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밭

도서정보 : 김상락 | 2023-10-3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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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정밭엔/ 잡초가/ 잘 우거진다// 잡초도/ 사랑으로 가꾸면/ 꽃이 피고/ 벌 나비 춤을 추는/ 꽃밭이 된다// 나는 지금/ 그 밭에/ 내 인생을 가꾸고 있다” 정성과 사랑을 쏟아 벌 나비 춤추는 시의 꽃밭이 되도록 가꾸었다는 김상락 시인의 『묵정밭』이 <문장시인선> 열여덟 번째 시집이다.
“소먹이고/ 꼴 뜯으며 자라나/ 국민학교/ 우등상 받고/ 잘난 척 거들먹거린/ 촌놈// 교복 입고/ 큰 가방 메고/ 중고등학교/ 하이스쿨 자랑하며/ 아는 척 히죽거린/ 촌놈// 중절모 쓰고/ 신사복 입고/ 대학 다니며/ 사랑도 모르면서/ 점잖은 척 청춘을 날려버린/ 촌놈// 하얀 갈꽃 흔들리는/ 이제사/ 초연悄然한 모습으로/ 애월涯月을 바라보는/ 내가 그/ 촌놈”(「회한」 전문)
빼앗긴 나라, 배고프던 어린 시절, 해방, 한국전쟁, 학창시절을 지나, 안동 사범학교, 서울 문리 사대 졸업 후, 교사가 되어 40여 년을 천직으로 봉사한 구순의 자칭 ‘촌놈’ 시인이 써 내려간 애틋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진솔한 단상이 담겼다.

구매가격 : 8,400 원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시인선 202)

도서정보 : 고선경 | 2023-10-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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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구겨진 뒤축 같은 오늘을 딛고
끝내 내일이라는 약속을 지켜내는 이십대의 초상

체념과 무기력만 남은 듯한 세상에 희망이라는 농담을 던지며 자신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는 청년 세대를 그리는 시인, 고선경의 첫번째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를 문학동네시인선 202번으로 출간한다.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할 당시 이문재, 정끝별 시인으로부터 넘치는 “시적 패기”로 써나갈 시의 힘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은 시인은, 이십대의 현실을 핍진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 “무궁무진하고 이상한 미래”로 씩씩하게 걸어나가는 시편들을 선보여왔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오래된 테이프를 재생하듯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 요소들을 배치해 읽는 이를 공감과 향수로 가득한 시세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딴청과도 같은 회상이 끝나고 돌아온 현재는 그러나 지고 또 지는 게임의 연속이다. 시인은 자조적이면서도 능청스러운 유머로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을 비틀고, 미지의 내일에 향기롭고 경쾌한 상상을 덧입힌다. 너머를 상상할 수 있기에 앞으로를 다짐하고, 사랑을 약속하며, 끝없는 소망을 품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편들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꿈으로써 또 한번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우리의 교환일기는 늦여름 더위를 먹고 다 타버렸지

심야 산책중 주운 나뭇잎들과 너의 깨진 안경알 잡동사니 불길한 애정 모든 게 따분해졌는지 몰라 선풍기가 고장난 빈 교실에서 있었던 일 기억해? 그날의 일기에는 귀여운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여두었잖아 너의 펜촉은 유창한 주삿바늘이었어 알록달록한 감정들을 주입했지 통통하게 부푼 마음을 찔릴 때마다 나는 향기로워졌어
_「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버려주시면 됩니다」에서

고선경의 시들은 교환일기를 쓰고 무한궤도와 패닉, 다프트 펑크를 듣던 그리운 한낮의 오후로 시간을 되돌린다. 귀엽고 감미로운 기억의 조각들은 화자와 읽는 이를 노스탤지어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시의 후반부에 이르러 교환일기를 쓰던 화자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되어” 친구의 곁에 누워 있고, 부드러운 바람은 낡아가며 빗방울에는 녹이 슨다. 커져가던 회상을 과감히 떠나보내고 화자는 현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빚 생각에 잠 못 이루는 이십대 청년으로 돌아와 중국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젊음의 모습은 고선경의 시에 없다. 필터 없는 카메라와 에코 없는 마이크처럼 고선경의 시는 날것 그대로의 화소로 어딘가 어설픈 청년의 일상을 포착한다. 그런데 해고를 당해도, 시가 팔리지 않아도 고선경의 화자는 섣불리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조적인 유머로 상황을 비틀고 자신의 처지를 재차 환기한다. 자기를 연민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무게를 정확히 대면하는 패기가 고선경의 시편 곳곳에 어려 있다.

