역시 마땅한 해답을 갖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미세한 상황일지라도 그 결정적인 원인은, 결국 거대한 ‘그레이트 게임’에 의한 逆나비효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제정치적 관점의 培養과 思慮는 실로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할 것이다.
제아무리 小乘的 깨달음을 얻어 解脫한다고 해도, 결국 현실세계에서 생존하는 한, 거대한 ‘그레이트 게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은 실로 不得已다.
이러한 본래적 사실을 是認하지 않는다면, 결코 삶의 現象은 죽음의 순간까지 나아지지 못한다.
‘中國哲學(Chinese philosophies)’ 중국에서 전개된 철학사상을 가리킨다. 중국철학은 主流思想의 변천에 따라, 대체로 다음과 같은 7단계의 시기로 나눌 수 있다.
百家爭鳴時期(기원전550~기원전110), 文獻經學時期(기원전110~기원후220), 老莊學·玄學時期(220~404), 佛敎主流時期(405~819), 新儒學·性理學時期(820~1644), 實學考證學時期(1645~1911), 社會主義·全體主義時期(1912~현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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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로크 루소 몽테스키외 헤겔, 법철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8-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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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은 무엇인가


1. ‘法學’과 ‘法哲學’

法學은 實定法에 대한 학문체계이고, 法哲學은 自然法에 대한 학문체계이다. 때문에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실정법에 비해, 다소 荒唐無稽할 수 있다.
그러나 인류문명의 歷史的 始作과 동시적으로 고뇌되어온 자연법에 대한 穿鑿이 없었다면, 현실세계를 작동시키는 실정법이 정립되었을 리 萬無하다.
그리고 法律이라는 것은, 明文化된 法條文만으로 작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解釋과 適用이 요구된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법률을 제정해 두었더라도, 그러한 법률을 이해하지 못하고, 준수하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한다면, 한갓 ‘빛 좋은 개살구’로서 無用之物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러한 법률의 해석과 적용의 과정에서, 법철학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법학과 법철학에 내재된 관계 방식은, 非但 법률만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諸般狀況에서도 작동한다.
어떠한 상황이든, 그 裏面의 철학적 상황인식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흔히 ‘自己의 哲學’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허접한 개똥철학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존재는 자기만의 철학을 지니고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록 거렁뱅이의 貧困한 삶일지라도, 오롯한 自由人的 個人으로서 삶을 꾸릴 수 있다.
그런데 역사 안에서 旣得權的 支配權力은, 각 인간존재들이 자기의 철학을 지니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각 인간존재들이 자유롭게 ‘자기의 철학’을 지니게 되면, 마음대로 선동하여 조작할 수 없게 되는 탓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온갖 프로파간다로써 각 인간존재들의 ‘自己의 哲學’을 조작해대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류문명이 高度化될수록 더욱 惡化될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개돼지 群衆’의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깨어나서 공부하여 ‘자기의 철학’을 保有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존재들은 출생 이후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결코 ‘개돼지 군중’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중국과 미국 사에에서 覇權競爭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후손들에게 韜光養晦를 강조하였다. 도광양회는 ‘빛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다.
만약 ‘덩샤오핑’의 遺言처럼, 중국이 섣부른 패권경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歷史는 무수한 變數에 의해 조작되기 마련이다.
‘시진핑(習近平)’이 등장하여, 이렇게 성급한 패권경쟁을 시작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다보니 중국은, 오랜 세월 끝에 찾아온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상황에 있다. 아무래도 중국의 미래는, 과거 蘇聯의 前轍을 밟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인접국의 상황은, 대한민국이나 북한 그리고 일본 등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昨今에 벌어지고 있는, 韓日 무역전쟁이 그러하다. 물론 이는, 역사적 배경을 갖는 현상이다. 日帝强占 역사에 대한 怨恨이, 反日 種族主義를 부추기는 것이다.
여기서 怨恨이라는 감정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원한 감정은, ‘니체’의 주장처럼, 고작 奴隷道德으로서나 작동한다.
現下 빨갱이 정치권력의 프로파간다에 휩쓸리는 ‘개돼지 群衆’의 감정상태는 여실히 怨恨이다.
이러한 怨恨의 集團意識과 集團無意識에 의해 발현되는 도덕은 奴隷道德이며, 그러한 ‘떼거리 윤리도덕’이 실현하는 法體系는, 無法的 妄想에 의해 작동하는 虛張聲勢이기 십상이다. 당최 哲學이 없는 法體系의 作動인 것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하는 道德的 法律的 상황들은, 妄想的 奴隷道德이 아니라, 嚴正한 法律道德에 의해 인식되고 판단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의 선동질이나 조작질에 놀아나는 ‘개돼지’로서가 아니라, 현실세계에 ‘實存하는 個人’으로서 판단해야 한다.
法哲學的 理想이 현실세계에서 정립된 대상은 憲法이다. 구체적인 각 法律들은 법철학적 측면보다는, 현실세계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법학적 측면이 강조된다. 따라서 國家의 國民으로서 마땅히 헌법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憲法은 추상적 언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最高一般法이기 때문에, 헌법이 직접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며, 憲法精神을 위배하는 하위 법규를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입법부가 새로운 법규를 제정하도록 하고 있다. 憲法精神에 위배되는 법규는, 일반적으로 법원에 따라 효력이 상실된다.
그러나 憲法裁判所가 있는 국가에서는,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심사할 것을 청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심사하고 있다. 헌법의 제·개정 절차는, 일반 법률의 제·개정 절차보다 까다롭다.
이러한 憲法精神을 정립해내는 학문체계가 곧 法哲學이다. 그런데 법철학적 전통이 日淺한 대한민국의 경우, 최근 대통령 탄핵 사건을 경험했다. 이는 헌법적 사건으로서, 지극히 법철학적 판단이 요구되었다.
그런데 그 憲法的 判決에 대한 國論은 분열되었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도 헌법정신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저 旣得權勢力의 프로파간다에 煽動당하는 ‘개돼지 群衆精神’이 작동할 따름이다.
‘法哲學(philosophy of law)’이란, 법의 本質과 淵源 등을 해명하기 위한 개념과 이론을 만드는 철학적 연구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哲學이 취하고 있는 기초이론에 입각하여, 법의 개념, 본질, 이념, 효력 등을 비롯하여, 법과 사회, 법과 국가의 관계의 근본문제를 다룬다. 즉, 올바른 法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모색하는 法哲學은 법과 관련된 철학이다.
이는 自然法과 實定法 등의 ‘法學(science of law)’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現行法律이나 外國法律을 직접 대상으로 하지 않고, 법의 근본 원리를 탐구의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2. 자연법

