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스 1(세계문학전집 239)

도서정보 : 제임스 조이스 | 2023-12-29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언어의 재탄생을 선언한 가장 충격적인 문학작품
거장 조이스의 담대하고 전복적인 모더니즘 실험

“현대 작가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험하게 써야 한다.” _제임스 조이스

문학동네판 『율리시스』 : 독자들의 완독을 기원하며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전 2권)가 조이스 전문가 이종일 교수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인 ‘의식의 흐름’ 기법이 극한으로 발휘된 이 작품은 조이스 언어 실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걸작이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율리시스』는 독자들이 완독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기존 번역본들의 방대한 주석에 짓눌려 중도에 독서를 포기하기 십상이었다. 이에 문학동네판 『율리시스』는 꼭 필요한 주석만을 엄선하여 소설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석은 면주로, 작품의 배경 이해에 도움을 주는 주석은 미주로 처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완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예술적 깊이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으로 고전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율리시스』가 정밀하고 유려하며 가독성이 향상된 새로운 번역을 통해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이스 신화는 계속된다

2023년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출판된 지 101년째가 되는 해다. 총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작품은 언어, 문학, 역사,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전제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성과 시대를 앞서간 언어 실험으로 인해 출간 당시 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에서는 외설 이슈에 휘말려 십여 년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리시스』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문학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등 여러 철학적 패러다임 또한 유연하게 수용하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작중 배경인 6월 16일 더블린에서는 매년 주인공 블룸의 행적을 따라가보는 ‘블룸의 날’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작품의 인기가 현재진형형임을 입증한다.


더블린에서 펼쳐지는 소시민의 오디세이아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대문호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구성적 틀로 삼고 있으며, 제목 ‘율리시스’ 역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조이스는 한 편지에서 『율리시스』 구상의 의도가 “신화를 우리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디세이아』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십여 년에 걸친 대모험을 그리는 데 반해,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블룸의 날’) 하루 동안 소외당하는 헝가리계 유대인 리어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겪는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사를 다룬다. 이와 같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기본적인 구조적 유사성이 있으나, 영웅과 소시민, 10년과 하루 등 디테일에서 두드러지게 대조적인 양상 또한 존재한다. 조이스는 『오디세이아』 서사시를 구조적 토대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새로운 현대의 신화 『율리시스』를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의 사유 과정을 이토록 낱낱이 밝혀낸 작가는 조이스 이전엔 없었다.”

『오디세이아』를 다시 쓰면서 조이스가 택한 전략 중 가장 특출한 기법은 바로 ‘의식의 흐름’이다. 서술자의 전지적 관점으로 흘러가는 서사 사이사이에 인물들의 의식이 내면독백 형식으로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줄거리 속 특정 내용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연상된 온갖 사항들, 예를 들어 그 인물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 노랫말, 책의 한 구절 따위가 별다른 설명 없이 나타나 끼어든다. 블룸의 아내인 몰리의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로만 구성된 마지막 18장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위대한 결과물이다. 이렇게까지 내면독백을 직접적으로 철저히 텍스트로 옮기려는 시도는 세계문학사상 최초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이 『율리시스』가 어렵다는 평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나, 인간의 내면세계가 외부의 현실 못지않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문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조이스의 빛나는 업적이기도 하다.


가장 실험적인 문학,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꾀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뿐만 아니라 조이스는 언어, 문체, 서술 형태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인물의 지적 수준이나 성격에 맞는 언어 표현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각 장의 주요 모티프에 걸맞은 문체와 서술 형태를 고안해냈다. 신문사가 배경인 7장에는 신문기사처럼 조각 글들이 짜깁기되어 있고, 10장 「떠도는 바위들」에서는 더블린 곳곳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잘게 나뉘어 제목 그대로 ‘떠도는 바위들’처럼 산재되어 있다. 14장에서는 삼십여 문단이 영국문학사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문필가들의 문체 모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희곡 형식을 취한 300페이지에 달하는 15장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쉴새없이 교차한다. 이러한 실험들이 각 장의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은 경탄을 자아낸다. 당대 모더니즘의 구호 ‘새롭게 만들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조이스의 실험이 그 시대의 유행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 문학인들에게 엄청난 창조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예술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구매가격 : 17,500 원

율리시스 2(세계문학전집 240)

도서정보 : 제임스 조이스 | 2023-12-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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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재탄생을 선언한 가장 충격적인 문학작품
거장 조이스의 담대하고 전복적인 모더니즘 실험

“현대 작가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위험하게 써야 한다.” _제임스 조이스

문학동네판 『율리시스』 : 독자들의 완독을 기원하며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거장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전 2권)가 조이스 전문가 이종일 교수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모더니즘 문학의 특징인 ‘의식의 흐름’ 기법이 극한으로 발휘된 이 작품은 조이스 언어 실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걸작이다.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율리시스』는 독자들이 완독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기존 번역본들의 방대한 주석에 짓눌려 중도에 독서를 포기하기 십상이었다. 이에 문학동네판 『율리시스』는 꼭 필요한 주석만을 엄선하여 소설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석은 면주로, 작품의 배경 이해에 도움을 주는 주석은 미주로 처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완독률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예술적 깊이와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으로 고전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율리시스』가 정밀하고 유려하며 가독성이 향상된 새로운 번역을 통해 더욱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이스 신화는 계속된다

2023년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출판된 지 101년째가 되는 해다. 총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작품은 언어, 문학, 역사,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전제하는 데에서 오는 난해성과 시대를 앞서간 언어 실험으로 인해 출간 당시 문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에서는 외설 이슈에 휘말려 십여 년간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리시스』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문학 기법으로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 데 성공한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 등 여러 철학적 패러다임 또한 유연하게 수용하며 고전 중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작중 배경인 6월 16일 더블린에서는 매년 주인공 블룸의 행적을 따라가보는 ‘블룸의 날’ 행사가 성황리에 개최되어, 이 작품의 인기가 현재진형형임을 입증한다.


더블린에서 펼쳐지는 소시민의 오디세이아

『율리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대문호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구성적 틀로 삼고 있으며, 제목 ‘율리시스’ 역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영어식 이름이다. 조이스는 한 편지에서 『율리시스』 구상의 의도가 “신화를 우리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디세이아』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십여 년에 걸친 대모험을 그리는 데 반해,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블룸의 날’) 하루 동안 소외당하는 헝가리계 유대인 리어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며 겪는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사를 다룬다. 이와 같이 두 이야기 사이에는 기본적인 구조적 유사성이 있으나, 영웅과 소시민, 10년과 하루 등 디테일에서 두드러지게 대조적인 양상 또한 존재한다. 조이스는 『오디세이아』 서사시를 구조적 토대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새로운 현대의 신화 『율리시스』를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의 사유 과정을 이토록 낱낱이 밝혀낸 작가는 조이스 이전엔 없었다.”

『오디세이아』를 다시 쓰면서 조이스가 택한 전략 중 가장 특출한 기법은 바로 ‘의식의 흐름’이다. 서술자의 전지적 관점으로 흘러가는 서사 사이사이에 인물들의 의식이 내면독백 형식으로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줄거리 속 특정 내용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연상된 온갖 사항들, 예를 들어 그 인물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 노랫말, 책의 한 구절 따위가 별다른 설명 없이 나타나 끼어든다. 블룸의 아내인 몰리의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로만 구성된 마지막 18장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극한으로까지 몰고 간 위대한 결과물이다. 이렇게까지 내면독백을 직접적으로 철저히 텍스트로 옮기려는 시도는 세계문학사상 최초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학적 실험이 『율리시스』가 어렵다는 평을 받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나, 인간의 내면세계가 외부의 현실 못지않게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문학적으로 드러내려 한 조이스의 빛나는 업적이기도 하다.


