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역관과 운남 왕녀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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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진중에는 우리나라 사람 통역(通譯)에 김모(金某)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나이 아직 이십 세 내외에 불과하였으나 인물이 천하 미남자로 잘 생기고, 말재주가 능하여 얼마 배우지 않았건만 명나라 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고, 성질이 또한 기민하고 영리하니, 이여송이 특별히 사랑하고 귀여워하여 밤과 낮으로 잠시라도 옆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밥을 먹어도 같이 먹고, 잠을 자도 같이 자니, 그의 총애는 비록 이여송의 애첩이라도 따를 수가 없고, 따라서 김 역관의 말이라면 모두 언청계용(言聽計用)을 하게 되니, 그 진중에서 그의 세력이란 여간 크지 않아, 누구나 이여송에게 무슨 긴요한 중대한 일이나 청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김 역관에게 먼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임진란이 끝이 나서 이여송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니 김 역관도 역시 그를 따라가게 되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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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승과 단천기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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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항(金宇杭)은 숙종대왕(肅宗大王) 때의 유명한 정승이다.
그가 노년에는 일국의 정승이 되어 한 사람 앞에서나 만 명이 모인 앞에서나 삼천리강산을 손에다 폈다 쥐었다 하며 서슬이 푸르게 되어 잘 지냈지만 소년 시절로부터 중년 시절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곤궁하기 짝이 없어 그야말로 세끼의 밥도 잘 얻어먹지 못하고 집도 다 허물어진 삼간초옥(三間草屋)에 풍우를 가리지 못하며 옷은 또 현순백결(懸?百結)로 다 떨어져 살이 울긋불긋하게 보이니 체면상 출입을 마음대로 잘 할 수 없는 때가 많았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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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각의 기연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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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대왕(世祖大王)의 일찍이 따님 한 분을 두었으니 그는 어려서부터 덕성(德性)이 갸륵하고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두뇌가 매우 명석하였다.
세조가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있을 때에 우리나라 삼천리강산을 독차지하고 싶은 정치적 욕망을 가지고 아무 죄과도 없이 정승 김종서(金宗瑞) 부자와 황보인(皇甫仁) 등을 죽이고, 이어서는 또 그 조카인 단종대왕(端宗大王)과 그를 옹호하는 여러 대군(大君), 그의 육신일파(六臣一派)를 여지없이 무참하게 죽이고, 자기가 왕위(王位)에 오르게 되니 그 따님도 따라서 일국의 공주(公主)라는 고귀한 지위를 얻게 되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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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총각의 만복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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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로 조선 숙종시대(肅宗時代)였다. 전라남도 광주 땅에는 고유(高庾)라 하는 늙은 총각이 있었으니 그는 본래 선조시대(宣祖時代)에 문장으로 또는 충신으로 유명하던 고제봉 경명 선생(高霽峰敬命先生)의 후예로 대대 문벌도 상당하였고 생활도 또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지만은 그가 열한 살 안팎 될 시절에 와서는 가운(家運)이 아주 기울어지게 되어 그의 부친이 남의 빚보증을 하였던 관계로 가산을 전부 탕진하고 최후에는 그 부모까지 내외가 세상을 떠나게 되니 홀로 남아 있는 고아 고유(高庾)는 사고무친 몸을 의지할 곳이 없어 동네 사람의 집 신세를 지며 동쪽에 가서 밥 한 끼 얻어먹고 서쪽에 가서 잠 한 잠을 이루고 하면서 구걸을 하다시피 하게 되니 아무 공부도 할 수가 없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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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장군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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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甲午) 동학란(東學亂)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있는 뒤로 제일 큰 민중운동이었다. 조금 멀리 말하면 고려 말의 이태조 기병(起兵)과 신라 말의 견훤 궁예 왕건 등의 봉기와 가까이 말하면 이괄 홍경래 등의 궐기가 다 같이 그 당시의 현상에 대한 혁명운동이 아님이 아니었으나 그런 운동의 대개는 주모자의 영웅 심리와 거기에 뒤따르는 사람들의 정권욕에 의하여 일어나며 또 결과를 맺은 것으로서 거기에는 진정한 세도(世道)를 위한 감격과 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것이 보통이었으나 갑오의 동학란에 있어서는 재래의 혁명운동과 그 의의 달리하여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동학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정책을 이상으로 하여 거의 혁명적 감격과 정열로서 움직였기 때문에 여기에 동학혁명의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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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 여탐정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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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光海君) 15년 계해(癸亥) 서기 1623년 3월 15일 밤에 청천벽력 같이 일어난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정변은 그 전날에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자기가 왕위(王位)에 들어서던 소위 세조반정(世祖反正)과 또 중종(中宗)이 연산군(燕山君)을 몰아내고 대신 임금이 되던 중종반정(中宗反正)과 아울러서 조선 역사상 삼대 정변으로 큰 정변들이었다.
