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조실록2

도서정보 : 이희진 | 2016-05-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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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왜곡과 조작 속에서 잊혀간
화려하고 찬란했던 동방의 강국
백제 700년 역사의 진실을 재조명한다!

백제는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였는가

흔히 역사 기록과 일반적인 인식은 백제를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였다고 결론지어놓고 그 이유를 찾는 데 골몰한다. 그리고 그 원흉으로 의자왕을 지목한다. 이것은 과연 진실일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의자왕 때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백제가 혼란스러웠다거나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의자왕이 자만심에 빠져 독선적인 정국 운영으로 위기를 자초했다는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 나당 연합군의 침공에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막아야 한다는 충신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점을 그 대표 사례로 지목하고 있으나 정작 백강에는 백제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계백이 이끈 부대도 결사대로 보기 어렵다. 당시 5,000명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으며, 이 부대는 철수 후 백강 방면에 재투입되었다. 결국 백제의 실질적인 멸망은 당이 주둔군 철수를 고려할 정도로 강성했던 백제 부흥운동이 부흥군 내부의 분열로 종말을 고한 그 시점이라고 봐야 한다.
백제는 고구려가 광개토왕비에서 ‘백잔(百殘)’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강한 증오심을 표출할 만큼 강성한 나라였다. 고대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맞선 나라 백제. 이 책은 그 역사적 진실을 복원하고자 하는 소중한 시도다.

구매가격 : 4,800 원

경주에 전해오는 옛 전설 60가지

도서정보 : 박관수 | 2016-02-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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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전해오는 옛 전설 60가지』는 원제 ‘신라 고도 경주 부근 전설’로 신라 천 년의 숨결이 녹아있는 옛 ‘서라벌’ 경주를 바탕으로 화려하고 찬란했던 문화의 많은 전설과 구전설화 중에서 60가지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의 기행답사기를 포함하여 당시 신라 고적의 과거 발자취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돌이켜 보고 역사의 유물·유적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새롭게 되새겨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학생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구매가격 : 7,000 원

고구려왕조실록1

도서정보 : 이희진 | 2016-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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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작 동명성왕(주몽)부터
최대 영토로 전성기를 누렸던 광개토왕까지

부여에서 갈려 나온 고구려는 점차 세력을 키워, 나중에는 자신의 기원이었던 부여까지 흡수하며 팽창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주변의 작은 세력은 물론, 대제국 한(漢)의 군현(郡縣)까지 흡수해버렸다. 고구려가 이렇게 팽창하면서 중원 제국과 갈등이 깊어졌다. 유교 원리주의를 실현하려던 왕망(王莽)의 신(新), 군현을 잃어버린 후한(後漢) 등 중국 역사 초기의 제국들은 고구려와 심한 분쟁을 벌였다. 고구려는 이들 중원 제국에 형식적으로는 사대의 예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래서 중원 제국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

후한이 멸망하고 중원이 분열되자, 고구려는 이들의 대립을 이용해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려 했다. 특히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는 화북의 패자(覇者) 북위(北魏)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중원에서 북위와 경쟁하던 남조(南朝)에 조공 사절을 보내며 조공의 원칙과 다른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남방 세력 가운데 고구려에 가장 위협을 주었던 세력은 백제였다. 광개토왕 즉위 다음해부터 백제와의 충돌이 잦았는데, 이를 어떻게 반격하고 진압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정리되어 있다.

구매가격 : 4,800 원

고구려왕조실록2

도서정보 : 이희진 | 2016-01-3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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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남방정책을 펴린 장수왕에서부터
최후의 왕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역사에서 고구려의 영향은 비단 중원 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남방의 백제·신라·가야·왜 등도 고구려의 동향에 크게 영향을 받아 움직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구려에서 갈려 나간 백제가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그 원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고구려가 팽창하며 주변의 세력들을 흡수해버리며 백제와의 완충 지대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갈등은 백제뿐 아니라, 신라와 가야에 바다 건너 왜의 역사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줄 단초가 되었다. 특히 4세기 중반에서 5세기까지는 고구려와 백제의 갈등에 신라·가야·왜가 말려드는 양상으로 역사가 흘러갔다.

