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시대의 민주주의

도서정보 : 강우진, 김은영, 박충환, 손광락, 안승택, 엄창옥, 육주원, 이소훈, 조태식, 채장수, 채형복, 최인철 | 2022-08-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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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사회참여를 앙가주망이라고 한다. 앙가주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나 사회비판적 글쓰기는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다. [민교협 시사 칼럼]에 필진으로 참가한 교수들은 영문학, 문화인류학, 교육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공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필자들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칼럼을 통해 한국사회와 대학에서 야기되고 있는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교협 시사 칼럼]은 한국의 대학사회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2명의 필자는 아무런 경제적 대가 없이 2년 이상 연속하여 기꺼이 사회참여형 글쓰기에 참여하였다. 민교협 교수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동지이자 동료로서 편집위원장을 맡은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필진을 대표하여
경북대 민교협 시사 칼럼 편집위원장 채형복

구매가격 : 9,000 원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도서정보 : 마르탱 뱅클레르 | 2022-08-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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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함께 읽는 페미니즘 의학 교양서”

“이 책은 성별과 의료를 다룬다. 이 문제는 여성주의 의제를 ‘넘어’
중대한 공중보건정책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의 진정한 의미다.
이 책은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다’라는 입장에 충실한
쉽고 전문적인 여성주의 입문서이자 가정의학서이다.
‘간단한 정보’가 우리 몸을 살릴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읽기를 간절히 바란다.” _ 정희진(여성학자)

“몸에 관한 질문이라면 무엇이든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사춘기부터 갱년기까지,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한 144가지 물음과 명쾌한 답변

“월경통이 더 심해졌는데 계속 진통제로 버텨도 될까?” “약국에서 권하는 피임약을 그냥 먹어도 될까?” “갑자기 열이 확 오르는 갱년기 증상은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월경부터 임신, 출산, 유산, 완경(폐경)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대부분 평생 끊임없이 생리적 변화를 겪으며 자기 몸에 대해 수많은 궁금증을 품게 된다. 일생 동안 겪는 중요한 생리적 변화가 사춘기 하나뿐인 남성과는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여성들이 일상에서 품는 사소하지만 절실한 의문에 답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월경통이나 질염의 고통, 성관계와 피임, 자발적 임신 중단 같은 일은 여자 형제나 엄마, 친구에게도 터놓고 말하기 힘들다. 부끄럽고 불편하다. ‘아래쪽’에 뭔가 이상이 느껴져도 병원에 갈 일인지부터 헷갈리고, 청소년이거나 미혼인 여성은 산부인과에 갈 마음을 먹기가 더 어렵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의지하다가는 잘못된 의학 정보나 의약품 광고에 속아 건강을 해치기 쉽다. 40여 년간 여성들을 돌봐 온 의사 마르탱 뱅클레르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질문들을 집대성한 실용적인 질의응답서이다.

월경부터 섹슈얼리티, 피임법, 자발적 임신 중단, 갱년기 대처법까지
24시간 곁에 두고 찾아보는 내 책상 위의 주치의!

저자 마르탱 뱅클레르는 1972년부터 9년간 프랑스 중서부 도시 투르에서 의학을 공부하면서 방학 동안 간호보조사나 대학병원 조수로 일하기도 하고, 또 간호사 업무와 수많은 일반의 업무를 대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후 1983년부터 25년 동안 르망병원의 자발적임신중단 및 가족계획센터에서 의사로 일하며 여성들에게 피임, 자발적 임신 중단, 유산, 완경 등에 관한 의료 조치를 제공했다. 의학 저널 <프레스크리르(Prescrire)> 기자로도 일했고 여러 편의 소설과 에세이를 출간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에 여성의 건강을 다룬 수백 편의 글을 올리고 여성들이 올리는 질문에 답을 해왔다. 그의 웹사이트에는 하루 평균 8천 명이 방문한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뱅클레르가 진료실과 자신이 운영하는 웹진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받은 질문 144개를 추려 답을 단 것이다. 저자는 각 연령대별로 생겨나는 고유한 질문들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성의 생애 주기 순서로 책을 구성했다. 그리하여 사춘기, 월경, 섹슈얼리티, 피임, 아이를 낳고 싶거나 낳고 싶지 않은 경우, 임신, 출산, 수유, 갱년기, 부인과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여성의 정신질환 등이 차례로 다루어진다.
이 책은 나이, 성적 지향, 임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여성을 위한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시종일관 여성 당사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선택지와 상황에 따라 고려해야 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먹는 피임약과 자궁 내 피임 장치(IUD)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모유 수유를 할지 말지, 갱년기 여성이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게 좋을지 아닐지……. 여성들은 일생 동안 수많은 의료적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러한 선택의 순간 앞에서 이 책이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널리 알려진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으면서 제대로 된 의학 지식을 매우 쉽고 명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또한 논문과 의학 잡지뿐 아니라 소설, 영화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참고 자료,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여성과 남성 생식기의 해부학적 구조나 복잡한 월경 주기도 그림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시해도 되는 말, 외면해도 되는 고통은 없습니다”
가부장적인 편견을 걷어낸 여성의 몸에 관한 진짜 이야기

이 책에서 저자는 여성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여성의 고통을 무시하는 의료계를 여러 차례 강하게 비판한다.

의료진이 월경을 할 때 고통스럽다고 얘기하는 여성들을 믿지 않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일, 월경을 할 때마다 느끼는 부담을 축소하는 일은 절대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월경의 고통을 덜어줘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그 고통을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일은 어느 여성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68쪽)

저자는 “공공 의료 활동이 여성 건강에 개입하는 유일한 목적이 남성의 성적 만족과 국가의 인구통계학적 안정밖에 없는 양” 여성의 몸이 ‘재생산(출산)’과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관리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 당사자의 상황이나 바람을 고려하는 의사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까지 의료계와 의학 산업 전반이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계와 제약업계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과 달리 저자는 독자들에겐 더없이 친절하고 따뜻하다. 본문 어디를 펼쳐보든 간에 “이 책을 쓰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겁을 주거나 죄책감을 지우거나 상처를 입히지 않게끔 최선을 다했”다는 저자의 고백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여성들에게 배운 지식을 나누고 여성의 생리학적 부담을 더는 일은 의사의 사명이라고 단언한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그런 사명을 다하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의 주장은 한결같다. 여성의 몸은 오로지 여성의 것이며 어느 누구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거나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통은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에 머물지요. 고통에는 ‘정상’도 없고, 이를 측정하는 기계도 없고, 바깥에서는 결코 관찰할 수 없습니다(지극히 간접적인 방식 외에는 말이죠). 고통을 알아챌 수 있는 유일한 정보원은 고통을 겪는 당사자뿐입니다. … 설령 많은 여성이 월경을 고통스럽지 않다고 여기더라도, 남성들은 월경이 일으키는 고통에 관해 말을 보탤 수 없습니다. 어떤 고통인지 모르니까요. 일부 트랜스남성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남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여성의 고통을 귀담아듣고 존중하는 것뿐입니다. 페미니즘 슬로건처럼 “자궁이 없는 자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33, 434쪽)

