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948종의 전자책이 판매중입니다.

몰락하는 자(세계문학전집 078)

도서정보 : 토마스 베른하르트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3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바흐만,한트케와 함께 오스트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죽음, 절망, 고통, 파멸의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
그가 그려낸 이상적 예술 앞에서 절망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바흐만, 한트케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78번)을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절망, 고통, 파멸, 죽음이라는 테마에 천착했고 쇼펜하우어와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베른하르트는 생전에 카프카와 자주 비견되었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베케트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몰락하는 자』는 실존 인물인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등장시키며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글렌 굴드라는 천재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파멸해가는 베르트하이머라는 인물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의 이유를 찾는 과정이 작품 전체에 걸쳐 그려진다. 예술의 절대성과 완벽성에 대한 주인공의 강박관념을 잘 드러낸 이 작품은 『벌목』『옛 거장들』과 함께 베른하르트의 예술 3부작으로도 불리며 유럽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프레미오 몬델로 상(1983)을 받았다.

‘둥지를 더럽히는 자’ ‘조국에 침을 뱉는 자’라는 비난에도
망명 대신 작품 활동으로 조국에 맞섰던 비판하는 지성 베른하르트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바흐만, 한트케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세기 독일어권 작가 중 가장 중요한 한 명으로 꼽힌다. 1957년 사망하기까지 60편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베른하르트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전쟁의 경험으로 죽음, 절망, 고통, 파멸이라는 테마에 천착했다. 주인공의 파멸과 죽음의 과정을 그린 『몰락하는 자』 역시 이러한 베른하르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또한 나치에 협력한 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긴 작품들로 ‘둥지를 더럽히는 자’ ‘조국에 침을 뱉는 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망명을 택했던 것과 달리 그는 철저하게 조국에 맞서며 작품을 통해 비판하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은 분위기와 내용 면에서 본다면 지극히 절망적이고 음습하며 불안하다. 베른하르트가 어느 수상 소감에서 “죽음은 나의 영원한 테마”라고 밝혔듯,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이 존재한다. 한 인물이 죽기까지의 정서적 혼란이 본인 또는 제 3자에 의해 독설과 냉소에 찬 어조로 광기에 가까운 장광설로 서술된다. 이러한 개인의 파멸 과정은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사고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부조리 속에 놓인 인간 보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신화를 창조한 소설

『몰락하는 자』는 캐나다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소설에 등장시키며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소설에서의 글렌 굴드는 분명 허구적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베른하르트의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허구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당시 글렌 굴드를 둘러싼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몰락하는 자』는 이야기보다는 1인칭 화자의 회상과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챕터 구분도 단락 구분도 없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하였고, 이것은 베른하르트의 특징인 장광설의 문체와 어우러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산문의 언덕 너머로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끼어들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쏘아 죽인다”고 말하는 베른하르트는 스스로를 ‘이야기 파괴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과장과 언어 파괴를 주요 기법으로 사용하는 그는 과장이야말로 글쓰기의 필수 요건이며 과장을 통한 현실 파괴와 언어 해체의 작업만이 상투적인 현실 고발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고 (남자) 주인공이 주로 내적 독백을 통해 고립된 자아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만을 유일한 생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양면적 태도를 보이는데, 『몰락하는 자』의 주인공 베르트하이머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글렌 굴드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파멸해가면서도 불행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걱정하는 베르트하이머, 그의 죽음의 과정을 회상하고 성찰하며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은 ‘나’, 『몰락하는 자』는 이 둘을 통해 글렌 굴드라는 이상적 예술 앞에서 끊임없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절망에 빠져 끊임없이 몰락하는 인간을 위한 한 편의 진혼곡이 되어준다.

구매가격 : 7,000 원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문학동네시인선 201)

도서정보 : 한여진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19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고요하고 둥글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부드럽고 단단한 순백의 힘

문학동네시인선 201번으로 한여진 시인의 첫번째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를 펴낸다.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앞 연에서 예고한 바 없이 다음 연에서 펼쳐내는 세상이 크고도 희고도 맑”으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시인 김민정), “미움이나 슬픔 따위가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끈기 있게 들여다”보는 “이 시인에게 무척 믿음이” 가고 “벌써 우정을 느낀다”(시인 진은영), “다양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의 탄생을 예감할 수 있었다”(시인 황인찬)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시 48편을 골라 엮었다. 그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등 신선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지닌 새로운 시인을 소개하는 데 집중해온 문학동네시인선의 200번대를 여는 시집이기에 더욱 뜻깊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말랑한 것들, 역사가 아닌 것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내가 나일 수 없던 것들, 그것들에게 이름 붙여주는 일을 하겠다고”(「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 다짐한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고 둥글”(「검은 절 하얀 꿈」)어 일견 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편편의 시들은 그 유연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힘임을 확인케 한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낸 두부처럼, 부드럽게 내려와 모든 것을 감싸안는 순백의 눈처럼 희고 고요한 힘을 지닌 시가 여기 도착했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_「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에서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과 새하얀 표지가 건네는 첫 느낌대로 한여진의 시에서는 유독 흰색이 도드라진다. 표제작을 포함해 여러 시의 배경이 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날인데다 양(「어떤 공동체」)과 흰고래(「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밤은 없고」)부터 순무(「순무는 순무로서만」), 밀가루 반죽(「미선의 반죽」), 그리고 “하얀 문”(「검은 절 하얀 꿈」)까지 주요 이미지가 온통 하얀 까닭이다. 이 넉넉한 흰빛은 시집 전체를 눈 덮인 세상과도 같은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 자리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처럼 시집의 고즈넉한 정경에 힘을 실어주는 흰색은 한여진의 화자와 만나 또다른 사유를 가능케 한다. 그것은 바로 흰색이 무언가를 써내려갈 수 있는 하얀 종이의 모습으로 드러나면서다.

