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첩보전

도서정보 : 박상민 | 2019-12-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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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첩보 고수들이 벌인 1백 년간의 비밀전쟁

이 책은 근현대 첩보사의 태동과 성장이라는 의미심장한 시기를 보낸 20세기를 중심으로 약 1백년 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첩보 고수들의 비밀전쟁을 엮은 것이다. … “정보는 생명이다”는 말처럼 첩보를 포함한 광범위한 정보 쟁탈전은 이제 국가나 군대 뿐 아니라 기업, 단체 등의 민간 집단, 그리고 개인의 생존을 결정하는 독립적이면서 핵심 요소로 자리했다. … 이런 맥락에서 독자들이 첩보사의 변화 추이를 살펴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또 과거의 사례를 토대로 넓은 시야를 갖고 우리나라가 미래 첩보 강국으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는 바람도 담았다.
-<들어가는 글> 중 일부

구매가격 : 9,600 원

문화유산의 두 얼굴

도서정보 : 조윤민 | 2019-12-04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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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의 정수 vs. 후대 왕의 권력 의지
산 자를 위한 죽은 자의 왕릉

한반도에는 고대 이래 지속적으로 왕릉이 조성됐다. 조선시대에 조영된 왕과 왕비의 능만 11기에 이른다. 그중 북한 지역에 있는 2기의 능과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의 묘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주변 자연경관을 유지한 채 장례 전통과 유교문화의 정수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그 등재 사유였다. 풍수지리 사상이 어우러진 건축미와 엄숙한 제례가 유지되는 왕릉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왕릉이 죽은 권력자의 안식을 위한 의례 공간이라기보다 되레 산 자들의 의지와 열정, 음모와 조작, 땀과 눈물이 배인 치열한 삶의 장소라 본다.

권력 이동, 당파 싸움 등 정계의 파고에 따라 최고 권력자의 무덤은 파헤쳐지기도 했고, 후세의 의지에 의해 이전(천릉)이 이뤄지기도 했다. 집권한 왕에게 선대의 왕릉은 왕권 정당화와 권력 승계의 영속화를 위한 상징적 기제로서 역할을 했다. 반면 신하들은 추존 등의 문제나 왕릉의 위치 등의 사안을 두고 왕권을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했다. 실제로 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폐위된 왕후의 복위와 천릉을 기회로 삼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계를 재편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다. 한편 송시열을 위시한 신하 세력은 효종 영릉을 두고 왕과 면대하면서 갑론을박을 펼쳤고, 왕릉을 둘러싼 문제는 정쟁의 주요 사안이 되어 정치세력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능이 들어선 여주의 위치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릉은 “도성 10리 밖에서 100리 안에 조성해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기준을 어기고 100리가 넘는 먼 곳에 위치해 있다. 국법을 어기고, 게다가 거리가 멀어 능행과 관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여주로 굳이 능을 옮기려 했던 이유가 온전히 풍수지리 때문이었을까? 권세가가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새 왕릉을 조성할 자리를 여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닐까?” (64쪽)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의 상징 vs. 민초들의 피땀 어린 건축물
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궁궐

조선 초기, 세종은 개국 이념을 담아 왕조의 법궁으로 삼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한다. 명당자리에 경복궁을 지어 왕실 안정 및 왕가 존속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정치 공간으로 삼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 임진왜란 시 불탄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비슷한 논리가 등장한다. 서양의 ‘왕권신수설’과 유사하게 도성 한복판에 산을 등지고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진 궁궐은 왕가의 존엄과 왕의 권위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일반 백성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왕과 왕족의 생활공간이자 관료들의 정치공간인 궁궐은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이었다. 왕은 신권 견제를 위해 궁궐 중건을 추진하기도 했고, 궁궐 의례를 통해 왕권의 정통성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각인시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왕과 신하의 대립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고래 싸움에 터져나가는 새우등은 백성이었다. 궁궐은 그 규모와 상징성으로 인해 건립 및 보수하는 데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이 요구되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조세 및 직접적인 백성들의 부역은 불가피했다. 농번기를 제외하고 밤낮없이 차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말 그대로 죽어나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궁궐에서 행하는 국가의례나 궁궐에서의 삶이 가능하도록 갖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1000여 명의 궁녀나 수백 명의 환관 등 이들 역시 백성이었다. 장엄하게 지어지고 엄정하게 꾸려진 궁궐은 지배자의 권위를 드높이고 왕조의 번영을 꿈꾸게 하는 상징이었지만, 그 그늘에는 항상 민초의 땀과 한숨, 눈물과 피가 어렸다.

“궁궐과 도성 설계자는 경복궁 영역에 진입할 때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복궁으로 통하는 도로망을 치밀하게 조성하고 교차 지점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했다.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바로 통하는 대로를 내지 않고, 동북쪽으로 우회 도로를 만들어 가로로 놓인 종로와 연결되게 했다. 이 우회 도로를 따라 종로에 이른 뒤에 서쪽으로 꺾어 잠시 걸으면 육조거리 앞 사거리(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북쪽으로 난 길로 들어서는 순간 경복궁이 그제야 외양을 드러낸다. 궁궐과 산과 하늘이 일직선상에 하나로 묶여 다가오며 웅장함을 연출하고, 시선은 금세 경외감으로 가득 찬다.” (127~128쪽)


