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작철학

이효석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7월 30일 | EPUB

이용가능환경 : Windows/Android/iOS 구매 후, PC, 스마트폰, 태블릿PC에서 파일 용량 제한없이 다운로드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구매

전자책 정가 500원

판매가 500원

도서소개

내려 찌는 복더위에 거리는 풀잎같이 시들었다. 시들은 거리 가로수(街路樹) 그늘에는 실업한 노동자의 얼굴이 노랗게 여위어 가고 나흘 동안─바로 나흘 동안 굶은 아이가 도적질할 도리를 궁리하고 뒷골목에서는 분 바른 부녀가 별수없이 백동전 한 잎에 그의 마지막 상품을 투매하고 결코 센티멘탈리즘에 잠겨본 적 없던 청년이 진정으로 자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자살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 되기를 원하였다─
도무지가 무덥고 시들고 괴로운 해이다. 속히 해결이 되어야지 이대로 나가다가는 나중에는 종자도 못 찾을 것이다. 이 말할 수 없이 시들고 쪼들려 가는 이 거리, 이 백성들 가운데에 아직도 약간 맥이 붙어 있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정주사네 사랑일까? 며칠이나 갈 맥인지는 모르나 이 무더운 당장에 그곳에는 적어도 더위는 없다. 대신에 맥주 거품과 마작과 유흥이 있으니 내려찌는 복더위에 풀잎같이 시들은 이 거리, 서늘한 이 사랑에서는 오늘도 마작판이 어우러졌던 것이다. 삼간이 넘는 장간방의 사이를 트고 아래 윗방에 두 패로 벌린 마작판을 싸고 전당포 홍전위, 정미소 심참봉, 대서소 최석사, 자하골 내시 송씨, 그 외에 정체모를 수많은 유민들이 둘러앉아서 때묻은 마작쪽에 시들어가는 그들의 열정을 다져서 마작판을 탕탕 울린다.
“펑!”
“깡!”
그러나 흥겨운 이 소리가 실상인즉 헐려가는 이 계급의 단조한 생활을 상징하는 풀기 없는 음성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한 끗에 맥주 한 병씩을 걸고 날이 밝도록 세월없이 마작판을 두드리는 그들의 기력 없는 생활의 자멸을 재촉하는 단말마적 종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펑!”
“깡!”
“홀나!”
양동이에 얼음을 깨트려 넣고 그 속에 채운 맥주를 잔 가득 나누고 마작쪽이 와르르 흩어지니 판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오늘이나 소식이 있을까.”
판 한 모에서 대전하고 있던 정주사는 마작과는 관계없는 딴 생각에 마음을 은근히 앓으면서 홍중(中)쪽을 정성스럽게 모아들였다. 그는 끗수의 타산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어쩐 일인지 홍중을 좋아하고 백(白)판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홍중으로 방을 달면 길하고 백판으로 달면 흉하다는 이 비논리적 저 혼자의 원리에 본능적으로 지배를 받으면서 이것으로써 은근히 마음먹은 일을 점치는 것이다. 그 심리는 마치 연애에 빠진 계집아이가 이기든지 말든지 간에 남몰래 트럼프의 화투장을 정성껏 모아들이는 그 심리와도 흡사하였다.
정주사는 오늘도 아들의 편지를 고대하면서 홍중으로 방 짜기에 애를 썼다.
그러나 재수없는 백판만 여러 쪽 들어오고 홍중은 판판이 한 쪽도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는 추근추근히 세 쪽이나 들어온 백판을 헐어내 버리면서도 수중에 한 쪽도 없는 홍중을 한 장 두 장 판에서 모아들이기에 헛애를 썼다.
결과는 방 달기가 심히 늦고 남이 벌써 “홀나!”를 부를 때에도 그는 방은커녕 엉망진창인 수많은 마작쪽을 가지고 미처 주체를 못해서 쩔쩔매었다.
그러나 물론 그는 “홀나!”를 바라는 바도 아니오, 맥주를 아끼는 터도 아니었다. 다만 홍중으로 훌륭하게 방 한 번 달기가 원이었다. 그러나 종일 마작판을 노려도 홍중은 안 들어오고 편지는 안 오고─그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우울하였다.
“에, 화난다!”
마음 유하게 판에 앉았던 정주사도 나중에는 화가 버럭 나서 마작쪽을 던지고 벌떡 자리를 일어났다.
“운송(정주사의 호), 요새 웬일이오?”
같이 놀던 친구들은 정주사의 은근한 심정은 모르고 그의 연패하는 것이 보기 딱해서 그의 손속 없는 것을 민망히 여겼다.
“최석사, 대신 들어서시오.”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최석사에게 자리를 사양하고 정주사는 웃목에 서 있는 넓은 침대에 가서 몸을 던지고 마작 소리를 옆 귀로 흘리면서 자기 스스로의 생각에 잠겼던 것이다─정주사의 사랑하는 외아들이 일확만금을 꿈꾸고 새 실업을 꾀하여 동해안으로 떠난 것은 벌써 작년 봄이었다. 대학을 마친 풋지식을 놀려두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수년 전부터 동해안 일대에 왕성히 일어난 정어리업에 기울였던 것이다. 바다일이라는 것이 항상 위험하기는 위험한 것이나 천여석지기의 자본을 시세 좋은 정어리업에 들여 밀면 만금이 금시에 정어리 쏟아지듯 쏟아질 것이다─고 생각한 그는 대번에 삼백석지기에 넘는 옥토를 은행에 잡히고 이만여원의 자본금을 낸 것이다.
십여 척의 어선과 어부를 사고 수십 채의 그물을 사고 해변에 공장을 세우고 기름 짜는 기계를 설치하고 공장 노동자와 수백여 명의 능률 노동자를 써가면서 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얼떨떨한 흥분과 모험감으로 일년 동안을 계속하여 분주한 어기(漁期)를 지내놓고 연말에 가서 이익을 타산하여 보았을 때에 웬일인지 예측과는 딴판으로 수지가 가량없이 어긋났다.
결국 이만여원을 배와 공장에 곱게 깔아놓았을 뿐이요, 한 푼의 이익도 건지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른 법 없는지라 첫 사업의 첫해인 만큼 모든 실패를 서투른 수단과 노련치 못한 풋 지식의 탓으로 돌려보내고 금년에는 일년 동안에 얻은 경험을 토대로 사업을 확대하여 또 삼백여마지기의 옥토를 같은 은행에 잡히고 이만여원을 내서 배를 늘리고 공장을 늘려서 한층 더 큰 규모로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뉘 알았으랴, 금해금이 단행되고 금융계와 모든 사업계에 침체가 오자 무서운 불경기의 조수는 별 수 없이 정어리업에까지 밀려오고야 말았다.

저자소개

소설가(1907~1942). 호는 가산(可山). 1928년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온 이후, 초기에는 경향 문학 작품을 발표하다가, 점차 자연과의 교감을 묘사한 서정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에 <메밀꽃 필 무렵>, <화분(花粉)>, <벽공무한(碧空無限)> 따위가 있다.

목차소개

<저자 소개>
마작철학(麻雀哲學)
판권

회원리뷰 (0)

현재 회원리뷰가 없습니다.

첫 번째 리뷰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