가장 실험적인 문학, 『율리시스』

『율리시스』는 그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꾀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뿐만 아니라 조이스는 언어, 문체, 서술 형태 등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실험을 수행했다. 인물의 지적 수준이나 성격에 맞는 언어 표현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으며 각 장의 주요 모티프에 걸맞은 문체와 서술 형태를 고안해냈다. 신문사가 배경인 7장에는 신문기사처럼 조각 글들이 짜깁기되어 있고, 10장 「떠도는 바위들」에서는 더블린 곳곳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잘게 나뉘어 제목 그대로 ‘떠도는 바위들’처럼 산재되어 있다. 14장에서는 삼십여 문단이 영국문학사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문필가들의 문체 모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희곡 형식을 취한 300페이지에 달하는 15장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쉴새없이 교차한다. 이러한 실험들이 각 장의 내용과 주제에 부합하도록 고안되었다는 점은 경탄을 자아낸다. 당대 모더니즘의 구호 ‘새롭게 만들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조이스의 실험이 그 시대의 유행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 문학인들에게 엄청난 창조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예술적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구매가격 : 17,500 원

밸러리

도서정보 : 사라 스트리츠베리 | 2023-12-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난 지금까지 만난 모든 남자를 총으로 쏘는 꿈을 꿔요.”

래디컬 페미니즘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인물
앤디 워홀 암살 미수범
밸러리 솔래너스, 그녀는 누구인가?

“이 안에는 텍스트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감각적 경험이 있다.
단순히 읽기를 넘어서는 이 특별한 경험을
모두에게 추천한다.”_조예은(소설가)

“미국의 위대한 문화 아이콘의 삶과 시대에 대한 눈부신 재-상상.”_비비언 고닉(작가)

밸러리』를 통해 스트리츠베리는
북유럽 현대문학의 가장 훌륭한 작가임을 증명했다.
_아프텐포스텐(노르웨이)

“그 질문은 틀렸어요. 옳은 질문은 이거죠. 그 여자는 왜 총을 쏘지 않지? 도대체 왜 총을 쏘지 않지? 그 여자의 모든 권리가 공격받고 있었어요. 강간당한 여자 아기나 강간당한 여자 동물과 같은 상태. 그런데 왜 그들은 총을 쏘지 않나요? 난 정말이지 모르겠어요, 닥터 쿠퍼. 내가 안다면 우린 여기에 앉아 있지 않겠죠.” _본문에서

북유럽 현대문학을 이끌어가는 작가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2007년 북유럽이사회문학상을 수상하고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밸러리 솔래너스라는 인물과 그녀의 삶에 흥미를 느낀 스트리츠베리는 밸러리의 대표작 『SCUM 선언문』을 스웨덴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스트리츠베리는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벨위원회 종신회원 열여덟 명 중 열세번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노벨위원회 설립 이래 최연소 종신위원이었다. 그러나 2018년 노벨위원회에 장클로드 아르노 스캔들이 불거지고, 사무총장 사라 다니우스가 피해자 지지를 선언하며 위원회를 떠났다. 그러자 스트리츠베리도 다니우스와의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종신위원직을 내려놓았다. 사라 스트리츠베리는 소설, 희곡, 동화, 번역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고유의 작품세계와 실험적인 스타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기억해…… 기억해……
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정신이 온전한 여자라는 걸 기억해.”

난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번식용 암소 같은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내 주위의 세상은 그런 나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 _본문에서

1968년 6월 8일,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업실 ‘팩토리’, 어느 여성이 앤디 워홀에게 총구를 겨눈다. 총알은 워홀의 복부를 관통했다. 이때 입은 심각한 부상으로 워홀은 죽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앤디 워홀을 쏜 사람은 밸러리 솔래너스. 그녀는 이전에도 팩토리를 드나들었으며 워홀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워홀이 자신의 희곡 「똥구멍이나 쑤셔라Up Your Ass」를 훔쳤기 때문에 총을 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워홀은 그녀의 희곡에 관심이 없었고, 단지 그녀가 건넨 원고를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솔래너스는 워홀이 그녀의 희곡을 훔치기 위해 자신을 의도적으로 배척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희곡을 되찾기 위해 오랜 기간 워홀을 스토킹했다. 앤디 워홀 살인미수죄로 기소된 재판에서 솔래너스는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점이 참작되어 3년간 정신병원 치료감호을 처분을 받았다.
밸러리 솔래너스, 그녀는 누구인가? 1936년 4월 9일 조지아주 벤터에서 태어났다. 앤디 워홀을 저격한 당시 나이는 32세였다. 래디컬 페미니스트이자 그 시절에는 흔치 않은 공개적인 레즈비언. 직업은 일정치 못했는데, 공식적으로는 무직이었고 그녀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작가였으며 매춘으로 생계비를 벌었다. 그녀가 쓴 『SCUM 선언문』을 두고 페미니즘계에서는 “유머 혹은 패러디”라며 옹호했지만 그녀 자신은 “몹시 진지하게” 쓴 글이라고 반박했다. 암살미수 사건 이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얻기도 했으나 정작 솔래너스 자신은 그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자 했다. 어린 시절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국가장학생으로 심리학을 공부하다 중퇴했다. 편집증적 조현병을 앓으며 여생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1988년 어느 낡은 호텔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이게 내 인생이에요.
내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난 밸러리 솔래너스라고요.”

난 내가 싫지만 죽고 싶진 않아. 사라지고 싶지 않아. 돌아가고 싶어. 누군가의 손을, 어머니의 손을, 여자의 팔을 간절히 원해. 아니면 아무 목소리라도. 햇빛을 점점 가리는 이 암흑만 아니라면 뭐든 좋아. _본문에서

작가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밝힌다. “『밸러리』는 전기가 아니며, 지금은 세상을 떠난 미국인 밸러리 솔래너스의 삶과 저작에 기반을 둔 환상문학이다. 밸러리 솔래너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으나 이 소설은 그나마도 충실히 재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설 속 인물들은, 밸러리 솔래너스 자신을 포함해, 모두 허구의 산물로 간주해야 한다.” 스트리츠베리는 문제적 인물 밸러리 솔래너스에게 매료되었다. 작가는 홀로 죽어가는 밸러리가 있는 호텔방으로 간다. 2인칭 관찰자가 되어 밸러리의 인생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듣는다.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도발적인 사유와 시적인 문체를 통해 밸러리의 삶과 환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밸러리 솔래너스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그녀는 왜 앤디 워홀을 총으로 쏘았을까? 그녀는 예술가 혹은 운동가일까? 아니면 그저 정신이상자일 뿐일까? 그녀는 그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까? 밸러리 솔래너스의 마지막에 대한 또다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작가는 귀를 기울인다.

구매가격 : 12,300 원

모조품

도서정보 : 커스틴 첸 | 2023-12-1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괜찮은 가짜는 살 수 있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소니픽쳐스 제작사 영상화 확정!



