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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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도서정보 : 에드윈 H. 포터 / 교유서가 / 2019년 01월 15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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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어!”
전 세계가 경악한 살인사건, 리지 보든 연대기

리지 보든이 도끼를 들어,
엄마를 마흔 번 후려쳤어.
자기가 한 짓을 본 리지,
이번에는 아빠를 마흔한 번 후려치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 용의자 리지 보든
소설,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에 숱하게 등장하는 스토리텔링의 주인공

영화 〈리지〉의 실제 사건
이 책은 1892년 32세 여성이 도끼로 잔인하게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핵심용의자로 지목된 리지 보든 사건을 다룬다. 당시 언론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뉴스를 전국 단위로 신속하게 전달한 최초의 사례에 속했던 이 사건이 대중에게 던진 충격은 매우 컸다. 부부가 피살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그들의 딸이라는 패륜과 도끼로 살해한 잔혹함 외에도, 모든 정황증거상 리지 보든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물적 증거가 없는 탓에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종교계와 여권 운동가들이 총집결하여 리지 보든의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독교도이고 여성이면 살인자도 결백해지느냐는 비아냥과, 물적 증거 하나 없이 무고하고 가련한 여인을 잔인한 살인자로 몰아간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몰고 왔다. 리지 보든이라는 매우 독특한 인물은 지금까지도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 직후 아이들이 줄넘기 놀이를 할 때 즐겨 부르는 동요의 소재로도 사용되었고, 지난 100년간 소설, 영화, 드라마, 음악, 발레, 뮤지컬,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장르는 넘나들며 스토리의 원천이 되었다.

팩트와 해설, 4편의 논픽션
이 책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와 내용인 만큼 리지 보든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기 위해 책과 신문 기사를 포함한 4편의 논픽션을 엮어 1부와 2부, 부록 2편으로 구성했다. 1부는 사건 당시 폴리버 경찰서의 출입기자이자 사건 현장 근처에서 살았던 에드윈 H. 포터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재판 과정까지 성실하고 꼼꼼하게 취재하고 정리하여 이듬해에 출간한 『폴리버의 비극: 리지 보든 연대기』를 번역한 것이다. 포터의 책은 중요한 팩트와 디테일을 제공함으로써 이 사건에 접근하는 데 훌륭한 자료가 된다. 2부는 하버드대 출신의 사서이자 범죄 관련 논픽션 작가로 유명한 에드먼드 레스터 피어슨이 쓴 『살인 연구』에서 리지 보든 1심 재판에 해당하는 부분을 번역한 내용이다. 1부가 사건의 팩트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2부에서는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해설을 만날 수 있다. 부록으로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정리한 존 앨프러스 왓킨스의 『보든 부부 살인 사건 미스터리』, 〈일러스트레이티드 아메리칸〉의 기사 「리지 보든 재판: 전 세계를 경악시킨 가공할 폴리버 암살에 대한 소묘」 두 편을 실었다.

구매가격 : 12,000 원

착한 여자의 사랑

도서정보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14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평범한 불행이 그 일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절대적이고 특수한 일인지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잊었던 순간의 기억들이 돌아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것만 같았다. 너만 그랬던 건 아니야, 속삭이듯이.”
최은영(소설가)

1999 트릴리엄 북 어워드 수상
1998 길러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을 들으며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앨리스 먼로는 이제 한국 독자에게도 그 이름만으로 신뢰감을 주는 작가가 되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착한 여자의 사랑』은 199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작품세계가 한층 원숙해지고 무르익은 먼로의 중·후반기 대표작 중 하나다. 먼로에게 처음으로 길러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이 소설집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트릴리엄 북 어워드까지, 총 세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착한 여자의 사랑』에는 표제작 「착한 여자의 사랑」을 비롯해, 「코테스섬」 「자식들은 안 보내」 「우리 엄마의 꿈」 등 총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1950~60년대 캐나다를 주 배경으로(「추수꾼들을 제외하고는」처럼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있다) 하는 이 소설들에서, 주인공은 대부분 평범한 여자들이다. 이들은 여성들에게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민감하게 감지해내지만,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한다. 앨리스 먼로는 이런 여성들의 삶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사랑, 그 사랑의 모호함, 예기치 못한 길로 인도하는 열정, 격식을 차린 사회의 표면 아래 도사린 긴장과 기만, 그리고 이상하고도 종종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인간의 욕망과 본성을 예리하면서도 명징하게 보여준다.


앨리스 먼로라는 문학적 기적,
그가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색과 통찰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아무렇지 않게 시작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게 전개된다. 그러다 마지막에 흩어졌던 조각들이 한꺼번에 모이면서 섬광을 쏘고 내뿜는다.” _은희경(소설가)

먼로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착한 여자의 사랑』의 소설들도 아무렇지 않게 시작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게 전개된다. 신기한 물건을 소장하는 데 전념해온 박물관을 소개하며 시작한 글은 곧 강둑에서 발견된 한 구의 시체로, 그리고 죽음을 앞둔 젊은 여자를 돌보는 재택 간호사의 이야기로 옮겨가고(「착한 여자의 사랑」), 어린 신부의 이야기로 시작한 글은 수십 년 전 한 섬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재 사건으로 이어진다(「코테스섬」). 어린 손주와 드라이브를 하는 평화로운 장면으로 시작한 글은 난데없는 곳에 도착해 위기에 처하는 상황으로 전개된다(「추수꾼들을 제외하고는」).

먼로의 소설들은 독자들이 예상하는 일반적인 전개에서 벗어나 있다.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흘러간다. 자연스럽게 흘러간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언제나 다른 삶, 다른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삶의 확고한 형태가 확정되기 직전, 어떤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역시 이런 선택의 순간에 놓여 있다. 「착한 여자의 사랑」의 이니드는 자신이 알게 된 비밀과 이제 시작될지도 모를 사랑의 가능성 사이에서 고민한다. 「자식들은 안 보내」의 폴린은 가정과 새롭게 시작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추수꾼들을 제외하고는」의 이브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를 낯선 사람을 도울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나’는 자신이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 그리고 B 부인의 비밀을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그들은 선택을 하고, 모든 선택에는 그에 대한 대가가 따른다. 먼로의 세계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대개 고통, 그것도 만성적인 고통이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성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얻은 그것을 파국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그 고통을 무디게 하거나 유배시키는 요령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_「자식들은 안 보내」 357-358쪽

『착한 여자의 사랑』 속 여성들은, 여성에게 기대하는 전통적인 가치와 그들이 희망하는 새로운 삶 사이에서 갈등한다. 먼로는 정제된 언어로 이런 인물의 심리를 밀도 있게 파고들며 단지 여성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 더 나아가 삶의 본질을 탐색한다.
먼로의 소설은 대개 그 안에서 명확한 결론이나 판단을 유보하고, 그것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결말의 모호함이 삶의 본질을 보다 명징하게 보여주는 듯도 하다. 먼로의 소설을 읽다 그 끝에 도달하면, 이야기가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를 통해 여기에 도달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도 사실 그렇지 않은가. 시작할 때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경로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으니까.


