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래

도서정보 : 슬라보예 지젝, 김우창, 뚜웨이밍, 메리 에블린 터커, 쑨 거, 어빈 라슬로 | 2017-10-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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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첫 세대가 될 것인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




◎ 도서 소개

인공지능의 승리, 난민과 지역 분쟁, 종교 갈등, 기후 변화…
문명전환의 시대, 재앙인가 기회인가?

동서양 대표 지성이 진단한 인류의 위기와 실천적 대안

인간과 인공지능의 세기적 대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난민과 지역 분쟁, 종교 갈등, 기후 변화, 그리고 국가 권력의 재편성 등 격동과 이변으로 기록된 지난 세계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물음을 던진다. 이에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는 대중 강연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를 통해 시대적 의식 전환을 위한 실천에 앞장섰고, 세계 각국 석학과 함께한 그 역동적 숙고의 시간이 마침내 책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에서 슬라보예 지젝, 메리 에블린 터커, 뚜웨이밍, 어빈 라슬로, 쑨거, 김우창은 편향된 시각에서 벗어난 통합적 시선을 통해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을 넘어 지구시민의 자세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사고를 회복함으로써 비로소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를 연결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흐름에도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열린 사고로의 전환과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통해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한 미래를 우리 모두에게 제시한다.




◎ 출판사 서평

인간 중심의 물질 시대에서 공존하는 열린 시대로
인간 너머의 가치를 회복하다!

시대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향한 노력은 세계사적 전환의 한가운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주어진 과제다. 이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마련된 플라톤 아카데미 대중 강연 ‘문명전환과 아시아의 미래’에서 철학, 생태, 정치, 과학, 종교 등 각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장된 시각을 통해 국제적 차원의 문제의식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의 성찰이 더 깊은 숙고를 거쳐 책으로 재탄생했다.
분열과 통합, 문명과 자연, 자유와 절제라는 세계사적 대립 앞에서 기록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유교의 가치와 연대가 서양 철학과 기독교 정신, 정치 사회적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으며 결국 동양과 서양이 따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나와 너,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 지구와 우주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 만물과 사상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통합적 사상과 시선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역사의 다음 장을 이어갈 수 있는 마지막 대안인 것이다.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문명의 내일,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모인 세계적인 석학 6인은 국가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통합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담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
제1부에서는 학문과 종교적 사상이 어떻게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 속에 적용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넓은 의미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삶을 존중하는 태도와 앎의 의미를 확장시킨 김우창, 유교와 기독교 사상을 통해 인간과 지구, 우주를 유기체적으로 연결한 메리 에블린 터커, 고립된 개인이 아닌 인간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한 유교의 영적 휴머니즘을 제안한 뚜웨이밍을 통해 특정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사상의 확장성을 경험하게 된다.
제2부에서는 세계의 공동체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사고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사회 체제가 가진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정치 경제적 대안을 제시한 슬라보예 지젝, 인류를 지구라는 우주선의 탑승자로 명명하며 지구 생태계를 전체론적 관점을 통해 바라볼 것을 강조한 어빈 라슬로, 개별성을 훼손하는 보편성에서 탈피해 각자의 특수성과 연대를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의 평행 이동하는 보편성을 주장한 쑨 거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통합적 사고를 회복한다.
인간과 지구, 그리고 우주까지 포함하는 확장된 시야에는 인문학적 가치가 인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으며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고민하도록 이끈다.


◎ 본문 중에서

이성적 사고란 단지 정보를 많이 모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신중하게 하고 대상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27~28쪽)

이성적인 추구에도 윤리적인 성격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윤리적 성격을 띠기 때문입니다. (43쪽)

윤리적 결단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대할 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결단과 선택의 순간에 놓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주체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윤리적 결단을 위해서는 바로 이 주체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44쪽)

유교는 단순한 윤리나 정치철학, 이념 체계가 아닙니다. 서양의 전통과는 다른 심오한 영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유교는 인간의 상호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세계 그리고 우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사상입니다. (63쪽)

유교에서의 인간은 우주적인 존재이지 인간 중심적인 개인이 아닙니다. 인간을 대우주와 관련한 소우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주와 지구, 인간이 세 개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67쪽)

우주로의 지향성은 곧 인간 정체성의 기초입니다. 고유의 의식을 가진 인간은 우주가 진화하는 과정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탄생한 중심적인 존재이며, 우주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76~77쪽)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생각 너머에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존재의 핵심인 ‘소중한’ 지구 말입니다. 소중한 지구라는 개념으로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106쪽)

휴머니즘은 인간성의 표현이면서 인간을 초월한 우주적인 과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참여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112쪽)

생산에 집중한 전통적인 사회에서의 자연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무한한 배경이었습니다. (…) 환경이 오염되어도 거대한 자연이 알아서 정화시키겠지 하며 그냥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한 게임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자연은 더 이상 그러한 작용을 할 수 없습니다. (147~148쪽)

자연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우리 자신의 유한성을 인지해야 합니다. 자연은 결코 무한한 배경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아주 취약한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강하다고 느끼며 지구를 정복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태롭게 만듭니다. (151쪽)

오늘날과 같이 열린 상황에서는 여러 옵션 중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릅니다. 새로운 자유와 가능성, 새로운 복종과 지배, 새로운 고통과 같은 열린 가능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새로운 기회가 열리기 마련이니까요. (163쪽)