◎ 도서 소개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정점으로 손꼽히는 명품백을 소재로 위험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스타일리시한 범죄 소설 『모조품』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출판과 영상 판권 모두 치열한 경쟁 끝에 계약되어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소니 픽쳐스 제작사가 영상화를 진행 중이다. 저자 커스틴 첸은 『모조품』에 중국계 미국인 변호사 에이바 웡이 수수께끼 같은 대학 룸메이트 위니 팡을 우연히 다시 만나면서 가짜 명품백을 유통하는 범죄 계획에 휘말리는 내용을 담았다. 이 소설은 겉보기에는 중국에서 명품 공장의 기술을 빼돌려 높은 수준의 모조품을 제작해 미국에서 유통하고 돈을 버는 사기꾼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뒤틀린 아메리칸드림과 모범적인 아시아계 미국인을 둘러싼 선입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더 나아가 평범한 엄마였던 에이바와 촌스러운 유학생이었던 위니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극단적인 인생의 변화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따라가다 보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뛰어넘는 스릴과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몇백 달러를 내고 최상급 가품을 사는 소비자와
2,000달러 넘는 진품을 사는 소비자는 사는 세상이 달라요.“

성공한 외과의사 남편과 자랑스러운 변호사 커리어, 어린 아들과 아름다운 집에서 완벽한 가정을 이룬 에이바 웡.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의 삶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렀고 값비싼 로스쿨 학위는 몇 년째 방치되었으며 아이의 짜증은 그녀를 한계로 몰아넣는다. 그때 에이바는 우연히 20년 전 돌연 학교를 자퇴한 룸메이트 위니 팡을 만난다. 예전에 위니는 수줍은 친구였지만 이제는 손에 들고 있는 값비싼 명품백과 어울리는 화려한 모습이다. 에이바는 무너지고 있는 자신의 삶을 되돌리기 위해 위니가 제안한 위험한 일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가짜 명품백 사업. 두 사람의 범죄는 빠르게 커지며 엄청난 돈을 벌기 시작한다. 눈부신 성공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오고 위니는 돌연 자취를 감춘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에이바는 복잡하게 뒤엉킨 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겉보기에는 훌륭하지만 모든 구석이 썩어 있던 에이바,
명품을 휘감고 나타난 스탠퍼드 자퇴생 위니,
치명적인 두 여자의 화려한 범죄가 시작된다!

두 가지 구성으로 진행되는 『모조품』은 에이바와 형사의 대화로 시작된다. 하지만 전반부 내내 형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사건 경위에 대해 진술하는 에이바의 이야기만 나오기 때문에 일인칭 내러티브로 진행된다. 에이바는 한평생 착한 중국계 미국인 딸로 자라온 자신이 어쩌다 가짜 명품백 사기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 불법적인 사업이 그토록 빠르게 커질 수 있었는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대답한다. 에이바의 말을 듣다 보면 모든 사건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흥미진진한데, 사기 행각을 벌이는 과정에 심리 조종, 연상의 힘, 확증편향, 관심 분산의 기술 등 여러 기술이 나올 정도로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범죄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수록 드러나는 거대한 명품백 산업의 진실과 부품으로서 착취당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모습, 소비지상주의 시대에 더욱 강렬해진 명품 욕망을 충족시키며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린 모조품 산업까지 거미줄처럼 이어지며 겹겹의 층위를 쌓은 서사가 거침없이 질주하기 때문이다.
후반부는 돌연 정체를 숨긴 위니의 모습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그려지며 시작된다. 전반부에서 에이바는 자신이 사기꾼 위니를 만나기 전까지 평생 만점을 받으며 작은 오점 하나 없는 성실한 인생을 살아왔음을 피력했지만,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진술을 발판 삼아 혁신적인 반전을 보여주며 서사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성장 환경에서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자란 두 여자, 에이바와 위니의 극적인 인생 변화를 통해 오히려 비뚤어진 아메리칸드림을 가진 미국인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진짜와 구분이 안 되면 그게 어떻게 가짜 가방이야?” 위니의 물음에 반박할 수 없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책 속에서

달라진 위니의 모습을 분석했어요. 쌍커풀 수술은 기본이고, 얼굴에 레이저와 미세전류로 하는 최첨단 시술도 받은 것 같았어요. 붙임 머리도 고급, 옷도 명품이었고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_12쪽

하버드 졸업장이나 명품 핸드백이나, 클럽의 일원이라는 상징으로 내밀면 클럽의 문이 열린다는 점에서 둘은 똑같아. _39쪽

에이바 너는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알기나 해? _95쪽

변명은 많이 하지 마. 수상해 보여. 당당하게. 정중하게. 단호하게. _102쪽

형사님이 저보다는 잘 알지 않나요? 그게 성공한 악당의 특징이잖아요. 매력적이던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자비하게 변하는 거요. _154쪽

이것이 미국의 불가사의한 역설이었다. 다들 자신을 적응 못 하는 아웃사이더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하나의 거대한 컨트리클럽을 형성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_180쪽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상대에게 제가 안고 있는 부담을 지우는 거예요. 상대를 위한다면 아무 말을 하지 말아야 해요. _220쪽

두 사람의 대단한 점은 현실에 더없이 만족하는 성격이에요.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죠. 그런 삶도 행복해 보여요. _225쪽

네 친구라는 사람이 말을 안 들으면 죽인다고 네 목에 칼을 대고 협박이라도 했어? 아니야? 그럼 넌 강요받은 게 아니야. 너 스스로 선택한 거지. 멍청하기 짝이 없기는. _230쪽

중국은 불가능이 없는 곳이다. 극단적인 요구도, 촉박한 마감도 전부 가능하다. 언제나 더 젊고 더 서툴고 더 굶주린 사람이 나타나 더 열심히 더 빨리 더 오래 일한다. _232쪽

“모든 사람에는 값이 있어. 바가지를 쓰지 않고 그 값을 찾아내는 방법이 까다로울 뿐이지.” _238쪽

“그건 내가 소장품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이지. 감정과 사연이 없으면 그냥 물건일 뿐이야.” _277쪽

구매가격 : 13,440 원

말테의 수기(세계문학전집 238)

도서정보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2023-12-07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고독한 영혼을 흔드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계
기억과 망각, 이름 없는 죽음에서 찾은 존재의 자리

