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위로해 주나?
도서정보 : 신인류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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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 대하는 찰나를 살고 있다. 그 찰나가 지나면 다시 처음 대하는 찰나가 나타나는 새로운 순간으로 이어지는 삶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과 딸로서 첫 찰나를 만났으며, 엄마와 아빠로서도 처음이었지만 다음 찰나로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해보는 아빠와 엄마 또는 아들과 딸이었기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았고 매 순간 대하는 찰나 또한 낯설었다.
이 세상은 내 의지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낯설었다. 낯선 세상을 부모가 달래 주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의존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 울타리를 떠나 또 다른 울타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 모두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소함이었다.
인간사 일상이 매번 반복되는 단순한 순간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매 순간은 전혀 다른 환경의 연속이다. 우리는 삶은 낯설고 처음 대하는 생소함에 위로 받고 싶어 한다. 아들과 딸을 처음 해 보는 자식으로서, 엄마와 아빠를 처음 해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삶에 대한 위로가 필요할 것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때로는 스승에게 묻기도 하고 친지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고 친구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현명한 의견이라 하더라도 내가 헤쳐나가는 새로운 환경과는 다른 견해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해야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연속되는 찰나의 결정에 부단히 바쁘게 살면서 지치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일 것이다. 누가 힘겨운 나를 위로해 줄까? 한 번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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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나요?
도서정보 : 신인류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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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입추가 지나고 말복도 지났다. 한 낮의 태양은 여전히 이글거리는데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은 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사람들의 다양한 느낌과 생각, 그리고 행위를 문자로 기록해 놓은 책은 우리 인류 사회에 공헌한 바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만약 우리 곁에 책이 없다면 결코 현재의 우리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인류의 정신문화 유산인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고 인생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공기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요소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책을 즐겨 읽거나 멀리하거나 상관없이 책은 인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책을 기념하는 “책의 날”도 있다.
우리 신인류들은 그 멋진 작업에 도전하고 있다. 그 작업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아쉬울 것 없을 것이다.
구매가격 : 10,000 원
나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도서정보 : 김동명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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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에세이
독서운동가, 도시 행복을 연구하다.
40대 후반, 문득 내 인생이 처참하게 붕괴되고 있음을 절감하면서 이를 회복하기 위해 돌연 독서에 몰입하게 되었다. 1년은 두문불출 책을 읽었고, 내 인생은 복구와 전환에 성공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독서운동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의 삶이 복원되어 기뻤다. 하지만 도시인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도시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고, 이들을 향한 연민에서? 도시 행복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사는 것이 좋아야 사는 곳이 좋은 법이다.
도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옮겨갈까 고민이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거기도 도시고, 거기도 숨막히는 곳이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그러려니 하며 살거나 보따리를 싸서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떠난 사람들의 반은 다시 돌아오고, 시골에 정착해서 사는 사람들도 결국은 도시병원에 입원해 살다가 도시 근처 화장장을 거쳐 도시 근처 추모공원에 묻힌다. 사는 것이 좋지 않으면 어느 곳에 살아도 사는 건 마찬가지다. 해답은 어디에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은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썼다.
도시 행복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도시 행복은 도시 생활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도시가 어떻게 도시인들을 불행의 늪으로 끌어들이는지, 어떻게 그런 끌림에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친 속도는 느리게 살기로, 시끄러운 소음은 고요함으로, 소비로 인한 소진은 단순한 생활로, 단절과 고독은 공동체의 복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답을 제시한다.
떠날 수 없다면 여기서 삶을 전환, 회복, 재구성하는 게 낫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삶으로의 복원이 시급하다.
도시에 남은 사람들, 도시에 남게 될 사람들, 그들과 같이 잘 살기 위하여 <나는 이 도시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 우리와 함께 잘 살자고, 함께 잘 살아보자고 도시를 떠나려는 당신의 소매를 잡고 싶어 이 책의 일독을 요청한다.
구매가격 : 7,000 원
오늘, 그리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라
도서정보 : 김광혁 | 2019-10-11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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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기엔 언젠가 나만의 책을 쓰리라 생각한, 평범한 청년의 특별한 꿈이 담겨 있습니다. 그 책이 무슨 책이 될지는 몰랐는데, 한창 그리고 한참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던 인간의 속내를 담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노마드’,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며 살기’, ‘소극적 소득’, ‘창업’, ‘워홀’
더욱 행복한 인생은 무엇일까. 여가를 즐기고 여유 있는 삶이 그런 길일까. 아니면, 종래의 직업사회에 편입하여, 사명을 갖고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런 길일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게 길을 잃었을 때 스스로 만든 나침반 같은 책입니다.
인생의 굵직한 사건과 제가 만났던 소중한 인연.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저, 가까운 과거의 저, 현재의 저. 일상에 관하여, 취향에 관하여, 가족에 관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노력에 관하여 이야기를
적어 나갔습니다.
꿈이 있었으나 안정적이라는 이유때문에 교사 쪽으로 방향을 튼 분께 저의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으나 공무원의 길, 취업의 길을 가는 분들도 읽기를 권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신 분께도 추천합니다.
더불어 과거의 저처럼 자신만의 책을 내는 것에 관심 있으신 분도 읽으면 좋겠습니다. 어느새 제 글의 매력에 푹 빠져, 글이 쓰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제가 써왔던 주제를 다르게 펼쳐갈 자신이 궁금해질 겁니다!
이 책은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 김광혁이 자신을 두고 탐구한 글입니다. 너절한 과거가 여과 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힘든 현재를 추동했던 행복한 과거가 드러나기도 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과거도 있지만, 부끄러운 과거도 있습니다. 그런 과거를 가진 나를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같은 상처를 품고 있을, 여러분과 호흡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 눈치가 보이고, 나의 표현을 할 때도 남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남 속에 갇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가 나를 가둬놓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갇힌 사람’이 ‘갇힌 사람들’에게 보내는 손글씨로 쓴 옥중서신입니다. 당신이 이 편지를 꼭 수신하기를 바랍니다. 타인으로 짠 철창에 혼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꼭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부끄러워하던 무언가를 자신이 겪고 있다고 말을 할 때에,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
‘나 괜찮은 거였구나’
‘나 떳떳할 수 있는 거였구나’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씁니다. 함께 이 세상으로 나갑시다. 나아갑시다. 사랑합니다.
구매가격 : 9,800 원
활 화살 그리고 나 Bow Arrow and Me
도서정보 : 김기대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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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접하고 활을 배우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은 글귀들과 생각들을 같이 엮어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활터에 가면 항상 우리는 말한다. "활 배웁니다"라고... 자 우리 같이 활 한번 내어보시겠습니까?
구매가격 : 10,000 원
일상에서 만난 영성과 지성에 대한 고백록
도서정보 : 박동우 | 2019-10-11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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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상을 되 짚어보면 모두가 기적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기적이었 듯이 앞으로의 삶도 기적일 것이다. 나에게 심어진 생각이나 나를 통해 이루어진 일들이 모두 기적이다.