「착한 여자의 사랑」
1951년 이른봄 어느 토요일, 강둑에 놀러 갔던 소년들이 익사체를 발견한다. 사체는 이 마을의 검안사 윌렌스로, 물에 빠지면서 타고 있던 차의 운전대에 부딪혔던 것이 사인으로 밝혀진다. 재택 간호사 이니드는 사구체신염을 앓고 있는 퀸 부인을 돌보고 있다. 퀸 부인은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퀸 부인의 남편인 루퍼트는 이니드와 고등학교 동창.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알은체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언제나 힘들지만, 이번 환자는 유난히 이니드를 힘들게 한다. 숨을 거두기 전 퀸 부인은 이니드에게 깜짝 놀랄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카르타」
캐스와 소녜는 막역한 사이다. 그들은 가끔 같이 산책도 하고, 책에 관한 토론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주 다르다. 심지어 사랑에 대해서도. 캐스는 ‘자신의 삶이 남편인 코타에게 달렸다’고 이야기하는 소녜를 이해할 수 없다. 캐스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아이가 있다. 소녜와 그녀의 남편 코타는 둘 다 미국인이었는데, 기자인 코타가 중공에 방문했었다는 이유로 소녜는 다니던 도서관을 그만두게 되었다. 어느 날 캐스와 켄트 부부는 초청을 받아 소녜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모인 그 모임에서 켄트는 묘하게 그들과 겉돌고, 작은 논쟁을 벌인다. 캐스는 이런 남편이 신경쓰인다. 이날 이후, 캐스와 소녜는 이 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얼마 후 코타는 동남아로 떠나고 소녜는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둘을 위한 작별파티가 열린다. 그 파티에서 캐스는 생각지 못한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코테스섬」
‘나’는 스무 살의 어린 신부다. 최근 결혼을 했고, 밴쿠버의 어느 건물 지하층에 살고 있다. 위층에는 집주인 레이의 부모인 고리 부부가 살고 있다. 고리 부인은 식료품점에 가는 간단한 외출에도 꼭 화장을 하고 구두까지 갖춰 신는 사람이다. 고리 부인은 불쑥 현관문을 두드린다든가, 갑자기 티타임에 초대한다든가 하며 내 삶에 관심을 보인다. 관심이라기보다는 참견에 가깝지만.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생각처럼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고리 부인이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자기가 외출하는 낮 동안 거동이 불편한 고리 씨를 돌봐달라는 것. 내키지 않지만 나는 승낙한다. 고리 씨는 나에게 스크랩해둔 신문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기사 중에 고리 씨가 유난히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1923년에 코테스섬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그는 왜 이 사건을 내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것일까?

「추수꾼들을 제외하고는」
이브는 오랫동안 소원했던 딸 소피와 호숫가 펜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손주 필립과 데이지도 함께여서 더없이 즐거운 나날. 소피가 늦게 합류하는 남편을 마중하러 나간 동안, 이브는 아이들을 데리고 드라이브를 한다. 필립과 외계인 놀이를 하며 트럭을 쫓아가던 이브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라 낯선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위험과 맞닥뜨린다.

「자식들은 안 보내」
한 가족이 밴쿠버섬 동쪽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젊은 아빠 엄마, 어린 두 딸, 그리고 남자의 부모. 젊은 엄마 폴린은 휴가를 보내며 짬짬이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가정주부인 폴린에게 연극 출연 제안은 특별한 것이었다. 비록 아마추어 연극이라 해도. 바비큐 파티에 참석했다가 『외리디스』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디션도 없이 캐스팅되었다. 잔잔한 폴린의 삶에 연극 연습은 활력이 되어준다. 폴린은 점점 연극 연습 시간이, 어쩌면 연출가인 제프리가 기다려진다.

「돈냄새가 진동할 만큼 부자」
부모의 이혼 후 아빠, 새엄마와 살고 있는 카린은 여름방학을 맞아 친엄마 로즈메리에게 온다. 출판사에 일하는 로즈메리는 원고 작업 때문에 저자인 데릭의 집 근처에 트레일러를 마련해 지내고 있다. 로즈메리와 데릭은 최근 원고에 관한 의견 차로 약간 갈등이 있다. 그전에도 몇 차례 이곳을 방문했던 카린은 데릭과 그의 아내 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한다. 데릭과 로즈메리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을 눈치챈 카린은, 지금 네 사람의 이 관계가 유지되려면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논문을 준비하던 ‘나’는 휴식을 핑계로 집에 내려와 있다. 의사인 아빠는 늘 조금 엄격하고 어딘지 뻣뻣한 구석이 있다. 그런 아빠가 일을 돕는 B 부인에게만은 왠지 좀 태도가 다르다. 아빠와 B 부인 사이엔 나에겐 감추고 싶은 모종의 비밀이 있는 것 같다. B 부인이 자리를 비운 어느 날, 드디어 나는 그 비밀이 뭔지 알게 된다. 이것을 아빠에게 반격할 무기로 사용할까, 나는 고민한다.

「우리 엄마의 꿈」
이야기는 ‘내’가 태어난 194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우리 엄마 질은 바이올린 연주자다. 아빠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덕분에 내가 생겼다. 하지만 공군 조종사인 아빠는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아직 내가 세상에도 나오기 전에. 임신부인 질은 아빠 가족의 집에서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낸다.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고, 에일사 고모는 선임하사관처럼 무뚝뚝하고, 아이오나 고모는 신경쇠약을 앓고 있다. 드디어 내가 태어나고, 까다로운 나 때문에 가족들은 애를 먹는다. 내가 아이오나만 따르자, 집에서 늘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아이오나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진다.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이 상황을 답답해한다는 걸, 엄마의 꿈은 여전히 음악을 연주하는 거라는 걸. 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나의 생존, 나의 안녕한 삶을 위해서 과연 누굴 택해야 하는지.


▶ 추천의 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언제나 여자들을 향한다. 호감이 가지 않는,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는, 어딘가 문제가 있고 도무지 행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평범한 불행 속에서 살아간다. 『착한 여자의 사랑』은 여자들의 죄의식, 자기 처벌, 체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상처를 구체적으로 그린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평범한 불행이 그 일을 겪는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절대적이고 특수한 일인지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잊었던 순간의 기억들이 돌아와 내 어깨에 손을 얹는 것만 같았다. 너만 그랬던 건 아니야, 속삭이듯이. _최은영(소설가)

먼로는 논쟁의 여지 없는 대가다. 이보다 더 훌륭한 단편집은 상상하기 어렵다. _워싱턴 포스트

이 놀라운 단편들은, 앨리스 먼로라는 문학적 기적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_엘르

마음을 빼앗는 아름답고 시적인 순간들이 실감나는 이 이야기들에 꼭 알맞은 방식으로 구두점을 찍는다.
_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

탁월하고…… 눈부시다. 주인공들에 대한 먼로의 감각은 체호프의 그것만큼이나 순수하다. _뉴욕 타임스

구매가격 : 11,800 원

소녀와 여자들의 삶

도서정보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1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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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는 이 두번째 작품에서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목소리를 확실히 완성했다.”

앨리스 먼로는 1968년 발표한 첫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부터 절필을 선언하기 전 출간한 마지막 작품 『디어 라이프』(2012년)에 이르기까지, 줄곧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먼로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소녀들과 여자들의 삶’에 주목했고, 본인 스스로가 20세기를 살아낸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누구보다 탁월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1971년 출간된 먼로의 두번째 작품 『소녀와 여자들의 삶』은 그런 먼로 작품세계의 기반을 볼 수 있는 소설이다.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에서 드러나듯 주로 단편소설을 써온 앨리스 먼로이지만, 이 작품은 유일하게 ‘장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1940년대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에서 주인공 델 조던이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델의 1인칭 시점으로 느슨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강에서 개구리를 잡으며 놀던 어린 여자아이가 자의식이 생기고, 첫 경험을 하고, 스스로를 소설가로 인식하고, 결국엔 새로운 삶을 향해 첫발을 내딛기까지 그 내밀한 감정들이 먼로 특유의 통찰력으로 세밀하게 그려진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모든 측면을 그린
앨리스 먼로의 자전적 소설

