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사무라이 사상가들, 사이고 다카모리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탁양현 | e퍼플 | 2018년 10월 12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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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칼을 모시는 사무라이
그리고 메이지유신



일본의 ‘사무라이[侍]’는, 무언가를 ‘모시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대체로 그 ‘모심’의 대상이 主君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실상 사무라이가 모시는 대상은 칼이다. 칼이 곧 주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人類史에서, 古代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칼의 시대에, 칼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사회에서, 칼은 상징적인 권력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권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칼을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칼로써 베어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무라이는, 그러한 칼 자체를 神처럼 모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근대 이후, 銃의 시대가 되면서, 칼은 권력을 상실했고, 사무라이도 精神性도 다른 모습으로 변모케 된다.
따라서 尙武精神의 상징이었던 칼은, 物質精神의 상징인 총으로 대체된다. 칼이 主君을 의미했다면, 이제 총은 資本을 의미한다. 물론 근대 이전 中世에, 이미 일본은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開港으로써 총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예컨대, 일본의 근대를 이끈 ‘메이지유신’ 시기의 ‘세이난 전쟁’은, 철저히 총과 대포를 이용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시기까지, 일본사회는 분명 칼을 모시는 사무라이들이 주도하는 사회였다. 그러다가 메이지유신 이후, 기존의 사무라이들은 ‘생존의 이득’을 목적하며 정치적 자본가로서의 변모를 꾀했고, 대부분 근대적 자본가로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일본사회에서, ‘칼과 사무라이’의 시대가 ‘총과 자본가’의 시대로 변화하는 樣相이다.