‘自然法(natural law)’은, 人爲的이 아닌 自然的 성질에 바탕을 둔, 普遍的이고 恒久的인 법률 및 규범을 의미한다.
實定法에 대비되는 법 개념으로서, 실정법이 민족이나 사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에 비해, 民族·社會·時代를 초월해 永久不變의 普遍妥當性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사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특히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실정법과의 관계에 대해 많은 異見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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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실천이성비판 도덕의 계보, 윤리학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08-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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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은 무엇인가


1. ‘윤리학’과 ‘노예도덕’

대한민국의 倫理學은, 朝鮮王朝 시절의 歷史的 慣性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500여 년 넘도록 朝鮮民衆을 抑壓했던 그 윤리학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을 억압하고 있다.
朝鮮王朝의 윤리학은 철저히 실패하였고 해체되었다. 그런데도 조선왕조가 멸망한 후, 韓民族에게 윤리학다운 윤리학은 없다.
日帝强占期의 倫理나 道德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左右 이데올로기 ‘쌈질’을 하던 시절은 어떠하며, 6.25 전쟁, 4.3 사건, 5.18 사건, 세월호 사건, 대통령 탄핵 사건 등의 상황에서는 어떠했는가.
21세기 지금 이 순간까지도, 倫理道德은 ‘利益과 戰爭’의 侍女일 따름이었다. 非但 우리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人類史에서 倫理道德은 늘 그러했다.
그래서 ‘近代的 個人’으로서 인간존재들은 법률에 좀 더 의지케 되었다. 고작 奴隷道德쯤으로나 작동하던 道德主義의 역사적 弊害를 익히 체험한 탓에, 차라리 法律主義에 의지코자 하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은 어쩐지 도덕주의를 법률주의보다 선호한다. 적어도 法律的 强制에 의해 統制당하는 것보다는, 道德的 良心에 의한 抑制가 좀 더 그럴듯하다고 여기는 탓이다.
예컨대 서양세계에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주장하는 ‘德(arete)’을 목적한다든지, ‘실천이성비판’에서 주장하는 인간존재 내부의 絶對命令을 좇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自律의 상태를 추구한다. 때문에 자율적 양심은 더욱 여러모로 具色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실천이성비판’은, 啓蒙主義의 완성자로서의 칸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도덕의 원천은 ‘自律(Autonomie)’, 즉 意志의 自己立法性에 있다.
자율은 곧 ‘自由(Freiheit)’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近代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는 핵심 개념인 自由는, 칸트에 의해서 철학적 토대를 얻으며, 그 점에서 ‘실천이성비판’은, 바로 근대철학의 기초를 닦은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인간존재의 本性은, 당최 윤리도덕으로써 良心的으로 통제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 사례로써 쉬이 검증된다. ‘倫理道德的 抑制’가, ‘法律的 統制’보다 인간존재에게 적합했다면, 이미 인류는 지극히 윤리적인 문명을 실현했을 것이다.
더욱이 國內政治의 場에서는, 윤리도덕이 그나마 억제력을 가질 수 있지만, 國際政治의 jungle에서는, 윤리도덕은 고사하고, 國際法마저도 별다른 통제력을 지니지 못한다.
예컨대, 國家 間에 國益의 衝突이 발생하였을 때, 결국은 軍事的 暴力에 의한 戰爭으로써 勝敗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은, 저 먼 古代로부터 現代에 이르도록 전혀 달라진 바 없다.
우리나라의 서양윤리학 도입은, 1924년 경성제국대학 윤리학과의 성립과, 1938년 金斗憲의 ‘윤리학개론’ 출판이 嚆矢이지만, 한국윤리학의 역사와 전통은 儒佛仙의 思想史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의 윤리사상은, 근본적으로 儒佛道의 經典에 뿌리박고 있으며, 서양 윤리학의 이론보다는, 그리스도교의 교세확장에 따르는 그리스도교적 윤리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윤리학은 실상 有名無實하다. 기존의 윤리학은 죄다 실패했고 해체되어버렸으며, 정작 현실세계를 작동시키는 것은 法律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자기의 旣得權的 利得을 목적하며, 윤리도덕을 법률보다 우선하는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현혹함으로써, 旣往의 법률마저도 훼손하는 실정이다.
종래의 윤리학이 개인적이며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 있었다면, 현대윤리학의 괄목할만한 중요한 특징은 ‘實踐的 倫理學(practical ethics)’ 내지 應用倫理學의 擡頭라고 말할 수 있다.
1990년대 윤리학의 새로운 동향은, 이론적인 規範倫理學에서는, 담론적 방법을 중시하는 構成主義的 倫理學(Schwemmer), 言語話用論的 윤리학(Apel) 및 意思疏通윤리학(Habermas)이 활발히 논의되고, 發生윤리학(Krings), 契約論的 윤리학(Rawls), 합의에 의한 도덕론(Gauthier) 등이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최근의 理論倫理學의 연구동향에서 특기할 것은, 권리와 의무에 중점을 두는 논의보다, 책임에 중점을 두는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과, 他者를 중시하는 現象學的 倫理學(Levinas)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천적인 應用倫理學에서는, 특히 생명공학 및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파생하는 생명윤리의 문제들, 가령 인간복제, 인간과 동물의 교잡배, 유전자조작식품의 부작용, 인간게놈연구 등을 다루는 生命倫理學에 관한 연구가, 학계뿐만 아니라 정부차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전자매체기술의 발달에 의해 파생되는 사이버테러, 사이버 명예훼손과 사생활보호 등은 크게 주목을 받고 있으며, 생태학적 윤리학과 과학 및 기술윤리학에 관한 논의도, 자연 및 인간의 위기문제를 폭넓고 심도있게 다룸으로써, 윤리학의 관심을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시키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시도가 있으나, 지금 이 순간에 이르도록 별다른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윤리학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존재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것은 ‘法律主義 倫理學’이라고 할 것이다.