『소녀와 여자들의 삶』의 배경은 온타리오주의 작은 타운 주빌리로, 주인공 델 조던은 그곳으로 이사하기 전 어린 시절을 타운과 시골의 경계에 자리한 플래츠 로드에서 보냈다. 아빠는 여우농장을 했고 엄마는 시골 농부들에게 백과사전을 팔러 다녔다.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먼로와의 유사성 때문에, 그리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이 책은 때때로 먼로의 자전적인 경험이 크게 반영된 소설로 읽히곤 한다.
소설 속 델은 집요한 호기심과 남다른 감수성으로 “망명자 혹은 스파이처럼” 타운을 돌아다니며 주변 사람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한다. 특히 엄마를 포함해 델 자신의 삶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여성들의 삶을 주의깊게 지켜본다. 20세기 초중반 여성의 삶이라는 그리 폭 넓지 않은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이웃 베니 아저씨와 잠깐 결혼생활을 한 매들린이 있다. 딸 하나를 둔 미혼모로 ‘보호자’인 오빠에 의해 베니 아저씨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 매들린은 폭력적이고 비사교적이며 무엇보다 아내로서의 의무를 전혀 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들린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비교적 독립적이고 깨어 있는 델의 엄마가 있다. 불가지론자에 직접 차를 몰고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는 엄마의 세상은 “심각하고 회의적인 의문들, 끝이 없지만 얼마간 손을 놓은 집안일, 으깬 감자 속의 덩어리, 정착되지 않는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는 델에게 “내 생각엔 처녀들, 여자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분명히 그래. 하지만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건 우리 손에 달려 있어”라고 충고를 건네지만, 엄마에게 늘 반감을 갖고 있는 델은 엄마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스스로 관찰하고 경험하고 판단하고자 한다.
한편 그 반대쪽 끝에는 대고모들의 삶이 존재한다. 평생을 오빠 크레이그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그늘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기는 대고모들은 “일과 유쾌함, 편안함과 질서, 복잡하고 형식적인 예절”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살며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고 믿는다. 야망을 갖고 능력을 드러내는 삶보다 좋은 기회를 겸허히 거절하는 삶을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며, 똑똑한 조카손녀 루스가 대학 장학금을 받고도 집에 남기로 하자 그 결정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델이 좀더 자라고 엄마와 함께 타운 주빌리로 이사하면서 델의 삶에는 또다른 여성들이 등장한다. 델과 친구가 된 나오미와, 델의 집에서 하숙을 하는 펀 도허티가 그들이다. 결혼적령기가 훌쩍 지났지만 결혼하지 않은 채 오페라를 듣고 춤을 추러 다니고 연애를 하는 펀 도허티의 삶은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치부된다. 특히 나오미처럼 결혼을 목표로 하는 여자들은 펀 도허티 같은 ‘노처녀’들에게 일말의 연민도 보이지 않는다. 델과 나오미는 어린 시절 매일을 함께하는 단짝이었지만 델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나오미가 상업반으로 옮기며 자연스레 소원해진다. 나오미가 유제품 공장에 취직하고 결혼생활에 필요한 살림을 사 모으며 다음 단계로 생각되는 삶에 착착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델은 자신이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절대,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남자들과 똑같이 할 거라고.”

평범하게 산다는 게 뭘까? 그건 유제품 공장 사무실에 취직한 여자들의 삶을 의미했다. 결혼과 출산 때의 선물 파티, 리넨과 냄비와 팬과 은제 포크, 그런 복잡한 여성적인 질서를 의미했다. (중략) 다른 길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절대. 샬럿 브론테가 되는 편이 더 나았다. _본문 349쪽


“나는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델의 종조부 크레이그는 카운티의 역사와 가계도를 기록하는 취미가 있었다. 눈에 띄는 업적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집안의 모든 사람의 생일과 혼일과 사망일을 신중하게 순서대로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일상생활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날씨가 어떻다는 묘사, 달아난 말에 대한 설명,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 델의 대고모들은 크레이그의 이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가 죽자 그 기록 전체를 델에게 전달한다. 델이 글쓰는 재주가 있으니 언젠가 이 작업을 끝마쳐달라고. 하지만 어린 델은 크레이그 종조부의 기록이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델이 보기에 그 글은 “완전히 죽은 것, 아주 무겁고 진부하고 쓸모없는 것”에 불과하다. 자신에게 그 기록을 맡기는 대고모들을 보며 그들이 “작가의 유일한 의무가 걸작을 내놓는 거라고 믿는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우스워한다.
“작가의 유일한 의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델은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아이였다. 도서관에 가면 행복했고 인쇄된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나가고 시와 소설을 써 매트리스 밑에 보관하면서 “내가 내 삶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델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30∼1940년대, 그러니까 앨리스 먼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기에 캐나다에서, 그것도 온타리오주의 작은 타운에서 작가가 되겠다고 진지하게 마음먹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도 캐나다에는 변변한 출판사가 없었고, 있었다 해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책을 수입해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시절에 델은, 그리고 먼로는 이미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결국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이다.

크레이그 종조부의 기록을 무가치하게 여기던 델은, 훗날 시간이 좀더 흐르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내가 언젠가 주빌리에 대해 탐욕스러운 갈망을 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크레이그 종조부가 게걸스럽고 잘못 이해한 상태로 그만의 역사를 써나갔듯 나 또한 훗날에 뭔가를 쓰고 싶어질 거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고.

훗날 나는 목록을 만들어보려 했다. 중심가를 따라 늘어서 있던 가게와 업체와 그 주인 들의 목록, 가족의 성과 묘석에 적힌 이름과 그 밑에 새겨진 묘비명의 목록. 라이시엄극장에서 1938년에서 1950년까지 상영했던 영화의 대략적인 목록. 전몰장병기념비에 적힌 이름(2차대전 때보다 1차대전 때가 더 많았다). 거리의 이름과 거리가 배열된 형태.
우리가 그런 작업에서 정확성을 바란다면 그건 고통스럽고 미친 일이다.
어떤 목록도 내가 원한 것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한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은 모든 것, 말과 생각의 모든 층위, 나무껍질이나 벽에 내려친 모든 번개, 모든 냄새, 길바닥의 움푹 팬 모든 곳, 모든 아픔, 모든 균열, 모든 망상을 가만히 한곳에?찬란하고 영원하게?모아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_본문 453∼454쪽

델이 원했던 목록, 쓰고자 했던 모든 것에서 우리는 결국 앨리스 먼로가 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정확히 포착된 인생의 한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상 속 에피파니의 순간들. 그런 것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계획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벅찬 일이겠지만, 그래도 소설 속 델은 그 “진정한 삶”을 향해 한 발을 내디딘다. “집을 떠나고 수녀원을 떠나고 애인을 떠나는 영화 속 여자들처럼” 짐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라탄다. 환상도, 자기기만도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 추천의 말

이 소설에 대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슬픔과 매혹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이 소설에서 소녀와 여자들이 느끼는 삶의 좌절감을 찾는 데 주력한다면, 엄청난 만족감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앨리스 먼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델이 바라본, 온갖 ‘원자’로 ‘조합’된 삶의 지도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한다. 델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녀는 욕망을 봤고, 상실을 봤고, 사랑을 봤고, 죽음을 보았다. 앨리스 먼로는 이것들을 과장하거나, 농담이나 아이러니 혹은 알레고리로 장식하지 않는다. 앨리스 먼로는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욕망은 욕망이고, 상실은 상실이며, 사랑은 사랑이고, 죽음은 죽음이라서 그것을 다른 식으로 발음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으며, 거기에는 그저 삶이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바로 소녀와 여자들의 삶이. 소녀와 여자로서, 델은 한 번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그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쩌면 당신은 때때로 속절없이 멈춰 서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에, 비로소 당신은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방식으로 소녀와 여자들의 삶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내에는 각자 한 번쯤 마음속 깊은 곳에 그려봤었던―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추잡하면서 아름다운, 혹은 아름다우면서 추잡한 세계의 모습을 또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 나는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슬픔과 매혹을 이해시키지 못할까봐 걱정했지만, 이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저 이 책의 첫 장을 펴고 문장을 읽기 시작하기만 하면 되니까. 손보미(소설가)

어린 시절에만 스치듯 지나가는 감수성, 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에피파니를 천재적으로 포착해냈다. 인디펜던트

먼로는 이 두번째 작품에서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목소리를 확실히 완성했다. 가디언

등장인물은 우리에게 현실의 인물로 다가오며, 연민이 더해져 더없이 생생해진다. 뉴요커

먼로는 일상적인 것에서 비일상적인 것을 폭로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뉴스위크

구매가격 : 11,100 원

사랑의 잔상들

도서정보 : 장혜령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14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이로써 그녀는 사랑의 글들을 소유하게 됐다.” _김연수(소설가)

―십 년에 걸친 어떤 사랑의 기록



“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모든 능력이 활발하게 깨어 즐거움의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든다. 또 좋은 에세이는 첫 문장부터 우리를 사로잡아 삶을 더 강렬해진 형태의 무아지경으로 빠뜨린다”라고 말한 건 버지니아 울프다. 그 에세이가 십 년에 걸쳐 쓰인 사랑에 관한 이미지들이라면 어떨까. 손에 잡힐 듯, 그러나 잡았다 생각하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아름다움과 노스탤지어, 아득한 눈부심과 고요함이 연상되지 않는지. 그만큼 보편적이고 또 개별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특정 관계를 결정짓는 사랑에서부터, 한 권의 책이나 혼자 들어선 영화관에서 느껴지는 안온한 느낌으로서의 사랑, 지하철 안에서 만난 어린아이의 뒷모습에서 돌연히 반짝인 빛 같은 사랑까지, “캄캄한 삶 속에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지도와도 같”은 그것.


