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민이언 | 다반 | 2019년 04월 30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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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이런 무책임하고 못된 사람들이 교육을 말하고 학교를 말할 때는 또 입에 거품을 물고서 나댄다. 그러면서도 주일마다 꼬박꼬박 성당에 나간다고 한다. 양심도 없는 노인네가 또 천국엔 가고 싶은지…. 세례명이 아마 도베르만일 것이다. 이런 개새끼!
-p.49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까불며 살지 말자’라는 각성과 반성이 찾아든 때가…. 그 시절에 함께 일탈과 방황을 일삼던 다른 많은 친구들에게도 그 사건은 하나의 계기였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은…. 친구의 죽음이란 너무도 혹독한 댓가를 치루고서야 조금은 어른이 될 수가 있었다. 녀석은 그렇듯 온몸으로 부딪혀 우리를 깨우치고 떠나갔다.
-p.103
그전까지는 다른 반을 찾아가 운동부 친구들과 떠들다 오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없는 쉬는 시간에 누구와 떠들어야 할지를 몰라서, 쉬는 시간 내내 자는 척을 했다. 졸리지도 않은데,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데, 눈을 감고 엎드린 책상에 거친 숨으로 맺히는 습기만이 나와 함께했다. 학교의 점심시간이 그렇게 길었는지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p.140
중삐리, 고삐리들처럼 놀이터의 조성 목적과 이념을 잘 실현하는 나이대도 없다. 애들 놀라고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 왜 지들이 죽치고 앉아 "놀고" 있는지…. 철봉과 그네에 붉은 노을이 와 닿을 즈음부터, 그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p.150

이제 가끔씩이나 얼굴을 보는 어릴 적 친구 놈들이 그렇게 애틋하다. 언젠가 내 곁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함께 보고 들었던 사람들, 그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멀어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이들. 정수가 아쉬움 속으로 멀어져 간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싣고 떠나는 듯하다. 이젠 그 시간들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면서…. 그나저나 저 놈이 말하는 본사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일까?
-p.207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늦지는 않았을까? 조급한 마음으로 달려간, 핸드폰 액정에 찍힌 주소의 마을. 지어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임대 아파트 옥상에 누군가가 서 있다. 이 아파트 옥상이 몇 층인지, 이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냥 계단을 뛰어 오르는 중이다. 나는 종교가 없다. 기도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늘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절실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신은 아니다.
‘제발! 도와줘.’
-p.248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서 마흔 세 번이나 해가 지던 날을 회상하면서 말한다. 누구든 깊은 슬픔에 잠기면 노을을 사랑하게 된다고…. 세상사람 모두가 슬픔과 노을의 상관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내게 노을진 풍경은 슬픔의 심상이다. 그것을 하루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는, 더디 가는 이 지구에서의 시간들은 더 큰 슬픔이다. 지평선으로 져가는 붉은 노을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그 너머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매일같이 추억하고 있다. 하늘 끝으로 사라져가는 수많은 붉은 노을들을 떠나보낸 후에, 붉은 노을이 되어 사라져간 그녀가 다시 그 붉은 노을과 함께 나타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p.260

저자소개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니체의 잠언집 하나로 인해
철학의 길을 걷게 된, 니체를 사랑하는 한문학도.
그리고
소설이 쓰고 싶어서 철학의 길을 둘러온,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좋아하는 문학도.

젊은 인문학 님프들과 함께
인문 프로젝트 ‘디오니소스’를 진행 중이다.

목차소개

붉은 노을
작가의 말 - 리턴, 에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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