잘못된 정보와 폭력적인 상황이 뒤섞였을 때,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페미니즘 의학 지침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성인 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패널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1.8퍼센트가 진료 과정에서 성적 불쾌감이나 성적 수치심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52.5퍼센트의 여성이 이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로는 ‘진료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가 46.9퍼센트로 가장 높은 응답을 받았다(‘진료 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2013년).
이렇듯 여성들이 진료받는 중에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는 일이 빈번하지만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생겨나는 위계가 은연중에 환자를 압박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의학 지식이 부족해 지금 자신이 겪는 일이 진료 과정의 일부인지 아니면 성적 침해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산부인과에서 여성들이 자주 겪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알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생리를 되살려준다’며 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눈속임일 뿐 아무런 효과가 없다. 또 원치 않는 의료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면 무엇이든 거절할 수 있다. 자신의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고 여기에 어떤 의료적인 개입이 필요한지 알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폭력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 책은 가부장적 편견에 물들어 여성의 몸과 건강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 여성 당사자의 고통과 바람을 무시하는 의료진에게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제대로 맞설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구매가격 : 17,250 원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도서정보 : 윤영호, 윤지영 | 2022-08-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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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폴란드, 벨라루스, 라트비아, 카자흐스탄, 몰타, 튀르키예, 러시아, 영국, 미국…… 다양한 처지에 놓여 있는 세계의 여성 17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붕괴된 일상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직 보통 사람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난민이 된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러시아의 타깃 리스트에 오른 전장의 저격수, 작은 가방 하나만을 들고 급히 탈출한 직장인, 생판 모르는 난민에게 집을 제공한 싱어송라이터, 독재에 맞서다가 고향을 떠난 반전 시위자, 러시아 문학을 경계하는 유명 작가이자 전 정치인, 우크라이나의 장애인 선수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라트비아 올림픽 위원회 임원, 조국 러시아에 맞서 반전 시위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우크라이나를 위한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은 아마추어 화가, 조부모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리우폴 출신 애널리스트, ‘꽃 밀수꾼’ 할머니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재창조한 예술가, 피난하는 와중에도 예술에 헌신한 우크라이나 갤러리의 관장들 등, 전쟁의 비극 앞에 선 여성들의 고통, 슬픔, 의지, 용기, 연대를 엿볼 수 있다.

훗날 우리는 이 전쟁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까? 자극적인 보도와 프로파간다와 가십 속에서 어떤 이들을 놓쳤고 어떤 것들을 외면했고 어떤 점들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을까? 생생한 역사적 기록물인 이 인터뷰집이 그 어려운 질문들에 답해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 하나의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 이 책의 판매 수익 일부는 우크라이나에 기부됩니다.

구매가격 : 12,600 원

연대의 밥상

도서정보 : 이종건 | 2022-08-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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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에 차려진 밥상?
그 진한 맛, 지워질 수 없는 삶에 대하여

‘쫓겨남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 우리의 이웃들과 연대해온 기독교 도시운동단체 ‘옥바라지 선교센터’의 이종건 사무국장. 그가 을지OB베어, 아현포차, 궁중족발, 노량지수산시장 등 철거의 현장에서, 그리고 삶의 주요 순간에서 연대하며 맺은 인연들과 나눠 먹은 밥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된 시간을 버티며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 함께하는 밥 한 끼, 낯설고 슬퍼 보이는 풍경 사이로 따스함이 넘실거리던 순간들을 소개하고, 우리 이웃과 세월의 한숨이 곳곳에 서려 있는 이 도시에서 자본에 맞서 지켜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구매가격 : 11,000 원

성(姓)의 연혁

도서정보 : 조선총독부 | 2022-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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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조선의 성(朝鮮の姓)(1934 간행) 일문 번역본
다행히 1930년 10월 1일 국세조사(國勢調査) 실시를 계기로 국세조사의 부속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성격을 가진 조선 성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상당한 시간과 인원을 들여 비로소 완성되었다.
경비 관계로 상세한 자료를 가까스로 확보하고도 더 세밀한 보고서를 발간하지 못한 점, 특히 전혀 다른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조선 최초의 성씨 조사가 사무와 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행복하다.
이 책의 편찬 자료를 수집할 때 도(道), 부(府), 군(郡), 도(島) 및 읍면(邑面)을 많이 다루고 기술은 본부에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 씨에게 부탁하여 집필한 것입니다.
<서(序) 중에서>

구매가격 : 3,000 원

성(姓)의 종류와 분포

도서정보 : 조선총독부 | 2022-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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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조선의 성(朝鮮の姓)(1934 간행) 일문 번역본
다행히 1930년 10월 1일 국세조사(國勢調査) 실시를 계기로 국세조사의 부속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특수한 성격을 가진 조선 성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고, 상당한 시간과 인원을 들여 비로소 완성되었다.
경비 관계로 상세한 자료를 가까스로 확보하고도 더 세밀한 보고서를 발간하지 못한 점, 특히 전혀 다른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조선 최초의 성씨 조사가 사무와 연구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행복하다.
이 책의 편찬 자료를 수집할 때 도(道), 부(府), 군(郡), 도(島) 및 읍면(邑面)을 많이 다루고 기술은 본부에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 씨에게 부탁하여 집필한 것입니다.
<서(序) 중에서>

구매가격 : 3,000 원

그 여자는 화가 난다

도서정보 : 마야 리 랑그바드 | 2022-08-0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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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향한
근원적인 분노가 가진 힘

 덴마크의 신문 『인포메이션』지는 서평을 통해 “『그 여자는 화가 난다』에서의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분노”라고 말한 바 있다. 작중 “여자”는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그가 인식하는 모든 것에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이때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다. 그의 분노는 생산적인 힘이자 창조와 변화의 원천이다. 이는 감정적일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인 충동이며, 비판적 사고의 한 형태이다. 분노는 “여자”로 하여금 데카르트적 회의론자처럼 끊임없이 이전 입장에 의문을 제기하며 긍정과 부정,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나아가도록 한다(김 수 라스무센).