아르바이트를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물을 마시면서
세상에는 야무지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겁니다
쯧, 훈수를 둔 뒤 사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

밤이
방까지 몰고 온 안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나는 빚이 있단 말이야 바보야 빚은
푹신푹신하다
_「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에서

조금만 견디면 더 나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이 시대의 청년들은 어떻게 현재를 견뎌내고 있을까. 고선경은 무궁무진한 상상을 덧입혀 눈앞의 삭막한 풍경을 경쾌하게 바꿔버린다. 잠 못 이루게 만들던 빚은 베개처럼 푹신푹신해지고, 도시는 색색의 비로 젖어들며, 비탈에는 빨간 토마토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이러한 풍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고민은 떠나가고 마음은 가뿐해진다. 비록 실패가 예정되어 있더라도 상상이라는 해방구를 열어두는 자세에서 시대가 아닌 자신을 믿고 다독이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고선경의 핍진한 시선과 발랄한 상상력은 사랑을 말하는 시편들에서 혼합되며 독특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때, 운동화의 구겨진 뒤축은 웃는 표정으로 바뀌어 보인다. 소다수의 기포처럼 연약하고 유한한 것들은 단단해지고 무한해진다. 이제 세상은 그 자체로 견고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현관에 놓인 신발의 구겨진 뒤축이 웃는 표정을 닮았어 너는 침대에 누워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청보리밭에 가고 싶다 멸종된 기억을 가지고 싶다 너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날릴 때 나는 사라진 언어를 이해하게 된다

아침의 어둠이 이젠 익숙해
그래도 같이 씻을까
산책을 갈까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산책로
쓰러진 풍경을 사랑하는 게 우리의 재능이지
_「샤워젤과 소다수」에서

시인 고선경의 재능은 이렇듯 쓰러진 풍경 너머를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때 빛을 발한다. 체념과 무기력에 잠식당하기 쉬운 지금,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고선경의 문장들은 “우리 여기 남아 삶을 더 지속해보자”(해설)고 선언하는 것만 같다. 삶의 무게를 떨쳐내고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딘 청년의 초상이 『샤워젤과 소다수』의 사랑스러운 향기를 따라 그려지는 듯하다.

구매가격 : 8,400 원

들국화

도서정보 : 이선희 | 2023-10-2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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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으로 바라다 본 세계, 가질 수 없는 게 많아서 눈물 뿐
하지만 들국화는 야생에서 여성성과 남성성과 중성성으로 모든 헤게모니에세 주도귄을 얻는다 그런 삶. 그런 글들!

구매가격 : 6,000 원

하늘빛 평화 담은 소녀

도서정보 : 허다엘 | 2023-10-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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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어린 시절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미술 대회에서
‘평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대요

2등은
비 온 뒤 무지개가 뜨고
화창한 봄날을
그림으로 표현했지요

그런데 1등은,
비바람이 치는 숲속에서
한 쌍의 새가
바위 틈새에서
비를 피하는 풍경을
그렸더래요

진정한 평화란
그런 것이었던 거죠
모든 것이 평온해서가 아닌,
폭풍 속에서도 짝과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그늘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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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던진다

도서정보 : 정득용 | 2023-10-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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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살아보는 오늘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 봅니다.
사유의 깊이 부족하고
유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지않은 겨울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나를 관통하기도 하고 비켜 가기도 한
빈곤함을 무릅쓴 이번 이야기도
웃음 많은 아내에게 보냅니다.

구매가격 : 6,000 원

좁고 가파른 층층대

도서정보 : 백만섭 | 2023-10-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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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투명한 언어로
마지막 장을 채우려
좁고 가파른 층층대를
올라 보려 합니다.

구매가격 : 7,200 원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문학동네시인선 201)

도서정보 : 한여진 | 2023-10-19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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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고요하고 둥글게 모든 것을 감싸안는
부드럽고 단단한 순백의 힘