순수한 윤리학의 무수한 시도가, 죄다 별다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체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윤리도덕에 어떤 기대를 갖는다는 것은 무모하다. 차라리 感性이 철저히 배제된 ‘법률주의 윤리학’이 여러모로 타당하다.
人類史의 거대한 체험을 思慮한다면, 이제는 憂鬱한 ‘도덕의 계보’를 극복하고서, ‘위버멘쉬의 윤리학’이 작동할 수 있는 시공간을 실현하여, 영원한 회귀를 모색하여도 妥當하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그러한 시공간은 실현된 바 없으며, 향후에도 그러한 실현가능성은 당최 五里霧中이다. 그러니 차라리 ‘윤리도덕의 虛無孟浪함’보다는 ‘법률의 明白함’이 합리적이며 효율적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우, ‘법률의 명백함’마저도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조작에 의해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돼지 群衆’들은 여전히 허망한 윤리도덕을 渴求한다. 참으로 蒙昧한 노릇이다.
‘倫理學(ethics)’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道德哲學(moral philosophy)이라고도 불린다. 영어의 ‘ethics’는 ‘ethos’, ‘moral’은 ‘mores’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윤리학에 관한 이론은, 처음에 종교적인 敎說의 형식에서 나타났다.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종교의 모든 경전 가운데에는, 神 또는 聖人의 교훈으로서 인간의 도덕적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전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윤리학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이와는 달리 고대 중국의 儒學은 오히려 倫理學이었으며, 이것들에 대표된 사상은, 그 후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로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어, 독자적인 倫理學史를 형성하게 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서, 기존의 도덕은 대체로 인간존재 스스로를 主人의 상태로 陶冶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奴?의 수준으로 一貫하는 상태이다. 그러한 윤리학의 수준을 극복코자 한 것이, ‘니체’의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論辨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現實世界의 道德을 主人道德과 奴隷道德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주인도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自發的 肯定에서 성장하고, 자기 스스로 價値를 설정하며, 스스로 善과 惡을 결정하는 자의 도덕이다. 따라서 주인도덕에서 ‘좋음(gut)’과 ‘나쁨(schlecht)’의 대립은, ‘高貴함(vornehm)’과 ‘輕蔑함(veracht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반면 奴隷道德은 復讐心, 怨恨勘定, 즉 反動的 集團本能에서 성장한다. 가치를 스스로 설정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것 전부에 대해 죄다 否定하고 解體할 뿐인 자들의 도덕이다.
따라서 奴隷道德에서 ‘善(gut)’과 ‘惡(bose)’의 대립은 ‘위험하지 않음(ungefahrlich)’과 ‘위험함(gefahrlich)’의 대립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同情이나 憐愍에 대한 勸告 등은, 노예도덕의 표식이다. 이 두 가지 도덕은, 고도로 혼합된 문화체계 안에서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영혼 속에서도 공존하고 침투하며 중재되고 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이, 유대인의 복수심이 고안해내었던 奴隷道德의 지반 위에서 성장했다고 판단한다.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소위 말하는 도덕적 가치라는 좀더 작은 영역에서는, 주인도덕과 그리스도교적 가치개념을 가진 도덕과의 대립보다 더 큰 대립은 찾아낼 수 없다.
후자는 徹頭徹尾 병든 토양에서 자란다. 복음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그려내는 생리적 유형들과 똑같은 유형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반대로 로마적이고, 이교적이고, 고전적이며, 르네상스적인 주인도덕은, 제대로 잘 되어있다는 것에 대한 표현, 상승하는 삶에 대한 표현, 삶의 원리로서의 힘에의 의지를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그리스도교 도덕이 본능적인 부정을 하듯이, 神, 彼岸, 脫我 등의 개념은, 한갓 否定일 뿐이다.
반면에 주인도덕은 본능적으로 肯定한다. 주인도덕은 자기의 충만함을 사물들에게 나누어준다, 그것은 世界像을 神聖化하고 아름답게 만들며 合理的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교 도덕은, 사물의 가치를 빈곤하게 하고, 창백하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어버리며, 세상을 부정한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욕지거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세계의 反響인 근대의 가치체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과 존경 없이, 단지 시장터 같은 사회적 삶에만 가치를 두는 반동적 힘을 발견한다.
니체는 근대세계를 노예도덕이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근대세계를 허무적 세계로, 近代人은 終末人으로 이해된다.
니체는, 주인도덕을 통해서, 삶을 자기극복을 통해 조형시키는 강한 의지, 많은 욕구들의 긴장적 대립들을 제어하는 능력, 긍정적 자기긍정과 자기가치의 느낌을 새로운 善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善한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의식 속에서, 자기극복의 덕을 갖고 있는 자가 된다.
이런 인간은 곧 고귀한 인간, 귀족적 인간, 귀족적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곧 ‘차라투스트라’가 찾던 강한 자이며, ‘위버멘쉬’的 존재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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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환각의 세계 : 마약의 특징과 종류