20세기 전반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반자전적인 산문문학 『말테의 수기』(1910)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원제는 ‘말테 라우리스 브리게의 수기’로, 덴마크의 몰락한 귀족 가문 브리게가家의 마지막 후손이자 스물여덟 살의 무명 시인 말테가 그 주인공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 없이 단편적인 71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에 말테가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거대한 것들에 대한 단상과 성찰이 담겼다. 모리스 블랑쇼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 평했고, 고 이어령 박사는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나보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작품”이라 평했다. 파리라는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말테는 자기해체 직전에 있으며, 기억의 파편을 추적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다양한 형태의 불안을 묘사함으로써 삶을 재구성하려 시도한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초월하는 삶의 예감이다. 릴케가 20세기 초 불안과 고뇌의 나날을 거쳐 작가로서 후기의 대작 『두이노의 비가』를 쓰기까지 변모의 전환점에서 독특한 형식으로 자기성찰을 시도한 작품이며, 카프카의 소설들과 함께 20세기 새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한 문학사상 기념비적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삶을 노래한 시인
망각과 기억의 심연에서 길어낸, 살아가리라는 예감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평생 유럽 각지를 여행했고,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프라하대학교에서 법학과 예술을 공부하던 무렵, 시집 『삶과 가곡』을 자비로 출판하여 무료로 배포했고, 그후 뮌헨으로 갔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이때 발표한 일련의 서정시들에서 나타난 릴케의 세계는 공허하고 외로웠다. 스물다섯 살 때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에 매료되어 평생의 친구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러시아로 떠났고, 그 직후 20세기가 찾아왔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릴케는 로댕의 제자인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해 예술인 공동체 마을 보릅스베데에 머물렀고, 예술가들과 교유하며 특히 로댕에 심취해 이듬해 파리로 옮겨가 사 년간 그의 작업실을 오가고 때로는 함께 지내며 『오귀스트 로댕』을 완성했고, 수차례 로댕론을 강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릴케는 벨 에포크 파리에, 대도시 파리에 압도되었다. 살로메에게 보낸 편지에서 “삶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 두렵고, 파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나 외롭고 외롭다. 오가는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낸다”고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경험한 릴케의 파리는 후에 말테의 파리가 되었다.

나는 지금 파리에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반색하고, 대부분은 부러워합니다.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파리는 대도시이고, 여러 가지 신기한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나를 생각해보면, 어떤 점에서는 그런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고, 그 결과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격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계관은 조금 변했다고 할 수 있고, 어쨌든 나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내 안에서 모든 사물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이 차츰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지금까지 어떤 것보다 더 나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몇 가지 차이가 존재합니다. 변화된 어떤 세계, 새로운 의미로 가득찬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롭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조금 힘겹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일에도 여전히 초보자입니다. (본문 중에서)

젊은 시인 말테는 대도시 파리의 어느 골목, 다섯 층계를 올라간 춥고 좁은 작은 방에서, 고립된 삶 속에서 글을 쓰려 한다.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들, 일상에서 마주친 두려움과 불안, 얼굴 없는 이웃들, 이름 없는 죽음들, 끊임없이 방 천장을 가로지르는 소음들을 생각하고, 글을 쓴다. 형식적인 구분은 없지만 소설은 페이지를 달리한 장을 기준으로 총 2부로 나뉜다. 1부는 파리에서 겪은 일과 과거의 기억들, 여섯 장의 태피스트리 연작 <여인과 일각수> 이야기까지이며, 2부는 입센과 베토벤, 보들레르, 사포, 루이즈 라베, 엘레오노라 두세 등 예술가들과 샤를 대공, 샤를 6세, 가짜 황제 드미트리, 교황 요한 22세 등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까지다. 그리고 2부 마지막인 성경의 ‘탕자’ 이야기를 통해 말테는 사랑받는 것을 거부하고 사랑하며 살리라고, 삶과 사랑의 방식을 바꾸리라고 암시한다.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릴케는 그것을 끝까지 파보기 위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말테를 삶의 가장자리 끝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를 죽음 옆에 두었다.


시로 쓴, 시가 된 소설
릴케의 온 세계를 담은 유일한 장편소설

릴케의 전기와 말테의 허구 사이의 경계가 종종 모호해지는 이 반자전적 소설에서 파리는 덴마크 청년 말테를 무겁게 짓누른다.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 벽을 짚고 힘겹게 걸어가는 임산부, 죽기 위해 병원으로 몰려가는 듯한 사람들, 무도병에 걸린 남자, 수레를 끌며 꽃양배추를 파는 맹인, 나병 환자, 온갖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 같고, 다가올 운명만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말테의 내면에 들어간 우리는 죽음이 가득한 흑백의 파리를 눈앞에서 보듯 그 내면의 두려움과 공명하게 된다.

나는 여기 내 작은 방에 앉아 있다. 나, 브리게는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기에 앉아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생각하기 시작하고, 생각을 한다. (본문 중에서)

말테는 짐 가방 하나와 책 상자 하나뿐인 허름한 방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 그의 예민한 신경은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유난히 긴장되어 있다. 파리에서의 삼 주는 그를 흔들고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는 새로운 출발을 결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는 것부터 제대로 하려고 한다. 모든 것을 살펴봐야 하고, 모든 것을 느끼고 이해해야 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서 모든 기억이 자기 안에서 생명을 얻고 자기 자신과 분리될 수도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시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부가 불안과 죽음의 책이라면, 2부는 사랑의 책이다.
어머니와 함께 레이스를 풀어 구경하던 일, 이웃 슐린가의 불타버린 저택을 방문한 일, 어린 시절 어른들의 선물에 환멸을 느낀 일, 용감한 샤를 대공 이야기 등 많은 회상이 등장하지만, 가장 큰 줄기는 사랑에 빠진, 사랑을 하는 여인에 대한 찬가다. 엘로이즈, 베티나, 사포 등 중세와 르네상스시대 여인들이 보여준 위대한 사랑에 말테는 이렇게 경탄한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타버리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기름으로 불을 밝히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영속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도 그에게는 남에게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신의 사랑만을 구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해석된다.
쓸쓸한 영혼의 여정, 절묘한 시적 산문의 보물이라 일컬어지며 오늘날에도 현대인의 고독과 깊이 공명하는 이 “불안의 책”에서 말테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머물 ‘존재의 자리’에 도달한다고 암시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였다는 점에서 종종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1927)와 함께 거론되지만, 사실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지난할 수도 있다. 모든 문장이 규칙적이고 합리적이고 언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이 아니라, 먼저 감정이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글이 언어가 아니라 느낌으로 전달된다. 강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 그림이, 춤이 탄생하듯 릴케의 산문은 그의 감정이 그대로 문장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릴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핏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장려한 언어를 듣고 그 언어로 시를 쓰겠다는 열망에 휩싸인 사람 같았다. 그의 앞에는 이 언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당혹해하는 일이 놓여 있었다. (본문 중에서)

구매가격 : 10,500 원

테러리스트

도서정보 : 마이 셰발, 페르 발뢰 | 2023-12-06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물 중
마르틴 베크만큼 내가 마음 깊이 공감한 이는 없다.”
_박찬욱, 영화감독

라틴아메리카에서 장기간 독재정치를 행하던 대통령이 거리 한복판에서 폭탄 테러로 죽임을 당한다. 곧 배후에 있는 암살 조직의 정체가 밝혀지고, 최근 그들이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정상급 정치인이 방문하는 일정을 앞둔 스웨덴 경찰은 국빈 경호를 위한 특별반의 총책임자로 마르틴 베크를 임명한다. 지난 십여 년간 함께 일한 경찰 동료들과 함께, 마르틴 베크는 암살 테러 시도를 저지할 수 있을까?