메이지유신을 주제로, 대표적인 사무라이 사상가들을 살피면서, 필자로서는 여전히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植民史觀이라는 幽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非但, 식민사관만이 아니라 東北工程이나 半島史觀의 문제도 그러하다. 흔히, 이러한 문제들은 ‘역사적 史實’의 문제이므로, 역사학의 所管인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역사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떠한 ‘역사적 事實’이 歷史書에 史實로서 기술되어, 하나의 歷史가 정립되는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半島史觀’, ‘日帝의 植民史觀’, ‘중국의 東北工程’ 등에 의한 역사는, ‘역사를 위한 역사’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역사’임은 周知의 사실이다.
흔히, ‘조선왕조의 반도사관’을 ‘日帝 식민사관’의 일종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요동 정벌’ 명령에 抗命하며, ‘위화도 회군’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하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선언할 때 작동한 ‘史觀’이야말로, ‘반도사관’이다. 본래 우리 민족의 영토이던 ‘요동’을 포기하고서, 우리 영토를 ‘압록강’ 이남의 ‘韓半島’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러한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역사관’에, ‘반도사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반도사관’과 ‘식민사관 중의 반도사관’은 뭉뚱그려질 수 없는 별개의 개념이므로, 명확히 분별하여 살피는 것이 타당하다.
‘식민사관’은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는데, ‘神功皇后’의 新羅征服說과 任那日本府說, 滿鮮史論 등을 내세우다가, 20세기 초부터 朝鮮侵略이 본격화되자 日鮮同祖論, 他律性論, 停滯性論, 黨派性論 등을 제시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李丙燾 등이 대표자들이다.
‘일제’의 ‘朝鮮史編修會’에 재직하던 ‘申奭鎬’는, 解放 이후 ‘국사편찬회’의 회장이 된다. 이후 이러한 계통을 잇는 ‘植民史學派’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美軍政’, ‘左右對立’, ‘韓國戰爭’ 등의 이유로 인해, 친일파 處斷을 엄정하게 실현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인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중국’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다. 이러한 정책은, 우리 민족의 ‘古朝鮮史’, ‘高句麗史’, ‘渤海史’ 재정립 문제와 첨예하게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서 銳意注視해야 한다.(탁양현: 洪範九疇의 政治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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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현재에 이르러서는 親中主義, 親美主義, 親日主義, 從北主義 등의 문제도 얽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知彼知己의 認識으로서 상대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이내 그릇된 결정을 하게 되기 십상이다. 예컨대, 조선왕조 말기에 이루어졌던 일련의 정치적 결정들은, 그러한 그릇됨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런데 단지 개인의 결정이라면, 그 反響이 微微할 수 있지만, 공동체의 집단적 결정이라면, 국가공동체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다. 그러니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知彼知己의 자세는, 삶의 태도로서 참으로 결정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도, 현재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미국이나 중국의 속내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한다면, 자칫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랬다가는 조선왕조 말기의 前轍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아가 북한이나 일본에 대한 理解 역시 그러하다.
특히 북한은, 남한에게 있어 가장 직접적인 분석의 대상이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온갖 이성적 논리와 분석들이 넘쳐나며, 갖은 감성적 조작과 왜곡들이, 쉼없이 ‘生存의 利得’이라는 혼돈 속으로 이끈다. 그러나 참으로 자명한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존속시켜 남북통일을 실현시키며, 故土 滿洲를 수복하는 발전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등을 더욱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릇된 결정을 피할 수 있다. 일본 근대의 사무라이 사상가들을 살피는 까닭 역시 그러하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저 먼 古代로부터 소급하여 韓中日의 관계를 고찰하고 싶지만, 필자가 그러한 작업이 실제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다.
하지만 그저 무관심할 수 없으므로, 우선 현대사회에 결정적 인과관계를 가지는, 일본 근대사회를 우선 살피고자 한다. 일본 근대사회를 대변하는 역사적 사건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메이지유신’이다. 그런 메이지유신을 살핌에 있어, 당시 메이지유신을 주도했던 사무라이 사상가들에 대한 고찰은 필수적이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는, 當時는 물론 현재까지도 일본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인물들이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존재하므로, 여건이 허락한다면 향후 고찰해 나갈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考察로써, 필자는 물론 독자들 역시 적잖은 공부가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본이 단지 배척의 대상일 수만은 없으며, 地政學的으로도 不得已하므로 항상 유념해야만 하는 대상임을 인식케 될 것이다. 韓民族의 東夷文明이 오랑캐의 문명이 아니듯이, 현대의 일본인 역시 倭寇쯤으로나 비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아시아 문명이, 부득이하게 중국문명 중심으로 재단되어버렸지만, 이제는 持難한 事大主義의 굴레를 벗고, 우리 민족의 歷史와 政治를 재정립해만 한다. 慘酷한 植民主義의 굴레 역시 그러하다. 그렇지 않다면, 메이지유신 세력에 의해 소멸해버린 末期 朝鮮王朝나, 한갓 그림자에 불과했던 大韓帝國처럼, 우리 민족의 미래는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메이지유신을 작동시켰던 動力으로서 ‘대동아공영권’ 개념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대동아공영권’과 연합국과의 전쟁 裏面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中國이라는 市場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인가를 받던 중국 시장에 대해, 일본만의 ‘특별한 관계’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들의 잠재적 富의 풍부함을 인식한 미국은, 일본이 중국으로의 수출에 있어서 우위를 갖게 하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일본 제국은, 중국 시장에서의 일본의 공식적인 이점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처음에는 중국을 침략하고, 나중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추진했다. 일본의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에 따르면,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건설에 성공한다면, 지도국으로서 동아시아를 통합할 것이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말은, 일본 제국과 동의어가 될 것이었다.
‘대동아공영권’은,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붕괴했다. 일본은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 反西歐 감정을 활성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대동아공영권’으로서 아시아의 통합을 실현하지 못했다. 결국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상상적 괴물은, 거대한 ‘Great Game’의 場에서, 자기편의 ‘생존의 이득’을 목적하는 泥田鬪狗였다. 그런 것이 국제정치의 실상이다.
실상, 어느 국가공동체라도 覇權國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다. 다만 그것을 실현할 실제적인 여건과 역량이 없을 따름이다. 우리 민족도, 21세기에 이르러, 檀君朝鮮이나 高句麗라는 帝國의 역사를 되살피고 있다.
그 까닭은, 비록 事大主義와 植民主義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자의반타의반으로 은닉되었지만, 미래의 대한민국이 남북통일 후 故土 만주를 수복하고, 옛 신라와 백제의 故土인 중국대륙과 일본열도를 수복하는 것 역시, 반드시 실현코자 하는 국제정치적 욕망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실로 정당한 것이다.(본문 중에서)

대체로 ‘사무라이(侍)’는 일본 封建時代의 武士를 뜻한다. 본래는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의 단어, 시(侍)에서 나온 말로써, 귀인을 경호하는 사람을 가리켰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 일반적인 무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는 ‘로닌(浪人)’이라 불리며, 칼솜씨를 제외한 기술이 없어, 특별한 직업 없이 유랑하거나 걸식하며, 살인청부와 도적질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왕조 말기 乙未事變 당시, 동원되어 閔妃를 살해한 집단이 바로 ‘로닌’이다. 고대 일본에서 浪人이란, 호적에 등록된 본적지에서 떠나, 타국을 유랑하는 사람을 의미하여, ‘후로(浮浪)’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는, 특정한 신분과는 관계 없이,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었다.
이에 대하여 ‘로닌(牢人)’은, 주군의 가문을 잃거나 떠나게 되어, 봉록을 잃게 된 사람을 말한다. ‘낭사’라고 부르기도 하며, 일본 역사상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쳐, 주종 관계를 갖는 무사(武士)와 사무라이(侍)에만 해당하는 좁은 의미의 신분어였다.
-하략-