검은 솥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채워도 넘치지 않는 검은 물이 있다 그 속엔 대체 무엇이 있길래 솥은 한없이 검은가 나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솥이 없는 하루에 대해 쓴다 솥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쓴다 마당을 둘러싼 담장 밖에 대해 쓴다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와 언니가 아닌 것들에 대해 쓴다

_「솥」에서


신촌 골목길을 걸으며 네가 해준 이야기
누군가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을 울더니 소설로 쓰겠다고 했다

너는 희미하게 웃었고
사실은 말야, 나도 뭔가를 쓰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때 기차가 굉장한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_「소설처럼」에서


앞서 인용한 시편들에서 알 수 있듯 한여진 시의 화자는 많은 경우 ‘쓰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의 쓰기는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 누군가가 그것을 “소설로 쓰겠다고” 선언하는 동안 ‘나’는 “나도 뭔가를 쓰는 중이라고” 말하지 못한다(「소설처럼」). 방금 전까지 선명했던 꿈은 “글로 옮기는 순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게 되고(「초기화」), 완성한 줄 알았던 글은 어느 순간 ‘초기화’되어 ‘나’는 “눈을 뜨면 다시 빈 노트 앞”에 있다(「초기화」).

서사를 지닌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는 한여진의 시들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몇몇 힌트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솥뚜껑에 맞아 죽은 ‘나’의 이모와 솥 아래서 불타 죽은 ‘나’의 언니(「솥」), 그리고 영동고속도로에서 트럭 전복 사고로 죽은 ‘나’의 삼촌(「영동고속도로 끝에는 미래가」)을 통해,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맞이한 ‘결말’을 통해서다.

한여진의 화자에게 있어 기록은 일어난 일을 고정시켜버리는 행위인 듯하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결말”(「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를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화자가 택하는 것이 바로 ‘다시 쓰기’이다. 그는 하얀 종이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글씨를 다시금 하얗게 덮어버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흰색 위에 또다시 새롭게 쓴다.

“해피 엔딩은 믿을 수가 없”(「미선의 생활」)다던 미선 언니는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실로 두려운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막막한 현실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다 사라진 채로 너절하게 모습을 드러낸 미래가 아닐까. 그렇기에 시인은 과거의 기억들을 붙잡고 닫힌 엔딩을 거부한 채 초기화된 첫 문장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려는 것 같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해설에서

그러니 ‘미선 언니’가 ‘해피 엔딩’을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일 테다. 문학평론가 조대한이 짚어 보였듯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닫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여진의 화자는 이미 쓴 종이 위에 계속해서 흰색을 덧입히고 또 덧입히며 끊임없이 미래를 다시 써낸다. “계속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남은 하얀 반죽만이 우주가 될 수도 있고 이불보가 될 수도 있으며 천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얻으므로(「미선의 반죽」).

내가 숨쉴 수 없는 공간인 줄도 모르고 공허와 폐허인 줄도 모르고
다른 건 배운 적 없는 나는 그런 세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

눈을 뜬다 숲속에 앉아 있다 고요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로 가득한 숲 안경원숭이 비단고사리 하늘말나리 소사나무 코럴블루 양떼구름 새털구름 이런 이름 말고도 그들에겐 다른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진짜 이름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나에게도 나만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이 있다고 하면 보지 않을래?

숲의 경계선에 서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본다 오래된 길
하지만 오랫동안 인적이 없던 길
손에 불씨를 들고

그리고 생각한다 말랑한 것들, 역사가 아닌 것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내가 나일 수 없던 것들, 그것들에게 이름 붙여주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오래 살았다는 남자를 찾아가 그에게 손을 내밀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의 이름을 지어주게 될 나의 미래를

_「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에서

그렇게 한여진의 화자가 다시 쓰고자 하는 미래는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화자는 “오래 살았다는 남자”가 만들어놓은 “내가 숨쉴 수 없”는 세계 위에 “남자 아닌 여자/ 아닌 여자/ 아닌 여자”들도 숨쉴 수 있는 세계를 세우겠다고(같은 시), 오늘 현장에서 죽은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고(「기호와 소음」) 끝없이 총성이 울리는 곳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써내려가겠다고 말한다.

잊혀진 기억의 실마리를 끈질기게 붙들고 미처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려는 한여진 시인이야말로 무명의 위 세대들이 남긴 유산의 정당한 계승자일 것이다. 그 미래와 과거가 충돌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존재들과 실패한 기억의 흔적 위에서, “내가 잊어버린 것”과 “네가 잊어버린 것// 사이의 간격”(「초기화」) 너머에서, “지나간 기록에 대한 기록”과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들”(「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이 겹쳐지는 바로 그곳에서 시인의 시는 시작되는 것 같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해설에서

그러므로 조용하고 둥근, 아름다운 흰빛을 연상케 하는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검은 절 하얀 꿈」 「밤 친구」 「나이트 사파리」 같은 시편들에서부터 시작해 여성주의적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는 「솥」 「캐넌」 「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과 ‘미선 언니’ 연작, 시사적인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팔레스타인에서」 「화염」 「Beauty and Terror」 「혁명과 소음」 등의 작품들까지 경유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가 지닌 흰색이 마냥 무구하고 투명한 빛깔이 아니라 다양한 색과 “공허와 폐허”마저 모두 감싸안은, 부드럽고도 강인한 눈과 같은 빛깔임을 알 수 있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고 두부는 평화롭게 구워지고 있는 가운데 다시 마주한 빈 노트 앞에서(「초기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매가격 : 8,400 원

소년, 소녀를 만나다

도서정보 : 이영환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25일 / PDF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그때, 그애도 나를 좋아했을까...?”
첫사랑의 기억을 어루만지는 몽글몽글 감성 에세이툰

“걔는 햇빛을 보면 재채기를 해.
그런 애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니?”