요 네스뵈, 헨닝 망켈 등 유수의 범죄소설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리즈,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 경찰소설의 모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 『테러리스트』가 출간되었다. 2017년에 출간된 『로재나』를 포함한 아홉 편의 작품에서 여러 범죄 사건을 해결해온 마르틴 베크가 10권 『테러리스트』에서는 유력 정치인을 노리는 세계적인 암살 테러 집단을 상대로 경호 임무를 수행한다.
엘릭시르에서 2017년 출간한 『로재나』를 시작으로 7년간 꾸준히 이어져온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스웨덴 국가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형사 마르틴 베크를 주인공으로 하는 경찰소설이다. 공동 저자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전체 열 권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에 ‘범죄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여 부르주아 복지국가인 스웨덴이 숨기고 있는 빈곤과 범죄를 고발하고자 했다. 또한, 긴박한 전개와 현실적인 인물이 자아내는 위트까지 갖추어 대중소설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은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헤어질 결심〉(2022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 초청, 감독상 수상작)의 주인공 캐릭터를 조형하는 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 바 있다. (출처: 김혜리의 콘택트 https://youtu.be/9RdNY19MtSw?t=718) 차분하고 유능한 경찰인 장해준(박해일 분)은 차근차근 단서를 수집하고 사건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생각하는 형사’ 마르틴 베크의 수사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들은 모두 천재적인 추리력을 뽐내는 독보적이고 영웅적인 탐정이 아니라, 정해진 일과와 절차를 따르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찰로 그려진다.

●‘범죄 이야기’의 마지막 장으로
작품의 제목으로부터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테러리스트』에서 마르틴 베크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 테러를 일삼는 국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폭탄 테러 사건은 세계 각국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예정된 국빈 방문 일정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경찰에 지시를 내리고, 그 임무를 맡은 특별책임반의 책임자로 마르틴 베크가 지명된다. 이제 마르틴 베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과 함께, 이미 스웨덴 땅으로 숨어든 테러리스트들의 계획을 저지해야만 한다.

소설의 제목인 ‘테러리스트’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마지막 ‘마르틴 베크’ 시리즈인 이 책에서는 테러가 잔뜩 벌어진다. 하지만 테러로 인한 혼란은 줄거리의 맨 앞과 뒤를 장식한 정치적 암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셰발과 발뢰가 이 책에서 꾀하는 바는 테러의 근본적인 정의 자체를 훨씬 더 폭넓게 탐구하는 것이다.
_데니스 루헤인, 『테러리스트』 서문 중에서

직전 작품인 『경찰 살해자』에서 스웨덴 사회의 타락과 경찰 조직의 방만한 실태를 신랄하게 지적했던 저자들의 태도는 『테러리스트』에서도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단, 거대해진 범죄의 규모만큼이나 시야를 넓힌 셰발과 발뢰는 본작을 통해 스웨덴 사회를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해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테러리스트』에서 ‘테러리스트’는 단순히 국제 테러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타국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거리끼지 않는 강대국의 정치인들과, 자국민을 억압하고 입맛대로 움직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자들, 즉 ‘국가’와 ‘체제’에 의한 폭력이 테러와 다름없음을 비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 역시, 『테러리스트』의 서문에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에게 최대의 적은 “총알이나 폭탄이 아니”며, “스스로에게 불행한 상황을 오히려 치켜세우고 보상하는 관료 기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범죄소설을 현실의 거울상으로 만들다

“마르틴, 자네의 문제는 잘못된 직업을 가졌다는 것뿐이야.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나라에서, 잘못된 체제에서.”
_『테러리스트』,

저자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의 현실을 범죄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여과 없이 그려내, 독자들이 즐거운 독서 안에서 1970년대 스웨덴 사회의 문제적 면면들을 발견할 수 있게 했다. 등장인물들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인종차별주의 정책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현장을 지나치기도 하는데, 이렇게 사회상을 문학작품에 녹이는 작풍은 ‘마르틴 베크’ 이전까지의 범죄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기에 특별한 의의를 지닌다.
데니스 루헤인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당대 사회상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는 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시리즈의 후반으로 갈수록 논객으로서의 셰발과 발뢰가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루헤인은 소설가로서의 셰발과 발뢰가 ‘이야기’의 유머와 재미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장르소설의 모범적 사례가 되었음을 극찬한다.

순수한 사람들은 파괴된다. 그들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파괴될 때가 많다. 소설 속 사건들이 일으킨 여파는 영혼을 난도질하는 것이어서,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빠져나올 수는 없다. 오직 체제 그 자체만이 모든 더러움과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꾸역꾸역 굴러간다. 그 규범을 지켜내려고 애쓰는 영리하고, 끈질기고, 멜랑콜리한 마르틴 베크와 함께.
_데니스 루헤인, 『테러리스트』 서문 중에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 이후로 완전히 다른 흐름을 따르게 된 범죄소설은, 범죄를 통해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후배 작가들에게는 앞으로 범죄소설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며 그들로부터 “경찰 소설의 모범”(요 네스뵈), “현대의 고전, 오늘날에도 유효한 소설”(헨닝 망켈) 등의 찬사를 받았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최근까지도 스웨덴에서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는 등, 시대를 넘어서 그 인기와 작품성을 꾸준히 증명해나가고 있는 작품이다.

구매가격 : 12,600 원

행복한 가족

도서정보 : 파브리치오 실레이 | 2023-12-04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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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망치고 있었다.
엄마는 정신이 나갔다. 우리는 미쳤다.”

한 가족을 ‘행복’으로 몰아넣은
집착과 세뇌의 기록

“행복이란 환상에 가린
거짓과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 도서 소개

“우리는 정말 행복한 가족이야!”

현관 작은 틈새로 엿보인
완벽하게 반듯한 가족의 끔찍하게 추악한 진실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맞아, 가정 폭력의 아픔을 다룬 청소년 소설 《행복한 가족》이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파브리치오 실레이는 2008년에 유니세프 문학상 최종 후보로 거론되었으며, 2012년엔 이탈리아 최고의 아동문학상인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2014년 이탈리아 어린이문학 최고의 작가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201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 사회학자로서 보고 들은 것들을 토대로 유색 인종, 저소득 계층 등 사회에서 억압받는 소수 집단의 현실을 자신의 작품에 녹여 내 온 파브리치오 실레이가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인 열한 살 소년의 눈과 입으로 어느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행복을 위해 솔직해져야 하지만 행복을 위해 거짓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말이다.


가정 폭력,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 역하고도 질긴 사슬에 관하여

슈퍼히어로처럼 강인한 아빠와 조금은 덤벙거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 까칠하게 굴다가도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 주는 누나까지. 열한 살 ‘니콜라’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가족이 있다.
아니,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니콜라는 이 완벽한 가족 안에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몸에 유난히 상처가 자주 생기고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허락받지 못하는 누나. 여자들은 원래부터 남자완 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아빠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니콜라는 가슴 한쪽에 피어나는, 가족들이 그보다 더한 진실을 숨기고 있으리라는 직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출장으로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엄마의 기행奇行이 시작된다.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노숙자를 집 안에 들여 정성껏 돌본 것이다. 니콜라는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불쌍한 아빠를 속이면서까지 이런 짓을 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한편, 이를 알게 되었을 때 아빠가 어떻게 나올지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떤다. 결국 니콜라는 아빠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거짓말을 하게 되고, 엄마를 학대하는 아빠에 대한 공포와 아빠를 속이게 만든 엄마에 대한 분노가 니콜라의 숨통을 조여 오기 시작하는데…….


“자유 없는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행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진짜로 싸워야 하는 순간

《행복한 가족》은 일생을 아빠의 집착에 물든 채 살아 온 가족들의 행복을 향한 몸부림이다. 엄마는 자기 자신에게 행복하다는 주문을 걸며 현실을 외면하고, 소름이 끼칠 만큼 철저하게 세뇌당한 아들은 그 모든 것이 행복의 풍경임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살던 곳이 꽃밭이 아닌 지옥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가족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작한다. 이들의 절박함은 두 여성이 꿈 같은 미로를 거니는 듯 몽환적인 장면으로도, 불타는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처절한 악몽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책의 표지에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가정 폭력 피해 어린이의 감정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면서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감추어진, 피해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고통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문제를 밝혀낸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숨죽이고 있을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되는 이야기이며, 그들과 연대해야 할 피해자 어른들에게는 낙담과 무기력에서 일어설 용기를 준다. 무엇보다 행복이란 환상에 가린 거짓과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든다.”