?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오로지 나 스스로 생각했고, 오로지 나 스스로 행했던 것들은 하나도 없음을 느낀다. 수많은 생각과 기록들을 통하거나 내 주변에서 함께 한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사색과 삶의 단편들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이 모두가 기적같은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작되고 이루어졌다. 내가 만난 그 기적들과 내안에서 이루어지고 표출되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내 삶의 시작이자 내 행동의 원동력이었으며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을 책으로 묶었다.
?
무엇보다 내 생명이 창조되고 그 생명이 활동할 수 있게끔 해 주신 하나님과 모든 분들, 특별히 가족에게 감사하며, 그로 인해 내가 존재할 수 있음를 고백하며 이 책을 받치고자 한다.
구매가격 : 7,000 원
하루키의 언어
도서정보 : 나카무라 구니오, 도젠 히로코 | 2019-10-10 | PDF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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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해하려면 꼭 알아야 할 결정적 키워드 500
하루키 월드를 탐험하려면 언어의 지도부터 준비할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9년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사십 년 동안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번역 등을 넘나들며 그 가열한 성실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의 문학을 두고 평단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는 여전히 신간이 나올 때마다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팬들을 열광시키고, 해마다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목되며, 하루키스트(Harukist/하루키 열성 독자)임을 자처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영원한 청춘의 아이콘이다! 도대체 하루키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하루키의 언어』를 쓴 나카무라 구니오도 그 매력의 실체가 너무나 궁금하여 아예 하루키를 철저히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이제 그는 하루키 자신보다 하루키에 대해 더 잘 아는 하루키스트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궁금해지면 하루키 본인이 아니라 ‘나카무라 구니오’부터 찾는다는 말이 떠돌 정도이다. 그가 ‘하루키를 둘러싼 모험’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하루키 월드’를 구성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어에는 하루키가 작가이자 생활인으로서 자주 쓰는, 혹은 하루키만이 쓸 수 있는 모든 말이 포함된다. 작품명, 등장인물, 독특한 비유, 작품 속 특유의 상징과 장치, 문학적 영향을 주고받은 작가들 등은 물론이고 하루키가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 실은 첫 작문, 젊은 시절 경영한 재즈 카페, 자신 있게 자랑하는 요리, 고양이·다림질·달리기·재즈처럼 하루키가 일상적으로 사랑하는 것 등 다분히 개인적인 정보까지 알차게 꿰뚫어 500여 개의 무라카미 하루키 언어를 엄선했다. 『하루키의 언어』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해하려면 꼭 알아야 할 그 결정적 키워드들을 표제어로 삼아 사전 형식으로 구성한 책이다. 하루키스트들을 위한 가장 꼼꼼하고, 더없이 시시콜콜하고, 너무나 사적인 이 ‘무라카미 하루키어 사전’이 하루키 월드를 탐험하는 당신을 위해 언어의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중국행 슬로 보트』부터 『여자 없는 남자들』까지,
‘무라카미 아사히도’부터 ‘무라카미 라디오’까지
하루키 원더랜드를 만들어낸 모든 것
하루키 소설의 남성 1인칭대명사 주인공 ‘나’는 언제부터 이름을 가지게 됐을까? 표제어 ‘나’를 찾으면 알 수 있다. 초기 ‘나와 쥐’ 4부작부터 『태엽 감는 새 연대기』까지 줄곧 ‘나’의 시점으로 얘기하다가 『해변의 카프카』부터 3인칭 화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고양이’와 ‘도넛’에 대한 하루키의 애정은 어느 정도일까? 표제어 ‘고양이’와 ‘도넛’ 혹은 ‘던킨 도넛’을 찾으면 알 수 있다. 자타 공인의 애묘인으로 ‘시치미 떼기, 쑥스러움 감추기, 뻔뻔하게 정색하기’라는 인생 노하우를 고양이한테 배웠다는 하루키는 반려묘의 이름을 따서 재즈 카페 ‘피터 캣’을 개업했고, 자기 이야기 속 고양이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겼으며,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에 대한 편애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도넛은 하루키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으로 특히 던킨 도넛을 최고로 치는데,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하루면 질리는 호텔 조식보다도 낫다고 고백했다. 하루키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에게도 말버릇이 있을까? ‘나쁘지 않아’와 ‘야레야레’라는 표제어를 찾아가면 된다. 특히 ‘야레야레’는 ‘아이고, 맙소사’, ‘이런이런’, ‘제기랄’ 등으로 문맥에 맞게 다양하게 옮겨져 번역본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1973년의 핀볼』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우리 세계의 부조리와 체념을 표현하며 “하루키의 레종데트르”로 무수히 내뱉어진다.
하루키에 대해 이렇게 소소하고 엉뚱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좀 더 비평적인 호기심이 일 수 있다. 가령 고양이, 아내, 연인, 심지어 색깔까지 하루키의 이야기에서는 왜 자꾸만 사라질까? ‘사라지다’라는 표제어를 찾아가면 알 수 있다. ‘상실감’은 중요한 키워드로, 갑작스러운 실종 이후 누군가가 자신이 상실한 것을 찾기 위해 세계의 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루키 문학의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이면, 다시 말해 또 하나의 세계인 ‘패럴렐 월드’도 표제어 중 하나다. 이쪽 세계에 사는 인물들이 순례하는 저쪽 세계로, 자기 영혼 깊은 곳으로 들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하루키 원더랜드의 인물들은 어떻게 이계를 넘나들 수 있을까? ‘구멍’, ‘우물’, ‘도서관’ 등의 표제어를 찾으면 이계로 들어설 수 있는 통로를 알 수 있다. 음악과 술이 있는 바, 엘리베이터, 숲, 비상계단 등 다양하지만 ‘우물’ 혹은 ‘구멍’은 특히 중요한 이계의 입구로 작용하고 ‘도서관’은 이계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 평범한 일상 공간에서 부지불식간에 세계의 이면으로 흘러드는데 하루키의 모험가들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하루키처럼 ‘다림질’, ‘요리’, ‘청소’에 진지하게 임하며 나날을 성실하게 이어가는 보통 사람들이다. 해당 표제어들을 찾으면 그것들을 하루키가 왜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하루키의 인물들이 그것들에 왜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표제어 ‘커미트먼트’ 아래에서는 그들이 결국 도착하게 되는 곳이 보인다. 그들은 ‘마술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하루키 원더랜드에서 두 세계를 통과하여 관계의 부재〔‘디태치먼트(detachment)’〕에서 관계 맺기〔‘커미트먼트(commitment)’〕로 나아가고 있다. 재생과 치유와 성장의 여행을 시작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디태치먼트의 세계에 좌초해 있는 우리에게 커미트먼트의 낙관적인 판타지를 제시한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부터 레이먼드 챈들러까지,
재즈와 클래식과 영화부터 요리와 고양이와 달리기까지
오늘의 하루키가 시작된 바로 그곳
하루키가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하루키의 등장인물들은 하루키가 애호하는 음악을 듣고, 하루키가 좋아하는 메뉴를 공들여 만들고, 하루키가 좋아하는 자동차를 타고, 하루키가 사랑하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하루키처럼 평범한 나날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착실하게 마주한다. 또한 하루키는 『양을 쫓는 모험』의 ‘양 사나이’,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 도루’, 『댄스 댄스 댄스』의 ‘마키무라 히라쿠〔Hiraku Makimura,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애너그램〕’ 등 자신의 분신적 인물을 창조하고, “내 영혼의 형제”라 부르는 절친한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으로 여러 ‘와타나베 노보루’를 등장시킨다. 에세이는 물론이고 장단편소설에 세심하게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 뮤지션과 명곡, 감독과 영화, 요리와 술과 자동차 등에는 그의 개인적인 역사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골고루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는 이처럼 하루키가 사랑하여 하루키적 특성의 기원이 된 것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표제어로 흥미롭게 포괄한다.