장르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문장을 쌓아온 작가 장혜령의 첫 에세이 『사랑의 잔상들』을 출간한다.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은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2011년 팟캐스트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만들어 가치 있는 책과 작가를 소개해왔다. 소설 리뷰 웹진 ‘소설리스트’에서 소설을 리뷰했으며, 지금은 EBS <지식채널 e>에서 대본을 쓰고 있다. 작가와 독자를 잇는 낭독회, ‘개와 고양이의 라디오 워크숍’ ‘지금 이곳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와 같은 창작워크숍과 글쓰기 강의를 지속해왔다.





언제나 사랑이 먼저였고, 그것을 깨닫는 일이 뒤늦게 찾아왔던 것처럼…

―소설과 시, 그림과 영화, 무엇보다 삶에서 맞닥뜨린 ‘사랑의 잔상들’



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의 사람, 총 일곱 개의 챕터로 이 책은 구성되었다. 산티아고와 프라하, 몰리노 등 익숙하고 또 낯선 지명들, 보르헤스와 배수아, 이원, 존 차, 카슨 매컬러스의 책과 앤드루 와이어스, 베이컨과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낸 골딘과 마이클 애커먼의 사진, 레오 카락스와 장뤼크 고다르,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가 더불어 등장한다. 작품이 있고 그에 따르는 인상이 이어지는 에세이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방식으로. 예술가들이 생산해낸 작품은 장혜령의 시선과 만나는 순간, 이해가 필요한 텍스트가 아닌, 작가 자신의 몸과 문장으로 통과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이미지로 인화된다.



작가의 글쓰기는 밝은 탁자 위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과의 단절, 고독이라는 깊은 어둠을 거쳐서만 비로소 그것은 나타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장들은 단숨에 우리의 시선을 낚아채지만 어떤 문장들은 서서히 그 속에 스며들 것을 요구한다. 그런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우리가 견뎌야 하는 것은 어둠이라는 시간이다.

이처럼 어둠은 사랑의 권리이고 꿈꾸는 사람, 이미지를 보는 사람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십사 시간 불 켜진 상점들로 가득한 빛의 도시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를 파기한다. 이곳에서는 거꾸로 이미지의 소멸, 사랑의 소멸이 일어난다. (145쪽, 페드로 코스타, 파스칼 키냐르,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을 다룬 글 「어둠이라는 권리」에서)



대부분의 여성과 여성적 자아를 지닌 이들에게 자신의 성은 출발점과도 같다. 성과 사랑의 문제에 있어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그에 관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직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폭로하려는 열망을 갖는다. 그들은 그들 서사의 관찰자가 되지 못한 채 자전적인 글을 쓰고 말한다. 그런 행위를 통해 억압에서 잠시나마 해방되고자 한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경계를 확장하는 자유를 향한 시도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할 이유가 없거나, 그 단계를 마친 이들은 그보다 보편적인 주제를 탐구한다. 반면 어떤 여성(적 존재)들은 매번 비슷한 연애에 실패하는 사람처럼 비슷한 사랑 이야기에 새롭게 사로잡힌다. (134~135쪽, 조지아 오키프, 카트린 밀레, 엘프리데 옐리네크를 다룬 글 「자신을 내맡기려는 열망」에서)



일상에서 마주한 평범한 사람들, 여행지에서 만난 가깝고도 멀었던 사람들에 대한 단상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바라본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의 한 컷 한 컷은 장혜령이 포착한 순간 세상으로부터 미묘하게 단절되어 그만의 이미지로 남는다. 가까웠던 그러나 멀어진 사람과 주고받은 대화 역시 시간의 질서를 따르는 서사라기보다는 이미지에 가까워 보인다.

자정이 넘은 시각,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던 기억의 소환을 살펴보자.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가 탄 차량이 그 앞에 섰다. 함께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식당에서 멈추었을 때 아이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자폐를 앓고 있다는 걸 안 건 그후의 일이다. 침묵 속에서, 어둠 속에서 차는 더 달렸고 그가 마주한 이미지는 ‘비탄에 빠진 동정녀 마리아와 그녀의 사내아이’였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장면을 향해 거슬러올라갔다. 그곳에서 우리 자신을 존재하게 했던 기원에 관한, 단 하나의 장면을 마주했다.

비탄에 빠진 동정녀 마리아와 그녀의 사내아이.

어쩌면 우리는 우리에게 예비되어 있는 사랑의 이미지를 우리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애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았던 걸 기억한다.

사랑의 기원에 그것이 있다.

그것만이 전부인지도 모른다. (56쪽, 「끝과 시작」에서)



하나의 명쾌한 선으로 그려지지 않는, 섬광과도 같은 이미지들과 기억의 편린들이 어쩌면 우리 삶을 구성하는 것인지 모른다. 순식간에 나를 뒤흔들고 떠나버리는 빛들. 작가는 그 빛들을 ‘사랑의 잔상들’로 여기며 그것이 없었다면 살아갈 수 있었을까 묻는다. 그 빛의 의미를 당장에 해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십 년에 걸쳐 쓴 글을 다시 쓰고 고치며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작가는 그 내용 또한 ‘에필로그’에 따로 정리해두었다.





우리는 낯선 이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잡았던 손을 놓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꺼이 원했던 건, 손을 내미는 것



어떤 문장이 쓰였다 지워졌다 새로 쓰이길 거듭한 흔적을 따라가보면, 삶에는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고 그것을 인정한 뒤 비밀로 남겨둬야 하는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러나 간절히 다가가려 했던 시도는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 쓰기의 전부다. 사랑의 전부다. 당신의 뒷모습에 다가가, 당신에게 닿고자 했던 그 손. 그 손이 전부다.”(214쪽, 「에필로그: 흔적은, 있다」에서)

출간이 기약되지 않을 글을 쓰고 또 고쳐온 십 년의 시간을 돌이키며 작가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내 힘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살면서 자꾸 질문이 되어 돌아왔다. 비록 답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이 희귀한 사랑의 순간들을 어딘가에 잘 간직해두고 싶었다”고. 자기만이 아는 고독 속에서 독백과도 같이 쓴 글들이 가닿을 곳은 어디일지. 우리 삶의 비밀은 비밀대로 간직한 채 그가 마련해둔 자리에 들어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지.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면 시작될 일. 거기엔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사랑이 있으며, 당신이 있으며, 운명이 있다.”





● 추천의 글

“환자는 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병을 앓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연인은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겪는 사람이다. 사랑은 늘 생성 혹은 소멸중이다. 그렇게 사랑은 어딘가를 향하는 길 위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뭔가를 보거나 듣게 된다. 그것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하고, 사진이기도 하고, 또 노래이기도 하다. 사랑의 이야기, 사랑의 영화, 사랑의 사진, 사랑의 노래…… 그것들이 죄다 혼잣말을 닮은 이유는, 거기 길의 끝에서는 누구나 혼자이므로. 고독을 겁내지 않는 씩씩한 마음으로, 십 년에 걸쳐 혼자 쓴 글 위에 다시 겹쳐 쓰고, 또 고쳐 쓴 글들이 이 책에 실렸다. 이로써 그녀는 사랑의 글들을 소유하게 됐다. 하지만 이 가난한 마음은 왜일까? 우리가 사랑의 글들을 소유하고 나면,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 사랑은 모두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회복기에 맞는 바람처럼 은은하고 낯설고 서늘한 책이다. _김연수(소설가)

구매가격 : 10,200 원

독설의 팡세

도서정보 : 에밀 시오랑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14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간 조건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냉소와 허무의 지성

