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허균 | 유페이퍼 | 2013년 01월 2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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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박종현의 실존 홍길동연구(1986)에 의하면 홍길동은 홍상직(남양홍씨)의 서자로 어머니는 관기 옥영향(玉英香[3]이고 1443년 출생하였고 1510년에 사망하였다. 홍상직은 아들 셋을 두었는 데 귀동 일동 길동이었다. 귀동과 일동은 정처 남평문씨 소생이다. 홍길동은 처음에는 충주일대에서 활약했다. 홍길동은 버젓이 당상관의 차림으로 무리를 이끌고 관아에 들어갔으며 그 기세에 눌려 지방 관아에도 깍듯이 존대하였다고 한다. 산 속에 들어가 근거지를 두고 활동한 흔적은 없으며 지방의 권농이나 이정 유향소의 좌수 별감등도 알아볼 정도였다. 그 위세가 일반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실록에 홍길동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정승이 연산군에게 홍길동이 잡혔다는 보고를 하는 연산군 6년(1500년)의 기사이다. 영의정 한치형(韓致亨)·좌의정 성준(成俊)·우의정 이극균(李克均)이 아뢰기를 "듣건대 강도 홍길동(洪吉同)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 시기에 그 무리들을 다 잡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좇았다.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연산 6년 명 홍치 13년 홍길동은 정3품 당상관인 첨지중추부사를 자칭하며 무리를 이끌고 관가에 들어가 기탄없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조정은 홍길동에게 강상죄를 적용하였다. 조정은 홍길동의 이러한 행동이 지방 관리와 유향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해를 넘긴 1501년까지 관련자를 잡아 국문하였다. 홍길동을 도운 죄로 잡힌 지방 관리 엄귀순은 끝까지 국문에 승복하지 않았으며 옥사하였다.[2] 또한 이에 연루된 권농 이정과 같은 지방 관리들을 변방으로 귀양보냈다.

저자소개

홍길동은 조선 시대 지배층과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건으로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거론될 정도였다. 허균은 조선 시대의 불합리한 서얼 차별과 백성에 대한 가혹한 수취 국방에 대한 부실 등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국왕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백성이라 역설하였다. 허균은 백성을 현실에 순응하는 항민 불만이 쌓인 원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서는 호민으로 나누었으며 홍길동을 호민의 대표로 형상화하여 홍길동전을 지었다.

목차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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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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