행정구역을 나누고 치안을 유지 vs. 사는 곳이 곧 신분이다
분리하고, 차별하며, 통치하라 성곽과 읍치

고종 어진을 그린 외국인으로 알려진 아널드 새비지랜도어는 서울을 여행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저녁 통행금지가 시작될 무렵 한양 성내로 서로 들어가려는 인파에 휩쓸려 성문을 겨우 통과한 것이다.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애걸하지만 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릴 뿐, 대문은 이튿날 해 뜰 때까지 열리지 않는다. (…) 서울은 이튿날 아침까지 외부세계와 격리돼 있었다.” 성벽은 그저 성의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아니었다. 성내는 왕을 비롯한 권력층, 양반, 중인 등 이른바 신분제의 특권을 누리는 권력자들의 세상이었다. 성 밖에는 대체로 임금노동자, 빈농 등 하층민이 사는 곳이었다. 성곽은 이들을 분리함과 동시에 차별과 배제의 벽이기도 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치의 입지와 건축물 배치 역시 통치 권위를 과시하는 데 충실했다. 한양(서울) 도성은 ‘궁궐-산-하늘’의 일체화된 경관 경험으로 통치자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냈으며 이를 백성들에게 내면화시키고자 했다. 이 고도의 정치기술은 뒷산을 배경으로 풍수원리에 따라 조성된 읍성에도 반영되었다. 중심부에 자리한 관아나 동헌의 위치 및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 시야를 확보한 길 등의 모습은 한양뿐만 아니라 낙안읍성 등 조선시대 읍성의 전형으로 자리잡았다. 군사 행정시설이자 지배권력의 권위를 상징하는 성곽과 읍치는 그 자체로 통치수단의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인조와 정조 등은 성곽 건설과 보수 사업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당파 싸움 와중에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읍성이 향리 집단과 하급 관속이 생활하는 거처로 정착되면서 읍치지역은 권력에 기대어 사는 향리와 하층민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양반층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러면서 읍성 지역은 국왕의 존엄과 권위가 발하는 곳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양반에게 경시당하고 멸시받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변모했다.” (222쪽)


배우고 익히는 선비의 학교 vs. 앎이 곧 권력, 권력자를 양성하라
국가기관인 성균관과 향촌지역의 향교, 서원

조선 사회의 권력 구조는 군신공치君臣共治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왕과 양반 관료는 어느 한쪽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균형을 통해 협치를 해나갔다. 이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성균관 제도다.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는 것이 성균관 유생에게 표면적으로 주어진 역할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왕)로부터 받는 특권과 조정 대신들과의 정치적 공조 등이 놓여 있었다. 성균관은 주류 지배층을 재생산하는 하나의 정책 제도였고, 유교이념을 내세우는 교육기관이자 의례 공간이면서도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치 싸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정치적 공간이었다.

“파리 대학뿐 아니라 성균관에도 특권이 그냥 주어지지는 않았다. 국왕은 성균관 유생이 정성을 다해 문묘를 지키고 학업에 힘쓰며, 국왕을 받들고 통치에 힘을 보태는 충신이 되기를 기대했다. 특별과거와 사은품 하사는 장차 군주를 옹호할 충직한 신하가 되라는 사전 조치로, 결국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치적 수완인 셈이다. (…) 조선 전기만 해도 성균관 유생의 동맹휴학은 대체로 국왕과의 극단의 대치로 치닫거나 정치세력 간의 격한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 하지만 붕당 간의 권력다툼이 본격화되는 17세기 이후엔 동맹휴학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여전히 의리와 도리 등 거창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관계 진출이라는 자신들을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 특정 당파의 속내를 대변하거나 유생들 자신의 이익에 급급할 때가 잦았다.” (297~298쪽)

사림 세력은 유학이념과 규범에 따르는 조선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서원과 향교를 기반으로 유교화 작업에 착수했다. 율곡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나 향촌 교화에 진력하고,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사림들이 저마다 서원을 건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원과 향교에서는 교화를 행하고 의례를 치르기도 했지만 동시에 향촌 지배층의 이익을 담보하는 착취기구이자 일종의 권력기관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특히 조선 지배층은 불교계 인력과 경제적 기반을 활용해 권력의 토대로 삼았다. 대표적인 예가 절터에 자리한 서원이다. 사찰에 자리잡은 서원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사찰(불교)에서 서원(유학)으로 문화 권력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또한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음을 보여주면서 향촌 주민들에게 이를 주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권력과 지배의 창으로 본 문화유산
그 빛과 그림자를 직시하다

이 책은 권력 재현의 매개체로서 건축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특히 조선시대 권력기술자들이 어떻게 당시 백성들의 감정과 사고를 통제하고 행위를 이끌어냈는지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 건축의 미와 문화적 가치, 이념의 본연과 정신적 유산까지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과 관점을 달리한 문화유산 관찰기는 세월을 담아 살아난 유적이 전하는, 어쩌면 어두워 보일지도 모를 그 아픈 유산까지 보듬으려는 움직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의 말처럼 빛과 그림자, 이 둘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지혜라 믿기 때문”이며 “그건 여전히 명멸하는 이 시대의 빛과 그늘을 껴안으려는 숙연한 다짐”이다. 그리하여 공적功績을 힘들게 지어 올리고 조선의 장엄한 등정을 떠받쳤던 이들, 영광의 발자취 아래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이들, 그 백성의 그늘을 이 시대의 유적 마당으로 기꺼이 초대하려는 것이다.

“사찰시설과 재산은 교육기구의 기반을 넓히는 데도 활용됐다. 향교와 학당을 중창할 때 사찰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 썼으며, 지방에서는 아예 사찰 건물을 향교로 삼은 곳도 있었다. 사찰이 보유했던 전답과 노비를 성균관과 향교, 학당으로 옮겨 교육을 활성화하고 유교 의례를 수행하기 위한 경제 기반으로 삼았다.” (322쪽)

구매가격 : 12,000 원

인도, 암흑의시대

도서정보 : 샤시 타루르 | 2019-1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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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조사와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인도 식민역사의 사실만을 낱낱이 밝혔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의무이다
올해는 인도(India)가 영국 제국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한 지 71주년이 된다.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로, 연도는 다르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날인 광복절과 그 날짜가 같다.
『인도, 암흑의 시대』는 인도 사람의 입장에서 본 영국 식민지 시절의 인도의 이야기이다. 샤시 타루르(Shashi Tharoor)는 현재 인도의 국회의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방대한 역사적 기록과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식민 지배 당시의 인도의 모습을 상세히 다루면서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인도인을 대변하고 있다.
지배한 측은 ‘지배 덕에 피지배국이 발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반대로 지배를 당한 측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인도, 암흑의 시대』는 상세한 근거를 통해 식민 지배에 대한 양측의 아전인수 격의 주장과 해석, 시각을 바로잡고, 보다 객관적으로 식민사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를 가진 만큼, 인도의 식민 지배 당시 상황을 우리나라의 식민지 역사의 모습과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속해 있으나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의무이다.