절망과 허무의 철학자,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산문가인 에밀 시오랑의 잠언집 『독설의 팡세』가 출간되었다. 시오랑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고, 으젠 이오네스코, 미르치아 엘리아데와 함께 루마니아 문학의 새로운 희망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다가, 1937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에 머무르며 프랑스어로 글을 발표한 독특한 이력의 문필가이다. 그는 생전에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졌고 “프랑스어를 가장 아름답게 구사하는 산문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인간의 비극적 조건, 삶에 대한 허무와 절망을 특유의 아포리즘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해내어 생트 뵈브 상, 콩바 상, 니미에 상 등 각종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격리시킨 채 집필에만 몰두하며 은둔의 삶을 살다 간 작가로도 유명하다. 『독설의 팡세』는 그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두번째 책으로 1952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이 책은 그가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과 마찬가지로 출간 직후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나 대중적 인기와 판매로 이어지지는 못하다가, 시간이 흘러 작가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20여 년 뒤(1976년) 문고판으로 재출간되어 뒤늦게 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흔치 않은 사연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삶의 본질을 근원까지 파헤치는 역설과 희망의 아포리즘

『독설의 팡세』는 「언어의 위축」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장 「공허의 근원에서」까지 모두 10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들은 극도로 절제된 단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작가의 심오하고 통찰력 넘치는 정신세계와 삶에 대한 대담하고 치명적인 진실을 엿볼 수 있다. 동서양의 역사, 철학, 언어의 특성, 사랑에 대한 고찰은 물론, 셰익스피어, 괴테 등의 문학작품,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에 대한 감상, 서양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폐해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관심은 우리 삶의 중심부와 변두리를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그런데 제목 ‘독설의 팡세’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을 제시하는 방식이 심각하면서도 동시에 우스꽝스럽다. 그는 자신의 사고를 매우 집약적이고 분절된 형태로 제시한다. 첫 문단부터 마지막 문단까지, 고뇌와 웃음이라는 이중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강박관념이 등장한다. 그는 반항이 유머에, 일종의 평온함에 자리를 양보하는 가운데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해 두루 살핀다. 그러나 그는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사고를 극단까지 펼침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지극한 열정과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치명적이고 차가운 진실을 똑바로 대면하는 용기와 사색의 결과물을 정확하면서도 우아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읽는 사람에게 강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독설의 팡세』는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의 열매를 품위 있는 문체로 풀어놓은 요즘 보기 드문 철학적 잠언집이다. 투신 자살을 하려고 강으로 가던 사람이 잠시 책방에 들렀다가 시오랑의 단상들을 읽고 자살 의지를 꺾었다는 일화가 말해주는 것처럼, 고된 삶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열정을 끌어올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삶이란 근본적인 오류를 논하기 이전에 죽음으로도, 그리고 시의 세계로도 교정할 수 없는 저질 취미에 속한다.” “열정을 느끼는 대상이 막연한 것일수록 그 열정은 인간을 파멸시킨다. 내 열정의 대상은 권태다. 나는 그 막연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동양은 꽃과 체념에 기울어져 있다. 우리는 그 동양과 대립하여 기계와 노력, 그리고 그 광적인 우울함을 내세운다. 서양의 마지막 발악이다.” “자신의 적들을 더이상 선택하지 않는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적들로 만족하는 순간, 젊음은 끝난 것이다.” “자살에 대한 반박: 우리의 슬픔에 그리도 기꺼이 봉사했던 이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 “심한 시련 속에서는 복음서보다 담배가 우리에게 더 효과적인 도움이 된다.” “사랑의 기술이란, 아네모네 꽃의 조심스러운 사려에 흡혈귀 같은 기질을 결합할 줄 아는 것이다.” “바흐가 없었다면 신학의 탐구 대상은 없었을 것이다. 천지창조는 허구이며, 시효를 상실한 공허였을 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시간의 감촉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진정한 음악이 아니다.” “전쟁에 대한 책―클라우제비츠의 책―은 레닌과 히틀러의 애독서였다. 그런데도 이 세기가 왜 유죄를 선고받았는지 자문하고 있는가?” “인간이라는 종족이 그토록 성실하게 어리석지 않았더라면 한 세대를 넘어 버틸 수 있었을까?” ―본문 중에서 “20세기의 가장 풍부한 정신의 소유자.” 르 피가로 “시오랑은 전혀 다른 사고를 음미하는 희귀한 기쁨과, 경쾌한 문체를 천천히 읽는 기분 좋은 독서의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장 프랑수아 르벨(철학자)

구매가격 : 7,000 원

그래도 우리의 나날

도서정보 : 시바타 쇼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14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제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


139쇄 발행, 189만 7700부 판매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린 청춘,

그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보면…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시바타 쇼의 장편소설. 일본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960, 7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11월 기준 139쇄 발행, 189만 7700부의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현대소설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의 붕괴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잃어버린 ‘청춘의 삶’, 그리고 그들의 ‘그 이후의 삶’을 담았다.





“있지, 우린 잘못된 게 아닐까? 처음부터.”

―죽거나, 죽지 못하거나, 죽지 않은 인물들의 후일담



1960년, 스물여섯 나이에 데뷔한 작가 시바타 쇼가 자신이 통과한 대학시절을 담아 서른 살에 쓴 장편소설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나(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무엇에 홀린 듯 ‘H전집’을 구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후미오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며 반년 뒤 취직이 내정된 지방의 대학으로 약혼녀 ‘세쓰코’와 함께 내려갈 예정이다. 언뜻 안온해 보이는 삶이다.

‘H전집’에는 옛 소유자의 장서인이 찍혀 있었는데, 그 도장이 낯익었던 세쓰코를 통해 그 책이 도쿄대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던 ‘사노’의 것임이 밝혀진다. 사노는 한때 지하 군사조직에 참가할 정도로 극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1955년 무장투쟁을 지향하던 일본 공산당이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 결의’ 이후에 평화혁명으로 노선을 전환하자, 학교로 돌아와 정치투쟁과 선을 그은 채 평범한 대학생활을 이어간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고, 다른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세쓰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좇던 후미오는 사노가 자살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죽기 직전 쓴,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를 입수한다. 그 편지를 읽은 후미오와 세쓰코는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데…

사노의 편지에는 1950년대 일본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고민과 치열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졌던 유일한 것을 완전히 잃어버렸단 생각과 함께 찾아온 상실감과 절망감, 다른 한편에 솟아오른 모종의 안도감에 휩싸인 사노는, “혁명을 두려워하는 당원.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가”라고 자조하며 스스로를 배신자라 자책한다. 그후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조용한 삶을 살고자 결심한 사노. 그러나 그는 점차 출세가도를 달리며 스스로의 삶이 모순되었다는 혼란에 빠진다. 그 혼란 속에서 마주한 ‘죽음을 앞두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질문. 결국 ‘나는 배신자다!’라는 답밖에 내릴 수 없으리라 깨달은 사노는 지독한 무기력에 휩싸여 죽음을 택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가 남긴 편지는 후미오와 세쓰코를 비롯해 ‘그 이후의 삶’을 살던 인물들을 뒤흔들며 적잖은 파장을 일으킨다.



사노 씨의 유서가 내 손에 전해진 날 밤, 내가 그 유서를 펼쳤을 때, 그 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하는 의문이 못처럼 내 가슴에 콕 박혔어. 마치 내게 던지는 질문 같더라. 그리고 그 대답을 찾았을 때, 나는 내가 그런 무서운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갖고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게서 떠나지 않는 피로감의 의미를 깨달았어. 우리 사이, 우리의 생활은 무(無)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생은 각자 다른 사실과 현상이 우연히 연속해서 일어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함 속에 나는 지쳐버렸다, 내 생은 마른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하고 있으니 죽음에 임박해서 움켜쥐려는 손에 뭔가 남아 있을 리 없다…… 그 한 가지의 물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은 거야. (175쪽, 후미오에게 보낸 세쓰코의 편지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언젠가

내일이 오는 걸 바라지 않게 될 정도로 지칠 게 분명하다.”

―그 시절도, 마주할 날들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세쓰코는 후미오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스스로 떠난다. 두 사람이 잘해나가리란 것을 서로 알고 있으나, 그 ‘잘해나감’으로 충분한지 스스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어쩌면 세쓰코는 우리 세대를 탈출한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후미오는 받아들인다. 새 시대를 만들겠다던 그 시절의 청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 삶을 구상해야 했다. 지금까지 추구해온 가치와 이상을 부정하고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열망이 패배의식으로 바뀌었고 그것을 감당 못해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누군가는 세상을 등졌다. 누군가는 새로이 도래한 날들을 적당히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잠시 멈추어 서기로 했다. 작품 속 일본의 1950년대 중후반 풍경은 이제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지만, 이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이 낡았다 느껴지진 않는 것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낡았다는 것은 극복됐다는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부딪히고 깨지는 청춘의 목소리란 어느 시대나 세대에게도 통용될, 언제까지고 반복될 보편성을 지닌다.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영향을 끼치고 조금씩 나아가고, 또다른 절망을 마주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결국 그 아팠던 시절도, 마주할 알 수 없는 날들도, 모두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리라.