하루키는 특히 ‘번역’을 통해 자신의 문학 토대를 닦았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표제어를 살펴보면 그가 이토록 번역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밖으로 열린 창”을 읽는 “궁극의 숙독”으로 “소설을 쓰는 데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장편소설 14편, 단편소설 90여 편을 비롯해 많은 글을 쓰면서도 부지런히 번역하여 그 작품만 70편을 훨씬 웃돈다. 하루키가 직접 골라서 번역한 책들뿐만 아니라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리처드 브라우티건’, ‘커트 보니것’, ‘레이먼드 챈들러’, ‘J. D. 샐린저’, ‘그레이스 페일리’, ‘크리스 반 알스버그’ 등 그가 경애하고 강하게 영향받은 작가들도 표제어로 빠짐없이 포함했다.
◎ 책 속에서
구멍|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계로 이어지는 입구.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우물, 『기사단장 죽이기』의 석실 등이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은 구멍을 지나 ‘저쪽’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다. 즉 이계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심층심리를 의미한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창작 행위 자체를 ‘구멍을 판다’, ‘지하실로 내려간다’라고 표현하며, “그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으면 모두와 공통되는 기층基層에 닿을 수 있고, 독자와 교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84쪽
나쓰메 소세키|하루키가 일본 작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얘기했다. 근대 자아를 의식한 후기 작품보다는 전기 3부작인 『산시로』, 『그 후』, 『문』을 좋아하며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문』의 부부를 떠올리며 썼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한 작품으로는 『갱부』와 『우미인초』를 들었다.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주인공 다무라 카프카가 『갱부』에 관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라고 말한다.
―116쪽
돌고래 호텔|『양을 쫓는 모험』에 나오는, 삿포로의 스스키노 주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텔. 정식 명칭은 ‘돌핀 호텔’이며 지배인은 양 박사의 아들이다. 원래는 홋카이도 면양회관으로, 작고 개성이 없는 숙소였다. 속편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스타워즈〉의 비밀 기지같이 거대한 고층 호텔로 변모한다. 양 사나이가 사는 곳이라고 팬들이 찾아다니지만 실재하지는 않는다.
―179쪽
마키무라 히라쿠|『댄스 댄스 댄스』에 등장하는 인기 없는 소설가. 안이한 청춘 소설 작가에서 돌연 실험적 전위 작가로 전향하고, 가나가와 현의 쓰지도에서 살아간다. 유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애너그램인데, 실제로 하루키가 잡지 등의 작가로 일할 때 썼던 필명이다. 참고로 군조신인문학상에 응모했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紀’라는 필명을 썼다.
―229쪽
사라지다|하루키 작품에서는 여성이나 고양이 등의 ‘갑작스러운 실종’이나 ‘상실감’이 중요한 주제가 된다. 얼마쯤 지나면 누군가가 사라진 것을 찾기 시작하고, 이윽고 세계의 이면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바로 하루키 문학의 기본 구조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비롯해 『양을 쫓는 모험』,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기사단장 죽이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
―302쪽 아사히카와|『노르웨이의 숲』에 등장하는 레이코 씨가 ‘아사히카와’에 관해 “그곳은 왠지 잘못 만들어진 함정 같은 곳이잖아?”라고 얘기한다. 언뜻 심한 표현 같지만, 하루키 작품에서 ‘구멍’은 ‘이계로 통하는 입구’로 중요한 키워드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도 주인공이 양 사나이를 만나는 ‘주니타키초’로 가기 위해 삿포로에서 한 번 아사히카와를 경유하는 것으로 보아, 원더랜드로 통하는 입구가 있는 장소로 아사히카와가 선택됐을지도 모른다. ―367쪽
양 사나이|『양을 쫓는 모험』과 『댄스 댄스 댄스』에 양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간. 양의 모피를 머리부터 푹 뒤집어썼다. 주인공 내면의 어린아이inner child 같은, 이계의 은둔자. 하루키가 “나의 영원한 히어로”라고 말하는 분신적 캐릭터로 그림책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와 『이상한 도서관』, 단편소설 「시드니의 그린 스트리트」, 수필 「스파게티 공장의 비밀」(『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수록) 등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398쪽
쥐|『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에 등장하는 ‘나’의 친구. 아시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설가 지망생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여러 지역을 방랑한다. 이들 작품과 속편인 『댄스 댄스 댄스』까지를 ‘나와 쥐’ 4부작이라고도 부른다. 주인공인 ‘나’의 분신 같은 존재다.
―506쪽
통과하다|‘벽을 통과한다’는 하루키가 자주 쓰는 ‘우물로 내려간다’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키워드다.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벽을 통과하는’ 이야기입니다. 견고한 돌벽을 통과해 지금 존재하는 장소에서 다른 공간으로 가버릴 수 있다는 것…… 그 이야기를 가장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벽을 ‘통과하는’ 게 가능할까? 하루키가 창작 과정에서 실제로 우물 깊숙이 들어가, 스스로를 보편화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해 다른 장소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워프 현상’이 모든 작품의 공통 주제이기도 하다.
구매가격 : 15,120 원
메멘토 모리
도서정보 : 피터 존스 | 2019-10-08 | EPUB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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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당신이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삶인가 죽음인가?”
Memento Mori,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무리 수명이 길어지고 의학이 발달해도 여전히 두려운 나이듦과 죽음
2천 년 전 짧고 굵게 살다 간 로마인들의 지혜에 귀기울인다
서양 고전학의 대가가 들려주는 고단한 인생 고개 넘어가는 법!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 때가 된 올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나무에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로마인은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로마인들의 삶은 짧고 고단했다. 신생아의 3분의 1이 출생 한 달 이내에, 절반은 5세 전에 질병, 영양 결핍, 열악한 위생으로 사망했다. 게다가 전체 인구의 50퍼센트가 20세 전에, 거의 80퍼센트가 50세 전에 사망했다. 반면 오늘날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8세 미만보다 더 많으며 전체 인구의 20퍼센트가 넘는다. 죽음을 언제 어디서나 일상적으로 접했던 로마 시대 사람들은 죽음과 질병, 그리고 이를 이겨내야 도달할 수 있는 노년에 관해 부단히 사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고대의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사료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네로 황제의 조언자였던 철학자 세네카는 노년과 죽음을 주제로 많은 저작을 남겼다.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키케로, 역사가 플루타르코스, 로마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호메로스, 플라톤, 히포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인들의 생각도 소개한다. 또한 지식층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껏 남아 있는 라틴어 비문들을 통해 가정주부, 빵 장수, 백정, 어릿광대 등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살펴본다. 수명이 배로 늘어난 오늘날에도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노년과 죽음의 문제들을 2천 년 전 로마인들도 똑같이 고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로마인의 삶
수명이 짧았던 만큼 로마인들의 삶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로마법에 따르면 가장은 집안의 모든 사람과 물건에 대해 완전한 권리를 소유했지만, 사실 아들들의 70퍼센트가 25세 전에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아버지와 서로 갈등하는 아들보다도 후견인의 보호 아래 사는 미성년자가 많았다. 지배층 가문에서는 청년들을 필사적으로 일찍 사회에 진출시키려 했으며, 실제로 이들은 본인이 선택하면 매우 이른 나이에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로원 의원의 자제는 17∼18세에 관직을 맡을 수 있었다. 키케로는 법정에서 열일곱 살 검사를 상대로 의뢰인을 변호했다. 14세에 수련을 시작해 5년 후 아직 십대의 나이로 의사가 된 사례도 있다. 네로는 황제에 취임했을 때 17세였고 엘라가발루스는 14세였다. 국가 체제가 지배층 청년들이 최대한 빨리 성공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었음을 고려하면 로마 시대에 엘리트 반항 세력이 거의 없었던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기존 체제는 매우 잘 작동해왔으며 이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는 일은 전혀 득 될 게 없었던 것이다.