구매가격 : 10,500 원

클래식 클라우드 012 - 피츠제럴드

도서정보 : 최민석 | 2019-11-2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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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꿈과 이상과 좌절을
자신의 삶과 문학으로 보여준 작가”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





◎ 도서 소개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미국의 꿈, 그 표면과 이면을 생생하게 비추어주는 자화상,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 여정을 따라가다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다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에서부터
『위대한 개츠비』를 쓰며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뉴욕까지,
재즈 시대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피츠제럴드의 공간을 찾아서

- 재즈 시대의 아이콘 피츠제럴드를 따라가는 특별한 문학 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문학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920년대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그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며,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남겼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하루키와 샐린저가 자신들의 작품 속에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낼 정도로 피츠제럴드는 많은 후배 작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는, 21세기 미국 대학 영문학 강의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 T. S. 엘리엇은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이룬 첫 진전”이라고 상찬한 바 있다. 또한 랜덤하우스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에서 『율리시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개츠비’는 여러 번역본의 책을 비롯해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꿈과 이상을 좆는 인간형의 전형으로서 ‘개츠비스크gatsbyeque’라는 단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츠제럴드는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으로 남아, 시대에 빛바래지 않는 시적인 문장으로써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최민석은,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다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에서부터 볼티모어와 프린스턴을 거쳐,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뉴욕까지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그의 삶의 자취를 좇으며, 시시때때로 가방에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꺼내 읽는다. 그러면서 “작가의 삶이었고, 예술인의 삶이었고, 잡을 수 없는 꿈을 향해 손을 뻗은 이” 피츠제럴드에 점차 빠져든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는 한 가지 문제에 오래 주목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피츠제럴드만이, 세상의 불편한 문제를 문학적으로 대담하게 대면했다. 그가 다룬 문학적 주제는 계급이다.”


근원적 상처에서 인생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욕망의 여정

피츠제럴드를 찾아가는 여행은 할리우드에서 출발한다. 피츠제럴드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연상시키듯 저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피츠제럴드가 비참하게 추락한 후반부의 인생을 먼저 맞이한다. 아내 젤다의 정신병, 알코올중독, 막대한 빚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피츠제럴드가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서, 마흔네 살의 ‘이미 죽은 작가’로서 살았던 할리우드 시절이다. 재기를 꿈꾸며 『마지막 거물』 집필에 몰두하지만, 그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연인 세일러 그레이임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여기서 저자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 피츠제럴드의 근원적 상처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평생의 상처를 남긴 애증의 뮤즈, 지네브라 킹. 2쇄밖에 찍지 못한 『위대한 개츠비』의 초라한 성적. 술을 끊기 위해 아이스크림으로 허전함을 달랬던 ‘슈밥스약국’. 명문대 출신의 고상한 취향을 되새겼던 ‘할리우드볼’ 등의 이야기를 통해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근원적 상처를 돌아본다.
아내 젤다의 조현병 치료를 도우며, 사교계의 명사에서 ‘쓰는 작가’로 살았던 볼티모어를 거쳐 최민석 작가가 찾은 곳은 프린스턴이다. 피츠제럴드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한 프린스턴대 코티지 클럽을 취재하며 피츠제럴드가 체득했던 특유의 경쟁적이고 계급적인 면모를 살펴본다. 아울러 피츠제럴드의 교정 흔적이 남아 있는 『위대한 개츠비』 초판본과 대면하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진동케 하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실감한다.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을 좇는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재즈 시대의 매혹과 환멸이 뜨겁게 교차했던 뉴욕이다. 평생 여러 도시와 나라를 떠돌며 유목민처럼 살았던 피츠제럴드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가장 상징하는 도시는 단연 뉴욕이다. 데뷔작 『낙원의 이편』이 크게 성공하면서 뉴욕 사교계에서 오늘날의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데다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하는 등 삶과 문학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그는 영원한 뉴욕의 작가라는 것을. 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처럼, 마치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미국의 성장과 향락을 상징했다는 것을. 그는 우리가 문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화려함을 가장 일찍 획득하고 이를 온몸으로 즐기고, 그 때문에 불나방처럼 그 화려한 불 속에서 타버렸다는 것을.”


“변한 것은 종이뿐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시대에 빛바래지 않았다”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설정은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만큼 그의 문학 세계에는 첫사랑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받은 실연의 상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1915년, 그는 시카고 금융 부호의 딸인 지네브라 킹을 만나 사귀지만, 가난뱅이 청년은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실연을 당하고 만다.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젤다에게서도 한 차례 파혼을 당한 적이 있는데,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동일한 종류의 상처에 절망한 피츠제럴드는 인생에서 돈과 성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기게 되었고, 이런 갈망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을 강하게 지배하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아이비리그 대학 시절 쟁쟁한 집안 출신의 동문들에게서 느낀 계급적 위화감 역시 그의 인생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1913년,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그는 상류층 자제들이 교유하는 식사 동아리 ‘코티지클럽’에 가입했다. 우월 의식을 가진 멤버들은 내부 결속을 다지며 향후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될 경험을 미리 한다. 이들과 어울리며 계급의 민낯을 보게 된 중산층 출신의 피츠제럴드는, 프린스턴대가 속물을 길러낸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감각이라는 점 또한 인정했다.
실연의 상처와 강렬한 계급 상승 욕구는 피츠제럴드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두 축이다. 저자는 이 축을 중심으로 그려나간 피츠제럴드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고민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21세기 한국이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30∼1940년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 역시 태어날 때 이미 자기 삶의 색깔이 결정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중략) 그렇게에 나는 피츠제럴드를 읽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좀 더 관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사는 세상의 드러나지 않은 속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 책 속에서