“서로를 향해 팔을 길게 뻗으면
손바닥 한 뼘 정도가 모자란, 우리 사이의 거리는 그 정도였다.”

“여기를 단숨에 오르게 되면, 걔한테 말을 걸어봐야지.”


모든 게 서툴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
닿을 수 없어서 더 애틋했던 저마다의 마음속 풍경

지나간 시간과 추억이 밀려드는 계절 가을, 독자들을 단번에 한 시절로 데려다줄 그림 에세이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출간되었다. 2019년부터 그림작가 이영환의 인스타그램(@leeyounghwan)에 #소년소녀를만나다 #Boymeetsgirl 해시태그를 달고 업로드되던 만화들은 섬세한 감정 묘사로 눈길을 끌며 팔로워들의 댓글 러시를 이루었고, 마침내 책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의 정체를 몰라 미열을 앓던 십대 시절의 에피소드를 담은 20편의 만화와 그때를 돌아본 작가의 글들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풋사랑을, 또 그애를 향했던 순도 100%의 빛나는 마음을 환기한다. 진심을 들킬까봐 부끄러워서, 무슨 말을 꺼낼지 몰라서 서툴기만 했던 기억 속의 날들이 햇살 아래, 빗속에 한 편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한 영화의 카피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그 기억은 이 계절을 새롭게 쓰게 할 것이다.

“그 우산이 언제부터 신발장 안에 있었는지 너는 아니?”
“글쎄…?”
“누군가가 좋아지는 것도 그런 거 같아.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 _본문 중에서

소녀와 관련한 나의 기억에서 그날의 장면은 언제나 가장 먼 곳에 자리잡고 있다. (...) 그 장면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소년은 내가 이 그림들을 통해 담고자 했던 이미지이기도 했다. 담고 싶고 닮고 싶은 그 어떤 것. _「제일 먼 곳에 있는 아이」 에서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기면 밀려오는 첫사랑의 풋풋함
상상 속에서 그애에게 건넨 말들은
내 주변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20편의 만화는 인물도, 에피소드도 달라 전체적으로 옴니버스 형식을 띠지만 공통점이 있다. 인물들이 오가는 배경은 운동장과 골목, 가게 등 하나같이 등굣길 하굣길에 지나던 정감 있는 공간들로 독자들의 추억과도 포개진다는 점이다. 또 그곳에서 움직이는 소년들은 진지하지만 감정을 전하는 데 서투르며, 때론 허세를 부리거나 엉뚱한 면모를 보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응답하라 1998>의 만옥이를 짝사랑하던 순정의 정봉이(안재홍 분)가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면 책 속의 소년들과 닮지 않았을까. 작가가 일상적 공간에서 섬세한 눈으로 채집한, 뭉툭한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들은 독자들의 공감 버튼을 부르기에 충분하다.

언덕길에서의 재회 이후 한동안 그애 생각이 났다. 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그애의 잔상과 기억이 난데없이 튀어나왔다가 슬쩍 사라지곤 했다. 특히 그 완만한 언덕을 오를 때 그랬다. 그 언덕길에서, 그애는 때론 교복을 입은 모습으로 때론 사복을 입은 모습으로 겹쳐지며 내 앞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난 그애를 다시 마주치면 어떻게 할지를 상상했다. 또 모르는 체할까, 손만 들어서 인사할까, 메롱을 한번 해볼까, 이럴까, 저럴까. 나는 그애와 더는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싶었다. 그러면서도 늘 또 한번의 만남을 상상하곤 했다. _「친구를 마주치기 좋은 언덕」에서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서정을 만드는 또다른 장치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움직이게 하는 그림이다. 곁눈질하는 눈동자, 발그레해진 볼, 한쪽만 삐져나온 교복 남방 같은 외양의 디테일과 컷마다 달라지는 인물의 동세, 향수 가득한 풍경 컷들의 표현은 어떤가.
한 시절을 지그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우리가 통과한 순간들의 서정을 환기하고 그 시절에만이 품을 수 있던 순정한 마음을 헤아리게 할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풍광이나 한없이 편지를 썼다 지웠다 했던 시간 같은 것들을, 다시는 되돌릴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들을.