 “여자는 분노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분노하는 자신을 탓하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가 분노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여자와 같은 상황에서 여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분노하지 않겠는가?” (본문 중에서)

 “여자”의 분노는 모순적이며 자기비판적이다. 분노의 확실한 대상을 찾기 위한 과정중에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회의 일반적 사고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이들을 향했다가, 다음 문장에서는 그들에게 화를 내는 “여자” 자신을 향한다. “여자”를 화나게 한 이들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사고방식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곧이어 “여자”는 “자신을 탓하는 자기 자신”에게 분노한다. 다시 방향을 잡은 여자의 화는 처음과 같이 개개인을 향하기보다 “일반적 사고” 그 자체를, 그리고 그러한 사고를 조장한 사회구조를 향한다. 부정의 부정의 부정을 통해 “여자”의 분노는 한층 객관적이고 분명해진다. 그에 따라 마야 리 랑그바드의 시 역시 점점 더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고, 분노의 참된 대상에 가까워진다.

 “여자는 병원비 때문에 아이를 입양시켰던 미숙에게 화가 난다. 아이를 입양시키지 않으면 미숙이 병원비를 지불할 수 없다는 현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
 여자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입양시키면 병원비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제안을 공공연하게 받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입양 서류에 서명을 하는 미혼모들에게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
 여자는 한국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입양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본문 중에서)

 “여자”는 분노를 통해 사회적 현상에서 그 근원의 문제를 읽어낸다. 미혼모에 대한 화는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입양을 권유한 입양기관에 대한 화로, 그리고 마침내는 이러한 입양기관의 만행에 제동을 걸 만한 법적 조항의 부재를 향한다. 미혼모의 아이들이 상품화되는 현상은 미혼모 개인의 잘못도, 입양기관의 잘못도 아니라 바로 이를 용인한 제도적 문제에 서 연유했음을 “여자”는 한 흐름에 간파한다. 국가 간 입양에 대한 “여자”의 분노는 따라서 그와 관련된 총체적인 사회 문제, 즉 미혼모들에 대한 정책의 부진함, 성교육의 미비, 인종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국제사회의 불평등, 서구적인 가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회에 대한 일침으로까지 이어진다.
 하나의 장시에 가까운 이 작품은 충동적이고 단순한 분노가 범사회적이고 근원적인 분노로 승화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여자는 화가 난다”라는 도입구는 이러한 연상과정을 촉발시키는 도화선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시는 “우리가 신봉하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가족주의, 혈연주의, 순결주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우리의 아이들을 비참의 고통에 몰아넣었는지”(김혜순)에 대한 증언이자 고백(vidnesbyrd)이기도 하다. 저자가 총 137개의 주석을 달아가며 세심히 고증한 내용은 흡사 학술 자료와도 비슷하다. 상세하고 빈틈없는 자료 조사는 그의 분노가 지극히 사실기반적이고 정당하다는 것을, 감정에만 기대는 호소가 아니라 이성의 계몽을 촉구하는 타당한 주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종과 성별, 퀴어와 장애의 차별을 넘어?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점에서 다성악으로 터지는 목소리

 작중 “여자”에게 있어 친가족과의 만남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한국의 가족과 만난 “여자”는 한국에서 입양인으로, 동성애자로, 한국인처럼 보이는 덴마크인, 혹은 덴마크어밖에 모르는 한국인으로, 가부장적인 한국의 가족구성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동안 자국민들이 보지 못했던 한국 문화의 맹점을 향해 세련되고 통렬한 비판을 던진다.

 “여자는 남편에게 여자의 존재를 끝까지 비밀로 간직하려는 언니들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친부모의 태도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언니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자라 말하는 친모에게 화가 난다. 친모는 언니가 네 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니들보다 여자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여자는 친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는 여자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친가족에게 화가 난다.” (본문 중에서)

 단지 그들이 먼저 “여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그들을 찾았던 것”이라는 이유로 친가족으로부터 존재가 부정당한 경험은 “여자”로 하여금 디아스포라적 주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 것은 “단순히 한국으로 되돌아와서 살거나 친부모를 찾”음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조국의 친부모와 언어 및 문화를 상실하고 겪는 자연스러운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심리적 해방감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도입부에 실린 ‘인명 갤러리’는 이러한 경험이 단지 “여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입양인을 비롯하여 갖은 ‘차별’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려 애쓰는 수많은 사람 사이에 공유된 경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여자”의 시점에서 발화되고 있는 이 글은 그들이 쓰는 역사적 기록이며 문학적인 증언이다(김 수 라스무센). 김혜순 시인이 말하듯, 이는 인종과 성별, 퀴어와 장애를 아우르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정점에서 들을 수 있는 다성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디아스포라 주체들의 내면에 갇혀 있던 화가 사회의 문제적 결함을 향할 때 이 화는 자기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생산적인 힘을 발휘한다. “여자”가 말하는 “입양인으로서의 근본적인 슬픔”은 다만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가 부유한 국가의 부유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경제적 권력 구조가 지배하는 세상의 희생양”으로서 겪는 슬픔이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세습되어온 일반적 사고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건설적인 분노이며, 약자가 더이상 희생당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동력이다. 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 분노 대신 희망이라는 감정이 샘솟는다면(『엑스프레센』지), 그것은 이 다성의 화음이 지닌 잠재성을 얼핏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는 가슴속에 솟구치는 울분을 진작에 치유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다. 여자의 양모는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1년 전에 틱낫한을 만났다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라 덧붙였다. 여자가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인지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마음을 열었던 것은 바로 지금이니까.”
_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11,200 원

단단한 지리학 공부

도서정보 : 니컬러스 크레인 | 2022-07-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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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지리학 공부』의 저자 니컬러스 크레인은 발 딛고 서 있는 이 지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가 마주한 거대하고도 복잡한 문제, 즉 빈곤과 불평등, 기후 및 환경 재난, 지속가능성 등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거창한 일을 하거나 어려운 공부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어렸을 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도를 살폈던 것처럼 일단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에 다시 관심을 가져 보자고 독려한다.

이 책은 지구에 사는 시민이라면 꼭 알아야 할 지리학 교양을 담고 있다. 지구 시스템의 네 권역, 암석권·대기권·수권·생물권을 넓게 살펴본 후, 지구 거주민의 대부분이 살고 있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뿐만 아니라, 지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도의 역사를 짚어 보기도 한다. 이 책 한 권으로 지구가 어떠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어떤 변화를 거쳐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간결하고도 명확히 알 수 있다.