도서정보 : 마약ABC | 2019-08-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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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痲藥, 영어: narcotic)은 향정신성 의약품의 출물로서 환각과 중독을 일으키는 알칼로이드만을, 즉 "아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마약이다."라고 말한다. 일반인들은 대부분의 향정신성 약품 및 중독성이 있는 알칼로이드 모두를 일컫는 말로 사용한다.

즉 한국에서는 관례적으로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으로서 이를 사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가 있다고 인정되는 물질로 분류되지 않은 민간제조약과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등을 말하며.대부분 진정쌍떡잎식물군에 속한 식물이기도 하다.

일부 대한민국에서 마약으로 분류 된 물질 중에서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등 의학적인 목적으로도 쓰이지만, 일반인이 마약을 복용할 경우 신체에 손상을 가하고 중독 증세와 함께 심하면 사망을 유발할 수 있어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환자가 아닌 이상 젼혀 효과가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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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도서정보 : 서한영교 | 2019-08-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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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집사람, 남성 아내, 시시한 일상을 살아내는 시민…
삶을 반짝이게 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연대기

조한혜정 교수, 김현 시인 추천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열렬히 응답하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간 남성 페미니스트의 고백록

『두 번째 페미니스트』는 저자 서한영교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물으며, 삶의 작은 단위부터 구체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일에 대해 풀어간 책이다. 시적 언어에 경도된 문학지망생이 눈이 멀어가는 애인의 곁에 머무르기로 하고, 100일간 아기를 품에서 키우며 돌봄을 도맡는 ‘남성 아내’로 변화하기까지, 그는 자기 안의 여성성을 발견하고 키워나갔다.
너무나 확실했던 남성의 세계가 점점 불확실해져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언어에 자주 불끈거리게 되면서, 편하게 살았던 세계를 뒤집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간 저자의 고백이 이 책에서 펼쳐진다. 동시에 여성과 두루두루 우정을 나누며 언어의 미세한 오류들을 점검하기 시작한 남성 페미니스트의 성장기가 담겨 있고, 수유하는 애인의 곁에서 애간장을 태우며 한철을 보낸 사랑의 기록, 속싸개 위에 아이를 눕히고 최상의 섬세함을 다해 자장가를 불러준 육아 일기가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저자는 그의 어머니, 이모, 친구와 동료 중 절반인 여성들과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해, 남성적 동일성을 위해 억압해야만 했던 자신의 여성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오류를 끌어안은 채, 정체성으로서의 격렬한 페미니스트라기보다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열렬히 응답하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애썼다. 첫 번째 사람을 지키고 선 두 번째 사람으로서.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출산 후 침대에 누워 회복하고 있는 아내의 눈빛을 잊지 않기 위해, 젖을 먹다 잠에 든 아가의 귀밑머리를 잊지 않기 위해, 썼다. 기도가 아니면 안 되는 순간들을 위해 썼다. 몸에 열이 펄펄 끓는 아가 머리맡에서, 먹은 걸 모두 게우고 있는 아내를 화장실 문밖에서 기다리면서 썼다. 이 기록의 혈관 속에 기억의 혈액이 떠돌고, 기도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_프롤로그



육아를 함께하기 위한
집사람들의 크고 작은 생활의 실험들

저자는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도 곧잘 했고, 적당히 욕을 섞어 말할 줄도 알았고,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별 어려움 없이 지냈다. 그의 세계가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열아홉 살이던 2001년부터였다. 온갖 욕설이 난무했던 박남철 시인이 쓴 ‘욕시’를 보고 나서는 며칠간 온몸이 쿵쾅거리는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페미니즘이 저자에게 “들이닥친” 이후부터 당연하고 마땅하게 여겼던 이 세계의 추악함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 불편하고 이상한 세계에서 너무도 편하게 지냈다는 사실이, 여성은 이상한 세계 속에서 계속 상해가고 있는데 남성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징그러웠고 매스꺼웠다.



그 이후로 나는 대체로 불편해졌다. 축구경기가 시작되고 축구팀을 이끌던 한 작가가 능숙하게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경기에 처음 참가한 나를 두고 “빨리 안 뛰어? 뭐 하는 거야 새꺄!” 나는 대개 불편해졌다. 그런 수컷들의 살기 어린 승부욕이 불편해졌다. 나는 대체로 불쾌해졌다. 속옷이 비치는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예 벗고 다니지. 왜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입어. 저런 애들이 진짜 밝히는 애들이야.”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예 나 먹어주세요, 광고를 하는구나.” 친구의 솟구친 말이 불쾌해졌다.
왜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하는 걸까. 부인들은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야 한다는 세상의 말을 당연히 여기며 왜 아침부터 한 상 차려내야 하는 걸까. _17쪽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나의 삶을 바꾸지 않겠다는 변명으로 삼지 않고”, 저자가 정의하는 집사람들(집을 근거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애인, 아이)과 리듬을 맞추기 위해 집사람 회의를 하고, 시간과 역할을 분담해 가사노동을 함께한다. 아이도 집사람으로서 가사노동의 몫을 다할 수 있게, 밥을 다 먹고 나면 같이 설거지를 하고, 아침 청소 시간에는 물걸레를 쥐여주고 빨랫감은 세탁기에 넣게 한다.
자본주의 아래 명랑함을 잃지 않기 위해 ‘자본주의 비무장지대’라는 문패를 집에 걸어두었다. 선물, 공유, 생산이 저자와 집사람들을 떠받치는 세 가지 경제원칙이고, “지구에 돈만 벌러 오지 않았다.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 시를 살아내겠다.”가 집사람들의 받침 문장이다. 한 달에 77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 임금 노동을 하며, 직접 생산할 수 있는 것은 만들어 쓴다. 텃밭을 꾸리고 실을 잣고 천을 짠다.
이러한 집사람들의 크고 작은 생활의 실험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식은, 최소생계에 대한 불안을 덜어내고 적당한 임금노동 속에서 육아를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작은 아르바이트들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일해서 한 달에 77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 번역, 광고 카피라이팅, 기업의 스토리텔링, 속기, 잡지사 보조 에디터 일들을 돌아가며 했다. 일감은 무조건 일주일에 하루만 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었다. 그다음 조건은 재택근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말이 좋아 재택근무지 사실 계속해서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해 일한다는 조건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아이가 이제 막 걸어다니기 시작했기에 집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_242쪽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과, 수많은 타자들(LGBTQ,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게 도와준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러 가지 실험과 모험을 겪어나가면서도 여전히 저자는 흔들린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남성으로서 “다시 한 번 더” 실패할 것임을 예견하고, 두 번째 페미니스트로서 “평생 거듭”해야 하는 실패 속에 있어야 할 운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관통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관계의 정치학이자 자유의 형이상학이며 사랑의 변증법인 것이다.
내면에 존재하는 여성성과, 수많은 타자들(여성, LGBTQ, 장애인)과 함께 살 수 있게 도와준 것도 페미니즘이고, 아이를 돌보며 생명의 질감을 새롭게 배우게 한 것도 페미니즘이었다. 살림을 돌보고 일상을 돌보면서 작고 시시한 것들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 것도 페미니즘이었다.
그래서 그는 ‘구체적으로’ 삶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한다. 혼인 의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임신/출산/육아/가사노동을 둘러싼 젠더 질서를 어떻게 뒤집을 것인가? 습관적으로 쓰는 젠더 용어 중에 반드시 고쳐야 할 낱말은 무엇인가? 지구에 해를 덜 끼치는 생활용품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소비를 덜할 수 있는 생활의 목록들을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볼 수 있을까? 등등.
그에게 페미니즘은 작고 구체적이어서 더욱 반짝이는 스케일로 확장한다. 씨앗을 심고 흙을 가꾸는 일, 실을 잣고 천을 짜는 일, 방바닥을 반짝반짝하게 닦는 일, 100일간 아기를 품에서 키워내는 일, 임신한 애인의 변화를 좇으며 아버지로의 근력을 다지는 일, 팽목항과 광화문에서 울부짖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 청소년들, 탈학교 청소년들과 함께 글을 읽고 써내려가는 일, 어머니가 기록해둔 가계부 속에 스며 있는 생활의 혼잣말을 기록해두는 일……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은 날마다 반복했을 때에만, 그 반짝거림을 만날 수 있다. 어쩌면 그 반짝거림은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박수소리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감히, 우리라고 말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남성의 젠더 규범을 파격하며 “감히, 살아내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가볍게, 춤추듯, 반복하며, 실패하며, 조금씩, 앞으로, 한발씩, 그렇게. 페미니즘은 언젠가 도달해야 할 세계의 이름이 아니다. 물음과 시도와 행위 속에서 늘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 추천사