머잖아 우리가 정말로 늙었을 때, 젊은 사람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젊은 시절은 어땠냐고. 그때 우리는 대답할 것이다. 우리 때에도 똑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기는 하겠지만,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에 익숙해지며 이렇게 늙어왔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시대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로 용감하게 진출하고자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답을 들은 젊은이 중 누구든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도 그런 용기를 갖자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 늙어간 우리의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짐을 부쳐 텅 빈 방안에 노을이 물들었다. 이 방에서 지내는 것도 앞으로 하루이틀이다. 그러나 그걸로 됐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것과 이별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시야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196~197쪽)







“그 시절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뭐니해도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었다.”

―「록탈관 이야기」



함께 실린 단편 「록탈관 이야기」는 1960년 동인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던 청소년기의 주인공이 동경한 과학과 이성의 세계가 ‘록탈관’이라는 진공관으로 상징된다. 명확한 세계에 대한 열망, 그 지향점에 이르지 못해 도착(倒錯)되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려진 빼어난 성장소설이다.



우리를 꽉 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 배선 저 너머 세계의 진정한 매력은 아마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매우 정확하며, 그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동시에 절대 우리 눈에 보이는 법이 없다는 점에 있었다. (206쪽)





● 추천의 글



“죽는 순간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일본 전후 학생운동 세대의 질문이 사십 년의 세월을 건너 스무 살의 내게 도착했고 삶에 대해 질문하는 방법과 언어를 건네주었다. 이 도구들을 나는 아직도 사용한다. 물론 오래된 소설이다. 낡았다는 것은 아니다. 낡았다는 것은 극복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한 남자를 죽게 하고 한 여자를 다시 태어나게 한 저 치명적인 질문을, 오만한 바보가 아니라면 누가 극복할 수 있는가.

전후 일본의 가치관과 부딪히며 각자의 자리에서 고투하는 인물들의 내면이 섬세하게 재현돼 있다. 200쪽이 채 안 되는 소설 속에, 누구의 진실도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하는 법 없이. 소설이란 바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십 년 전의 나는 감격스러워했다. 지금 다시 읽으며 깨닫는다. 나는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알고 있다.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구매가격 : 9,500 원

공산토월 (한국문학전집 004)

도서정보 : 이문구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1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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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제4권은 2003년 타계한 소설가 이문구의 대표중단편선 『공산토월』이다. 한국문학사에서 이문구는 그 이름 자체로 고유명사이자 일반명사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토박이의 생생한 입말, 엎치고 뒤치는 이야기들의 사이에서 여지없이 툭툭 터져나오는 풍자와 해학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문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는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말처럼, 이문구는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화에 휩쓸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을 소설 속에 실감 있게 그려놓았다.

구매가격 : 10,900 원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

도서정보 : 백은하 글 유기훈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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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발상과 만만찮은 문제의식으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제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는 영혼들이 사는 시공간을 여행하며 태아 영혼을 만나는 이야기로,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낙태나 사고로 인해 어린 시절 목숨을 잃은 영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억울하게 또는 불행하게 죽음을 맞은 어린 영혼들의 목소리를 빌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또한 두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만들어 가는 집단임을 일깨우고 있다. “남들이 떠나 보지 못한 태아 영혼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우리에게 삶의 진실, 목숨에 대한 동정의 상상력을 심어 준다.”는 평을 받으며 제7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영혼 세계로 떠난 현실의 아이들
슬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7년 만에 가족들이 사는 서울 집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누구 하나 따뜻하게 맞아 주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마음까지 각박해진 엄마 아빠,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늘 툴툴대는 오빠, 슬기의 촌스러운 겉모습과 불퉁불퉁한 성격 탓에 함께 어울리려 하지 않는 반 아이들. 그런데 반에서 가장 모범생인 솔찬이가 슬기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솔찬이는 엄마 아빠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 때문에 불만이 많은 아이다. 하지만 가족의 무관심 속에 사는 슬기는 그런 솔찬이가 부럽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슬기와 솔찬이는 신나게 자전거를 타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두 아이는 어디선가 나타난 푸른빛 한 줄기를 따라 태아 영혼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영혼도 하나의 인격체이다
이 작품에서 푸른빛은 세상의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은 낙태아를 상징한다. 슬기와 솔찬이를 영혼 마을로 이끈 푸른빛의 정체가 바로 낙태 당한 아이 가련이였다. 가련이는 슬기의 언니로, 엄마 뱃속에서 죽은 뒤 영혼 마을로 와 살게 되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가련이는 동생 슬기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다가, 슬기가 위험에 처하자 무작정 영혼 마을로 데리고 온 것이다. 슬기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 주려고 애쓰는 언니 가련이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연다. 그리고 영혼에게도 하나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서로를 돕고 이해하며 화합하는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오해와 갈등의 고리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가족의 화합
어른들이 무심코 행한 일들이 아이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부모의 이기심과 무관심 또는 지나친 간섭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아픔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합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지 깨닫게 한다. 낙태와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동화 창작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차분하면서도 힘있는 문체로 생명 존엄이라는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생활 속 소소한 문제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큰 문제를 동화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신인 작가의 패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몽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듯한,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의 펜화가 글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다.

구매가격 : 8,100 원

바르도의 링컨

도서정보 : 조지 손더스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0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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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읽는 책이 아니라 경험하는 책이다.
소설의 경계를 확장하는 압도적 걸작!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NPR 선정 올해의 책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구성과 스타일은 위트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어린 아들이 다다른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고통받는, 그리고 독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역설적으로 생생하고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창조해낸다. 『바르도의 링컨』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를 재치 있게 활용하며 타인에 대한 공감의 의미와 경험을 탐구하게 한다.” _롤라 영(2017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

Original. ‘본래의’ ‘독창적인’ ‘최초의’ ‘기발한’ 등의 뜻을 가진 이 단어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작가가 있다.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영미문학계의 천재” “작가들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조지 손더스가 바로 그다. 첫 단편집 『악화일로를 걷는 내전의 땅』을 발표한 이래, 손더스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스타일, 풍자적이고 위트 있는 목소리로 현대 영미문학을 대표해왔다. “작가들 사이에서 손더스는 그냥 작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조슈아 페리스), “그와 같은 작가는 아무도 없다. 그는 유일무이하다”(로리 무어), “손더스는 마치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 읽는 듯 느끼게 만든다”(할레드 호세이니)는 작가들의 말은 손더스가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랜 시간 단편소설만을 써오던 그가 첫 장편소설을 선보인다고 했을 때, 문학계와 미디어 그리고 독자들이 호들갑스럽다 할 정도의 반응을 보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엄청난 관심 속에 2017년 출간된 그의 첫 장편 『바르도의 링컨』은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NPR 등 무려 20개가 넘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이디 스미스는 “걸작”이라는, 군더더기 없는 한마디로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고, “아주 보기 드문, 천재적인 소설”(<인디펜던트>) “거의 은총을 받은 느낌”(<파이낸셜 타임스>) “문학적 환각제”(<이브닝 스탠더드>) 같은 찬사가 잇따랐다. 그리고 2017년, 영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에 수여되는 맨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폴 오스터, 아룬다티 로이, 알리 스미스 등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후보에 올라 있던 터라, 더욱 의미 있는 수상이었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형식으로 불러낸 링컨의 시대
소설의 경계를 확장하다!