구매가격 : 9,100 원

우리의 사이와 차이

도서정보 : 저자명 : 얀 그루에 역자명 : 손화수 | 2022-07-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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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 노미네이트!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가디언》 《인디펜던트》 《커커스 리뷰》가 극찬한
자전적 에세이 걸작! 김원영 변호사 강력 추천!

노르웨이 자전적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얀 그루에의 문학 세계를 응축한 역작
“매력적이고 파격적이고 강력하다! 그의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 ― 뉴욕타임스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오슬로대학교 언어학 교수인 얀 그루에의 자전적 에세이로 여러 언론 매체에서 ‘최고의 논픽션’으로 선정할 만큼 수많은 찬사를 받은 화제의 책이다.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으로는 최초로 북유럽이사회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며, “노르웨이 자전적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라는 평을 받았다. 2018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2021 《뉴욕타임스》《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논픽션, 노르웨이의 최대 독자를 보유한 매체 《다그블라데》가 추천한 문학계 최고 걸작, 《모르겐블라데》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 도서 등 이 책을 수식하는 찬사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척수근육위축증이라는 난치성 유전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리미널 페이즈(Liminal Phase), 즉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의 지점으로, 통과의례 중 가장 상처받기 쉽고 취약한 부분”의 시기를 되돌아보며, 노르웨이에서 부모님과 여동생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 버클리·상트페테르부르크·암스테르담에서 다년간 진행했던 연구 활동들, 대학교수로서의 삶, 이다(Ida)의 연인이자 남편으로의 삶, 나아가 아버지로서의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을 복기하며, 현재의 삶과 병치시키는 형태로 과거를 서술한다.
얀 그루에는 과거의 한 단편을 현재의 틈새에서 불러와 교차하는 방식으로, 기억과 글 속에서는 실재하지만 낯설어진 지 오래인,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를 끌어낸다. 저자는 이러한 형태의 기록을 두고 ‘합리화’이자 ‘재구성’, ‘기억에서 비롯된 빛과 그림자의 놀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에 해제를 붙인 김원영 변호사는 이 점에 주목해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나와 얀의 아마도 중요한 차이를 말한다면,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일 것이다. 나는 지금에 나를 고정하고 시점을 뒤로 돌려 내가 통과한 과거를 본다. 어떻게 장애인인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렇게 존재하는 걸까?”
반면 얀 그루에는 과거라는 속성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의 순간이 우리를 에워싸는 이상 완벽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는 “과거에 이미 이렇게 될 것이라 스스로 인지했다고 믿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표현하며, 그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다지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정의했던 의학적, 유전적, 임상적 언어를 되짚는다. 신체적 한계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연약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견고한 실체’가 되기 위해 저자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저자의 표현대로 슬픔은 그에게서만큼은 “좋든 싫든 일어나지 않은 과거의 일들에 관한 것”이 되었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확실한 요구를 하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써 나간 글은 철학, 영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조앤 디디온에서부터 미셸 푸코, 어빙 고프먼,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성찰을 본인만의 언어로 구축해 갔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이 책이 매력적이고 강력하며 파격적이기까지 한데 “그의 이러한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라고 평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언어학자의 시각에서 독창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우리의 사이와 차이』는 저자의 열한 번째 저작으로, ‘학문적이지만 시적이고, 예민하지만 인내심 있고, 창의적이지만 대단히 분석적’이라는 기존의 찬사를 응축한 듯 그의 문학적 정수를 독창적으로 보여 준다.


★ 2018 노르웨이 비평문학상 수상
★ 2019 노르웨이 논픽션 부문 최초 북유럽이사회문학상 노미네이트
★ 2021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논픽션
★ 2021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자전적 에세이 걸작




◎ 출판사 서평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
‘세상을 되찾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요한 묵상의 기록

“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부류에 속한 존재였다.
하나는 이상한 동물, 또 다른 하나는 낯선 하이브리드 생명체였다.“

얀 그루에는 세 살 때 선천성 근육 질환인 척수근육위축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신체의 근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수축해 가는 진행성 질환으로, 저자는 매일 밤 발바닥 밑에 단단한 금속의 밑창을 고정시키고 정강이는 버팀목을 대고 가죽끈으로 둘둘 말아, 뒤틀리는 등과 다리를 고정한 채 잠들어야 했다. 임상 사례에 비춰 보면, 점점 근육이 소실되어서 스무 살이 되면 더는 두 발로 걸을 수 없고 서른 살이 되면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어릴 적 저자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열이면 열 아직도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표하는 대신 잠깐의 피할 수 없는 침묵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좋아 보인다, 건강해 보인다”라는 말에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여전히 휠체어를 사용하고 가끔은 두 발로 걸을 때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장애로 인해 남다른 시선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의료 기록 더미를 들추어 보며, 행복하고 근심 없이 배움에 열망했던 모습과 주변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경험했던 적대적 충동감, 불쾌감, 반감을 동시에 끄집어낸다. 인식의 형태, 임상적 시선을 지닌 눈빛이 항상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걸 느꼈고, ‘하나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하나의 신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부모님은 그런 그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언제나 ‘얀’일 뿐이란다.”
저자는 부모님이 물려준 의료 기록의 더미에서 차갑고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된 과거의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구성한다. “짙은 금발과 갈색 눈동자를 지닌 3세 소년. 소년은 신경근질환의 임상적 징후를 보이며, 이는 신체의 전 근육 부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병증이라고 생각됨.” 그는 이렇게 하나의 임상적 사례로서 표현되고 보여졌다.
임상적 시선에 기댄 저자 자신의 몸에 관한 해석은 무수한 일상 속에서 흉터와 상처를 돌보는 이야기로 변주해 가고, 미셸 푸코와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이 말하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존재에 대한 역설을 자신의 삶에 빗대어 보기도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했던 경험이 쌓인 몸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시선과 권력은 오랜 역사를 공유한다. 로즈마리 갈런드-톰슨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기관적 시선, 임상적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의 대상이 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해 글을 썼다. (중략) 나의 유기체적 신체와 내가 움직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 사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가 나의 휠체어에 부딪치면 나의 맥박수는 자동적으로 빨라진다. 그것은 나의 본능적인 반응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다듬어지지 않은 실험적 사고 속에서도 냉정한 현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_63쪽