우리는 지구 생태계라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일부분입니다. 이러한 소속감을 망각하면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구 우주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우주선 안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175쪽)

우리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 즉 지구에서 새로 시작된 인류세의 첫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이 지구 우주선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새로운 시대의 첫 세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194쪽)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 우주선의 가족 구성원입니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한 가족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200쪽)

새로운 보편성은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위치하며, 평행 이동하는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보편성은 다양한 특수성 사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특수성 위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을 최상위 가치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뒤집을 필요가 있습니다. (230쪽)

보편성의 기능은 무엇일까요? 우선 각기 다른 특수성 사이에서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상호 이해란 각자의 특수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특수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231쪽)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개방 그리고 타인과의 연대 추구입니다. 그 연대는 특수성과 개별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특수성을 충분히 살리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보편성이란 서로 다른 특수성을 연계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매개체를 통해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가 아닌 인류 전체에 행복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240~241쪽)

구매가격 : 12,800 원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도서정보 : 이언 모리스 | 2017-10-2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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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급격히 부상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재의 상황은 마치 서양의 종말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와 더불어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여 년간 서양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인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이에 대한 답변을 온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그가 고안해 낸 ´사회발전지수´에 따라 재구성한 동양과 서양의 문명사는, 역사의 패턴과 문명의 법칙을 참신한 방식으로 통찰한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온 권력은 ´물리적 지리´에서부터 비롯되며, 앞으로 다가올 22세기는 동양의 시대가 될 것이다.『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오랜 시간 경쟁해 온 동서양 문명을 광범위한 지식과 명쾌한 논리로 비교·분석한 최초의 통합적 역사 이론서이다.

구매가격 : 31,500 원

메디치 가문 이야기

도서정보 : G.F. 영 | 2017-10-20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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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물은 역사를 이끌지만, 위대한 가문은 역사를 만든다.

우리는 보통 위대한 인물이 역사를 뒤바꾼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주도하는 것은 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업적을 칭송하며, 그들의 유산들을 통해 여러 유익을 누린다. 그렇다. 시대마다 위인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분명 역사를 견인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그를 뒷받침하는 위대한 가문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갈릴레오, 다 빈치, 단테 등 뛰어난 예술가와 철학자, 그리고 과학자 등이 남긴 작품과 업적을 보며 감탄한다.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이 가문이 아니었다면 역사를 아름답게 장식한 그 수많은 위인이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아가 인류 역사는 뒤바뀌지 않았거나 인류의 문화는 뒤늦게 꽃피웠을지도 모른다. 그 가문은 바로 메디치가이다.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쓴 명문가, 메디치

메디치가는 공화제 도시 국가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도자 대부분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메디치가의 명성은 단지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 명성은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많은 인물을 후원한 데서 얻어졌다. 메디치가는 갈릴레오, 다 빈치, 단테, 도나텔로, 라파엘로,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그리고 건축가인 브루넬레스코 등 이름만 들어도 탄성을 내지르는 예술가와 학자, 사상가들을 열정적으로 지원하여 철학, 문학, 역사, 예술이 부흥하는데 불을 지피며 피렌체에서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데 앞장섰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는 후손 없이 숨을 거두며 가문의 전 재산을 피렌체 시민의 것으로 돌렸다. 특히 메디치가의 건물, 피렌체 공화국의 행정부 역할을 한 우피치(Uffizi)는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미술 작품들로 인해 현재 세계 최고의 르네상스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우피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메디치가의 흔적은 단지 한 가문의 역사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로 남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위인을 키워낸
메디치 가문, 그 350년간의 흥미로운 이야기!

이 책은 메디치 가문의 역사와 업적을 통해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기반과 그들의 성공 비밀을 보여준다. 르네상스를 피렌체에서 일으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발흥부터 몰락까지 350년간 13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자세하고 흥미롭게 기록하였다.

어떤 왕가도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와 예술에 이바지한 공적에 필적하지 못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장수한 가문(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만의 비결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재력과 권모술수만으로 명가의 자리에 오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메디치 가문은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보였고, 시민들을 귀족의 압제에서 보호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면서 피렌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살펴보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지도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의 국부로 추앙받는 코시모 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대단히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중후하고 예의바르고 덕망 넘치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초년은 고통과 유배와 신변 위협 속에서 지냈으나,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한 성향 탓에 모든 정적을 누르고 백성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거부(巨富)였으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검소하고 소탈했다. 당대에 그만큼 국정에 통달한 사람은 없었다.”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명문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의 재능이 어떻게 메디치 가문을 토대로 꽃피울 수 있었는지 다양한 에피소드와 비결을 이 책에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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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인문학을 묻다

도서정보 : 백두현 | 2017-10-19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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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다가가고자 하는 청춘들의 현실 고민이 담겨있는 책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이해하고 학문마다 지닌 인문학적 고민을 해결해준다. 우리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나? 청춘들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통해 성숙해나가는 청춘들의 진짜 성장기가 여기 있다.

구매가격 : 9,000 원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도서정보 : 박흥식 | 2017-10-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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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세상의 구원자인가 실패한 혁명가인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을 기억해야 하는가?





