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목이 넘어질 때

김동인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1년 06월 24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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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안 됩니다. 몸을 숨기세요. 이곳을 피하세요. 복중(腹中)의 왕자를 탄생하고 기를 귀중한 임무를 생각하세요.”
낙엽진 수풀 ― 한 발을 내어짚을 때마다 무릎까지 낙엽에 축축 빠지는 험준한 산길을 숨어서 피해 도망하기 사흘. 인제는 근력도 다 빠지고 한 걸음을 더 옮길 수 없도록 피곤한 관주(貫珠)는 덜컥 하니 몸을 어떤 나무그루 아래 내어던지고 쓰러져 버렸다.
만년종사를 꿈꾸던 백제도 이제는 망하였다.
이것이 꿈이랴 생시랴.
온조(溫祚)대왕이 나라를 세운 지 근 칠백 년, 이 반도에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솥발같이 벌려 서서 서로 세력을 다투고 힘을 다투던 한 개 커다란 나라가 하루아침에 소멸하여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이웃 나라 신라가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백제와 겨룰 수가 없으므로 비열하게도 당나라 군사까지 청하여 들여서 이 백제를 공격할 때에 ―
처음 한동안은 용케 당하기는 하였지만 원체 군사의 수효가 대상부동이라 드디어 의자왕(義慈王)은 태자와 함께 서울을 피해서 북비(北鄙)로 도망하였다.
왕이 이미 몽진한 도성으로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들의 난폭한 행동에 왕궁의 궁녀들은 모두 욕을 면하고자 대왕포(大王浦) 벼랑 위로 달려올라가서 아래 흐르는 사자수(泗?水)에 몸을 던져서 욕을 면하였다.
관주도 궁녀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 궁녀들과 같은 행동을 취하려 하였다.
함께 대왕포 바위 위에까지 달려올라갔다.
그러나 이 총망한 가운데서도 그의 동료 한 사람이 관주를 발견하고 달려와서 관주를 피신하게 한 것이었다.
“복중의 왕자를 생각하세요. 상감께서 일이 그릇되어 불행한 일을 당하시면 그 뒷일도 생각해 주세요.”
그때 관주의 뱃속에는 다섯 달 된 용종(龍種)이 들어 있었다. 아드님이 될지 따님이 될지는 알 바이 없지만 만약 이 백제라는 나라 위에 천우(天祐)가 벼락같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서는 왕와 태자와 각 왕자는 반드시 불행한 최후를 보실 것이다. 지금의 형세로는 무슨 기적적 천우가 떨어지지 않으면 이 불행은 반드시 각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후 이 칠백 년의 거룩한 사직을 위하여 칼을 들고 일어서서 신라와 당나라에 원수를 갚을 사람은 지금 관주의 복중에 숨어 있는 용종(龍種) 하나 밖에는 없다.
본 바 보고 또 들은 바 신라 장군 김유신은 백제의 서울로 들어오면서 제일 먼저 왕족이란 왕족은 모두 잡아 내어 죽이지 않았는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백제의 왕족은 아마 씨도 없이 잔멸시켰으리라. 그렇다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관주의 복중에 들어 있는 한 개 고깃덩이 밖에는, 백제 종실을 위하여 칼을 뽑아들고 나설 권리와 의무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중하세요. 몸을 피하세요. 따르는 군사가 급하외다.”
이리하여 관주는 물로 향하여 몸을 던지려던 발을 돌이켜서, 창황히 숲속으로 숨어 버렸다.
많은 동료들이 바위 위에서 통곡을 하며 몸을 던질 때 관주의 마음은 우겨내는 듯하였다. 그러나 복중의 왕종을 생각하고 강잉히 그곳을 떠나서 차차 깊은 숲으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옷을 바꾸어 입고 몸을 숨겨서 산길을 배회하기 사흘 ― 그의 나약하고 연연한 몸은 자기가 짊어진 중대한 임무만 아니면 도저히 겪어 내지 못할 쓰라린 고초를 맛보면서, 오로지 복중의 귀한 씨를 생각하여 피하고 피하여, 서울서 백여 리가 넘는 지금의 삼림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수라장의 왕도를 도망하여 많은 동료들이 수중 원귀가 되는 것을 눈앞에 보고 그 길로 이곳까지 피해 온 관주는 저녁이 기울기까지 실없이 넘어져 있었다. 그 근처에 떨어져 있는 과일들로 겨우 요기는 하였다. 그러나 태중 오 개월의 무거운 몸에 넘치는 피곤은 삭일 바이 없었다.
날이 기운 뒤에 관주는 겨우 몸을 일으켜서 마을로 내려왔다.
거기서 그가 안 바 그것은 이미 각오는 하였던 바이지만 놀라운 소식이었다.
북비로 몸을 피하였던 왕과 태자도 드디어 당병의 손에 붙들리었다는 것이었다. 왕과 태자와 대신들 팔십여 명과 백성 일만삼천 인이 당나라 군사에게 잡히어서 지금 당나라로 길을 떠났다 하는 것이었다.
무론 잡힐 것이다. 그리고 잡히기만 하면 그 생명은 부지되지 못할지니, 왕가와 먼 친척이 되는 사람까지 모두 죽여 버린 김유신의 방침을 보아서 지금 당나라에 잡혀가는 왕의 일행은, 그 마지막 길을 백제 땅에서 밟는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꿈틀!

저자소개

1900년 10월 2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51년 1월 5일 사망
데뷔 : 1919년 소설 '약한자의 슬픔'

목차소개

작가 소개
起因[기인]
皇星壇[황성단]
奇緣[기연]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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