구매가격 : 12,000 원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도서정보 : 김호영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0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세월이 지나도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스물네 편의 영화
그 필름 위에 새겨진 아름답고 쨍한 시간들을 리와인드하다
OTT 서비스가 넘친다. 많은 영화를 거실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시대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영화가 새로 나온다. 하지만 시간의 세례를 받은 영화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생생하게 되살아나 삶의 의미를 전하기도 하고, 여전히 가혹한 현실을 신랄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1990년 이후 제작된 영화는 어느덧 가깝고도 먼 영화들이 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보석 같은 영화는 이제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는 1990년에서 2007년 사이에 발표된 영화 중 의미 있는 걸작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 김호영은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영화이미지학』 『프레임의 수사학』와 같이 국내에서 보기 드문 굵직한 영화 이론서를 비롯해 『아무튼, 로드무비』 등 친숙한 영화에세이를 펴낸 대표적인 영화평론가다. 현대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가인 동시에 열정적인 영화인이었던 조르주 페렉의 한국어 번역자로도 유명하다.
김호영은 근과거의 영화를 선별해 ‘네오 클래식 무비’라고 이름 짓고, 이러한 영화들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단단히 엮어냈다. <씨네21>에 연재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던 14편에 10편을 새로 더해 총 24편의 영화를 다뤘다. 왕가위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허우 샤오시엔, 페드로 알모도바르, 난니 모레티, 빔 벤더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짐 자무시, 데이비드 린치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감독의 작품 중 단순히 가장 주목받았던 작품이 아니라 각각의 독특한 매력을 품은 작품들을 세심하게 고르고 골랐다. 멀게는 30여 년, 짧게는 20여 년이 지난 이 영화들은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만큼 현재도 사랑받는 귀한 영화들이다. 가급적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영화들을 골고루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너무 대중적이지도 너무 실험적이지도 않은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 고심했다. 대부분의 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되는 시대, 필름 위에 새겨진 아름답고 쨍한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영화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이자 그림자다
영화 <리스본 스토리>에서,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감독은 “영화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이자 그 시간의 그림자”라고 말한다. 영화는 지나간 현재에 대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뿐 아니라 떠올릴 수 없는 기억까지 담아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는 곧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왜 영화를 보는가라는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김호영은 책에 담긴 영화들을 통해 이 질문들에 답하면서, 각각의 영화들에 대해 깊이 있게 비평하는 동시에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편안한 문체로 써냈다. 또한 작품의 정서나 스타일도 각각의 글에 새겼다.
<퐁네프의 연인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스틸 라이프>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영화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그 제목은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영화들이다. <아비정전>의 ‘발 없는 새’ 이야기나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와 같은 대사들 또한 영화와 상관없이 여러 맥락에서 회자된다. 최근 <화양연화> <타이타닉> 등 오래된 영화의 재개봉 열풍 또한 이렇듯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영화 속의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감동에 대한 화답에 다름아닐 것이다.
어두운 극장의 스크린 위에서, 작은 모니터 화면 깜빡임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관객인 동시에 삶의 주인공이 된다. 이 작은 책은 우리에게 영화 같은 삶을 선물해준다.

“여기에 모아놓은 영화는 모두 저마다의 시간과 그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다.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이내 희미해지고 과거의 것으로 박제되어 있다가
불현듯 되살아나는 시간들.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간 영화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새로운 영화들이다.”
_프롤로그에서

구매가격 : 10,500 원

18세기의 세책사

도서정보 : 이민희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06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세책점(貰冊店):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가게

서울, 도쿄, 파리, 뉴욕, 스톡홀름, 리우데자네이루…
전 세계를 발로 누비며 찾은 세책 기록을 집대성하다

금단의 책 읽기를 모두의 즐거움으로 가져오다!

책을 골라 보는 희열, 함께 읽는 재미
그 정점에 있더 신흥 장르, ‘소설’!


『18세기의 세책사』는 세계 곳곳의 도서관과 고서점을 다니며 모은 18세기 세책 기록을 집대성한 결과물로, 책이 값비싸던 시절에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세책’ 문화를 탐구한다. 세책업자들은 책을 대량으로 소장하며 사람들에게 빌려주었는데, 그 덕분에 독서 생활의 열외자였던 여성과 하층민이 너도나도 세책점으로 가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독서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교양 활동으로 인식되면서 소설이 인기를 끌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공간이 생겨났다. 오늘날 북카페처럼 세책점에서는 다양한 문구류와 잡화를 책과 함께 팔기도 했고 여러 사람이 모여 책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세책점은 책방을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며 책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촉진시키고 독서의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대중 독서에 공헌한 세책점,
소설의 위상을 드높이고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다
독서는 언제 어떻게 대중의 취미로 자리잡았을까? 18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서는 지식인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소수 특권층 남성만 누리는 학문적·종교적 수양 활동이었다. 하지만 18세기 들어 세책업자들이 책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저렴한 값에 사람들에게 빌려주면서 독서는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여가 활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책업자들은 책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중하층과 여성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여 상업적 이윤을 추구했다. 새로운 독자의 취향을 고려해 오락적 독서물, 곧 소설과 역사서, 여행서, 교양서 등 다양한 책을 취급하여 고객들이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책을 직접 골라 읽게 했다. 긴 호흡으로 사회와 삶의 문제를 다룬 산문 양식의 허구 서사에 흥미를 느끼며 통속문학을 대여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특히 여성 독자가 세책점에 자주 드나들며 소설을 빌려 읽는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세책점의 영향력이 커지고 소설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책을 빌려 읽는 이가 많을수록 책을 많이 팔지 못해 작가와 출판사의 수입이 줄어든다며 세책업이 불법 거래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 당시 사회 기득권 세력인 보수적 지식인과 종교인은 소설이 많이 팔리면서 점점 더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내용을 담은 콘텐츠로 생산된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약용은 소설에 빠져든 이는 책 읽기를 마칠 때까지 각자의 책무에 소홀해져 패가망신에 이른다고 비판했으며, 슬로바키아에서 익명의 평자는 가볍고 장난스러우며 허무하고 무가치한 소설이 사람들을 나쁜 길로 이끈다며 소설을 폄하했다. 그럼에도 소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소설을 쓰는 작가가 늘고 소설가의 명성도 높아졌다. 또 세책점 간에 인기 소설을 다량 확보해 저렴한 값에 대여해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설가와 출판사 역시 커다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책 유통과 영업에 열을 올린 세책업자는 독자와 작가 및 출판사 사이에서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분책 신공, 큐레이션…
세책점의 전략
세책업자는 대중의 독서욕을 자극하는 데 힘을 쏟으며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도서대여 영업을 하고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세책 문화가 일찍이 찬란하게 피어난 한국과 영국에서는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을 여러 권 빌려주고자 장편소설을 분책해 내놓았다. 조선 향목동 세책점에서는 186권에 달하는 『윤하정삼문취록』, 117권짜리 『명주보월빙』, 10책짜리 『춘향전』, 10책의 『창선감의록』 등 국내에서 창작된 장편소설을 보유했다. 잉글랜드에서 무디 세책점은 무려 100여 년간 운영되며 약 750만 권을 거래했는데, 신뢰의 표시로 이곳의 상징인 페가수스 문양을 책 표지에 새겨놓은 서적들을 선보였다. 무디 세책점에서는 소설 대여 횟수를 늘려 수익을 더 얻고자 3부작 장편소설을 주로 취급했는데, 이 때문에 출판 시장에서 세 권짜리 장편소설이 주를 이뤘다. 그 수혜 작가인 월터 스콧은 자신의 작품 『웨이벌리』를 필두로 15년 동안 소설 14편을 출판하며 모두 3권짜리 장편소설로 출판했다.
세책업자들은 엄선한 도서 목록을 적은 카탈로그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는 1782년에 만든 70쪽짜리 카탈로그가 현전하는데, 인기 독서물인 로맨스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역사서, 자서전, 여행서도 꽤 갖추고 있었다. 미국 뉴욕의 카리타 세책점에서는 1804년에 소설책 2천 권을 포함해 장서 수천 권이 수록된 카탈로그를 발행했다.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가장 먼저 세책 영업을 시작한 윌리엄 에이크만은 1779년에 도서 목록 책자를 만들어 책 구독을 신청한 사람들에게 배달해주기까지 했다.