“이 책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페미니스트 생활사’가 존재하는지, 존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예시가 될 것이다.” - 김현 시인

“서한영교 시인은 눈이 멀어가는 애인의 곁에 머무르기로 했고 돌봄을 도맡는 ‘남성 아내’가 되기로 했다. 강함이 아니라 (취)약함을 선택한 그는 남성적 동일성을 위해 억압했던 자신의 여성성을 찾았고, ‘여성스러움과 게이스러움과 장애인스러움을 긍정’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다.” - 조한혜정 교수


◎ 책 속에서

나의 세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남성으로 살아왔던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금이 한번 가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_16쪽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운명이란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평생 거듭”해야만 하는 실패 속에 있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_24쪽

우리는 서로에게 ‘집사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집을 근거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집을 길들일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 바로 집사람. _66쪽

일요일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서 앉아 바느질을 할 참이면, 너무 평화로워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 되고 만다. 이 반복의 파토스, 한 땀 또 한 땀의 에로스. 산모 팬티에, 배냇저고리에 아이의 이름을 바늘로 적고 나니 입에 바늘구멍이 났는지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_85쪽

젖이 도는 기분은 어떤가요. 젖이 차는 느낌은 어떤가요. 정말 핑핑 하고 도는 느낌이 있나요.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느낌의 세계에 초대받고 싶습니다. _84쪽

매일매일 미역국을 끓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미역국 장인이 될 기세다. 미역국 끓는 소리. 들깨미역국, 홍합미역국, 쇠고기미역국, 북어미역국, 꽃게미역국, 닭고기미역국. 분명 나는 미역국 장인이 될 태세를 완벽히 갖추었다. _110쪽

나도 이렇게 아버지의 품에 안겨 긴 새벽을 소낙소낙 건넌 적 있겠지. 나도 이렇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침 모양으로 가랑가랑 잠든 적 있겠지. 나도 이렇게 품을 키워가며 아버지가 되어가는 거겠지? _117쪽

집밥을 매일같이 차려낸 어머니를 요즘 자주 떠올린다. 나는 어머니의 수고만으로 차려지는 집밥을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다, 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겪고 있는 탓이다. _121쪽

반복되는 집안 살림과 하루 세끼 밥상 차림은 굉장한 체력을 필요로 했다. 허리가 나갈 것 같고, 손목이 쑤셨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 열을 세기도 전에 곯아떨어졌다. 100일 쯤 익히고 나니 본격적으로 집사람,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갖추어나갔다. _124쪽

품에서 젖이 도는 것처럼 가슴이 따뜻하다. 사랑한다, 행복하다는 말을 가장 나중에 쓰고야 마는 나 같은 사람이 요즘은 나도 모르게 사랑해, 행복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품의 세계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_158쪽

돌봄이 “사회생활의 필수 원리”로 받아들여져 “돌봄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을 기획”하기 시작할 때, 돌봄은 ‘돌아보다’, ‘보다’, ‘돌아버리다’를 포함한 천 가지 지층을 가진 두꺼운 낱말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이 낱말을 끝끝내 아끼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_163쪽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돌아본 그 자리에 아가의 비릿한 똥냄새가 있다. 아기의 침과 음식물이 얼룩져 있는 옷가지가 있다. 코고는 소리와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가 있다. 젖 맛을 풍기는 아내의 브래지어가 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더 빠는 걸레가 있다. 내 사랑하는 집사람들이 있다. _179쪽

분홍색 티셔츠를 하나 사서 자주 입고 다닌다. 자주색 원피스를 자주 입고 다닌다. 아이에게도 젠더 규범에 맞추어 옷을 입히지 않는다. 빨간색 베레모를 씌워주고, 모로코에서 선물받은 원피스를 입힌다. 누군가에게 놀림받으면, 남의 외모평가 하는 거 아냐! 라고 대답하라고 슬쩍 일러준다. _226쪽

남자니까, 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다. 남자답게, 라는 말은 지워버리기로 한다. 남자라 해야 하는 일과 여자라 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준다. _226쪽

집안일은 비트다. 반복되고, 동일한 시간에 거의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 이것이 내 삶에 음악성을 부여하는 근간이 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아가 아침밥을 차리고, 빨래를 갠다. 7시에 아침밥을 먹이고 8시까지 설거지, 청소, 걸레질, 정리/정돈을 끝낸다.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집을 두드리며 하루의 비트를 만든다. _228쪽

아기가 나오니 정말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보다는, 마음을 다해서 아이와 아내를 돌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가능하면 육아휴직을 써. 1년 동안 쓰는 게 어려우면 최소한 100일이라도 써야 해. 아이는 물론 아내에게도 100일 동안은 전폭적인(!) 돌봄이 필요하더라. 딱 100일 만이라도! 나는 그 100일 동안 정말 대단한 경험을 했지. 고민 너무 많이 하지 말자. _241쪽

