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明文)

김동인 | 도서출판 포르투나 | 2020년 07월 29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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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전 주사(主事)는 대단한 예수교인이었습니다.
양반이요 부자요, 완고한 자기 아버지의 집안에서, 열일고여덟까지 맹자와 공자의 도를 배우다가, 우연히 어느 날 예배당이라는 곳에 가서, 강도(講道)하는 것을 듣고, 문득 자기네의 삶의, 이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장래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에 놀라서, 그날부터 대단한 예수교인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으면서 맨 처음 일로 제 아내를 예수교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동시에, ‘님자’이고,‘여편네’이고, 떡하면 ‘이년’이던 그의 아내는 ‘당신’이요, ‘마누라’요,‘그대’인 아내로 등급이 올랐습니다.
그는 머리를 깎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까지 예수교를 전해보려 하였습니다.
“네나 천당인가엘 가라.”
어머니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천당? 사시 꽃이 피어? 참 식물원에는 겨울에도 꽃이 피더라, 천당까지 안 가도……. 혼백이 죽지 않고 천당엘? 흥, 이야긴 좋다. 네, 내말을 잘 들어라,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백이 죽느니라. 몸집은 그냥 남아 있고……. 몸집이 죽는게 아니라, 혼백이 죽어 혼백이 천당엘 가? 바보의 소리다. 바보의 소리야. 하하하하.”
아버지는 비웃는 듯이 이렇게 대답해오다가, 갑자기 고함쳤습니다.
“이 자식! 양반의 집안에서 예수? 중놈같이 대구리를 깎고. 다시 내 앞에 서 그댓 소릴 했다가는 목을 자르리라.”
전 주사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혼을 위하여 기도를 하면서, 자기네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평화롭고 점잖고 엄숙하던 이 집안에는, 예수교가 뛰어들어오자부터 온갖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러 왔느니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그대로 이 집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칠역(七逆) 가운데 드는 무서운 죄악을, 전 주사는 맨날과 같이 범하였습니다.
미신이라는 것을 한 죄악으로까지 보던 아버지는, 전 주사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뒤부터는, 아들을 비웃느라고 맨날 무당과 판수를 집안에 불러들여서 집안을 요란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자식 놈의 예수와, 내 인복 대감과 씨름을 붙여놓아라.”
이러한 우렁찬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때때로 안방에까지 들리도록 울렸습니다. 그런 때마다 착하고, 효성 있는 전 주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골방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기도드렸습니다.
이 무섭고 엄한 집안에 들어온 예수교는, 집안이 집안인지라 가지는 널리 못 퍼졌지만, 그러나 뿌리는 깊게 뻗쳤습니다. 온갖 장해와 박해 아래서도 전 주사의 내외의 마음속에는 더욱 굳건히 이 뿌리가 들어박혔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제 육신의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착한 이외다, 남에게 거리끼는 일은 하나도 안 하는 사람이외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선지식을 모르는 것뿐이 죄악이라면 죄악이겠습니다. 딴 우상을 섬기는 것이 당신께는 가장 큰 죄악이겠지만, 이 육신의 아버님이 딴 우상을 섬기시는 것은, 결코 자기의 마음에서가 아 니라, 다만 나를 비웃느라고 하는 일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의 그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는 흔히 이런 기도를 골방에서 드렸습니다.
어떤 날, 이날도 그는 이러한 기도를 드리고, 골방에서 나오노라니까(며느리의 방에는 아직 들어와보지 못한) 그의 아버지가, 골방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전 주사는 아버지의 위엄 있는 얼굴에 놀라서, 그만 그 자리에 굴복하고 앉고 말았습니다.
“얘 고맙다. 하나님한테 이 내 죄를 용서하라고? 이 전 대과는 자기 철이 든 이래, 죄라고는 하나도 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 죄를? 이 자식! 네 아비의 죄가 대저 무엇이냐! 대답해라.”
전 주사는 겨우 머리를 조금 들었습니다.
“아버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까 하나님께도 기도올렸거니와, 아버님은 다른 잘못이라는 것은 없는 분이지만 하나님 밖에 다른신을 섬기시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의 하나올시다.”
“하하하하. 너의 하나님도 질투는 꽤 세다. 얘, 내 말을 꼭 명심해서 들어라. 이 전 대과는 다른 죄악보다도 질투라는 것을 제일 미워한다. 너도 알다시피, 첩을 두지 않는 것만 보아도 여편네 사람의 질투를 얼마나 싫어 하는지 알겠지. 나는 질투심한 너의 하나님은 섬길 수가 없다. 하하하하, 너의 하나님은 여편넨가 보구나.”
아버지는 별한 찢어지는 소리로 웃음치고, 문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저자소개

1900년 10월 2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51년 1월 5일 사망
데뷔 : 1919년 소설 '약한자의 슬픔'

목차소개

<작가 소개>
명문(明文)
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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