복합 문화 공간
세책점은 책만 대여하는 공간을 탈피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아갔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세책점을 운영한 리처드 화이트는 휴게실을 만들어 회원들이 이곳에서 신간에 대한 평판을 확인하고 각자 읽은 책과 신문 기사를 공유하면서 여론을 형성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상층 고객들이 살던 지역의 세책점에서는 살롱 격을 갖춘 안락한 독서 클럽이 운영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여성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사교 모임이 가능한 살롱처럼 인테리어를 하는 세책점도 생겨났다. 커피 하우스를 겸한 미국 세책점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돌려 읽으며 신문에 소개된 신간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오늘날 더이상 과거와 같은 세책점은 없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각종 구독 서비스와 소셜 미디어 감상평과 추천이 현대판 세책점은 아닐까?

구매가격 : 12,800 원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도서정보 : 권여선 외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10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더 깊게, 더 진실되게, 더 간절히
인간의 마음으로 한 걸음 더 내딛는 일곱 편의 이야기

등단 후 10년이 넘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뽑고 그중 대상작 1편과 우수상 6편을 선정해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은 가을이 되면 수상작품집을 기다리게 하는 전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는 2022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주요 문예지와 웹진, 독립문예지를 포함한 총 28개 문예지의 191편이 심사 대상이 되었다. 2023 김승옥문학상의 수상 작가는 권여선, 최진영, 서유미, 최은미, 구병모, 손보미, 백수린이다. 한국문학의 단단한 중심으로서 독자에게 너른 사랑을 받아온 이들 중 권여선 작가의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이 “거의 아무런 토론이 이뤄지지 않”(권희철)을 정도로 압도적인 올해의 단편이 되었다. 최은미, 구병모, 백수린 작가는 두번째로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독자들에게 확실한 각인을 남겨놓고 있고, 김승옥문학상에 새로 이름을 올린 최진영, 서유미, 손보미 작가는 관록과 신선함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뤄낸다.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슴벌레식 문답」은 지방에서 올라와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의기투합하게 된 네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큰언니 같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모임의 리더 격이었던 부영, 상냥하고 조심성이 많은 정원, 인내심이 강하고 예의가 발랐던 경애, 그리고 술을 좋아하며 즉흥적이었던 화자 준희까지. 서로 달랐기 때문에 알맞게 짜일 수 있었고, 서로와 같은 조각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필사적이었던 이들은 그러나 정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경애의 배신으로 어긋나게 된다. 등을 돌린 친구들을 향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곰곰이 생각하던 준희의 시선은 오래전 떠난 강촌 여행으로 향한다. 어떻게 방안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사슴벌레에 대한 질문에 숙소 주인이 말한 “어디로든 들어와”가 그 해답이다. 이 ‘사슴벌레식 문답’은 인생의 매 분기점에서 솟아나 어떤 결정도 긍정함으로써, 어떤 운명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나약한 인간을 압도하는 운명 앞에서 시간을 거슬러올라 끝끝내 기원을 발굴해내는 시시포스의 자유의지는 오리무중인 인생에 동반하는 나침반이 되어준다. 같은 삶의 결을 지닌 이로 하여금 응어리를 온전히 쏟아내는 울음을 울게 하면서.