_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UN에서는 매년 11월 25일을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로 지정했으며, 전 세계가 그날로부터 인권의 날인 12월 10일까지를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으로 기념하고 있다. 이 작품의 원제인 ‘Nemmeno con un fiore (Not even with flower, 꽃으로도)’는 이탈리아에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을 기념하는 여성 폭력 근절 캠페인을 전개할 때 슬로건으로 사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여성 폭력 근절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7월 여성 가족부가 발표한 ‘2022 가정 폭력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정 폭력 피해자 중 소극적으로나마 대응해 본 사람은 46.7%다. 즉, 절반 이상의 피해자가 ‘아직 심각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내 잘못도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순간을 모면했다는 의미다. 덧붙여 국내에는 2022년에야 처음으로 여성 폭력 통계가 발표됐을 정도로 여성 폭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행복한 가족》은 그런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폭력의 굴레에 메여 있을 아이들, 침묵하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싸워서 지켜 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 작가 파브리치오 실레이는 청소년들이 이 작품을 통해 그 답을 찾아 가길 바라 마지않는다.
아마 누구든 책을 덮는 순간 그러쥔 손안에 그 답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쟁취해야 할 것은 누구에게도 내어 줘서는 안 되고,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것. 바로 진정으로 행복해질 자격임이.




◎ 추천의 글

가정 폭력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굴 안에 갇힌 피해자는 폭력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하기 쉽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은 경험을 객관화하기 어려운 상태로 고립되곤 한다. 폭력의 구조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가해자의 인질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작품은 가정 폭력 피해 어린이의 감정을 최선을 다해 보호하면서도 통계에 잡히지 않은 채 감추어진, 피해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고통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문제를 밝혀낸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숨죽이고 있을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의 빛이 되는 이야기이며, 그들과 연대해야 할 피해자 어른들에게는 낙담과 무기력에서 일어설 용기를 준다. 무엇보다 행복이란 환상에 가린 거짓과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눈에서 얼음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아팠다. 작가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말의 이면에 깃든 차디찬 슬픔을 낱낱이 꺼낸다. 어린이의 고통을 이렇게 정중하고도 문학적인 태도로 그려 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누구에게도 함부로 장담할 수 없는 ‘행복’과 ‘가족’이라는 우아한 이상에 대해서 밑바닥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누구든 고통 속에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구하고 한발 더 나아가려는 의지를 얻을 것이다. 비명을 그늘 속에 묻어 두는 한, 가족이 더 이상 사랑을 말하게 될 가능성은 없다. 이 책으로써 모두 그 비명의 진실에 귀 기울일 수 있길 바란다.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 책 속에서

그 모든 일을 겪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엄마는 해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이런 일에는 아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직도 떨쳐 낼 수가 없다. 엄마는 동전도 없을뿐더러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승강장 바닥에 미끄러져 발목을 접질릴 거라고,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중얼거린다. _7쪽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떤 말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우린 정말 행복한 가족이었다고. _11쪽

아름답지만 말수가 적고 연약했으며, 백옥같이 희고 얇은 살결을 가진 엄마.
만지기만 해도 피부에 쉽게 멍이 들어 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던 우리 엄마. _16쪽

그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그 일부가 되었을지도. 그냥 그날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린 것뿐일지도……. _18쪽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이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도 하고!” 아빠가 조용히 오른손으로 구겨진 식탁보를 반듯하게 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당신이 드디어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군…….” _30쪽

“우리 집 여자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해 주자, 약속?”
“약속!” _39쪽

나는 황량한 도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약간의 연민과 걱정 섞인 마음으로, 여자로 태어나 버린 누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_54쪽

엄마가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_79쪽

“그랬으면 좋겠지만, 저는 부인을 구한 그분과는 달라요……. 나 자신도 구해 낼 줄 모르는 사람인걸요.”
“때로는 남보다 자신을 돕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죠.” _139쪽

“니콜라, 넌 진짜 여자를 몰라. 여자들은 걸핏하면 실수하고, 사고방식도 우리와는 달라서 잘 속아 넘어가지. 너무 늦으면 손을 쓸 수 없어…….” _156쪽

나는 숨을 고르고 그를 놓아주었다. 아빠의 검은 안경을 쓰고 땀으로 범벅된 내 얼굴이 상상되었다. 그렇다, 그 순간 나는 아빠가 되어 있었다. 아빠와 똑같았다. _170쪽

자유 없는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_178쪽

우리는 아빠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았다. 엄마는 정신이 나갔다. 우리는 미쳤다. _216쪽

구매가격 : 11,840 원

포르모사 1867

도서정보 : 첸야오창 | 2023-11-2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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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하고 싶은 자, 붉은 깃발을 펼쳐라!”
기록되지 않은 섬에 묻혀 있던 기록!
대만 헝춘반도에 흩어져 있던 역사의 파편을 하나로 꿰다

★대만 문학금전상 수상 작품!
★대만 넷플릭스 시청률 1위, 2021년 가장 사랑받은 드라마 <스카루> 원작 소설!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연결하고, 시간과 공간을 빈틈없이 채운 대하극

타이베이 국제도서전에서 대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었던 역사 소설가 첸야오창이 19세기 대격변기의 헝춘반도를 조명한 이야기. 대만 문학금전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역사에서 잊힌 1867년 3월, ‘아름다운 섬, 포르모사’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그날 폭풍우를 만난 미국 상선 로버호가 좌초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선원들이 해변에 상륙하지만 끔찍한 비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사람의 머리를 베고 식인을 하는, ‘생번’이라고 불리던 원주민들을 맞닥뜨린 것이다.
일명 ‘로버호 사건’으로 언급되던 비극이 파편으로 묻혀 있던 이야기들을 발굴하도록 단서를 제공했다. 첸야오창은 이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조립해 한 편의 거대한 대하극으로 재탄생시켰다. 다양한 부족으로 나뉜 생번과 포르모사를 손에 넣으려는 서양인들, 줄곧 이 섬을 ‘나라의 밖, 교화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여기던 청나라 관리들, 생번의 땅을 뺏는 한족 이주민들이 서로 충돌하고 전쟁하고 상처를 입히며, 마침내 용서하고 평화 조약을 맺기까지의 과정에서 근대 대만의 운명을 뒤흔든 사건과 인물들을 마치 눈앞에서 움직이듯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포르모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증으로 얽힌 역사가 시대를 초월한 감정적 유대를 불러일으키고, 그때 그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을 갖춘 스토리 덕분에 이 책을 원작으로 제작한 드라마 <스카루(SEQALU)>가 2021년 대만 넷플릭스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첸야오창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앞에서 생명 공동체이자 운명 공동체로 묶인 사람들이 견뎌내는 평범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결정적인 순간들로 포착해냈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이 살아가는 땅에 대한 역사 의식을 갖추고, 공존·공생하는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반추할 때다.