그 반정운동(反正運動)에 표면에 나서서 온갖 음모(陰謀)와 활약을 다 하던 사람들은 물론 당시 서인파(西人派)의 김류, 최명길, 이귀, 김자점, 신경진, 이서, 심기원, 장유 등 여러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남자들인데, 홍일점(紅一点)으로 그 이면에 남모르게 숨어 있어서 모든 탐정(探偵)과 모든 알선을 하여 반정운동에 큰 역할을 한 꽃다운 단발(斷髮) 여승(女僧)이 있으니 그는 곧 그 반정에 큰 공신(功臣)으로 유명한 연평부원군 이귀(延平府院君李貴)의 딸인 이예순(李禮順)이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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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안괴룡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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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의 찬란한 황금시대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쓸쓸한 가을바람이 계림황엽(鷄林黃葉)에 불어들기 시작하여 제51대 왕 진성여왕(眞聖女王) 시대에 이르러서부터는 간신(奸臣)이 조정에 가득하여 나라의 기강이 날로 문란하고 겸하여 흉년이 연달아 드니 백성이 모두 유리분산하고 사방에 도적의 무리가 벌떼같이 일어났다.
그러한 때를 타서 신라에는 두 사람의 큰 괴걸(怪傑)이 일어나 천하를 남북으로 갈라 가지고 열하여 서로 쟁탈전을 하니, 한 사람은 후백제왕 견훤(甄萱)이요, 또 하나는 여기에 말하려고 하는 태봉국왕 궁예(弓裔)이다. 그는 혹은 신라 제47대 왕 헌강왕 의정(誼靖)의 서자, 혹은 제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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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 홍계관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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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역대 장님 중에서 제일가는 명복(名卜)은 아마 세조(世祖) 때의 홍계관(洪繼寬)일 것이다.
그 장님은 어찌나 점을 잘하였던지 무슨 일이나 백발백중으로 다 맞췄는데 특별히 사람의 신수점을 하는 데는 더욱 신통하여 일생의 길흉(吉凶) 화복(禍福)을 그야말로 척척 맞춰내니 누구나 다 감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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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전설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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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용(毒龍)의 파선(破船)
이충무공은 수백 척의 싸움배를 진도군 벽파정(珍島郡碧波亭)으로 집중시키고 적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어 주위가 잠잠한 틈을 타서 별안간 전군에 호령하여 모든 전선을 명량 바다 어구로 옮기고 군병에게 술과 안주를 많이 나누어주고 마음대로 먹고 춤도 추며 노래를 부르게 하되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씩 단도(短刀) 한 개씩을 주면서 소리를 할 적마다 그 칼로 장단을 맞추어 뱃전을 치게 하고 밤이 새도록 질탕하게 놀도록 하였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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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색고개의 전설 (차상찬 역사/야담 소설)

도서정보 : 차상찬 | 2013-08-05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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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세상 사람이 천하 미인이요 열녀(烈女)라고 떠들어대는 춘향이를 지금에 와서 그가 미인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고 논란하는 것도 역시 실없는 일 같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춘향이를 꼭 실재의 인물로 생각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남원(南原) 땅에 가서 고적(古蹟) 조사를 하고, 어느 해 여름에는 남원의 기생(妓生)들이 군청에서 광한루(廣寒樓)를 수리하는 기회를 타서 마치 진주(晋州)의 기생들이 의기 논개(義妓論介)의 사당(祠堂)을 지어 놓듯이 춘향각까지 지어놓고 춘추제향을 지내기까지 하게 된 바에야 이 춘향이를 미인이었느냐 하는 말을 쓰는 것도 과히 실없는 일은 아닐 것 같다. 그것이야 어찌 되었던 아직껏 이 세상에는 누구나 물론하고 춘향이는 그 소설에 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하의 미인이요 만고의 열녀로만 안다. 그러나 남원 부근에서는 그와는 정 반대되는 한 이상한 전설(傳說)이 지금껏 떠돌고 있다. -{본문에서}

차상찬 선생은 한국 근대사에서 아주 드믄 언론·출판계의 거목이었고 야인의 기질을 갖춘 민중운동가이기도 했다. 생전에 “왜놈들이 망해서 게다짝을 끌고 도망가는 것을 꼭 보고 말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한껏 펼친 텐데…”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화(史話)ㆍ인물만평(人物漫評)ㆍ사회풍자(社會諷刺)ㆍ만필(漫筆)ㆍ소화(笑話)ㆍ민속설화(民俗說話) 등 다양한 글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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