『바르도의 링컨』은 링컨 대통령이 어린 아들을 잃은 후 무덤에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오열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오래전 손더스는 워싱턴을 방문했다가 지인에게서 링컨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링컨의 셋째 아들 윌리가 장티푸스에 걸려 열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비탄에 잠긴 링컨이 몇 차례나 납골묘에 들어가 아이의 시신을 꺼내 안고 오열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손더스의 머릿속에 즉각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링컨기념관과 피에타가 합쳐진 이미지. 이것이 『바르도의 링컨』의 출발점이었다. 손더스는 오랫동안 이 이미지를 마음에 품어오다, 2012년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바르도’는 ‘이승과 저승 사이’ ‘세계의 사이’를 뜻하는 티베트 불교 용어로, 죽은 이들이 이승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기 전 머물러 있는 시공간을 가리킨다. 이 작품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윌리 링컨을 중심으로, 아직 바르도에 머물러 있는 영혼들이 대화를 나누며 서사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바르도에 있는 40여 명의 영혼들이 등장해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이 소설의 주요 골자이지만, 사이사이 링컨과 그의 시대에 관한 책, 서간문, 신문 등에서 인용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챕터가 끼어들면서,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보완하는 형태로 소설이 진행된다. 이런 생경한 형식이 독자들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할 수도 있는데, 작가 자신조차 소설을 집필하면서 “나 말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70여 개의 목소리가 펼쳐내는 언어의 향연은 때로 독창으로, 때로 중창으로, 때로는 거대한 합창으로 울려퍼지며 정밀한 언어의 콜라주를 선사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오디오북 역시 화제가 되었는데, 줄리앤 무어, 벤 스틸러, 수전 서랜던, 리나 던햄 등 유명 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작가인 조지 손더스 역시 오디오북에 참여해 한 목소리를 담당했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거나, 잠겨 있었거나, 곧 그렇게 될 것이었다.
영원한 삶은 없기에……

아직 삶에 대한 미련으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머무는 곳 바르도. 이곳에 있는 존재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한다. 이 존재들은 ‘죽음’에 관계된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관’은 ‘병자-상자’로, ‘시신’은 ‘병자-형체’으로, ‘이승’은 ‘이전 그곳’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곳의 존재들은 자신들의 몸이 다 나으면 언젠가 다시 가족에게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1862년 2월, 이곳에 나이 어린 신참이 나타난다.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는 열한 살의 귀여운 소년 윌리. 이곳에는 저세상으로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존재들이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순수하고 죄 없는 어린 영혼들은 오래 지체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곳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고통만 커지므로, 어린아이들이라면 마땅히 바로 저세상으로 떠나야 한다. 하지만 윌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
윌리는 링컨 대통령이 끔찍하게 아끼던 셋째 아들. 사랑하던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잠긴 링컨은 한밤중에 몰래 다시 묘지를 찾는다. 그리고 관에서 아들의 시신을 꺼내 끌어안는다.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이렇게 하면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링컨이 모습을 보고 이곳의 존재들은 감동받는다. 아무리 사랑이 지극해도 다시 찾아와 시신을 만지고 끌어안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링컨은 또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묘지를 떠난다. 윌리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윌리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를 안타까워한 한스 볼먼, 로저 베빈스 3세, 에벌리 토머스 목사는 어떻게 해서든 윌리를 빨리 저세상으로 보내려 한다. 아이를 설득해 ‘제대로 죽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윌리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들 세 존재는 윌리를 저세상으로 보낼 방법은, 링컨 대통령을 묘지에 다시 오게 해 윌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닌 이들이 링컨을 다시 불러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링컨에겐 그들의 모습이 보일 리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 리도 만무하므로. 그들은 이곳에 머물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제 더 많은 존재들이 합세해 링컨의 발길을 돌리기 위해 애쓴다.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작가 조지 손더스가 그려낸
기이하게 웃기고 애처로운 슬픔의 강령회

표면상으로 ‘바르도의 링컨’은 죽은 윌리 링컨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윌리 링컨이 사망한 1862년 2월 20일은 미국 내전이 발발한 지 열 달 정도가 지나 전쟁이 본격화되어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어찌 보면 국가 전체가 거대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던 때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 중대한 결정을 해나가며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링컨 역시 일종의 ‘바르도’에 있었던 셈이다.

이 소설의 큰 줄기는 링컨과 그의 아들 윌리의 죽음에 관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르도’를 떠도는 영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매듭을 푸는 것,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미련이나 슬픔, 분노나 집착을 털어내고 진정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르도에 등장한 어린 신참, 그리고 그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에 영혼들의 세계가 술렁대기 시작하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둘 진정한 죽음의 세계로 향한다. 이러는 와중에 서로에 대한, 더 넓게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공감을 경험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바르도의 링컨』은 죽은 영혼들의 목소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해 탐구하게 한다. 지극히 슬픈 서사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위트는 결국 삶이란 이렇듯 ‘희극과 비극이 함께 존재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과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소설의 경계를 확장하며 독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바르도의 링컨』. 이 소설의 후반부가 주는 깊은 울림과 감동은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처럼, 당신의 마음을 유령처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당신이 올해 읽게 될 가장 이상하고 가장 훌륭한 작품. 극강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너무도 친밀하고 인간적이며, 너무도 심오하여 거의 은총을 받는 느낌이다. _파이낸셜 타임스

아주 보기 드문, 천재적인 소설. 획기적이고 강렬하며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오직 가장 위대한 소설가들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 조건을 포착해낸다. 그렇다, 정말 그토록 훌륭하다. _인디펜던트

거의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잠들기 직전 당신의 의식 가장자리에 나타날 것이다. 아름답게 구현된 목소리들이 정밀하게, 때로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나온다. _NPR

마지막 50쪽 가량은 정말이지 소설 속 용어처럼 ‘물질빛피어나는 현상’이다. 소란하고 거대하다. 슬픔으로, 그보다 더 큰 희망으로 폭발한다. 독자가 직접 그 끝에 도달할 때까지 더이상의 설명은 접어두는 편이 낫겠다. _타임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이 전혀 읽어본 적 없는 유형의 책이라는 것이다. 완벽하게 독보적인 작품.
_리베카 존스(BBC 문화담당 기자)

설명이 필요 없는 걸작.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주제와 작가의 천재성이 완벽히 결합된 작품.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 이런 소설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_뉴욕 타임스

넋을 잃게 만드는, 단테적인 미국판 유령 발라드. _퍼블리셔스 위클리

기이하게 웃기고 애처로운 슬픔의 강령회. 손더스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 역시 충격적일 정도로 독창적이다. _워싱턴 포스트

이 책은 손더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장편소설이지만, 그가 완성한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다. _애틀랜틱

의심의 여지 없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소설 중 하나. 이토록 따뜻하고 온화하면서도 혁명적인 소설이라니. 이토록 섬세하고 무게 있는 유머 감각이라니. 나는 이 작품을 사랑한다. _맥스 포터(소설가)

손더스는 매력적인 탁월함과 독창성, 작품의 소재에 대한 확고한 감각과 절대 고갈되지 않을 것 같은 다양한 목소리를 지닌 작가다. 무섭고, 웃기며, 잊을 수 없는 작품. _토바이어스 울프(소설가)

수십 년 동안 마법 같은 단편들을 써온 손더스의 첫번째 장편소설. 유령처럼 마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이 기묘한 소설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산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작품이다. _이코노미스트

조지 손더스가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해서 너무나 기쁘다. 그의 작품은 문학적 환각제 같아서, 당신을 혼비백산하게 만든 다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인다. _이브닝 스탠더드

손더스의 비범한 언어적 에너지는 일상의 페이소스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이 작품을 추동하는 힘은 아름답게 구현된―시대의 변곡점에, 즉 자신만의 바르도에 갇혀 있던―링컨의 초상이다. _뉴욕 타임스(미치코 가쿠타니)

희극과 비극 사이를 눈부신 솜씨로 오간다. 독보적인 소설. 화려한 광고 문구를 믿어도 좋다. _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

그의 작품 속 세상이 얼마나 기이하든 간에 그 중심에는 늘 정서적으로 익숙한 무언가가 있다. 그는 이 소설에서 마음속의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작은 변화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바르도의 링컨』은 결국 공감에 대한 탐구다. _가디언

짜릿하다. 이 소설은 링컨과 그가 처한 고난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처한 존재론적 상황을 무자비하고 가차없이 소환해낸다.
_커커스

구매가격 : 11,100 원

쾌락독서

도서정보 : 문유석 / 문학동네 / 2019년 01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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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만 피스짜리 지그소 퍼즐을 맞추기 시작하는 것과도 같다. 분명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다 맞추면 뿌듯할 것 같기도 하지만, 산더미같이 널려 있는 조각들과 거대한 퍼즐 매트를 보면 첫 조각을 끼워넣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느 날 불쑥 문학동네에서 제안한 제목 한마디가 머리에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쾌락독서’. 마치 황금시대의
홍콩 영화 같은 바이브가 느껴지지 않나? 큼지막한 한자로 快. 樂. 讀. 書. 네 글자가 쾅! 쾅! 쾅! 쾅! 떠오르고 그사이로 홍금보와 성룡, 젊은 날의 주성치가 고개를 들이밀 것만 같다. 이 인간들, 나에 대해 너무 정확히 알고 있다. 세상에는 뻔히 보이는데 피할 수 없는 펀치도 있는 법이다. 인간이란 판단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래서 또 책의 프롤로그를 쓰기 시작한다.

