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그리스 침공사

도서정보 : 김기순 | 2019-10-2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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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2차대전 역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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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 강의

도서정보 : 최남선 | 2019-10-2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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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 강의』(원제 ‘조선역사통속강화’)는 전반적인 주제를 역사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글로 1922년 최남선 외 저자들이 참여 창간한 시사잡지〈동명(東明)〉에 연재되었다.
고대 문화의 중심이 되는 종교는 신화를 가지고는 성립한 것이다. 또한, 발달한 것이다. 신화 한 가지 속에 고대인의 정신적 유물이 온통 들어있다. 그들의 사상, 감정, 관찰, 지각(知覺)이 여기에 모두 나타나 있으며, 그들의 신앙, 찬송, 영탄(永嘆), 이론이 여기에 함께 뭉쳐있다.(‘신화’ 중에서)
조선어가 이미 첨착어이며 이미 우랄 알타이어족이라고 인정되는 것에는 그 언어 형태와 어법이 만주어, 몽골어, 터키어, 사모예드어(Samoyed) 등의 자매어(Sister language)하고 유사한 점이 많음으로 당연한 일이다.(‘조선어’ 중에서)
우리 조선에서 지방 구획의 중요한 한 단위를 이루는 ‘골’이나 ‘고을’은 한자로 번역하면 주(主), 군(郡), 현(縣)의 여러 말에 공통적인 말이다. 이런 필연적 고구려어의 ‘성(城)’을 의미하는 ‘구루(溝婁)(홀忽)’로부터 내려오는 말이다.(‘언어와 문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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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 강의

도서정보 : 최남선 | 2019-10-2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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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속 강의』(원제 ‘조선역사통속강화’)는 전반적인 주제를 역사학적 관점에서 기술한 글로 1922년 최남선 외 저자들이 참여 창간한 시사잡지〈동명(東明)〉에 연재되었다.
고대 문화의 중심이 되는 종교는 신화를 가지고는 성립한 것이다. 또한, 발달한 것이다. 신화 한 가지 속에 고대인의 정신적 유물이 온통 들어있다. 그들의 사상, 감정, 관찰, 지각(知覺)이 여기에 모두 나타나 있으며, 그들의 신앙, 찬송, 영탄(永嘆), 이론이 여기에 함께 뭉쳐있다.(‘신화’ 중에서)
조선어가 이미 첨착어이며 이미 우랄 알타이어족이라고 인정되는 것에는 그 언어 형태와 어법이 만주어, 몽골어, 터키어, 사모예드어(Samoyed) 등의 자매어(Sister language)하고 유사한 점이 많음으로 당연한 일이다.(‘조선어’ 중에서)
우리 조선에서 지방 구획의 중요한 한 단위를 이루는 ‘골’이나 ‘고을’은 한자로 번역하면 주(主), 군(郡), 현(縣)의 여러 말에 공통적인 말이다. 이런 필연적 고구려어의 ‘성(城)’을 의미하는 ‘구루(溝婁)(홀忽)’로부터 내려오는 말이다.(‘언어와 문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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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대, 삼황오제 하상주 춘추전국 춘추오패 전국칠웅 진시황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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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대