◎ 도서 소개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흥식 교수,
종교의 영역을 넘어선 통합적 시각으로 루터의 개혁을 재평가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전 유럽을 개혁의 열기로 들썩이게 한 주인공, 마르틴 루터를 재평가한 도서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가 출간되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서양 중세사’ ‘기독교와 유럽문명’ 등의 강의를 해왔으며, 종교개혁기 교회와 사회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박흥식 교수가 집필한 첫 대중서인 이 책은 역사학자의 균형 잡힌 시각과 종교의 영역을 넘어선 통합적 해석으로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짚는다.
50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 책의 차별성은 종교개혁과 루터의 업적만을 칭송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루터의 개혁이 완성작이 아닌 이유를 짚어내고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보완하여 개혁의 정신을 계승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루터가 이뤄낸 빛나는 업적뿐만 아니라 교회의 분열, 농민전쟁과 반유대주의 등 그의 잘못과 한계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루터와 개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종교개혁이 단순한 신학적 발견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을 결정지은 사건이자 인류에게 커다란 과제를 남긴 사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출판사 서평

“루터와 종교개혁은 우리 사회를 비춰 보는 거울이다.”
500년 전 루터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메시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사상의 발상지인 독일을 비롯한 전 유럽이 떠들썩하다. 국내에서도 서울 강남의 한 도로명을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이름을 딴 ‘칼빈로’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고, 고가의 기념메달이 발매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움직임들이 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일까?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종교개혁이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하기까지 루터의 업적을 대표하는 사건들과 개혁을 가능케 한 시대적 요건, 나아가 루터의 성공과 실패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책이다. 저자인 서울대 박흥식 교수는 “루터와 종교개혁은 21세기 한국 사회를 비춰 보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인 시점을 맞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념행사가 아닌, 당대의 시대적 맥락에서 루터의 개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그가 남긴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파악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작은 도시의 젊은 수도사였던 루터는 교회의 면벌부 판매 관행을 비판하는 95개조 논제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종교개혁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변혁을 촉발시켰다. 종교개혁은 유럽의 중세에 마침표를 찍고 근대의 문을 연 열쇠가 된 사건으로, 종교사의 관점에서만 유의미한 사건이 아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결정지은 개혁이다. 루터는 교황과 황제에 맞서 저항했으며, 민중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등 종교개혁사상을 전파하는 데 자신의 온 삶을 바쳤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종교개혁과 루터에 대한 평가가 동일시ž신성시되거나, 교회사가들의 제한된 관심 때문에 루터의 성취에만 도취되어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는 루터를 일컬어 “헌신적인 개혁가였지만 완벽한 영웅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목표는 성공신화 속에 갇힌 루터를 현실의 경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결정적으로 시대정신에 소홀했으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종교개혁을 배반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개혁의 과제를 끝내 완수하지 못했다. 이렇듯 루터가 당면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추적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내다보는 책이다.

종교개혁의 시작과 전개부터 루터의 개혁이 드리운 그늘까지,
루터는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남겼는가
루터와 종교개혁에 관한 자료의 홍수 속에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루터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아닌 그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종교개혁은 신학적인 발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다.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다른 개혁가들과 달리 루터만이 전 유럽을 뒤흔들 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인지 포괄적인 역사적 접근으로 평가한다.
1부 ‘종교개혁의 발단과 루터의 투쟁’에서는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발표하면서 예기치 않게 종교개혁이 시작되어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한 국면을 다룬다. 루터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문주의자들, 도시민들 그리고 작센 선제후의 대응과 참여를 주목해서 살피고 있다.
2부 ‘개혁사상과 시대적 저항’에서는 루터 개혁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1520년대 전반, 그의 업적을 대표하는 주제들과 그것을 가능케 한 시대적 요건을 살펴본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상, 보름스 제국의회에서의 신앙고백, 독일어 번역 성경의 탄생과 파장 그리고 개혁 사상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새로운 매체들의 활약을 통해 시대적 저항의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다.
3부 ‘위기와 돌파 그리고 루터의 유산’에서는 루터가 위기를 맞이하고 돌파하는 과정을 다룬다. 종교개혁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루터의 선택과 판단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짚어보며 종교개혁 후반부의 변화를 추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앞서 살펴본 종교개혁의 정신과 본질, 그것을 지키지 못한 루터의 실패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문한다. 사회 구성원의 고통에 공감하고 성경을 기반으로 당대를 해석하고 높은 차원의 소통과 정치 능력을 키울 때 우리 사회는 새로운 개혁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종교 갈등이 첨예해지고 다종교 문화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루터에게서 오늘날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루터가 어떤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지를 짚어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루터와 종교개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오늘날의 우리가 루터의 개혁을 이어나가야 할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점을 맞아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루터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갖추어 그것으로 현재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또 그의 긍정적인 모습만 선별적으로 기억해 자부심을 갖도록 조장하는 것도 일종의 역사왜곡이다. 루터를 당대의 시대적 맥락에서 균형 있게 이해하고, 그의 성취와 한계, 빛과 그림자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과오를 성찰하고 나아가 극복할 수 있을 때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가 새롭게 도약할 계기도 주어지리라고 생각한다. (22쪽)

의도하지 않게 바르트부르크에 은신하게 된 루터는 그곳에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구현하는 위대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신자들이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그들의 일상어로 옮김으로써 성경 해석의 독점권을 아래로부터 무너뜨리는 ‘종교혁명’을 가능케 했다. 루터는 독일어로는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독일어의 고유한 언어적 특징을 잘 살린 우수한 번역을 완성하여 제화공이나 여성들도 성경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의 기반을 닦았다. (120쪽)