차상위계층 신청하러 주민센터에 갔다. 배우자는 시각장애인, 나는 실업자, 아이 한 명. 이렇게 쓰고 나니까 조금, 우울해졌다. 국가는 나를 기분 상하게 했다. 서류를 쓰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다. 자동차 없음. 부동산 없음. 유산 없음. 생각보다 없는 게 많았다. 없는 게 많은 나에게 국가는 1년에 8만 원씩 문화활동비를 주겠다고 했다. 정부미를 할인해서 제공해주겠다고 했다. 통신비, 전기세를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사회보장 서비스를 먼저 이용하게 해준다고 했다. _247쪽

저는 애인의 젖 앞에서는 언제나 두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젖을 무는 느낌, 젖이 나가는 느낌, 젖이 차는 느낌을 저는 늘 궁금했지만 언제나 간접적으로, 비유적으로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인간의 힘으로서의 안간힘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_281쪽

내가 실존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남성, 국가, 자본) 세계에서 하나의 반항 행위가 되는 ‘시민과 시인으로서의 시시한 일상’을 떠올려본다. _303쪽

위대한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할 대상을 먼저 창조하듯, 우리가 사랑할 세계를, 우리가 사랑할 공동체를, 우리가 사랑할 사랑이라는 관념을 재창안해나갈 것이다. 사유하는 사랑은 분명, 무모하고 감히, 아름다울 것이다. _304쪽

구매가격 : 14,400 원

다크호스

도서정보 : 토드 로즈, 오기 오가스 | 2019-08-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 도서 소개

『평균의 종말』을 잇는 토드 로즈의 역작!
‘세계 최고’가 아닌 ‘최고의 나’를 만들어 줄 단 한권의 책

우리는 수 세대 동안 판에 박힌 표준화의 법칙을 따라왔다. 남들과 똑같되 더 뛰어나야 하는 법칙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공장의 조립라인을 따라 제작되는 상품처럼,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똑같은 졸업장을 따고 똑같은 진로 코스를 따라야 한다. 더 나은 상품이 되려면 표준 공식을 따르되, 남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고, 세상에서 더 알아주는 학교에 들어가서 졸업장을 따야 하고,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성공을 향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고 있는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리고 모두가 인정하는 ‘표준 공식’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그래야 나의 성취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표준 공식을 따라 성공하는 사람들은 결국 ‘소수’이다. 사회적 강요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고 헌신했지만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초함과 좌절감을 떠안는다. 수많은 책들이 단 하나의 성공의 비법을 알려준다고 유혹하고 있지만, 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극소수일까? 게다가 아무리 이런 표준 공식이 싫어도 달리 택할 수 있는 경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런 경로가 실제로 있다면 어떨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길에서 자신만의 시장을 창출한 이들,
우리는 그들을 다크호스라 부른다

전작 『평균의 종말』을 통해 평균의 허상을 폭로한 바 있는 선두적인 사상가 토드 로즈와 신경과학자 오기 오가스는 그동안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다크호스 프로젝트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해 인상적인 성공을 이뤄낸 사람들인 ‘다크호스들’을 연구해왔다. 『다크호스』는 이 두 사람의 그 혁신적 연구 결과가 담겨 있다. 책에는 성공과 행복 추구를 바라보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향과 지침이 수록되어 있다.
실제로 다크호스들은 표준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행복이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일탈 행위로 보이는 다크호스들의 여정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성공 법칙이 숨겨져 있다. 그것도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다 어울리는 법칙이다. 다크호스들의 성공 법칙은 ‘개인성을 활용해 충족감을 추구하면서 우수성을 획득’하려는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다크호스』에서 알려주는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의 4대 요소를 잘 활용하면 당신만의 고유한 관심사, 능력, 환경에 맞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자율권이 주어진다. 지금 당신이 여정의 첫 발을 떼려는 중이든 진정한 천직을 깨닫고 그 길로 들어설 방법을 찾고 있든 간에, 『다크호스』가 열정과 성취감으로 충만한 삶을 인도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추천사

성공관과 성공 방법에 대한 구닥다리 개념을 박살내다

에이미 커디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프레즌스』『자존감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저자



어느 순간 혜성처럼 나타나 대가의 경지에 올라서며 대단한 업적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의문이 풀린다. 이 책에서는 개인성이 충족감으로 이어지는 이유와, 그 충족감이 우수성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당신이 이미 다크호스이든 무리에서 박차고 나오려는 참이든 간에, 이 책이 성공에 이르는 유익한 로드맵이 될 것이다.

다니엘 핑크 세계적인 미래학자,『언제 할 것인가』『드라이브 』저자



이 책은 구시대적인 성공 경로를 거부하고도 결국 성공을 쟁취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충족감까지 발견한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라고 부추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다크호스 규범을 어기는 것이라며, 새로운 아이디어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설계할 권한이 바로 당신에게 있음을 알려준다.

애덤 그랜트 와튼스툴 조직심리학 교수, 『오리지널스 』『기브앤테이크』저자




◎ 출판사 서평

표준화 시대 성공 공식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목적지를 의식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끝까지 버텨라!’ 우리가 성공을 이루기 위한 가장 확실한 전략으로 여기고 있는 이 메시지는 사실 산업화의 산물이다. 20세기 초부터 공장 중심의 제조업 경제로 전환되면서, 표준화 시대가 도래했다. 조립라인, 대량생산, 조직위계, 의무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상품, 일자리, 졸업장 등등 일상생활의 대다수 체계가 표준화됐다. 표준화 시대에 맞춰, 성공을 정의하는 개념 역시 생겨났다. 일정한 진로코스에 따라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가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개개인의 저마다 특성과 장점은 무시한 채, 목적지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취업, 사회적 지위,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그런데 이 조언이 과연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것일까?
시대는 바뀌었다. 현재는 넷플릭스나 아마존이 개인의 취향에 잘 맞을 만한 영화나 책을 섬뜩하도록 정확하게 추천하는 세상이다. 유튜브와 주문형 TV, 구글의 개인별 맞춤 검색, 개인맞춤형 뉴스 서비스, 각종 SNS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 신기술들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개인화(personalization)’다. 우리 사회는 대규모의 고정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이 주축을 이루는 산업 경제에서 프리랜서, 자영업자, 프리 에이전트들이 주도하는, 점차 다양하고 분권화되는 지식서비스 경제로 전환 중이다.

