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

윤기정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9월 16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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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선생님!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병원엘 일찍 갔다와야겠는데 어쩌나 그동안 심심하셔서… 내 얼핏 다녀올게 혼자 공상이나 하시고 눠 계세요, 네.”

명숙이가 이렇게 말하면서 영철이 머리맡에 놓인 아침에 한금밖에 아니 남았던 물약을 마저 먹어 빈병이 된 걸 집어가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철이는 명숙이가 하루 건너 여기서 오리나 되는 병원으로 약을 가지러 가는 때면 아닌 게 아니라 주위가 갑자기 쓸쓸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진종일 꼬박이 누워 있어야 찾아 오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오직 명숙이 하나만이 자기 옆에서 모든 시중을 들어 줄 뿐이니 병으로 앓는 것보다도 사람의 소리, 사람의 모습이 무한히 그리워 그것이 더 한층, 병들어 누워 약해진 자기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프고 저리게 한 적이 많았다.

오늘도 명숙이가 나간 다음 죽은 듯이 고요해진 텅 빈 방안에 홀로 누워 두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그의 돌아오기를 기다리기가 과시 안타깝고 지루하였다. 가만히 드러누운 채 곁눈질로 방안을 둘러보니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이 그나마 눈부시게 하며 발 얕은 네모진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채색칠한 사기 화병에는 일전에 명숙이가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꺾어온 진달래와 개나리꽃이 섞여서 꽂혀 있는데 약간 시들기도 하였고 더러는 낙화가 져 하얗게 빨아 덮은 책상보가 색실로 수놓은 것 같이 보인다.

모란봉을 바라보고 떼를 지어 올라가는 꽃놀이꾼들의 흥에 겨워 웅얼대고 지껄이는 남녀의 음성이며 또는 발자국 소리가 길에서 이따금씩 일어나 귀를 스치고 지나가면 뒤미처 좀 조용해진 듯 하자마자 겨우내 꽝꽝 얼어붙었던 대동강의 얼음이 봄을 맞아 녹고 풀려서 이제는 바위 언저리와 돌부리에 그루박 지르듯이 부딪치는 크고 작은 파도 소리가 제법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병은 ‰C나든 말든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산으로, 들로 치달아 내리달아 두 활개를 쩍 벌리고 마음껏 힘껏 달리고도 싶고 맨 밑바닥까지 거울 속처럼 환히 들여다 보이는 맑고 맑은 강물에 뛰어들어 팔과 다리에 맥이 풀리고 기운이 지쳐서 허덕거릴 때까지 헤엄치고도 싶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 「새살림」, 「양회굴둑」, 「거울을 꺼리는 사나이」 등을 저술한 소설가.비평가.

목차소개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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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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