농민전쟁은 루터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루터는 결코 농민들의 봉기를 부추길 의도가 없었지만 그들은 루터가 불의에 대한 저항을 지지한다고 오해했다. 루터는 세속 정부에 대한 반란은 합법적인 권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명백한 불의에 대해서조차 인내해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은 본질상 사회 변혁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루터는 제후나 귀족이 권력을 남용해 농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는 종교개혁이 사회적·정치적 성격으로 발전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려 했다. 농민전쟁을 계기로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개혁운동으로부터 소원해졌고, 종교개혁의 대중운동의 발전 가능성도 제한되었다. (170쪽)

공평과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실에서 고통받고 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눈을 감고, 다수의 농민들을 희생시켜 얻은 성취를 과연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루터는 대다수의 농민을 배제한 채 제후들의 아량에 기대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에 후대에게 권위주의적 유산을 물려주었다. 루터의 선택과 돌파는 이른바 ‘성공의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185쪽)

루터는 사실상 본인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종교개혁을 인도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개혁에 대한 하나의 견해였을 따름이지, 종교개혁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 아니었다. 루터는 본래 성공을 염두에 두고 개혁을 시작했거나 교회에 저항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점차 현실적 조건과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초심을 상실하고 길을 잃었다. 결국 루터의 개혁은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지만 미완으로 끝났다. 그는 복음과 시대정신에 더욱 투철해야만 했다. (243쪽)

오늘날 교회가 쇠락하고 역동성을 상실한 이유는 ‘그들’만을 위한 모임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의 시각에서 볼 때 존재 의의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과 이웃을 위한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 루터는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다. 그는 최선을 다한 개혁가였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전범은 아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루터가 유산으로 남겨준 빛과 그림자를 잘 분별하고, 새로이 미완의 종교개혁을 이어가야 한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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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도서정보 : 율곡 이이 | 2017-10-17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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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李珥 手稿本 擊蒙要訣)은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교재로 쓰기 위해 저술한 것입니다. 1976년 4월 23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격몽은 주역 몽괘 상구의 효사에 있는 말로,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자를 깨우치거나 징벌한다' 는 뜻입니다.

율곡은 이 책이 자신이 해주 석담에 있을 때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을 때,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하여, 간략하게 한 책을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율곡이이 선생이 42세 때 만들어졌고, 후에, 정조 12년에 정조는 이 책이 '소학의 첫걸음'이라는 소개를 적은 서문을 하사하였습니다.

구매가격 : 7,800 원

위대한 유산

도서정보 : 김응빈, 조대호, 서홍원 | 2017-10-16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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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벼룩에서 인공지능까지
철학, 과학, 문학이 밝히는 생명의 모든 것



연세대학교 학생이라면 꼭 한 번 듣는 명강의 〈위대한 유산〉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이란 무엇인가. 문학, 철학, 자연과학의 눈으로 보는 인간과 생명의 비밀

인간의 유전정보를 정확히 알아낸 지금, 이를 수정하고 개선하여 슈퍼맨을 만들 수도 있는 아주 낯선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였고, 이제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3000여 년 시공을 관통하는 위대한 질문과 탁월한 대답. 인간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린다.






◎ 도서 소개

연세대학교 학생이라면 꼭 한 번 듣는 명강의 〈위대한 유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중세의 신학, 다윈의 진화론과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명과 영혼을 찾아 떠나는 여정

“나는 누구인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본질을 물었고 ‘생명’은 철학과 예술의 으뜸가는 과제로 자리 잡았다. 생명의 신비를 영혼의 존재를 통해 이해하려 했던 고대와 기독교 신학에 의지해 생명체의 질서를 규정하고 해명했던 중세를 지나 오늘날 우리는 진화와 유전자를 통해 생명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흔히 진화론 하면 다윈을 떠올리지만,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가를 탐구했던 진화론의 선구자들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생명의 본질을 해명하기 위해 부단히 사색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전망을 열어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유전정보를 정확히 읽어내 원하는 대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 유전병을 예방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수려한 외모와 강인할 체력, 뛰어난 지능을 지닌 맞춤형 인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변형과 더불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눈앞의 현실이다.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빠를 뿐만 아니라 지능까지 뛰어난 로봇이 등장한다면 과연 우리와 공존할 수 있을까? 혹여 인간을 멸종시키려 들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열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피조물인 인류는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문턱에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철학, 문학, 생물학을 전공한 지은이들은 각자의 영역을 넘나들며 수천 년 인류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인간과 생명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를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육체와 영혼의 알레고리

미국의 의사 던컨 맥두걸은 정밀한 저울을 사용해 사람이 죽어 영혼이 몸을 떠난 순간 몸무게를 재보았다. 죽은 후에는 살아 있을 때보다 21그램이 적었다. 그렇다면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인가? 우리 몸무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퍼센트에 불과한 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는 영혼(맥두걸에 따르면 21그램)은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이다. 영혼, 즉 생명이 없는 인간의 육신은 단순한 물질일요 허깨비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죽으면 영혼이 감옥이나 다름없는 몸에서 빠져나가 지하세계로 떠난다고 믿었다. 또 영혼은 불멸하며 죽음을 통해 육신에서 해방되면 새로운 몸을 입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믿음은 중세 천년에도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었으며 철학과 문학, 예술의 영원한 테마가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밀레니엄을 열어젖힌 오늘날에도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찬란한 불꽃’, 영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단지 신화로 이야기하고 시로 노래하며 그림으로 묘사할 뿐이다. 대신 영혼의 또 다른 짝이자 생명의 담지자인 인간의 육체에 대한 탐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이제 거의 모든 비밀을 풀어냈다.