나는 21세기 한국이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30~1940년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 역시 태어날 때 이미 자기 삶의 색깔이 결정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 역시 부모로부터 ‘자본’과 ‘토지’와 ‘교육의 기회’와 심지어 ‘취향’까지, 유전자처럼 물려받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름에 ‘경’ 같은 호칭을 붙이지 않지만, 실상은 사는 곳에 따라, 외식을 하고 휴가를 보내는 장소와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실제 계급을 알고 싶지 않아도 강요받듯 알게 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피츠제럴드를 읽는 것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좀 더 관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묘한 동질감에 휩싸였고, 죽은 미국 작가로부터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는 이후에도 줄곧 비참하게 살다가 빚더미 속에 죽어버렸지만, 적어도 미국 호황기에 가장 성공했던 작가마저 이러한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내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린스턴대 학생이자, 미국 중부의 중산층 출신이었던 그는 이 세상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 있다는 걸 깨닫는다. 보통 집안 출신의 명문대생, 그것은 너무나 불충분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이듬해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고받는다. 지네브라 킹은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도 모두 되돌려 받길 원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이는 훗날 『위대한 개츠비』를 작업할 때까지 영향을 준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지나간 인생은 고칠 수 없기에, 작가가 고칠 수 있는 것은 작품밖에 없다. 그로 인해, 남은 인생을 바꾸려는 것이다. 게다가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시인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시로 점철된 소설을, 각 음절이 음악적이고, 각 문장이 시어처럼 울림을 주는 소설을 위해, 그는 이 빨간 의자에 앉아 『마지막 거물』을 고쳤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거물이 되기를 바라며…….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만약 피츠제럴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바로 이때를 택하고 싶다. 파리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반작이던 때가 아니라, 이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육체는 시들어가지만 문학적 재능은 시들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원고와 씨름하던 시절 말이다. 아무리 화려한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작가에게 가장 어울리는 시기는 작품을 위해 생활의 군살을 깎아내는 시기이니까 말이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물과 연관이 깊다. 개츠비가 비를 맞기도 하고, 물 위에 떠 있기도 하고, 물에 빠져 있기도 하다(그의 죽음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지만, 이는 상징적인 익사와 같다). 더욱이 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밤마다 개츠비가 자기 집 맞은편의 녹색 불빛을 고독하게 응시하는 것인데, 그 녹색 불빛은 데이지의 집이고, 데이지의 집은 바다 건너편에 있다. 즉, 거대한 물을 무사히 건너야, 데이지에게 닿을 수 있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술에 취해 있건, 아내가 연애를 하건, 외국에 나가서 또 외국으로 여행을 가건, 써야 할 상황이 되면 쓰는 작가였다. 게다가, 그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어쩌면 피츠제럴드에게 ‘쓴다’는 ‘산다’와 동의어였을 만큼, 사는 동안 써야 했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아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더 이상 책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무명 시나리오 작가로 지낼 때에도, 계속 소설을 썼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벅찰 만큼 건강이 악화됐을 때에도, 죽기 며칠 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재기작 원고를 썼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써야 했던 작가였다. 피츠제럴드라는 산에 비하면 고작 한 움큼 정도 자라난 풀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어떠한 이야기라도 써내야 하는 날들의 이어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새겨졌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그 문장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인생은 원래 이렇다, 세계는 자신의 흐름대로 흘러가니 우리는 그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우리의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자기 무덤에 찾아온 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는 듯, 비석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길을 잘못 들고, 시간을 낭비하고, 진전 없어 보이더라도, 생을 살아가는 이는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어 가더라도’ 말이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묘지 위에는 언제 바쳤을지 모를 마른 꽃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꽃을 사 오지 못한 걸 후회하며, 대신 무덤 위에 달라붙은 새똥들을 맨손으로 치웠다. 딱딱하게 말라붙어 마치 비석과 하나인 것 같았다. 언제 붙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 같았다. 코를 훌쩍거렸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에서 한때 가장 영화로웠던 작가의 최후라 생각하니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최후, 아니 인간의 마지막 모습일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무덤 위에 손을 얹은 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피츠제럴드가 받은 상처의 대부분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유년기에는 곱상한 외모 때문에 세인트폴의 고약한 소년들에게 시달렸고, 청소년기에는 뉴저지의 명문 가톨릭 기숙학교 뉴먼에서 상류층 자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며 지내야 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지네브라 킹의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다. 부자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태생적 결정 요인에 의해 상처를 주고받는 미국 사회에 대해 그는 어찌 느꼈을까. 이런 사회에 태어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느꼈을까.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고한 벽을 쌓아둔 미국의 지배 계층, 그중에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원고 중 많은 부분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걸 느끼는데, 피츠제럴드는 책을 내고 난 후에도 덜어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후대로부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는 더 완벽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녹색 불빛을 향해 끝없이 손을 내뻗은 개츠비처럼……. 개츠비에게 녹색 불빛은 데이지였겠지만, 피츠제럴드에게는 누군가의 마음을 진동케 하는 문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파이어스톤에서 만난 『위대한 개츠비』의 무수한 교정 흔적 역시 내게 문신 같은 자극을 남겼다. 그건 이미 출간된 책도 다시 펴낼 기회를 노리며 끊임없이 고쳤다는 뜻이니까. 『밤은 부드러워』 역시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서사의 순서를 바꿔 재출간하지 않았는가. 『낙원의 이편』에서부터 『밤은 부드러워』까지, 그는 끊임없이 고친 것이다. 그러니 유고작 『마지막 거물』은 얼마나 고친 원고였을까.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문학의 길은, 아니 예술의 길은 성공해봐야 결국 태생적으로 다시 슬퍼질 운명이다. 그리고 이 중 가장 큰 슬픔은,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당대 사람 대부분의 관심 밖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또한 문학이 다루는 주제가 본질적으로 관심 없는 곳을 조명하고, 그 조명을 끈질기고 줄기차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심을 받아봤자, 문학의 성공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뤄지는 작은 축제에 불과하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의 화려함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피츠제럴드는 소설 속에 개츠비의 파티를 그토록 화려하게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피츠제럴드는 이 슬픈 길을 걸은 작가라 생각한다.
- 〈04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 뉴욕〉 중에서