구매가격 : 15,400 원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도서정보 : 앤 그리핀 | 2023-11-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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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되돌아보게 되는 사랑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 간직했던, 기어코 삶을 견디게 한 사랑

사랑과 외로움, 기쁨과 슬픔, 후회와 연민이 뒤섞인 강력한 페이지터너
_아일랜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베스트셀러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아일랜드 소설가 앤 그리핀의 데뷔작으로, 출간된 2019년에 아이리시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작가는 이 작품으로 아일랜드 북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21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앤 그리핀은 현재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주인공 84세 모리스 해니건이 더블린 근교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다섯 명에 대해 하룻밤 독백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평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던 모리스 씨가 애써 덤덤하게 털어놓는 사랑과 그리움은,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가슴 시린 여운으로 남는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이별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끝내 꺼내지 못하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전까지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상실을 몰라. 뼈에 달라붙고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사랑은 긴 세월에 걸쳐 다져진 흙처럼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라지면…… 누가 억지로 뜯어간 것 같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채 빌어먹을 고급 카펫에 피를 뚝뚝 흘리며 서 있는 거야. 반은 살아 있고 반은 죽은 채로, 한 발을 무덤에 넣은 채로 말이다.
_본문 중에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요?
잊을 수 없는 다섯 사람에게 건네는 다섯 번의 달콤 쌉싸름한 건배

나는 크림 같은 거품이 기울인 술잔 가장자리에 닿을 때까지 맥주를 따른 다음 가만히 둬. 주변을 둘러보며 오늘 하루를, 올해를, 사실은 네 엄마가 없었던 지난 이 년을 생각하자 피곤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워. 떠오르는 크림을 보면서 손으로 턱수염을 다시 쓰다듬어. 그런 다음 기침을 하고 신음을 내뱉으며 걱정을 몰아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아들아. 돌이킬 수 없어. _본문 중에서

“난 여기 기억하러 왔어. 지금까지 겪었고 다신 겪지 않을 모든 일을.”(본문 중에서) 한 편의 모놀로그 연극과도 같은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모리스 씨는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아일랜드 흑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자신에게 특별한 다섯 사람을 기억에서 불러내 그들에게 건배한다. 모리스 씨의 독백은 바다 건너 아내와 두 아이와 살고 있는 아들 케빈을 향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는데, 이로 인해 작품을 읽는 동안 모리스 씨와 바에 앉아 그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무던하고 평탄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던 평범한 노인 모리스 씨가 평생 감춰왔던 사건들을 하나둘씩 꺼낼 때마다 결코 단순할 수 없는 그의 뒤틀린 면모도 점차 드러나는데, 그 뒤틀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것임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열등감, 수치심, 분노, 복수심과 다정한 마음과 연민의 감정, 뜨거운 사랑은 한 인간 안에서 온전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모리스 씨의 인생 이야기는 그의 형 토니를 위한 첫번째 건배사에서 시작된다. 난독증으로 인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어린 모리스 씨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형 토니는 어린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고 홀로 어른으로 성장한 모리스 씨는 형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건배사를 시작하며 어릴 적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자 평생 자신을 옥죄는 비밀이 될 사건에 대해 암시해간다. 한편 어린 시절, 모리스 씨와 그의 어머니는 지역의 지주 휴 돌러드와 그의 아들 토머스에게 지독한 학대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나 운명은 복수의 기회를 주었고 모리스 씨는 그 기회를 움켜쥔다. 어느 날 아버지와 다투던 토머스는 실수로 가문의 보물인 에드워드 8세 금화를 창밖으로 떨어뜨리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모리스 씨가 그 금화를 몰래 주워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숨겼고, 금화를 분실한 토머스는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만다. 그리고 소설은 우연한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서서히 풀어간다.
사산된 딸 몰리에게 건배하는 두번째 장은 딸의 죽음으로 인한 격정적 슬픔으로 가득한 모리스 씨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아내 세이디에 대한 애정, 금화 도난 사건의 엄청난 결과는 이어지는 플롯에서의 반전으로 연결되어 손에서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모리스 씨와 아내 세이디의 첫 만남, 처제 노린의 질병에 얽힌 세번째 건배, 그리고 이어지는 기자인 아들 케빈을 위한 네번째 건배, 사랑하는 아내 세이디를 위한 다섯번째 건배에서는 모리스 씨의 사랑과 인생을 건 비밀이 그의 삶을 마지막까지 어떻게 직조하는지 놀라움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그러나 모리스 씨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맞이하는 예상치 못한 반전에 슬픔으로 차오르게 되는 건, 단지 그의 흥미진진한 입담 때문만은 아니다.

인생은 불완전하고 누구든지 외롭다
그러니, 사랑하고 사랑받는 특별한 순간들을 기억하라

소설가 앤 그리핀은 이 첫 작품만으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평단의 스토리텔링 장인이라는 호평 속에서 스타 작가로 부상했다. 그만큼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은 모든 탁월한 소설들이 그러하듯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침착하고도 부드러운 시선, 사건을 구성해가는 단단한 이야기 구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드러내는 날렵한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해 보이는 인생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대로 밋밋하지 않다는 소설적 진리를 담은 이 작품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외로움과 상실 속에서도 묵묵히 인생의 한 걸음을 이어가는 우리를 위한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모리스 씨가 건네는 이야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구매가격 : 12,000 원

실종자(세계문학전집 236)

도서정보 : 프란츠 카프카 | 2023-11-03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관계에서 거듭 밀려나 점점 사라져가는 자의 실존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담긴 첫 장편소설


“이 책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영원히 소속감이라는 바위를 헛되이 굴리는 현대의 시시포스다.” _알베르 카뮈

『소송』 『성』과 더불어 ‘고독’ 삼부작으로 불리는 『실종자』는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로, 미완성작으로 남았으나 카프카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브로트가 1927년부터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펴냈으나, 1983년 독일에서 발간된 비평판 이후 카프카가 일기에 쓴 원제대로 ‘실종자’로 바뀌었다. 잘못을 저질러 고향에서 쫓겨나 뉴욕에 오게 된 한 청년이 고도의 기술문명과 자본주의 체제인 미국 사회에서 겪는 소외와 상실, 고독의 문제를 첨예하게 짚어낸다. 이 소설의 첫 장 「화부」는 카프카 생전 1913년 단행본으로 발표되어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폰타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카프카 문학의 정수가 담긴 첫 장편소설

『소송』 『성』과 더불어 ‘고독’ 삼부작으로 불리는 『실종자』는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로, 다른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미완성작으로 남았으나 카프카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의 친구이자 유고를 편집해 소개한 막스 브로트가 1927년부터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펴냈으나, 1983년 독일에서 카프카 육필 원고에 기초해 발간된 비평판 이후 카프카가 일기에 쓴 원제대로 ‘실종자’로 바뀌었다. 이 소설의 첫 장 「화부」는 카프카 생전 1913년 단행본으로 발표되어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15년 폰타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카프카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1911년 말에 쓴 초고 200매가량을 폐기하고 싶다고 밝힌 후 본격적으로 이 소설 집필에 매달린 건 1912년 가을부터 1914년 가을까지다. 그사이 첫 단편 「선고」와 대표작 중 하나인 「변신」을 썼으며, 끝 무렵에는 『소송』 집필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카프카는 이 책의 1장 「화부」와 「선고」 「변신」을 함께 엮어 ‘아들들Die Söhne’이라는 제목으로 펴내자는 제안을 출판인 쿠르트 볼프에게 하기도 했다. 세 편 모두를 관통하는 카프카 문학의 핵심 테마(아버지 권력과 길항하는 아들의 서사이자 관계로부터의 고립)를 첫 장편 『실종자』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바, 그가 몇 번이나 좌절과 중단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구현해내고자 한 문학세계의 맹아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청년은 아메리카 여정 내내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존재가 실패”(크라카우어)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닥뜨리는 만큼 “희망은 금지되는 게 아니라 금지되지 않기에, 희망에 가장 처절하게 고통을 가하는 작품”(모리스 블랑쇼)이라 할 수 있다.