부와 권력 vs. 개인적 성취,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이러한 개인화 시대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개념은 저자 토드 로즈가 전작 『평균의 종말』에서 정의한 ‘개개인성(individuality)’이다. 2018년 비영리 싱크탱크 포퓰리스(Populace)가 3천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4퍼센트가 사회적 정의에서 성공한 사람을 “힘 있는 사람”이라고 답한 반면, 개인적 정의에서 성공한 사람은 91퍼센트가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라고 밝혔다. 우리 대다수가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개인적 충족감과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성취감을 성공 기준으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개인화된 성공에 대한 요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과학적, 학문적 연구는 여전히 표준화 시대에 고착되어 있다. 1세기가 다 되어가도록 연구자들은 획일적인 성공 개념에만 매달리며 한 가지 의문만을 고집스레 붙잡고 있다. ‘성공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시스템 바깥의 다크호스들, 게임의 규칙을 깨부수다!
『다크호스』의 저자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는 하버드대에서 연구를 하던 중, 위 질문과 살짝 다른 관점을 제기하게 됐다. ‘당신이 성공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들은 학계 관례에 따른 성공 사례가 아닌 비전통적 성공 경로를 따랐던 대가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성공을 이룬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두적인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토드 로즈는 ADHD 장애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무 살에 두 아이 아빠가 되었고, 신경과학자로 유명한 오기 오가스는 대학을 다섯 번이나 중퇴하고 헌책을 팔러 다녔다. 두 저자는 표준 공식을 따르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번번이 실패했던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개인이 저마다의 우수성을 획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스템 밖에서 성공한 대가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다크호스’라 명명했다.
게임의 규칙을 거부하고 성공한 다크호스들은 시스템에 저항하려는 충동적인 반항아거나 남들보다 대범한 성격을 가진 괴짜일거라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대범하고 저돌적인 성격도 있고 소심하고 공손한 성격도 있다. 어떤 사람은 분열 조장을 즐기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화해적 태도를 선호한다. 갑자기 진로를 바꿔 전혀 다른 분야로 뛰어든 대가들도 있었다. 어떤 남자는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혹한의 북부 지방으로 트레킹을 떠났다가 외래 균류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고, 아이비리그 대학원에서 인지언어학을 전공했다가 중도에 학업을 접고 세계적인 포커 귀재로 변신한 여성도 있었다.

하버드대 다크호스 프로젝트 팀이 찾아낸, 성공에 이르는 새로운 개념 정의
그렇다면 틀을 깬 다크호스들이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공통점은 무엇일까? 상당수 다크호스들은 ‘충족감’을 언급했다. 강한 ‘목표’ 의식이나 자신의 활동에 대한 ‘열의’, ‘자부심’을 이야기한 이들도 있었다. ‘이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자처하거나, 조용한 어조로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표현 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다크호스들은 현재의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다크호스들은 의미 있고 보람찬 삶을 지금, 살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생계 문제에서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나게 될 다크호스들을 보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개개인성을 활용해서 실력과 즐거움을 둘 다 얻었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상황을 선택했고, 충족감을 주는 활동에 몰입해 학습력, 발전력, 수행력이 최대화된 덕분에 자신의 일에서 우수성을 키우기에 가장 효과적인 환경을 확보했다. 이렇게 다크호스들은 현대 개인화 시대에 잘 들어맞을 만한 성공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고 있다. ‘개개인성’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정의다.

무명의 다크호스들이 전하는 생생한 교훈, 당신도 당신의 삶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
지금껏 숱한 철학자와 정신적 지도자들이 ‘열정을 따르라’거나 ‘행복을 우선시하라’는 훈계를 해왔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허공에 울리는 무의미한 메아리가 아니라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그것을 성취할 방법을 알아내도록 돕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이다. 『다크호스』는 바로 그런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다크호스』의 최우선적 용도는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의 사용 설명서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의 4대 요소는 남녀를 막론하고 온갖 포부를 품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실제로 검증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세리나 윌리엄스, 스티브 잡스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스필버그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인물, 올림픽 투포환 대표 선수, 스티브 잡스가 처음 고용한 직원 중 한 명, 백악관 정치 책략가였다가 옷장정리 전문가로 변신한 사람, 돈 잘 버는 직장을 걷어차고 서퍼클럽(고급 나이트클럽)을 개업한 경영 컨설턴트 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무명 다크호스들의 성공담은 누구나 아는 유명인의 성공담보다 훨씬 더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다크호스들이 이룬 성공은 특권층이나 엘리트층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성취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다크호스』의 궁극적 목표는 피라미드의 좁은 꼭대기에 홀로 서있는 ‘세계 최고’가 아닌 당신의 삶 전체에서 ‘최고의 당신’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당신이 꿈도 희망도 없는 일에 매여 있거나, 사회생활의 첫 발을 떼려는 중이거나, 방향을 못 잡고 떠도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이 당신을 열정, 목표, 성취감으로 충만한 삶으로 안내할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다크호스 dark horse’는 1831년에 소설 『젊은 공작』의 출간 이후부터 보편화된 말이다. 영국에서 출간된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경마에서 돈을 걸었다가 ‘전혀 예상도 못했던(dark, 알려지지 않은) 말이’ 우승하는 바람에 큰돈을 잃는 대목이 나온다. 이 소설 문구가 빠르게 유행을 타면서, 이후로 ‘다크호스’는 표준적 개념에 따른 승자와는 거리가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뜻밖의 승자를 지칭하게 됐다.

