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구두

김동인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7월 3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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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무서운 세상이다.
목적과 겉과 의사와 사후(事後)가 이렇듯 어그러지는 지금 세상은 말세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세상이다.
여는 살인을 하였다. 한 표랑객을…….
‘그대의 장래에는 암담이 놓여 있을 뿐이외다. 삶이라 하는 것은 그대에게 있어서는 고(苦)라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사외다. 낙(樂)? 희(喜)? 안 (安)? 그대는 그대의 장래에서 이런 것을 몽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여는 단언하노니, 그대의 장래에는 암(暗)과 고(苦)와 신(辛)이 있을 뿐이외다.
이 문간에서 저 문간으로 또 그다음 문간으로, 한 덩이의 밥을 구하기 위하여…… 혹은 한 푼의 동전을 얻기 위하여, 그대의 그 해진 신을 종신토록 끄는 것이 그대의 운명이겠사외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의 죽음조차 모욕하는 행동이외다.’ 여는 이러한 동정심으로 그 표랑객을 죽였던가.
‘그대의 존재는 세상의 암종이외다. 그대가 뉘 집 문간에 설 때에 그 집 주부는 가계부에 일전 한 닢을 더 적어넣지 않을 수가 없사외다. 그대가 어느 집을 다녀간 뒤에 그 집에서는 그대가 먹은 그릇을 부시기 위하여 소독약의 얼마를 소비하지 않을 수 없사외다. 그대가 잠을 잔 근처에는 무수한 이가 배회합니다. 많은 며느리들은 그대를 위하여 두 벌설거지를 합니다.
그대의 곁은 사람들이 피하는지라 그대 한 사람의 존재는 가뜩이나 좁은 이 지구를 더욱 좁게 합니다. 존재하여서 세상에 아무 이익도 주지 못하는 그 대는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많은 불편을 줍니다. 따라서 그대의‘존재’는‘소멸’만 같지 못하외다.’ 여는 이러한 활세적(活世的) 의미로 그 표랑객을 죽였던가.
집 안은 통 비었다. 행랑아범은 벌이를 나갔다. 어멈은 주부(여의 아내)와 함께 예배당에 갔다. 아이들은 놀러 나갔다. 집 안에는 여 혼자밖에는 아무 도 없었다. 본시 아내는 여와 동반을 하여 이 일요일을 이용하여 산보를 갈 예산이었지만, 여의 감기 기미로 중지된 것이었다.
집을 혼자서 지키기는 무시무시하였다. 더구나 이것을 처음 겪어보는 여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문간에서 조그마한 소리가 나도 귀가 바싹 하였다. 뜰을 고양이가 달아나도 여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무슨 소리가 난 듯하여 나가서 구석구석을 검분 해본 일까지 있었다. 이런 가운데서 여는 여의 아내의 장부적 일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고소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리고. 얼른 예배가 끝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삐꺽! 문득 대문 소리가 조금 났다. 누워 있던 여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베개에서 들었다. 그리고 온 신경을 귀로 모았다. 또 삐꺽! 대문은 조금 또 열렸다.
여는 그것이 아내의 돌아옴이 아님을 알았다. 활발한 발걸음의 주인인 아 내는 이렇듯 기운없이 대문을 열지 않을 것이므로.
그 뒤에는 대문간으로 들어서는 발소리도 작으나마 들을 수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무슨 흥얼흥얼하는 사람의 소리가 대문 안에서 났다.
여는 벌컥 일어나서 나가보았다. 그리고 대문 안에서 한 사람, 표량객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적절히 말하자면 사람의 모양을 한 어떤 물건 이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기이한 동물에 대하여 여가 경이와 불안의 눈을 던질 때에 그의 입에서는 또 무슨 알아듣기 힘든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서 지갑에서 일전 한 닢을 꺼내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그 선물을 던지려다가 극도로 쇠약하여 몸의 동작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듯한 그의 모양을 보고 좀 그에게 가까이 가서 팔을 길게 해가지고 그의 앞으로 적선품을 내밀었다.
그는 그 돈을 힐끗 보았다. 그러나 받으려도 아니하였다. 또 무엇이라 흥얼흥얼하였다.

저자소개

1900년 10월 2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51년 1월 5일 사망
데뷔 : 1919년 소설 '약한자의 슬픔'

목차소개

<작가 소개>
거지
구두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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