인간은 신이 될 것인가, 프랑켄슈타인이 될 것인가

인간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진화론은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DNA를 비롯한 생명공학의 중요한 아이디어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이미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원자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원자 하나하나가 모여 더 높은 수준의 기관, 생명체가 된다는 이론을 내놓은 고대인들은 당대의 ‘화학자’들이었다. 사실 엠페도클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대한 진화이론가들이었으며 다윈조차 “린네와 퀴비에는 내게 신이지만 그들도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하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17, 18세기 과학혁명, 19세기 찰스 다윈의 업적에 의해 자신이 진화해온 궤적을 밝혀낸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고 말았다. 2000년 인간유전체사업을 완료해 인간 DNA를 이루는 30억 개의 염기쌍을 모두 해독해낸 것이다. 30억 개의 알파벳으로 쓰인 23장(인간 염색체 23쌍)으로 구성된 책 한 권을 완독한 셈이다. 이제 인간은 원하는 유전체를 설계하고 합성하여 다른 생명체에 이식해 맞춤형 생명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공상과학영화가 ‘실화’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또 한편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대신 처리하는 ‘일꾼’ 로봇을 넘어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수준 높은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의 위대한 영감과 창조성을 상징하는 게임의 하나였던 바둑의 절대고수조차 ‘인공지능’에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처럼 아주 낯선 미래에 맞닥뜨린 우리에게 인간과 생명은 여전한 수수께끼이고 비밀을 풀어낼 열쇠이다. 인간의 욕망은 제약이 없고 과학기술은 맹목적으로 나아갈 뿐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진정 고귀하고 참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그해야 한다. 인간과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과학과 철학, 도덕과 윤리의 대화와 소통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인간은 완전할 때는 모든 동물 가운데 최선이지만 법과 정의에서 일탈하면 최악이기 때문이다.


◎ 책 속에서

그렇다면 다윈 이전에는 생명계의 모습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서양에서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생명의 세계가 사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맨 밑에는 물, 불, 흙, 공기 와 같은 생명 없는 물질들이 있고 그 위에 식충류나 해면 같은 하등 생명체들이 자리 잡고 있고, 이어 곤충, 어류, 조류, 포유류, 인간이 윗자리를 차지하면서,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사다리 구조를 이룬다고 보았지요. 이에 따르면 사다리의 각 단계는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하등/고등 생명체로 구성되지만 이는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게 아니라 무시간적으로 고정된 것입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체계화된 생각이고, 이 생각이 기독교 세계관에도 받아들여지면서 거의 2000년 동안 서양의 생명관을 지배해왔습니다.(26~27쪽)

기원전 6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보통 ‘자연철학자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들에게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자연physis’이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 이전 사람들이 제우스, 포세이돈, 아폴론 등 신들의 모습과 작용에 관심을 두었던 ‘신학자들theologoi’이라면, 자연철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데서 신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입니다. 런 뜻에서 철학사가들은 그들을 ‘피시올로고이physiologoi’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 ‘피시스physis’는 ‘네이처nature’를 뜻하거든요. 피지션physician, 피직스physics, 피지올로지physiology, 이런 낱말들이 모두 ‘피시스’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피시스’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자연적인 생성’, 불의 뜨거운 성질이나 돌의 무거운 성질 같은 ‘자연적 성질’, 자연적 성질들이 발휘하는 ‘자연적인 힘’, ‘자연의 질서’, 전체 ‘자연 세계’, 자연 안에 있는 자연물들, 이 모든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피시스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시작될 때 철학자들이 한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피시스의 발견’, ‘자연의 발견discovery of nature’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53~54쪽)

천지를 창조한 신이 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기독교 신학자들은 신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세 가지 특징을 옴니omni, 모두라는 말을 이용해서 만들어냅니다. 신은 ‘전능omnipotent’하고 ‘전지omniscient’하고 ‘전재omnipresent’하다. (98쪽)

중세인들의 시간관을 살펴볼까요? 중세인들의 하루는 분초를 다투며 치열하게 일에 매진하는 우리의 하루와는 달랐습니다. 당시 서구의 모든 사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였는데, 중세인들은 교회와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교회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지요. 당시엔 자연조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5시, 6시쯤 되면 깜깜해집니다. 그러니까 종이 치면 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지요. 그게 중세인들의 일상이었고 이런 삶은 매일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14세기 들어 이탈리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도시의 주요 광장에 자리 잡은 성당들에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거대한 탑시계들이 설치되기 시작하지요. 탑시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서 시계 수요가 급등하면서 모래시계, 기계화된 시계가 속속 등장하더니 중세 유럽 전역으로 퍼집니다. 탑시계, 기계화된 시계의 등장은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교회 종소리에 따라 반복되던 하루가 정확히 24시간으로, 한 시간은 60분으로, 1분은 60초로 쪼개지면서 분초를 다투는 삶이 문을 열었지요. 어찌 보면 인간이 굉장히 불행해진 순간이기도 합니다. 하루가 조각조각 나뉘면서 인간은 시간에 쫓기게 된 것이죠. 이 또한 기계화되어가는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122~123쪽)