『2023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시대와 사람에 대한 당부가 가득하다. 열여섯 살 이봄, 아홉살 이여름의 시선으로 기후 위기를 목전에 둔 세계를 바라보는 「썸머의 마술과학」(최진영)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위선이라고 야유하는 시선에 정면으로 맞선다. 무기력과 자조에 젖어들기보다 불가능을 이겨내는 ‘마술과학’과도 같이 지구와 미래 세대를 위한 실천을 연습하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토요일 아침의 로건」(서유미)은 미국 지사 발령을 위해 영어 회화를 배우던 한 중년 남성에게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 소식으로 시작된다. 4년간 매주 토요일을 함께했던 선생님에게 마지막을 고하기 위한 4주간의 고요한 노력은 인연에 대한 잊기 쉬운 소중함을 특유의 단정하고 정직한 서사를 통해 차분히 역설한다.
낯선 사람에게 좀처럼 애정과 믿음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그곳」(최은미)이 도착했다. 여름철 폭염 대피소로 지정된 체육관 안에 사람들이 있다. 갑작스러운 곰의 출현으로 발이 묶인데다가 엎친 데 덥친 격으로 정전이 찾아와 사람들은 공황에 빠진다. 그때,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저지해오던 ‘이 구역의 최다 민원인’의 눈에 사람들의 도움이 번져가는 것이 보인다.
「그곳」이 막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인류애를 다루고 있다면 「있을 법한 모든 것」(구병모)은 막다른 난점을 우직하게 뚫어내는 소설이다. 소설가인 화자는 얼굴을 모르는 호텔 하우스키퍼에게 호감을 느낀 남성이 그녀를 만나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로맨스를 쓰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은 저임금 비숙련 여성 노동자를 향한 젠더화된 관성, 그리고 그 기만과 통념을 강화할 뿐인 로맨스라는 장르의 맹점이다. 그러나 소설은 그럼에도 끊기지 않는 진정성이 있다면 그에 화답하는 결말을 보여줄 용의를 속에 품고 있다.
「끝없는 밤」(손보미) 또한 사람의 내면을 찬찬히 뜯어보는 데에 “다층적인 암시와 풍부한 상징,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장면과 이미지”(편혜영)로 손을 보탠다. 하룻밤 요트 여행을 떠난 부부가 있다. 여자는 그들을 여행에 초대한 대학 선배와의 미묘한 관계를 떠올리며 샅굴부위의 통증을 견디고 있다. 통증의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던 그녀는 어느 수의사와 함께했던 시간에 다다르게 되는데, 그때 요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빛이 다가올 때」(백수린)는 한 시절의 인연이 스스로에게 남긴 흔적을 직면하며 자신과 타인의 이해에 가까스로 이르는 이야기다. 소설은 시력을 잃어가는 이모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느라 자신의 욕망은 뒷전이었던 언니가 스스로의 삶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되짚는다. 당시엔 생경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언니의 욕망은, 화자가 언니의 나이가 되어 반추했을 때 다른 빛깔을 띠고 다가온다. 담백하고 차분하기에 더욱 치열하게 파고드는 문장은 겪어본 적 없던 풍경마저도 읽는 이의 내면에 분명히 아로새긴다.

구매가격 : 8,400 원

미친 여자들의 무도회

도서정보 : 빅토리아 마스 / 문학동네 / 2023년 09월 26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차별과 억압, 부조리로 가득한 19세기 파리 살페트리에르 정신병원
자유와 해방, 연대를 꿈꾸는 여자들의 강렬한 몸짓!

“여기서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여기서도, 다른 어디에서도.”

★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르노도상 수상 ★ 2019년 올해의 책 ★
★ 전 세계 10여 개국 번역 출간 ★ 멜라니 로랑 감독·주연 영화화 ★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인권선언이 발표된 후 백 년이 흐른 19세기 말의 파리,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남성들의 전유물일 뿐 여성들의 차지가 되지 못했다. 『미친 여자들의 무도회』는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으며 산업과 기술, 경제, 문화 전반에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이른바 ‘벨에포크 시대(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에 그 이름과 대조적으로 병원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한 채 결코 아름답지 못한 시절을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소설은 가부장 사회의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규범에서 이탈한 여성들을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던 실존 공간 살페트리에르병원을 배경으로, 당시 여성들이 겪던 차별과 억압, 폭력,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들의 연대, 해방, 반란을 그린다. 또한 의학 발전 초기의 현실을 생생히 조명하고, 비약적인 과학 발전이 이뤄지는 동시에 신비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상을 반영하고, 여러 역사적 사실과 저명한 신경학자인 장마르탱 샤르코와 조제프 바빈스키 등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사실감을 더한다.
『미친 여자들의 무도회』는 출간 이후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으며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르노도상, 스타니슬라스상, 파트리무안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에 시사잡지 <르푸앵>이 꼽은 올해의 책 30선, 문학잡지 <리르>가 꼽은 올해의 책 100선에 선정되었다. 영화 <비기너스> <리스본행 야간열차> 등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멜라니 로랑이 2021년 감독과 주연을 맡아 영화화되었으며, 같은 해 그래픽노블로도 제작되었고, 미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생생히 조명되는 19세기 여성 인권과 정신의학의 현실

1885년 3월, 파리 한복판의 살페트리에르병원. 갖가지 이유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정신질환자’로 규정된 여자들의 수용소. 히스테리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를 진정시킬 목적으로 에테르와 클로로포름 등을 흡입시키고, 환자들의 난소를 압박하고, 질과 자궁에 뜨거운 쇳덩이를 넣는 등 여자들의 병든 몸이 실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소설은 병원의 수간호사 준비에브가 깊은 잠에 빠진 환자 루이즈를 깨우며 시작된다. 삼 년 전 입원해 이제 열여섯 살이 된 루이즈는 잠을 자는 동안에만 비로소 과거의 끔찍한 기억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권위 있는 신경학자 장마르탱 샤르코 박사의 공개 강연 날만큼은 최면 시연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를 생각에 한껏 들뜬다. 최면술로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샤르코의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 최면에 걸려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를 보러 온 구경꾼들로 병원 안 강당은 가득찬다.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 속 광기에 사로잡힌 여자들에 대한 관심과 욕망은 사순절 셋째 주 목요일 ‘미카렘(Mi-Carême)’에 열리는 무도회 날 절정에 달한다.