문학동네시인선 201번으로 한여진 시인의 첫번째 시집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를 펴낸다. 2019년 문학동네신인상을 통해 “앞 연에서 예고한 바 없이 다음 연에서 펼쳐내는 세상이 크고도 희고도 맑”으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시인 김민정), “미움이나 슬픔 따위가 사라진 ‘텅 빈 구멍’을 끈기 있게 들여다”보는 “이 시인에게 무척 믿음이” 가고 “벌써 우정을 느낀다”(시인 진은영), “다양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가진 시인의 탄생을 예감할 수 있었다”(시인 황인찬)라는 평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시 48편을 골라 엮었다. 그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박준)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이원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고명재) 등 신선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를 지닌 새로운 시인을 소개하는 데 집중해온 문학동네시인선의 200번대를 여는 시집이기에 더욱 뜻깊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말랑한 것들, 역사가 아닌 것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내가 나일 수 없던 것들, 그것들에게 이름 붙여주는 일을 하겠다고”(「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 다짐한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고 둥글”(「검은 절 하얀 꿈」)어 일견 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편편의 시들은 그 유연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힘임을 확인케 한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낸 두부처럼, 부드럽게 내려와 모든 것을 감싸안는 순백의 눈처럼 희고 고요한 힘을 지닌 시가 여기 도착했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_「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에서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라는 제목과 새하얀 표지가 건네는 첫 느낌대로 한여진의 시에서는 유독 흰색이 도드라진다. 표제작을 포함해 여러 시의 배경이 하얀 눈으로 가득한 겨울날인데다 양(「어떤 공동체」)과 흰고래(「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밤은 없고」)부터 순무(「순무는 순무로서만」), 밀가루 반죽(「미선의 반죽」), 그리고 “하얀 문”(「검은 절 하얀 꿈」)까지 주요 이미지가 온통 하얀 까닭이다. 이 넉넉한 흰빛은 시집 전체를 눈 덮인 세상과도 같은 고요한 아름다움 속에 자리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처럼 시집의 고즈넉한 정경에 힘을 실어주는 흰색은 한여진의 화자와 만나 또다른 사유를 가능케 한다. 그것은 바로 흰색이 무언가를 써내려갈 수 있는 하얀 종이의 모습으로 드러나면서다.

검은 솥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채워도 넘치지 않는 검은 물이 있다 그 속엔 대체 무엇이 있길래 솥은 한없이 검은가 나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쓰지 않는다 솥이 없는 하루에 대해 쓴다 솥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쓴다 마당을 둘러싼 담장 밖에 대해 쓴다 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이모와 언니가 아닌 것들에 대해 쓴다

_「솥」에서


신촌 골목길을 걸으며 네가 해준 이야기
누군가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을 울더니 소설로 쓰겠다고 했다

너는 희미하게 웃었고
사실은 말야, 나도 뭔가를 쓰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때 기차가 굉장한 소음을 내며 지나갔다

_「소설처럼」에서


앞서 인용한 시편들에서 알 수 있듯 한여진 시의 화자는 많은 경우 ‘쓰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의 쓰기는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 누군가가 그것을 “소설로 쓰겠다고” 선언하는 동안 ‘나’는 “나도 뭔가를 쓰는 중이라고” 말하지 못한다(「소설처럼」). 방금 전까지 선명했던 꿈은 “글로 옮기는 순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게 되고(「초기화」), 완성한 줄 알았던 글은 어느 순간 ‘초기화’되어 ‘나’는 “눈을 뜨면 다시 빈 노트 앞”에 있다(「초기화」).

서사를 지닌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하는 한여진의 시들을 따라가다보면 우리는 몇몇 힌트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솥뚜껑에 맞아 죽은 ‘나’의 이모와 솥 아래서 불타 죽은 ‘나’의 언니(「솥」), 그리고 영동고속도로에서 트럭 전복 사고로 죽은 ‘나’의 삼촌(「영동고속도로 끝에는 미래가」)을 통해,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맞이한 ‘결말’을 통해서다.

한여진의 화자에게 있어 기록은 일어난 일을 고정시켜버리는 행위인 듯하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유일한 결말”(「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를 고정시키지 않기 위해 화자가 택하는 것이 바로 ‘다시 쓰기’이다. 그는 하얀 종이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 글씨를 다시금 하얗게 덮어버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흰색 위에 또다시 새롭게 쓴다.

“해피 엔딩은 믿을 수가 없”(「미선의 생활」)다던 미선 언니는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실로 두려운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막막한 현실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다 사라진 채로 너절하게 모습을 드러낸 미래가 아닐까. 그렇기에 시인은 과거의 기억들을 붙잡고 닫힌 엔딩을 거부한 채 초기화된 첫 문장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려는 것 같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해설에서

그러니 ‘미선 언니’가 ‘해피 엔딩’을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일 테다. 문학평론가 조대한이 짚어 보였듯 그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닫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여진의 화자는 이미 쓴 종이 위에 계속해서 흰색을 덧입히고 또 덧입히며 끊임없이 미래를 다시 써낸다. “계속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남은 하얀 반죽만이 우주가 될 수도 있고 이불보가 될 수도 있으며 천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얻으므로(「미선의 반죽」).

내가 숨쉴 수 없는 공간인 줄도 모르고 공허와 폐허인 줄도 모르고
다른 건 배운 적 없는 나는 그런 세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

눈을 뜬다 숲속에 앉아 있다 고요하지만 살아 있는 것들로 가득한 숲 안경원숭이 비단고사리 하늘말나리 소사나무 코럴블루 양떼구름 새털구름 이런 이름 말고도 그들에겐 다른 이름들이 있을 것이다 진짜 이름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나에게도 나만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이 있다고 하면 보지 않을래?