피츠제럴드에 관한 책을 정리하며, 계급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고민하고, 괴로워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유효성은 1920년대와 2010년대라는 시간을 뛰어넘고, 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다. 피츠제럴드의 삶은 자기 욕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지만, 사실 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를 따라가봤을 뿐인데, 과거 미국 사회의 맨얼굴뿐 아니라, 현재 우리 욕망의 이중적 얼굴도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그가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의 그림자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구매가격 : 15,040 원

클래식 클라우드 013 - 레이먼드 카버

도서정보 : 고영범 | 2019-11-2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카버의 삶과 문학 세계를 찾아서

무라카미 하루키, 김연수, 김중혁 등
많은 작가들의 문학적 스승



“정신없이 읽었다!
카버의 인생과 문학, 그가 살았던 세계를 생생하고도 흥미롭게 다룬 여행기이자 전기이자 에세이인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의문이 남는다.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어쩌면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시들이 그 답일 수도!”
- 김연수(소설가)







◎ 도서 소개

불안하고 위태로운 소시민들의 일상 속 균열을
간결하고 단단한 문체로 그려낸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카버의 나라를 찾아가다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 아메리칸 체호프,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로 평가받는 레이먼드 카버. 우리에게는 영화 〈숏 컷〉(1993)의 원작자로 먼저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카버의 문학적 수련기인 1960년대 미국 문학에서는 토머스 핀천, 존 바스 같은 포스트모던한 작가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카버는 이런 사조와 대척점에 서서 사실적인 기법으로 미국 소시민들이 처한 불안정한 일상을 그려나감으로써 1970∼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했다. 선배 작가들인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와 달리 그는 주로 블루칼라의 삶에 관심을 두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시 주변부 인생들의 신산하고 어둡고 뒤틀린 이면을 현란한 실험이나 기교 대신 단순하고 평이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으로 담아냄으로써 ‘미국판 노동문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미국의 보르헤스라 불리는 도널드 바셀미는 카버의 작품에 대해 “강하고, 독창적이고, 진실로 가득 차 있으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라고 상찬한 바 있다. 카버의 작품들을 직접 번역하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카버를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라며 존경했고, 국내에서도 김연수, 김중혁 같은 작가들이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는 등 ‘작가들의 작가’로 통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고영범은 국내에 나와 있는 유일한 카버 평전의 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평전 번역을 계기로 카버를 비롯한 동시대 작가들을 두루 읽으며 한 시대의 문학 풍경을 조감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폭넓은 시선은 이 책의 밑바탕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저자는 카버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야키마에서부터, 문학적 수련기를 보낸 치코와 아르카타, 대학 사회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최하의 생활을 이어간 새크라멘토를 거쳐,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평생 원하던 삶을 비로소 누리며 말년을 보낸 시러큐스와 포트앤젤레스까지 카버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붙어 있어야 할 ‘삶’과 ‘사람’과 ‘사랑’이 결렬되고 또 말라붙고, 그래서 고통받은 것이 카버의 삶이고, 그 고통의 기록이, 그 결렬의 봉합 가능성을 보려 한 것이 그의 문학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 책은 카버의 주요 소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그의 시까지 소개하고 있다. 카버는 우리에게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와 소설 창작을 늘 병행해왔다. 오십 평생 동안 여섯 권의 시집에 총 306편의 시를 선보였으니, 결코 과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의 시는 대부분 소설과 출발점을 공유하고 있고, 이야기 형태로 발전하기 전의 아이디어나 상황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둘러싼 내외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요긴한 매개가 된다. 그것은 그의 삶과 문학 세계를 비추어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 될 것이다.


카버의 살과 뼈와 피를 만든 야키마에서부터
글쓰기와 낚시를 하며 평생 원하던 삶을 누린 포트앤젤레스까지,
‘나쁜 레이먼드’와 ‘착한 레이먼드’의 자취를 따라가다

카버를 찾아가는 여행은 야키마에서 출발한다. 미국 북서부 지방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캐스케이드산맥 아래 위치한 야키마는 광활한 계곡 지대로서, 카버의 아버지는 이곳에 있는 목재소에서 톱날을 다루던 노동자였다. 카버는 이곳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의 무겁고도 엉성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이는 야키마의 광대한 자연과 함께 훗날 그의 문학 세계를 이루는 핵심이 되지만, 어린 카버는 새로운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야키마를 늘 떠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작가를 동경했다. 야키마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어린 나이에 메리앤 버크와 결혼한 카버는 작가가 되기 위해 야키마를 떠난다. 저자는 야키마 기행에서 카버가 경험했던 가난과 그의 몰취향적 성향, 그리고 두꺼운 덮개 밑에 감정을 숨긴 것 같은 무심한 태도 같은 것의 연원이 이 소도시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실감한다.

카버는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치코주립대학에 이어 훔볼트주립대학에 들어감으로써 본격적으로 문학적 수련기를 거친다. 치코에서 만난 존 가드너를 통해 모방의 진실성을 강조한 ‘정직한 허구(honest fiction)’라는 창작 모토를 배우고, 또한 읽어야 할 작가들과 소위 ‘작은 잡지(little magazine)’들을 두루 소개받음으로써 문학의 세계로 한층 깊이 들어간다. 훔볼트주립대학에서 만난 리처드 데이는 카버의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감을 북돋워줌으로써 카버가 작가로 성장해가는 데 심리적 지반이 되어준다. 하지만 카버가 처한 경제적 지반은 매우 허약해서 제재소에 일자리를 얻어 학교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저자는 카버가 치코에서 2년을 보낸 뒤 훔볼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넘었던 고도 3000미터의 산길을 따라 넘으며 갓 스무 살의 젊은 그가 마주했던 인생의 급커브들을 반추해본다.