‘유기체적 신체와 기계 사이의 경계’
그리고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사이와 차이』의 원제목은 “나는 당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Jeg lever et liv som ligner deres)”이다. 얀 그루에는 문장 중간중간 “나의 삶은 당신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나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다르다”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이 두 문장은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뜻을 나타내지만, 의미의 본질은 같다.
전자는 ‘꿰뚫어 보듯 날카로우면서도 무심하고 단조로운 이 시선’으로부터 온전한 평범함을 누릴 수 없는 저자의 항변에서 비롯된 문장이고, 후자는 이 세상에는 서로 완벽하게 동일한 질병이 존재하지 않듯, 각 개인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는 신념의 목소리가 반영된 문장이다.
저자는 유년 시절 잔디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언덕 위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에게 가고 싶었지만 다다를 수 없었던 그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깊은 심연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공간, 내가 접할 수 없는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경계와 경계의 지표를 상징하는 로마 시대의 신 테르미누스와 지속적인 접촉을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섹스와 음주, 도취 등에 관해 막연한 상상을 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감추어진 것, 속박되지 않은 것, 비밀스러운 것, 통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해 꿈을 꾸었다.”
기억 속의 분위기는 수치심, 분노, 그늘로 점철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자는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고, 과거의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자 끊임없이 시도한다. 계단이 높게 느껴질 때마다, 문이 좁게 느껴질 때마다, 모퉁이가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다고 생각할 때마다, 작은 감정의 메아리가 부딪쳐 올 때 여전히 테르미누스와 함께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 기록해 나간다. 그리고 스스로가 어떤 ‘우리’에 속해 있는지 바라보기 위해. 언어의 한계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꿈꾸기 위해.


얀 그루에의 성찰은 곧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를 담아낸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나 건물에 들어설 때, 수치심이 자신 안에서 고개를 들곤 한다고 고백한다. “정상에서 벗어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라고 인지하고, ‘무리를 귀찮게 한다는 생각’에 수치심으로 얼굴이 상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반응임을 알면서도 그렇다. 이에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회 구조, 그리고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념어(테라 인코그니타, 헤테로토피아)를 가져와 그 한계를 끌어안는다.
“나의 어깨는 부서졌다. 이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재킷을 입는다”와 같은 문장은 저자가 지향하는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 미지의 세상)’를 반영한다. 저자는 타인(물리치료사)이 자신의 몸에 대해 아는 것보다 많이 알지 못하므로 오랫동안 진행해 온 물리치료를 포기하며 “적어도 내가 스스로 결정한 방식대로 살 수 있었다”라고 회고한다. 이는 매일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탐험하는 ‘희망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마치 현실 너머 다른 세계’를 의미하는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가져와 이렇게 말한다. “삶은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라고. 저자는 늘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려 왔지만, 김원영 변호사가 해제에서 언급했듯이 마침내 저자는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고 규정된 삶을 사는 더 열악한 존재들, 예를 들면 마크 오브라이언의 삶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과거에 내 몸에 새겨진 흔적을 발굴하고, 인정하며, 현재를 끌어안는” 방식이고 나아가 “애초에 나를 규정했던 범주를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어느 초저녁 별빛 아래서 이다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은, 유년 시절의 잔디밭에서의 수치심을 겪었던 경험과는 ‘겹을 달리하는 깊이’와 ‘확장성’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라고 부연한 부분에서는 끊임없이 세상의 조건과 신체의 한계를 조율해 가며 헤테로토피아를 탐험하고자 했던 저자의 열망과 따뜻함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한 편의 걸출한 문학작품으로 읽히는 연유이자, 단지 얀 그루에의 역사뿐만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경험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경험은 회고와 성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는 전혀 다른 실체를 지닌 것으로, 조각난 단어를 연결시켜 주며, 깊이 뿌리를 내린 식물과도 같아서 뽑아 올리면 아픔을 느끼게 된다. 내 몸도 마찬가지다. (중략) 경험은 내 안에서 자리를 잡고, 퇴적물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나는 견고한 실체다.”_225쪽


◎ 추천·해제(일부 발췌)

현재와 과거 사이, 나와 너의 차이
굴복과 극복이 아닌 다른 선택지
? 김원영

얀을 한때 규정했던 척수근육위축증이든 얀보다 1년 뒤에 나를 규정했던 골형성부전증(뼈가 쉽게 부러지는 유전성 질환)이든, 그 밖에 어떤 이름으로 우리를 규정하고 명명하는 범주이든 간에 각 범주의 ‘표본’은 두 가지 길을 간다. 범주적 한계 앞에 온전히 굴복하거나 한계를 극복한 예외 사례가 되거나. 굴복과 극복은 표면상 상반되어 보이지만 모두 임상적 시선에, 다수의 기대에, 권력의 통제 안에서 언제나 예정된 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기에 우리 존재와 삶이 특정한 기준에 의해 분류된 ‘표본’에 그치지 않는 길은 굴복과 극복이 아닌 다른 선택지에 있을 텐데, 이 책의 독자라면 그 길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 지어진 과거와 그 한계를 지나온 현재 사이를 가로지르며, 현재의 힘으로 과거를 다시 쓰기. 과거에 내 몸에 새겨진 흔적을 발굴하고, 인정하며, 현재를 끌어안기. 그렇게 애초에 나를 규정했던 범주를 ‘존재하지 않게’ 만들기. 실제로 얀은 척수성근육위축증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연락을 받지만 이미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특정 질환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과거?현재?미래를 규정당하는 존재가 아 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룰루 밀러가 쓴 유명한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제와 제목을 빌려 올 수 있다. “척수성근육위축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그 질병은, 그 질병이 특정하게 규정하는 삶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는 부당하게 정의된 자신의 몸을, 이를테면 자신의 발목을, 다른 방식으로 분류되고 규정된 삶을 사는 더 열악한 존재들, 예를 들면 마크 오브라이언의 삶을 자신의 일부로 통합할 수 있다.
나는 얀 그루에의 말을 따옴표 없이 직접인용을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의기양양해 지지는 않았다). 아래의 문장은 얀 그루에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공통점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우리가 서로에게 결코 표본이 될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있음을 말해 준다.