키케로: 자식의 죽음 앞에서 드러낸 인간적인 모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그만큼 많이 죽었으니, 고대의 부모는 아이의 죽음을 오늘날만큼 슬퍼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하기 쉽다. 로마 사회에서도 공식적으로는 키케로의 말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어린 자식이 죽으면 상실감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하물며 갓난아기라면 한탄조차 삼켜야 한다.” 로마인이 상심에 대처하는 올바르고 굳건한 모범을 세우는 것이 지배층 남성의 의무였다.
그러나 사실 키케로는 자신이 한 말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사랑하던 딸 툴리아가 출산 도중 사망하자 키케로는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 은거했을 뿐만 아니라 성소를 지어 딸을 신격화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보기에 이는 너무 과했다.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철학자가 딸이 죽었다고 칩거하는 것도 모자라 딸을 신격화하려 들다니, 가족의 죽음이라는 ‘흔한’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는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키케로의 명망이 깎이고 있다며 비판하는 친구의 편지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 어째서 그리도 비판적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네. 나는 슬퍼하고 있으면 안 되나? 내가 슬픔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나?” _79쪽
카토: 노년은 신들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다
수명이 짧았기에 노년은 종종 신들이 주는 귀중한 선물로 여겨졌다. 호메로스와 키케로를 비롯한 여러 문인과 철학자에게 노인들은 풍부한 경험과 지혜의 원천이었다. 키케로의 대화록 『노년에 관하여』에서 대 카토는 ‘활동적인 일을 할 수 없고, 신체가 쇠약해지며, 거의 모든 쾌락을 박탈당하고, 죽음이 멀지 않다’는 노년에 대한 네 가지 비판을 차례로 반박한다. 활동적인 일에는 젊음과 체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수행하려면 노인의 판단력과 경험과 권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년에 중요한 것은 체력보다도 정신력이며, 사람은 지식을 쌓고 배움을 지속하는 한 나이듦을 의식하지 않는다. 노년에는 예전만큼 쾌락이 중요하지 않으며 성욕, 야망, 연회나 음주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만큼 만취와 불면의 밤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사후세계에 관해서는 가능성이 두 가지뿐인데, 하나는 죽음으로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고 하나는 죽음이 영혼을 영생의 장소로 인도하여 행복하게 지내게 하리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우리가 두려워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대 플리니우스: 짧은 인생은 자연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이다
반면 언제나 중도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두 극단인 청년기와 노년기 모두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청년은 경험이 모자라서 미숙하며, 그렇다고 노인이 되고 경험을 쌓아도 저절로 지혜가 생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은 인생의 전성기에 있는 남자의 가치를 쓸모없는 늙은이와 끊임없이 대조해 보여주곤 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어느 도시를 습격한 군인들의 행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늙어빠져 죽을 때가 다 된 남녀들을 끌고 나왔다. 전리품으로는 가치가 없을지언정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기엔 충분했으니까.” 유베날리스는 노년기 정신과 육체의 쇠락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인간의 가장 허황한 소망 중 하나는 장수다. 장수의 결과가 무엇인가? 알아볼 수 없게 주름지고 쳐진 흉한 얼굴, 덜덜 떨리는 사지와 목소리, 음식 맛도 술 맛도 모르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질병. 귀가 깜깜하니 노래를 들어도 극장을 찾아도 의미가 없다.”
세네카: 자살은 상황에 따라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죽음을 낯설거나 두렵게 여기지 않았던 로마인들에게는 자살 역시 금기가 아니었다.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적절한 상황이라면 자살은 훌륭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신체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분투하는 영혼을 풀어줌이 옳지 않을까? 일찍 죽는 것보다 비참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금의 시간을 판돈으로 걸어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니 이를 거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장수를 누리고 죽기 직전까지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주 드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말년을 무기력하게 가만히 누워서 보낸다. 그렇다면 인생의 일부분을 상실하는 것이 인생을 직접 끝낼 권리를 상실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존엄사 논쟁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주장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 소 카토, 루크레티아, 아그리피나 등 자신의 명예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자살한 로마 유명인들을 소개하는데, 특히 페트로니우스의 사례에서는 현대적인 개인주의와 반항 정신이 드러난다. 네로 황제의 측근이자 당대 가장 세련된 쾌락주의자였던 페트로니우스는 반역자로 몰려 자결 명령을 받자 손목을 긋고 만찬장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후에 공개된 그의 유언장에는 평소 황제에게 바치던 아첨 대신에 네로가 잠자리를 한 남녀의 이름과 그들의 도착적 성행위가 낱낱이 나열되어 있었다.
유산 사냥꾼에서 상조회까지, 죽음을 둘러싼 로마의 독특한 문화
로마의 귀족들은 가문의 재산이 분산되지 않도록 자식 수를 적게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험성이 있었는데, 높은 사망률 때문에 남자 상속인이 한 명도 없게 될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산은 딸들이 다른 가문과 혼인할 때 지참금으로 챙겨가면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필요한 경우 성인 남성을 양자로 들이곤 했지만, 그럼에도 어느 세대에서든 귀족 가문의 75퍼센트가 사라지고 새로운 가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곤 했다. 홀몸의 노인은 상속인 자리를 노리고 접근하는 유산 사냥꾼의 표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돈벌이 수단이 유행하면서 거꾸로 사회적 영향력을 얻기 위해 일부러 자식과 의절하거나 유언장을 미끼로 남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영악한 사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로마의 인구가 늘어 무덤 값과 장례식 비용이 오르면서 오늘날과 같은 상조회가 등장했다. 가입비와 월 회비를 잘 지불한 사람은 죽은 뒤에 약속된 비용만큼의 장례식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6개월 회비를 체납하면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자동 탈퇴되었다. 이런 상조회들은 정기적으로 파티를 주최하는 사교단체 역할도 했다.