대학 사회를 떠난 이후 카버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생활 전선과 마주한다. 이 시절 카버는 백화점 완구 조립 일을 하다가 해고당하며, 그 후 전기마저 끊기고 집세도 못 내는 등 최하한선의 생활을 이어간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말 그대로 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맛본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런 상황에서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만남은 카버 인생의 새로운 변곡점이 된다. 리시는 일찍부터 카버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새로운 소설’의 기수로 그를 중앙 문단에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그의 주요 작품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세 권을 모두 편집했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관에 대한 확신이 지나친 나머지 작가의 원고를 재창작에 가까울 만큼 편집하여 문학적 스캔들을 낳기도 했다.

낭만적 열기로 가득한 1960년대가 물러가면서 카버의 작품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환상을 넘어 환멸을 경험하면서 이제 카버의 어둡고 기이하게 현실주의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독자군이 형성되어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1977년에 술을 완전히 끊기 전까지는 “인생이라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던” 고통의 연속이었다. 두 번의 경제적 파산, 메리앤과의 불화,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알코올중독이 그를 옭아맸다. 카버는 알코올의존증이 심하던 이때를 ‘나쁜 레이먼드 시절’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재생을 위한 마지막 침몰’의 시절이었다.

마침내 시러큐스대학의 종신 교수로 부임하면서 카버는 작가로서 전성기를 보낸다. 오랫동안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알코올중독이라는 긴 터널에서도 빠져나온 터였다. 이곳에서 4년을 보낸 그는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스트라우스 기금을 받게 되면서 미련 없이 교수직을 내려놓고 두 번째 아내인 테스 갤러거와 함께 포트앤젤레스로 가서 평생 원하던 삶을 누린다. 그는 이 시절을 잘 구운 고기 위에 얹어 먹는 소스인 그레이비에 비유하기도 했다.

저자는 카버의 인생을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으로 읽는다. 카버는 『말엽의 단편』이라는 시에서 이번 생에서 원한 것은 “내가 사랑받은 인간이었다고 스스로를 일컫는 것, 내가 / 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었다고 선언한다. 그 사랑은 운이 좋아 얻은 따뜻한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대상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집착했던 광증이었을 수도 있다. 이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랑을 카버는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모두 경험했을 것이고, 이를 세밀화처럼 그려나갔다. 그 세밀화는 삶과 사람과 사랑 사이에서 평생 서성일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초상이기도 하다.


◎ 책 속에서

카버의 소설을 읽은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대상으로부터 차가운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가는 문장들에 곧 매혹되었다. 마치 따귀를 때리듯이 서늘하고 매섭게 넘어가는 매 페이지의 문장마다 작가의 서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 「프롤로그」 중

미국 문단에서는 카버를 선두에 세운 이 시대를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당시 영미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예지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던 《그란타》가 1983년 여름 호에서 “더러운 리얼리즘 dirty realism”이라고 적절하게 명명한 이 일련의 작품들은, 대부분 미국 노동계급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들의 작품에서 1980년대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아무런 뒷소문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린 우리의 노동문학, 만약 우리가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여러 가닥의 문학적 연장선 위에 놓였을 법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 「프롤로그」 중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카버는 주변에서 소재 혹은 사소한 실마리를 취한 다음에 그것을 오랜 기간에 걸쳐 풀어내고 가공하는 식으로 글을 썼다. 카버 본인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작품화한 적은 없다고 늘 주장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가족, 특히 아들과 딸은 아버지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아버지가 작품 속에서 다루는 가정사가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서 자기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식에 절망하고 분노했다. 카버는 그런 반응 때문에 자기 작품의 방향을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 01 「카버의 나라로 가는 길」 중

카버의 어릴 적 소원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야키마를 떠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동경하던 아이답게 카버는 작가가 되려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야깃거리를 찾으려면 새로운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는 야키마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야키마를 떠나는 일이 결국은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02 「아버지의 월급 시절」 중

야키마 방문에서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것은 아니다. 카버가 경험했던 가난, 평생 주변 사람들이 놀려댔던 그의 몰취향적 성향, 그리고 몇 겹이나 되는 두꺼운 덮개 밑에 감정을 숨긴 무심한 태도 같은 것, 그러니까 카버 문학에서 두드러지는 ‘없는 것들’의 연원이 지금도 이 소도시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며칠에 불과한 짧은 체류였지만 그 연원을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02 「아버지의 월급 시절」 중

가드너는 소설 창작법 외에도 다른 두 가지 면에서 카버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는 학생들이 읽어야 할 작가들을 소개해 준 것이었다. 가드너는 조지프 콘래드, 루이페르디낭 셀린, 캐서린 앤 포터, 이사크 바벨, 월터 밴 틸버그 클라크, 안톤 체호프, 호텐스 캘리셔, 커티스 하낵, 로버트 펜 워런, 윌리엄 개스, 제임스 조이스, 귀스타브 플로베르, 이자크 디네센(본명은 카렌 블릭센) 등 카버가 접해보지 않은 작가들을 소개했다. 당대에 가장 유명하던 헤밍웨이와 윌리엄 포크너에 대해서는 “포크너가 쓴 것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읽어라. 그다음에는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어라. 네 머리에서 포크너를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라고 했다. 가드너는 자신의 취향에 관해서는 비타협적이어서 그가 추천해준 작가를 읽고 난 카버가 문제를 제기하면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주었던 책을 말없이 빼앗아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03 「현실의 불들에서 익어가다」 중

많은 이들이 카버를 온순하고 자기주장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면 카버는 설사 다른 이들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가는 면이 있었다. 바로 이런 성향이, 난처한 소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그의 창작법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 03 「현실의 불들에서 익어가다」 중

카버는 초기 작품들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흑백이 완전히 분리된 환경에서 자라난 백인의 태도(흑인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과 공포, 그들을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를 거친 용어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익명의 타자였던 흑인에게 차츰 적대적일망정 구체적인 이름과 함께 자신을 압도하고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부여했고, 더 나아가 그들과 더불어 무언가를 나누려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공감’을 이야기하고, 공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지점에 이른다. ‘소설가 카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가 거쳤던 이 변화의 전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대의식과 더불어 자기의식을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갔고, 그리하여 가장 사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시대의식을 체화했던, ‘윤리적 소설가’로서의 카버의 면모를 볼 수 있게 된다.
- 04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중