문제는 과학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매우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하지만, 우리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왜 태어나야만 했는가?”라고 물으면,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일축해버리는 과학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그래서 비과학적인 질문은 무의미한 걸까요? 과학이 답을 할 수 없을 뿐, 우리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궁극 질문’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보통 궁극 질문을 다루지 않습니다. 바로 앞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런 질문을 ‘근접 질문’이라고 하는데, 과학은 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가용한 모든 정보와 실험 결과, 관찰을 근거로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또 다른 관찰을 하기도 합니다. 검증 과정에서 가설이 맞지 않으면 폐기되거나, 수정· 보완되어 다음 검증을 받게 되지요. 이런 과정에서 가설이 살아남아 계속 다듬어지면 이론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142~143쪽)

과학에서 말하는 이론이란, 수많은 증거를 토대로 더 완벽한 이론이 나오기까지 사실로 인정받는 지식의 체계를 말합니다. 진화이론은 명백한 과학 이론입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진화론이 좋거나 싫을 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진화이론을 부정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이라는 잣대로 다른 사람의 종교적 믿음을 비웃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요.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열린 자세로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서로 약점을 보완하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데 힘을 합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75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영혼psychē’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영혼’은, 곧이어 이야기하겠지만, 뭔가 신비한 것이 아니라, 영양 섭취, 생식, 감각, 운동 등과 같은 동물의 생명 능력 전체를 아우르는 낱말입니다. 영혼에 대한 연구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다양한 기능들이 어떤 신체 기관을 통해서 수행되는지 연구합니다. (210~211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잠재적으로 생명을 가진 자연적인 물체의 첫째 현실태”라고 정의합니다. 『영혼론』에 나오는 영혼에 대한 유명한 정의입니다. (215쪽)

하지만 다윈의 모델, 헤켈의 모델, 굴드의 모델 등 어떤 모델로 진화 과정을 설명하건 한 가지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공통의 유래를 갖는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나 말미잘이나 해면이나 멍게나 개불이나 모두 공통의 유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247쪽)

그런데 영혼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영혼이 비물질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때는 영혼이 육체와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둘이 하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아니고, 죽음이 육체에 의해 감금당했던 영혼을 해방시킨다는 믿음은 육과 영의 이원론body and spirit dualism이라 불립니다. 반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상은 물질적 일원론materialist monism이라 하지요. 물질적 일원론자는 영혼이 비록 비물질로 보일지라도 물질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물질의 순도가 너무 높아서 그렇지 않게 보일 뿐이지요. 이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면 사람이 죽을 때 영혼과 육체가 둘이 아니므로 육체이자 영혼이 죽는다는 모탈리즘mortalism이라는 극단적인 견해에 이르기도 합니다. 일원론 대 이원론의 논쟁에서 이원론이 승리하지만 어느 영향력 있는 시인이 일원론적인 우주관을 드러내는 작품을 내놓아 부지불식간에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이 밀턴의 『실낙원』입니다. (255~256쪽)

밀턴의 우주는 만물이 각자의 역할과 생을 착실하게 수행하고 살아갈 때 본연의 방향, 즉 상향 이동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중세의 고정된 우주와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창조된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소멸하는데 이는 신(의 물질)에게 회귀하는 것으로서 이 역시 상향입니다. 단 하나의 전제가 있으니 바로 “선으로부터 타락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260~261쪽)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막상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잘못 알려진 것이 있지요.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이 아닙니다. 괴물을 창조한 사람 이름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이고 괴물은 그냥 ‘그것’으로 지칭됩니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이름으로 둔갑하고 만인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원작으로 돌아가서, 소설의 괴물은 이름이 없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소설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지만 인간이 역사상 처음으로 창조한 것이 창조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정당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것입니다. (304쪽)

최초의 공상과학소설을 쓴 메리 셸리의 비전은 무엇이었을까요? 과학이 약진함에 따라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세계, 하나의 기계처럼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 인간조차도 배터리에서 공급되는 전기에 의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면,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프랑켄슈타인의 목적이 인간의 ‘창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온전한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그것은 창조가 아닌 부활이었겠지요. 창조를 위해 여러 사체에서 필요한 부분을 모아 ‘그것’을 만들었다는 점. 소설에 나오는 이러한 암시들은 인간이 결국 여러 부품으로 이뤄진 움직이는 기계일 뿐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메리 셸리는 과학 발전과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기계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포착한 것 같습니다. (312~313쪽)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에서 드러나듯이 나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동서양의 현자들에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습니다. 탈레스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지요. 기원전 6~7세기에 살았던 탈레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그는 이 세상 만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질문을 던졌고, 물이 모든 것의 원리라고 대답했지요. 탈레스의 지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탈레스는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지요. 남에게 충고하는 것, 훈수 두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바둑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이세돌이 바둑 두는 데 훈수를 둘 수 있어요. 그다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탈레스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2700여 년 전의 탈레스에게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나 내가 무엇인지 아는 일은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364쪽)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과거 경험을 상상의 재료로 삼아서 미래를 계획한다고 말하면서, ‘상들similitudines’이라는 낱말을 쓰는데, 결국 미래에 대한 상상은 과거의 경험들을 재료로 삼아서 이루어지는 ‘시뮬레이션simulation’이 되겠지요. 현대 심리학은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한 사실처럼 내세우지만, 그런 사실은 이미 고대와 중세의 철학자들이 누누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402~403쪽)

다른 동물들의 경우와 달리 인간에게는 이성적 확신에 의거해서 본성과 습관을 넘어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인간 사회의 뿌리 깊은 악,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생물학적 존재로 여기는 관점은 인간 사회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악의 현상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완전해질 때에는 모든 동물 가운데 최선이지만, 법과 정의로부터 일탈할 때에는 최악입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양극의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 양극의 가능성은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 즉 호모사피엔스라는 데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아무쪼록 이 강의가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지향할 만한 최선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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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왜? 어떻게?