원자론에서 기독교까지, 사후 세계관의 변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종교 경전이 없었기에 사후세계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 사후세계는 지하에 있을 수도, 이 세상 끝에 있을 수도 있었다. 에피쿠로스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인간이 원자에서 와서 원자로 돌아갈 뿐이라고 믿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영혼’은 실체가 아니라 죽은 이의 허상이다. 일부 사상가들은 죄를 저지른 자는 죽은 뒤 벌을 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후에 영혼이 새로운 삶을 누린다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오르페우스 숭배 집단에서였다. 이 집단에 속한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영혼이 인간이나 동물로 환생한다고 믿어서 엄격한 채식을 했다. 한편 이시스나 태양신 미트라의 비밀 종교는 입회자에게 죽은 후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고 약속했으며,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독교의 사후세계로 이어졌다.
당신의 삶에 하루하루를 더하지 말고, 당신의 하루하루에 삶을 더하라
오늘날 대중매체가 알려주는 노년의 대처법은 로마 철학자들이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단을 조절하라, 사람들과 어울려라, 몸과 마음이 깨어 있도록 활발히 움직여라. 그에 더하여 산아 제한과 위생 및 생활수준 향상으로 나이듦의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엔 죽음을 마주하게 되며, 뭐든 뜻대로 될 것 같은 이 세상에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한다.
바로 이것이 현대인과 로마인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로마인들은 결코 죽음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대인들에게 삶은 짧고 고단했으며 육신은 젊든 늙든 온갖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연 혹은 ‘운명’이 던져주는 것을 최대한 기품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키케로는 노년의 죽음을 오랜 여행을 마치고 뭍으로 다가가는 여행자에 비유했으며, 스토아주의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이렇게 썼다.
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그러니 너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자연이 너에게 의도한 대로 쓴 다음 흔쾌히 쉬러 가라. 때가 된 올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나무에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 _254∼255쪽
구매가격 : 12,000 원
에스에프 에스프리
도서정보 : 셰릴 빈트 | 2019-10-0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장르 경계를 허무는 장르, 사유 체계를 흔드는 상상
SF 마니아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줄 SF 비평 가이드
앞으로 발생할지도, 발생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경험·현실·상상적 세계를 낯설게 그려 내는 장르
여덟 가지 핵심 개념으로 보는 SF 입문 가이드
◎ 도서 소개
언제까지 "기발함“, ”새로움“으로 SF를 설명할 것인가?
우리에게도 SF를 말하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다!
‘SF 불모지’라는 수식어가 단번에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 한국은 SF 붐이다. 『개미』에 이어 『신』, 『나무』,『고양이』 등으로 출간되는 즉시 베스트셀러에 그 이름을 올리는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번역 소설 및 한국 소설들이 안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고, 휴고상, 네뷸러상등 SF와 판타지 팬덤에서만 알려진 것이라 생각했던 해외 SF 문학상들이 한국에서도 권위를 가지며 성공적인 마케팅 요소로 편입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말한다. SF는 어렵다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단 독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 막 일기 시작한 SF의 인기에 더해 신간 리뷰들이 쏟아지지만 이 장르를 설명할 언어가 마땅치 않다. 늘 “새로움”, “놀라움”이라는 수사가 반복된다.
『에스에프 에스프리』는 이제 막 SF 장르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SF를 어떻게,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서 읽으면 좋을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장르 가이드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SF를 읽는 즐거움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적절한 언어를 제공해 준다. 한국에 번역된 SF 장르를 설명하는 대부분 책들이 ‘연대기 순으로 SF를 설명해 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SF의 새로운 의미를 긷는 데에 한계가 있다. 『에스에프 에스프리』의 해제를 쓴 정소연 작가는 이 책이 “시간적 설명보다는 개념적 설명 방식”을 취하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SF라는 장르가 특히 작가와 독자 간의 협상 내지는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해 왔고, 작가와 독자, 때로는 출판사와 시장, 이론가들이 함께한 이 실천공동체들이 바로 오늘날 SF라는 장르를 만들어 온 과정을 여러 작품과 에피소드로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이 포화한 시대, 인지적 소외, 메가텍스트, 사변성, 실천공동체, 가치에 대한 신념, 변화, 가능성의 문학이라는 여덟 가지 개념으로 각 장을 살펴보면서 대표적인 작품에 대한 꼼꼼한 비평을 실었다.
과학, 인지적 소외, 메가텍스트, 사변성, 팬덤, 신념, 변화, 가능성
SF를 읽을 때 생각하면 좋을 여덟 가지 개념들
『에스에프 에스프리』 1장은 초기 SF 작품이라 할 만한 쥘 베른, H. G. 웰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고, ‘SF’라는 이름이 전설적인 편집자 휴고 건즈백의 손에서 어떻게 탄생하고 널리 유통되어 정착되었는지 소개한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소설(SF) 장르는, 그 내부에서 변화하는 과학기술 환경과 함께 무엇을 ‘SF’로 볼 것인지에 관한 논쟁이 늘 끊이지 않았다. 1장에서는 이러한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여러 실천공동체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총체적이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그물망”의 형태를 희미하게 보여 준다.
2장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에서는 과학이 SF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핀다. 에디슨이 특허 수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벌인 마케팅 쇼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온 충격까지, 과학과 일상의 관계 변화를 보여 주는 당대의 대표적인 예들을 소개하며, 과학기술 사회의 급격한 변화가 인간 인식에 가져온 충격과 기대가 어떻게 문학에 반영됐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토양에서 발전한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는 “상상의 미래나 다른 세상을 창조해 내는 기술을 통해” “인간 행동과 사회구조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와 … 그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3장 「인지적 소외」에서는 SF 비평에서 유명한 다코 수빈의 ‘인지적 소외’ 개념을 다룬다. 수빈에 따르면 “SF란 경험적 세계와의 급진적인 불연속성을 전제로 한 문학”인데 그 불연속성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소설은 “현실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 관한 것”이다. SF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즐거운 체험과 지적인 자극, 그리고 섬뜩한 느낌 사이를 줄타기하며 소외 현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데, 3장에서는 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비평 이론으로 포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게 ‘인지적 소외’라는 개념으로써 세계를 새롭게 보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라는 의미를 SF에 부여한다.
4장 「메가텍스트」는 왜 그토록 많은 독자들이 SF에 진입하기 어려워하는지를 우회적으로 보여 준다. SF를 이해하기 전에 도달해야 하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SF라는 장르를 떠올리는 순간 일련의 상징들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과 그가 초기의 작품들에서 발표한 로봇 3원칙(①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②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SF 소설과 영화에서 반복되는 외계인 침공이라는 서사 등이 이후 모든 SF의 로봇의 정의와 외계 생명의 특성을 제한한다. 이러한 메가텍스트의 존재는 초심자에게 진입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메가텍스트를 아는 것이 각 작품들이 갖는 “의미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풍부”하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5장 「사변소설」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건즈백이나 캠벨 같은 권위적인 편집장의 기준에 맞춰진 소설이 아닌 다양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었던 점을 변화의 중요한 계기로 설명한다. 1960년대 영국 《뉴 월즈》편집장이었던 마이클 무어콕이 관심을 기울인 “실험적이고 미학적으로도 복잡하며 사회적으로도 관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SF”가 사변 소설(Specultative Fiction)이라는 개념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들 소설이 ‘과학’과 관계 맺는 방식은 “미래의 발전을 추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그것의 목적을 윤리적으로 논평하기 위해 과학의 언어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사변적인 소설로서 SF가 SF 장르의 경계를 흐리면서 “사회문화적 변화”와 “상상력이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미학”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설명한다.