카버는 미국 촌놈, 소위 레드넥red-neck 출신이다. 낯선 것을 싫어하고, 특히 이국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배격하고 보는 미국 백인 노동자 계급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카버는 동시대 히피 문화의 진원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인근 지역에 살면서도 그들의 복식이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취한 적이 없고, 심지어 1980년대 이전까지는 흑인들과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그들을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타자로 여기면서 공포와 의심의 시선을 거둔 적이 없었다.
- 05 「새로운 소설의 기수」 중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 작품을 놓고 토론하는 개인 면담 시간에 카버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소설에 관한 카버의 완강한 두 가지 가르침 ? 첫째,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대화란 상대방의 말에 대한 비합리적인 예측일 뿐이라는 점, 둘째, 멋있어 보이는 문장은 지워버리라는 것 ? 은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으로 남았다.
- 06 「다시 바닥으로」 중

글쓰기를 앞에 내세웠던 삶, 그 전쟁터에서 본인은 어찌어찌 살아남아 훈장도 받았지만, 가장 참혹한 부상을 입은 것은 가족들, 그중에서도 크리스였다. 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 밴스 역시 끊임없는 이사와 불안정한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대마초 속으로 도피한다. 그러나 생김새와 성격이 아버지와 더 많이 닮은 딸, 소설 「거리」와 에세이 「불」에서 아버지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나왔던 크리스는 불행하게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알코올의존증 인자와 자기 파괴적 기질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 카버는 남은 생을 사는 동안 딸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사실상 없는 것에 대해 내내 고통스러워했다.
- 08 「몸 안의 술을 말리는 동안」 중

비평가들과 젊은 소설가들 중 일부는 미니멀리즘이니 더러운 리얼리즘이니 하는 새로운 표어를 몰고 다니는 카버를 두고 미국 소설의 ‘뉴웨이브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버는 그런 호칭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유머를 섞어서 대답했다. “난 내 아이들의 아버지일 뿐입니다.”
- 09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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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

도서정보 : 현상윤 | 2019-11-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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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견훤과 함께 해마다 교전하였고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하다가 태조 18년 6월에 견훤 맏아들 신검(神劒)의 반란 때문에 도망하여 고려로 왔는데, 태조의 후한 예의로서 대접하고 상대하며 상부(尙父)*라고 호칭하여 남쪽 궁궐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처음에 견훤이 잉첩(?妾)*이 많아 아들 21명을 두었는데(중략)<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3,000 원

고려 태조

도서정보 : 현상윤 | 2019-11-2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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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는 견훤과 함께 해마다 교전하였고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하다가 태조 18년 6월에 견훤 맏아들 신검(神劒)의 반란 때문에 도망하여 고려로 왔는데, 태조의 후한 예의로서 대접하고 상대하며 상부(尙父)*라고 호칭하여 남쪽 궁궐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처음에 견훤이 잉첩(?妾)*이 많아 아들 21명을 두었는데(중략)<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3,000 원

김홍도

도서정보 : 고유섭 | 2019-11-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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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외사(壺山外史)>에는 산수(山水), 인물, 화훼(花卉), 영모(翎毛)(새나 짐승 그림)가 본래 오묘함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신선도(神仙圖)에 더욱 능하여 구김실 문양(皺擦句染)과 몸뚱이에 옷자락(軀幹衣紋)이 옛사람의 수법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의 가장자리를 옮기고 들추어내어~<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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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도서정보 : 고유섭 | 2019-11-1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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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외사(壺山外史)>에는 산수(山水), 인물, 화훼(花卉), 영모(翎毛)(새나 짐승 그림)가 본래 오묘함에 도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신선도(神仙圖)에 더욱 능하여 구김실 문양(皺擦句染)과 몸뚱이에 옷자락(軀幹衣紋)이 옛사람의 수법을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 자연의 가장자리를 옮기고 들추어내어~<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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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

도서정보 : 존 톨런드 | 2019-11-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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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태평양전쟁인가

태평양전쟁은 비록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기는 했지만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수십만 명의 조선인이 군인과 노무자로 징용되어 머나먼 남방 전선으로 끌려갔으며 젊은 여성들은 소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또한 미 육군 제100보병대대 ‘니세이 부대’의 소대장이었던 김용옥 대령처럼 미군으로 복무한 조선인이 있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광복군이 OSS 극동지부의 도움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전쟁 말기에는 한반도 상공에 미 폭격기들이 나타나고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으며 치스차코프 상장이 지휘하는 소련군 제25군 6개 사단 15만 명이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를 침공해 일본군과 짧은 전쟁을 벌였다.

진주만 기습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적극적인 독립 청원 운동에 나섰다. 그 노력의 결실로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 어떤 이들은 열강들이 말로만 조선 독립을 운운했을 뿐이라며 카이로 선언의 의미를 축소하기도 하지만 오키나와, 타이완처럼 중국이나 일본의 일부가 아닌 당당한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일본이 마지막까지 조선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 만약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못 박아 두지 않았더라면 조기 종전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 트루먼 행정부는 조선을 일본 영토로 인정할 수도 있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배우지 못하는 태평양전쟁의 또 다른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의 관련성 등 중요성에 비해 ‘통사’는 한 권도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태평양전쟁을 다룬 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제아무리 우리 사회가 전쟁사 불모지대라고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 영국의 명망 있는 군사 역사가인 존 키건 교수의 책을 비롯해 권위 있는 전문 서적들을 제법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마이너 분야로 꼽히는 독소전쟁에 대해서도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데이비드 글랜츠의 『독소전쟁사 1941~1945』, 앤서니 비버의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등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반면 태평양전쟁과 관련해서는 가토 요코 교수의 『왜 전쟁까지』를 비롯해 주로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거나 일본 군인들의 수기가 대부분이고 막상 전쟁 전반을 다룬 통사는 단 한 권도 없다. 기껏해야 제2차 세계대전의 한 단락을 차지해 간략하게 설명할 뿐이다. 우리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태평양전쟁이 어째서 그토록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치부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존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의 번역 출간은 큰 의미가 있다.