목차소개

▣ 목차



제1장. 사이고 다카모리
1. ‘사이고 다카모리’와 유신삼걸
2. 하급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
3. ‘토막 운동’을 주도하다
4. ‘삿쵸 동맹’을 맺다
5. 존황양이 사상이 대두되다
6. ‘삿쵸 동맹’ 결성 과정
7. ‘삿쵸 동맹’ 6개 조문
8. ‘삿쵸 동맹’의 참여자들
9. 대정봉환이 실행되다
10. 메이지유신이 시작되다
11. ‘메이지 천황’의 등장
12. 통치제도 개혁
13. 폐번치현, 행정구역 개편
14. 행정제도 개혁
15. 경제적 개혁
16. 종교적 개혁
17. 메이지유신은 조급한 개혁이었다
18. 1등 공신이 된 ‘사이고 다카모리’
19. 정한론을 주장하다
20. 각료들이 정한론을 반대하다
21. ‘가고시마’로 귀향하다
22. ‘세이난 전쟁’ 발발
23. 칼을 빼앗긴 사무라이들의 반란이 이어지다
24. 탄약 제조설비 반출 사건
25. ‘사이고 다카모리’ 암살 계획
26. ‘세이난 전쟁’이 시작되다
27. 양 진영의 지휘관들
28. 양 진영의 전술 무기
29. 전쟁 초기 전투 상황
30. ‘이나리 산’ 전투
31. 칼을 뽑아 백병전을 하다
32. 대규모 포격전을 벌이다
33. 다바루 전투가 시작되다
34. 일시적 휴전상태에 돌입하다
35. ‘다니 산’ 전투
36. ‘구마모토 성’ 포위 작전
37. ‘야쓰시로’ 점령 작전
38. 사쓰마군의 퇴각
39. ‘구마모토 성’ 탈환 작전
40. ‘구마모토’ 전투
41. ‘사이고 다카모리’ 자결하다
42. 사무라이 전략가 ‘사이고 다카모리’
43.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다
44. ‘최고의 사무라이’로서 칭송받다

제2장. 요시다 쇼인
1. 광기의 사무라이 사상가
2. 하급 사무라이 ‘요시다 쇼인’
3. 미일화친조약과 해외유학 시도를 실패하다
4. 옥중에서 ‘유수록’을 저술하다
5. 여전히 작동하는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6. 군사학 교수가 되다
7. ‘규슈’ 주유 여행 중 ‘신론’을 알게 되다
8. 다시 동북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다
9. 탈번 범법자로 전락하다
10. 10년 동안의 여행 허가를 받다
11. 페리 제독의 ‘검은 배’에 충격을 받다
12. 해외 도항의 몽상을 실패하다
13. ‘요시다 쇼인’의 위기의식
14. ‘마나베 아기카츠’ 암살 계획
15. 다시 투옥되다
16. 사형이 집행되다
17. 편지와 단죄서
18. ‘쇼카손쥬쿠’의 교육사상
19. ‘쇼카손쥬쿠’를 열다
20. 사무라이의 완전한 헌신을 주장하다
21. ‘센본사쿠라’와 같은 사무라이의 일생

제3장. 사카모토 료마
1. 사무라이 정치가 ‘료마’
2. 하급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3. 이곳저곳을 떠돌다
4. ‘삿쵸 동맹’을 중재하다
5. 도쿠가와 막부가 몰락하다
6. 대정봉환 이면의 정치적 책략
7. ‘사카모토 료마’ 암살에 대한 여러 소문들
8. 국민적 영웅이 되다
9. ‘료마’가 어린 시절 지진아였다는 소문
10. 일본을 세탁하겠다는 ‘료마’의 선언
11. 새로운 일본의 탄생
12. ‘료마’와 ‘글로버’의 관계
13. 사무라이 사업가 ‘료마’
14. 사무라이로 거듭나다
15. 탈번하여 ‘로닌’이 되다
16. 번국이 아닌 일본국을 구상하다
17. ‘나라사키 료’를 만나다
18. ‘사이고 다카모리’를 만나다
19. ‘가메야마 조합’을 설립하다
20. ‘삿쵸 동맹’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21. ‘글로버 상회’에서 무기를 매입하다
22. ‘선중8책’과 ‘신정부강령8책’
23. ‘사카모토 료마’ 암살 작전
24. ‘료마’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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