5세기 초 광개토왕 대에는 고구려가 북방의 후연을 비롯한 부여·숙신·거란·비려 등과 남방의 백제·신라·가야·왜 등의 주변 세력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시기다. 이대 광개토왕은 적대적인 세력을 격파하고 일부 세력은 세력권으로 흡수했다. 뒤를 이은 장수왕은 남방에서 고구려에 저항하던 세력의 핵심인 백제를 계속 압박해 결국 수도를 옮겨야 할 정도의 타격을 주었다.

수(隨)를 이어 당(唐) 제국과는 한동안 평화적인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충돌이 일어났다. 신라와 연합해 감행한 당 고종 때의 침공은 고구려 내의 심화된 분쟁 때문에 극복하지 못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다 결국 발해 왕조가 세워지며 중원 제국과는 이질적인 체제가 유지되었다.

구매가격 : 4,800 원

백제를 세우고 백제를 지우다, 견훤

도서정보 : 김동인 | 2015-08-1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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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사나이 견훤의 한판 복수극, 김동인은 견훤이 신라의 경애왕을 살해한 것을 통쾌함으로 기록한다.

927년 견훤은 실제로 신라의 수도 경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애왕조에 “훤은 왕을 핍박하여 자진(自盡)하게 하고 왕비를 강음(强淫)하고, 부하로 그 비첩(妃妾)들을 난통케 하고...”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역사는 쇠약해진 신라가 고려 왕건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자, 견훤이 이에 불안을 느끼고 신라에 응징한 것이라 하지만 김동인은 이 사건을 견훤 평생의 숙원으로 연결시킨다.
즉 견훤을 “백제 의자왕의 제10대손”으로 묘사해 의자왕이 당했던 그 수모를 경애왕한테 그대로 복수하는 것으로 소설의 흐름을 잡아간다. 삼국사기에 있는 내용대로 그 비첩들을 짓밟는 만행을 저지른 것은 견훤이 삼천궁녀의 치욕을 씻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당시 일본의 나라 침탈을 슬프게만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적극적으로 복수를 하자는 강렬한 의지를 담은 소설이라 하겠다.

구매가격 : 3,000 원

바실라

도서정보 : 정명섭 | 2015-07-0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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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잃고 신라까지 쫓겨 온 페르시아 왕자
전쟁으로 얼룩진 그에게 다가온 운명의 연인 신라 공주!
그들이 들려주는 천 년 전 페르시아와 신라 이야기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쉬나메]에서 신라 이야기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신라’를 뜻하는 ‘바실라’가 등장하고,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중국과 전쟁을 치르고 쿠쉬를 무찌르며, 신라 왕 태후르의 딸 프라랑 공주와 혼인하여 훗날 페르시아를 구하는 영웅 페리둔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를 모티브로 하여 소설 《바실라》가 탄생했다. 나라를 잃고 아랍인의 왕 쿠쉬를 피해 신라로 쫓겨 온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 삼국 통일 전쟁이 한참이었던 시기, 아비틴은 김유신의 둘째 아들이자 신라의 화랑 원술과 힘을 합해 삼국 통일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실제 역사의 한 장면인 석문 전투, 나당 전쟁 등을 소설의 배경으로 삽입하여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창작을 적절히 섞어 재미를 더했다. 한편 사랑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는데, 문무왕의 막내딸로 등장하는 은석 공주는 아비틴의 운명의 연인인 프라랑으로 그려지며 국경과 인종을 넘나든 사랑을 보여 준다.
이 책은 7세기 중엽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관계가 어떠했는지도 놓치지 않고 보여 준다. 아비틴과 프라랑은 부부의 인연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는데,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신라공주와 혼인을 한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개방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글로벌한 신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비틴과 프라랑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문천교와 아비틴과 원술, 문무왕이 한 데 모여 연회를 펼치는 포석정 등의 역사적 장소는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한층 자극한다. 더불어 페르시아군과 신라군이 대결을 펼치는 격구 경기, 아비틴이 음진대소(술잔을 비우고 크게 웃기)를 따라하는 모습 등은 두 나라의 문화 융합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가 [쿠쉬나메]를 처음 접하고 《바실라》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작가는 [쿠쉬나메]를 발굴하여 한국어로 번역한 이희수 교수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원전을 충분히 파악한 후, 창작을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사랑, 전쟁, 승리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며 신라와 페르시아의 문화가 어떻게 어우러졌고, 그들이 역사와 문화 속에 남긴 자취를 알아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구매가격 : 6,000 원

역사 속의 문무왕

도서정보 : 편집부 | 2015-06-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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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문무왕』은 역대 신라의 제30대 임금이며 삼국을 통일한 인물로, 그의 일대기에서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과정 및 곡절, 외세와 굳건한 지배체제 속에 당나라를 몰아내고 죽기 전까지 호국의 염원을 간절히 염원했던 대왕암의 전설과 더불어 역사 속에 이야기를 담은 교양서이다.