숲의 경계선에 서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본다 오래된 길
하지만 오랫동안 인적이 없던 길
손에 불씨를 들고

그리고 생각한다 말랑한 것들, 역사가 아닌 것들, 기록되지 못한 것들, 내가 나일 수 없던 것들, 그것들에게 이름 붙여주는 일을 하겠다고 그리고 오래 살았다는 남자를 찾아가 그에게 손을 내밀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의 이름을 지어주게 될 나의 미래를

_「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에서

그렇게 한여진의 화자가 다시 쓰고자 하는 미래는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화자는 “오래 살았다는 남자”가 만들어놓은 “내가 숨쉴 수 없”는 세계 위에 “남자 아닌 여자/ 아닌 여자/ 아닌 여자”들도 숨쉴 수 있는 세계를 세우겠다고(같은 시), 오늘 현장에서 죽은 동료의 이름을 기억하고(「기호와 소음」) 끝없이 총성이 울리는 곳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써내려가겠다고 말한다.

잊혀진 기억의 실마리를 끈질기게 붙들고 미처 기록되지 못한 자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려는 한여진 시인이야말로 무명의 위 세대들이 남긴 유산의 정당한 계승자일 것이다. 그 미래와 과거가 충돌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존재들과 실패한 기억의 흔적 위에서, “내가 잊어버린 것”과 “네가 잊어버린 것// 사이의 간격”(「초기화」) 너머에서, “지나간 기록에 대한 기록”과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들”(「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이 겹쳐지는 바로 그곳에서 시인의 시는 시작되는 것 같다. _조대한(문학평론가), 해설에서

그러므로 조용하고 둥근, 아름다운 흰빛을 연상케 하는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검은 절 하얀 꿈」 「밤 친구」 「나이트 사파리」 같은 시편들에서부터 시작해 여성주의적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는 「솥」 「캐넌」 「제목 없는 나의 노래와 시와 그림과 소설」과 ‘미선 언니’ 연작, 시사적인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팔레스타인에서」 「화염」 「Beauty and Terror」 「혁명과 소음」 등의 작품들까지 경유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가 지닌 흰색이 마냥 무구하고 투명한 빛깔이 아니라 다양한 색과 “공허와 폐허”마저 모두 감싸안은, 부드럽고도 강인한 눈과 같은 빛깔임을 알 수 있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내리고 두부는 평화롭게 구워지고 있는 가운데 다시 마주한 빈 노트 앞에서(「초기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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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막여우

도서정보 : 강현국 | 2023-10-1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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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상은 사진과 그림의 경계에 있고, 그의 문장은 산문과 시의 경계에 있다. 두 경계가 만나서 펼쳐 보이는 그의 디카시는 형식부터 낯설고 불온하다. 디카시에도 고전과 전위가 있다면, 강현국의 디카시는 단연코 전위이다. 전위는 기교가 아니라 정신이다. 기성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새로움에 대한 지독한 갈증이 전위를 만든다. 그래서 이 디카시집은 어디까지가 디카시이고 어디서부터 디카시가 아닌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 물음은 단단하고 날카롭게 우리의 자동화된 인식을 충격하고 디카시에 대한 느슨한 믿음을 가격한다. 디카시는 편안하고 만만한 장르라고 여겼던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 혼란스러움이 우리 디카시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거라고 믿는다.

-김남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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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나종혁 시집

도서정보 : 나종혁 | 2023-10-15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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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집 [발라의 아침]에 이어서 나종혁의 열두 번째 시집이다. 주지주의적이거나 철학적인 시들이 있고, 시의 길이도 길어지고 있다. 국역시에는 최치원, 나계종,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등이 수록되었다. 부록에서는 이 시집의 대표작 ‘하나가’의 산문 형식인 ‘완전한 지식은 무엇인가’가 첨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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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피는 언덕

도서정보 : 곽기용 | 2023-10-13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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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사 시선 408, 곽기용 시집

<<시인의 말 중에서>>
시집 “바람꽃 피는 언덕”을 펴내며

청춘의 하루를 열어가던 설렘은 어느새 일흔이 넘는 노을빛에 물들어서 그림자 하나둘 주워 담아 언제나 덤 살이 하는 가슴과 허물 벗는 마음으로 정성껏 이음 하여 시집 “바람꽃 피는 언덕”을 펴냅니다.

모르는 듯 아는 듯 머물다 가는 하룻길
두렵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는 삶 자락 중 하루를 긍정과 희망의 시선으로 감사하는 조건들만 되새김하면서 스스로와 호흡하다 보면 비로소 보이는 여유는 따뜻한 사랑의 불씨를 지펴 좌절의 시련도 행운의 기회로 그물망 펴는 어부의 설렘으로 바뀌는 긍정의 힘을 믿게 합니다.

구매가격 : 8,4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