6장 「실천공동체」에서는 SF 팬덤을 다룬다. SF 팬덤 안에는 다양한 실천공동체가 존재한다. SF 장르는 팬덤과 떼려야 뗄 수 없는데, 휴고상, 월드콘, 팬진 문화 등 SF 산업의 주요 행사 중 일부는 팬덤에서 비롯했을 정도다. PC와 인터넷의 보급은 폭발적으로 팬덤을 형성하는데, 사이버공간이라는 개념과 사이버펑크라는 장르, 그리고 기술이 지배한 사회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은 이러한 SF와 새로운 기술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6장에서는 이렇게 각 시대별 팬덤의 양상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7장 「신념의 문학」은 우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현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끔 하는 SF 장르의 특성을 통해 사회적·문화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사고 실험으로서 SF의 특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장르적 세계관의 미학”은 페미니즘, 퀴어, 인종, 민족에 대한 우리의 고정된 사유를 확장시키는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SF의 확실한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조애나 러스, 어슐러 르 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등 여성 작가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신념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했음에 집중한다.
8장 「변화의 문학」은 ‘변화’를 키워드로 SF를 소개한다. 앞에서 열거한 일련의 장르적 확장을 겪으면서, 과학소설은 이전의 정의 대부분을 변화시켜야만 했다. “과학소설은 과학과 기술력이 일상에서 구현하는 변화에 반응하는 장르”이자 “인간 존재 조건의 변화에 대한 사고 실험”, “변화하는 철학적 개념에 관한 명상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 “새로운 표현 매체와 미적 이상을 포용하면서 항상 변화”하는 장르이기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또한 이 장르가 시작될 때부터 관객과 주제를 위해 리메이크되는 일이 매우 흔했다는 점 때문에 “결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장르이다.
9장 「과학소설성」에서 저자는 과학소설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이제는 SF가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가 아니라 “동시대의 현실을 묘사하고 그 현실에 반응할 수 있는 어휘를 제공”하는 장르라는 이해에는 도달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SF의 상상들이 현실도피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답한다. 과학소설이 “우리가 현재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결정에 비판적으로 개입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면, 도피하려는 욕구는 망상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SF가 가능성의 문학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16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대기, 토론 질문, 참고 문헌까지!
초심자와 마니아를 아우르는 친절하고 지적인 SF 가이드
과학소설이 얻기 시작한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얼마나 변화해 왔을까? SF 작가이자 새로운 SF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여러 공모전의 심사위원을 지낸 정소연 작가는 이 책의 해제에서 “SF라는 장르가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과학소설인가’라는 중요하되 다소 소모적인 두 가지 질문에 오랫동안 거듭 답해야 했”던 고충을 썼다. 동시에 “과학소설은 문학 장르이자 예술로서 계보가 있고”, “문학연구의 주제로서의 과학소설에는 확고한 비평과 이론”이 있음을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반가움을 표현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문학이론가들의 SF 장르 비평 작업이 시작되고 있으며, 이 흐름은 영미권과 같이 출판 시장과 독자라는 서로 다른 실천공동체들의 상호작용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리라 예상된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과학 분야 출판 시장의 성장, 과학자와 대중이 만날 기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질적으로 다양화되었다. 이는 과학기술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을 대중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변화다. SF와 판타지 분야에서 세계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어슐러 르 귄에 따르면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 역사학이나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우리에게 열린 우주를 제공”했고, SF는 “그곳을 거처로 삼을 수 있는, 지하실에서 다락방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문학예술의 형태”이다. 즉, SF는 “세상을 경험하는 방법(이슈트반 치체리로나이)”이며, 과학기술과 함께 변화하는 현실에서의 SF는 우리 사회와 문화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에스에프 에스프리』는 항상 변화하는 SF 장르를 탐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광범위한 개념과 도구를 제공하며 영미 소설을 중심으로 한 SF 작품의 연대표와 각 장에서 다루는 개념들을 소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토론 질문과 더 읽어 보면 좋을 참고 문헌 등을 싣고 있어, SF 입문자부터 더 깊이 살펴보고 싶은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 추천사
『에스에프 에스프리』는 내가 어떤 장에 속해 있는지 선명하게 알게 해 준다. 지적이고 깊이 있으며 다양한 영역을 섬세하게 다룬다. 내내 몰입하여 읽었다. 애매하게 느끼고는 있었지만 설명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고전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는 젊은 비평서며, SF가 과학기술, 젠더, 탈식민주의, 인종,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SF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여다보기를.
_김보영(SF 작가, 『천국보다 성스러운』, 『진화신화』 저자)
『에스에프 에스프리』는 우리를 SF 비평의 은하수로 초대한다. 그러나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을 기대한다면 당황하게 될 것이다. SF의 복잡하고 비균질적인 우주는 결코 하나의 관점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셰릴 빈트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가이드를 통해 SF의 세계를 여러 각도에서 조망한다. 변화하고 확장되는 이 세계는 단순한 몽상과 예언 그 이상이다. 『에스에프 에스프리』는 SF를 읽는 방법에 목말라 있던 독자로서 환영할 수밖에 없는 장르 입문서다. 아름답고 심오한 SF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은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_김초엽(SF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SF라는 장르가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과학소설인가’라는 두 가지 중요하되 다소 소모적인 질문에 오랫동안 거듭 답해야 했던 입장에서, 『에스에프 에스프리』의 출간이 더없이 반갑다.
_정소연(SF 작가, 『옆집의 영희 씨』 저자)
◎ 책 속으로
이 책은 창의적인 힘(저자, 감독, 예술가)과 마케팅 필수 요건(제작자, 네트워크 브랜딩, 편집자) 및 청중(팬층 및 그 이상까지도)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의해 적극적으로(그리고 종종 경쟁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항상 진행 중인 장르로서 SF를 탐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관점에서 이 복잡한 장르를 살펴보겠지만,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변에 도달하려 애쓰기보다는, SF의 다양한 비전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해 줄 프리즘적인 시각으로 답을 찾아 나가려 노력할 것이다. 이때 각각의 비전은 이 장르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설명이 되고, 전체로서의 비전은 단순하거나 단일한 이미지가 아닌 오히려 복수의 이미지로서 때로는 생산적인 긴장 가운데 모순된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1. 과학소설이란 무엇인가? (p. 17)
이상적으로 볼 때, 우리는 침략이 가져온 이러한 변화들이 SF가 가져다줄 수 있는 문화적인 이익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상의 미래나 다른 세상을 창조해 내는 기술을 통해서, SF는 우리에게 인간 행동과 사회구조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와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을 선택했던 방법, 앞으로 계속해서 그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생각해 보기를 강요한다. SF 장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문화와 가치의 좁은 틀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잠재력을 발현하고 최선을 다해서 더 포괄적이고 이질적으로 인류를 이해하도록 장려함으로써 사건 서술에서 인간 관점의 탈중심화를 돕는다.