1. 중국 역사는 한족 역사가 아니다

고대 중국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奴?는, ‘말 한필에 비단실 한 타래’를 합한 값에 거래되었다.
그러한 가격은, 세월이 한참 흐른 후, 李氏朝鮮에서 노비의 거래가격이 ‘1년 노비 품삯’이었으니, 현대적 화폐 척도로써 분별하여도, 서로 큰 차이가 없다.
현대사회의 화폐를 기준 한다면, 대략 3,500만 원가량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 정도 연봉을 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람 한 명의 거래 가격이 그 정도였으니, 돈벌이 좀 못한다고 해서 自壞感을 가질 것은 없다. 적어도 노예나 노비가 되어, 돈 몇푼에 팔려 다니는 신세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연봉을 3,500만 원 넘게 받으려면, 노동자로서 고용되어,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노예나 노비 못지않은 受侮와 侮辱을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수천 년 전의 고대사회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도록,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서민대중들은, 늘 혁명적 변화를 모색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그런 것은 실현된 바가 없다. 늘 대다수의 서민대중보다, 여러 모로 월등한 역량을 지닌 소수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무참히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도 그러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民度는, 고대 중국이나 이씨조선에 비한다면, 그 어떤 혁명적 변화라도 실현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를 실현하는 일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대의 기득권층은, 고대의 기득권층에 비해, 또 다시 월등한 역량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소 암울하지만, 향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당최 변화될 것 같지 않다. 保守右派가 집권하든, 進步左派가 집권하든, 혁명적 변화는 당최 遙遠할 따름이다.
더욱이 저 먼 고대사회에 비해 나아졌다고 하나, 현대사회의 서민대중 역시, 기득권층의 선동질과 조작질에 惑世誣民 당하는 ‘개돼지 군중’ 신세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민대중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아무런 수단이 없는 것인가. 그나마 현실성 있는 시도는, 앎의 공부다. 스스로 공부하여, 시대와 상황을 잘 알게 된다면, 적어도 ‘개돼지 군중’ 신세는 면할 수 있다.
갖은 프로파간다 선동질과 조작질에 놀아나지 않는, 오롯한 自由人이며 個人으로서, 한 세상 살아낼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기득권층이 소유하는 만큼의 慾望充足이 가능할 리 없다. 그저 심리적 차원의 自己滿足이며, 自己享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마저도 하지 않은 채, ‘개돼지’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면, 고대 중국의 노예나, 이씨조선의 노비 신세보다, 아무 것도 나을 것이 없다.
실상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사회 서민대중의 수준이,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별반 나을 것이 없다. 그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소유했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물질적 변화는, 그저 시대와 상황의 변화일 따름이다. 그런 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절대적으로 향상된 수준에 배치된 것이겠는가.
다만, 人權의 차원에서는, 근대사회 이후 급격한 발전이 있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과거의 노예나 노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반 나아진 것 없는 신세지만, 적어도 憲法的으로 동등한 인간존재로서의 天賦人權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현대판 노예나 노비의 수준에 불과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自由人으로서 살아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적 발전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죽음의 순간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몇 푼의 돈벌이를 목적하며, 현대판 노예나 노비로서 살아낼 것인지, 다소 궁핍하더라도 정신적 자유인으로서 공부하며 살아낼 것인지는, 철저히 現代的 個人의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 21세기 大韓國民에게 부여된 가장 큰 축복이며 행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중국은 말할 나위 없으며, 북한의 형편을 살핀다면, 그나마 대한민국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이데올로기적 妄想에 세뇌되고 현혹되어, 중국이나 북한을 羨望한다는 자들이야말로, 스스로 현대판 노예나 노비로서 살아내는 인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一言以蔽之하여, 中國歷史는 漢族歷史가 아니다. 東夷族을 비롯한 다양한 異民族 세력에 의해 주도된 역사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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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중세, 가마쿠라 무로마치 난보쿠초 센고쿠 쇼쿠호 세키가하라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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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중세