저자인 존 톨런드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논픽션 작가이자 역사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여러 저서 중에서 『6·25전쟁(전2권)』과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전2권)』은 국내에도 이미 출간되어 있다. 톨런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일본 제국 패망사』는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일으키기까지의 복잡했던 과정과 주요 전투, 그리고 패망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유의 필력과 세밀한 묘사, 흥미진진한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질 줄 알면서도 ‘요행’을 바란 무모한 전쟁

태평양전쟁은 기묘한 전쟁이었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실제로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300만 명이 넘는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으며 원자 폭탄이라는 가공할 무기까지 얻어맞은 끝에 백기를 들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본 지도부도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히틀러 또한 소련을 공격했다가 전세가 역전되면서 결국 패망했지만 어디까지나 소련의 역량을 오판했기 때문이지 처음부터 천운을 걸고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히틀러는 물론이고, 참모총장인 할더를 비롯해 독일군 수뇌부와 미국, 영국조차 짧으면 한 달, 길어야 반년 안에 소련이 항복할 것이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반면 일본은 정반대였다. 연합함대 사령관이자 해군의 실질적인 총수였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 대장이 대미 개전을 앞두고 고노에 총리가 미국과 전쟁을 했을 때 얼마나 승산이 있냐고 묻자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우세하겠지만 그 뒤는 장담할 수 없다”라면서 전쟁을 반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야마모토만이 아니라 미국과의 싸움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는 것이 해군의 속마음이었다. 오랫동안 태평양에서 미국과 경쟁했던 이들로서는 누구보다 미국의 역량이 얼마나 거대한지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전쟁의 주역으로서 가장 강경해야 할 해군이 시작하기도 전에 꼬리부터 내리는 판이었다. 해군 군령부 총장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친왕은 천황에게 “준비가 부족하니 경솔하게 전쟁에 나서면 안 된다”고 보고해 육군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육군 수뇌부 역시 앞에서는 기세등등하게 호전적인 말을 일삼으면서도 막상 뒤로는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보고 책임을 떠넘겼다. 해군은 해군대로 에둘러 얘기할 뿐, 육군 앞에서 우는소리를 할 수 없다는 자존심을 내세워 확실하게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잘라 말하지도 못했다.

국가 전체의 판단능력 마비

군부의 입장이 싸우자는 것도, 싸우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보니 일본 내각은 근 1년 동안 대미 개전을 놓고 지루한 논쟁을 벌였다. 그 한심한 작태를 보다 못한 천황이 황실의 전례를 깨고 군부의 모호한 태도를 질책하면서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또한 이들의 속내에는 동맹국인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마당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전쟁에 끼어든다면 그 승리에 편승해 한몫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회주의적인 욕심도 깔려 있었다. 전쟁에는 자신이 없지만 욕심은 버릴 수 없고 독일이 있는 이상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생각에 국가 전체의 판단능력이 마비된 셈이다.

패전 이후 일본 사회에서는 전쟁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물론 여기서의 비판과 반성은 주변국에 대한 침략 전쟁과 전쟁 범죄가 아니라 질 것이 뻔한 이런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결딴낸 그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였다. 일본군으로 복무해 직접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참전 수기에서 자신들이 몸소 체감했던 일본군의 수많은 병폐와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런 모습은 똑같이 전쟁에는 졌지만 자신들의 군대가 세계 최강이었음을 은근히 자부하는 독일 참전 군인들의 회고록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이 나치 시절의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고 주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반면, 일본 정치인들은 극우 세력들의 표를 의식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걸핏하면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아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까지 나섰다. 전후의 수많은 ‘반쪽짜리’ 반성조차 별다른 깨달음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

존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의 원제는 “The Rising Sun”, 즉 “떠오르는 태양”이다. 일본 욱일기의 상승하는 의미를 패전과 패망이라는 하강하는 이미지와 중첩시켜 역설적 효과를 노린 표현이다. 한 편의 장대한 비극드라마를 감상하려는 ‘미학적’인 자세도 읽힌다. 서양인의 눈에 동양의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함, 자존심, 자기희생과 기이한 욕망 등이 자못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어판에서는 그런 감상적인 태도는 배제하고자 했고 원서의 부제에 해당하는 것을 제목으로 삼았다. ‘일본 제국의 쇠망’이라는 부제가 바로 이 책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이 책의 특장점은 첫째, 전쟁의 전개과정을 일목요연한 통사적 구조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시작부터 끝까지 전모를 낱낱이 꿸 수 있다.

둘째,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관련 인물들의 적극적 협조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 기록을 보여주고 인터뷰를 통해 교차·확인했다.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었던 일본의 전쟁 관련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하듯이 당시를 증언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현장감과 박진감은 이들의 생생한 기억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셋째, 전쟁 당시 도쿄 최상층부에서 수많은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듯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어전회의와 연락회의의 기록들, 타다 남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고노에 전 총리의 일기, 육군 원수 스기야마 장군의 1000페이지짜리 메모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천황의 최측근이었던 기도 고이치 후작, 천황의 막냇동생인 미카사 친왕, 진주만 공격과 미드웨이 해전을 실질적으로 지휘했던 구사카 류노스케 제독, 도조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였던 사토 겐료 장군 등이 자발적으로 불행한 과거에 대해 오랫동안 저자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넷째, 이 책은 전쟁을 한 편의 드라마로 묘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필요한 것은 사건의 플롯과 인물들 간의 갈등과 대결,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다. 특히 태평양에서 벌어진 해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압권이다. 미군의 상륙작전과 이에 맞선 일본군의 처절한 옥쇄공격의 전개과정을 읽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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