내겐 수많은 흉터와 상처가 있다. 나의 발목은 이전과 같지 않다. 현재 나의 왼발 상태는 오른발보다 훨씬 좋다. 매년 돌아오는 겨울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무거워진다. 경험은 내 안에서 자리를 잡고, 퇴적물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투명하지 않다. 나는 견고한 실체다.(225쪽)


◎ 추천의 글

“이 놀라운 작품은 놓칠 수 없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타인과 다른 신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서술한 우아한 명상이지만, 이 글은 나이 든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 기억, 학계에서의 삶, 그리고 사랑에 관한 기록이다.”
― 벌처(Vulture), 《뉴욕(New York Magazine)》

“인간의 본질에 대한 흡인력 있고 통찰력 있는 성찰!”
―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

“노르웨이 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이 책은 조용하고도 멋진 회고록이다.”
―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

“매우 절제된 문장은 눈부시게 지적이며 자기성찰적이다. ‘세상에서 나로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 문장도 덜어 낼 것 없이 모든 문장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영리하고 감동적이며 독창적이다! 낡은 언어와 익숙한 생각들을 닦아 내고 ‘세상을 되찾기 위해’ 자신만의 ‘비밀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요한 묵상의 기록이다.”
― 니치 게러드(Nicci Gerrard), 《가디언(The Guardian)》

“조용히 빛나는 책! 책을 쥔 두 손이 천천히 따뜻해지는…… 예술적 경험!”
― 드와이트 가너(Dwight Garner),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매력적이고 파격적이고 강력하다! 그의 천재성은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에서 드러난다!”
― 마이클 J. 폭스(Michael J. Fox),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그루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은 우연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루에는 이러한 삶의 모습을 지혜롭고도 아름답게 그려 내며 자전적인 삶의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문학계의 최고 걸작으로 추천한다!” ― 《다그블라데(Dagbladet)》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삶을 다룰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루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노르웨이 논픽션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꼽을 것이다.” ― 《보르트 란드(V?rt Land)》

“얀 그루에는 논픽션이라는 장르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해, 비장애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신중하고도 현명하게 그려 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작가의 독창적인 관찰력과 수준 높은 사고를 엿볼 수 있다.” ― 《닥사비센(Dagsavisen)》

“논픽션은 주변의 친지와 가족을 공개하고 모욕을 주다시피 하는 문학의 동의어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 작품성에 관해 저마다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이의 기대를 훌쩍 넘어서는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 《모르겐블라데(Morgenbladet)》, 올해의 최우수 도서 선정

“이 책은 신체의 한계라는 전제 조건과 자아 정체성을 고찰하는 작품으로서, 작가의 적확하고 유려하나 전혀 현학적이지 않은 언어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 《다그 오 티드(Dag og Tid)》

“유려한 언어, 깊은 지식, 광범위한 사고력. 이것은 그루에의 역사인 동시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강렬하고 중요한 책!” ― 《로메리케스 블라드(Romerikes Blad)》

◎ 본문에서

추상적인 관념과 오래된 문헌은 우리가 그것을 몸으로 흡수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어는 신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속의 우리가 누구인지, 또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33~34쪽)

나는 옷을 입기 시작한다. 양말을 신을 때는 특수하게 제작한 양말 집게를 사용한다. 그것은 플라스틱과 끈으로 제작된 물건으로 알렉산데르가 생후 4개월째 되던 날부터 유독 관심을 많이 보인 것이기도 하다. 아이는 그것을 들고 행복하게 두 팔을 휘저으며 심지어는 입에 넣어 먹으려고도 했다. 나는 구두주걱을 이용해 신발을 신는다. 알렉산데르는 구두주걱도 좋아했다. 나는 한쪽 끝에 고리가 달린 집게 손을 이용해 지퍼를 올리고 알렉산데르를 떠올린다. 아이는 이 모든 물건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항상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싶어 했다. 이제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이의 느낌, 아이와의 관계성이라는 의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52쪽)

이 세상에는 서로 완벽하게 동일한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단은 운명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운명이라 믿는 것은 매우 쉽다. 그렇게 믿어 버리는 것이 세세하게 따져 가며 살펴보는 것보다 훨씬 쉽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리되어서는 안 될 것들을 분리하고, 전혀 다른 것들과 혼동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 시선, 꿰뚫어 보듯 날카로우면서도 무심하고 단조로운 이 시선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내게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응시하는 사람들처럼 온전한 평범함을 누릴 수 없다.(62쪽)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이다는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다를 나의 연인이 아니라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생각한 것이다. 나의 일상적 행위를 돕기 위해 고용된 사람. 그 순간부터 악몽은 내 것이 아니라 이다의 것이 되었다.
록펠러에 장애인활동지원사 자격으로 왔던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되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한 번 이상 “이분은 저의 팔과 다리입니다”라는 말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머러스하게 의도한 정치적 주장이다. ‘아닙니다!’ 이다는 이렇게 소리치고 싶어 했다. ‘당신은 이미 팔과 다리가 있습니다! 당신 옆에 서 있는 분은 사람입니다. 나 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의 애인입니다!’(73쪽)

휠체어 사용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이 되는 것을 강요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좁은 길을 지날 때나 묵직한 대문을 지날 때면 협상을 하거나 밀어붙여야 한다. 의도치 않게 나 자신이 방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학교나 저 학교나 할 것 없이)은 학교 건물에 자동문을 설치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른 학생들이 문을 열어 주고 붙잡아 주면 된다고 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도 했던가? 도덕적 경험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덕적 교훈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104쪽)

임상적 시선은 거울 속과 매끈한 표면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 몸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을 바라본다. 그것은 의료진들의 눈에 보이는 바로 그 부분이다. 야윈 두 다리, 뒤틀린 발을 제자리에 잡아 두는 기괴한 형태의 신발, 굽은 두 팔. 나는 그 또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임상적 언어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나는 그것을 회의에서 쓸 수도 있고, 무릎을 꿇고 쓸 수도 있지만, 결코 지울 수는 없다. 나는 적응을 해야 한다. 그 언어의 본질과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삶의 역사를 지울 수는 없듯 그것을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137쪽)

나는 내 몸에서, 상처 입고 뒤틀린 내 발목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 몸을 벗어난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흔적 없는 몸, 그것은 다른 삶을 살았던 몸일 것이다.
그런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몸은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그림자를 내게 드리운다. 나는 겨울이 되면 눈을 감고 스키를 타는 상상을 한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출국 한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 외국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슈트 케이스를 들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가 택시를 탄 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게이트를 향해 발을 옮긴다. 사전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기에 공항에서 택시를 잡고 운전기사에게 내가 가 본 적이 없는 새롭고 낯선 장소로 가 달라고 부탁한다. 눈을 뜬다.(156쪽)