1. 일본 중세, 사무라이 시대가 시작되다

일본 역사에서 中世는, 韓國人의 관점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으로 代辯되는 시대이다. ‘도요토미’가 擡頭되는 까닭은, 말할 나위 없이, 壬辰倭亂과 丁酉再亂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李氏朝鮮보다 劣等한 倭寇 세력에게 蹂躪당한 사건이다 보니, 지금까지도 反日主義의 대표적 원인의 하나로 膾炙된다.
당시 ‘도요토미’는, 나름대로 국제정치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도요토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분명 그것은 예수회 선교회를 통해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帝國으로서의 日本夢을 시도했던 것이었다.
그런 시절에, 李氏朝鮮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실정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전쟁의 慘禍를 겪은 후에도, 이씨조선의 기득권층은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씨조선 말기에, 國家를 송두리째 일본의 ‘덴노 全體主義’ 세력에게 빼앗기고서야, 국제정치의 위험성을 직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뒤늦은 死後藥方文일 따름이다.
임진왜란 이후, 한국인의 정신성은 급격히 피폐하였고, 현재에 이르도록 ‘시대의 쭈구리’로서, 별다른 韓國夢을 지니지 못하는 실정이다.
李成桂와 鄭道傳 이후, 明나라의 屬國으로서, 철저한 事大主義的 小中華主義로써 국가체제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실상 그것은, 이씨조선 기득권층인, 양반사대부의 利權을 유지하는 방편일 따름이었다.
그런 상태로 수백 년을 지속하다 보니, 21세기에 이르러서도, 한국인들은 당최 氣魄을 갖지 못한 채, 烏合之卒의 離合集散의 形勢로써, 그저 제 밥그릇이나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현재 중국은 中國夢을 선전해대며, 실제로 그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이미 수세기 전에 日本夢을 시도하였고, 어찌되었든 결국 大東亞共營圈을 내세우며, 日本帝國의 꿈을 실현하였다.
그러한 국제정치적 사례를 체험하면서도, 南北統一이나 故土收復은 고사하고, 한국인들에게는 현재까지도 마땅한 韓國夢이 不在하다.
‘짱께’들 눈치 보며 살아낸 세월이나, ‘쪽발이’들에게 주눅 늘어 살아낸 세월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민족의 無意識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21세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事大主義的 태도로서 親中主義를 주장하거나, 일본에 대해 植民主義的 태도로서 反日主義를 주장하는 자들을 보면, 이러한 時代錯誤的 ‘개돼지 관점’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극히 암울하게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짱께’들의 屬國이 되지 않고, ‘쪽발이’들의 植民地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그들의 정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隣接國의 悲劇’이라는 국제정치적 법칙을 인식하고서, 보다 철저히 인접국 자체를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
수년 전 保守右派가 집권하던 시절이나, 현재 進步左派가 집권하는 시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資本主義와 市場經濟를 추종하는 보수우파야 그저 그런다지만, 平等, 公正, 人權, 民主化 따위를 프로파간다 삼아, 서민대중들을 선동질하고 조작질 해대는, 진보좌파의 現在的 作態는, 실로 참담한 심정을 갖게 한다.
현직 법무부장관이라는 자가, 온갖 不法行爲와 不正腐敗로 인해,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상황이다.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며, 갖은 道德主義的 선동질을 해대던 자의 실체가, 결국 썩어문드러졌던 보수우파 기득권층의 ‘짓거리’와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자의 경우도 별다르지 않다.
서민대중들은 그들에게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했다. 적어도 이씨조선이나 보수우파 기득권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껍질을 벗겨보니, 그 실상은 더욱 추악하다. 그것은 그들이 추종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니는 도덕주의적 성향 탓에, 더욱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의 경우도 그러했다. 순진무구한 인민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지녔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소련은 몰락했고, 중국은 몰락해가고 있다. 고작 이런 것이 左派進步主義의 실체라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을 실로 암울하게 한다.
11세기 이후, 일본은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로 변모하였으나, 지방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정도로 막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지역 주민 스스로가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만 했다.
헤이안 시대 후반, 지방에서는 호족과 부농들이, 자신들이 개간한 농지를 사유화하고, 이를 지키려고 스스로 무장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부시(武士, ぶし)’ 계층이 되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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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근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에도 막부 조닌 겐로쿠 가세이 부시도 가부키 우키요에 대정봉환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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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근세

1. ‘에도(도쿠가와) 바쿠후’(1603~1867)