차별과 억압 속 여자들의 수난사
혹은 강인한 여성 연대의 역사

살페트리에르병원은 저마다 뼈아픈 사연을 가진 여자들로 가득하다. 죽은 자들의 혼령과 소통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가족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갇힌 외제니, 고모부에게 강간을 당하고 히스테리발작을 일으켜 실려온 루이즈, 이십여 년 전 남성들의 폭행에 시달리다 범죄를 저지르고 붙잡혀온 ‘뜨개질하는 여자’ 테레즈 등이 병원 담장 안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의학과 과학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며 이 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수간호사 준비에브가 있다.
준비에브는 어린 시절 아끼던 동생을 병으로 잃고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세상을 향한 내면의 분노를 키우며 종교를 불신하고 의학과 과학만을 신봉하던 준비에브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외제니의 해방을 위해 ‘미친 여자들의 무도회’가 열리던 바로 그날 자신의 희생을 불사하며 엄청난 계획을 세우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뭉클하다. 가족 모두가 품은 신앙심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소외감을 느끼던 준비에브, 수년 전부터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황하던 외제니, 다른 환자들을 위해 뜨개질을 해주던 테레즈, 테레즈가 떠난 자리에서 여전히 뜨개질을 이어나가는 루이즈 등 병원 안 여자들이 “함께 경험해온 정신적 시련”을 통해 서로 존중하고 더욱 단단히 결속하며 이해해나가는 연대의 과정은 오늘날에도 가장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상기시키며 큰 울림을 준다.

구매가격 : 11,800 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도서정보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 엘릭시르 / 2023년 09월 15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범죄가 일어나고, 범죄를 숨기고, 범죄가 밝혀지는
크리스티아나 브랜드표 미스터리 만찬

“어쨌든 이 작품집의 제목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이 만찬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은 없으니까.”

‘미스터리 책장’에서 37번째로 출간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는 ‘유모 마틸다’ 시리즈로도 잘 알려진 작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미스터리 단편소설집이다. 20세기 황금기 미스터리 작가의 마지막 세대이자, 당시 영미권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가 중 한 사람인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능숙한 서술 기법과 완벽한 복선 회수, 반전의 연속과 의외의 결말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작품을 다수 남겼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는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집으로, 장편 작품을 접해본 독자들에게는 단편이 주는 새로운 재미를, 브랜드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탐미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미스터리 책장’에서 37번째로 출간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는 ‘유모 마틸다’ 시리즈로도 잘 알려진 작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미스터리 단편소설집이다. 20세기 황금기 미스터리 작가의 마지막 세대이자, 당시 영미권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가 중 한 사람인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능숙한 서술 기법과 완벽한 복선 회수, 반전의 연속과 의외의 결말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작품을 다수 남겼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는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집으로, 장편 작품을 접해본 독자들에게는 단편이 주는 새로운 재미를, 브랜드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탐미하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구매가격 : 12,600 원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세계문학전집 234)

도서정보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 문학동네 / 2023년 09월 27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전 세계에 알린 대표작
러시아 문학사상 가장 강렬하고 우아한 여성 서사의 탄생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와 「스페이드의 여왕」을 수록한 중단편선. 울리츠카야에게 수많은 문학상을 안겨준 중편소설 「소네치카」는 평생 책과 함께 살며 책에서 위안을 찾은 한 여자의 삶을 그렸다. 푸시킨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소설 「스페이드의 여왕」은 다양한 세대의 가족 구성원들을 통해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재치 있게 담아냈다. 이 두 작품은 광활한 러시아 역사와 문학을 토대로 하면서도 매우 압축적인 것이 특징이다. 박종소 교수가 번역을 맡아, 이러한 특징을 살려 강렬하고 짜임새 있는 문장으로 옮겼다. ★ 1996년 메디치상 ★ 1998년 주세페 아체르비 상 ★ 2012년 박경리문학상 ★ 201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운명을 감내하며 책 속에서 위안을 찾은 한 여자의 삶 「소네치카」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그는 자국의 문학상은 물론 메디치상(프랑스), 주세페 아체르비 상(이탈리아), 세계문학상(중국), 박경리문학상(한국), 유럽문학상(오스트리아), 지크프리트 렌츠 상과 귄터 그라스 상(독일)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그런 울리츠카야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첫번째 작품이 바로 중편소설 「소네치카」다. 원래 울리츠카야는 생물학을 전공하고 유전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과학자였다. 그러나 지하출판물을 소지하고 유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후,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소네치카」가 잡지 〈신세계〉에 발표되었을 때 울리츠카야는 쉰을 앞두고 있었다.
강렬하고 우아한 여성 서사를 담아 “소비에트 정권하 ‘여자의 일생’”이라고도 평가받는 이 소설에서는 책벌레인 주인공 소네치카를 중심으로 그녀의 남편 로베르트 빅토로비치, 딸 타냐, 딸의 친구 야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데, 소비에트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이 가족의 삶과 긴밀하게 조응한다.
한편 이 작품은 소네치카라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러시아문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러브레터인 동시에, 독자들을 깊고 넓은 러시아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우선 ‘소네치카’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비롯해 러시아 고전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인 ‘소냐’의 애칭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속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저녁이 되면 그녀는 (…) 달콤한 심연, 어두운 가로숫길, 봄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든다”는 문장 하나로 부닌과 투르게네프의 작품 속 풍경을 불러들여 소설의 밀도를 높인다. 평생 책에 파묻혀 살았고 결국 책 속에서 위안을 찾은 소네치카의 삶에서, 도서관을 스승으로 삼았던 어린 시절의 울리츠카야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학활동을 시작했으나 누구보다 활력 넘치는 지금의 울리츠카야가 엿보인다.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한 「스페이드의 여왕」