세상 속에서 나와 같은 존재로 살다 보면 계획을 세우는 일이 어느새 일종의 반사작용 또는 자동화된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하다못해 물 한 컵을 마시는 일일지 라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관해 세세히 살펴보거나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문 앞에 계단이 있는지,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사작용은 반복을 통해 나의 성격으로 자리를 잡게 됐고, 나는 매사에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163쪽)

모든 것은 내게 달려 있었다. 항상 그랬다. 수동성 또한 사회적으로 눈에 보이는 태도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행동의 제약이 많지만, 그 때문에 수동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잠시 살았던 것은 이것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 미소 짓는 것을 배웠고, 내 목소리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나는 내 삶을 직접 연출하는 것을 배웠다.(201쪽)

수하물 검색대를 통과한 후, 이다는 다시 나를 홀로 내 버려 두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내가 홀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수동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다를 큰 소리로 부르는 순간,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이다가 당황하고 난처해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비눗방울을 바늘로 터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 비눗방울 속에서는 다른 여느 연인들처럼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느 연인들과는 같을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일 뿐.(209쪽)

나는 수술실에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내게 맞는 의료용 보호복은 있었으나 휠체어를 덮을 만한 보호 덮개는 없었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허락된 사람은 마리였다. 나와 이다의 첫아들을 가장 먼저 보고 안았던 사람도 마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이다가 혼자 있지 않도록 마리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우리였다. 우리는 믿었고, 희망을 가졌고, 계획을 세웠다.(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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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일베들의 시대

도서정보 : 김학준 | 2022-07-1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 책을 ‘안전’하게 타자화된 일베라는 ‘작은’ 서클에 대한 이야기로 읽지 않길 바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문제화된 집단’을 문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삶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 엄기호, 문화연구자(추천의 말에서)

논문 이후 8년,
그사이 일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않았을 것이다

2014년, 온라인에서는 한 논문이 화제였다. 사회학 석사학위 졸업논문으로 김학준이 쓴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이었다. 논문은 일베 게시물 전수를 분석한 양적 방법과 일베 이용자 10명을 심층 인터뷰하는 질적 방법을 아우르며 사회학적으로 일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제시했다. 일베를 악마 또는 괴물로 낙인찍으며 타자화하지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일베’라며 보편화하지도 않는 균형을 유지하며, “가장 성공적으로 체제가 작동했을 때 산출되는 주체”가 바로 일베라는 서늘한 결론을 도출해낸 그 논문은 사회학 관점에서 일베와 같은 ‘문제적’ 온라인 커뮤니티를 연구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는 사이, 데이터 분석계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던 저자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고 정치적ㆍ사회적으로 급변하는 한국 사회를 관찰하며 일베를 다루었던 논문의 확장을 결심한다. “사이버공간 전반에 걸친 페미니즘의 부상과 백래시의 과정에서 이른바 ‘20대 남자’들이라는 새로운(혹은 오래된) 주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역차별’ 담론을 체화한 젊은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와중에 2014년 연구 때부터 예상하기도 했던 다양한 모습들이 실제로 나타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승자 독식의 권력 수호와 혐오 또는 차별의 ‘자유’를 주장하며 그 근거로 ‘공정’과 ‘정의’를 끌어오는 이들의 논리는 2014년 연구를 통해 분석했던 일베의 논리와 매우 유사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커뮤니티 자체로서의 일베에게서 더 이상 과거의 ‘위광’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문제는 일베가 ‘흥하고’ 아니고가 아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디시에서 발원하여 일베가 완성한 혐오의 내용과 표현 방식, 즉 농담의 탈을 쓴 혐오”가 널리 퍼졌으며 그것이 “‘정의’나 ‘능력’ 따위의 말과 버무려져 일베와 일베 아님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여버렸”다는 데 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고인드립’과 ‘폭식 집회’ 등으로 일베가 사회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시기에 일베를 연구했던 사회학 연구자가 오늘날 온라인에서 ‘혐오의 자유’를 말하는 이들의 기원으로서 다시 일베를 이야기하는 치밀한 보고서다.

일베에서 나타난 지독한 혐오의 놀이는
과연 ‘그들만의 것’인가?

도대체 일베는 무엇일까? 일베라는 현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인가? 저자는 이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사이버 유머의 기원과 함께 딴지일보와 디시인사이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베의 계보를 훑는다. 일베가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님을 이해할 때, 다시 말해 일베에서 벌어진 지독한 혐오의 놀이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을 이해할 때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일베 또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자 사이버공간에서 일종의 자본으로 기능하는 ‘웃음’을 논하고, 한국형 밈의 기원으로서 딴지일보식 패러디를 설명하며, 그것을 심화ㆍ발전시킨 곳으로 디시인사이드를 서술한다. 일베가 탄생한 직접적인 원인이 디시의 게시물 삭제 조치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사이 딴지-디시-일베로 이어지는 사이버공간의 간략한 문화사는 일베가 어떻게 사이버문화의 ‘전통’을 나름으로 ‘발전’시킨 커뮤니티인지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혐오의 수치화: 2011~2020 일베 데이터 전수를 분석하다

일베의 계보를 훑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베가 어떤 곳인지를 살펴볼 차례다. 일베는 누가 언제 접속하며, 이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열광하는가? 열광은 언제 가장 폭발적인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일베에 첫 게시물이 올라온 2011년 5월 28일부터 2020년 12월 31일까지 총 81만 1,327건의 게시물 전수를 수집해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진행된 데이터 분석에 대한 논의는 데이터 전처리와 같은 기초적인 설명에서 시작해 시계열 분석과 텍스트 분석으로 나아가며 혐오를 수치화한다. 시계열 분석을 통해서는 월간 일베 게시물 생성량은 얼마나 되는지, 일베가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일일 게시물수가 폭발적으로 많았던 날들의 이유는 무엇인지, 일베의 게시물 생성량 패턴은 어떠한지 등을 보여줌으로써 일베의 겉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텍스트 분석은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일베를 채운 혐오표현들은 전체 게시물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가? 혐오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은 혐오표현이 게시되는가? 이에 대한 다른 이용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어떤 혐오에 가장 열띠게 반응하는가? 9년간 일베를 채운 ‘말’들을 분석함으로써 저자는 일베의 ‘적’이 누구인지 또한 명료하게 식별해낸다.