구매가격 : 5,000 원

한국문학전집 128 삼국사기 백제본기

도서정보 : 김부식 | 2015-05-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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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의 역사서다. 우리는 우리 고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긍정과 부정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를 연구 할수밖에 없다. 우리 고대 사서의 소멸로 인하여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서로는 삼국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가슴 찌뿌등하고 답답함을 느낀다.자신의 나라를 비하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고구려 백제는 폄하하고 신라는 높이면서 편중되어 있다.본기 곳곳에 기술한 저자의 견해는 김부식의 사상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며 과연 김부식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럽다.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본다고는 하나 너무 심하다.혹자는 그렇게 썼기 때문에 삼국사기가 오늘날 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현실적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이나라 역사 왜곡의 단초를 삼국사기가 제공했다는걸 생각하면 차라리 없었던 편이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면 다른 사서들이 존재 했을 것이고 역사 왜곡 또한 그리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삼국사기를 이유로 다른 사서들이 모두 멸실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반도 구석으로 몰아넣어 몸과 마음을 작은 나라에 약소국민으로 전락시켜 버려 사대주의가 당연시되는 관념의 틀을 고정시켜 버렸다.발해 멸망이후 1 000년동안 북벌을 주장한 사람은 묘청과 효종 두사람 뿐이다(TV 드라마 왕건에 나오던 궁예도 있었다).정신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고토회복의 기치는 고사하고 감히 중국을 넘본단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구매가격 : 2,000 원

한국문학전집 127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도서정보 : 김부식 | 2015-05-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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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는 고려 인종 23년(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의 역사서다. 우리는 우리 고대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긍정과 부정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삼국사기를 연구 할수밖에 없다. 우리 고대 사서의 소멸로 인하여 삼국시대의 정사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서로는 삼국사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가슴 찌뿌등하고 답답함을 느낀다.자신의 나라를 비하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고구려 백제는 폄하하고 신라는 높이면서 편중되어 있다.본기 곳곳에 기술한 저자의 견해는 김부식의 사상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며 과연 김부식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럽다.아무리 중국의 눈치를 본다고는 하나 너무 심하다.혹자는 그렇게 썼기 때문에 삼국사기가 오늘날 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현실적으로 보면 그럴수도 있겠다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이나라 역사 왜곡의 단초를 삼국사기가 제공했다는걸 생각하면 차라리 없었던 편이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면 다른 사서들이 존재 했을 것이고 역사 왜곡 또한 그리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삼국사기를 이유로 다른 사서들이 모두 멸실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하면 용맹스럽고 지혜로운 우리민족의 얼과 혼을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반도 구석으로 몰아넣어 몸과 마음을 작은 나라에 약소국민으로 전락시켜 버려 사대주의가 당연시되는 관념의 틀을 고정시켜 버렸다.발해 멸망이후 1 000년동안 북벌을 주장한 사람은 묘청과 효종 두사람 뿐이다(TV 드라마 왕건에 나오던 궁예도 있었다).정신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고토회복의 기치는 고사하고 감히 중국을 넘본단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구매가격 : 2,000 원

한국문학전집 126 삼국사기 신라본기

도서정보 : 김부식 | 2015-05-1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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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三國史記)는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이 1145년(인종 23)에 완성한 삼국시대사이다. 현존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서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정치적 흥망 변천을 주로 기술한 정사체(正史體)의 역사서이다. 1970년 옥산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 대한민국의 보물 525호로 지정되었다. 그밖에 1981년 조병순 소장 영본(零本)과 경주부간본(慶州府刊本)이 각각 보물 722호 723호로 지정되었다. 보물 525호와 723호가 유일한 완본으로 현전하며 722호는 1책 44~50권이 전해진다.

구매가격 : 2,0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