에도 시대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불교의 不殺生 계율을 지나치게 誤濫用하여, 동물의 생명을 중시한다는 명분으로 殺生禁止令을 발표해, 많은 빈축을 샀다.
특히 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누쿠보(犬公方, 개 쇼군)’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쇼루이아레미노레이(生類憐れみの令)’란, 일본 에도 시대, 겐로쿠 연간에,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에 의해 발효된, 여러 法令(오후레, お?れ)을 일컫는 말이다. 다만 특정 成文法律이 아니라, 여러 가지 비슷한 법령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이는 흔히, ‘개 쇼군’에 의해, 개에 대한 살생을 금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어패류 및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체의 생명에 적용되었다.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丙戌年 태생으로, 특히 개를 보호하였다. 개인적으로도 개를 좋아하여, 100마리의 개를 길렀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愛犬이라는 개념이 강조된다. 기존에도 개라는 동물은, 아주 친숙한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어디까지나 家畜으로서, 三伏에는 도축되어 음식으로 활용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기괴한 서양 愛玩犬 文化의 영향 탓으로, 어느새 ‘개 팔자’야말로 ‘사람 팔자’를 능가하는 시절을 맞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일부 주인 잘 만난 ‘금수저 개 팔자’의 경우이다. 학대 받다가 遺棄犬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불교의 不殺生 계율을 좇아, 개의 생명은 물론이며, 온갖 동물의 생명을 인간의 생명과 동일하게 인식하고서, 살생금지령이 발효된 시절이, 바로 일본 에도 시대이다. 물론 이 외의 사례도 있다.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법흥왕 16년(412)과, 권8 신라본기 성덕왕 10년(711)에, 신라의 동물살상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다.
삼국사기, 권27 백제본기 법왕 1년(599)에는, 백제의 살상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는데, 사냥 및 매의 사육을 금지하였으며, 어망 등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려사 세가 편에는, 고려의 도축금지령이 기술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 북송의 휘종이, 1102년에, 개 살육금지령을 내렸으며, 5세기경에는, 불교 법강경 제3장 식육계에 따라, 생명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육식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작태들은, 현실세계 보통 백성들의 처지를 무시한, 空理妄想的인 가혹한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세계의 절대적 권력을 지닌 자가, 어떤 철학사상을 지니고서, 어떤 이념과 의식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피지배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현직 대통령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좇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이며, 미래 역시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예컨대, 현직 대통령이 親中, 反中, 親日, 反日, 親美, 反美 따위의, 다양한 選擇肢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른 樣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선택은, 善惡, 眞僞, 美醜 따위의 영역과는 별반 연관을 갖지 않는다. 물론 선택하는 자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선하며, 진실이며,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에도 시대 ‘개 쇼군’의 사례는, 많은 것을 苦惱케 한다. ‘개 쇼군’ 역시, 제 깐에는, 참으로 선하며, 진실이며, 아름다운 선택을 한 것이다.
‘개 쇼군’은, 살생은 어쨌거나 나쁜 것이며, 따라서 사랑하는 백성들이, 그러한 살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은, 참으로 정당하며, 공정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런데 서민대중들은, 에도 시대 최고 전성기였던 ‘개 쇼군’ 시절에, 살상금지령으로 인해, 난데없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강제적으로 肉食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여러 모로 난데없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죽음의 순간까지, 인간존재는 동물적 존재로서, 菜食은 물론 동시적으로 육식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장 기초적인 건강 상태나마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선량한 ‘개 쇼군’의 판단에 의해, 전혀 예상치도 못한, 不殺生의 고통 속으로 내몰리고 만 것이다.
아울러 所爲 朝貢貿易은, 明나라 황제가 周邊國의 왕을 冊封해주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써, 해당국은 조공을 바친다.
예컨대, 李氏朝鮮에서 貢女, 絹織物, 高麗人蔘 등을 바치면, 明에서는 그 대가로, 조선 지배계급이 선망하는 高級絹織物, 瓷器, 書籍, 藥材 등을 下賜해 주는 방식이다.
혹자는, 조공무역은 조선에게 더 이익이 많았는데, 이는 조공 횟수를 둘러싼, 양국 간 주장을 보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명이 조선에게 3년 1공, 즉 3년에 1번의 조공 무역을 주장하는데, 조선은 거꾸로 명에 1년 3공, 즉 1년에 3번의 조공 무역을 주장했다. 조선에서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조공무역은, 諸侯國에서 帝國에 일방으로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제후국에서 朝貢品을 바치면, 제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回賜品을 하사하는 게 원칙이었다.
회사품은 조공품보다 귀하고 많아야 하는 게, 관례였고 원칙이었다. 더불어 사절단의 체제비와 물품 운반비를, 명나라 측에서 모두 부담하였다. 이는, 上國으로서 체면을 유지하려는 방도였다.
물론 이러한 역사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며, 一理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보다는, 그러한 상황에서 치욕스럽게 굴종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던, 李成桂, 鄭道傳 이후, 이씨조선 양반사대부 기득권층의 패배주의적 의식구조에 대해, 먼저 再考해야 한다.
그런 歷史的 慣性이, 21세기 현재에도 대한민국에 澎湃하여, 여전히 ‘짱께’들이나 ‘쪽발이’들에게 주눅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현장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적도 아니고 동지도 아니다. 다만,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인해, 숙명적으로 인접국으로서 배치된 관계이다.
그러니 ‘인접국의 비극’으로부터 당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항상 그만큼의 간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何時라도 중국이나 일본을 극복할 수 있다.
명나라의 屬國으로서 정체되었던 이씨조선 시기를,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절이라고 인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평화라는 것은, 自主獨立의 토대 위에서 실현되는 것이지, 속국이나 식민지의 상황에서의 停滯的 安定을 평화라고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도 막부(江戶幕府)’ 또는 ‘도쿠가와 막부(?川幕府)’는, 日本史에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에 이어, 일본사에서 세 번째로 나타난 최후의 막부이다.
1603년 3월 24일(게이초 8년 음력 2월 12일)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軍)에 취임하고, 막부를 창설하였을 때부터 시작되어, 1867년 11월 9일(게이오 3년 음력 10월 14일)에, 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大政奉還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천황에게 넘기면서 막을 내렸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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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중세, 전한 신 후한 위촉오 서진 오호십육국 남북조