내부의 타자를 향하는 일베적 혐오

그렇게 도출해낸 일베의 ‘적’은 호남과 여성, 그리고 진보좌파였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근거로, “일베적 혐오는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존재로서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베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극우주의의 선상에 두는 것을 경계하며, 실제 일베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베적 혐오가 어떻게 발화되고 정당화되며 일베 특유의 열광적 상태를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실제 일베 게시물 14건을 사례로 서술되었다. 악셀 호네트가 논한 인정과 무시의 개념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시물 분석은 일베가 타자를 호명하고 혐오를 정당화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그것이 어떻게 일베 특유의 열광과 의례로 이어지는지를 풀어간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베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분노를 논하는 사례 6~10은 일베에서의 혐오가 어떻게 ‘놀이’를 넘어 격렬한 비난으로 나아가는지, 그리하여 어떻게 ‘신상 털기’ 등 실질적인 사이버 폭력으로도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사이버공간의 혐오문화가 예비하고 있는 사회적인 위협을 다시금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의 ‘평범’을 꿈꾸는 이들, 일베를 만나다

일베의 ‘적’을 식별하고, 그 ‘적’에 대한 혐오의 논리를 도출해낸 저자는 이제 실제 그러한 혐오표현을 구사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러 나선다. 저자가 만난 10명의 일베 이용자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2030 남성들이었다. 저자는 일베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며 감정사회학적 이론에 기반한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가 만난 일베 이용자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불안을 토로했다. 하나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따른 불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경제적 위기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친밀성의 영역이 붕괴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한 불안”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안은 저항 행위를 유발하는 분노로 외사화되지 못하고 내사화됨으로써 순응이라는 행위 전략의 선택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불안에 기인한 공포,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들이 사회적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 침잠함으로써 “적극적인 순응과 노력의 이름으로 자기계발(혹은 자기최면)에 몰두”하게 되는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데, 그렇게 퇴출된 공적 분노가 모인 곳이 바로 일베이며, 적극적 순응을 택한 이들의 분노는 혐오로 일그러져 내부의 타자들을 향한다. 끊임없이 사회에 ‘혼란’을 조장하는 좌파/종북에 대한 혐오, 국가의 ‘정당한 법 집행’에 잠자코 ‘순응’하지 않고 감히 ‘폭동’을 일으킨 호남에 대한 혐오, ‘무식’하고 ‘허영’에만 찌들어서 친밀성의 약속을 거침없이 ‘배반’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그렇게 완성된다.

그렇다면 순응은 무엇으로 가능해지는가? 저자는 이들의 분노가 내사화되는 과정에서 ‘평범 내러티브’가 작동한다고 분석한다. 일베 이용자들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평범함’의 범주로 수렴시키면서 삶의 특수성을 최대한 억압해 ‘준비된 사회인’이라는 목표로 재구성한다. 자신이 겪은 끔찍한 과거의 경험을 ‘이겨낸’ 경험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모든 고통을 평범함의 영역으로 재구조화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평범 내러티브가 자신의 고통만 억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나의 고통이 평범한데, 타인의 고통이라고 다르겠는가. 이제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며 “따라서 특별히 말할 이유도, 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평범 내러티브에서의 고통은 그게 무엇이든 그저 내면으로 침잠하여 스스로 삭이면 그만인 개인적 경험이 된다. …… 고통을 들어달라고 ‘징징’대는 것은 스스로가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에 불과하며, 이는 곧 자기경영에 실패한 개인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가 된다.”(258쪽)

여성혐오와 능력주의라는 공통분모
일베만의 문제는 없다

이 같은 각자도생의 윤리는 평범 내러티브와 함께 또 다른 정당화 기제인 능력주의를 만나 패자를 멸시하고 승자를 물신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베의 열광적인 혐오를 설명해주는 기제는 다름 아닌 “승자로서 패자를 멸시하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것이 “어떤 말이나 행위를 ‘일베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직감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하면서도, 불현듯 이렇게 묻는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일베만의 고유한 멘털리티인가?

저자는 일베와 일베 아닌 것의 전형성이 어디서 분화하고 결합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혐오와 혐오 선동을 파훼하는 실마리 또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두 가지 이념형을 분석하고자 한다. 일베의 이념형으로는 2019년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범인 장대호를, 일베 아닌 것의 이념형으로는 일베의 ‘숙적’으로 여겨진 온라인 커뮤니티 루리웹을 놓고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일베 아닌 것의 이념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던 저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베를 분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데이터 분석과 게시물 분석을 거쳐 꼼꼼히 루리웹을 살핀 결과, 나름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며 정치적으로 ‘진보 커뮤니티’를 자처했던 루리웹이, 그래서 어느 커뮤니티보다 앞장서서 일베의 ‘패륜성’을 고발하며 격렬하게 성토했던 그곳 또한 여성혐오와 능력주의로는 일베와 너무나도 유사했다.

혐오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

이 책의 목표는 명확하다. 일베적 혐오의 구조와 기원을 이해함으로써 현재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에 맞설 방법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저자는 일베적 인식의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그런 사회에는 “오직 개인, 그것도 아주 작은 사회에서 맥락 없이 합리적이기만 한 개인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일베에서의 혐오를 사실상 사회에 대한 극단의 냉소로 파악하는 저자는, 이들의 열광을 연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차가운 열광’으로 정의한다. 차가운 열광이란 “‘희생자’인 타자에게는 물론 동료이며 ‘가해자’인 ‘우리’에게조차 냉담한 열광이고, 일베라는 공간 자체는 공적이되 그 구성원들은 사적인 공간에,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머물러 있기에 가능한 열광”이다. 혹자는 이러한 열광과 함께 표출된 일베의 혐오를 그들의 공감 불능성에서 찾지만, 저자가 보기에 일베의 공감 능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들의 공감이 언제나 ‘승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만 응어리진 분노는 사회의 뒷공간이 된 사이버공간에서 격렬하게 표출되었다.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평범 내러티브를 내면화하여 현실적인 순응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일베의 멘털리티를 이루는 핵심이다. 따라서 일베의 혐오는 순응의 ‘의무’를 거부하는 모든 주체와 그들의 저항을 향한다. 여성, 호남, 좌파에 대한 일베의 혐오는 사실상 ‘순응하지 않음’에 대한 격렬한 분노다.

논문으로부터 8년 이후, 혐오 선동으로 지지자 결집을 도모하기에 이른 오늘날의 정치는 일베적 혐오가 ‘정당하다’는 확신을 주며 그에 기반한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란 바로 그런 정치의 시대다. 이 강고해 보이는 혐오 선동을 파훼할 불쏘시개 중 하나로 기능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치일 것이다. 10여 년 전 일베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다시, 똑바로 마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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