도서정보 : 박향순, 박조열 | 2017-10-13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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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말하듯이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욱’의 근원을 밝히고 그에 따른 치료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 ‘욱’의 근원이 당연히 인성교육문제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나 여기서는 특히 대화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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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로맨스 소설로 대박 작가가 되면 소원이 없겠네

도서정보 : 제리안 | 2017-10-12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로맨스 소설로 연금타기?
오옷!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내공 충만한 로맨스 탐닉자들이여, 이젠 펜을 들어라!

연 350억을 넘게 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작가도
펜픽을 쓰던 평범한 아줌마였다는 사실!
드라마를 보며 “저건 나도 쓰겠네!”를 외치는 당신,
놀면 뭐하나, 짬짬이 쓰고, 즐기고, 돈도 벌자!

소설의 줄거리를 뻔히 꿰뚫는 당신,
로맨스의 내공이 남달리 충만한 당신,
그리고 취미로 돈을 벌고 싶은 당신의
잠자는 '로맨스 포텐'을 터트려줄 ‘돈 버는 글쓰기’

구매가격 : 11,300 원

세 명의 사기꾼

도서정보 : 스피노자의 정신 | 2017-10-12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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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종교에 직격탄을 날린 ‘17세기 비밀출판물’

베일에 가려진 저자, 희대의 금서! 17세기 자유사상가들을 열광시킨 지하수사본

종교는 사기술이다!

“예수는 마호메트보다 나은 점이 없고, 마호메트는 모세보다 나은 점이 없고, 그 셋 모두 공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
실은 그 모두가 사기꾼에 불과하다!” —사드




◎ 도서 소개

베일에 가려진 저자, 희대의 금서!
17세기 자유사상가들을 열광시킨 지하수사본

세계 3대 종교에 날리는 직격탄
“종교는 사기술이다!”

이 책은 17세기 비밀출판물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금서다. 세계 3대 종교의 본질에 과감하게 직격탄을 날린 괴문서로 당대 다양한 형태의 수사본으로 한정된 부수만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통되었다.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이 끝없이 이어졌고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저자에 대한 온갖 추측과 연구가 난무한 가운데, 스피노자의 사상체계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는 점을 들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추종자일 것이라는 것밖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
이 책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는 당대 스웨덴 제일의 지성적 군주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 문헌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했으나 소문만 무성할 뿐, 한 부라도 구해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통념으로 볼 때 지독하리만치 끔찍한 신성모독과 엄청나게 전복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핵심은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이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을 폭압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주장이었다. 초긴장 상태의 파리경찰이 직접 나서 이 책을 유통시키는 서적상을 일제 검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712년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이 문헌은 최초로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세 명의 사기꾼’이란 제목은 문헌이 정식 활자화되기 이전부터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던 괴이한 수사본에 갖다 붙여진 속칭인 셈이다.

자유사상가 볼테르도 놀란 신성모독적 발언

이 문헌의 과격성과 대범함이 일찍이 볼테르조차 기겁을 하게 만들었을 정도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있다. 볼테르는 「‘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책의 저자에게 부치는 서한시」에서, 기독교적 유일신론에 대해 문제의 저자가 내뱉는 지독한 신성모독적 발언들에 경악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언을 남긴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너무도 유명한 볼테르의 이 명언은 다름 아닌 이 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사드 역시 이 문헌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있다.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설교자여, 어서 이성을 되찾게나. 자네의 예수는 마호메트보다 나은 점이 없고, 마호메트는 모세보다 나은 점이 없으며, 그 셋 모두 공자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들이지. 그나마 공자는 나머지 세 명이 정신나간 소리를 해대는 동안 몇 가지 괜찮은 삶의 원칙들을 구술했으니까. 하지만 그 모두가 실은 사기꾼에 불과하네. 철학자가 가소롭게 여겼는가 하면, 천민들은 곧이곧대로 믿었고, 당국이 나서서 의당 목을 매달았어야 할 그런 존재들.”

자유의지의 원동력이자 무신론 철학의 고전!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모세, 예수, 마호메트 이 세 사람은 사기꾼이다. 저자는 이들 종교에 대해 인민의 억압에 기여하는 허상임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서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동원한 치밀한 예증을 거침으로써 오늘날 보아도 생생한 설득력과 위트 또한 갖추고 있다. 계몽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종교의 모습과 근대초기 이성의 성립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문헌학적 역사학적 가치도 두루 지닌 자료이기도 하다.
이 문헌은 무신론 철학의 고전이자 인문정신의 토대를 만든 최초의 문헌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지지했던 디치킨스 (『만들어진 신』 저자 리처드 도킨스와 『신은 위대하지 않다』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합친 말)의 ‘합리적인 주장’의 원류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에 의지하고 미신과 정념에 사로잡혀 억눌려 있던 이성의 힘을 해방시켜, 신과 종교라는 무지몽매한 믿음에서 풀려나 ‘이성의 담지자'로서 인간을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가정, 지역, 나라에 만연한 종교적 가치에 아무 의구심 없이 길들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합리적 이성’으로 의심해보자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해하는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이 진실인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역사적 고증, 성서 구절을 들어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과격한 신성모독적 발언 때문에 이 책의 목적이 이 세상 모든 종교와 그들의 신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저자의 논리와 합리적 의심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맑은 정신으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를 직시하여 타 종교인들이 비방할 구실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신의 본질과 종교의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3백 년 전에 작성된 문헌이지만, 이 속에 담긴 지혜와 자유의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 책 속에서