2.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 (p. 42)
수빈은 SF를 “인지적 소외의 문학”[p. 4]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연극에서의 관객 소외에 관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서사 기법에서 발전시킨 개념인데, 관객 소외란 관객들이 극의 설정이 단순히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의 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수빈은 실험적인 방식보다 뭔가 더 광범위한 것을 의미하고자 할 때 ‘과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지를 과학의 또 다른 말로 제안한다. 그는 텍스트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차이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합리적인 외삽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수빈에게 진정한 SF란 사회적으로 변화 가능한 완전한 세상살이의 미래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는 이야기가 “작가의 현실 속에서, 그리고/또는 그가 몸담은 문화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는 하나의 ‘실제 가능성’”에 부합하도록 요구하는 하드 SF의 제한적인 태도에 회의를 보인다.
3. 인지적 소외 (pp. 66-67)
SF를 개념화하는 각각의 방법은 우리가 SF로 인식하는 텍스트에서 반복되는 몇 가지 특성, 즉 이것이 특정 모티프 또는 도상의 조합인지, 언어 사용의 고유한 방식인지, 또는 주제적 선입관 및 비판적 방향의 반복되는 조합인지 등에 중점을 둔다. 물론 장르의 예측 가능성은 SF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중적인 장르는 어떤 것이든 상업적으로 성공한 특징을 반복해 형성되며, 실제로 최근 장르와 다른 소설들 사이에 줄어든 서열은, 문학은 혁신적이고 놀랍지만 장르는 공식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소설은 작가, 독자, 편집자 및 팬 들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반복 문제에서 다른 인기 장르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 놓인다.
4. 메가텍스트 (p. 100)
‘사변소설’이라는 범주는 기술적 변화만큼, 혹은 기술적 변화보다 더 사회·문화적 변화를 강조한다. 사변소설은 상상력이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미학에 관심이 있으며, 그 주제는 과학기술 신화의 문화적 힘에 관한 것이다. 사변소설은 논리적 외삽은 물론이고 비합리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의 차원에 대한 조사를 장려하는, SF를 구상하는 방식이다. 함께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와 마찬가지로, 사변소설은 우리가 평범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나누는 담화를 비판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단지 허구의 세계와 우리 자신의 세계 간 차이에 관해 그리는 소설이 아니다. 그 속에서는 ‘현실’ 그 자체의 존재론도 불안정하다.
5. 사변소설 (pp. 159-160)
실천공동체를 통해 SF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더는 어떤 단일한 것을 SF라고 부를 수 없으며, 따라서 다양한 수준의 헌신을 아우르면서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다양한 SF를 이론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준다.
6. 실천공동체 (p. 193)
『그림자 인간』은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등 성소수자]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SF 장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가운데 선정하는 람다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다중세계 콩코드 사회를 구성하는 다섯 개의 성별을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때 생식기(난소/고환), 제2의 성징(가슴, 얼굴 털, 근골) 및 염색체의 가능한 조합을 통해 성별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부여하고 그에 해당하는 대명사를 제공하면서, 각각이 별개의 성별이며 모든 성별이 세계에서 균형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글자 그대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섯 개의 성별은 펨[fem](ðe, ðer, ðerself), 험[herm](?e, ?er, ?imself), 맨[man: 남성](he, him, himself), 멤[mem](þe, þim, þimself) 그리고 우먼[woman: 여성](she, her, herself)이다. 이 다섯 가지 성별 정체성은 “동일”하거나 “반대”되는 성별의 특정 조합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정의되는 아홉 가지의 알려진 성적 선호(비[bi], 데미[demi], 디[di], 게이[gay: 동성애자], 헤미[hemi], 옴니[omni], 스트레이트[straight: 이성애자], 트리[tri], 유니-디파인드[uni-defined])를 만들어 내는데, 동일성과 반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인용부호 (“ ”)는 단지 근사치를 나타낼 뿐임을 밝혀 둔다. 심지어 이 세계에서조차 어떤 성 정체성은 소외되고, 옴니가 되는 것은 최악의 경우 문란하거나 적어도 우유부단한 정체성을 함의한다. 이러한 많은 순열 속에 남성과 여성,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같은 친숙한 단어들이 포함된 것은 이러한 정체성이 자연의 필수적인 사실이 아니라 문화와 협약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7. 신념의 문학 (p. 218)
SF를 변화의 문학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일련의 정형화된 협약이라기보다는 현실에 관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 문화 속의 변화에 대한 장르의 반응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기대감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 많은 징후들 속에서, SF는 평범한 현실과 다른 무언가, 즉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다.
8. 변화의 문학 (p. 271)
과학소설이 그런 가혹한 현실로부터 일시적인 탈출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책 전체에서 탐구했듯이, SF는 여러 면에서 그 자신을 표현한다. SF는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 작가들이 손에 쥐고 있던 강력한 도구였지만, 한편으로 기술 관료적인 규칙이라는 엘리트주의적 환상 또한 촉발시켰다. 그러나 케셀의 이야기가 제안하듯이, SF의 가장 공식적이고 진부한 환상조차도 현재의 불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대한 저항의 씨앗을 품고 있다. 비록 그 저항이 그렇지 않으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를 세상의 비전을 지키는 작은 공헌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9. 과학소설성 (p. 293)
과학소설은 특유의 비유와 모티프의 장르다. 또한 기술, 주관성, 역사 및 사회적 힘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이고,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온 가치와 구조를 소외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세계관이다. 그뿐 아니라 늘 그 자체의 역사 그리고 가까운 형태와 대화를 나누는 심미적 전통이고, 우리가 상상적인 비전과 실세계 사이에서 펼쳐지는 변증법적 교류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치적 신화 만들기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과학소설은 이러한 면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SF의 어떤 작품도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서술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각각을 생산적인 긴장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교류를 통해 SF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해도 결코 도달하지는 못하는 무언가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9. 과학소설성 (p.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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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도서정보 : 염승숙 | 2019-10-08 | EPUB파일
지원기기 : PC / Android / iOS
“그 말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사랑은 조금 더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짐작과 오해를 무릅쓰는 신중한 사람들의 이야기
지난여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환상적이고도 핍진하게 그려낸 『여기에 없도록 하자』로 현실과 소설을 엮는 독보적인 감각을 장편소설로도 완벽하게 선보인 바 있는 작가 염승숙. 등단 15년차, 기복도 쉼도 없이 또박또박 자신만의 보폭으로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작가는 이제 한국문단의 가장 믿음직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환상과 실재를, 다정과 비정을, 재미와 리듬을 씨실과 날실 삼아 특유의 문체와 함께 매끄럽게 직조하는 탁월한 감각을 가진 그가, 소설집으로는 『그리고 남겨진 것들』 이후 5년 만에 네번째 소설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염승숙의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진 소설세계를 경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집이자, 상실 이후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 곡진하게 쓴 비망록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불가해한 이 세계의 면면을, 읽을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 그럼에도 그것이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극도의 섬세함과 예민함으로 감각해 궁굴리고 공글린다. 평론가 오은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고, 들리지 않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존재하지 않는 구멍에 자발적으로 빠진 이 작가”는 미풍에도 흔들리는 풍부한 감수성과 무(無)의 소리조차 감각하려는 집요함을 통해 천천하게 다가오는 진실의 순간을 기다리고, 기록한다.