책은 언제나 수다 떨고 싶어지는 주제다. 책과 여행, 이 두 가지에 관해서라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숨도 안 쉬고 몇 시간 떠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게 들어오는 책 기획안의 대부분은 내 직업과 관련된 엄숙한 책 아니면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고 충고하는 책들이었다. 나 자신이 즐겨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을 써서 남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았다(참고로 수많은 기획안 중에서 ‘쾌락독서’ 이외에 유일하게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걸그룹’에 대해 써달라는 제안이었다). 물론 그동안 썼던 책들은 분명 사회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의무감, 또는 세금 내는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무거움을 안고 썼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내 즐거움을 위해 쓴다. 언제나 내게 책이란 즐거운 놀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재미로 읽었고, 재미없으면 망설이지 않고 덮어버렸다. 의미든 지적성장이든 그것은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그런 내 ‘독서법’의 유용성을 전파하고자 이 책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그랬다는 얘기들일 뿐이다. 거기서 뭔가 쓸모 있는 것을 발견할지 말지는 읽는 이마다 다를 거다. 단지 내 얘기가 재미있기를 바랄 뿐이다.

먼저 얘기해둘 것이 있다. 내 독서 취향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난 항상 그 시기에 누구나 좋아했던 뻔한 책들을 좋아했다. 남들이 아다치 미츠루 만화를 열심히 볼 때 나도 그랬고, 남들이 하루키에 열광할 때 나도 그랬고, 남들이 김용 무협소설에 대해 침 튀기며 얘기할 때 나도 그랬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실망시킬 때도 있었다.

첫 책을 내고 북토크를 했을 때의 일이다. 대학 때 즐겨 읽었던 책이 뭐냐고 눈이 초롱초롱한 여학생이 묻길래 『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들을 즐겨 읽었다고 대답했다. 순간 감추지 못한 실망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한번은 ‘작가의 책’이라는 릴레이 인터뷰에서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책을 묻길래 『삼국지』와 만화 『유리가면』을 얘기했는데 0.5초 정도 정적이 흐르더라. 이런 반응을 접할 때면 괜히 살짝 미안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책을 쓰는 작가라면 뭔가 어릴 때부터 길고 이국적인 이름의 작가가 쓴 특별한 책을 좋아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아닐까.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든가.

나는 솔직히 취향으로 차별화하는 우아한 ‘인생 책’ 리스트를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저 책들도 물론 좋았으니 언급했겠지만, 정말 저 책들이 평생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었을까? 『캔디 캔디』나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보며 가슴이 설렌 적은 없었을까? 『슬램덩크』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재미없었나? 하물며 ‘인문학 고전을 읽어야 성공한다’ ‘대입을 위해 서울대 추천 인문 고전 50선을 꼭 읽어야 한다’는 등의 조언 또는 겁주기를 볼 때면 의문은 더 커진다. 『키케로의 의무론』 『실천이성비판』 『아함경』 『우파니샤드』 『율곡문선』…… 잠시 서울대 교수님들 중 이 50선을 모두 읽은 분이 몇 분이나 될지 불경스러운 의문을 가져보았다. 나는 달랑 세 권 읽었더라.

나의 경우, 사춘기 초반의 책 선정 기준은 명쾌했다. 야한 장면 유무다. 집에 있는 어른들 책을 샅샅이 뒤졌다. 가구로 비치돼 있던 한국문학전집에 의외로 ‘왕거니’가 많았다. 이효석의 『화분』, 송병수의 「쇼리 킴」, 조해일의 『아메리카』 등등. 『춘향전』과 『아라비안나이트』는 원본으로 봐야 보물임도 곧 발견했다. 아마 요즘 소년들은 엄마나 아빠가 남들 따라 충동구매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2부에서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난 이런 보물찾기 과정을 통해 문학이라는 것이 의외로 재밌다는 것도 부수적으로 발견했다.

고등학생 시절엔 뜬금없이 순정만화에 빠졌다. 스포츠 아니면 무협 일색인 소년만화보다 소재가 다양했기 때문이다. 꽃미남 귀족에 대한 소녀들의 선호 때문인지 유럽 배경이 많았다. 『베르사유의 장미』와 『테르미도르』를 보고 나니 프랑스혁명사에 익숙해졌고, 『불새의 늪』을 본 후 교과서에서 위그노전쟁을 만나니 반갑더라. 『유리가면』으로 연극이라는 장르에 흥미를 갖게 됐고, 『스완』으로 평생 발레에 관해 아는 척하고 있다. 허영만의 만화로 랭보와 로트레아몽의 시를 접하고, 클래식기타곡인 알베니스의 <전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허 화백 덕은 판사가 된 후에도 보았다. 『타짜』 덕분에 발뺌하는 사기도박 사건 피고인 앞에서 ‘병목’ ‘환목’ ‘깜깜이 바둑이’ 등의 전문용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대학 때 김용의 무협소설 전작을 탐독했더니 사시 1차 공부할 때 중국사와 다 연결되었다. 『녹정기』의 위소보는 강희제의 명으로 소피아 공주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한다.

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꾸만 책을 신비화하며 공포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책들은 ‘추천도서’나 ‘필독도서’가 아니다.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 난 ‘필’자만 들어도 상상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완장 찬 사감 선생이 고리타분한 책을 코앞에 억지로 들이미는 느낌이 든다(물론 그 필독도서가 내가 쓴 책인 경우에는 팅커벨이 반투명 날개를 흔들어대며 보물 상자에서 책을 꺼내주는 느낌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책들은 ‘그
저 어떻게든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책’이다. 선정 기준은 ‘지금도 뭔가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지 여부’. 시냇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듯 모래알을 잔뜩 흔들어대다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알갱이들이 남지 않을까. 그게 금이든 사금파리든.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책을 읽었든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면 최소한 현재로서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한 줄의 문장, 또는 한 단어가 기억에 남아 있다면 내게 그 책은 그 한 줄, 또는 한 단어다. 만약 책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 책을 읽던 시간과 장소의 감각이 되살아난다면 내게 그 책은 그 감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쥘리앵 뒤비비에 감독의 고전 영화 <무도회의 수첩> 같기도 하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된 주인공 크리스틴이 이십 년 전 사교계에 데뷔했을 때 함께 춤추었던 남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낡은 수첩을 우연히 찾아내고는, 추억을 회상하며 수첩 속의 남자들을 차례차례 찾아가는 심정이랄까.

그렇다고 예전 읽은 책들 내용을 구구절절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원래 지나간 인연은 다시 만나지 않는 게 나은 법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 시절 그 책들을 죽 찾아서 읽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냥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기억들만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들은 그저 그 시기에 거기 있었기에 우연히 내게 의미가 있었을 뿐이다. 지나간 연인들도 그렇듯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나간 인연들이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 안에 생겨났던 그 순간의 감정들이다. 헛된 허세나 과시욕 따위를 배제하고 그때 그 책의 무엇을 왜 좋아했고, 그로 인해 나는 어떤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책을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두 가지다. 어떤 책이든 자기가 즐기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혼자만 읽지 말고 용기 내어 ‘책 수다’를 신나게 떨어야 더 많은 이들도 함께 읽게 된다는 것. 그걸 위해 기억 속의 책들을 찾아간다.

……그래도 그 수첩 속의 남자들이 너무 늙고 배 나오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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