이 책에 수록된 두번째 작품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소설이다. 90대의 노부인 무르, 그 딸이자 안과의사인 60대의 안나, 30대의 손녀 카탸, 그리고 아직 어린 증손주들까지 4대가 등장한다. 한 가족의 구성원들을 통해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는 역사의 흐름 속 사람들의 삶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소네치카」에서도 그랬듯이, 「스페이드의 여왕」 속 가족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4대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이 가족에는 ‘아버지’가 없다. 여성과 아이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어린 그리샤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오로지 여자뿐이었다. 중심인물인 안나는 화려했던 과거를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괴팍함을 받아주고, 의사라는 직업에 충실히 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안나의 남편 마레크가 갑자기 귀국하면서 지금까지의 균형이 깨지고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소네치카」와 「스페이드의 여왕」, 두 작품 모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여성 인물들을 내세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러시아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폭력이 만연했던 소비에트시대를 산 연약하면서도 위대한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이다. 울리츠카야는 탄탄한 구성과 짜임새 있는 문장으로 독자를 붙잡아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불편한 양심,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금 우리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울리츠카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개적이고 격렬한 비판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정치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재단을 설립해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을 각지 도서관에 보내는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 ‘평화의 행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노바야 가제타〉에 「고통, 공포, 수치」라는 글을 발표하여 통렬한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현재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으로 근거지를 옮긴 상태다.
평생 러시아 역사와 문학을 토대로 글을 써오며 누구보다 깊이 러시아를 이해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울리츠카야이기에, “러시아의 이름으로 러시아 사람들의 의지에 반해 이루어지는 범죄”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럴 때일수록 문학의 힘을 믿고 문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울리츠카야. 그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는 문학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지탱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_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구매가격 : 8,400 원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세계문학전집 235)

도서정보 :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 문학동네 / 2023년 09월 27일 / EPUB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재창조한 새로운 신화
다음 세대를 지켜낼 지혜롭고 강인한 메데야의 일대기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첫 장편소설. “눈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크림반도의 풍경 속에서 메데야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문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메데야’는 그리스신화 속 여인 ‘메데이아’의 러시아식 이름으로,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메데이아 신화를 전복시켜 새로운 메데이아를 창조해낸다. 1900년에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살아낸 주인공 메데야의 삶을 통해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최종술 교수가 번역을 맡아 생생한 문장으로 옮겼고, 풍부한 내용의 해설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 2012년 박경리문학상 ★ 201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시대와 운명을 끌어안고 다음 세대를 지키는 강인한 메데야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그는 자국의 문학상은 물론 메디치상(프랑스), 주세페 아체르비 상(이탈리아), 세계문학상(중국), 박경리문학상(한국), 유럽문학상(오스트리아), 지크프리트 렌츠 상과 귄터 그라스 상(독일)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1992년 중편소설 「소네치카」로 주목받으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울리츠카야가 1996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 바로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이다. ‘메데야’는 그리스신화를 통틀어 가장 악명 높은 여인이라 할 수 있는 ‘메데이아’의 러시아식 이름이다. 러시아 고전문학의 사실주의 전통 위에 역사・신화・성서 등 풍부한 상호텍스트성을 지닌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울리츠카야는 이 작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메데이아 신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신화이자 안티-메데이아를 창조해낸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가족과 조국을 배신했지만 나중에는 그 남자에게 배신당해 자기 자식까지 죽이고 만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작품에서 꾸준히 다루어졌다. 소설 속 메데야는 그리스 여인 같은 외모, 훌륭한 몸가짐과 지혜로운 태도, 민간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능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신화 속 메데이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메데이아와 달리 메데야는 직접 낳은 자식이 없고, 대신 수많은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돌보며 다음 세대를 지켜낸다. 운명과 화해하지 못하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맞선 메데이아와 반대로, 메데야는 자기 운명에 순응하면서 운명에 상처 입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 품는다.
그런데 메데야가 지키고 돌보는 가족은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메데야의 가문에는 입양의 전통이 있으며,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식이나 혼외 자식도 동등한 구성원의 지위를 얻는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메데야의 동생 알렉산드라, 이모-조카 사이지만 자매처럼 자랐고 각각 ‘웃음’과 ‘눈물’을 상징하는 니카와 마샤 등, 매력적인 여성 인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가족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 그리하여 이 가족은 다양한 민족・문화・종교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이룬다.

크림반도의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슬픈 일대기

크림반도는 이 작품의 배경이자 울리츠카야가 작품을 집필한 장소다. 가족이 피란을 가 있었던 바시키르 자치공화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모스크바에서 보낸 울리츠카야지만, “만약 태어난 장소를 고를 수 있다면 고민 없이 남쪽을 고를 것”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크림반도에 대한 애정이 깊다.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은 모스크바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닌 크림지방, 게다가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계절인 겨울이 아니라 여름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현대 러시아 소설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 소설은 1900년에 태어나 혁명, 내전, 농촌 집단화, 대숙청, 전쟁, 강제 이주, 해빙 등 격동의 세월을 보낸 메데야는 물론 가족 구성원들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갈등과 비극은 “눈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크림반도의 풍경, 한과 슬픔이 서려 있는 러시아 역사와 얽혀들어 하나의 서사로 완성된다.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은 옛 세대에 바치는 책이자, 어떤 의미에서 가족을 애도하는 나의 통곡이다”라고 말했다. 크림반도가 무력으로 합병되고, 가족적 가치가 상실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울리츠카야의 통곡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러시아의 불편한 양심,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금 우리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울리츠카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개적이고 격렬한 비판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정치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재단을 설립해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을 각지 도서관에 보내는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 ‘평화의 행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노바야 가제타〉에 「고통, 공포, 수치」라는 글을 발표하여 통렬한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현재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으로 근거지를 옮긴 상태다.
평생 러시아 역사와 문학을 토대로 글을 써오며 누구보다 깊이 러시아를 이해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울리츠카야이기에, “러시아의 이름으로 러시아 사람들의 의지에 반해 이루어지는 범죄”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럴 때일수록 문학의 힘을 믿고 문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울리츠카야. 그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는 문학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지탱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_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구매가격 : 12,6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