가만히 안으면 마음의 뼈가 고스란히 감각될 것만 같은
무심한 듯 절박하게 전하는 안부와 위로, 염승숙 소설의 근사한 목소리. _조해진(소설가)
잃은 것이 잊은 것이 되지 않도록
“지구라도 꽉, 붙들고 싶은 심정이 되어” 써내려간 비망록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를, 작가 염승숙의 행보를 설명할 단어로 ‘포착’만큼 걸맞은 표현은 없을 듯싶다. 포착(捕捉). 잡고 또 잡음. 얼핏 포착이란 단어는 순발력을 함의하고 또 그것이 중요한 듯 보이지만, 염승숙의 세계에서 기회나 기미를 재바르게 알아차리는 것보다 더욱 종요로운 일은 ‘놓지 않음’에 있다. 세계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하되 예단하지 않을 것. 또한 포착하고 단면을 스케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단면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다각도로 헤아리는 것이 바로 염승숙만의 차별화되고 도드라지는 단편 미학이다. 염승숙의 소설은 빠르게 이해에 다다르지 않고, 빠르게 해소해버리지 않으며, 빠르게 화해하지 않는다.
세이는 그저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한다. 자신이 짐작하는 것이 다만 짐작에 그칠 뿐 진실은 아니며 진실에 가깝지도 않으리란 사실조차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짐작에 짐작을 거듭해, 최선을 다해 오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_「오래전 고독」에서
연작소설 「오래전 고독」과 「비하인드 더 신즈―오래전 고독」은 세월호 참사를 담론적 배경으로 유산의 아픔을 가진 ‘세이’와 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제이’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신의 아픔을 남편에게조차 공유하지 못하는 세이와 어느 날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그의 남편 ‘기영’. 오해와 짐작을 거듭하고 그 오해와 짐작조차 다시금 회의하지만, 작가가 내려놓는 포석 위를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이는 소모되고 반복되는 양상이 아닌 오해의 기능을 발견하는 궤적이 된다. 오해의 윤리가 탄생하는 자리가 된다.
다만, 나는 다만 이해하고 싶어. 오해로 그칠지라도 짐작에 불과할지라도. 그게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 이건 자책이 아니야.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야. 이해하고 오해한 고독의 시간들을 내 것으로 그려 오려 한다. _「비하인드 더 신즈―오래전 고독」에서
비극적 폭력의 세계에서 오해와 짐작은 체화된 무력이 아니라 이에 맞서는 가장 온당한 강력이기도 할 터. 오래전부터 이어진 고독을, 어쩌면 생래적일지도 모를 고독을 다룬 이 소설들은 「추후의 세계」와 「거의 모든 것의 류」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옛 연인과의 한나절 해후를 담은 「추후의 세계」는 범죄로 아이를 잃은 ‘우중’과 우연으로 커리어가 몰락한 ‘나’의 비극 이후의 재회담이다. ‘하진’의 “눈과 손에서 쓰이는 단 한 줄의 아름다운 문장”이 되고 싶지만, “모르는 사람이 너무 갑자기 마음에 들어버리면 말로 표현 못할 자기혐오가 동반”되고 마는 ‘류’를 그린 「거의 모든 것의 류」 역시 사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분투를 담은 묵직한 소설이다.
이 엄혹하고 무자비하고 불가해한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피어나는 로맨스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첫번째 ‘읽을 수 없는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씁쓸함을 동반한 이 로맨스는 난데없음이 아니라 차라리 필연적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은 오해라는 사랑을 쥔 사람들이자, 비극 이전의 온기를 기억해두었다 지금으로 옮겨오려는 사람들이며, 그렇기에 가장 내밀한 형태의 사랑은 연대의 모습으로까지 뻗어나간다. 작가는 “항상 자신과 자신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사람들과 “묻지 않고 외면했던 무수한 순간들”(「작가와 그의 문제들」)을 기어코 소환해 절박한 심정이 되어 쓰고서 ‘배려’의 다른 얼굴일 ‘무심함’을 가장해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그가 떠난 뒤에야 괜한 눈물이 비어져나왔다. 어쩐지 분했다. 분하고 서글펐다. 모형 같고 제스처 같아서 포즈 같고 기만 같아서 차마 건네지 못했던 진심을, 변형되고 왜곡될까 두려워 쉽게 하지 못했던 위로를 무심코 부려놓고 간 그가 놀라워서. 인간이 이렇게나 어설프고 우연하고 따스하고 가여워서.” _「추후의 세계」에서
또한 작가가 가진 언어에 대한 민감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염승숙의 ‘단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세계의 단면을 인식하는 시발점이자 세계의 비揚?인지하는 첫발이 된다. 부사 ‘너무’와 ‘기어코’를 두고 한참을 고투하는 화자들은 작가의 페르소나에 다름 아니다. 부사는 정갈한 문장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탈락되기 쉬운 품사이지만, ‘번듯하고 어엿함’만을 남기겠다는 재단의 폭력에 저항하는 제스처가 되기도 한다. 비정하고 투박한 세계에 사뿐히 내려앉아 뉘앙스를 조율하는 부사는 어쩌면 이 세계에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 부사가, 부사를 달아주는 일은 소설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들 위에서는 자주 국어사전이 열린다. 작가는 일상적 입말에 내재되어 있는 폭력성의 함의를 재차 곱씹으며 이에 대항하는 다른 말을 세워본다. 무신경하고 몰인정한 언사를 통해 희미한 존재들을 지워내는 세계에서 그들의 엄존을 알려주는 지표는 다름 아닌 어떤 부사들이다. (…) 부사는 문장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작은 성분일 뿐이지만, 주성분으로만 이루어진 문장에 정서와 태도를 부여해준다. 염승숙은 다정하고 끈기 있는 부사들을 끼워넣는 방식을 통해 막말로 점철된 폭력적 언사들에 저항한다. _오은교(문학평론가), 해설 「딛고 선 땅이 흔들릴 때」에서
염승숙의 소설 속에서 어제의 상참(傷慘)은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려는 상상이 된다. 그렇기에 부서지고, 가라앉고, 추락하고, 사라지는 세계는 무참하되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점차로 많은 걸 잊고 또 무수히 잃어버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는 건 여전히 남아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뭔가”(「충분히 근사해」)를 남긴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단하기에 흔들리는 사람들, 신중하기에 오해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 근사할까”(「충분히 근사해」)라고 회의하고 자문하는 사람이야말로 언젠가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읽을 수 없이 아름다운 세계에는 아마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크게 울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앉아” “지구라도 꽉, 붙들고 싶은 심정이 되어”(「거의 모든 것의 류」)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난독의 세계”(「추후의 세계」)에 대한 목격담이자 “눈부신 두려움”을 마주한 증언의 모음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꾹꾹 써내려간 단어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의 기억술은 독자의 마음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남길 것이다.
구매가격 : 9,5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