신이란, 한 마디로 자연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신을 마치 인간처럼 어떤 욕망과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기에, 그와 같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자연에는 필연성만 있을 뿐 어떤 목적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곧 신의 속성과 일치한다. 결국 선악이라는 개념도 신의 속성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했을 따름이다.(14쪽)

기독교도의 계율에 대해 말하자면 원본은 온데간데없고 사본들만 그것도 이것저것 제각각인 문헌에 근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초자연적인 내용들, 즉 불가능한 현상들만 그득할 뿐인 그 책에서는 선행과 악행에 대해 돌아온다는 보상과 징벌도 오로지 내세와 관련된 것이어서, 이승에서는 그 기만(欺瞞)이 폭로될 리 없게끔 해놓았다. 이미 저세상으로 간 사람이 사실 여부를 전달해주러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57쪽)

신성과 직접 교류한다는 명목 아래, 그는 대중으로부터 존경과 무한한 복종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면 제아무리 유능한 통치자였다 해도 완전한 복종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력을 동반하지 않은 속임수가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로 그가 교묘히 복속(服屬)하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엔, 그의 가식을 알아볼 만큼 깨어 있고, 정의와 평등의 번드레한 허울 너머 그가 권세와 잇속을 챙긴다며 노골적인 비난을 던질 만큼 용기 있는 자들도 있긴 했다. 요컨대 절대권자의 권위라는 것이 혈통의 문제인 만큼, 그걸 참칭(僭稱)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주장 말이다. 요컨대 모세는 종족의 아버지가 아니라 압제자일 뿐이라는 얘기다.(73쪽)

예수 그리스도가 철학자나 지식인들을 자기 사도로 절대 임명하지 않은 것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내세우는 계율이 보편적 양식(良識)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여러 군데에서 학자들을 노골적으로 탄핵했고, 자신이 말하는 왕국으로부터 배척했으며, 오로지 지력이 박약한 자들과 단순한 사람들, 어리석은 자들만을 받아들였던 것이다.(93쪽)

예수 그리스도를 논할 때, 일반 철학자들과 구별되는 그만의 독특한 윤리에는 두 가지 문제가 눈에 띈다. 하나는, 그의 윤리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자연에 반하는 사항들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느니, 원수를 사랑하라느니, 사악한 자들에게 저항하지 말라느니 하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자기 제자들과 추종자들같은 거지와 떠돌이들이 무사히 연명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윤리가 아니냐는 점이다. 실제로 그 속에는 부자들의 인색함에 대한 저주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96쪽)

세상 여러 종교들은 서로 다른 점 또한 여럿 가지고 있다. 각자 고유한 조항들을 갖추고 있고, 그것들을 통해 서로를 구분하는 가운데, 서로 더 잘나고 서로 더 진짜임을 내세우면서, 트집을 잡아 비난하고 결국은 상대를 무조건 단죄하여 거부하는 것이다.(141쪽)

실제로 유대인들이 제멋대로 인용하는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모든 악행을 저지른다(in nomine Domini committitur omne malum)”라는 속담이야말로, 교황 레오가 황제 테오도시우스를 상대로* 내뱉었다는 다음의 비난 발언 못지않게 진실이다. “지금은 제각각 자기 탐욕에 맞추어 종교를 끌어다 사적인 일들을 마구잡이로 처리하고 있다.”(176쪽)

신은 극히 단순한 존재이거나 무한정한 외연(外延) 자체로서 자신 안에 포함되는 모든 것과 닮아 있다. 말하자면 그냥 물질 자체가 되겠는데, 결코 정의롭지도 자비롭지도 않거니와 그렇다고 질투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결론적으로 벌을 내리는 존재도, 보상을 해주는 존재도 아니다.(182쪽)

신이 보기에 아름답되 추하지 않으며, 선하되 악하지 않으며, 완전하되 불완전하지 않은 것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 신은 항상 칭송받길 원하고, 기도와 사랑, 흠모의 대상이길 바라며, 인간의 말과 행위에 반응해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가 하면, 요컨대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인간을 더 많이 염두에 두신다는 발상. 이런 모든 변별적인 사고는 오로지 협소한 정신력이 만들어낸 순전한 상상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무지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냈고, 이기심이 그것을 부추길 따름이다.(183쪽)

자신의 이성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영혼이든 신이든 악마든 결코 보통 사람들이 떠드는 식으로는 믿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거창한 단어들은 하나같이 대중의 눈을 멀게 하고 겁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들이다.(184쪽)

악마와 지옥에 대해 말하면서 정말로 우리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신이란 전능하고 신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면, 악마가 신을 증오하고 저주하며 신의 친구들을 앗아가 버리는 일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런 일들에 신이 동의를 한 것일까, 아닐까? 만약 동의를 한 거라면, 악마는 신을 저주함으로써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악마가 무엇을 행해도 신이 원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기에, 결국 신을 저주한 건 악마가 아니라 신 자신이며 단지 악마의 입을 빌렸을 뿐일 텐데, 정말이지 내 생각엔 얼토당토않은 얘기일 수밖에 없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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