도서정보 : 탁양현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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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고중세



1. ‘전한(서한)’(기원전 206~기원후 8)

고대 중국의 역사를 살피면, 아주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상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애를 통해, 매우 드라마틱한 삶의 행태를 체험케 된다. 굳이 戰場에서, 권력을 목적하며, 목숨을 내놓고 도박을 하지 않아도, 그러한 속내를 나름대로 代理體驗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각종 역사적 사례로써 현재를 살피는 일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며 효과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 역사에서 前漢 시기는,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漢武帝라는 人物像으로서 대표되는 시대이다. 중국 측 역사에 따른다면, 한무제는 衛滿朝鮮을 정벌하고서, 식민지 한4군을 설치한 인물이다.
현대적 관점에 따른다면,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듯이, 한4군 설치로써 수탈당한 것에 대해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이후 이어지는 역사에서도, 한반도는 중국대륙에 정립된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착취의 대상으로서 유지되었다. 그러하다면 응당 그에 대해서, 총체적인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현대인들이 멀지 않은 과거로서 기억하는 丙子胡亂, 壬辰倭亂 등은 말할 나위 없다. 나아가 淸日戰爭, 露日戰爭 등도 그러하다.
그런데 배상의 문제는 차치하고, 한4군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였는가에 대한 여부마저도, 여전히 曰可曰否하고 있는 실정이다.
事大主義나 植民主義를 추종하는 자들은, 대체로 한반도 내에 한4군이 배치된 것으로 比定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韓民族의 전통적 疆域은 대폭 축소되어버린다. 거대한 만주대륙을, 우리 역사에서 스스로 제거해버리는 결과가 된다.
古代史는 그 자료가 不備한 탓에, 어떤 하나의 事實이나 史實에 대하여, 어떠한 이해와 해석을 갖는가가 아주 중요하다. 곧 어떤 史觀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 역사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어떤 사관으로써 역사를 살펴야 하는가. 두말 할 나위 없이,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의 國益에 도움이 되는 역사적 관점이 요구된다.
당최 검증될 수 없는 한4군의 위치를, 굳이 한반도 내에 배치하여, 한민족의 역사적 활동 영역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당최 납득키 어렵다.
漢四郡의 위치에 대하여, 과거부터 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臨屯郡이나 眞蕃郡의 경우, 설치된 지 오래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고, 玄?郡 역시 랴오닝 성 撫順 방면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위치에 대한 논란은, 주로 樂浪郡을 두고 계속되었다.
三國史記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이씨조선시대의 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일대로 比定하였다.
박지원 등의 일부 실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를 요동 지역으로 비정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시대 이후, 평양 일대에서 封泥, 漢式 무덤 등, 낙랑 관련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됨으로써, 낙랑의 위치는 평양시 대동강 남안의 낙랑토성 일대임이 확증되었다.
2009년에는, 평양에서 출토된 木簡(2005년 출토)을 분석하여, 낙랑군 소속 25개 현의 인구 규모와 정확한 위치 등을, 판독·연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신채호 등의 일부 민족사학자 및 재야사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낙랑이 요동 일대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지린을 비롯한 북한 학자들과 대한민국의 윤내현 등의 일부 학자들은, 낙랑을 지금의 요하 서쪽이라고 주장하며, 박영규 등의 일부 재야사학자들은, 낙랑의 위치를 북경 서쪽의 화북 지방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 대한민국 사학계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무시한 채, 문헌사료의 취합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대한민국 사학계가 어떤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학계라고 통칭할 만한,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애석하지만 대한민국 사학계라는 것은, 기껏해야 ‘이마니시 류’와 ‘이병도’의 학맥을 좇아, 밥그릇 싸움하는 집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집단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북한 사학계와 유사한 주장만을 떠들어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 자들의 反國益的 주장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한4군 위치 비정에 있어, 대한민국의 역사적 국익의 관점에서 주장되는 이론은, 죄다 民族史學이나 在野史學이라고 貶毁해버린다.
그리고서는 자기들이 대한민국 사학계를 대표한다면서, 고작 ‘짱께’나 ‘쪽발이’ 세력에 동조하는 주장을 해대고 있다. ‘짱께’나 ‘쪽발이’들로부터 적잖은 ‘떡고물’이 떨어지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鮮卑族은, 漢族들이 세운 南朝를 정복하고, 북주와 북제로 나뉘어졌다. 그 후 隋나라 楊堅에 의하여, 중국이 통일되었다.
수나라의 양견은, 선비족 우문부가 세운, 北周의 외척으로서 선비족이다. 그 이유는, 북위 때부터 계속, 무천진 출신 선비족 8주국 관롱 집단이, 중국인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선비족의 다얀씨(大野氏)는, 北周의 귀족이며, 선비족 8주국 관롱 집단 출신, 당 李淵도 선비 출신이다.
이처럼, 중국 역사를 살필 때에는, 동시적으로 북방 유목제국의 역사를 살펴야 한다. 우리 역사를 살필 때에도 매한가지다.
허황된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그저 三國史記, 李朝實錄 따위만을 守舊的으로 살펴서는 안 된다. 삼국사기와 이조실록은, 단일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底本이 되는 텍스트들이다.
따라서 그런 것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는, 응당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傍證史料를 동시적으로 살펴야 함은 明若觀火다.
‘前漢(기원전 206~기원후 8)’은, 고조 劉邦이, 項羽와 대륙 쟁탈 뒤에 세운 왕조로서, 秦에 이어서,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왕조이다.
수도는 長安이었는데, 그 위치가, 후에 세워진 후한의 수도 洛陽보다 서에 있어서, 西漢이라고도 불린다.
고조 유방은, 원래 亭長으로, 의병을 일으켜 沛公의 자리에 올라, 楚의 義帝를 섬기다가, 그 세력이 커져, 또 다른 거대 세력인 항우와 경쟁하였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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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로맨스 : 우리가 몰랐던 조선 왕실의 결혼과 사랑 이야기