― 16페이지



당신이 구불구불 굽은 길을 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냉소적 반응에 부딪히게 된다. 당신을 누구보다 아끼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는 당신이 순응자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당신의 선택이 세상사에 대한 자신들의 기본 인식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당신이 성공하길 바라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공 방법은 표준 공식에 따라 목적지를 의식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길밖에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57페이지



오늘날의 우리는 자신을 평가할 때 본능적으로 학습, 훈련, 성취 등의 표준화된 방법에 따라 자신의 수행력을 가늠한다. 표준화 계약은 여러 방법으로 당신에게 스스로의 잠재력을 저평가하도록 내몰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당신을 심하게 위축시키는 방법이 하나 있다. 기관이 당신에게 맞지 않는 전략을 채택하라고 다그쳐 놓고선 당신이 쩔쩔매면 그 실패를 재능 부족 탓으로 돌리며 업신여기고 핀잔 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최상의 방법으로 잘 해내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 170페이지



다크호스형 사고방식에서는 목적지와 목표가 명확히 다른 개념이다. 우선 목표는 언제나 개인성을 근원으로 삼는다.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적극적 선택을 통해 목표를 세운다. 반면에 목적지는 다른 누군가의 목표관에 응해 따라가는 지향점이다. 이런 목적지는 대체로 표준화된 기회제공 기관에서 정해놓은 것이다. 목표는 당장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그에 반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은 언제나 의존적이다. 중간에 발생하는 상황이나, 불확실한 상황,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목적지에 가려면 다수의 미래 전략들이 필요하고, 이 미래 전략들은 중간에 개입되는 전략의 결과에 좌우된다.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충족감을 달성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

-220페이지



개인화 시대는 이전까지 유례없는 약속을 보장하는 시대인 동시에 굉장히 위험한 시대이기도 하다. 개인화 없는 선택보다 훨씬 억압적인 위험성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선택 없는 개인화다. 사람들의 개개인성에 맞춰주기만 하고 정작 참다운 선택을 부여하지 않는 시스템은 무제한의 통제력을 지닌 시스템이 된다. 괜한 걱정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말이 아니다. 인터넷의 민주화 촉발 잠재성이 전체주의 정권에 의해 감시·조작·국민 탄압의 유례없는 수단으로 변질된 국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 팔짱만 끼고 방관하다간 서구 세계도 그렇게 변질될 위험이 높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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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적합성을 시행하는 민주주의적 능력주의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당신은 더 이상 기계의 톱니바퀴나 미인대회의 경쟁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참다운 선택을 부여받으며 당신의 삶에 대한 진정한 통제력을 쥐게 된다. 다만, 이렇게 늘어난 권한만큼 책임도 늘어난다. ‘자신의 선택 분간하기’라는 자율권이 주어짐에 따라 충족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리는 결정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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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정을 확실히 실행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제는 충족감이다. 그 외의 다른 기준은 결과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기 때문이다. 충족감은 우리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제퍼슨이 아이디어를 촛불에 비유해서 한 말처럼, 당신의 충족감을 얻는다고 해서 나의 충족감이 줄어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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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인과 그 명예

도서정보 : 임화 | 2019-08-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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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시를 쓰려면 우선 훌륭한 사람(시인)이 될 것이 그 우선적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검을 들고 병사가 전선에 선 것과 마찬가지로 시인은 시를 가지고 전선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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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의 주체와 정신분석 임상

도서정보 : 신한석 | 2019-08-02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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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주체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서 정신분석이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프로이트의 ‘죽음충동’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주된 요소다.

많은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통조림식으로 이해한다. 프로이트에 관한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요약된 프로이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프로이트의 이론은 ‘발전 중’인 이론이 아니라 마치 이미 완결된 이론처럼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실제로 죽기 전까지 연구를 계속했고 죽는 순간까지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죽음충동’이다.
프로이트는 죽음충동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이론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업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늙고 병들었기에 자신의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작업을 이어받아서 계속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분석가가 ‘아는 자’의 위치에 설 때 정신분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의 한계 ‘거세의 암초’는 정신분석의 구조 자체 때문에 발생한다.
(해석의 내용에 관심을 둔) 전통적인 정신분석의 구조를 전복하고 (해석의 형식을 개선한) 새로운 형태의 정신분석을 제시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이 책을 포함해 총 3권의 책을 썼다. 이전의 두 책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작업이 단순히 프로이트의 작업을 반복하는 데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프로이트를 반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프로이트에게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후대 정신분석가의 임무는 그 한계를 돌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정신분석과는 다른 형태의 이론과 임상을 선보인다. 한국의 주류정신분석학에서 정신분석가는 스스로를 ‘아는 자’로 자리매김하고 환자에게 지식들을 부과한다. 해석을 통해서 말이다. 정신분석이론은 프로이트 이래로 계속해서 풍부해져 왔지만, 실천의 큰 구조는 언제나 이것과 같았다. ‘정신분석가는 해석하고, 환자는 해석을 받아들인다.’ 정신분석가가 ‘정신에 관한 전문가’로서 지식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림이다.

프로이트는 이미 이러한 실천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1937년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정신분석이 ‘거세의 암초’에 부딪혔다”고 말한다. 물론 프로이트 이후의 분석가들 역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해석의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프로이트와는 다른 내용으로 해석하려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성욕을 중심으로 해석을 했다면 후대의 분석가는 전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애정을 중심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책은 거세의 암초가 정신분석의 구조 자체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분석가가 아는 자의 위치에 설 때 정신분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여기서는 이와는 다른 형태의 정신분석의 구조가 필요하며, 이것을 위한 이론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즉, 새로운 형태의 정신분석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정신분석의 구조를 전복하고 정신분석을 재발명하려는 점이 다른 책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배울 때, 우리는 오직 사례를 앞에 놓고 그것을 직접 해석해보면서 배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분석가지망생은 분석가가 되기 이전에 분석을 받는다. 개인 분석이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사례로 놓고 그것을 분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에 봉착하면 타인에게 답을 구하곤 합니다. 하지만 문제에 부딪혔다면, 그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아보세요. 물론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 한 번의 경험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입니다.” - 저자의 말 중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은 이 책을 보면서 어떻게 주체를 해석할 수 있는지 하나의 사례를 보게 될 것이다. 일반 독자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의 연구모델을 보게 될 것이고, 주체를 해석하고, 자신만의 지식을 만들어내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 즐거움은 정신분석가의 험난한 삶을 견디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실제로 정신분석 임상이 어떤 이론에 기반하고 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고 싶은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신경증을 앓고 있으면서 그 신경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에게 정신분석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전하고 있다.

구매가격 : 10,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