아메리카 사회에서 표류하는 ‘현대의 시시포스’
점점 관계로부터 밀쳐져 사라져가는 자의 실존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카프카의 작품들 중에서도 아주 정교한 서사구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목이 붙은 6장, 제목이 없는 2장, 그리고 미완성 장들(3장)로 구성된 이 소설의 첫 장면부터 주목을 요한다. 즉 뉴욕으로 입항하는 배에서 점점 짐꾼들에 의해 ‘난간까지 밀쳐진’ 그의 시선에 처음 들어온 것은, 우뚝 솟아난 팔로 횃불이 아닌 ‘칼을 든 자유의 여신상’이다. 자유와 정의, 희망과 꿈의 신세계로 진입하고 정착하기 위한 도정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곳에서 과연 카를은 새 출발을 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카프카적인 시작’을 알리는 이 첫 장면에서 보다시피, 17세의 카를 로스만은 고향 프라하에서 하녀를 임신시킨 문제로 부모가 그를 미국으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막 뉴욕항에 입성하면서 앞으로의 어두운 아메리카 여정을 노정한다. 거기서 그는 기계화된 문명과 테일러주의로 돌아가는 미국 사회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상류사회에서부터 자본주의 밑바닥에 있는 계급까지 두루 만나고 겪는다. 배에서 처음 만난 해고 위기라는 억울한 상황에 처한 화부를 돕는 정의감 넘치는 청년에서, 원칙과 효율을 추구하며 미국 사회에서 정재계 고위직 인사로 성공한 외삼촌이 이끄는 기업사회의 경영후계자 자리, 삼촌의 눈 밖에 난 한 번의 실수로 얼토당토않게 내처져 어느 호텔에서 겨우 운좋게 얻어낸 엘리베이터 보이로서의 최말단직, 부랑하는 실업자이자 이민자 무리(로빈슨과 들라마르슈)와 함께 성매매로 자본을 축적한 가수 브루넬다의 하인을 거쳐, “누구든 환영한다”는 오클라하마 야외극장의 기능직 채용시험에 ‘니그로’라는 이름으로 응하여 알 수 없는 기차에 오르며 끝내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자’로까지, 그의 존재는 여러 변곡점을 거칠수록 차츰 희박해진다. 선실, 별장, 호텔, 극장 채용시험장(경마장)이라는 주요한 서사 공간에서 이뤄지는, 카프카의 특징인 법정 재판을 방불케 하는 ‘심문’ 장면들은 아메리카 사회로의 진입과 정착, 관계와 소속에 대한 카를의 욕망이 철저히, 첩첩으로 적나라한 실패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서사적 긴장과 멜랑콜리를 더한다. 횡단면상으로는 유럽의 고향에서 미국 내 이방 세계로의 추방을, 종단면상으로는 다양한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만나며 번번이 희망 없는 추락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행 배, 외삼촌의 집과 사무실, 그린 씨의 별장 속 미로 같은 공간, 옥시덴털호텔의 주방과 엘리베이터, 브루넬다의 방으로 점점 옥죄듯 폐쇄되어가는 닫힌 구조에서 갑자기 마지막에는 극장의 채용시험장인 경마장에서 오클라하마행 기차로 넘어가 아득히 열린 공간 구조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면은 곧 현대인의 불가해한 삶의 터전에 대한 확장된 우화로도 읽힌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마지막 부분을 유토피아적 여정으로 끝맺음하려 했다고 오독했으나, 1915년 9월 30일자 카프카의 일기는 정반대로 구상하고 있었음을 입증한다: “로스만과 K, 죄 없는 자와 죄 있는 자, 결국 둘 다 똑같이 처벌되어 죽임을 당한다. 죄 없는 자는 보다 손쉽게, 때려눕혀지기보다는 옆으로 밀쳐지는 식으로.”
카프카는 미국 땅에 한 번도 발을 붙인 적이 없으나 이 소설을 통해 “가장 현대적인” 아메리카를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의 여행 책자나 보고서, 사진이나 종종 접했던 영화 등 2차 문헌을 참고하며 대도시의 마천루, 파업과 교통 혼잡, 선거 캠페인 및 사무실 노동 현장, 기계화된 통신 및 운송시설 등을 당대의 유럽인의 시각에서 비교해보고 연구해나가면서 자기만의 형상화에 골몰했다. 발전과 성장에 목매던 현대의 최첨단, 아메리칸드림과 신세계에 대한 그 허상을 깨부수고 있는 『실종자』는, 그로테스크하고도 몽환적인 색채가 가미된 서술로 부조리한 현실과 권력구조의 폭력성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카프카는 이 작품으로 “영원히 소속감이라는 바위를 헛되이 굴리는 현대의 시시포스”(카뮈)를 창조해냈다.

해석의 여러 단서를 제공하는 해제와 원전에 충실한 번역

2024년 6월 3일은 카프카 타계 100주기다. 카프카는 서구 문명의 몰락이자 인간 정신의 붕괴를 목도하게 한 제일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미국 사회를 모델로 이 작품을 썼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이 뒤섞인 현대의 최첨단 도시에서 그 전모는 알 수 없이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위로부터 아래로”(카프카) 겹겹이 위계화된 권력과 자본시장에 종속되어 기계 부품처럼 소외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실존에 대한 카프카식의 문제 제기는 오늘날에도 역시 유효하다. 이민자이자 표류자로서 한 젊은이가 어떻게 관계로부터 얼토당토않게 거듭 밀쳐져 점점 소속의 고리를 잃고 행방이 묘연한 실종자로 전락해갈 수밖에 없는지, 불가해하고도 부당한 폭력과 계속 마주하면서 어째서 말미에 희망 없는 사지로, 끝이 나지 않을 무의 세계로 사라져가고 마는지, 그 종적을 아주 정치하게 묘파해낸다.
이 책을 옮긴 이재황 번역가는 새로 정립된 비평판을 기준으로 카프카의 첫 장편소설의 원형을 비추어 짐작해볼 수 있도록 충실히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옮긴이 해설에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브로트 판과 달리 카프카가 오클라호마를 ‘오클라하마’로 일부러 표기한 것에서도, 주인공 카를 로스만의 이름이 갖는 상징성(‘말’을 뜻하는 ‘로스Roß’와 ‘남자, 사람’을 뜻하는 ‘만Mann’의 결합이 보여주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와의 비교)에서도 이 작품을 새롭게 들여다보도록 한다. 옮긴이는 카프카 문학의 핵심을 ‘부정성의 미학’으로 짚어내면서 이 작품을 두고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서구 문명의 진보적 역사관과 최대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20세기의 패러다임에 대해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갈무리한다.

구매가격 : 13,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