도서정보 : 박영규 | 2019-10-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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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영규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조선 왕 이야기, 그 두 번째
직진형 순정남, 읍소형 비운남, 전투형 뒤끝남, 결벽형 도도남 등 로맨스 스타일로 구분한 조선 왕들의 색다른 모습과 만난다

조선 왕들은 우리에게 아주 친근하고 익숙하다. 역사책에서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도 이들의 삶과 업적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이 아닌 한 남자로서 이들이 해 온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낯설면서 새롭다. 왕실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는 드물었던 탓이다.
저자 박영규는 왕들의 새로운 모습에 주목했다. 그동안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전쟁실록》, 《조선붕당실록》, 《조선반역실록》, 《조선왕 시크릿 파일》등을 펴내며 조선시대의 다방면을 연구해온 그가 이번에는 조선 왕실의 사랑이야기를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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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서원정책

도서정보 : 김태준 | 2019-10-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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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원 본래 의미는 지배 철학의 시조를 모시는 문묘 향교와 그들의 신봉하는 인물, 또는 선조를 제향하는 전당의 사명에 그들 자제를 교육하는 학교기관이었다. 정부가 유교로 국시를 세우고 사학을 장려할 때 도저히 하나의 군에 하나의 학교로 그 수요를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여기에서 서원 창건의 의미가 발생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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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서원정책

도서정보 : 김태준 | 2019-10-1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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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서원 본래 의미는 지배 철학의 시조를 모시는 문묘 향교와 그들의 신봉하는 인물, 또는 선조를 제향하는 전당의 사명에 그들 자제를 교육하는 학교기관이었다. 정부가 유교로 국시를 세우고 사학을 장려할 때 도저히 하나의 군에 하나의 학교로 그 수요를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여기에서 서원 창건의 의미가 발생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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